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 리드하라
리딩으로 리드하라( READING ․ LEAD)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
■ 이지성
꿈꾸는 다락방.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스물일곱 이건희처럼. 등 20권이 넘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 본문 중에서 -
☆ 들어가며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1879-1955 독일 태생)
- 나는 술 대신 철학 고전에 취하겠다. -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의 일이다. 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부모의 근심거리였다. 우리 나이로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는 모든 면에서 너무 느렸다. 지적 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중학생이 된 아이는 나쁜 기억력과 산만함 그리고 불성실한 수업 태도로 유명했다. 교사들이 이런 독설을 퍼부을 정도였다.
“너는 너무도 형편없는 놈이기 때문에 커서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거다.”
“네가 교실에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아이들은 나에 대한 존경심을 잃는다.”
- 고등학교 때 퇴학. 대학 입학시험에 낙방. 다시 고등학교에....
- 대학 졸업 후 별 볼일 없는 학점으로 조교 자리도 못 얻고 박사 학위 논 문은 중도에 때려치우고, 생계를 위해 초라한 일자리를 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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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에게도 남다른 면이 있었다. 아이는 인문고전을 열렬히 사랑했다. 어쩌면 그것은 부모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집에서 문학고전을 즐겨 낭독했고, 어머니는 고전음악 마니아였다.
그런데 아이 부모의 초대로 막스 탈무드라는 의대생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찾아와 함께 지냈다. 그는 천성이 따뜻하고 쾌활해서 금세 아이의 멘토가 되었다.
막스 탈무드는 ‘인문 고전 독서’의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독서로 아이의 두뇌를 바꿔 주기로 작정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아이에게 읽힌 첫 번째 책이 유클리드의 ‘기하학’이었고 두 번째 책이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비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열세 살에 유클리드, 열네 살에 칸트를 만나고 어떤 변화를 경험한 아이는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하고 열일곱 살에 이런 맹세를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술 대신 철학고전에 취하겠다.”
이 후 아이의 삶은 인문고전 독서로 채워졌다.
훗날 그 아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에 근거한 ‘올림피아 아카데미’ 회원들과 독서토론에 열을 올렸다. 그 아이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우리 나이로 열네 살에 한 유명 미술가의 작업장에 조수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그는 견습생들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스승조차도 그를 보고 은연중 많은 것을 배울 정도였다. 덕분에 그는 6년 만에 수석 장인이 될 수 있었다. 보통 13년 이상은 조수로 일해야 오를 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 1481년 서른이 된 그는 실패한 예술가였다.
1481년 피렌체 정부는 교황 식스투스 4세가 시스티나 성당을 장식해 줄 예술가를 추전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피렌체의 명장들을 추천했지만 그는 그 명단에도 빠졌고 프로로 나선지 3년이 되도록 삼류로 대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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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그는 이듬해 밀라노로 이주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서른여섯 살이던 1487년, 그는 라틴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기 위해서였다. 아니 그것들로 자신의 두뇌를 완벽하게 바꾸기 위해서 였다. 위대한 천재들의 사고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늘 고생하긴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서 책을 읽어나가곤 했다. 당시 그의 좌우명 중 하나는 “어떤 장애물이든 고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였다. 그는 특히 고대 그리스 철학에 심취했는데, 플라톤이 아카데미아 정문 위에 “기하학을 모르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 써 놓은 것을 본받아, 자신의 사고 및 연구 결과를 기록한 노트에 “수학자가 아닌 사람은 내 작품을 읽지 말라.”고 적어 놓을 정도였다.
인생을 건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천재성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회화, 조각, 공기역학, 광학, 해부학, 식물학, 건축학, 지리학, 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분명 천재였다. 하지만 인문고전 독서를 하기 전까지 그의 천재성은 드문드문 드러났을 뿐이다. 그러나 인문고전 독서에 몰입하자 그의 천재성은 마치 우리를 뛰쳐나온 사자처럼 역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의 이름은 ‘천재’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 죤 스튜어드 밀
1806년 5월 20일, 영국 런던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해력, 기억력 등 지적 능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는 평범했지만 아버지는 특별했다. 그는 평범한 두뇌를 천재의 두뇌로 변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두뇌를 장기간에 걸쳐서 인문고전, 즉 문학, 역사, 철학 고전에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아이의 인문고전 독서는 여덟 살부터 시작됐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유클리드, 키케로, 데이비드 흄, 헤로도토스, 카이사르, 호메로스......... 아이는 열세 살이 되기 전에 이런 수많은 거장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아이는 번역서를 읽지 않았다. 그리스 및 라틴 원전을 읽었다. 인문고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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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고 고되다.
엄청난 양의 인문고전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의 두뇌는 자연스럽게 그 저자들의 두뇌처럼 바뀌어갔다. 내용을 이해하고 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천재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접촉한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물과 식물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식물에 물을 주고 나중에 보면 물의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식물은 자란다. 인문고전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
인문고전을 한 권씩 뗄 때마다 사고의 수준이 달라짐을 느끼게 된다. 이는 책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아이는 평생 인문고전을 읽었다. 아니 인문고전에 푹 빠져 살았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처럼 인문고전 독서모임을 만들었고, 여가의 대부분을 독서토론 준비에 쏟아 부었다.
그의 이름은 존 스튜어트 밀, 지금까지도 철학, 경제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논리학 체계(1843)’ ‘경제학 원리(1848)’ ‘자유론(1859)’의 저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 나는 지적인 영역에서 평균 이하였지 이상은 결코 아니었다. 평범한 지적 능력, 평범한 신체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받았던 고전 독서교육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
- 우리 아버지는 세상의 어떤 아버지도 기울이지 못 할 정도의 노력과 주의와 인내를 나에게 쏟았다.
-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전 독서교육 덕분에 내 또래들보다 25년 이상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
- 나는 고전 독서와 토론으로 인해 한 명의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사상가로 출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인문고전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고전(古典)과 비고전(非古典), 고전은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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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100-200년 이상, 길게는 1,000-2,000년 이상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천재들의 저작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분명 이 시대의 천재들이다. 그러나 불멸의 인문고전을 남긴 진정한 천재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기껏해야 머리가 조금 좋은 사람들에 불과하다.
인문고전은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진정한 천재들이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 놓은 책이다.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죤 스튜어드 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정수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누구나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다.
1. 바보 또는 바보에 준하는 두뇌가 서서히 천재의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2. 그동안 억눌려 있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3.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천재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 제1장 개인, 가문,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인문고전 독서의 힘 》
■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
지식 교육을 버리라니, 이는 우리의 운명을 백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사슬에 묶여 마냥 끌려만 다니는 자실 행위와 다름없다.
