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2)
산다는 것은(2)
- 박범신 에세이 -
《 즐거움 樂 》
저기 ………
저무는 하늘가에 별이 하나
환하고 정갈하게 떠 있다.
내가 당신의 그 별이 된다면 좋겠다.
그것이다. 내 남은 꿈은.
■ 숨바꼭질하기 좋은 집
0 스물 몇 살 시절. 가난한 문학청년이었던 나는 애인에게 프러포즈하면서, 그때로서는 터무니없는 큰소리를 쳤다. “지금은 비록 단칸방 신세로 살아 가야 할 처지지만, 한 가지는 네게 약속할 수 있어. 언젠가 서울의 양지바 른 곳에 너랑 함께 살 번듯한 내 집을 지을 거라는 것!” 애인은 내 흰소리 에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생쥐 볼가심할 것도 없는 형편에다가 문학으로 밥 벌어먹을 가망성이 거의 없던 시절이니, 나나 듣는 애인이나 그 큰소리는 흰소리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행랑이 몸체 되는 수도 있다고, 어찌어찌해서 사는 형편이 나아지자 냉큼 그 약속이 생각났다. 내 집을 직 접 짓지 않으면 영원히 떠돌이를 면하지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직 접 짓고 살림을 들여 놓은 것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0 나는 설계를 맡길 때, 설계사에게 불문곡직하고 “모든 공간에 햇빛이 쫙 들게 해 주세요.” 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이 집을 지었다.
창이 넓은 방에서 살게 되는 내 아이들은 최소한 나보다 품이 넓고 밝게 자랄 것 같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애들이 울근불근 조금씩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막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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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중학교 때 이미 무면허로 한밤중에 내 차를 몰고 나가 나를 놀라게 하 기도 했다. 심리학을 하는 친구가 어느 날 말했다. “막둥이 방을 바꿔줘 봐. 지난번 보니까 남쪽부터 동쪽까지 그 녀석 방의 창이 너무 넓더라구. 숨을 데가 없는 구조의 공간에서 계속 살면 산만해질 수 있거든.” 나는 아 뿔싸, 내 스스로 형틀 지고 와서 매 맞을 짓거리를 했다고 느꼈다.
“집은 숨바꼭질하기 좋아야 해. 다락도 좀 있고 광도 있고 해야 사람은 안정감을 갖거든 벽이 없고 그늘이 없으면 어디서 쉴 수 있겠어?” 친구는 덧붙였다.
0 가을이 깊어지자 아내가 떼어냈던 두꺼운 커튼을 단다. 집안이 훨씬 아늑 해진다. 여름에 정신이 산만한 것은 외부로 향한 창을 활짝 열어 놓기 때 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벗어던졌던 옷가지를 하나씩 둘씩 주워 입 고 창과 덧문을 닫아걸면 내면의 방은 오히려 넓어진다는 것이다. 십만송 의 성인인 밀레르파도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면 ‘고독한 동굴을 너 의 아버지로 삼고 정적을 너의 낙원으로 만들라.’ 노래했던 모양이다. 자 고로 영혼의 지평을 넓혀온 선지자들이 ‘동굴’에 은거한 예는 동서양을 막 론하고 수없이 많다.
■ 문단 데뷔에 얽힌 추억
0 나는 1972년 10월 24일 결혼했다. 결혼에 뒤따르는 책임에 대해 깊은 인 식 없이 오직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있고 싶은 낭만적 열정만을 좇아 한 결혼이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옛날 강경 집은 방이 겨우 두 칸뿐이었는 데,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라서 옹색하기 이를 데 없 었다. 나는 겨우 스물일곱 살이었고 강경여자중학교 국어과 강사 신분이었 다. 내가 가진 것은 적은 월급과 잔병을 많이 앓고 있던 늙은 부모님과 작 은 기와집 그리고 볼펜 몇 자루뿐이었다.
아아, 볼펜 몇 자루. 갓 시집온 스물네 살 새댁이었던 아내는 ‘밥상’(책상 대신 사용하던 겸상용 밥상) 위에 어느 날 새 연필통을 사다가 올려놓아 주었다. 연필통엔 볼펜 외에 새 펜이 꽂혀 있었고. 연필통 옆엔 새 잉크병 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이 내가 세상의 중심과 맞서나가야 할 유일한 창 (槍) 이었다. 나는 신춘문예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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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의 단 꿈을 꿀 새도 없었다. 십일월 말쯤 마감하는 신춘문예는 그때 나 지금이나 작가가 되는 가장 극적인 등용문이었다. 나는 밥상 위에 엎드 려 쓰기도 했고 베개를 가슴에 받치고 방바닥에 엎드려 쓰기도 했다. 다른 방이 없었기 때문에 나가 있을 때도 없었던 젊은 새댁은 자주 내가 구겨 던진 파지를 주워 내고 차를 내오고 과일을 가져다주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벼릴 대로 벼린 정과 같이 날카로워졌다. 혼자 일하던 습관이던 나는 아내가 곁에서 오고 가는 일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단칸방의 젊은 새댁은 내 신경질에 견디다 못해 마당에서 별을 보며 밤을 새기도 했다. 글쓰기에 몰두하다 새벽에 문 밖으로 나오면 마당 끝 어둠속에 웅크리고 앉은 아내가 있었고 그의 손발 은 꽁꽁 얼어 있기 일쑤였다.
