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지혜 (2)

2023. 9. 25. 11:29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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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지혜 (2)

- 내 삶의 기준이 되는 8가지 심리학 -

■ 김경일 지음

◎ 사랑을 지키는 지혜

사회생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 행동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은 제가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선배님입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양한 주제로 대중과 소통하고 계시지요.

그중에서도 ‘살인’에 대한 내용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생물학자와 살인이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요? 하지만 살인은 인간 종에서만 이루어지는 특이한 현상입니다. 지구상엔 수많은 생물 종이 있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종들은 그렇게까지 서로를 죽이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인간이 살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인사건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치정살인’이었습니다.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강력한 이유가 사랑이라니 조금 놀랍기도 합니다.

■ 사랑, 그놈

사랑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있고, 친구나 동료에게서 느끼는 찐한 우정도 있고요. 잘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도 연민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만 주제를 좁혀보려고 합니다. 굳이 사랑의 의미를 확장하지 않아도 연애 감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간의 메커니즘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지요

꽤 많은 분들이 사랑과 관련된 심리적 고민에 대해 상담을 청해오곤 합니다. 연애 잘하는 법 말고도 꽤 다양한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지고 싶은데 말을 못 하겠어요.”

“세상에 좋은 이별도 있을까요?”

“연애가 시작되면 금방 싫증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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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집착하는 제가 싫어요.”

“이혼을 하고 나니 인생의 실패자가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남과 관계의 유지, 그리고 이별은 비단 남녀 간의 관계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집안이 갈라놓지 않아도 대부분의 연애는 시간이 지나면 끝이 납니다.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결혼까지 갈 수 없어서, 연애의 동력이 남아 있지 않아서 따위의 이유로 뜨거웠던 사랑은 종말을 맞이하지요.

퇴직도 생각해 보면 이별의 한 종류에 해당되겠지요. 첫 출근 날의 설렘, 동고동락한 동료들과의 끈끈한 우애, 성공과 실패의 뜨거웠던 경험을 뒤로한 채 자의든, 타의든, 오랜 시간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는 마음은 마냥 상쾌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조직은 퇴사자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떠나보내려 노력하지요.

제 친구 한 명도 퇴임 통보를 받아 회사를 떠나야 하는 임원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퇴직이 결정된 것이 아니었기에 씁쓸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지요. 회사에서는 정중하게 선물을 준비해 주었고, 정성스럽게 카드도 적어주었지요. 카드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귀하가 있었기에 우리는 눈부신 발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카드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습니다. 회사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한 말이었을 텐데 받는 사람의 기분이 왜 상한 걸까요? 물론 어떤 말로도 이별의 순간을 핑크빛으로 미화할 수는 없습니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귀던 남녀가 이별을 선택하는 것은 더 이상 그들의 관계가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행복하지 않다는 건, 곧 서로에게 좋은 것을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 “널 사랑해서 이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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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는 거야”라고 한다면 그것만 한 ‘개소리’는 없겠지요.

표현이 과격했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개소리는 심리학적 용어로 ‘Bull shit’(엉터리 거짓말, 허튼소리)의 완벽한 한국어 표현이거든요. 제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요? 미국의 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는 <On Bullshit>이라는 명저를 남겼는데 국내에서는 <개소리에 대하여> 라는 기가 막힌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고요. ‘헛소리’나 ‘엉뚱한 말’과 같은 단어로는 대체가 안 되는 부분이죠.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류 최고의 개소리를 꼽는다면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가 아닐까요? 자매품으로 ‘사랑해서 때리는 거야’나 ‘너 잘 되라고 일 시키는 거다’등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별의 순간, 얼토당토않은 개소리로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예의를 갖춰 고마웠던 부분을 말해야 합니다.

“너 때문에 행복했다.”

물론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누가 모르나요? 잠시라도 행복하지 않았던 연애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좋은 이별을 하고 싶다면 상대에게서 발견한 다른 부분도 짚어주세요.

■ 용서의 힘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위해 용서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용서하지 않는 것만큼 나를 소진시키는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에서는 용서를 감사와 함께 나를 지키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여깁니다.

용서를 할 줄 알고, 감사할 줄 알아야 버팁니다. 감사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릴게요. 제가 일하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 네팔인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연구원이었지요. 2015년 4월, 네팔 지진이 일어났다는 비보를 듣자마자 대학원생은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참……. 그 정신없는 참사 가운데서도 보고서를 보내왔지 뭡니까. 대재앙 이후 다시 일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고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아주 의미있는 심리학 실험을 한 것입니다.

연구원은 네팔에 위치한 두 호텔 직원들에게 각각 다른 내용의 일기를 쓰게 했습니다. 한 호텔에서 일하는 분들에겐 매일매일 감사할 일을 쓰게 했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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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호텔 직원들에겐 그날 있었던 일을 나열하는 평범한 일기를 쓰게 한 것이지요. 이후 관찰을 해보니, 감사 일기를 쓴 직원들은 훨씬 더 집중력 있게 업무에 몰입했고 참사를 극복하는 태도 또한 다른 호텔에 비해 높았다고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있지요.

이처럼 감사하는 태도와 그 말을 들은 후 보여주는 행동을 통해 한 사람의 품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한 사람이 제일 괴로울 것 같지만 “용서 못 해!”라고 소리친 사람이 오히려 밤잠을 설칩니다.

■ 사랑한다면, 관찰하세요

연인과 부부 관계에 장난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오래 만난 연인이 결혼에 골인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서로 얼마나 장난을 잘 치는지에 따라 결정될 정도예요. 장난이야말로 안정적이지만 밋밋한 관계에 순간적인 접근 동기를 만들어 주는 심리적 MSG(조미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장난과 희롱의 뜻을 정확하게 구분해 볼까요?

* 희롱 : 내가 친 장난으로 인해 내가 쾌감을 얻는다.

* 장난 : 내가 친 장난으로 인해 상대가 유쾌하게 웃고, 그 웃음 때문에 나도 기분이 좋다.

제대로 된 장난을 치려면 상대의 기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래된 부부가 그 기준을 파악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아요. 최근 들어 통하지 않는 행동 때문이지요.

처음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쓸 때, 하나하나 맞춰가는 연애 초기엔 우리는 매일같이 이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잘하지 않게 되었어요. 그 행동의 이름은 바로 ‘관찰’입니다.

