2008. 11. 5. 19:28ㆍ독서후기
젊음의 탄생(2)
■ 이어련 지음
◎ UP 6, 연필에서 벌집 = 圓.方.角 = Honeycomb Core
★ Card 6 연필의 단면도(Hexagon)
쓰고 지우는 연필, 벌들은 연필의 여섯모를 알고 있었다.
■벌집 모양의 사고
세모와 네모의 각진 사고는
편견을 부르고, 꽉 찬 원형
의 사고는 배척의 함정에 빠
지기 쉽다. 원과 사각형의
끝없는 갈등과 딜레마 사이
에서 비로소 인체공학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육각형이 탄생
한다.
1. 연필은 필기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도구다.
■ 도구는 생각을 멈추게 한다.
- 1 -
0 연필로 글씨를 씁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생각은 연필에서 멀리 떨어 져 있습니다. 심지어 연필을 쥐고 있는 손가락조차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연필심이 부러지면 글쓰기는 갑자기 종단되고 우리의 의식은 연 필의 도구 자체로 향합니다. 그래서 어느 허풍스러운 작가의 글귀처럼 “깊은 잠을 자고 있는 흑연 광산과 향기로운 삼나무 숲”이 바로 그들 의 고향이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0 그 순간 필기도구로만 생각해오던 연필이 생각의 도구로 변합니다. 술상 에 놓여 있던 청자가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물건으로 박물관 진열대에 오르면 사람들의 시선이 청자의 아름다운 몸과 그 빛깔 위에 멈추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0 소설가 헤밍웨이는 “연필 두 자루 정도는 닳아 없어져야 하루 일을 충 분히 한 것 같다.”고 했으며 존 스타인백은 하루 종일 글을 쓸 때 연필 깎는 시간을 아끼려면 아무래도 전기 자동 연필깎이가 필요하다고 말했 습니다. ‘연필’이라는 책을 낸 헨리 페트로스키의 증언대로 문필가들 은 그렇게 많은 글을 연필로 쓰면서도 정작 연필에 관한 글은 거의 남기 지 않았다는 거지요. “별이 멈추지 않는 한 부지런한 연필은 글을 시작 하고 끝내는 작업을 끊임없이 계속할 것”이라고 노래한 칼 샌드버그의 시가 영어권 문학에서 연필을 주제로 한 유일한 글이라는 것입니다.
■ 연필은 연필이 아니다.
0 ‘에덴의 동쪽’으로 널리 알려진 노벨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백은 그날 의 기분과 날씨에 따라 각기 다른 연필을 골라 썼으며 심지어 하루에 예 순 자루의 연필을 부러뜨린 날도 있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 지만, “내 감각이 장미 꽃잎처럼 아주 섬세할 때만 사용한다.”는 가장 부드러운 연필심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던 그 자신도, 바로 그 연필 심이 납(鉛)과 전혀 상관이 없는 흑연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러니까 연필(鉛筆, lead pencil) 이라는 말이 얼마나 잘못 붙여진 이름인가 하 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남긴 바 없습니다.
- 2 -
0 연필을 순수한 한국말로 옮기면 ‘납의 붓’입니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 리 연필심은 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물질이라는 데 누구나 놀랄 것 입니다. 연필심은 납이 아니라 카본(탄소)입니다. 브리테니커 백과사전 을 비롯해 여러 문헌들은 연필이 1564년 영국 보로메일 지방의 거목 하 나가 폭풍우로 뿌리가 뽑히는 바람에 발견되던 날 탄생한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0 뽑혀진 나무뿌리에서 많은 양의 카본(흑연)을 발견하게 된 그 지방 사람 들이 그것을 검은 납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65년 독일계 스위스 박물학자인 콘라트 폰 게스너는 자신이 흑연 조각 을 나무에 끼워 필기와 스케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두었던 것입니다. 그 바람에 수 백억 자루의 연필이 생산되었지만 그 잘 못 붙여진 이름은 지금까지 동서양 할 것 없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 입니다. 그것이 납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여전히 보로메일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5백 년 동안 그냥 되풀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렸을 때 좀 더 진하게 써지도록 연필심을 입으로 빨아 침을 바르면 어른들은 놀라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얘야, 큰일 난다. 연필을 빨면 납독이 오른단다.”
0 그래서 연필은 정확하게 탄필(炭筆)이 되고 다이아몬드의 사촌인 그 탄 소 결정체가 삼나무의 향기로운 냄새에 둘러싸여 조용히 잠들어 있는 신 비한 물체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숫자로 표현되는 연필의 이미지를 도형의 아이콘으로 옮겨 보세요. 수천 번 써 오고 수만 번 보아왔던 그 연필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 올 것입니다. 그때서야 처음으로 일반적인 연필들은 그 단면이 세계 어디에서나 육각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 고 놀랄 것입니다.
만약 연필 단면이 사각형이었다면 손가락으로 쥐고 쓰는 데 얼마나 불편 했을 것인가. 그래서 연필 자루는 원통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 입니다. 그러나 원통형 연필 자루는 얼마나 구르기 쉬운가. 조금만 기울 어도 연필은 책상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 질 것입니다.
■ 원과 네모의 갈등
- 3 -
0 원과 사각형의 끝없는 갈등과 딜레마 사이에서 이윽고 육각형이 생겨나 게 됩니다. 그것이 잡기도 쉽고 잘 구르지도 않는 육각형이라는 임계점 입니다. 육각형의 연필 자루에서 그 각을 자꾸 늘려가면 점점 원에 가까 워 지고 그 각을 줄여가면 오,사,삼각형으로 줄어들어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극한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0 19세기 중간까지 연필 모양은 팔각형이 주류를 이루었고 19세기 말에야 육각형 연필에 연필심도 둥근 모양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사각 연필도 있었습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유행한 뒤에는 널리 쓰이지 않고 있지요. 왜냐하면 사람들은 연필을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의 세 손가락을 사용 해 같은 간격으로 잡기 때문에 그 면이 삼각형이거나 그 배수인 육각형 이 아니면 손으로 쥐기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0 구르지도 않고 잡기도 편한 두 가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것이 육각형 연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연필의 표준 형태가 된 데는 제작상의 원인 도 있었던 것이지요. 연필을 만드는 과정에서 목재를 가장 많이 낭비하 는 것이 원형이고 가장 절약되는 것이 사각형입니다. 그러나 육각형이면 사각형보다는 조금 못해도 원형보다는 훨씬 경제적입니다.
■ 연필의 동양과 서양
0 서양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오각형 연필이 동양에서 생겨난 것은 문화의 차이입니다. 오각형 연필은 원형보다도 빈틈이 많이 생겨 목재 낭비가 심하고 공정상 연필심을 정확하게 한 가운데에 박기도 힘듭니다. 연필 심이 중심점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전동 연필깎이를 사용하기 어렵습니 다.물론 손에 쥐고 쓰는데도 최악이지요. 그런데도 왜 오각형 연필이 유 통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면 역시 아시아의 밤과 눈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한국과 똑같은 입시 지옥에서 나온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일본말 로 ‘오각’은 ‘합격’이란 말과 음이 동일해 그것으로 시험을 치면 대 학에 합격할 수 있다는 속신의 산물입니다.
- 4 -
0 실용주의, 합리주의의 서구사회 관점에서 보면 오각형 연필은 틀림없이 불합격 제품이 되겠지만 아시아 사회에서는 그리 놀랄 일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입시에 미끄러진다고 미역국을 먹지 않거나, 대학에 붙으려 고 엿을 먹기도 합니다. 중국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불 꽃놀이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은 ‘폭죽’이라는 말 때문입니다.‘폭죽’ 의 폭은 ‘발(發, 숫자로 8)’과 같고 ‘죽’은 축하의 ‘축(祝)’자와 음이 같기 때문에 경사스러움을 나타냅니다.