그해 나는 두 편의 새 소설을 썼다. 신문사에 응모까지 마치고 난 다음 날, 아내가 내 묵은 원고 꾸러미 중에서 한 편을 꺼내 이것을 고쳐 쓰라고 했다. 새댁 고생시킨 보상으로 아직 응모 기간이 며칠 있으니 반드시 써야 한다고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꼬박 이틀을 밤새워 고쳐 쓴 그 소설은 내가 스무 살 때 습작으로 써 놓은 것이었고 재목을 ‘여름의 잔해’라고 달 았다.
그것이 내 데뷔작이 되었다.
나는 1973년, 강경여중 1학년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던 중에 당선 소 식을 들었다. 젊은 새댁은 당선 소식에 울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내가 화염병이 되어 썼으며 그 시대 한복판을 향해 올곧게 던지는 창이었다고 믿었던 다른 소설들은 왜 낙선하고, 자의식의 덩어리가 지어낸 무의미한 (당시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떤 무형의 덩어리’는 왜 당선했는지. 그 때의 나로선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0 아내는 요즘도 가끔 그런다. “내가 당신 당선 시켰으니 내게 잘 해야지.” 그건 사실이다. 당시로서는 폭압적인 정치권력이 신문기사까지 감놔라 배 놔라 하던 때였으니까 비록 잘 썼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내 이념을 좇아 쓴 소설은 당선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운명으로 살게 한 그 소설의 당선이 내게 은혜였는지 고통이었는지 쉽게 결론이 나지 않는다. 만약 작가의 길을 버리고 다른 인생을 살았다면.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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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했을까.
■ 고백이 주는 선물
0 작가는 비록 ‘픽션’이라고 알려진 소설을 쓸 때조차 자신이 쓰고 있는 문 장 속에 스며드는 ‘자기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방어하지 못한다. 어떤 때 그 는 스스로 꿈꾸었다가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해 쓰고. 어떤 때 그는 스스 로 경험한 것들의 부스러기에 대해 쓰고, 또 어떤 때 그는 꿈꾸지도 경험 하지도 않았으나 대를 물려 자신에게 깃들여 있는 영혼의 DNA에 대해 스 스로 미리 인식하지 못했으면서 어떤 날. 부지불식간에 풀어서 쓴다. 그러 므로 모든 글은 본질적으로 ‘고백’이 된다.
돌아보면 나는 평생 나 자신에 대해 썼다.
그건 사실이다. 스토리는 비록 꾸며냈을지언정 그간 써낸 수십 권의 소설 어느 한 페이지도 내가 깃들여 있지 않은 페이지는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0 일찍이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정열은 고백에 의해 고양되며 고백에 의해 진정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삶은 보편적으로 아주 많은 거짓말과 아주 적 은 참말로 구성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명명될 때, 그런 비례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아주 많은 거짓말’이 주는 충만감 보다 ‘아주 적은 참말’이 주는 충만감이 오히려 크다는 데 삶의 함정이 있 다.
이 어지러운 경쟁 중심의 세상에서 그나마 충만감을 얻으려면, 뼈저린 자 기 성찰의 고백을 통해 새롭고 고유한 본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길이 우 선이다. 발가벗고 싶다면 눈 딱 감고 용기 있게 발가벗을 일이다. 발가벗 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일단 벗고 나면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것이 자 기 성찰에 따른 참된 고백이 우리의 삶에게 주는 은혜로운 선물이다.
■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0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가정은 너무 상투적이어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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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버지’가 되지 않을 것이고
둘째. '작가‘가 되지 않을 것이고
셋째. ‘남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되지 않겠다. 본래 내가 야성적인 구석이 많아 무슨 일이 든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구석이 많지만 정말 다시 태어난다면 독한 마음 갖고 열거한 순서대로 금기를 지킬 것이다.
0 왜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첫째 항목 ‘아버지’
내가 도울 수 있는 건 의식주뿐이다. 모든 문제에 아버지가 도울 수 있는 일은 근본적으로 없다.
내가 아는 아이의 고통은 그중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아는 것도 그렇거니와 모르는 고통이 많을 테니 ‘아버지’가 뭘 어떻게 돕 는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깊은 밤 어쩌다 잠든 아이들 을 들여다보면 애처로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다. 심지어 죄의식을 느낄 때도 있다. 아이를 크게 구할 수도 없으면서 시시때때 애처로운 마음을 짊 어지고 사니. 사람으로서 이게 어디 할 짓인가. 애당초 아버지가 안 됐더 라면 이런 소모적이고 무위한 짐은 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둘째 항목 ‘작가’
한마디로 말해 작가는 밤마다 홀로 앉아 불화, 부자유, 가난, 상처, 따위 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행복한 순간의 묘사는 그야말로 순간일 뿐이다. 소설가로서 평생 산다는 것은 결핍에 따른 갈등을 평생 들여다보는 행위 로써 타인의 삶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죽을 때가지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 이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일인가.
셋째 항목은 ‘남편’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사랑은 본질적으로 강고한 지속력을 갖고 있지 않 다.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소유’하지 않는 것. 단 도직입적으로 말해, 지속적인 결혼 생활이란 사랑의 상실을 늙어갈 때까지 계속 확인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것들이 부식해서 추해지는 것까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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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야 하고, 마침내 추해진 뒤에 소멸하는 것도 함께 확인해야 된다. 사랑 을 갖고 싶다면 차라리 사랑을 잃고 버려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어찌 해결 하면 좋겠는가.