어린이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과 20대가 원하는 선물은 다릅니다. 청년 시절 좋아했던 취향과 중년이 된 후에 좋아진 것도 다르지요. 살다 보면 기준이 바뀌는 건 당연한데 여전히 나의 관찰은 배우자를 처음 만났던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내에게 처음 반한 20대 중반, 남편을 남몰래 좋아한 30대 초반, 연모를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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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열심히 해왔던 관찰은 이제 밑천이 드러났습니다. 그 이후로 시간은 수십 년이 흘렀는데 관찰은 도통 업데이트가 되지 않으니 장난을 칠 수 없는 것이지요. 작정하고 억지로 장난을 쳐봐도 상대방의 기준과는 한참 동떨어진 희롱입니다. 그러다 보니 짜증 섞인 불만만 돌아올 수밖에요.

관찰을 잘 하고 싶다고요? 그럼 좋은 때를 기다려 봅시다. 관찰하기 좋은 때는 목적이 있는 행동을 하고 있으나, 나는 아무 목적이 없을 때입니다.

저희 부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 저는 아내를 관찰하기 가장 적합한 공간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백화점입니다. 저는 백화점이란 장소에서는 목적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 어떤 목표나 삶의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공간이 바로 백화점이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정반대입니다. 하루에 2천 보만 걸어도 발이 아프다는 사람인데 백화점에서는 2만 보를 거뜬히 걷습니다. 체력이 약한 줄 알았는데 온갖 쇼핑백을 한 손에 가볍게 드는 슈퍼우먼으로 변하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물을 탐지할 수 있는 오감이 발달됩니다. 그 공간에 적힌 모든 메뉴얼을 빠르게 읽고 파악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속독력도 겸비되지요. 도전정신과 목적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활력과 에너지가 넘치나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백화점 쇼핑이지만 최근에 아내와 몇 번 다녀봤어요.

“저 사람이 저런 걸 만지면서 웃네?”

“아, 이런 향기 좋아하는구나?”

“저런 얘기는 좀 재미없어하네?”

“오, 이런 데서 신나는 표정이네?”

촉감과 소리에 예민하고 예기치 못한 오감이 작동할 때 즐거워하는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물건 포장할 때 넣어주는 에어캡, 즉 뽁뽁이였어요.

그날 이후, 택배 배송을 받을 때마다 딸려오던 뽁뽁이를 버리지 않고 모두 모아놓았습니다. 그리고 뽁뽁이를 산처럼 쌓아놓은 채 아내와 함께 눌러 보았지요. ‘뽀복, 뽁, 뽁, 빠악-푸쉬.’

그날 정말 정말 뽁뽁이 터뜨리기의 무아지경을 경험했습니다. 누가 더 빨리 터뜨리는지 경쟁도 하고, 큰 소리로 터뜨리기 시합도 했어요. 가끔 이상한 소리가 나면 뽁뽁이가 터지듯 아내의 웃음이 빵빵 터졌습니다. 오랜만에 제대로 장난을 친 것 같았어요. 연애 때 느끼던 감정이 살아나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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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전환이 필요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절한 심리적 산물을 주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관찰입니다. 재미있는 장난을 걸기 전에, 진지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제안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물끄러미 관찰해 보세요. 관찰을 통해 좀 더 성숙하고 안정된 사랑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이별은 실패일까요?

한 사람과 헤어졌는데 75억 인구와 이별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혼을 경험한 분들입니다. 많은 경우가 한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최근 들어 더욱 이혼과 함께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씀이 있어요. 바로 “이혼을 하니, 인생에서 중요한 실패를 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실패는 보통 일에 대해 붙이는 어휘입니다. 목표한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거나 중도에 그만둬야 할 때, 우리는 주로 실패했다고 이야기하지요. 즉 ‘실패감’이라는 심리는 ‘분명한 목적’이 꺾였을 때 드는 마음이겠지요.

관계가 시작될 때, 깊어갈 때, 그리고 끝날 때, 우리는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감정 자체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다른 부수적인 것들을 생각하느라 정말 중요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 전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화려한 무대와 신들린 듯한 가창력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니, 대단히 즐거운 체험이었어요. 오랜만에 눈과 귀가 호강하고, 심장이 쿵쿵대는 기분을 잔뜩 느끼고 왔습니다. 그런데 공연 도중, 주변을 돌아보니 관객들이 모두 스마트폰을 들고 무대를 찍고 있더라고요. 지금의 좋은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촬영에 집중하느라 공연을 만끽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스마트폰 대신 공연에 집중한 스스로의 선택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디지털 파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저의 세포들이 기억할 테니까요. 공연장에 왔으면 내 눈으로 공연을 보고, 방방 뛰며 즐겨야 합니다. 나중을 위해, 혹시 모를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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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을 위해,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다른 것에 신경이 팔려버리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깝잖아요.

■ 나에게 감탄하는 삶

‘남의 감탄에 목말라 하는 삶’

어떠세요. 우리가 원하는 삶, 우리가 세운 목표, 그리고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은 사실 다른 사람의 감탄을 얻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엔 도로에서 비싼 외제차를 쉽게 볼 수 있더라고요. 그냥 수입 브랜드가 아니라 수억 원을 능가하는 고가의 프리미엄 차량들도 자주 보여요. 그 운전자들 중 일부는 정말로 자동차가 좋아서 많은 비용을 지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일 뿐, 대다수는 이 차를 타고 내릴 때 몇 초간 이어질 지인들의 감탄 때문에 비싼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리고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이 내 정체성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에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사들이는 게 아닐까요? 바로 이런 삶이 인정 투쟁이라는 거예요.

여기서 잠깐 김정운 박사님이 ‘감탄’이라는 용어를 썼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아”, “아고”, “오!”, “저런!”, “어?”.

말하는 이의 놀람이나 느낌 등을 나타내는 감탄사라는 품사는 대체로 그 단어의 길이가 아주 짧습니다. 다른 문장과 연결되기보단 짧게 내뱉고 날아가 버리지요. 감탄이란 것이 본디 휘발성이 강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단어를 선택한 건 아니었을까요?

두고두고 마음속에 남아 있는 감정들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감탄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영속적이기는커녕, 순간적으로 발휘되는 남의 감탄 때문에 시간과 노력, 돈뿐 아니라 목까지 매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번에도 김정운 선배의 대답은 기가 막힙니다.

“내가 나한테 감탄하면 되지.”

그렇습니다. 남을 나로 바꾸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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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소시오패스 이야기를 잠깐 드린 적이 있습니다. 소시오패스는 타인의 모든 것을 다 빨아먹고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 부류의 인간들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소시오패스를 만나 고통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소시오패스는 전체 인류의 4%에 해당하는 비중이니 부부나 부모, 그리고 형제자매 중에서도 쉽기 만날 수 있거든요.