■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고와 벌집
0 중국인과 일본인을 비롯해 한국인의 사고 형태는 천원지방을 기초로 하 고 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하늘 ‘천’ 따‘지’의 천자문부터 시작한 한국의 선비들은 둥그런 원과 네 모난 형태의 우주론으로 모든 현상을 내다 보았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원방으로 이루어진 엽전 모양이 생기고 궁에서는 ‘원방지(圓方池)‘라 는 연못이 만들어지고, 둥근갓과 네모난 탕건이 어울리는 복식술이 생겨 나는 것이지요.
0 자연에는 벌집같은 육각형 모양을 한 구조물이 많다는 사실. 그리고 육 각형 구조물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한다는 사 실. 연필을 쌓아놓은 것처럼 육각형으로 연결한 구조물을 ‘벌집구조 (Honeycomb structure)’라 부르는데, 여기에 구조적으로 놀라운 힘이 있다는 사실도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벌집구조는 비행기의 날개나 인 공위성의 벽 같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 응용되고 있지요. 옛날부터 자연 적인 파워를 발생한다는 피라미드 구조 역시 알고 보면 육각형 구조물과 다름없는 형태라고 합니다.
2. 벌집구조 육각형의 신비
■ 연필과 벌집이 닮은 이유
- 5 -
0 벌집은 왜 육각형인가.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연필을 제작하는 공정처 럼 재료를 최소화하고 그 공간은 최대화하려는 수단에서 이루어진 형태 라는 점입니다.
0 벌집구조의 수수께끼는 2천 년 동안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내려오다 1965 년에 이르러서야 헝가리 수학자 폐예시 토트에 의해 수학적으로 증명되 었습니다. 변이 곧은 요철형 다각형 가운데 정육각형이 가장 효율이 높 은 도형이라는 것을. 수학자들은 오랜 의문 끝에 길고 긴 복잡한 수식 을 사용해서 밝혀낸 것이지요. “최소의 재료를 가지고 최대의 면적을 지닌 용기를 만들려 할 때 그 용기의 주위는 육각형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 자연은 보호대상이 아니라 학습대상이다.
0 현대인은 인공의 재능에만 만족하고 있지만 자연의 창조적 능력은 모두 가 이 천부의 재능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연을 떠나 문명에만 의존해온 현대인들은 어느덧 인간의 지능이 자연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 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5백 년이 걸려 겨우 터득한 연필의 육각형을, 벌 들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기 수십만 년 전 이미 태어날 때부터 몸에 지니 고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지능이 얼마나 가소롭게 여겨지는지.
0 여러분이 사용하는 ‘자연보호’라는 말부터가 웃기는 말입니다.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학습의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자연이 인간을 보호 해 왔지 언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 왔습니까. 자연보호란 말 속에 이미 역설적으로 말해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인 인간의 오만함이 깃들어 있는 것이지요.
0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학습해야 할 위대한 교과서”라 는 것만 알아도 여러분은 미래를 이끌어 갈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분 지식 옆에 함께 있어 온 연필의 육각형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 6 -
■ 축구장에 가거든 경기보다 골네트를 보거라.
0 옛날의 골네트는 그물코가 사각형 모양이었는데 요즘 새로나온 골네트는 그 모양이 벌집구조로 짜여 있습니다. 한줄의 끈으로 똑같은 면적의 사 각형과 육각형의 망을 짤 경우 육각형의 네트가 사각형 보다 그 끈의 길 이가 짧다고 합니다. 그만큼 재료가 덜 든다는 이야기지요. 거기에 또 벌집 구조의 네트가 통풍도 잘되고 강도도 높아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금상첨화로 보기에도 아름답지요.
0 벌집구조를 이용한 골네트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 처음 등장한 것 이라는데, 그것을 상용화하여 돈을 번 것은 일본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 때 그것을 유심히 보아두었던 일본의 한 어망 업자가 이탈리아의 그 기 술을 도입하여 스포츠용품 회사를 차려 블루오션 기업을 만들어 낸 것입 니다.
0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잘 듣기 바랍니다. 고기 잡는 그물은 누구나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레드오션이지만 월드컵 축구의 열기로 떠오른 축구의 골 네트 구조를 자연의 꿀벌에게 배우는 것은 블루오션을 항해하는 것입니 다. 디자인의 왕국 이탈리아 사람들은 벌집구조의 놀라운 네트를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어망만 만들고 있는데.그 기술을 모방한 일본 사람들은 어망회사를 새 스포츠업으로 변신시킨 것입니다.
3. 바이오 미메시스
■ 자연으로 돌아가라
0 자동차가 시속 100Km 로 달리면 엔진은 금시 불덩어리가 되어 냉각장치 가 필요하지만 타조는 자동자만큼 달려도 통닭구이가 되는 법이 없다.
열차가 속도를 내면 엄청난 소음이 생기는데 일본은 신칸센 열차보다 더 빠른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소음 때문에 실용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 7 -
러나 부엉이는 밤의 정적과 그 큰 몸집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먹이에 다가갈 수 있는데 그것은 날개죽지 앞에 있는 날카로운 깃털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새로 개발한 신칸센은 부엉이로부터 그 원리를 차용해서 소음을 대 폭 줄이는데 성공했다.
0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루소의 꿈이 아니라 이제는 과학자들의 현실 목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에서 배워라!”그것이 바로 정보 시대 다음에 오게 된다는 바이오의 ‘생명시대’ 인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데 화학 비료를 주고 농약을 뿌리는 것은 산업시대의 영농법이었습 니다. 심지어는 농작물을 키우기 위해서 고엽제 같이 잡초를 말려 죽이 는 약까지 살포했습니다.
0 한마디로 20세기를 지배한 기술은 기계 기술이었으나 21세기를 여는 새 로운 기술은 생명과 자연에서 배우는 생태학적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습 니다. 김치와 같은 뛰어난 발효 식문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한국인 들이 일단 눈을 자연으로 돌리기만 하면 이같은 생태론적 기술을 발명하 고 개발할 충분한 잠재력을 양껏 발휘할 것입니다.
■ 지우개 달린 연필
0 새로운 필기도구가 발명될 때마다 연필 멸망론이 대두되었지만 현재까지 연필이 끄덕없이 건재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울 수 있다는데 있 습니다. 만년필이나 볼펜은 오로지 쓰는 기능만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쓰는 기능만큼 중요한 것은 역설적으로 지우는 기능입니다.
마치 붙이는 기능으로 개발되었지만 다시 뗄 수도 있는 접착제를 만들어 백만금을 번 3M의 ‘포스트잇’과 같은 경우지요.
0 쓰기가 중단될 때, 그리고 쓴 것을 지울 때, 새로운 사고가 생겨 납니 다. 지우개를 머리에 단 연필. 이것이 창조적 사고의 가장 중요한 원형 입니다.
연필처럼 유연한 사고여야 한다는 겁니다 . 한번 쓰면 절대로 지워지지
- 8 -
않는 잉크펜이나 볼펜 같은 경직된 사고형에서는 결코 창조적인 생각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고정관념을, 편견을, 그리고 일상성에 토대를 둔 도 구적 사고를 지울 수 있는 하나의 지우개. 연필과 함께 붙어 있는 지우 개. 이것이 앞으로 다가오는 젊은이들이 필요로하게 될 새로운 사고의 틀일 것입니다. 쓰고 지우고, 지우고 또 쓰십시오.
◎ UP 7, <따로따로><서로서로> = 獨創性 = only one
★ Card 7, 빈칸메우기(Blank)
■ 함께, 그러나 홀로 있는 창조의 외로움과 즐거움
여백의 무한한 가능성
각각의 빈 칸에 무슨 글자를
채워 넣을까? 빈칸은 결핍이
다. 그러나 결핍은 필요를 낳
고 필요는 목표를 낳고 목표
는 노력을 낳고 노력은 창조
를 낳고, 창조는 당신의 젊음
을 더욱 새롭고 찬란하게 만
들어 줄 것이다.
1. 내 젊음의 빈칸 메우기
■ 밀크냐 실크냐
- 9 -
0 □ilk의 공백 안에 M을 넣으면 Milk가 되고 S를 넣으면 Silk가 된다.
