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이야기들

[스크랩] 서울대 공대 교수들 묵향에 빠져

보해성산 2007. 12. 2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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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 미끄러지면 절로 무심의 경지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 서예회 은은한 묵향에 매료
치열한 연구활동 잠시 접고 ‘일필휘지’
  • 매주 수요일 오후 4시30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38동 지하 강의실에선 묵향이 은은하게 새어 나온다. 붓을 든 사람은 인문학 ‘선비’가 아니라 과학자들이다. ‘10억 분의 1단위’ 나노의 세계를 다루는 화학 교수, 암반공학 교수, 조선공학 교수 등 예닐곱이 모여 화선지에 큼직하게 글씨를 쓴다. 이들은 공과대학 교수 ‘묵향회’ 회원이다. 매주 한번 촘촘한 논리의 세계에서 크고 유연한 서예의 세계로 넘어온다. 첨단기술 개발에 혹사된 두뇌는 묵향 속에서 활력과 창의력을 되찾는다.
    # 서예와 과학, 재미는 하나다
    박영준(55) 전기공학부 교수가 왕희지의 ‘집자성교서’를 보면서 능숙한 붓놀림으로 화선지를 메운다. 2003년 묵향회가 시작될 때부터 4년간 꾸준히 닦은 솜씨다. 박 교수는 나노핵심기술연구소 소장을 맡으면서도 지필묵을 가까이 해왔다. 전서, 예서, 해서, 행서 등 다양한 서체를 얼마간 구사할 줄 안다.
    “붓글씨에 몰입하면, 연구실에서 얻은 피로가 풀립니다. 마음이 편안해져 연구에도 도움이 되지요. 서양 과학기술 덕분에 이 사회가 발전했지만, 잃어버린 게 있어요. 동양의 기예와 사상이 담긴 서예가 그 잃어버린 부분을 채워줍니다.”
    박 교수는 과학자답게 서법을 우선 찬탄한다. 획 하나에 쓰는 이의 기운과 철학을 담을 수 있는 법도가 경이롭다. 지혜 가득한 글귀나 시구를 쓰며 마음을 다잡는 것도 서예의 매력이다. 박 교수에게 큰 영감을 준 경구는 ‘생사열반상공(生死涅盤相共)’. 삶과 죽음, 열반이 서로 공존한다는 뜻이다. 치열하고 분주한 일상에서 잠깐 발을 뺄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녔다.
    “요즘 주변에 골프 치는 친구가 많은데, 전 골프보다 서예가 좋습니다. 깊이가 있거든요. 마음공부뿐만 아니라 붓을 움직이는 기법 자체에도 묘미가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서양 학자 중에서도 서예에 매료된 분이 많아요.”
    화학부 이성훈(47) 교수는 붓을 잡은 지 이제 3개월째다. 신중하게 전서체로 한 자 한 자 써가며 붓과 친해지는 중이다. 이 교수는 나노핵심기술연구소 주임교수로 연구와 행정을 겸하느라 늘 분주하다. 오전 8시30분에 출근해 저녁 7시 퇴근 때까지 스케줄이 빡빡하다. 과학에 투신했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 종종 허무감이 든다. 그에게 서예는 자신을 위한 위로이자 투자다. 묵향회가 모이는 수요일 4시30분은 다른 약속이 침범할 수 없는 시간이다.
    “학창 시절 ‘칠판 글씨’깨나 썼죠. 서예에 항상 관심이 있었으나, 이제야 시간을 내게 됐습니다. 언뜻 과학과 서예는 안 어울리는 것 같지만, 과학자들에게 붓글씨는 참 매력적이에요. 치열한 연구활동에서 벗어나 자기계발과 자유로움을 즐길 수 있게 하니까요. 서예는 훌륭한 예술문화예요. 학술대회 참석차 헝가리로 출장 간 적이 있는데, 누구나 오페라를 향유하는 풍경에 감명받았습니다. 문화의 힘이 강한 나라는 쉽게 쓰러뜨릴 수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과 과학의 역할은 비슷합니다.”
    이 교수는 딸을 위해서 붓글씨를 연마하기도 한다. 훗날 딸이 시집갈 때, 멋진 필체로 직접 사주단자를 써 줄 생각이다. 딸이 이제 겨우 유치원생이니, 연습할 시간은 충분하다. 묵향회를 가르치는 시헌 남두기 선생은 “과학 교수들이라 그런지 서예의 묘미를 빨리 깨친다”며 “깊이 파고드는 열정이 습관화돼 있어서 중도포기가 드문 점도 ‘과학자 서예반’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서예는 직관에 가깝고, 과학은 이성적인 분석에 기댄다. ‘묵향회’ 과학자들은 두 세계를 넘나들며 ‘재미’라는 화합물을 발견한다. 문득 이 교수가 모스크바 과학 올림피아에서 내건 슬로건을 기억하며 말한다.
    “모스크바에서 본 ‘과학과 예술, 재미는 하나다’라는 말, 서예를 배우며 실감합니다.”
    글 심재천, 사진 이제원, 그래픽 윤대영 기자
    jayshim@segye.com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三道軒정태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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