소시오패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강한 힘으로 상대를 가스라이팅하는유형, 그리고 슈렉에 나오는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상대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유형, 이 두 유형 모두 상대방의 인정 욕구를 만족시켜 주면 아주 쉽게 데리고 놀수 있었던 겁니다.

* 가스라이팅형 : 너 밖에 없다. 내가 믿는 거 알지? 앞으로도 내 말만 들어.

* 동정호소형 : 내 곁에 있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 너뿐이야. 계속 나하고만 놀아야 해.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 제안이지요. 그러나 자신에게 감탄할 것이 없던 사람에겐 이러한 인정조차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결국 소시오패스의 배를 불리는 피해자로 전락하게 되지요.

우리는 대부분 어른이 되면서 인간관계를 줄여나갑니다.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일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대신 매일 마주치는 소수의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그들의 기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진짜 어른이라면, 직장과 가정을 살짝 벗어난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느슨하게 만나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느슨하다는 거예요. 너무 깊게 만나면 일과 가정에 소홀해지니까요. 하지만 느슨한 관계 안에서도 충분히 내 사람들의 가치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조금 바꿔볼까요? 나는 과연 나의 배우자에게 좋은 사람일까요?

저는 일단 아니라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물어보니 아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더라고요.

나 : 너에게 좋은 사람이니?

아내 : (1초 만에) 에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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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그, 그런데 왜 같이 살아?

아내 : 가성비가 나쁘지 않아서? 아니면 대안 마련의 부재?

* 가성비 : 가격 대비 성능

참 잔인한 사람이지요. 그러나 저는 다시 태어나도 제 아내와 결혼할 겁니다. 왜냐고요? 저 정말 20년 넘게 이 사람한테 맞춰주느라 힘들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른 여자한테 다시 맞추라는 겁니까?

 

심리학자들은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직하고 겸손한 사람.”

뻔한 이야기지만 참 쉽지 않아요. 앞서 정직과 겸손에 대해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정직은 솔직하다는 뜻이고 겸손은 적당히 나를 가린다는 뜻이니 둘은 정반대 개념 같습니다. 지나치게 겸손하면 가식적으로 보이니까요.

누구나 선택적으로 정직할 수는 있지만 이런 현상이 너무 분명하고 뚜렷하게, 또 자주 보이는 사람은 주의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유리할 땐 진심을 보이고, 불리할 땐 말을 바꾸는 이들은 상당히 기만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면 고달픈 일들이 뒤따를 거예요.

■ 나에게 좋은 사람

아내 : 저는 A 정당을 지지해요. 전 진보주의자거든요.

남편 : 저는 A 정당의 대척점에 있는 B 정당을 지지합니다. 전 보수예요.

부부가 정치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건 상당히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미국 심리학자들은 지지하는 정당의 성향이 정반대라면 결혼하지 말라고 아예 대놓고 말하곤 해요. 정치관은 선거 날 누구에게 표를 찍느냐의 문제에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거든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 분노합니다. 보수적인 사람은 잘 지켜져야 하는 미풍양속이나 전통이 흐트러지는 것에 분노하지요. 분노의 코드가 정반대인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힘들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프로야구팀이 같아도, 아무리 즐기는 취미가 비슷해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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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나와 비슷한 수준의 개방성을 가진 사람을 만났다고 칩시다. 개방성은 두 사람을 빠른 속도로 친밀하게 해 주지요. 세계를 보는 눈이 비슷하니 코드도 잘 맞고 동지의식이 생겼을 것입니다. 이때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유지시켜 주는 것이 ‘정직’이에요.

◎ 5장 돈에서 자유로울 지혜

■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세계 최고의 재벌 만수르(아랍에미리트. UAE. 부총리)의 재산이 얼마인지 아는가? 워낙 많은 데다 실시간 불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추정하는 계산법도 다양하다고 하네요. 친구 말이 최대치로 추정할 경우 자그마치 1경 정도라네요. 1경이라면 1조가 만개 있다는 얘기입니다.

만수르만큼은 아니더라도 소위 부자로 분류되는 이들의 재산은 우리의 예상

을 뛰어넘습니다. 나의 백 배, 천 배, 만 배뿐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있

겠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나보다 만 배, 십만 배, 백만 배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는 모두 상식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인간이 돈을 만든 이유

인간이 돈을 만든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어떤 전통의

기원을 찾아 과거 문건을 열심히 뒤져보아도 확실한 근원을 알기 어려운 경우

가 종종 있어요. 돈이 대표적이지요. 대체 인간이 왜 돈을 만들었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오죽하면 <사피엔스>의 작가 유발 하라리가 돈을 일컬어 ‘인류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했을까요? 먹지도 못하는 종이 쪼가리나 금속 조각

몇 개를 생선이나 쌀과 맞바꾸다니요. 이건 엄청난 사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종이와 금속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었을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는 누구 하나 돈의 가치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인류는

돈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징체계를 믿게 하기 위해 결국 사회를 바꾸어 놓았

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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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 인간은 미래를 확실히 잘못 예측한다는 거예

요.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단번에 안다면 참 좋을 텐데, 신

이 아닌 이상 알 턱이 없습니다.

미래의 어떤 일이 일어날 확률을 추정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은 온갖 점

술과 미신이 만들어 냈습니다. ‘올겨울엔 강가를 조심하라, 물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높다’. ‘서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날 것이다.’ 같은 말들은 조금이라도

확률에 기대고픈 인간들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주사위 역시 확률에 다가가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처럼 인류

는 수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안갯속을 더듬듯 어설프게 확률을 추정해 왔습

니다. 그런데 비로소 최근에 와서 그 형태가 달라졌어요. 빅데이터, AI 등 소

위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의 혁신 덕분에 실제와 근접한 수치에 다가

간 것입니다.

여기 두 명의 프로야구 선수가 있습니다. 한 명의 연봉은 2억이고, 다른 한 명은 연봉 3억을 받고 있어요. 둘 중 누가 더 가치 있는 인간일까요? 현대인들은 쉽게 판단합니다. 3억짜리 선수가 더 가치 있다고 말이지요.

물론 연봉 말고도 한 인간의 가치를 따지는 기준은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하나하나 생각하지 않지요. 돈으로 판단하는 게 가장 쉽고 간편하니까요.

