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이 또한 지나가리라 (2)

보해성산 2011. 6. 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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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또한 지나가리라 (2)

               - 김별아 치유의 산행 -


제8차 산행   관계 그리고 상처


날짜 : 6월 20일

위치 : 경북 상주시 화북면 - 경북 상주시 화서면

코스 : 갈령 - 갈령 삼거리 - 비재 - 봉황산(740.8m) - 화령재

거리 : 총 14Km (마루금 13Km + 접근거리 1Km)

소요시간 : 8시간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여름내 두어 번 쯤 우중 산행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11시 50분 경 차를 타자마자 굵은 빗방울이 차창에 부딪히고 번개와 천둥이 하늘을 찢는다.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아들아이가 어렸을 때. 두려움에 떠는 아이를 안고 들려주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전설 한 토막이 문득 떠오른다. 


아주 오래전,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다. 인간을 사랑했던 신은 땅에 비와 바람을 내리기 전 인간이 비바람을 피할 곳을 마련할 시간을 주기 위한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일 말고도 바쁜 일이 워낙 많았던 신은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는 꺼벙하고 띨띨한 새 커플을 불러 이 방법을 찾아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런데 이 꺼벙하고 띨띨한 새들이 머리(새대가리)를 쥐어짠 생각이라는 것이, 신이 비를 내리려고 할 때  자기들이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달려가 대비를 하라고 일러 주는 것이었다.(역시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한다.) 그 후로 새들은 비가 내릴 때마다 빛 보다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허겁지겁 달리다가 두 다리가 엉키고 만 새는 빛 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 일어나는  불똥들과 함께 땅으로 떨어져 애꿎은 나무들을 반쪽 내곤 했다. 어쨌든 그렇게라도 하여 신이 내준 버거운 숙제를 마쳤다.

그래서 지금도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그 꺼벙하고 띨띨한 새 커플의 이름을 본떠서 번개는 ‘멜라사’로 천둥은 ‘헬로하’라고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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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받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는 제 깜냥에 오직 스스로를 혹사할 수밖에 없었던 꺼벙하고 띨띨하지만 가련하고 애틋한 새들이 연거푸 지상으로 낙하한다. 몸부림칠 때마다 흩날리는 깃털처럼 빗방울도 거세진다.


비내리는 한밤의 거리를 달리는 버스는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 같다. 아주 가만히 물멀미를 한다. 내 어깨에 기대어 쌔근쌔근 잠든 아이와 단잠에 빠진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심조심 어쩌다 그렇게 자학적인 방법으로 하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는지 안타깝고 애처로운 멜라사와 헬로하는 오늘 밤새 쉴 틈 없이 바쁘게 머리를 지상에 처박고 있다.


우중의 새벽 산행 어쩌면 미련하고 위험한 일이다. 갈령에 도착했을 때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가 준비 운동을 하는 도중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우비를 챙겨 입고 마루금이 시작되는 갈령삼거리까지 기어오른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에서 어려운 구간부터 해치우려다보니 초반부의 한 두 시간은 꼬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헐떡헐떡 가다 보니 우비 속에 홍건한 물기가 소맷자락으로 쳐들어온 비인지 몸에서 흐른 땀인지 알 수 없다.

끈적끈적하고 칙칙한 기분이 결코 좋을 리 없지만 꾹 참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불행을 견디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듯 불쾌감을 참는 일까지도 산행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경북 상주에서 시작한 오늘 구간도 ‘지리산→백두산’이 아닌 ‘백두산→지리산’ 방향의 역주행이다. 아이들의 방학과 학사 일정, 통제 구간 등을 고려하다 보니 일사천리로 백두대간 남쪽 구간을 종주하기는 힘들다. 그래도 어쨌거나 슬쩍슬쩍 덕유산을 넘고 지리산을 거쳐 속리산에 첫 발을 들여 놓았다. 비록 속리산은 처음이고 지리간은 알짬에 다가가기 전 변두리를 어슬렁거린 것에 불과하지만 등반을 하며 느끼는 기운이 산마다 사뭇 다르다.


산을 오가는 며칠 째 ‘장자’의 ‘산목’ 편에 나오는 ‘빈배(虛舟)’의 고사를 곱씹고 있다. 지혜로운 자 이요와 근심 많은 노나라 제후가 주고받는 이야기 중의 한 대목을, 끝없는 영적 방황 속에서 종교를 초월한 깨달음을 얻으려 했던 수도자 토머스 머튼의 번역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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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가 빈 배가 그의 배와 부딪히면 그가 아무리 성질이 나쁜 사람일지라도 그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배는 빈 배이니까.

그러나 배 안에 사람이 있으면 그는 그 사람에게 피하라고 소리칠 것이다. 그래도 듣지 못하면 그는 다시 소리칠 것이고 마침내는 욕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 배가 비어 있다면 그는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강을 건너는 그대, 자신의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그대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상처 입히려 하지 않을 것이다.


빈 배의 고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로부터 빚어지는 갈등과 상처에 대한 깊고 조용한 성찰의 이야기이다.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방식으로 이상을 실현하려던 공자와 달리 절대적 진리를 부정했던 장자의 철학이 간명하게 드러나 있다.

빈 배의 화두가 마음을 파고드는 것만 보아도 지금 내가 노 저어 가는 배는 짐을 많이 덜어낸 셈이다. 어린 시절 한때, 나는 노를 무기 삼아 움켜잡고 바리바리 짐을 실어 거친 파고를 필사적으로 헤쳐 갔다. 물에도 길이 있다는 걸 모르고 갈팡질팡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배와 많이도 부딪혔다. 뱃머리가 부딪히면 나는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섰다. 급히 일어서는 바람에 균형을 잡지 못한 배가 위태롭게 흔들려도 아랑곳없었다. 그리고 소리 높여 상대방을 탓하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물머리에 들어섰다고, 내 배가 지나는 물길을 막지 말라고 소리치고 욕을 했다. 나는 거칠고 사나웠지만, 꼭 그만큼 두렵고 약했다. 그래서 싸움이 끝난 뒤에는 승패와 아무런 상관없이 상처를 입었다. 나와 싸운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 낸 상처였다.


헤드렌턴 때문에 나방들이 계속 달라붙는다. 그러나 나방들은 죄가 없다. 그들의 고요한 밤을 깨우고 수선을 떤 건 우리들이다.

장마철의 산행이 위험한 이유 중 하나는 빗물에 물러진 진흙바위를 잘못 짚거나 껴안았다가는 그대로 바위와 함께 구르는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의 최고봉인 봉황산은 740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다. 정상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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랐는데도 발아래는 그저 자욱한 비안개뿐이다.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산신령이 나올 것 같다고 수선을 떤다. 나는 그것이 정처 없이 떠도는 혼령 혹은 영혼 같다고 생각한다. 무거운 듯 하지만 턱없이 가벼운 영혼의 실제 중량은 7그램이란다.  (잔인한 과학자들이 죽기 직전과 죽은 직후의 사람 몸무게를 재어 밝힌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관계’에서 고통을 받는다. 모두가 독립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착취하거나 착취당하고, 지배하거나 예속 당한다. 자존감의 높낮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런데 의존적이고 기만적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처음에는 호감으로 대하거나 고마워하던 사람들도 점차 의존성을 부담스러워한다. 운이 나쁘면 그런 의존성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예속당해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관계 아닌 관계가 비로소 끊기는 순간, 다시 한 번 배신감에 치를 떤다. 사람은 믿을 족속이 아니고 모두가 서로를 이용해 먹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냉소한다. 그러고는 마음의 빗장을 더욱 단단히 잠근다.


봉황산을 넘어 화령재로 향하는 길에 비가 개었다. 우비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가슴을 활짝 열어 바람을 호흡한다.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간질간질 파고들면 공기에서는 달콤한 향기가 난다. 저만치에서 인걸 아빠가 무릎을 꿇고 앉아 노루발이라는 야생화를 사진 찍고 계신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매화노루발과 생각지도 않았던 제비난까지 찾았다며 좋아하신다. 작은 것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몸을 낮춰야만 한다. 늦잠에서 깨어난 숲 여기저기에 보랏빛 엉겅퀴도 눈에 띈다. 꽃말은 독립, 그리고 위엄이다. 독립해야 위엄을 갖출 수 있다. 위엄을 갖추기 위해서는 독립해야 한다.


베어진 풀에서 향기가 난다

알고 보면 향기는 풀의 상처다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만

비명 대신 풀들은 향기를 지른다

들판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나는

아픈 것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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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 있다

                  - 김재진 ‘풀’ -


막 베어낸 풀 향기가 더욱 짙푸르다. 나는 신선하고 비릿한 풀냄새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이 상처의 향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무언가에 상처받았다고 엄살을 피우는 동안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빈 배였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노를 저어가다가 빈 배에 부딪혔을 때 성질을 부리거나 대거리를 할 상대가 없으니 슬그머니 노 젓는 방향을 바꾸어 피해 가거나 돌아서 가는 것처럼, 누군가 아무리 맹렬하게 뱃머리를 밀고 들어와 부딪혀도 내가 아무것도 싣지 않은 빈 배였다면…….


화령재로 가는 마지막 굽이에서 빨간 열매를 매단 가시덤불을 만났다. 산딸기! 어린 시절 내게 그 작은 보석은 세상의 어떤 값진 값보다 유혹적이었다.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몇 개쯤 따서 입안에 넣다가 뒤따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몫도 남겨야겠다 싶어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섰다.

“너희 저 굽이에서 산딸기 열린 거 봤니?”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다리쉼을 하고 앉은 선두의 중1 아이들에게 물었다.

“네! 뒷사람들 먹으라고 한 개 씩만 따먹고 왔어요!”

