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사용 설명서
- 내 삶을 희망으로 가득 채우는 일곱 가지 물음 -
인생 사용 설명서
- 두 번째 이야기 -
■ 김홍신
0 1947 공주 생, 논산에서 성장
0 건국대 국문과, 동 대학원 문학박사 및 명예 정치학 박사
0 1976 현대문학 등단
0 인간시장, 칼날 위의 전쟁, 바람 바람 바람, 대륙풍, 대발해(전 10권) 등 소설과 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 인생사용설명서 등의 에세이
삼국지, 수호지 등의 중국고전 번역서를 포함한 130여 권의 저서
0 15, 16대 국회의원 : 헌정사상 유래 없는 8년 연속 의정 평가 1위
0 현재 건국대학 석좌교수
동쪽에서 바라보면 서쪽 산이요. 서쪽에서 우러르면 동쪽 산이지만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어느 쪽도 아닌 그저 그런 ‘산’이 됩니다. 내 안에 숨겨 둔 고민과 갈등도 모두 똑 같습니다. 괴롭고 힘든 일도 되짚어 생각하면 손바닥 뒤집듯 시각이 바뀌고, 오늘의 슬프고 괴로운 일도 내일 떠오를 희망의 싹이 됩니다.
■ 단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 글을 시작하며 -
몇 해 전, 참 곱고 아름다운 여성 피아니스트가 버스에서 내리다 얘기치 않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옷자락이 문에 낀 채 버스가 그대로 달려가는 바람에 한참을 끌려가다 오른손을 심하게 다친 것입니다. 그 사고로 결국 그녀는 피아노 건반을 경쾌하게 두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실망과 좌절에 빠져 있던 그녀가 어느 날 제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 수필집 ‘인생사용설명서’를 읽고 몇 년 동안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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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를 용서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면서요.
사랑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 중에 옥시토신이란 것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 산모가 그 모진고통을 견디는 것은 옥시토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모성본능으로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상처를 빨리 낫게 하며 혈압을 조절해 주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의 배를 쓰다듬어주면 어느새 아픈 게 가시는 것도 옥시토신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루만져주기만 해도 옥시토신의 분비량이 20%나 늘어난다니 참 신비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사랑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이나 도파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그라진다고 합니다. 평생 동안 쉼 없이 펑펑 쏟아지게 할 수는 없을까요? 영원할 것 같은 마음이 그리 쉽게 변하다니,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변덕스러운 걸까요?
제 책을 읽고 한 사람의 영혼이 자유롭고 평화로워졌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책이 단 한 권만 팔려도 한없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서와 사랑, 그 모두가 옥시토신을 만들어 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2011. 3월
제1장 당장 무엇을 갖고 싶으십니까?
■ 젊은 영혼이 다시 태어난 곳
스무 살 적, 제 영혼은 참으로 궁핍했습니다. 재수 끝에 들어간 대학을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 저에게 앞날은 깜깜하기만 했습니다.
집을 팔아 빚잔치를 해야 할 만큼 집이 망했으니, 휴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복학할 기미도 없는 상황에 군 입대 신체검사 통지서까지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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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자, 저는 친구 녀석과 함께 배낭을 꾸렸습니다. 애인에게 버림 받은 친구는 자살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워하던 차였지요. 그 정도가 저보다 덜하진 않은 듯 했습니다. 참으로 우울한 두 청춘이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나중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변산반도였습니다.
한 시도 쉼 없이 철썩거리는 파도, 이글거리는 태양도, 달아 오른 모래밭도, 거대하고 장엄한 바다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기로 작정하고 달려온 마당에 거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틀을 견디지 못하고 텐트를 걷었습니다. 태양이 온 몸에 불을 지른 듯했고, 눕거나 엎드릴 수도 없을 만큼 옷자락만 스쳐도 따끔거렸습니다. 죽을 작정을 했던 우리는 근처 소나무 그늘에 텐트를 치고 약을 바르며 살 궁리를 했습니다. 온몸을 덴 듯한 참기 힘든 고통이 우리의 우울과 분노와 좌절을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어떤 어부가 우리의 행색을 보고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식 생각이 난다며 쌀과 건어물을 챙겨주었습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웃을 때만 하얀 덧니가 드러나던 사람이었지요.
그를 따라 기름먹인 횃불과 양동이를 들고 갯벌로 나가 게를 잡거나 썰물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심심찮게 잡았습니다.
게잡이보다 몇 배나 즐거운 것은 어부의 아내가 차려준 밤참이었습니다. 맛깔스러운 무침과 말린 생선에 배가 불러왔고, 목구멍이 싸해지는 소주에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어부의 구성진 가락에 흥이 오르고, 죽지 못해 살아왔다는 그의 신세타령에 가슴이 뜨거워졌으며, 무슨 귀신이 달라붙었는지 평생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팔자가 되었다는 어부 아내의 하소연에 눈물이 솟는 밤이었습니다.
“ 죽을 작정을 한 놈들이 햇볕에 데었다고 엄살부리고, 배고프다며 실컷 쳐먹고, 미쳤다고 수영을 배워? 바다에 빠져 죽을까봐 기를 쓰고 날 붙잡고 늘어졌는겨? 네놈들 죽었다고 세상이 울고불고 슬퍼할 줄 알아? 죽을 작정한 놈들이 소문내고 죽던가? 얼씨구 자알 논다!”
우리가 숨죽이며 고개를 들지 못하자, 어부는 내뱉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죽을 작정을 했으며 죽어야지. 가자! 짠물 실컷 마시면 배불러서 배고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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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들이 얼싸 좋구나 할테니, 어서 가자!”
어부는 금방이라도 바다로 끌고 들어갈 기세였습니다. 우리는 잘못했다고 한없이 빌었습니다. 이튿날, 어부는 건어물을 한보따리씩 안겨 주고는 우리를 고향으로 쫓아버렸습니다. 그 여름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저는 우여곡절 끝에 복학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 청춘, 소신 있고 당당한 삶
얼마 전 제가 ‘무릎팍 도사’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예상밖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프로그램이라 그들이 어떤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는 ‘무릎팍 도사’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다섯 가지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첫째, 근사하게 살아야 합니다.
젊은이라면 근사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권리는 포기할 수 있지만 의무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만큼 젊음을 잘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젊음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성공하여 세상에 보탬이 되며 존경 받는 사람들에게는 젊은 시절을 잘 활용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콤플렉스를 잘 갈무리했거나 실패를 겪어도 딛고 일어섰습니다.
둘째, 인생은 1회용이므로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언제든 꺼내 쓰고 버릴 수 있는 1회용 휴지를 꺼내든 저는 “사람은 한 번밖에 못 살기에 살아 있는 동안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휴지가 단 한 번에 사용자의 마음을 만족시키듯 사람 역시 자신의 목표를 위해 돌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분출되는 정열은 사람답게 살았다는 증거가 되어 줍니다.
경제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가 오페라 ‘팔스타프’를 80세에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한 “그 나이까지 힘들게 작곡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베르디는 “끝날 때는 늘 아쉽기에 나는 한 번 더 도전한다.”고 답했지요. 그 말에 당시 18세 였던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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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커는 특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습니다.
베르디의 일화는 드러커가 80세에 ‘새로운 현실’ 84세에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90세에 ‘21세기 지식경영’ 93세에 ‘넥스트 소사이어티’ 같은 걸작을 남기는 데 원동력이 되어 주었을 것입니다.