‘A라는 사람은 얼마짜리다. B는 얼마짜리다’와 같이 인간의 가치를 돈으로 매기는 것처럼 몰상식하고 폭력적인 행위도 드물 거예요.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시선을 적용하지 않고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행위는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하나 다행스러운 점은, 인류는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는 겁니다. 경쟁하는 것보다, 속이는 것보다, 함께 나누고 돕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오랜 진화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까요. 사람들은 흔히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진화에 대한 깊은 오해입니다. 만약 인류가 역사 속에서 잘난 사람, 강한 사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 몸값이 비싼 사람만 남겨놓은 채 나머지는 제거했다고 상상해 보세요. 진작에 소시오패스들에 의해 멸망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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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시오패스(Soisopath ) : 사회+상태의 합성어로서, 생각한 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향. 죄책감이 없고 무책임함

우리들의 유전자는 생각보다 더 이기적입니다.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려서 더 오래 생존시키는 게 유일한 목표예요. 그래서 인간의 유전자는 살아남기 위해 이타성을 진화시켰습니다. 조금 쓸모없게 느껴지는 사람, 발전을 늦추는 사람,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들조차 함께 살기 위해 노력했고, 공존하고 공생하는 방법도 고안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때로는 약자인 우리들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르지요.

■ 불안을 피하고 싶은 욕망

돈이 없을 때 인간이 느끼는 슬픔, 처량함, 불편감, 분노, 열등감은 상당 부분 불안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심리중에서 인간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심리는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체벌이 없어졌지요?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학창시절 무서운 선생님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등교 시간 교문 앞에는 두발 불량, 복장 불량을 잡아내려는 선생님이 계셨죠.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은 어김없이 두툼한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곤 했지요. 열 명의 학생이 열 대씩 맞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자, 여기서 문제입니다. 열 명의 학생 중에서 가장 아프게 맞은 학생은 누구일까요?

걸려본 사람은 아실 겁니다. 맨 마지막 순서가 가장 아프다는 것을요. 물론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첫 번째 학생이 가장 아파야 합니다. 그러나 매 맞은 이의 고통은 물리법칙만을 따르지 않습니다. 앞서 90번의 비명을 들은 마지막 학생의 멘탈은 이미 사망한 상태거든요.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은 점점 더 불어납니다.

불안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불안을 확장시키는지도 쉽게 알 수 있어요. 불안은 불확실할수록 더 커집니다.

우리는 수중에 어느 정도의 돈이 있으면 급격하게 불안이 감소되는 걸 느낄 수 있잖아요. 하지만 개인이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 돈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땐 다시 불안해지는 게 인간의 심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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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부자를 만들어 주는 위시리스트

* 위시리스트 : 사거나 얻고자 하는 물품 따위를 일정한 순서로 적은 목록

저는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께 늘 듣던 가르침은 ‘착하게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였어요. 저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분들이 부모님께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내로라하는 큰 부자들은 자녀들에게 다른 것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재벌집 아이들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때부터 이 이야기를 질리도록 듣는다고 하죠.

“아무도 믿지 말라.”

가진 것이 많으면 잃을 것도 많아집니다. 타인을 쉽게 믿은 탓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잃게 될까 봐 시작된 자녀교육일 겁니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서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따뜻함을 느끼고,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행복감을 줍니다. 그러나 돈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면 절대 행복할 수 없겠지요.

저는 국내나 외국에 있는 로또 1등 당첨자들을 상당수 만나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부터 바꾸고 싶은가요. 차? 집? 고급옷과 액서세리? 대부분의 당첨자들이 제일 먼저 바꾼 건 배우자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하는 것은 갑자기 큰돈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불신의 형벌’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불신의 형벌에서 벗어나 행복을 함께 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위시리스트’가 만들어진 사람들이지요. 세계의 부를 손에 쥐고 있는 유대인들의 특별한 경제교육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위시리스트 만들기입니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 소년 톰은 다섯 살 생일에 엄마 아빠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톰, 100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사고 싶니?”

아빠가 묻자 톰은 고개를 갸웃합니다.

“100달러가 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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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1달러 알지? 그게 100개 있는 거야.”

아빠가 1달러를 꺼내어 보여주자 톰의 눈이 반짝입니다. 상상만으로도 좋은지 웁스, 지저스! 온갖 감탄사가 터져 나와요. 다섯 살의 입장에선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도록 큰돈이니까요. 이때 부모는 가만히 종이를 내주며 가상의 100달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적도록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 메리에게 사탕 세 개, 사랑하는 엄마에게 쿠키 한 통, 아빠를 위한 야구공 한 개, 심술쟁이 우리 형 마크에겐 지렁이 젤리 한 개, 저녁마다 접을 색종이 스무 장, 가방에 넣어 다닐 초콜릿 열 개 등.....

그 다음 해가 되어 여섯 살 생일을 맞이한 아이에게 부모는 다시 질문합니다.

“톰 200달러가 생기면 무엇을 할 거니?” 그 다음 해에는 500달러, 또 그 다음 해는 1,000달러, 해마다 나이를 먹은 만큼 자라난 상상 속의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궁리합니다.

어느덧 톰은 스물여섯 살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에겐 천만 달러에 대한 위시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어린 시절부터 만들어졌고 어린 시절부터 보관했던 파일도 몇 권 모였습니다. 너덜너덜하지만 그 기록들은 경제교재이자 행복의 기록이에요. 고사리손으로 한자, 한자 정성껏 소망을 적으면서 아이는 분명 즐거운 기분을 느꼈을 테니까요.

세상에는 소망이 없는 부자들도 많습니다. 돈은 넘쳐나는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백만 원을 써도, 천만 원을 써도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옷을 입고 비싼 차를 타고 고급스러운 요트에서 즐겨보지만 어쩐 지 쉽게 행복해지지 않지요. 내 자녀가 행복한 부자로 살기 원한다면 위시리스트를 적어보게 하면 어떨까요.

‘아난다마이드(anandamide)’라는 화학 물질이 있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행복’이라는 뜻으로, 인간에게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유독 이 행복에 관련된 화학 물질이 많이 나오는 민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사람들이에요.

그런가 하면 아난다마이드가 유독 적게 나오는 민족도 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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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성실함도 한민족 못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들 역시 아난다마이드가 적게 나오기로 유명한 민족이라네요. 다시 말하자면 한국인이나 유대인은 부킹 프라이스 자체가 높게 설정되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결국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 뇌를 가진 우리들이 돈으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1. 만족할 때까지 큰 돈을 쓴다.

