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이해인 산문집 -
■ 이해인
0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
0 1945년 강원도 양구 생, 출생 3 일 만에 받은 세례명이 벨라렛다
0 스무 살에 수녀원에 입회, 수도명이 클라우디아, 일명 구름수녀, 넓고 어 진 마음으로 구름처럼 바다처럼 살라고(?)......
0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작은 위로’ 등
산문집으로 ‘두레박’ ‘꽃삽’ ‘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고운 새는 어디에 숨었을까’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등
0 2008년 여름부터 암 투병 중
■ 사랑하는 이해인 수녀님
- 박완서의 편지 -
그리던 고향에 다녀가는 것처럼
마음의 평화를 얻어가지고 돌아갑니다.
내년 이맘때도 이곳 식구들과 짜장면을 (그때는 따뜻한)
같이 먹을 수 있기를,
눈에 밟히던 꽃과 나무들이 다 그 자리에 있어
다시 눈 맞출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당신은 고향의 당산나무입니다.
내 생전에 당산나무가 시드는 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꼭 당신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나보다는 오래 살아 주십시오.
주여, 제 욕심을 불쌍히 여기소서.
2010. 4. 16
박 완 서
- 1 -
■ 여는 글 : 보물찾기 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며
세상에 다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한
내 마음 속의 언어들
깨고 나서 더러는 잊었지만
결코 잊고 싶지 않던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꿈들
모르는 이웃과도 웃으며
사랑의 집을 지었던 행복한 순간들
속으로 하얀 피 흘렸지만
끝까지 잘 견뎌 내어
한 송이 꽃이 되고
열매로 익은 나의 고통들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의 보물이라 외치고 싶어
그리 무겁진 않으니까
하늘나라 여행에도
꼭 가져가고 싶어
- 이해인 <어떤 보물> 전문 -
제1장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 감사 예찬
감사만이
꽃길입니다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걸어가는
향기 나는 길입니다
- 2 -
감사만이
보석입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
감사만이
기도입니다
기도 한 줄 외우지 못해도
그저
고맙다 고맙다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날
삶 자체가
기도의 강으로 흘러
가만히 눈물 흘리는 자신을
보며 감동하게 됩니다
■ 감탄사가 그립다
인터넷 문화와 기계문명에 길들여진 우리에겐 하도 놀랍고 신기한 것들이 많아 정작 감탄하고 놀라워해야 할 일에는 무디어진 것 같다. 좋은 것을 보아도, 아름다운 것을 느껴도 우린 그저 당연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에 때론 좀 호들갑스럽게 여겨지더라도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사소한 일에도 “어머나!” “어쩌면!” “세상에!”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표정이 환해지는 그런 사람들은 무미건조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며 옆 사람까지 유쾌하게 만든다.
- 3 -
나의 어머니는 매우 과묵한 편이었지만 감탄사의 여왕이기도 하셨다. 한번은 내가 서울에 간 김에 잠시 들러 후암시장에서 산 꽃무늬 고운 여름이불을 하나 선물하니 “원 세상에! 이렇게 예쁜 이불도 다 있네. 잠이 저절로 올 것 같다!” 하며 기뻐하셨다. 어머니가 날더러 찾아보라 하셔서 50여년 만에 찾은 내 어린 시절의 소꼽동무와 전화 연결을 시켜드렸을 때는 “정말 반갑네! 하도 오랜만이라 마치 죽음에서 부활한 사람을 만난 느낌이 다 드는구나. 우리 한번 만나야지?” 하셨다.
만나기만 하면 내 태몽과 어린 시절 얘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한창 재롱부리던 아기일 적엔 하도 “좋다. 좋다.” 손뼉을 치며 즐거워해서 집에 오는 손님들이 “넌 만날 무에 그리 좋으냐?” 며 ‘좋다’라는 별명을 붙인 그 아기를 서로 먼저 안아 주려고들 했다고 한다. 늘상 절제와 극기를 미덕으로 삼는 수도자의 신분이다 보니 그동안 감탄사를 너무 많이 아끼며 살아온 듯하다.
■ 따뜻한 밥상, 자비의 밥상
1980년대 법정 스님께서 불일암에 계실 적에 친구 수녀 두 명과 같이 잘 아는 보살님의 안내로 그곳 손님실에서 하루 묵으며 아침 공양을 한 일이 있다. 우리가 준비한 소찬으로 밥을 먹는데, 둥글고 고운 갈색 발우에 밥을 담아 좀 얌전하고 품위 있게 먹어야 할 것을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고추장까지 달라고 하여 산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서 씩씩하게 먹었더니 스님이 이런 내 모습에 놀라셨는지 내게 ‘대식가’라는 별칭을 붙여 주셨다. 사실 밥의 분량은 다른 사람들과 똑 같고 남보다 더 먹은 게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억울하게 생각하고 있다.
‘반찬은 간소하게! 세 가지를 넘기지 않게!’라고 조그만 부엌 한 모서리에 적혀 있는 글귀를 보며 ‘우리 수녀원하고 같네! 반찬이 많아야 서너 가지니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새롭다.
또 하나는 영주 부석사에 갔을 때 먹었던 절밥이다. 마침 그날이 주지 스님의 생신이라 절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점심 공양의 혜택이 주어지는 기쁨의 잔치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고급스런 찰밥과 미역국, 여러 종류의 나물과 김치와 튀김이 차려진 식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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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되었을 때 나는 그만 공양을 시작도 하기 전에 내 몫의 미역국을 몽땅 검은 수도복에 쏟아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 일행은 다섯 명이었는데 그중에는 나의 글을 좋아하던 애독자 아줌마도 있었다. 그 일로 “겉으로 보기엔 깔끔하고 빈틈없을 것 같아 보이던 수녀님이 국을 쏟으며 당황하던 그 순간 저는 수녀님에게 더 인간적인 푸근함과 정겨움을 느꼈답니다.”하는 러브레터까지 받게 되어 그와는 종종 부석사 이야기를 하며 가깝게 지내고 있으니 절에서 국을 쏟은 사건조차 축복이 된 것 같다.
지금은 건강에 문제가 있어 대식가 노릇도 못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아무리 절제를 기본으로 해야 하는 수행자라도 밥만은 아주 복스럽고 맛있게 먹어야 보기가 좋고 옆에서도 부담을 덜 느낄 것이다. 밥상에서는 너무 드러나지 않게, 남이 눈치 채지 않게 아주 조금씩 절식하는 노력이 더 아름답다고 본다. 나는 공양 시간이 되면 나그네에게도 너그럽게 열려 있는 절 문화를 사랑한다. 그리고 절에서 한번 밥을 먹고 싶다는 외국 손님들을 데리고 가도 마다하는 일 없이 환대해 주시는 스님들을 많이 알고 있어 행복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읽을 적마다 마음이 겸손하고 따스해지는 ‘공양게’를 오늘도 다시 읽어 본다. 내기 아직도 살아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림에 감사하면서 밥을 먹는 그만큼 나의 사랑도 깊어지기를 기도해 본다. 내가 절밥을 언제 또 먹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처럼 바람 많이 불고 스산한 날은 정갈하고 푸근해서 좋았던 따듯한 절밥, 자비의 밥상이 그리워진다.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
꽃이 지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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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 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 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이해인 <잎사귀 명상> 전문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더 잘 보이듯이 누군가 내 곁을 떠나고 나면 그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평소에 별로 친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크게 보인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경험하는 만남과 이별을 잘 관리하는 지혜만 있다면 삶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웬만한 일은 사랑으로 참아 넘기고,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마침내는 이해와 용서로 받아 안는 노력을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서로의 다름을 비방하고 불평하기보다는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음이 놀랍고 신기하네!’ 하고 오히려 감사하고 감탄하면서 말이다.
