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보해성산 2009. 1. 2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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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은 얼굴에 남는다

 

■ 원철스님

 

0 해인사, 실상사, 은해사 등에서 수행

0 월간 해인 편집장, 불교신문 및 달마넷 등에 칼럼

0 ‘선림승보전’ 총 30권 번역

 

■ 해결과 해소

 

0 해가스님이 달마대사를 찾아가서 한마디 여쭈었다.

“제 마음이 편치 못하니 스님께서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소서.”

“너의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내가 편안케 해 주리라.”

“저의 편안하지 못한 마음을 찾으려 하니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이미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

마음에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자신이 알게 함으로써 번뇌를 스스로 제거 하도록 하는 것은 선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는 부처님께 배워 온 것이다.

0 부처님 당시에 갑자기 자기 아들이 죽어버린 여인이 부처님을 찾아왔다.

“부처님,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러면 좋다. 아랫마을에 가서 쌀을 좀 얻어 오너라. 단 죽은 사람이 없 는 집에 가서 얻어 와야 한다.”

아들을 살릴 방법치곤 너무 쉽다는 생각에 여인은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느 집이든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은 없었다. 여인은 마침내 부처님 이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지 깨달았다.

 

0 아들의 죽음에 관한 무제를 푸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여인 의 소원대로 신통력을 발휘하여 살려내는 해결법이요. 둘째는 스스로 깨닫 게 하는 해소법이다.

종교는 중생의 잘못된 욕망을 확대 재생산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 다. 중생에게 욕망의 실상을 바로보고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해주어야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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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판한

 

0 키보다 길고 몸통보다 넓은 널빤지를 등에 지고 가면 목을 돌리는 일도 불편하고 시야도 좁아져 목적지까지 정면만 보고 가야 한다. 이렇게 널빤 지를 짊어진 듯 외골수로 가는 사람을 불교에서는 담판한(擔板漢)이라고 부른다.

고지식한 담판한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배려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하 지만 널빤지를 짊어지고 오랫동안 먼 길을 가다 보면 목표점에 내려놓은 뒤에도 그동안 몸에 배인 습관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한쪽 면만 보는 것 에 익숙해 진다. 그 후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성향으로 굳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일시적 담판한이 아니라 영구적 담판한 소리를 듣게 된다. 즉 사물이나 생각이 한편에 매몰되면서 전체를 보지 못하고 치우친 행동을 하는 외골수가 되는 것이다.

 

0 담판한이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긍정적인 모습도 있다. 그것은 장 인정신으로 나타난다. 오로지 묵묵히 자기 길만 간다. 좌우를 돌아보지 않 으며 또한 남의 일에는 가급적 시시비비를 논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일 가견을 이룬 사람이나 오래된 가게의 주인장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0 문제가 되는 담판한도 많다. 담판한의 부정적인 면은 독선주의로 나타난 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객관성을 상실한 자기 잣대로 판단하고 자신의 논리 를 주변에 강요하면서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

0 어쨋거나 우리는 종교 역시 하나의 널빤지가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할 종교마저 때로는 넓은 판자가 되어 주변인 까지 힘들게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천주교의 줄기세포, 개신교의 사 학법, 불교의 문화재 관람료에 대한 시각은 각 종교가 짊어지고 있는 현재 의 널빤지들이다. 버릴 수 없는 판자일수록 더욱 더 낮은 목소리가 필요하 다.

■ 강한 줏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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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상지당 하글쎄’ 라는 말 알아요?”

“윗(上) 사람이 말씀하면 무엇이든지 ‘지당하십니다’하고, 아랫 사람(下)이 뭐라고 부탁하면 무조건 ‘글쎄’라고 하는 거죠.”

‘상지당’은 요샛말로 하면 ‘예스맨’이다. 전통적 표현을 빌자면 ‘지당대신 (至當大臣)’이다. 임금이 말씀만 내리면 “지당하십니다.”를 연발하기 때문 이다. 이건 동서고금에 흔한 광경이다. 하지만 ‘하글쎄’는 상상력을 초월하 는 조어 능력을 보여준다. 아랫사람이 뭔가 곤란한 건의를 해 오면 “글 쎄?” 하면서 보류만 하는 것을 빗댄 말이다. 물론 절대로 자기 견해는 내 놓지 않는다.

 

0 조직사회는 반드시 상하 질서가 있기 마련이고 그 질서는 조직의 방향과 목표를 보다 분명하고 능률적으로 성취시킨다. 上 과 下는 그 역할이 분명 한데 항상 중(中)이 문제다. 위로는 어른을 모시고 아래로는 대중을 끌어 가기 때문이다. 설사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재상의 위치라 해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상하의 두 견해는 평행선을 긋거나 반대 방향으로 치 닫기 마련이다. 어른 말씀은 거절할 수 없고 아랫사람 말은 ‘글쎄’라고 해 야만 하는 허리층의 고민이 이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0 언제부턴가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도 나에게 말을 붙여오지 않는다. 내가 말을 걸면 마지못해 대답한다. 반면에 중년 아줌마 팬은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난다. 처음에는 도력이 높아져 아이들이 못 알아보나 했는데 그 게 아니었다. 내가 이미 기성세대에 편입되었다는 반증이었다. 비교적 개 방적, 진보적 사고를 가졌노라고 자부하던 내가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것 이다.

 

0 정체된 의식은 정지된 언어를 낳는다. 정지된 언어는 세대간의 단절을 부 르기 마련이다. 그때쯤 되면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는 말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어쨌거나 밀려나는 건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 다. 하지만 가만히 뜯어보면 앞물결과 뒷물결은 경계선이 없다. 앞물결이 앞물결이라고 자기를 규정하는 순간 그는 뒷물결과 분리된 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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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거둔 나락은 열매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논으로 가서 볍씨가 된다. 같은 나락이지만 열매 속에 이미 씨앗이 포함되어 있듯이 앞물결은 이미 뒷물결을 포함하며 뒷물결 역시 앞물결을 포함하고 있다.

 

0 그렇다면 내 속의 앞물결은 무엇이며 내 안의 뒷물결은 어느 것인가? 뒷 물결을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흘러간 앞물결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 기 위해선 끊임없이 자기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뒷물결이 보고서도 앞물 결인줄 모르게 늘 새롭게 자기를 만들어 가야 한다.

 

■ 이기심의 문에서 평등심의 문으로

 

0 부처님의 ‘문지방 법문’ 사례다.

부처님의 권위에 손상을 주기 위해 어떤자가 참새를 손에 쥐고 부처님께 물었다.

“ 말씀해 보십시오. 제 손 안의 참새가 이 이후에 살겠습니까? 죽겠습니 까?”

그 속셈은 뻔하다. 살겠다고 하면 죽일 것이고, 죽겠다고 대답하면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답변의 유도 자체가 이미 상대방의 패배를 전제로 하는 궤변인 것이다.

이에 부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문지방 쪽으로 걸어갔다.

“그대는 말해보라. 내가 들어 가겠느냐? 나가겠느냐?”

 

0 의식 자체는 방향이 없다. 문지방에 서 있는 부처님이나 참새를 손에 쥐고 있는 사람처럼. 그러나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이다. 그 이기심이 정확한 판단의 근거를 확보하려는 진정한 이기심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상대방의 대답에 따라 그 대답이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 려는 오기적 이기심이라면 예삿일이 아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일관성마저 잃게 되어 주변을 혼동 속으로 빠뜨린다.

 

■ 하로동선 (下爐冬扇)

 

0 며칠 전에 알고 지내던 화가로부터 합죽선을 선물 받았다. 물 머금은 연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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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개구리가 얌전히 앉아 있는데. 그 붓질에 올여름도 건강하게 이겨내 라는 그의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림을 보기만 해도 시원한 여름을 보 낼 수 있을 것 같다.

부채와 일휴(1394 - 1481) 선사의 글씨에 얽힌 일화는 단옷날 한번 쯤 들어들 만한 이야기다.