입 모아 외치는 아이들의 얼굴이 화안하다. 그들은 이미 거칠 것 없는 빈 배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거센 세상의 파고라도 두렵지 않으리라.


제9차 산행   내 삶의 짐과 힘


날짜 : 7월 10일

위치 :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코스 : 갈령 - 갈령 사거리 - 형제봉 - 천왕봉(1058m) - 비로봉 - 신선대         - 문수봉 - 문장대(1054m) - 화북탐방지원센터

거리 : 총 15.6Km (마루금 11.7Km + 접근거리 3.9Km)

소요시간 : 10시간   


“인간은(전체는) 그 자신을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부분의 합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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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멋스러운 말이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나머지는 하늘의 몫이다. 진인사대천명일지니 노력을 다한 뒤에는 하늘의 명령을 기다릴 따름이다.

연일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다가 주말에는 남쪽 지방에 큰비가 예고되어 있다. 판초에 비가 들이쳐 속옷까지 죄다 젖었던 경험으로 소매가 딸린 비옷을 새로 장만했다. 그것으로 무장을 하면 비는 덜 맞겠지만 통기성이 좋지 않아 땀으로 목욕을 할 것이다. 비나 땀이나 젖는 것은 매한가지겠지만 어쩌겠는가?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흔들리거나 젓지 않고 피는 꽃이 없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과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없을 터이니.


속리산은 충북 보은군, 괴산군과 경북 상주시를 가르며 펼쳐진 산으로 문장대까지 포함한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예전에는 ‘구봉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속리산으로 개칭된 까닭이 ‘삼국유사’에 설화로 전해진다. 신라시대 금산사의 고승 진표율사가 구봉산을 지나던 중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달구지를 끌고 가던 소가 갑자기 진표율사의 앞에 무릎을 꿇고 ‘음메……’하며 길고 구슬픈 영각을 뽑았다. 그 미욱한 축생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께 친히 계법을 받고 절터를 찾아가던 진표율사를 알아본 것이다.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달구지의 주인은 낫을 들어 세속적 욕망의 상징인 머리카락을 자르고 마침내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세속을 여의고 스스로 떠남에 대해 신라 최고의 천재 최치원은 이렇게 노래했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道不遠人 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속리산의 대표적인 절인 법주사는 미륵 신앙이 면면이 계승되어 온 명찰로 알려져 있다. 또한 울울창창한 숲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 곳곳에 우뚝 솟은 8개의 봉 (천왕봉, 비로봉, 길상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묘봉,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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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중 상당수가 불교에서 일컫는 보살들의 명호이다. 오늘 우리가 오를 문수봉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인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 문수보살의 왼손에 들린 푸른 연꽃을 생각하며 시 한 수에 서글픈 마음을 달랜다.


  꽃 속이 따뜻하다.


  너무 아프면

  세상이 다 꽃으로 보여

  천지간

  온통 꽃 아닌 것 없으니


  저녁이면 꽃잎은 물속으로 잠기고 

  꽃물 든 속이 환하다.

     - 이승희 ‘푸른 연꽃’ -


몸이든 마음이든 자기가 아프면 세상만사가 귀찮고 꽃자리도 바늘방석이거늘, 어쩌다가 아픈 지경에 세상이 다 꽃으로 보일까? 얼마나 많이.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너무’ 아파야, 더럽고 질퍽질퍽한 세상의 진창이 아름다운 푸른 꽃을 피워내는 비옥한 살터로 보일까? 깊은 물에 잠긴 꽃 속이 따뜻해질 정도로 얼룩덜룩 꽃물 든 속이 화안해질 정도로.


어느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서 신부님이 강론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기 시작하던 개화기, 한 선교사가 당시만 해도 희귀한 교통수단이었던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가 눈에 띄어 선교사는 차를 멈추고 할머니를 태워드렸다. 마소가 끄는 것도 아닌데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한참 자동차를 몰고 가던 중 뭔가 이상한 낌새에 선교사가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는 머리에 인 커다란 짐을 내려놓지 않은 채 좌석에 엉거주춤 걸터앉아 있었다.

“할머니 짐이 꽤 무거워 보이는데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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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가 조심스레 건넨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어떻게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꼭 그랬다. 자동차를 얻어 타고서도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게 바로 내 모습이었다.

지금껏 10년이 넘게 수련 중인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첫 스승이었던 과천의 한순자 선생님은 요가가 기기묘묘한 동작을 뽐내는 기예나 단순한 육체를 단련하는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임을 강조하셨다. 짧은 명상 중에 선생님은 항상 세상의 처음이며 끝인 나 자신을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하셨다.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복잡 미묘함을 불평하는 제자들에게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내려만 놓으면 얼마나 가볍고 편한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가만히 되짚어 생각하면 우린 아무래도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몰라서 기어코 낑낑대며 목이 짜부라지고 등이 휘도록 이고지고 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런가 하면 한편으로는 괜찮다는 말을 믿고 정말 짐을 내려놓았다가 그것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겁이 났다. 희뿌연 흙먼지가 눈앞을 가리는 황톳길에 맨손으로 버려질까 봐 두려웠다. 소중한 것이었기에 이고 지고 떠메고 다녔다기보다는, 지금까지 이고 지고 떠메고 왔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삶의 일부였다. 남들 눈에는 아무리 허접하고 누추해 보일지라도 내 것이기에 소중하며, 그토록 꼭 부둥켜안고 지킬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불안……. 따위일지라도.     

 

속리산의 바위들은 모두 어디서 왔을까? 아이들의 표현대로 조각 케이크처럼 가운데가 도망가고 없는 바위, 이끼와 풀로 뒤덮인 바위, 바위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또 다른 바위, 화산 활동으로 신기한 무늬가 생긴 바위, 사람 얼굴을 닮은 바위, 원숭이 형상으로 생긴 바위, 자연적으로 생긴 문처럼 뚫린 바위 …… 들이 생소하고 신기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속리산은 바위가 많아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불의 기운(火性)을 지닌 산으로 통한다. 어른어른 피어오르는 불꽃처럼 바위들이 곳곳에서 이글거린다. 조선시대 세조가 휴양차 찾았다가 오륜과 삼강의 책을 얻어 읽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문장대는 그 불꽃들 속에서도 우뚝한 횃불 같다. 해발 105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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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전망대에서 속리산 절경을 한 눈에 내려다본다. 이렇게 아득히 높은 곳에 서 있으면 지나온 모든 일이 꿈같다. 애면글면하고 아옹다옹하고 안달복달하며 살아온 ‘불의 집(火宅)’에서의 기억이 뜨겁기보다 쓰리고 아리다.

그런데 가만히 곱씹어보면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고스란히 나를 짓누르고 억압하는 ‘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상처와 고통과 슬픔과 걱정과 책임일망정 때때로 그 짐을 감당하기 위해 앙 버티는 것이 삶의 근거가 되었다. 그때 짐은 ‘힘’이었다.  니체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것들이 나를 무너뜨리지 못했기에 나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 자음하나로 그 뜻이 상반되는 짐과 힘. 그런데 짐과 힘을 가름하는 것이 단순히 자음뿐일까? 무엇이 같은 상황과 감정을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짐으로, 때로는 삶을 곧추세우는 힘으로 느끼게 하는 것일까?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시 ‘자기 연민 (Self Pity)’에서 이렇게 읊었다.

들짐승들은 보금자리를 이동하는 중에도 단봇짐을 꾸리지 않는다. 새들은 등짐을 지고 날지 않는다. 맹수들은 서로 부축하지 않는다. 사람 역시 궁극적으로는 혼자다. 짐이든 힘이든 그것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다. 나를 아끼고 존중하되 불쌍히 여기지 않기로 한다. 보듬어 다독이되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쩔쩔매지 않기로 한다. 감상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깊이 이해하여 진심으로 사랑하기로 한다. 그럴 때 ‘짐’은 비로소 ‘힘’이 된다.


오늘의 과제를 모두 끝마치고 한들한들 하산 할 때의 기분은 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좋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기어오르는 오르막과 지루한 굴곡과 위태로운 바위 구간이 아니라면 산이 이만큼 아름답지 않았을 것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에 비지땀과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쏟아내지 않았더라면 하산길이 이처럼 가슴 벅차지 않았을 테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소슬하다. 산행 시간이 10시간에 육박해가지만 아직 내 다리는 버틸 만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살아 있어서 참 좋다.


제10차 산행   복수와 용서


날짜 :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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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경북 상주시 화북면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코스 : 늘재 - 청화산(984m) - 고모령 - 용추계곡

거리 : 총 15.9Km (마루금 11.7Km + 접근거리 4.2Km)

소요시간 : 11시간


백두대간 중 어느 구간이 가장 힘드냐는 질문에, 앞서 종주를 마친 대간꾼들의 대답은 제각각이었다.

“덕유산이 제일 힘들었지요. 거기서 무릎을 크게 다치고 결국 종주를 포기 했어요.”

“소백산이 가장 힘들었어요.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얼마나 지루하던지!”

“뭐니 뭐니 해도 설악산이죠! 괜히 ‘악’자가 들어간 게 아니더라고요.”

덕유산, 소백산, 설악산…… 이름만 들어도 괜스레 주눅이 드는 명산들이 출몰하는 가운데, 누군가 문득 말했다.

“험산이 따로 있나요. 컨디션이 좋지 않았을 때 오르는 산이 가장 험하고 어려운 법이죠!”     


떠나기 전부터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새 책을 출간한 지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홍보를 위해 각종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한 시도 쉴 틈이 없었고, 결국 누적된 피로와 긴장이 겹쳐 목요일 저녁에는 급체를 했다.