1991년 가을, 수녀회 설립 60주년 기념식수로 우리가 성당 앞에 심었던 느티나무가 이제는 커다란 그늘을 드리울 만큼 둘레를 넓히며 뿌리 깊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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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서 있다. 초록빛 잎사귀들을 흔들면서 오늘은 느티나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에 그대로 적어 두며 고마운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마음을 맑게 더 맑게, 샘물처럼!
웃음을 밝게 더 밝게, 해님처럼!
눈길을 순하게 더 순하게, 호수처럼!
사랑을 넓게 더 넓게, 바다처럼!
기도를 깊게 더 깊게, 산처럼!
말씨를 곱게 더 곱게, 꽃처럼!
한꺼번에 실천하기엔 주문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부담되지만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멋진 잎사귀를 흔드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있으리라. 이렇게 기대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 행복한 여름이다.
■ 봄 편지 1
-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
고운 말 이름 짓기 대회에서 입상한 어느 미용실 이름이 ‘머리에 얹은 봄’이었다는 기사를 보고 참 새롭고도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의 봄은 만들어야 온다는 말을 다시 기억하면서 나의 마음에도 봄을 얹어야지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봄이 일어서니
내 마음도 기쁘게 일어서야지
나도 어서 희망이 되어야지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지
그렇구나 그렇구나
마음에 흐르는 시냇물 소리……
- 이해인 <봄 일기 - 입춘에>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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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꽃은 땅속의 학교에 다니지요 / 문을 닫고 수업을 받는 거지요”로 시작되는 타고르의 <꽃의 학교>라는 시를 읽으며 봄의 정원을 산책합니다. 제비꽃, 민들레, 봄까치꽃, 천리향 등등 여러 종류의 꽃들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 뜰에 서면 봄은 우리에게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일러줍니다. 봄에는 너도나도 약속이나 한 듯이 꽃구경을 하지만 우리 마음을 꽃마음으로 만들고 우리의 자리를 꽃자리로 만들 수 있어야만 우리의 봄은 향기롭고, 꽃놀이도 그만큼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꽃에게로 다가가면 / 부드러움에 찔려 / 삐거나 부은 마음 / 금세 / 환해지고 선해지니 / 봄엔 /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이라고 말하는 함민복 시인의 <봄꽃>이란 시는 얼마나 어름다운지요! 혹시 누구하고 살짝 삐친 일이나 미워서 부은 일이 있다면 시인의 표현대로 어디 가서 부드럽고 아름다운 ‘꽃침’을 맞고 환하고 선한 마음을 되찾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나라에서 책임을 맡은 분들은 일부러라도 짬을 내어 ‘꽃침’을 많이 맞아야만 주변에 더 환하고 선한 봄을 퍼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다운 3월아, 어서 들어오렴. 빨리 달려오느라 얼마나 숨이 차겠니? 나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자. 난 네게 할 이야기가 많단다”하고 노래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깁니다. 밖에 나가서 꽃 구경을 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이 시인처럼 혼자만의 방에 봄을 데리고 들어가 고요히 내면의 이야기를 나누며 명상에 잠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기의 처지를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서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게 하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저의 어느 산문집에 있는 <봄과 같은 사람>을 누가 한번 인용한 후로 인터넷에도 많이 떠다니는 이 글을 저도 다시 한번 읽어 보며 봄과 같은 사람이 되리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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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술이 떨리는
매화 향기 속에
어서 일어나세요. 봄
들새들이
아직은 조심스레 지저귀는
나의 정원에도
바람 속에
살짝 웃음을 키우는
나의 마음에도
어서 들어오세요. 봄
살아 있는 모든 것들
다시 사랑하리라 외치며
즐겁게 달려오세요. 봄......
- 이해인 <입춘> 전문 -
■ 봄 편지 2.
- 삶은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 자유 시간 -
3월의 바람 속에
보이지 않게 꽃을 피우는 당신이 계시기에
아직은 시린 햇빛으로 희망을 짜는 나의 오늘
당신을 만나는 길엔
늘상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살아 있기에 바람이 좋고
바람이 좋아 살아 있는 세상
혼자서 길을 가다 보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드는 당신이 계시기에
나는 먼 데서도 잠들 수 없는 당신의 바람
어둠의 벼랑 끝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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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일어서는 3월의 바람입니다.
- 이해인 <3월의 바람 속에> 중에서 -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내가 임의로 ‘봄비를 기다리며 첫 러브레터를 쓰는 달’이라고 명명한 3월을 나는 어느 달보다도 좋아한답니다. 꽃샘바람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네요. ‘시간을 아껴 써라. 하루 한 순간도 낭비하지 말고 소중하게 살아라!’ 잎샘바람은 또 말하네요.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넘어지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 죽지 말고 다시 부활하는 법을 배워라!’
오늘 불쑥 처음으로 나를 찾아온 젊은 독자인 그대와 함께 광안리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대가 나에게 해달라던 덕담을 이 글로 보충할까 합니다. 날씨가 차갑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하늘과 바다의 빛깔도 더욱 맑고 푸르고 투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체험했지요? 우리네 삶 역시 시련의 바람을 잘 이겨 내야만 튼실한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음을 바닷바람 속에서 이야기 했습니다.
무엇이 성공인가
- 랄프 왈도 에머슨 -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 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듯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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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 스님의 편지
김수환 추기경께서 세상을 떠나신 지 일 년 일 개월 만에 법정 스님마저 떠나시니 종교에 관계없이 많은 분들이 허전한 마음을 표현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 생전에 문병 한번 못 간 것. 고별식에도 못 간 것이 다 맘에 걸렸지만 스님은 나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 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클라우디아 수녀님. 요즘은 비실비실하지 않습니까?
마음 내킬 때 훌쩍 다녀가세요. 달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산에는 요즘 오동나무 꽃이 지고 있어요. 작약이 새로 피어나고 후박나무 그늘도 두터워 집니다. 철새들이 다시 옛 깃에 찾아와 깃듭니다.
그럼 산에서 만납시다.
단오절 불일암에서 합장
어느 날 조그만 그림엽서 한 장에 스님이 적어 보내신 글입니다. 강원도에 계실 적에도 그렇고, “그럼 산에서 만납시다!” 하며 일부러 불일암에도 초대해 주셨는데 선뜻 가지 못한 것도 새삼 후회가 됩니다.
오늘은 흰 구름 흘러가는 하늘을 보며 ‘스님 청안하신가요? 구름 수녀님 하고 한번 더 불러 주세요!’라고 청해 봅니다.
스님의 친필을 갖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나를 스님께 소개해 준 친한 친구에게 스님의 옛 편지들을 보내주고 나니 나에게 남은 것이 그리 많지 않지만 스님 생각이 나면 한 번씩 편지들을 꺼내 다시 읽어 보는 기쁨을 누리곤 합니다.
1980년대 불일암에서 보내신 편지와 2000년대 강원도 오두막에서 보내신 편지들을 스님 좋아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어 소개해 봅니다. 비록 나 개인에게 보내신 글이긴 하지만 한 편의 묵화 같고 수채화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내용이라 여겨지네요. 예리한 스님의 눈빛과 음성, 정겹고 따뜻한 속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편지에서 스님이 좋아하시던 푸른 소나무와 작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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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기도서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몇 장 읽는데 모두가 귀한 생명의 말씀입니다. 수녀님이 지니셨던 것을 제게 건네주니 더욱 고마울 뿐입니다. 성경 소구도 찾아 읽겠습니다.
지루한 장맛비가 개안 것 같아 우선 마음이 후련합니다.
