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壯子)-허균(許筠)
余少時讀莊子書(여소시독장자서) : 내가 어릴 때는 장자의 글을 읽으면서 不知其蒙(불지기몽) : 그 뜻을 알지 못하고 但尋文摘章(단심문적장) : 단지 문체를 찾고 장구를 따와 爲掞藻法(위섬조법) : 문장하는 법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中歲更讀(중세경독) : 그러다가 중년에 다시 읽어보니, 則俶倘怳忽(칙숙당황홀) : 뜻이 크고 재주가 뛰어나고 사상이 황홀하여 若不可測度(약불가측도) : 어림잡아 헤아릴 수 없을 듯하였지만, 固已喜其寓言(고이희기우언) : 이미 그 우화(寓話)를 나는 좋아하였고, 而一死生齊得喪爲可貴也(이일사생제득상위가귀야) : 죽고 삶을 똑같이 보고 얻고 잃음을 똑같이 취급한 것은 소중히 여길 만하였다. 今則看之(금칙간지) : 지금은 이 글을 보니 其恬淡寂寞(기념담적막) : 그 염담 적막(恬淡寂寞)하고 淸靜無爲(청정무위) : 청정 무위(淸靜無爲)한 사상이 默與佛子相合(묵여불자상합) : 은연중에 불자(석가모니)와 서로 합치되었다. 特以其謬悠荒唐之辭(특이기류유황당지사) : 오직 그 요원하고 황당한 말이 不與爲莊語(불여위장어) : 올바른 언어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故淺讀之(고천독지) : 깊이 읽지 않아서는 莫可見端涯也(막가견단애야) : 그 단서를 알 수 없다.
其中顏子坐忘一節(기중안자좌망일절) : 그 중에 대종사(大宗師)의 '안자(顔子)가 가만히 앉아서 물아(物我)를 잊었다.'는 한 구절을 儒家力詆之(유가력저지) : 유가(儒家)에서 강력히 비방하지만 禮曰(례왈) : 예기(禮記)》에도 이르기를, 坐如齋(좌여재) : 《 '앉으면 재계(齋戒)하는 것과 같이, 立如尸(좌여재립여시) : 서면 시동(尸童)의 모습과 같이 하라.' 하였고, 而顏子終日如愚(이안자종일여우) : 《논어(論語)》에는 '안자는 온종일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였다. 此與坐忘奚殊(차여좌망해수) : 이것이 '앉아서 물아를 잊어버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玆亦謾衍其辭(자역만연기사) : 이 또한 그 말을 부연한 것일 뿐 非妄也已(비망야이) : 망언은 아니다.
其曰詆周孔者亦非也(기왈저주공자역비야) : 그가 '주공(周公)과 공자(孔子)를 비방했다.'는 말도 또한 잘못된 것이다. 老聃其師而假秦失之弔以詆之(로담기사이가진실지조이저지) : 노담(老耼)은 그의 스승인데 진일(秦失)이 조문한 일을 가탁하여 노담을 비방하였으나, 此老播弄淑詭之故態(차로파롱숙궤지고태) : 이것은 이 늙은이의 해학적이고 거짓말 잘하는 평소의 태도이며 非眞詆也(비진저야) : 참으로 비방한 것은 아니다. 於天下篇(어천하편) : 천하편(天下篇)에서 首言儒家(수언유가) : 유가(儒家)를 맨 으뜸으로 언급한 것에서 其尊周孔可知矣(기존주공가지의) : 그가 주공ㆍ공자를 존숭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자(列子)-허균(許筠)
列子天瑞黃帝兩篇(열자천서황제량편) : 《열자(列子)》의 천서(天瑞)ㆍ황제(黃帝) 두 편은 其論道處理極玄微(기론도처리극현미) : 도를 논한 곳이 현미(玄微)한 이치를 盡言之而不隱(진언지이불은) : 끝까지 다 언급하여 숨김이 없으니, 可與道德南華相表裏(가여도덕남화상표리) : 《도덕경(道德經)》ㆍ《남화경(南華經)》과 서로 표리(表裏)가 될 만하며 文亦古奧矣(문역고오의) : 문장 또한 고아(古雅)하고 심오하다. 其後則文漸散始弛放(기후칙문점산시이방) : 그 뒤로는 문장이 점점 흐트러지고 해이해졌으며, 論道理亦多舛謬(론도리역다천류) : 도리를 논한 것도 또한 어긋나고 그릇된 것이 많으니 似不出一人手(사불출일인수) :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은 것 같다. 宜劉中壘之致疑也(의류중루지치의야) : 그러니 유 중루(劉向)가 의아스럽게 생각한 것이 당연하다. 今之所得八篇(금지소득팔편) : 오늘날 전해지는 여덟 편은 似亦是典午氏東渡後雜出於諸家(사역시전오씨동도후잡출어제가자) : 역시 진(晉) 나라가 동쪽으로 건너온 이후에 제가의 저서에서 섞여 나온 것인 듯하며, 亦非中壘所校讎也(역비중루소교수야) : 또한 유 중루가 교열한 것이 아니다. 莊子屢引列禦寇氏(장자루인렬어구씨) : 장자(莊子)가 자주 열 어구(列禦寇)씨를 인용한 것을 보면, 則其人其意(칙기인기의) : 그의 인물이며 사상이 固皆可貴(고개가귀) : 진실로 다 귀중히 여길 만한데 今不覩其全(금불도기전) : 지금 그 전질을 볼 수 없으니 可勝嘅哉(가승개재) : 개탄을 금할 길 없다. 余謂首篇二(여위수편이) : 나는 이르건대, 첫머리 두 편은 乃列子之舊(내렬자지구) : 《열자》의 구본(舊本)이고, 而其餘(이기여) : 그 나머지는 則漢人或魏晉時人所補也歟(칙한인혹위진시인소보야여) : 한(漢) 나라 사람이나 혹은 위(魏)ㆍ진(晉) 시대 사람이 보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자(老子)-허균(許筠)
老子分童(노자분동) : 《노자(老子)》를 분동한 것이 未知出自何人(미지출자하인) : 어떤 사람에게서 나왔는지는 모르나, 其意本不斷(기의본불단) : 글의 뜻이 본시 끊어지지 않았는데 而有強斷處(이유강단처) : 억지로 끊은 부분이 있어 殊爲紕繆(수위비무) : 대단히 잘못되었다. 但當全讀之(단당전독지) : 단지 마땅히 전체를 연결하여 읽어야 乃可通也(내가통야) : 비로소 통할 수 있다. 世謂老子不可入六經(세위로자불가입륙경) : 세상에서 이르기를 '《노자》는 육경(六經)에 포함할 수 없다.' 하지만, 至其論大道處(지기론대도처) : 대도(大道)를 논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玄妙淵微(현묘연미) : 현묘(玄妙)하고 은미하여 有不可測度者(유불가측도자) : 그 심도를 헤아릴 수 없는 것도 있는데, 易中庸所不道(역중용소불도) : 이것은 《주역(周易)》이나 《중용(中庸)》에서도 말하지 못한 것을 而乃拈出言之(이내념출언지) : 여기서 집어내어 언급하였으니, 此老子自離而去之(차로자자리이거지) : 이 점이 바로 《노자》가 독자적으로 분리되어 나가고 不欲與六經齒(불욕여륙경치) : 육경과는 나란히 서고 싶지 않은 이유이다. 噫其神歟(희기신여) : 아, 그는 신기하도다. 後世其徒轉神其學流(후세기도전신기학류) : 후세에 그의 무리들이 노자의 학술을 전환하여 신비롭게 만들어, 而爲脩煉服食符籙(이위수련복식부록재초등법) : 그것이 더 흘러가서는 수련(修煉)ㆍ복식(服食)ㆍ부록(符籙)ㆍ재초(齎醮) 등의 법을 만들어 怪誕不經(괴탄불경) : 괴이하고 황당하여 바르지 못하게 됨으로써 而惑世誣人多矣(이혹세무인다의) : 세상을 현혹시키고 사람을 속이는 일이 많았다. 訾是輩者(자시배자) : 이 무리를 비방하는 자들이 竝訾老子(병자로자) : 아울러 노자까지 비방하게 된 것이니, 玆豈淸靜本意乎(자기청정본의호) : 괴이하고 황당한 행동이 어찌 청정(노자의 사상)의 본뜻이겠는가. 其文則經(기문칙경) : 그 글은 곧 경(經)이고, 而其義則傳(이기의칙전) : 그 뜻은 곧 전(傳)이며 至於論道(지어론도) : 도를 논함에 이르러서는 則直破天竅(칙직파천규) : 똑바로 하늘의 핵심을 깨뜨렸으니, 吾不得而摸捉之(오불득이모착지) : 내 재주로는 어떻게 윤곽을 잡을 수가 없다. 其猶龍乎(기유룡호) : 진정 용과 같다 하겠다
성수시화인(惺叟詩話引)-허균(許筠)
我國自唐末以至今日(아국자당말이지금일) : 우리나라는 당 나라 말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操觚爲詩者殆數千家(조고위시자태수천가) : 붓을 쥐고 시를 지은 사람들이 거의 수천 명이 될 것이나 而世遠代邈(이세원대막) : 세대가 멀어져서 堙沒不傳者(인몰불전자) : 인몰되고 전하지 못하는 자 亦過其半(역과기반) : 또한 그 반을 넘고 있다. 況經兵燹(황경병선) : 더구나 전란을 겪음으로써 載籍略盡(재적략진) : 서적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으니 爲後學者何從考其遺跡(위후학자하종고기유적호) : 뒷날 공부하는 자가 무엇을 가지고 그 남긴 자취를 살필 수 있을지 深可慨已(심가개이) : 깊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不佞少習聞兄師之言(불녕소습문형사지언) : 나는 어려서 형과 스승들의 말을 익히 듣고, 稍長(초장) : 차츰 자라나 任以文事(임이문사) : 문사(文事)로 자임(自任)하여 온 지 于今三十年矣(우금삼십년의) : 이제 30년이라 其所記覽(기소기람) : 기억하고 보아 온 바가 不可謂不富(불가위불부) : 적다 할 수 없으며, 而亦嘗妄(이역상망) : 또한 일찍이 망령되나마 有涇渭乎中(유경위호중) : 청탁(淸濁)의 구분을 마음속에 지니기도 했었다. 丁未歲(정미세) : 정미년(1607)에 刪東詩訖(산동시흘) : 동시(우리나라의 시)의 산정(刪定)을 마치고 又著詩評(우저시평) : 또 시평(詩評)을 지었는데, 其於東人(기어동인) : 그 동인(東人)으로서 稍以詩見於傳記者(초이시견어전기자) : 자못 시로써 전기(傳記)에 나타난 자와 及所嘗耳聞目見者(급소상이문목견자) : 일찍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자들을 悉博採幷羅(실박채병라) : 다 함께 널리 채택하고 아울러 망라해서 無不雌黃而評騭之(무불자황이평즐지) : 모두 시비를 가리고 평론을 가한 것으로 凡二卷(범이권) : 무릇 두 권이었다. 其所品藻(기소품조) : 그 골라 놓은 시구가 或乖大雅(혹괴대아) : 혹 대아(大雅)의 안목에 어그러질지는 모르나 而搜訪之殷(이수방지은) : 찾아 본 자료의 풍부함은 足備一代文獻也(족비일대문헌야) : 충분히 한 시대의 문헌을 갖추었다 할 만하였다. 書成(서성) : 글이 이루어지자 削其稿(삭기고) : 그 원고를 다듬어 只書二件(지서이건) : 다만 두 벌을 써서, 一在浪州失去(일재랑주실거) : 하나는 낭주(浪州)에 두었는데 잃어버렸고 一在京邸遺佚(일재경저유일) : 또 하나는 서울 집에 두었는데 없어지고 말았으니, 此殆六丁下取將否(차태륙정하취장부) : 이는 아마 육정(도교의 신)이 내려와 가져간 것인가? 欲更記載(욕경기재) : 다시 기재하려 해도 而不敢犯天忌(이불감범천기) : 감히 하늘의 꺼림을 범하지 못해 聊以縮手耳(료이축수이) :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辛亥歲(신해세) : 신해년(1611)에 俟罪咸山(사죄함산) : 함산에 귀양가게 되자 閑無事(한무사) : 한가하여 일이 없으므로 因述所嘗談話者(인술소상담화자) : 일찍이 담화(談話)하던 것을 著之于牘(저지우독) : 기술하여 旣而看之(기이간지) : 종이에 옮겨 쓰고 나서 보니 亦自可意(역자가의) : 또한 마음에 들어 命之曰詩話(명지왈시화) : 이를 시화(詩話)라 이름하니 凡九十六款(범구십륙관) : 무릇 96관(款)이었다. 其上下八百餘年之間(기상하팔백여년지간) : 그 상하 8백 년 사이에 所蒐出者只此(소수출자지차) : 뽑은 것이 다만 이에 그치니 似涉太簡(사섭태간) : 너무 간략한 것도 같지만 而要之亦盡之已(이요지역진지이) : 요컨대 이 역시 마음을 다 썼을 뿐이니 觀者詳焉(관자상언) : 보는 자는 짐작이 있을 것이다. 是歲四月之念日(시세사월지념일) : 이해 4월 20일에 蛟山題(교산제) : 교산(蛟山)은 쓴다
장산인전(張山人傳)-허균(許筠)
張山人名漢雄(장산인명한웅) :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인데 不知何許人也(불지하허인야) :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임은 알 수 없다. 自其祖三世業痬醫(자기조삼세업痬의) :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양의(외과의사) 업무에 종사했었다. 其父嘗餌商陸(기부상이상륙) : 그의 아버지는 전에 상륙(한약재 이름)을 먹고서 能視鬼而役使之(능시귀이역사지) : 귀신을 볼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 한다. 年九十八(년구십팔) : 나이 98세 때
如四十許人(여사십허인) : 40 정도로 보였는데, 出家去莫知所終(출가거막지소종) : 출가(出家)하여 가신 곳도 알지 못했다. 臨行(림행) : 그분이 집을 떠날 때, 以二卷付之(이이권부지) : 2권의 책을 아들에게 주었으니 乃玉樞經及運化玄樞也(내옥추경급운화현추야) : 바로 <옥추경>과 <운화현추>였다.
山人受之(산인수지) : 산인(山人 장한웅(張漢雄))이 그걸 받아 讀數萬遍(독수만편) : 수만 번을 읽고나자, 亦能呼召神鬼(역능호소신귀) : 역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治瘧癘(치학려) : 학질(瘧疾)도 낫게 할 수 있었다. 輒已之(첩이지) : 그런데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는, 四十出家入智異山(사십출가입지이산) : 마흔살에 출가(出家)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입산하였다. 嘗逢異人(상봉이인) : 그곳에서 곧 이인(異人)을 만나 受煉魔法(수련마법) : 연마법(煉魔法)을 배웠고. 又讀修眞十書(우독수진십서) : 또 도교(道敎)의 진리에 관한 10권의 책을 읽었다. 坐空菴(좌공암) : 빈 암자(菴子)에 앉아 不食三年餘(불식삼년여) :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3년을 보냈다.
一日行峽中(일일행협중) : 하루는 계곡을 지나는데, 二僧隨之(이승수지) : 두 사람의 중[僧]이 그를 따랐다. 至林薄間(지림박간) : 우거진 숲 사이에 이르자, 有雙虎出而伏迎(유쌍호출이복영) :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엎드려서 맞아 주고 있었다. 山人叱之(산인질지) : 산인이 꾸짖자, 虎弭耳搖尾(호미이요미) : 호랑이들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若乞命者(약걸명자) :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태도를 보였다. 山人自騎其一(산인자기기일) : 산인 자신이 한 호랑이에 올라타고, 令二僧竝跨其一(령이승병과기일) : 두 중으로 하여금 함께 다른 하나에 타게 하여 至寺門虎伏而退去(지사문호복이퇴거) : 절[寺] 문 앞에 이르자 호랑이들이 내려 놓고 물러가 버렸다.
住山十八年(주산십팔년) : 산에서 머문 지 18년 만에 而回至洛居于奐仁門外(이회지락거우환인문외) : 서울로 돌아와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다. 六十而貌不衰(륙십이모불쇠) : 나이가 60세였으나 용모는 정정하였다.
隣有空宅(린유공댁) : 이웃에 비워 둔 집이 있는데, 凶不可入(흉불가입) : 흉측하여 거처할 수가 없자, 其主請禳之(기주청양지) : 그 집의 주인이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山人夜詣之(산인야예지) : 산인이 밤에 그 집으로 가 보았다. 有神二人來跪曰(유신이인래궤왈) : 두 명의 귀신이 와서 꿇어 앉아 말하기를, 吾門竈神也(오문조신야) : "우리는 문(門) 귀신과 부엌 귀신입니다. 有妖蛇據之(유요사거지) : 요사스러운 뱀이 이 집을 차지하고서 售其奸(수기간) : 사한 짓을 하고 있으니 請誅之(청주지) : 제발 그것을 죽여 주십시오."하면서, 卽指庭中大槐根(즉지정중대괴근) : 곧 뜰 가운데의 큰 홰나무 밑둥을 가리켰다. 山人呪水噴之(산인주수분지) : 산인(山人)이 주술(呪術)의 물을 뿜어내자 有頃大蛇人面者目如鏡蜿蜒(유경대사인면자목여경완연) : 조금 뒤에 사람 얼굴 모습의 큰 뱀이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以出其半而斃(이출기반이폐) : 절반도 나오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令焚之(령분지) : 그것을 태워버리게 하자 宅遂淸(댁수청) : 집은 마침내 깨끗해졌다.
與人游箭串捉魚(여인유전관착어) :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서 화살로 꽂아 물고기를 잡으면, 山人擇死者盛於水盆(산인택사자성어수분) : 산인이 죽은 것만 골라서 물동이에 넣고는 以匙藥投之(이시약투지) : 숟갈로 약을 떠 넣는다. 魚更活洋洋然(어경활양양연) :그러면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 유유히 헤엄치곤 하였다. 人試以死雉(인시이사치) : 사람들이 죽은 꿩으로 시험해 보라고 하자, 又以七藥納口中(우이칠약납구중) : 또 숟갈에 약을 묻혀 입 속으로 넣으면 卽奮迅而活(즉분신이활) : 훨훨 날개를 치며 살아나곤 하였다. 人皆怪之曰(인개괴지왈) : 사람들이 모두 이상스럽게 여겨 이르기를 死人亦可蘇否(사인역가소부) :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까?"물으면, 山人曰(산인왈) : 산인(山人)이 말하기를 凡人生而咨其情(범인생이자기정) : "일반 사람들이란 태어나면서 그 정(情)이 방자하여 三魂七魄(삼혼칠백) : 삼혼과 칠백이 離宅舍者三年(리댁사자삼년) : 택사(宅舍)에서 떠난 사람도 3년이 지난 뒤에야 然後方絶(연후방절) :끊어지니 不可以藥返之也(불가이약반지야) : 약으로써는 살려낼 수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山人繆爲不解文而文自好(산인무위불해문이문자호) : 산인(山人)은 사실과는 다르게 글자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글만 잘 지어 냈고, 且稱雀眼夜不出(차칭작안야불출) : 또 밤눈이 어둡다고 말하며 밤에 바깥 출입을 않으면서도 而能於昏讀細字(이능어혼독세자) : 어두운 곳에서 잔 글씨도 읽을 수 있었다. 其他雜技戲如布甁盛酒(기타잡기희여포병성주) : 그 이외의 잡기(雜技) 놀이로, 베로 만든 병에 술을 담는 거나 紙罐構火等事(지관구화등사) : 종이로 만든 그릇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 등 眩耀世人者不可紀(현요세인자불가기) : 세상 사람의 눈을 휘둥거리게 한 것들이 모두 기록할 수 없이 많았다. 卜人李和方有名(복인리화방유명) : 점쟁이[卜人] 이화(李和)란 사람이 점 잘 치기로 한창 유명했었는데, 山人第視之(산인제시지) : 산인은 자기보다 아랫수로 여겼다. 常觀其算命有謬(상관기산명유류) : 그가 점치는 것을 볼 때마다 잘 맞히지 못하면 則山人輒改之(칙산인첩개지) : 산인이 고쳐서 말해주는데 言皆中(언개중) : 모두 적중되는 말이어서
和不敢贊一辭(화불감찬일사) : 이화가 한마디도 감히 보태질 못했다. 和曰(화왈) : 이화가 이르기를 山人左右(산인좌우) : "산인(山人)의 좌우에는 常有三百神衛之(상유삼백신위지) : 항상 3백 명의 귀신들이 호위하고 있으니 眞異人也(진이인야) : 참으로 이인(異人)이다."하였다.
壬辰亂日(임진란일) : 임진 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山人年七十四(산인년칠십사) : 산인의 나이는 74세였다. 處其家分與諸姪(처기가분여제질) : 그는 가산(家産)을 처리하여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一衲携筇(일납휴공) : 승복(僧服)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 五月入逍遙山(오월입소요산) : 5월에 소요산(逍遙山)으로 입산하였다. 語僧曰(어승왈) : 그곳의 중에게 이르기를, 今年命當訖(금년명당흘) : "금년은 나의 명(命)이 다하는 해이니 須焚葬之(수분장지) : 반드시 화장(火葬)해 달라."고 말하였다. 未久(미구) : 오래지 않아 賊至(적지) : 적군이 들어와 坐而受刃(좌이수인) : 앉은 채로 칼에 찔렸는데, 其血如白膏(기혈여백고) : 그의 피는 하얀 기름 같았으며 立不僵(립불강) : 시체가 엎어지지도 않았다. 俄而大雷雨(아이대뢰우) : 잠시 후에 큰 뇌성을 치며 비가 내리자 賊懼而去(적구이거) : 적군은 겁이 나서 가버렸다.
山僧茶毗(산승다비) : 산승(山僧)이 다비(茶毗)를 하자 則瑞光瞩天三晝夜(칙서광촉천삼주야) : 서광(瑞光)이 3일 동안 밤낮으로 하늘에 잇대어 있었고 得舍利七十二粒(득사리칠십이립) : 사리(舍利) 72개를 얻었다. 其大如芡實也(기대여검실야) : 그 중에서 큰 것은 가시연[芡] 열매만큼 컸었고, 紺碧(감벽) : 감청(紺靑)의 빛깔을 띠었다. 藏之塔中(장지탑중) : 모두를 탑(塔) 속에 매장해 두었다.
是年九月(시년구월) : 이 해 9월에 山人至江華鄭䨜家(산인지강화정붕가) : 산인(山人)은 강화도(江華島)에 사는 정붕(鄭䨜)의 집에 왔었는데, 䨜不知其死(䨜불지기사) : 정붕은 그의 죽음을 몰랐으며 留三日去(류삼일거) : 3일이나 머물다가 가면서 自言往金剛山(자언왕금강산) : 금강산으로 간다고 말하더란다. 明年方知其死(명년방지기사) : 다음 해에야 비로소 그가 죽었음을 알았는데, 人謂劍解也(인위검해야) :사람들은, 죽은 뒤에 䨜亦遇異人(䨜역우이인) : 신선(神仙)이 된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善占侯風鑑(선점후풍감) : 정붕(鄭䨜)이란 사람 또한 이인(異人)을 만나서 점(占)을 잘 치고 象律家(상률가) : 관상을 잘 보던 상률가(象律家)였다. 言多奇中(언다기중) : 하는 말마다 대부분 기이하게 적중하였으며 爲齋郞不受(위재랑불수) : 재랑(齋郞 참봉(參奉))을 제수(除授)했으나 받지를 않았다. 或言其能役鬼(혹언기능역귀) : 혹자는, 그가 귀신을 부릴 수 있었는데 早卒(조졸) : 젊어서 죽었다고 하였다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허균(許筠)
蓀谷山人李達字益之(손곡산인리달자익지) : 손곡산인(蓀谷山人) 이달(李達)의 자는 익지(益之)로 雙梅堂李詹之後(쌍매당리첨지후) : 쌍매당(雙梅堂) 이첨 의 후손이다. 其母賤(기모천) : 그는 어머니가 천인(賤人)이어서 不能用於世(불능용어세) : 세상에 쓰여질 수 없었다. 居于原州蓀谷(거우원주손곡) : 원주(原州)의 손곡(蓀谷)에 살면서 以自號也(이자호야) : 자신의 호(號)로 하였다.
達少時(달소시) : 달(達)은 젊은 시절에 於書無所不讀(어서무소불독) :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綴文甚富(철문심부) : 지은 글도 무척 많았다. 爲漢吏學官(위한리학관) : 한리학관이 되었지만 有不合(유불합) : 합당치 못한 일이 있어 棄去之(기거지) : 벼슬을 버리고 가버렸다. 從崔孤竹慶昌(종최고죽경창) : 고죽 최경창과 白玉峯光勳遊(백옥봉광훈유) : 옥봉 백광훈을 따라 노닐며
相得懽甚(상득환심) : 서로 마음이 맞아 아주 기뻐하고 結詩社(결시사) : 시사(詩社)를 결성하였다. 達方法蘇長公(달방법소장공) : 달은 한창 소장공을 본받아, 得其髓(득기수) : 그 요체를 터득하여 一操筆輒寫數百篇(일조필첩사수백편) : 한번 붓을 잡으면 문득 수백 편을 적어 냈으나 皆穠贍可詠(개농섬가영) : 모두 농섬(穠贍)하여 읊기에 좋은 시들이었다.
一日思菴相謂達曰(일일사암상위달왈) : 하루는 사암 정승이 달에게 말해주기를 詩道當以爲唐爲正(시도당이위당위정) :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 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되네. 子瞻雖豪放(자첨수호방) : 자첨의 시는 호방(豪放)하기는 하지만 已落第二義也(이락제이의야) : 이미 당시의 아래로 떨어지네."하였다. 遂抽架上太白樂府歌吟(수추가상태백악부가음) : 그리고는 시렁 위에서 이태백(李太白)의 악부(樂府)ㆍ가음시(歌吟詩), 王孟近體以示之(왕맹근체이시지) : 왕유(王維)ㆍ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찾아내서 보여주었다. 達矍然知正法之在是(달확연지정법지재시) : 달은 깜짝 놀란 듯 정법이 거기에 있음을 알았다. 遂盡捐故學(수진연고학) : 드디어 전에 배운 기법을 완전히 버리고, 歸舊所隱蓀谷之莊(귀구소은손곡지장) : 예전에 숨어 살던 손곡(蓀谷)의 전장(田莊)으로 돌아갔다.
取文選太白及盛唐十二家(취문선태백급성당십이가) : 《문선(文選)》과 이태백 및 성당(盛唐)의 십이가․ 劉隨州(류수주) : 유 수주 韋左史曁伯謙唐音(위좌사기백겸당음) : 위 좌사와 백겸의《당음(唐音)》까지를 꺼내서 伏而誦之(복이송지) : 문을 닫고 외었다. 夜以繼晷(야이계귀) : 밤이면 날을 새운 적도 있었고, 膝不離坐席(슬불리좌석) : 온종일 무릎을 자리에서 떼지 않기도 하였다. 凡五年(범오년) : 이렇게 하여 5년을 지내자 悅然若有悟(열연약유오) : 어렴풋이 깨우쳐짐이 있었다. 試發之詩(시발지시) : 시험삼아 시를 지었더니 則語甚淸切(칙어심청절) : 어휘가 무척 청절(淸切)하여 一洗舊日熊(일세구일웅) : 옛날의 수법은 완전히 씻어졌었다.
卽倣諸家體而作長短篇及律絶句(즉방제가체이작장단편급률절구) : 그리하여 당 나라 여러 시인들의 시체(詩體)를 본받아 장편(長篇)ㆍ단편(短篇) 및 율시(律詩)ㆍ절구(絶句)를 지어냈다. 鍛字聲揣律摩有不當於度(단자성췌률마유불당어도) : 글자와 구절을 단련(鍛鍊)하고 성음(聲音)과 운율(韻律)을 췌마(揣摩)하면서, 법도에 부당함이 있으면 則月竄而歲改之(칙월찬이세개지) : 달이 넘고 해가 가도록 개찬(改竄)을 거듭하였다. 凡著十餘篇(범저십여편) : 그러한 노력을 기울여 10여 편을 지어서 乃出而詠之諸公間(내출이영지제공간) : 비로소 세상에 내놓고 여러분들 사이에서 읊자, 諸公嗟異之(제공차이지) : 모두 감탄해 마지 않으며 깜짝 놀랐었다. 崔白皆以爲不可及(최백개이위불가급) : 최고죽(崔孤竹)ㆍ백옥봉(白玉峯) 등도 모두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고, 而霽峯荷谷一代名爲詩者(이제봉하곡일대명위시자) : 제봉․ 하곡과 같은 당대의 시로 이름난 분들이 皆推以爲盛唐(개추이위성당) : 모두 성당(盛唐) 풍의 시를 짓는다고 추켜 세웠다.
其詩淸新雅麗(기시청신아려) : 그의 시는 청신(淸新)하고 아려(雅麗)하여 高者出入王孟高岑(고자출입왕맹고잠) : 수준 높게 지은 것은 왕유ㆍ맹호연ㆍ고적(高適)ㆍ잠삼(岑參)에 버금하고, 而下不失劉錢之韻(이하불실류전지운) : 수준이 낮은 것도 유장경(劉長卿)ㆍ전기의 운율을 잃지 않았다.
自羅麗以下(자라려이하) : 신라(新羅)ㆍ고려(高麗) 이래로 爲唐詩者皆莫及焉(위당시자개막급언) : 당시(唐詩)를 지었다고 하는 사람 중 아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寔思菴鼓舞之力(식사암고무지력) : 정말로 사암(思菴)이 고무시켜 준 힘이었으니, 而其陳涉之啓漢高乎(이기진섭지계한고호) : 그것은 진섭이 한 고조(漢高祖)의 창업을 열어 준 것이라고나 할까.
達以是名動東國(달이시명동동국) : 달은 이 때문에 이름이 우리나라에 울렸고, 貴之而捨其爲人(귀지이사기위인) : 귀하게 여겨져 그의 신분은 놓아두고도 稱譽不替者(칭예불체자) : 칭찬해 마지 않는 분들로 詞林三四鉅公也(사림삼사거공야) : 시문(詩文)에 뛰어난 3-4명의 거장(巨匠)들이 있었다. 而俗人之憎嫉者(이속인지증질자) : 그러나 속인(俗人)들 중에는 증오하고 미워하는 자들이 比肩林立(비견림립) : 줄줄이 이어 있어, 屢加以汚衊(루가이오멸) : 여러 번 더러운 누명을 덮어씌우며 寘之刑網(치지형망) : 형벌의 그물에 밀어 넣었지만 卒莫能殺而奪其名也(졸막능살이탈기명야) : 끝내 죽게 하거나 그의 명성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達貌不雅(달모불아) : 달은 용모가 아담하지 못하고 性且蕩不檢(성차탕불검) : 성품도 호탕하여 검속(檢束)하지 않았다. 又習俗禮(우습속례) : 더구나 시속(時俗)의 예법에 익숙하지도 못하여 以此忤於時(이차오어시) : 이런 것들 때문에 시류(時流)에 거슬렸었다.
而善談今古(이선담금고) : 그는 고금(古今)의 이야기를 잘했으며, 及山水佳致(급산수가치) : 산수가 아름다운 곳에 이르면 喜酒(희주) : 술을 즐겨 마셨다. 能晉人書(희주능진인서) : 진(晉) 나라 사람에 가깝도록 글씨도 잘 썼다. 其中空洞無封畛(기중공동무봉진) : 그의 마음은 툭 트여 한계가 없었고, 不事產業(불사산업) : 먹고 사는 생업에는 종사하지 않아서 人或以此愛之(인혹이차애지) : 사람들 중에는 이 때문에 더 그를 좋아하는 이도 있었다.
平生無着身地(평생무착신지) : 평생 동안 몸을 붙일 곳도 없어 流離乞食於四方(류리걸식어사방) : 사방으로 유리(流離)하며 걸식(乞食)까지 했으니, 人多賤之(인다천지) : 사람들이 대부분 천하게 여겼다. 窮厄以老(궁액이로) : 그렇지만 궁색한 액운으로 늙어갔음은, 信乎坐其詩也(신호좌기시야) : 말할 나위도 없이, 그가 시 짓는 일에만 몰두했던 탓이었다. 然其身困而不朽者存(연기신곤이불후자존) : 그러나 그의 몸이야 곤궁했어도 불후(不朽)의 명시를 남겼으니 豈肯以一時富貴(기긍이일시부귀) : 한 때의 부귀로 易此名也(역차명야) : 어떻게 그와 같은 명예를 바꿀 수 있으랴!
所著殆失盡(소저태실진) : 지은 글들이 거의 다 없어질 지경인데 不佞粹爲四卷以傳云(불녕수위사권이전운) : 내가 가려서 4권으로 만들어 전해지게 하였다.
外史氏曰(외사씨왈) :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朱太史之蕃(주태사지번) : 태사(太史) 번은 嘗觀達詩(상관달시) : 일찍이 달의 시를 보았다. 讀至漫浪舞歌(독지만랑무가) : 만랑무가(漫浪舞歌)라는 시를 읽고서는 擊節嗟嘗曰(격절차상왈) : 격절차상(擊節嗟賞)하면서 이르기를 斯作去太白(사작거태백) : "이 작품이 이태백(李太白)의 시에서 亦何遠乎(역하원호) : 또한 어찌 멀리 있겠는가."했으며, 權石洲韠見其斑竹怨曰(권석주필견기반죽원왈) : 석주(石洲) 권필도 달의 반죽원(斑竹怨)이라는 시를 보고서, 置之靑蓮集中(치지청련집중) : "청련의 시집 속에 넣어도, 具眼者不易辨也(구안자불역변야) : 안목(眼目) 갖춘 사람일 망정 판별하기 쉽지 않으리라."했었다. 此二人者(차이인자) : 이 두 사람이 豈妄言者耶(기망언자야) : 어찌 망언(妄言)을 할 사람이겠는가. 噫達之詩(희달지시) : 슬프다, 달의 시야말로 信奇矣哉(신기의재) : 진실로 기특했었다.
학론(學論)-허균(許筠)
古之爲學者(고지위학자) : 옛날의 학문하는 사람이란 非欲獨善其身也(비욕독선기신야) :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蓋將窮理而應天下之變(개장궁리이응천하지변) : 대체로 이치를 궁구해서 천하의 변화에 대응하고, 明道而開後來之學(명도이개후래지학) : 도(道)를 밝혀서 뒤에 올 학문을 열어주어 使天下後世(사천하후세) : 천하 후세로 하여금
曉然知吾學之可尊(효연지오학지가존) : 우리 학문은 높일 만하고, 而道脈賴我以不墜(이도맥뢰아이불추) : 도맥(道脈)이 자기를 힘입어 끊어지지 않았음을 환하게 알리려 하였다. 是儒者之先務(시유자지선무) : 이렇게 하는 것을 유자(儒者)의 선무(先務)로 하였으니 其志爲不亦公乎(기지위불역공호) : 그들의 마음씨는 역시 공변되지 않은가?
近世之所謂學者(근세지소위학자) : 근세(近世)의 학자라고 말해지는 사람이란 非爲吾學之可尊也(비위오학지가존야) : 우리 학문을 높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며, 亦非欲獨善其身也(역비욕독선기신야) : 또한 홀로 제 몸만을 착하게 하려고도 않는다. 不過掇拾口耳(불과철습구이) : 입으로 조잘대고 귀로 들은 것만을 주워 모아 外飾言動(외식언동) : 겉으로 언동(言動)을 꾸미는 데에 지나지 않으나, 而自稱曰吾明道也(이자칭왈오명도야) : 자신은, 나는 도를 밝힌다고 말한다 吾窮理也(오궁리야) : 나는 이치를 찾는다고 하여 以眩一時視聽(이현일시시청) : 한 시대의 눈과 귀를 현혹시켜 而究其終則躐取顯名而已(이구기종칙렵취현명이이) : 그 끝을 찾으면 현달한 명성을 낚을 뿐 其於尊性傳道之實(기어존성전도지실) : 성명을 높이고 도를 전하는 실질에 있어서는 瞠乎若罔窺者(당호약망규자) : 자세히 살피지 못하게 되어 其志則私矣(기지칙사의) :그 뜻가짐은 사사롭게 되는 것이다 然則公私之分(연칙공사지분) : 그러니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구분하고 而眞僞之判矣(이진위지판의) : 그리고 진실돈 일과 거짓된 일의 판단해야 한다 奈何數十年來(내하수십년래) : 어찌하여 수십 년 이래로 談者必曰某學者某眞儒(담자필왈모학자모진유) : 말하는 사람이라면,
妄相推詡之不暇(망상추후지불가) : 허망하게 서로 추어주고 자랑하기에 여가가 없는가 其亦惑矣(기역혹의) : 그런 일은 또한 미혹된 짓일 것이다.
蓋嘗見所謂眞儒者用於世(개상견소위진유자용어세) : 일찍이 보건대, 소위 진유(眞儒)란 세상에 쓰이게 되면 則唐虞之治(칙당우지치) : 요(堯)ㆍ순(舜) 시대의 다스림과 禹湯文武之功(우탕문무지공) : 우(禹)ㆍ탕(湯)ㆍ문(文)ㆍ무(武)의 공적이 著於事者如是(저어사자여시) : 사업에 나타난 것들이 이와 같았고, 不用則孔孟之訓(불용칙공맹지훈) : 쓰이지 못하더라도 공(孔)ㆍ맹(孟)의 가르침과 濂洛關閩之說(렴락관민지설) : 염,낙,관,민의 학설을 載於書者又如是(재어서자우여시) : 책에 기록한 것들이 또 이와 같아서 雖經千萬世(수경천만세) : 비록 천만년이 지나도 而人無異議者(이인무이의자) :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이 是無他(시무타) : 없는 것이다. 其志公也(기지공야) : 이건 다름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씨가 공변되어서다.
