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19. 19:44ㆍ독서후기
아름다운 마무리
■ 법정
■ 노년의 아름다움
0 요즘 <계로록 戒老錄>, 즉 노년에 경계해야 할 일들을 읽고 있는데 나 자 신의 일상을 되돌아 보게 하는 글이다. 돌이켜 보니 나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같은 말을 되풀이해 왔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한다는 것은 시간의 늪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 또한 노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0 이와 같은 현상은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노력이 결여 되었다는 그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의 꿈과 이상을 저버릴 때 늙는다. 세월 은 우리 얼굴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우리가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때는 영혼이 주름지게 된다. 그 누구를 물을 것 없이 탐구하는 노력을 쉬게 되 면 인생이 녹슨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0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는 순수한 시간이다. 언제 어디서나 지금 이 순간을 살 수 있어 야 한다.
0 부자란 집이나 물건을 남보다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불필요 한 것들을 갖지 않고 마음이 물건에 얽메이지 않아 홀가분하게 사는 사람 이야말로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
한밤중 잠에서 깨어나 별빛처럼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그날그날 삶의 자 취를 낱낱이 살피고,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세상의 눈 으로 자신을 비춰 보는, 이런 일들을 통해 노년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모든 일을 담담이 받아들이고 남에게 양보할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음을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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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에서 인간학을 배우다.
0 춘추전국시대 말기 한 젊은이가 전국을 떠돌면서 선현을 찾아 군사학과 병법, 정치학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날 다리를 지나가는데 누더기를 걸친 한 노인이 곁으로 다가와 일부러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며 말했다.
“이보게 젊은이 내려가 신발을 좀 주워오게.”
젊은이는 울컥 화가 났지만 상대가 노인이기 때문에 참고 신발을 주워 왔다. 그러자 노인은 한술 더 떠서 그 신발을 신겨 달라고 했다. 이왕 내 친 김이라 젊은이는 아무 말없이 신발을 신겨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다.
“자네는 꽤 쓸만하군, 닷새 뒤 날이 샐 무렵 이곳으로 오게.”
노인은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났다.
닷새 뒤 다리로 나가 보니 노인이 벌써 와 있었고 노인은 다시 닷새 뒤 에 오라고 하고 떠나갔다. 그러기를 세 번째 젊은이는 날이 새기도 전에 다리로 나갔다. 그러자 노인이 나타나 책 한 권을 건네 주었다.
“이것을 읽어라. 이 책을 숙독하면 너는 왕의 군사가 될 수 있느니라. 10 년 뒤에는 훌륭한 군사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떨치게 될 것이다.”
이 말을 남기고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젊은이가 그 책을 보니 태공망 강태공이 쓴 ‘육도삼략’이라는 병서였다. 젊은이는 그 책을 다 외울 때까지 되풀이해 읽었다. 이 젊은이가 훗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군사가 되어 그 를 성공시킨 장량(張良) 그 사람이다.
0 옛 사람들은 고전에서 인간학을 배우며 자신을 다스리고 높이는 공부를 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얄팍한 지식이나 정보의 덫에 걸려 고전에 대 한 소양이 너무 부족하다. 자기 나름의 확고한 인생관이나 윤리관이 없기 때문에 눈앞의 조그만 이해관계에 걸려 번번이 넘어진다.
인류의 정신문화 유산인 양질의 책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리고 인 생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텔레비전 프로나 신 문기사로 머리를 가득 채우는 것은, 영양가 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 넣 는 것처럼 정신 건강에 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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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마무리
0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긴다.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 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장시켜 주었음을 긍정한 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 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일의 과정에서, 길 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이다. 삶 의 순간순간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서 그때그때 마 무리가 이루어진다. 그 물음은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중요한 자각이다.
0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내려놓음은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 공과 실패를 뛰어 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에 이르는 내면의 연금술이다. 내 려놓지 못할 때 마무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윤회와 반복의 여지를 남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진정한 내려놓음에서 완성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 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 져다 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0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심각함과 복잡한 생 각을 내려놓고 천진과 순수로 돌아가 존재의 기쁨을 누린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지금이 바로 그때임을 안다. 과거나 미래의 어느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순간임을 안다. 아름다운 마 무리는 지나간 모든 순간들과 기꺼이 작별하고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에 대해서는 미지 그대로 열어 둔 채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인다. 또한 아름 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용서와 이해와 지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일깨운다. 이유없이 일어나는 일은 존재하지 않기 때 문이다.
0 아름다운 마무리는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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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연을 되찾는다. 궁극적으로 내가 기댈 곳은 오직 자연뿐임을 아는 마 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개체인 나를 뛰어넘어 전체와 만난다. 눈앞의 이해관 계에서 벗어나 자신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존재 임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 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거듭난다. 진정한 자 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0 아름다운 마무리는 살아온 말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고 잃어버렸던 나를 찾는 것, 그리고 수많은 의존과 타성적인 관계 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언제든 떠날 채비를 갖춘다. 그 어디 어느 것 에도 얽매이지 않고 순례자나 여행자의 모습으로 산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많은 우주의 선물도 그저 감사히 받아 쓸 뿐, 언제든 빈손으로 두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머지않아 늦가을 서릿바람에 저토록 무성한 나뭇잎들도 무너져 내릴 것 이다. 그 빈 가지에 때가 오면 또다시 새 잎이 돋아날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쳐 버리고 새로운 존재로 거 듭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다.
■ 삶에 저항하지 말라
0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뜻밖에 묵은 일기장이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대충 훑어 보면서 내 삶의 자취가 빛이 바랜 사진첩 같다는 느낌이 들었 다.
1995년 6월 17일(토요일), 남불 생 레미에서 쓴 대목, 여행 중에 가지고 간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집’에서 인용한 글이 실려 있었다.
0 홀로 명상하라.
모든 것을 놓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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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말라.
굳이 기억하려 하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 되리라.
그리고 그것에 매달리면 다시는 홀로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 끝없는 고독, 저 사랑의 아름다움 속에서 그토록 순결하고 그 토록 새롭게 명상하라.
저항하지 말라.
그 어떤 것에도 장벽을 쌓아 두지 말라.
온갖 사소한 충동, 강제와 욕구로부터
그리고 그 자질구레한 모든 갈등과 위선으로부터
진정으로 온전히 자유로워지거라.
그러면 팔을 활짝 벌리고
삶의 한 복판을 뚜벅뚜벅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
■ 다시 채소를 가꾸며
0 초파일을 지나서 채소 모종을 사다가 심었다. 오이, 고추, 상추, 케일, 치 커리, 그리고 고구마도 두 두렁 심었다. 고랭지라 냉해를 입은 오이 모종 은 다시 사다 심었다. 여름철을 지내기 위해 이런 준비를 하면서 손수 심 고 가꾸는 일이 새삼 고맙고 다행하다고 여겨졌다. 이런 일을 거치는 동안 대지의 덕과 은혜에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0 어떤 학자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다.
“저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물건도 갖지 않았습니다. 이런 때 어떻게 했 으면 좋겠습니까?”