숲이 한층 풍성해진 것 같아요. 오늘은 아침부터 여름 옷가지를 꺼내어 풀 먹여 손질하고 질근질근 밟아 다렸습니다.
여름이 구체적으로 다가섭니다. 홑이불도 삼베로 갈았습니다.
빗속에서 애처롭게 피어나던 달맞이꽃이 며칠 점부터는 제대로 환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갓 피어난 그 노랑빛은 얼까지 드러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꽃의 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으로 이루어졌지요.
그러기에 그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겠지요.
이 여름에도 건강하십시오.
1980년 7월 5일 산에서 합장
나는 수녀님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 여러 가지로 받기만 합니다.
♣ ♣ ♣
수녀님, 11월의 숲은 차분하여 좋습니다.
가진 것 다 털어버리고 난 후의 홀가분함 같을 걸 느낄 수 있어요.
가랑잎이 수북이 쌓인 숲길을 가노라면 산에서 사는 고마움을 지닙니다.
우리 불일은 김장도 다 끝냈고, 정랑에 넣을 가랑잎도 쌓아두었고....
- 중 략 -
아주 건강하고 기쁘고 생생한 날들을 살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수도자에게는 건강이; 유일한 밑천이지요. 심신이 하나임을 잊지 마세요.
나는 얼마 동안 잡문 안 쓸 것입니다. 없는 듯이 묻혀서 속 뜰이나 가꿀래요. ‘십자가의 길’팀들한테 좋은 수도자가 되라고 안부 전합니다.
하루하루가 새날이기를 빕니다.
1980. 11. 27 법정 합장
♣ ♣ ♣
- 12 -
구름 수녀님께
밖에 나갔다 돌아와 뒤늦게 수녀님의 활자화된 정다운 편지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광안리 바닷가 그 집 간지도 오래되고, 수녀님이 우리 불일에 다녀간 지도 한참 됐어요. 그 사이 하산하여 낯선 거리에서 스쳐 지나긴 했지만요.
나는 나이가 드는지 내 자신은 세월을 잊고 사는데 비행기 표를 살 때면 10% 경로 할인을 해 주어요. 고맙기보다는 쓸쓸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오늘은 비가 개어 고추밭 매 주고, 아욱 뜯어 끓이고, 상추와 케일로 쌈 싸 먹으려고 점심거리 챙겨 두었습니다.
지금 생각에는 7월 하순에 잠시 불일에 내려가 며칠 머물다 오려고 하는데 그때 인연이 닿으면 불일에 오셔서 우리 오랜만에 ‘현품대조’ 했으면 싶습니다. 요즘 어떤 책 읽느냐고 했는데 프란츠 알트의 ‘생태주의자 예수’와 간디의 제자 비노바 바베의 ‘천상의 노래(바가바드기타 이야기)’를 읽으면서 산방의 고요를 누립니다.
장마철에 젖지 말고 밝게 사세요. 광안리 식구들에게도 초록빛 문안을... 2003. 7. 1 법정 합장
♣ ♣ ♣
구름 수녀님께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 보고 또 씁니다. 우표를 받고 보니 수녀님은 전이나 다름없이 정정하구나 싶습니다. 고마워요.
편지와 책 읽었습니다. 70여 년 동안 이 몸을 끌고 다녔더니 부품이 삐걱거려 지난 겨울 한철 병원을 드나들며 정비를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기적 같기만 하고 둘레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앓고 나면 철이 든다더니 뒤늦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언제 만났는지 까마득하네요. 건강할 때 가까운 벗들과 자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숫타니파타’를 펼치면서 출가 수행자의 길을 거듭 음미하고 되돌아보게 됩니다.
수녀님, 늘 청청하셔요.
2009. 무자년 입하절 강원도 수류산방에서 법정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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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 회갑을 맞는 김용택 시인에게 -
섬진강의 시인이신 김용택 선생님, 남들이 흔히 갖는 아호도 없으신 듯 이젠 섬진강 자체가 이름이 되신 선생님, 세상의 모든 것들과 늘 연애할 준비가 되어 있는 푸른 마음의 소년 선생님, 분교 아이들이 언젠가 땅콩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지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의 모든 시들은 참으로 땅콩처럼 고소하고 감칠맛이 납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질리지 않고 그 시들을 영양가 많은 간식으로 먹는가 봅니다.
언젠가 부산의 어느 다도회 모임에서 선생님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절절한 음성으로 낭송해 주던 한 여성을 잊지 못합니다. 그 시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상기된 표정으로 시 안에 담긴 이야기의 아름다움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제가 주관하는 어느 모임에서 제 시를 읽기로 했던 분이 양해를 얻어 읽은 시가 ‘그 여자네 집’이었습니다. 그는 중간에 읽다가 틀리자 그 긴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그 여자네 집’을 잊지 못하고 감탄하며 가슴에 지니고 있습니다.
- 중 략 -
부산에 올 일 있으면 우리 집에 놀러 오시고 하루 밤 머무시라는 말도 빈 말이 아니랍니다. ‘살구꽃이 하얗게 날리는 집’ 그 여자가 백 명도 넘는 우리 집에 오시면 가슴이 뛸지도 몰라요. 수녀원 손님실에 머무는 탓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각시와 할 수 없이 따로 잘 수밖에 없었다는 불평 섞인 푸념을 바람결에 전해 들었기에 다음에 오시면 침대 두 개를 하나로 모아 붙이고 풍선과 꽃으로 신혼부부 방처럼 멋지게 꾸며 드릴테니 어서 오기만 하세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호호호. 상상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네요.
……우리들에게 깨끗한 영혼을 불어넣어 주시는 수녀님과 이렇게 편지를 쓴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답니다. 우리 모두 수녀님을 사랑합니다. 수녀님은 풀꽃이시고, 저 쪽 맑고 깨끗하고 서늘한 하늘입니다. 우리들에게 늘 맑은 샘물을 주시는 수녀님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어느 해 여름 빛바랜 원고지에 다정하게 써 보내신 편지의 한 구절을 읽으려니 제 가슴이 지금도 소녀처럼 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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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야 날 저문다
저뭄을 따라가며
소리 없이 저물어가는 강물을 보아라
풀꽃 한 송이가 쓸쓸히 웃으며
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다
그러면 다정히 내려다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
방금 제가 좋아하는 ‘누이야 날 저문다’ 안에 들어 있는 이 시를 읽고 나니 제가 진짜 누이가 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섬진강의 시인이 사는 그 정겹고 아름다운 마을에 제가 불쑥 찾아가 포근하고도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용택아, 밥 먹었니? 지금 나하고 저 노을진 강변을 거닐어 보지 않을래?” 그러면 “오매, 수녀님이 내게 시방 반말해 부렀네, 잉?”하며 정답고 짠한 표정으로 웃으시겠지요?! 사랑합니다.
■ 서로를 배려하는 길이 되어서
내가 잘 아는 혁이라는 청년이 이웃에게 실천한 애덕의 배려가 따뜻한 감동을 준다. 한번은 그가 동대구에서 부산으로 오는 오후 3시 30분 무궁화호 열차를 탔는데, 바로 옆자리에 어린 두 딸과 동행한 일본인 남자가 청년에게 자꾸만 무어라고 말을 걸어왔다. 청년은 일본어를 모르는데다 영어로도 말이 안 통하자 일어를 전공한 친구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어 대화를 하도록 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내용은 그 일본인이 5시 30분에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배를 타야 하는데 열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배를 놓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따져 보니 역에 내려 택시를 타도 늦을 것만 같자 청년은 부산 지리를 잘 아는 지인에게 긴급 문자를 보내 마중을 나오도록 했고, 그 일본인 일행을 5시 10분까지 터미널에 데려다 주어 무사히 배를 탈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혹시라도 나쁜 사람으로 오인해 불안해할까 싶어 학생증까지 보여 주며 안심시키며 목적지까지 동행한 청년, 미안한지 자꾸만 돈을 주려고 하던 그 일본인은 두 딸과 함께 배에 오르는 내내 머리를 조아려 고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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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반복하더라고 했다.
