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한 인생 10강(2)
여자를 위한 인생 10강(2)
- 신달자 에세이 -
제6강 여자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
■ 인생의 가장 큰 프로젝트, 결혼
남편에 대한 불만이 저 하늘에 닿은 듯한 여성들에게 그 옛날 함께 사랑했던 기억은 아예 없어 보였고, 서로 신혼의 고통을 등 두드리며 살았던 기억도 없어 보였다. 왜 여성들은 남편이 미운가? 생활 속으로 들어서면서 여성들은 몇 번의 실망, 몇 번의 좌절, 몇 번의 포기를 거듭하였을 것이다.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아마도 같이 살면서 죽을 때까지 미워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적절치 않을 만큼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성들에게 당신의 아들이 아내에게 그런 대접을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다 함께 소리쳤다.
“그건 안 돼요.”
나는 아들이 없지만 모순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했던 모양이었다.
여성들이여!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인생의 과제다. 시작하지 않았느냐. 호적에 두 이름을 넣고 한 가정을 이룬다고 승낙하지 않았느냐. 그러면 자존심을 걸고 한번 열심히 살아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살고는 있잖아요.’라고 말하지 마라. 더 의욕을 살려 충실하게 한 가정을 이끄는 여성이 되어 보는 것. 그것도 세상에 태어나서 해볼 만한 것 아니냐. 시작했다면 말이다. 다fms 지붕 아래는 순금 거북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 그렇게 산다.
당신은 마음속에 “나 죽겠어.” “왜들 이 모양이야.”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어.”라고 하는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두통도 올 것이다. 어지럽고 만사가 귀찮고 누워 있기만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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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 방을 청소해 보면 놀랍게도 자기 스스로 쏜 독화살이 거기 쌓여 있을지 모른다. 그 화살들은 당신이 새 생각을 하는데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 독화살이 늘 당신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괴로운 것은 남에게 들은 말보다 내가 생각하고 내 뱉은 것들이 더 많다.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저자 캐런 킹스턴은 인간은 보통 6만 가지 생각을 하는데 95%는 어제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청소를 강조하는 그는 빈 공간이 있어야 새 에너지가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항변한다. 하루에 일어난 일의 마무리는 반드시 그날 하라는 말도 한다. 그것이 새롭게 사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나는 행복한 부부로 살아보지 못했다. 그 이유를 나는 늘 남편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뿐만 아니고 누구누구 여타의 이유를 대면서 나는 불만투성이로 가득차 있었다.
물론 남편은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소질이 전혀 없었다. 물론 노력 같은 것은 절대 금물이었다.
행복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나를 가만히 놔두지도 않았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믿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흠 잡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었고 뭐든 못한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화장실에서 수돗물을 틀어 놓고 남편을 향해 쌍욕을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절 위장을 앓는 등 늘 아팠고 비쩍 말라 있었다.
내가 내 생활에 적응을 할 무렵 남편은 쓰러졌고, 일생 나는 그의 간병인으로 부부 생활을 마쳤다.
그때 그 사람이 나에게 윽박질렀던 것은 알고 보니 어머니와 같이 살아가는 입장에서 아내에게 너무 빠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약간은 과장해서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구식 사고를 가지기는 했어도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고 나는 너무 빨리 결혼의 기쁨이라는 것을 접고 아이를 사랑하는 데 집중하고 오히려 더 글을 쓰는 데 몰입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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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인간 발달학으로 박사가 된 최성애의 ‘행복수업’을 보면 행복한 부부는 제각기 다르지만 불행한 부부는 다들 비슷하다고 말한다.
행복한 부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를 쌓아가지만 불행한 부부는 공통적으로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는 네 가지 방식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모든 부부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 영속적인 갈등이 있다. 행복한 부부들은 갈등이 생기면 웃어넘기거나 다시 생각하자 하면서 피하는가 하면 불행한 부부들은 잡고 늘어지면서 다른 이유까지 다 끌어들이며 문제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냥 사는 거지 뭐! 부부 대화는 무슨 알량한 부부 대화야. 그렇게 단정을 하고 따로따로 사는 것에 길든 부부도 있다고 한다. 사뭇 현대적이기는 하다. 아마 큰 소리가 안 날 수도 있다. 아무런 기대도 없으니까.