今之僞者則空言游談(금지위자칙공언유담) : 오늘날의 거짓 선비는 실속 없고 근거 없는 말을 하여 動以伊傅周孔事業自期(동이이부주공사업자기) : 입을 열면 이윤ㆍ부열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의 사업을 자신이 담당할 수 있다고 하지만, 及其用也(급기용야) : 그가 쓰여지면 則手足失措(칙수족실조) : 손과 발을 놀리지도 못하고 僨而不能自收(분이불능자수) : 실패하여 자신을 수습할 수도 없게 되어 當世笑之(당세소지) : 당세의 비웃음과 後世議之(후세의지) : 후세의 의논이 있기 마련이다. 稍黠者預料若是(초힐자예료약시) : 약간 더 교활한 자들은 이렇게 되리라고 미리 요량하고, 恐敗其名(공패기명) : 명망이 훼손됨을 두려워한다. 故輒不出而藏其拙也(고첩불출이장기졸야) : 그래서 문득 나서지도 않고 그의 졸렬함을 감춰버린다. 是亦無他(시역무타) : 이런 것 역시 다름이 아니라 其志之私也(기지지사야) : 그 마음씨가 사심(私心)이어서다.
嗟乎(차호) : 슬프다! 僞者亂眞(위자란진) : 거짓이 참을 어지럽게 하여 一至此極(일지차극) : 온통 이러한 극단에 이르게 하고는, 遂使人君厭其道學(수사인군염기도학) : 마침내 임금으로 하여금 도학(道學)을 싫어하여 以爲無可用(이위무가용) : 쓸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도록 하였다. 是僞私者之罪也(시위사자지죄야) : 이는 거짓과 사심을 지닌 자들의 죄이지 豈眞儒之使然也(기진유지사연야) : 어찌 진유(眞儒)들이 그렇게 하도록 하였으랴. 吾東所謂道學之儒(오동소위도학지유) :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도학(道學)한다는 선비들이 或罹禍(혹리화) : 더러는 화란에 걸리고 或不終其施(혹불종기시) : 더러는 끝까지 그의 시정책을 펴지 못하기도 하였다. 未知當世在上者(미지당세재상자) : 모르기는 하지만, 당세 임금으로 있던 분들이 果能用其道而行之(과능용기도이행지) : 과연 그들의 도(道)를 써서 시행했더라면, 則功烈能比於古人而致斯世於唐虞歟(칙공렬능비어고인이치사세어당우여) : 공렬(功烈)을 옛사람에게 비길 수 있었고 이 세상을 요ㆍ순의 시대와 같게 할 수 있었겠는가?
自國論之貳也(자국론지이야) : 국론(國論)이 두 갈래로 나뉨으로부터, 私議太熾(사의태치) : 사사로움에 치우친 의논들이 무척 치열해져 或以彼而毀此(혹이피이훼차) : 더러는 저들만이어야 한다고 이들을 헐뜯고, 或尊甲而斥乙(혹존갑이척을) : 더러는 갑(甲)만을 높이고 을(乙)은 배척하여 紛紜決裂(분운결렬) : 소란하게 결렬되어서 未定其是非(미정기시비) : 그 옳고 그름이 정해지지 못했다. 是莫非皆私其聞見而然也(시막비개사기문견이연야) : 이거야말로 모두 사심으로 듣고 보아서 그렇게 되지 않음이 없으니 尙何尤哉(상하우재) : 어느 누구를 탓하랴! 頃者祠所謂五賢矣(경자사소위오현의) : 얼마 전에 이른바 오현을 문묘(文廟)에 배향하였다. 議者曰(의자왈) : 당시 의논하던 사람들은,
五人外不可祀也(오인외불가사야) : "다섯 분 이외에 배향해서는 안 된다."했는데, 是大可笑也(시대가소야) : 이것도 매우 가소로운 일이다. 賢者豈有定額(현자기유정액) : 어진이들이 어떻게 정해진 인원이 있다고 而必以五耶(이필이오야) : 반드시 다섯 분으로만 한정하랴. 若然則後雖有孔顏之學(약연칙후수유공안지학) : 만약 그렇다면 이후에는 공자나 안자(顔子) 같은 학자가 있더라도 亦不得祀耶(역불득사야) : 배향하지 못한다는 것인가? 孔顏之生(공안지생) :공자ㆍ안자 같은 분들의 탄생은 不可卜也(불가복야) : 예정할 수 없는 것이다.
且如冶隱之忠而親傳禹鄭之統(차여야은지충이친전우정지통) : 또 야은(野隱) 길재(吉再) 같은 충성심으로 우탁(禹倬)ㆍ정몽주(鄭夢周)의 학통을 직접 전해 받았고, 花潭之超詣自得(화담지초예자득) : 서화담의 초월한 경지를 혼자 터득함과 栗谷之朗源(률곡지랑원) : 이율곡의 밝은 식견과 큰 아량까지를, 夫豈鮮腆無可取(부기선전무가취) : 어떻게 후중함이 적으니 취할 게 없다고 하여 而略不擧議(이략불거의) : 전혀 거론하지 않는 것인가? 或有訾謷之者(혹유자오지자) : 더러는 헐뜯는 사람도 있으니 玆亦私僞之害也(자역사위지해야) : 이점 또한 사심과 거짓의 해악이다.
如使寒暄一蠹不幸生於百年之後(여사한훤일두불행생어백년지후) : 만약 한훤, 김굉필(金宏弼)과 일두, 정여창(鄭汝昌)이 불행히도 1백 년 후에 태어났다면 則安保其不訾謷也(칙안보기불자오야) : 어떻게 그러한 헐뜯김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보장하랴. 又使栗谷幸而生於百年之前(우사률곡행이생어백년지전) : 또 율곡(栗谷)으로 하여금 다행히도 1백 년의 앞에만 태어나게 했다면 則亦安保其不尊尙也(칙역안보기불존상야) : 그분이 존숭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此由於志之不公而貴耳之恒情也(차유어지지불공이귀이지항정야) : 이건 마음씨의 공변되지 못함에서 연유되는 것이요, 관찰하기는 싫어하고 남의 말 듣기만을 숭상하는 일반적인 세태에서 나오는 짓이다
人君苟明公私之辨(인군구명공사지변) : 임금이 진실로 공(公)과 사(私)의 분별을 밝게 한다면, 則眞僞不難知矣(칙진위불난지의) : 참과 거짓도 알아내기 어렵지 않으리라. 旣辨公私眞僞(기변공사진위) : 이미 공과 사, 참과 거짓을 분별하면 則必有窮理明道者出而行其學(칙필유궁리명도자출이행기학) :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고 도리를 밝히는 사람이 나와서 그들이 배운 것을 행하리라. 飾其外者不敢售其計(식기외자불감수기계) : 그들의 겉이나 꾸미는 자들은 감히 그들의 계책을 행하지 못하여 皆醇然去僞矣(개순연거위의) : 모두 깨끗이 거짓을 버릴 것이며 國之大是非(국지대시비) : 나라의 커다란 시비(是非)도 亦從而定矣(역종이정의) : 역시 따라서 정해지리라.
然則其機安在(연칙기기안재) : 그렇다면 그러한 기틀[機]이 어디에 있을까? 在乎人君一身也(재호인군일신야) : 임금의 한 몸에 있으며, 而亦不過曰正其心而已(이역불과왈정기심이이) : 역시 '그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라는 데 있을 뿐이다.
정론(政論)-허균(許筠)
自古帝王之爲政也(자고제왕지위정야) : 예부터 제왕(帝王)이 나라를 다스림에 非獨自爲政也(비독자위정야) : 혼자서 정치하지는 않았다. 必以輔相之臣以助之(필이보상지신이조지) : 반드시 보상(輔相)하는 신하가 그를 도와 주었다. 輔相者得其人(보상자득기인) : 보상해 주는 사람으로 적합한 사람만 얻으면 則天下國家之事(칙천하국가지사) : 천하 국가의 일을 可得而理也(가득이리야) : 적의하게 다스릴 수 있었다. 此甚較著者(차심교저자) : 이런 것으로 매우 뚜렷이 나타난 것으로는, 堯舜禹湯之爲君(요순우탕지위군) : 요(堯)ㆍ순(舜)ㆍ우(禹)ㆍ탕(湯)이 임금이 되었을 때에는 必有皐稷益尹之佐(필유고직익윤지좌) : 반드시 고요(皐陶)ㆍ직(稷)ㆍ익(益)ㆍ이윤(伊尹) 등의 보좌가 있었다. 然後可致雍煕之治(연후가치옹희지치) : 그런 다음에 옹희를 이룰 수 있었으니, 況輓近世耶(황만근세야) : 하물며 근래의 세상에서야 말해 무엇하랴.
後世之君(후세지군) : 후세의 임금은 雖有願治者(수유원치자) : 비록 잘 다스리기를 원하던 사람은 있었지만 而恒患輔佐之無其人(이항환보좌지무기인) : 항상 보좌해 줄 적당한 사람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爲臣者(위신자) : 신하된 사람으로도 雖抱負如古人(수포부여고인) : 비록 옛사람과 같은 포부를 지니고는 而或患不遇(이혹환불우) : 더러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함을 걱정하고 或患其用不終(혹환기용불종) : 더러는 그가 끝가지 쓰이지 못함을 염려하였다. 無怪乎政之不古而治日益卑(무괴호정지불고이치일익비) : 그러고 보면 정치가 예전과 같지 못하고 다스림이 날이 갈수록 저속해짐은 괴상하게 여길 것도 없으니, 豈非生民之不幸耶(기비생민지불행야) : 어찌 백성들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我國雖僻小(아국수벽소) : 우리나라가 비록 궁벽한 곳의 작은 나라이지만 有君臣焉有民社焉(유군신언유민사언) : 임금과 신하들이 있고 백성과 사직(社稷)도 있다. 爲政者信法三代(위정자신법삼대) : 위정자(爲政者)가 참으로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를 본받는다면 則其致雍煕之化也(칙기치옹희지화야) : 그 시절의 옹희(雍熙)의 덕화(德化)에 도달할 수 있으리니, 奚難哉(해난재) :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嘗觀英廟之任黃許(상관영묘지임황허) : 세종 대왕이 황희(黃喜)와 허조(許稠)를 임용했던 것을 본다면 可知也已(가지야이) : 알 수 있다. 彼黃許者(피황허자) : 저 황희와 허조는 非儒者也(비유자야) : 유자(儒者)가 아니었고 非才臣也(비재신야) : 재능 있는 신하도 아니었다. 特以木訥剛毅(특이목눌강의) : 오직 묵직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不面從君違者也(불면종군위자야) : 임금이 잘못하는 일에까지 그냥 따르기만 하지는 않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當英廟時(당영묘시) : 세종 당시만 하더라도 締構未完(체구미완) : 국가의 윤곽이 완성되지 못하여 國事多可更革(국사다가경혁) : 국사(國事)를 대부분 개혁할 수도 있었는데, 而二臣者(이이신자) : 두 신하는 不勉以王道(불면이왕도) : 왕도(王道)로써 힘쓰지 않고 徒以雅鎭爲高(도이아진위고) : 다만 너그럽게 진정(鎭定)시키는 것만을 최고로 여겼었다. 是豈能贊襄吁兪(시기능찬양우유) : 이래서야 어떻게 임금의 정사를 도와 如益稷者否乎(여익직자부호) : 익(益)ㆍ직(稷)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겠는가?
然國賴以維持至于今者지우금자(연국뢰이유지) : 그러나 나라가 신뢰받고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것은 皆英廟力而稱二臣爲張(개영묘력이칭이신위장좌야) : 모두 세종(世宗)의 힘이었으며, 두 신하가 보좌의 역할을 했었노라고 말해진다. 使如皐陶益稷者輔而爲政(사여고요익직자보이위정) : 만약 고요ㆍ익ㆍ직 같은 분들이 보좌하여 정치를 하였다면 則其功烈豈如是卑哉(칙기공렬기여시비재) : 그 공렬(功烈)이 왜 이 정도로 낮으랴.
噫先王之政(희선왕지정) : 아! 선왕(先王 선조(宣祖))의 정치는 可謂明矣(가위명의) : 밝았다고 말할 수 있다. 當時輔佐之臣(당시보좌지신) : 당시에 보좌했던 신하들이야 不爲不多(불위불다) : 많기도 했지만 其眷而相信者(기권이상신자) : 애호하며 서로 믿었던 사람은 李珥也(리이야) : 이이(李珥)였으며, 其任專而責以事者(기임전이책이사자) : 전권(專權)을 맡기고 일하도록 책임 준 사람은 柳成龍也(류성룡야) : 유성룡(柳成龍)이었다. 二臣者(이신자) : 두 분 신하는 亦可謂儒者而材臣(역가위유자이재신야) : 역시 유자(儒者)이자 재능 있는 신하였다고 말할 만하였다. 其委任責成之意(기위임책성지의) : 그들에게 임무를 맡기고 일의 성취를 독책하던 뜻이 非不至矣(비불지의) : 지극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而卒莫之展者(이졸막지전자) : 끝내 그들의 포부를 펴지 못했던 것은 非其才不逮也(비기재불체야) : 그들의 재능이 미치지 못함이 아니었고 物有以害之也(물유이해지야) : 방해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成龍當恇攘日(성룡당광양일) : 유성룡은 어지럽기 짝이 없던 임진 왜란 때를 당해서 其竭精悉智(기갈정실지) : 그의 정력과 지혜를 다했으나, 而或濟或閼者(이혹제혹알자) : 더러는 건져냈고 더러는 막혔던 게 時勢之有便否也(시세지유편부야) : 그 당시 형편의 편리함과 편리하지 못함이 있어서였다. 其用李舜臣一着(기용리순신일착) : 그가 이 순신(李舜臣)을 등용한 한 건(件)은 乃中興大機(내중흥대기) : 바로 나라를 중흥시킨 큰 기틀이었다. 而攻成龍者(이공성룡자) : 그런데 유성룡을 공격하던 사람들이 幷罪舜臣(병죄순신) : 이순신까지도 싸잡아 죄주었으니, 其害于國(기해우국) : 그 해가 나라에 미침이 亦不勝繁也(역불승번야) : 그 이상 더 심할 수 없었다.
珥之困也(이지곤야) : 이이가 곤욕을 당했던 것으로는 議者以爲更貢案不便也(의자이위경공안불편야) : 의론하던 사람들이, 공안(貢案)을 고치려 했음은 불편했다느니, 列邑置額外兵不當也(렬읍치액외병불당야) : 여러 군(郡)에 액외병을 둠은 부당하다느니, 輸粟授爵不宜也(수속수작불의야) : 곡식을 바치고 관작을 제수(除授)받음은 마땅치 못하다느니, 通庶孼不可也(통서얼불가야) : 서얼(庶孼)에게 벼슬길을 열어주자 함도 옳지 못하다느니, 更尋城堡不合也(경심성보불합야) : 성(城)과 보(堡)를 다시 쌓자는 것도 합당치 못하다느니 했던 때문이었다. 逮兵後(체병후) : 병란(兵亂)을 치른 뒤에 朝廷孜孜講磨求所以抗賊便民者(조정자자강마구소이항적편민자) : 조정에서 부지런히 왜적을 막고 백성을 편하게 하려고 부지런히 강구하던 방책으로는 不出此五者(불출차오자) : 위의 다섯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何也(하야) : 왜 그랬을까? 蓋珥之先見(개이지선견) : 대체로 이이가 앞날을 내다본 것은 已燭於數十年之前(이촉어수십년지전) : 수십 년 전에 이미 명확하였다. 雖知數者之施在平日爲苟簡(수지수자지시재평일위구간) : 몇 가지의 시행은 평상시에는 구차스런 일임을 알았지만 而思患預防(이사환예방) : 환난을 생각하고 예방하는 데에는 不得不更張故也(불득불경장고야) : 경장(更張)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犯衆忌而敢言之(범중기이감언지) : 때문에 뭇 사람들의 꺼려함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말했었다. . 俗士攣於拘見(속사련어구견) : 그러나 속된 선비들은 좁은 소견에 이끌려서 以爲擾以爲不妥(이위요이위불타) : 소란하게 된다느니, 타당하지 않다 하여 紛然惎齕(분연기흘) : 요란하게 차질을 내었으니 宜其身之不容(의기신지불용) : 당연히 그의 지위도 허용되지 못했고 而國之不可爲也(이국지불가위야) : 나라도 되어질 수 없었다. 然今之論者(연금지론자) : 그러나 지금의 논의하는 자들은 力斥珥無遺力(력척이무유력) : 온 힘을 다하여 이이를 배척하면서 而奉行此五者猶不及焉(이봉행차오자유불급언) : 앞의 다섯 가지 일을 받들어 시행하는데 오히려 힘을 다하려 않으니 是大可笑也(시대가소야) : 이거야말로 매우 가소로운 짓이다
先王勵精圖理之日(선왕려정도리지일) : 선왕(先王)이 온갖 정력으로 다스림을 도모하던 시절에, 二臣者從容得展其蘊(이신자종용득전기온) : 두 분 신하가 조용하게 그들이 쌓아 둔 포부를 펼 수 있어서, 而上從下奉無異議(이상종하봉무이의) : 위에서는 따르고 아래에서는 받들어 딴 논의들이 없었더라면 則雖不必其回煕運(칙수불필기회희운) : 비록 태평성대의 운세를 회복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而亦可捍外侮矣(이역가한외모의) : 역시 외적의 침략은 막아낼 수 있었으리라.
嘵嘵者蠭起啄之(효효자蠭기탁지) : 그런데 지껄여대는 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쪼아대며, 必遏斥乃已(필알척내이) : 기필코 가로막아 배척하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倘使喜稠當之(당사희조당지) : 설사 황희나 허조가 그러한 처지에 놓였더라면, 則必指爲事二姓者而俾不得一日(칙필지위사이성자이비불득일일안어랑묘) : 반드시 두 성씨가 하루인들 낭묘에 편안히 있을 수 없도록 하였을 것이니, 安得雍容雅鎭如英廟日也(안득옹용아진여영묘일야) : 어떻게 세종 때처럼 옹용(雍容)하고 아진(雅鎭)한 일을 하였으랴.
後世之無善治者(후세지무선치자) : 후세에 훌륭한 다스림이 없었던 것은 率坐于是也(솔좌우시야) : 모두 이런 데에서 연유한다. 然則如之何而可(연칙여지하이가)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曰明以察其下(왈명이찰기하) : '밝음으로써 아랫사람을 살피고, 信以任其臣(신이임기신) : 믿음으로써 신하에게 맡긴다.'라는 斯二者足以盡之(사이자족이진지) : 이 두 가지면 다할 수 있다고 하겠는데, 而其終執與斷而已矣(이기종집여단이이의) : 그 결과야 굳은 의지와 결단에서만 나올 뿐이다
유재(遺才)-허균(許筠)
爲國家者(위국가자) :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과, 所與共理天職(소여공리천직) : 함께 천직을 다스릴 사람은 非才莫可也(비재막가야) : 인재가 아니고서는 되지 않는다. 天之生才(천지생재) : 하늘이 인재를 태어나게 함은 原爲一代之用(원위일대지용) :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해서이다.
而其生之也(이기생지야) : 그래서 인재를 태어나게 함에는 不以貴望而豐其賦(불이귀망이풍기부) : 귀한 집안의 태생이라 하여 그 성품을 풍부하게 해주지 않고, 不以側陋而嗇其稟(불이측루이색기품) : 고미천한 집안의 태생이라고 하여 그 품성을 인색하게 주지만은 않는다. 故古先哲辟知其然也(고고선철벽지기연야) : 그런 때문에 옛날의 선철(先哲)들은 명확히 그런 줄을 알아서, 或求之於草野之中(혹구지어초야지중) : 더러는 초야(草野)에서도 인재를 구했으며, 或拔之於行伍(혹발지어행오) : 더러는 병사(兵士)의 대열에서 뽑아냈고, 或擢於降虜敗亡之將(혹탁어강로패망지장) : 더러는 패전하여 항복한 적장을 발탁하기도 하였다. 或擧賊或用莞庫士(혹거적혹용완고사) : 더러는 도둑 무리에서 고르며, 더러는 창고지기를 등용했었다. 用之者咸適其宜(용지자함적기의) : 그렇게 하여 임용한 사람마다 모두 임무를 맡기기에 적당하였고, 而見用者亦各展其才(이견용자역각전기재) : 임용당한 사람들도 각자가 지닌 재능을 펼쳤었다. 國以蒙福(국이몽복) : 나라는 복(福)을 받았고 而治之日隆(이치지일륭) : 다스림이 날로 융성하였음은 用此道也(용차도야) : 이러한 도(道)를 써서였다. 以天下之大(이천하지대) : 그래서 천하를 다스리는 큰 나라로서도 猶慮其才之或遺(유려기재지혹유) : 혹시라도 그러한 인재를 놓칠세라 오히려 염려하여, 兢兢然側席而思(긍긍연측석이사) : 근심 많은 듯 앉거나 누워서도 생각하고 據饋而歎(거궤이탄) : 밥상 머리에 앉아서도 탄식했었다.
奈何山林草澤(내하산림초택) : 그런데, 어찌해서 산림(山林)과 초택(草澤)에서 懷寶不售者比比(회보불수자비비) : 보배스러운 포부를 가슴에 품고도 벼슬하지 못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하며, 而英俊沈於下僚(이영준침어하료) : 영특하고 준수한 인재들이 지위 낮은 벼슬에 침체하여 卒不得試其抱負者(졸불득시기포부자) : 끝내 그들의 포부를 시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亦多有之(역다유지) : 그렇게도 많이 있는가! 信乎才之難悉得(신호재지난실득) : 정말이로다, 인재를 모두 찾아내기도 어렵고, 而用之亦難盡也(이용지역난진야) : 쓰더라도 재능을 다하도록 하는 일은 또한 어렵다.
我國地褊(아국지편) : 우리나라는 땅까지 좁아, 人才罕出(인재한출) : 인재가 드물게 나옴은 蓋自昔而患之矣(개자석이환지의) : 옛부터 걱정하던 일이었다. 入我朝(입아조) :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는 用人之途尤狹(용인지도우협) : 인재 등용하는 길이 더욱 좁아져, 非世胄華望(비세주화망) : 대대로 벼슬하던 명망 높은 집안이 아니면 不得通顯仕(불득통현사) : 높은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고, 而巖穴草茆之士(이암혈초묘지사) : 암혈(巖穴)이나 띳집에 사는 선비라면 則雖有奇才(칙수유기재) : 비록 기재(奇才)가 있더라도 抑鬱而不之用(억울이불지용) : 억울하게 쓰이지 못했다. 非科目進身(비과목진신) : 과거 출신(科擧出身)이 아니면 不得躡高位(불득섭고위) :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없어, 而雖德業茂著者(이수덕업무저자) : 비록 덕업(德業)이 매우 훌륭한 사람도 終不躋卿相(종불제경상) : 끝내 경상(卿相 판서나 정승)에 오르지 못한다. 天之賦才爾均也(천지부재이균야) : 하늘이 재능을 부여함은 균등한데, 而以世胄科目限之(이이세주과목한지) :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과 과거 출신으로만 한정하고 있으니 宜乎常病其乏才(의호상병기핍재) : 당연하도다, 항상 인재가 모자람을 애태움이
古今之遠且久(고금지원차구) : 예부터 지금까지 시대가 멀고 오래이며, 天下之廣(천하지광) : 세상이 넓기는 하더라도 未聞有孼出而棄其賢(미문유얼출이기기현) : 서얼(庶孼) 출신이어서 어진 인재를 버려두고, 毋改適而不用其才者(무개적이불용기재자) : 어머니가 개가(改嫁)했으니 그의 재능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듣지 못했다. 我國則不然(아국칙불연) :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니, 母賤與改適者之子孫(모천여개적자지자손) : 어머니가 천하거나 개가했으면 그 자손은 俱不齒仕路(구불치사로) : 모두 벼슬길의 차례에 끼지 못한다. 以區區之國(이구구지국) : 변변찮은 나라로서, 介於兩虜之間(개어량로지간) : 두 오랑캐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猶恐才之不爲我用(유공재지불위아용) : 모든 인재들이 나의 쓰임으로 되지 못할까 오히려 염려하더라도 或不卜其濟事(혹불복기제사) : 더러는 나라 일이 구제될지 예측하지 못한다. 乃反自塞其路而自歎曰(내반자새기로이자탄왈) : 그런데, 반대로 자신이 그러한 길을 막고는 자탄하기를,
無才無才(무재무재) : 인재가 없군, 인재가 없군."하니, 何異適越北轅(하이적월북원) : "월(越) 나라로 가면서 수레를 북쪽으로 돌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而不可使聞於隣國矣(이불가사문어린국의) : 이웃 나라에 알리지 못할 일이다. 匹夫匹婦含冤(필부필부함원) : 한 사내ㆍ한 아낙네가 원한을 품어도 而天爲之感傷(이천위지감상) : 하늘은 그들을 위해 감상(感傷)하는건데, 矧怨夫曠女半其國(신원부광녀반기국) : 하물며 원망하는 남정네ㆍ홀어미들이 나라 안의 절반이나 되니, 而欲致和氣者亦難矣(이욕치화기자역난의) : 화평한 기운을 이루는 것은 또한 어려우리라.
古之賢才(고지현재) : 옛날의 어진 인재는 多出於側微(다출어측미) : 대부분 미천한 데서 나왔다. 使當世用我之法(사당세용아지법) : 그 시대에 우리나라의 법을 사용했다면, 是范文正無相業(시범문정무상업) : 범 문정은 정승의 공업(功業)이 없었을 것이고, 而陳瓘潘良貴不得爲直臣(이진관반량귀불득위직신) : 진관과 반양귀는 직신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司馬穰苴(사마양저) : 사마양저와 衛靑之將(위청지장) : 위청과 같은 장수, 王符之文(왕부지문) : 왕부의 문장 등은 卒不見用於世否(졸불견용어세부) : 끝내 세상에 쓰이질 못했으리라. 天之生也而人棄之(천지생야이인기지) : 하늘이 낳아주셨는데 사람이 그걸 버리니, 是逆天也(시역천야) : 이건 하늘을 거역하는 짓이다.
逆天而能祈天永命者(역천이능기천영명자) : 하늘을 거역하고 하늘에 빌어 영명(永命)할 수 있던 사람은 未之有也(미지유야) : 아직 없었다. 爲國者其奉天而行之(위국자기봉천이행지) :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하늘을 받들어 하늘의 뜻대로 행한다면 則景命亦可以迓續也(칙경명역가이아속야) : 복된 운명을 또한 맞이할 수 있으리라.
소인론(小人論)-허균(許筠)
方今國家(방금국가) : 요즈음 나라에는 无小人焉(무소인언) : 소인(小人)도 없으니 亦无君子焉(역무군자언) : 또한 군자(君子)도 없다. 无小人(무소인) : 소인이 없다면 則國之幸也(칙국지행야) : 나라의 다행이지만 若无君子(약무군자) : 만약 군자가 없다면 則何能國乎(칙하능국호) : 어떻게 나라일 수 있겠는가? 否否不然(부부불연) : 절대로 그렇지는 않다. 无君子(무군자) : 군자가 없기 때문에 故亦无小人焉(고역무소인언) : 역시 소인도 없는 것이다. 向使國有君子(향사국유군자) : 만약 나라에 군자가 있다면 則小人不敢掩其跡也(칙소인불감엄기적야) : 소인들이 그들의 형적(形迹)을 감히 숨기지 못한다.
夫君子小人(부군자소인) : 대저 군자와 소인은 如陰陽晝夜(여음양주야) : 음(陰)과 양(陽), 낮과 밤 같아서 有陰則必有陽(유음칙필유양) : 음(陰)이 있으면 반드시 양(陽)이 있고 有晝則必有夜(유주칙필유야) : 낮이 있으면 반드시 밤이 있으니, 有君子則必有小人(유군자칙필유소인) : 군자가 있다면 반드시 소인도 있다. 在唐虞亦然(재당우역연) : 요ㆍ순 때에도 역시 그랬는데 . 矧後世乎(신후세호) : 하물며 뒷세상에서랴
蓋君子則正(개군자칙정) : 대개 군자라면 바르고 小人則邪(소인칙사) : 소인이라면 간사하며, 君子則是(군자칙시) : 군자라면 옳고 小人則非(소인칙비) : 소인이라면 그르며, 君子則公(군자칙공) : 군자라면 공변되고 小人則私(소인칙사) : 소인이라면 사심(私心)을 지녔으니 在上者以邪正是非公私(재상자이사정시비공사지변이찰지)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정(邪正)ㆍ시비(是非)ㆍ공사(公私)의 판단으로써 살핀다면 則彼小人者烏敢遁其情哉(칙피소인자오감둔기정재) : 저들 소인들이 어떻게 감히 그들의 실정(實情)을 숨길 것인가?
方今之所謂君子小人(방금지소위군자소인) : 요즈음의 이른바 군자ㆍ소인이란 无大相遠者(무대상원자) : 서로간에 큰 동떨어짐이 없다. 而同則皆爲君子(이동칙개위군자) : 자기들과 뜻을 같이하면 모두 군자로 여기고, 異則皆爲小人(이칙개위소인) : 달리하면 모두 소인으로 여긴다. 彼異則斥以爲邪(피이칙척이위사) : 저편이 이쪽과 다르다면 배척하여 사(邪)하다 여기고, 此同則推以爲正(차동칙추이위정) : 이편과 같이 뜻하는 사람이라면 치켜 세워 정(正)이라 여긴다. 是者是其所是(시자시기소시) : 시(是)란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 시이고, 非者非其所非(비자비기소비) : 비(非)란 그들이 그르다고 여기는 것이 비이니, 此皆由公不能勝私而然也(차개유공불능승사이연야) : 이건 모두 공(公)이 사(私)를 이길 수 없는 이유로 그런 것이다.
誠使大人君子學行才識(성사대인군자학행재식) : 진실로 대인군자(大人君子)로서 학행(學行)과 재식(才識)이 爲一時表率者(위일시표솔자) : 한 시대의 대표되는 사람으로 하여금 出而在上位(출이재상위) : 나와서 높은 지위에 있도록 하여, 以風勵具僚(이풍려구료) : 모든 관료들을 권장해 주고, 使薦紳大夫(사천신대부) : 신분 높은 대부(大夫)들로 하여금 皆知其守正奉公(개지기수정봉공) : 모두 바름을 지키고 공(公)에 봉사하며 明是非之分(명시비지분) : 시비(是非)의 분별을 밝힐 줄 알게 해 준다면, 一時淫朋(일시음붕) : 한 시대의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이 將革面之不暇(장혁면지불가) : 장차 면모를 개혁하는데 시일이 걸리지 않으리라. 安敢四分五裂(안감사분오렬) : 어떻게 감히 사분오열(四分五裂)하여 恣其跳梁如近日乎(자기도량여근일호) : 함부로 날뛰는 짓을 요즘같이 하겠는가? 然則淫朋之害(연칙음붕지해) : 그렇다면 음흉한 붕당 떼거리들의 해로움은 有甚於小人之專朝也較矣(유심어소인지전조야교의) :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함보다 심한 것이 분명하다.
國之惡小人者(국지악소인자) : 나라에서 소인들을 미워하는 것은 惡其病國而害民也(악기병국이해민야) : 그들이 나라를 병들게 하고 백성들을 해롭게 하는 것을 미워해서이다. 今則害于國而病乎民者(금칙해우국이병호민자) : 오늘날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것은 不待權奸之秉政(불대권간지병정) : 권간(權奸)이 국정을 쥐지 않고도 而若此之極(이약차지극) : 이처럼 극도에 이르렀음은, 是皆私意大行(시개사의대행) : 모두 사의(私意)가 크게 행해져서 權不出於一(권불출어일) : 권한이 한 곳에서 나오지 않고, 而紀綱已壞(이기강이괴) : 기강(紀綱)이 이미 무너져 不可復振之故也(불가부진지고야) : 다시는 진작시킬 수 없는 때문이다.
蓋所謂權奸者亦有之矣(개소위권간자역유지의) : 이른바 권간(權奸)이라는 자들도 있었다. 安老嘗弄之(안로상롱지) : 김안로가 일찍이 농간을 피웠고 元衡嘗擅之(원형상천지) : 윤원향도 일찍이 전권을 휘둘렀다 近日永慶亦欲專之(근일영경역욕전지) : 요즘에는 최영경 역시 전횡하고자 하여 其自利而斥異己(기자리이척이기) : 자기 자신만을 이익되게 하고 자기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則同一揆也(칙동일규야) : 배척했음은 동일한 방법이었다. 至於國之經紀則自若焉(지어국지경기칙자약언) : 그러나 나라의 기강에 있어서는 여전했었으니 是无他(시무타) : 이건 다름이 아니라 權出於一(권출어일) : 권한이 한 곳에서 나왔던 까닭으로, 故專擅之者絀(고전천지자출) : 전천(專擅)하던 사람이 물러가면 則旋復其舊也(칙선부기구야) : 곧바로 예전대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今則不然(금칙불연) : 지금은 그렇지 않아 權之出者多門(권지출자다문) : 권한이 나오는 곳이 여러 군데이고, 而自利而斥異己者(이자리이척이기자) : 자신만을 이롭게 하며 자기와 달리하는 사람을 배척하는 것은 人人皆是(인인개시) : 사람마다 모두 그렇다. 欲絀之則不可勝絀(욕출지칙불가승출) : 그런 것을 물리치려고 한다면 이루 다 쫓아낼 수가 없고, 而國綱終无以收拾矣(이국강종무이수습의) : 나라의 기강도 끝내 수습할 수가 없게 된다.
嗚呼(오호) : 오호라, 安得小人者俾(안득소인자비전국방) : 어떻게 하여야 소인들이 국권을 전횡하게 했다가, 及其來張而擊去之耶(급기래장이격거지야) : 그들이 세력을 펼치지 못할 때 공격하여 제거할 수 있을까? 亦安得大人君子者出而風之(역안득대인군자자출이풍지) : 또 어떻게 하여야 대인 군자(大人君子)가 나와서, 풍동(風動)하여 以散其淫朋耶(이산기음붕야) : 그처럼 음흉한 부당들을 해산시킬 수가 있을까? 故曰方今國家无小人(고왈방금국가무소인) : 때문에,"지금의 국가에는 소인도 없으니 亦无君子也(역무군자야) : 또한 군자도 없다."하였다.
抑有說焉(억유설언) : 또 하나를 말해보면, 古之所謂小人者(고지소위소인자) : 옛날의 이른바 소인이라던 자들은 其學足以濟其辨(기학족이제기변) : 그들의 학문은 그들의 변설(辯說)을 돕기에 충분했으며, 其行足以欺夫俗(기행족이기부속) : 그들의 행실은 세속을 속이기에 충분했었고, 其才足以應乎變(기재족이응호변) : 그들의 재주도 사태의 변화에 적응하기에 충분하였다. 故其在位也(고기재위야) : 그러므로 그가 지위에 있는 동안에는 人不測其中(인불측기중) : 사람들이 그의 내심을 헤아리지 못했고, 而足以行其所欲爲(이족이행기소욕위) : 충분하게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행하였다. 其與君子異者(기여군자이자) : 그들이 군자와 다른 것은 特公私一毫髮之差(특공사일호발지차) : 오직 공(公)과 사(私)라는 아주 작은 차이지만 其禍猶慘(기화유참) : 그들이 끼치는 화란은 오히려 참혹했으니, 況无才行學識(황무재행학식) : 하물며 재행(才行)과 학식(學識)도 없으면서 而唯好官是饕(이유호관시도) : 오직 좋은 벼슬만 탐내며 逐逐於津要(축축어진요) : 요직에만 기를 써서, 爲狗苟態者(위구구태자) : 구차스러운 태도를 하는 사람들이 盈朝滿庭(영조만정) : 조정(朝廷)에 가득 찼다면, 則其禍終如何耶(칙기화종여하야) : 그 화는 마침내 어떠한 정도이랴. 故曰淫朋之害(고왈음붕지해) : 그러므로, "음흉한 붕당의 해는 有甚於小人之專朝也較矣(유심어소인지전조야교의) : 소인이 조정을 전횡하는 것보다 심하다는 것이 분명하다."했었다
| 남효온론(南孝溫論)-허균(許筠)
宗直以韋布士而不欲仕(종직이위포사이불욕사) : 김종직이 하찮은 선비로서 벼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其志僞矣(기지위의) : 그 뜻이 거짓이었다면, 則孝溫之不仕(칙효온지불사) : 亦非義也耶(역비의야야) : 남효온의 벼슬하지 않은 것 역시 의롭지 않은 것일까 非也(비야) : 아니다. 孝溫之不仕(효온지불사) : 남효온이 벼슬하지 않은 것은 非得已也(비득이야) : 마지못해서였다. 乃不得已也(내불득이야) :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在宣陵日(재선릉일) : 선릉 때를 당하여 方內人安(방내인안) : 한창 나라 안이 태평하자, 上之人以至治責於下(상지인이지치책어하) : 위에 있는 임금이 아랫사람에게 지치(至治)의 정치를 이루게 하였으니 抱負非常者(포부비상자) : 비상한 포부를 지닌 사람이라면 當鵲起之秋(당작기지추) : 까치가 뛰듯 일어나던 때였다. 而孝溫欲先正名(이효온욕선정명) : 남 효온은 먼저 명분(名分)을 바르게 하려고 抗疏而論之(항소이론지) : 소(疏)를 올려 논란을 폈었다. 其意蓋恃吾君聖明必我用(기의개시오군성명필아용) : 그의 뜻은 대체로 우리 임금이 밝고 뛰어나니 반드시 자기 말을 받아들일 것으로 믿었다. 故盡其蕰而陳之(고진기蕰이진지) : 그런 때문에 쌓은 포부를 다해서 진언(陳言)하였다. 冀以定國是而一人心(기이정국시이일인심) : 국시(國是)를 정하여 인심(人心)을 통일하기를 기대하면서 以答望治之意(이답망치지의) : 다스림을 바라던 임금의 뜻에 답했던 것이다.