다른 이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내가 고맙다고, 잘했다고 이메일을 보내니 청년은 내게 이렇게 답을 해 왔다. “사실 조금 부끄럽기도 하구 그래도 수녀님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은 좋네요. 사실 별거 아니긴 한데……. 부산역에 기꺼이 마중 나와 준 친구, 그리고 통역을 도와 준 그 친구 덕분에 좋은 일 하고, 그 일본분도 한국에 대해 마지막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가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더라구요. 앞으로 다 나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귀찮아하며 피하거나 모르는 척하지 않는 관심, 겉도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는 정성, 선한 일을 하고도 보답을 바라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이웃에게 무상으로 빛을 주는 축복이 되고 사랑의 길이 되는 행동일 것이다. 욕심과 이기심을 아주 조금만 줄여도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불안과 의심 없는 세상을 꿈꾸며
약 열흘간 몇 군데 특강이 있어 자리를 비웠다가 수녀원에 돌아오니 복숭아꽃 살구꽃들이 만발했다. 다음날 오전 사무실에 내려가 컴퓨터 옆 서랍장을 여니 내가 봉투에 넣어 둔 우편발송비 일체와 요긴하게 사용하려고 보관해 둔 도서상품권들 그리고 설날 주교님과 스님으로부터 받은 세뱃돈 봉투까지 몽땅 없어졌다. 내가 15년을 애용하던 소형 올림푸스 카메라까지 들고……. 그는 생계형 도둑일까. 단지 용돈이 귀해 실례를 범한 젊은이일까. 아니면 평소에도 이 방을 곧잘 드나들었던 손님들 중의 한 사람일까……. 나름대로 온갖 상상을 하며 우리 수녀님들에게 이야기 했다.
온갖 위로와 충고, 스스로의 후회와 번민으로 자책해 보지만 때는 늦었다.
얼마 전에 어느 지인이 인터넷으로 보내준 ‘오십견의 아픔’이란 제목의 글을 읽고 한참 웃은 일이 있는데 하필 지금 왜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지 나도 모르겠다.
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가 집주인에게 손들라고 해도 안 들길래 다그치니 오십견이라 못 든다고 했다. 마침 강도도 오십견이었던 터라 둘이 앉아 오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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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 이야기만 하다가 강도질도 못하고 돌아왔는데, 며칠 후 서로 연락하여 함께 치료를 받으러 가서는 치료비를 강도가 냈다고 한다. 실화인지 꾸며낸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내가 지금껏 크고 작게 사기를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경우는 내가 매일 안심하고 일하던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 무섭고 불안하여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문소리만 나도 놀라고, 평소에 믿던 사람도 믿지 못하게 만드는 의심병 또한 봄날의 도둑이 준 부작용이 아닐 수 없다.
마당에 꽃이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꽃씨나 가져가야지……
피천득 님의 사랑스런 시 ‘꽃씨와 도둑’에 나오는 맘씨고운 도둑을 그려 본다.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왔다가도 아무것도 탐낼 것 없고 가져갈 것 없을 만큼 청빈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고요히 다짐해 본다. 꽃도둑 책도둑은 쉽게 용서가 되지만 소임터의 서랍을 샅샅히 뒤져간 그 도둑은 쉽게 용서가 안 되는 요즘, 가뜩이나 밤에는 불면증으로 고생인데 해외의 친지가 보내준 라벤더 향을 코에 발라도 정신이 더 말똥말똥해지고 잠이 안 와 걱정이다.
■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내가 여중 시절에 처음 접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모든 시들은 다 아름다웠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어 누나에게 편지를 부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으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고, ‘별 헤는 밤’을 읽고 나면 가을과 별이 더 좋아지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시’를 읽었을 때의 그 향기로운 여운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이 시는 지금도 전 국민의 애송시라지만 나 역시 기도처럼 ‘서시’를 자주 외우며 살았고, 어쩌면 그 시의 영향으로 수도자의 삶을 더 아름답고 행복하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내가 암으로 힘든 투병을 하면서도 짬짬이 시를 쓸 수 있는 저력 역시 모태신앙의 영향은 물론 소녀시절부터 애송했던 이 아름다운 시집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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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었음을 믿는다.
‘서시’ 중에서도 나의 마음을 가장 많이 흔든 구절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이었다. 이 구절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나는 시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막연히 시인이 되는 꿈을 꾸었으며, 감히 인류애에 불타는 마음으로 이웃 사랑에 헌신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사랑하되 하늘을 섬기는 마음으로 알아들었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한계와 삶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는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는 겸손함으로 알아들었다.
이 시를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부족하나마 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었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수도자가 되어 있다.
당신을 위한 나의 기도가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당신 안에 숨 쉬는 나의 매일이
읽을수록 맛드는 한 편의 시가 되게 하소서
때로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운 빛나는
한 편의 시처럼 살게 하소서
1983년 내가 세 번째 시집인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를 낼 적에 나도 윤동주 시인을 흉내 내어 시집 앞에 서시도 하나 넣었다. 첫 서원(1968) 후 15년, 종신 서원(1976) 후 7년차인 수도자로서의 결연한 다짐 같은 것을 나름대로 요약한 내용으로 볼 수 있겠다. 훗날 뜻밖에도 이 구절을 좋아하는 분들도 더러 만나게 되어 기뻤고, 요즘도 종종 기도처럼 이 서시를 되뇌곤 한다.
1941년 24세의 나이로 불멸의 서시를 썼으며,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해이기도 한1945년, 일본의 한 형무소에서 슬프게 세상을 떠난 윤동주 시인,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기도 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나의 보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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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다. 어린 시절 지녔던 초판본은 워낙 귀중한 것이라 어느 대학 도서관에 기증했고, 지금은 정음사에서 나온 1972년판을 갖고 있는데, 그 하나라도 갖고 있으니 다행이다.
정작 시인 본인은 출간을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대학 졸업기념으로 훗날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될 자필 시집을 미리 만들어 두었던 윤동주, 그리고 전쟁 중에도 윤동주가 남긴 원고들을 땅에 묻어가면서까지 소중히 보관했던 그의 친구와 가족들 ……. 그의 숨결이 담긴 원고가 그렇게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나는 요즘 짧은 애송시
문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며 분위기에 따라 낭송하는 기쁨을 누린다. 예를 들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젊은이들에게는 “커피에 설탕을 넣고 크림을 넣었는데 맛이 싱겁군요. 아 그대 생각을 바트렸군요” 하는 윤보영 시인의 시를. 사소한 재발견을 강조할 적엔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하는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를, 가까운 이들과 화해하기 힘들다고 고백하는 이들에겐 “백년 살 것 아닌데 한 사람 따뜻하게 하기 어찌 이리 힘드오"라고 표현한 김초혜 시인의 ‘사랑초서’의 일절을 들려주면 다들 좋아 한다.
당신은 외롭고 슬프게 떠났지만
시의 혼은 영원히 살아서
갈수록 더 밝고 고운 빛을 냅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던 당신은
종족과 이념을 뛰어넘어
서로 다른 이들을 다정한 친구로 만드는
별이 되셨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재촉하는
2월의 바람이 되셨습니다.
모국에 남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단 한 권의 시집만으로도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끝없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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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이들의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부활하는 당신은
가장 아름다운 스승이며
잊을 수 없는 애인입니다.