 

0 어느날 선사께 평소에 신세를 지고 있던 부채가게 주인이 찾아왔다.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별을 고했다. 빚으로 인해 가게가 넘어가게 되었다 는 것이다. 선사는 묵묵히 들으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곰곰 이 생각하다가 무릎을 쳤다. 다음날 일찍 가게에 나갔다. 그리고 ‘오늘 하 루만 일휴의 붓글씨가 새겨진 부채를 판매함’ 이라고 가게 앞에 광고문을 내 걸었다.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얻기 힘든 선사의 글씨를 소장하겠 다며 너도 나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루만에 빚을 갚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여윳돈까지 모아준 후 선사는 표표히 절로 돌아왔다.

 

0 예전에 낭인 정치인 몇몇이 모여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하로동선‘이란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여름 화로, 겨울 부채‘란 현재 는 별로 쓸모가 없지만 때가 오면 요긴하게 사용되는 것이다. 그들은 권토 중래를 꿈꾸며 결사 모임을 꾸렸던 것이다.

 

0 이제 부채는 햇빛가리개나 의례용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부채의 운명만큼이나 시절은 빨리빨리 ‘하로동선’을 만들어 낸다. 하루가 다르게 신기술이 나오는 전자제품은 어제 것도 ‘하로동선’으로 만들어버린 다. 컴퓨터 운영프로그램의 변천은 7080세대인 내 순발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 젊은 직원들이 거들어 주지 않으면 이제 보고서 하 나도 제대로 작성할 수 없게 되었으니 나 역시 이 시대의 ‘하로동선’이 되 어버린 것인가. 그래서 열반하신 경봉노사의 말씀을 위로처럼 오늘 아침에 떠올린다.

 

봄날에 부채를 부치면 온갖 꽃 곱게 피고

여름에 부채를 부치면 구름이 일고 비가 오며

가을에 부채를 부치면 모든 나무에 낙엽이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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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부채를 부치면 서리와 눈이 내린다.

 

■ 이해충돌

 

0 산이 높으면 골이 깊기 마련이다. 무슨 일이든지 빛과 그늘은 동시에 존재 한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고 했다. 하나를 쥐면 다 른 하나를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 평범한 진리도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는 모르쇠다. 모든 걸 움켜 쥐려는 욕심 때문이다.

* 拈 : 집을 념, 손으로 쥐다. 잡다. 염향(拈香) : 향을 집어 피움

0 이익을 보는 쪽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쪽도 있다. 알고 보면 제로섬 게임 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를 반야삼경에서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고 한다.

전체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나의 손해 앞에서 남의 이익을 찬탄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 어려운 ‘ 성인급’이 되어야 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0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자기 동네에 납골당이나 화장장이 들어오면 대부분이 머리띠를 두르고 두 주먹을 움켜쥔다. 삶과 죽음은 동 전의 양면이다. ‘하루 살았다’는 말은 ‘하루 죽음에 가까워 졌다’는 또 다 른 표현일 뿐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영원히 살아있을 것처럼 ‘죽은 사람’을 무시한다. 내 속에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 산 자와 죽은 자도 공존해야 한 다. ‘우리 지역은 안 된다.’ 는 목소리만 들린다.

 

0 살아가는 것 자체가 늘 이해관계라는 결단의 연속이다. ‘명분과 실리’사이 에서도 늘 자기를 저울질해야 한다. 내 속에서도 늘 이해관계의 충돌이 날 마다 순간마다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해집단 간의 갈등은 늘 사회 불안의 요인이다. 모두 자기 이익만을 앞세워 불특정 대중을 담보로 한 채 ‘정당 성’을 주장하는 집단행위가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 ‘참살이’ 그리고 ‘잘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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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웰빙을 우리말로는 ‘잘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 ‘참살이’라고 한다. 불 교 집안에서 ‘잘산다’는 말은 일과 수행이 조화를 이루고 마음이 평화로우 며 언어와 사고가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는 반듯한 삶의 형태를 뜻한다. 그러나 세간에서 ‘잘산다’고 하는 말은 물질적 풍요로움의 추구라는, 어찌 보면 욕심이라는 의미가 더 도드라져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 탐하는 마음 을 살짝 감추면서 품위있는 의미가 포함된 ‘참살이’라는 단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잘살이’와 ‘참살이’는 웰빙의 물질적 만족과 정신적 만족이라는 두 가지 면을 반영한다. 하지만 동시에 가치적으로는 서로 또 다른 긴장관계를 불 러 일으키는 개념이기도 하다.

 

0 인사동의 어느 식당은 그 촌스러운 내부 세간에도 불구하고 밥맛이 좋다 는 이유 하나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그 밥맛을 빨리 누리려고 독촉이라도 할라치면 주인장은 당장이라도 내보낼 듯한 표정을 짓는다. 손님이 도착하여 주문을 넣으면 그제야 밥을 솥에 안치는 까닭이다. 손님 들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도록 만드는 독특한 경영철학이 여기를 다시 찾게 만드는 또 다른 매력이다.

0 맛있는 밥은 ‘잘살이’다. 하지만 그 밥맛의 완성을 기다릴 줄 아는 마음의 여유는 ‘참살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당장 원하는 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인스턴트시대에. 이 식당은 기다려야 함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수행 현장이다. 그 이후 마지막 뜸 들이는 과정의 시간까지도 덤 으로 고명처럼 얹어준다. 기다림 후에 나온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통하여 ‘ 잘살이’에서 ‘참살이’로 나아가는 전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비 한다면. 수업료 몇 천 원과 인내의 시간 몇 십분은 결코 비싸거나 긴 것이 아니다.

 

0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잘살이’를 ‘참살이’로 착각할 뿐만 아니라 내가 어 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모든 곳이 웰빙처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마 저 잊고 산다.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웰빙처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눈 제대로 뜨고 모든 것을 살펴보고 함께할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곳곳이 잘 살이를 의한 웰빙처요 모두가 참살이를 가르쳐 주는 스승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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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 가난

 

0 칠십을 한참 넘긴. 그래도 곱게 늙은 보살님이 어여쁜 20대 손녀에게 이 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난, 가난 해도 ‘얼굴 가난’만큼 서러운 게 없단다.”

지금도 그런대로 봐드릴 만한 얼굴이다. 젊었을 적엔 인물값 했을 것 같 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 더욱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그렇다면 현 재의 저 차분한 얼굴은 기도 수행의 결과란 말인가? 그 시절에는 성형외 과도 없었을 텐데?

 

0 이른바 얼짱시대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 ‘몸짱’까지 함께 요구된다. 그 와 중에 ‘못생긴 건 용서해도 뚱뚱한 건 용서할 수 없다.’ 는 새로운 유행어까 지 횡행한다. 하긴 그 말이 맞긴하다. 얼굴이야 부모탓이라고 할수 있지만 비만은 스스로를 관리하지 못한 자기 책임이기 때문이다.

 

0 순 임금은 키가 매우 작았지만 오늘날까지 성군 소리를 듣고 있다.

나폴레옹 콤플렉스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다.

공자는 머리통이 언덕같이 평평하게 생겨 공구(孔丘)라고 이름지었다.

혜능선사 역시 등신불을 보면 인물이 별로였고 방아를 찧을 때 몸무게가 모자라 돌을 허리춤에 찼다는 것으로 보아 덩치도 왜소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들은 신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 당하게 장식하고 있으니 범부와는 차별성을 가진다.

 

0 링컨은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타고난 부분이 있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지만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자기 분위기를 아름답게 연출해낼 수 있다. 그래서 관상학에서도 면상(面 相)보다 심상(心相)을 더 강조한다. 아름다운 마음씨와 수행으로 가꾼 투명 하고 맑은 얼굴을 어찌 말초적인 성형미인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 출가

 

0 <월간 해인>에 인기 작가 최인호의 글이 세편이나 실렸다. 그 가운데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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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출가’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글은 ‘나는 스님이 되고 싶다’ 두 번 째 글은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글들 이 실린 후 가톨릭교도로 알려진 그에게 주변에서 질문이 쏟아졌고 심지 어 여성 잡지에서는 이를 흥미롭게 여겨 기사화하려 시도했다고 한다.