0 이제 이승의 내 지난 삶을 들여다보면서, 역설법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할 때가 왔다. 내가 태어난 이후 그래도 나에게 어떤 보람과 한 인간으로서 충만감을 느끼게 한 것이 있다면
첫째. ‘아버지’로 산 것이고
둘째. ‘작가’로 산 것이고
셋째. ‘남편’으로 산 것이다.
절대로.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뭐, 다음 생애에도 이렇게 살고 싶진 않다. 다시 태어 난다면. 연애는 하되 결혼을 하지 않고. 예술가는 하되 작가는 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되 아버지는 하지 않고 살고 싶다.
■ 일상의 권태로 부터의 해방
“대지는 우리 자신에게 온갖 책보다도 많은 걸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니까. 인간은 장애물과 더불어 겨룰 때 비로소 제 자신을 발견하는 법이다.”
0 생텍쥐페리의 장편소설 ‘인간의 대지’ 서문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마치 이른 새벽잠이 덜 깬 상태에서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일종의 강력한 각성제와 같은 효과를 금방 나타냈다.
고등학교 2학년 이른 봄의 일이다.
나는 ‘인간의 대지’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 피륙처 럼 짠 한 편의 서사시였다. 삶의 위험한 조건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은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우의를 확인시켜줄 뿐 아니라, 일상의 권태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생텍쥐페리의 세계관은 당장에 나를 사로잡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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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0 책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의 얼굴은 착하고 유익한 것으로서 우리들 영혼을 깊이 발효시켜 향 기롭게 하지만, 또 하나의 얼굴은 파괴적이어서 우리들 삶을 위태롭게 만 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독서는 그런 점에서 유익하면서 동시에 위태롭다. 그러나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위태롭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끝없는 일상의 권태와 무위를 책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뻔하고 뻔한 습관적 인 삶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경제적이고 빠른 길은 독서밖에 없다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이미 세계가 너무 섬세하고 조직적으로 짜여 있어 어떤 모 험도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산악인들이 고봉에 오르는 힘
0 산악인들은 왜 명줄을 걸고 산에 오를까. 특히 칠천, 팔천 미터가 넘는 고 봉들은 직벽에 가까운 벼랑이 많은데다가 만년빙하가 쌓여 있기 때문에, 팔천 미터 이상 되는 히말라야 십사 좌를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 는 그곳을 일찍이 ‘죽음의 지대’라고 불렀다. 산소가 모자라 제대로 숨을 쉴 수 없고, 빙벽은 물론 위험한 크레바스가 거미줄 같이 깔려 있으며, 극 한의 추위와 눈사태 등의 위험이 상존하니 그야말로 죽음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수많은 산악인들이 일 상의 희생을 무릅쓴 채 돈을 모으고 시간을 모아서 그 ‘죽음의 지대’에 기 꺼이 도전하고 있다.
0 왜 그들은 산에 오를까.
돈이나 명리를 위해서? 아니면 좋아서? 미쳐서?
산악인들이 고산에 올라서 돈을 벌거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은 극히 소수 가 누리는 부가가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자기 명줄을 걸고 정 상에 올라도 현실적인 어떤 보람을 거두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등반가는 이르기를. 고산 등반을 하려면 첫째, 목숨을 걸 수 있는 용기. 둘째, 가족 과 직장으로부터 버림받아도 견뎌낼 수 있는 용기. 셋째, 등반을 끝내고 돌아와 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갖추어야 비로소 프로 등반가라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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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 설파한 바 있다. 참으로 비장한 출정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좋아서 오르는 것일까. 야성적인 등반가였던 쿠쿠츠카는 고산 등반에서의 ‘며칠’은 일상에서의 ‘몇 년’ 혹은 ‘몇 십 년’을 상쇄하고 도 남을 만한 그 어떤, 내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내적 가치의 전제조건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어떤 반대급부도 바라지 않고 도전 자체를 순수하게 즐기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와 맞닿아 있다.
그는 빙벽에 붙은 순간 습관과 권태로울 뿐인 안락으로부터 철저히 분리 된다. 그는 완벽한 단독자이고 모든 선택권을 쥔 절대적인 자유인이며 자 신과 빙벽과의 관계만으로 승부하는 실존적 존재가 된다. 한순간 한순간이 놀랍게 생생할 뿐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서 감각과 야성과 이성적 판단이 한통속으로 완벽하게 융합하는 전에 없는 경험 속으로 빠진다.
쿠쿠추카가 말한바 고산에서의 며칠이 일상에서의 몇 십 년을 상쇄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 그 경험이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산에 도전하는 이유일 것 이다.
《 사랑 愛 》
나는 살았고, 오로지 썼고
언제나 사랑의 열망이라는
뜨겁고 고통스럽고 황홀한 감옥 속에 갇혀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 사랑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0 밤늦은 시각 휴대폰으로 문자가 한 줄 날아들었다. “선생님,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주례를 맡아 결혼한 지 일 년여밖에 안 되는 여 제자가 보낸 밑도 끝도 없는 문장이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장을 바라 만 보고 있었다. 그 문장 뒤에서 울고 있을 젊은 새댁의 눈물이 모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부부싸움을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내뱉은 신랑의 말 한마디 에 크게 다친 눈치였다.
나는 어두운 창밖을 보았다. 어둔 유리창에는 내가 결혼해 산 삼십칠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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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월이 어릿어릿,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신혼 시절, 나는 사랑 의 끝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가. 내가 젊은 날 통 크게 맹세했던 사랑의 말들을 나는 얼마큼 지켜왔고 얼마큼 버리며 여기까지 걸어온 것 일까.