奈疏入而上不敢行(내소입이상불감행) : 어떤 탓인지 소장(疏章)이 들어갔으나 임금은 감히 시행하지 못했다. 孝溫已見其无可爲也曰(효온이견기무가위야왈) : 남효온은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알고, 이르기를
士之求用於君者(사지구용어군자) : "선비가 임금에게 쓰여지기를 구한다는 것은 乃欲行其道也(내욕행기도야) : 그의 도(道)를 행하려고 해서다. 道不行而徒耽其榮利(도불행이도탐기영리) : 그러나 도(道)를 행하지 못하고 괜스레 영리(營利)만 탐낸다면 則非士也(칙비사야) : 선비가 아니다"하고는 乃決意而不就貢(내결의이불취공) : 뜻을 결단하여 과거에 나아가지 않았다.
母氏有言(모씨유언) : 어머니가 과거 공부하라고 말하면 則占司馬以榮之(칙점사마이영지) : 사마시에 합격하여 영화롭게 해주고는, 終其身不言祿(종기신불언록) : 일생을 마치도록 녹(祿)은 말하지 않아 以踐初言(이천초언) : 애초에 했던 말을 실천하였다. 是則志士介夫慷慨不屑(시칙지사개부강개불설부귀자지소위야) : 이것은 지사(志士)나 개부(介夫)가 강개(慷慨)한 마음으로 부귀(富貴)에 개의하지 않던 사람이나 하던 일이었다. 詎可與私其利竊其名者(거가여사기리절기명자) : 어떻게 이록이나 취하고 명망이나 훔치던 사람들과 同日而語哉(동일이어재) : 함께 싸잡아 말할 수 있으랴. 故曰非得已也(고왈비득이야) : 그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乃不得已也(내불득이야) : 마지 못해서였다."말하는 것이다.
雖然(수연) :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余悲孝溫之志(여비효온지지이암기지애기량야) : 나는 남효온의 뜻을 애석하게 여기니, 其抗疏之年(기항소지년) : 그런 항소(抗疏)를 하던 해에 溫纔二十(온재이십) : 남효온은 겨우 20세였다. 所養未知果盡就否(소양미지과진취부) : 수양하던 바가 과연 다 성취되었는지도 모르거니와, 徒以激於中者(도이격어중자) : 한갓 가슴속에 격앙된 것으로써 欲取必於上(욕취필어상) : 기필코 임금이 시행해주기를 기대하면서 而不知時之有可不可(이불지시지유가불가) : 되어질 때인가 아닌가를 알지 못했었다. 徒知上之可與而有爲(도지상지가여이유위) : 한갓 임금과 더불어 유위(有爲)한 일을 하리라고만 알고, 而不知所言者遽難悉行(이불지소언자거난실행) : 그 말했던 바가 갑자기 모두 시행되기 어려울 줄은 알지 못했다. 深言於淺交之前(심언어천교지전) : 교분이 옅은 사람 앞에서 지나치게 말한데에다, 發之旣銳(발지기예) : 말한 것이 이미 예리하였고, 而責望之太深(이책망지태심) : 책망한 것도 너무 길었다. 終至於不見採用(종지어불견채용) : 마침내 그의 말이 채택되지 않게 되자, 不得已而自放於世(불득이이자방어세) : 할 수 없이 세상에 저절로 내쳐졌으니 其失言甚(기실언심) : 그 실언했던 것이 심하였다. 而年少量隘者(이년소량애자) : 나이 젊고 도량이 좁은 사람은 自古已然(자고이연) : 예전에도 이미 그렇게 했었으니 可勝嘆哉(가승탄재) : 탄식을 이길 수 없도다.
不然(불연) : 그렇지 않고 使孝溫從容藏(사효온종용장수) : 가령 남효온이 조용히 수양하다 進身以道(진신이도) : 도(道)로써 벼슬하여 臣主旣同量相親信(신주기동량상친신) : 신하와 임금이 이미 도가 같으면 서로 친해지고 믿게 됨을 요량하면서 而磨以歲月(이마이세월) : 인격을 연마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었다. 事之淺者則試先去之(사지천자칙시선거지) : 심각하지 않는 일이라면 시험삼아 그걸 먼저 제거하면서, 以待貞熹上賓(이대정희상빈) : 정희왕후가 빈천(賓天)하고 而光廟舊臣皆盡之日(이광묘구신개진지일) : 광묘 때의 옛 신하들이 모두 죽은 때를 기다려서 始發此論(시발차론) : 그러한 논의를 비로소 꺼냈더라면 則康靖王必用其說(칙강정왕필용기설) : 강정왕도 그의 말을 채용했으리라. 曠然與一國更始(광연여일국경시) : 그랬다면 널리 온 나라와 더불어 경시(更始)했었을 것이니, 豈不臣主俱榮而有光於簡冊也哉(기불신주구영이유광어간책야재) : 어찌 신하와 임금이 함께 영광스럽고, 간책(簡策)에 빛나게 기록되지 않았으랴.
計不出此(계불출차) : 계획이 이렇게 나오지를 않고, 而徒欲速焉(이도욕속언) : 괜스레 빨리만 달성하려고 하다가 竟陷失言之咎(경함실언지구) : 끝내는 실언했다는 허물에 빠져서 而窮其身以終(이궁기신이종) : 곤궁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쳤다. 此奚與賈生流涕痛哭以自亡者何(차해여가생류체통곡이자망자하이) : 이것은 가의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다가 스스로 죽어갔던 것과 무엇이 다르랴. 其可悲也歟(기가비야여) : 슬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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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교리임공묘갈명(弘文館校理任公墓碣銘)-허균(許筠)
校理任公旣葬之明年九月(교리임공기장지명년구월) : 홍문관 교리 임공의 장례를 치른 다음 해 9월, 其宜人金氏致命于筠曰(기의인금씨치명우균왈) : 그의 부인인 의인 김씨가, 나 균에게 부탁하기를, 吾夫不幸早世(오부불행조세) : "저의 남편이 불행하게 일찍 돌아가시어 思所以刻其墓(사소이각기묘) : 그의 묘비를 세우려 하였으나 謂官未復(위관미부) : 그의 관직이 복관되지 않았으므로 而不敢(이불감) : 감히 못하고 있었습니다. 今蒙恩還其爵(이불감금몽은환기작) : 이제 왕은을 입어 그의 관작(官爵)이 되돌아왔으니 不可終沒其名(불가종몰기명) : 그의 이름을 끝내 묻힌 채로 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知吾夫行誼者莫如君(지오부행의자막여군) : 저의 남편의 행장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당신 밖에는 없으며 詳吾夫世系官牒者亦莫如君(상오부세계관첩자역막여군) : 남편의 세계(世系)와 관첩(官牒)에 관해서도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故不以狀而告(고불이상이고) : 그러므로 행장, 세계 등을 보내지 않고 부탁하오니 其爲我紀之以示後(기위아기지이시후) : 저를 위해 이를 기록하여 후대에 보이게 해 주십시오."하였다. 筠泣而曰(균읍이왈) : 균은 울면서 말하기를,
嗚呼(오호) : "아아, 슬프다. 吾忍銘吾友耶(오인명오우야) : 내가 차마 내 친구의 명문을 써야 한단 말인가. 筠雖不才(균수불재) : 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辱知久且厚矣(욕지구차후의) : 알고 지낸 지 오래되고 또한 두터운 교분이 있었으니 其敢辭(기감사) : 감히 사양하리오."하였다.
謹按(근안) : 상고해 보건대 任氏出豐川(임씨출풍천) : 임씨는 풍천(豐川) 출신이며 代爲鉅族(대위거족) : 대대로 명문 거족이다. 考曰某吏曹判書(고왈모리조판서) : 부 모(某)는 이조 판서(吏曹判書)요, 祖曰某承旨(조왈모승지) : 조부 모는 승지로, 贈如君考官(증여군고관) :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이며, 曾祖曰某參奉贈贊成(증조왈모참봉증찬성) : 증조 모는 참봉(參奉)으로 증찬성(贈贊成)이다.
母淸州韓氏(모청주한씨) : 어머니 청주 한씨(淸州韓氏)는 牧使某之女也(목사모지녀야) : 목사 모의 딸이다. 君諱守正(군휘수정) : 군의 휘는 수정(守正)이요, 字約初(자약초) : 자는 약초(約初)이다. 生於隆慶庚午(생어륭경경오) : 융경, 경오년에 출생하였다. 幼有奇志(유유기지) : 어릴 적부터 남다른 뜻이 있고 嶷如成人(억여성인) : 아주 어른스러워서 不好弄(불호롱) : 희롱을 좋아하지 않았다. 及長(급장) : 자라면서는 不順師而學日(불순사이학일익취) : 스승을 정하고 공부를 배우지 않았았다 寬厚深沈(관후심침) : 너그럽고 속이 깊어 凝然有大度(응연유대도) : 의연하게 큰 도량이 있었다. 喜怒不形色(희노불형색) : 희로(喜怒)를 드러내지 않고 未嘗言人過(미상언인과) :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으며 待人以謙(대인이겸) : 사람들을 대함에는 겸손하게 하였으니 父母奇愛之(부모기애지) : 부모가 특히 사랑하였다.
中戊子司馬(중무자사마) : 무자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游泮名藉甚(유반명자심) : 성균관(成均館)에서 공부하였는데 명성이 높았다. 持論截然(지론절연) : 주관이 분명하고 行己有方(행기유방) : 행동이 법도에 맞아 儕類嚴之(제류엄지) : 동료들이 엄히 여기고 皆望以公輔(개망이공보) : 모두 재상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爲詞章甚明白條達(위사장심명백조달) : 문장을 짓는 데는 조리가 매우 분명하였으나 久屈於殿會(구굴어전회) : 오래도록 문과에 합격하지 못하다가 丁酉春(정유춘) : 정유년 봄에야 始擢乙科(시탁을과) : 비로소 을과(乙科)에 합격하니 人皆相賀(인개상하) : 사람들이 모두 축하하였다. 除史官(제사관) : 사관(史官)으로 임명되매 論述甚平(론술심평) : 논술(論述)이 매우 공평하니 僚席皆歎服(료석개탄복) : 동료들이 모두 탄복하였고, 例遷典籍(례천전적) : 선례대로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에 승진시켜 除司書(제사서) : 세자시강원사서로 임명되었는데 勸講有法(권강유법) : 세자에게 공부를 권하는 데 법도가 있었다.
移正言(이정언) : 사간원 정언이 되어서는 糾劾不阿私(규핵불아사) : 탄핵하고 규찰하는 데 있어 사정(私情)을 두지 않았고, 除修撰(제수찬) : 홍문관 수찬에 임명되자 上章請數臨毙(상장청수림폐) : 글을 올려 자주 경연(經筵)에 납시기를 주청하니 上韙之(상위지) : 왕이 이를 아름답게 여겼다. 庚子(경자) : 경자년에 兩司方爭論處(량사방쟁론처치) : 양사가 논쟁을 하였는데 이에 대한 조치는 當而僚議甚偏(당이료의심편) : 온당하였으나 요신(僚臣)들의 의논은 매우 편벽된 것이었다. 君奮曰(군분왈) : 그러자 군은 분연히 말하기를,
諫院攻金南已非矣(간원공금남이비의) : "사간원에서 김(金)과 남(南)을 공격한 것도 이미 잘못인데 憲府又引他重臣欲報之(헌부우인타중신욕보지) : 사헌부에서 또 다른 중신(重臣)을 끌어다가 보복하려 하니 均之非義(균지비의) : 양사가 똑같이 의롭지 못하다. 請兩遞之(청량체지) : 양사 모두 갈기를 청해야 한다."하니, 同僚執不可(동료집불가) : 동료들은 결단코 안된다고 하였으나 君遂不署名出(군수불서명출) : 군은 마침내 서명(署名)하지 않고 나와버렸다. 俄除吏曹(아제리조) : 얼마 안 있다 이조(吏曹)에 전임되었는데 異議者掎之(이의자기지) : 이것은 의견을 달리하는 자가 끌어낸 것이다. 君無慍色曰(군무온색왈) : 그러나 군은 분한 빛도 없이 말하기를,
南與洪俱相厚(남여홍구상후) : "남(南)과 홍(洪)은 모두 나와 친한데 玉堂若攻南(옥당약공남) : 옥당(玉堂)이 남을 공격한다면 吾肯從耶(오긍종야) : 내가 어찌 그대로 따르겠는가? 今之議無大是非(금지의무대시비) : 이번의 논의는 큰 시비거리가 안 되는 것인데 吾以全吾交(오이전오교) : 내가 나의 친교를 보존하려다 不幸而齮齕我(불행이기흘아) : 불행하게도 비난을 받게 되었으니 曲在彼矣(곡재피의) : 잘못은 저쪽에 있다."고 말하였다. 庚子(경자) : 경자년에 除持平不拜(제지평불배) : 사헌부 지평으로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還校理(환교리) : 돌아와 홍문관 교리가 되자 時論又攻洪(시론우공홍) : 시론(時論)이 또 홍(洪)을 공격하였다. 君方與因洪(군방여인홍) : 군이 그때 홍에게 가담하고 있었으므로 彼攻者(피공자) : 홍을 공격하는 자들은, 直疑君與其計訶(직의군여기계가) : 바로 군이 그 계획에 가담하고 있다고 의심하여 심히 꾸짖었으나 . 君甚默不較(군심묵불교) : 군은 잠자코 이에 대답하지 않았는데 竟以是革職(경이시혁직) : 마침내 이로 인해 면직이 되었다
侍先公於廣陵(시선공어광릉) : 광릉(廣陵)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동안 朝夕愉愉如也(조석유유여야) : 조석으로 늘 유쾌하였고 益讀伊洛書以明理(익독이락서이명리) : 이락서(伊洛書 정호(程顥)ㆍ정이(程頤)의 글)를 열심히 읽어 이치를 밝히고 口不談世事(구불담세사) : 세상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乙巳內憂(을사내우) : 을사년(선조 38, 1605)에 조모의 상을 만나 哀毀不任杖(애훼불임장) : 슬픔으로 몸이 상하여 지팡이를 짚고도 상주 노릇하기가 힘에 겨웠으므로 母夫人勸之權(모부인권지권) : 어머니께서 권도로 하기를 권하였으나 不從(불종) : 따르지 않다가 明年八月(명년팔월) : 다음해 8월에 마 竟不起(경불기) : 침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痛哉(통재) : 애통하다. 士夫知公深者(사부지공심자) : 공을 잘 아는 선비들은 莫不流涕相弔(막불류체상조) : 눈물 흘리며 조상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以是年十月(이시년십월) : 이해 10월에 窆從先兆焉(폄종선조언) : 선영에 묻히었다.
金氏(금씨) : 김씨는 兵使某之女(병사모지녀) : 병사(兵使) 모의 딸이었다 賢有行(현유행) : 현숙하고 행실이 반듯하였다. 生三子二女(생삼자이녀) : 아들 셋, 딸 둘을 두었는데 女長適士人李尙文(녀장적사인리상문) : 맏딸은 선비 이상문(李尙文)에게 시집가고 餘皆幼(여개유) : 나머지는 모두 아직 어리니 其流慶當在玆乎(기류경당재자호) : 그 유경(遺慶)이 마땅히 여기에 있을 것이다.
君與余及今家宰崔公汝以林儀曹子昇(군여여급금가재최공여이림의조자승) : 군과 나 그리고 현재 재상인 최여이(崔汝以)와 예조 임자승(林子昇)과는 同長於庠谷(동장어상곡) : 상곡(庠谷)에서 함께 자라 情若骨肉(정약골육) : 그 정은 모두 형제와 같았다. 不幸子昇先亡(불행자승선망) : 불행히도 자승이 먼저 떠나고 君又逝(군우서) : 군도 가버리니 而餘二人在(이여이인재) : 나머지 두 사람이 있을 뿐이다. 壽夭窮通(수요궁통) : 수(壽)하고 요(夭)하고 궁하고 통함이 如是不齊(여시불제) : 이와 같이 고르지 않으니 則來者又安可保乎(칙래자우안가보호) : 앞으로의 일인들 어찌 온전할 것인가. 君嘗與余戲(군상여여희) : 군과 나는 일찍이 놀이 삼아 各爲著墓刻曰(각위저묘각왈) : 각각 묘비문을 지었는데, 군이 말하기를,
吾齒少(오치소) : "내가 나이가 적으니, 吾當誌君(오당지군) : 내가 자네의 비문을 지어야지."하기에, 余曰(여왈) : 내가 이르기를,
事不可知(사불가지) : "앞 일이란 알 수 없다. 世豈有兒冢耶(세기유아총야) : 세상에 아이 무덤이 왜 있는가?"하고는 輒以相謔(첩이상학) : 서로 농담을 하였는데, 嗚呼(오호) : 아아! 슬프다. 長且弱者而先(장차약자이선명군묘) : 나이 많고 몸 약한 자가 먼저 군의 묘에 명문을 짓다니, 天道難恃(천도난시) : 천도(天道)는 믿기 어렵고 人事亦不可常也(인사역불가상야) : 사람의 일 또한 늘 같지 않다. 遂爲銘曰(수위명왈) : 마침내 명문을 기었는데 명문은 다음과 같다.
器弘且碩行毅剛(기홍차석행의강) : 그릇은 넓고 크며 행동은 굳세고 강직하니 宜爾耆耋登廟廊(의이기질등묘랑) : 마땅히 그대 나이 먹으면 묘랑에 오를 것이리라 胡天不弔殲我良(호천불조섬아량) : 하늘이 무정하사 내 좋은 친구를 앗아가니 交親之悲士失望(교친지비사실망) : 친구들은 슬퍼하고 선비들은 실망하는구나 森森蘭玉儼成行(삼삼란옥엄성행) : 잘 자란 자식들이 의젓하게 줄 지으니 積而爲慶當久長(적이위경당구장) : 쌓이어 경사됨이 마땅히 영구히 길어야하는데 廣陵之阡何鬱蒼(광릉지천하울창) : 광릉의 무덤은 어찌 그리도 울창한가 刻以貞珉紀芬芬(각이정민기분분) : 굳고 고운 돌에 새겨 향기를 기록하노니 嗚呼千秋其不忘(오호천추기불망) : 아아, 영원하도록 잊지 말어야 할지어다
몽해(夢解)-허균(許筠)
惺惺翁少時少夢(성성옹소시소몽) : 성성옹이 젊을 적에 꿈이 적고 夢輒應(몽첩응) : 꿈을 꾸면 잘 맞았었다. 迨至長(태지장) : 그런데 장성해지자 漸多夢(점다몽) : 점점 꿈이 많아지고 夢漸不應(몽점불응) : 꾸는 꿈이 점점 맞지 아니하였다.
或言夢生於想(혹언몽생어상) : 혹자(或者)가 말하였다. "꿈은 공상에서 생기는 법이다. 子少日慾念懲(자소일욕념징) : 그대가 젊은 날에는 욕망이 적어서 心澹然不動(심담연불동) : 마음이 담담하여 동요하지 않았으므로 故想少而夢亦稀(고상소이몽역희) : 공상이 적어서 꿈 또한 드물었고 稀故輒驗焉(희고첩험언) : 드물기 때문에 잘 맞았던 것이다. 及旣長(급기장) : 그러나 이미 장성하여서는 寵辱得失之念汩其(총욕득실지념율기심) : 총욕(寵辱)과 득실(得失)에 관한 잡념이 그 마음을 어지럽히므로, 故想火熾炎而夢亦煩(고상화치염이몽역번) : 생각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 꿈 또한 잦고, 煩故漸不應焉(번고점불응언) : 잦기 때문에 점점 맞지 아니한 것이다."하기에, 余曰(여왈) : 내가 말하기를,
其然乎(기연호) :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不然(불연) : 그렇지 않다. 夢之多少(몽지다소) : 꿈이 많고 적은 것은 或係於想(혹계어상) : 혹 공상에 매었다고도 하겠으나, 至於驗應則不在於想(지어험응칙불재어상) : 꿈이 맞는 것에 있어서는 공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將得而夢者有若築巖與得齡(장득이몽자유약축암여득령) : 장차 무엇을 얻을 것을 꿈꾸는 것은 축암과 득령 같은 경우가 있고, 未來而夢者(미래이몽자) : 미래(未來)의 일을 꿈꾸는 것은 有若豎牛與曺社(유약수우여조사) : 수우와 조사 같은 경우가 있으며, 而將疾夢食(이장질몽식) : 몸이 아프려면 꿈에 음식을 먹고, 將歌夢哭(장가몽곡) : 노래를 부르려면 꿈에 울며, 烏銜髮則飛者(오함발칙비자) : 새[鳥]가 머리털을 물고 날아가는 것을 보면 亦皆果由於想耶(역개과유어상야) : 날아다니는 꿈을 꾸게 되는 경우 등이 모두 과연 공상으로 말미암은 것이겠는가. 是不過心靈則事契(시불과심령칙사계) : 이것은 마음이 영명(靈明)하면 일이 맞아들어가고, 神朗則符現(신랑칙부현) : 정신이 명랑하면 징험이 나타나는 것으로, 適相合於眇冥之中(적상합어묘명지중) : 마침 캄캄한 속에서 서로 합하여 偶然爲徵者也(우연위징자야) : 우연히 징조가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詎可夢夢事事強求其合也(거가몽몽사사강구기합야) : 어찌 꿈을 꿈으로, 일을 일로 억지로 부합될 것을 구할 수 있겠는가. 雖然(수연) : 비록 그렇기는 하나, 想與念澄(상여념징) : 상념(想念)이 맑으면 則心與神自朗(칙심여신자랑) : 마음과 정신이 저절로 밝아지며, 澄朗則自合於天(징랑칙자합어천) : 맑고 밝아지면 저절로 자연과 부합된다. 合於天則一氣淸虛(합어천칙일기청허) : 자연과 부합되면 일기가 청허하고 玄機流動(현기류동) : 현기가 유동하여, 其吉凶休咎之來(기길흉휴구지래) : 다가오는 길흉(吉凶)ㆍ화복(禍福)이 若形之現於鏡(약형지현어경) : 마치 형체가 거울에 나타나는 것과 같아서 無不照了(무불조료) :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故能推測而知之(고능추측이지지) : 그러므로 능히 추측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니 하니, 此夢占之所以作也(차몽점지소이작야) : 이것이 몽점이 생겨나게 된 까닭이다." 或者以爲(혹자이위) : 혹자는 또 이렇게 말하였다.
想也殆近之矣(상야태근지의) : "공상이라는 것이 아마도 근사할 것이다. 翁久在官途(옹구재관도) : 옹(翁)이 오래 관로(管路)에 있었지만 困於食(곤어식) : 식생활에 곤란을 받을 때면 伺貴人乞郡(사귀인걸군) : 귀인(貴人)의 문(門)을 찾아가 군수(郡守) 자리를 애걸하였었다. 方其覘窠而覬之也(방기첨과이기지야) : 그 당시 빈자리를 엿보고 요행을 바랄 때는 夢輒得之(몽첩득지) : 꿈을 꾸기만 하면 얻었었고, 已而或得或不得(이이혹득혹불득) : 나중에 혹 얻기도 하고 얻지 못하기도 한 것은 是其動於念深矣(시기동어념심의) : 바로 잡념에 흔들림이 깊었던 것이었다. 自經變故來(자경변고래) : 그리고 변고(變故)를 겪은 후부터는 斷除利名(단제리명) : 명리(名利)를 깨끗이 끊고 一志於脩煉(일지어수련) : 오로지 수련(修煉)에 뜻을 두어 多讀道家經訣(다독도가경결) : 도가(道家)의 경전(經典)이며 요결(要訣)을 많이 읽으면서 以潛心硏究(이잠심연구) : 마음을 가라앉히고 연구를 하자, 則夢輒見紫陽海瓊諸眞(칙몽첩견자양해경제진) : 꿈에 자양과 해경 등 여러 진인(眞人)을 만나서 聆其妙諦(령기묘체) : 그 현묘(玄妙)한 비결을 듣게 되었다. 甚至神飛玉京(심지신비옥경) : 그리하여 심지어는 신선이 되어 옥경(玉京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산다는 하늘의 궁전)으로 날아가, 駕鸞鶴聽簫於五雲中者數數然(가란학청소어오운중자수수연) : 난학(鸞鶴)을 타고 오색 구름 속에서 신선의 퉁소 소리를 들은 것이 수없이 많았으니, 是其役於想者至矣(시기역어상자지의) : 이것은 바로 공상에 골몰한 것이 지극에 달한 것이다."
或者之言(혹자지언) : 혹자의 말이 到此尤信焉(도차우신언) : 여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믿을 만하다. 然則擧天下之夢(연칙거천하지몽) : 그렇다면 온 천하 사람의 꿈은 不出於想而已矣(불출어상이이의) : 공상에서 벗어나지 않을 뿐이리라. 至於夢少則輒應云者(지어몽소칙첩응운자) : '꿈이 적으면 잘 맞는다.'고 말한 데 있어서는, 心澄神朗而魂不馳於外(심징신랑이혼불치어외) : 마음이 맑고 정신이 밝으면 혼이 밖으로 치달리지 않는 법이며, 澄且明(징차명) :맑고 또 밝기 때문에 故必徵於人事(고필징어인사) : 반드시 인간사에 징험이 나타나는 것으로, 固有是理(고유시리) : 진정 이러한 이치가 있는 것이다. 或者可與語道矣(혹자가여어도의) : 혹자 정도라면 함께 도를 이야기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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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론(豪民論)-허균(許筠)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唯民而已(유민이이) : 오직 백성일 뿐이다. 民之可畏(민지가외) :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有甚於水火虎豹(유심어수화호표) :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도 훨씬 더 심함이 있다 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재상자방차압순이학사지)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抑獨何哉(억독하재) :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부가여악성이구어소상견자) :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들에 얽매이고, 循循然奉法役於上者(순순연봉법역어상자) :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恒民也(항민야) : 항민(恒民)이다. 恒民不足畏也(항민불족외야) :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厲取之而剝膚椎髓(려취지이박부추수) :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서지며 竭其廬入地出(갈기려입지출) :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以供无窮之求(이공무궁지구) :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愁嘆咄嗟(수탄돌차) :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咎其上者(구기상자) :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怨民也(원민야) : 원민(怨民)이다. 怨民不必畏也(원민불필외야) :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潛蹤屠販之中(잠종도판지중) :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陰蓄異心(음축이심) :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僻倪天地間(벽예천지간) :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幸時之有故(행시지유고) :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欲售其願者(욕수기원자) :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豪民也(호민야) : 호민(豪民)이다. 夫豪民者(부호민자) : 대저 호민이란 大可畏也(대가외야) :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다.
豪民(호민) : 호민은 伺國之釁(사국지흔) :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覘事機之可乘(첨사기지가승) :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奮臂一呼於壟畝之上(분비일호어롱무지상) :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 지르면, 則彼怨民者聞聲而集(칙피원민자문성이집) : 저들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不謀而同唱(불모이동창) :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彼恒民者(피항민자) : 저들 항민이란 자들도 亦求其所以生(역구기소이생) :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불득불서우극긍왕종지) : 호미ㆍ고무래ㆍ창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以誅无道也(이주무도야) :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秦之亡也(진지망야) : 진(秦) 나라의 멸망은 以勝廣(이승광) : 진승과 오관 때문이었고, 而漢氏之亂(이한씨지란) : 한(漢) 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亦因黃巾(역인황건) : 역시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唐之衰而王仙芝黃巢乘(당지쇠이왕선지황소승지) : 당(唐) 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틈을 타고 일어섰는데, 卒以此亡人國而後已(졸이차망인국이후이) : 마침내 그것 때문에 인민과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是皆厲民自養之咎(시개려민자양지구) : 이런 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배만 채우던 죄과이며, 而豪民得以乘其隙也(이호민득이승기극야) :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편승할 수 있어서였다.
夫天之立司牧(부천지립사목) : 대저 하늘이 사목(司牧 임금)을 세운 것은 爲養民也(위양민야) : 양민(養民)하기 위함이고, 非欲使一人恣睢於上(비욕사일인자휴어상) :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以逞溪壑之慾矣(이령계학지욕의) : 메워도 차지 않는 욕심을 채우게 하려던 것이었다. 彼秦漢以下之禍(피진한이하지화) : 그러므로 저들 진(秦)ㆍ한(漢) 이래의 화란은 宜矣(의의) : 당연한 결과이지 非不幸也(비불행야) :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今我國不然(금아국불연) :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地陿阨而人少(지협액이인소) : 땅이 좁고 험준하여 인민도 적고, 民且呰寙齷齪(민차자유악착) : 백성은 또 나약하고 좀 악착하여 无奇節俠氣(무기절협기) : 기절(奇節)이나 협기(俠氣)가 없다. 故平居雖无鉅人雋才出爲世(고평거수무거인준재출위세용) : 그런 까닭에 평상시에도 큰 인물이나 뛰어나게 재능 있는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여지는 수도 없었지만, 而臨亂亦无有豪民悍卒(이림란역무유호민한졸) : 난리를 당해도 호민ㆍ한졸(悍卒)들이 창란(倡亂)하여, 倡亂首爲國患者(창란수위국환자) :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게 하던 자들도 없었으니 其亦幸也(기역행야) : 그런 것은 역시 다행이었다.
雖然(수연) :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今之時與王氏(금지시여왕씨시불동야) :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는 같지 않다. 前朝賦於民有限(전조부어민유한) : 고려 시대는 백성에게 부세(賦稅)하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고, 而山澤之利(이산택지리) :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與民共之(여민공지) : 백성들과 함께 나누어 가졌다. 通商而惠工(통상이혜공) : 상업은 자유롭게 통행되었고, 공인(工人)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又能量入爲出(우능량입위출) : 또 수입을 헤아려 지출할 수 있도록 하였으니 使國有餘儲(사국유여저) : 나라에는 여분을 저축해 둔 것이 있었다. 卒有大兵大表(졸유대병대표) : 그래서 갑작스런 큰 병화(兵禍)와 상사(喪事)가 있더라도 不加其賦(불가기부) : 그 부세(賦稅)를 증가하지 않았었다. 及其季也(급기계야) : 고려는 말기에 와서까지도 猶患其三空焉(유환기삼공언) : 삼공을 오히려 걱정해 주었다.
我則不然(아칙불연) :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 以區區之民(이구구지민) : 변변치 못한 백성들에게서 거두어들이는 것으로써 其事神奉上之節(기사신봉상지절) :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만은 與中國等(여중국등) : 중국과 동등하게 하고 있다. 而民之出賦五分(이민지출부오분) : 백성들이 내는 세금이 5푼(分)이라면 則利歸公家者纔一分(칙리귀공가자재일분) : 관청으로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1푼(分)이고 其餘狼戾於姦私焉(기여랑려어간사언) : 그 나머지는 간사스런 사인(私人)에게 어지럽게 흩어져버린다. 且府無餘儲(차부무여저) : 또 고을의 관청에는 남은 저축이 없어 有事則一年或再賦(유사칙일년혹재부) : 일만 있으면 1년에 더러는 두 번 부과하고, 而守宰之憑以箕斂(이수재지빙이기렴) : 수령(守令)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마구 거두어 들임은 亦罔有紀極(역망유기극) : 또한 극도에 달하지 않음이 없었다.
故民之愁怨(고민지수원) :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有甚王氏之季(유심왕씨지계) : 고려 말엽보다 훨씬 심하다. 上之人恬不知畏(상지인념불지외) : 그러나 위에 있는 사람은 태평스러운 듯 두려워할 줄을 모르니 以我國無豪民也(이아국무호민야) : 우리나라에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다. 不幸而如甄萱弓裔者出(불행이여견훤궁예자출) : 불행스럽게 견훤과 궁예 같은 사람이 나와서 奮其白挺(분기백정) :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則愁怨之民(칙수원지민) : 시름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安保其不往從而祈梁六合之(안보기불왕종이기량륙합지변) : 가서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하며, 기주와 양주 그리고 6합의 변란은 발을 제겨 딛고서 기다릴 수 있으리라. 可跼足須也(가국족수야) : 爲民牧者(위민목자) : 백성 다스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灼知可畏之形(작지가외지형) : 두려워할 만한 형세를 명확히 알아서 與更其弦轍(여경기현철) : 전철(前轍)을 고친다면 則猶可及已(칙유가급이) : 그런 대로 유지할 수 있으리라
벽곡변(辟穀辨)-허균(許筠)
생식하며 화식을 피하는 것에 대해 변론하다-허균(許筠)
郭公再佑深於脩煉家說(곽공재우심어수련가설) : 곽공 재우(郭公再佑)가 도가(道家)의 수련설(修煉說)에 깊이 들어가서 謝世累居山(사세루거산) : 속세의 일을 사절하고 산에 살면서 辟穀不食者(벽곡불식자) : 벽곡만 하고 화식을 하지 않음이
累年(루년) : 여러 해였다. 人謂(인위) : 사람들이 그를 두고 말하기를,
郭公之明遺棄軒冕(곽공지명차지유기헌면) : "곽공의 명석함으로도 높은 벼슬을 버리고 自佚於物表者(자일어물표자) : 스스로 세상 밖에서 편안히 노닐었으니, 其得於性命之旨若淺尠(기득어성명지지약천선) : 그가 인성(人性)과 천명(天命)의 뜻을 터득한 것이 만일 얕고 적었다면 則必不肯爲(칙필불긍위) : 반드시 이를 즐겨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乃捨正門上乘(내사정문상승) : 하지만 결국 정문의 심원한 교리를 놓아 두고, 而入邪逕旁岐(이입사경방기) : 부정한 길, 옆길로 들어가서 終年勤苦(종년근고) : 죽을 때까지 애썼지만 不見其成(불견기성) : 성취를 보지 못하였으니 烏在其知道也(오재기지도야) : 그가 도를 알았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한다.
余笑之曰(여소지왈) : 나는 그 말을 듣고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是豈流俗所知也(시기류속소지야) : 이것이 어찌 세속 사람들이 알 바이겠는가. 郭公明且智(곽공명차지) : 곽공은 명석하고 슬기로우므로 固知神仙不可猝致(고지신선불가졸치) : 진실로 신선을 갑자기 이를 수 없고, 而飛昇變化之事(이비승변화지사) : 날개가 돋아 하늘로 날아 오르는 일 亦怳惚難信(역황홀난신) : 또한 황홀하여 믿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則終日枯坐(칙종일고좌) : 그렇다면 온종일 쓸쓸하게 앉아 讀黃庭千周(독황정천주) : <황정경(黃庭經)>을 천 번 읽는 일이, 不若擁趙姬屛間處楔鳴瑟(불약옹조희병간처설명슬) : 미인을 끼고 한가한 곳으로 물러가서 놀며, 비파를 타고, 酌醴膾鯉(작례회리) : 술을 따라 놓고 잉어를 회쳐 먹으면서 以了殘年也(이료잔년야) : 여생을 마치는 것만은 못하였을 것이다. 顧乃脫其貴富榮樂(고내탈기귀부영악) : 그런데도 끝내 부귀 영화를 벗어던지고 就窮山中絶粒自槁者(취궁산중절립자고자) : 궁벽한 산중으로 들어가 곡식을 끊고 스스로 메마르게 지내는 것은, 非有大不得已(비유대불득이)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지 않았다면 則公必不爲也(칙공필불위야) : 공은 반드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昔子房佐漢功成(석자방좌한공성) : 옛날 장자방이 한(漢)을 도와 공을 이룬 다음 乃退而辟穀也(내퇴이벽곡야) : 물러가서 벽곡하였는데, 是豈眞欲仙者(시기진욕선자) : 이 사람이 어찌 참으로 신선이 되고 싶어서였겠는가. 姑以此而自保其身也(고이차이자보기신야) : 짐짓 이것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전하려고 한 것이니, 其亦神乎哉(기역신호재) : 그 또한 신통한 계책인 것인저!
今郭公以布衣提劍起(금곽공이포의제검기) : 이제 곽공이 포의로서 칼을 들고 일어나 詰方岳之臣而扼其權(힐방악지신이액기권) : 지방의 장관들을 힐책하고 그 권세를 잡으니 從者如雲(종자여운) : 따르는 자가 구름 같았다. 以犯方張之寇(이범방장지구) : 이로써 한창 날뛰는 왜구를 무찔러 婁奏膚功(루주부공) : 여러 차례 큰 전공을 세우니 賊之所畏憚(적지소외탄) : 적이 두려워 꺼리는 대상이 되었고, 而風烈震乎一時(이풍렬진호일시) : 기풍과 공렬이 한 시대를 뒤흔들었다. 固已啓人之疑也(고이계인지의야) : 이는 진실로 이미 사람들의 의혹을 열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公蓋知功高則不賞(공개지공고칙불상) : 공은 대체로 '공적이 너무 높으면 그에 상당한 상)을 줄 수 없다.'는 이치를 알았기 때문에 故及其早而欲去之(고급기조이욕거지) : 일찌감치 떠나버리고자 하였는바, 去之難其名(거지난기명) : 떠나가는 데 있어 명분을 세우기 곤란하므로 故托以辟穀而掩其跡(고탁이벽곡이엄기적) : 벽곡한다는 것으로 핑계하고 그 자취를 감춘 것이다. 是乃子房之舊軌而公蹈之(시내자방지구궤이공도지) : 이것은 바로 자방(子房)이 걸어갔던 옛 길이며, 공이 그 길을 답습한 것이다. 豈欲爲不可力致之神仙(기욕위불가력치지신선) : 그런데 어찌 억지로 이룰 수 없는 신선이 되고자 하였다 하니 而反信其怳惚之事者乎(이반신기황홀지사자호) : 도리어 그 황당한 일을 믿었겠는가.
且伯陽之旨(차백양지지) : 또 한편 위백양의 뜻은 不出於煉精煉氣煉神三者(불출어련정련기련신삼자이) : 연정ㆍ연기ㆍ연신 세 가지를 벗어나지 않았을 뿐인데, 而三者之煉(이삼자지련) : 그 세 가지의 수련은 不必駭人耳目而後行之(불필해인이목이후행지) : 반드시 남의 이목을 놀라게 한 뒤에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擇其駭人者而行之(택기해인자이행지) : 그런데 남의 이목을 놀라게 하는 어떤 행위를 골라 행해야 한다면 則辟穀是已(칙벽곡시이) : 벽곡뿐인 까닭에 故公必以休其糧以驚耀之(고공필이휴기량이경요지) : 공은 반드시 벽곡한다는 것으로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것이었으니, 世之信者(세지신자) : 세상에서 그대로 믿는 사람은 固已謎矣(고이미의) : 진정 수수께끼에 말려든 것이다.