셋째, 소신 있고 당당한 삶이 존경 받습니다.
소신과 고집은 다릅니다. 소신은 정당하고 온당하며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세월이 지나도 정의롭다고 판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집은 자신의 이익에 집착하거나 타협하는 것으로, 세월이 흐르면 눈속임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잘 산 사람은 자신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고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2년여의 군대 생활은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아름다운 의무이자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일이지요.
전쟁 중에 한 프랑스 군인이 총상으로 한쪽 팔을 잘라내게 되었습니다. 군의관이 “안타깝게도 한쪽 팔을 잃게 됐다”고 전하자. 그 병사는 “팔을 잃은 게 아니라 조국에 바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군 복무를 기피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 병사가 바보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군인이야말로 오늘의 프랑스를 일군 향기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희망의 반대말은 절망이 아니라 굴종입니다.
안데르센은 집이 몹시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였습니다.
훗날 명작을 남긴 대작가로 우뚝 섰을 때. 그는 “내가 처절하게 가난하지 않았다면 ‘성냥팔이 소녀’를 쓸 수 없었을 것이며. 내가 못 생겨서 무수히 놀림을 받지 않았으면 ‘미운 오리 새끼’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안데르센은 가난과 못생긴 외모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모진 열등감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면 희망은 공짜로 얻을 수 있습니다. 따로 돈을 들이거나 시간을 쏟거나 무던히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만 다져 먹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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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입니다.
젊음이 소중한 이유는 희망이 무진장 널린 벌판에 서 있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당연히 희망을 줍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다섯째, 자신을 사랑하고 상대방을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영혼과 육신의 존귀함은 한도 끝도 없으며, 사람은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하는 것은 참으로 근사한 자존심입니다.
자신을 존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나를 사랑하듯이 남을 아끼는 일은 인간다운 향기를 뿜어냅니다. 사람만 사랑할 게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극히 아껴야만 멋있는 인생입니다. 자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세상 모든 것이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고맙고, 상대방이 고맙고, 세상 모두가 고마운 것입니다.
■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영혼의 친구
한창 청춘을 뽐내던 대학시절, 한 사내가 등장하여 제 아성을 짓밟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가에서 소설을 씁네. 하며 잘난 척 흰소리를 치고 다니던 제게 그는 강력한 라이벌이었습니다.
그의 첫 인상은 단정하고 준수했으며 웃음이 가득하고 여유로웠습니다. 촌에서 기를 쓰고 올라와 아직 촌티를 벗지 못한 제게는 그것 또한 달갑지 않았습니다.
그는 술 잘 마시고 문학 논쟁에서 물러서지 않았으면서도, 인정이 푼푼하고 제법 당찬 기질이어서 좌우를 두루 챙기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얼마 뒤 저는 그에게 등산 제안을 했고, 그는 기꺼이 동참했습니다. 저는 등산 후의 뒤풀이 자리를 노렸습니다.
소주 돌려 마시기……. 패거리들의 집중 공격에 한 잔도 거절하지 않고 마신 그는 얼마 후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그날 택시에 태워 그의 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는 3일이나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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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되어 42년간 한 번도 마음 상하거나 잊거나 소원한 적 없이 이어져왔습니다. 동무 사이를 40여년 이어가려면 한두 번쯤 우여곡절이 있을 법한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한평생 제 육신을 보살펴 주고 영혼을 담금질한 그 동무는 일찍이 ‘라디오 동의보감’으로 널리 알려진 덕망 있는 한의사 신재용입니다. 그는 명망 높은 봉사자이자 명의로 소문이 자자한 학자이기도 하지요.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 집안의 가풍은 ‘어려운 이를 보살피고 환자를 정성으로 받들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개업 후 1992년 ‘동의난달’을 설립한 그는 18년이 넘도록 무의촌을 찾아다니며 의료 봉사를 하고 있고, 그 지역의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하여 온갖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민족혼, 웅혼하고 장엄한 발해 역사를 복원하고 싶어 3년여 동안 두문불출하고 쓴 대하 장편 역사소설 ‘대발해’ 10권을 완성하는 데에는 그의 도움이 지대했습니다.
한 나라의 멸망과 건국, 민족의 흥망성쇠, 전쟁과 암투, 사랑과 갈등을 그리려다 보니 인간의 생로병사를 파고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수없는 죽음과 부상, 일상의 수많은 병고를 다루려면 탁월한 의학적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을 ‘신재용으로 작명하고 의술과 덕치, 현자의 도리를 그의 입을 통해 풀어냈습니다.
‘대발해’를 발간하고 그 동안의 고마움을 전하자.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오히려 우리민족의 장엄한 역사를 되살려 주었으니 고마울 뿐이다.”라며 겸손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인덕이 많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제 인생에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영혼의 동무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 앵무새 증후군 진단하기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생의 84%가 대학에 진학 한다고 합니다. 세계 최고의 수치가 분명하지요. 대학생 수도 인구 1천 명당 62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습니다. 미국이 52명이고 일본, 프랑스, 독일 같은 선진국도 30-40명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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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라고 하니까요.
그런데도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요?
입시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에는, 개개인의 개성이나 취향에 따르기 보다는 성적에 따라 결정합니다. 성적이 상위권이면 일류 대학을, 중위권이면 중위권 대학을 선택해야 한다는 상세한 안내와 지침 같은 것…….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까요? 자신의 개성은 무시한 채, 사회적 잣대로만 진로를 결정하는 청년들이 어떤 풍요로운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
중앙 일간지에서 서울 강남과 강북 주요 지점의 성형 전문의들과 공동으로 거리 조사를 실시했더니, 놀랍게도 여성의 10명 중 4명이 성형을 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제 나이로 보이면서 세월의 흔적을 멋지게 간직한, 품위 있고 세련된 노년의 개성 있는 모습이 사라지게 될 것만 같아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도 평점이 좋은 걸로 선택해야 안심이 되고, 유행어를 알아야 대화에 낄 수 있으며, 뭔가 남을 따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소외된 듯 한 이 기이한 유행 콤플렉스를 ‘앵무새 증후군’이라 이름 지어 봅니다.
사람이 가르친 대로 흉내를 내는 앵무새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마는, 사람이 제 혼과 주장과 생각과 개성을 내려놓고 남의 흉내만 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어떻게 앵무새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제2장 지금 어떤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
■ 우리들 모두의 가슴앓이
승용차를 타고 가던 중년의 자매가 ‘베트남 처녀 중매합니다’라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여동생이 “베트남 처녀하고 말이 안 통해서 어찌 살까?”하고 걱정하자. 언니가 대뜸 “이것아, 너는 신랑이랑 말이 통하냐?”며 소리를 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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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지요. 중년 부부의 불통(不通)을 빗댄 우스갯소리지만, 이 시대 곳곳에서 발견되는 ‘닫힌 문’을 풍자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정치권만 살펴봐도 여당이 100% 찬성하면 야당이 100% 반대하거나, 야당이 전원 찬성하면, 여당이 전원 반대하는 극단적인 불통의 상황이 굳어졌습니다. 북한이 100% 투표율에 100% 찬성률을 자랑하는 독재 체제이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며 그야말로 ‘닫힌 세상’이라고 힐난하는 정치인들이, 과연 자신들의 융통성 없는 ‘닫힌 가슴’에 대해서는 반성할 기미가 없어 보이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상에는 양과 음이 있고, 동과 서가 있으며, 뜨거운 것이 있으면 차가운 것이 있습니다. 또 내가 있으려면 네가 있어야 하고 햇볕이 뜨거울수록 그늘은 짙은 법입니다. 그것을 일컬어 ‘조화’라고 합니다.