그런데 빈 칸을 메울 때 사람마다 모두 다른 글자를 선택한다. 밥 먹기 전에는 M이, 밥 먹은 후에는 S가 많고, 젖소를 먹이는 서양문화권의 목 축민은 M이, 누에를 치던 동양문화권은 S가 많다고 한다.
0 개성의 차이일까. 무의식의 작용일까. 그냥 우연의 결과일까.
■ 인생은 빈칸 메우기의 퍼즐
0 봄날처럼 대학시절의 젊음은 짧고 쉬 지나갑니다. 사랑은 결혼으로, 강 의실은 사무실로, 그리고 가슴속에 벅찬 책들이 캐비닛의 때묻은 서류가 되어 쌓여가면, 어느새 그 많던 빈칸들도 소거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쩌 다 비어 있는 공백을 발견해도 거이에는 이미 남들이 써놓고 간 글씨의 흔적이 있거나 동어 반복밖에는 달리 채울 만한 말이 없을 수도 있지요.
0 빈칸은 비어 있는 것입니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인데, 인간은 바로 그 비어 있다는 것을 안다는 점에서 다른 짐승과 구별됩니 다. 없으면 그만인데도 그 빈칸을 채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 그 리고 공백을 그대로 둔 채 생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입니다.
■ 불완전함에 대한 저항, 울음
0 “인간이란 무엇인가?”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묻는 것 자체가 벌써 인간에게는 빈칸 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도 동물도 그런 질문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자연히 “인간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말을 끌어 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불완전하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완전을 구하는 존재”라는 역설적인 정의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자신에게 없는 다른 반쪽의 분신을 찾고자 하 는 인간의 욕망을 에로스, 즉 남녀의 사랑이라 풀이하고 있지요. 결혼식 주례사에 가끔 등장하는 비익조(比翼鳥)와 흡사한 이야기입니다. 이 전
- 10 -
설의 새는 한 쪽 날개만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다른 쪽 날개를 가진 새를 만나 짝을 이루지 못하면 하늘을 날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0 태어나는 아이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요란스럽게 울며 태어나는 짐승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까. 산도에 비해 태아의 머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어떤 짐승보다도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이 존재의 결여감에 대해 울음을 멈추지않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울보만은 아닌 까닭은 그 빈칸을 채울 수 있는 창조적 인 꿈과 재능을 지녔다는 데 있습니다. 울음소리만으로는 의사 전달을 할 수 없기에 언어가 만들어지고, 독수리 같은 날개가 없으니 비행기를 만들었고, 물고기의 아가미가 없어 잠수함을 만든 것입니다.
■ 쓰레기통 같은 인간의 유전자
0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은 부족한 것이 있다는 것이고,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거기에서 개체라 는 것이 생기고 창조력이 움틉니다. 개만 해도 꿀벌 보다는 조금은 빈칸 이 있기에 훈련을 시킬 수 있지요. 꿀벌이 서커스를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지만 개들이 개답지 않은 재주를 보이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야생의 곰이나 코끼리라고 해도 조련사의 훈련에 따라서는 훌륭한 서커 스단의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0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를 쓰레기통에 비유하여 ‘정크’라고 부릅 니다. 불필요한 것들이 유전자 안에 가득차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대 장균의 경우는 어떤 허드레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아주 깨끗하지 요. 그래서 대장균은 언제나 대장균인 채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은 그 정크 때문에 여타의 생물들과는 다른 변화와 다양성 그리고 창조 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됩니다.
■ 물레방아의 동서 이렇게 다르다.
0 단순한 결론이나 역설이 아닙니다. 중국을 비롯한 벼농사 권에서 산업화
- 11 -
가 뒤졌던 것은 앞에서 말한 상황을 그대로 뒤집어 보면 됩니다. 벼는 면적당 칼로리 생상량이 가장 많은 곡물입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도 살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빵만 먹고는 살아가질 못합니다. 그들의 땅에 재 배되는 소맥(밀)은 가뜩이나 쌀에 비해 소출이 적은데, 땅까지 기름지지 못해 농사를 짓고 나면 휴경을 해야 합니다. 그 틈을 이용해 목축업을 하면서 유럽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0 더구나 밀은 딱딱해서 쌀처럼 그냥 껍질만 벗겨서 먹을 수가 없기 때문 에 일일이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식품 형태로 가공해야만 했지요. 그 탓 에 유럽이서는 물레방앗간이 생활의 중심이 되고 그 마을에서 가장 돈 많은 유지도 방앗간 주인의 몫이었습니다. 슈베르트의 가곡에 방앗간 집 딸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0 밀가루를 만드는 분쇄 기술은 엄청난 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 때문에 축력, 풍력, 수력에 이어 산업혁명의 증기기관을 비롯한 동력혁명이 일 어나게 됩니다. 정제된 화약을 만들어 내는 분쇄기술은 군사 기술과 연 결되어 결국은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난 포함으로 쌀을 먹는 나라들을 압 박하지요. 이른바 함포를 앞세운 ‘포함외교’라는 것입니다.
0 그래서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지금도 공장을 mill(방앗간)이라고 부 르는 영국인들이 산업혁명을 먼저 일으킨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 일 것입니다. 은밀한 남녀의 밀회장소로 등장하는 ‘메밀꽃 필 무렵’의 한국 물레방앗간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르지 않습니까?
■ 유럽 문명에서는 후추맛이 난다.
0 육식을 하지 않고 채식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었던 벼농사 권에서는 간장 만 있으면 별 조미료 없이도 요리를 했지만 유럽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 릅니다. 후추와 같은 향신료가 없이는 육류 식품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 이지요. 지금처럼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신선한 고기를 먹 을 기회란 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후추를 뿌리지 않고서는 조금 맛이 간 고기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12 -
서양의 식문화에서는 후추는 필수 불가결의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먼 인도양으로 진출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후추의 빈칸 메우기에서 인도양으로 항해하는 희망봉 같은 해상 루트의 발견과 콜럼버스 대항해시대의 막이 열리게 됩니다.
0 랜드(Land) 파워는 지구의 큰 빈칸인 사막에 실크로드를 만들었지만, 시 (Sea) 파워는 지구의 또 하나 큰 빈칸인 바다에 ‘밀크로드’를 구축한 것입니다. 밀크로드란 말은 처음 들어 본다고 할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세요. 밀크는 목축업을 중심으로 한 서구 문명의 키 워드이고, 실크는 쌀 농업을 기층으로 한 동양 문명의 상징어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0 명치유신을 이끈 오쿠보 도시미치는 명치천황에게 우유를 먹을 것을 권 했습니다. “앞으로 저들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려면 왜소한 신민들의 몸 집부터 커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 천황께서 쇠고기와 우유를 드 시면 온 신민들이 뒤를 따를 것입니다.“ 이 한 편의 웃기는 일화에서 보듯이 서구 근대 문화는 다름아닌 쇠고기와 우유로 상징되는 밀크로드 를 타고 들어 온 것입니다.
2. 대통령의 퀴즈
■ 홀로 ‘독’자의 퍼즐 게임
0 ‘독(獨)’자 다음에 오는 말은 대개가 부정적이다. 재(裁), 선(善), 주 (走), 단(斷) 그리고 독불장군(獨不將軍), 유아독존(唯我獨尊) 등.....
하지만 온리(Only)의 그 홀로 ‘독’자가 상상력이나 창조력과 손을 잡으면 그 위험의 덫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파워를 가질 수 있지요.
0 홀로 ‘독’자의 빈칸 메우기는 대통령의 퀴즈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각 하라고 부르던 시대나 ‘님’자를 붙여 부를 때에나 대통령이라는 그 자 리는 홀로 설 수 밖에 없는 곳입니다. 높은 산 봉우리의 정상에는 두 사
- 13 -
람이 함께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지요.