當臨庶人之癈也(당림서인지폐야) : 인목 대비를 서인으로 폐위할 당시, 大臣主全恩(대신주전은) : 대신은 전은을 주장하였고 而臺省執不可(이대성집불가) : 대성에서도 불가함을 고집하였다. 公非不知邦議之得中也(공비불지방의지득중야) : 공 역시 국론이 올바른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乃出位以爭之者(내출위이쟁지자) : 직책을 벗어나 이를 간언한 것이 再焉(재언) : 두 차례나 되었으니 何哉(하재) : 그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蓋力主討逆(개력주토역) : 아마도 그것은 역도들을 물리칠 것을 힘껏 주장하여 以釋上心解群猜也(이석상심해군시야) : 주상의 마음을 놓이게 함과 동시에 많은 사람의 시기를 풀려고 한 것이었다. 故其來其往(고기래기왕) : 그러므로 그의 왕래하는 자취가 不用常禮(불용상례) : 일반적인 전례를 따르지 않고 略以意行之(략이의행지) : 대강 자기 뜻대로 행하여, 使世人或訝或笑(사세인혹아혹소) :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혹은 의아하게 생각하고 혹은 비웃으면서, 以爲不中也(이위불중야) :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여기게 한 것이다. 訝之笑之(아지소지) : 그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비웃으며, 誚以不中(초이불중) : 올바르지 않다고 책망하는 것을 公之所喜(공지소희) : 공은 내심으로 기쁘게 여기는 바인데, 而一世反囿其中(이일세반유기중) : 온 세상이 도리어 그 술(術)에 빠져들어 不自悟也(불자오야) : 스스로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原其心(원기심) : 공의 마음을 살피건대, 不出於全身遠害(불출어전신원해이) : 다만 몸을 보전하고 해를 멀리하는 의도에 불과할 뿐인데, 而世之人妄以爲眞辟穀(이세지인망이위진벽곡) : 세상 사람들은 망령되이 참으로 벽곡한다고 생각하여 譁而議之(화이의지) : 떠들어대며 비평하므로, 余不得不辨焉(여불득불변언) : 내가 변론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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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변(詩辨)-허균(許筠)
今之詩者(금지시자) : 오늘날 시를 하는 사람들이, 高則漢魏六朝(고칙한위륙조) : 높은 수준에서는 한위ㆍ육조 시대의 것을 배우고, 次則開天大曆(차칙개천대력) : 다음은 개천ㆍ대력 연간의 것을 배우고, 最下者乃稱蘇陳(최하자내칭소진) : 가장 낮게는 소식과 진사도를 들먹이며, 咸自謂可奪其位也(함자위가탈기위야) : 모두가 스스로 이르기를 '그 위치를 뺏을 수 있다.'고 한다. 斯妄也已(사망야이) : 그러나 이는 망령될 뿐이다. 是不過掇拾其語意(시불과철습기어의) : 이것은 그 말뜻을 주워 모아 蹈襲剽盜以自衒者(도습표도이자현자) : 그대로 답습하고 표절하여 스스로 자랑하는 자에 불과하니 烏足語詩道也哉(오족어시도야재) : 이들과 어찌 시도(詩道)를 말할 수 있겠는가.
三百篇自謂三百篇(삼백편자위삼백편) : 시경(詩經) 3백 편은 스스로 3백 편이고, 漢自漢(한자한) : 한은 스스로 한이며, 魏晉六朝(위진륙조) : 위진ㆍ육조는 自魏晉六朝(자위진륙조) : 스스로 위진ㆍ육조이고, 唐自爲唐(당자위당) : 당은 스스로 당이며, 蘇與陳亦自爲蘇與陳(소여진역자위소여진) : 소식과 진사도 또한 스스로 소식ㆍ진사도이니, 豈相倣傚而出一律耶(기상방효이출일률야) : 어찌 서로 모방하여 일률적으로 하였겠는가. 蓋各自成一家(개각자성일가) : 대개 제각기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다 而後方可謂至矣(이후방가위지의) : 그런 다음에야 바야흐로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間或有擬作(간혹유의작) : 간혹 남의 글을 본떠 짓더라도 亦試爲之(역시위지) : 역시 시험삼아 이것을 만들어서 以備一體(이비일체) : 하나의 체를 나름대로 갖추는 것이며 非恒然也(비항연야) : 늘 그런 것은 아니니, 其於人脚跟下爲生活者(기어인각근하위생활자) : 남의 발 밑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非豪傑也(비호걸야) : 뛰어난 자가 아니다. 그 然則詩何如而可造極耶(연칙시하여이가조극야) : 렇다면 시는 어떻게 하여야 극에 나아갈 수 있는가
曰先趣立意(왈선취립의) : 이르기를, 흥취보다 앞서 의향을 세우고, 次格命語(차격명어) : 격조를 다음으로 하고 말을 얽는다. 句活字圓(구활자원) : 구절은 활기 있고 글자는 원만하며, 音亮節緊(음량절긴) : 음향은 맑고 음절과 리듬은 굳건한 것으로 기본을 삼고, 而取材以緯之(이취재이위지) : 소재를 취하여 엮되 不犯正位(불범정위) : 정당한 위치를 범하지 말고, 不着色相(불착색상) : 색상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叩之鏗如(고지갱여) : 그리하여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게 하고, 卽之絢如(즉지현여) : 만져보면 화려하게, 抑之而淵深(억지이연심) : 내리눌러서 깊이 있게, 高之而騰踔(고지이등탁) : 높게 올려서 치달리게 하며, 闔而雅徤(합이아건) : 닫을 때는 맑고 힘차게, 闢而豪縱(벽이호종) : 열 때는 호기 있고 여유 있게 하며, 放之而淋漓鼓舞(방지이림리고무) : 생각을 멋대로 구사하여 흥취에 흠뻑 젖어 북 치고 춤추듯이 해야 한다. 用鐵如金(용철여금) : 쇠를 가지고 금을 만들 듯이 하고 化腐爲鮮(화부위선) : 썩은 것을 변화시켜 싱싱하게 하며, 平澹不流於淺俗(평담불류어천속) : 평범하고 담담하되 천박하고 속스런 데에 흐르지 말고, 奇古不隣於怪癖(기고불린어괴벽) : 기이하고 고고하되 괴벽에 가깝게 말며, 詠象不泥於物類(영상불니어물류) : 형상을 읊되 물체에 정체하지 말고, 鋪敍不病於聲律(포서불병어성률) : 깔아서 늘이되 성률(聲律)에 병들게 하지 말며, 綺麗不傷理(기려불상리) : 화려하되 이치를 손상하지 말고, 論議不粘皮(론의불점피) : 논의는 외양을 흐리게 하지 말라. 比興深者通物理(비흥심자통물리) : 비흥을 깊이 있게 하는 자는 사물의 이치를 통하고, 用事工者如己出(용사공자여기출) : 인용을 잘하는 자는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과 같이 한다. 格見於篇成(격견어편성) : 이리하여 품격이 온 편에 나타나 渾然不可鐫(혼연불가전) : 혼연히 흠집을 잡을 수 없고, 氣出於外言(기출어외언) : 기력이 말 밖에 튀어나와야 浩然不可屈(호연불가굴) : 호연히 꺾을 수 없게 된다. 盡是而出之(진시이출지) : 이상의 법칙을 모두 갖춘 다음에야 내놓으면 則可謂之詩也(칙가위지시야) : 비로소 시라고 할 수 있다.
彼漢魏以下諸公(피한위이하제공) : 저 한위 이하 제공들은 皆悟此而力守者也(개오차이력수자야) : 모두 이 법칙을 깨닫고 힘써 지킨 사람들이다. 不然則雖漢趨魏步六朝服而唐言(불연칙수한추위보륙조복이당언) :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한(漢)의 달림에다 위(魏)의 걸음을 걷고, 육조를 옷으로 입고 당(唐)으로 언동(言動)하며, 아, 틀린 것이다 動御蘇陳以馳(동어소진이치) : 소식과 진사도를 마부삼아 치달리더라도 足自形其穢而已(족자형기예이이) : 그저 자신의 추함만을 드러낼 뿐이니, 吁其非矣(우기비의) : 아, 틀린 것일 것이다,
석주소고서(石洲小稿序)-허균(許筠)
吾友權汝章(오우권여장) : 나의 벗 권여장은 弱冠工爲詩(약관공위시) : 약관에 시를 잘 지어 其高可出於古人(기고가출어고인) : 그 높음이 옛 사람을 능가할 만한데도 而世未之貴重焉(이세미지귀중언) : 세상 사람들은 그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나, 余每稱今之最能詩者(여매칭금지최능시자) : 나는 매양 지금의 가장 시 잘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는 必曰汝章汝章(필왈여장여장) : 반드시, "여장이다, 여장이다."했는데, 聞者始而怪(문자시이괴) :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처음에는 괴이하게 생각했고 中而笑(중이소) : 중간에는 웃었고 終而信之(종이신지) : 마침내는 믿었으나, 亦不知其所至深淺也(역불지기소지심천야) : 그 이르러간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역시 알지 못했다. 一日(일일) : 하루는 洪鹿門問曰(홍록문문왈) : 홍녹문이 이르기를, 汝章詩(여장시) : "여장의 시가 在國朝(재국조) : 국조에 있어서 可方何人(가방하인) : 누구에게 견줄 만한가?" 하기에 余曰(여왈) : 내가 말하기를, 金文簡不得當(금문간불득당야) : “김 문간으로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했더니, 鹿門瞠而駭曰(록문당이해왈) : 녹문은 눈이 휘둥그레 놀라며, 毋妄言(무망언) : "망언일랑 하지 말게."라고 하므로, 余竊笑之曰(여절소지왈) : 나는 슬그머니 웃으며 말하기를, 佔畢(점필) : "점필은 特國朝大家人(특국조대가인소칭설) : 국조의 특수한 대가라 사람들이 일컫기 때문에 故姑以方之(고고이방지) : 우선 견주어본 것이나, 若論汝章之獨造玄解(약론여장지독조현해) : 만약 여장의 홀로 이르러간 경지와 깊은 해오(解悟)를 논한다면 則淸右丞若也(칙청우승약야) : 맑음은 우승(右丞) 왕유(王維)와 같고, 旨柳州若也(지류주약야) : 맛있기는 유주(柳州) 유종원(柳宗元)과 같으며, 婉而有味(완이유미) : 순하고 맛있기는 簡齋若也(간재약야) : 간재(簡齋) 원매(袁枚)와 같으니, 奚佔畢竝論哉(해점필병론재) : 어찌 점필과 나란히 논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汝章名位不能動人(여장명위불능동인) : 여장은 명망과 지위가 남들을 움직일 만하지 못한데다가 而世以目見賤之(이세이목견천지) : 세상이 당장 눈으로 보았다 해서 천히 여기지만 使其生於前古(사기생어전고) : 그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則人之仰之奚(칙인지앙지해) : 사람들의 우러름이 어찌 啻佔畢乎(시점필호) : 점필 정도일 뿐이겠는가?
或以汝章少學力乏元氣(혹이여장소학력핍원기) : 혹자는 여장이 학력이 적고 원기가 모자라 當輸佔畢一着(당수점필일착) : 당연히 점필보다 한 단계 모자란다고 하는데, 是尤不知詩道者(시우불지시도자) : 이는 더욱 시의 도를 모르는 자이다. 詩有別趣(시유별취) : 시란 별취(別趣)가 잇는 것이니 非關理也(비관리야) : 이(理)와는 관계치 아니하며, 詩有別材(시유별재) : 시란 별재(別材)가 있는 것이니 非關書也(비관서야) : 글과도 관계가 없는 것이다. 唯其於弄天機奪玄造之(유기어롱천기탈현조지제) : 오직 그 천기를 놀리고 현조를 빼앗는 즈음에 있어 神逸響亮(신일향량) : 정신이 빼어나고 울림이 밝으며 格越思淵爲最上乘(격월사연위최상승) : 격조가 뛰어나고 생각이 깊은 것이 가장 상승(上乘)이 되는 것이니, 彼蘊蓄雖富(피온축수부) : 저 쌓은 것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譬猶談敎漸門(비유담교점문) : 비유컨대 불문에서 교리를 말하는 것과 같으니 其敢望臨濟以上位耶(기감망림제이상위야) : 어찌 감히 임제 이상의 지위를 바랄 수 있겠는가.
李實之平生(리실지평생) : 이실지가 평소에 伉倔少許可(항굴소허가) : 눈이 높아 인정하는 사람이 적었으나 至於汝章(지어여장) : 여장에 이르러서는 則推以爲不可及(칙추이위불가급) : 따라갈 수 없다고 여겼다. 然渠豈亦盡汝章之所至也(연거기역진여장지소지야) : 그러니 어찌 또한 여장이 이른 수준을 다할 수 있겠는가
汝章懶散不裒所著(여장라산불부소저) : 여장은 본래 게을러 지은 것을 모으지 않았는데 沈生拾其傳誦者數百篇(침생습기전송자수백편) : 심생(沈生)이 전승되는 것 수백 편을 모아 弁曰石洲小稿以示余(변왈석주소고이시여) : <석주소고>라 제목을 붙이고 내게 보여주므로 讀而嘻曰(독이희왈) : 나는 읽고서 흐뭇하여,
余言不誣哉(여언불무재) : "내 말이 거짓이 아닐진저. 卽此可覩汝章之全壓倒古人(즉차가도여장지전압도고인이관면일대) : 이에 나아가 여장의 전모를 볼 수 있으니, 고인을 압도하고 일대에 제일가는 자가 非汝章而誰歟(비여장이수여) : 여장이 아니고 그 누구이랴? 世之未貴重者(세지미귀중자) : 세상이 귀중히 여기지 않는다 해서 於汝章(어여장) : 여장에게 奚病焉(해병언) : 무슨 병이 되랴? 矧後世豈無知楊子雲者乎(신후세기무지양자운자호) : 하물며 뒷세상에 양자운을 알아주는 사람이 어찌 없겠는가?"하고 遂加以批評(수가이비평) : 드디어 비평을 하였다.
時出以諷(시출이풍) : 때로 소리내어 외어 보면 風颼颼生牙頰間(풍수수생아협간) : 이와 볼 사이로 바람이 으시시 일어나 不自知神之遐擧於九霄(불자지신지하거어구소) : 저도 모르게 신기가 멀리 높은 하늘까지 날아오르니, 噫其至哉(희기지재) : 아, 지극하도다. 汝章卽安東權韠(여장즉안동권필) : 여장은 곧 안동 권씨로 이름은 필이요,
石洲其自號也(석주기자호야) : 석주는 그의 호이다. 其人品之高(기인품지고) : 그 인품의 높음이 尤出於詩(우출어시) : 시보다 더욱 우뚝하나 而世人之不相貴重(이세인지불상귀중) : 세상 사람들이 귀중히 여기지 않은 것이 愈甚於詩(유심어시) : 시보다 더욱 심하니, 嗚呼惜哉(오호석재) : 아, 애석하도다
문론(文論)-허균(許筠)
문론-허균(許筠)
客問於許子曰(객문어허자왈) : 객이 허자, 나에게 물었다.
當世之稱能古文者(당세지칭능고문자) : “당세에서 고문(古文)에 능하다고 일컫는 자들은 必以子爲巨擘(필이자위거벽) : 반드시 그대를 최고로 칩니다. 吾見之(오견지) : 내가 보기에는 其文雖若浩汗無涯涘(오견지기문수약호한무애사) : 그 글이 비록 넓고 커서 한량이 없는 것 같지만 而率用常語(이솔용상어) : 대체로 상용(常用)의 말을 사용하여 文從字順(문종자순) : 글이 붙고, 글자가 순탄하여, 讀之則如開口見咽(독지칙여개구견인) : 그것을 읽으면 마치 입을 벌리고 목구멍을 보는 것과 같아서 毋論解不解者(무론해불해자) : 해득하는 자나 해득하지 못하는 자를 막론하고 輒無礙滯(첩무애체) : 아무런 걸림이 없으니 業古文者果若是乎(업고문자과약시호) : 고문을 전공하는 사람이 과연 이와 같을 수 있습니까?” 余曰(여왈) : 내가 대답했다. 此其爲古也(차기위고야) : “이런 점이 바로 그것이 고문인 까닭입니다. 子見虞夏之典謨(자견우하지전모) : 우하(虞夏)의 전모(典謨)와 商之訓(상지훈) : 상(商)의 훈(訓)과 周之三誓武成洪範(주지삼서무성홍범) : 주(周)의 삼서(三誓)·무성(武成)·홍범(洪範) 등의 글을 보십시오. 皆文之至者(개문지지자) : 모두가 글귀로서는 극치한 것이지만, 亦見有鉤章棘句(역견유구장극구) : 여기에 장구(章句)에 갈고리를 달고 가시를 붙여 以險辭爭工者否(이험사쟁공자부) : 어려운 말로써 공교롭게 꾸민 곳이 있었던가요? 子曰(자왈) : 공자가 말씀하셨습니다 辭達而已矣(사달이이의) : ‘문사(文辭)는 의사를 전달할 따름이다.’ 하였습니다.
古者文以通上下之情(고자문이통상하지정) : 옛날에는 글을 지음으로써 군신 상하의 의사를 소통하고 以載其道而傳(이재기도이전) : 글로써 그 도를 실어 전하였습니다 故明白正大諄切丁寧(고명백정대순절정녕) : 그러므로 명백(明白)·정대(正大)하고 지성스럽고 使聞者曉然知其指意(사문자효연지기지의) : 듣는 이로 하여금 분명하게 그 가리키고 뜻하는 것을 알게 하였으니 此文之用也(차문지용야) : 이것이 이 글의 효용(效用)입니다. 當三代六經聖人之書與夫黃老諸子百家語(당삼대륙경성인지서여부황로제자백가어) : 삼대(三代)의 육경(六經) 및 성인의 글과 도가서(道家書) 등 제자백가(諸子白家)의 말에 있어서는 皆爲論其道(개위론기도) : 모두 그들의 도를 논하였습니다. 故其文易曉(고기문역효) : 그러므로, 그 글이 알기가 쉽고 저절로 분명하여 而文自古雅(이문자고아) : 문은 예부터 전아했습니다
降及後世(강급후세) : 그러나 후세에 내려와서는 文與道爲二(문여도위이) : 글과 도가 두 갈래로 분리되어 而始有鉤章棘句(이시유구장극구) : 처음에는 장을 끌어오고 구를 따내고 以險辭巧語(이험사교어) : 어렵고 교묘한 말을 써서 爭其工者(쟁기공자) : 그 공교로움을 다투는 자가 생겨났으니 此文之厄也(차문지액야) : 이것은 글의 화액(禍厄)이지 非文之至(비문지지) : 극치가 아닙니다. 吾雖駑(오수노) : 내가 비록 둔해도 不願爲也(불원위야) :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故辭達爲主(고사달위주) : 그러므로 의사의 전달을 위주로 하여 以平平爲文焉耳(이평평위문언이) : 평이하게 지을 뿐입니다.” 客曰(객왈) : 객이 말했다 不然(불연) : “그렇지 않습니다. 子見左氏莊子遷固及近代昌黎柳州歐陽子蘇長公乎(자견좌씨장자천고급근대창려류주구양자소장) : 그대는 좌씨(左氏)·장자(莊子)·사마천(司馬遷)·반고(班固) 및 근대의 한창려(韓昌黎:한유)·유종원(柳宗元)·구양수(歐陽修)·소식(蘇軾)을 보셨는지요? 其文何嘗用常語乎(기문하상용상어호) : 그들의 글이 일상 용어만 사용했었던가요? 況子之文不銓古(황자지문불전고) : 하물며, 그대의 글은 옛것을 본받지 않고 而滔滔莽莽焉是事(이도도망망언시사) : 넓고 큰 것만을 일삼으니 毋乃流於飫否(무내류어어부) : 자만한 데에 빠져 버린 것은 아닐런지요?” 余曰(여왈) : 내가 말했다 之數公之文亦何異於常耶(지수공지문역하이어상야) : “그 몇 분의 글 또한 상용어와 무엇이 다릅니까? 以余觀之(이여관지) : 나로서 그 점을 살펴보건대, 雖若簡若渾若深若奔放(수약간약혼약심약분방약굴기) : 비록 간결한 듯도 하고 웅혼하고, 심오한 듯도 하고 분방한 듯도 합니다 率當世之常語(솔당세지상어) : 그러나, 대체로 그 당시의 상용어를 사용했고 而變爲雅眞(이변위아진) : 바꾸어서 고상하고 진실되게 만든 것이니, 可謂點鐵成金也(가위점철성금야) : 참으로 쇳덩이를 달구어서 황금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後之視今文(후지시금문) : 후세 사람들이 오늘날의 글을 볼 경우에 安知不如今之視數公文耶(안지불여금지시수공문야) : 어찌 오늘날 사람이 그 옛날 몇 분들의 글을 보는 경우와 같지 않을 줄을 알겠습니까? 況滔滔莽莽(황도도망망) : 하물며 넓고 크게 한 것은 正欲爲大(정욕위대) : 진정 웅대하게 하고자 한 것이며, 而不銓古者(이부전고자) : 옛것을 본받지 아니한 것 亦欲其獨立(역욕기독립) : 또한 나름대로 우뚝 솟고자 한 것인데 奚飫爲(해어위) : 무슨 자만이 있는 것이겠습니까? 子詳見之數公乎(자상견지수공호) : 그대는 그들 몇 분을 자세히 보셨습니까? 左氏自爲左氏(좌씨자위좌씨) : 좌씨는 스스로 좌씨이고, 莊子自爲莊子(장자자위장자) : 장자는 스스로 장자이며, 遷固自爲遷固(천고자위천고) : 사마천·반고는 스스로 사마천·반고이고, 。 愈宗元脩軾亦自爲愈宗元脩軾(유종원수식역자위유종원수식) : 한유·유종원·구양수·소식 역시 스스로 한유·유종원·구양수·소식이어서 不相蹈襲(불상도습) : 서로 답습하지 않고 各成一家(각성일가) : 각각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僕之所願(복지소원) : 내가 원하는 것은 願學此焉(원학차언) : 이런 것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고, 恥向人屋下架屋蹈竊鉤之誚也(치향인옥하가옥도절구지초야) : 지붕 밑에 거듭 지붕을 얹듯이 남의 문장을 답습하여, 표절했다는 꾸지람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客曰(객왈) : 객이 말했습니다. 子之文旣平易(자지문기평역류편) : “그대의 글이 평이하고 유창하니 其所謂法古者(기소위법고자) : 이른바 옛것을 본받는 것은 當於何求之(당어하구지) : 어디서 구하여야 합니까?“ 余曰(여왈) : 내가 말했다. 當於篇法章法字法(당어편법장법자법) : 그야 당연히 편법(篇法)·장법(章法)·자법()에서 구할 것입니다. 篇有一意直下者(당어편법장법자법구지편유일의직하자) : 편(篇)에는 한 뜻으로 곧바로 내려간 것도 있고, 或鉤連筦鑰者(혹구련관약자) : 혹은 서로 걸어서 연결하여 여닫는 것도 있고, 或節節生情者(혹절절생정자) : 혹은 마디마디 정감을 내보이는 것도 있고, 或鋪敍而用冷語結者(혹포서이용랭어결자) : 혹은 늘어놓다가 냉정한 말로 끝을 맺는 것도 있고, 或委曲繁瑣而有法者(혹위곡번쇄이유법자) : 혹은 사소하고 번잡하면서도 법칙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章有井井不紊者(장유정정불문자) : 장(章)에는 조리가 정연하여 헝클어지지 않는 것도 있고, 有錯落而不雜者(유착락이불잡자) : 뒤섞이되 잡되지 않은 것도 있고, 有若斷而承前繳後者(유약단이승전격후자) : 끊어진 듯하되 앞을 잇고 뒤를 동여맨 것도 있고, 有極宂有極短者(유극용유극단자) : 극히 지리한 것도 있고, 극히 짧은 것도 있고, 有說不了者(유설불료자) : 말을 하고도 끝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字有響處幹處伏處收拾處(자유향처간처복처수습처) : 자(字)에는 올리는 곳, 돌리는 곳, 잠복하는 곳, 수습하는 곳, 거듭하되 어지럽지 않는 곳, 강하되 억지로 하지 않는 곳, 끌어당기되 힘을 부리지 않는 곳, 열고 닫는 곳, 부르고 소리치는 곳이 있습니다. 疊而不亂處(첩이불란처) : 強而不努處(강이불노처) : 강하되 억지로 하지 않는 곳, 引而不費力處(인이불비력처) : 끌어당기되 힘을 부리지 않는 곳, 開闔處(개합처) : 열고 닫는 곳, 呼喚處(호환처) : 부르고 소리치는 곳이 있다. 字不亮則句不雅(자불량칙구불아) : 자(字)가 밝지 못하면 구(句)가 고상하지 못하고, 章不妥則意不瀆(장불타칙의불독) : 장(章)이 안정되지 못하면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二者備而乃可以成篇(이자비이내가이성편) : 이 두 가지가 갖추어져야 편(篇)을 이룰 수 있다. 余之文(여지문) : 내 글은 只悟此也(지오차야) : 단지 이것을 깨달은 것일 뿐이며, 古之文(고지문) : 고문(古文) 亦行此也(역행차야) : 또한 이것을 행하였던 것이다. 今之所謂解者(금지소위해자) : 오늘날의 이른바 글을 이해하는 사람도 亦未必覷此(역미필처차) : 반드시 이것을 엿보지 못하였는데 況不解者否(황불해자부) : 하물며 그렇지 못하는 사람이야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客曰(객왈) : 객이 말하였다. 善吾不及是夫(선오불급시부) : "훌륭하다. 내가 여기에 미치지 못하였구려."라고 하였다 호민론(豪民論)-허균(許筠)
호민론-허균(許筠)
天下之所可畏者(천하지소가외자) : 천하에 두려워할 대상은 唯民而已(유민이이) : 오직 백성뿐이다. 民之可畏(민지가외) : 백성을 두려워해야 함은 有甚於水火虎豹(유심어수화호표) : 홍수나 화재 또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심함이 있다. 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재상자방차압순이학사지) :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다니 抑獨何哉(억독하재) : 도대체 어째서 다만 그러한가?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부가여악성이구어소상견자) : 이미 이루어진 것을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고, 늘 보아 오던 것에 익숙하여 循循然奉法役於上者(순순연봉법역어상자) : 그냥 순순하게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恒民也(항민야) : 항민(恒民)이다. 恒民不足畏也(항민불족외야) : 이러한 항민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厲取之而剝膚椎髓(려취지이박부추수) : 모질게 착취당하여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竭其廬入地出(갈기려입지출) :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산출되는 것을 다 바쳐서 . 以供无窮之求(이공무궁지구) : 한없는 요구에 이바지하느라, 愁嘆咄嗟(수탄돌차) :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咎其上者(구기상자) : 윗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怨民也(원민야) : 원민(怨民)이다 怨民不必畏也(원민불필외야) : 이러한 원민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潛蹤屠販之中(잠종도판지중) : 자신의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陰蓄異心(음축이심) :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僻倪天地間(벽예천지간) : 세상을 흘겨보다가 幸時之有故(행시지유고) : 혹시 그 때에 어떤 큰일이라도 일어나면 欲售其願者(욕수기원자) : 자기의 소원을 실행해 보려는 사람들은 豪民也(호민야) : 호민(豪民)이다. 夫豪民者(부호민자) : 이 호민은 大可畏也(대가외야) :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다. 豪民(호민) : 호민이 伺國之釁(사국지흔) :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覘事機之可乘(첨사기지가승) : 일의 형편을 이용할 만한때를 노리다가 奮臂一呼於壟畝之上(분비일호어롱무지상) :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則彼怨民者聞聲而集(칙피원민자문성이집) : 원민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不謀而同唱(불모이동창) : 모의하지 않고서도 소리를 지르고, 彼恒民者(피항민자) : 저들 항민도 亦求其所以生(역구기소이생) : 또한 제 살 방법을 찾느라 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불득불서우극긍왕종지) : 부득불 호미, 고무레, 창, 창자루를 가지고 쫓아가서 以誅无道也(이주무도야) : 무도한 놈들을 죽인다다. 秦之亡也(진지망야) : 진나라가 망한 것은 以勝廣(이승광) : 진승과 오광 때문이었고, 而漢氏之亂(이한씨지란) : 한나라가 어지러워진 것은 亦因黃巾(역인황건) : 또한 황건적 때문이었다. 唐之衰而王仙芝黃巢乘之(당지쇠이왕선지황소승지) : 당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와 황소가 그 틈을 타고 일어나 卒以此亡人國而後已(졸이차망인국이후이) : 마침내 백성과 나라를 망하게 한 뒤에야 그쳤다. 是皆厲民自養之咎(시개려민자양지구) : 이러한 일들은 모두 백성들에게 모질게 굴면서 저만 잘 살려고 한 허물이며, 而豪民得以乘其隙也(이호민득이승기극야) :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잘 이용한 것이다. 夫天之立司牧(부천지립사목) : 하늘이 벼슬아치를 세운 것은 爲養民也(위양민야) : 백성을 돌보게 하기 위해서였지 非欲使一人恣睢於上(비욕사일인자휴어상) :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서 以逞溪壑之慾矣(이령계학지욕의) : 계곡같이 커다란 욕심을 부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彼秦漢以下之禍(피진한이하지화) : 진나라, 한나라 이후의 화란은 宜矣(의의) : 당연한 결과였지, 非不幸也(비불행야) : 불행했던 것은 아니다 今我國不然(금아국불연) : 조선은 중국과는 다르다. 地陿阨而人山(지협액이인산) : 땅이 비좁고 험하여 사람도 적고, 民且呰寙齷齪(민차자유악착) : 백성 또한 나약하고 게으르며 잘아서, 无奇節俠氣(무기절협기) : 뛰어난 절개나 넓고 큰 기상이 없다. 故平居雖无鉅人雋才出爲世(고평거수무거인준재출위세용) : 그런 까닭에 평상시에 위대한 인물이나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세상에 쓰여지는 일도 없었지만, 而臨亂亦无有豪民悍卒倡亂首爲國患者(이림란역무유호민한졸창란수위국환자) : 난리를 당해도 또한 호민이나 사나운 병졸들이 반란을 일으켜 앞장서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던 적도 없었으니 其亦幸也(기역행야) : 그 또한 다행이었다. 雖然(수연) : 비록 그렇긴 하지만 今之時與王氏(금지시여왕씨시불동야) : 지금의 시대는 고려 때와 함께해보면, 前朝賦於民有限(전조부어민유한) : 고려 때에는 백성들에게 조세를 부과함에 한계가 있었고, 而山澤之利(이산택지리) : 산림(山林)과 천택(川澤)에서 나오는 이익도 與民共之(여민공지) : 백성들과 함께 했었다. . 通商而惠工(통상이혜공) : 장사할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 주고, 물건을 만드는 기술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又能量入爲出(우능량입위출) : 또 수입을 잘 헤아려 지출을 하였기 使國有餘儲(사국유여저) : 나라에는 여분의 저축이 있어 卒有大兵大表(졸유대병대표) : 갑작스럽게 커다란 병화나 상사(喪事)가 있어도 不加其賦(불가기부) : 조세를 추가로 징수하지는 않았다. 及其季也(급기계야) : 그러고도 그 말기에 이르러서는 猶患其三空焉(유환기삼공언) : 오히려 세가지가 비게 됨을 걱정할 정도였다 我則不然(아칙불연) : 우리 조정은 그렇지 아니하여 以區區之民(이구구지민) : 구구한 백성이면서도 其事神奉上之節(기사신봉상지절) : 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범절을 與中國等(여중국등) : 중국과 대등하게 하고 있었는데, 而民之出賦五分(이민지출부오분) : 백성들이 내는 조세가 다섯 푼이라면 則利歸公家者纔一分(칙리귀공가자재일분) : 조정에 돌아오는 이익은 겨우 한 푼이고 其餘狼戾於姦私焉(기여랑려어간사언) : 그 나머지는 간사한 자들에게 어지럽게 흩어져 버린다. 且府無餘儲(차부무여저) : 또 관청에서는 여분의 저축이 없어 有事則一年或再賦(유사칙일년혹재부) : 일만 있으면 한 해에도 두 번씩이나 조세를 부과하는데, 而守宰之憑以箕斂(이수재지빙이기렴) : 지방의 수령들은 그것을 빙자하여 칼질하듯 가혹하게 거두어들이는 것 亦罔有紀極(역망유기극) : 또한 끝이 없었다. 故民之愁怨(고민지수원) : 그런 까닭에 백성들의 시름과 원망은 有甚王氏之季(유심왕씨지계) : 고려 말보다 더 심한 상태였다. 上之人恬不知畏(상지인념불지외) : 그런데도 윗사람들이 태평스레 두려워할 줄 모르니 以我國無豪民也(이아국무호민야) : 우리 나라에는 호민이 없기 때문이다. 不幸而如甄萱弓裔者出(불행이여견훤) : 불행하게도 견훤이나 궁예 같은 자가 나와서 奮其白挺(분기백정) : 백성을 빼앗아 일어난다면 則愁怨之民(칙수원지민) : 근심하고 원망하던 백성들이 安保其不往從而祈梁六合之(안보기불왕종이기량륙합지변) : 가서 따르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증하겠는가? 可跼足須也(가국족수야) : 기주·양주에서와 같은 천지를 뒤엎는 변란은 발을 구부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爲民牧者(위민목자) :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이 灼知可畏之形(작지가외지형) : 두려워해야 할 만한 형세를 명확하게 알아서 與更其弦轍(여경기현철) : 시위와 바퀴를 고친다면, 則猶可及已(칙유가급이) :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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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허균(許筠)
남궁선생전-허균(許筠)