진보가 빛나려면 보수가 있어야 하고 보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진보가 존재해야 하는데, 혹여 내 편만 멀쩡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요. 야당이 당당하려면 여당이 정정해야 하고 여당이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야당의 견제가 필수적인데, 혹여 우리 쪽 주장만 옳다고 우기지는 않았는지요.
평상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내 편은 아군이요. 네 편은 적으로 인식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지연, 학연, 혈연 따위에 스스로 얽매이지 않습니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으로 한동안 우리나라는 사랑, 용서, 베풂의 메시지로 가득했습니다. 종파와 지역과 남녀노소와 이념을 뛰어 넘어 국민들의 가슴을 흔들었던 것은 바로 자신을 낮추는 일이었습니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포용, 자기 낮춤이 선행된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추기경의 이 말씀은 스스로 내려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또한 내려놓은 만큼 소통하게 된다는 교훈을 남겼습니다.
허준 선생은 ‘동의보감’에서 “통즉불통(通卽不痛)하고 불통즉통(不通卽痛)”이라고 했습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는 표현이 어디 육신만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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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겠습니까?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가슴앓이인 것 같아 마음이 시립니다.
■ 고질병이 아니라 고칠병입니다.
보석이 비싼 이유는 희귀하고 잘 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석은 스스로 빛나는 게 아니라 빛을 받아서 아름다워 보이는 것입니다. 땅속이나 깜깜한 곳에 있으면 영롱해 보이지 않고 그저 사물일 뿐이지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스스로도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혼자 빛난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나라, 사회, 학교, 조직, 친구 등 무수한 존재들이 그의 성공을 거들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또다른 특징은 자신에게 열심히 투자하여 스스로도 행복할 뿐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며 세상에 보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읽은 글에서 ‘참 아름다운 영혼’이구나 싶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웃음치료 교실에 나오는 80대 할머니가 계시는데 언제나 싱글벙글 웃으신답니다. 부럽기도 하고 그 비결이 궁금해서 “할머니, 요즘 건강하시죠?” 라고 물었더니, “응, 아주 건강해. 말기암 빼고는 다 좋아”라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누구나 암을 ‘고질병’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고칠 병’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 할머니는 누가 뭐라 해도 인간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요?
성공을 세속적이며 사회적인 성공과 인간적이며 정신적인 성공으로 나누어보면 어떨까요? 시골에서 농사지어 자식을 가르치고 마을사람들과 오순도순 살며 햇볕에 짙게 그을려 주름이 선명한 농부가 없으면 어찌 우리가 먹고살 수 있겠습니까? 그 인생 또한 참 소중한 성공이자 이 땅의 보석과 같은 삶이 아닐까요?
말기 암에 걸렸지만 결코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80대 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 나는 성공인지, 모두가 공감하고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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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에 갈등이 생기는 이유
‘날마다 웃는 집’에서 법륜 스님은 “그 사람 성격이 나빠서 갈등이 생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내 곁에 있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중심성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법륜 스님은 자신의 기준에서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다고 보고, 그에 따른 치료법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보면 옳고 그른 것이 상대의 기준으로 보면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 가는 길’을 물었을 때 인천 사람에게는 “동쪽으로 가라”고 하며 춘천 사람에게는 “서쪽으로 가라”고 하라는 말은 구체적이면서도 실증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종이 한 장에 산을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표시해 봅시다. 그리고 산꼭대기 쪽에 해를 그립니다. 동쪽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을 서산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러나 서쪽에 사는 사람은 그 산을 동산이라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늘 태양이 그 산을 넘어 오는 걸 보았을 것이니까요.
서쪽 사람과 동쪽 사람이 만나면 같은 산을 두고 서로 동산이라거나 서산이라고 우길 것입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빌려와도 어느 한 쪽이 틀렸다고 판단하기 쉽지 않을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두 사람이 그곳을 벗어나 멀찍이에서 산을 쳐다보면 그 산은 동산도 서산도 아닌 그냥 하나의 산이란 걸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조금만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면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고집하던 시각에서 한 발 양보하는 순간, 갈등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게 “설마 세상살이에 답답하고 막히는 게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놈의 체면 때문에 물어볼 데가 없는 게 얼마나 답답한 줄 아느냐”고 답합니다.
그럴 때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으면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어지곤 합니다. 물로 저와는 다른 갈등이지만 물음에 대한 해답의 원리는 한 줄기이기 때문에 속이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복잡합니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복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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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스님의 이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밤에 잠들었을 때는 세상이 그리 고요하다가 아침에 눈 뜨면 그리도 복잡해지는 것은 내 마음 때문이지 세상 탓이 아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법륜 스님의 ‘날마다 웃는 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을 좋아하면 내가 즐겁고
남을 사랑하면 내가 기쁘고
남을 이해하면 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
이 모두가 나를 사랑하는 법입니다.”
■ 나이 들어간다는 것
하루는 인품이 그윽하며 마음이 넉넉해서 제가 참 좋아하는 언론인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는 참이었습니다. 그는 저와 함께 차에 타자마자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코트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두고 왔으니 찾아서…….”
저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었습니다.
“지금 손에 드신 그 휴대전화는 뭡니까?”
그분은 제 얼굴과 휴대전화를 번갈아 보더니 “어, 여기 있네”하며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저도 물론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사건은 애교에 불과한 듯 싶습니다. 휴대전화를 냉장고에 넣고 못 찾는다거나, 휴대전화 대신 리모컨을 들고 와서 숫자판을 누르다가 휴대전화가 고장 난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인과 함께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했다가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친 부인에게 “여긴 웬일로 왔느냐?”고 물었다는 분의 경험담을 듣고는 마시던 커피를 내뿜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건망증 증후군의 근원을 전문가들은 여러 갈래로 설명합니다. 그중에는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문득 ‘이거 유전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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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먹는 것에 대한 씁쓸함을 덜고 싶었던 거지요. 얼마 안 있어 그 생각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들 녀석이 나이가 차서 사랑하는 여인이 생겼다며 제게 선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몇 번을 만나고도 머릿속에서만 뱅뱅 돌 뿐, 아들의 여자 친구 이름은 그냥 ‘거시기’였습니다. 급할 때면 ‘거시기’를 찾던 아버지의 병이 그대로 대물림 된 걸까요?
제3장 오늘 어디에서 위안을 찾겠습니까?
■ 약점에도 경쟁력이 있습니다.
“왜 사느냐?”고 물으면 바로 대답하는 사람이 드물지요. 그만큼 인생은 복잡다단합니다. “태어났으니까?”, “먹고살기 위해”, “즐겁고 행복하려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냥 그렇지 뭐……“. 더러는 ”죽지 못해서“라고 대답하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하지요.
이 물음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살이가 그리 쉽다면 세상이 이리 뒤엉켜 하루도 시끄럽지 않을 까닭이 없을 테니까요.
