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보해성산 2009. 2. 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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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 노희경 에세이


0 드라마 작가: ‘거짓말’‘내가 사는 이유’‘꽃보다 아름다워’‘ 그들    이 사는 세상’‘굿바이 솔로’등   


■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을 원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이십대의 방황을 마치고 자신이 겪    어 낸 가난과 상처, 사랑과 아픔에 감사하며 글을 녹여내는 노희경, 감각    적인 대사, 공감을 형성하는 인물과 설정으로 우리 삶의 애환과 감동을      드라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매일 아침 108배와 명상을 하며 마음공부를     하고, 항상 달라진 시선으로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그녀는 세상의 편견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인생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아픔의 기억들은 많을수록 좋다.


0 나는 경남 함양 산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칠 형제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    다. 내 출생은 그다지 경사스런 일이 아니었다. 뱃으니 낳을 뿐, 기대도    기쁨도 없는 출생이었다. 있는 자식도 하루 세끼 밥 먹이기가 버거운데     또다시 자식이라니. 모르긴 몰라도 어머닌 날 낳으시고 우셨을 것이다.     암죽 서말이라고, 젖먹이기가 돈이 더 드는 법 아닌가. 하여 나는 태어나    자마자 강보에 싸인 채 윗목에 올려졌다. 군불 닿지 않는 윗목에서 사나    흘 있으면 제 스스로 목숨줄이 떨어져 나가 집안의 고단을 덜어줄 거다.    할머닌 우는 어머니를 밀치고 나를 위목에 놓고는 누구든 애를 건사하면    혼쭐이 날 거다 하셨다 한다.


0 내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이후 집안이 위태로울 때마다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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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럼 여겨졌다.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네 살 무렵엔 효창동 주택가에 어    머니가 나를 버리고 돌아서신 적도 있었다. 여린 어머닌 몇 걸음 못가 나    를 다시 끌어 안고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0 이후 나는 마치 나를 버리려 했던 가족들에게 복수라도 하듯 정말 지겨우    리만치 그들의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배를 배우고    (물론 들키는 바람에 이내 피울 수 없게 됐다) 고등학교 땐 못 먹는 술을    먹어 병원에 입원까지 하고 툭하면 사고를 쳐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 다니    고, 대학은 재수를 하고, 셀 수도 없이 집을 나가 떠돌고.


0 그 시절은 이제와 내게 좋은 글감들을 제공한다. 나는 한 때 내 성장과정    에 회의를 품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내가 만약 가난을 몰랐다    면 인생의 고단을 어찌 알았겠는가. 내가 만약 범생이었다면 낙오자들의    울분을 어찌 말할 수 있었겠으며, 실패 뒤에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    가. 나는 작가에겐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단 생각이다. 아니 작가가 아    니더라도 그 누구에게나 아픈 기억은 필요하다. 내가 아파야 남의 아픔을    알 수 있고, 패배해야 패배자의 마음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다.


0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는 내게도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밥벌이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방황하    는 사람들. 그대들의 방황은 정녕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가    실아 있는 그 시기 안에서 부디 방황을 멈추라. 아픈 기억이 아무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 해도. 부모에 대한 불효만은 할 게 아니다. 대학 때 가출    한 나를 찾아 학교 정문 앞에서 허름한 일상복으로 서 있던 어머니가 언    제나 눈에 밟힌다. 그때도 이후에도 왜 난 그분께 미안하단 말 한마디를    못했을까. 바라건대 그대들은 부디 이런 기억 갖지 마라.


0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나는 큰언니로부터 내 출생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    를 들었다. 나를 윗목에 놓아둔 것은 할머니가 아니고 어머니 였다는...    할머니의 사주로 큰언니가 생쌀을 씹어 멕이고 명을 잇자 할머니는 엄마    에게 간곡히 부탁했단다. “그냥 키우라”고...가해자가 바뀐 엄청난 충    격에서 한참 혼란스러웠으나 나는 곧 이렇게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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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의 나이는 서른 한 살의 꽃다운 나이. 자식은 여    섯에, 남편은 남만 못한 남자. 힘도 들었겠다. 자식이 짐스럽다 못해 원    망도 스러웠겠다. 없었으면 천번 만번도 바랐겠다. 굳이 출생 즈음의 이    야기는 안 해도 되는 걸 거짓말까지 해가며 나에게 해준 건 죄의식이었겠    다. 너무도 미안해서였겠다. 이후에 나를 참 예뻐라 했으니 그것으로 다    됐다.