- 윌리엄 듀보이스 (1868-1963) 미국 흑인 인권 운동가 -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 받는 계급,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조선의 지배계급은 인문고전 독서가 업(業)이었다. 피지배계급의 접근은 사실상 허락되지 않았다. 중국의 지배계급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문고전 독서를 지나칠 정도로 중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피지배계급은 그 세계로부터 늘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일본의 쇼군 계급은 중국 고전을 마치 비밀문서처럼 전수했다. 다른 계급은 고전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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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일반적이었다. 유럽의 왕가와 명문 귀족 집안에서 실시한 교육은 인문고전 독서였다. 평민 이하 계급은 고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미국의 백인 지배계급은 흑인 노예계급에게 인문고전 독서는 물론이고 문자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이는 농노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죽지 않을 만큼 매질하고 감옥에 가둔 유럽 및 러시아 지배계급에게 배운 것이다. 21세기 지구의 지배계급이라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인문 고전 독서에 열심이다. 그런데 21세기 지구의 대표적인 피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와는 거리가 멀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초선진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보자.
미국 명문 사립 중고교의 인문고전 독서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1)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소화한다. 2) 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 고전을 한 권씩 철저하게 떼는 일이 미국의 명문 중고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중고교는 어떠한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과거 우리나라 십대들은 오늘날의 미국 십대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고 공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풍토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미국 대학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자. 세인트 존스 대학은 4년 내내 인문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고 에세이를 쓰는 게 교육과정의 전부다. 조지 와이드 대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마스 제퍼슨의 멘토 조지 와이드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이 대학의 주 교육과정은 토머스 제퍼슨이 조지 와이드에게 4년간 받았던 교육 즉 멘토와 함께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예일대학은 ‘디렉티드 스터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존 로크나 마키아벨리의 저술 같은 인문고전을 중심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교수가 강의를 하고 두 번은 학생들끼리 세미나를 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마치면 필수 교양 여섯 과목을 수강한 것으로 인정한다. 뉴욕대학, 위스콘신대학, 보스턴대학, 시카고대학......등 약 160개 대학에서 인문고전 100권 독서 프로그램이나 인문고전 독서중심의 전공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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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들은 어떤가? 학부 교양교육의 많은 부분을 고전독서에 할애하는 대학도 없고, 대학생 대학원생을 모아놓고 인문고전 강독에 열을 올리는 교수도 없고, 스스로 인문고전을 구해서 치열하게 읽는 학생도 없다. 오히려 서울대를 비롯한 우리나라 10대 대학 도서관의 대출 순위 상위권을 보면 무협판타지 소설이나 일본 연애 소설이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학에서 인문학 자체가 고사위기라는 소식이 단골로 보도되고 있다.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 이라는 책이 있다. 황용길 미국 루이지에나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가 썼는데, 미국 부자 계급의 교육이 빈자 계급의 교육과 얼마나 다른지와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국 빈자계급의 교육을 따라 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책을 보면 “고급 지식교육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이들에게나 적당하다. 은행가(부자)의 자식과 광부(빈자)의 자식이 필요로 하는 교육은 종류가 다르다.”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평가론의 창시자 손다이크와 그의 추종자 메디슨 그랜트 등이 한 말인데, 그들은 진화론과 우생학을 신봉한 인종차별론자 였다. 끔찍한 사실은 그들이 미국의 빈자 계급에 실시할 목적으로 만들어 실제로 오늘날 미국 공립학교에서 시행중인 교육과정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현재 각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문고전 독서량은 세계 몇 위일까?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평균이상 책을 읽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다.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교 학생들처럼 인문고전을 읽고, 도서관에 가서 그 인문고전에 관한 주석서를 전부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해 본적이 얼마나 되느냐고. 이 질문에 대한 독자 개개인의 답이 우리나라 지식 경쟁력의 현주소이자 우리나라가 맞이하게 될 미래라고 생각한다.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는 책의 수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두뇌가 우수하지 못한 인간은 우수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지배계급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지배계급의 문자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그 악습은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문자교육 자체에 있어서는 평등을 추구했지만 그 내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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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는 불평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부자계급은 사립학교를 다니고 빈자계급은 공립학교를 다닌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 교육과정이 리더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문고전 중심의 사립학교 교육과정이 아닌 공장의 부품 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과정이 완전히 정착하고 나자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 독서교육 전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색인종 발전을 위한 국가협회’를 세운 흑인 지식인 듀보이스는 미국 인종주의 교육학자들의 교육이론에 반대해서 외롭게 투쟁했다. 황용길 교수가 정리한 듀보이스의 지식교육론 중 일부를 옮겨 보겠다.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미래의 지도자는 지식 중심으로 교육되고 배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교육을 버리라니, 이는 우리의 운명을 백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사슬에 묶여 마냥 끌려만 다니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듀보이스의 절규를 접하고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한 개가 얹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듀보이스의 절규가 곧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역사 속 초강대국들이 쉬쉬해온 비장의 무기
동양의 정치, 문화, 예술 등이 고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서양의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공통점은 2.000년 이상 살아남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의 석학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을 배출한 국가라는 것이다. 또한 당시에 세계 최강국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스파르타는 육체만 단련하지 않았나? 그래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가장 강한 국력을 자랑했다.” 이런 반론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던질 수 있다. 그런데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스파르타는 체육보다 철학을 더 사랑했다. 탈레스, 솔론 같은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이 부러워하고 칭송할 정도로 최고의 철학 및 변론 교육을 실시했다. 그렇다면 스파르타는 왜 강한 육체만 추구한 국가로 알려졌던 걸까? 플라톤은 ‘프로타고라스’에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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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한다.
“이 지방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그리스인들보다 뛰어난 것은 지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싸움과 용기로 얻은 것이라고 남에게 인식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들이 뛰어난 이유가 상세히 밝혀지면 모든 사람이 지혜를 갖추려 애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뒤를 이어 고전을 깊이 사랑한 국가는 로마였다. 물론 여느 시대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로마 역시 고전을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귀족 중에서도 최상위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일반 시민들은 전문가들로부터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받는 수준에 그쳤다.