행복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누구든 얼른 “내 마음에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정작 잘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마음 밖에서, 자신이 갖고 싶거나 갖지 못한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부분 남들도 갖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가지려고 다투고 미워하게 됩니다. 갖고 싶은 건 많은데 다 갖지를 못하니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거고요.
결국 사람들은 스스로 외롭고, 힘들고,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미 원하는 것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자신을 비교하는 함정에 빠져버리는 셈입니다.
어느 신문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코스타리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코스타리카는 남한의 절반 크기의 땅에 인구 420만 명, 1인당 GDP가 약 1만 달러인 나라입니다. 그러나 행복데이터베이스(WBD)에서는 10점 만점에 8.3점인 덴마크를 제치고 8.5점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스’에서도 “잘 보존된 자연이 이 나라 국민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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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다.” 라고 보도했을 정도지요.
많이 가진 게 행복이 아니라, 소박하게 오순도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 셈입니다. 잘 보존된 자연 덕이라고 하니, 우리나라처럼 어디를 가든 개발 몸살을 앓거나 시골 정취가 사라져가는 아파트 전시장 같은 풍경은 아닐 테지요.
사람들에게 “어떤 게 행복이냐”고 물으면 대체로 돈, 명예, 권력, 사랑, 건강 등을 열거합니다. 한마디로 대답해 보라고 하면 구구각색의 답변을 내놓지만. 결국 ‘뭐든 내 맘대로 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건 하느님도 잘 안 될 것”이라며 웃으며 대꾸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내 맘대로 되는 세상’을 소망하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이 매력적이기만 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본능의 경제학’을 쓴 비키 쿤켈은 “성공한 사람들이 인생에 뚜렷한 고난이 없다면 그들은 대중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의 단점 때문에 호감을 갖게 되고 친밀해지게 된다”는 구절을 읽으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어느 책에서 “그 사람의 약점에 그 사람의 영혼이 있다”는 내용을 읽고 순간 참으로 근사하고도 인간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약점이나 단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희망을 줍는 방법
독서를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는 까닭은 책이 지혜의 잔칫상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양식인 음식은 너무 많이 먹으면 탈이 나지만, 마음의 양식은 채우면 채울수록 사람을 빛나게 합니다.
저자의 영혼을 접하고, 그의 철학을 엿보고, 그의 생각을 읽고, 그의 심혈을 느끼는 것은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일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바가지를 주어도 거꾸로 잡으면 물을 담을 수 없듯이. 책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제게 어떤 책을 읽어야 좋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을 읽느냐보다는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책을 일주일에 한 권씩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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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면 1년에 50권 정도를 읽을 수 있고, 그렇게 10년을 꼬박 읽어도 겨우 500권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바른 습관부터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지요.
책을 읽으면 뭐가 좋으냐고 묻는 이가 있습니다. 독서는 교양 있는 인간을 만드는 공장과도 같습니다. 교양 있는 사람은 판단력과 분별력이 정확하며 공정합니다. 또한 뭇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며 거만하거나 옹졸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세상에 보탬이 되고 남을 이끌어 주기도 합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세상을 드넓게 보는 혜안을 갖기에 참 멋있게 살아갑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화려한 독서 편력을 자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영혼 속에 보물 창고가 생겨서 온갖 신비한 것들로 가득 채워집니다. 책을 읽는 일은 마음속에 보물 창고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재물과 권력과 명예의 창고는 지으려고 안달할수록 무너지고 부서지고 떠내려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끌고 가는 법을 책에서 배웁니다. 도전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와 천하를 살펴보는 넉넉함을 책에서 배워 세상에 보탬이 되는 것입니다.
향기 나는 사람의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때 책은 희망을 탐지하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알고 보면 희망은 가을 산에 널린 낙엽처럼 우리 인생에 무진장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이때 책은 희망을 줍는 방법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챙긴 희망을 근사하게 사용하는 법까지 일러주지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 있게 마련입니다. 열등감은 우월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다 남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못났다고 자책하곤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자존심을 깎아먹고 기를 죽이고 맙니다.
그러나 세상에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못났다고 여기고 자신감을 잃거나 원망하거나 외로워합니다. 책 속에는 그러한 열등감을 딛고 일어서는 가르침이 있고, 답으로 안내하는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또한 책은 우리 마음속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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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당신 삶의 온도는 얼마나 뜨겁습니까?
■ 개인의 자존심, 나라의 자존심
대학 시절, 데모하다 잡혀갔다가 담당 형사에게 들은 이야기가 지금껏 잊히지 않습니다.
“잡혀 온 학생 중에 겁에 질려 손발이 닳도록 비는 녀석은 따귀 한 대 갈기고 싶지만, 데모 대열에 설 수밖에 없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녀석은 나중에 저 기세로 어떤 인물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함부로 대하기 어렵다.”라고 말입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당당할 때, 스스로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다움’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는 자존심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다움’을 위해서는 역사, 문화, 철학, 전통을 아우르는 국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고구려 유적을 중국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하는가하면, 최근에는 압록강변의 고구려 성이었던 박작성을 파헤쳐 인조대리석과 시멘트로 급조한 가짜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호산산성 역사박물관을 지어 고구려 백제는 본디 중국 땅이었다는 가짜 지도를 내걸었으며, 원래 만리장성은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고구려 역사가 분명한 박작성에서 산해관까지 가짜 만리장성으로 2,500Km를 연결한 중국의 야욕엔 무슨 뜻이 숨어 있을까요? 여기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규정하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무려 3조 7천억 원을 투입하여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대규모 휴양지로 개발하고 ‘창바이산’이란 브랜드로 내세우려 합니다. 또한 기반 시설을 조성하기 위해 50조 위안을 투자하여 고속도로와 철도 공사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발해는 신당서 구당서 등 수십 권의 중국 역사서에서 밝혔듯 당당한 독립국가요. 고구려를 계승한 제국이었는데도 중국은 발해를 당나라의 변방정권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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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09년 9월 4일, 일제는 대한제국을 제외시킨 채 철도 부설권과 탄광 채굴권을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나라에 넘겨주었습니다. 이미 일본 정부도 인정했듯 1905년의 을사늑약은 불법이기 때문에 간도 협약도 무효인 것은 당연합니다. 저 너른 땅 간도는 대한민국 영토가 분명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참으로 민망합니다. 동북공정이나 간도 문제를 애써 외면하려는 신사대주의적 굴종은 언젠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국가다움’을 지키지 못한 채 주눅 든 국가를 세계는 더욱 깔보게 될 것입니다. 경제적 손실을 각오하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운다면 오히려 훗날 득이 될 것이란 사실을 정부가 하루빨리 깨달았으면 합니다.
■ 가슴을 뜨겁게 데운 씨앗 한 알
죽의 장막이라는 중국을 처음 방문한 것은 1986년 초가을이었습니다. 소설가의 첫 방문이어서 국가정보원의 허가 과정도 복잡했고, 중국 방문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써야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조선족 재야 사학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머지않아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자국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북한을 종속국으로 삼기 위해 학자들을 동원하여 역사 왜곡을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중국에 살면서 나래를 펴보지 못한 재야 사학자의 뼈에 사무친 국수주의적 발상이거나 지나친 민족주의쯤으로 여겼지요.