0 독선이 독재보다 더 무섭습니다. 독재는 물리적 힘을 바탕으로한 것이어 서 바로 그 물리적 힘에 의해서 무너뜨릴 수도 있고, 방어할 수도 있지 만, 독선은 의식의 힘에 의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의식 자체가 변화되 지 않으면 그 세뇌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 독주와 독창
0 산업시대의 개발 독재, 민주화시대의 이념 독선, 이제 선진화의 실용시 대를 표방하는 새 대통령의 빈칸 메우기에는 무슨 글자가 들어가게 될 것인가. 쉽게 떠오르는 것이 독주와 독창입니다.
0 관(官)이 정(政)의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고 정이 경제의 속도를 넘어서 지 못하고 경제가 뉴미디어의 통신기술 속도를 추월하지 못할 때,사회 모든 현상은 헷갈리는 시차 공격의 역습을 당하게 됩니다. 과속과 지속 의 불균형에서 오는 피해는 사회계층의 양극화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분 열현상의 초래합니다. 속도 조정을 잘 못하면 새 정부는 독재, 독선이 아니라 독주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위험성은 현대가 아니라도 이제까 지의 모든 정치와 관료들에게 있어 왔던 현상이지요.
■ 소를 타고 가는 우보의 드로몰로지(Dromology : 질주학)
0 정치의 드로몰로지는 조선조 때부터 존재했습니다. 선조때의 문신 정탁 이 수업을 마치고 스승인 조식에게 하직 인사를 할 때의 일화라고 합니 다. 조식은 정탁에게 뒤 우란에 황소 한 마리를 매어 두었으니 타고 가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소가 보이질 않아 멍하니 서 있는 정탁을 향해 조식은 이렇게 말했다는 겁니다. “자네는 말과 행동, 그리고 의기가 너 무 민첩하고 날카로운 것이 질주하는 말과도 같다. 그러다가는 넘어지기 쉬우니 매사에 신중하고 차분하고 둔해야 비로소 멀리 갈 수 있네. 그래 서 마음의 소를 타고 출사 하라는 말일세.”
정탁은 정승이 된 후에 조식이 일러준 ‘우보(牛步)의 정치학’으로 성
- 14 -
공을 거둡니다. ‘말의 질주’가 아니라 “느릿느릿 걸어도 황소걸음” 이라는 소걸음의 드로몰로지는 조선조의 정치사,생활사,문화사의 도처에 서 발견됩니다.
0 사람의 욕망을 조절하는 속도학, 인간의 속도와 기계의 기술 속도를 조 정하는 속도학, 맥도날드의 패스트푸드 시대에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는 ‘슬로 이즈 뷰티풀 (slow is beautiful)'의 느린 속도학. 옛날 우물가 의 여인들은 물을 청한 나그네의 물그릇에 버드나무 잎을 띄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해 주었습니다. 목마른 입 술을 가로막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버들잎의 속도학‘이 없으면 선 진화의 권력은 어쩔 수 없이 과속 운전으로 빠지고 말 것입니다.
■ 이종격투기의 시대
0 우리는 불행하게도 남의 발목을 잡는 한풀이 정치와 경제를 해 왔던 것 입니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을 못 참는 민족”이라는 자조 의 목소리도 나왔지요. 그러므로 선진화의 질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식이 말한 우보의 정치 속도학, 즉 조선조의 드로몰로지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0 하지만 황소걸음으로 천천히 가는 것은 안전하기는 하나 글로벌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후진대열에 끼기도 어려울 것 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 글로벌 무대 위에서는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이종격투기가 벌어지는 중입니다.
극히 반 인도적인 몇가지 반칙만 빼 놓고는 룰을 몽땅 없애 버린채 알몸 과 알몸의 막장대결을 벌이는 이종격투기가 모든 분야에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념 놀이를 하다가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도 필요할 것입니다.
■ 천천히 서두르는 정치 속도학
- 15 -
0 정부가 독주하지 않고 국민의 동행자가 되려면 카이사르 이후의 난국을 통치하는 데 성공한 로마의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면 “Festina Lente (천 천히 서둘러라)”는 격언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합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초상이 그려진 동전 뒤에는 닻과 돌고래 모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천천히 서둘러라”는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 을 로고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3. 독창성의 수원지 인문학
■ 독창성을 만드는 언어 ‘결’
0 ‘결’이라는 접미어는 한국어에서 아주 흔하게 사용되어 온 말입니다. 놀랍게도 보통명사에 ‘결’자를 붙이면 특수한 의미를 띠게 됩니다. 인 체에 관계된 말에 ‘결’자를 붙여 보세요. 살에 ‘결’자를 붙이면 ‘살결’이 됩니다. 살과 살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결자를 붙 이면 ‘마음결’이 됩니다. 마음과 마음결은 무엇이 다를까요. 숨쉬는 숨에다가 결자를 붙이면 ‘숨결’이 되고, 부는 바람에 결자를 붙이면 ‘바람결’이 됩니다.
0 ‘결’은 모든 사물과 상징에 따라 그것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이 나타납니다. 살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살결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마음결 도 바람결도 나뭇결도 모두 그렇습니다.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면 힘이 들듯 결을 따르지 않으면 백지장 한 장도 잘 찢어지지 않습니다. 종이의 성질을 이루고 있는 결의 힘 때문입니다.
0 이 결이 있어야 사람들은 그야말로 ‘한결 같은’ 자신의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독창성은 혼자의 작업으로 만들어 내는 예술문화 영역에서 두드러진 특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생명을 다루는 학 문, 고유한 생명의 문양을 재현하는 예술, 그런 결을 따라 옥돌을 갈고
- 16 -
닦는 인문학 분야에서 우리는 그 독창성의 의미를 더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 “따로! 따로!”홀로 일어서기
0 내가 여렸을 때만 해도 “따로! 따로! 따로!”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엉 금엉금 기던 아이가 혼자 일어서려고 할 때 어른들이 옆에서 외치는 추 임새이지요. 그러니까 두 발로 홀로 서기를 시작할 때 어른들이 제일 먼 저 가르쳐 준 말이 바로 “따로! 따로! 따로!”라는 독립의 언어였던 것 입니다.
0 나를 똑 같이 닮은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삶은 나의 지문처럼 이 세상 에 하나밖에 없지요. 이탈리아의 화가 라파엘로가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 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라파엘로가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 던 왕은 그가 딛고 서 있는 사다리가 휘청거리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는 때마침 들어온 재상에게 이렇게 지시합니다. “이보게, 저 사다리 좀 잡 아주게.”그러자 재상이 황당해하며 “아니 폐하, 일국의 재상이 저런 환쟁이의 사다리를 붙잡아 주는 게 말이나 됩니까?" 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저자의 목이라도 부러지면 저런 그림을 그릴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네. 그러나 자네 목이 부러지면 재상할 사람은 지금도 줄을 서 있다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처음부터 지금까지 강조해 온 ‘온리 원’의 힘인 것입니다.
■ 존재 가치를 일깨워 주는 독창의 힘
0 온리 원은 외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 명의 귀함, 그리고 그 독립적 가치의 자기 삶의 결을 뜻합니다.
0 “따로 따로 따로”의 외침은 석가모니만 유아독존으로 태어난 것이 아 니라, 생명있는 것이면 모두 다 유아독존임을 가르쳐준 말입니다. 그것 이 바로 독창성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한 것이지요.
- 17 -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출생의 순간부터 독자적인 생명의 의지를 침해 당 하고 있습니다. 10명 중 3.6명이 제왕절개 수술을 받고 아기집으로부터 끌려 나온다고 합니다. 보행기를 타고 걸음마를 시작하는 요즘에는 “따로 따로”라는 부모들의 추임새 소리가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이렇 게 태어날 때에도 요즘 아이들에게는 홀로 설 기회가 좀처럼 없습니다.