고통의 어둠과 눈물 속에도
삶을 사랑하는 법을, 맑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희망의 별이 되어 주세요
당신을 닮은 선한 눈빛의
시인이 되는 꿈을 꾸는 우리에게
오늘은 하늘에 계신 당신이
손 흔들며 웃고 있네요
- 이해인 <별이 된 시인 윤동주에게> 전문 -
■ 어머니를 기억하는 행복
며칠 전 일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어머니가 머무시던 방에 들어가니 몇 달 전 영정사진 옆에 내가 적어 두고 온 메모 쪽지가 눈에 띈다. “엄마가 안 계신 세상 쓸쓸해서 눈물겹지만 그래도 엄마를 부르면 안 계셔도 계신 엄마, 사랑합니다 ………. 그립습니다.” 라고
“엄마 아니면 누가 이렇게 언니의 자료를 모아 두었겠어?”하며 동생이 내미는 파일을 보니 수십 년 전 내가 보낸 상본이나 메모 신문에 난 기사들을 오려서 끼워놓으셨다. 동생이 물건 정리를 우선 했다는데도 곳곳에서 “이건 작은 수녀 줄 것”, “이건 큰 수녀 줄 것”하는 쪽지들이 나와 잠시 눈시울을 적셨다.
성당의 노인대학에서 특별한 날 나누어 주는 타월이나 내의를 열심히 모아 두었다가 일 년에 두 번 수녀딸들이 있는 수녀원에 오실 적마다 웃으며 건네주시던 어머니. 아직 건강하실 적엔 고운 헝겊가방을 만들고 묵주 주머니나 털바지를 직접 떠서 소포로 보내주시곤 했다.
부모를 여읜 성직자 수도자들이 공석에서 너무 많이 울면 볼썽사나우니 힘들어도 슬픔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말을 평소에 하도 많이 들었기에 나도 빈소, 장례미사, 하관예절에서는 모질게 맘을 먹고 잘 절제하여 그런대로 넘어갔지만, 막상 모든 일이 끝나고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서는 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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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힘든 슬픔에 자꾸만 눈물이 나 지금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책을 읽다가, 빨래를 하다가, 산책을 하다가 문득문득 콧날이 시큰하고 , 눈물이 고이고, 나의 전 존재 밑바닥에서 울음이 차오르는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신지 백 일 만에 딱 두 번 어머니 꿈을 꾸었는데 한 번은 비단 한복을 입으신 슬픈 표정으로, 또 한 번은 양장을 하신 기쁜 표정으로 나타나셔서 그리움을 달랜 일이 있다. 생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꿈길에 나타나셨던 어머니가 하늘소풍 떠나신 후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아 간절히 빌고 빌어 아주 잠시나마 나타나신 거였다.
날마다 새롭게 그리고 끊임없 어머니를 기억하며 그리워하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고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내게 또 한 분의 ‘작은 하느님’으로 이 세상을 떠나서도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안에 현존하는 사랑의 애인이다. 더 깊고 높은 선과 진리와 아름다움을 지향하며 사는 수도 여정에서 눈에 보이진 않지만 나를 가르치고 길들이며 교육하는 수련장이시다. 힘들어할 적마다 용기를 내라고 격려를 주는 정다운 친구이며 수호천사이시다. 자연이나 사물이나 인간에게서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멋진 감탄사로 나와 함께 환호하는 예술가이며 시인이시다.
“엄마, 엄마는 살아서도 떠나서도 우리에겐 최고의 선물이셔요!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는 이 마음 또한 큰 행복임을 두고두고 감사드립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
■ 11월의 편지
11월초에 입는 검은 수도복을 상복으로 입고 동생과 함께 포천의 어머니 묘원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서른아홉에 혼자되어 96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 57년 세월을 오직 신앙 안에서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 오셨습니다. 혼자만의 고독을 들키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신 흔적이 역력한 어머니의 수첩을 꺼내 읽으니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언제나 자비하신 하느님께 의탁하자. 참고 기다리자. 희망을 갖자.”
“내가 변변치 못해도 두 딸을 수녀로 만들었지.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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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아야 해. 올바른 길로 가야 해.” “만났다 헤어졌다. 반가웠다. 서운했다. 이것이 인생이야.” “연분홍 꽃수건 마음에 든다.” “영적인 꿈을 선물로 받으니 감사하다.” “이젠 마감하고 싶다. 갈 곳으로 가고 싶다.”……
어머니의 글씨는 하얀 나비가 되고 빨간 단풍이 되어 날아옵니다. 특히 40여 년간 수도원으로 어머니가 절기마다 꽃잎을 넣어 적어 보내신 편지들은 어찌나 소박하고 아름다운 영성의 향기를 풍기는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맑고 깊은 슬픔 속의 위로가 되어 줍니다. 제가 예비수녀 시절에는 ‘해라’체로 쓰셨지만, 첫 서원을 하고 나서는 ‘습니다’ 체로 이어갔던 어머니의 편지 한 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닮은 강한 믿음, 고운 마음씨의 복된 수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 두 딸이 있는 수녀원을 다녀오면 삶의 용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곤 했는데(……)막내가 미국 가고 없으니 요즘은 수녀들 소식도 멀어지는 느낌으로 이모저모 아쉽고 기다려지기도 해요. 그러나 어린것들을 생각하면 내 망녕된 욕심은 움찔해지지요. 수녀는 이제 힘에 겨운 직책을 지게 되어 서울에도 잘 못 오는지? 그야말로 한 해가 야속할 정도로 빠르네요. 엄마도 나이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조마조마한 삶으로 기회 놓칠세라 기도하며 살아가지요. 작은수녀 털바지 떠서 두었는데 다음번에 갖고 가든지 부치든지 좋을 대로 합시다. 참 오늘 성당 회합에서 어떤 자매가 해인 수녀의 시를 읽었는데 다른 회원이 너무 좋다고 내게 부탁을 해요. 산처럼 무게있는 침묵과 겸덕을 표현한 내용인데 끝부분 마다 ~하리.~하리기 나오던데 기억을 못해 미안하군요. 밤이 늦어 두루 안부 전하며 이만 끊으리다.
- 서울에서 엄마 소식 -
■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작은 기쁨들과 친해야 하네
아침에 눈을 뜨면 작은 기쁨 부르고
자꾸만 부르다 보니
작은 기쁨들은
이제 큰 빛이 되어 나의 내면을 밝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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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강물이 되어 내 혼을 적시네
내 일생 동안 작은 기쁨이 지어 준
비단 옷을 차려 입고
어디든지 가고 싶어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고맙다고 말하면서
즐겁다고 말하면서
자꾸만 웃어야지
- 이해인 <작은 기쁨> 전문 -
새해 새봄을 맞으며 ‘행복하세요!’ ‘기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좋은 일만 가득 하시기를!’하는 덕담을 수도 없이 들었다. 올 한 해 내가 결심한 것 중의 하나는 하루 한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기쁨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결심하고 다짐한다고 해서 기쁨이 오는 것일까 반문할지 모르지만 의식적으로 노력하다 보면 참으로 많은 기쁨들이 여기저기서 달려오는 것을 본다.
며칠 전 모처럼 높은 산에 올라갔다.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자리에 주의사항 두 개가 붙어 있는데, 한 곳에는 “열 사람이 줍기보다 한 사람이 안 버리기!” 또 한 곳에는 “마음의 찌꺼기만 버리고 가십시오.”라고 써 있었다. 어느 절에는 “아니 온 듯 다녀가시옵소서.”라고 적혀 있다더니……. 단순히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엄벌에 처함!” 이란 말보다는 얼마나 정겹고 따뜻한 표현인가!