유럽인들은 10세기까지만 해도 아랍인으로부터 미개인 취급을 받았다. 일례로 당시 아랍에서는 환자를 과학적으로 치료했지만 유럽에서는 향료를 끓이고 주문을 외웠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등 다른 모든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랍은 화려하고 세련되고 진보했던 반면 유럽은 그 반대였다. 아랍이 유럽을 몇 단계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열렬한 인문고전 독서 덕분이었다. 아랍은 711년에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그리스 로마 고전을 만났다. 그리스 로마 고전의 발상지 이면서도 고전을 잊고 살았던 유럽과 달리 아랍은 그 세계에 푹 빠져들었다. 아랍에서는 왕들이 나서서 인문고전을 애독했고, 국가적으로 인문고전 번역 사업을 실시했다. 덕분에 바그다드, 카이로, 톨레도, 코르도바 같은 도시에는 학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대학과 도서관에 그리스 로마 고전 거의 전부를 아랍어로 번역하고 주석서까지 발간했다. 파티미드 도서관 같은 경우 그리스 로마 고전과 관련 서적을 무려 110만 권 넘게 소장하고 있었을 정도였다.
유럽은 1085년에 아랍이 300년 넘게 지배하고 있던, 당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 톨레도를 수복했다. 그리고 1102년에는 발렌시아를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고전의 세계와 접촉했고 그것은 미개했던 유럽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을 집필한 리처드 루빈스타인의 표현에 따르면 격리된 시골의 한 지역에 불과했던 유럽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도시국가들 중 가장 강력하고 부유했던 곳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다. 그곳의 정치인, 지식인, 금융인 들은 인문고전의 광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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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자녀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지혜롭고 강력한 통치를 자랑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 같은 경우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어머니가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읽어 주었다. 덕분에 로렌초는 여섯 살 때부터 베르길리우스 같은 작가들의 글을 줄줄 읊을 수 있었다. 또 그에게는 가정교사가 네 명이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플라톤 철학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쳤다. 메디치 가문은 유럽 거부들의 개인 서재나 유럽 각지의 수도원에 감춰진 인문고전 원전을 확보하고 번역하고 연구하는 일을 피렌체 학계의 전통으로 만들어 최초의 진정한 인문주의자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페트라르카의 제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자금을 지원했고, 피렌체의 학교 교육과정에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다. 메디치 가문의 행보는 피렌체의 정치인과 금융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인들은 세계 각지로 사람을 보내서 인문고전 원전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정치인들은 학자들이 인문고전 원전을 번역하는 일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피렌체는 고대 아테네에 버금가는 명성을 가진 위대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한 국가는 영국과 프랑스다. 이 두 국가는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몽테뉴, 셰익스피어, 밀턴, 데카르트, 존 버니언, 조너선 스위프트, 몽테스키외, 데이비드 흄, 볼테르, 장 자크 루소, 에드워드 기번, 벤담, 발자크, 찰스 디킨스, 스탕달, 뒤마처럼 그 이름 자체가 문학, 역사, 철학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출했을 정도로 인문고전을 중시하고 사랑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영국의 인문고전 독서는
1. 가정교사에게 기초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2.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해서 체계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3.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들어가서 그리스어 및 라틴어로 진행되는 인문 고전 수업을 듣고, 그리스 및 라틴어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영국의 인문고전 독서는 상류층만의 것이 아니며 현재 진행형이다.
프랑스의 인문고전 독서교육 전통은 영국 이상이다. 프랑스의 중고교는 ‘철학학교’라 불릴 정도로 철학 교육을 중시하는데, 우리나라나 일본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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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이상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만하다 싶을 정도로 미국을 우습게 보는 프랑스의 힘은 교육면에서 본다면 바로 인문고전 독서의 힘이다.
미국의 세계적인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윌 스미스가 ‘리더스 다이제스트’ 기자와 만나서 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한다.
-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는데 대학에 가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전통적인 교육의 주된 목적은 사실과 숫자를 배우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죠. 어떤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생활에 응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 날짜 따위를 배우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초등학생이 플라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네. 초등학교 때부터 플라톤의 ‘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같은 철학고전을 읽지 않으면 훌륭한 미국 시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문 고전은 우리 선조들이 소중하게 읽었던 것입니다. 알다시피 우리 선조들은 인문고전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정부 체제를 만들어 냈습니다.
■ 국력 신장을 위한 일본의 국가적 프로젝트
아시아에서 인문고전 저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고 인문고전 독서 전통을 가장 확고하게 세운 국가는 지난 2,000년 동안 중국이었다. 그 다음은 우리나라였다. 이는 묘하게도 중국이 지난 2,000년 동안 동아시아 최대 강국이었고 그 다음이 우리나라였다는 사실과 겹친다.
인문고전 독서를 업으로 삼았던 사대부들이 지배층이었던 중국 및 한국과 달리, 비록 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검도를 연마하는 것이 업이었던 무사들이 지배층이었던 일본은 대대로 중국과 한국에 머리를 조아려가면서 문물을 수입해 갔다. 중국과 한국의 시각으로 볼 때 일본은 참으로 미개하기 이를 데 없는 국가였다. 그런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강대국으로 변신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는데, 그 배경에는 국가적인 인문고전 독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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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국민들로부터 메이지 유신의 아버지,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위대한 교육가로 칭송받고 있다.
하급 무사의 아들로 테어난 그는 열네 살까지 전형적인 일본 촌놈으로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인문고전의 세계에 폭풍처럼 빠져들어 맹자, 논어, 좌전, 노자 등 중국 고전을 섭렵하고 서양학문인 난학(네델란드어로 번역된), 영학(英學)등을 공부한 뒤 메이지 유신의 사상적 터를 닦았다.
메이지 시대 국가 주도의 인문고전 독서 열풍은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죽으라면 죽으리라’에 등장하는 1930년대 일본 고등학교를 보자.
- 제1고교 : 3년 동안 매주 10시간 이상 외국어 교육, 라틴어 필수, 영․독․불 어 중 두 과목은 선택. 서양고전은 원어로 국어처럼 술술 읽는 능력까지 요구.