그러나 그의 달변이 점점 제 가슴을 휘젓기 시작했습니다. ‘헛소리가 아니면 어쩌지?’ 하는 근심이 저의 가슴 속에 기묘한 씨앗 한 알을 떨어뜨렸습니다.
1991년 여름, 한중 국교가 수립되고 왕래가 좀 더 자유스러워지면서 고구려 역사 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엄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이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국내성의 성곽이 아파트의 경계석으로 변하고, 성벽의 돌이 주택의 울타리가 되거나 빨래판이 되어버린 걸 보면서 견디기 어려울 만큼 분노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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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총 한쪽 벽이 무너진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데다 광개토대왕릉비가 호태왕비로 불리는 것도 참기 힘들었습니다.
백암성 성벽이 무너져 흉물이 된 모습이나, 고구려의 빼어남을 상징하는 해자, 옹성, 치, 망대가 무너져버린 졸본성을 보니 가슴이 시려왔습니다.
저는 발해의 흔적을 찾아 나섰습니다. 발해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발해를 저버린 것은 다른 강국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찾아볼 수 있었던 발해에 대한 기록은 제3대 문황제 대흠무의 둘째 공주 정혜(貞惠)와 넷째 공주 정효(貞孝)의 비문 1,500여자 말고는 남은 게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름, 나이, 묻힌 곳 정도만 빼고는 두 비문의 글자가 똑 같아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비문에서 역사적 고증이 될 만한 것이라고는 발해가 황제 국가였고, 불교를 숭상했으며, 여자 스승이 있었다는 사실과 황실 묘역의 지명 정도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발해는 침묵의 천년이라는 슬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남쪽에 신라가 있고 북쪽에는 광대한 발해가 있었지만, 남북국 시대라고 부르는 대신 우리 스스로 삼국통일 시대라고 협소하게 규정했습니다. 이는 결국 역사를 왜곡하고 웅대한 발해를 저버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고구려마저 가볍게 여기고 부여를 소홀히 하고 단군, 환웅, 환인마저 버리는 슬픈 일이 벌어졌습니다.
■ 자존감을 찾기 위해 떠난 역사 기행
저는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역사 비평으로 정평이 난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액자로 걸어두고 늘 그 정신에 따라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벌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이를 추적하기 시작하면서 액자를 치워버렸습니다.
공자의 춘추필법은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는 한자의 특징을 이용해 에둘러 역사를 기록하는 서술 방식인데, 알고 보니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째, 존화양이(尊華攘夷)로 중국은 높이고 외국은 깎아 내라고
둘째, 상내약외(詳內略外)로 중국은 상세히, 외국은 간단히 기록하며
셋째, 위국휘치(爲國諱恥)로 중국의 수치스러운 것은 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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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미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우리의 모화 선비들은 앞 다투어 춘추필법의 장단에 춤을 추고 중국 사서를 베끼며 우리 역사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버린 역사를 고증하며 천년의 침묵을 깨뜨리기로 작정하고 스스로 옥살이를 각오했습니다. 권부로부터 장관급 공직과 출마 제의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한 채, 중국의 야욕과 맞서겠다며 모진 결심을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서, 매일 200자 원고지 20매 이상 쓰며, 모임과 행사에 나가지 않고, 아프지 말며, 오직 ‘대발해’ 집필을 마칠 때까지 제 영혼을 쥐어짜기로 작정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제 영혼을 바치기로 작정했는데도 문득 앞을 보니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너무 짧아 보여 이 일을 어찌할까, 하는 걱정만 앞설 뿐이었습니다.
‘대발해’ 집필을 위해 스승을 따라 아흐레 동안 무려 4,300Km에 걸쳐 역사 기행을 떠났습니다.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강행군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만 있고 햇빛을 보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은 탓에 요로결석을 앓았는데, 그때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퇴원한지 엿새 만이었습니다.
첫날 백암산성을 거쳐 졸본성과 환도성을 견학할 때까지만 해도 고통을 참으며 겨우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고구려 임금들이 하늘과 선조에게 제를 올렸던 국동대혈(國東大穴) 통천동(通天洞)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제주가 되어 환인, 환웅, 단군께 제사를 올리고 발해의 시조 대조영에게 ‘대발해’의 집필을 고한 뒤에는 몸이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백두산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저는 오늘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백두산 정상에서 감자와 옥수수로 요기하고 천신만고 끝에 천지에 올랐습니다. 천지에 발을 담그고 내려오면서, 저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몸이 아주 가벼워진 것입니다. 일행들이 걱정할 정도로 몸을 가누지 못하던 제가 일행과 어울릴 정도로 몸이 좋아졌습니다.
동행한 이들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통천동에서 제사 올리고 백두산 상봉과 천지에 올라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은 저의 뜻을 하늘과 선조들께서 갸륵하게 여긴 덕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대발해’가 출간되면 스테디셀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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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조짐이라며 격려해 주었지요.
이때부터 하루에 두세 시간씩 자면서 청산리 전투터, 중경현덕부, 용정, 일송정, 고구려의 책성, 도문, 발해진, 상경용천부, 경박호, 24개석, 동모산 등을 탈 없이 답사했습니다.
특히 동모산 밀입 작전은 은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휴대하기 간편한 디지털 카메라를 바지 주머니에 감춘 채 발해의 흔적을 좇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이 은밀히 발굴한 발해의 유물과 사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역사 왜곡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칭제건원하고 도읍으로 정한 동모산은 중국에 의해 10여 년 전부터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중국은 황실묘역으로 추정되는 복동<福洞 , 옛 염곡(染谷)>과 육정산<六頂山, 옛 우정산(牛頂山)> 또한 왕래를 막았지요.
최근 발해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상경용천부도 남쪽 성곽을 빼고는 모두 봉쇄된 상태입니다.
또한 발해 사람들이 이용한 교통로나 주요 접근로를 연구하기 위해 꼭 살펴봐야 할 역참(驛站, 24개석으로 통칭하고 있음)은 이미 쓰레기더미로 변했거나 밭이 된 상태였습니다. 그냥 봐서는 도저히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라고 할 수 없을 지경이었지요.
저는 누차에 걸쳐 발해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발해의 흔적을 수첩과 사진과 혼에 담았습니다.
1,300여 년 전의 발해의 유물인 삼베 자국이 선명한 기와와 질그릇 파편을 여행 가방에 챙겼습니다. 공항에서 발각되는 순간 구속될 거라며 주변에서 극구 말렸지만 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늘과 조상들께서 도와주실 겁니다.”
지금 내 책상 앞에 있는 발해의 유물은 그렇게 해서 얻게 된 것입니다.