0 나는 한참의 시간을 보낸 뒤 결국은 다분히 의례적인 답장을 보냈다. “나 도 끝까지 안 가봐서 사랑 끝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구나. 사랑이란 꿈꾸 면서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게 아닐까.” 참으로 범속하고 비겁한, 자기합리 화적인 대답이어서 나는 우울해졌다. 제자도 내 대답에 실망했는지 “사랑 의 끝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서요.” 라는 말로 토를 달고 이후 침묵했 다.
다음날 아침에 밥상 앞에서 나는 늙어가는 아내에게 젊은 새댁과 간밤에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얘기를 하면서 물었다. “당신은 사랑의 끝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해?” 아내는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대답했다. “사랑의 끝엔 그 야, 사랑이 있지!”
세상물정 모르는 아내에게 나는 완전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작가’인 나보다 훨씬 더 충만한 인생을 살고 있었고 훨씬 더 당당했다. 나 는 제자에게 전화로 아내의 말을 전하면서 괜히 ‘단순무지하다.’고 아내의 흉을 잔뜩 보았다. 그러나 며칠 후 찾아온 제자는 이렇게 말했다. “신랑하 고 죽자고 싸운 끝에 주례인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었는데요. 선생님 대답 에선 솔직히 아무런 위로도 못 받았으나 사모님 대답을 듣곤 갑자기 힘이 막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신랑하고 화해했어요.”
■ 여전히 사랑하는 당신
0 원고지를 꺼내놓고. 이번 원고 청탁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한 것을 여러 차 례 후회했습니다. 공개된 지면에 쓰는 ‘연애편지’라니요. 말도 되지 않는 시도라는 걸 왜 처음엔 깊이 깨닫지 못했는지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연애는 격렬하면서도 눈물겨운 비의(秘意)로서 객관화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공개하는 건 더욱 더 그 본질을 훼손하는 짓이기 때 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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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안합니다.’
나는 지금 입속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겐 ‘미안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통속적 경구를 모르 는 게 아니지만, 그러나 이런 편지, 이런 회상, 이런 관념적 언저리의 말 들, 정말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미안하고 독자에게 미안하고. 그 리고 내 자신에게 부끄럽습니다. 스탕달은 말했습니다.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어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사회자가 내게 당신의 인생을 한 문장으로 요 약하면 어떤 문장이 되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스탕달의 묘비명이기도 한 이 문장이 그 순간 떠올랐습니다. 그는 매우 못생겼고 성격도 예민했기 때 문에 사랑의 성취를 그다지 경험하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성취라니요. 사 랑에 그런 불경한 어휘를 동원한 나의 천박함에 이 순간 진저리를 치면서, 그러나,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평생 열렬한 사랑 속에서 살았 는지도 모릅니다. 감히 스탕달과 견주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나 또한 그 렇습니다. 나는 살았고, 오로지 썼고, 언제나 사랑의 열망이라는 뜨겁고 고 통스럽고 황홀한 감옥 속에 갇혀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습니다.
0 당신과 만날 때마다 난 언제나 감을 수 있을 때까지 감아 놓은 가파른 현(弦)과 같았습니다. 당신이 손끝만 내밀어도, 아니 당신이 눈빛만 보내도 온몸을 떨면서 음악 소리를 냈습니다. 낮은음자리에 실리는 넉넉하고 부드 러운 소리는 사실 별로 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제일 가슴 아픈 회 한으로 다가옵니다. 감미로운 것조차 격렬하면 고통이 됩니다. 나의 현들 은 자주 비명을 질렀고 자주 불협화음을 냈고 또 자주 황홀한 고통으로 찢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대로 당신에게 전이됐습니다.
나는 나를 버리고자 하면서도 나로부터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는 합쳐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찰나적 환영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안에서 밤낮없이 꿈틀대며 생살을 찢고나오는, 늙지 않는 짐승 때문에 당신에게 우주적인 달콤한 사랑의 말 한 번 변변 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과연 당신을 사랑한 것일까요. 아니면 나를 더 사랑했던 것일까요.
우리는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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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랑으로 인해 불변의 금강석처럼 남아 있는 것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그래도 시시각각 내 안에 서 무엇인가 타고 있는 걸 봅니다. 허수아비 같은. 실재하지 않는 헛것들 이 아직 불타는 걸 지켜보고 견뎌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그것을 열망이라고도 부릅니다.
봄꽃은 소월의 시에서처럼 ‘저만치’에서 황홀하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봄꽃’과 우두커니 그것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나’ 사이의 거리 따위는 그만 잊겠습니다. 지금 떠오르는 당신의 모습이 수십 년 전의 당신인 것도 같고, 엊그제 꿈속에서 만난 당신인 것도 같고, 또는 전생의 당신인 것도 같습니다. 부드러운 안개가 흘러가지만 ‘천 년 전부터’ 거기 있었던 벚꽃 환한 그늘에 은신한 당신이 비로소 따뜻하고 넉넉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 습을 보니 이 봄 날이 참 환합니다.
■ 연애가 깃든 생생한 일상
0 내게 글쓰기는 일종의 연애와 같다.
불타는 사랑이 없다면 누가 평생 남들 자는 시간에 홀로 깨어 앉아 원고 지와 한사코 마주앉아 있겠는가. 밤새워 원고를 쓰고 난 아침에 아내는 곧 잘 ‘당신 일하는 데 혼자 자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 내 대답은 이 렇다 “미안하기로 치면 내가 미안하네. 왜냐하면 당신 재워놓고 밤새 내 주인공과 뻐근하게 연애하고 있었거든.”