그런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산행을 가기 바로 전날 정상 주기에서 며칠쯤 이른 달거리가 찾아왔다. 국립공원이나 기존에 정비된 등산로가 아닌 산중에는 생리 현상을 해결할 장소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특히 여성 등산객들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어지간히 급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산을 내려갈 때까지 참으며 버티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니 산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걱정이 태산이었다.

날씨까지도 꾸물꾸물한 것이 아무래도 산중에서 소나기를 만날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화제와 진통제를 동시에 뱃속으로 밀어 넣고 꾸역꾸역 짐을 꾸려 기어이 집을 나섰다.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몰아치고 괴롭히기에 익숙하다. 그리고 왜 이토록 자신을 괴롭혀야 하는가를 해명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나를 몰아치고 괴롭히는 노상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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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행사로 몇 번 산행에 빠졌던 기영 엄마는 나의 대학 선배이다. 그래서 둘이 만나면 경란 언니라고 부른다. 오랜만에 만나 수다를 떨며 대학시절과 동문들의 근황 등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이들에서 가족으로 이야기가 확대되어가려는 찰나,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상처가 상처를 알아본다. 여전히 씩씩하지만 언니의 미소에 그늘 한 자락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나는 기어이 낌새채고야 말았다.

20여 년 전 그때처럼 당당하고 솔직한 경란 언니가 말했다.

“아이들 아빠는 같이 살지 않아. 그는, 9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

경란 언니의 남편 윤왕희씨는 치과의사였다. 그는 전공을 살려 꾸준히 진료소 봉사활동을 하는 등 실천적 지식인 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그것도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에 4인조 강도단에 의해 피살당했다. 일체의 저항도 없이…….

지금껏 언니의 상처에 대해 곱씹으면서 자연스레 복수와 용서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하기에 누구보다 더 크게 깊이 오랫동안 그 마음을 앓았을 경란언니의 의견이 궁금했다. 사고 후 주변인들 중 누군가는 “복수는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몫이다.”라고 하면서 언니를 위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때로 ‘용서는 인간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라고 생각하곤 한다.

경란 언니가 ‘용서’라는 말 앞에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떼었다.

“나는 지금도 ‘용서’라는 말을 들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

범인이 잡혔다는 것을 안 순간, 경란 언니는 남편이라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단다. 그래서 가만히 속으로 물었다.

“기영 아빠, 나 어떡해?”

그러자 가슴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기영 엄마 용서해, 용서하고 자기가 자유로워져, 그 사람들 미워하고 분노하느라 자기 소진시키지 말고, 불쌍한 인생들이다. 생각하고 용서해.”

윤왕희 씨의 치대 동문인 전봉균 씨는 그 용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그들을 용서하세요. 그리고 이 사회를 용서하세요. 여기서 ‘용서’라는 말의 의미는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지내자는 말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향한 증오심, 분노, 언론 등의 보도 방식을 포함한 이 사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 내 자신이 가지는 죄책감, 무력감 등으로부터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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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워지세요. 이것이 지금 기영 엄마에게 필요한 ‘용서’입니다.”


처음부터 시작점을 찾지 못해 20여 분간 어둠 속에서 ‘헛돌이’를 했다. 백두대간 종주팀의 선배들은 언제부터인가 산행 구간에서 벗어나 헤매는 것을 ‘알바’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예상컨대 그 말의 유래는 같은 시간에 같은 노동을 하고도 제대로 된 대우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비정규직의 비애 같은 것?! 그것을 우리말로 순화해 ‘헛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알바든 헛돌이든 산중에서 하릴없이 길을 찾아 헤매거나 잘못 접어든 길을 거슬러서 다시 가는 것은 정말 맥 빠지고 힘겨운 일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뒤돌아 선두가 후미가 되고 후미가 선두가 된 채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청화산을 향해 가파른 비탈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는 수밖에.

조만간 진행해야 할 희양산 구간의 만만찮음이나 대야산의 악명은 이미 들은 바 있다. 어느 구간이 특별히 힘들고 위험하고 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각오를 한다. 긴장을 하고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다. 그런데 이번처럼 밤티재에서 늘재까지의 구간 7.8Km는 대간길이지만 산행 통제구역이라 생략하기로 했고, 최고봉인 청화산과 조항산이 900m 급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러 그러려 하지 않아도 마음이 저절로 물렁해진다. 산행 거리 자체도 그리 길지 않은 것 같고 지도와 안내 표지에는 청화산에서 조항산까지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쁜 컨디션쯤 거뜬히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고. 나는 또 오만하게 나를 믿었다.           

헌데 이게 웬일, 백두대간 늘재에서 밀재까지는 결코 만만치도 평이하지도 않은 코스였다. 곳곳에 급경사와 암릉 구간이 “너 얼마 전까지도 평지형 인간이던 주제에 열 번 쯤 대간길을 밟았다고 함부로 까불거리느냐?” 하고 혼뜨검이라도 하려는 듯 도사리고 있었다. 1시간 반은 개뿔, 청화산에서 조항산까지는 3시간을 꼬박 소요해야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곳곳의 바윗길, 끊임없는 오르막과 내리막, 헛돌이를 부추기는 함정같은 갈림길까지……. 그런데다 장마가 끝나지 않은지라 발밑의 흙은 처음의 허황된 마음만큼이나 물렁물렁했다. 뭔가 불길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끝내 현실로 입증되었다.

조항산을 향해가는 운명의 내리막길, 로프를 잡고 한 사람씩 내려가야 하는 길에서 내 차례가 왔다. 조심조심 바짝 긴장을 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로프를 타고 내려와 발밑에 허방이 아닌 땅이 막 보이려는 찰나, 위에서 순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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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사람들의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순간,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다. 기다리던 일행 중 한 아이의 발이 미끄러지면서 채인 돌이 떨어져 내 이마를 강타한 것이다. 선글라스가 튕겨져 나가고 강렬한 아픔에 머리통이 울렸지만 그래도 살겠다고 줄은 놓치지 않았다.

가까스로 다시 땅에 발을 붙이고 거울을 꺼내 상처를 살펴보니 금새 호두알만한 혹이 부풀어 올랐고, 그 위에 긁힌 상처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외상에 비해 머릿속은 큰 이상이 없는 것 같았지만 갑작스런 타격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그러나 엄마가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깜작 놀라 달려온 아이에게 “조금만 고개를 더 쳐들었다면 한국 문단 최초의 ‘애꾸는 작가’가 될 뻔했다.”고 유머를 던졌다. 어쩌겠는가. 울지 못하면 웃는 수밖에.


낙석 사고 이후 아들아이는 친구들 곁을 떠나 줄곧 내 주위에서 맴돌았다. 나름으로는 엄마가 걱정스러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자 그랬나 보다. 그렇게 아이의 에스코트까지 받았지만 초반의 사고로 페이스를 잃은 나는 그날 두 번이나 크게 넘어졌고. 스틱 하나가 휘어 부러지는 실수가 있었지만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어쨌든 불운 혹은 실수가 거듭되자 몸과 마음의 위축되었다. 새삼 산이 무서위지고, 백두대간 종주라는 목표가 무모한 아집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장 산중에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일단 무사히 산을 내려가는 일 밖에는…….             

      

제11차 산행    사랑, 기어이 포기할 수 없는


날짜 : 8월 14일-15일

<첫째 날>

위치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코스 : 버리미기재 - 장성봉(916.3m) - 악휘봉(845m) - 은티재 - 은티마을

거리 : 총 11.5Km (마루금 9.5Km + 접근거리 2Km)

소요시간 : 9시간 30분


<둘째 날>

위치 : 경북 상주 화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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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 : 화령재 - 윤지미산(538m) - 신의터재

거리 : 총 11.9Km

소요시간 : 3시간 45분 


백두대간 종주는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정을 ‘백두’에 맞춰 조정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둘째와 넷째 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아무 약속도 잡지 않는다. 컨디션 조절을 위해 목요일 저녁부터는 모임에서 술잔 한 번 받는 일도 조심한다. 아무리 날씨가 무덥고 일이 바빠도 한밤에 잠깐이라도 운동을 해서 체력을 다지려 애쓴다. 때 아닌 금욕적 생활에 살얼음을 밟듯이 몸을 사리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놀라거나 딱해하지만, 산을 탈 때 최대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는 나의 소망 혹은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이는 어쩌면 여전히 내가 산을 좋아하기보다는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은 타면 탈수록 두렵다. 그리고 코스가 험하든 평이하든, 산행 시간이 길든 짧든 탈 때마다 힘들다. 하수의 등산객이자 산꾼을 가장한 평지형 인간이라 그런 것인지, 지난번 낙석에 맞은 다음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1박 2일 예정의 11차 산행을 준비하는 마음이 두근두근, 조마조마 불안하였다. 더구나 산행 예정 공지에 따르면, 11차 산행에는 암릉과 암반 슬램 구간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암벽도 얼마간 타야할 것 같단다. 암릉, 암반, 암벽…마음속에서 무거운 바위가 쿵쿵 울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는 백두대간 종주의 법칙 중에는 ‘그 순간 지나가면 쉬운 코스더라!’ 라는 장점 아닌 장점이 있다. 이 말은 유대교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리쉬’ 중 ‘다윗 왕의 반지’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날 다윗 왕의 부름을 받은 궁중의 세공인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환호할 때 지나치게 들떠 오만하지 않도록 하고, 패배를 겪었을 때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 오라는 명령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권력과 부와 명예를 얻었을 때 자칫 빠지기 쉬운 교만을 이기고 실패와 치욕과 가난 속에서도 절망하며 쓰러지지 않는 용기와 희망을 북돋울 수 있는 글귀는 무엇일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이 기묘한 수수께끼를 풀 수 없었던 세공인은 지혜로운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솔로몬이 그에게 알려주었다는 보석보다 귀한 한 마디. 훗날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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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부터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까지 많은 이가 좌우명으로 삼게 된 그 경구는 다음과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첫째 날 산행 계획은 버리미기재에서 해발 916.3m의 장성봉을 넘어 은티재를 지나고 구왕봉을 거쳐 지름티재에서 숙소인 은티 산장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서둘러 체조를 하고 중2 채운이의 표현을 빌자면 ‘단기적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과 유사한 상태로 허위허위 밤길을 헤쳐 장성봉에 올랐다. 아무리 숨이 턱 끝에 차오르고 덜 풀린 다리가 후들거리고 메스꺼움과 복통마저 찾아와 힘들게 해도 정상에 오르는 순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새카맣게 잊을 테니, 이 또한 마땅히 지나가리라!

