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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초서의 대가 진학종 선생의 글씨를 받다

보해성산 2008. 11. 2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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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다.

다름 아닌 초서의 대가 진학종 선생의 글씨..

매우 귀한 것이라 표구를 하여 어제 거실 벽에 걸었다.

그리고 여기에 씌어진 글씨를 올해 나의 신년 다짐으로 삼기로 했다.

 

 

自我作古

 

옛일에 구애(拘碍)됨이 없이 모범(模範)이 될 만한 일을 자기(自己)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 


[字解]

自:부터 자
我:나 아
作:지을 작
古:예 고

 

[意義]

'나로부터 옛 것을 삼는다'라는 뜻으로, 옛 것에 구애됨이 없이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古는 故라고도 쓴다.

 

[出典]

구당서(舊唐書) 고종본기하(高宗本紀下).

 

[解義]

중국 당(唐)나라 고종(高宗)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다.

당나라 고종은 황손인 중조(重照)를 황태손으로 세우고, 황태손을 위한 부(府)를 두고 관원을 배치하려고 하였다.

이에 이부낭중(吏部郎中) 왕방경(王方慶)은 이전 왕조의 예를 차례로 거론하면서 황태자가 있는 상태에서 황태손을 세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간언하였다.

그러자 고종은 "나로부터 옛 것을 삼으면 되지 않겠는가[自我作古, 可乎]"라고 말하였다.

 

고종은 전례가 없음을 들어 반대하는 왕방경의 의견에 자신이 최초의 전례가 되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옛 것을 받들어 그에 어긋나면 불가하다고 말하지만, 그 옛 것도 처음에 시작될 때에는 새로운 것이었다.

창신(創新)함이 없으면 전고(前古)도 없는 것이니, 이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 이른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것을 창조함)이다.

여기서 유래하여 자아작고는 옛 일에 구애됨이 없이 새로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로부터 처음 만들어 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출처:NAVER백과사전

 
<진학종 선생>

취운(翠雲) 진학종(陳學鐘) 선생은 1924년 전북 고창군 무장면에서 출생하였고,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친동생이다.
그는 60여년 동안 고집스럽게 초서에 몰두해왔으며 병풍과 전각 액자 등 1백 여 점을 모아 대형작품집 '취운 초서 병풍첩'을 발간하기도 했다.


수십 차례에 걸쳐 국내 개인전을 가진 것을 포함, 중국 상하이 한중 합동전, 일본 신문협회 초대전, 홍콩 초청작가전 등 해외작품전(개인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범태평양 미술대전 초대작가상과 싱가포르 공익부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취운 선생은 제3회 세계 서예 전북 비엔날레(2001년)에 초대된 바 있으며, 서울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상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국전 초대작가, 예술의 전당 초대작가, 세계서법예술연합 고문, 대한밈국 초서심추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취운 선생은 올해 84세로 60여년 동안 소멸해가는 초서 문화를 재현시키기 위해 힘써 왔으며, 어려운 악필(握筆) 솜씨로 천의무봉한 초서의 진수를 구현하여 사계에 명성이 자자, '동양 3국 최후의 초서 대가"란 말을 듣고 있다.

 

취운선생은 평소 “초서는 선과 여백이 어우러진, 글씨이자 예술입니다. 2백년 전에 절멸되다시피한  초서를 재현하는데 몰두,개발한 취운체는 말뚝을 땅에 힘껏 박을 때 쥐는 방식인 악필로, 특유의 리듬감이 살아 있는 글씨입니다. 해서가 앉아 있는 글씨라면, 초서는 달음질 치는 글씨지요. 초서의 묘미는 몰아지경에서 단숨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데 있습니다.” 라고 말해왔다.

   취운선생은 “초서를 쓰기 위해선 붓을 한 번 먹에 적시면 한 번에 써내려 가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이 머리 속에 훤히 암기돼 있어야 하는 것은 필수”라며 “수만 번 연습한 결과, 2백10자나 되는 굴언의 ‘어부사’를 단 25분 만에 써내려갈 수 있다.”고 한다.

 

 

 

출처 : 참세상
글쓴이 : 그겨울의찻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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