0 만약 누가 당신의 삶을 한마디로 말해보라 한다면. 나는 ‘시간과의 연애’ 라고 대답하고 싶다.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에는 나는 매일 매일 갖가지 방 법으로 ‘작업’을 걸고 그 사랑에 올인한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래서 어제와 오늘, 겉으로는 하는 일이 비슷해도 내 마음속에서는 어제 와 오늘이 늘 확연히 다르다. 가령 내가 집 안 청소를 하고 있으면 아내가 이렇게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당신 청소에 목숨 건 사람 같아. 좀 놀아 가면서 해봐.”
내가 청소와 연애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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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다.
예컨대, 어떤 이는 직장 일에 에너지의 50%를 쓰고, 가정생활에 30%를 쓰고, 취미 활동에 20%를 쓴다. 그는 직장에서도 쉬엄쉬엄 좀 심심하게 일하고 가정에서도 대충대충 오직 습관에 의존해 산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과적으로 100%의 에너지를 쓰고 100이라는 인생을 산다.
그러나 똔 다른 어떤 이는 직장에서도 에너지의; 100%를 쓰고 가정에서 도 에너지의 100%, 또 취미 활동에 100%의 에너지를 쏟는다. 그런 이는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며, 따라서 삶의 정체성을 뜨겁게 확보 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300%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의 놀라 운 요술적 산술로 보면 결국 그도 100%의 에너지로 100%의 인생을 살 뿐이다.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연애다. 전자의 인생엔 연애가 깃들어 있지 않으므로 혹 외형적인 성공을 거둔다 해도 권태롭지만, 후자의 스타일은 일상에 늘 연애의 본성 이 깃들어 있으므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심심할 겨를이 없다. 연애를 동반 한 삶은 최소한 쓸쓸하지 않다. 그는 불황 때문에 좌절하지 않으며 환경을 핑계로 도덕성을 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연애는 희망이고 도덕이고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 취꽃 한 송이가 주는 위로
0 또다시 가을이다. 예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다음에도 다시 만날 길이 없는 가을이다. 억겁을 산다 해도 다시 만날 길 없는 가을이니 이번 가을 이 얼마나 귀하고 애틋한가. 하기야 작년 가을이나 십 년 전 가을이라고 해서 두 번씩 오는 가을이 어디 있었던가.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시간은 머무는 일이 없으므로 다가오는 모든 것이 전인미답이다.
0 뜰에 취꽃이 하얗다. 취나물을 한 두 뿌리 캐다 뜰에 옮겨 심었더니,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렇게 좁은 마당귀를 취나물이 우후죽순으로 자라 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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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는 여린 잎을 따서 나물로 무쳐 먹고 그냥 놔 두면 이것들이 일 미터도 더 되게 훌쩍 자라 가을에 이윽고 흰 꽃을 피우 는데, 그 자태가 사뭇 빼어나다. 키는 크고 가지는 가늘어서 바람이 부는 듯 안부는 듯 할 때도 취꽃은 하루 종일 저 혼자 흔들리면서 제 존재를 뽐낸다.
살아 있는 무엇인들 안 그렇겠는가.
모든 존재는 결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시간을 따라 흥망성쇠의 사이클 을 갖는다. 삼월에 피는 꽃도 있고, 오월에 피는 꽃도 있고, 늦가을에 피는 꽃도 있다. 더 일찍 핀다고 해서 더 오래 피어 있는 것도 아니요, 더 늦게 핀다고 해서 더 빨리 스러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존재는 다 제게 어울리 는 제 몫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살아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공평한 흥망성 쇠의 시간을 따라 흐르기 마련이다.
다른 것은 문명 속의 사람뿐이다.
0 꽃을 피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꽃이 다 오월에 필 수 없는 것처럼 모 든 꽃이 다 모란이나 접시꽃처럼 크고 붉을 수는 없다. 어떤 꽃은 밤에 피 었다 아침이 오면 속절없이 지고, 어떤 꽃은 눈을 부릅떠야 비로소 보일만 큼 작고 가냘프며. 똔 어떤 꽃은 아무도 보는 이 없는 어둑신한 그늘에서 저 홀로 피었다 진다.
그렇다고 실패한 것은 아니다.
살아 있다면 언젠가,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또 봄이든 가을이든 ‘내꽃’을 피우고 마는 것이 존재이고 사람이다. 성찰의 계절인 가을은 그런 힘을 마침내 우리에게 준다.
살아서 꽃피지 않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좁은 뜰 사방에서 취꽃이 가만 가만 흔들리고 있다.
■ 삶이 이대로 계속돼도 괜찮은가.
0 가을을 가리켜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노래한 일본의 자각 다자이 오사무. 유난히 예민한데다가 퇴폐적이었던 그는 마흔 살을 다 채우지 못 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투신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언젠가 작은 국수집에서 메밀국수를 기다리다가 탁자 위에 놓인 사진 속에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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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으로 폐허가 된 벌판에 한 여자가 지친 듯 앉아 있는 모습을 들여다 보 고 나서 또한 이렇게 썼다.
“나는 가슴이 타서 재가 되는 것 같이 처참한 그 여자를 그리워했다. 사나운 정욕까지 느꼈다. 비참한 것과 정욕은 등과 배 같은 것인 모양이 다. 숨이 멎을 듯이 괴로웠었다. 황폐한 벌판에서 코스모스를 만나면 나 는 또 그것과 똑 같은 고독을 느낀다.”