서서히 동이 트면서 매미가 운다. 매미가 그토록 목 놓아 우는 이유는 딱 하나. 수컷이 짝짓기를 하기 위해 암컷을 부르는 것이다. 매미는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7년까지 유충으로 살다가 성충이 되어 적응기를 거친 뒤 대략 한 달 정도 매미로 살면서 종족 번식의 의무를 완수한다. 밤에도 낮처럼 환한 도시에서 시끄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와 인간이 빚어내는 온갖 소음에 맞서 어딘가에 있을 짝을 부르다 보니  점점 커져가는 울음소리로 밤낮 없이 설쳐대는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인간들의 미움과 짜증과 살충제 세례를 받을지라도, 그들에겐 그야말로 목숨을 건 뜨거운 한여름의 짧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은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 안도현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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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를 노래한, 사랑을 노래한, 매미로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으로 매미를 노래한 시구가 짝짜그르한 울음소리와 함께 가파른 산길을 내내 뒤따라온다.

장성봉 정상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지 오래 지나지 않아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출발 전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국내 산악 조난사고의 40% 이상이 여름철에 일어난다. 그중 대부분이 비가 올 때 산행을 하다가 급류에 떠내려가는 사고이며, 천둥 벼락은 여름 산행에서 가장 위험한 요소로 꼽힌다. 천둥과 벼락이 칠 때는 사방이 훤히 트이는 능선 위는 낙뢰를 맞기 쉬우므로 계곡 상단부나 잘록한 능선 안부(말안장처럼 들어 간 능선)로 피하는 것이 안전하며, 큰 나무에서 2m 이상 떨어진 곳으로 피하고, 등산용 스틱은 번개를 부르므로 주의해야 한단다.

빗방울이 점점 거세어진다. 어깨를 움츠려 자라목을 하고 발밑만 보며 걷노라니 왈칵 서러운 마음이 솟구친다. 내 몸은 넓디넓은 산중을 헤매어 걷고 있지만 마음은 고스란히 작고 좁은 우비 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우중 산행은 괴로운 만큼이나 외롭다. 빗속에 매미도 울지 않는다. 기약된 한 달의 연한이 거의 차는데도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매미는 지금쯤 초조해하며 비오는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을까?


인디언의 언어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없다고 한다. 전하는 일화나 옛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어느 부족보다 영적이고 지혜롭게 느껴지는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사랑은 표현하는 것이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킨(kin)’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사랑한다’와 ‘이해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나타내는 한편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어떤 것을 이해한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인디언 혼혈 혈통을 지닌 작가 포레스트 카터의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주인공 ‘작은 나무’는 자신이 배운 ‘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사랑과 이해는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더더욱 없다. 신도 마찬가지다. 라는 이야기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게 킨이며,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대부분은 이것이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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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서 2시간여를 고군분투한 끝에 은티재에 다다른 선두 팀은 이대로 예정된 산행을 계속할 것인가 중단하고 하산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구왕봉을 거쳐 지름티재에서 숙소인 은티산장으로 내려가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지만, 구왕봉을 오르는 코스가 암릉 구간이라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돌아섰다. 첫날 산행이 일찍 끝나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허탈한 듯 가벼웠다.


밤새 내리붓던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빗줄기가 아침까지도 수그러들지 않아 이틀째 산행을 강행할 것이냐 마느냐가 다시 토론에 부쳐졌다. 이 빗속에 악산(惡山)으로 유명한 대야산을 오르자니 안전상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24차 산행 예정구간이었던 화령재 신의터재 구간을 타기로 했다. 이 구간은 비교적 산행 거리가 짧고 경사가 완만하다고 알려진 슬리퍼 구간이라 한겨울의 악천후를 대비해 ‘저축’해 놓은 곳이다. 뜻하지 않은 때에 뜻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홀라당 쉬운 코스를 까먹은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조금 늦는 것이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Better late than never.)”는 서양 속담을 흉내 내어 말하자면 조금이라도 애써 하는 것이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화령재에 도착해 윤지미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정산에 오르기 직전 펼쳐진 10분간의 급경사길, 일명 깔딱고개 때문에 정말로 숨이 깔딱 넘어갈 뻔 했다. 다행히 비가 그쳐 우중 산행은 아니었지만 비갠 뒤 후끈후끈 습한 열기를 뿜어내는 땅 때문에 숨이 턱턱 막혔다. 짧은 산행이라고 여겨 1리터 남짓 준비한 물통이 4분의 1구간을 겨우 넘겨 절반이나 비어버렸다. 쉬운 산이란 없다. 고 터져나온 불평이 쉬운 삶이란 없다. 란 중얼거림으로 변한다. 쉬운 산이라고 생각했기에 힘들었다. 처음부터 평탄한 삶만을 기대한다면 더 힘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도 처음부터 행운과 불운과 뜻밖의 우연과 그러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요철로 만들어진 것이다. 불평할 것 없다. 산을 원망하랴, 삶을 탓하랴?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모르고 살아왔다. 때로는 사랑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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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부터 도망치기도 했고, 때로는 상처 때문에 마음의 빗장을 친 채 고립을 기꺼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을 모른다는 것은 삶을 모른다는 것이고 사람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알게 될 즈음에 비로소 삶과 사람까지도 알게 될 것인가?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가만히 소망한다.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 깎아지른 절벽과 험준한 암벽을 가지고도 산이 고고하고 아름답듯이 상실과 실패와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찾아가는 삶의 여정을 멈추지 않게 되길, 진정한 사랑이 찾아오면 도망치지 않고 죽도록 사랑할 용기를 잃지 않길.


제12차 산행     삶이라는 본능


날짜 : 8월 29일

위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코스 : 이화령 - 조령산(1026m) - 신선암봉(937m) - 조령 - 고사리마을

거리 : 총 11.27Km (마루금 8.97Km + 접근거리 2.3Km)

소요시간 : 8시간 30분             

        

시야가 탁 트인 높은 봉우리에 올라 산등성을 바라보는 기분은 낯설고도 새롭다. 모든 것이 내 발밑에서 아득해지고 수긋해진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산을 ‘정복한다’는 표현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정복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다루기 어렵거나 힘든 대상 따위를 뜻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인데, 산이야말로 정상에 올라 깃발을 꽂고 사진을 찍고 만세를 부르는 오두방정을 다  떨어도 절대 사람의 뜻대로 다룰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정복’이라는 말에서는 어리석음의 오만, 오만한 어리석음이 느껴진다. 비릿한 피 냄새가 밴 야심이 감지된다. 

 

학교에서 백두 5기로 산을 타고 있는 민주 엄마를 만났다. 참으로 ‘성실한(독한)’ 그녀는 기금가지 35차의 산행을 빠짐없이 개근하고, 5번만 더 채우면 남녘백두대간 전 구간을 완주한다고 한다. 그녀를 보니 입에서 저절로 “부럽다!”는 탄성이 흘러 나왔다. 현재 우리 6기는 전체 계획의 4분의 1 남짓을 소화했는데, 아직까지는 나 역시 산행에 빠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손을 꼽아보니 현재 부모들 대여섯 명, 아이들 열 명 안짝이 개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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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의 유혹은 지금까지의 개근이 아까워서 빠질 수 없고, 나중에 보충산행을 생각하니 막막해서 빠질 수 없으며,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미리 땡겨 받은 컴퓨터며 휴대폰 따위가 엄연하니 빠질 수 없고……. 그래서 북상중인 열대성 저기압에 국지성 폭우의 일기예보에도 이렇게 길을 나선다.    

고백하건데 나는 거의 강박적인 완벽주의자다. 초중고 12년 동안 12개의 개근상장을 탄 것은 물론이려니와, 작가라는 이름으로 산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원고 마감일을 어겨본 적이 없다면 대충 내 성격이 이해되려나? 좀 더 징그러운 증거를 대보자면 신문 칼럼 같은 경우 1720자 혹은 1850자 정도 써 달라고 청탁을 받으면 정확히 그 글자 수를 채우기 위해 쉼표를 빼거나 찍고 조사를 바꾸는 일에 목숨을 건다. 지금은 그나마 주위가 분주하고 건망중도 심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헐겁게 일 처리를 하지만, 미리 써둔 원고를 마감일을 잊어 늦게 보내는 한은 있어도 마감일 안에 완성을 하지 못해 편집부 직원에게 닦달을 당하는 일은 경험한 적이 없다.

하지만 서구의 정신의학계에서는 이런 완벽주의를 정신과 질환으로 규정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자기학대’라고 말한다. 이때까지 내가 했던 것은 반성이나 성찰이 아니라 완벽주의 라는 미명하의 자학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를 미워하며 옥죄는 나를 용서하고 사랑으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  


비가 왔다. 조령산부터 조령 3관문 직전까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밧줄 구간이었다. 양 옆이 낭떠러지인 좁은 바윗길을 지나노라니 곳곳에서 붉은 눈을 흡뜨고 있는 ‘산악사고 다발지역’, ‘위험! 출입 금지’의 경고문과 안전 라인, 그리고 두 개의 추모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순간을 화려하게 장식한 장대비까지…….