2.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비의 빈도를 높인다.

여기서 위시리스트를 촘촘하게 쪼개는 행위는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행복을 느끼는 주체는 나고, 행복한 삶을 설계하는 것 또한 나 자신입니다. 지혜롭고 꼼꼼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고 말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부킹 프라이스를 막연하게 높이라고 요구합니다. 휘말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기쁨을 찾기 위해 더더욱 필요한 것이 바로 위시리스트랍니다.

■ 투자의 고수가 되려면 복기는 필수

바둑 두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십니다. 바둑을 잘 두는 고수들에겐 비슷한 양의 재능과 열정, 훈련이 주어진다고요. 그런데 그들 중에서도 초고수에 해당하는 분들은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쉽게 이긴 경기조차 복기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도 복기를 합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지거나 큰 점수로 탈락하면 처절하고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지요. 물론 그것조차 안 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그들을 도박꾼이라고 부릅니다. 도박꾼이 아닌 이상 운에 기대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분야에서 실패를 교훈으로 삼습니다. 웬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의 경우 90점을 예상했는데 60점이 나오면 이를 악물고 오답을 체크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상위권에 있는 진짜 실력자들은 예상보다 잘 나온 결과도 복기한다는 거예요. 이번 시험에 60점을 예상했는데 90점이나 받아버렸습니다. 일반적인 학생들이 “아싸!”하고 좋아할 때 상위 1%의 학생들은 크게 당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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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예상이 틀렸지? 뭐가 문제인지 따져봐야겠다.’

투자자나 기업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투자로 괜찮은 성공을 이루었다면, 그 원인과 결과도 냉정하게 복기해 보세요. 성공했을 때 단순히 기뻐하고 손해 봤을 때 실망하는데 그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운이나 요행을 바라기 마련이거든요. 잘 아시겠지만 큰 부자들은 절대 그렇게 순진하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투자뿐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엔 마치 행운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좋은 일이 생길 때가 많아요. 이런 일을 겪은 많은 분들이 한편으로는 좋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경우지요. 운은 언젠가 다하게 마련이고, 좋은 운이 지나가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예상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우리 인생의 스코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좋은 선수는 비록 초반엔 운으로 이겼더라도 경기를 회복하면 반복할수록 실력으로 성공하는 비율을 늘려나가니까요. 성공도 실패도 학습의 근거로 삼는 이가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 아닐까요. 결과에 집착하기보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의 이유를 겸손하게 알아가는 데 시간을 쓰시길 당부드립니다.

■ 좋은 돈과 나쁜 돈?

소중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상황에선 웬만하면 깨끗한 돈을 찾습니다. 부모님이나 조카에게 용돈을 주는 상황이나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야 할 때, 너덜너덜 닳고 찢어진 더러운 돈보다는 비교적 깨끗한 돈으로 골라 봉투에 담으려고 할 거예요. 마치 돈의 청결함이 그 돈의 도덕성을 표현해 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무것도 묻지 않아 깨끗한 돈과, 도덕적으로 깨끗한 돈, 똑같이 ‘깨끗하다’라는 어휘를 사용하지만 뜻이 다르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 더러운 손 치워.”

“그 사람 참 가슴이 따듯해.”

“차가운 머리로 생각하라.”

이런 표현들은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존재하는 표현이에요. 더러운 손은 오물이 묻은 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죄를 저질렀다는 행위의 다른 표현이지요. 가슴 온도가 평균 체온보다 높아지거나 머리가 실제로 차가워지는 상황이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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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심각한 질병이니 당장 병원에 가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체온이 아니라 다정하다거나 이성적이라는 묘사를 온도로 표현한 거지요.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서는 언어를 동일하게 사용함으로써 실제로는 관련 없는 상황을 똑같이 연결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래서 깨끗한 돈은 정직하고 착한 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기도 합니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같이 번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거예요. 고생해서 힘들게 벌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옳지 않은 방식으로 벌었다고 읽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만약 비윤리적으로 번 돈이라면 정승처럼 우아하게 소비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가치 있게 번 돈이어야 점잖게 쓰고, 그렇지 못한 돈은 함부로 쓰는 것이 우리 내면의 심리니까요.

그래서 저는 부모가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우리 아이들에게 분명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아빠가 개고생해서 번 돈이야”라고 수고로움을 강조하는 경우는 많지요. 하지만 힘들게 벌었다는 이야기뿐 아니라 정직하고 착한 방법으로 마련한 돈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세요.

왜 기업들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미지 광고에 열을 올리는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TV를 보다 보면 국민과 함께하는 기업, 아름다운 기업, 사회와 공존하는 기업, 창의적인 기업이라며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앞다투어 홍보하는 광고를 접히게 되지요. 차라리 새 제품을 광고하는 게 더 이익일 것 같은데 뭐하러 힘들게 회사 이미지를 포장하는 걸까요.

이런 광고는 소비자뿐 아니라 그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을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기업이 스스로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윤리적이고 선하다는 것을 알렸을 때 직원들에게 좋은 변화가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착한 회사의 직원들은 심지어 물자와 전기까지 아껴 쓴다는 거예요. 우리들의 회사의 자원 또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걸까요?

반대로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적이 기사에 노출될 때마다 직원들이 물자를 낭비하는 횟수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존재합니다.

돈에 대한 나의 존중감과 자긍심이 허투루 나가는 돈을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돈에 관련된 온갖 부정적인 습관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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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장. 성공을 꿈꾸는 지혜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모아놓고 살면서 가장 공감이 많이 되었던 속담이나 사자성어가 무엇인지 물으면 ‘새옹지마’나 ‘전화위복’ 같은 말들을 꼽습니다. 말마디야 조금 바뀌지만 기본적인 뜻은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 혹은 인생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것이죠. 계절이 바뀌듯 행운과 불운이 순서에 맞게 찾아오고 기쁨과 절망이 교차한다는 것, 이는 동양인들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순환적 세계관이에요.

서양 속담이나 유대인 격언까지 포함하여 서양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문구 중

가장 현실과 공감되는 것을 묻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대망의 1위는 ‘어쨌든 1은 0보다 크다’였다고 합니다. 참 멋대가리 없지요? 우리나라였다면 ‘1이 0이 되고 0이 100이 된다’라는 등 뭔가 더 그럴싸한 반전이 나왔을 텐데 말이죠. 작은 수는 작고, 큰 수는 크다고 말하는 것. 그 차이를 확실히 인정하는 것은 명백한 직선적 세계관입니다. 그리고 서양은 직선적 세계관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문화예요. ‘어쨌든 1은 0보다 크다’는 싱거운 격언을 듣고 아무런 감흥도 못 느낀 저와 달리 제 외국인 친구들은 ‘시작이 반이다’같은 한국 속담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세계 국기를 놓고 보아도 그 차이는 확연하게 구별됩니다. 서양의 국기는 삼색기를 비롯한 직선의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 반면 동양의 국기는 동그라미가 많이 들어가 있거든요.