조주 선사의 대답
“방하착 放下着(내던져 버려라, 놓아버려라)!”
“이미 한 물건도 갖고 있지 않은데 무엇을 놓아 버리라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고 가거라!”
그 학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그 생각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남아 있는 한 겉으로는 버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버 린 것이 아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갈 때처럼 거리낌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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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0 언젠가 우리에게는 지녔던 모든 것을 놓아 버릴 때가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아까워 망설인다면 그는 잘못 살아온 것이다. 본래 내것이 어디 있었던가. 한때 맡아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그러니 시시로 큰 마음 먹고 놓아버리는 연습을 미리부터 익혀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지혜로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0 오랜만에 차 안에서 전에 듣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울컥 눈물이 났다. 건강을 되찾아 귀에 익은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고 손수 채소를 가 꿀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고맙고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내 몸이 성했 을 때 순간순간 잘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 병상에서 배우다
0 흔히 이 육신이 내 몸인 줄 알고 지내는데 병이 들어 앓게 되면 내 몸이 아님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내 몸이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 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앓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와 따뜻한 손길 이 따르는 것을 보면 결코 자신만의 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앓을 때는 병자 혼자서만 앓는 것이 아니라 친지들도 친분의 농도만큼 함께 앓 는다. ‘이웃이 앓기 때문에 나도 앓는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0 병을 치료하면서 나는 속으로 염원했다. 이 병고를 거치면서 보다 너그럽 고, 따뜻하고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다. 인 간적으로나 수행자로서 보다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지나 온 내 삶의 자취를 돌이켜 보니 건성으로 살아온 것 같았다. 주어진 남은 세월을 보다 알차고 참되게 살고 싶다. 이웃에 필요한 존재로 채워져야겠 다고 마음 먹었다.
0 병상에서 줄곧 생각한 일인데 생로병사란 순차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시적 인 것이기도 하다. 자연사의 경우는 생로병사를 순차적으로 겪지만 뜻밖의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죽음은 차례를 거치지 않고 생에서 사로 비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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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순간순간의 삶이 중요하다. 언제 어디서 인생을 하직하더라도 후회없는 삶이 되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언제 어디서나 삶은 어차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 순간들을 뜻있게 살면 된다. 삶이란 순간순간의 존재다.
■ 어느 암자의 작은 연못
0 철 따라 그 철에 어울리는 꽃이 피어나는 것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신비 다. 이 자연의 오묘한 신비 앞에서 아름다움의 뒤뜰을 넘어다본다. 요즘 세상에서는 다들 돈타령, 경제 타령만 하느라고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무감 각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관심 갖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과 행복이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 다. 경제만 있고 삶의 가장 내밀한 영역인 아름다움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너무 삭막하고 건조하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모른다면 결코 행복에 이를 수 없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살아 있는 기쁨이기 때문이다.
0 남쪽에 내려가 쉬면서 한 암자의 뜰에 있는 연못에서 나는 아름다움이 뭐 라는 걸 새삼스레 인식하게 되었다. 연못이래야 겨우 손바닥만 한 크기, 세로 두어 자, 가로 너댓 자 될까 말까 한 작은 규모이다. 넘치는 샘물에 청죽靑竹으로 홈대를 만들어 연못으로 끌어들인 구조인데 거기 수련과 창 포와 바위와 이끼와 올챙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것도 연못 가득 차지 않고 3분의 1쯤 남은 빈 자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작은 연못은 아름다움의 한 요소인 ‘여백의 미’를 지니고 있었다. 덜 채워져 좀 모자란 듯한 구석, 그립고 아쉬움이 따르는 그런 운치를 지닌 사랑스런 연못이었다. 홈대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적막한 산중의 분위기를 한층 적막하게 했다.
0 아름다움에는 어디에도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이런 시가 있다.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일지 않고
달이 연못 속에 들어가도 물에는 흔적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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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일렁이는 대와 뜰과 달과 연못이 한데 어울리면서도 서로 거리낌 이 없는 이런 경지가 아름다움이 지닌 오묘한 조화이다. 뛰어난 장인 匠人 은 그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그 무엇에도 거리낌이 없다.
0 진정한 아름다움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어도 퍼내어도 다함이 없이 안에서 솟아난다. 그러나 가꾸지 않으면 솟지 않는다. 어떤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열린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안으로 느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은 가꾸지 않으면 솟아나지 않는다. 나 자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이웃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즉 이 웃과 나누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시시로 가꾸어야 한다. 인정의 샘이 넘쳐야 나 자신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가리켜 시들지 않는 영원한 기쁨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가을에 아름다 움을 만나고 가꾸면서 다들 행복해 지기를.
■ 삶의 기술
0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스승의 대답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네가 숨이 멎어 무덤 속에 들어가거든 그때 가서 실컷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거라. 왜 지금 삶을 제쳐 두고 죽음에 신경 을 쓰는가. 일어날 것은 어차피 일어나게 마련이다.”
0 우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은 배우지 못하고 어리석은 것들만 배워왔다. 우 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이곳에서 깨어 있음이다. 삶의 기술이란 개 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깨어 있는 관심이다.
진정한 스승은 제자를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지 않고 제자 스스로 설 수 있는 자주적인 인간으로 만든다.
0 흔히들 깨달은 다음에 자비를 행하는 것으로 잘못 알기 쉬운데 자비의 충 만이 곧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옛 스승들도 처음 발심한 수행자에게 먼저 보리심(자비심)을 발하라고 가르친다. 자비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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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부처의 마음이기 때문에 부처를 이루고자 한다면 자비심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소식이다.
0 모든 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 사물을 보는 눈도 때에 따라 바뀐다.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집착할 게 아무것도 없다. 삶은 유화 와 같다.
행복할 때는 행복에 매달리지 말라. 불행할 때는 이를 피하려고 하지 말 고 그냥 받아 들이라. 그러면서 자신의 삶을 순간순간 지켜보라. 맑은정신 으로 지켜 보라.
■ 놓아 두고 가기
0 연초에 밝힌 바 있듯이 금년의 내 행동지침은 이것이다.
첫째, 과속문화에서 탈피
둘째, 아낌없이 나누기
셋째,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기
그런데 최근에 와서 한 가지를 더 추가하기로 했다.
넷째, 놓아두고 가기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0 여름 안거 결제날, 우리들 영혼의 스승 조주 선사의 가풍을 이야기한 끝에 여러 대중 앞에서 내 결심을 밝혔다. 길상사를 드나들면서 나는 너무나 많 은 것들을 얻어 간다. 그때마다 마음이 개운치 않고 아주 무겁다.
말로는 무소유를 떠벌이면서 얻어 가는 것이 너무 많아 부끄럽고 아주 부담스러웠다. 늙은 중이 욕심 사납게 주는 대로 꾸역꾸역 가지고 가는 꼴 을 이만치서 바라보고 있으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0 놓아두고 가기!
때가 되면, 삶의 종점인 섣달 그믐날이 되면 누구나 자신이 지녔던 것을 모두 놓아두고 가게 마련이다. 우리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미리부터 이런 연습을 해 두면 떠나는 길이 훨씬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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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분 할 것이다.