중국 사료인 신당서에 따르면 발해의 강역은 사방 5천 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10리가 5.6Km 였음) 중국의 동북 3성은 물론이고 연해주 일대까지 발해 땅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지역까지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대발해’의 집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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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권의 자료를 모았습니다. 꼼꼼하게 읽고 정리하면서 그동안 발해의 역사가 처참하게 지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제가 찾은 것의 대부분은 중국 측 사료와 자료인데, 그 기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되었거나 편파적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이 외국에 보낸 것은 모두 선물(膳物)이며 받은 것은 모두 조공(朝貢)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랑캐 이(夷)’ 자도 본래 군자, 뿌리, 겨레를 뜻했으나, 중국이 마음대로 오랑캐로 의미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욱 분노가 치밀었던 것은 그런 중국의 역사 기술을 비판 없이 정사(正史)로 받아들인 우리의 역사기술이었습니다. 우리 학자들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주고받는 국서(國書)에서 ‘할 위(爲)’ 자를 우리가 보낸 것은 ‘하옵소서’로, 우리가 받은 것은 ‘하라’로 번역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심지어 무역로인 당도(唐道)를 조공도(朝貢道)라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발해 역사를 자국에 유리한 쪽으로 기술하고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역사를 왜곡하고 있음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며 그릇되게 기록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한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지혜를 얻는 과정에서 그 나라는 더욱 크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영원히 퇴고해야 할 찬란한 기록
저는 ‘대발해’의 마지막 장면을 비참하게 그렸습니다. 마지막 황제 대인선(大諲譔)이 소복 차림에 새끼줄로 몸을 묶고 양 한 마리를 끈 채 거란의 야율아보기의 발아래 엎드려 항복을 청합니다. 소복은 항복을 뜻하고, 새끼줄로 묶은 것은 목숨을 처분에 맡긴다는 뜻이며, 양은 온순하게 항복하겠다는 의미지요.
이에 야율아보기는 황제 대인선에게는 오로고란 이름을 하사하고, 황후에게는 아리지라는 이름을 하사합니다. 야율아보기의 애마 이름이 오로고이고 그의 아내 술율의 애마 이름이 아리지였으니, 멸망한 발해의 황제와 황후를 짐승처럼 취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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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렇게 처참한 최후를 대단원의 마지막 장면으로 설정한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크게 걱정하며 역사에서 우리의 기백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나라가 망할 때는 대체로 다섯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로 내분으로 나라가 어지럽고, 둘째로 지도자가 어리석고 못나서 혼암(昏暗)하며, 셋째로 지도층이 호화 사치에 빠지고, 넷째로 민심이 이반하며, 다섯째로 외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이 다섯 가지 요인이 지적하고 있는 상황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IMF와 같은 경제 전쟁의 패망을 겪었는데도 이만큼 나라를 굳건히 지탱한 힘은 바로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백과 장엄한 민족혼에서 찾을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2006년 12월 7일 02시 54분, 저는 비로소 ‘대발해’ 1만 2천 장을 탈고 했습니다. 저는 그 밤에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설악산으로 달려가려고 현관을 나섰습니다.
제5장 실패의 반대말은 무엇입니까?
■ 힘겨운 때일수록 빛나는 저력
한국인의 민족적인 특질로 한과 흥을 함께 꼽기도 합니다. 한번 흥이 나면 못할 게 없을 정도로 신바람을 내지만, 흥이 깨지면 한이 맺혀 분노하고 좌절하며 죽도록 남 탓을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모두들 사는 게 어렵다고들 합니다. 내 탓보다는 남의 탓인들 싶으니, 더욱 화가 치밀 만도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해서 지금의 고통이 가시기만 한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험한 세상을 뚫고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 번 꺼내어 갈고닦아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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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중증 환자라도 희망을 가지면 놀라운 치유 능력을 보이지만, 가벼운 환자라도 좌절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 셈입니다. 희망은 미움과 분노와 갈등을 털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남 탓을 하면서 신명이 생길 리 없고, 누굴 미워하면서 흥이 생길 리 없으며, 쓸모없는 짐을 무겁게 지고는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인 것입니다.
힘겨운 때일수록 저력은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사회에 신명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져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위기는 역시 또 다른 기회입니다.
위기는 저절로 극복되지 않습니다. 적어도 위기를 만들어 낸 원인을 규명한 뒤에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대체로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편입니다. 민생이 힘겨워도 변명거리부터 찾고, 정책 실패를 따지고 들면 남 탓을 먼저 하며. 사회적 갈등도 핑곗거리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둘러대곤 합니다.
한국인들의 자존심에는 실패를 부끄러워하는 기질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공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자서전이 감동적인 까닭은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요?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웁니다. 실패가 쌓이면 실력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성공한 나라와 성공한 기업은 실패를 거쳐 결국 성공을 일구어 냅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원인을 연구해 ‘실패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시 일으킬 방법을 모색하였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겠지요. 패전국인 일본 역시 선진국 대열로 뛰어 오르기 위해 일본의 지식인을 비롯한 정부에서 각양각색의 실패 보고서를 만들어서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99번의 실패의 순간을 거쳐 100번째에 성공했다고 합시다. 만약 99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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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공개 한다면, 다음 세대는 적어도 50번 정도는 실패의 횟수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에 대한 예방주사이자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는 교과서인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위기관리 능력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을 목전에 둔 채 강대국들의 목죄기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분열이 심화되는 국내 사정을 치유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의 실패와 실수를 집요하게 비난하는 우리의 모습으로는 더 나은 대한민국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대범한 용기이자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는 현명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를 뒤집는 것은 희망이고 희망을 일구는 것은 꿈이며, 그 꿈을 갈고 닦는 것은 열정입니다. 미래의 우리 모습이 걱정스럽다면 지금 바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실패 보고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불과 10년 후에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일지 예리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젊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존귀한 존재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에 따르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 분석해 보니 대부분 1만 시간 정도 연습했거나 연구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하루 3시간씩이라 치면 10년이 꼬박 걸리는 세월입니다. 과연 그들은 10년 동안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을까요?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 조금이라도 돋보이는 사람들을 세상이 그냥 두었을까요?
1980년대 여자 복식 탁구의 여왕 양영자 현정화 선수의 혹독한 훈련장면을 지켜 본 적이 있습니다. 힘든 훈련 과정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저는 책임자에게 두 선수가 세계대회를 제패한 비결을 물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가능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가슴에 쿵, 바위가 굴러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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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던가요.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실패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을까?’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눌러도 눌러도 일어서는 시샘과 질투를 삭이는 것마져 힘겨웠습니다.
청춘은 실패해도 용서 받을 특권이 있는 대신, 희망을 버리지 않을 책임도 있습니다. 젊음은 사랑 앞에 무릎을 꿇을 줄 알아야 하지만, 험한 세상에는 굴복하지 않는 자존심을 가져야 하는 법입니다.
성공한 사람 1천 명을 선정해서 면밀하게 분석했더니, 첫째로는 정열적인 사람. 둘째로는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 셋째로는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첫째, 정열적인 사람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실수 하더라도 반드시 딛고 일어서는 끈기가 있습니다. 남에게 관대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어려움이 닥치면 돌파하는 자존심이 강합니다. 또한 남의 슬픔이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인간애를 발휘하곤 합니다.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부러워하는. 돈이 엄청 많은 재벌 총수, 큰 힘을 가진 권력자, 명예가 드높은 유명 인사들에게 그 자리를 내놓고 스무 살 젊은이와 인생을 바꾸자면 거절할까요. 받아들일까요?”
젊은이들은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그런 사람들이 모든 걸 내어 놓고 스무 살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저라면 기꺼이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물어보나마나 그 사람들도 흔쾌히 바꾸겠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 큰 꿈을 꾸고, 더 크게 도전하고, 더 크게 이루고 싶은 열정 때문에 기꺼이 바꾸려 할 것입니다.”
버트란트 러셀 경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나보다 우수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내가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내 정열지수 때문입니다.”