0 낮에는 아직 햇살이 뜨겁지만, 저물녘이 오면 어느새 풀벌레가 울고 소슬 한 바람이 분다. 흰 옷을 찾아 입고 창문을 하나씩 닫는다. 그리고 어떤 순간에 소스라쳐 돌아보면 당신은 혼자 창가를 서성거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뼛속까지 내가 혼자인 것을 느낀다. 정말로 가을은 모든 것의 정리의 계절인 것 같다. 옷에 달린 레이스 장식을 떼듯이 생활과 마음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떼버려야겠다.”
선구적이었으나 고독하게 살았던 전혜린(田惠麟)의 문장이다. 가을이 주 는 첫 번째 화두는 바로 이것이다. 당신이 ‘혼자’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는 것. 이제 머지않아 나뭇잎은 물들고 들녘의 곡식은 익고 하늘은 끝 간 데 없이 높아질 것이다. 그때가 돼도 천지간에 당신이 한 존재로서 ‘혼자’ 란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에겐 아직 가을이 오지 않은 셈이 된다. 그것은 곧 성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성숙을 통해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과거를 깊은 성찰로 뒤돌아본다는 것이 고 동시에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를 뚜렷이 인식하고 포기할 수 없는 본 원적인 꿈으로 앞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가을은 그런 힘이 있다.
0 외부로 열린 문을 닫으면 내면의 뜰이 넓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넓어진 내면의 뜰로 돌아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어 보면 누구나 악을 쓰며 달려 온 지난여름의 방종과 오만과 오류와 편견도 막힘없이 볼 수 있다. 내가 밟고 선 풀 한 포기의 비명 소리도 그때 비로소 들리고 내가 버리고 온 옛 꿈이 나를 부르는 소리도 마침내 환히 들린다. 잎새를 흔들고 가는 바 람 소리가 가슴에 사무치고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의 그림자가 불현듯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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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덮칠 때. 그리하여 숨 가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내 삶의 물집 들이 눈물겹게 시선 속으로 들어올 때, 바로 그런 가을이야말로, 마실 나 갔던 본성이 내 마음 속으로 되돌아와 나를 깨우는 축복의 시간이다.
가을 깊어지면 그러하니 ‘혼자’가 되자.
혼자가 돼 보지 않고선 사람에게로, 사랑에게로, 무엇보다 세상과 역사에 게로 가는 큰길을 계속 찾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올가을엔 진실로 ‘혼자’ 돼서 이렇게 당신 자신에게 물어볼 일이다.
“괜찮은가. 내 삶이 지금 이대로…… 좋은가.”
■ 산다는 것
0 엊그제 막둥이가 하와이로 떠났다. 올해 큰 애와 딸이 차례로 제 짝을 만 나 떠나고 막둥이까지 떠났으니 집이 텅 비었다. 나는 기름 값을 아끼려고 막둥이 방의 보일러를 잠그려는데, 아내가 대뜸 볼멘소리로 타박을 했다. “애가 탄 비행기가 이제 겨우 떠날 참인데 벌써 보일러를 잠그다니 사람 이 왜 그리 매정해?” 나는 아내의 말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암말 안 하고 잠그려던 보일러를 다시 켜두었다. 애는 떠났는데 밤새 애 방은 하릴없이 절절 끓었다.
0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랑하는 모든 것은 어떻게든 곁에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고 이미지뿐이다. 사랑은 영원한 추상명사에 불과하다. 증명 되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사랑에 의한 헌신이라고 부르는 것들 도 헌신의 주체자에겐 어쩌면 ‘자학의 남모르는 축적’에 불과할는지 모른 다. 이것은 심한 비유인가.
애들이 품을 떠난 후부터 밖에서 저녁때가 되면 본능처럼 집에 혼자 있 을 아내를 생각한다. 내가 들어오지 않고 혼자 있으면 ‘밥’을 잘 먹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게 최종적으로 남겨진 감옥이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말라. 고백하노니. 명백히 그건 틀렸다. 아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도 내게는 ‘감옥’이 되는 순간순간이 있을 것이다. ‘연민’이야말로 평생 작가로서의 내겐 ‘적’이었고 ‘감옥’이었다. 우주로 날아가 별이 되기 전까지는 ‘나는 자 유인’이라는 내 말엔 반 이상 ‘뻥’이 섞여 있다고 보면 된다. 아내뿐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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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당신과 나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이런 원리가 적용된다. 내가 그런 사 람이기 때문이다.
0 요즘은 매일 온갖 군데가 아프다.
그래도 괜찮은 척 만나자는 사람은 여전히 만나고 심지어 건네주는 술잔 을 거절 못 하고 받는다. 상대편이 심심하고 쓸쓸할까 봐 일부러 내 스스 로 원샷 원샷! 할 때도 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남몰래 의사의 처방에 따른 안정제와 기타 약을 수돗물로 삼킨다. 내가 아내에게, 당신에게, 세상 에게 ‘자유인’인가.
자, 이제 나는 어디로 어떻게 떠나면 되는가.
■ 그리운 당신
히말라야에서
짐 지고 가는 노새를 보고
박범신은 울었다고 했다.
어머니!
평생 짐을 지고 고달프게 살았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박범신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아
저게 바로 토종이구나.