■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먹히는 세상에서
0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가 부족들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이른바 미개사 회의 가치의식에 대한 몇가지 일화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0 화학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농부들에게 비료를 갖다 주었다. 농부들이 처음 본 그 비료를 밭에 뿌렸더니 전에 없던 풍작이었 다. 농부들은 그 부족의 지혜로운 추장을 찾아가 말했다.
“우리는 작년보다 두 배나 많은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추장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아이들아. 매우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밭의 절반만을 갈아라.”
그들은 사는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필요 이상의 것은 원치 않았다.
0 다음 이야기는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보잘것 없는 도구로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유럽에서 이주해 온 백인들은 이 광경 을 목격하고 나무를 단번에 쓰러뜨릴 수 있는 큰 도끼를 하나 보내 주었 다. 다음해에 원주민들이 그 도끼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기 위해 다시 그 마을을 찾았다. 그들이 도착하자 마을 사람들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 고 그들을 에워쌌다.
그때 추장이 다가와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고마움을 어떻게 다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들 이 이 도끼를 보내 준 다음날부터 우리는 더욱 많은 휴식을 누릴 수 있었 다. ”
인디언들은 빨리 일을 끝내고 자유로운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것에 크 게 만족하고 있었다. 백인들은 자기네처럼 그들이 더 많이 갖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0 모자랄까 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그 마음이 곧 결핍 아니겠는가. 그들 은 그날그날의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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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잘 알고 있었다. 필요 이상의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 때깔고운 도자기를 보면
0 풋중 시절부터 나는 안거가 끝나고 해제가 시작되는 바로 그날 누가 어디 서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일찍 길 떠나기를 좋아했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김이 빠져나간 후에 길을 떠나면 나그넷길의 그 신선감이 소멸되고 만다.
선원에 다니던 시절에는 후원에서 미리 아침공양을 대충 때우고 첫차를 타기 위해 걸망을 메고 동구길을 휘적휘적 나서면 새벽달이 숲길을 훤히 비춰주었다. 이 또한 해제의 일미다. 만일 첫차가 아니고 두 번째 차편이 나 밝은 대낮에 길을 떠나면 해제의 그 맛이 시들해진다.
0 남쪽에서 꽃들을 만나고 돌아오니 이곳은 갑작스런 폭설로 가득하다.
한 바탕 쓸고 닦아 낸 후 지고 온 짐을 풀었다. 새로 가져 온 오지 물병 을 창문 아래 놓아 두고 벽에 기댄 채 이만치서 바라보고 있으니 내 안에 서도 봄 기운이 움트는 것 같았다. 이 오지 물병은 목이 길어 학처럼 늘씬 한 몸매다. 자꾸만 눈길이 간다.
0 보성 미력옹기의 이학수님이 작년 가을에 만들어 주신 것인데 그릇은 마 음에 들었지만 용량이 적은 게 아쉬웠다. 이런 뜻을 알고 주인이 나를 위 해 좀 큰 것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 들렀더니 비슷비슷하게 만든 두 개를 내주며 다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중 작년에 구해 온 것과 같은 형태의 것 하나만 골랐다. 두 개를 갖게 되면 하나만을 지녔을 때의 그 풋풋함과 살뜰함이 소멸되고 만 다. 이것은 내 지론이다. 어떻게 두 개를 똑같이 사랑할 수 있겠는가.
0 내 독자이기도한 주인에게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서 내 심경을 솔직히 털 어 놓았다. 요즘에 이르러 이것저것 세속적인 욕심은 어느 정도 빠져나간 것 같은데, 때깔이 고운 그릇만 보면 아직도 곁에 두고 싶은 생각이 인다 고. 함께 웃었다.
언젠가는 때깔이 고운 도자기 앞에서도 욕심을 부리지 않고 무심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아마 내 삶도 탄력이 느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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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쭈물 하다가는
0 교통수당 지급 신청서를 받고는, 평소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지내다가 이 런 안내문을 받아 볼 때면 나는 새삼스레 움찔 놀란다. 어느덧 세월의 뒷 모습이 저만치 빠져나간 것이다. 문득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이 떠 올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자신의 묘비명에 남기고 싶은 말도 많았을텐데 그는 덧없는 인간사를 이 렇듯 솔직하게 털어 놓은 것이다.
그 어떤 남기는 말보다도 진솔하고 울림이 크다. 누구나 삶의 종점에 이 르면 허세를 벗어 버리고 알몸을 드러내듯 솔직해질 것이다. 하루하루, 순 간순간을 우물쭈물하면서 세월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묘비명이다.
물론 나는 그 교통수당 지급신청서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 주의 무거운 은혜 속에 살아온 처지에 국민의 혈세까지 축내게 할 수는 없었다.
0 성 베네딕도는 뒷날 몬떼 까시노에 수도원을 세워 보다 나은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 그 중에 몇 가지를 추려 생활의 지침으로 삼았으면 한다.
세상의 흐름에 휩쓸리지 말라.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지 말라.
자신의 행동을 항상 살피라.
하느님이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라.
말을 많이 하지 말라.
공허한 말, 남을 웃기려는 말을 하지 말라.
다툼이 있었으면 해가 지기 전에 바로 화해하라.
■ 과속 문화에서 벗어나기
0 이미 지나간 날들을 두고 후회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것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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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일을 새롭게 다지는 것만 못하다. 새해부터는 내 나쁜 버릇을 고치 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 시대의 고질병인 과속 문화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성급하게 달려가려는 잘못된 버릇부터 고친다. 남보다 앞질러 가는 것은 결코 바람 직한 일이 못된다. 흐름을 함께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우리는 남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말만을 내세우려고 한다. 언어의 겸손함을 상실한 것이다. 잘 들을 줄 모르는 사람과는 좋은 만남을 갖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또한 과속에 서 나온 나쁜 습관이다.
어떤 수행자는 많은 일을 하면서도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와같이 대답한다.
“나는 서 있을 때는 서 있고, 걸을 때는 걷고, 앉아 있을 때는 앉아 있고, 음식을 먹을 때는 그냥 먹는답니다.”
“그건 우리도 하는데요.” 라고 질문자가 대꾸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었 다.
“아니지요. 당신들은 앉아 있을 때는 벌써 서 있고, 서 있을 때는 벌써 걸어갑니다. 걸어갈 때는 이미 목적지에 가 있고요.”
오늘의 성급하고 조급해하는 과속문화의 병폐를 드러낸 이야기다.
0 둘째,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는 일에 보다 적극성을 띠려 고 한다. 내가 한 때 맡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새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원천적으로 내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몸 도 내 것이 아닌데 그 밖의 것이야 더 말할 게 있겠는가.