근래에 우리 집에 오신 어느 사제께서 누구의 재능과 장점을 말할 때면 꼭 “그분의 좋은 점은 우리를 위해서도 특별한 선물이지요!” 라고 하시는데, 그 표현이 따뜻하고 좋았다. 나도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격려하고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축복의 말을 해주어야지 다짐해 본다.
좋은 말, 긍정적인 말, 밝은 말을 더 많이 하고 사는 새해 새봄이 되길 기도한다. 입만 열면 다른 이를 비방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입만 열면 다른 이의 좋은 점을 말하며 비난보다는 격려의 말을 하고 누가 험담을 할라치면 오히려 덮어 주거나 변명해 주려고 애쓰는 이들도 있다.
“한마디의 친절한 말은 의기소침한 사람들에게 격려를 준다. 그리고 잔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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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무덤에 가는 날까지 흐느껴 울게 만든다.”
- 플톤 쉰 주교의 어록 중에서 -
“실없이 칭찬하면 말이 무게를 잃는다. 근거 없이 비방하면 비난이 내게로 돌아온다. 지위가 높은 사람의 한마디는 아랫사람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좋은 말도 가려서 하고, 충고도 살펴서 하라.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박힌다. 뜻 없이 한 행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말과 행동이 사려 깊지 못해 원망을 사고 재앙을 부른다.”
-다산 정약용의 어록 중에서 -
■ 12월의 편지
- 지상의 행복한 순례자 -
12월이 되니 벌써 크리스마스카드들이 날아옵니다. 해마다 달랑 한장 남은 달력을 보면 늘 초조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느긋하게 웃을 수 있는 나를 봅니다. 이별의 슬픔과 몸의 아픔을 견디어 내며 ‘아직’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동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님의 병실에서 그분과 함께 깨죽을 먹은 후 내가 기도를 부탁했을 때 하도 말을 길게 하시길래 “힘드신데 좀 짧게 하시죠.” 하니 “상대가 문인이라 나름대로 신경 좀 써서 하느라 그랬지!” 라고 웃으며 대답하셨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우린 꼭 한 반 해야 한다고 말했던 화가 김점선, 고운 카드와 스티커를 즐겨 선물했던 장영희 교수, 문병 와서 덕담을 해주던 옛 친구 윤영순……. 모두 다 저세상으로 떠난 슬픔 속에 추모시 쓰느라 바빴던 한해였습니다.
1980년대 내가 돌보던 앳된 지원자들이 이번에 서원 25주년을 지내는 모습을 눈물 어린 감동 속에 지켜보면서 이만큼 오래 살았으니 이젠 떠나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기도 했습니다. 만날 적마다 “좀 어떠세요?” 나의 건강 상태를 묻는 이들에겐 단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워 주춤할 때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실은 괜찮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이 암환자의 특성이기에 말입니다.
병이 주는 쓸쓸함에 맛들이던 어느 날 나는 문득 깨달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며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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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내일’ 임을 새롭게 기억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상의 여정을 다 마치는 그날까지 이왕이면 행복한 순례자가 되고 싶다고 작정하고 나니 아픈 중에도 금방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마음엔 담백하고 잔잔한 기쁨의 환희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전보다 더 웃고 다니는 내게 동료들은 무에 그리 좋으냐고 되묻곤 했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답으로 들려주던 평범하지만 새로운 행복의 작은 비결이랄까요. 어쨌든 요즘 들어 특별히 노력하는 것들 중 몇 가지를 적어 봅니다.
그 하나는 무엇을 달라는 청원기도 보다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한 감사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감사할 일들이 갈수록 더 많아지고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는 늘 당연하다고 여기던 일들을 기적처럼 놀라워하며 감탄하는 연습을 자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삶이 매 순간마다 축제의 징으로 열리는 느낌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실수나 약점을 너무 부끄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여유를 지니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부탁받은 일들을 깜빡 잊어버리고,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가고, 다른 이의 신발을 내 것으로 착각해 한동안 신고 다니던 나를 오히려 웃음으로 이해해 준 식구들을 고마워하며 나도 다른 이의 실수를 용서하는 아량을 배웁니다.
마지막 하나는 속상하고 화나는 일이 있을 때는 흥분하기보다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는 것을 기억하면서 어질고 순한 마음을 지니려고 애씁니다. 분수에 맞지 않는 욕심과 이기심이 슬며시 고개를 들 때면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고 또 한번 자신에게 나직이 일러 줍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적엔 ‘언젠가는 영원 속으로 사라질 순례자가 대체 이해 못 할 일은 무엇이냐’고 얼른 마음을 바꾸면 어둡던 마음에도 밝고 환한 평화가 찾아옵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
사랑은 그래도 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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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그래도 힘이 된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
사소한 것들이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고
소리치며 바람이 지나간다
- 천양희 <지나간다> 중에서 -
제2장 어디엘 가도 네가 있네
- 우정 일기 -
■ 꽃을 보고 오렴
네가 울고 싶으면
꽃을 보아라
웃고 싶어도
꽃을 보아라
네가
늘 너와 함께할 나를 만나러 오기 전
준비가 되어 있는 꽃 꽃부터 먼저 만나고 오렴
꽃은 아름다운 그만큼 그럼 우리는 절대로
말씨도 곱단다. 싸우지 않을 거다
변덕이 없어 누구의 험담도 하지 않고
사귈 만하단다 내내 고운 이야기만 할 거다
이 오랜 우정일기를 힘들 때일수록 서로 사랑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격려해 준 나의 친구들에게 바치고 싶습니다. 나의 쾌유를 빌어 주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벗들에게 전하는 내 고마움의 편지이기도 합니다. 이 글들에 표현된 친구들의 모습은 어느 특정한 개인이기보다는 오랜 세월 동안 경험한 여러 친구들의 총체적인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 담긴 생각들이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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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가꾸어 가는 세상의 모든 친구들에게 작은 기쁨과 위로가 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친구에겐 내 감정을
도무지 숨길 수가 없네요
표정 하나도 놓치지 않으니
도무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네요
그는 내가 필요한 것을
참 용케도 알아차리네요
하느님도 아니면서……
- 이해인 <친구에겐> 전문 -
♣ 어제의 그리움은 시냇물이고
오늘의 그리움은 강물이고
내일의 그리움은 마침내 큰 바다로 이어지겠지?
너를 사랑한다. 친구야.
♣ 오늘은 잔디밭에서 새들과 함께 놀았어.
네잎 클로버를 찾고 있는데 새 두 마리가 와서 같이 찾자는구나. 새들도 친구를 데리고 다니더라. 나는 또 너를 생각했지. 바람도 내 옆에서 가만히 웃고 있다.
♣ 몸이 아프니까 네가 더욱 생각난다. 네가 더욱 보고 싶다. 세월이 많이 가도 보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줄지를 않네. 너는 아프면 안 돼. 내가 아픈 것으로 충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생각하며 아픈 것도 잘 참는 나를 오늘은 더 따뜻하게 칭찬해 주지 않을래. 친구야.
♣ 뭐 필요한 거 없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말해! 내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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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너만 필요하다고 대답하자마자 너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지.
나는 진심이었는데 농담으로 받아들였니? 혹시 감동 받아 그랬니? 몸이 아프고 나서 갑자기 욕심도 의욕도 없어진 내가 불안하고 슬퍼서 그랬니? 어쨌든 나에겐 네가 필요하단다. 어떤 물건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서의 소중한 별 네가 필요하단다. 친구야.
♣ 좋은 음악을 듣다가 좋은 책을 읽다가 문득 네가 보고 싶어 가만히 앉아 있을 때가 있지. 그것이 너를 위한 나의 기도.