그 스펙터클한 상황 한가운데 있다 보니 그저 힘들다는 한마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고 까닭없는 불뚝성이 솟구치기도 하고 마침 울고 싶은데 얼뺨 맞는 식으로 후련하기까지 했다. 나중에는 배낭 속에 고이 접어둔 우비 따윈 무시하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씬 젖은 채 빗물 고인 등산화를 절벅절벅 끌고 가며 저절로 새어나오는 헛웃음을 피식피식 흘렸다. 그 순간 새하얗게 지워 백짓장 같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의문이 홀연히 지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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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도대체 뭐하는 거지? 무얼 위해 이렇게 산을 타고 있는 거야?


“등산은 본질적으로 파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혹적이다.”라는 ‘희박한 공기 속으로’의 저자 존크라카우어의 말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하수 등산객은 밧줄을 타고 내려가다가 돌연 발을 헛디디는 순간 간이 철렁하는 충격과 함께 쓰나미 같은 절망과 낙심과 후회의 너울을 들쓰는 지경이다.

“그곳에 그것이 있기 때문(Because it is there)!”이라는 등산가 조지 멜러리의 유명한 말은, 사실 왜 그렇게 힘들고 위험천만하고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가느냐고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설명하기에 지쳐 신경질적으로 툭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물에 빠진 생쥐요. 거지 중의 상거지 같은 몰골로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했다. 왜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개근’을 해야 하냐고. 아니, 왜 산에 가냐고.      


한 때 나는 삶조차 잘 모르는 주제에 죽음에 경도되어 온통 검은 어둠의 아우라를 뿜어내기도 했지만, 이번 산행을 통해 하나만은 확실히 배웠다. 죽음보다는 삶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사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에 걸린 밧줄 하나에 온 몸을 싣고 가만가만히 발걸음을 옮기며 살겠다고 기를 쓴다. 놓치지 않고 헛디디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간힘을 쓴다. 살겠다고 삶을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내가 이토록 삶을 애지중지하고 목숨 부지에 연연했는지를 새삼 알았다. 그래서 밧줄 구간 하나를 지날때마다 주체를 할 수 없는 웃음이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러쿵저러쿵 어쩌고어쩌고 해도, 어쨌거나 나는 살고 싶은 것이다. 웃음 끝에 눈물 한 방울이 찔끔 흘러내렸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이제야 아주 조금 “그곳에 그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멜러리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여전히 내 입으로 이유를 말하기엔 겸연쩍고 자신 없기에 지리산 사진작가로 알려진 고(故) 하성목의 짧은 글 ‘산으로 간다는 것은’을 대답대신 적어 본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한때 나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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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풀과 바람과 돌과 함께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그곳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산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훗날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13차 산행   실패가 주는 자유


날짜 : 9월 12일

위치 : 충북 괴산군 연풍면 -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코스 : 고사리마을 - 조령 3관문 - 마패봉(927n) - 동암문 - 부봉 - 평천재         - 탄항산 - 하늘재 - 미륵리

거리 : 총 13.4Km (마루금 8.8Km + 접근거리 4.6Km)

소요시간 : 7시간 40분


아, 지리산!

이라고 쓰려 했다. 아니, 써야 했다. 그런데 결국 감탄은 탄식이 되어버렸다.  13차 산행은 입산 통제 기간과 대원들의 산행 능력미비 등의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두었던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남한 구간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포함한 1-2구간, 전남 구례군 산동면에서부터 경남 산청군 시천면까지의 지리산 종주로 계획되었다. 금요일 반 11시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에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노루목과 삼도봉을 지나 토끼봉과 명선봉과 삼각봉을 넘고 벽소령과 칠선봉과 영산봉의 거쳐 세석산장에서 숙박하는 것이 첫날 일정이었고, 아침 6시에 세석산장을 출발해 촛대봉과 장터목과 제석봉을 지나 마침내 천왕봉에서 백두대간의 시작점을 찾고 내려오는 것이 둘째 날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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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1950m의 한라산을 제외하면 뭍에서는 남한의 최고봉인 1915m의 천왕봉을 비롯해 대부분의 봉우리가 1500m를 가뿐히 넘을 만큼 크고 높고 깊고 넓은 산, 산행 계획서에 나온 대로라면 총 산행거리 약 34Km, 20-24시간이 소요되는 1박 2일의 대장정이다.

그러니 준비해야 할 일도 많다. 산행 인원을 확정하고 대피소 예약을 하고(인터넷으로 1초 안에 결정되는), 조편성과 함께 선두대장과 후미대장을 선정하고, 식사 계획을 짜고, 준비 물품을 나누고……. 체력관리와 함께 여자들은 달거리 기간도 조정하고…. 하지만 정작 산행 당일에 가까워 이 모든 분주하고 부담스러운 준비 과정을 단번에 헛발질로 만든 사건이 발생하고야 말았으니…….

비가 온다. 그것도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주룩주룩!

결국 지리산 종주 계획은 무산되었다. 때 아닌 가을장마에 한반도가 온통 젖어들면서 호우주의보가 내린 지리산은 입산이 통제되었다. 신령스러운 영산을 오르기에는 우리의 준비와 마음이 아직 모자람 모양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산행을 지난 12차에 이은 조령 구간으로 급박히 대체했다.


사람들이 등산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더 이상 숨 쉴 수 없을 정도로 가빠오는 호흡과 터질 듯한 심장의 고통 때문이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헐떡거리며 오르다보면 “내가 미쳤지!”: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산행 시간이 길수록 오르막 보다는 내리막의 부담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등산 교본에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에서 주의할 점을 구분해 설명한다. 오르막에서는 발 앞부분에 체중을 싣고 상체는 살짝 앞으로 굽히되 목과 허리는 똑바로 세우고 눈은 5,6미터 앞을 바라보며 걷는 게 좋다고 한다. 특히 계단을 오를 때는 발바닥 전체로 걸어서 근육의 특정 부분에만 하중이 집중되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내리막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면 등산 후에 극심한 근육통을 겪는 일을 피할 수 없다.

선배 학부모 한 분이 “아이들은 오르막길을 더 힘들어 하고 어른들은 내리막길을 더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내리막이 힘든 이유는 몸과 짐의 무게 때문에 무릎에 충격이 가해져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지고 온 짐과 끌고 가는 몸이 무거울수록 무릎은 더 많이 아픈 법이니, 살아온 무게가 다른 아이와 어른이 고통을 느끼는 지점 또한 다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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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차 산행기에서 내가 얼마나 강박적인 완벽주의자였던가를 고백하긴 했지만, 기왕 고백한 김에 하나 더 털어 놓자면 나는 못말리는 일중독자이기도 했다. 지금 껏 꼬박꼬박 1년에 한 권 이상 책을 펴냈고, 책으로 묶지 않은 자잘한 원고 또한 수다하다. 작업을 할 때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하루 목표로 정한 분량을 항상 초과해서 일했고, 꼭 생계 때문이 아니더라도 모든 청탁을 거절하지 않고 받았으며, 청탁이 없으면 혼자 기획한 원고를 쓰기도 했다. 나는 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그처럼 바쁜 게 내 존재의 확고한 증명인 것 같아 기꺼웠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위험하기는커녕 존경스러운 태도로 대접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중독의 상태에 이르면 알코올이나 마약이나 도박 등에 의한 중독의 해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영향을 미친다. 심심해 보이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고 언제나 “바쁘다. 바빠!”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어쩌다 시간이 나도 나는  놀거나 쉴 줄을 몰랐다. 그래서 기껏해야 긴장을 풀고 휴식하는 방법이란 것이 술을 마시고 취하는 일 정도였다. 중독자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불안과 초조를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더 강력한 자극, 새로운 중독뿐이기 때문이다.


처음 산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을 무렵, 삶 속에서 무언가가 ‘바닥’을 쳤다고 느낄 무렵,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과 그 어쩔 수 없음이 꼭 무능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무렵, 나 자신을 해명할 수 없어 괴로워하며 미워하기에 지쳐갈 무렵, 나를 지키고 제대로 살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처를 보듬는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될 무렵, 아직은 늙었다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더 이상 젊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인생의 반고비와 같은 마흔 무렵…… 나는 비로소 내가 성공하기보다는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황지우의 시구처럼 “나, 이번 생을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런대 삶이란, 신비하여라! 놀라운 일이 바로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껏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할 망정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물고 했던 전력 질주를 멈추자 비로소 알쏭달쏭했던 볼테르의 말이 이해되었다.

“신은 우리가 즐길 수 있도록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 밖의 나머지는 지루하고 끔찍하며 가련하다.”

예전에 움켜쥐었던 많은 것을 놓고 또 많은 것을 잃어 듬성듬성해진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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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난하고 초라한 순간, 삶이 내게 새로운 것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즐거움과 행복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은 지루하고 끔찍하며 가련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고, 삶은 지나버린 과거에 있는 것도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있는 것도 아닌 바로 이 순간 여기에 있을 뿐이라고,

                             

비는 여전히 그칠 생각을 않는다. 겨울용 스패츠까지 착용하고 단단한 준비를 했는데도 등산화 안으로 물이 새어 들어가 발걸음이 질척거린다. 눈이나 비가 내릴 때 산을 타면 기본적으로 15% 정도 산행 속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갈 길은 멀고 몸은 무겁다. 하지만 지난번 산행에서 ‘나는 왜 산을 타는가?’ 라는 지극히 기본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질문에 맞서 고민한 덕택인지, 오늘은 얼마간 마음이 느긋하다. 길이 있으니까 가고 산이 있으니까 오른다. ‘완주’나 ‘개근’에 대한 강박감까지 사라졌다면 거짓말이겠지만, 2주일 내내 긴장과 설렘으로 준비했던 지리산 종주가 무산되었는데도 짜증스럽다거나 속상하지 않다.