先生名斗(선생명두) : 선생의 이름은 두(斗), 世居臨陂(세거림피) : 대대로 임피(臨陂; 전북 옥구의 옛 지명)에서 살아 家故饒(가고요) : 집안도 오래되고 재산도 넉넉하여 財雄於鄕(재웅어향) : 고을에서 이름 난 집안이었다. 自其祖父二世皆不肯推擇爲吏斗(자기조부이세개불긍추택위리두) :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2대에는 과거에 뽑혀 관리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獨以博士弟子業起家(독이박사제자업기가) : 두(斗)만은 박사의 제자로서 과거공부를 하여 집안을 일으켰다. 年三十(년삼십) : 30세에 始中乙卯司馬(시중을묘사마) : 처음으로 을묘년(명종 10, 155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有聲場屋間(유성장옥간) :과장(科場)을 울렸다. 嘗以大信不絇賦(상이대신불구부) : 일찍이 대신불약부(大信不約賦)라는 글을 지어 魁泮解(괴반해) : 성균관(成均館) 시험에 수석으로 뽑혀 人皆傳誦之(인개전송지) : 사람들이 모두 그 글을 전송(傳誦)하기도 했다. 斗伉倔自矜懻(두항굴자긍기) : 두(斗)는 거만하고 고집이 세며, 剛忍敢爲(강인감위) :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성격이어서 恃才豪橫於閭里(시재호횡어려리) : 감히 재주만 믿고는 고을에서 호탕한 채 멋대로 지냈었다. 倨不爲禮於長吏(거불위례어장리) : 잘난 체하면서 장리(長吏; 고을의 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지도 않으니 縣上下俱側目於斗(현상하구측목어두) : 읍내의 상하간이 모두 두(斗)를 흘겨보며 앙심을 품었으나 而積不敢發(이적불감발) :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始先生移家輦下(시선생이가련하) : 처음으로 선생이 서울로 이사하여 爲進取計(위진취계) : 진취(進取)할 계획을 세우고는, 而留一妾於鄕墅(이류일첩어향서) : 첩(妾) 한 사람만 시골 집에 남겨 두었다. 每年秋(매년추) : 해마다 가을이면 輒歸(첩귀) : 곧장 내려가 經紀其務(경기기무) : 가을 수확을 처리하였다. 妾卽兵家女而艶慧甚(첩즉병가녀이염혜심) : 첩(妾)은 무인(武人)의 딸이었으나 매우 예쁘고 영특하여 敎以書計(교이서계) : 글과 계산법을 가르쳐 주면 該捷絶倫(해첩절륜) : 뛰어나게 빨리 알아차렸다. 斗絶嬖之(두절폐지) : 그래서 두(斗)는 그를 가장 사랑했었다. 其在洛也(기재락야) : 그러나 주인이 서울에 살게 되면서 則曠居累月(즉광거루월) : 여러 달 동안 독수공방으로 지냈으므로 故潛與斗之堂姪異姓者私(고잠여두지당질이성자사) : 몰래 두(斗)의 성(姓)이 다른 당질(堂姪)과 사통(私通)하고 있었다. 戊午秋(무오추) : 무오년(명종 13, 1558) 가을 斗以事急還鄕(두이사급환향) : 두(斗)는 급한 일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未及一舍所日曛(미급일사소일훈) : 30리를 남기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留傔從(류겸종) : 하인배들만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는 獨一騎馳至墅(독일기치지서) : 혼자서 말 한 필을 타고 시골 집으로 달려와 보니 則已燃燈矣(칙이연등의) : 이미 등불이 밝혀 있는 밤이었다. 僕隷咸休(복례함휴) : 노복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으나 中門洞啓(중문동계) : 중문(中門)이 활짝 열려 있어 見妾艶粧麗服佇於階(견첩염장려복저어계) : 첩(妾)이 보이는데, 곱게 화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섬돌에 서 있었다. 而堂姪者踰東短垣(이당질자유동단원) : 당질(堂姪) 놈이 동쪽의 낮은 담을 넘느라 足未及地者半咫(족미급지자반지) : 발이 땅에 반자[半尺]쯤 닿지 않고 있는데 妾遽前摟抱(첩거전루포) : 첩이 급히 달려가 안아서 맞아들이고 있었다. 斗忍怒而姑徐俟其終(두인노이고서사기종) : 두(斗)는 분노를 참으며 짐짓 그 마지막까지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繫馬於外門柱(계마어외문주) : 말[馬]을 외문(外門)의 기둥에 매어 두고 潛身蔽於隙中以窺之(잠신폐어극중이규지) : 몸을 숨겨 가린 채, 틈 사이로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二人者諧謔極褻(이인자해학극설) : 두 사람이 희희덕거리며 온갖 추잡을 떨다가, 將解衣竝枕(장해의병침) : 옷을 벗고 함께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에 斗方窮其實(두방궁기실) : 두(斗)는 당장 그 실제를 확인하기 위해 就暗裏摸壁(취암리모벽) : 어둠 속으로 가서 벽을 더듬으니 則掛箙有二矢一弧(칙괘복유이시일호) : 걸려 있는 화살통에 화살 두 개와 활 하나가 있었다. 遂關而注射(수관이주사) : 마침내 화살을 당겨서 쏘아, 先貫女胸腹立潰(선관녀흉복립궤) : 먼저 계집의 흉부를 꿰뚫어 즉시 넘어뜨리니 其男驚起(기남경기) : 그 사내는 놀라서 일어나 跳北囱出(도북창출) : 북쪽 창문으로 뛰어넘으려 하자, 又射之中脅斃(우사지중협폐) : 또 쏘아 늑골을 적중시켜서 죽게 하였다. 斗欲告官(두욕고관) : 두(斗)는 관(官)에 알리고도 싶었으나 以點汚門戶(이점오문호) : 가문(家門)을 더럽히는 일이자, 且難保長吏心(차난보장리심) : 또 고을 원님의 마음을 보장하기도 어려운 일이어서 卽牽二屍(즉견이시) : 곧 바로 두 시체를 끌고 가서 埋於稻田瀆內(매어도전독내) : 벼논의 도랑 속에 매장해 버렸다. 卽疾驅回洛(즉질구회락) : 그리고는 곧바로 말을 몰아 서울로 돌아왔었다. 遲明(지명) : 다음날 날이 밝은 훨씬 뒤에야 家僕覺之(가복각지) : 집안의 종들은 첩이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意其與堂姪逃(의기여당질도) : 그녀와 당질이 도망친 걸로 여기고 問姪家則亦莫知所之(문질가칙역막지소지) : 당질의 집에 가서 물어보니, 역시 간 곳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有莊奴竊斗穀百許石(유장노절두곡백허석) : 농장의 어떤 종놈이 두(斗)의 곡식 1백여 석(石)을 훔친 적이 있어 常恐斗來則必死(상공두래칙필사) : 두(斗)가 오면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항상 염려하고 있었다. 疑斗之殺二人(의두지살이인) : 그 자는 두(斗)가 두 사람을 죽였지 않을까 의심하고는 尋其跡(심기적) : 그 자취를 찾아대었다. 田瀆有膏沸於水上(전독유고비어수상) : 벼논 도랑의 물 위에 기름이 떠 있는 걸 보고서 鍤發之(삽발지) : 삽질하여 파보니 二屍俯仰焉(이시부앙언) : 두 시체가 엎어지고 뒤집어져 있었다. 卽奔告妾家(즉분고첩가) : 곧바로 첩(妾)의 집에 알리자 老革告于令(로혁고우령) : 늙은 병졸이 현령(縣令)에게 고발하고, 引男家證有宿怨(인남가증유숙원) : 사내 집안에서 숙원(宿怨)이 있었다는 증거를 세웠다. 令與諸吏固嘗不快於斗(령여제리고상불쾌어두) : 현령이나 여러 아전들은 본래부터 두(斗)를 불쾌하게 여겼기에 俱喜而欲甘心以私嫌(구희이욕감심이사혐) : 모두 기뻐하여 잘 걸려들었다고 하면서, 사사로운 미움으로 謀殺堂姪爲案(모살당질위안) : 당질(堂姪)을 모살(謀殺)했다고 죄안(罪案)을 꾸몄다. 械斗於都下(계두어도하) : 서울에서 두(斗)는 형틀에 묶이고, 五毒備漆(오독비칠) : 오독을 첨가한 攬至尼山(람지니산) : 죄인의 수레에 태워 이산(尼山; 충남의 지명)에 이르렀다. 斗之妻負幼女追至(두지처부유녀추지) : 두(斗)의 아내가 어린 딸을 업고 뒤늦게 도착해서는 醉守者(취수자) : 간수(看守)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이고 夜脫械逸去(야탈계일거) : 밤에 형틀을 풀어 빠져나가게 하였다. 天亮(천량) : 날이 밝아서야 守者覺之(수자각지) : 간수가 그가 없음을 알아냈으나 跡不獲(적불획) : 찾을 길이 없었다. 以其妻致縣(이기처치현) : 그래서 그의 아내를 읍내까지 데려와 竝女庾死獄中(병녀유사옥중) : 딸과 함께 옥중에서 굶겨 죽였다. 陂池園田臧獲(피지원전장획) : 임피(臨陂)의 전답과 재산을 狼籍分析於二仇家(랑적분석어이구가) : 모조리 빼앗아 두 피해자 집안에 나누어 주었다. 斗卽入金臺山(두즉입금대산) : 두(斗)는 곧바로 금대산(金臺山)으로 들어가 落髮爲僧(락발위승) : 낙발(落髮)하고 중이 되었으니, 法名摠持(법명총지) : 법명(法名)을 총지(摠持)라고 하였다. 戒行甚嚴(계행심엄) : 계행(戒行)을 무척 엄하게 지키며 過一臘(과일랍) : 1년을 지냈다. 仇家跡知之(구가적지지) : 원수로 여기던 집에서 있는 곳을 알아내어 率吏士掩之(솔리사엄지) : 병졸들을 거느리고 붙잡으러 오고 있었다. 其曉夢有山神告曰(기효몽유산신고왈) : 그날 새벽에 꿈을 꾸는데, 산신(山神)이 일러주기를, 冤債至(원채지) : "원수진 사람들이 올 것이니 可亟去(가극거) : 급히 달아나야겠다."하였다. 旣覺(기각) : 잠에서 깨어나자 急下山(급하산) : 급히 하산(下山)에 버리니 捕者至(포자지) : 잡으러 오던 사람들이 도착해서는 不獲而返(불획이반) : 붙잡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斗向頭流山(두향두류산) : 두(斗)는 두류산(頭流山; 智異山)으로 향하다가 居雙溪月餘(거쌍계월여) : 쌍계사(雙溪寺)에서 한 달 정도 기거하였다. 厭名刹緇俗所湊集棄(염명찰치속소주집기) : 이름 있는 절이라 중들이나 속인들이 모여드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곳을 버리고 向太白山至宜寧野庵憩焉(향태백산지의녕야암게언) : 태백산(太白山)으로 향했다. 의령(宜寧)에 있는 야암(野庵)에 이르러 휴식을 취했다. 續有一僧至(속유일승지) : 뒤따라 중 한 사람이 도착하였다. 丰秀年少(봉수년소) : 예쁘게 생겼고 나이도 어린데 解襆距堂廉睨曰(해복거당렴예왈) : 삿갓을 벗고 당(堂)으로 오르더니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면서, 君士族也(군사족야) : "그대는 사족(士族)이군요. 何脫削乎(하탈삭호) : 왜 뒤늦게 삭발하였습니까?"하고는 俄曰(아왈) : 조금 뒤에, 性忍者(성인자) : "참을성이 있는 분이군요."하더니 少頃曰(소경왈) : 잠시 뒤에는, 業侕而得一名也(업이이득일명야) : "유도(儒道)를 업으로 하시면 큰 벼슬 하실 텐데."하였다. 良久笑曰(량구소왈) : 얼마쯤 지나서는 껄걸 웃으면서, 傷二人命(상이인명) : "두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하고 負罪逃者(부죄도자) : 죄를 지어 도망온 사람이군요."하는데, 發四言皆合(발사언개합) : 말한 네 마디가 모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斗大駴錯愕失措(두대해착악실조) : 두(斗)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夜就其寢(야취기침) : 밤이 되어 그의 침소로 찾아가 扣頭服賓(구두복빈) : 머리를 조아리며 해준 말이 사실이라고 승복하여 且請敎甚懇(차청교심간) : 이어서 무척 간곡하게 스승이 되어달라고 청했었다. 少年僧曰(소년승왈) : 나이 젊은 중은, 我只解相人耳(아지해상인이) : "나는 겨우 관상(觀相)만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오. 吾師多藝(오사다예) : 우리 스승께서는 모든 방술(方術)을 아십니다. 相某人當傳某藝(상모인당전모예) : 어떤 사람을 관상하고는 어떤 방술을 전해 주시니, 或符呪或象緯或堪輿或推占(혹부주혹상위혹감여혹추점) : 더러는 부주(符呪)로, 더러는 상위(象緯)로, 더러는 감여(堪輿; 풍수지리)로, 더러는 추점(推占)을 전해 주시며 隨其器誘掖之(수기기유액지) : 그 그릇에 따라 친절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我受相法(아수상법) : 나는 상법(相法; 관상법)을 전수받았으나 尙未造極(상미조극) : 아직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安敢爲人師(안감위인사) : 어떻게 감히 남의 스승이 되겠습니까."하였다. 斗問師今焉在(두문사금언재) : 두(斗)가 지금 스승이 어디에 계시냐고 묻자 僧曰(승왈) : 그 중은, 住茂朱雉裳山(주무주치상산) : "무주(茂朱; 전북의 지명)의 치상산(雉裳山)에 계시오. 你往則可見(니왕칙가견) : 그대가 그곳으로 가면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하자, 斗拜而退(두배이퇴) : 두(斗)는 절하고 나왔다. 迨曙往候(태서왕후) : 다음날 날이 밝아 안부를 살피러 가 보았더니 則已去矣(칙이거의) : 이내 떠나버렸다. 卽回錫到雉裳山(즉회석도치상산) : 곧바로 방향을 돌려 막대를 짚고, 치상산에 도착하여 環山伽藍殆數十區(환산가람태수십구) : 온 산을 두루 살폈다. 절이 거의 수십 곳이었으나 俱無異僧(구무이승) : 모든 절에 유별한 중[異僧]이라고는 없었다. 留一歲苦心(류일세고심) : 한 해 동안을 머물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 參訪層硿絶頂鳥迹所不到處(참방층공절정조적소불도처) : 돌이 구르는 층계와 산의 정상(頂上), 나는 새도 이른 적이 없는 곳까지를 찾아다녔다. 搜覓三四周而不能得(수멱삼사주이불능득) : 세번 네번을 돌며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以爲少年僧相誑(이위소년승상광) : 그래서 젊은 중이 속였다고 여기고 悵然欲返(창연욕반) : 창연(悵然)히 돌아가려 하였다. 忽到一洞(홀도일동) :그런데 우연히 한 골짜기에 이르자 有川注於林薄間(유천주어림박간) : 숲속으로 흐르는 시내가 있었는데, 流出大桃核(류출대도핵) : 물 위에 큰 복숭아씨가 흐르고 있었다. 斗心欣然曰(두심흔연왈) : 두(斗)는 마음 속으로 기뻐서, 是中莫是仙師所否(시중막시선사소부) : "이 계곡 가운데가 선사(仙師)가 계시는 곳이 아닐는지."하고는 促步沿流可數里許(촉보연류가수리허) : 걸음을 재촉하여 물줄기를 따라 몇 리(里) 정도를 걸어 들어가 仰觀一峯陡起(앙관일봉두기) : 우뚝 솟은 한 봉우리를 바라보니, 松杉翳日(송삼예일) : 소나무와 삼목(杉木)이 해를 가리고 있는 곳에 有素屋三楹倚崖而構(유소옥삼영의애이구) : 허름한 세 칸 집이 있었다. 벼랑에 기대어 지은 집인데 砌石爲臺(체석위대) : 돌로 쌓은 층계로 대(臺)를 만들었고 位置淸塏(위치청개) : 맑고 깨끗한 곳에 위치를 정하였다. 攬衣經登其上(람의경등기상) : 옷깃을 거머쥐고 길을 따라 그 위로 오르니 則有一小童迎曰(칙유일소동영왈) : 동자(童子)가 맞이해 주며 묻기를 問何方來(문하방래) : "어디서 오시오?"하기에, 斗揖曰(두읍왈) : 두(斗)는 읍(揖)하고서, 摠持來參仙師(총지래참선사) : "총지(摠持)가 선사(仙師)를 찾아 뵈러 왔습니다."했더니, 童闢東偏左閤子(동벽동편좌합자) : 동자가 동편의 왼쪽 합문(閤門)을 열어주었다. 有老僧形如槁木(유로승형여고목) : 노승(老僧)이 계시는데 모습은 마른 나무 같았으며 披破衲出曰(피파납출왈) : 해진 가사(袈裟)를 입고 나오면서, 和尙風神聳溢(화상풍신용일) : "화상(和尙)의 풍신이 우람하여 非恒人也(비항인야) : 보통 사람 같지 않은데, 曷爲至(갈위지) : 무엇 때문에 오셨나?"하였다. 斗跽曰(두기왈) : 두(斗)는 꿇어앉으며, 愚魯無他技(우로무타기) : "어리석고 우둔한 저는 아무런 기예(技藝)가 없습니다. 聞老師多藝(문로사다예) : 노사(老師)께서 많은 방술(方術)을 알고 계심을 듣고 欲行一方技以行世(욕행일방기이행세) : 세상에서 한 가지의 방술이라도 행하고 싶어서 千里求師而來(천리구사이래) : 천리 먼 길에 스승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週一歲方得樞衣(주일세방득추의) : 1년을 지내고야 겨우 찾았습니다. 幸進而敎之(행진이교지) : 제자가 되어 배우려 하오니 가르쳐 주소서."하였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山野濱死之夫耳(산야빈사지부이) : "산야(山野)에서 죽음이 임박해 있는 사람일 뿐인데 安有藝耶(안유예야) : 무슨 방술이 있겠나."하자, 斗百拜懇乞(두백배간걸) :두(斗)는 계속 절하며 간절히 애걸했으나 固拒之(고거지) : 굳게 거절하며 閤戶不出(합호불출) : 문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斗伏於廡下(두복어무하) : 두(斗)는 처마 아래서 엎드린 채, 達曉哀訴(달효애소) : 새벽이 되도록 애소(哀訴)하였고 至朝不休(지조불휴) : 아침이 되어도 그만두지 않았으나, 長老視若無人(장로시약무인) : 장로는 아무도 없는 것같이 여기며 趺坐入定(부좌입정) : 부좌(趺坐)하고 선정(禪定)에 들어가 不顧者三日(불고자삼일) : 돌아보지도 않은 채 3일을 보냈다. 斗僉不懈(두첨불해) : 두(斗)가 갈수록 더 정성을 드리자, 長老方鑑其誠(장로방감기성) : 장로는 그때에야 그의 정성을 알아보고는 闢戶令入室(벽호령입실) : 문을 열어주며 방으로 들어오도록 해주었다.
室大方丈(실대방장) : 방이 한 길[丈]밖에 되지 않았고 只安一木枕(지안일목침) : 목침(木枕) 하나가 놓여 있으며 鑑北龕爲六谷(감북감위륙곡) : 북쪽 벽을 뚫어 여섯 굽이의 감실(龕室)을 만들었다. 鑰閉而掛一匕於龕柱(약폐이괘일비어감주) : 자물쇠로 닫아 놓고 열쇠 하나를 감실 기둥에 걸어 놓았고 南囱上懸板(남창상현판) : 남쪽 창문 위의 선반에는 兒有五六卷書而已(아유오륙권서이이) : 책 5~6권이 있을 뿐이었다. 長老熟視之(장로숙시지) : 장로가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笑曰(소왈) : 웃으면서, 君忍人也(군인인야) : "그대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네. 推朴不可訓他技(추박불가훈타기) : 투박한 성품이니 다른 방술은 가르쳐 줄 수 없고 唯可以不死敎之(유가이불사교지) : 오직 죽지 않는 방술은 가르쳐 줄 수 있겠네."했다. 斗起拜曰(두기배왈) : 두(斗)가 일어나 절하며, 是足矣(시족의) : "그거면 족합니다. 奚用他爲(해용타위) :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하였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凡諸方先聚精神(범제방선취정신) : "대저 모든 방술(方術)이란 먼저 정신(精神)을 모은 而後乃可成(이후내가성) : 후에 이룰 수 있는 것인데, 矧煉魄飛神(신련백비신) : 더구나 혼(魂)과 정신을 단련하여 欲求仙蛻者乎(욕구선태자호) : 신선(神仙)으로 탈바꿈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야 더 말할 게 있겠나. 聚精神自不睡始(취정신자불수시) : 정신을 모으는 일은 你先不睡(니선불수) :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斗到此四日(두도차사일) : 而長老不食飮(이장로불식음) : 그대는 먼저 잠을 자지 않도록 하게나."하였다. 猶童日一食黑豆米一合(유동일일식흑두미일합) : 두(斗)가 그곳에 도착한 지 4일이 되어도 장로는 음식을 먹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하루에 한 차례 흑두말(黑豆末 검은 콩가루) 한 홉만 먹고도 了無飢疲色(료무기피색) : 전혀 배고프고 피로한 기색이 없어, 心已異之(심이이지) : 마음에 별다르게 여기고 있었는데, 及承此誨(급승차회) : 그러한 가르침을 받고는 至誠發大願(지성발대원) : 온 정성을 다하여 큰 소원을 이뤄 달라고 빌었다. 初夜坐到四更眼自合(초야좌도사경안자합) : 첫날 밤에는 앉아서 사경(四更)을 지내자 눈이 저절로 감겼으나 忍而至曙(인이지서) : 참아내고 새벽까지 보냈으며, 第二夜昏倦不省事(제이야혼권불성사) : 둘째 날에도 정신이 흐리고 고달파 움직일 수도 없었으나 刻意堅忍(각의견인) : 각고의 뜻으로 굳게 참아냈다. 三夜四夜倦困不能植坐(삼야사야권곤불능식좌) : 셋째와 넷째 날의 밤에도 피로하고 고달파 앉아 있을 수도 없어, 頭或撞於壁楣(두혹당어벽미) : 더러는 머리를 벽에 찧고 부딪히며 猶忍過(유인과) : 겨우 참았다. 第七夜(제칠야) : 일곱째 밤을 지냈더니 脫然朗悟(탈연랑오) : 툭 트이듯 정신이 밝게 깨쳐 精神自覺醒爽(정신자각성상) : 상쾌함을 자각할 수 있었다. 長老喜曰(장로희왈) : 장로(長老)가 기뻐하며, 君有許大忍力(군유허대인력) : "그대에게는 정말로 큰 인내력이 있으니 何事不可做乎(하사불가주호) : 무슨 일인들 이룰 수 없겠나."하고는 因出二經授之曰(인출이경수지왈) : 이어서 두 가지의 경전(經傳)을 꺼내 주면서, 伯陽參同契(백양참동계) : "위백양의《참동계(參同契)》라는 책이니 乃修煉至訣(내수련지결) : 수련(修煉)하는 데 가장 좋은 비결(祕訣)이며 仙家最上乘(선가최상승) : 선가(仙家)의 가장 높은 교리[上乘]이다. 黃庭內外玉景經(황정내외옥경경) : <황정경>의 내옥경경(內玉景經)은 乃導氣煉臟至要(내도기련장지요) : 기(氣)를 인도하고 오장(五臟)을 단련하는 지요(至要)한 것으로 亦道家妙諦(역도가묘체) : 역시 도가(道家)의 묘체(妙諦)다. 讀之萬遍(독지만편) : 이 두 책을 만 번 정도 읽으면 自可悟解(자가오해) : 저절로 오해(悟解)할 수 있으리니, 令日各誦十遍(령일각송십편) : 매일 열 번씩 읽도록 하게나."하였다. 又曰(우왈) : 또, 大凡學飛昇者(대범학비승자) : "무릇 학문이 비승(飛昇)하는 사람은 斷除念頭(단제념두) : 염두(念頭)를 단제(斷除)하고 安坐煉精氣神(안좌련정기신) : 편안히 앉아서 기신(氣神)을 연정(煉精)해야 하며, 三寶令坎离龍虎交濟成丹(삼보령감리룡호교제성단) : 삼보를 밀폐시켜 용호(龍虎)가 서로 싸우는 틈에서도 도술(道術)은 이루어지니 是大捷徑(시대첩경) : 그런 게 제일의 첩경이네. 而自非上智與宿稟(이자비상지여숙품) : 자신이 상지(上智)나 숙품(宿稟; 뛰어난 성품)이 아니고서야 不可晬爲(불가수위) : 빨리 이루어질 수는 없네. 君性朴固剛忍(군성박고강인) : 대의 성품은 박고(朴固)하고 강인(剛忍)하니 難以上乘訓之(난이상승훈지) : 그높은 교리(敎理)로써 가르쳐주기는 어렵네. 姑先絶粒(고선절립) : 맨 먼저 곡식으로 식사하는 걸 끊어보게나. 爲下學上達計也(위하학상달계야) :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낮은 곳에서 최상까지 도달하는 방법일세. 凡人之生(범인지생) : 무릇 사람의 생명이란 稟精於五行(품정어오행) : 오행(五行)에서 정기(精氣)를 받았기 때문에 故五臟各主五行(고오장각주오행) : 오장(五臟)은 각각 오행(五行)이 주관하는 거라네. 脾受土氣(비수토기) : 위장(胃臟; 脾胃)은 토기(土氣)를 받아 人之飮啖(인지음담) : 사람이 마시거나 씹어먹는 것은 皆歸於脾胃(개귀어비위) : 모두 위장으로 들어가네. 雖以穀精強健無疾(수이곡정강건무질) : 비록 곡정(穀精)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병이 없게 한다 하더라도 而氣引於土(이기인어토) : 기(氣)가 토(土)에 끌려 終至於魄歸乎地(종지어백귀호지) : 끝내는 찌꺼기[魄]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니 古之碎穀者(고지쇄곡자) : 옛날의 곡식을 먹지 않던 사람들이란 皆爲此也(개위차야) : 모두 그래서였네. 君試先碎穀(군시선쇄곡) : 그대는 먼저 곡식 먹지 않는 것을 시험해 보게나."하였다. 卽令斗曰再食(즉령두왈재식) : 그리고는 곧 두(斗)로 하여금 7일 동안 하루에 두 끼니만 먹도록 하였다. 七日又一飯一粥(칠일우일반일죽) : 또 7일 동안은 한 끼니는 밥, 한 끼니는 죽을 먹도록 하고, 七日減一粥(칠일감일죽) : 다시 7일 동안은 한 끼니의 죽을 없애고 밥만 한 끼니 먹도록 하였다. 更七日以粥替飯(경칠일이죽체반) : 다시 7일 동안은 밥 대신 죽만 한 끼니 먹도록 하고는 過四七日撤飯粥(과사칠일철반죽) : 28일이 지나자 밥이건 죽이건 먹지 못하게 하고, 以匕開上龕鑰(이비개상감약) : 열쇠로 윗 감실(龕室)의 자물쇠를 열어 取漆盒二個(취칠합이개) : 칠(漆)을 입힌 합(盒) 두 개를 꺼냈다. 一黑豆末(일흑두말) : 하나는 흑두말(黑豆末)이 든 것이고 一黃精屑桃(일황정설도) : 하나는 황정(黃精; 죽대 뿌리임)과 복숭아씨 가루였다. 各一匙(각일시) : 각각 한 숟가락씩 和水餌之曰再焉(화수이지왈재언) : 물에 타서 하루에 두 차례 먹으라 하였다. 斗食腸素寬(두식장소관) : 두(斗)는 본래 식량(食量)이 커서 飢之殆不可忍(기지태불가인) : 허기증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身瘐體倦(신유체권) : 몸이 수척해지고 피곤해지며 眼昏花不辨物(안혼화불변물) : 눈이 흐려져 물건을 분별할 수 없었지만 猶忍之(유인지) : 계속 참아냈다. 服黑豆三七日(복흑두삼칠일) : 흑두말을 21일째 복용했던 날, 忽若充然不思食(홀약충연불사식) : 갑자기 배 안이 채워진 듯하여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卽令餌柏葉胡麻數(즉령이백엽호마수) : 그 후에는 곧바로 측백나무 잎과 호마(胡麻; 참깨)를 먹도록 해 주자, 遍身生瘡(편신생창) : 온몸에 촘촘히 부스럼이 돋아 疼不能忍(동불능인) : 참을 수가 없었다. 又百日痂脫(우백일가탈) : 또 1백 일이 지나자 부스럼 딱지가 떨어지고 肉生方如常(육생방여상) : 새 살이 나와 완전히 전대로 되어졌다. 長老喜曰(장로희왈) : 장로가 기뻐하며 君眞利器也(군진리기야) :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성품과 체질을 타고났네. 但息慾念(단식욕념) : 다만 욕념(慾念)을 없애면 되겠군."하였다. 留三年讀二訣凡萬遍(류삼년독이결범만편) : 3년 동안 머무르며 두 가지의 비결(祕訣)을 모두 만 번씩 읽었다. 胸次洒然(흉차쇄연) : 가슴속이 씻은 듯이 시원해져 若有神會(약유신회) : 신회(神會; 신이 통함)가 있는 듯하였다. 長老敎以數息(장로교이수식) : 장로(長老)가 호흡 자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旣又敎之運氣(기우교지운기) : 또 운기(運氣)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氣已運矣(기이운의) : 기(氣)가 이미 움직여졌다. 遂以子午卯酉行六子祕訣(수이자오묘유행륙자비결) : 마침내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로서 육자 비결(六子祕訣)을 행하여 呼吸道成(호흡도성) : 호흡도(呼吸道)를 이루자, 顏漸腴氣益爽(안점유기익상) : 얼굴에 점점 살이 찌고 기운은 갈수록 상쾌해지며 萬念俱灰(만념구회) : 온갖 상념이 모두 사라졌다. 居六年(거륙년) : 6년을 지내서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君有道骨(군유도골) : "그대에게는 도골(道骨)이 있어 法當上昇(법당상승) : 법으로는 마땅히 상승(上昇; 신선이 되어 승천함)할 만하네. 下此則不失爲喬鏗矣(하차칙불실위교갱의) : 이 수준에서 내려간다 해도 왕자교(王子喬)ㆍ전갱(錢鏗) 정도는 될 것이네. 慾念雖動地(욕념수동지) : 욕념(慾念)이 비록 동(動)하더라도 忍之(인지) : 오직 그걸 참아야 하네. 凡念雖非食色(범념수비식색) : 무릇 욕념이란 비록 식색(食色)의 욕념이 아니더라도 一切妄想(일절망상) : 일체의 망상(妄想)은 俱害於眞(구해어진) : 참[眞]에 해로우니 須空諸有(수공제유) : 반드시 모든 유(有)를 없애고 靜以煉之(정이련지) : 고요한 마음으로 단련해야 하네."하였다. 因空第二屋(인공제이옥) : 그런 후에 비어 있는 두 번째 집에다 坐斗其其中(좌두기기중) : 두(斗)를 앉히고는, 敎以昇降顚倒之法(교이승강전도지법) : 오르고 내리며 구르고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口訣諄至(구결순지) : 가르쳐 주는 말마다 자상하고 친절하였다. 斗依所訓(두의소훈) : 두(斗)는 가르쳐 주는 바에 의거하여 兀然堅坐不動(올연견좌불동) : 태연히 앉아 움직이지 않으며, 閉眼內視長老(폐안내시장로) : 눈을 감고 내면으로 장로(長老)를 보았다. 時寒燠飢飽以保持之(시한욱기포이보지지) : 그런 때에는 춥고 더움, 주림과 배부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一日(일일) : 하루는 覺自上齶如小李狀甘涎注舌上(각자상악여소리상감연주설상) : 윗 잇몸에서 조그마한 오얏 같은 물건이 단물을 혀 위로 흐르게 하는 것을 깨닫고 告長老(고장로) : 장로(長老)에게 알리자, 長老令徐嚥歸腹中(장로령서연귀복중) : 장로는 천천히 빨아 뱃속으로 삼키라 하고는 喜曰(희왈) : 기뻐하며, 黍珠基立(서주기립) : "서주기(黍柱基)가 세워졌으니 可運火侯(가운화후) : 화후(火候)를 움직일 수 있네."하면서 卽掛三才鏡于壁(즉괘삼재경우벽) : 곧바로 벽에 삼재경(三才鏡; 天ㆍ地ㆍ人을 비추는 거울)을 걸고 植七星劍二口於左右(식칠성검이구어좌우) : 좌우에 칠성검(七星劍) 두 개를 꽂아 禹步呪祝(우보주축) : 절름발이 걸음을 걸으며 주문(呪文)을 외어 冀以却魔成道(기이각마성도) : 마귀를 물리치고 도(道)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煉幾六朔(연기륙삭) : 단련한 지 거의 6개월 만에 丹田充盈(단전충영) : 단전(丹田)이 가득 채워지고 若有金彩發於臍下(약유금채발어제하) : 배꼽 아래서 금빛이 나오고 있었다. 斗喜其將成(두희기장성) : 두(斗)는 도(道)가 이루어짐을 기뻐하다 欲速之心遽萌芽不能制(욕속지심거맹아불능제) : 급히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솟아남을 억제할 수 없더니 姹女(차녀离火리화) : 타녀(姹女; 神丹의 물)에 불이 붙어 上燒泥丸(상소니환) : 이환(泥丸)이 타오르자 絶叫趨出(절규추출) :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長老以杖擊其頭曰(장로이장격기두왈) : 장로(長老)가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치면서, 噫其不成也(희기불성야) : "슬프다,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는구려."하고는 亟令斗安坐降氣(극령두안좌강기) : 급히 두(斗)를 편안히 앉게 하여 기(氣)를 내리게 하였다. 氣雖制伏(기수제복) : 기(氣)는 비록 수그러졌으나 而心沖沖終日不定(이심충충종일불정) : 마음이 두근거려 온종일 안정되지 않았다. 長老歎曰(장로탄왈) : 장로가 탄식하면서, 曠世逢人(광세봉인) : "세상에서 드문 사람을 만났기에 敎非不盡(교비불진) :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而業障未除(이업장미제) : 업(業)의 가로막음을 제거하지 못하여 遂致顚敗(수치전패) : 끝내 엎지러지고 말았으니 君之命也(군지명야) : 그대의 운명(運命)이지, 吾何力焉(오하력언) : 내 힘으로 어떻게 하겠나."하고는 因以蘇茶飮之(인이소다음지) : 이어서 소다(蘇茶; 회복시키는 차)를 마시게 하였다. 至七日心方恬(지칠일심방념) : 7일 만에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而氣不上炎(이기불상염) : 기에 뜨거움이 오르지 않았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君雖不成神胎(군수불성신태) : "그대는 비록 신태(神胎)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亦可爲地上仙(역가위지상선) : 역시 지상(地上)의 신선(神仙)은 될 수 있을 것이며, 少加樽養(소가준양) : 조금만 더 수양한다면 則八百年之壽可享矣(칙팔백년지수가향의) : 8백 세의 수(壽)를 누릴 수 있을 거네. 君命當有子(군명당유자) : 그대의 운명(運命)에는 당연히 아들을 두도록 되어 있으나 洩精之竅已塞(설정지규이색) : 정자(精子)가 나오는 길이 이미 막혔으니 可服藥以通之(가복약이통지) : 복약(服藥)하여 트이도록 하게나."하면서 出二粒赤桐子丸嚥之(출이립적동자환연지) : 붉은 오동 열매와 같은 환약(丸藥) 두 알을 꺼내 주어 그걸 삼켰다. 斗請曰(두청왈) : 두(斗)가 청(請)하기를, 庸戆不任敎(용당불임교) : "우둔한 사람이 가르침대로 하지 못했음은 自我命薄(자아명박) : 나 자신의 운명이 기박함이니 何恨(하한) : 무엇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弟子侍師七歲于玆(제자시사칠세우자) : 그러나 제자(弟子)가 스승님을 모신 지가 이제 7년입니다만 尙不知師之出處(상불지사지출처) : 아직도 스승님의 출처(出處)도 모르고 있습니다. 幸賜其詳(행사기상) :제발 자세하게 가르쳐 주셔서 慰異日嚮往之誠若何(위이일향왕지성약하) : 뒷날에라도 사모하는 정성이 위안받을 수 있게 해주심이 어떨까요?"했다. 長老笑曰(장로소왈) : 장로(長老)가 웃으면서, 他人問之(타인문지) : "다른 사람이 묻는다면 固不敢言(고불감언) : 결코 말할 수 없지만 君能忍者(군능인자) : 그대는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故告之詳(고고지상) : 자세히 말해 주겠네. 我卽上洛大姓子大師幸之曾孫子也(아즉상락대성자대사행지증손자야) : 나는 상락(上洛; 尙州의 옛 이름)의 큰 성씨(姓氏)의 후손으로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증손자였네. 生於宋煕寧二年(생어송희녕이년) : 송(宋) 나라 희령(熙寧; 神宗의 연호) 2년(고려 문종 23, 1069)에 태어났네. 十四有風癩(십사유풍라) : 열네 살에 나병[風癩]에 걸려 父母不收(부모불수) : 부모가 거두어 주지를 않고 棄之林中(기지림중) : 숲속에 버렸네. 夜有虎攬而置諸石室(야유호람이치제석실) : 밤에 호랑이가 안아다가 석실(石室)에 놓아 주고는 耽耽乳其二子(탐탐유기이자) : 눈에 불을 켜고 두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其旁終不害意(기방종불해의) : 그 곁에 있는 나를 끝내 해치려 하지 않더군. 痛方極(통방극) : 통증이 한창 극도에 달하여 恨不速斃於其牙齒(한불속폐어기아치) : 호랑이의 어금니에 물려 속히 죽지 못하는 것만이 한스럽더군. 有草羅生於崖窽(유초라생어애?) : 초라(草羅)라는 풀이 벼랑의 구멍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葉敷根大(엽부근대) : 잎이 넓고 뿌리가 크더군. 試洗而食之(시세이식지) : 시험삼아 씻어서 먹었더니 腹稍果(복초과) : 뱃속이 조금 채워졌네. 食數月瘡漸損(식수월창점손) : 그걸 먹으며 몇 개월이 지나자 부스럼이 줄어지고 稍自起立(초자기립) : 점점 혼자서 일어섰었네. 遂多掘而頓食之(수다굴이돈식지) : 그리하여 많이 캐다가 끼니마다 그걸 먹었었네. 殆盡半山(태진반산) : 산 중턱의 것을 거의 전부를 캐 먹으며 幾百日瘡悉脫(기백일창실탈) : 몇백 일을 지내자 부스럼이 다 벗겨지고 遍生綠毛(편생록모) : 온몸에 푸른 털이 돋아나기에 喜而強食之(희이강식지) : 기뻐하며 실컷 먹었더니 又百日(우백일) : 또 1백 일이 지나자 身自擧倏昇於峯巓(신자거숙승어봉전) :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 산의 정상에 올라가지더군. 旣已愈其疾(기이유기질) : 이미 나병은 나았으나 不辨古邑來路(불변고읍래로) : 옛날의 마을을 판별하지 못하여 方棲邊靡所之(방서변미소지) : 길에 나와서도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네. 忽有一僧過于峯下(홀유일승과우봉하) : 뜻밖에 중 한 사람이 산봉우리 아래로 지나가고 있어 頫身就其途遮問曰(부신취기도차문왈) : 그곳으로 찾아가 길을 막으며 묻기를 此何山也(차하산야) : '이곳은 어떤 산입니까?' 했더니 僧曰(승왈) : 중이 此乃太白山(차내태백산) : '이건 태백산(太白山)이요, 而地係眞珠府也(이지계진주부야) : 지역은 진주부(眞珠府)의 소속입니다.' 하더군. 近有寺否(근유사부) : 그래서 근방에 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曰西峯有蘭若(왈서봉유란약) : 중은 '서쪽 봉우리에 절이 있으나 路絶不易攀陟(로절불역반척) : 길이 단절되어 쉽게 올라갈 수 없을 것이오.' 하였네. 吾卽飛至其庵(오즉비지기암) : 나는 곧 날아서 그 암자에 이르렀더니 禪寮晝閉闃爾無人(선료주폐격이무인) : 선방(禪房)은 낮에도 문이 닫히고 사람이라곤 없더군. 手闢廊戶(수벽랑호) : 손으로 곁 채의 문을 열고 들어가 行到中寮(행도중료) : 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가보았더니, 有一老病僧擁布褐(유일로병승옹포갈) : 늙고 병든 중 한 사람이 굵은 베옷을 두르고 隱几而喘(은궤이천) : 탁자에 기대어 숨차하며 幾死(기사) : 거의 죽어가는 모습이었네. 擡眼見之曰(대안견지왈) :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夜夢老相言傳我師祕書者今當至(야몽로상언전아사비서자금당지) : '간밤의 꿈에 노인이 말하기를 「우리 스승님 비결서(祕訣書)를 전할 사람이 지금 오고 있다.」