- 제2고교 : 모든 신입생이 칸트의 ‘순수 이성비판’ 읽기. 모든 재학생이 하 루 한 권의 책을 읽고 독서일기 쓰기
- 고교에서 대학까지 4,000권의 책을 읽고 독서 일기를 쓴 사례는 평범에 속함
- 당시 일본은 군․경․관․재계에 인문고전 독서로 외국어와 학문에 정통한 인 재를 무한정 공급할 수 있었음
- 2차 대전 후 일본의 인문고전 독서에 대한 열기는 사라졌으나 그 뿌리는 여전히 남아 힘을 발휘하고 있음
우리는 1,600년 동안 일본에 인문고전을 전달하고 가르쳤다. 그 전통은 1868년에 깨졌다.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는 일본에게 인문고전을 전달받고 가르침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많은 인문고전 번역서가 일본어 번역판을 다시 번역한 것이다. 국민, 자유, 평등, 권리, 민권, 인권, 토론, 사회, 정부, 정의, 철학, 원리, 의무, 책임,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경제, 은행, 동산, 부동산 같은 용어들의 공통점은 일본이 서양 인문고전을 번역하면서 만들어낸 단어라는 것이다. 일본이 만든 이 용어들은 그대로 한국과 중국에 수출됐고 지금은 아예 자국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양 인문고전 원전 번역의 역사 비교
-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형명에 대한 성찰’ : 일본 1881년, 한국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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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흥망성쇠 원인론’ : 일본 1883년, 한국 2007년
- 플라톤 전집 원전 : 일본 1900년대, 한국 아직.....
-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 일본 1940년대, 한국 2007년
미래에 세계의 고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우리나라 고전 및 근현대 문학작품을 외국에 알리는 일도 일본에 비교하면 심히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초반에 2만여 종 이상의 자국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했지만 우리나라는 2006년까지 고작 1,500여 종 정도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던 선진국에서 전달받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안타깝게도 그 절망스러운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조선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세종대왕은 백성 개개인의 두뇌 수준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인문고전 독서에서 찾았다. 1434년 7월, 세종대왕은 30만 권 분량의 종이를 준비하라는 영을 내렸다.‘자치통감’을 대량으로 인쇄해서 전국에 배포하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은 노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큰 활자를 주조해서 책을 찍도록 했고, 주석 작업에 친히 참여하기까지 했다.
세종대왕 당시는 왕정 시대였으니 나라의 주인은 당연히 왕이었다. 반면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러니 나라를 바꾸고 싶다면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인문고전 독서의 영을 내려라. 그리고 치열하게 독서하라. 그러면 오래지 않아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완벽하게 바뀔 것이다.
■ 법조인 130명 VS 전과자 96명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인문고전 독서는 가문은 물론이고 개인의 운명까지 결정짓는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벤저민 프랭클린보다 미국에 더 위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로부터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았다. 그는 이미 유년 시절에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고작 열두 살에 예일 대학에 입학했고, 4년 뒤에 수석으로 졸업했다. 또 그는 스물한 살에 예일 대학 교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프린스턴 대학의 전신인 뉴저지대학의 총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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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조너선 에드워즈의 가문을 5대에 걸쳐 조사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지적, 영적 수준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조사했는데 그 비교 대상으로 마커스 슐츠를 선정했다. 그는 조너선 에드워즈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고, 같은 지역에 살았으며, 같은 경제력을 가졌고, 같은 수의 가족이 있었다. 다만 영적으로 ‘성경’을 삶의 지표로 삼고 지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힘쓰는 전통을 후손에 물려준 에드워즈와 달리 슐츠는 ‘성경’에 무관심하고 인문고전 독서에 문외한인 전통을 물려주었다.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두 가문의 후손을 5대에 걸쳐서 면밀하게 추적했다. 조너선 에드워즈의 후손은 896명이었다. 여기서 1명의 부통령, 4명의 상원의원, 12명의 대학 총장, 65명의 대학교수, 60명의 의사, 100명의 목사, 75명의 군인, 85명의 저술가, 130명의 판․검사 및 변호사, 80명의 공무원이 나왔다. 마커스 슐츠의 후손은 1,062명이었다. 여기서 전과자가 96명, 알코올 중독자가 58명, 창녀가 65명, 빈민이 286명, 평생 막노동으로 연명한 사람이 460명 나왔다. 미국 정부는 마커스 슐츠의 후손들을 위해서 무려 1억 5,000만 달러를 국고보조금으로 지출했다.
결론을 내리자. 인문고전 독서는 나라와 가문과 개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니 나라와 가문과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뭔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거든 낙담하거나 한탄할 시간에 인문고전을 펴길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당신 자신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당신 가문에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우리나라와 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 제2장 리더의 교육, 팔로어의 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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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 교수도 열광한 카를 비테식 ‘다른교육’
약 200년 전 독일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뮈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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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들을 연구했는데, 하나같이 19세기 당시 독일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자신의 아들이 비록 지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는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가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그런데 그 책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20세기에 하버드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책을 발견한 레오 워너 교수는 그의 아들 로버트 워너와 딸 콘스탄스를 카를 비테식 교육으로 성공시켰다. 그것은 모두 인문고전 독서교육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학교교육의 시작은 프러시아가 유럽열강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군인과 공장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해 시작되었고 영국 역시 산업혁명으로 부족한 말잘 듣는 노동자를 양산하기 위한 목적에서 학교교육이 시작되었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우민정책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이식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제는 진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쌓이는 게 아니라 두 눈의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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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 장한나는 왜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했을까?
‘천재들의 뇌’라는 책에 따르면 일본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음악교육가였던 스즈키 신이치는 일종의 음악교육 실험을 했다. 그는 교육에 참가한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1. 아이가 한 살이 되면 클래식 음악을 들려줄 것
2. 두 살 때부터는 음악 감상의 강도를 본격적으로 높일 것
3. 음악 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육에 참가한 다른 아이들 또는 부모와 함께 들을 것
4. 부모는 클래식 악기를 배울 것
아이들이 자라면서 음악교육은 보다 전문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다들 훌륭한 연주자로 성장했다. 5%는 전문 연주가의 길을 가도 될 정도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천재 음악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소련은 각 나라의 대표적인 수학 영재들을 모아 수학 올림피아드를 조직했다. 그리고 무려 12년 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특별한 교육을 시켰다. 천재 수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련 정부의 파격적인 후원에도 불구하고 천재 수학자는 나오지 않았다.