0 셋째, 만나는 사람들에게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할 것을 거듭거듭 다 짐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이웃으로부터 받은 따뜻함과 친절을 내 안에 묵 혀 둔다면 그 또한 빚이 될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도 내 괴팍하고 인정머 리 없는 성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끼친 서운함과 상처를 보상하기 위 해서라도 더욱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어느 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 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을 만난 내 삶도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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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
■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0 새해 달력을 보니 지나온 한 해가 묵은 세월로 빠져나가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면서 또 한 해를 소모해 버렸는지 새삼스레 묻는다. 그러다가 문득 내 남은 세월의 잔고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누구 나 나이가 들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0 그러나 삶은 과거나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살 고 있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삶의 비참함은 죽는다는 사실보다도 살아 있는 동안 우리 내부에서 무언가 죽어 간다는 사실에 있다. 가령 꽃이나 달을 보고도 반길 줄 모르는 무뎌진 감성, 저녁노을 앞에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모르는 무감각, 넋을 잃고 텔레비전 앞에서 허물어져 가 는 일상들, 이런 현상이 곧 죽음에 한 걸음씩 다가섬이다.
0 누구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면 그런 소원을 이룰 수 있어야한다. 한 안 간으로서 가정적인 의무나 사회적인 역할을 할 만큼 했으면 이제는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은 세월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인간사란 앞서거 니 뒤서거니 하면서 홀로 남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듯이 언젠가는 혼자서 먼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엄연한 삶의 길이 고 덧없는 인생사이다.
0 인생의 황혼기는 묵은 가지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꽃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몸은 조금씩 이지러져 가지만 마음은 샘물처럼 차 오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무가치한 일에 결코 낭비하지 말아야 한 다.
0 이제 나이도 들 만큼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이웃의 권고를 듣고 디오게네 스는 이와같이 말한다.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 졌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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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멈추어야 하겠는가?”
디오게네스의 이 말을 나는 요즘 화두처럼 곰곰이 되뇌고 있다. 그러다 보면 결승점만이 아니라 출발점도 저만치 보인다.
■ 옹달샘에서 달을 긷다
0 나는 요즘 옹달샘으로 물 길으러 가는 일에 재미를 누리고 있다. 개울물을 뜨러 가는 일보다 더 정감이 있다. 가는 길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 있 어 푹신푹신한 그 감촉이 마치 카펫 위를 걷는 것 같다.
0 이 샘에서 물을 길을 때마다 문득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가 연상된다.
산중에 사는 스님
달빛이 너무 좋아
물병 속에 함께
길어 담았네
방에 들어와
뒤미쳐 생각하고
병을 기울이니
달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네
물을 길으러 갔다가 때마침 우물에 달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그 달을 함께 길어 담는다. 아마 청명한 가을 밤이었을 것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글을 읽다가 출출한 김에 차라도 한 잔 마실까 해서 우 물로 물을 길으러 간다. 길어 놓은 물보다 새로 길은 물이라야 차 맛이 새 롭다. 차 맛은 곧 물 맛에 이어지기 때문이다.
때마침 둥근달이 우물에 들어와 있는 것을 보고 바가지로 물과 함께 달 을 길어 담는다. 하던 일을 마저 하다가 뒤 늦게 생각이 나서 차관에 물병 을 기울이니 함께 길어 온 달은 그새 어디로 새어나가고 없다.
0 샘물과 달과 차가 어울린 가을밤 산중의 그윽한 풍류이다. 내가 이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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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름을 급월정 汲月井 이라고 한 것도 이런 정취가 떠 올랐기 때문이 다.
■ 물난리 속에서
0 자연의 대명사인 산천, 즉 산과 강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 다. 자연은 원천적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 해와 달이 그렇고 지구가 그 렇다. 산맥의 흐름과 산자락과 강줄기가 지극히 자연스런 곡선을 이루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유장한 호흡과도 같다.
자연의 이와같은 호흡과 체질을 무시하고 사람들은 길을 내고 집을 짓기 위해 산자락을 직선으로 깎아 내린 그 절개지의 결과가 산사태를 불러오 고 물난리를 가중시킨다.
0 강물의 흐름도 굽이굽이 돌아가면서 흘러야 유속을 억제할 수 있는데 강 바닥의 돌까지 있는 대로 걷어 내고 직선으로 강둑을 쌓기 때문에 강물은 성난 물결을 이루면서 닥치는 대로 허물고 집어 삼킨다.
0 미국 독립 2백 주년을 기해 원주민인 인디언 연맹은 이런 성명서를 발표 했다.
“우주에는 우리를 다른 생명체들과 이어 주는 기운이 있다. 우리 모두는 대지의 자식들이다. 우리가 지진과 홍수 등 온갖 자연재해에 시달리는 것 은 사람들이 어머니인 대지에 너무나 많은 상처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가진 것들을 존중할 때만이 당신들은 성장할 수 있다. 이 대지는 인간 생존의 터전이며 우리 다음에 올 여행자들을 위해 더럽히는 것을 막 아야 한다.
어머니 대지의 물과 공기, 흙, 나무, 숲, 식물, 동물들을 보살피라. 자원이 라고 해서 함부로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 다. 우리가 대지를 보살필 때 대지도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
■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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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요즘 지구인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 가면서 월드컵에 열기를 쏟아붓 는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축구공 한 개의 방향에 그토록 열광하 는 그런 힘은 어디서 솟아오르는 것일까?
내게는 이것이 올 여름의 화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열기가 바른길 로 선용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보다 밝아질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잘못 악용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0 시청앞 광장에선가 청소부 아저씨가 하셨다는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되어 야 할 것이다.
“운동만 잘한다고 나라가 잘되는 거냐? 모든 걸 다 잘해야 나라가 잘 되 는 거지.”
0 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종교가 있다면 그것을 친절이다. 이웃에 대한 따뜻 한 배려다. 사람끼리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보다 따뜻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같은 친절과 보살 핌이 진정한 ‘대한민국’을 이루고, 믿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만나는 대상마다 그가 곧 내 ‘복밭’이고 ‘선지식’임을 알아야 한다. 그때 그곳에 그가 있어 내게 친절을 일깨우고 따뜻한 배려를 낳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이 바로 그때
0 승가에 결제, 해제와 함께 안거 제도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결제 기간과 해제 기간은 상호 보완한다. 결제만 있고 해 제가 없다면 결제는 무의미하다. 마찬가지로 해제만 지속된다면 안거 또한 있을 수 없다.
0 이제는 다시 산의 살림살이에 안주할 때가 되었다. 옛 선사의 법문에
때로는 높이높이 우뚝서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밑에 잠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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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時高高峰頂立 有時深深海底行
이런 가르침이 있는데, 안거 기간은 깊이깊이 잠기는 그런 때다. 그 잠김 에서 속이 여물어야 다시 우뚝 솟아오를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0 기도는 꾸준히 지속하는 그 정진력에 의미가 있다. 어쩌다 도중에 한 두 번 거르게 되면 기도의 리듬이 깨뜨러지기 때문에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해인사 장경각 법보전 주련에는 지금도 이런 법문이 걸려 있다.
부처님 계신 곳이 어디인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
이 주련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에 전율같은 것이 흘렀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그 설 자리가 어디인가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팔만대장경판 이 모셔진 그곳에서 큰 소리로 들려오는 가르침은 지금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를 떠나 따로 어디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0 종교만이 아니라 우리들 삶도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떠나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지 다른 시절이 있지 않다.(現今卽時 更無時節)”는 임제선사의 가르침도 같은 뜻이다.