 

0 그는 경허선사와 만공선사의 구도기를 그린 소설 <길 없는 길>을 쓰던 중, 어느 날 수덕사에 있는 스님의 승복을 빌려 입고 밀짚모자를 쓰고서 탐욕과 쾌락이 번쩍이는 환락의 거리 압구정동을 걸었다. 유명 소설가인 자기를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다르게 느껴졌다. 뭔가 방금 전 의 내가 아니었다. 걸음도 반듯해지고 진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환희심이 넘쳐 흘렀다.” 그러나 가정을 버리고 아내, 아이들과 헤 어질 용기가 없는 까닭에 그 꿈을 접고서 몸은 세간에 둔 채 마음만 출가 하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0 사실 출가란 어떤 경우이건 주변의 희생과 헌신이 뒤따른다. 가톨릭의 정 진석 서울 교구장도 서임 1년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하여 언급한 바 있 다. 당신이 아무리 바빠도 꼭 직접 챙기는 일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 교 구내 성직자들의 부모 장례미사를 직접 주관하는 일이다. 출가라는 것이 부모님의 헌신과 희생 위에서만 가능함을 알기 때문이다. 큰 교구를 꾸려 가는 ‘살림의 대가’ 다운 넉넉한 모습이자 참으로 어른다운 세심한 풍모다. 여법하게 빚을 갚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0 최인호씨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신(身)출가’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심 (心)출가’로 전환하도록 만들어 준 것은 경허(1846 - 1912)선사의 시였 다.

세상과 청산은 어느 것이 옳은가?

봄볕 있는 곳은 꽃 피지 않는 곳이 없구나.

 

■ 혜월선사의 경제논리

 

0 <길 없는 길>의 주인공인 경허스님은 세 명의 수제자를 두었다. 흔히 ‘삼 월’로 불리는 혜월, 수월, 월면(만공)선사가 그들이다. 그 중에서도 혜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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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가장 비경제적인 인물로 묘사해도 좋을 것 같다.

그분은 늘 뙤약볕 아래에서 얼굴이 그을리도록 논밭을 일구고 짚신을 삼 고 빗자루를 매어 내다 팔면서 소박한 일상생활 가운데 참선을 하며 살았 다. 그러다가 부산 선암사 주지의 소임을 맡게 되었다. 주지는 ‘경제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 자리다. 그 절 재산을 늘리든지, 하다못해 현상 유지라 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의욕적으로 산을 개간하기로 했다. 개간 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았다. 하지만 여러 달 만에 겨우 세 마지기를 개간하는 데 그쳤다. 다섯 마지기를 팔았으면 최하 여섯 마지기 이상으로 늘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일꾼들이 일하다가 게으름이 나면 스님께 법문을 해달라고 졸랐고 그러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법문을 들려 주었기 때문이다.

 

0 가난한 절 살림에 보탬이 되게 하기 위하여 벌인 개간 사업이 결과적으로 사찰의 재산을 축낸 꼴이 되어 함께 살던 스님들의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 니었다. 그러자 혜월스님이 호통을 쳤다.

“이 소견머리 없는 놈들아! 논 다섯 마지기가 어디 갔느냐? 누가 농사를 짓든 간에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가 더 늘어 났지 않느 냐?”

0 불교의 경제 논리는 ‘네 것’과 ‘내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일꾼들 에게 법문을 들려주어 그들의 ‘마음밭’을 일구는 데 일조했다면 설령 논이 두어 마지기 줄었더라도 별로 괘념치 않는다. 너와 나의 분별이 없기 때문 에 소아적 이해타산이 없고 온 인류가 한 가족을 이룬다는 세계관 위에서 모든 걸 전체적으로 계산하는 ‘신 경제 이론’인 셈이다.

 

■ 열반의 의미

 

0 열반(涅槃)은 니르바나(nirvana)라는 인도 말을 번역한 말이다. 의미가 아 니라 소리만 빌려 번역한 것이다. 물론 중국에는 열반이란 말을 대신할 만 한 단어가 없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냈다. 굳이 번역한다면 적멸 또는 해 탈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도 열반의 의미를 다 담아내지 못한 탓에 이 제는 오히려 열반이란 말이 더 익숙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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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의 사전적 의미는 ‘불어서 끄다’다 물론 여기에는 ‘불어서 꺼진 상태’도 포함된다 타오르는 번뇌의 불을 끈다는 것, 즉 마음의 번뇌가 사 라진 상태를 말한다.

좀 복잡하긴 하지만 <잡아함경>제18에서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열반 이란 탐욕이 영원히 다한 것이며, 성냄과 어리석음 그리고 일체의 모든 번 뇌가 다 사라진 것이다.”

 

0 열반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의미로 재해석되 어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한결같이 전제되고 있는 것은 ‘최고 최후의 완 성’이라는 의미다. 삶과 죽음에서도 자유롭고 마음과 몸에서도 자유로우며 그렇기 때문에 생사에 집착하지 않고 정신과 물질에 걸리지 않는 대자유 의 상태가 바로 열반인 것이다.

 

■ 떠남이라고 하는 것은

 

0 이제 시간과 여유만 있으면 모두 떠나고 싶어 한다. 농경민족인줄 알았고 또 그렇게 믿어 왔는데 유목민의 후예라고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 라.!’는 광고 카피에서 앞의 구절은 유목민의 떠남을 말한다. 참으로 절묘 한 언어 조합으로 두 유전인자를 모두 만족시키는지라 누구나 고개를 끄 덕이는 이 시대의 명언이 되어버렸다.

 

0 유목민족의 역마살은 여전히 농경민족의 고정성과 함께 하고 있다. 여행가 방 안의 고추장 정도는 봐줄 만하다. 하지만 햇반과 컵라면 전용 가방이 있을 정도면 이건 여행의 반을 포기한 것이다. 심지어 전기 밥솥과 쌀, 누 룽지 그리고 밑반찬까지 준비한다면 이건 떠남의 전부를 포기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만 떠남이지 자기 자리에 안주하는 농경생활의 연장이기 때 문이다.

 

0 우리나라의 여행객들은 바이칼호 인근 주민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 는 일이 잦다. 세계적인 보드카를 옆에 두고서 종이팩 소주를 마시고 청정 일급수인 바이칼 호의 물을 놔두고 ‘한국형 생수’를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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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떠남이란 지역 이동, 계층 이동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바라문(최고계 급)에서 수드라(최하계급)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떠남이 란 끊임없는 자기변신이다.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세계화 속에서 다시금 유목민의 근성이 나오면서 이즈음은 ‘도시 유목민’이란 표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수시 이동과 수시 변신만이 경쟁력인 시대가 되었다. 그야말로 제행무상 제법무아인 연기(緣起)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0 칭기즈칸의 참모로서 몽골제국의 명장으로 알려진 돈유쿠크 장군은 유목 민의 후예들에게 오늘날도 이렇게 외치고 있다.

“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나,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는 살아 남을 것이다.”

 

■ 억수가 쏟아져도

 

0 “억수가 쏟아져도 잘못 놓인 그릇에는 물이 담길 수 없고, 가랑비가 내려 도 제대로 놓인 주발에는 물이 고인다.”는 말은 ‘계(戒)는 법(法)을 담는 그릇’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 겨울 그리고 봄

 

0 섣달그믐이라 마당의 비질은 평상시와 반대로 하였다. 즉 대문 쪽에서 집 안으로 쓸면서 들어왔다. 복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바람을 행동으 로 표현한 옛 어른들의 지혜를 본받기 위함이었다. 그러고 나서 방과 부 엌, 헛간 등 집 안 곳곳에 불을 밝혔다. 한 해가 바뀌는 것을 지켜본다는 수세(守歲)의 세시풍습을 이어가기 위한, 어찌 보면 또 다른 역사적 계승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경청선사가 말한 ‘정월 초하룻 날 아침에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다’는 덕담으로 한 해를 열고 싶은 내 개인적 기원이기도 했다.