산이 그곳에 있다면 언젠가는 갈 것이다.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고 내 발로 내가 걸어 넘어가야만 할 산이기에, 삶이기에 조바심을 낼 것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다. 다음 일은 다음에 걱정하기로 한다.

하늘재에 닿았을 때 비로소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해 간만에 아름다운 풍광을 보았다. 땟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장갑을 짜고 우비를 벗어 배낭에 갈무리해 넣고 하늘재 표지석 옆의 벤치에 앉아 우린이가 나눠준 오이를 씹어 먹노라니, 아무런 갈등도 고통도 없이 마냥 평화롭고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태를 일컬어 중 1 찬동이는 ‘백두의 매력’이라고 표현했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마지막은 언제나 해피엔딩!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항상 그러하듯 길고 지루했지만 마을 이름이 미륵리인 만큼 벡제권의 미륵 신앙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눈요깃거리가 쏠쏠했다. 미륵은 사랑과 평화의 의미를 지닌 미래불(未來佛)로 부처님이 열반한 뒤 56억 겁이 지나서야 현세에 출현한다고 전해지는 보살이다. ‘미륵경’에서는 미륵불이 출현하면 병고도 없고 차별도 없는 이상 세상이 열린다고 하였으니, 예부터 미륵사상은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득세하여 백성들의 마음에 의지처가 되었다. 서툰 솜씨로나마 곳곳에 미륵불을 새기고, 잘생긴 바위나 산에 미륵바위와 미륵봉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성황당이나 당산나무와 함께 받들고 조그맣게 빚어 마당 뒤나 방안에 모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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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기도 했다. 힘없고 어리석고 불안한 이들에게 더욱 간절한 미륵 그것은 곧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들아이와 함께 석등과 석불입상과 5층 석탑을 돌아보며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가 무사히 끝나기를 비는 합장배례를 바치고 돌아서노라니, 문득 구름을 뚫고 펼쳐지는 햇살이 황홀하다.


제14차 산행    나를 구원한 것들


날짜 : 9월 25일

위치 : 경북 문경시 문경읍 - 충북 괴산군 연풍면

경로 : 이화령 - 황학산(912.8m) - 백화산(1063.5m) - 이만봉 - 배너미평전         - 희양산(999m) - 은티마을

거리 : 총 20.3Km (마루금 16.8Km + 접근거리 3.5Km)

소요시간 : 13시간 20분


갑자기 불안이 천근만근 쇳덩이처럼 가슴을 짓눌러와 숨쉬기조차 힘들 때, 있는 걱정 없는 걱정까지 모조리 물밀어들어 부풀어 오른 머리가 터질것만 같을 때, 불안과 걱정으로 누워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 없는 비명을 꺽꺽 삼킬 때, 오롯이 내가 지어낸 무섭고 어두운 상상에 가위눌린 채 옴짝달싹 못할 때, 어수선한 선잠 어설피 꾼 꿈결에 흘린 눈물로 흠뻑 젖은 베개를 발견할 때, 문득 새삼스레 깨닫는다.

‘어쩌면 상처는 완치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다만 잊거나, 잊었다고 생각할 뿐’        


이른 저녁을 지어 먹고 서너 시간 동안 잠자리에 누워 궁싯거렸지만 결국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새벽 1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설 때는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다 겨우 눈을 붙여보려는 찰나에 문자메시지가 왔다며 방문을 벌컥 열어젖혀 풋잠을 깨운 아들놈에게 지청구를 했지만, 기실 나의 불만은 언제나처럼 내가 만들어 키운 불안과 걱정 탓이었다. 그 불안과 걱정은 구체적인 내용이 있을 때도 있지만, 전혀 내용 없이 막연하고 허황될 때도 있다.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방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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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면 될 테지만 그조차도 아닌 아득하고 어렴풋한 것이라면 오늘처럼 발작적인 히스테리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새벽 3시 반, 버스 안에서도 잠들지 못해 꼬박 밤을 새운 상태에서 장장 23Km로 예정된 14차 산행을 시작했다.

헤드랜턴을 켜고 캄캄한 산을 기어올랐다. 머리 위의 별이 말긋말긋한 것을 보니 오늘 하루 날씨는 좋을 듯했다. 무려 두 달 만에 비를 맞지 않고 하는 산행이다. 그동안의 우중 산행이 얼마나 괴롭고 지난했던지 날씨가 맑으리라는 기대만으로도 마음이 가볍고 즐겁다. 지난 여름의 고약한 날씨가 이만큼이나 오만을 꺾고 욕심을 줄여놓았다. 별도 별이지만 달이 기막히다. 추석으로부터 사흘이 지난 연휴 끄트머리라 소곳이 이지러진 달이나마 휘영청 밝기도 하다. 이화령에서 조봉을 거쳐 황학산까지 300여 미터의 오르막을 별달리 힘든 줄도 모르고 훌쩍 지난 것은 아마도 깨끗한 달빛 덕택일 테다.


7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결코 평탄한 꽃길이 아니었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우리는 어느새 부모와 자식이라는, 학부모와 학생이라는 틀을 뛰어 넘어 동지 혹은 전우와 같은 관계가 되기에 이르렀다. 무슨 대단한 결심이나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라 흙투성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밧줄 하나에 매달려 죽을 둥 살 둥 서로를 부축하고 끌어주다 보니 저절로 이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휘돌려서는 우리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지르밟고 가는 한반도의 마루금, 그 아득한 능선들을 생각했다.

그때 해가 떴다. 황학산 정상에서 아침 도시락을 먹으면서 기다리는 동안 붉은 햇살을 펼치며 아침 해가 공중으로 박차고 올랐다. 아이들은 탄성을 터뜨리고 어른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목적도 희망도 없이 생활하고 행동하는 삶은 취생몽사(醉生夢死)에 불과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의 현재를 똑바로 응시하고 지금의 고통과 기쁨과 상처와 희망을 오롯이 받아들여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이해하는 일이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가? 마치 지금 걷고 있는 산기슭의 긴긴 돌사닥다리처럼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고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언젠가 다다를 끝을 위해서는, 죽음보다 더 어려운 삶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이를 사리물고 기어이 그 험한 돌길을 걷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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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고, 우울은 자기 살을 파먹는 병처럼 스스로 비대해진다. 앞서 고백한대로 소아우울증의 병증을 가졌던 나는 자연스럽게 청소년 우울증과 성인 우울증으로 진행될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사춘기 내내 불안정한 정서 상태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진정 사랑했던 가족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 패악을 부리기도 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동안 ‘성질이 나쁜’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 몹시도 부대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끝끝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만은 암릉에 걸쳐진 밧줄에 매달리듯 놓지 않았다. 꼭 알고 싶었다. 알아야 했다. 그래야 비탈길로 쓸려 내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을 터였다. 어쨌거나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삶이 온통 허방을 짚은 듯 아뜩하고 두려웠던 그때 나를 구원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문학이다. 또래의 무리에 끼어들 수 없었던 외톨이에게 책은 유일한 친구였다. 언제든 찾아가면 만날 수 있고,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설령 취향이 다르다고 해도 타박하거나 따돌리지 않는 다정하고 따뜻한 벗이었다. 책은 내게 새롭고 넓고 깊은 세계를 열어 보여주었고, 그 속에서 마음껏 얼싸절싸 뛰놀게 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그 뭉근한 친교 속에 저절로 이야기에 매혹되면서, 나도 언젠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의 사슬을 엮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보다 더 나를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없을 듯 했다.

그런데 도피처처럼, 죄인을 숨겨 주고 보호하는 소도(蘇塗)처럼 여겼던 바로 그 문학이 내 등을 떠밀어 세상 속으로 뛰어들게 했다.


두 번째로 나를 구원한 것을 꼽는다면 운동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운동’은 중의적 의미로 쓰인다. 그 하나가 육신을 단련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운동이라면 다른 하나는 사회정치적 지향을 실현하고자 힘쓰는 운동이다.

05:30 기상 및 컴퓨터 확인

06:20 백 팔 배

17:50 아이 등교 시간에 맞추어 1시간 - 1시간 반 정도 걷기(모래 주머니          매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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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3번 씩 요가

* 정치적 격변기인 80년대 후반의 학생운동 : 자폐적 경향의 성격에서 세상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함


문학, 운동과 함께 내 삶을 결정적으로 바꾼 계기가 있었으니 …… 발아래 구름바다가 장관인 백화산을 넘고 평전치와 사다리재를 거쳐 이만봉의 암릉 구간까지 지난 뒤 시루봉 갈림길에서 점심으로 싸 온 찌그러진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도를 연구할 만큼 훌쩍 자란 아이!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희생과 헌신,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정과 관심이 무엇인지 모른 채 이기적이고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하나의 인연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겁(劫)의 세월이 흘러야 한다고 한다. 겁은 선녀의 날개옷이 스쳐 커다란 바위가 닳을 때까지의 시간이며, 방울방울 떨어진 물방울이 집채만한 바위를 뚫는 시간이며, 천지가 한 번 뒤집어지는 시간이다. 그런 가마아득한 시간 계산법으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천겁에 한 번 오는 인연이니, 나는 시시각각 나를 새롭게 가르치는 신비로운 인연에게 묻고 또 묻는다.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짐인가. 힘인가? 장애인가. 허들인가? 거울인가. 분신인가? 숙제인가. 알리바이인가? 보험인가. 투자인가? 애완동물인가. 장난감인가? 내가 이루지 못한 꿈. 내가 채우지 못한 소망, 될 수 없었던 것. 할 수 없는 일. 일찍 일어버린 것들. 다시 찾을 수 없는 것들.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닐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에 대한 욕망인가?