0 오두막 둘레는 한동안 철쭉이 볼만했다. 그대로 바라보기도 아름답지만 발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훨씬 아름답다. 여기 사물을 보는 비밀이 있다. 노 출보다는 알맞게 가려진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노출을 자랑하 는 여름철에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 ‘책의 날’에 책을 말한다
0 책의 날 :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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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두막 살림살이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를 들라면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쾌적한 상태에서 읽고 있을 때, 즉 독서삼매에 몰입하고 있을 때 내 영혼은 투명할 대로 투명해진다.
0 책은 가려서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 남에게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책은 좋은 책이다. 읽을 책도 많은데 시시한 책에 시간과 기운을 빼앗기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사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 다.
그럼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베스트셀러에 속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한 때 상업주의의 바람일 수도 있다. 좋은 책은 세월이 결정한다. 읽을 때마 다 새롭게 배울 수 있는 책, 잠든 내 영혼을 불러 일으켜 삶의 의미와 기 쁨을 안겨 주는 그런 책은 그 수명이 길다. 수많은 세월을 거쳐 지금도 책 으로서 살아 숨쉬는 동서양의 고전들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0 이 기회에 한 가지 권하고 싶은 말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든지 경전은 소 리내어 읽어야 한다. 그저 눈으로 스치지만 말고 소리내어 읽을 때 그 울 림에 신비한 기운이 스며 있어 그 경전을 말한 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0 책을 가까이 하면서도 그 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일 지라도 거기에 얽매이면 자신의 눈을 잃는다.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콕 막 힌 사람들이 더러 있다. 책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읽을 수 있을 때 열린 세상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책에 읽히지 않고 책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책에는 분명히 길이 있다.
■ 자신의 그릇만큼
0 머지않아 꽃바람이 올라오면 얼음이 풀리고 새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어김 없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바뀔 것들은 바뀔 것이다. 사람들도 그 때를 알 고 변할 수 있어야 한다. 바위처럼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 한다면 거기에는 삶의 생기가 스며들 수 없다.
0 계절이 바뀌면 달력만 넘길 게 아니라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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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련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고정불변, 똑같은 되풀이는 삶을 지겹게 만든다. 현재의 나 자신은 과거의 나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날마다 새로운 날일 수 있다.
0 벽에 걸어 두었던 족자를 떼어 내고 빈 벽으로 비워둔다. 그 빈 공간에 그 림없는 그림을 그린다. 그 자리에 무엇을 걸어 둘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넉 넉하다.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은 여백의 운치를 누리고자 해서다.
0 진정한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을 부라고 잘못 알아서는 안된다. 부는 욕구에 따라 달라 지는 상대적인 갓이다. 차지하거나 얻을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할 때 우 리는 가난해 진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한다면 실제로 소유한 것이 적더라도 안으로 넉넉해질 수 있다. 우리가 적은 것을 바라면 적은 것으로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가진 것을 다 가지려고 하면 우리 인생이 비참해진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몫이 있다. 자신의 그릇만큼 채운다. 그리고 그 그릇 에 차면 넘친다. 자신의 분수와 처지 안에서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진정 한 부자이다.
■ 아직은 이른 봄
0 그 옛날 매화를 사랑하는 어떤 사람은 꽃철이 되면 이부자리를 가지고 꽃 을 찾아가 꽃망울이 잔뜩 부풀어 오를 때부터 마침내 꽃이 만발하고 질 때까지 그 꽃그늘 아래에서 먹고 자며 지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꽃과 함께 눈을 뜨고 꽃과 함께 잠이 들었다. 꽃가지에 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달이 기울 때까지 잠을 자지 않았다. 이쯤 되어야 가히 매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0 우리 인간의 삶에 살벌하고 비린내 나는 정치와 경제만 있고 꽃에 미친 이런 운치가 없다면 인간의 자취가 얼마나 딱딱하고 추하겠는가.
꽃에 미친 이런 사람들 덕에 세상의 종말이 좀 늦춰질 거라는 생각이 든 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점점 사라져 가는 거친 세상에서 그래도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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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꽃이 피는 그 뜻은 어디에 있을 것인가. 만약 우리 곁에 꽃이 없다면 우리 삶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0 휴정 선사의 법을 이어받은 편양 언기 스님은 뜰에 핀 꽃을 보고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비 내린 뒤 뜰에는 가득 꽃이 피어
맑은 향기 스며들어 새벽창이 신선하다
꽃은 뜻이 있어 사람을 보고 웃는데
선방의 스님들 헛되이 봄을 보낸다.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야 봄이 온다.
■ 얼음 깨어 차를 달이다.
0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잇따르자 온 골짜기가 두꺼운 빙하로 변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던 물소리도 빙하에 얼어붙어 더 소리를 내지 못한 그런 상황이었다. 이 산중에 들어와 15년 가까이 지내면서도 이런 일은 이번 겨울이 처음이었다. 흐르던 물소리가 멈추니 세상 자체가 정지 된 듯 싶었다. 그야말로 적막강산.
이렇게 되면 물을 찾아 제2의 비트로 철수해야 하는데 내 잠재력을 시험 해 보기 위해 버텨 보기로 했다. ‘땅에서 넘어진자 땅을 짚고 일어선다.’는 옛 가르침이 내 뒤를 받쳐 주었기 때문이다.
0 그래서 얼음을 깨어다가 그것을 녹여 차를 마셨다. 차 맛이 어떻냐고? 더 말할 것도 없이 별로였다.
얼음 깨는 일을 하다가 장작을 패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그토록 부 드러운 물이 한 번 얼어 붙으니 돌덩이처럼 굳어진다. 인자하고 온유하던 모성도 어떤 상황 때문에 한 번 뒤틀리면 이 얼음처럼 견고해지는 것일 까? 최근에 내린 눈으로 얼음 대신 눈을 떠다 쓰니 내 팔의 수고를 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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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다.
0 생텍쥐페리는 그의 ‘인간의 대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물,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너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 가슴속 깊이 사무치게 한다. 너와 더불어 우리가 단 념했던 모든 권리가 다시 돌아온다. 네 은혜로 우리 안에는 말라붙었던 마 음의 샘들이 다시 솟아난다.”
한 방울의 물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를 배우고 또 배운 겨울이었다.
■ 겨울 자작나무
0 자다가 저절로 눈이 떠진다. 이때 내 정신은 하루 중에서 가장 맑고 투명 하다. 둘레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개울은 두껍게 얼어 붙어 흐름 의 소리도 멈추었다. 자다가 뒤척이는지 이따금 뜰에 가랑잎 구르는 소리 만 바스락거릴 뿐, 이것은 적적 요요한 자연의 본래 모습이다.
창문을 열면 섬뜩한 한기와 함께 새벽하늘에 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밤을 지키는 이런 별들이 없다면 이 우주는 너무 적막하고 삭막할 것이다.