둘째,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늘 표정이 맑고, 웃는 모습이 푸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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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 있게 행동하며, 위기를 임시방편으로 모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솔직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면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부지런히 가다듬지요. 또한 남의 뒤를 따라가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앞서가는 능동적인 사람이면서도, 뒤쳐진 사람을 보살피는 멋진 성품을 갖추고 있습니다.
새뮤열 스마일스는 “생각의 씨를 뿌리면 행동을, 행동의 씨를 뿌리면 습관을, 습관의 씨를 뿌리면 성품을, 성품의 씨를 뿌리면 운명을 거둬들일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셋째,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잘 갈무리하려는 자존심이 강하며, 자기 인생 전체를 통찰해 방향을 설정합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한 게 아니라 남에게 기쁨을 주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을 가꾸려 합니다.
‘해리 포터’의 저자 조엔 K. 롤링은 대학을 졸업한 후 7년이지나 이혼을 당한 데다 실직까지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홀로 키우자니 아득했겠지요. 더 떨어질 데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그녀는 절박한 인생을 딛고 더욱 강인해졌고, 지혜롭게 일어섰습니다. 그녀에게 고통이 없었다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동물, 식물, 국가나 기업을 세심히 살펴보면 세상에 살아남은 것은 강한 게 아니라 적응을 잘 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일은 노력하고 수고한 만큼 되돌아오는 메아리 같은 것이라, 절로 떨어지는 과일 같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쉽게 사는 방법을 찾는답시고 스스로를 괴롭히곤 합니다.
제6장 꼭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까?
■ 독도에서 느껴본 우리 땅의 향취
이틀 동안 독도에서 우리 땅의 냄새를 마음껏 맛본 기억은 제게 참으로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독도를 떠나면서 막사 앞 작은 화단에 꽃씨를 심어 놓고 왔는데, 해마다 그곳엔 꽃이 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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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주한 일본 대사가 서슴없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소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영유권을 지배하기 때문에 기존의 무대응 입장을 유지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땅을 굳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우리 땅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틀’에서나 가능한 말입니다. ‘비상식과 계획된 음모’앞에선 효력이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옛 속담에 ‘억지가 논 서 마지기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치밀하게 덤비는 일본의 집요함에도 소극적으로만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고, 국민들은 국가적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유엔 해양법 제121조 3항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그 자체의 경제행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 수역을 가지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1999년에 발효된 이른바 신한일어업협정에서 우리 정부가 독도를 제외하면서 일본의 야욕에 불을 지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보란 듯이 독도 주변을 일본 영토로 못 박고 나섰습니다. 파도가 치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암석인 오키노도리섬에 300억 원을 투입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남한 반절 크기의 영해를 확보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승소하기 위해 50년간 집요할 정도로 다양한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우리나라가 국제사법재판관을 한 사람도 키워내지 못하고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이 일본은 끊임없이 일본인 재판관을 배출하려 애써왔습니다.
■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것
발해는 당나라의 속국이 아니라 당당한 제국이었습니다. 역사적 사료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서기 732년, 발해의 제2대 황제 대무예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마도산(지금의 만리장성 근처) 까지 침공했는데, 장문휴(張文休) 장군이 등주(지금의 산동반도)를 공격하여 자사 위준을 죽이는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에 당 현종은 신라 성덕왕에게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신라에서 김유신의 손자 김윤중, 김윤문이 군사를 이끌고 발해를 공격했는데 패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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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는 우리 민족은 본디 품성이 선해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음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는 발해의 강인한 정신을 우리 스스로 지워버린 사대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생각임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발해는 황제국가로 당나라의 기록에도 발해는 황제를 칭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국에서 사용했던 연호와 조서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당연히 중국은 이런 역사적 수모를 숨기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써왔습니다. 중국 쪽 기록에는 장문휴가 해적들을 이끌고 등주를 침공해 자사 위준을 죽였다고 간결하게 쓰여 있습니다.
중국은 처절할 정도로 고구려와 백제 역사를 불태운 뒤에 자국은 높이고 다른 민족은 낮추는 역사 왜곡을 수없이 감행해 왔습니다.
만약 지금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과연 어느 나라에 흡수될까요? 동북공정을 강행하는 중국의 속셈에는 바로 북한을 종속국으로 삼으려는 야욕이 숨어 있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애쓰는 동안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해왔을까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고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 생명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
굶주림에 지친 온 가족이 가진 모든 것을 청산하여 마지막으로 쌀밥 한번 먹고 죽자며 쌀밥에 약을 타서 집단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게 된다면 누구든 가엽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어느 나라에 4,500개의 마을이 있는데, 한 마을에서 매일 1명씩 굶주려 죽어 나가 50일 만에 20여 만 명이 아사하게 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게 어느 나라든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요?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하루 세 끼 옥수수밥을 먹다가 그도 턱없이 모자라 두 끼로 줄이고, 그러다가 소화불량이나 악성 변비가 생기는 옥수수죽, 풀죽, 묵지가루죽, 옥수수 속대나 벼 뿌리 갈은 죽을 먹습니다. 그마저 없으면 소나무 껍질로 죽을 끓여 먹는데, 끝내 어린이와 노인을 버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 돈으로 1만 원을 보내면 중국산 옥수수를 20Kg을 사서 한 가족이 한 달간 살 수 있다는데, 그대로 두고 볼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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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내용은 춘궁기인 5-7월에 북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간략하게 열거한 것입니다.
1995~1998년에 북한에서는 무려 300여 만 명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세계적인 큰 전쟁에서도 이런 참변은 드뭅니다. 그리고 2006년 7월의 대홍수와 2007년 8월의 물난리로 곡창지대(특히 황해도 일대)의 피해가 심각했습니다. 게다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유엔의 경재 제제를 받아 외국의 식량 지원이 거의 중단되었고, 중국조차 식량 수출을 통제했습니다.
한국 정부도 식량 지원을 거의 중단했습니다.
어쨌든 지금 당장 북한 백성을 살랄 수 있는 나라는 오직 한국밖에 없으며, 지금 북한을 돕는 것으로 미래의 통일 비용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통일이 되었을 때, 아니 훗날 우리 후손들과 다른 나라에서, 굶어 죽는 동포를 왜 외면했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하겠습니까.
■ 지금은 함께 눈물 흘려야 할 때
어느 공중화장실에 붙어 있는 글귀입니다.
“남자가 결코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저는 이 글귀를 볼 때마다 애교인지 협박인지 헷갈립니다. 다가서서 흘리지 말고 깨끗이 사용하라는 애교 섞인 간청이겠지만, ‘결코 흘리지 말아야 할 남자의 눈물’에 대해선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려서 늘 듣던 소리가 “사내자식이 울면 못쓴다”는 말이었습니다. ‘울면 안 된다’가 아니라 ‘울면 쓸데가 없는 사내’라는 표현인 셈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철이 들자, 그렇다면 여자는 울어도 되고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라도 있는지 따져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남자도 사람이니 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 어른들이 강조하는 ‘울면 못쓰는 사내의 강인한 정신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같은 때에 남성 화장실에서 재회한 그 한마디가 왠지 시대에 걸맞지 않게 여겨지는 건 저만의 예민함은 아닌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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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같아 보이지만 세상이 이리 각박해지는 것이 혹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남자들의 비정함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비정한 자들이 우리 시대를 휘젓고 다니기 때문에 생긴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들이 부지기수로 널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엔 진정으로 아파하고, 감사한 일에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기쁠 때에는 진정으로 기뻐하는 삶이 건강한 삶입니다. 이제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마음껏 흘리십시오.