그런 날은 꿈에서도 너를 본다. 친구야. 그동안 내가 네게 말을 다 안 했지만 일일이 다 할 수도 없었지만 내 꿈길의 단골 손님이 바로 너인 걸 알고 있니?
♣ 힘들 땐 너무 참지 말고 실컷 울어 보라고 우는 것도 깨끗한 기도가 될 수 있다고 너는 말했지? 몸이 힘들 적엔 나무 밑에 가서 조금 울고, 마음이 힘들 적엔 성당에 가서 조금 울고 그러면 정말 편안해지곤 했단다. 내가 쏟아 낸 눈물은 하얀 소금꽃이 되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친구야……….
♣ 기도하려고 성당에 앉아 있어도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나의 친구야. 오늘은 나랑 시장에 가자. 꼭 무엇을 사지 않더라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흥정하는 사람들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 싱싱한 채소와 과일의 향기, 생선 냄새도 맡으면서 삶을 이야기 하자. 친구야. 시장 사람들의 그 열정적인 눈빛과 부지런한 손길을 보면 우울함도 사라지겠지?
♣ 내가 아주 조금만 마음 쓰고 잘해 주어도. 고맙다 고맙다 내게 되풀이해 말하는 너. 네가 본의 아니게 나를 조금 서운하게 만들었다 싶으면 귀찮을 정도로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게 되풀이해 말하는 너.
나에게 착한 마음이 없어져 갈 땐 너를 더욱 그리워한단다. 착한 마음 오라고 손짓한단다. 친구야.
아주 사소한 일에도 크게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그래야지’ 결심하게 된다. 사랑의 길을 잘 걸으려면 예민한 귀와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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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호숫가에서 너를 생각한다.
호수는 고요하게 하늘과 산을 안고 있고 내 마음은 고요하게 너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있다. 물소리 하나 없는 침묵의 호수처럼 나도 너를 위해 고요를 배우겠다. 친구야.
말 안 해도 다 알 수 있고 헤아릴 수 있는 침묵의 힘, 언어는 때로 미로와 같지만 침묵의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정은 침묵을 좋아한다. 너무 많은 말은 방해가 된다.
♣ 친구야. 내일 너를 만나기로 하였는데 오늘부터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나네.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는데 동그란 시계 위에서 네 얼굴이 웃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은 왜 이리 지루한지!
♣ 친구야.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늘 약속하는 우리지만 막상 만나면 그냥 바라보며 웃기만 하고 차만 마시고……. 할 말이 너무 많아 할 말이 없는 우리…….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가고…….
편지에 썼던 말을 만나서 하긴 쑥스러워 괜히 겉도는 이야기만 하고, 마음 같지도 않게 싱거운 말만 하고, 그래도 만남은 항상 즐거운 것, 살아서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까……. 더러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즐겁게 방향 전환을 한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 고!
♣ 네 고운 이름을 꽃잎 위에 적어 본다.
네 맑은 이름을 유리창에 적어 본다.
아무리 불러도 지루하지 않은 너의 이름……
오늘은 산에 와서 나무 위에 적어 본다.
흐르는 시냇물 위에 적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이 여기에 와 있구나. 친구야.
♣ 친구야. 난 그냥 네가 좋다. 왜 좋으냐고 물으면 답을 못하겠어. 네가 웃는 것도 예쁘고, 우는 것도 예쁘고, 질투하는 것도 예쁘고, 나에게 괜히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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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며 화를 내는 것도 예쁘고 맘에 안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좋은, 무조건 좋은 이것이 사랑이겠지? 너도 내가 그냥 좋으니?
♣ 산을 오르다가 그늘에서 종종 만나는 이끼가 고와서, 버섯들이 예뻐서 한참을 서 있곤 한다. 내 마음의 어느 기슭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그만 슬픔처럼 잊혀졌던 아름다움이 나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 것. 너는 알고 있지? 친구야.
♣ 친구야. 너는 나의 책 나는 너의 책.
오랜 세월 지나도 아직 읽을 게 너무 많아 행복하다. 우리 우정은 언제나 끝없는 연구의 대상임이 행복하지 않니?
♣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습관처럼 네게 말하곤 했지만 정작 연락이 없으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전화로 네 목소리를 듣거나 편지를 받으면 내 마음은 금방 이슬 맺힌 풀잎이 된다. 갑자기 세상이 더 환해진다.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 하는 이들끼리 오랜만에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평범하지만 놀라운 행복이다. 건강하게 살아서 듣는 목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아름답고 힘이 있다.
♣ 너에게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는 길. 오늘은 비가 내리네. 너를 향한 동그란 그리움과 기도……. 멈추지 않는 나의 웃음을 어찌 알고 동그란 빗방울들이 봉투에 먼저 들어가 있네.
동네 우체국에 가는 길은 늘 행복하다. 편지를 쓰는 일은 살아서 할 수 있는 아름답고 거룩한 소임이다. 때론 허름한 옷에 앞치마까지 두르고 간 적도 있는데 “수녀님이 정말로 글 쓰는 해인 수녀님 맞으시나요? 멀리 계시다고 여기던 분이 바로 앞에 계시니 참 신기하네요.” 우편물 점검하던 여직원이 웃으며 차 한 잔을 권했다.
♣ 너의 웃음과 나의 웃음이 포개지니 세상은 어찌 이리 밝고 환한지!
너의 눈물과 나의 눈물이 섞이니 세상은 어찌 이리 어둡고 쓸쓸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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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도와 나의 기도가 하나로 이어지니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이미 와 있는 것 같구나. 친구야.
♣ 어쩌다 내가 누구를 좀 흉보려고 하면 어느새 다른 이야기로 돌려서 더 이상 나쁜 말을 못하게 하는 너.
고운 말만 해야 어울린다며 선생님처럼 말했던 너.
그때는 조금 원망스러웠는데 시간이 가니 네가 더욱 고맙구나. 친구야.
네가 세삼 멋지구나. 친구야.
♣ 다른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듣고 마는 나의 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들어서 나를 놀라게 하는 친구야. 나도 잊어버린 말도 잘 기억하고 있는 친구야. ‘관심 있으면 잘 듣게 돼. 그러니까 친구잖아.’ 라고 너는 말했지. 때로는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네가 곁에 있어 내가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너는 알고 있니?
♣ 잘 있어, 잘 가.
서로 먼저 인사하고 헤어졌는데 금방 보고 싶은 우리.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 내내 서운해서 눈물부터 나는 우리. 기쁜 만남도 아름답지만 슬픈 이별도 우리를 이만큼 어른으로 키워 준 것 다시 고마워하자. 친구야.
‘이별은 기도의 출발’ 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지만 이별의 순간만은 슬프다. 그러나 이별의 슬픔을 잘 다스리는 일은 한결 성숙한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 네가 농사지어 보내준 포도 잘 받았어. 큰 수술 이후
회복기의 금식을 깨고 과일 먹는 것이 허락됐을 적에 처음으로 내가 먹던 그 황홀한 포도 한 알의 맛! 그 맛은 나에게 지구 전체를 대표하는 살아 있음의 맛이었어. 그 맛을 기억하며 오늘도 너에 대한 고마움으로 포도 한 알을 입에 넣는다.
♣ 어느 성당에서 강의를 하기 전에 사람들이 나의 흰 수도복 위에 감꽃 목걸이를 걸어 주었어. 어찌나 황홀하던지! 내 마음 속 이야기가 감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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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걸 보았어.
이 이야기가 어느 날 잘 익은 감이 되면 네게도 보내줄게. 친구야.