0 우리 산천의 수목 중에는 단연 소나무가 으뜸이다. 노송의 훤칠한 품격과 청정한 그 기상은 그 어떤 나무들하고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산중에 있는 겨울 나무 중에서 정답기로는 자작나무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자신을 죄다 드러내고 있는 그 모습이 믿음직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 내가 이 산중에 들어온 이듬해 봄, 손수 심은 1백 여 그 루의 자작나무들은 이제 정정한 수목의 반열에 들었다.
■ 간소하게 더 간소하게
0 월든에 다녀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호숫가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그리움의 터, 그 월든에 다녀왔다.
늦가을 오후의 햇살을 받은 호수는 아주 평화로웠다. 호수를 한바퀴 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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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레 1.8마일, 우리식으로 계산하면 3킬로미터 조금 못 미치는 거리 다.
0 호수의 북쪽에 150여 년 전 소로우가 살았던 오두막의 터가 돌무더기 곁 에 있다. 거기 널빤지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한 번 내 식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 였다. 즉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해서 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였 다.’ - 소로우 -
0 공원 관리 사무소 곁에 오두막 그대로의 모형을 지어 놓았다.
벽난로, 들창, 소로우가 직접 만든 나무 침대, 탁자와 책상 세 개의 의자 가 있다. 커튼은 그 집에 필요가 없었다. 소로우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와 달 이외에는 들여다 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콩코드 박물관에는 그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책상과 의자, 침상과 연 필, 눈 위에 신는 설피, 그리고 그가 불었던 피리도 함께 있다. 그는 체구 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침상 의자들이 표준치 보다 작다.
0 소로우는 하루에 네 시간 이상 걸었다고 한다. 그는 ‘산책’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온갖 세속적인 얽힘에서 벗어나 산과 들과 숲 속을 걷지 못한다면 나는 건강과 영혼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할 것 같다.”
0 소로우가 숲 속에서 홀로 지낸 지 1년째 되던 해 여름, 몇 년동안 밀린 인두세를 내지 않았다고 감옥에 갇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인두세란 그 당 시 매사추세츠주가 20세에서 70세 까지의 모든 남성에게 부과하던 세금이 다.
소로우가 다른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도 유독 인두세만 거부한 이유는 의사당 앞에서까지 버젓이 사람을 가축처럼 팔고 있는 흑인 노예제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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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하기 위해서, 그리고 영토 확장의 위해 멕시코 전쟁까지 일으킨 정부 에 항의하기 위해서 였다. 친척 한 사람이 그가 모르게 세금을 대납하는 바람에 석방되자 그는 크게 분개하며 출옥을 거부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세계 역사를 바꾼 책들 중의 한 권인 <시민 불복종>이 나오게 된다.
0 톨스토이는 말한다.
“왜 당신네 미국인들은 돈 많은 사람이나 군인들 말만 듣고 소로우가 하 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거요.”
2년 2개월 동안 월든 숲 속에서 지낸 이 기간이 소로우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고 아름다운 시기였다. 그는 학생으로 월든에 갔었지만 그곳을 떠나 올 때는 스승이 되어 있었다. 소로우의 생애를 가장 충실하게 기록한 영국 의 전기 작가 헨리 솔트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콩을 심고 콩밭을 매는 일은 자연을 배우고 삶을 배우는 과정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전 미국을 위해 공적인 일을 하여 남 길 수 있었던 것보다 <월든>을 씀으로써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다.”
0 소로우의 생활신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데 그대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 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자신의 인생을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 더 명료해 질 것이다. 그때 비 로소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가난도 가난이 아니게 된다. 그대의 삶을 간소 화하고 간소화 하라!”
■ 청소 불공
0 청소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청소의 경우만은 육조 혜능이 읊은 게송보다는 신수의 게송이 훨씬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끼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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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 마음을 밝은 거울에 비유한다. 구석구석 쓸고 닦아 내는 동안 바깥에 쌓인 티끌과 먼지만 닦이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도 맑고 투명하게 닦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이웃들에게 ‘청소 불공’을 권장한 바 있다. 쓸고 닦는 그 정갈 하고 무심한 마음으로 불전에 공양 올리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였 다.
0 산중에서 홀로 사는 우리 같은 부류들은 뭣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철저 한 관리와 함께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단박에 해치 울 일도 자꾸만 이다음으로 미루는 타성이다. 그때 그 곳에서 그렇게 사는 것이 그날의 삶이다. 그와 같은 하루하루의 삶이 그를 만들어 간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갈 뿐이다.
■ 연암 박지원 선생을 기린다
0 최근에 연암 박지원 선생이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서간첩을 읽으면서 편지에 대한 내 무성의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다. 2백여 년 전 우리 선인들의 살아가던 모습이 어떠했는지 엿볼 수 있는 편지들이다.
연암 선생이 60세 되던 1796년 정월에서 이듬해 8월까지 띄운 것으로 선생의 노년에 쓴 편지들이다.
선생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 다.
“나는 고을 일을 하는 틈틈이 한가로울 때면 수시로 글을 짓거나 때로는 법첩을 꺼내 놓고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너희들은 해가 다 가도록 무슨 일을 하느냐? 나는 4년 동안 자치통감 강목을 골똘히 봤다. 너희들이 하는 일 없이 날을 보내고 어영부영 해를 보내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고 안타깝 다. 이러면 노년에는 어쩌려고 그러느냐.
고추장 작은 단지를 하나 보내니 사랑방에 두고 밥 먹을 때마다 먹으면 좋을 게다. 내가 손수 담근 건데 아직 온전히 익지는 않았다.“
0 손수 담근 고추장을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마음이 뭉클하게 전 해 온다. 선생은 9년 전인1787년에 부인 이씨와 사별했다. 51세 때. 그 후 죽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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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재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관아의 하인이 돌아올 때 기쁜 소식을 갖고 왔더구나. ‘응애응애’ 우는 소리가 편지지에 가득한 듯하거늘 이 세상 즐거운 일이 이보다 더 한 게 또 있겠느냐. 육순 노인이 이제부터 손자를 데리고 놀 뿐 달리 무엇을 구 하겠느냐. 산부의 산후 증세가 심하다고 하니 걱정이 된다. 산후 복통에는 생강나무를 달여 먹여야 한다. 두 번 복용하면 즉시 낫는다. 이는 네가 태 어날 때 쓴 방법으로 특효가 있으므로 말해 준다.”
0 전에 고추장과 여러 가지 밑반찬을 보내 주었는데도 아무 말이 없자 무람 하다(무례하다. 버릇없다)고 꾸짖는 사연도 있다.
“전에 보낸 쇠고기 장볶이는 잘 받아서 조석 간에 반찬으로 하느냐? 왜 좋은지 어떤지 말이 없느냐? 무람없다. 고추장은 내 손으로 담근 것이다. 맛이 좋은지 어떤지 자세히 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두 물건을 인편에 보낼지 말지 결정하겠다.”