0 공자의 제자 자로가 “의로운 일을 들으면 즉시 행해야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 “그렇지 않다. 어른에게 물어 가르침을 받은 연후에 실행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제자 염유가 똑 같은 질문을 했을 때에는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 그 자리에서 즉 시 시행하라.” 라고 정반대의 대답을 주었습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본 공서화가 어째서 같은 말을 물었는데 대답이 다르냐고 묻자 공자는 “자 로는 너무 덤벼 신중을 기하도록 하기 위함이고, 염유는 너무 머뭇거리 는 버릇이 있어 결단력을 기르도록 도와준 것이다.” 라고 말했지요. 자 로에게는 ‘퇴(退)’를 염유에게는 ‘진(進)’을 가르친 맞춤식 교육이 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0 옛날 우리의 서당에서 천자문을 뗀 학생들에게 나눠 준 성적표도 그랬다 고 합니다. 재치가 넘치고 매사에 과민한 아이에게는 어리석을 ‘우 (愚)’자를, 남에 대한 배려가 적고 독선적이면 어질 ‘인(仁)’자를, 효심이 부족한 아이에게는 반포(反哺)한다는 까마귀 ‘오(烏)자를 그리 고 매사를 서둘러 일을 그르치면 천천히 걷는 소 ’우(牛)‘자를 써 주 었다고 합니다.
■ Step냐 Pest냐
0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 문에 답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인문학이 란 모든 학문 그리고 특히 ‘STEP'이라고 일컬어지는 사회(Society), 기 술(Technology), 경제(Economy), 정치(Politics) 활동의 수원지라고 정 의할 수 있지요. 이 수원지가 마르면 그리고 수도관이 터지거나 녹이 슬 면, 문명의 발판인 ’스텝‘은 중세를 휩쓸었던 급성 전염병인 ’페스트
- 18 -
(pest)' 로 변하게 됩니다.
0 말 장난이 아닙니다. 똑 같은 글자라도 그 순서를 바꿔놓으면 STEP이 PEST로 변하는 것처럼, 학문의 첫 글자였던 인문학의 우선 순위가 바뀌 게 되면 나라 전체가 역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 변화하는 세계대학
0 미국 기업들이 경영학을 불신하고 MBA 출신들을 더 이상 우대하지 않으 려는 경향에 경영대학 지원생이 30% 감소
0 미국의 의과대학은 의료사고가 교통사고 건수를 웃도는 현상이 보이자, “차트가 아니라 환자의 얼굴을 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환자와의 소통”이라는 교과목 개설
0 유럽 대학들은 EU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14만 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에 라스무스 프로그램(유럽 전역에 있는 가맹 대학 2천 2백 군데 중 어느 한 곳에서 학점을 따면 됨)에 참가
0 일본도 지식자본 향상을 위한 대대적 대학개혁 감행, 전국의 인문학 연 구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법인화를 이룸
■ 변화의 원천에 인문학이 있다.
0 이러한 변화의 핵심을 찾아가면 인문학이라는 수원지에 도달하게 됩니 다. 문사철(文 史 哲 :문학, 역사, 철학) 분야에서 불 수 있듯이 인문학 은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밝히고 깨닫 게 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인문학은 단순히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일 실용적인 도구 학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 인문학을 인문학 답게 만드는 ‘공감’의 원리
- 19 -
0 인문학에 대한 무지를 키운 것은 바로 인문학 당사자일수도 있습니다. 오래전에 이미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서문에서 비꼰 것처럼, 공 허한 내용과 독창성 없는 자료만 모아 주석과 참고 문헌만 잔뜩 나열하 면 권위 있는 논문이 되는 줄로 아는 사람들이 인문학자 행세를 하고 있 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혼도 가슴도 없는 인문학은 결국 상상력 과 창조력을 사회에 공급할 힘을 잃게 되고 그 결과 경상계 학생들은 80 ~ 90%에 달하는 취직률을 자랑하는데 인문계 출신들은 그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탄에 빠지게 됩니다.
0 인간의 뇌는 ‘시스템’과 ‘공감’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인식 기능 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감하는 능력을 잃으면 시스템 사고의 과잉으로 자폐증에 이른다는 사실은 여러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 입증된 현상이지 요. 단순히 말해서 인문학의 힘은 시스템을 중시하는 다른 학문과는 달 리 수리나 기계가 할 수 없는 ‘공감’능력을 길러주는 데 큰 역할을 해 왔다고 할 것입니다.
■ 상품가치와 생명가치
0 영국의 사회 사상가 존 러스킨은 시장경제의 원리에 대해 이렇게 주장합 니다.
- 노동가치 : 얼마나 노동력을 들였는가.
- 효용가치 : 소비자의 주관적인 만족도가 얼마나 큰가.
- 고정가치 : 같은 노동력을 들였다 해도 의료기계와 병기의 고정가치는 다르다. 즉 고정가치는 노동이나 효용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을 지탱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평가되는 가치를 말하며, 노동가치와 효용 가치가 아무리 높다 해도 아편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등의 행위에 가치를 부여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
0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
- 노동이나 효용가치는 노동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고정가치는 인간의 활동 에서 만들어진다.
- 그래서 봉사활동은 있어도 봉사노동은 없고 의료활동, 연예활동은 있어
- 20 -
도 의료노동, 연예노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0 기계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으로 노동생산성과 효용성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인간의 삶을 지탱해주는 기본적인 힘, 자기실현의 고 정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인문학의 활동 분야는 시장의 경쟁력을 잃고 낙 후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 독창을 낳는 6C와 3C
0 토플러가 말하는 것처럼 학교가 산업시대의 공장을 만든 것이라는 주장 을 받아 들인다 쳐도, 그 공장은 ‘창조적 계층’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 어야 할 것입니다. 장미를 처음 미녀에 비유한 사람은 천재지만, 두 번 째 그와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은 바보라고 했지요. 독창성은 기상천외의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니면 남들이 못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 그리고 남 들이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술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습니다.
0 독창성 연구에 대한 사이버 토론회에서 일본의 어느 교수는 뛰어난 연구 자가 되려면 여섯 가지의 C를 가슴에 새겨두라고 했습니다. “호기심 (Curiosity)에서 출발하여 용기(Courage)를 갖고 어려운 문제에 도전 (Challenge)할 것.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Confidence)을 가지고 모든 에너지를 집중(Concentration)하여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 (Continuation) 할것“
그는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호기심, 도전 그리고 계속(지 속성)의 3 C를 꼽았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평범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0 독창성은 남들이 당연시 하는 것, 이미 해답이 나온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유행을 따르는 데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독창적 산물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독창적인 아이디 어는 비난, 무시, 비웃음을 살 경우가 더 많지요. 그러기 때문에 절대적
- 21 -
고독을 넘어설 각오 없이는 독창성을 키워갈 수 없습니다.
■ 봉이 김선달이 대접받는 세상
0 우리는 이따금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들먹이지만 넓은 의 미에서 지식 창조의 사회는 봉이 김선달이 우글거리는 사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머리를 굴리고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 이 창조력을 발휘해 사회에 공헌 하거나 부를 창출하는 기회와 여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진 것이 없이 지력과 상상력을 지니고 있 는 사람들은 남을 속이는 ‘봉이 김선달’이 아니면 ‘허풍선이’로 전 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0 우리 사회는 불행하게도 아직 독창성이 대접받는 사회가 아닙니다. 아이 디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땅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사회가 못됩니다.
◎ UP 8, 앎에서 삶으로 = 知 ㆍ好 ㆍ樂 = DIKW Pyramid
★ Card 8, 지(知)의 피라미드 (Knowledge Pyramid)
■ 그레이트 아마추어가
되어라
앎에서 삶으로의 계단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
그리고 즐기는 자 - 그
중애 제일은 즐기는 자
이다. 프로와 아마추어
를 구분하는 요건은 속
- 22 -
도전에 있지 않다. 진정 그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인생이라는 길고 험한 암벽 등반을 함께 할 든든한 동료를 얻을 수 있다.
1. 배움은 젊음을 낳는다.