0 어른이 된다는 건

  상처 받았다는 입장에서

  상처 주었다는 입장으로 가는 것

  상처 준 걸 알아챌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


■ 내 이십대에 벌어진 축복 같은 일


0 청춘이 아름답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인 걸 알게 된 건 서른 중반이 훌    쩍 넘어서였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십대에 벌써 푸근하고 짜릿    하게 완벽한 애인이 있고, 집안이 유복하며,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 잘 풀    린 별나도 별난 사람이거나, 청춘에는 청춘이 싫고, 중년에는 중년이 싫    고 노년에는 노년이 싫다고 말하면서 허구한 날 지난날을 그리워하거나,    오지도 않은 날을 기대로 채우는 어리석은 사람일 거라. 나는 단정한다.    단정의 기준은 물론, 내 청춘에 빗대어서다.

  

0 십대의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과 내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과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과 미치게 망가지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빨리 학교를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리고 가끔 성실하게 공부 잘하는 친    구들과 환하게 웃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요즘 같이 사는 조카놈들에게 나    는 뻑하면 ‘너는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 맨날 입이 댓발이냐?’는     말을 한다. 놈들은 서운하겠지만 나는 그 말을 부모님으로부터 내가 한     것의 열 곱절은 들었다.


0 이십대는 아주 좀 나았다. 일단 담배를 필 수 있게 됐고 연애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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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맘대로 땡땡이치면서 원하는 대로 좀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사는 게 재미없었다. 애인들은 툭하면 내가 싫다고     떠났고, 친구들도 게으른 나를 비웃고, 전공으로 택한 시는 지도교수로부    터 대부분 엉망이란 말을 들었다.  


0 내 나이 스물다섯, 어머니 쉰여섯의 어느 날  어머니는 위암판정을 받으    셨고, “이제 너는 어떻게 살래”한 마디를 남기고 운명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회사를 접고 드라마 작가가 되기까지는 1년 반 남    짓밖에.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임종의 충격요법이 독했다. 어머니의 임종    이 청춘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게 한 축복이었다고 나를 아는 지기들은 앞    다투어 말한다. 자식 철들게 한 대가가 너무 크다고도 말한다. 나는 그딴    말 말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사실이다.

   나는 요즘 청춘들에게 이런 말을 자주한다.

  “나는 나의 가능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0 섣불리 젊은 날의 나처럼 많은 청춘들이 자신을 별 볼일 없게 취급하는     것을 아는 이유다. 그리고 당부하건데 해보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 게 인생임도 알았음 한다.

   근데 그 어떤 것이 안 된다고 해서 인생이 어떻게 되는 것은 또 아니란    것도 알았음 싶다. 매번 참 괜찮은 작품을 쓰고 싶고, 평가도 괜찮게 받    고 싶어 나는 애쓰지만, 대부분 내 기대는 허물어진다. 그런데 나는 100%    는 아니지만 70%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뭐 어쨌건 밥은 먹고 사니까.  그    리고 그 순간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니까. 자기합리화라 해도 뭐    어쩌겠는가. 자기학대보단 낫지 않은가.  


■ 인생은 과정


0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혀질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잊혀지고, 절대 용서    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용서되면서 우리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성장한     다. 누구는 그러한 성장을 성숙이라고도 하고 타락이라고도 말한다. 그러    나 나는 다만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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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하루에도 열두 번씩 무조건 어른이 되고 싶던 비린 미성년 시절, 나는 찐    한  사랑 한 번에 여자가 될 줄 알았었고 실연은 절대 안 당할 줄 알았었    다. 이제는 그런 내 바람들이 당치 않은 기대였던 것을 안다.


■ 적(敵)


0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순간이 있다.

  적이 분명한 적일 때, 그것은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동지인지 적인 지 분간이 안 될 때, 얘기는 심각해진다.

  서로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런 순간이 올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될까?

  그걸 알 수 있다면 우린 이미 프로다.


  지금 내 옆의 동지가 한순간에 적이 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적은 언제든 다시 동지가 될 수 있다.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때 기대는 금물이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지금 그 상대가

  적이다. 동지다. 쉽게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나는 누구의 적이었던 적은 없는지.


■ 아킬레스 건


0 내 유년시절의 확실한 아킬레스건은 엄마였다.

  화투를 치고, 춤을 추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그러면서도 엄마는 아버지 앞에선

  언제나 현모양처인 양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때 나의 꿈은 엄마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 꿈은 다행히 대학을 들어가면서 쉽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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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조감독 때 나의 아킬레스건은

  조금이라도 잘 나가는 모든 동료와

  그 외 나에게 수시로 태클을 거는 세상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감독이 된 후의 나의 아킬레스건은

  모든 감독들처럼 단연 시청률이다.