제7장 모두를 위해 어떤 것을 찾겠습니까?
■ 왼손을 인정하는 오른손의 마음으로
한국인들이 유달리 오른편을 선호하는 까닭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국인의 대다수는 오른손잡이입니다. 생활용구 대부분도 오른손잡이를 위해 제작됩니다. 하지만 이런 실질적인 것 말고도 한국 사람들은 오른편을 바른편이라고 인식하는 묘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엔 오른쪽을 바른쪽, 오른손을 바른손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해방 공간사와 한국전쟁 후유증으로 우익과 관계된 것은 무조건 옳고 좌익과 관계된 것은 그른 것으로 인식했을지도 모릅니다. 종교적 그림에서도 악마와 같은 나쁜 것은 왼쪽에 배치하고 더러운 것으로 인식하고 표현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 인구 중 15% 정도가 왼손잡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틴어에서 왼손잡이는 재수 없거나 배신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요.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에게 특별하게 발달한 언어 중추가 있는 좌뇌는 언어적, 시각적, 논리적, 분석적, 이성적, 디지털적이며. 우뇌는 비언어적, 시공간적, 동시적, 형태적, 종합적, 직관적, 아날로그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풀어보면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발달하게 되어 말하고 읽고 쓰고 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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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데 유리하고, 왼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하게 되어 원근의 감각, 창의성, 음악성, 직감이 강하게 발달하는 것입니다.
천재는 우수한 두뇌를 타고나는 게 아니라 두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굳이 한쪽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좌뇌나 우뇌를 모두 발달시키는 편이 유리할 것입니다.
‘충돌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 부딪쳐서 더 아름답거나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작용을 의미하지요. 거칠게 깨뜨린 돌멩이를 한데 넣어 계속 충돌시키면 모난 부분은 부서지고 결국 예쁜 조약돌이 됩니다. 보석을 가공할 때 원석과 도구가 충돌해서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보석이 만들어지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질병과 의술이 충돌하여 환자의 고통이 소멸됩니다. 문명의 가치 창조 예술적 승화. 인간애의 따뜻한 모습도 그렇게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오른손과 왼손을 두루 사용하는 지혜를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동서의 지역갈등, 남북한의 좌우 대립, 세대 갈등, 남녀 차별, 빈부 격차, 노사갈등 등을 녹이는 세상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신체 기관 중, 좌우로 나누어진 것에는 눈, 콧구멍, 귀, 손, 발 등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개라도 어느 한 쪽이 고장 나면 큰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걸핏하면 좌파니 수구세력이니 하며 다투고, 동쪽에 사는 것이 어떠하고 서쪽에 사는 것이 어떠하다는 식으로 서로 비난하며, 나이가 들어 고리타분하다느니 젊어서 안하무인이라고 얼러대는 충돌의 해악이 팽배하는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둘 다 틀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회이면 좋겠습니다.
■ 청렴과 검소의 미덕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면 고향을 잘 타고 나거나, 학교를 잘 나왔거나, 혈연을 잘 타고 났거나 그도 아니면 손금이 닳도록 아부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는 비극적인 유행어가 아직도 통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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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국민들은 출세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출세한 사람들을 기회주의자, 아부의 달인, 권력의 세습자. 비리의 온상, 간특한 재주꾼으로 취급하곤 하지요.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 지역의 단체장에 당선되는 순간, 그 사람은 곧 비리 예비군 취급을 받습니다.
너무 지나친 처사가 아니냐고요? 전례가 그 까닭을 설명해 줍니다. 민선 4기만 살펴보아도 기초단체장 230명 중에 무려 41%인 94명이 기소되었으며, 광역의원 10%, 기초의원 20%가 임기 중 비리혐의로 처벌 받았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리가 돋보이는 범죄 집단으로 전락해 버렸지요.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출마했을 때는 분명 ‘을’이었는데 당선되면 갑자기 ‘갑’으로 둔갑하는 게 권력의 속성입니다. 주민들에게 한 표를 애걸하고 호소하던 후보자 ‘을’은 당선되자마자 각종 인허가권, 예산 편성권, 인사권을 틀어쥔 ‘갑’이 되어 언제 그랬냐는 듯 떵떵거리게 됩니다.
‘동몽훈’에서는 “벼슬살이 잘하는 비법이 오직 세 가지가 있으니 청렴과 신중과 근면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스어로 잡티 없는 순수함을 뜻하는 카타로스(katharos)는 청렴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깨끗이 씻어냄을 뜻하는 카타르시스(katharsis)와 어원이 같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올바른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청렴은 늘 필요한 덕목이었습니다.
근면이란 백성을 끝까지 ‘갑’으로 섬기는 성실함입니다. 공직자가 지켜야 할 신의의 바탕은 백성과의 허심탄회한 소통에서 비롯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국민을 위해 발품을 팔되, 벼슬자리를 앞세워 권위를 팔거나 욕심을 채우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무릇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면 덕이 쌓일 것이니 절로 백성들을 성심껏 받드는 벼슬아치가 될 것이요. 청렴하고 검소하면 복을 받게 되나니 백성들에게 절로 칭송을 받게 됨을 한시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
■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소백산 깊은 골에 해맑게 흐르는 실개천 물로 목을 축이면 금세라도 온 몸이 산소 덩어리가 된 듯했습니다. 노승은 흐르는 물을 보고 왜 흐르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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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었습니다. 무어라 대답할 말이 마뜩찮아 그냥 웃었습니다.
“이놈아 ,땅이 비뚤어졌으니 흐르지.”
노승의 이 한마디에 참 많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땅이 비뚤어지지 않고 평평하다면 물이 흐를 수 있겠습니까? 물도 그러한데, 인간사는 오죽할까요? 그런데도 우리들은 매사에 평형만 고집하는 것을 정도라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 당신이 있어 살 맛 납니다. - 글을 마치며 -
혹시 오늘 하루도 절망 속에서 보내진 않았습니까? 당신의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씩 뛰고 있고, 당신에겐 하루에 5만 가지나 생각할 수 있는 초능력이 있습니다. 도대체 세상에 두려울 게 무엇인가요?
인디언 격언에 ‘어떤 말을 1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언젠가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 희망사항을 상상만 하고 그친다면 그것은 그냥 소망일뿐입니다. 절실하게 원해야만 바라는 걸 얻을 수 있습니다. 당연히 큰 걸 원하면 더욱 절실히 바라야겠지요.
풀을 베면 은은한 향이 풍기는 것은, 풀잎의 상처에서 향기가 나기 때문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과 아픔과 실패와 좌절이라는 고비를 넘어야 합니다. 시련은 사람을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향기롭게 만듭니다.
몸에 있는 60조 개나 되는 세포가 각기 다양한 활동으로 우리를 살아있게 합니다. 이렇게 귀하고 장엄한 존재가 “그까짓 일에 질질 끌려 다니고 주눅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적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도 기막힌 기적이고요. 기적은 극소수에게만, 아주 남다르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기적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냥 “남들 다 하는 거니까” 라고 생각하면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지만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질 것입니다. 온 몸의 세포기 춤을 추고 노래하며 절로 건강해 집니다.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 당당하고 신나게 살아야 합니다.
2011년 3월 김홍신
2011. 7. 31.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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