 

0 겨울이 없다면 봄의 귀함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보리는 춘화(春化)

처리를 하지 않으면 싹이 돋지 않는다고 한다. 얼리는 것을 춘화라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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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이름을 붙여 놓은 것 같다.

사실 추위라고 하는 것은 더위가 모자라는 것일 뿐이다. 어둠은 밝음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고구마는 가을에 거두어들이면 열매이지만 봄이 되어 밭으로 나가면 씨앗이 된다. 열매이면서 동시에 씨앗인 것이다. 씨앗속에 열매가 포함되어 있고 열매 속에 씨앗이 들어 있다. 마찬가지로 겨울 속에 봄이 내재되어 있고 어둠 속에는 이미 밝음이 들어 있다.

 

0 모진 겨울이 길다고는 하지만 때가 되면 부드러운 봄기운에 밀리기 마련 이다. 하지만 그 봄 역시 항상 봄일 수만은 없다. 그래서 당나라 때 지현 후각선사는 이런 시를 남겼나 보다.

꽃 피니 가지 가득 붉은 색이요

꽃 지니 가지마다 허공이네

꽃 한 송이 가지 끝에 남아 있지만

내일이면 바람따라 어디론지 가리라.

 

■ 방외지사의 멋

 

0 고려 말엽 송광사에 머물고 있던 진각혜심선사는 참으로 멋을 아는 차인 이었다. 오늘같이 눈이 가득 내린 날 인적마저 완전히 끊어진 암자에서 화 로에 불을 붙이고 소반 가득 눈을 담아와 그 녹인 물로 차를 끓였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솔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마시는 차 한 잔 에 세속 바깥의 멋을 혼자서 음미하곤 했다. 그야말로 방외지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

 

0 섣달에 내린 눈을 녹인 물은 납설수라고 부른다. 눈을 녹여 차를 끓여 마 시는 그런 낭만은 이제 강원도 첩첩 골짜기라 해도 공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어려울 것 같다. 제대로 끓이지 못한 물을 맹탕이라고 부른다. 그래 서 사람도 설익은 놈을 맹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0 예로부터 차를 제대로 마시고자 하는 사람은 좋은 물과 차를 얻는 데 시 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그것도 또 하나의 번뇌이긴 하지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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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테면 번뇌로 번뇌를 제거한다고나 할까. 덧붙여 차의 나뭇가지가 가늘고 작다고 할지라도 열매가 맺힌다는 의미인 ‘명가유실리(茗柯有實理)’ 는 설 사 외형이 허술할지라도 그 내면은 충실해야만 하는 이즈음 세태에 가장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명언으로 제격이다.

 

■ 짚신스님

 

0 중국 당나라 때의 진종숙이라는 스님은 도인으로 명성이 자자한데도 절에 서 살지 않았다. 큰 절에 있으면 엄청난 예우를 받을 수 있음에도 다 허물 어져가는 집에서 작업복 같은 허름한 승복을 입고 짚신을 삼으면서 생계 를 이어갔다. 그리고 여분의 짚신은 대문 앞에 걸어 놓고 오가는 길손들에 게 그냥 나누어 주었다.

 

0 그렇게 사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대접을 받는 것 자체가 빚이라고 생각 한 것이다. 그는 젊었을 때 절강성 용흥사라는 절에서 일천 여 명의 대중 을 거느리고 호령하면서 산 적도 있었다. 그때도 숨어서 짚신을 삼아 대중 에게 몰래 나누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모든 걸 버리고 숨어 살면서 입에 풀칠할 정도가 되면 나머지 짚신은 남들에게 그냥 주었다. 말 그대로 적선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짚신스님’이라고 불렀다.

 

0 아무리 감추어도 사향의 향기는 퍼지기 마련이고 호주머니의 송곳은 삐어 져 나오기 마련이다. 후배 승려들이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아 왔다. 하지만 그는 전부 문 앞에서 쫓아버렸다. 젊었을 때처럼 대중을 또 모을 수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

 

0 눈에 보이는 것만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대접받는 것을 빚이 라 생각하여 받지 않는 것, 짚신을 삼으면서 정신을 한 곳으로 모아 삼매 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문화의 가치창출이다. 스님 에게 짚신을 만드는 행위란 단순한 호구지책이 아니라 수행을 위한 방법 론이었다.

 

■ 출가와 가출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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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행자 몇 명에게 파적(破寂)삼아 한마디 던졌다.

“출가와 가출의 차이가 무엇일까?”

행자들의 반응은 뒤죽박죽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다.

“출가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집을 나오는 것이고, 가출은 집을 나 오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출가는 허락을 받고 나온 것이고, 가출은 허락없이 나온 것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허락받고 나오셨나요? 정주영은 현대가를 이루었지만 자 서전에는 어릴 때 소 한 마리를 몰고 가출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시집가는 것을 왜 출가라고 합니까?”

 

이번에는 스님들이 모인 지대방에서 누군가가 ‘출가와 가출’을 화두로 던 졌다. 순간 느슨하던 방 분위기에 갑자기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응! 그거 간단해. 가출한 사람은 입산할 때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하 고 출가한 사람은 그냥 들어와도 돼.”

그만 폭소가 터지고 왁자지껄 야단이 났다.

예전에 해인사로 출가 했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매표소 거사님이 버스에 올라 차안을 한 번 훑어보고는 첫 자리부터 입장료를 순서대로 거두기 시 작했다. 그런데 내 앞에 와서는 힐끗 보더니 그냥 다음 자리로 건너 갔다. 하긴 ‘한 식구 되려고 온 사람’ 정도는 알아볼 수 있어야 수문장으로서 자 격이 있는 게지. 그 비장하고 심각한 순간에 입장료 몇 푼 때문에 “출가하 려고 왔는데요”라고 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해 보니 그만 피식 웃음 이 나왔다.

 

0 출가나 가출이나 집을 나오는 것은 똑 같다. 하지만 부처님께서 집을 나온 3월 13일(음력 2월 8일)을 ‘가출일’이라 하지 않고 ‘출가일’이라고 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0 설사 시작이 가출일지라도 다시 발심한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출가로 바 뀌는 것이다. 일주문 밖에서 발심을 하든지 일주문 안에서 발심을 하든지 간에 시간상으로 전후가 있을 뿐이지 가치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결국 ‘다시 발심했는가?’ 여부에 따라서 가출과 출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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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의 출가가 참으로 영원한 출가가 되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고 점검해서 나날이 발심해야 할 것이다. 우바리존자가 당부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똑똑히 구별하면서 가야만 할 길을 가는” 그런 일상 이 될 때. 먼 훗날 우리에게도 출삼계가 출윤회가라는 이름이 붙여질 것이 다.

 

■ 무문관 결사

 

0 부처님 당시 우기를 피하기 위하여 석 달 하안거 제도가 생겼고 중국의 총림에서는 추위 때문에 동안거가 추가 되었다. 현재 조계종은 일년의 절 반은 해제요, 절반은 안거다. 하지만 해제와 안거는 둘이 아니다. 안거는 정주하면서 정진하는 것이고 해제는 만행하면서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 다. 이는 수행과 교화가 둘이 아님을 전제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한 철 단 위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용맹정진파에서는 결제(結制)보다 한 단계 더 강화된 결사(結社)도 흔히 있었다.

 

0 제대로 된 무문관이라고 한다면 자급자족이 전제 되어야 명실상부한 무문 관이 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무문관도 공동체가 되어야만 한다. ‘남의 힘으로 내 공부 하겠다.’는 생각이 눈곱만치라도 있다면 이는 무문관 본래 정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것이다.

 

■ 제 일의 불사는 사람 불사

 

0 절집에는 ‘제자 하나 두면 지옥 하나 늘어난다’는 말이 전해 온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를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옥 하나 를 등에 지면서도 사람을 거두었고 또 제대로 다듬어서 절집과 불법을 이 어가게 하였다. 제자를 받으려면 논 몇 마지기를 주어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도 얼마 전까지 이어져 온 절집 풍습이다.