스즈키 신이치의 음악교육과 소련의 수학 올림피아드 교육에 빠진 게 하나 있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이다. 만일 두 교육실험이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 의 정신과 방법하에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분명히 천재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1) 카를 비테가 자신이 창안한 ‘다른 교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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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면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다고 확언했고. 2) 실제로 카를 비테식 교육을 받은 인물 중에 천재가 나왔고. 3) 바흐, 헨델, 베토벤, 바그너 같은 천재 음악가와 데카르트, 파스칼, 뉴턴, 라이프치히, 오일러 같은 천재 수학자들이 하나같이 인문고전 독서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숱한 영재들을 만났다. (그들이 지금은 대학교 4학년 정도) 교사로서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게 된 초기 3년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천재를 만드는 교육에 관심이 무척 높았다. 나는 천재를 다룬 많은 책과 논문 등을 읽었고, 천재로 발전할 소질이 다분한 영재연구소 아이들과 부모들을 심층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1) 우리나라에 영재는 넘치도록 많다. 2) 대부분의 영재는 중고등학교 때 어린 시절의 빛을 잃는다. 3) 영재에서 천재로 넘어가는 아이는 ‘전혀 없다’ 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두뇌의 빛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 물론 지식 측면에서는 월등한 진보를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밝혔듯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 한들 백과사전은 될 수 있을지언정 천재는 될 수 없다. 천재는 지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의 한계는 천재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 음악 영재교육의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음악 영재교육은 악기 연습이 치중한다. 내 제자 중 한 명은 유명 음악잡지에 인터뷰가 실릴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자랑했는데 그 아이가 받았던 교육은 매일 열 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만일 그 아이가 인문고전 독서를 병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바흐나 헨델 같은 천재 음악가들이 그랬듯이 두뇌를 지속적으로 위대한 고전에 노출시켜서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그 놀라운 깨달음을 연주에 불어넣었다면 말이다.
장한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연주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뒤 전공으로 음악이 아닌 철학을 선택했다. 그가 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는 장한나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가가 되려면 반드시 인문고전을 공부해야 한다며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를 추천했다. 요요마가 하버드 대학교 인문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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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 수학․과학 영재교육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기존 원리를 터득하고 보다 복잡한 계산, 조금 더 심도 있는 실험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교육으로는 천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수학과 과학의 천재들은 원리 자체를 만들거나 발견한 사람들이다. 즉 수학․과학 영재교육이 천재를 배출하려면 기존 원리를 터득하는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원리를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교육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데카르트, 파스칼, 뉴턴, 라이프치히, 오일러, 가우스,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같은 수학․과학 천재들의 공통점은 1)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한 천재들이 쓴 고전에 심취했다. 2)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했다. 3)새로운 고전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역사나 철학을 외면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 소문난 삼류학교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15세가 되도록 문맹이었던 치원 황상에게 인문고전을 가르쳤다. 몇 년 뒤 황상은 조선의 천재들을 매혹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해 유배지에서 풀려난 추사 김정희가 그를 찾아 갔을 정도이다.
연암 박지원도 집이 워낙 빈한하여 15세가 되도록 문맹이었다. 그런 박지원에게 처숙 이군문이 인문고전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박지원은 이후 3년 동안 두문불출 인문고전만 읽었다. 마침내 방문을 열고 나왔을 때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박지원이 아니었다. 그는 천재가 되어 있었다.
아이작 뉴턴은 초등학교 시절 계속해서 전교 꼴찌를 하다가 학습부진아 반에 들어간 경력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뉴턴을 안타깝게 여겨 인문고전을 소개해 주었다. 이후 뉴턴의 삶은 인문 고전 독서로 채워진다. 그 결과 한 때 저능아 취급을 받았던 뉴턴은 휘황찬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변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과학의 역사를 새로 썼다.
윈스턴 처칠은 열세 살에 해로(Harrow) 학교에 전교 꼴찌로 입학했다. 4년 6개월의 재학기간 동안에도 내내 거의 전교 꼴찌를 도맡아 했다. 그는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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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의 권유로 스물세 살에 인문고전 독서를 처음 시작했는데 하루 평균 네다섯 시간씩 책을 읽었다. 처칠의 인문고전 독서는 그의 두뇌를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초등학교 입학 3개월 만에 퇴학당한다. 하지만 교사 출신인 그의 어머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직접 에디슨을 교육했다. 아홉 살에 리처드 그린파커의 ‘자연과 실험의 철학’을 독파하고 시어스의 ‘세계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흄의 ‘영국사’ 같은 역사 고전과 셰익스피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문학고전 등이 뒤를 이었다. 20대에는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리겠다며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다.
그는 세계 최고 기록인 1,093개의 특허를 따내면서 발명왕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을 창업했다.
과거의 자신을 죽이는 처절한 자기투쟁이 뒤따르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는 지식의 축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지식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가 있을 때 생겨난다. 다름 아닌 그 ‘지혜’를 갖는 것을 나는 인문고전 독서를 통한 ‘변화’라 이야기 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제대로’ 하다보면 언젠가는 우리나라에도 뉴턴, 처칠, 에디슨 같은 아니 그들을 뛰어 넘는 위대한 천재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이다. 뜨거운 믿음이 없는 인문고전 독서는 단순한 여가선용 이상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 태양을 향해 던지는 창이 가장 높이 올라가듯이 인문고전 독서 또한 최고 수준의 변화를 목표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미국 백악관 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는 저서 ‘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에서 말하고 있다.
“시카고 대학을 노벨상 왕국이라 한다. (…)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데는 항존주의 교육철학의 시조인 로버트 허친스 총장의 공적이 컸다. 1890년에 창설된 후 별볼일 없는 대학으로 1929년까지 유지되어오던 시카고 대학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광신도라고 하는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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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되면서 교양교육의 일환으로 고전 100권을 각 분야에서 읽도록 했다. (……) 그러한 교양교육의 성과로 시카고 대학동문 교수 중에서 엄청나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된 것이다.”
시카고 대학은 미국의 대부호였던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설립한 대학이다. 이 대학은 설립연도인 1890년부터 1929년까지 둔재들만 가던 소문난 삼류학교였다고 한다. 그런데 1929년을 기점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싹쓸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노벨상 수상자가 폭증한 것이다. 1929년부터 2000년까지만 봐도 시카고 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무려 예순여덟 명에 달한다.
■ 물음표 교육을 살려야 천재가 산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배출해 낸 유대인 교육처럼 물음표 교육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인문고전 독서교육 중 철학고전 독서교육은 학생들 스스로 지식의 근본원리, 즉 지혜에 도달할 때까지 ‘왜?’라고 묻게 만든다. 왜 그렇게 되는지 궁금한 사람은 오늘부터 철학고전을 읽어보기 바란다. 그 이유를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감히 주장하고 싶다. 만일 철학고전 독서교육이 제대로 정착하면 우리나라는 유대 민족보다 더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함은 물론이고 천재들을 지속적으로 길러내게 될 것이라고.