  지금 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나의 아킬레스건은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너무

  사랑을 정리하는 것도, 사랑을 시작하는 것도

  쉬운 애라는 거다.


  하지만 이 순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이 사랑을 더는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거다.


■ 부모도 자식의 한이 되더라.


0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를 사랑한다.

  ‘죽은 자를 사랑하지 마라. 죽은 자 맘 아파 이승 문턱 못 넘을라.’

  내가 매일 어머니를 부여잡고 놓지 않는다는 걸 알고, 한 스님이 내게 이    런 식으로 충고 하셨다. 그 충고에 나는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가지마라. 넋이라도 이승에 남아 나랑 먹고 놀자. 나랑 먹고 놀    자.’   

  

0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열흘 남짓 전의 일이다. 그날은 토요일 이었다.    그날 나는 일찍 퇴근해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지금은 우리 집의 수양    딸이 된 고아 친구 향이와 성남 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옥진 여사 공연을     보러 갔었다. 어머니 생전에 처음 하는 공연 구경이었고(참말이다. 동네    약장수 구경은 한 적 있었지만, 일금 만 원짜리 공연 구경은 처음이었      다.)내 생전에 어머니와 같이 본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이었다.          

   우리는 그 공연을 참 즐겁게 봤다. 분수에 안 맞게 택시를 타고 분수에    안 맞게 공연 도중 걷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만 원씩이나 내면서, 분수    에 안 맞게 호탕하게 웃어젖혔다. 그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냥 웃는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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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가 구경하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    들 웃는 대목에서 괜스레 눈이 붉어지며 박수를 치는데, 그 소리가 정말    우렁찼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면서, 그래도 내가 참 효    녀짓을 했구나 싶었다.


0 우리는 공연 구경을 다하고, 오천 원이나 하는 공옥진 목각을 사고 일식    집으로 갔다. 부모님을 대접하는 첫 자리였다. 참, 일식집에 가기 전, 내    호의가 과했는지 아버지는 한사코 집에서 밥 먹지 돈 주고 밥을 왜 사먹    느냐고 했고. 어머니는 우리 막내딸이 뭘 사줄까 보자며 선뜻 가자했다.     속없는 어머니.

   사실, 그 즈음 내 주머니는 허당이었다. 그러나 한번 한 말을 도로 담아    넣을 수는 없는 일. 나는 일식집 문을 너무도 당당하게 열어젖혔다. 그리    고 주문을 했는데 알탕에 생선초밥, 그게 전부였다. 음식이 나오고 빈약    한 상차림에 스스로가 멋쩍어 나는 서둘러 먹자 하고 먼저 수저를 들었     다. 그런데 한참을 아버지와 나,그리고 향이가 수저질을 하는데도 어머니    는 도통 가만히 계셨다. 음식이 마음에 안 드시나 싶었다. 다른 걸 시켜    드릴까 싶었다. 상차림이 민망해 어머니의 얼굴을 못 보고 나는 그리만     생각 했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어머니의 얼굴을 봤는데, 그 눈을 봤는    데 눈물이 그렁해 울고 계셨다. 눈물이 날 만큼 좋으셨던 것이다.      

  

  ‘내가 언제 이런 사랑 받아나 봤겠니.'

   내 어머니는 그렇게 싸구려 효도에도 감동하는 그런 분이었다. 나는 지    금도 그때 일을 두고두고 못 잊는다. 내 얼마나 그녀 알기를 소홀히 했던    가.


0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이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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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란다.

  내세에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다시 그녀의 막내딸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걸, 목숨처럼 사랑했다는 걸 그녀는 알았을까.     초상을 치르면서 잠만 잤어도. 지금까지 숱한 날들을. 그녀로 인해 울음    운다는 걸 그녀는 알까.     

  제발 몰라라. 제발 몰라라.


■ 힘내라, 그대들 - 작가 지망생 여러분들에게 -


0 12년 전 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 첫발을 내 딛던 때가 생각난다.

  ‘드라마는 인간이다.’라는 명제가 칠판에 쓰여지고, 외울 것도 없는 그    단문을 몇 번이고 동그라미 치며, 입으로 달달거렸다. ‘글은 마음으로     쓰는 것이야.’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천번 만번 목청 돋우어 말했    던 내가 스스로도 무색하게 단문도 초단문인 그 명제를 입으로 달달. 그    렇게 모든 게 생뚱맞을 만큼 당시의 나는 절박했다.