그런데 뭔가 시큼한 냄새가 난다. 서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썩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의 그러한 감정이 자녀들에게 어떻게 스며드는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결혼 생활은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자녀 앞에서 남편의 좋은 점을 말하라. 그 손간 당신은 가정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 우리의 또 다른 가족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우리 주변에 가족 관계가 많이 달라진 것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이란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이런 정도다. 거기 더 보태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가족 상황이 엄청나게 달라졌다.
구조적으로는 한부모 가족, 노인 가족, 무자녀 가족, 등으로 나누어지지만. 생활양식으로는 더 다양한 가족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평범한 가족의 형태를 벗어난 가족도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가족 형태를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주변에 살고 있는 여러 형태의 가족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넉넉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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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한부모 가족이 있다. 배우자의 사별 또는 이혼한 가정으로서 자녀들과 살고 있는 가정이다. 나는 제자들에게 이혼은 절대 안 하는 것이 좋지만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할 때는 아이는 엄마가 기르라고 당부한 적이 많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기르는 자녀들의 문제점을 듣고 보아 왔으므로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겐 엄마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고령화 사회의 노인 가족은 서로 일을 분담해서 남자도 심심하지 않게 가사 일을 도우며 생활을 재창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손은 잡지 않더라도 같이 산책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근사하다. 그런 것이 노년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그 외에도 맞벌이 부부, 딩크(DINK)족이라 불리는 무자녀 가족, 주말 부부, 기러기 가족, 재혼 가족, 입양 가족, 다문화 가족, 독신 가족, 동거가족, 동성애 가족, 미혼모 가족, 부부 합의에 따라 일정기간 자신의 자아성취를 위해 유예 기간을 갖는 안식년 가족 등이 있다.
가족이란 단맛 쓴맛을 함께하는 사이에 이해심도 깊어지고 정도 든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적인 정서다. 비비다 보면 좋아진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가족은 사랑이라는 말보다는 정이라는 말이 더 많이 통용된다. 오죽하면 ‘더러운 정’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옛날 말에 싸울 대상이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노후라고 했는데 …….
그밖에 이혼, 별거, 가출, 행방불명으로 인한 결손 가정의 아이들끼리 모여 사는 새싹 가족이 있으며, 이혼은 했지만 같이 살면서 아이를 돌보는 이중 핵가족도 있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가족이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러 가족을 다 불러 보았는데 또 다른 가족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여기 줄지어 선 모든 가족들을 비판이 아닌 이해의 눈길로 바라보고 우리의 또 다른 가족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제7강 마음 속 자궁으로 남자를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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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참아서 담 쌓지 말자
육당 최남선이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처음 접했을 때 “에구 어머니!”라고 했다 한다. 그 이지적인 남자가 그런 감탄사를 외쳤다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요즘 최첨단의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도 모두 위급한 상황에서는 “엄마!”를 외친다.
그렇다면 여자들은 어떤가. 너나없이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늘 옆에서 우리를 지켰고 가장 오래 살을 부볐던 사랑의 대상이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부른다는 말이 있고, 부르면 얼른 자기를 안아 위험에서 구해 주는 사람이 엄마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우리들의 귀에 우리들의 손에 엄마의 기운이 배어 있어 부른다는 소리도 있지만, 어떤 한탄도 억울함도 견디고 참으며 살았던 엄마의 모습이 신(神)적인 존재로 입력되어서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부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면 요즘 여성은 어떨까. 어느 잡지의 통계에서 오늘의 여성들도 다르지 않다는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이유가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여성들이 견디고 참고 말하지 않는 것은 첫째 자존심 때문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지성적인 여성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편견 때문이라는 뜻밖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말해도 통하지 않는 가족들에게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들어주지도 않고 통하지도 않으니 아예 입을 다물어버리는 여성들이 억울해도 기막혀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여자의 소리가 담 넘어가면 용서치 않았던 그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이유는 좀 다르겠지만 여성들이 속으로 삼키는 것은 다르지 않는 것 같다.