0 <나의 아버지 박지원>을 감명 깊게 읽었다. 이 책은 연암 선생의 아들 박 종채가 엮은 연암의 전기다. 아버지의 뛰어난 문학자의 모습만이 아니라 그 인간적인 면모와 함께 강직한 목민관 시절의 일화도 들려 준다. 또한 이 책은 18세기 영ㆍ정조 시대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한다
0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 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0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어렵다’는 사실. 그렇다. 이 풍진 세상을 살 아가는 일도 어렵지만 죽는 일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순조롭게 살다가 명이 다해 고통없이 가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본 인은 물론 가족들이 함께 시달리게 되면 잘 죽는 일이 잘 사는 일보다 훨 씬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죽음복도 타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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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0 우리가 한평생 험난한 길을 헤쳐 오면서 지칠 대로 지쳐 이제는 푹 쉬고 싶을 때, 흔들어 깨워 이물질을 투입하면서 쉴 수 없도록 한다면 그것은 결코 효가 아닐 것이다. 현대 의술로도 소생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조용히 한 생애의 막을 내리도록 거들고 지켜보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0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 을 택할 수 있도록 이웃들은 거들고 지켜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도 미리 배워 둬야 할 것이다. 언젠가 는 우리들 자신이 맞이해야 할 엄숙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 우리가 살만한 곳은 어디인가
0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 擇里志 라는 책이 있는데 우 리나라 전역에 걸쳐 지형, 풍토, 풍속, 교통, 각 지방의 고사, 인물에 이르 기 까지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는 사람이 살 만한 조건으로 네 가지를 꼽고 있는데, 자연과 인문사회 적인 조건과 함께 그 고장의 인심을 들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 보자.
“사람이 살 만한 터를 잡는 데는 첫째, 땅과 강과 산 등 지리가 좋아야 하고, 둘째는 땅에서 생산되는 것이 좋아야하며, 셋째는 인심이 좋아야 하 고, 넷째는 아름다운 산과 물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 중 어느 하나라 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0 꿈 같은 이야기다. 21세기. 바야흐로 정보화의 물결이 넘치고 있는 이 땅 에서는 어느 고장을 가릴 것 없이 황량하고 흉포해진 인심의 평준화를 이 루고 있다. 사바세계의 인간말종의 실상을 그대로 연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세상은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야 할 곳이다. 못된 인심보다는 그래도 착한 인심이 훨씬 많다. 우리 둘레에는 예나 다름없이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 오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 잎이 펼쳐지고 있다.
■ 좋은 말씀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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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무리 좋은 말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나 자신이 들을 준비 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어떤 좋은 말씀도 내게는 무연하고 무익하다. 그 리고 좋음 말씀(좋은 가르침)은 사람의 입을 거쳐서만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천지 만물이 그때 그 곳에서 좋은 가르침을 펼쳐 보이고 있지 않 은가.
0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귀에 못이 박이도록 좋은 말씀을 얼마나 많이 들어 왔는가. 지금까지 얻어들은 좋은 말씀만 가지고도 누구 나 성인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좋은 말씀을 매번 또다시 들으려고 하는가.
0 말씀(가르침)이란 그렇게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의 삶이 이어지지 않으면 말이란 공허하다. 자기 체험이 없는 말에 메아리가 없듯이 그 어떤 가르침도 일상적으로 생활화 되지 않는다면 무익하다.
새 말씀을 들으려면 지금까지 얻어들어 온 말씀들로부터 풀려나야 한다. 거기에 갇혀 있거나 걸려 있으면 새로운 가르침이 들어설 수 없다. 예술의 용어를 빌리자면 ‘창조적인 망각’이라고 한다. 텅텅 비워야 비로소 메아리
가 울린다는 소식이다.
좋은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가 서 있는 바로 지금 그곳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고 있다면, 그 자리 에는 좋은 말씀이 살아 숨쉰다. 명심하라.
■ 어떤 주례사
0 나는 내 생애에 단 한 번 처음이면서 마지막인 주례를 3년 전 6월 어느 날 선 적이 있다. 그날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0 나는 오늘 일찍이 안 하던 짓을 하게 됐다. 20년 전에 지나가는 말로 대 꾸한 말빚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만이 책임을 질 줄 안다.
오늘 짝을 이루는 두 사람도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맏음 과 사랑으로 하나되어 세상에서 서겠다’고 했으니(청첩장에 박힌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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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되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무릇 인간 관 계는 신의와 예절로써 맺어진다.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그 신의와 예 절을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대, 같은 시간대에서 부부로서 만난 인연을 늘 고맙 게 생각하라 60억 인구이니 30억대 1의 만남이다 서로 대등한 인격체로 대해야지 집 안의 가구처럼 당연한 존재로 생각하지 말라.
삶의 동반자로서 원활한 대화의 지속을 위해, 부모님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숙제를 내 주겠다.
숙제 하나.
한 달에 산문집 2권과 시집 1권을 밖에서 빌리지 않고 사서 읽는다. 산 문집은 신랑 신부가 따로 한 권씩 골라서 바꿔가며 읽고 시집은 두 사람 이 함께 선택해서 하루 한 차례 적당한 시간에 번갈아 가며 낭송한다.
가슴에 녹이 슬면 삶의 리듬을 잃는다. 시를 낭송함으로써 항상 풋풋한 가슴을 지닐 수 있다. 사는 일이 곧 시가 되어야 한다.
1년이면 36권의 산문집과 시집이 집 안에 들어 온다. 이와같이 해서 쌓 인 책들은 이다음 자식들에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의 자취로, 정신의 유 산으로 물려주라. 그 어떤 유산 보다도 값질 것이다.
숙제 둘.
될 수 있는 한 집 안에서 쓰레기를 덜 만들도록 하라. 분에 넘치는 소비 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악덕이다.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예 집 안에 들여 놓지 말라. 광고에 속지 말고 충 동구매를 극복하라. 가진 것이 많을수록 빼앗기는 것 또한 많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적게 가지고도 멋지게 살 수 있어야 한다.
0 그날은 두 사람 다 숙제를 이행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그 뒤 소식은 알 수 없다. 숙제의 이행 여부는 이 다음 삶의 종점에서 그들의 내신성적으로 반 영될 것이다.
■ 인디언의 지혜에 귀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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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구는 무기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체다. 건강할 때가 있고 병들 때가 있다. 지구는 지금 크게 앓고 있다. 그 위에 서식하는 ‘물것들’이 지구에게 너무도 많은 상처를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결 과적으로 그 지구를 의지해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된다.
0 이 지구를 어머니로 여긴 미대륙의 원주민(이른바 아메리카 인디언)의 지 혜가 지구의 재난 앞에서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현실이다.
2000년 인디언 부족회의에서는 ‘미국에게 주는 성명서’를 채택했다. 거기 이런 구절이 들어 있다.
“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을 존중할 때만이 그대들은 성장할 수 있다. 어머 니 대지를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우리는 기도 드린다. 대지는 인간 생존의 원천이다. 이 다음에 올 여행자들을 위해 이 대지를 더 이상 더럽히는 것 을 막아야 한다.