0 그런 내가 이젠 선생이 되어 교육원생 앞에 선다. 수업하는 내내 학생들    은 말이 없고, 눈빛을 반짝이다 못해 금방이라도 울고 말듯 과잉된 긴장    에 안구가 벌겋다. 그곳에서 늘 웃는 건 나이고 목이 마른 건 교육원생     그대들이다. 너무나도 나 같아서 괜히도 푹푹 한숨이 쉬어진다.

   그대들은 나보다 절박하고, 나만큼 치열하며, 강요하지 않아도 외롭고,    자학에 지쳐 얼굴마저 샛노랗다.   

  

0 모르지 않는다.

  여의도 강변 난간에서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세상에 할     말이 있을까’‘내가 정말 인간을 아는가. 내가 정말 내 밥을 내가 벌어    먹을 수 있을까’를 되묻고 되물으며 목 놓아 울었던 나를 12년 만에 코    앞에서 다시 재회하는 이 심경을 뭐라 할 수 없어 소리칠 뿐이다. 여의도    가 마포보다 더 자주  안개에 젖는다면, 모두 교육원생들의 눈물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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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노희경의 글 쓰는 수칙 몇가지

                                   

1. 성실한 노동자가 되어라 : 노동자의 근무시간 8시간 엄수

2. 인과응보를 믿어라 : 쓰면 완성할 확률이 높아지고, 고민만 하면 머리만     아프다.

3. 드라마는 인간이다 : 인간에 대한 탐구가 드라마에 대한 탐구다.

4. 디테일하게 보라 : 듬성듬성하게 세상을 보면 듬성듬성한 드라마가 나오     고, 섬세하게 세상을 보면 섬세한 드라마가 나온다.

5. 아픈 기억이 많을수록 좋다 : 작가는 상처받지 않는다. 모두가 글감이      다.

6. 생각이 늙는 걸 경계하라 :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그러나 생    각은 늙을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이 편견인 것을 직시하고     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는 순간 늙고 있음    을 알아챌 것.

7. 조율을 잊지 마라 : 드라마는 혼자 하는 직업이 아닌 더불어 함께하는     작업이다. 조율하지 못할 거면 드라마 작가를 포기하라. 드라마작가는 드    라마의 여러 작업 파트 중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일 뿐 우두머리가 아니다.    작가적 중심과 독선을 구분하는 게 관건이다.


■ 드라마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나


0 사람들은 드라마작가로서 내게 불만이 많다. 대부분 그들의 불만은 이유    가 있다. ‘노희경의 드라마는 머리가 아프다. 재미가 없다. 대중성이 없    다. 흥행성이 없다.’ 맞는 말이다. 공감한다. 그런데 왜 난 그들의 말     을 따라줄 수 없는 걸까. 나는 시청자뿐만 아니라 작가들조차 그렇게 생    각하는 이유에 대해 묻고 싶다. 왜 드라마는 반드시 가벼워야 하는가? 그    것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확언하건데 그    건 편견이다. 드라마는 대중이 아닌 소수의(낮은 시청율 10%만 계산해도    4백만인데 그걸 소수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것일 수도 있고 재미    의 시간이 아닌 고민의 시간일 수도 있으며 일회성이 아닌 영원성을 지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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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작가란 단어를 풀이하면 ‘만드는 자’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창조하는    자란 뜻이다. 창조를 하지 않으면 그는 작가가 아니다. 글을 ‘본 땄다’    고 하는 것은 ‘훔쳤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으며 따라서 훔친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도둑의 장물과 같다.


0 나는 우리나라 시청자들만큼 불쌍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 없다는 생각을    종종 갖는다. 작가들과 방송국은 그들을 멸시한다. 그들은 시청자를 이렇    게 평가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1,2학년 수준, 코미디를 좋    아하며 같은 얘기를 또 들려주어도 모르는 멍텅구리, 깊이는 절대로 강요    하지 말것. 3분 정도는 웃겨주고 3분 정도는 대충 감동 비슷한 걸 만들어    줄 것. 꿈을 좇는 사람들이 많음으로 신데릴라, 캔디, 콩쥐 캐릭터는 필    수.”


0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나라의    방송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강요받았었다. 남들    처럼 재미있게. 죄송하지만 사양한다. 나는 드라마의 다양함을 추구하는    작가이고 싶다. 그래서 획일화되는 드라마의 구조를 조금만 흔들 수 있다    면 내 도리는 한 것이다. 이번 원고에서도 나는 욕을 먹을 것이다. 시청    율 제로에 도전하는 작가? 밥줄이 끊길지도 모를 일이다.