■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능력있고 성실했던 사람들이 활활 타오른 뒤에 남은 잿더미처럼 주저앉는 모습을 종종 보곤합니다. 열심히 일을 한 뒤 뿌듯한 보람이 따라오면 상관없지만 죽어라 일해도 의미나 성취조차 느끼지 못할 때, 삶의 방향마저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스스로를 소진 시키는 분들이 참 많지요. 나보다 권력자인 상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무리하기도 하고, 희한하게 아랫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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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칭찬받고 싶어 후배 장단에 춤을 추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조직 안의 누군가는 나를 조종하는 기법을 기막히게 알고 있어 나를 어르고 달래고 겁주면서 무리한 일을 계속하게끔 이끌지요.

균형을 한 번에 잡으려는 건 욕심이에요. 어제 세운 원칙이 오늘 바뀔 수 있고, 오늘 했던 고민의 결과는 다음 주에 뒤집힐 수 있어요. 큰 고민 한 번으로 세운 원칙을 계속 밀고 나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지요. 길고 복잡한 인생에서 작고 소소하고 반복적인 고민은 수시로 찾아오고 우리는 매번 이 고민을 기꺼이 해야 합니다. 작은 고민으로 쌓인 행동의 수칙과 방법이 나의 철학이 되고 이론이 될 테니까요.

■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말

시카고 대학의 아옐릿 피시배크 교수는 일을 대하는 직장인에게 동기 부여를 일으키는 매커니즘을 연구했습니다. 평범하고 나른한 하루를 살고자 하는 우리를 전투적인 일벌레로 바꿔주는 몇 가지 말들이 있지요? 그 대표적인 건 이 두 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1. 이 일을 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

2. 이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이다.

재미있는 건 첫 번째 말에 유난히 잘 꽂히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에 더 큰 자극을 받는 유형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웬만큼만 하고 싶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지 않다’, ‘그냥 평균 정도만 해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도 다 하는 일이니 너도 해야 한다”는 말이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해요. 물론 동기 수준이 낮다는 게 부정적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이 또한 조직에 필요한 구성성분이기 때문이지요.

많은 CEO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 회사의 모든 직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심리학자들은 뜨악하며 대답하지요.

“글쎄요. 모든 직원들이 완벽하게 동기가 부여되면 회사가 망할걸요?”

동기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도 조직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입니다. 동기 수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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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낮은 이들이 동기 수준이 높은 이들과 공존하며 일정한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게 사회니까요.

아옐릿 피시배크 교수는 조직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 동기 수준이 낮은 유형에게도 가끔씩 약간의 자극을 줄 필요는 있다고 말합니다.

“이 정도는 해야 다른 사람만큼 하는 거야.”

“대부분 여기까지는 웬만큼 해내더라고.”

이런 말은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동기를 심어주는 데 도움이 되지요.

반면, 특별히 성취 욕구가 강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미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 정도는 해야 중간은 간다’라고 말하면 기분 나빠 하겠지요. 그들에겐 “이 일을 할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라는 말이 오히려 강한 동기를 심어 줄 것입니다.

“너밖에 없다. 진짜.”

“이 정도는 남들도 다 해.”

이 두 가지의 말 중 나는 어떤 말에 더 취약할까요? 내가 자극받는 포인트를 파악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타인에게 쉽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Go! 그리고 N0 Go…….

성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과 가까워지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간편하게 ‘Go’와 ‘No Go’라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해야 할 것들(Go)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 말아야 할 것들(No Go)에는 그다지 큰 고민을 하지 않아요.

의사 선생님들이 질병에 걸린 환자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다들 ‘Go’에는 신경을 쓰지만 ‘No G0’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거예요. 디스크 환자들은 진단을 받자마자 값비싼 안마의자를 사고, 마사지를 받으러 갑니다. 그러나 디스크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쁜 자세로 앉지 않는 것이에요. 허리 통증을 완화 시켜 줄 새로운 일을 찾는 대신에 다리를 꼬거나 구부정하게 앉는 것부터 막아야 해요.

김정운 박사님의 명언 중에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나쁜 관계로 도피한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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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말이 있습니다. 외로운 사람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람마저 자꾸 만나려고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No Go’를 외칠 때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마음에 불을 지르는 사람, 나의 취약점을 도구 삼아 나를 조종하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 역시 최대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나에게 나쁜 사람,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사람, 나를 쉽게 이용하려는 사람을 최대한 신경 써서 멀리해 보세요. 이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을 조금 앞당겨 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성공에 대한 자기 정의가 필요합니다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에게는 성공을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언어가 있나요? 먼저 사전적 의미부터 알아봅시다.

성공 : 목적하는 바를 이룸

성취 ; 그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자신에게 중요한 일이든 아니든 무언가를 얻 거나 이루는 것

성취에 비해 성공을 설명하는 말은 아주 짧고 모호해 보입니다. 그리고 의외로 간단하네요. 사실 상당 부분 단어 속에 많은 것이 숨어 있거든요. ‘목적’하는 바를 이뤄야 하니 목적이 없으면 ‘성공’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목적하는 삶이 성공과 연결된 삶이겠네요.

성공에 대한 가치관과 세계관은 제각기 지향하는 점이 다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 권력을 목적에 두곤 하지요. 이들은 기존의 규범을 지키고 새로운 규칙과 질서를 만들어 공동체를 단단하게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한편 진보적인 사람들은 특정한 위치보다는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성공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에서 인정받으며 사회적 약자 또한 보호하는 것이 삶의 목적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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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의 자유가 훼손되지 않은 상태를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돈과 지위를 꿈꾸는 것은 경제적 사회적 구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지요.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성공은 무엇일까요?

“돈 많이 버는 사람이요.”

“도지사요.” “……”

물론 이런 대답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최근 누군가로부터 성공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 소리에 대해 항의받지 않는 것”

이 짧은 말을 가만히 살펴보니 내포하는 의미가 꽤 많더라고요.