그러나 그 수많은 질문 끝에 언제나 대답은 하나다. 그는 아무런 가식이나 죄책감이나 일체의 의구심도 없이 내가 사랑할 수 있었던 첫 번 째 사람이다. 그러하기에 결국 내가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지 않도록 내 팔을 잡아 끈 문학, 운동 그리고 아이는 하나의 의미로 수렴된다. 나를 구원한 것은, 그들을 향한 사랑이었다.


제15차 산행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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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0월 10일

위치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코스 : 버리미기재-곰넘이봉-촛대봉(668m)-대야산(931)-밀재-용추계곡 

거리 : 총 10Km (마루금 5.8Km + 접근거리 4.2Km)

소요시간 : 8시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악산(惡山)으로 꼽히는 대야산을 오르는 동안, 얼마 전 대학 특강에서 하고픈 질문이 너무 많다며 조심스레 연락처를 물어왔던 학생의 이메일 첫 문장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맘을 네 맘이려니 넘겨짚지 않고. 편견으로 재단하지 않고, 섣부른 감상이나 값싼 동정 없이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오래 묵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고작 스무 살에 폐허를 말하는 젊은이에게 선뜻 내놓을 말이 없어 답장이 자꾸만 미루어지고 있었다. 위로의 말을 허투루 할 수도 없고, 조언도 충고도 주제넘은 것만 같았다. 언젠가의 나를 닮은 그의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다는 자괴감으로 허영허영한 네발걸음이 무거웠다.


오늘 펼쳐든 ‘15차 산행’ 지도에는 지금까지 왔던 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표현이 하나 보였다. 대야산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100미터가 ‘절벽’(그 옆에 괄호치고 ‘위험’)이라고 선명하게 표기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틱은 곰넘이봉 어림에서 진즉에 접어 배낭에 붙들어 맸다. 이제 믿을 것은 사지뿐이다. 100미터의 절벽 구간 중 50미터 정도의 완경사면은 몸을 낮게 붙이고 팔과 다리를 적절히 써서 비교적 수월하게 올랐다.

하지만 나머지 50미터의 바위 절벽이 문제였다. 네 부분으로 나뉜 로프 구간 중 처음부터 세 번째까지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그런데 남아 있던 막고비에 비하면 앞의 셋도 별것이 아니었다. 바야흐로 내 눈 앞에는 7미터의 수직에 가까운 바위벽이 완강한 거부의 몸짓처럼 날카롭게 솟구쳐 있었다.

문득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까마득하디 까마득한 수직의 깎아지른 언덕이었다. 낭떠러지, 절벽, 단애(斷崖)…… 그를 지칭하는 다양한 표현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여기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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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다보지 않기로 한다. 까마득한 위도 올려다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경사가 수직에 가까운 바위를 기어오르노라니. “어떡하죠? 도저히 안 돼요! 못 하겠어요!” 란 비명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흠 하나 없는 매Rm러운 바위를 디디려니 발은 거푸 허방다리를 짚었다. 직경 4cm 이상 되는 굵은 밧줄을 잡은 손은 장갑을 단단히 끼었음에도 미끈동거리며 쓸려나갔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팔은 점점 힘이 빠져 흐늘흐늘하고 그에 간신히 지탱한 몸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동안 졸랑졸랑하며 지껄였던 ‘죽을 것 같다’, ‘죽는 줄 알았다’ 따위의 표현은 그저 수사와 말장난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발 밑에 낭떠러지를 두고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는 절벽 중간에 매달려서 느끼는 죽음의 예감과 공포는 그야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생생하고 구체적이었다.

이 줄을 놓치면 떨어진다. 떨어져서 저 까마아득한 허방에 빠져든다. 내가 잡은 줄은 그냥 평범한 로프가 아니라 생명줄이었다. 온몸이 진땀으로 범벅이 되고 머릿속이 백지처럼 새하얘졌다. 내가 이렇게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목숨에 미련이 많은지도 처음 알았다. 우스웠다. 그런데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오로지 하나, ‘죽지 않겠다! 살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랬다 삶은 본능이었다. 치사하고 더럽고 구차하지만. 갸륵하고 애틋하고 미쁜 욕망 혹은 의지.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밧줄을 움켜잡고 산다. 누군가에게는 돈과 명예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놓칠 수 없는 밧줄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복수심과 열등감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과 자비가 허망하게 허방으로 떨어질 수 없는 근거일 테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추억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희망이 붙잡고 매달려야 할 동아줄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 내용과 빛깔은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홈켜쥔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헐떡거리며 묻는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어떻게 올라왔는지를 생각하면 그냥 내려가기가 못내 아쉽다. 일단은 아들아이의 생사를 확인하고 가야겠다고 작심하며 배낭을 벗고 다리를 뻗쳐 앉았다. 주섬주섬 짐을 풀어 간식을 꺼내노라니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손이 떨린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알벤 팔 때문에 고생할 게 눈에 훤하다. 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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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떨며 아삭아삭 사과를 씹어 먹는다. 앞서 와 있던 솔희 엄마와 내 바로 다음에 도착한 지혜 엄마는 바지를 걷어 까진 무릎을 확인하며 한숨을 쉰다. 무릎보호대를 한 덕분에 피부가 벗겨지는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내 무릎에도 피멍이 시커멓다.

그래도 왠지 화가 나거나 속상하거나 불평을 터뜨릴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말할 것 없이 지금 무사히 살아있는 것만으로 산신령님께 감사할 뿐.

마침내 아이가 도착했다. 우리는 마치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크게 팔을 벌리고 소리쳤다. “살아서 만났구나!”하고 얼싸 안는 모자 상봉의 의식이 호들갑스럽다. 완전 ‘쌩얼’에다 땀에 절어 땟국 흐르는 봉두난발의 꼬락서니가 가관이라 웬만하면 산에서는 사진을 찍는 걸 피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열심히 풍경을 찍고 계신 호중 아빠께 청하여 대야산 표지석을 껴안고 기념사진까지 박았다.

하늘이 맑다. 햇살이 투명하다. 설핏 불어온 가을바람이 싸하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는 여전히 모른다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건 좋은 일이다. 참 좋은 일이다.


관리 기관인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산림청 사이에 그리고 생태전문가와 산악인과 숲 운동가들 사이에 백두대간 ‘통제’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인 백두대간을 지키기 위해서 출입통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등반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할 뿐 아니라 관리부재 상태에서 도리어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으니 산로를 정비하고 샛길을 없애자는 주장도 있다.

겉모양새를 놓고 보자면 고전적인 명분론과 실리론의 충돌인데, 확실히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백두대간 종주 열풍과 함께 국립공원의 68Km에 이르는 구간이 토양 침식과 나무뿌리 노출 등 훼손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연간 2천명이 밟고 지나는 길을 안내 간판 몇 개 세워놓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통제하다 보니 산은 산대로 훼손되고 사람은 사람대로 헤맨다.


이번 15차 산행은 토요일의 공개 수업 때문에 일요일에 진행 되었는데 다음 주 목요일부터 아이들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그때 시험공부 대신 산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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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게 더 어려운지 산을 타는 게 더 어려운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공부가 더 어렵다.(기 보다 싫겠지). 산행이 더 어렵다(기 보다 힘들지)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오가던 중에, 문득 미망을 깨우는 포효처럼 내 귓가에 들려온 중1 녀석의 우문현답.

“그야 당연히 산을 타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할 수도 있지만 산은 타는 척할 수 없잖아요?”

할(喝)! 열네 살짜리의 말이 내 마음에 묵직하게 얹혀 있던 그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내 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죽은 척하고 살 수는 있을지 몰라도 사는 척 흉내를 내면서는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살 수 없다. 산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누구도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피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악전고투 끝에 절벽을 기어올라 닿은 정상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남에게 이러쿵저러쿵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산은 오직 스스로 올라야 그 끝에 닿을지니.                   

        

제16차 산행   희망의 정상에 오르다.


날짜 : 10월 23일

위치 : 충북 영동군 상촌면 - 경북 김천시 부항면

코스 : 우두령 - 석교산(1207m) - 삼마골재 - 삼도봉(1176m) - 해인동

거리 : 총 14.33Km (마루금 11.33Km + 접근 거리 3Km)

소요 시간 : 8시간


새벽 3시 반에 버스에서 내려 720m의 우두령에 섰을 때, 관절은 뻐근하고 공복감은 밀려오고 매서운 칼바람에 온 몸이 떨렸다. 하지만 지난봄에 그랬던 것처럼 서러움에 울컥하며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이 생고생을 사서 하겠다고 나섰을꼬?” 라고 한탄하지는 않았다. 새벽 산행은 언제나 괴롭다. 졸리고 배고프고 추운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잠기운이 덜 가신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생각한다.

‘얼마 지나 어둠이 물러갈 즈음이면 잠이 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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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한 뱃속을 물 한 모금으로 달래며 생각한다.

‘두 세 시간만 참고 걸으면 아침을 먹게 되겠지.’

몸을 옹송크리기보다는 스트레칭과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생각한다.