-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
얼마 전 찾아뵌 통영의 박경리 선생의 묘지에서 본 남해는 참 아득한 풍 경이었다. 선생께선 오랫동안 고향 땅을 밟지 않으셨다가 말년에 비로소 고향을 방문하셨고, 마침내 고향 땅에 묻히셨다. 선생과 고향 사이에 어떤 상처가 있었는지 잘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최종적으로 생애의 마지막 엔 그곳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이다.
나는 선생의 묘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선생이 평소 좋아하셨던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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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비를 불붙여 드리고 이렇게 소리 내어 물었다. “선생님, 죽음이 가까 워 질 때 정말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셨습니까?”
0 아직 선생의 연세에 이르지 않아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내 경우 나이가 들면서도 ‘참 홀가분’ 해지지 않으니 마음이 늘 무겁다. 선생의 말과 달리 나는 ‘토종’이 아니다. 시간을 견뎌내는 일만해도 그렇다. 날이 갈수록 홀 가분해지기는커녕, 내게 늙는 일은 너그러운 평화보다 고절(孤絶)함을 피 어리게 이겨내야 하는 투쟁에 가까운 일이다. 선생께서 혹시 마지막 ‘뻥’을 치셨나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선생님은 정말 홀가분 하셨을까. 그러 나 아무리 생각해도 선생은 ‘뻥’을 칠 분이 아니니. 내 경지가 아직 선생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게다.
가을이 오니 요즘은 남새밭에 앉아 계시던 선생이 많이 생각난다. 새벽까 지 늘 불이 켜져 있던 선생의 서재 창 그 불빛도 떠오른다. 평생 혼자 오 로지 땅머슴, 글머슴으로만 살았던 선생님! 선생이 직접 무쳐주시던 그 나 물맛이 요즘은 정말 그립다.
《 미움 惡 》
■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
0 지난 반세기, 대를 물려온 가난의 사슬을 끊어낸 원동력이 ‘불의 정신’이 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그늘의 대부분은 그로 인해 ‘물의 정 신’이 부족해졌다는 데 그 연유가 있다고 본다. ‘불’이 지나치게 승(勝)하면 물이 말라버려 토양이 산성화 되고 사막화되는 게 당연하다. ‘불’과 ‘물’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양면의 통합, 혹 은 균형일 터이다.
0 지금의 대통령은 이런 논리의 극명한 텍스트로 삼아 좋을 분이다. 그는 ‘불의 정신’이 사회의 핵심 동력이었던 개발시대에 그 개발의 최전선에서 누구보다 불같이 일함으로써 ‘삼십대 회장’이라는 성공신화를 이루어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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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다. ‘불의 정신’을 그분처럼 효과적으로 활용한 이도 드물고, 또한 그 분처럼 그것의 큰 혜택을 본 이도 드물다. 그런데 정치판으로 옮겨간 후 그분의 성공신화는 ‘물’로 쓰여지고 있다.
시멘트 감옥에서 해방된 청계천을 보라.
청계천 복원으로 그분은 성공적인 서울 시장이 되었고, 그것으로 기반을 쌓은 뒤에 ‘대운하 공약’을 보태어 마침내 대통령으로 도약했다. 애당초 청 계천을 복개하고 고가도로를 건설할 때 현대건설의 주역으로 그분이 기여 했고 청계천 복원 사업 또한 그분이 앞장서 해냈으니, 결자해지(結者解之) 라, 당신이 덮은 청계천을 당신이 벗겨낸 바, 한 개인의 삶으로 보면 아이 러니컬하면서 절묘한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이야말로 유례없 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나이’라고 할만하다.
0 각설하고
4대강 정비 사업이 식을 줄 알았던 대운하 문제를 논쟁의 중심으로 재점 화 시켰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4대강’이든 ‘대운하’ 든 직설법으로 왈가불 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충언하고 싶은 것은 물에 대한 사업은 ‘물의 영혼’ 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치수사업이 란 수천만 년 굽이쳐 흘러 온 물줄기를 겨우 강제로 펴놓은 식의 반 환경 적인 사업이 대세였다.
어쨌든 대통령은 어떤 분인가.
인생의 전반기에 그분은 불의 아들로 살았고, 인생의 후반기에 그분은 물 의 아들이 되고자 한다. 곳간만 채워 놓는다고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 다. 경제를 살리는 일 못지않게 지금 중요한 것이 ‘물의 정신’이라고 할 때 그분은 정말, 청계천, 대운하, 4대강이 표상하는 바, 물의 아들로 변모했는 가. 나는 그게 궁금하다.
만약 그분이 ‘불’ 같았던 젊은 날에서 한 발자국도 걸어 나오지 못했다면 걱정이다. ‘물’을 ‘불’의 방법으로만 다루면 부작용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 이다. ‘불’과 ‘물’의 조화나 균형이 없다면 세상은 계속 사막화가 진행될 것이다. 이 사막화의 세상에 맑은 ‘샘물’을 끌어오는 대통령이 되어야 마지 막 성공신화를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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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여지도에 담긴 뜻
0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모눈종이 같은 방안(方眼)을 기반으로 한 경위선 표식 지도이며 전국을 세로 6.6미터, 가로 4미터에 그려낸 과학적 축적지 도이다. 현존하는 우리의 고지도 중 가장 크지만 동시에 분합이 자유로워 휴대하기 편하게 고안된 절첩식으로 되어 있다.