 

0 제도나 조직이야 인위적인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제 도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그 중심에는 대중의 신망을 받는 선지식이 늘 구심 역할을 해왔다. 현장법사나 구마라집법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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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따뜻했고 또 대중을 감싸 안는 포용력이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 래서 많은 제자를 거둘 수 있었다.

그들은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않고 사람이 너무 맑으면 따 르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직이나 제도를 만드는 것도 사람이고 운용하고 이끌어 나가는 것도 사람이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일이다. 인재 확보는 모든 일의 승패를 좌우하는 제1의 요소 다. 결국 사람을 아끼고 가꾸고 키우는 일이 모든 불사의 처음이자 마지막 이다.

 

■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리고 두 줄기의 눈물

 

0 산호베개 위를 흐르는 두 줄기의 눈물이여!

한 줄기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이요.

한 줄기는 그대를 원망하는 것이라.

< 송 나라 때 만암치유선사 >

 

0 수절하는 과수댁의 마음을 읊은 것 같기도 하고, 실연당한 남정네의 연시 같기도 하다. 사랑과 미움이란 동시 교차하기 마련이다. 애(愛)와 증(憎)은 동전의 양면처럼 둘이 아니다. 흔히 가장 비참한 사람은 미움 받는 것이 아니라 잊힌 경우라고 한다. 고전적인 의미의 미움은 언젠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의 여지를 담고 있다는 한계를 가진다. 반면에 잊힘이란 완전히 한 사 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을 말한다.

 

0 깨친 성인을 임으로 여기며 혼자 사는 수행자들에게 불조(佛祖)는 존경의 대상이지만, 때로는 잠시나마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수도생활이 만 족스러울 때에는 ‘부처님 따따봉’이지만 365일 늘 그럴 수 만은 없기 때문 이다. 애초에 제가 생긴대로 살도록 내버려 둘 일이지 괜히 세상에 출현하 시어 ‘너도 부처인데 왜 중생 놀음을 하고 있느냐’는 일갈에‘ 나도 부처되 리라’ 다짐하며 수많은 이들이 집을 나왔다.

 

0 수행길이 만만찮은 일이라 이미 닦여 있는 그 길마저 제대로 찾아가지 못 하는 자신이 오히려 원망스러워 질 때, 역으로 당신을 그리워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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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수행자의 마음을 만암치유선사는 각각 성분이 다른 두 줄기의 눈물 로써 참회함과 동시에 우러러 추앙했던 것이다.

 

■ 장외인간과 방외지사

 

0 얼마 전에는 방외지사(方外之士)라는 책과 장외인간(場外人間)이란 소설이 내용은 그만두고라도 그 제목이 주는 공통된 메시지가 더없이 시선을 끌 어 당겼다. 그래서 서평도 열심히 읽고 광고문도 끝까지 통독했다.

방외지사의 가장 큰 매력은 현장의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날 수 밖에 없다.

0 방외지사를 제대로 표현한 말은 ‘축성여석(築城餘石)’일 것이다. 성을 쌓고 도 남은 돌이라는 뜻이다. 사실 성을 쌓자면 큰 돌은 큰 돌대로 작은 돌은 작은 돌대로 모두 쓰임새가 있다. 하지만 다 쌓고 난 다음 남는 돌이 있기 마련이다. 해방 이후 한국 불교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선지식들이 나이가 들자 소일거리 삼아 이야기나 나누면서 지내고자 몇 번 모이다 보니 자연 스럽게 모임이 만들어 졌다. 이 모임의 이름이 바로 ‘남은 돌’이다. 모두 뒷방으로 그리고 승단마저 떠나 진짜 장외 인간의 안목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남은 돌’이라는 한 마디에서 묻어난다.

 

■ 연등

 

0 고대 그리스의 철헉자 디오게네스는 한낮에도 “어둡구나!” 하면서 등불을 들고 다녔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참으로 밝혀야 하는 자기 내면세계의 반 조(返照)에 게을리 한 채 외형적인 것만 추구하고 바깥으로만 치닫는 풍토 를 경계하는 대중을 향한 선지자의 연민이기도 하다.

등불은 자기를 태워서 주변을 밝힌다. 이는 희생과 봉사의 뜻이다. 등불 은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어 준다. 이는 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밝혀 가 라는 뜻이다.

 

0 참 등불은 믿음을 심지로 산고 자비로 기름을 삼으며 생각으로 용기(容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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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삼는다. 그 빛으로 부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명예에 집착하는 어리석음 과 이웃에 대한 무관심을 되돌아보라는 메시지를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에 게 전해준다.

올해도 내몫의 연등을 켜면서 이렇게 발원해본다.

이정성 다하여 연등을 올리오니

온 누리를 두루 밝게 비추게 하소서.

나 이제 스스로 등불이 되게 하여

모든이의 어둔 맘이 밝아지게 하소서.

 

■ 이율배반

 

0 만동자라는 이름을 가진 호기심 많은 제자가 부처님께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했다.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하는 시간적 한계에 관한 문제. “세계는 끝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 공간적 한계에 관한 문제. “목 숨과 몸은 같은가, 다른가?” 하는 영혼과 육체에 관한 문제 등이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우리의 인식 영역 밖의 문제를 인식 영역 안으로 억지로 끌어들인 방법론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무기(無記:판단 자체를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로 일관했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은 “독화살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독화살을 분석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며 수 행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태도라고 꾸짖었다. 이런 대립된, 그러면서도 해결할 수 없는 명제를 우리는 이율배반이라고 부른다.

 

0 두 선객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개울물이 불어났다. 바 지를 올리고 물을 건너려는데 한 여인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한 선 객은 ‘여자와 신체 접촉을 하지 말라’는 계율에 충실하기 위해 그냥 모른 체하고 물을 건넜다. 다른 한 선객은 그 여인을 업고 개울을 건넜다. 한참 길을 가다가 혼자 건넌 선객이 말했다.

“상황이 설사 그러하더라도 어찌 수행자가 여인을 업는단 말이오.”

근본율의 형식주의 입장에서 그 허물을 꾸짖었다. 그러자 그 선객은 심지 계의 입장에서 오히려 상대방이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난 아까 이미 여인을 등에서 내려 놓았는데 그대는 아직도 업고 있구 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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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백월산 동쪽 골짜기에는 노힐부득이, 북쪽에는 달달박박이 토굴을 만들어 수행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젊은 낭자가 달달박박의 토굴을 찾아와 자고 가기를 청했다.

 

갈길은 먼데 날은 저물어 모든 산이 어둡고

길은 막히고 마을은 멀어 인가도 아득하네

오늘은 이 암자에서 자려 하노니

자비로운 스님은 노하지 마소서.

 

0 달달박박은 계율에 충실하고자 그 여인을 보내고 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 나 노힐부득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날이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접할 수 있겠소’ 하고 그녀를 토굴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밤새 고요히 염불을 했다.

0 근본율의 입장에 충실할 것인가. 심지계의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 하는 것 은 수행자 개개인의 결정 영역이다. 제대로 된 안목과 율장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어떤 태도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자연스럽게 형식이 필요한 상 황에서는 근본율로 나아갈 것이며, 마음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심지계로 나 아갈 것이다. 심지계에 충실했던 노힐부득은 미륵불이 되고, 근본율에 충 실했던 달달박박 역시 무량수불이 되어 모두 성불했다는 결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 위치에 따라

 

0 하동 땅 화개장터는 섬진강을 낀 영남과 호남의 경계점인지라 양쪽 사투 리가 스스럼없이 사용되고 또 으레 다 알아 듣는 곳이다. 모르긴 해도 압 록강변의 신의주 사람들은 중국말 몇 마디쯤은 수월하게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같은 지역을 특수성은 경전 번역 과정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맨 처음 경전을 한문으로 바꾼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서역 출신의 스 님들이었다. 서역 땅은 인도와 중국의 중간에 자리하여 양대 문명의 교차 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활발한 무역 통로로서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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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일찍부터 언어 감각이 발달할 수 있 는 환경 요인이 갖추어져 자연스럽게 인도말과 중국말을 동시에 익힐 수 있었다.