즉 내가 낸 의견에 대해 ‘당신 틀렸어’, ‘조용히 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정도의 위치를 가졌다는 것, 이 역시 성공의 다른 모습이지요.

■ 긍정적 롤 모델, 부정적 롤 모델

긍정적 롤 모델은 내가 닮고 싶은 모습입니다. 내 삶이 그와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Go! Go! Go!”를 외치며 계속 나아갈 수 있겠지요. 긍정적 롤 모델 못지않게 중요한 건 부정적 롤 모델입니다. ‘저 사람처럼은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는 모습 말이지요. 내 삶이 그와 비슷하게 흘러가면 “No Go! No Go! No Go!”를 외치며 멈춰야 합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직장에서, 학교에서, 내가 몸담고 있는 여러 공동체에서, 꽤 괜찮은 모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직장 상사, 상대를 배려하며 정확한 코칭을 해 주는 선배, 뒤처지는 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함께 끌고 가려는 리더……. 만약 여러분이 성공을 꿈꾸고 있다면 일상에서 부딪히는 많은 사람에게 여러분의 롤 모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세요. 특히 긍정적 롤 모델이 대해서요. 내 롤 모델이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롤 모델은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인칭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가끔 강연 중에 수강생들이 칭찬 잘하는 법을 물어보면 저는 ‘간접 칭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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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를 말하곤 합니다. 직접 누군가를 칭찬하고 드높이는 게 어색한 한국 문화에서는 더 없이 좋은 칭찬의 방식입니다.

“이야, 참 잘한다. 너 능력 있구나.”

갑작스럽게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고맙고 기쁘지만 너무 직접적인 나머지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상황에 따라 아첨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요. 그런데 이런 칭찬은 어떠세요?

“경일이 네 능력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정말 그러네.”

우선 상당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경일이가 다르게 보여요.

주변 사람이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평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심사위원이나 감사결과를 발표하는 위치에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죠. 냉정한 사람들은 이런 화법을 자주 구사합니다.

“잘된 점은 앞의 분들이 충분히 말씀해 주셨으니 됐고요. 저는 시간 관계상 지적사항만 말씀드릴게요.”

단언컨대, 가장 나쁜 화법입니다. 이렇게 말해버리면 스스로가 배울 게 없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이런 식의 화법을 매일같이 쓰는 사람은 역량이 잘 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우리 뇌는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을 더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부정적인 피드백에 더 큰 영향을 받도록 진화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 제7장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

얼마 전 온라인 서점에서 죽음을 다룬 내용의 책을 검색했더니 자그마치 2만 권 이상이 나오더군요. 인문학적 의미에서의 죽음, 죽음을 주제로 한 소설, 잘 죽는 방법과 자살과 관련된 전문 서적까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죽음을 많이 생각하고 있으며 궁금해하는지 느껴졌습니다.

오로지 인간만이 무덤을 만듭니다. 고대 무덤에는 죽은 사람이 쓰던 물건을 함께 넣어주기도 했지요. 무덤에는 시신뿐 아니라 죽은 후에도 세상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소망, 세상을 떠난 영혼이 어딘가로 향한다는 믿음도 함께 묻혀있습니다. 이처럼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건 다른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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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에게도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성찰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 그 자체보다도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입니다. 이번 장에서는 인생의 종착지,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생각합니다.

■ 죽음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날

1970년대 후반을 강타한 최고의 인기 드라마 <전설의 고향>을 아시나요? 전국 각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이나 설화를 엮은 것으로, 매 에피소드마다 온갖 귀신들이 등장하는 공포 사극이었지요. 드라마를 함께 보는 가족이나 극중 인물들은 귀신이 나올 때마다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어린 저는 대체 무엇이 무섭다는 건지 이해를 못했어요.

‘저 누나는 왜 저렇게 머리를 플고 있지? 왜 하얀 한복을 입고 있지? 혹시 설날인가?’하며 고개를 갸웃댈 뿐이었어요.

TV 속에선 덩치가 큰 장군들도 그런 누나만 보면 무섭다고 기절을 하니, 궁굼해 미칠 것 같아서 하루는 삼촌에게 물어봤습니다.

“저 누나는 누군데 왜 다들 무서워해?”

“저건 사람이 아니야 귀신이야?”

말하고, 눈을 깜빡이고, 걷고 째려보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라니! 일곱 살 정도의 소년이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아이는 어떤 사건을 통해 처음 죽음을 알게 됩니다. 그날부터 그 아이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됩니다. 5세에서 10세 사이, 유년기에 죽음을 처음 받아들이는 상황이 인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어요. 이처럼 죽음에 대해 알아버린 인간의 마음은 바빠집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의 시간은 얼마 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성격이 급격하기로 유명하지요.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에도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항목이 등재되어 있다고 하잖아요. 죽는다는 건 굉장히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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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운 의미인데 유독 한국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제법 가볍게, 그리고 친숙하게 사용되곤 합니다.

‘배불라 죽겠다.’ ‘좋아 죽겠다.’ ‘예뻐 죽겠다.’ ‘지루해 죽겠다.’

이렇게 말끝마다 죽겠다고 하니 한국인의 뇌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암시를 받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죠.

■ 나의 죽음을 상상한 적 있나요

나는 어떻게 죽게 될까요? 내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무척 힘든 일입니다. 상상하는 것 자체로 이미 괴로운 일이에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는 늘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봅니다. 특정기간 동안 방영된 미디어에서 ‘출산’ ‘결혼’ ‘죽음’ 중 어느 장면이 가장 많이 나오는지 조사한 결과,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이 ‘죽음’이었다고 합니다.

축복해야 할 일, 축하해야 할 일, 삶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우린 늘 상상합니다. 상상은 뇌가 그 일을 구체화하고 학습하며 준비하는 과정이에요. 하지만 정작 잘 준비해야 할 죽음에 대해서는 힘들고 끔찍하다는 이유로 상상을 거부하지요. 그래서 우리 인간의 죽음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늦게 맞이하고 싶은 게 죽음입니다. 그러나 다들 살면서 한 번쯤은 ‘죽고 싶다’라는 생각도 해 보았을 거예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던 경험, 여러분도 있으시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심리학자들은 이렇게 정리합니다. 너무 힘들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참아야 했기 때문에 자살하는 거라고 말이죠.

■ 극단적 선택을 하는 심리

예전에는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구름떼처럼 몰려와서 이런 댓글을 남기곤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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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용기로 살지 왜 죽어?”

“조금 참으면 되는 걸 비겁한 선택을 했네.”