고 하더니, 相君面(상군면) : 그대의 얼굴을 보니 眞其人也(진기인야) : 진정 그 사람이군.' 하면서, 起解裳出一函書(기해상출일함서) : 일어나 보자기를 풀어 한 뭉치의 책을 꺼내서 주었네. 授之曰(수지왈) : 그리고는 주면서 讀此萬周(독차만주) : '이걸 만 번 읽으면 其義自見(기의자견) : 그 의미를 저절로 알 것이니 努力勿怠(노력물태) : 노력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게나.' 하였네. 吾問其誰傳(오문기수전) : 내가 그건 누가 전해준 것이냐고 물었더니 曰新羅義相大師入中原(왈신라의상대사입중원) : '신라(新羅) 의상대사(義湘大師)께서 중국에 들어가 逢正陽眞人(봉정양진인) : 정양진인(正陽眞人)을 만났더니 授此書(수차서) : 이 책을 주셨고 臨化囑我(림화촉아) : 임종(臨終)에 나에게 부탁하시며 二百年後(이백년후) : 2백 년 뒤에는 當有傳者(당유전자) : 반드시 전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는데, 君應其讖(군응기참) : 그대가 그분의 예언에 합치되는 사람이니 可受持勉力(가수지면력) : 받아가지고 힘쓰게나, 吾得所傳(오득소전) : 나는 전해줄 사람을 만났으니 從此逝矣(종차서의) : 이제는 죽으려네.' 하면서 趺坐寂然化(부좌적연화) : 부좌(趺坐)하고 조용히 입적(入寂)하였었네. 吾卽茶毗之(오즉다비지) : 나는 곧바로 그분을 다비(茶毗)하여 得紺舍利百粒(득감사리백립) : 감색(紺色)의 사리(舍利) 1백 알맹이를 얻어 내어 藏之塔中(장지탑중) : 탑(塔) 속에 매장하였네. 解函視之(해함시지) : 책 뭉치를 풀고 살펴보니 乃黃帝陰符及金碧龍虎經(내황제음부급금벽룡호경) :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및《금벽용호경(金碧龍虎經)》ㆍ 參同契(참동계) : 《참동계(參同契)》ㆍ 黃庭內外經(황정내외경) : 《황정내외경(黃庭內外經)》ㆍ 崔公入藥鏡(최공입약경) : 《최공입약경(崔公入藥經)》ㆍ 胎息心印(태식심인) : 《태식심인(胎息心印》ㆍ 洞古定觀(동고정관) : 《통고정관(洞古定觀)》ㆍ 大通淸靜等經(대통청정등경) : 《대통청정(大通淸淨)》등의 경전(經傳)이었네. 就其庵獨居修煉(취기암독거수련) : 그 암자에 들어가 독거(獨居)하면서 수련(修煉)을 하였네. 魔鬼萬方來撓(마귀만방래요) : 마귀(魔鬼)들이 만방에서 와서 둘러쌌으나 以不聞不見消之(이불문불견소지) :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니 사라져 갔네. 凡苦志十一年(범고지십일년) : 온갖 애를 쓰며 11년 만에야 乃成神胎(내성신태) : 신태(神胎)를 이루었네. 法當解去(법당해거) : 법으로는 당연히 해탈해서 떠났겠지만 上帝命留此(상제명류차) :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머물러서 統東國三道諸神(통동국삼도제신) : 동국(東國) 삼도(三道)의 모든 신(神)을 거느리라고 명령하셨네. 故留此五百餘年(고류차오백여년) : 그래서 여기에 머문 지 5백여 년이었네. 限滿則當上昇矣(한만칙당상승의) : 기한이 차면 당연히 상승(上昇)할 걸세. 吾經歷數十人(오경력수십인) : 내가 수십 명을 만나 보았지만 或氣過銳(혹기과예) : 더러는 기(氣)가 지나치게 예민(銳敏)하고, 或太鈍(혹태둔) : 더러는 너무 둔하기도 하고, 或少忍力(혹소인력) : 더러는 인내력이 적거나, 或緣淺(혹연천) : 더러는 인연이 옅고, 或多慾念(혹다욕념) : 더러는 욕념(慾念)이 많아 俱不能成(구불능성) : 모두 성공할 수가 없었네. 若有成道者(약유성도자) : 만약 성도(成道)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吾當擧授吾任(오당거수오임) : 마땅히 내 임무를 맡기고 上歸玉京(상귀옥경) : 옥경(玉京)으로 돌아갔으련만, 而曠百年不得一人(이광백년불득일인) : 수백 년을 헛되이 보내고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此我塵緣未盡而然也(차아진연미진이연야) : 이건 나의 티끌 세상과의 인연이 다하지 못해서 그런 걸 거야."하였다. 斗與長老久同寢(두여장로구동침) : 두(斗)는 장로와 함께 오랫동안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지만 常怪其祕臍下寸地(상괴기비제하촌지) : 그가 숨기는 것이 있어 늘 이상하게 여겼다. 그의 배꼽 아래 한 치[寸] 정도의 부분을 가리고 不許人見(불허인견) : 남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점이었다. 問其故欲覩之(문기고욕도지) : 그 까닭을 물으며 그걸 보고 싶다고 했더니, 長老笑曰(장로소왈) : 장로(長老)는 웃으면서, 何容易耶(하용역야) : "그걸 왜 쉽게 보여 주랴. 見則恐驚君耳(견칙공경군이) : 보여 주면 그대는 깜짝 놀라 까무러칠 것인데."하였다. 斗曰(두왈) : 두(斗)는, 奚驚爲(해경위) : "왜 놀라겠습니까, 願一見(원일견) : 한 번 보는 것이 원입니다."하자, 長老解下包(장로해하포) : 장로(長老)가 싸맨 것을 풀어 놓으니 金光百道(금광백도) : 반짝이는 금빛 1백여 줄기가 射於屋梁(사어옥량) : 천장까지 쏘아댔다. 不能定視(불능정시) : 바로 볼 수도 없어 蒲伏於榻(포복어탑) : 의자 밑으로 숨으니 長老還包之如故(장로환포지여고) : 장로(長老)는 다시 그걸 싸매서 전과 같이 하였다. 斗又曰(두우왈) : 두(斗)는 또, 師旣治諸神(사기치제신) : "스승님은 벌써부터 모든 신(神)들을 다스린다면서 何無一個來修覲者(하무일개래수근자) : 왜 한 사람도 찾아와 받드는 사람이 없습니까?"하니,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는, 吾飛神而受其朝矣(오비신이수기조의) : "나는 정신을 날려서 그들의 조회를 받곤 했었네."하였다. 又請觀諸神(우청관제신) : 또 여러 귀신 구경하기를 청했더니, 曰可待明年上元也(왈가대명년상원야) : "내년 정월 보름날을 기다려야 하네."하였다. 至期(지기) : 그날이 되자 長老出龕中衣箱(장로출감중의상) : 장로(長老)는 감실(龕室) 속에서 옷 상자를 꺼내서 戴八霞方山巾(대팔하방산건) : 여덟 가지 채색의 방산건(方山巾)을 쓰고, 服七星日月繡袍(복칠성일월수포) : 일곱 개의 별ㆍ해ㆍ달의 수를 놓은 도포(道袍)를 입고, 係圓靑玉束獅帶(계원청옥속사대) : 둥근 청옥(靑玉)에 둥근 끈을 달고 사자를 그린 띠[帶]를 두르고 穿五花文履(천오화문리) : 다섯 가지 꽃으로 무늬진 신을 신고, 手持八角玉如意(수지팔각옥여의) : 손에는 여덟 모진 옥(玉)으로 만든 여의주(如意珠)를 붙잡고 趺坐砌臺上(부좌체대상) : 섬돌대 위에 부좌(趺坐)하였다. 斗西向侍(두서향시) : 두(斗)는 서쪽으로 향해서 모셨고, 童子偶立(동자우립) : 동자(童子)는 모퉁이에 서 있었다. 忽於臺上雙檜(홀어대상쌍회) : 갑자기 대(臺) 위의 두 잣나무에 各掛彩花燈(각괘채화등) : 각각 울긋불긋한 꽃등불이 걸리더니 俄而滿洞千萬樹(아이만동천만수) : 조금 지나자 산골에 가득한 수천 수만의 나무에 俱各掛花燈(구각괘화등) : 모두 꽃등불이 걸려 紅焰漲空如白晝(홍염창공여백주) : 붉은 불꽃이 공간을 가득 채워 대낮 같았다. 有奇形怪狀之獸(유기형괴상지수) : 기이하고 괴상한 모습의 짐승들이 나타나는데, 或熊虎或獅象(혹웅호혹사상) : 더러는 곰이나 호랑이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자나 코끼리 같았다. 或豹而雙脚(혹표이쌍각) : 어떤 것은 표범인데 다리가 둘이고, 或虯形而翼(혹규형이익) : 어떤 것은 규룡(虯龍)의 모양에 날개가 있고, 或龍而無角(혹룡이무각) : 어떤 것은 용이면서 뿔이 없었다. 或龍身馬頭(혹룡신마두) : 어떤 것은 용의 몸에 말의 머리가 달렸고 或三角而人立決驟(혹삼각이인립결취) : 어떤 것은 뿔이 세 개인데 사람처럼 서서 빨리 달리고, 或人面三眸者以百數(혹인면삼모자이백수) : 어떤 것은 사람 얼굴처럼 생겨 눈동자가 세 개나 달린 것들로 수백 마리나 되었다. 又有象獐鹿彘形者(우유상장록체형자) : 또 코끼리ㆍ노루ㆍ사슴ㆍ돼지의 모양을 지닌 것으로 金目雪牙(금목설아) : 노오란 눈에 하얀 이빨, 赭毳霜蹄(자취상제) : 붉은 털 하얀 발굽에 夭矯拏攫以千計(요교나확이천계) : 뛰고 할퀴고 하는 것들이 1천여 마리 정도나 되었는데 俱羅侍於左右(구라시어좌우) : 그를 모두가 열지어 좌우에 모시고 섰었다. 又有金童玉女捧幢節數百人(우유금동옥녀봉당절수백인) : 또 금동(金童)과 옥녀(玉女)가 지휘 깃발을 들고 수백 명이 서 있었다. 介戟具三伏者千餘人(개극구삼복자천여인) : 기치 창검을 든 군대도 1천여 명으로 삥 둘러 서 있었다. 環立臺上(환립대상) : 대(臺) 위에는 衆香馥郁(중향복욱) : 온갖 향기가 욱욱하고 璜佩丁東(황패정동) : 패옥[璜珮] 부딪치는 소리들이 쟁쟁거렸다. 續有靑衫象(속유청삼상) : 바로 이어서 푸른 장삼을 입고 상아 홀(笏)을 들고, 簡佩水蒼戴弁者二人(간패수창대변자이인) : 옥[水蒼]을 차고 고깔을 쓴 두 사람이 鞠躬階下(국궁계하) : 섬돌 아래서 국궁(鞠躬)하고는 唱曰(창왈) : 창(唱)하기를, 東方極好林(동방극호림) : "동방(東方)의 극호림(極好林)ㆍ 廣霞(광하) : 광하(廣霞)ㆍ 紅映山三大神(홍영산삼대신군견) : 홍영산(紅暎山) 등 삼대신군(三大神君)이 뵙습니다."하였다. 有三神俱頂紫金梁冠(유삼신구정자금량관) : 그들 삼대신(三大神)은 모두 빨간 금관을 쓰고 紫袍玉帶(자포옥대) : 붉은 도포에 옥띠를 띠고, 端笏雲履(단홀운리) : 홀을 단정히 잡고, 구름이 그려진 신을 신고, 佩劍珩者(패검형자) : 칼과 노리개를 찼으며 頎而晢長(기이절장) : 키가 헌칠했다. 얼굴은 희맑고 길었으며 眉目皆朗秀(미목개랑수) : 미목(眉目)이 밝고 수려하였다. 長老起立拱手(장로기립공수) : 장로(長老)가 일어서서 공수(拱手)하니 三神皆再揖而退(삼신개재읍이퇴) : 삼대신은 함께 두 번 읍(揖)하고는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蓬壺方丈圖嶠祖洲瀛海等五洲眞官見(봉호방장도교조주영해등오주진관견) : "봉호(蓬壺)ㆍ방장(方丈)ㆍ도교(圖嶠)ㆍ조주(祖洲)ㆍ영해(瀛海) 등 오주(五洲)의 진관(眞官)이 뵙습니다."하였다. 有五神各披方色袍冠佩如前(유오신각피방색포관패여전) : 다섯 신(神)은 각각 지방색을 보이는 도포를 입고 관(冠)이나 패물은 앞의 것과 같았고, 而俱頎秀(이구기수) : 모두 헌걸차고 수려했다. 長老起立(장로기립) : 장로(長老)가 일어서니 五神皆再拜而退(오신개재배이퇴) : 다섯 신(神)들이 모두 두 번 절하고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東南西海長離廣野沃焦玄隴地昁摠眞(동남서해장리광야옥초현롱지昁총진) : 동해ㆍ남해ㆍ서해의 장리(長離)ㆍ광야(廣野)ㆍ옥초(沃焦)ㆍ현롱(玄隴)ㆍ지폐(地肺)ㆍ총진(摠眞)ㆍ 女几東華仙源琳宵等十島女官見(녀궤동화선원림소등십도녀관견) : 여궤(女几)ㆍ동화(東華)ㆍ선원(仙源)ㆍ임소(琳宵) 등 십도(十島)의 여관(女官)들이 뵙습니다."하자, 有仙女十人(유선녀십인) : "선녀(仙女) 10인이 俱戴花絨金襪巾(구대화융금말건) : 모두 꽃으로 수놓은 금말건(金襪巾)을 쓰고 揷赤珠步搖(삽적주보요) : 붉은 구슬로 된 보요(步搖)를 꽂아, 珠翠玲瓏映其面(주취령롱영기면) : 구슬과 비취옥이 영롱하게 얼굴에 반사하여 不可定視(불가정시) :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服素練金鳳紋衫(복소련금봉문삼) : 금봉(金鳳)의 무늬를 놓은 하얀 저고리에 施翠羅襕膝長裙(시취라?슬장군) : 파란 비단으로 만든 무릎 아래까지 닿는 긴 치마를 드리웠다. 佩太乙靈符赩(패태을령부혁) : 태을영부(太乙靈符)를 차서 奕有電光(혁유전광) : 번쩍번쩍 번갯불이 나고, 穿綠花方底履(천록화방저리) : 푸르고 붉은 모가 난 낮은 신을 신었다. 頎長而男子拜(기장이남자배) : 헌칠하고 긴 허리로 남자들이 하던 절을 올리니 長老不起(장로불기) : 장로(長老)는 일어나지 않고 坐受之(좌수지) : 앉아서 절을 받자 女官退(녀관퇴) : 여관(女官)들이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天印紫蓋金馬丹陵天梁南壘(천인자개금마단릉천량남루) : "천인(天印)ㆍ자개(紫蓋)ㆍ금마(金馬)ㆍ단릉(丹陵)ㆍ천량(天梁)ㆍ남루(南壘)ㆍ 穆洲等七道司命神將見(목주등칠도사명신장견) : 목주(穆洲) 등 칠도(七道)의 사명신장(司命神將)이 뵙습니다."하니 有紅抹額揷羽(유홍말액삽우) : 붉은 말액(抹額; 巾의 일종)에 깃을 꽂고 戎袴褶(융고습) : 무인(武人)들이 입는 고의(袴衣)와 繡花掩心金搭(수화엄심금탑) : 꽃으로 수놓은 앞가림 옷을 입고, 肘佩矢房弧箙(주패시방호복) : 팔에는 활집과 화살통을 비스듬히 걸었고, 手朱殳而俱獅形虎姿(수주수이구사형호자) : 손에는 붉은 창을 붙잡고 있었다. 모두 사자의 형태에 범의 모습으로 植赤髮金目虯髥者揖不拜退(식적발금목규염자읍불배퇴) : 붉은 머리털을 세우고 금빛 눈동자에 용의 수염이 달렸었다. 읍(揖)만 하고 절은 하지 않고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丹山玄林蒼兵素泉(단산현림창병소천) : "단산(丹山)ㆍ현림(玄林)ㆍ창구(蒼丘)ㆍ소천(素泉)ㆍ 赭野等五神所繞(자야등오신소요) : 자야(赭野) 등 다섯신의 거느림을 받는 山林藪澤嶺瀆城隍諸鬼伯鬼母俱見(산림수택령독성황제귀백귀모구견) : 산림(山林)ㆍ수택(藪澤)ㆍ영독(嶺瀆)ㆍ성황(城隍) 등의 모든 귀백(鬼伯)ㆍ귀모(鬼母)는 함께 뵙습니다."하였다. 五大神將如七道神形者(오대신장여칠도신형자) : 5대 신장들의 모습은 앞의 7도 신장들의 모습과 같았고, 各領一隊百餘靈官(각령일대백여령관) : 각각 한 부대(部隊)가 1백여 명이나 되는 영관(靈官)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或短醜(혹단추) : 어떤 것은 키가 작고 누추했으며 或長大(혹장대) : 어떤 것은 키가 컸으며, 或潔脩而雅(혹결수이아) : 어떤 것은 말쑥하고 或六臂四目者(혹륙비사목자) : 어떤 것은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을 지닌 자들이었다. 女或老醜或姸少者(녀혹로추혹연소자) : 여자 중에는 더러 늙은 추녀이고 더러는 곱고 젊었으나 被服俱隨方色(피복구수방색) : 그들의 옷은 모두 지방색을 따라 입었는데 列立四拜(렬립사배) : 열지어 서서 네 번 절하고 退爲五隊(퇴위오대) : 물러나와 다섯 대열이 되었다. 長老命小童持小綘幡(장로명소동지소綘번) : 장로(長老)가 소동(小童)에게 명령하여 붉은 깃발을 들고 從北方指東環南抵西(종북방지동환남저서) : 북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서 남쪽으로 돌아 서쪽에 이르러 立于中隊之前(립우중대지전) : 중대(中隊)의 앞에 서게 하니, 告曰(고왈) : 고하기를 諸靈俱會(제령구회) : "여러 신령(神靈)들이 모두 모였으나 而魏州趙夫人未至矣(이위주조부인미지의) : 오직 위주(魏州)의 조 부인(趙夫人)만 오지 않았습니다."고 아뢰었다. 素泉神出跪曰(소천신출궤왈) : 소천신(素泉神)이 나와서 꿇어 앉으며 말하기를, 他以謫(타이적) : "그는 귀양살이 가서 今降爲人(금강위인) : 이제는 사람으로 강등되었고
其代不來矣(기대불래의) : 그를 대신할 사람이 오지 못했습니다."하였다. 長老招廣霞三眞人至前(장로초광하삼진인지전) : 장로(長老)는 광하(廣霞) 등 세 진인(眞人)을 불러서 앞에 세워 놓고 謂曰(위왈) : 말하기를, 卿輩分理三方(경배분리삼방) : "경(卿)들은 세 방면(方面)을 나누어 다스리면서 體上帝好生之德(체상제호생지덕) : 상제님의 어진 덕(德)을 실천하여 黎庶受卿澤久矣(려서수경택구의) : 백성들이 경들의 은택(恩澤)을 입은 지 오래였다. 今者厄會將至(금자액회장지) : 요즈음 액운이 다가오고 있어 萬姓當罹其殃(만성당리기앙) : 만 백성이 재앙(災殃)에 걸려 들었는데 思所以捄之榮耶(사소이구지영야) : 이에 대하여 구출할 방책을 강구하였는가?"하고 물었다. 三人者俱唏咨(삼인자구희자) : 세 사람은 모두 탄식을 거듭하며, 誠如所諭(성여소유) : "정말로 유시(諭示)하신 바와 같습니다. 昨者蓬萊治水大監(작자봉래치수대감) : 어제 봉래산(蓬萊山)의 치수대감(治水大監)이 自紫霞元君所來過紅映山言(자자하원군소래과홍영산언) : 자하원군(紫霞元君)이 계신 곳으로부터 와서 홍영산(紅映山)에 들러 말하기를 衆眞在九光殿上侍上帝(중진재구광전상시상제) : '여러 진인(眞人)들이 구광전(九光殿) 위에 있으며 상제(上帝)를 모시는데, 有三島帝君道(유삼도제군도) : 삼도제군(三島帝君)이 있어 말하기를 閻浮提三韓之民(염부제삼한지민) : 「염부제에 살고 있는 삼한(三韓)의 백성들이 機巧姦騙誑惑暴殄(기교간편광혹폭진) : 지나치게 교사스럽고 간사하여 속임수를 잘 쓰고 不惜福不畏天(불석복불외천) : 복(福)을 아끼지 않으며,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不孝不忠(불효불충) : 불효(不孝)ㆍ불충(不忠)하고, 嫚神瀆鬼(만신독귀) : 귀신을 모독하였다. 故借句林洞貍面大魔(고차구림동리면대마) : 그래서 구림동(句林洞)에 사는 이면(狸面)의 대마(大魔)를 빌려다가 拳赤土之兵往勦之(권적토지병왕초지) : 적토(赤土)의 군대를 모두 모아 가서 소탕하려 한다. 連兵七年(련병칠년) : 그래서 연속된 전쟁 7년째에 國幸不亡(국행불망) : 나라는 다행히 망하진 않을지라도 三方之民(삼방지민) : 3방의 백성들을 十集其五六以警之(십집기오륙이경지) : 10에 5~6을 살육하여서 경계하려 한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臣等聞之(신등문지) : 신하인 저희들도 그 말을 듣고 亦皆心怵(역개심출) : 역시 모두 두려워서 마음이 떨리더이다. 而大運所關(이대운소관) : 그러나 큰 운수의 소관인데 何敢容力乎(하감용력호) : 어찌 감히 힘으로 해결되겠습니까?" 한다. 長老亦嗟吁不已(장로역차우불이) : 장로(長老)도 역시 탄식하기를 그만두지 못했다. 俄自中隊發炮一響(아자중대발포일향) : 잠깐 사이에 중대(中隊)로부터 대포 한 알을 쏘는 소리가 나자 四隊皆應(사대개응) : 네 개의 대열이 모두 호응하여 擂鼓伐金以助之(뢰고벌금이조지) : 북과 쇠를 울려서 도왔다. 樹上燈一一落地(수상등일일락지) : 그리하여 나무 위의 등불이 하나하나 땅에 떨어지고 窅然幽谷(요연유곡) : 아득히 깊은 골짜기에 太雲平鋪(태운평포) : 많은 구름이 내리 깔렸다. 長老入房(장로입방) : 장로는 방으로 들어와 襆其冠服(복기관복) : 관(冠)과 옷을 벗고 明燈坐室中(명등좌실중) : 등불을 밝히고 방 가운데 앉았다. 斗愕眙自失者久之(두악이자실자구지) : 두(斗)는 깜짝 놀라서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翌日(익일) : 다음날 招斗謂曰(초두위왈) : 두(斗)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你旣緣薄(니기연박) : "그대는 이미 인연이 엷어서 不合久于此(불합구우차) : 여기에 오래 남아 있기에는 합당치 못하니 其下山長髮餌黃精(기하산장발이황정) : 하산(下山)하여 머리를 기르고 황정(黃精)을 먹으며 拜北斗(배북두) : 북두칠성에 절하도록 하게나. 不殺婬盜(불살음도) : 음탕한 사람이나 도둑도 죽이지 말고 不茹葷狗牛肉(불여훈구우육) : 매운 채소ㆍ소ㆍ개고기 등을 먹지 말며, 不陰害人(불음해인) : 타인을 음해(陰害)하지 않는다면 則此地上仙(칙차지상선) : 이는 곧 땅 위의 신선이네. 行脩之不息(행수지불식) : 행하고 수양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면 亦可上昇矣(역가상승의) : 또한 승선(昇仙)도 할 수 있을 거네. 黃庭參同(황정참동) : 황정경(黃庭經)》과《참동계(參同契)》는 道家上乘(도가상승) : 《도가(道家)의 높은 교리이니 誦持不懈(송지불해) : 외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게. 而度人經(이도인경) : 《도인경(度人經)》은 乃老君傳道之書(내로군전도지서) : 노자(老子)의 도(道)를 전하는 글이고, 玉樞經(옥추경) : 《옥추경(玉樞經)》은 乃雷府諸神所尊(내뢰부제신소존) : 바로 뇌부의 여러 신들을 존숭하는 글이니 佩之(패지) : 항상 지니고 다니면 則鬼畏神欽(즉귀외신흠) : 귀신들이 두려워하고 흠앙할 것이네. 此外修心之要(차외수심지요) : 이 밖에 마음을 닦는 요체는 唯不欺爲上(유불기위상) :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상이 되는 것이네. 凡人一念之善惡(범인일념지선악) : 일반 사람이 한 번 선과 악을 생각하여도 鬼神布列於左右(귀신포렬어좌우) : 귀신들이 좌우에 벌려 있어 皆先知之(개선지지) : 모두를 먼저 알아내고, 上帝降臨孔邇(상제강림공이) : 상제(上帝)께서 강림(降臨)하심이 무척 가까워 作一事輒錄之於斗宮(작일사첩록지어두궁) : 하나의 일을 하면 곧바로 그걸 두궁(斗宮)에 기록하여 억제하고 報應之效(보응지효) : 응답해 주는 효과가 捷於影響(첩어영향) :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더 빠른 거네. 昧者褻之(매자설지) : 이치에 어두운 사람이 이를 업신여기고 以爲茫昧不足畏(이위망매불족외) : 꽉 막힌 하늘이니 두려울 게 없다고 하지만, 彼焉知蒼蒼上之有眞宰者操其柄耶(피언지창창상지유진재자조기병야) : 그들이 어떻게 창창(蒼蒼)한 하늘 위에 참다운 주재자(主宰者)가 처리하는 자루[柄]를 조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你忍心雖剛(니인심수강) : 자네야 참아내는 마음이 강하긴 하지만 而慾念不除(이욕념불제) : 욕념(慾念)이 제거되지 않았으니 倘或不愼(당혹불신) : 혹시라도 삼가지 않는다면 則一墜異趣(칙일추이취) : 한 차례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경우 曠劫受苦(광겁수고) : 끝없이 오랜 괴로움을 당할 걸세. 可無懼哉(가무구재) : 삼감이 없어서야 되겠나."하였다. 斗涕泣而受其誨(두체읍이수기회) : 두(斗)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 卽告辭下山回視(즉고사하산회시) : 곧 하직하여 하산(下山)하였다. 돌아보니 則無復人居焉(칙무부인거언) :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展轉至臨陂(전전지림피) :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임피(臨陂)에 이르고 보니, 則舊盧無遺址(칙구로무유지) : 옛날의 집이라고는 터도 남지 않았고 田畝皆再四易主(전무개재사역주) : 전장(田莊)은 모두 2~4차례씩 주인이 바뀌었다. 又屆洛下(우계락하) : 또 서울로 가보아도 則故宅只有基(칙고댁지유기) : 옛날의 집은 터만 남아 柱礎縱橫於宿莽中(주초종횡어숙망중) : 주춧돌만이 묵은 풀 속에 종횡으로 놓여 있었다. 忍淚而歸(인루이귀) : 눈물을 삼키며 돌아오고 말았다. 常念有老實奴在海南(상념유로실노재해남) : 늘 생각하던 착실한 늙은 종이 있었는데 해남(海南)에 살며 富有田宅(부유전댁) : 충분한 전택(田宅)도 있다기에 往投之而初不識焉(왕투지이초불식언) : 찾아가 몸을 의탁하였는데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하더니 久乃認爲其主(구내인위기주) : 얼마 후에 자기 주인임을 알아차리고는 相持號慟(상지호통) : 서로 붙잡고 통곡하며 울어댔다. 空其居而處之(공기거이처지) : 그가 살던 곳을 비워 주며 거처하도록 하였다. 爲娶民家女(위취민가녀) : 상민(常民)의 딸을 아내로 맞아서 生子女各一(생자녀각일) : 아들 딸 하나씩을 낳았다. 先生雖更立家業(선생수경립가업) : 선생은 비록 다시 가업(家業)을 세웠으나 佩服師訓(패복사훈) : 스승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終始不少懈(종시불소해) : 끝까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去隱于龍潭地(거은우룡담지) : 해남에서 떠나 용담(龍潭)의 지역에 은거하였다. 擇深谷以居(택심곡이거) : 깊은 산 골짜기를 골라서 살았으니, 爲近雉裳(위근치상) : 치상산(雉裳山)에서 冀再遏仙師計(기재알선사계) : 가까운 곳이어서 다시 선사(仙師) 만나기를 바라던 계획이었으리라. 而數十年採黃精松葉食之(이수십년채황정송엽식지) : 수십 년 동안 황정(黃精)과 솔잎을 채취하여 식사로 했으니 身日益強(신일익강) : 몸이 날이 갈수록 더욱 건강해져 鬚髮不白(수발불백) : 수염도 희지 않고 步履如飛(보리여비) : 걸음걸이도 나는 듯하였다. 萬曆戊申秋(만력무신추) : 만력(萬曆; 明 神宗의 연호) 무신년(선조 41, 1608) 가을 筠罷公州(균파공주) : 허균(許筠)이 공주(公州)에서 파직을 당하고 家扶安(가부안) : 부안(扶安)에서 살았다. 先生自古阜步訪於旅邸(선생자고부보방어려저) : 선생이 고부(古阜)로부터 도보로 나의 여관방을 찾아 주셨다. 因以四經奧旨授之(인이사경오지수지) : 그리하여 네 가지 경(經)의 오묘한 뜻을 나에게 전해 주시고, 且以遇師顚末詳言之如右(차이우사전말상언지여우) : 또 그분이 선사(仙師) 만났던 전말(顚末)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위에서와 같이 말해 주었다. 先生今年八十三(선생금년팔십삼) : 선생의 나이는 그해에 83세였으나 而容若四十六七歲人(이용약사십륙칠세인) : 얼굴은 마치 46~47세 된 사람과 같았다. 視聽精力不少衰(시청정력불소쇠) : 시력(視力)이나 청력(聽力)이 조금도 쇠약하지 않았고, 鸞瞳綠髮脩然(란동록발수연) : 톡 쏘는 눈동자나 검은 머리털이 의젓하여 如廋鶴(여수학) : 여윈 학(鶴)과 같았다. 或數日絶食不寐(혹수일절식불매) : 어떤 때는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며 誦參同(송참동) : 《참동계(參同契)》나 黃庭不綴(황정불철) : 《황정경(黃庭經)》을 쉬지 않고 외곤 하였다. 輒曰(첩왈) : 간혹, 毋陰行險(무음행험) : "몰래 해로운 일을 하지 말며, 毋曰無鬼神(무왈무귀신) : 귀신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 行善積德(행선적덕) : 착한 일을 행하고 덕을 쌓으며 絶慾煉念(절욕련념) : 욕심을 끊고 마음을 단련한다면 則上仙可立致(칙상선가립치) : 상선(上仙)의 극치를 세울 수 있으며, 鸞鶴不日下迎矣(란학불일하영의) : 난새[鸞]와 학(鶴)이 며칠 사이에 내려와 맞아줄 것이네."하였다. 不佞見先生飮啖食息如平人(불녕견선생음담식식여평인) : 나는 선생의 음식ㆍ거처가 보통 사람과 같음을 보고서 怪之(괴지) : 이상하게 여겼더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은, 吾初擬飛昇(오초의비승) : "내가 처음에는 비승(飛昇)하리라 여겼는데 而欲速不果成(이욕속불과성) : 빨리 이루고 싶어하다가 이루지를 못하고 말았네. 吾師旣許以地上仙(오사기허이지상선) : 우리 스승님께서 이미 지상의 신선은 되었으니 勤脩則八百歲可期矣(근수칙팔백세가기의) : 부지런히 수련하면 8백 세의 나이는 기약할 수 있다고 허락하셨네. 近日山中頗苦閑寂(근일산중파고한적) : 요즘 산중(山中)이 너무 한가하고 적막하여 下就人寰(하취인환) : 속세로 내려왔으나 則無一個親知(칙무일개친지) : 아는 사람 한 사람 없을뿐더러, 到處年少輩輕其老醜(도처년소배경기로추) :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이 나의 늙고 누추함을 멸시하여 了無人間興味(료무인간흥미) : 인간의 재미라고는 전혀 없네. 人之欲久視者(인지욕구시자) : 사람이 오래도록 보고 싶어하는 것이란 原爲樂事(원위악사) : 본래 즐거운 일인데, 而悄然無樂(이초연무악) : 쓸쓸하고 즐거움이라고는 없으니 吾何用久爲(오하용구위) : 내가 왜 오래 살려고 하겠는가? 以是不????(이시불????) : 이 때문에 속세의 음식을 금하지 않고 弄孫以度餘年(롱손이도여년) : 아들을 안고 손자를 재롱부리게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乘化歸盡(승화귀진) : 승화(乘化)하여 깨끗이 돌아가 以順天所賦也(이순천소부야) : 하늘이 주신 바에 순종하려네. 君有仙才道骨(군유선재도골) : 그대야말로 선재(仙才)와 도골(道骨) 있으니 力行不替(력행불체) : 힘써 행하고 쉬지 않는다면 眞仙去君何遠哉(진선거군하원재) : 진선(眞仙)이 되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 吾師嘗許我以忍(오사상허아이인) :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나에게 인내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不能忍而至是(불능인이지시) : 참아 내지를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네. 忍之一字(인지일자) : 인(忍)이라는 글자 하나는 仙家妙訣(선가묘결) : 선가(仙家)의 오묘한 비결(祕訣)이니 君亦愼持勿墜也(군역신지물추야) : 그대 또한 삼가 지니고 놓치지 말게나." 하였다. 留數旬(류수순) : 얼마 동안 머무시다가 拂衣辭去(불의사거) :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떠나갔으니, 人言其還向龍潭云(인언기환향룡담운) : 사람들은 그가 용담(龍潭)으로 다시 갔다고들 하였다. 許子曰(허자왈) : 허균(許筠)은 논한다. 傳言東人尙佛不尙(전언동인상불불상도) : 전해오는 말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佛敎)는 숭상했어도 도교(道敎)는 숭상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自羅逮鮮數千載(자라체선수천재) : 신라 시대부터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이 지났으나 未聞有一人得道仙去者(미문유일인득도선거자) : 득도(得道)하여 신선되어 간 사람이 있음을 듣지 못했다. 其果徵哉(기과징재) : 그렇다면 전해오는 말이 과연 징험이 되는 말이랴. 然以余所覩南宮先生言之(연이여소도남궁선생언지) : 그러나 내가 보았던 남궁 선생(南宮先生)으로 말한다면 可異焉(가이언) : 이상할 수밖에 없다. 先生所師者果何人(선생소사자과하인) : 선생이 스승으로 여겼던 분은 과연 어떤 사람이고, 而得於相師者(이득어상사자) : 상(相) 보는 사람에게 알아냈다는 것도 未必的然可信(미필적연가신) : 결코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은 못 되며, 所悅亦未必盡然(소열역미필진연) : 말했던 것들도 역시 모두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要之影響之間也(요지영향지간야) : 요컨대 그림자나 메아리 같은 실체 없는 소리이리라. 但以先生年貌看之(단이선생년모간지) : 다만 선생의 나이와 용모로 본다면 非眞能得道者耶(비진능득도자야) : 참으로 득도(得道)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닐 것인지. 那能八十而若是康健耶(나능팔십이약시강건야) : 어찌하여 80의 나이이고도 그처럼 건강했으랴. 此又不可決以爲實無是事也(차우불가결이위실무시사야) : 이건 또 도교 숭상하는 일이 실제로 없었다고 결정내릴 수도 없으리라. 噫其奇哉(희기기재) : 아아, 그거야말로 기이하도다. 我國僻在海外之遐(아국벽재해외지하) : 우리나라가 궁벽한 바다 밖 멀리에 있어 氣之士如羨門安期(기지사여선문안기) : 뛰어난 은사(隱士)로 선문자(羨門子)나 안기생(安期生)과 같은 분들이 드물었으나 而巖石間乃有此異人(이암석간내유차이인) : 암석(巖石)의 사이에 그러한 이인(異人)이 있어 累千百年(루천백년) : 여러 천백 년 만에 俾先生一得遇之(비선생일득우지) : 남궁 선생으로 하여금 만날 수 있게 하였으니 孰謂偏壤而無其人耶(숙위편양이무기인야) : 그 누가 '좁은 지역이니 그러한 인물이 없다.'라고 말하랴. 達道則仙(달도칙선) : 도(道)에 통달하면 신선이고 昧道則凡(매도칙범) : 도에 몽매하면 범인이다. 傳所言者與耳食奚殊(전소언자여이식해수) : 전해진다는 말이 이식과 무엇이 다르리오. 使先生毋望其速成(사선생무망기속성) : 선생으로 하여금 빨리 이루려던 욕망이 없게 하여 卒收爐鼎之效(졸수로정지효) : 끝내 단련하던 효과를 거둘 수 있게만 했다면 則彼羨門安期(칙피선문안기) : 저들 선문자ㆍ안기생과 어깨를 맞대고 亦何難拍肩而等夷之(역하난박견이등이지) : 나란히 맞서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었으랴. 唯其不忍(유기불인) : 다만 그분이 참아 내지 못하여 以敗垂成之功(이패수성지공) : 다 이루어진 공(功)을 실패하고 말았으니 嗚呼惜哉(오호석재) : 오호, 애석하도다.
관자(管子)-허균(許筠)
管子書龐雜重複(관자서방잡중복) : 《관자(管子)》의 글은 뒤섞이고 중복되어 似不出一人手(사불출일인수) : 한 사람의 손에서 나오지 않은 듯하다. 其心術內業等篇(기심술내업등편) : 그중 심술(心術)ㆍ내업(內業) 등 편은 皆附會道家(개부회도가) : 모두 도가(道家)의 설을 억지로 붙였으며, 而宙合諸篇(이주합제편) : 주합(宙合) 등 제편(諸篇)은 皆用隱語(개용은어) : 모두 은어(隱語)를 사용하여 俶譎詭怪以仲責之術(숙휼궤괴이중책지술) : 까다롭고 괴기하니, 관중의 실사(實事)를 권장하는 학술로써 安得有此謬悠語耶(안득유차류유어야) : 어찌 이렇게 현실과 어긋나고 요원한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 使果出其手(사과출기수) : 가사 과연 그의 손에서 나왔다면 不過故爲權辭以飾之耳(불과고위권사이식지이) : 이는 일부러 틀린 말을 하여 그의 진면목을 꾸민 것에 불과할 것이다. 仲之情見於其書者(중지정견어기서자) : 관중의 참뜻이 그의 책에 나타난 부분은 獨牧民大匡輕重等篇(독목민대광경중등편) : 오직 목민(牧民)ㆍ대광(大匡)ㆍ경중(輕重) 등 편뿐이며, 而牧民尤爲簡明(이목민우위간명) : 그 중에서도 목민편은 더욱 간단 명료하다. 其論兵陣之制農桑諸利之原(기론병진지제농상제리지원) : 병진(兵陣) 제도와 농상(農桑) 등 소득의 근본을 논함에 있어서는 鑿鑿中其綮(착착중기계) : 조리가 정연하여 그 요점을 적중하였으니, 宜其施之事而輒有實效(의기시지사이첩유실효) : 그것을 정사(政事)에 시행함에 즉시 실효가 나타났고, 終至於富國強兵(종지어부국강병) : 마침내 안으로는 나라와 군대를 부강시키고 取威定霸(취위정패) : 밖으로는 이웃나라에 위세와 패권을 장악하여, 而尊其主爲百五首也(이존기주위백오수야) : 그 군주(君主)를 높여 오패(五伯)의 으뜸이 되게 하기까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噫世已末矣(희세이말의) : 아, 세도(世道)는 이미 쇠퇴해졌다. 王道卒不可行(왕도졸불가행) : 왕도(王道)를 끝내 행할 수 없다면 則安得如管子者(칙안득여관자자) : 어떻게 하여야 관자와 같은 인물을 얻어 爲政而治其民耶(위정이치기민야) : 정치를 하고 백성을 다스릴 수 있을까?