 

0 양나라 때 승우가 편찬한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은 경전 번역의 연기(緣 起), 목록, 발문, 번역한 사람의 전기 등을 수록하고 있다. 역경사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은 경론 목록집으로는 최고의 권위서이 기도 하다.

그 내용 가운데 초창기 경전 번역자들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축마등, 안세고, 축불삭, 지루가참, 지요, 엄불조, 안현, 강맹상 등 여덟명이 보인 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름 앞에 쓰인 성씨인 축(竺 : 천축), 안(安 : 안식 국), 지(支 : 대월지국), 강(康 : 강거국) 등은 출신 지방을 나타내고 천축 을 제외하면 대부분 파미르 고원 서쪽에 있는 작은 나라들이었다. 다시 말 하면 처음에 불경을 번역한 사람들은 중국인이 아니라 대부분 서역인인 것이다.

 

■ 부정과 긍정

 

0 눈앞에 나타난 어떤 현상의 비침에 대한 반응은 개개인의 체험세계와 인 식구조에 의하여 결정되기 마련이다. 모자장수는 그 사람이 쓰고 있는 모 자의 종류와 가격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할 것이며 장서가는 그 도서관의 장서의 양과 질 그리고 분류 상태를 보고 판단할 것이다.

한 개인의 내면세계 역시 그가 살아온 환경과 추구하는 가치관 등이 어 우러져 모든 걸 나름대로 결정짓기 마련이다. 배가 고팠을 때 맨밥 한 그 릇에 대한 생각과 배부를 때 찰밥 한 그릇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0 부정적으로 살거나 긍정적으로 살거나 그건 개개인의 고유 권한이다. 사실 한 개인 속에는 부정적 가치관과 긍정적 가치관이 공존한다. 다만 자기 취 향에 따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보기도 할 뿐이다. 문제는 부정적 시각보다 긍정적 시각이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이 다. 흔히 비판이라는 이름을 빌려 부정적 사고를 스스로 좋게 합리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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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적지 않다.

긍정적 사고를 하기 위해선 무지무지한 개인적 수행을 필요로 한다는 사 실을 알아야 한다. 부정적 사고보다 긍정적 사고가 훨씬 높은 정신적 차원 을 갖고 있다. 긍정적인 것과 무의식은 다르다. 긍정적 사고를 무의식으로 간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부정적 사고의 한 편린일 뿐이다.

 

0 중국 선불교의 육조혜능선사가 계를 받기 전 초라한 몰골로 법성사라는 절에 들르게 되었다. 그때 마침 두 젊은 스님이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을 보고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스님은 ‘깃발이 흔들린다’고 주장하고 다른 스님은 ‘바람이 흔들린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서로 자기의 주장에 동조해 달라고 이야기 했다. 혜능은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흔들리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두 스님의 마음이 흔들릴 뿐입니다.”

두 스님은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명판결임을 인정하고 논쟁을 중 지했다.

 

0 정신도 가꾸고 길들이기 나름이다. 부정적으로 길들이고 가꾸면 부정적으 로 길들여질 수밖에 없고, 긍정적으로 길들이고 가꾸어 나가면 긍정적으로 길러질 수밖에 없다. 낙관적인 가치관은 낙천적인 삶을 낳기 마련이다. 부 정적 가치관은 비관적 삶을 만들기 마련이다. 부정적인 삶보다는 긍정적 인 삶이 더 불교적이다. 부정적 사고는 정신을 황폐화시켜 아름다운 꽃을 자라지 못하게 한다. 늘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스스로 마 음을 훈련시키자.

 

■ 도시 유목민

 

0 또 짐을 쌌다. 옮겨 다니는 것에 익숙할 수밖에 없는 승려인데도 이사는 준비과정 그 자체가 또 다른 번뇌다. 그동안 머물던 처소가 조계사 시민선 원 증축 부지에 편입되는 바람에 헐리게 되었다. 그동안 최소한의 생활도 구만 갖추고 산 덕에 옮길 짐은 비교적 단출했다.

 

0 <월간 해인>에 오랫동안 영상을 기고하고 있는 사진작가 이일섭씨는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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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소개할 때 늘 ‘도시 유목민’이라고 한다. 그 말 한 마디에 그의 삶이 그 대로 묻어남을 알 수 있다. 작품과 이름을 지면으로만 보다가 어느 해 연 말 송년회 자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인상적인 것은 헤어스타일이 나처 럼 까까머리라는 점이었다. 그는 참석한 스님이 몇 명 되는지라 인사할 때 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다. 임의로 출가자 머리 모양을 흉내 낸 것에 대한 사과로 들렸다. 사과할 일도 아니지만 그는 출가자들의 숫자와 위세 에 밀려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뒤 그의 프로필에 ‘인왕산 밑에 집 한 채를 장만하여 만족하게 살고 있다’는 내용이 더해진 것을 본 뒤에는 내가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다시 ‘요즈음 미국에 있다’는 내용이 추 가되었다. 그가 천생 유목민의 피와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었다. 머묾 자체가 그에게는 따분함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떠남은 스트레스이지만 동시에 신선함을 준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늘 떠남을 실 천하고 있는 ‘재가의 운수납자’다.

 

0 부처님은 삼시전(三時殿)에서 사셨다. 여름과 겨울 그리고 봄,가을에 사는 집이 달랐다. 하지만 모두 버리고 천하는 내 집 삼아 평생 떠돌아 다녔다. 그야말로 길에서 살다가 길에서 열반에 드셨다. “한 나무 그늘 밑에 삼 일 이상 머물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살고 있는 자리에 대한 애착을 경계하신 말씀이다. 동네 강아지도 자기 집 대문 앞에서는 크게 짖고, 운 동경기 역시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있기 마련이며, 노점상도 자릿세가 있고 어지간한 가게는 모두 권리금이라는 이름으로 텃세를 부리는 것은 이 세 상의 자연스런 이치다. 자리를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점거한 사람이 누리 는 권리인 셈이다. 하긴 공찰도 몇 번 주지를 재임하고 나면 개인 절처럼 되어버리는 경우 역시 이와 별로 다를 바 없다고 하겠다.

 

0 선가(禪家)에서는 ‘사바세계는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운수행각 그 자체가 일상사인 것이지 따로 ‘머물 자리’라는 고정 된 개념을 세우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다만 그저 머무는 기간의 차이만을 인정했을 뿐이다. 결제는 한 철 동안의 머묾이고, 주지는 한 만 기 동안의 머묾일 뿐이며 인생 역시 몇 십 년 기한의 스처감일 뿐이다.

 

■ 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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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진묵(1562-1633)선사는 서산, 사명대사를 권승(權僧) 내지 명리승(名利 僧)이라며 거침없이 질타했다. 임진왜란이라는 시대적 불가피성을 십분 인 정하더라도 수행승으로서 정도를 이탈한 부분만큼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 기 때문이다.

 

0 서산, 사명대사 이전에 고려시대의 묘청, 신돈스님 등도 ‘정치승’으로 분류 할 수 있다. 묘청은 단재 신채호로부터 ‘자주진보’의 상징으로 평가 받았 고. 사대주의자 김부식과 경쟁관계에 있던 정지상은 그를 성인 이라고 불 렀다. 공민왕을 도와 전민변전도감을 설치하는 등 당시 개혁을 이끌었던 신돈 역시 말년은 깔끔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와 더불어 고려 왕조도 쇠망의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두 스님의 역사적 평가가 후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인 특유의 ‘이상론’에 근거한 비현실적인 정치행위가 결국 실패로 끝남에 따라 그 부담이 고스란히 나라와 백성에게 돌아간 까닭이다.

 

0 조선 건국의 주역인 이성계의 정신적 스승인 무학대사는 ‘영원한 조언자’ 로 남은 덕분에 역사가들로부터 호평은 아니더라도 혹평은 피할 수 있었 다. 정치인이 어리석다고 해서 조언자가 직접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다면 그건 더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할 수 있어도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종교인의 정치 행위는 후자에 속 한다.