■ 논술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는 하지마라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공부의 정석을 깨뜨린 한 선비가 있었다. 그는 아들에게 족집게 선생을 붙여 주지도 않았고, 여러 책을 짜깁기한 교재를 공부하게 하지도 않았다. 대신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켰다. 아들의 독서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그는 비로소 과문(科文)을 짓게 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논술 모의고사를 보게 한 것이다. 그러자 그 과문을 본 선비들이 글재주가 놀랍다며 다들 칭찬했다. 아들을 통해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효과를 경험한 그는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들과 동일한 교육을 했다. 그러자 아들과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선비는 다산 정약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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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이해명 교수는 그의 아들이 초등학교 때 ‘논어’와 ‘맹자’를 직접 가르쳤다.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 : ‘명심보감’ ‘논어’ ‘맹자’ 한문 원전을 필사하면서 외우는 방식으로 읽혔다.
중학교 : ‘장자’, 사마천의 ‘사기열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볼테르의 ‘영국인에 관한 서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등을 원서로 읽혔다.
고등학교 : 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루소의 ‘사회계약론’, 셰익스피어의 ‘희곡집’, 괴테의 ‘파우스트’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등을 원서로 읽혔다.
결과는 놀랍다. 이해명 교수의 아들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5회 응시한 전국 논술 경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3회 수상했고 2회 입상했다.
이해명 교수는 그의 저서 ‘이제는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에서 위의 사례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을 들려준다. 자신에게는 지능지수가 같은 두 자녀가 있는데,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느라 바빠서 첫째는 평범하게 교육했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임용되면서 여유가 생기자 둘째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포함한 특별한 교육을 시켰는데, 영어 실력과 학력 면에서 둘째가 첫째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문고전 독서 교육의 목적을 대학 입학에 두지 마라. 그것은 논술학원에서나 할 일이다. 독서의 목적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두기 바란다. 그것은 아이의 두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경지다. 평범한 아이를 세종, 이순신, 정약용, 박지원, 허준, 김구, 레오나르도 다빈치, 에디슨, 아인슈타인 같은 인물로 키워내는 경지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아이가 천재를 만날 수 있게 하라.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위대한 천재들이 필생의 힘을 기울여 집필한 위대한 고전의 세계에 빠지게 하라.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까지는 인문고전 독서를 전혀 시키지 않기를 권한다. 이때는 마음껏 뛰어 노는 게 최상의 공부다.
초등학교 3-4학년 때는 인문고전 저자들의 이름을 수시로 들려주면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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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마나 특별한 삶을 살았고 또 얼마나 위대한 책을 썼는지 등에 관해서 알려주어라. 쉽게 말해서 동기부여를 해 주라는 의미다. 그러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시작될 인문고전 독서교육에 높은 기대감을 갖게 될 것이다.
어떤 부모들은 초중고생 눈높이에 맞게 쓰인 인문고전이나 인문고전을 재미있게 풀어 쓴 만화책 등을 읽히는 것은 어떠냐고 묻는다. 물론 그런 책을 읽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말하는 독서는 아니다.
인문고전 독서는 전통적으로 원전을 읽게 해야 한다. 단 한 페이지를 넘기기 위해 몇 시간 또는 며칠 노력을 요하는 어려움을 그 책을 지은 천재와 씨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저자의 인문고전 방법론
1. 통독하게 하라. 2. 정독하게 하라. 3. 필사하게 하라.
4. 자신만의 의견을 갖게 하라. 5. 인문고전 연구가와 토론을 시켜라.
통독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내리 읽는 것을 뜻한다. 통독을 시킬 때 유의할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더라도 그냥 넘어가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통독이 정독이 된다.
정독은 통독보다 열 배는 어렵다. 정독을 시킬 때 유의할 점은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게 하라는 것이다. 두뇌의 변화는 다름 아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에 반드시 밑줄을 긋게 하라. 필사를 위해서다.
필사는 책을 베껴 쓰는 것을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책 전체를 필사하는 게 가장 좋다. 하지만 정독을 하면서 밑줄을 그어둔 부분만 필사해도 괜찮다.
자신의 의견을 갖는 것, 이는 모든 독서의 목적이다. 나는 통독-정독-필사를 제대로 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갖게 되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나는 인문고전 연구가가 아닌 사람과 인문고전 독서토론을 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특히 초중고 학생들끼리만 하는 토론은 두 손 들어 말리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두뇌의 비약적 성장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두뇌 수준이 비슷한 친구나 같은 반 아이들끼리 토론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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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저작을 자기네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인문고전을 연구한 전문가의 자문이 필요하다.
■ 행복한 천재를 만드는 인문고전 독서교육
인문고전 독서교육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모의 욕심이다. 존 스튜어트 밀, 노비트 위너,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의 부모들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초점을 자녀들에게 둘 줄 몰랐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교육은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없고, 휴일을 허락받지 못했으며 꾸중 속에서 자랐다.
위너 역시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수업은 늘 가정불화로 끝났다. 나에게 실망한 아버지는 고함을 질러댔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맞서 나를 감싸기 바빴다. 나는 두 분 사이에서 울기만 했다.
사이디스는 부모와의 불화로 정신병원에 입원 당한 적이 있고 성장해서는 부모와 거의 단절하고 살았다.
그러나 카를 비테의 아들 카를 비테 주니어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으로 천재가 되었지만 어떤 부작용도 겪지 않았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으면서 깊은 행복감을 느꼈다. 또 그는 평생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냈고, 어디를 가든지 환영을 받았고, 누구를 만나든 금세 친구가 되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교육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실컷 놀면서 교육 받았다.
2. 사랑과 격려가 바탕이 된 교육을 받았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위기에서 교육을 받았다.
카를 비테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엄밀하게 선정한 인문고전이 가득 꽂힌 책장을 선물했다. 그리고 비테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이가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독서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덕분에 카를 비테 주니어는 어린 시절 내내 친구들과 원 없이 놀면서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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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하자.
부모의 강압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통해서도 천재가 만들어질 수 있음은 역사가 증명했다. 하지만 그런 천재들은 대개 정신질환자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 역시 역사가 증명했다. 감히 말하고 싶다. 불행한 천재를 만드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하지 않는 게 옳다고.
다행스럽게도 역사는 또 다른 사실을 증명했다. 행복하고 자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실시되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은 행복한 천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아이에게 행복하고 즐거운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기를 바란다.
《 제3장, 자본주의 시스템의 승자가 되는 법 》
■ 런던 빈민가의 접시닦이, 세계 금융의 황제가 되다.