엄처사전(嚴處士傳)-허균(許筠)
嚴處士名忠貞(엄처사명충정) : 엄 처사(嚴處士)는 이름이 충정(忠貞), 江陵人也(강릉인야) : 강릉(江陵) 사람이었다. 父早卒(부조졸)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家甚貧(가심빈) :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躬薪水自給(궁신수자급) : 몸소 땔감과 먹을 것을 마련하였다. 養其母極孝(양기모극효) : 그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효성을 다하여 晨夕不離側(신석불리측) : 새벽이나 저녁에는 곁에서 떠나지도 않았다. 母稍恙則不解帶寢(모초양칙불해대침) : 어머니가 조금만 편찮으면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지도 않으며, 手調膳以進(수조선이진) : 손수 음식을 만들어 드시게 하였다. 母嗜山雀(모기산작) : 어머니가 비둘기 고기를 즐겨하자, 結網膠竿(결망교간) : 그물을 짜고 간대에 갖풀을 붙여서라도 必獲以供之(필획이공지) : 기필코 잡아다가 대접하였다
其母勸令學取第(기모권령학취제) : 그 어머니가 글을 배워 과거를 보도록 타이르자, 益孜孜着力於問學(익자자착력어문학) : 더욱 열심히 글을 배우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爲詩賦甚古(위시부심고) : 시부(詩賦)를 아주 아건(雅健)하게 지어 내서 屢擢鄕解(루탁향해) : 여러번 향시(鄕試)에 뽑혔고, 得司馬以榮之(득사마이영지) :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
於書無所不通(어서무소불통) : 책이라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而尤遂於易中庸(이우수어역중용) : 유독《주역(周易)》과《중용(中庸)》에 깊이 파고들어 理致超詣(리치초예) : 이치에 높고 멀리 나아가, 所著文墨(소저문묵) : 저술한 글들이 與河洛相契(여하락상계) : 하도낙서와 서로 부합되는 경지였다. 母病殆(모병태) :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여 以身禱於天(이신도어천) : 자기를 데려가고 어머니 살려 주기를 하늘에 기도했지만, 不獲祜(불획호) : 회생하지 못하자 水漿不御數旬(수장불어수순) : 여러날 동안 물도 마시지 않아 杖而起(장이기) : 지팡이를 짚어야 일어날 정도였다. 三年廬啜粥(삼년려철죽) : 3년간 여묘(廬墓) 살이에도 죽만 마셨다.
制訖(제흘) : 복제(服制)를 마치자, 朋友勸應擧(붕우권응거) : 벗들이 과거에 응하기를 권했다. 處士泣曰(처사읍왈) : 처사(處士)는 울면서. 이르기를 吾爲老母也(오위로모야) : "나는 늙은 어머니를 위해서 과거보려 하였다. 今奚赴爲(금해부위) : 이제 왜 과거를 보아 身榮而母不享(신영이모불향) : 내 몸만 영화롭게 하고 어머니는 누릴 수 없게 하랴. 吾不忍是(오불인시) : 나는 차마 그럴 수는 없다."하면서 悲咽不止(비인불지) :목메인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人莫敢更言(인막감경언) : 남들이 감히 다시는 말하지 못하였다.
晩年移居羽溪縣(만년이거우계현) : 만년(晩年)에 우계현으로 이사와 살며 擇山水幽絶處(택산수유절처) : 산수(山水)가 유절(幽絶)한 곳을 택하여 構茆舍(구묘사) : 띠집[茆舍]을 짓고, 若將終身焉(약장종신언) :거기서 일생을 마치려 하였다. 窮乏不自聊(궁핍불자료) : 궁핍하여 제 몸을 의탁하지 못했으나 晏如也(안여야) : 마음만은 편안하게 살았다.
爲人和粹夷曠(위인화수이광) : 사람됨이 화평하고 순수하며, 평탄하고 툭 트여 不與人忤(불여인오) : 남들과 거슬리지 않았다. 恒居肫肫如也(항거순순여야) : 평상시에는 공손하고 지성스러웠으나 及至鄕評臧否(급지향평장부) : 고을에서의 잘잘못을 평하거나, 辭受取與之間(사수취여지간) :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어야 할 것들에 있어서는 截然不可犯(절연불가범) : 확고부동하여 범할 수가 없었고, 一切以義裁之(일절이의재지) : 일체를 의(義)로만 재단하자 鄕人皆受而敬之(향인개수이경지) : 고을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訓誨後進(훈회후진) : 제자들을 교육시킬 때도 必以忠孝爲先(필이충효위선) : 반드시 충효(忠孝)를 첫째로 하고 以其紛誶名利(이기분수명리) : 화려한 명리(名利) 따위야 완전히 벗어난 듯 則泊然不一出諸口(칙박연불일출제구) :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었다.
讀史至成敗治亂君子小人之辨(독사지성패치란군자소인지변) : 사서(史書)를 읽으며 성패(成敗)ㆍ치란(治亂)ㆍ군자(君子)ㆍ소인(小人)을 구별함에 이르러서는, 必慷慨論折(필강개론절) : 언제나 강개하여 명확히 판단하고 亹亹可聽(미미가청) : 막힘이 없어 들을 만하였다. 於武穆文山之死(어무목문산지사) : 두목이나 문산이 죽어간 대목에 있어서는 則輒掩卷流涕(칙첩엄권류체) : 별안간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爲文簡切有致(위문간절유치) : 문장은 간결하고 절실하여 운치가 있었고, 而詩亦壯麗(이시역장려) : 시도 역시 장려(壯麗)하게 지어 냈다. 所傳誦者百餘篇(소전송자백여편) : 그래서 전해지고 외어지던 것들이 1백여 편이었는데, 皆合作家(개합작가) : 모두 시작(詩作)의 규범에 합치되었으나 處士不屑爲也(처사불설위야) : 처사 자신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朝廷聞而嘉之(조정문이가지) : 조정(朝廷)에서도 듣고, 가상히 여겨 再授齋郞(재수재랑) : 두 번이나 재랑을 제수(除授)했으나 終不赴焉(종불부언) : 끝내 부임하지 않고 말았다.
年七十八(년칠십팔) : 향년(享年) 78세였다. 將終之日(장종지일) : 생을 마치려던 무렵에 招所嘗往還者數人(초소상왕환자수인) : 오래 전부터 출입하던 몇 사람과 學者十餘人(학자십여인) : 학자 10여 명을 초대하였다. 設酒肴以飮之(설주효이음지) : 주안상을 차려 대접하고는 因言身後當葬先隴(인언신후당장선롱) : 이어서 자기 죽은 뒤의 일을 말했으니, 반드시 선산에다 장사지내 주고 而托其幼孫(이탁기유손) : 그의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以所玩圖書(이소완도서) : 아끼던 도서(圖書)들을 散給門人(산급문인) : 문인(門人)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端坐穆然而逝(단좌목연이서) : 단정히 앉아 조용히 서거하였다. 閭巷爭來哭之(려항쟁래곡지) :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士夫識與不識(사부식여불식) : 평소에 알지 못하던 선비들까지도 皆相弔于家(개상조우가) : 모두 와서 조상(弔喪)해 주었다. 遺文散失(유문산실) : 유문(遺文)은 흩어지고 잃어버려 不克集也(불극집야) : 모아놓지를 못했다.
外史氏曰(외사씨왈) :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處士孝於家廉於鄕(처사효어가렴어향) : 처사(處士)는 가정에서 효도를 다했고 고을에서 절도 있는 행실을 하였으니, 固當得位(고당득위) : 분명히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而以母死不賓于王(이이모사불빈우왕) :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 때문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卒窮以終(졸궁이종) : 끝까지 궁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쳐 其才不少售(기재불소수) : 그의 훌륭한 재능이 조금도 쓰이질 못했으니, 惜哉(석재) : 애석하도다.
巖穴間有士如(암혈간유사여차) : 선비들이 묻혀 사는 암혈(巖穴)에는 이분처럼 名湮沒而不傳者(명인몰이불전자) : 이름이 인몰(湮沒)하여 전해지지 않는 선비들로는 非獨處士(비독처사) : 처사 한 사람만이 아니어서, 悲夫(비부) : 더욱 슬퍼진다
장생전(蔣生傳)-허균(許筠)
蔣生不知何許人(장생불지하허인) : 장생(蔣生)이란 사람은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인 줄을 알 수가 없었다. 己丑年間(기축년간) : 기축년(1589) 무렵에 往來都下(왕래도하) : 서울에 왕래하며 以乞食爲事(이걸식위사) : 걸식하면서 살아갔다. 問其名則吾亦不知(문기명칙오역불지) : 그의 이름을 물으면 자기 역시 알지 못한다 하였고, 問其祖父居住則曰(문기조부거주칙왈) :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거주했던 곳을 물으면, 이르기를 父爲密陽座首(부위밀양좌수) : "아버지는 밀양(密陽)의 좌수였는데 生我三歲而母沒(생아삼세이모몰) : 내가 태어난 후 세 살이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父惑婢妾之譖(부혹비첩지참) : 아버지께서 비첩(婢妾)의 속임수에 빠져 黜我莊奴家(출아장노가) : 나를 농장(農莊) 종의 집으로 쫓아냈소. 十五奴爲娶民女(십오노위취민녀) : 15세에 종이 상민(常民)의 딸에게 장가들게 해주어 數歲婦死(수세부사) : 몇 해를 살다가 아내가 죽자 因流至湖南西數十州(인류지호남서수십주) : 떠돌아 다니며 호남(湖南)과 호서(湖西)의 수십 고을에 이르렀고 今抵洛矣(금저락의) : 이제 서울까지 왔소."하였다.
其貌甚都秀(기모심도수) : 그의 용모는 매우 우아하고 수려했으며 眉目如畫(미목여화) : 미목(眉目)도 그린 듯이 고왔다. 善談笑捷給(선담소첩급) : 담소(談笑)를 잘하여 막힘이 없었고 尤工謳(우공구) : 더욱 노래를 잘 불렀으니 發聲凄絶動人(발성처절동인) : 노래 소리가 처절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곤 했었다. 常被紫錦裌衣(상피자금겹의) : 늘 자주색 비단으로 된 겹옷[裌衣]을 입고 다녔는데, 寒暑不易(한서불역) : 추울 때나 더울 때에도 갈아 입는 적이 없었다.
凡倡店姬廊(범창점희랑) : 창녀(倡女)나 기생들 집에도 靡不歷入慣交(미불력입관교) : 다니지 않는 곳이 없어 잘 알고 지냈으며, 遇酒輒自引滿(우주첩자인만) : 술만 있으면 곧바로 자기가 떠다가 잔뜩 마시고는 發唱極其懽而去(발창극기환이거) : 노래를 불러 아주 즐겁게 해주고는 떠나가 버렸다. 或於酒半(혹어주반) : 어느 때는 술이 한창 취하면 效盲卜醉巫懶儒棄婦乞(효맹복취무라유기부걸자로잉소위) 맹인ㆍ점쟁이ㆍ술취한 무당ㆍ게으른 선비ㆍ소박맞은 여인ㆍ걸인ㆍ노파들이 하는 짓을 흉내냈으니 : 種種逼眞(종종핍진) : 하는 짓마다 아주 똑같이 해댔었다. 又以面孔學十八羅漢(우이면공학십팔라한) : 또 가면을 쓰고 열심히 십팔나한(十八羅漢)을 흉내 내면 無不酷似(무불혹사) : 꼭 같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又蹙口作笳簫箏琶鴻鵠(우축구작가소쟁파홍곡추䳱아학등음) : 또 입을 찡그려서 피리ㆍ거문고ㆍ비파ㆍ기러기ㆍ고니ㆍ무수리ㆍ집오리ㆍ갈매기ㆍ학(鶴) 등의 소리를 내는데, 難辨眞贗(난변진안) : 진짜와 가짜임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였다. 夜作鷄鳴狗吠(야작계명구폐) : 밤에 닭우는 소리ㆍ개 짖는 소리를 내면 則隣犬鷄皆鳴吠焉(칙린견계개명폐언) : 이웃 개나 닭이 모두 울고 짓어대는 지경이었다.
朝則出乞於野市(조칙출걸어야시) : 아침이면 밖으로 나와 거리나 저자에서 구걸을 했으니, 一日所獲幾三四斗(일일소획기삼사두) : 하룻동안에 얻는 것이 거의 서너 말[斗]이었다. 炊食數升(취식수승) : 몇 되[升]쯤 끓여 먹고 나면
則散他丐者(칙산타개자) : 다른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故出則群乞兒尾之(고출칙군걸아미지) : 그래서 밖으로만 나오면 뭇 거지 아이들이 뒤를 따랐다. 明日又如是(명일우여시) : 다음날에도 또 그와 같이 해버리니 人莫測其所爲(인막측기소위) : 사람들은 그가 하는 짓을 헤아릴 수 없었다.
嘗寓樂工李漢家(상우악공리한가) : 전에 악공(樂工) 이한(李漢)이라는 사람 집에서 더부살이한 적이 있었다. 有一叉鬟學胡琴(유일차환학호금) : 머리를 쌍갈래로 땋은 계집이 호금을 배우느라 朝夕與之熟(조석여지숙) : 조석으로 만나므로 서로 친숙하였다. 一日失綴珠紫花鳳尾(일일실철주자화봉미) : 하루는 구슬로 이어진 자주빛 봉미를 잃어버리고 . 莫知所在(막지소재) : 있는 곳을 모른다고 하였다 蓋朝自街上來(개조자가상래) : 연유를 들어 보니, 아침에 길 위에서 오다가 有俊年少調笑偎倚(유준년소조소외의) : 준수한 소년이 있기에 웃으며 농을 붙이고 몸이 닿고 스치더니 因而不見(인이불견) : 이내 봉미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啼哭不止(제곡불지) : 그러면서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더란다. 生曰(생왈) : 그래서 장생이 이르기를, 唉小兒何敢乃(애소아하감내이) : "우습구나, 어린 것들이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願娘無泣(원낭무읍) : 아가씨야 울지 마라. 夕當袖耒(석당수뢰) : 저녁이면 반드시 내 소매 속에 넣어 오겠다."하고는, 翩然而去(편연이거) : 훌쩍 나가버렸다. 及夕(급석) : 저녁이 되자 招叉鬟出(초차환출) : 계집아이를 불러내어 따라오게 하고서는, 迤從西街傍景福西墻(이종서가방경복서장) : 서쪽 거리 곁 경복궁(景福宮) 서쪽 담장을 따라 至神虎門角(지신호문각) : 신호문(神虎門)의 모퉁이에 이르렀다. 以大帶綰鬟之腰(이대대관환지요) : 계집의 허리를 큰 띠로 묶어 纏於左臂(전어좌비) : 왼쪽 어깨에 들쳐매고 奮迅一踊(분신일용) : 풀쩍 뛰어, 飛入數重門(비입수중문) : 몇 겹으로 겹친 문으로 날아서 들어갔다. 時曛黑莫辨逕路(시훈흑막변경로) : 한창 어두울 때여서 길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 倏抵慶會樓(숙저경회루) : 급히 경회루(慶會樓) 위로 올라가니 上有二年少(상유이년소) : 두 소년이 있었다. 秉燭相迓(병촉상아) : 촛불을 들고 마중나와 相視大噱(상시대갹) : 서로 보며 껄걸 웃어대었다. 因自梁上鑑嵌中(인자량상감감중) : 그러더니 상량 위의 뚫어진 구멍에서 出金珠羅絹甚多(출금주라견심다) : 금구슬ㆍ비단ㆍ명주가 무척 많이 나왔다. 鬟所失鳳尾亦在焉(환소실봉미역재언) : 계집이 잃어버린 봉미 또한 있었다. 年少自還之(년소자환지) : 소년들이 그걸 돌려주자 生曰(생왈) : 장생(蔣生)이 이르기를, 二弟愼行止(이제신행지) : "두 아우는 행동거지를 삼가서 毋使世人瞰吾蹤也(무사세인감오종야) :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종적을 보지 못하도록 하게나."하였다. 遂引還飛出北城(수인환비출북성) : 그런 뒤에 끌고 다시 날라서 북쪽 성(城)으로 나와 送還其家(송환기가) : 그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未明詣李家謝之(미명예리가사지) : 계집은 다음날 밝기 전에 이씨(李氏)의 집으로 가서 감사의 말을 하려 했더니 則醉臥齁齁(칙취와후후) : 술이 취해 누워 있으며 코를 쿨쿨 골고 있었고, 人亦不知夜出也(인역불지야출야) : 사람들 또한 밤에 외출했던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壬辰四月初吉(임진사월초길) : 임진년(1592) 4월 초하룻날 賖酒數㪷大醉(사주수두대취) : 값을 뒤에 주기로 하고 술 몇 말[斗]을 사와, 아주 취해서는 攔街以舞(란가이무) : 길을 가로 막으며 춤을 추고 唱歌不綴(창가불철) : 노래 부르기를 그치지 않다가는 遲明(지명) : 거의 밤이 되어 殆夜倒於水標橋上(태야도어수표교상) : 수표교(水標橋) 위에서 넘어졌다. 人見之(인견지) : 다음날 해뜬 지 늦어서야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는데, 死已久矣(사이구의) : 죽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었다. 屍爛爲蟲悉生翼飛去(시란위충실생익비거) : 시체가 부패하여 벌레가 되더니 모두 날개가 돋아 전부 날아가 버려 一夕皆盡(일석개진) : 하룻밤에 다 없어지고 唯衣襪在(유의말재) : 오직 옷과 버선만이 남아 있었다.
武人洪世熹者居于蓮花(무인홍세희자거우련화방) : 무인(武人) 홍세희(洪世熹)라는 사람은 연화방(蓮花坊)에서 살았으니, 最與之昵(최여지닐) : 장생(蔣生)과 친하게 지냈었다. 四月從李鎰防倭(사월종리일방왜) : 4월에 이일을 따라 왜적을 방어했었다. 行至烏嶺(행지오령) : 조령(鳥嶺)에 이르렀을 때 見生(견생) : 장생을 만났다. 芒屩曳杖(견생망교예장) : 그는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끌면서 握手甚喜曰(악수심희왈) : 손을 붙잡고는 무척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吾實非死也(오실비사야) : "나는 사실 죽지 않았소. 向海東覓一國土去矣(향해동멱일국토거의) : 바다 동쪽으로 향하여 한 나라를 찾아 떠나버렸소."하더란다. 因曰(인왈) : 그러면서 이르기를, 君今年不合死(군금년불합사) : "그대는 지금 죽을 나이가 아니오. 有兵禍(유병화) : 병화(兵禍)가 있으면 向高林勿入水(향고림물입수) : 높은 곳의 숲으로 향해 가고, 물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丁酉年(정유년) : 정유년에는 愼毋南來(신무남래) : 삼가고 남쪽으로는 오지는 마시오. 或有公幹(혹유공간) : 혹 공사(公事)의 주관한 일이 있더라도 勿登山城(물등산성) : 산성(山城)으로 오르진 마시오."하고는 言訖(언흘) : 말을 끝마치자 如飛而行(여비이행) : 날아서 가버리니 須臾失所在(수유실소재) : 잠깐 사이에 있는 곳을 알 수 없더란다. 洪果於琴臺之戰(홍과어금대지전) : 홍세희는 과연 탄금대(彈琴臺)의 전투에서 憶此言(억차언) : 가 해 준 말을 기억해 내서 奔上山得免(분상산득면) : 그산 위로 달아나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丁酉七月(정유칠월) : 정유년(1597) 7월에 以禁軍在直(이금군재직) : 금군(禁軍)으로 숙직을 할 때, 致有旨於梧里相(치유지어오리상) : 오리(이원익) 정승에게 임금의 교지(敎旨)를 전해 주느라 都忘其戒(도망기계) : 그가 경계해 준 것을 모두 잊었었다. 回至星州(회지성주) : 돌아오면서 성주(星州)에 이르러 爲賊所迫(위적소박) : 적군의 추격을 당하자, 聞黃石城有備(문황석성유비) : 황석성(黃石城)이 전쟁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함을 듣고는 疾馳入(질치입) : 급히 달려갔는데, 城陷倂命(성함병명) : 성(城)이 함락되자 함께 죽고 말았다.
余少曰狎游俠耶(여소왈압유협야) : 내가 젊은 시절에 협사(俠士)들과 친하게 지냈고, 與之諧謔甚親(여지해학심친) : 그와도 해학(諧謔)을 걸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냈던 탓으로 悉覩其技(실도기기) : 그의 잡기놀이를 모두 구경하였다. 噫其神矣(희기신의) : 슬프다, 그는 신(神)이었거나 卽古所謂劍仙者流耶(즉고소위검선자류야) : 아니면 옛날에 말하던 검선(劍仙)과 같은 부류가 아니랴
수잠(睡箴)-허균(許筠)
世人嗜睡(세인기수) : 세상 사람들이 잠을 좋아하여 夜必終夜(야필종야) : 밤이면 으레 밤새도록 자고도 睡晝或睡(수주혹수) : 낮에 또 더러들 잔다. 睡而不足(수이불족) : 그리고 잠이 부족하면 則咸以爲病(칙함이위병) : 모두 병으로 여긴다. 故相問訊者(고상문신자) : 그러므로 서로 문안할 때는 至以配於食(지이배어식) : 먹는 것을 붙여 必曰眠食如何(필왈면식여하) : '면식(眠食)이 어떠하냐?'고 한다. 可見人之重睡也(가견인지중수야) : 이것으로 사람이 잠을 대단히 여김을 알 만하다.
余少曰少睡(여소왈소수) : 내가 젊어서는 잠이 적어도 亦不病(역불병) : 앓지를 않았는데, 年來漸多睡漸衰(년래점다수점쇠) : 요즘 와서는 잠은 많아졌는데도 점점 더 쇠약해지기만 한다. 不自知其故(불자지기고) : 그래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었다. 熟思之則睡乃病之道也(숙사지칙수내병지도야) : 곰곰이 생각해보니, 잠이란 병(病)으로 가는 길인 것이다. 人身以魂魄爲二用(인신이혼백위이용) : 사람의 몸은 혼(魂)과 백(魄) 두 길로 용사(用事)를 한다. 魂陽也(혼양야) : 혼은 양(陽)이고, 魄陰也(백음야) : 백은 음(陰)이다. 陰盛則人衰且病(음성칙인쇠차병) : 음이 성해지면 사람이 쇠약해지고 또한 병들게 되고, 陽盛則人康无疾(양성칙인강무질) : 양이 성해지면 사람이 건강하고 무병해진다. 睡則魂出(수칙혼출) : 잠을 자면 혼은 나가고 魄用事于中(백용사우중) : 백이 속에서 용사하게 되므로, 故陰以之盛而致衰疾(고음이지성이치쇠질) : 음이 성해져서 쇠약해지고 병들게 되는 것은 固也(고야) : 뻔한 일이다. 不睡則魂得其(불수칙혼득기용) : 잠을 안 자면, 혼이 제 구실을 하여 自能制魄(자능제백) : 백을 잘 제어해서, 使不得侵陽也(사불득침양야) : 양을 침범하지 못하게 만든다. 睡宜不過多也(수의불과다야) : 잠을 너무 많이 자서는 안 된다.
經云(경운) : 경(經)에 이르기를, 煩惱毒蛇(번뇌독사) : "번뇌(煩惱)는 독사(毒蛇)이니, 睡在汝心(수재여심) : 잠이 네 마음에 있어서는 바로 독사다. 毒蛇已去(독사이거) : 독사가 없어져야만 方可安眠(방가안면) : 편안히 잘 수 있다."하였다. 世之嗜睡者(세지기수자) : 세상의 잠꾸러기들은 皆爲惱蛇所困也(개위뇌사소곤야) : 모두 독사 같은 번뇌로부터 곤욕을 당하는 셈이니, 豈不可懼歟(기불가구여) :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仍箴以自警曰(잉잠이자경왈) : 이에 잠(箴)을 지어 다음과 같이 스스로 경계한다.
吁惺惺翁(우성성옹) : 아, 성성옹이여 宜睡眼勿睡心(의수안물수심) : 눈은 자도 마음은 자지 말라 睡眼則可以炤心(수안칙가이소심) : 눈만 자면 마음은 밝힐 수 있지만 睡心則陰魄來侵(수심칙음백래침) : 마음까지 자면 음백이 와 덤빈다 魄侵陽剝體化爲陰(백침양박체화위음) : 백이 침노하여 양이 부서지면 몸이 변하여 음이 되나니 其與鬼相尋(기여귀상심) : 그러면 귀신과 서로 얼리게 되노니 吁可畏惺翁(우가외성옹) : 아, 두렵도다 성성옹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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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晏子)-허균(許筠)
晏子(안자) : 안자(晏子)는 古所謂法家(고소위법가) : 옛적의 소위 법가(法家)로서, 而以管晏竝稱之(이이관안병칭지) : 보통 '관중(管仲)ㆍ안자(晏子)'라고 아울러 일컬어진다. 今其書只載其事齊之蹟(금기서지재기사제지적) : 이제 그 글을 보니 다만 제(齊) 나라 섬겼던 사적만 실었는데 而文特古雅(이문특고아) : 문장이 다만 고아(古雅)할 뿐이요, 非如管子詳言其立政治民之(비여관자상언기립정치민지요야) : 정사를 일으켜 세우고 백성을 다스리는 요체를 자세히 말한 관자와는 같지 않다. 晏子特不汚其身(안자특불오기신) : 안자는 그저 그의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俯仰以取容於世者(부앙이취용어세자) : 다만 남의 뜻대로 따라 하여 세상에 용납을 받은 사람일 뿐이니, 其不死於崔慶亦幸矣(기불사어최경역행의) : 최경(崔慶)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것이 또한 다행이다. 使當小白之日(사당소백지일) : 가령 그가 제 환공(齊桓公)의 시대를 당하였더라면 其功烈必不及仲(기공렬필불급중) : 그 공렬(功烈)은 반드시 관중에게 미치지 못할 것인데, 而竝稱之(이병칭지) : 두 사람을 나란히 일컫는 것은 何哉(하재) : 어찌된 일인가
상앙(商鞅)-허균(許筠)
商鞅初說秦以王以霸(상앙초설진이왕이패) : 상앙(공손앙)이 처음에 진 효공(秦孝公)을 왕도(王道)와 패도(霸道)로써 달래었으나 而孝公不省(이효공불성) : 효공을 아랑곳하지 않다가, 以富國強兵(이부국강병) : 부국 강병(富國彊兵)의 술로 달래자 則席爲前而聽之不倦(칙석위전이청지불권) : 그제야 자리를 앞으로 끌어당겨 바싹 다가앉아서 듣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한다. 鞅之學(앙지학) : 상앙의 학술은 本非王伯也(본비왕백야) : 본시 왕(王)ㆍ패(霸)가 아니었고, 特優於富強也(특우어부강야) : 다만 부강시키는 면에 우수하였을 뿐인데, 初以王霸者(초이왕패자) : 처음에 왕ㆍ패로써 달랬던 것은 乃飾其言(내식기언) : 그런 말을 꾸민 것에 불과하고 而終發其所優(이종발기소우) : 결국은 자기의 소장(所長)을 꺼내어 以中秦矣(이중진의) : 진왕의 마음을 적중시킨 것이다. 其書文甚勁悍(기서문심경한) : 그의 책은 글이 매우 강하고 사나워서 亦先秦筆(역선진필) : 역시 선진(先秦)의 필치이긴 하나 而疑多附會者(이의다부회자) : 남들이 억지로 붙인 글도 많다고 의심된다. 其開塞篇所言賞施於告姦者(기개새편소언상시어고간자) : 그 개색편(開塞篇)에서 말한 '부정을 고발한 사람에게 상을 베푼다.'는 것은 是平生受用地(시평생수용지) : 바로 그가 평생 동안 수용하였던 방편인데, 而卒以此殺身(이졸이차살신) : 마침내는 이것으로써 자신을 죽이고 말았으니, 天道之好還宜矣(천도지호환의의) : 순환하기를 좋아하는 천도(天道)로 보아 당연한 일이다. 後世君子動輒稱王道(후세군자동첩칭왕도) : 후세의 군자들은 툭하면 왕도만 들먹이고, 鄙夷管商(비이관상) : 관중ㆍ상앙은 천시하여 내리깎지만, 而考其功效(이고기공효) : 그의 공적을 따져보면 則反不逮焉(칙반불체언) : 도리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한다. 噫安得商子而用之(희안득상자이용지) : 아, 어떻게 하면 상자(商子)와 같은 이를 얻어서 그의 계책을 사용하여 富國強兵以禦暴耶(부국강병이어폭야) : 부국 강병을 이룩하고 외적의 침략을 방어할 수 있을까
묵자(墨子)-허균(許筠)
墨子之學(묵자지학) : 묵자(墨子)의 학술은 其道大觳(기도대곡) : 그 도의 큰 테두리가 有類於禹(유류어우) : 우(禹) 임금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故亟稱禹之道(고극칭우지도) : 자주, 우 임금의 도라고 일컬었으니, 猶許行治農(유허행치농) : 그것은 마치 허행(許行)이 농학(農學)을 닦으면서 而自稱爲神農之言者也(이자칭위신농지언자야) : 스스로 '신농씨(神農氏)의 말씀을 한다.'고 일컫던 경우와 같은 것이다. 其始皆本於聖人(기시개본어성인) : 시초는 모두 성인(聖人)에게서 나왔으나 其末流之弊(기말류지폐) : 그 말류(末流)의 폐단이 遂至於此(수지어차) : 마침내는 여기까지 이르렀으니, 孟子之所以力排也(맹자지소이력배야) : 이 때문에 맹자(孟子)가 극력 배척하였던 것이다. 其與儒竝稱者(기여유병칭자) : 유가(儒家)와 더불어 병칭(竝稱)되는 이유는 特以本仁義(특이본인의) : 특히 인의(仁義)에 근본을 두고 尊賢尙德(존현상덕) : 현(賢)을 높이며 덕(德)을 숭상하는 것이 有相近者(유상근자) : 유자와 서로 가까운 점이 있다는 것 때문인데, 此似是而非(차사시이비) : 이것은 옳은 듯하면서 그른 것으로, 易以惑人也(역이혹인야) : 쉽게 사람을 미혹시킬 수 있는 것이다. 韓愈氏以爲(한유씨이위) : 그런데 한유(韓愈)씨가 孔子必用墨子者(공자필용묵자자) : '공자께서 계신다면 반드시 묵자의 뜻을 채용하실 것이다.'고 한 것은 何哉(하재) : 무슨 까닭인가? 其父雖古(기부수고) : 그 글은 비록 고아하지만 而間亦䮕雜不倫(이간역철잡불륜) : 간혹 뒤섞여 조리가 없으니, 抑有後人附會耶(억유후인부회야) : 혹 후인이 억지로 끌어 맞춘 것인가
순자(荀子)-허균(許筠)
荀卿斥老聃爲知詘不知伸(순경척로담위지굴부지신) : 순경(荀卿)이 노담(老耼)을 배척하여 '굽힐 줄은 알았으나 펼 줄은 몰랐다.' 하였고, 斥莊周爲蔽於天而不知人(척장주위폐어천이불지인) : 장주(莊周)를 배척하여 '하늘의 도에 가려서 인간은 알지 못했다.' 하였는데, 其說甚是(기설심시) : 그의 설이 매우 타당하다. 又能知尊王而賤伯(우능지존왕이천백) : 또 능히 왕도(王道)를 높이고 패도(霸道)를 천시할 줄 알고, 知尊孔氏而黜異端(지존공씨이출이단) : 공자를 높이고 이단(異端)을 배척할 줄 안 것으로는 孟子後一人也(맹자후일인야) : 맹자 이후 일인자이다. 特以天資亢而闇妄以知道自處(특이천자항이암망이지도자처) : 오직 그의 천품이 거만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함부로 도를 안다고 자처하고 欲廢曾思孟子而直續夫子之傳(욕폐증사맹자이직속부자지전) : 증자(曾子)ㆍ자사(子思)ㆍ맹자를 제치고 곧바로 부자(夫子 공자)의 전통을 직접 이으려고 하였으므로, 故立言垂訓(고립언수훈) : 이론을 세우고 교훈을 전하는 데 있어 務異於諸儒(무이어제유) : 제유(諸儒)와는 다르게 하느라 노력하였다. 孟子曰人性善(맹자왈인성선) : 맹자는 '사람의 천성이 착하다.' 하였는데, 而卿曰人性惡也(이경왈인성악야) : 순경은 '사람의 천성이 악하다.'고 말하여, 欲以勝之(욕이승지) : 맹자를 이기고자 하였으나 而卒不可勝(이졸불가승) : 끝내 이길 수 없었다. 使卿循循然守思軻之傳(사경순순연수사가지전) : 가령 순경이 순순이 자사ㆍ맹자의 전통을 지키고, 不務爲高論異辨(불무위고론이변) : 뛰어난 논설과 특이한 변론을 힘쓰지 않았더라면 則小疵之斥(칙소자지척) : '조그만 흠이 있다.'는 배척과 ' 擇不精語不詳之誚(택불정어불상지초) : 선택한 것이 정미롭지 못하고, 말이 자상하지 못하다.'는 한유(韓愈)의 꾸짖음이 奚自而至耶(해자이지야) : 어디로부터 오겠는가. 唯其亢而闇(유기항이암) : 오직 거만하고 어리석어서 自用而自私(자용이자사) : 스스로 훌륭한 체하여 제멋대로 하였기 때문에 故一傳而爲李斯韓非也(고일전이위리사한비야) : 그의 사상이 한 번 전해지자 이사(李斯)와 한비(韓非)의 사상으로 변하였으니 惜哉(석재) : 애석한 일이다
양자(揚子)-허균(許筠)
荀卿自大其學(순경자대기학) : 순경(荀卿)은 스스로 자기 학문을 크게 떠벌리고 自私其智(자사기지) : 스스로 자기의 지혜를 특이하게 하여 而欲勝於諸子(이욕승어제자) : 제자(諸子)들보다 나아지고자 하였고, 揚雄自賤其學(양웅자천기학) : 양웅(揚雄)은 스스로 그의 학문을 천시하고 自卑其智(자비기지) : 스스로 그의 지혜를 낮추어서 而欲合於聖人(이욕합어성인) : 성인(聖人)과 부합하고자 하였다. 故二氏俱斥於知者(고이씨구척어지자) : 그러므로 두 사람 모두 지혜로운 사람에게 배척을 받았으니 其爲不知道也均矣(기위불지도야균의) : 그들이 도를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雄著法言準論語(웅저법언준론어) : 양웅이 《법언(法言》을 저술할 때는 《논어(論語)》를 모방하였고, 著太玄準易(저태현준역) : 《태현(太玄)》을 저술하면서는 《주역(周易)》을 모방하였는데, 以爲己之學不及聖人(이위기지학불급성인) :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자기의 학문이 성인에 미치지 못하고 己之智不逮諸子(기지지불체제자) : 자기의 지혜가 제자를 따라가지 못하여, 不可別立言爲經也(불가별립언위경야) : 별도로 이론을 세워서 경서(經書)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故著二書以合於聖(고저이서이합어성) : 그 두 책을 저술하여 성인과 합치되고자 하였으니, 其志陋矣(기지루의) : 그 뜻이 고루하다. 其爲艱深之詞者(기위간심지사자) : 그가 어렵고 깊은 말을 사용한 이유는 所以文淺易之說而愈艱愈夷(소이문천역지설이유간유이) : 얕고 보잘 것 없는 그의 설을 꾸밀려고 한 것으로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쉽고, 愈淵愈淺(유연유천) : 깊으면 깊을수록 더 얕으며, 愈達愈礙(유달유애) : 통하면 통할수록 더 막히게 되어 不得掩其拙(불득엄기졸) : 그의 졸렬함을 가리지 못하였다. 使雄不爲是(사웅불위시) : 가령 양웅이 이런 일을 하지 않고 只以賦鳴世(지이부명세) : 단지 사부(詞賦)만으로 세상을 울렸더라면 則人不議出處矣(칙인불의출처의) : 사람들이 그의 잘잘못을 거론하지 않았을 것인데, 乃反竭心悉力(내반갈심실력) : 도리어 정신을 쏟고 힘을 다하여 求合於儒術(구합어유술) : 술(儒術)과 합치되기를 구하다가 而終不免莽大夫之斥(이종불면망대부지척) : 유마침내 망대부의 배척을 면치 못하였으니, 有以也夫(유이야부) : 그러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然雄之過在陋(연웅지과재루) : 그러나 양웅의 허물은 고루한 데 있고 而卿之失在不自量(이경지실재불자량) : 순경의 잘못은 스스로 자신을 헤아리지 못한 데 있으니, 寧陋而不闇也已(녕루이불암야이) : 차라리 고루할망정 어리석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화자(子華子)-허균(許筠)