전국을 남북으로 120리 간격, 22층으로 나누어 그렸으며, 이 22층을 상 하로 이어 놓으면 전국 지도가 되고, 필요한 대로 나누어 쓰면 분도(分圖) 로 간편히 휴대할 수 있다. 또한 한 첩도 절로 나누어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게 해 전국 지도를 층과 절에 따라 접으면 당시의 일반적인 서책만 하게 꾸려지는 효율적인 방식이다. 김정호가 얼마나 지도의 실제적 가치를 중요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0 “백성이 역(役)을 행하고 오가는 데, 무릇 물과 뭍으로 오가는 바, 험한 곳과 평탄한 곳, 성큼성큼 걸을 수 있거나 자취를 감출 수 있거나 하는, 모든 것을 다 알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것으로 적을 막 는 걸 돕고 우악스럽거나 사나운 것을 도모하며, 시절이 화평하면 이것으 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릴지니, 모두 나의 이것으로 취함이 있 을 것이다.”
대동여지도 서문 격인 ‘지도유설(地圖類設)에서 김정호가 한 말이다. 이것 이란 물론 대동여지도를 가리킨다. 한 마디로 말해, 위급할 때 백성의 안 전을 도모하고 평화로울 때 백성의 삶을 돌보는 데 쓰라고 평생 몸 바쳐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는 말이다.
‘지도유설’에 보면 관리들이 국토의 형세를 잘 알아서 만백성을 지키고 또한 그 국토를 이롭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이 유난히 많 다. ‘지도’로써 백성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 치자(治者)의 첫째 할 일이요. ‘지도로써 백성의 삶이 풍부해지도록 돕는 것이 치자의 두 번째 할 일이라 는 것이다.
■ 남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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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남쪽의 항구도시에 내려갔다가 이틀 사이 세 개의 도시를 거쳐 서울로 왔 다. 고속철도가 생겨서 서울에서 A시까지 이제 명실상부 일일생활권으로 묶였다. “고속철도로 이렇게 가까워졌으니 경제도 좀 나아졌겠네요?”
A시에 사는 사람은 “나아진 건 서울뿐이지요. 고속철도 때문에 A시 사람 들이 이제 쇼핑하러 서울로 가니까요.”
한 시간 가량 올라온 B시 사람들은 “그래도 A시가 우리보다 낫지요. C 시도 행정도시다 뭐다해서 경기가 훨씬 나을 겁니다. 우리는 그저 통과통 과지요.”
다음 날 올라온 C시 사람들의 대답은 딴판이었다. “그놈의 행정도시 때 문에 망하게 생겼어요. 그래도 A시 B시는 중앙정부 덕본 게 많지만 우리 는 빛 좋은 개살구지요.”
0 깊이 있는 논의는 물론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 모두의 발언에서 공통적 으로 드러나는 주장은 나 또는 우리보다 너 또는 너희의 떡이 크다는 것 이었다.
남의 떡에 대한 과대포장의 습관과 감수성은 설령 실질적으로 살림살이 가 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상대적 빈곤감 때문에 나아진 살림살이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요컨대 행복과 스스로 거리를 벌리는 결 과를 자초하고 마는 것이다.
0 행복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알랭은 행복이란 “스스로 만족하는 지점”에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은 성공했기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만족하 기 때문에 성공한다.”라고 설파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족하는 지점’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세뇌시켜준 서열주의에 따른 획일적 욕망에서 해방되어 어쩌면 의외로 가까이 있을지도 모를. ‘만족하는 지점’ 곧 행복을 찾아 내가 품고 갖는 일이다. ‘남의 떡’을 쳐다보는 데 바빠서 곁에 둔 ‘행복’을 혹시 스스로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우화, 일류로 사는 일
0 A씨는 보통아이로 자랐다. 그림그리기를 좀 잘 하는 정도였다. 미술학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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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녔지만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그만두었다. 중학교부터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졸업반 때는 전교 일등을 했다.
어머니는 ‘우리 아들 우리 아들 ……’ 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학교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았다. 모든 학생 모든 선생님이 그를 알았다. 미술대학 진학 을 생각했으나 전교 일등이 무슨 ……. 그래서 일류대학 경영학과에 입학 했다. 남과 다른 그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모든 젊은이가 동경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진급을 거듭했고, 좋은 집, 좋은 차를 갖고 좋은 아내를 맞았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성공’했다고 말했다. 성공하느라 한 번도 인생을 뒤돌 아 볼 기회도 없었다.
0 사십대 후반 전무로 진급한지 6개월 정도, 사람들은 그가 부사장, 사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장이 될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종합병원 정밀 검사 를 받았다. 그런데 내장에 자랄 대로 자란 암 덩어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 다.
그는 미칠 것 같았지만 병이 너무 깊어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항암치 료를 받고 나면 몸이 끝 간 데 없이 졸아들었다. 미술대학에 갈까 하고 고 민하던 시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병원 복도에 걸린 그림 앞에 서면 전에 없이 눈물이 나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에선 그를 대신할 새 전무가 임명됐다. 그는 병상에서 아무도 몰래 울었다.
0 그는 처음으로 오랫동안 생애를 뒤돌아보았다.
그제서야 생애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노예’로 살았다는 걸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에겐 평생 어떤 것을 요구하고 지시하는 ‘명령권자’가 존재했 던 것이다. 한 번도 자기 인생의 지도를 자기 혼자 그린 적이 없었다. 매 순간 그는 자신의 좋은 머리로 어떤 걸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죽음에 앞서 돌아보자 그 모든 건 가짜 자유, 가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서 올라온 고지는 애당초 그 스스로 원했던 고지가 아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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