철학자가 되고 싶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 철학고전을 읽었다. 비록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책도 끝까지 읽은 책도 거의 없었지만 소년은 철학고전 독서를 통해 사고의 수준을 비약적으로 향상할 수 있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자본주의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영국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9년간 패배자로 살았다.
청년은 런던 빈민가를 전전하면서 접시닦이, 웨이터, 페인트 공, 공장 노동자, 통조림 공장 공원, 마네킹 공장 공원, 수영장 안내원, 철도역 짐꾼 등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구박 받고, 해고당하고, 부상당하고, 여자 친구에게 버림받고…….
그는 모든 것이 돈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금융계로 뛰어 들었지만 거기서도 그는 심부름꾼을 면치 못했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증권 분석사 시험에도 떨어졌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그런 실패의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도 청년이 온 힘을 다해 철학고전을 읽었다는 점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에라스뮈스, 마키아벨리, 홉스, 베르그송 같은 천재 철학자들의 저작을 마치 고시를 준비하듯 빈틈없이 공부했고, 자신을 소크라테스의 사도라 칭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인 칼 포퍼에게 편지를 보내 개인지도를 요청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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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에 열의를 보였다. 그의 뜨거운 철학 공부는 9년간의 런던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간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는 뉴욕의 한 금융회사에 입사했다. 거기서도 그는 철학서적에 묻혀 살았고, 밤을 지새우며 철학 논문을 쓰기도 했다.
1992년 10월, 그는 세계 금융계의 황제가 되어 영국 땅을 밟았다. 비참한 패배자로 런던을 떠난 지 약 36년 만이었다. 그는 파운드화의 가치가 폭락하는 순간을 노려 영국 중앙은행에 도전했는데 일주일 만에 무려 1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지 소로스다. 조지 소로스는 자신의 투자성공 비결을 ‘철학 하는 것’이라고 그의 저서 ‘금융의 연금술’ 등에서 고백했다.
조지 소로스는 지금도 철학 공부를 열심히 하고, 철학 논문을 쓰고, 세계적인 철학자들을 자택에 초대해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금융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최초의 철학자는 최고의 투자가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보면 최초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탈레스의 일화가 나온다. 그는 비난을 받았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철학한다고, 그래서 결심했다. 철학자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이를 위해 그는 철학적 사고를 잠시 경제적 사고로 전환시켰다. 탈레스는 기후변화를 분석해서 이듬해 올리브가 대풍작이 될 것을 예상하고 주변에 있는 올리브기름 짜는 기구를 전부 임차했다. 겨울이어서 아주 싼 가격으로 ……. 곧이어 수확철이 오자 높은 가격에 기계를 임대해서 순식간에 큰돈을 벌었다. 놀랍게도 비난받던 철학자는 최고의 경제인이 되었다.
조지 소로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철학자의 두뇌를 가진 사람은 순식간에 경제를 지배해 버린다. 이유는 경제활동이 곧 두뇌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모인 월스트리트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월스트리트의 꼭대기에는 철학고전에 정통한 사람들이 있다.
철학고전은 사람의 두뇌를 차원이 다르게 바꾸어 버린다. 사고의 수준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다. 철학고전 독서로 다져진 두뇌는 시장의 본질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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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책만 읽는 사람은 죽었다 깨나도 볼 수 없는 그 무엇을 본다. 결과는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이익의 실현이다.
서점에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 피터 린치, 짐 로저스 등등 자본주의 세계의 최고 승자들의 투자 비법을 담은 책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들의 책을 죽어라고 읽고 그들의 비법을 열심히 따라 한 사람들 중에 놀라운 이익을 실현한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치열한 인문고전 독서로 두뇌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뒤에 터득한 투자의 비결을 담은 그들의 글을, 인문고전을 전혀 읽지 않은 두뇌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투자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오토바이 운전면허도 없는 사람이 세계 최고의 오토바이 곡예사가 쓴 책을 읽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과 같다. 이런 사람이 어떤 결과를 얻겠는가? 최소한 중상, 최악의 경우 사망이다.
경제적 약자를 위한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인 클레멘트 코스를 만든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껏 속아 왔어요. 부자들은 인문학을 배웁니다. 인문학은 세상과 잘 지내기 위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어떤 ‘무력적인 힘’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끼칠 때 무조건 반응하기 보다는 심사숙고해서 잘 대처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공부입니다.”
쉽게 말해서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문고전 독서로 다져진 사람들의 두뇌에서 나왔다. 이는 인문고전 독서에 정통하지 않고서는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방향을 알 수 없고, 부를 쌓기 위해 하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 자본주의는 인문학 전통에서 만들어졌다.
1776년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세계의 초석이 만들어진 해라고 말 할 수 있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 철학교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출간해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즉 현대 자본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된 경제학 출현과 정치적 배경이 된 미국 독립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애덤 스미스는 14세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 고대 그리스어와 문학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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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최고봉 던 롭 교수와 위대한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 교수 등에게 최고 수준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사사 받는다.
몇 년 뒤 옥스퍼드 대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공부를 마치고 다시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다.
여기서 우리는 철학과 경제학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미 있는 통찰을 할 수 있다. 최초의 철학자는 최고의 경제인이었고, 부를 다루는 학문을 창시한 최초의 근대적 의미의 경제학자는 철학과 교수이자 철학 고전의 저자였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애덤 스미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더불어 3대 경제학자라고 불리는, 역사상 가장 독특한 경제학자였던 카를 마르크스 또한 인문고전 독서광이자 철학자였고, 철학고전이자 경제학고전인 ‘자본론’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고전 경제학 이론은 1929년 10월 대공황이 오면서 막을 내렸고 현대 경제학이 탄생했다.
케인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 결과 세상에는 언제나 식량 부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거나 전염병을 퍼뜨려서 인간을 억제해야 한다. 잉여인간들을 없애야 한다”라는 악마적인 주장을 편 ‘인구론’의 저자 토머스 멜서스의 열광적인 신봉자였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했던 황인종의 증가는 인류의 재앙과 마찬가지이므로 전쟁을 통해서라도 황인종 수를 줄여야 한다는 소위 ‘황화론’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또 그는 나치 독일이 인종 청소의 이론적 근거로 이용한 ‘우생학’의 창시자 프랜시스 골턴의 숭배자이기도 했다.
케인스가 주축이 되어 설립된 것이 ‘세계은행’과 ‘IMF’ 다. 비슷한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IMF가 유럽에는 심히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아시아에는 가혹한 처분을 내렸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미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는 그런 IMF의 속성을 간파하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IMF는 월 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서구의 거대 경제 질서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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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스테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그런데 케인스의 이론은 그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밀턴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 학파가 등장해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리고 세계 금융계의 왕자를 차지했다. 세상은 그들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고 부른다.