 

0 현재 정치권 언저리에서 ‘오버’하면서 ‘망국의 예비 행위’인 신권 정치를 외치는 종교인은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가 본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 종교와 정치를 분리 시킬 수 없다’ 거나 ‘정당도 목회 현장’이라는 사견 내 지 사설을 늘어 놓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아마추어요, 종교적으로는 천마외 도(天魔外道)와 다름없다. 정치 현장에 펄럭이는 회색 장삼자락 또한 어울 리지 않긴 마찬가지다.

 

0 사명대사의 열반지인 해인사 홍제암의 주련은 ‘정치승’의 또 다른 참회록 이라 할 수 있다. 사명대사는 “잠깐 동안 청치를 한 것은 임금님의 명령을 어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고, 벼슬을 팽개치고 한밤중에 산으로 도망쳐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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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않기 위함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후세 종교인들은 스승인 부처님, 하느님을 잘 모시고 가야 할 길만 가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

 

0 이제 사람들은 어둠까지 낮으로 만들어서 사용해야 할 만큼 분주해졌다. 아니, 밤낮이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밤 이 거꾸로 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도심에 사는 나 역시 세간의 삶과 흐름을 함께하다 보니 이 늦은 시간에 돌아와 산문을 두드리게 된다.

 

0 당일로 장거리 볼일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더러 새벽 세시에 방에 도착하는 날도 있다. 이때는 ‘늦게 들어 온’ 것이 된다. 먼 나들이를 위해 새벽 세시 에 일주문을 나서면 ‘일찍’ 나온 것이다. 같은 세 시인데도 낮에 기준을 두 느냐, 밤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을 하게 된다. 새벽을 전 날 밤의 연장으로 보느냐. 오늘 낮의 시작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아침은 다르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0 요즘은 이른바 우리의 본래 라이프스타일인 ‘아침형 인간’이 다시 주목받 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논밭으로 김을 매러 나가던 시절에는 아침밥을 많이 먹었다. 저녁에는 일찍 자기 때문에 가볍게 때웠다. <능엄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새벽에는 신선들이, 오전에는 사람들이, 오후에는 짐승들이, 밤에는 귀신 들이 먹는 시간이다. ”

예전에는 신선처럼 아침밥을 그릇 가득 넘치도록 높게 담았다. 그런데 이 즈음은 짐승처럼 해가 진 이후에 고칼로리의 먹을거리를 많이 접하게 된 다. 결국 저녁과 밤에 활동량이 많아지니 비만과 고혈압 등 성인병이 우리 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0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 는 서양의 격언이 있다. 아침 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려면 저녁에 일찍 자야만 한다. 그러려면 자연 스럽게 저녁에 불필요한 일정을 만들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저절로 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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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삶을 살게 된다. 자연 주기의 시간 흐름에 역행하는 삶은 쉬이 지치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더 부지런한 사람은 ‘아침형 인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새벽형 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 이다.

 

0 생활습관을 갑자기 바꾼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명징하고 또렷 한 의식으로 깨어 있는 새벽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줄 것 이다.

 

■ 차에서 미륵을 만나니

 

0 화려함은 옛날에도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신라시대의 경흥국사는 대궐 에 들어갈 때마다 화려하게 치장한 말을 탔고 차림 또한 그에 못지 않아 가던 행인들이 절로 길을 비킬 정도였다. 하루는 국사 앞에 초라한 행색의 승려가 광주리에 마른 생선을 지고 앉아 있었다. 승복에 생선을 지고 있는 것이 눈에 거슬린 국사는 “부정한 물건을 지고 있다”며 호통을 쳤다. 그러 자 “살아 있는 고기(말)를 두 다리에 끼고 있는 것보다 죽은 고기를 메고 있는 게 더 싫단 말입니까?” 대꾸하고는 사라져버렸다. 알고 보니 그는 문 수보살의 화현이었다. 이에 국사는 크게 느낀 바가 있어 다시는 말을 타지 않았다.

 

0 위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경흥우성(경흥국사가 성인을 만나다)’ 편은 미륵보살이 “나는 말세에 염부제에 태어나 먼저 석가의 말법제자들 을 제도할 것이다. 그러나 다만 말을 타는 비구만을 제외시켜서 그들로 하 여금 아예 부처님을 보지 못하게 할 것이다.”라는 게송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다.

 

0 차를 타는 게 허물인 시대에 살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종교인이 보험 기피자로 분류된다든지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웃도는 고급차로 세간의 눈 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면 율장 정신에 크게 어긋난다. 경흥 스님에게 화현 했던 그 문수보살이 오늘의 비구들에게 나타난다면 어떻게 대할는지 참으

로 궁굼하다. 그리고 미륵보살은 이렇게 말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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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나는 말세에 해동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말법제자들을 제도할 것이다. 그 러나 지나치게 과속하는 차, 또는 필요 이상의 사치를 부린 차를 탄 승려 들은 제외하겠노라.”

 

■ 새아침의 문을 열며

 

0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이름 붙이고 의미 달기를 좋아한다. 시간도 마찬가지 다. 새해니 묵은해니 하면서 이름을 붙이고 애써 거기에다가 의미를 부여 한다. 이건 생각이란 놈의 장난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참으로 사 려 깊은 지혜로운 일이기도 하다.

 

0 그래서 ‘하루’라고 이름 붙이고 ‘한 달’이라고 이름 붙이고 ‘한 철’이라고 이름 붙이고 ‘일 년’이라고 이름을 다는 것이겠지.

흐르기만 하는 긴 시간을 나름대로 토막 내고 이름 붙이고 의미를 부여 한다.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모든 것을 나날이 새롭게 느끼고 맞이하고 또 스스로를 다지고 추스르고 되돌아보기 위함이다. 그래서 공자는 “하루 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으며 평생의 계획은 젊을 때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송년회를 하면서 한 해를 반성하고 새해 계획을 거창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이다.

 

0 여기에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시간의 주관성 문제이다. 시간이 너무 잘 가면 ‘흐르는 화살 같다’고 하고 시간이 지겨우면 ‘하루가 삼 년 같다’고 한다. 똑 같은 길이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빠르 게 혹은 느리게 느끼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밀하 게 말하면 과거와 미래는 생각 속에만 있는 것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만이 있을 뿐. 현재라는 이름의 찰나의 시간 연결 속에서 순간순간 최 선을 다하는 삶이 될 때 저절로 과거와 미래는 빛난다.

 

0 그 사람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그 사람의 현재를 보면 된다. 그 사람의 미 래를 알고 싶어도 그 사람의 현재를 보면 된다. 과거의 결과가 현재이며 현재의 결과가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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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순간순간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이니 내일이니 금년이니 내년이니 하면서 시간을 자를 일도 없다. 조선시대 학명스님이 남긴 시다.

 

묵은해니 새해니 분별하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하지만

보게나! 저 하늘이 무엇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속에 사네.

 

■ 담마기금(擔麻棄金)

 

0 깊은 산골에서 삼 농사를 짓는 두 농부가 일 년동안 농사 지은 삼 껍질을 지고 장에 가는 길이었다. 땀을 훔치며 힘겹게 가던 도중 길 언저리에서 금 몇 덩어리를 발견했다. 농부는 지금까지 지고 온 삼 껍질이 아까워 삼 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금덩어리를 그냥 두고 장으로 갔다.

0 삼은 돈을 사기 위한 방편이지 삼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렇게 앞 뒤가 바뀌어버린 어리석음을 불교에서는 담마기금 즉 ‘삼 때문에 금을 포 기한다’ 고 말한다. 기존에 내가 해 오던 일이나 추구해온 가치관이 문제 가 있거나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도 어리석음, 자존심, 기득권 혹 은 명예심 때문에 끝까지 고집하고 우기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0 경은 한 줄, 한 구절을 음미하면서 가만가만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래서 청매조사는 “마음에 비추어 보지 않으면 경을 읽어도 아무 이익이 없다” 고 했고. 일연스님은 “경을 번역한 사람이나 그 시일과 장소가 없다고 해 서 이 경이 의심스럽다고 한다면 이 또한 삼을 취하기 위하여 금을 버리 는 격이라”라고 삼국유사에서 말했다.