<10년 후 지금의 생각>


0 나는 요즘 드라마는 반드시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가벼운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의 글을 쓸 당시 가벼움을 깊이 없다고 착각하    고 있었다. 가벼움의 반대말은 무거움이요, 깊다의 반대말은 얕다 인데     가벼움의 반대말을 깊다로 착각하고 무거움과 깊다를 동의어로 착각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0 드라마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도 나는 요즘 이전과 다른 생    각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는 꼭 재미있어야 한다. 굳이 재미없는 걸 이     재미없는 세상에 쓸 필요가 있나 싶다. 물론 재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슬픈 재미, 아픈 재미, 서글픈 재미, 배우는 재미, 등등. 어른이라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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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 청소년기라 해도 재미가 깔깔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다 알 법하     다. 위의 글을 쓸 당시에도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무 격해    서 본래 하고자 한 말을 못하고 이상하게 말이 꼬였던 거 같다.


0 시간이 가서 지난날의 내 글을 보는 맛이 참 쓰다. 부끄럽고 때론 너무     여렸구나. 그 여리고 어리석은 탓에 세상 살기가 고단도 했겠구나. 괜한    연민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    고, 다 변하는 것이구 나를 알아가는 게 참 좋다. 10년 후에 난 또 이 글    을 보고 무엇을 느끼려나 기대가 된다.


■ 산다는 것


0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인생이란 놈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며 오는 법은 없다고


0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육십 인생을 산 어머니 말씀이고,

  아직 너무도 젊은 우리는 모든 게 다 별일이다. 젠장.


■ 잘 있었나, K양


0 당신이 이 편지를 받고, K양이란 호칭에 한동안 즐겁게 웃을 것이라 장담    한다. 김수야. 수야씨. 이 여자야. 순둥아! 당신의 호칭을 즐겁게 변조해    부를 수 있었던 그때. 나는 참 행복했다. 당신 같은 여자를 엄마로 두어    서. “그러지 마라. 어른을 놀리는 게 아니다.” 말로는 꾸짖어도 당신과    격 없이 놀려하는 나를 당신은 표 나게 좋아했다. 그래서 당신이 임종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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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말에 감격하지 않았다. 당신이 얼마나 막내딸     희경일 사랑하는 줄 ‘늘’ 알고 있었으므로.


0 당신이 누구나 반드시 가야하는 곳으로 간 이후, 나는 작가가 됐다. 옆에    있어도 애타게 그리웠던 당신은 떠난 후로도 여지없었다. 주인공이 연애    하고, 이별하고, 죽음을 맞고, 배신하고, 후회할 때, 나는 무시로 당신의    조언이 필요했다. 마음에 안드는 형부감을 두고 “언니 저 사람하고 결혼    시키지 마라.”고 투정하는 내게 “너랑 안 살아.”“그럼 엄마는 그 사    람이 맘에 든단 얘기야!”“나랑도 안 살아.”라고 심플하게 말하던. 어    린 나보다 구태의연하지 않았던. 사는 게 고단해도 눈(雪)은 예쁘다던 당    신. 아! 정말 왜 그리 빨리 갔느냐. 


0 나는 당신을 한 번도 여자로 인간으로 대접하지 못했다. 긴 수술 후 깨     어난 당신에게 “무엇이든 말만하면 사주고 해주마”했더니 당신은 그렇    게 말했다. “내 청춘 돌려 줄 수 있나.”가슴이 무너졌다. 그때 당신은    내게 첨으로 인간으로 친구로 허무한 인생을 논하려 했을 수도 있는데.     연약한 나는 그 말을 못 받았고 고개를 돌려 피했다.


■ 안부를 묻다.


  건강들 하신지요?

  행복들 하신지요?

  사랑이 힘겹진 않으신지요?

  부모와 형제가 미치게 버거워도

  여전히 껴안고들 있으신지요?

  잠자리에선 꿈 없이 주무시는지요?

  비 오는 날엔 울음 없이들 비를 보시는지요?

  맑은 날도 좋아들 하시는지요?

  낙엽이나 고목들을 보면서도

  기대들을 버리지신 않으시는지요?

  어린 새 순이 좋으신지요?

  라일락이 아카시아와 같이 피고 지는 지금의 기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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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우신지요?

  잎과 꽃이 만나지 않는다는 상사화를 혹여 보셨는지요?

  

  정말 불행하진 않기를 원하는데. 그러신지요?

  지금 그리운 것들이 모두 그대들 옆에 있으신지요?

  저는 괜찮은 데

  정말 그대들도 괜찮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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