상주의 어느 성당에서 받았던 감꽃 목걸이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예비수녀 시절 수녀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두 자매를 그 성당에서 수십 년 만에 만났는데 나를 준다고 떡을 해왔지. 그들의 소박한 웃음도 감꽃을 닮았었지.
♣ 친구야. 오늘은 한가위 날.
너도 송편을 먹으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테지?
나는 끝기도 마치고 나서 둥근 달을 바라보고 별도 보면서 성당 앞의 옥상을 혼자 거닐었어. 장독대의 항아리들도 달빛을 받고 기뻐하더라. 삼십여 년 전의 어느 날 좁은 돌 틈에 핀 민들레 한 송이를 발견하고 시상을 떠올렸던 바로 그 자리를 거니노라니 여러 가지로 감회가 깊었어. 지상에서의 내 남은 날들도 달빛과 같기를 기도하니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는 달님이 다정하고 환하게 웃어 주더라.
고맙다고. 반갑다고 마음으로 절했어.
내가 ‘민들레의 영토’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 광안리 본원에서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빨리 지나간 것도 같다. 얼마 전에 입회한 열 명의 새 자매 민들레들은 내가 없을 때 들어와서 아직 얼굴도 모른다. 까마득한 나의 후배 수녀들도 달빛처럼 고요하고 부드러운 세상의 누이들이 되었으면 한다.
♣ 내가 아플 때 찾아온 네가 내 손에 쥐어준 색연필 한 자루…….
마음을 희망으로 물들여 꽃보다 아름다운 시를 쓰라는 거지?
너는 내게 진주조개도 한 개 주었지. 긴 말 안 해도 다 알아. 오늘의 아픔을 잘 견디어 나도 마침내 빛나는 진주가 되라는 거지.
♣ 너의 재능과 좋은 성격을 은근히 질투하다가 나도 조금씩 흉내를 내보니 좋은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도 없는 여행길에서 네가 다른 사람들과 웃고 이야기하는 것을 남몰래 질투하다가 많은 이들이 너를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도 선물이 된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질투심도 잘만 이용하면 한 송이 꽃이 되고 기도가 되는 것을 다시 알았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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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에서 인사한다. 친구야, 안녕? 오늘은 마음먹고 땅끝마을 부근에 갔다가 다산초당에도 다녀왔어. 이끼 낀 돌층계를 오르내리며 유배지의 고독한 바람소리를. 정약용 선생의 기침 소리를 들었어. 초당의 마루에 앉아서 나무들을 보니 말로는 표현 못할 감회가 밀려오더라 18년의 유배생활 동안 그가 남긴 많은 작품들이 우리 모두의 보물이 된 걸 보면 그도 기뻐하겠지? 많은 순례객들이 찾아오는 것을 그도 알고 있겠지? 고독을 바탕으로 더욱 아름다운 업적을 남긴 이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내 안에 큰 바람으로 일어남을 고마워하는 날이었어.
♣ 넌 지금 행복하니?
- 응.
많이 아픈데도 말이야?
- 응.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니?
- 없어.
언제라도 연락해. 미안해하지 말고…….
- 알았어.
지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자신의 건강만 생각해. 그동안 혹사시킨 몸에게 미안해 하며 오직 몸을 많이 위해 주란 말이야. 음식도 가려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알았지?
-알았어.
그런데 어째 좀 믿을 수가 없네?
- 그렇다면 미안해.
………
전화를 끊고 나서 나 혼자 빙그레 웃어 본다. 매사에 게으른 나를 너무도 잘 아는 나의 친구야.
내 몸만 생각하라는 그 말. 그지없이 고맙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도 남에게는 그렇게 말해왔지만 입장이 달라지니 정말로 쉽지 않더라.’고 친구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네.
♣ 기차 안에서 우리는 하얀 종이를 꺼내 동심으로 돌아가 끝말잇기를 했지. 좋아하는 단어를 골라 시 짓는 놀이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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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프면 함께 여행을 할 수도 없어 슬프지만 마음은 아프지 않으니 종종 너와 상상 속의 여행을 떠나 본다. 세상이라는 긴 기차 안에서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이 새삼 행복하구나. 친구야.
♣ 네 엄마는 내 엄마이기도 하잖니. 말하던 친구야.
내가 멀리 있을 때 나를 대신해 병상의 우리 엄마를 방문하고 어버이날에는 꽃을 달아드렸던 너의 그 마음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단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신 네 엄마와 내 엄마를 위해
오늘은 도라지꽃빛의 기도를 드리자. 친구야.
♣ 친구야 안녕?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아 오늘은 바닷가에 나가 큰 소리로 네 이름을 부르며 흐느껴 울었단다. 갈매기도 나를 따라 우는 것 같았어. 어떻게 나보다 먼저 떠날 수가 있니? 작별인사 한 번 할 틈도 없이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니? 네가 많이 아플 때 나는 무얼 했나 가슴을 친다. 나도 아플 것 같으니까 부담 안 주려고 연락 안 한 거지?
어느 날 우리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꽃밭에서 하얀 나비로 다시 만나자. 친구야.
내가 있는 병실로 친구가 문병을 오고 싶다고 했을 때 아픈 사람 보면 더 아프니 오지 말라고 내내 말렸던 일도 지금은 후회가 된다. 다시 못 볼 줄 알았으면 그때라도 봤어야 하는 건데……. 2009년은 내가 아픈 중에도 내내 추모시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이별의 한 해였다. 내게 자주 농담을 건네시던 김수환 추기경님, 하늘나라에서도 한 반 하자던 화가 김점선, 그리고 희망적인 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문학자 장영희, 그리고 또 수녀의 가족들 ……. 며칠이 멀다 하고 들려오는 부고에 나는 눈물을 찍어 슬픈 시를 썼다.
♣ 오늘은 너의 생일
꽃집에 들어갔다. 무슨 꽃을 살지 몰라 그냥 나오고, 선물의 집에 들어갔다. 무엇을 살지 몰라 또 그냥 나오고. 망설이고 또 망설이는 동안 시간은 자꾸 흐르고……. 마음의 서랍을 열고 길고 긴 편지를 쓰다가 놓치고……. 나 어쩌면 좋으니.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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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분꽃이 피어난 꽃밭에서 한참을 서 있었어.
돌아가신 엄마가 씨앗을 보내와 내가 심었던 꽃. 누가 이 꽃나무를 없앨까 봐 해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단다.
진분홍빛 노란빛 분꽃을 몇 개 따서 수첩에 넣어 두었어.
엄마가 몹시 보고 싶은 날.
엄마는 편지를 받아볼 수 없으니 대신 너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꽃편지를 쓰려고 …….
내가 수첩 속에 말려 놓은 분홍 노랑 분꽃잎들이 참 많은데 아직도 꽃편지는 쓰지를 못하고 있다. 미루고 또 미루다가 어느 날 어느 날 내가 떨어지는 꽃잎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 세상을 떠났지만 내 안에서 고운 향기로 살아 있는 친구야.
너는 떠났지만 네가 내게 준 사랑은 그대로 남아 있다.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네가 준 사랑이 헛되지 않게. 네가 사랑했던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겠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사랑을 결코 잊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자랑스러운 친구야.
지금도 넌 나를 보고 있지? 빙그레 웃고 있지?
하느님
제게
많은 친구를 주셔셔
감사합니다.
제가
누군가의 친구가 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가 있으므로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일상의 평범한 몸짓과
조그만 배려가 담긴
마음의 표현들이
사실은 사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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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게 해 주소서
무엇을 자꾸 요구하기 보다는
이해부터 하려는 넓은 마음이
우정을 키워가는 사랑임을 다시
다시 기억하게 해주소서.
2011. 4. 16 제1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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