“혼자만 힘드냐? 사는 게 다 똑같지.”

자살을 선택한 분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유형의 사람들이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소위 잘 참는 것이 특기인 분들이지요. 난봉꾼이 자살하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참아내고, 참아내고, 또 참아냈으나 더 이상 못 참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어느 조직이나 폭력적인 언사를 일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빌런(악당)들은 예전처럼 대놓고 괴롭히지도 않아요. 본인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지 않는 선에서 교묘한 방식으로 가스라이팅 을 하는데 그 방식이 얼마나 천재적인지요. 남 괴롭힐 때만 머리 좋은 인간들, 이를 ‘악마적 창의성’, ‘악의적 창의성’이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 가스라이팅 : 타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황을 조작해 그 사람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일

 

아무튼 이 모든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무작정 참는 건 무척 위험합니다. 이때 받은 심리적 타격을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요? 한 연구진이 제안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인형을 준비한다.

2. 인형에 그 사람 이름을 쓴다.

3. 핀으로 인형을 찌른다.

아니, 스트레스 해소법을 알려준다더니 때아닌 저주 인형이라니, 황당하다고요? 그럴 수밖에요 2018년 노벨상의 패러디로 불리는 ‘이그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내용이거든요.

모욕이나 학대를 당했을 때 억울함과 무기력은 업무 비효율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저주 인형에 핀을 찌르는 행동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해지고 심지어 업무효율까지도 높인다고 하네요. 단. 인형에 사진을 붙이는 건 권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해를 입힌다는 죄책감 때문에 악몽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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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눌러 참기만 하면 여러 가지 안 좋은 것들이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로 오는 것은 ‘우울’입니다. 우울은 내가 못나서 느끼는 감정이 절대 아닙니다. 우울은 지적능력이 높은 존재만이 느낄 수 있거든요. 나의 통제 능력이 떨어지는데 참아야만 할 때, 불편함이 환기되지 않고 가득 차 있을 때, 뇌가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 우울은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우울은 종종 경험합니다. 내가 언제 우울을 느꼈는지. 그 우울의 강도는 어느 정도인지, 한 번 정리를 해 보세요. 우울이라는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이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행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의 타살률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1명 이하로 아주 안전한 나라라고 해요. 하지만 자살률을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많을 때는 인구 10만 명당 30명도 넘는 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분들의 99%의 공통점은 우울입니다.

우울은 다양한 시점에 여러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가볍든 무겁든 우울의 심리를 경험하지요.

운동선수들의 심리를 연구하면 공격수에 비해 수비수들이 더 많이 지치고 쉽게 우울증에 빠진다는 결과가 나오곤 합니다. 이는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적용되는 현상입니다. 똑같이 몸싸움을 하고 열정적으로 경기를 하지만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 절망이 아니라 무망입니다

우리는 자살의 원인이 절망이라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절망은 자살과 그다지 가까운 심리는 아닙니다. 절망은 ‘희망이 꺾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무망은 ‘다른 희망을 만들어 낼 동력이 없는 상태’예요. 언론에서는 “기초 수급 연금이 끊긴 후 절망하여 자살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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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말은 아니지요. 제대로 심리를 분석하면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거든요.

절망은 좋은 걸 가지고 싶은데 그 욕구가 꺾인 상태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망은 나쁜 걸 막아내려는 욕구, 좋은 걸 가지고 싶은 욕구, 두 가지 모두 없는 상태입니다. 만약 두 욕구 중 어느 한 욕구라도 강하게 있다면 자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전체의 5%에 해당하는 자살이 우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잘 버텨내고 있던 강인하고 지혜롭고 선한 자가 문득 무너져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 5%가 스무 번 일어나면 100%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 함께라는 약

이번에는 경제적인 이야기도 한 번 나눠볼게요. 제가 좋아하는 신시아 크라이더 교수가 쓴 논문의 내용입니다. 논문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통은 구두쇠를 만들지 않는다’입니다.

피실험자들에게 슬픈 영화를 계속 보여줍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합니다. 그 결과 과소비를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해요. 사람이 슬픔에 빠지면 명품이나 비싼 물건을 많이 산다는 연구는 전부터 있었어요. 그런데 본인이 슬픈 상황에 처한 게 아니라 슬픈 영화를 보기만 해도 비싼 물건을 산다는 건 처음 발견된 연구였습니다. 다운된 자아를 끌어 올리려는 욕구를 사치재를 구입하는 행위로 풀어냈던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 세계를 휩쓸었던 코로나 펜데믹에서도 이런 현상은 발견되었습니다. 강력한 슬픔과 불안이 한데 모인 시기, 이때 명품이나 사치재의 소비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해요. 물가가 올라가고 스태그플레이션이고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 데 오히려 비싼 물건은 더 많이 팔리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지요.

변수는 ‘외로움’이었습니다. 혼자라서 외로운데 슬픈 영화까지 보았으니 ‘외롭고 슬픈’ 상태가 되었고요. 이 심리가 나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라고 생각했을 때 과소비라는 행위로 연결되었다는 겁니다. 펜데믹을 비롯한 불안이 많은 시기입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허전함을 메우고 낮아진 자존감을 올리기 위해 낭비를 일삼을 수 있겠지요. 이것을 막는 결정적인 방법은 외로움을 피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모든 자살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노래했지만 ‘외로우면서 동시에 슬프면’ 울 수밖에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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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수의 사람을 만나도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의 저자 토머스 조이너 교수는 ‘감사’가 그 정답이라고 합니다.

자주 고맙다고 말하고, 남을 많이 도와주세요. 내가 고맙다고 말하는 건 상대가 나를 도왔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내가 남을 도와준다면 타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듣게 되겠지요.

세상을 떠난 많은 분들은 우리에게 준엄한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외롭지 마십시오. 많이 감사하고 많은 감사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의 생명을 살리는 방법이며 먼 훗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할 기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외국인 연구자들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 언어를 꼽으라면 ‘정’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번역하기 막막할 정도로 특이한 개념이지요. 게다가 동사 활용 패턴 또한 굉장히 특별합니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사랑한다’ 혹은 ‘사랑에 빠진다’라고 말합니다. 영어에서도 ‘fall in love’로 표현하지요. 하지만 정은 ‘든다’라는 흔치 않은 동사로 표현합니다. 종이에 잉크가 젖어들 듯, 저녁 하늘에 노을이 물들 듯, 조금씩 조금씩 스며드는 이 감정이 한국인을 대표하는 감정이라니, 재미있지 않나요?

2023.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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