 

■ 어찌 귀만 소중히 생각하고 눈은 가벼이 여기는가

 

0 이고가 낭주자사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사관으로 국사 편찬에 종 사할 만큼 글에는 대가였다. 부임한 고을에 약산유엄(751-834)이라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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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불렀으나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 화가 났지만 불 교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어느 날 그를 찾아갔다.

 

0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렇게 도도한가 싶어 가까이 가서 보니 아무것도 없 어 보이는 꾀죄죄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이고는 화도 나고 어이도 없고 해 서 한 마디 툭 던졌다.

“얼굴을 보는 것이 이름을 듣는 것만 못하구나.”

그제야 대사는 고개를 들고 이고를 바라보면서 지나가듯 대꾸했다.

“그대는 어째서 귀만 중요하게 여기고 눈은 천하게 여기는가.”

심오한 법문을 줄줄이 늘어놓아봐야 이 상태에서 무슨 소리가 귀에 들어 가랴. 먼저 이상을 없애고 자기 마음을 비우게 하는 일이 선결 문제인데.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끝내버리는 도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태수는 두 손을 모으고 정색하고는 가르침을 청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진작 그렇게 나올 일이지. 너무 당연한 한 마디.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세숫대야 안에 있다.”

 

■ 출가는 세간과의 단절

 

0 출가한 지 이태쯤 되었을 무렵이다. 속가에서 기별이 왔다. 긴한 일도 있 고 하니 한 번 다녀갔으면 한다고. 사실 장남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부담감 이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던 터라 어쩔까 하고 망설였다. 그건 ‘출 가자’라는 명분과 세간적인 정감이 교차되었기 때문이다.

 

0 그때 마침 율주이신 일타 큰스님의 말씀이 있는 날이라 대담이 끝날 무렵 넌지시 여쭈었다. 그러자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아무개 스님께서 집에서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래서 필 요한 것들을 대충 챙겨 길을 나섰지. 마을 어귀에 이르러서 목탁을 꺼내 ‘ 나무아미타불’을 정근하기 시작했어. 수십 년 만에 집에 들어가니 ‘누구네 아들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야단을 떨었지만 그래도 아랑곳없이 ‘아미타 불’만 불렀지.

이윽고 공양 때가 되자 모친이 상을 준비하면서 ‘아무개야! 이것 좀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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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거라’ 하기에 그냥 못들은 체하고 계속 정근만 하니, 나중에는 ‘스님! 이 것 좀 드시고 하십시오’하더란다. 그래서 못 이기는 체 공양을 마치고 다 시 밤새도록 정근을 했지. 급기야 나중에는 문상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아미타불’을 따라 하더라는 게야. 그리하여 결국 여법하게 장례를 마칠 수 있었고, 또한 ‘누구네는 아들 하나 잘 두었다’ 는 말을 들으면서 돌아왔다 는 게야. 이처럼 출가자로서 모든 중생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면 장례식이 아니더라도 가보는 게 좋겠지. 그렇지 못할 바에야.....”

 

0 사실 ‘출가자다움’이란 ‘출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세간과의 단절을 그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것은 세간에 대한 회피나 방관 또는 초월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출가자다움’으로 다시 세간으로 돌아감을 전 제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출가자다움’이 더욱 빛나게 될 것이므로.

 

■ 내몫의 등불 하나를 켜면서

 

0 중국 고대의 성군 탕왕은 세숫대야에 ‘날마다 새로워지자’ 라고 써 놓고는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마음도 함께 씻었다. 얼굴의 때뿐만 아니라 마음의 때도 함께 제거했던 것이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어느 고승께서는 “오늘은 내가 출가한 날이다. 어머니한테 몸을 받은 육신의 생일이 이미 있지만 부 처님의 법을 다시 만나 태어난 정신적 생일은 바로 오늘이다.”라고 말씀하 면서 그날을 기념하는 뜻에서 속옷부터 겉옷까지 다 새롭게 갈아 입으셨 다. 몸이 태어난 생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신적 생일에 더 큰 의미를 부 여하신 셈이다.

 

0 부처님이 오신 날을 다시금 제대로 되새기는 것은 현재 서 있는 그 자리 에서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즉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해보는 일 이다. 탕왕처럼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마음을 거듭나게 하는 것도 좋은 방 법일 것 같다. 이암 권선사처럼 해가 지면 ‘오늘 하루도 헛되이 보냈다’고 하면서 두 발 뻗고 대성통곡하며 자기를 질책하는 것도 스스로 거듭나게 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으면서 다시금 나를 되돌아 본다. 어떻게 사월초파일 을 맞이하는 것이 제대로 맞이하는 것일까? 이날을 부처님의 생신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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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나의 생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 가? 오늘 내몫의 등불 하나를 켜면서 주변 모두에게 던져보고 싶은 화두 다.

 

■ 기억과 기록

 

0 망각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 남들처럼 메모하는 것 이었다. 드디어 나도 ‘수첩승려’가 된 것이다. 어디건 어느 때건 수첩을 꼭 끼고 다녔다. 부지런히 기록했다. ‘적어야 산다. 그래. 적자 생존이다.’ 그 런데 기록했다는 그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0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고려 대장경 천년의 해’ 선언식에서 ‘기억과 기록’ 에 대한 사회자의 말이 모두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소장학자 시절에는 아는 것 모르는 것 부지런히 적어 와서 시간이 모자 라도록 말을 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 들면 게을러진 탓에 기억하는 것만 말합니다. 나중에 귀밑털이 하얘지면 생각나는 대로 말합니다.”

사회자는 천년모임의 좌장격인 이어령씨가 언젠가 다른 모임에서 한 말 이라는 해설을 달았다.

행사를 마치고 지인들과 중년층이 주로 가는 인근 다방에서 뒤풀이를 했 다. 재기발랄한 사십대 어느 문인이 그 명언 보다 한 술 더 뜨는 어록을 남기는 바람에 박장대소했다.

“저는 말해 놓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 지도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

 

■ 그릇에 따라 고이는 비의 양은 다르다.

 

0 <삼국유사> 첫머리를 보면, 환웅이 인간세계로 하강할 때 풍백, 운사와 함께 우사를 거느리고 왔다고 한다. 비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보여주는 기록이라 하겠다. 그때 따라온 우사가 게으름을 피울 때마다 홍수 피해가 있었던 모양이다.

 

0 기상학자들은 대기 오염으로 인해 갈색 구름층이 형성된 결과 홍수가 난 다는 진단을 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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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순환론자들은 휴가랍시고 온 산천을 쓰레기로 더럽혀 놓으니 자연 이 자기 몸을 씻어내기 위해 목욕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모든 댐이 쓰레기로 뒤덮이고 그 쓰레기 물이 수돗물이 되어 내 입으로 돌아 오니 인과응보라는 말이 정말로 실감난다.

 

0 비야 똑같이 내리지만 땅위에서는 그것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철저한가에 따라 피해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결국 피해의 많고 적음은 땅 위 사람의 몫인 셈이다. 같은 양의 비라고 할지라도 놓인 그릇의 크기 에 따라 담기는 양이 다를 수밖에 없다. 수해 방지를 위한 노력과 시설 투 지가 얼마나 따라 주느냐에 따라 인재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사 실을, 땅위에서 우사의 역할을 해야 하는 정치행정책임자들은 필이 명심해 야 할 것이다.

지붕을 잘 덮지 않아 비가 새면 대들보와 기둥이 썩는 것처럼, 마음의 이 엉을 잘 덮지 않으면 결국 그들의 마음 역시 새는 빗물에 썩기 마련이다. 하늘에 사는 우사야 어떻게 해볼 도리 없지만 땅위에 사는 우사가 그 역 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런 광고 패러디를 들어도 싸다.

“무책임한 당신, 떠나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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