■ 공자의 知 ㆍ 好ㆍ 樂 피라미드
0 여덟 번째 카드는 앎(知)에서 삶(生)에 이르는 피라미드 도형입니다. 이 피라미드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지금까지 공의 쌓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 비법이 논어에 제시되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 知之者不如好之者 )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好之者不如樂之者 )
0 공자는 사람을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 그리고 ‘즐기는 자’의 세 그룹으로 나누었는데 그 가운데 뜻밖에도 아는 자를 가장 아랫자리에 두고 즐기는 자를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 놓았던 것입니다.
■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
0 논어의 첫장에 배우는 것이 등장하는 이유는 사람은 곧 배워야만 사람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교육의 동물 (Homo Educandus)'로 정의한 아모스 코메니우스 보다 천년이나 앞서 공 자는 배움의 중요성을 말함으로써 그것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지요.
0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힌디면 그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내 뜻을 아는 벗이 먼 곳에서 찾아 온다면 그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섭섭해 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 23 -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 골짜기에서 난초 향기를 맡다.
0 공자는 30년 가까이 천하를 주유하면서 72명의 제후들을 만나 왕도정치 를 설파하지만 패도정치의 무력이 지배하던 전국시대에 문덕(文德)으로 다스리는 문인정치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0 쓸쓸히 노나라로 향하던 공자가 인적없는 골짜기(공곡,空谷)에서 홀로 핀 유란(幽蘭)의 그윽한 향기를 맡으며 남이 알아주든 말든 공곡의 난초 처럼 고결하게 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그날이후 그를 찾는 제자들이 삼천명에 이르렀다지요.
■ 왜 학문은 재미 없어졌는가.
0 배움의 기쁨이 사라지고 학문에서 즐거움이 사라진 오늘의 교육풍토와 학교생활, 그리고 빈 골짜기는 있어도 난초의 향기는 없는 쓸쓸한 은퇴 노교수의 생활이 반사적으로 떠 오릅니다.
0 논어의 첫머리는 분명 오늘날의 학교 교육과는 달리 가르치는 자가 아니 라 배우는 자의 마음을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교육의 효과를 유용성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유의성에 두고 있습니다. 그 목표 역시 남 들이 자신을 인지하고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니라 메슬로의 욕구 피리미드 의 최상층인 자시 실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만 목표를 둘 때 학문은 재미 있을수가 없는 것이지요.
■ D I K W 지식경영과 피라미드
0 지식경영을 논할 대 많이 등장하는 DIKW 피라미드란 과연 무엇인가. 그
- 24 -
것은 지(知)의 계층을 네 단계로 나눠서 최저변의 Data(자료)에서 시작 하여 Information(정보), Knowledge(지식), Wisdom(지혜)의 오름차 순 으로 구성되어 있는 도형을 일컫습니다.
0 이 지혜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근대 문명을 낳은 그 많은 지식과 기술이 아니지요. 이미 매직 카드 6, 벌집의 육각형에서 본 것처럼 그 지혜는 하늘에서 내린 생명정보요 생명지식이라고 할 것입니다. 과학용어로는 생태학적 지식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므로 생태계 복원과 지구 환경문제 는 지식경영의 DIKW 피라미드에 생명(Life)을 한층 더 쌓아 DIKEL로 복 원해야 해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0 복원이라니요. 놀라지 마세요. 뜻밖에도 DIKW 피라미드는 경제학이나 정 보과학 분야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T.S. 엘리엇의 유명한 시구에서 비롯 된 것입니다.
Where is the Life we have lost in living?
Where is the Wisdom we have lost in Knowledge?
Where is the Knowledge we have lost in Information?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생명은 어디에 있는가?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0 학교가 맨 먼저 가르치는 것은 정해진 등교시간 종소리에 맞춰 함께 모 이는 훈련입니다. “어서”란 말, “기다린다”는 말 이 모두가 시간을 독촉하는 강박관념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요. “모이자”라는 청유형도 집단성과 획일성의 행동원리를 나타낸 것으로 개체를 징발합니다. 그러 한 상황에서는 선생님 역시 공장 생산라인의 감독관으로 비칠 수 밖에 없습니다.
- 25 -
0 엘리엇의 시에서처럼 정보 속에서 지식을 잃고, 지식 속에서 지혜를 잃 고, 지혜 속에서 생활과 생명력을 잃어가는 문명의 진화과정이 그대로 초,중,고, 대학의 진학과정에도 작용되지요. 생각을 포장하여 일정한 박 스에 담아 시장에 내 놓는 학교제도는 대개가 다 좌뇌 지향적인 현상에 서 나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공감하고 꿈꾸는 우뇌 지향적인 학생들, 이 를테면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가 아니라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 다” 는 상상의 답안지는 휴지통에 폐기되고 맙니다. “하던 짓도 멍석 펴 놓으면 안 한다”는 한국인 기질이 강한 학생일수록 학교란 재미없는 곳이며 공부는 즐겁지 않은 일로 여겨집니다.
0 여기에서 배움과 가르침의 교실 붕괴현상과 사막화가 생겨나고 그 결과 로 이반 일리치와 같은 탈학교론까지 제기 됩니다. 그러니까 공자와 엘 리엇의 시에는 최하위 계층에 속해 있는 ‘정보’와‘지’가 근대 학교 교육 시스템에서는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지 요.
■ 신체의 지(知)와 생명정보
0 태아는 십 개월이 지나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기가 태어 날 때를 알고 스스로 산도를 찾아 출생의 작은 여행을 떠납니다. 놀라운 것은 자 신이 살아온 환경을 깨끗하고 안전하게 남겨두기 위하여 엄지 손가락을 안으로 움켜쥐고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손가락을 펴고 태어나면 날카롭게 자란 손톱이 자궁벽과 산도를 모두 찢어 손상을 입혔을 테지 요.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운 어른들이 그 지식과 기술로 앞으로 태어날 자식들이 살아가게 될 지구환경을 그 강철의 손톱으로 찢고 파괴하는 행 위와 얼마나 대조적인지 모릅니다.
0 학교에 가기 전 아이들은 누구나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 보고 끝없이 질문을 던집니다. 새가 나는 것이 대해서, 해가 뜨고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것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런데 학교 문턱에만 가면 아이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물으려 하지 않습니다.
- 26 -
학교의 티칭프로세스는 태아가 산도를 찾아 나오거나 딸꾹질 하는 것처 럼 질문을 퍼붓는 생명정보를 문화사회의 정보와 기계정보로 바꿔 주거 나 아예 그러한 생명정보의 능력을 거세해 버리고 맙니다. 엘리엇의 한 탄처럼 지혜는 지식 속에서, 지식은 정보 속에서 죽어가는 바로 그 과정 처럼 말입니다.
■ 처음엔 우리 모두가 예술가 였다.
0 어느 나라에서나 유치원에 들어가면 처음 배우는 것이 춤추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 커서 무엇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거 의 대부분이 음악가, 화가, 무용가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졸 업할 때가 되면 그 분야에는 손을 들지 않는다.
0 퇴계 선생의 조카들은 퇴계에게서 배우지 않고 다른 서당으로 갔다고 한 다. 과가를 보는 데는 퇴계 선생의 가르침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선생은 학교 선생이나 훌륭한 학자가 아 니라 입시학원의 족집게 과외 선생들인 것과 마찬가지 원리지요.
0 대학에서도 여전히 대량생산체제의 교육시스템 연장선상에 있지요. 오히 려 시장원리를 도입한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지 - 호 - 락’의 업그레 이드가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그 시스템이 바뀌어 갑니다. 취업과 관 계있는 도구학문 이외의 것은 인기가 높지 않습니다. 취업률이 낮은 인 문학은 물론이고 3D 직종이라고 할 만한 엔지니어링 분야는 이공계라고 할지라도 황폐한 불모지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 학문의 아마추어 정신
0 학문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학문을 하는 사람은 학문으로 먹고 사는 프 로와는 다릅니다. 학문에 대한 아마추어 정신이 강하지요. 모순으로 들 릴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느새 아마추어라는 말의 순수한 뜻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프로보다 기량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서툰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원래 아마추어란 말은 ‘사랑하다’는 라틴어
- 27 -
의 ‘아마레 (amare = to love)'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에 대한 기량이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에 임히는 정신과 태도의 차이를 뜻 했던 것이지요.