물과 공기와 흙과 나무와 숲, 동물과 식물들을 보호하라. 한정된 자원을 함부로 쓰고 버려서는 안 된다. 보존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위대한 정령은 우리에게 이 대지를 소유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잘 보살피라고 맡 긴 것이다. 우리가 대지를 보실필 때 대지 또한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 서 로 다른 것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기를 우리는 기 도드린다.“
0 체로키족의 ‘구르는 천둥’은 말한다.
“대지는 지금 병들어 있다. 인간이 대지를 잘못 대해 왔기 때문이다. 머 지않은 장래에 큰 자연 재해가 닥칠 것이다. 대지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로 몸을 크게 뒤흔들 것이다. ”
20세기를 대표한 인디언 지도자 ‘토마스 반야시아’는 다음과 같이 말한 다.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는 인간이 물질적인 추구에 너무 매달리기 때문 에 오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가진 존재들과 자신 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날로 늘어만 가는 전쟁,폭력, 인간이 저지른 잘못들 때문에 찾아오는 자 연재해 등으로부터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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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신적인 추구에 있다.
50년 전 한 늙은 인디언이 말했다. 여자들이 이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남자들이 이 세상에다 어질러 놓은 것을 정리하고 치울 사람 은 여자들뿐이라고 그 노인은 말했다.“
모성적인 사랑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뜻이다. 정화는 개개인의 가정에서부 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 다섯 그루의 작은 숲
0 11월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로 불렀다. 평 원에 들짐승들의 자취가 뜸해지고 나무에서 잎이 떨어져 내린다. 지상에 무성했던 것들이 수그러진다. 그렇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한동안 비웠다가 때가 되면 다시 채워질 것들이다.
0 솔직히 말해 나는 사람을 포함한 동물보다 나무와 꽃들을 더 좋아하는 편 이다. 산에서 살면 동물보다 식물을 더 가까이 대할 수 있기 때문인지 모 르겠다. 식물은 동물에 비해서 그 속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고 지극히 자연스럽다. 정직하고 진실한 덕과 시원한 그늘과 향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무와 꽃들은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 그 시기를 잘 안다. 결코 어기는 일이 없다.
0 오두막 뜰가에 소나무가 네 그루 정정하게 자라고 있는 데, 그 중 한 나무 에 전에 없이 솔방울이 많이 매달렸다. 웬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몇 해 전 폭설로 한쪽 가지가 꺾여 나간 바람에 맞은편 가지의 무게 때문에 나무가 한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나무는 위기를 느끼고 자신의 뒤를 잇도록 씨앗이 담긴 솔방울을 많이많 이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탐욕스런 사람들 보다는 나무 쪽이 훨 씬 지혜롭다.
0 고대 인도의 위대한 왕 ‘아쇼카’는 모든 국민들이 최소한 다섯 그루의 나 무를 심고 돌보아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치유력이 있는 약 나무와 열매를 맺는 유실수와 연료로 쓸 나무, 집을 짓는 데 쓸 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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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피우는 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했다. 아쇼카왕은 그것을 ‘다섯 그루의 작은 숲’이라 불렀다고 한다.
■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0 세상살이란 서로가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게 마련인데 주고 받음에 균형을 잃으면 조화로운 삶이 아니다.
주고 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몸짓 한 번. 정다운 눈길로 도 주고 받는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하게 전달되고 차디찬 마음이 차디차 게 전달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맞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덕이란 그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라기보다도 이웃에게 전해지는 그 울림에 의해서 자라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할 것 같다.
0 덧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일몰앞에 설 때가 반드시 온다. 그 일몰 앞에서 삶의 대차대조표가 훤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그때는 이미 내 것이 없기 때문이 다. 자신이 살다가 간 자취를 미리 넘겨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볼 수 없다. 평소 자신과 관계를 이루었던 이웃들의 마음에 의해서 드러난다.
0 거듭 강조하는 바이지만, 나는 요즘에 이르러 받는 일보다 주는 일이 더 즐겁다. 이 세상에서 받기만 하고 주지 못했던 그 탐욕과 인색을 훌훌 털 어 내고 싶다. 한동안 내가 맡아 가지고 있던 것들을 새 주인에게 죄다 돌 려 드리고 싶다.
누구든지 나와 마주치는 사람들은 내게 맡겨놓은 것들을 내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두루두루 챙겨 가기 바란다. 그래서 이 세상에 올 때처럼 빈 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 주기 바란다.
본래무일물 本來無一物, 이것이 출세간의 청백가풍 淸白家風 이다.
■ 임종게와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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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일찍부터 선가에서는 ‘마지막 한마디’ (이를 임종게 偈 또는 유게 遺 偈라고 한다) 를 남기는 일이 죽음의 무슨 의례처럼 행해지고 있다. 그것 은 대개 짧은 글 속에 살아온 햇수와 생사에 거리낌이 없는 심경을 말하 고 있다.
13세기 송나라 조원 祖元 스님은 이런 임종게를 남겼다.
부처나 중생이나 모두 다 헛것
실상을 찾는다면 눈에 든 티끌
내 사리 천지를 뒤덮었으니
식은 잴랑 아예 뒤지지 말라.
0 사리란 범어에서 나온 말인데 ‘불 타고 남은 유골’을 뜻한다. 불자들이 화 장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본래 무일물을 그대로 보 이는 소식(掃拭 쓸고 닦음, 소제)이다.
0 고려 말 백운 경한 스님은 이렇게 읊었다.
사람이 칠십을 사는 일
예로부터 드문 일인데
일흔일곱 해나 살다가
이제 떠난다.
내 갈 길 툭 트였거니
어딘들 고향 아니랴
무엇하러 상여를 만드는가
이대로 홀가분히 떠나는데
내 몸은 본래 없었고
마음 또한 머문 곳 없으니
태워서 흩어 버리고
시주의 땅을 차지하지 말라
0 조주 스님은 세상을 뜨려고 할 때 제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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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을 뜨고 나면 불태워 버리고 사리 같은 걸 골라 거두지 말라. 선사의 제자는 세속인과 다르다. 더구나 이 몸뚱이는 헛것인데 사리가 무 슨 소용이냐. 이런 짓은 당치 않다!
■ 책에 읽히지 말라
0 옛 스승의 가르침에 ‘심불반조 간경무익 心不返照 看經無益’ 이란 말이 있 다. 경전을 독송하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으로 돌이켜 봄이 없다면 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더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0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자칫 빠져들기 쉬운 것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 라 책에 읽히는 경우이다.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주객이 뒤바뀌어 책을 읽는 의미가 전혀 없다.
0 선가에서 불립문자 不立文字를 내세우는 것도 아예 책을 가까이 하지 말 라는 뜻이 아니라 책을 대하되 그 책에 얽매이지 말고 책으로부터 자유로 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지혜는 문자가 아니지만 문자로써 지혜를 드러 낸다. 이렇게 되어야 아직 활자화되지 않은 여백의 글 까지도 읽을 수 있 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 좋은 책의 내용이 나 자신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때 문자의 향기와 서권 書卷의 기상이 내 안에서 움트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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