여성들은 친구들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공공장소에서 크게 소리 내어 웃기도 하는데 아마도 속에 든 불덩어리를 식히기 위한 자기 나름의 근심 소화법이 아닌가 한다. 집에서는 수다쟁이가 되지 않는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만 떠들고 말한다. 왜 집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내 친구 미숙이는 연애할 때 왜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통행금지가 있었던 그 시절 사실 남자가 끌면 끌려서 여관에라도 가고 싶었다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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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다. 촛불을 켜고 둘이서 밤을 새우며 말하고 싶은 것이 그 시절 가장 강렬한 꿈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했고 그 다음에 만나 내가 물었다.
“그래 실컷 이야기 했니?”
미숙이가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결혼한 그날부터 할 말이 없어졌어.”
결혼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심하게 만들어 놓는 무슨 괴물이라도 존재하는 것인지, 그 괴물이 어쩌면 축복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우리는 웃었다.
부부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은 가정이라는 기업이 이윤을 남기고 식솔들을 책임지며 발전해 나가는 건강한 기업으로 살아 움직이기 위한 최초의 방법이다.
해야 할 말을 참는 버릇은 결국 병으로 이어지고, 병은 우울증으로, 우울증은 가정의 파탄으로 이어지는 법이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감정 계산서를 내야 한다. 부부 정산이라고 할까. 잘했으면 서로 칭찬하고 응원하고,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뉘우치고 더 열심히 하고, 가정의 활발한 내일을 위해 각자 해야 하는 일에 대한 수정과 보완의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 가정의 수정과 보완…….
회의 없는 회사는 망한다. 원칙 없이 각자 마음대로 가면 망하게 되어 있다. 회의는 모든 문제를 상의하고 무엇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노력하려는 의지이다. 그래야 회사의 흐름을 익히고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다.
모자라는 것은 채우고 넘치는 것은 조절하는 것이 바로 대화의 소통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대화를 하라.
■ 남자는 70세가 넘어도 어린아이다
옛날 한국 여인에 있어 용모의 이상적 조건은 미모나 건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왕상(子旺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아들을 낳을 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같이 남존에 대한 의식이 별다르게 강한 나라에서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들은 생명 그 자체가 위태로웠었다. 그런 시대에 우리 어머니는 딸들을 우루루 낳아 일생을 곤궁하게 살았고 늘 기를 펴지 못하고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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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가 불행했던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아들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세월과 풍조기 많이 변했던 시절이었지만 나도 세 번째 딸을 낳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도로 뱃속으로 집어넣고 다시 아이를 갖고 싶었던 그 강렬한 집념에는 지금도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어머니가 나를 가장 불행한 딸로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아들이 없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셋째를 가지고 하도 고민이 되어 여러 책을 보다 보니 아들을 낳을 수 있는 날짜가 있었다. 이미 아이를 가졌지만 그 숫자와 친해지려고 무던히 공허한 씨름을 한 것이 기억난다.
생리가 끝나고 1,3,5일이 기수일이라 하여 아들을 얻고 2,4,6일은 우수일이라 하여 딸을 얻는다는 말을 듣고 목욕탕에 가면 홀수 숫자가 있는 박스에 옷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어느 날 목욕탕에 사람이 많아 남은 것이 딱 짝수 숫자의 박스여서 목욕도 안 하고 돌아간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한심하고 기막힌 일이다.
밤에 누워 홀수의 숫자를 부르고 홀수를 쓰기도 하면서 나는 결국 또 딸을 낳았다. 이게 누구의 잘못인지 그깟 이유쯤 아무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날 여섯 번째 딸로 낳았을 때 핏덩이를 발로 찼다고 했다. 어머니는 그때 그 핏덩이가 저절로 죽기를 바랐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죽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그 마음의 죗값 때문에 날 더 측은하게 생각했다고도 했다.
내가 왜 꼭 아들을 낳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살아남기 위해서였다면 나는 생존 때문은 아니었다.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좋은 것이라는데 왜 나만 낳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그 안타까움과 은근히 아들을 기다리는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기가 죽는 일이 싫었던 것이다.
어쨌건 제법 교육을 받은 나까지 아들 선호에 목을 걸었던 것이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딸을 낳고 사람들은 말했다.
“이번엔 뭐 달았으면 좋았을 걸.”
전화로도 물었다.
“이번엔 뭐 달았어?”
왜 그렇게 달린 걸 찾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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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진화했을까. 그렇게 떠받들던 남자들. 그 달린 사회의 주역들이 요즘은 힘이 없다. 남자들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약해지고 뭐든 아내에게 맡기고 싶어 하고 엄마에게 어리광부리듯 아내의 아들이 되고 싶어 한다. 어린애같이…….