世所稱子(세소칭자) : 세상에서 일컫는 자화자(程本의 호)는 卽夫子傾蓋而語者(즉부자경개이어자) : 곧, 공자가 길을 가다가 그를 만나 마치 친지처럼 여기어 차개(車蓋)를 서로 기울이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람이니, 其人必知道也(기인필지도야) : 그 사람은 반드시 도를 알았을 것이다. 今其書衡裂委瑱(금기서형렬위진) : 지금 그 책을 보니, 문장은 매우 멸렬(滅裂)하며 잡다한 글이 많이 섞여 있었는데, 悉鳩集荀孟國語老莊素問韓非楚辭等(실구집순맹국어로장소문한비초사등서) : 《순자(荀子)》ㆍ《맹자(孟子)》ㆍ《국어(國語)》ㆍ《노자(老子)》ㆍ《장자(莊子)》ㆍ《소문(素問)》ㆍ《한비자(韓非子)》ㆍ《초사(楚辭)》 등의 글을 모두 주워모아 殆似百家衣(태사백가의) : 마치 백가(百家)의 옷을 입혀 놓은 것 같다. 其出於漢諸儒也無疑已(기출어한제유야무의이) : 이것은 한(漢) 나라 제유(諸儒)의 손에서 나왔음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子華之知道(자화지지도) : 도를 아는 자화와 같은 사람이 豈如是乎(기여시호) : 어찌 이와 같겠는가. 其終篇所言(기종편소언) : 그 마지막 편에 말한 것은 雖不明道源(수불명도원) : 비록 도의 근원은 밝히지 못하였으나 而意自好(이의자호) : 의미가 그런대로 좋고 文亦騰踔(문역등탁) : 문장도 뛰어났다. 其曰人壽幾何(기왈인수기하) : 그 중에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기에 而期有以待也(이기유이대야) : 자신을 기다려 주는 일이 있기를 기대하는가.'라고 한 말은 蓋當世列國雲擾(개당세렬국운요) : 대개 그 당시 열국(列國)이 구름처럼 어지럽고 戰爭方作(전쟁방작) : 전쟁이 한창 일어나는 때이므로, 悲士之不得其時者(비사지불득기시자) : 선비로서 때를 얻지 못한 자들을 슬퍼한 것이다. 此則子華之文(차칙자화지문) : 이것은 곧 자화의 글인데 而秦火失傳(이진화실전) : 진화(秦火)에 그의 전집은 실전(失傳)하였고 後人籍此一篇(후인적차일편) : 후인(後人)이 이 한 편을 빙자하여 而贗作以傳之也歟(이안작이전지야여) : 안작(贗作)해서 그것을 전했을 것이다
손자(孫子)-허균(許筠)
春秋以來言兵事者(춘추이래언병사자) : 춘추 전국 시대 이래로 병사(兵事)를 말한 자는 孫武一人而已(손무일인이이) : 손무(孫武) 한 사람일 뿐이다. 後世善用兵者(후세선용병자) : 후세에 용병(用兵)을 잘하였던 사람이라도 莫能出其度內(막능출기도내) : 그의 도량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雖非王者師(수비왕자사) : 비록 왕자(王者)의 스승은 아니었지만 而噫亦奇哉(이희역기재) : 아, 역시 뛰어난 사람이었다. 其文有筦鎖闢闔處(기문유관쇄벽합처) : 문장도 풀고 잠그고 열고 닫고 하는 곳이 있어서 節節生情(절절생정) : 그마디마디 정감이 생동한다. 先秦諸子文(선진제자문) : 선진(先秦) 제자(諸子)의 글 중에 韓非與孫武最是作家(한비여손무최시작가) : 한비(韓非)와 손무가 최고의 작가로서 至其簡切明核(지기간절명핵) : 간절하고 분명하게 하는 점에 있어서는 則非所及也(칙비소급야) : 다른 사람이 미칠 바가 아니다
오자(吳子)-허균(許筠)
高氏言(고씨언) : 고씨(高氏)가 말하기를, 孫子一乎奇(손자일호기) : "손자(孫子)는 권도(權道)에만 전일하였고, 吳子幾乎正(오자기호정) : 오자(吳子)는 정도(正道)에 가깝다."하였다. 然則武不及起乎(연칙무불급기호) : 그렇다면 손무가 오기(吳起)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인가? 彼特見起之書(피특견기지서) : 그는 다만 오기의 책에서 有尙禮義明敎訓(유상례의명교훈) : 예의를 숭상하고 교훈을 밝히면서 而雜用司馬法(이잡용사마법) : 주대(周代)의 사마 병법(司馬兵法)을 인용한 것을 보고는 故疑之爲止(고의지위지) : 그의 병술(兵術)이 정도(正道)가 아닌가 의심하였지만, 此起之飾也(차기지식야) : 이것은 오기의 가식이다. 其用兵權略(기용병권략) : 그가 군사를 부리는 권모(權謀)는 皆本之武(개본지무) : 모두 손무의 병법을 근본으로 하였는데, 而時別出機(이시별출기) : 가끔 따로 기교를 부려 抑自掩其跡(억자엄기적) : 스스로 그 자취를 엄폐하였던 것이다. 均之謂戰必勝(균지위전필승) : 손무와 마찬가지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而武之計深矣(이무지계심의) : 손무의 계략이 더 깊다. 其文簡切(기문간절) : 그 글의 간결하고 절실한 면도 亦似武而少遜之矣(역사무이소손지의) : 손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그보다 못하다
여자(呂子)-허균(許筠)
呂氏春秋亦呂子(려씨춘추역려자) :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역시《여자(呂子)》이다. 古之談理談事(고지담리담사) : 옛날에 이치를 담론하고 사물을 담론한 것을 皆稱春秋(개칭춘추) : 모두《춘추(春秋)》라고 일컬었기 때문에 故晏子亦稱春秋(고안자역칭춘추) : 《안자(晏子)》 또한 《춘추》라고 하였던 것이니, 以稱呂子者(이칭려자자) : 그것을《여자》라고 칭한 이유도 亦猶是也(역유시야) : 이와 마찬가지다. 不韋之爲是書(불위지위시서) : 여불위(呂不韋)가 이 책을 만든 것은 非自述也(비자술야) : 자신이 저술한 것이 아니고 乃聚天下俊辨士(내취천하준변사) : 천하의 뛰어난 변사(辯士)들을 모아들여 採其言而集錄之(채기언이집록지) : 자신의 말을 채집, 기록하였기 때문에 故其文不雅馴(고기문불아순) : 그 글이 바르고 숙련(熟練)되지 못하여 或有極正處(혹유극정처) : 혹은 지극히 올바른 곳도 있고, 或有極䮕處(혹유극철처) : 혹은 지극히 박잡한 곳도 있다. 要之(요지) : 그 이유를 따져 보면 不韋不能去就(불위불능거취지) : 여불위가 능히 그것들을 버리거나 취하지 못하여 俱存而傳世者也(구존이전세자야) : 함께 보존되어 후세에 전해진 것이다. 其八覽文最古雅(기팔람문최고아) : 그 중에 팔람(八覽)은 글이 가장 고아하므로, 後之爲文事者(후지위문사자) : 후세의 문예를 하는 자들이 或稱曰呂覽也(혹칭왈려람야) : 혹 《여람(呂覽)》이라 칭하기도 한다
회남자(淮南子)-허균(許筠)
劉安好賓客(유안호빈객) : 유안(劉安)이 빈객(賓客)을 좋아하여 虛館以待(허관이대) : 객사(客舍)를 비워 놓고 훌륭한 인재를 대우하였으니, 奇士如大小山八公之流(기사여대소산팔공지류) : 대산․ 소산․ 및 팔공과 같은 유들이었다. 이들은 皆雋偉瑰詭(개준위괴궤) : 모두 재학(才學)이 뛰어나고 괴기한 인물들로, 辨足以達天人(변족이달천인) : 그 달변(達辯)은 천리(天理)와 인사(人事)를 꿰뚫기에 충분하였고, 文足以德百家(문족이덕백가) : 문장은 백가(百家)를 망라하기에 충분하였다. 故共爲此書(고공위차서) : 그러므로 이들과 함께 이 책을 만들었는데, 蓋雜出於儒道名法諸家(개잡출어유도명법제가) : 대체로 유(儒)ㆍ도(道)ㆍ명(名)ㆍ법(法) 등 제가(諸家)와 天時地理緯數服煉之說(천시지리위수복련지설) : 천시(天時)ㆍ지리(地理)ㆍ위수(緯數)ㆍ복련(服煉) 등의 설이 섞여 나와서 博綜該貫(박종해관) : 넓게 종합하고 갖추 관통하여 廣大弘衍(광대홍연) : 광대하고 해박하니 可謂備矣(가위비의) : 진정 완비되었다고 이를 만하다. 而其言舛䮕不倫(이기언천철불륜) : 하지만 그 말들이 어긋나고 뒤섞여 조리가 맞지 않으니, 亦以其成於衆手如呂子也(역이기성어중수여려자야) : 이 또한 여러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진 것이 마치 여씨(呂氏)의 경우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漢史言安以叛誅(한사언안이반주) : 《한서(漢書)》에서는 '유안(劉安)이 반역으로 주살(誅殺)되었다.' 말하였고, 而仙傳以爲升仙(이선전이위승선) : 《신선전(神仙傳)》에서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였는데, 豈八公之流惑世之言耶(기팔공지류혹세지언야) : 어쩌면 팔공의 유들이 세상을 미혹시키는 말이 아닌가? 伯陽參同(백양참동) : 위백양(魏伯陽)의 《참동계(參同契)》에도 亦言其仙去(역언기선거) : 또한, 그가 신선이 되어 갔다고 말한 것을 보면, 則史家或諱其事耶(칙사가혹휘기사야) : 사가(史家)가 혹 그 사실을 기휘한 것이 아닌지 不可辨也(불가변야) : 확실히 알 수 없는 일이다. 其文俊雄奇傑(기문준웅기걸) : 그 문장이 웅장하고 기걸하며, 而推測物理(이추측물리) : 물리(物理)를 추측하고 探索陰陽處(탐색음양처) : 음양을 탐색하는 부분은 亦有大過人者(역유대과인자) : 또한 크게 남보다 뛰어난 면이 있으니, 西京子家其最雄者歟(서경자가기최웅자여) : 서경 시대 제자(諸子) 가운데 그가 가장 뛰어난 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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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자(文仲子)-허균(許筠)
王通書出於六朝之下(왕통서출어륙조지하) : 왕통(王通)의 글은 육조(六朝) 시대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故其文委靡古(고기문위미고) : 그 문장이 힘이 없다. 其續詩元經中論準詩春秋論語而(기속시원경중론준시춘추론어이작) : 그의 《속고시(續古詩)》ㆍ《원경(元經)》ㆍ《중론(中論)》은 《시경(詩經)》ㆍ《춘추(春秋)》ㆍ《논어(論語)》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所論皆出於王道(소론개출어왕도) : 논설이 모두 왕도(王道)에서 나왔으므로, 古人有比以六籍之奴隷(고인유비이륙적지노례) : 옛사람이 이를 육경(六經)의 노예(奴隷)라고 비유한 자도 있었다. 奴隷誠賤矣(노례성천의) : 노예는 진실로 천하지만 苟得爲聖人奴隷(구득위성인노례) : 진정 성인의 노예가 되었다면 則亦得以窺聖人門墻也(칙역득이규성인문장야) : 其與離經叛道而陷於不自量者(기여리경반도이함어불자량자) : 또한 성인의 문장(門牆)을 엿보았을 것이니, 성경(聖經)을 떠나고 도를 배반하여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는 과오에 빠진 자와는 相去懸矣(상거현의) : 서로의 거리가 현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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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자(文仲子)-허균(許筠)
王通書出於六朝之下(왕통서출어륙조지하) : 왕통(王通)의 글은 육조(六朝) 시대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故其文委靡古(고기문위미고) : 그 문장이 힘이 없다. 其續詩元經中論準詩春秋論語而(기속시원경중론준시춘추론어이작) : 그의 《속고시(續古詩)》ㆍ《원경(元經)》ㆍ《중론(中論)》은 《시경(詩經)》ㆍ《춘추(春秋)》ㆍ《논어(論語)》를 모방하여 지은 것으로 所論皆出於王道(소론개출어왕도) : 논설이 모두 왕도(王道)에서 나왔으므로, 古人有比以六籍之奴隷(고인유비이륙적지노례) : 옛사람이 이를 육경(六經)의 노예(奴隷)라고 비유한 자도 있었다. 奴隷誠賤矣(노례성천의) : 노예는 진실로 천하지만 苟得爲聖人奴隷(구득위성인노례) : 진정 성인의 노예가 되었다면 則亦得以窺聖人門墻也(칙역득이규성인문장야) : 其與離經叛道而陷於不自量者(기여리경반도이함어불자량자) : 또한 성인의 문장(門牆)을 엿보았을 것이니, 성경(聖經)을 떠나고 도를 배반하여 자신을 헤아리지 못하는 과오에 빠진 자와는 相去懸矣(상거현의) : 서로의 거리가 현격할 것이다
정랑중홍진자서(丁郞中鴻進字序)-이규보(李奎報)
人有以名以字(인유이명이자) : 사람들 중에 이름이나 자(字)를 가지고 와서 而索於予者衆矣(이색어여자중의) : 나에게 그에 대한 글을 요구하는 자가 많았다. 但不得已占之而已(단부득이점지이이) : 나는 부득이할 경우에는 점만 해주었을 뿐, 鮮有序其占之之意也(선유서기점지지의야) : 그 점에 대해서는 서문을 써준 일이 적었다. 今足下(금족하) : 지금 그대는 正直淳厚君子也(정직순후군자야) : 정직하고 순후한 군자다. 況於文章之餘(황어문장지여) : 더구나 문장 이외에 以墨竹之戲(이묵죽지희) : 묵죽(墨竹)의 그림 솜씨가 傾倒一時(경도일시) : 한 시대를 울림에랴? 求之於古(구지어고) : 이것을 옛날에서 찾아보아도
雖文與可輩(수문여가배) : 비록 글은 대등한 사람이 있었지만 所不能及也(소부능급야) : 이 묵죽의 그림은 능히 미치지 못하였다. 惟名與字(유명여자) : 오직 이름이나 자만은 當不朽萬世矣(당부후만세의) : 만세에 전해지게 해야 할 것인데, 今幸求字於予(금행구자어여) : 지금 다행히 자를 나에게 지어달라고 하니, 則予敢不敬受而字之耶(칙여감부경수이자지야) : 내가 어찌 자를 지어 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請字之曰樂之哉(청자지왈락지재) : 청컨대, 자를 ‘낙지(樂之)’라 하거나 曰而安也(왈이안야) : ‘이안(而安)’이라고 하라.
且鴻者(차홍자) : 또 기러기[鴻]란 것은 其進有時(기진유시) : 나아가는 데 시기가 있고 其行有序(기행유서) : 날아가는 데 차서가 있다. 故於易漸之六爻(고어역점지육효) : 그러므로 《역경(易經)》 점괘(漸卦)의 육효(六爻)는 皆以鴻言之也(개이홍언지야) : 모두 기러기를 가지고 말하였다. 然不若六二之安且樂也(연부약육이지안차락야) : 그러나 육이효(六二爻)의 안정되고 화락한 것만 같지 못하다. 其爻曰(기효왈) : 그 효사에 이르기를 鴻漸于磐(홍점우반) : ”기러기가 반석에 나아가는 격이라, 飮食衎衎吉(음식간간길) : 음식으로 화락하게 노니는 경향이니 길하다.”하였는데, 解者曰(해자왈) : 해석자는, 漸于磐者(점우반자) : ”‘반석에 나아간다’는 것은 柔順中正(유순중정) : 유순(柔順)하고 중정(中正)하므로 安而不危者也(안이부위자야) : 안정되어 위태롭지 않는 것이요, 飮食衎衎(음식간간) : ‘음식으로 화락하게 노닌다’는 것은 進而樂者也(진이락자야) : 나아가서 즐겁게 노니는 것이다.”하였다. 然則以樂之及而安字之(연칙이락지급이안자지) : 그렇다면 ‘낙지’나 ‘이안’으로 자를 하는 것이 不亦可乎(불역가호) : 또한 옳지 않겠는가? 於此二者(어차이자) : 이 두 가지 중에서 請擇所從而已(청택소종이이) :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쓰라 어찰송(御札頌)-허균(許筠)
惟我宣考陟方之三載(유아선고척방지삼재) : 우리 선조 대왕께서 돌아가신 지 삼 년인데, 上下臣庶(상하신서) : 위로 벼슬하는 이에서 아래고 서민에 이르기까지 罔有內外(망유내외) : 내외를 막론하고 俱御戢盛德而不敢忘(구어집성덕이불감망) : 모두 다 하루 같이 성덕(盛德)을 생각하여 감히 잊지 못하고, 以至涕泣而思者(이지체읍이사자) : 흐느껴 울며 사모하기를 卽如一日焉(즉여일일언) : 하루의 일같이 하고 있는 터이다.
家兄臣某謂其弟筠曰(가형신모위기제균왈) : 가형 신(臣) 아무가 아우인 균(筠)에게 이르기를, 惟先王之德(유선왕지덕) : "우리 선왕의 덕은 爲臣子者孰不感戴(위신자자숙불감대) : 신하된 사람 그 누가 고맙게 여겨 떠받들지 않으랴마는, 而吾以近侍之臣(이오이근시지신) : 나는 임금을 가까이 모시던 신하로, 致位冢宰(치위총재) : 벼슬이 총재(冢宰)에 이른데다가 且締姻戚之密(차체인척지밀) : 인척(姻戚)의 사이까지 맺어짐으로써 數十餘年(수십여년) : 수십여 년 동안 飽霑渥惠(포점악혜) : 은혜에 흠뻑 젖었다. 及其病(급기병) : 그래서 병이라도 앓게 되면 御醫視之(어의시지) : 어의(御醫)까지 보내어 병을 보게 한 다음 藥餌踵至(약이종지) : 약을 뒤이어 보내주셨고, 內廚之珍(내주지진) : 내주(內廚)의 진기한 음식을 絲絡以賚(사락이뢰) : 줄줄이 내리기까지 하셨으니, 其銘肝刻骨(기명간각골) :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길 만한 그 은혜가, 比諸內外臣庶涕泣以思者(비제내외신서체읍이사자) : 흐느껴 울며 사모하는 내외 신서에 비겨 寔有倍焉(식유배언) : 실로 갑절이나 된다. 吾爲大司馬(오위대사마) : 내가 대사마(大司馬;병조판서)가 되던 날 日御札敦諭其就職(일어찰돈유기취직) : 임금님이 편지로 그 직(職)에 나아갈 것을 친절하게 타이르시고, 且勉以陰雨之計(차면이음우지계) : 한편으로는 예비 대책으로 권면하셨으니, 辭旨懇切(사지간절) : 그 말뜻의 간절하기가 若家人父子之耳提面命(약가인부자지이제면명) : 마치 여염집의 식구끼리나 부자간에 귀를 당겨 들려주고 눈앞에서 타이르는 것과 같았다. 吾奉以周旋(오봉이주선) : 내가 그 말씀을 받들어 주선함에 不敢少懈(불감소해) : 감히 조금도 게을리 못했으며, 冀以答生成之恩(기이답생성지은) : 나를 생성(生成)시켜 주시는 임금의 은혜에 보답코저 하였다. 顧才智不逮(고재지불체) : 그러나 돌이켜 보건대, 나는 재주도 지혜도 미치지 못하여, 終未能稱塞其萬一矣(종미능칭새기만일의) : 마침내 만분의 일도 그 뜻을 받들지 못하였다.
玆御札雲章絢爛(자어찰운장현란) : 이 어찰(御札)은 문장이 아름답고 筆勢飛驣(필세비驣) : 필세가 힘차며, 訓誨之辭(훈회지사) : 타이르는 말씀은 實與典謨相表裏(실여전모상표리) : 진실로 요전(堯典)ㆍ우모(禹謨)와 같으므로, 捧讀循咀(봉독순저) : 받들어 읽고 손으로 어루만지며 음미해보니, 怳若仰旄頭之塵(황약앙모두지진) : 황홀하기가 마치 깃대끝의 먼지를 바로 우러르고, 聆屬車之音(령속차지음) : 시종하는 수렛소리를 들으면서 以睇夫天容玉色也(이제부천용옥색야) : 임금님의 모습을 직접 뵙는 듯 하였다. 吾以寓弓劍之慕(오이우궁검지모) : 내가 돌아가신 임금님을 사모하여, 謹命工裝䌙(근명공장황) : 삼가 공인(工人)을 시켜 이를 장정(裝幀)하게 하여 朝夕展玩(조석전완) : 아침 저녁으로 펴 보고 완상하고 있다.
爾以文夙蒙睿奬(이이문숙몽예장) : 너는 일찍이 글로써 임금님의 권장을 받았고, 且舊日承明珥筆視草之臣(차구일승명이필시초지신) : 또한 지난 날 대궐에서 귓바퀴 사이에 붓을 끼고 글 쓰는 일을 맡아 보던 신하이니 其以頌之(기이송지) : 그로써 송(頌)을 지어 以詔吾子孫(이조오자손) : 우리 자손에게 내려서 俾萬代不忘焉(비만대불망언) : 만대 후손으로 하여금 잊지 말게 할지어다." 臣筠泣而對曰(신균읍이대왈) : 하시기에, 신(臣) 균(筠)이 울며 여쭙고 先王之待臣下(선왕지대신하) : "선왕께서 신하 대접을 極篤以誠(극독이성) : 극히 정성껏 돈독히 하였으며, 而下之所以報效謳思者(이하지소이보효구사자) : 그에 보답코져 기리고 사모하는 아랫사람 또한 亦盡其忠悃(역진기충곤) : 그 충성과 정성을 다하였으니, 二事皆可書也(이사개가서야) : 이 두 가지는 다 글로 엮을 만한 것입니다. 況先王之德澤(황선왕지덕택) : 게다가 선왕의 은덕이 涵煦於民庶者(함후어민서자) : 뭇 백성에게 다사롭게 끼쳐진지 四十有二年(사십유이년) : 42년이나 되었으니, 雖甿隷之愚無知(수맹례지우무지) : 비록 아무것도 모르는 못난 백성일지라도 猶解悲吟而懷慕(유해비음이회모) : 슬퍼하고 읊조릴 줄 아는데, 如臣少嘗出入金門(여신소상출입금문) : 하물며 저처럼 어려서부터 대궐에 드나들면서 覲耿光蒙曲成者(근경광몽곡성자) : 친히 상감의 성덕을 우러르고, 하나하나 이룩해 주심을 받은 자로서야 可不思所以揄揚之耶(가불사소이유양지야) : 그 임금님 기릴 바를 어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遂拜手稽首以頌曰(수배수계수이송왈) : 마침내 손 모아 머리 숙여 송(頌)을 짓어 이르기를,
恭惟宣考(공유선고) : 공손히 생각하니, 선조 임금님 德由天縱(덕유천종) : 그 덕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躬率百揆(궁솔백규) : 몸소 백관을 거느리시고 以新三統(이신삼통) : 천지인 삼통을 새로이 하셨도다. 孰孚一心(숙부일심) : 전일한 마음 누가 맞춰주나 唯我世臣(유아세신) : 오직 우리 세대의 신하들이라. 唯忠唯直(유충유직) : 오직 충성되고도 곧아서 見奬楓宸(견奬풍신) : 대궐에서 권장 받았도다. 予擢爾位(여탁이위) : 내 그대 벼슬을 가려 司馬之長(사마지장) : 대사마로 삼았도다. 以董予旅(이동여려) : 내 군사를 보살피되 師律用壯(사률용장) : 군률을 씩씩하게 하여라. 孰闖于圍(숙틈우위) : 그 누가 우리 땅을 엿보며 孰嫚其言(숙만기언) : 그 누가 그대 말을 우습게 알리오. 汝籌汝度(여주여도) : 그대 계책 그대가 헤아려 俾固予垣(비고여원) : 나의 국경을 튼튼히 하게 하라. 爰御鸞牋(원어란전) : 이에 난전에다 爰洒奎翰(원쇄규한) : 어필(御筆)을 적으셨도다. 日星昭回(일성소회) : 해와 별이 밝게 빛나고 雲霞燦爛(운하찬란) : 구름 낀 노을이 찬란하였다. 意正辭切(의정사절) : 뜻 바르고 말씀 간절하니 堯典禹謨(요전우모) : 요전과 같고 우모와 같았다. 錫汝司馬(석여사마) : 꾸려나갈 계책을 綢繆之圖(주무지도) : 사마 그대에게 주노라. 公拜以受(공배이수) : 공이 절하고 받아서 不亟不弛(불극불이) : 서둘지도 게으르지도 않았다. 訓齊以整(훈제이정) : 일매지게 가르쳐 정돈하니 軍由是理(군유시리) : 군대가 이로써 다스려졌도다 唯此雲章(유차운장) : 오직 이 어찰(御札)만을 藏之于家(장지우가) : 집에다 간직했을 뿐이로다. 仙遊遽邈(선유거막) : 신선놀음 아득해라 雪涕何嗟(설체하차) : 눈물 흘리며 탄식한들 어쩌리오. 寶襲如璧(보습여벽) : 보배로 간직하길 옥처럼 하고 惟上之錫(유상지석) : 오직 임금께서 내리신 것이로다. 慨慕淸光(개모청광) : 맑은 모습 개연히 그리며 輒玩心畫(첩완심화) : 심획을 어루만져본다. 展以陳之(전이진지) : 펴 보고 말해보니 虹光燭櫺(홍광촉령) : 무지개빛 난간에 비치는구나. 伏以諷之(복이풍지) : 엎디어 외워 보니 天語丁寧(천어정녕) : 임금 말씀 분명하구나. 先王之德(선왕지덕) : 선왕의 덕은 如天如父(여천여부) : 하늘 같고 아비 같도다. 民孰不思(민숙불사) : 백성된 이 누가 그리지 않고 我偏其慕(아편기모) : 나만 유독 그리워하리오. 吁我兄弟(우아형제) : 아, 우리 형제와 及子若孫(급자약손) : 아들 그리고 손자들이여. 於千萬年(어천만년) : 아, 몇천만 년토록 頌我王恩(송아왕은) : 우리 임금 은혜를 기려야 하리라. 제한석봉문(祭韓石峯文)-허균(許筠)
한석봉을 제사하는 문-허균(許筠)
精孕崧嶽(정잉숭악) : 숭악의 정기 받아 結爲異才(결위이재) : 특이한 재주를 모았도다. 公也應生(공야응생) : 공의 태어남이 蔚作倫魁(울작륜괴) : 우뚝하게 무리 중에 으뜸이었다. 鉅筆如椽(거필여연) : 서까래 같은 큰 붓 臨池池墨(임지지묵) : 못이 먹물이 되었었다. 遂貢司馬(수공사마) : 마침내 사마시에 합격하여 名振王國(명진왕국) : 이름을 왕국에 떨쳤도다. 小楷猊抉(소해예결) : 작은 글씨는 사자 발톱으로 할퀸 듯 大字龍纏(대자용전) : 큰 글자는 용이 서린 듯하였다. 右軍吳興(우군오흥) : 왕희지와 조맹부와 千載拍肩(천재박견) : 천 년 만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太倉王元美擊節(태창왕원미격절) : 태창 왕원미(王元美)이 무릎치며 賞以奔驥(상이분기) : 달리는 기마 같다 감탄했단다. 王寵其能(왕총기능) : 임금이 재능을 사랑하여 畀之以位(비지이위) : 그에게 벼슬을 제수하였다. 屢輟黃封(누철황봉) : 자주 술을 내려주며 橘柚嘉魚(귤유가어) : 귤과 유자와 고기를 내리셨다. 細綺輕紈(세기경환) : 가는 비단이며, 가벼운 비단 牋翰與俱(전한여구) : 글씨 쓸 종이까지 모두 내렸다. 恩賚便蕃(은뢰편번) : 은헤 내리심이 성대함은 一世無兩(일세무양) : 한 시대에 짝할 자 없었다. 躋郞水曹(제랑수조) : 벼슬은 공조의 낭에 올랐고 二邑之長(이읍지장) : 두 골의 원도 지냈었다. 晩通詩學(만통시학) : 만년에는 시학에도 능통하여 陶柳門庭(도유문정) : 도잠과 유종원의 문정을 밟았다. 夷曠沖粹(이광충수) : 시가 평이하고 광활하고 순수하여 詠之淸冷(영지청냉) : 읊으면 맑은 기운이 감돌았다. 惟我仲氏(유아중씨) : 우리 중씨(仲氏)께선 交公莫逆(교공막역) : 공과 막역한 교우였었다. 仍辱綰帶(잉욕관대) : 그래서 나도 자연히 알게 되어 卽爲鍾伯(즉위종백) : 바로 종자기와 백아처럼 되었다. 我家輦下(아가련하) : 우리 집은 서울이었지만 公客于京(공객우경) : 공은 서울에 객거했었다. 頗數其從(파수기종) : 자못 자주 따라다녔지만 恨俗務嬰(한속무영) : 속무에 얽매임 한하였도다. 一麾遼山(일휘요산) : 요산의 고을살이로 果踐宿諾(과천숙낙) : 과연 예전 언약 실천하였다. 邀公以館(요공이관) : 공을 맞아 묵게 하니 沖天之閣(충천지각) : 충천(沖天)의 누각이었다. 以觴以詠(이상이영) : 술 마시며 시를 읊되 月檻風欞(월함풍령) : 달밝은 마루 바람드는 창가였다. 爲我金書(위아금서) : 나를 위해 금 먹으로 般若心經(반야심경) : 반야심경을 썼주었다. 法遒勢勁(법주세경) : 필법이 날카롭고 형세가 굳세어 褚歐失色(저구실색) : 저수량과 구양순이 놀랄 정도였다. 諧唱淋漓(해창림리) : 흐드러지게 읊을 적엔 樂人間極(낙인간극) : 인간 즐거움의 최고치였다. 月再環絙(월재환환) : 두 달 동안 머물다가 公以久辭(공이구사) : 너무 오래묵었다고 떠났다. 拜將于郊(배장우교) : 교외까지 전송하며 九秋以期(구추이기) : 가을에 만나자 기약했었다. 曾未幾時(증미기시) : 아직 가을이 되기 전에 忽承凶問(홀승흉문) : 갑자기 부음을 받았도다. 初愕以疑(초악이의) : 첫번엔 놀라고 의심을 하면서 涕先言霣(체선언운) : 눈물이 앞서고 말문이 막혔디. 天其不弔(천기불조) : 하늘이 보살피지 않으시고 奪我良人(탈아양인) : 우리 어진이를 빼앗아갔도다. 仁者不壽(인자불수) : 인자가 오래 살지 못한다고 孰詰于神(숙힐우신) : 그 누가 신에게 따진단 말인가 桂席未埃(계석미애) : 계석(桂席)에 채 먼지도 앉기 전 玉樓俄邈(옥루아막) : 옥루로 아득히 떠났도다. 痛念仙遊(통념선유) : 신선과 노닐 것을 생각하니 肝髓寸鑿(간수촌착) : 간장과 골수가 점점이 도려내듯하다. 英靈未沫(영령미말) : 영령은 없어지지 않으니 肯化灰塵(긍화회진) : 어찌 티끌로 변하겠는가. 蕩爲溟涬(탕위명행) : 천지의 정기에 섞여서 月星麗旻(월성려민) : 달과 별같이 빛나리라. 寂寞芳榭(적막방사) : 적막한 정자 凄淸空宇(처청공우) : 차고 깨끗한 빈 집 如睹其容(여도기용) : 그 얼굴 보이는 듯하고 如聞其語(여문기어) : 그 목소리 들리는 듯하다. 名之不朽(명지불후) : 이름이 썩지 않으리니 死亦奚悲(사역해비) : 죽었다 하여 어찌 슬프하랴. 其生存者(기생존자) : 살아 있는 자들이 謾自嗟咨(만자차자) : 부질없이 서러워한다. 職守所拘(직수소구) : 직책에 매여있어서 阻餞蒿里(조전호리) : 무덤으로 떠나는 길 전송 못하고 遠致菲奠(원치비전) : 멀리서 초라한 제수를 올린다. 冀聆吾誄(기령오뢰) : 나의 이 뇌문(誄文)을 들어주오 嗚呼哀哉(오호애재) : 아, 나의 슬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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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객부원(老客婦怨)-허균(許筠) 늙은 나그네 아낙의 원망-허균(許筠)
東州城西寒日曛(동주성서한일훈) :
동주 성 서쪽, 차가운 해 뉘엿뉘엿
寶蓋山高帶夕雲(보개산고대석운) :
우뚝한 보개산이 저녁 구름 감싸 있다
皤然老嫗衣藍縷(파연로구의남루) :
머리 허옇게 센 늙은 할미, 남루한 옷차림
迎客出屋開柴戶(영객출옥개시호) :
손님 맞아 방을 나와 사립문을 열어준다
自言京城老客婦(자언경성로객부) :
스스로 말하기를, 서울 늙은 나그네 아낙
流離破産依客土(류리파산의객토) :
파산하여 떠돌다가 객지에 사는 신세가 되었다오
頃者倭奴陷洛陽(경자왜노함락양) :
저 지난날 왜놈들이 서울을 함락시켜
提携一子隨姑郞(제휴일자수고랑) :
외 아들 손에 잡고 시어머니와 남편 따라
重跡百舍竄窮谷(중적백사찬궁곡) :
삼백리 길 걷고 걸어 깊은 골에 숨어왔소
夜出求食晝潛伏(야출구식주잠복) :
밤에 나와 밥을 빌고 낮에는 숨어 살았소
姑老得病郞負行(고로득병랑부행) :
시모 늙어 병을 얻어 남편이 업고 가니
蹠穿崢山不遑息(척천쟁산불황식) :
험한 산길에 발바닥이 다 뚫어져도 쉬지도 못했소
是時天雨夜深黑(시시천우야심흑) :
이런 때, 비는 내려 밤이 더욱 캄캄하니
坑滑足酸顚不測(갱활족산전불측) :
길 미끄럽고 다리 시러워 언제 넘어질지 몰랐소
揮刀二賊從何來(휘도이적종하래) :
칼 휘두르는 두 왜적은 어디서 왔는지
闖暗躡蹤如相猜(틈암섭종여상시) :
어둠 속에 머리 내밀며 서로 다투어 뒤를 밟아
怒刃劈脰脰四裂(노인벽두두사렬) :
성난 칼날 목을 갈라서 목이 찢어졌소이다
子母倂命流冤血(자모병명류원혈) :
어미와 아들 다 죽어 원한의 피 흐르고
我挈幼兒伏林藪(아설유아복림수) :
나는 어린아이를 끌고 덤불 속에 엎드렸소
兒啼賊覺驅將去(아제적각구장거) :
아이 울음에 들켜 잡혀가고 말았으니
只餘一身脫虎口(지여일신탈호구) :
내 한 몸 겨우 남아 호랑이 굴을 벗어났지만
蒼黃不敢高聲語(창황불감고성어) :
허둥지둥 경황없어 소리 높여 말조차 못했소
明朝來視二骸遺(명조래시이해유) :
다음 날 아침 와서 보니 두 시체 버려져
不辨姑屍與郞屍(불변고시여랑시) :
시모인지 남편인지 분간할 길 없었다오
烏鳶啄腸狗嚙骼(오연탁장구교격) :
솔개와 까마귀 창자 쪼고, 들개는 살 뜯으니
虆梩欲掩憑伊誰(라리욕엄빙이수) :
삼태기와 흙수레로 덮어 가리려 해도 누가 도와주랴
辛勤掘得三尺窞(신근굴득삼척담) :
석 자 깊이 구덩이를 천신만고로 겨우 파서
手拾殘骨閉幽坎(수습잔골폐유감) :
남은 뼈골 손수 모아 봉토하고 나니
煢煢隻影終何歸(경경척영종하귀) :
의지 없는 외그림자 끝내는 어디로 돌아갈까
隣婦哀憐許相依(린부애련허상의) :
이웃 아낙 슬피 여겨 함께 살자 하여
遂從店裏躬井臼(수종점리궁정구) :
이 주막에 더부살이 방아 찧고 물 길렀소
餽以殘飯衣弊衣(궤이잔반의폐의) :
남은 밥 먹여 주고 낡은 옷 입혀 주어
勞筋煎慮十二年(로근전려십이년) :
지치고 마음졸이기 열두 해가 되었다오
面黧髮禿腰脚頑(면려발독요각완) :
주름진 얼굴, 듬성머리, 허리도 다리도 뻐근한데
近者京城消息傳(근자경성소식전) :
근자에 서울 소식 드문드문 들려왔소
孤兒賊中幸生還(고아적중행생환) :
내 불쌍한 아이는 적중에서 다행히도 살아나와
投入宮家作蒼頭(투입궁가작창두) :
대궐에 투숙하여 창두가 되었다 하오
餘帛在笥囷倉稠(여백재사균창조) :
옷장에는 남은 비단, 창고에는 곡식 가득하니
娶婦作舍生計足(취부작사생계족) :
장가들고 집 마련하여 생계가 풍족하다 하나
不念阿孃客他州(불념아양객타주) :
타관살이 나그네 처지 제 어미께 생각 못하니
生兒成長不得力(생아성장불득력) :
낳은 아들 성장해도 그 덕을 보지 못하오
念之中宵涕橫臆(념지중소체횡억) :
생각할수록 한밤중에 눈물이 가슴 적시고
我形已瘁兒已壯(아형이췌아이장) :
내 꼴은 다 시들고 아들은 이미 장년이 되었소
縱使相逢詎相識(종사상봉거상식) :
설사 서로 만나더라도 알아볼 리 있을까
老身溝壑不足言(로신구학불족언) :
늙은 몸 구렁에 버려지는 건 더 말할 나위 없거니
安得汝酒澆父墳(안득여주요부분) :
너의 술이라도 얻어 아비 묘에 올려볼 수 없겠는가
嗚呼何代無亂離(오호하대무란리) :
아 슬프구나, 어느 시대인들 난리야 없으랴만
未若妾身之抱冤(미약첩신지포원) :
이 못난 여편네가 품은 원한은 아직도 없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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