0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학문에 있어서도 수단으로서의 프로페셔널이 된다 면 거기에서 창조적인 가치가 태어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역시 배움 의 희열, 학문의 즐거움은 그것을 좋아하고 즐기는 열정에서 나옵니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학문이 직업이 되어버린 프로 학자들을 믿지 않습니 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그레이트 아마추어’란 말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습니다.
■ 好知者에서 樂知者로
0 ‘뷰타플 마인드’라는 영화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수학자 존 내시의 균 형이론은 몇 개의 수식으로 된 메모장 수준의 논문이었지만 노벨상을 탔 습니다. 물리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논문에는 각주가 전혀 달려 있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호지자의 학문은 은빛 비늘을 번쩍 이며 상류로 올라가는 잉어 떼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의 배움 을 향해 등용문의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 갑니다. 송사리 떼 같은 지지자 와는 달리 호지자는 용꿈을 꾸는 잉어들이지요.
등용문을 넘어 용으로 승천할 때 비로소 호지자는 낙지자로 변하고 그들 의 지식정보는 아주 옛날에 잃었던 생명의 기쁨, 엘리엇이 말한 그 ‘Life’를 찾게 될 것입니다.
2. 즐기는 자들의 대학
■ 소프트파워의 시대
- 28 -
0 한나라 고조(高祖)는 “말 위에서는 나라를 얻을 수는 있어도 백성을 다 스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영웅과 지략가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학문하는 선비를 찾아 앉혔습니다.
그때처럼 난세의 무력(武力)이 평화의 문력(文力)으로 바뀌는 현상을 조 지프 나이는 ‘소프트파워’란 말로 설명합니다.
0 배움의 기쁨, 학문의 즐거움, 그리고 남의 평가에 상관하지 않고 독행 수양하는 군자, 논어의 첫장에 “不亦說乎?”“不亦樂乎?”라고 외치던 ‘물음느낌표’가 우리 눈앞에 떠 오릅니다. 공자가 말한 ‘현대의 군자 ‘ 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피라미드
0 메슬로우의 욕구 5단계
1, 생리적 욕구 : 동물적 욕구
2, 안전의 욕구 : 웰빙 단계
3, 사회적 소속 욕구 : 사랑 하고 사랑 받고
4, 존중의 욕구 : 스타나 멘토가 되고 싶은
5. 자아실현의 욕구 : 군자의 단계
0 물론 인간의 욕구가 엘리베이터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차례로 상승해 가 는 것은 아닙니다. 기초적인 생리 욕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 속에서 도 단박에 다섯 번째 단계로 진입해 자기실현에 도전하는 예술가나 학 자, 성자와 군자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받아온 지도자들 가운데도 1단계의 동물적 욕구에 사로잡혀 부패의 구렁텅이로 추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 자기 실현과 창조적 활동
0 ‘자아실현’의 욕망은 이미 논어의 첫장에서 읽은 대로 “사람들이 나 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군자의 경지. 아
- 29 -
무도 보아주지 않는 빈 골짜기에서 잡초들 틈에 섞여 혼자서 고결한 향 내를 내뿜는 난초의 모습과도 같은 내면지향적인 자족의 경지인 것입니 다.
0 자아실현이란 자기의 삶을 창조해 내는 것이고 그 창조에는 반드시 기쁨 과 즐거움이 따릅니다. 지지자나 호지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그 즐거움 말입니다.
3.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
■ 역 피라미드형을 불러온 자아실현의 욕구
0 농경사회와 산업사회 그리고 정보사회는 그 욕망을 풀기 위해서 노동 (labor)과 작업(work)을 수행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생명(life)의 시 대에는 자기실현의 욕구를 위해 즐겁게 일하는 자기목적적인 창조활동 (activity)이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0 21세기에 들어서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자기실현적 활동을 하는 인구가 늘면서 메슬로우의 피라미드는 점차 역 피라미드 형태가 되어가는 실정 입니다. 선진국 사람들은 지금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의 4백 배의 양을 소 비하고 있으며, 생산성은 19세기에 비해서 천 배 이상 높아졌다고 합니 다. 개인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소유하고 있고. 자신의 ID를 입력하면 거의 무료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 ?
0 이제 우리는 멍석을 깔아주는 teaching에서 스스로 멍석을 까는 learning으로, 배우는 learning에서 생각하는 thinking으로 그리고 마지 막에는 그 생각에서 창조의 creative로 향하는 동선을 따라 움직여야 합 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가.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추
- 30 -
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工夫의 세 뜻
0 공부의 세 뜻
- 중국 : 시간의 여유와 틈
- 일본 : 궁리하고 생각함
- 한국 : 배우고 익힘, 스터디
0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고, 공부를 해야만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생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한가로운 시간의 틈이 있어야 합니다. 그 인과 관계가 둥그런 원처럼 돕니다. 학교를 뜻하는 영어의 school도 실은 희랍어로 시간적인 틈이나 여가를 가리키는 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어의 공부와 같은 뜻이지요. 참으로 놀라운 동서의 일치입니다.
0 자, 이제 결론을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대학은 知之者를 만들어 내 고, 오늘의 대학은 好之者 를 만들어 냈지만, 앞으로 21세기의 대학은 樂之者들의 행복한 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음은 새롭게 탄생합니다. 젊음은 대학을 낳고 대학은 시대를 낳습니 다. 시대는 다시 대학을 낳고 대학은 다시 젊음을 낳습니다. 둥글게 둥 글게 앎은 삶으로 삶은 앎으로 순환합니다.
◎ UP 9, 나의 별은 너의 별 = 世 城 化 = Glocalization
★ Card 9, 둥근 별 뿔난 별 ( Form of stars)
■ 생각은 글로벌로, 행동은 로컬로
- 31 -
동양과 서양의 별모양
동양인은 별이 둥글다고
인식했고 서양인은 사람
이 팔다리를 벌리고 선
오각뿔 모양이라 했다.
그러나 레오나르도 다빈
치가 그린 인체도형은 팔
다리를 벌린 인간의 형상
이 원과 네모의 테두리
안에 동시에 존재함을 보
여 준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1. 둥근 별과 오각형 별
■ 미국을 왜 ‘화기국(花旗國)’이라고 불렀을까.
0 별 모양은 인간이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윤곽을 본떠 만든 서양 사람들의 상징기호입니다. 그러니까 별은 대우주이고 인체는 소우 주라고 생각한 코스몰로지(Cosmology 우주론) 의 산물이었지요.
그래서 백 년 전만 하더라도 별을 단추 모양으로 그려왔던 우리 조상님 들은 성조기에 그려진 별모양을 보고 꽃이라고 생각했고 그 때문에 미국 을 화기국(花旗國) 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고분 벽화들을 보면 분명히 별들이 둥근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만 해도 북두칠성을 일곱 개의 단추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개화 이전 아시아 지역에는 별 모양의 아이콘은 없었던 것입니다.
0 한국만 그런게 아닙니다. 서양 문화가 들어오기 전 아시아 사람들은 모 두 별을 동그랗게 그렸습니다. 조선 통신사들이 왕래하던 에도시대의 일 본인들만 해도 자기 집 가문을 표시하는 문장의 별은 모두 동그랗게 그 려 넣었습니다.
- 32 -
■ 한 눈으로는 글로벌 또 한 눈으로는 로컬
0 그러니 이제부터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아 우리 국군 장성의 별 모양을 둥근 모양으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화 사상의 문화 종주국을 자처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자기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의 오성기에 서양식 별모양을 그려놓은 것을 나무라자는 것도 아닙니다.
0 말하자면 서구적인 근대 체험과 전통적인 문화체험이 다원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도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지요. “별이란 오각형으로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 은단추 모양으로 동그랗게 붙박혀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에 따라 공유하고 있는 이미지가 달라지므로 양방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는 것이지요.