‘산을 타면 체온이 올라가서 금방 땀을 뻘뻘 흘리게 될 거야.’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산의 호흡법을 안다. 씨근대고 헐떡거리기보다는 깊고 낮고 조용히 집중할 때 비로소 그 들숨과 날숨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40년을 평지형 인간으로 살아온 내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이마만큼 변했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하나뿐이라더니, 끝끝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서 체조를 하고 산행을 시작해 단숨에 해발 1207m의 석교산을 올랐다.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지만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서 기념 촬영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 석교산에서 1175봉까지 가는 길에는 급경사의 로프 구간이 솟쳐 있었다. 그런데 빈속에 기운이 없는 상태에서도 별 무리 없이 기어올랐다. 올라보니 꽤 높다. 기울기도 만만찮다. 그런데도 대단히 어렵거나 무섭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fms 사람들도 마찬가지인지 모두 신음소리나 불평 한마디 없이 훌쩍 봉우리에 올라선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이 들지 않는 거지?”

“5기가 종산식을 한다고 하니까 우리가 덩달아 흥분해서 그런 건가?”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오르막을 3시간 가까이 두어 번만 쉬고 달려왔는데도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 상태를 의아해 한다. 몸이 지치지 않으니 마음도 여유 있다. 숨을 고르며 산줄기를 따라 펼쳐지는 햇살 아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울긋불긋한 가을 산의 풍광을 주시한다. 산에는 가을이 깊다. 아니, 봉우리 근방은 벌써 가을이 물러갈 태세다. 나무들은 헐벗은 맨 몸을 부끄럽게 드러내면서 서 있고, 초록의 추억 따윈 까마득히 잊은 듯 칙칙한 빛깔로 나뒹구는 낙엽속으로 발목이 푹푹 빠진다.


데드포인트, 사점(死點)의 사전적 의미는 ‘몸에서 필요로 하는 산소가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태로 죽을 고비에 다다르는 순간’이다. 풀코스 마라톤에서는 2Km, 8Km, 20Km 지점을 데드포인트로 지적하고, 산행에서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1차 데드포인트를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드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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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에 다다르면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두방망이질하고, 온몸의 근육이 통증을 호소해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을 듯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등산 교본에서는 데드포인트에 이르렀을 때 배낭을 내려놓고 오랫동안 휴식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1분 정도는 잠시 쉬어도 좋지만 그 이상 널브러져버리면 몸이 다시 활동 모드로 들어가기 힘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데드포인트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극복하지 못한 채 다시금 겪는 고통은 처음보다 더 큰 타격을 입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의 데드포인트를 넘어서지 못하면 산행을 포기하거나 탈진하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운동생리학에서는 데드포인트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보폭을 줄여 속도를 낮추고 진행을 계속하는 것을 권장한다. 그러다 보면 호르몬의 분비와 더불어 혈액순환이 조절되면서 신체가 활동 모드로 바뀌어 자연스럽게 몸이 평정을 되찾는데, 산꾼들은 이를 ‘몸이 풀린다’ 혹은 ‘산의 정기를 탄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맺힌 것을 풀고 고인 것을 흐르게 하며, 죽음을 닮은 삶의 고비를 넘는다.


“아이고 죽겠어요!”

요가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지금껏 굳어진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를 때, 나의 첫 요가 스승이며 이후로 만난 많은 분 중에서도 가장 ‘요가적인 것’인 고갱이를 가르쳐주신 한순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죽겠어요? 그럼, 죽어요. 나를 죽이면 모든 게 편해져요.”

죽겠으면 죽으면 된다.? 듣기에 따라서는 황당하고 부아가 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죽겠다고 징징대며 앓는 소리가 기실 살겠다고 내지르는 비명이다. 그토록 오만하고 거짓된 나를 죽여 아집과 망상을 떨쳐버려야 비로소 진짜 내가 말갛게 되살아난다. 죽어야 산다!

 

본디 죽음과 삶이 별개일 수 없는 이치와 같이, 데드포인트를 잘 넘기면 통증이나 피로가 사라지면서 다시 편안한 상태를 회복하게 된다. 운동생리학에서는 이를 ‘세컨드 윈드(second wind)'라고 부른다. 두 번째 바람, 멋진 이름이다. 다시금 불어와 땀을 식히고 등을 떠밀어 더 멀리 가도록 추썩이는 바람, 마라톤과 장거리 달리기 등, 소요 시간이 긴 운동에서는 반드시 데드포인트를 극복하고 세컨드 윈드의 에너지를 얻어야 끝까지 먼 거리를 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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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위기가 기회다. 상처가 재산이다. 고통이 힘이다.   

오늘은 우리의 바로 위 선배인 5기의 종산식이 있는 날이다. 2009년 3월 14일에 1차 산행을 시작해 오늘까지 40차의 산행을 마치고 백두대간을 종주한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버스는 곧장 행사가 열리는 학교로 향했다. 행사장인 학생 식당에서는 1기부터 4기까지의 선배들을 비롯해 함께 산을 오르지는 못하지만 알뜰히 뒷바라지를 해주는 가족들이 푸짐한 잔치 음식을 차리고 있다.

우리는 환호성과 박수로 입장하는 5기 대원들을 맞이했다.

“축하해!”

“수고하셨어요!”

“축하합니다!”

마지막 산행 구간인 진부령에서 종산제를 지내고 돌아온 대원들의 얼굴이 아롱거리는 불빛에 발그레하게 달아오른다. 땅 위에 솟은 산줄기만이 아니라 마음속 자신만의 산을 넘은 보람과 자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눈부시게 빛난다.

종산 기념행사는 지금까지 40차의 산행을 통해 찍은 사진들을 슬라이드 상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덕유산, 속리산, 대야산…… 우리도 이미 지난 구간이 비쳐질 때면 반가움과 추억이 물밀어들고 지리산, 설악산, 태백산……아직 우리가 밟지 못한 구간이 비쳐질 때면 긴장으로 다가 앉아 부지런히 산세를 살핀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총 길이 약 1625Km 중 남한 구간 약 690Km를 종주하며 그들도 우리처럼 비를 맞고 추위에 떨고 험한 지형에 악전고투를 했다. 검게 타고 흠뻑젖어 벌벌 떠는 모습이 절로 동병상련의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하나 이상한 점은 사진속의 그들이 참으로 행복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니 우리도 매한가지다. 산행을 끝내고 돌아와 인터넷 카페 사진자료실에 오른 사진을 보면 지나온 순간에 우리는 웃고 있다. 카메라 앞에서 둔갑술이나 변신술 같은 재주라도 피웠던 걸까? 두려움에 질리거나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구간도 지나고 나면 활짝 웃는 사진으로 남는다는 사실이 뭉클하고도 야릇한 위안을 준다. 언젠가 삶의 산을 다 넘은 뒤에도 그처럼 행복한 웃음을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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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수 있다면, 다정한 웃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2년간의 기나긴 여정을 마감하는 종산식인데, 분위기는 끝이라기보다 새로운 시작인 듯 시종일관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사진 속에서 앳되었던 아이들이 그사이 싱그러운 청년들로 자라난 것을 포함해 무엇인가가 변했다. 그 ‘무엇’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궁리하다보니, 현대 사회의 빈곤 문제에 천착해온 미국의 사회 활동가 프랜시스 무어 라페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희망. 그것이다. 자신이 만든 산을 넘어선 그들이 길 위에서 찾아내고야 만 무엇!

세상이 평가하는 성공과 실패의 여부를 떠나, 낮은 자존감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의 원동력은 두려움과 불안이다. 그 맹독성의 두려움을 치료하는 유일한 해독제는 희망이다. 희망, 그것은 수없이 변하는 인생의 굽이굽이에서 문득 만났다가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도 하는 길벗과 같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도대체 내가 왜, 무엇을 위해 산을 오르고 있는 거지?” 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대단한 도를 통한 것도 아니고. ‘뿅!’하고 나타난 산신령이 금도끼나 은도끼 대신 해답을 준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이 그러하듯, 산이 그러하듯, 그 걸음걸음이 이유이자 목적인 ‘끊임없는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모든 것이 지나간다. 머무르는 것이라곤 없기에 때로 허전하고 쓸쓸하지만, 머무르지 않기에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설 수도 있다. 삶은 지나간 과거에 있지도 않고 다가올 미래에 있지도 않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체험하는 바로 그것뿐! 하지만 이쯤에서 우리 6기 팀의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쳐 본다. 까불지 말자!


어머니 품처럼 아늑하고 아버지 등처럼 든든한

우리 땅 큰 줄기를 따라

지리산 천왕봉에서 강원도 진부령까지

나무와 꽃, 산새, 그리고 벗과 걸었습니다.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길도

꼭 밟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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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기도 한 이우공동체 이사장님이 쓰셨다는 ‘백두대간 완주증’의 아름다운 문구가 낭독되는 가운데 완주증 수여식이 거행되었다. 완주를 한 또래 친구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는 부러움이 가득하다. 나 또한 개근 완주를 한 민주 엄마를 지켜보며 내년 이맘때 그 자리에 서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한다. 떡도 나오기 전에 김칫국을 마시는 격이지만 벌써부터 감개무량하여 코끝이 시큰하다. 누군가 대신 올라줄 수 없는 산이기에. 결코 타는 척은 할 수 없는 산이기에,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내 힘과 의지를 끌어내어 오르는 산이기에, 그 길 끝에 서면 지금은 전혀 감지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보게 될 것만 같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가? 어느 길섶에서 어떤 빛깔과 향기를 품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산을 타는 동안 살아 있어서 행복했다. 시시각각 느껴 깨닫는 삶의 순간에 행복했다. 지금껏 16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어쨌거나 시작된 산행은 언젠가 끝나리라는 것, 고통과 시련을 마감하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의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오르내리는 방법 밖에 다름 길은 없다는 것, 그 단순 명쾌한 진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고 무애하다. 산에서, 그리고 삶에서 내 몸과 마음을 지키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나를 믿고 나를 밀어 가야만 한다. 

우리의 산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버겁고도 기쁘고, 아득하면서도 벅차다. 그리하여 나의 산행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2011. 6. 26.    - 완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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