시카고 학파의 요람인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1990년대 초반에 총장을 몰아낸 적이 있다. 휴고 소넨샤인 신임 총장이 입학 후 2년 동안 인문고전 독서만 하는 시카고 플랜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이를 단축하려 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대학 학생들은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 인문고전 독서를 충실히 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기에 더해 대학교에서 다시 한 번 철저하게 인문고전을 공부한다. 그리고 경제학 공부를 한다. 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치열한 인문고전 독서 없이 바로 경제학으로 들어간다. 둘 중 누가 경제학의 본질을 꿰뚫을 것이며, 둘 중 누가 기존 이론을 뛰어 넘는 혁명적인 경제학 이론을 들고 나와서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둘 중 누가 세계 금융계의 두뇌가 될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전 세계 0.1 퍼센트의 부자들은 인문고전을 읽는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전 세계 부의 90% 이상은 세계 인구의 약 0.1%가 소유했다. 민주주의가 도래하기 전에 그 0.1%는 왕과 귀족이었다. 지금은 월 스트리트 투자자와 세계적인 기업가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과거의 부자인 왕과 귀족들은 신분제도를 만들어서 평범한 사람들이 부자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현대의 부자들은 교육제도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다. 과거의 부자와 현대의 부자들은 공통점이 있다. 인문고전 독서가라는 사실이다.
☆ 세계 최대 투자자들의 인문고전 독서
- 세계 최대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를 창업한 찰스 메릴 : 아이비리그 보다 깊이 있는 인문고전 독서교육으로 유명한 애머스트 칼리지 출신
- 월 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개인투자자 제시 리버모어 : 5달러로 시작해서 1929년에 1억 달러의 거부가 됨. 초등학교 중퇴학력으로 모든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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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치운다는 별명을 가진 독서광
- 월가를 뒤흔든 유럽인 앙드레 코스틀라니 : 철학과 미술 전공, 그의 저서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는 주식 투자서 라기 보다 철학서에 가깝다.
- 금융 분석가 벤저민 그레이엄 : 25세(1910년) 때 연봉 60만 달러 (현 시가 100억 ), 컬럼비아 대학 투자이론 강의, 그리스 로마 고전에 심취
- 셀비 데이비스 : 38세에 공무원을 그만두고 월가에 들어가, 5만 달러로 시작한 그의 투자는 45년 뒤 18,000배로 불어난 9억 달러에 도달. 그는 인문고전 독서로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었고 아들과 손자에게 입만 열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계는 언제라도 독학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드시 전공해야 한다. 역사를 배우면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고 특별한 사람들에게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철학과 신학은 네가 투자를 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배경이 될게다. 투자에 성공하려면 철학이 있어야 하지. 투자를 하고 나면 죽어라 기도도 해야 하고.”
셀비 데이비스는 그의 아들과 손자 대에 이르기 까지 월 스트리트의 전설적 투자가문이 되었다.
- 존 템플턴 : 테레사 수녀, 솔제니친, 그레이엄 목사, 한경직 목사 등이 수상한 템플턴 상의 창시자. 매년 4,000만 달러 이상 기부. 1999년 20세기 최고의 투자자로 선정. 그의 저서 ‘템플턴 플랜’에는 동서양 인문고전이 총망라되고 있을 만큼 독서광
- 월가의 가장 위대한 펀드 메니저 피터 린치 :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에 나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대학에 들어갔을 때 과학, 수학, 회계학 같은 일반 경영학 과목은 필수과목을 제외하고는 피해 다녔다. 대신 인문과목을 주로 수강했다. 역사, 심리학, 정치학을 배웠고 형이상학, 인식론, 논리학, 종교학, 고대 그리스 철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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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통계학 공부보다 역사와 철학 공부가 나의 주식투자에 훨씬 도움이 되었다.”
- 세계 최고 거부 중 한 명인 짐 로저스 : 부자가 되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철학을 공부해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라.” “역사를 공부해라.” 그는 여기에 열 가지 조언을 하는데 “중국어를 배워라.”를 제외한 나머지 아홉 가지 조언은 철학 경구나 다름없다. 아무튼 그의 조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자신만의 철학으로 투자하라.”
철학자의 사고방식은 역설적이게도 철학자가 경멸할 듯한 돈의 영역에서도 빛을 발한다. 세상의 모든 거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듯이, 돈은 이상하게도 군중이 가지 않는 곳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는 곧 군중이 가지 않는 곳을 탐험하는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누가 군중이 가지 않는 곳을 갈까? 당연히 군중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철학자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만이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부자의 사고방식의 지향점은 철학자의 그것과는 판이하지만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철학자들이 경제학을 만들었다. 즉 경제학자들은 군중과 다르게 생각하는 철학자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의 젊은 부자들’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 중에 직접 만난 젊은 부자들은 한결같이 독서광이었다.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는 가난한 자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들은 강조했다.
필자는 젊은 부자들에게 ‘반드시 집에 가지고 있어야 할 책 3권’과 그동안 읽은 책 가운데 가장 크게 감명을 받은 책 3권을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놀랍게도 한국의 젊은 부자들은 인문고전을 골랐다. ‘사기열전’ ‘로마제국 쇠망사’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플루타크 영웅전’을 선정했다. 그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큰 희망과 깊은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큰 희망은 언젠가는 그들 중에서 조지 소로스 이상 가는 인문고전 독서가가 나와서 우리나라 금융계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리라는 기대에서, 깊은 안타까움은 그들의 인문고전 독서 수준이 심히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그들이 지금부터라도 인문고전 독서에 목숨을 걸기를 원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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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여 한국의 젊은 부자에서 세계의 젊은 부자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인문고전은 비록 현대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인문고전 저자들은 하나같이 돈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믿었다. 나는 여기서 현대 자본주의의 희망을 보았다. 자본주의는 결국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인문고전 저자들의 믿음에 걸맞은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 존 템플턴, 워런 버핏 같은 자본주의의 승자들은 나의 희망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들은 돈은 인간을 섬기기 위해 주어진 것이라는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매년 천문학적인 재산을 기부하고 있다.
당송 팔대가 중 한 명인 왕안석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貧者因書富(빈자인서부) 가난한 사람은 독서로 부자가 되고
富者因書貴(부자인서귀) 부자는 독서로 귀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이 말대로 되기를…….
2011. 2. 20 제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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