0 지금부터라도 한 눈으로는 로컬을, 또 한 눈으로는 글로벌의 세계를 바 라볼 수 있어야 하는 글로컬맨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 글로벌이라는 말뜻도 모르면서 당한 세계화
0 글로벌이란 말은 우리말로 잘 번역이 안되는데 ‘세계화’‘국제화’등 다양하게 쓰입니다. 글로벌리즘이니 글로벌라이제이션이란 말은 지구를 뜻하는 영어의 글로브(Globe)에서 나온 말로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지구주의’‘지구화’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소 한말 보다는 ‘지구촌’이니 ‘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이 우리들 귀에 는 친숙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렇지요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 장터가 지 구의 규모로 커진 것이고 우리의 입과 귀가 인터넷처럼 전 지구로 네트 워크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 선전포고도 종전도 없는 세계화의 전쟁
0 세계는 오늘날 하나가 된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 편에서는 거꾸로 민족주 의, 또 무슨 지역주의 이런 것이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유럽이 하나 가 되어서 유럽연합을 만들고 유로라는 통화를 만들었지요. 또 이슬람은
- 33 -
이슬람끼리 뭉칩니다. 다시 말하면 점점 세계화(Globalization)가 된다 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문화 때문에, 지역과 풍토 차이 때문에 지역화 (Localization)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0 전쟁은 시간이 흐르면 종전이 되기 마련이지만 이 지역화와 세계화의 갈 등이나 문명충돌 같은 것은 선전포고도 종전 기념일도 없는 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지요.
2. 미래는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 산업화는 늦었지만
0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88서울 올림픽을 마치고 미국에 1년 동안 가 있으면서 그 곳의 정보통신의 발달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그래서 한국에 돌아 오자 마자 내건 구호가 “산 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였습니다. 그리고 신문, 방송, 세 미나는 물론이고 정부 요로에 건의를 지속했습니다.
0 그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캠페인 구호일 뿐 정말 우리가 세계에서 앞서가 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두드려라.그러 면 열릴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대로 한국이 진짜 정보화에 앞서 가더란 말이지요.
■ 코리아를 모르던 유럽인들
0 50년 전 처음에 외국에 나갔을 때 일입니다. 대한만국 여권을 가진 나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다 걸리는 것입니다. 같은 동양인 일본 여권도 통하 는데 나의 한국 여권은 어딜 가나 생소하게 보이니까, 코리아라는 나라 이름을 모르니까, 시골 국경 세관원들은 무조건 나를 잡아놓고 조회를 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때는 점심때라 본부와 연락이 안 되는지 벌
- 34 -
서는 사람처럼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고 서 있어야 했지요. 이탈리아의 어느 시골 국경에서........
0 그런데 말이지요.그 뒤 몇 십년이 흐른 뒤 나는 노벨상을 타지 못했지만 로마에 회의가 있어서 이탈리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로마 공 항에서 한국 사람은 이쪽으로 일렬로 서라는 거였지요. ‘또 걸렸구나. 그럼 그렇지. 한국 또 걸리지’ 속으로 그러면서 줄을 섰더니 여권을 손 에 든 채 그냥 나가라고 했습니다. 이제 한국 정도 살면 여기 불법으로 노동 품팔이 하러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 겠지요. 그런데 옆을 보니까 중 동지역에서 온 듯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몇 시간을 두고 체크를 당 하고 있는 겁니다.
■ 우리가 세계에 자랑할 것은
0 우리가 가슴을 펴고 세계에서 외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들처럼 남의 나라 정복하고 남의 가슴에 못질하고 남의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해서 부자나라 강한 나라가 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0 그렇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가난했고 괴로움도 많이 받았지만 그 덕분 에 여러분은 죄가 없는 세대로서 전 세계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이 지요. “나는 한국인이오”하더라도 멱살 잡힐 일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남보다 조금 잘 산다고 외국인 노동자들 한테 얼마나 가혹하게 대합니까? 그들이 바로 20년, 30년 전 우리 모습 인데 그 사람들 가슴에 못박고 피눈물 나게 하면 다음에 여러분 아이들 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것입니다.
0 우리는 세계시민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이 되는 어려운 난제, 흔히 말하는 글로벌과 로컬이 한데 어우러지는 글로컬리즘의 시대를 만들어 내야 하 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3. 동양의 용과 서양의 키메라
- 35 -
■ 용과 키메라
0 중국의 역사를 보면 많은 전란 속에서도 여러 민족의 문화를 잘 융합해 발효시켜 왔습니다. 중국 고전 연애소설을 보면 이방인들과의 사랑이 주 류를 이루고 있으며 역대 황제들 가운데도 한족이 아닌 사람이 4할 이상 이나 된다고 하지요. 자기와 다른 문화를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조화의 정신을 가상의 동물로 나타낸 것이 바로 중국 문화권의 용이기도 합니 다.
용은 여러 동물의 부분을 따서 모아 만든 것으로 사슴의 뿔, 낙타의 머 리, 소의 귀, 호랑이의 발에 독수리의 발톱, 토끼의 눈에 몸통은 뱀 혹 은 양자강의 악어를 닮았다고 합니다. 거기에 잉어의 비늘과 수염을 지 니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렇듯 용의 힘은 개체가 아니라 서로 성질이 대 립하는 생물들을 잘 결합하여 조화와 균형을 이룬 복합체로서 지상 최고 의 영물을 만들어낸 데 있습니다. 일부 설로는 옛날 중국 대륙에서 살고 있던 종족들을 하나로 결속 시키기 위해서 각자의 신앙을 나타내는 동물 의 토템을 통합하여 만들어 낸 것이 용의 모습이라고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하를 통치하는 황제와 동일시하여 용안이니 용궐이니하는 말 도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0 용 만이 아니라 봉황이나 주작, 현무와 같은 상서로운 신물들도 모두가 성질이 다르거나 대립하는 생물들을 한데 결합한 복합수들이며 양성구유 들입니다. 이점이 바로 모든 문화와 문명이 이항대립 체제로 발전해 온 서양과는 다른 동양의 특성을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0 같은 복합체인 서양의 키메라는 상서롭거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용이 나 봉황과는 달리 흉측한 괴물로 그려져 있습니다. 용과 키메라의 차이 는 동양과 서양의 두 문명을 가르는 요소이며 동서가 하나로 발전해 갈 글로컬라제이션의 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 너희들이 인(仁 )을 아느냐.
- 36 -
0 유대교,기독교, 이슬람의 경우처럼 만약 유불선 삼교가 습합을 이루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이같은 평온한 만남은 불가능 했으리라고 봅니다. 다소의 갈등은 있었다고 해도 천지인이 하나가 되고 유불선의 종교적인 힘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이 문화적 특성이야말로 문명. 종교 충돌시 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미래의 방향을 시사해 주는 21세기 문명의 화 살표가 되어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0 동북아 지역의 문화가 공유해 온 ‘仁’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和’ 그리고 불교의 ‘원융회통(圓融會通)’의 네 글자가 품고 있는 뜻이야말 로 글로벌 시대에 우리가 꼭 지녀야 할 덕목입니다.
■ 일방통행과 양방향성
0 일상용어에서의 양 방향성
- 엘리베이터 : 영어,불어 독어 에서는 위로 올라 가는 것. 한국이나 중국 에서는 승강기(昇降機)
- 서랍 : 영어의 드로어(drawer)는 'pull out' 즉 ‘빼낸다’는 뜻
일본의 ‘히키다’, 중국의 ‘추체’역시 ‘빼낸다’는 뜻
한국은 ‘빼닫이’ 즉 양 방향성
- 외출 : 한국에서는 ‘나들이’ 즉 나가고 들어오는 양 방향성
0 양 방향성은 바로 융합의 키워드이다.
- 끝 -
- 37 -
'독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0) | 2008.11.05 |
---|---|
지구별 여행자 (0) | 2008.11.05 |
젊음의 탄생 (1) (0) | 2008.11.05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2) (0) | 2008.11.05 |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0) | 2008.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