70세 먹은 어린아이라고 부른다. 여자 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여자 젖을 빨아 그렇다고도 하지만 어머니들이 “넌 남자야!” 하고 너무 자기의 본질을 눌러 놓아서 나이가 들면서 그 은폐되었던 어린아이가 일어섰는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기죽은 남자하고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조금 부추겨 주는 것은 어떨까. 더러는 남편을 늙은 아들이라고도 부르지만 어쩌나. 그 아이들을 업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남자들이 더 외로움을 타고 남자들이 더 소심하고 더 잘 삐치고…… 그것은 남자가 약하다는 것 아닌가.
그 남자와 그래도 조용히 차를 마시고 더러는 술도 마시고 가끔은 “요즘 힘들어?” 하고 묻기도 하고 남자의 쓸쓸함을 대화로서라도 업어 준다면 남자는 고마워하고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자기를 알아주는 아내 때문에 살맛이 날 것이다.
여자들이여! 여성은 몸속에만 자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도 정신의 자궁이 있는 거대한 인간이다. 그 마음속 자궁으로 남자를 따뜻하게 품어주면 어떨까.
■ 멋있는 아들을 만들려면 남편부터 멋있게 만들라
요즘 거리의 젊은 연인들을 보면 남자가 여자의 핸드백을 걸고 다니고, 잘 보면 여자가 남자를 부려먹는 듯한 분위기다.
여자는 당당하고 남자는 쩔쩔매는 것 같다. 돈을 쓰는 것도 그렇다. 돈은 남자가 내고 여자는 구시렁거리고……. 이런 것을 남자의 엄마들은 잘 안다.
그런데 미묘한 것이 감지된다. 남편에게는 함부로 하는 여자들도 아들이 여자 친구에게 그런 걸 당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다. 나는 여자지만 남자 편이다. 남편이 아니라 아들 때문이다. 뭐 좀 이상한 뉘앙스다. 아들이 자라서 남편이 되는 것은 뻔한 일인데 엄마들은 아들은 좀 당당하고 남편은 기가 죽기를 바란다. 좀 이상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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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아들을 둔 어느 엄마의 말이다.
“나는 여자지만 남자 편이에요. 우리 아들은 마음도 약하고 정말 말하고 싶지 않지만 좀 바보거든요. 여자 친구에게 뭘 좀 못 줘서 안달이에요.”
자기는 받아 놓고 아들이 주는 것은 안 된다. 아들의 여자 친구도 다 여자의 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 여성의 남편도 다 그러지 않았었나. 그래도 늘 부족하다고 앙탈을 부린 여성이 자신의 아들이 여자 친구에게 하는 것은 못 봐주는 것이다. 남편이 억울하고 속 쓰린 생각은 아예 않는다. 아들만 가지고 난리다.
아들 가진 엄마들이 한 번은 아들에게 꼭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결혼 안 하고 엄마랑 평생 살까?”
똑똑한 아들은 농담이라도 그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엄마가 안쓰러워 겨우 그러겠다고 마음 넓은 아들이 말해 주면 그것이 거짓말이라도 엄마는 하늘을 얻은 듯 좋아한다. 엄마들은 아들을 질투하면서 젊음을 연장한다.
그러나 아들을 여자 친구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고. 바른 정신을 가진 가능성의 주인공으로 보이고 싶으면 아들 질투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아버지 멋있지? 아버지 같이 살아.”
이렇게 말하는 여성은 드물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백이면 백 다 그렇게 말한다.
“멋이 있어야 멋있다고 하죠.”
아버지로 살아가면서 삶에 찌들어 멋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자의 책임도 있다. 우선 남편을 멋있게 만들어라. 그러면 아들은 바로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제8강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
■ 매일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라
내가 만나는 여성들 중에 인생이 덧없다거나 흥이 안 난다거나 살고 싶지 않다거나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뭘 좋아하는지 생각해서 뭐든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대부분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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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해서 뭐해요.”
그렇다 그걸 해서 뭐할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시들하게 의욕을 깎아 먹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내내 그 인생은 살맛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언젠가 신문에서 어느 30대의 좌절을 이겨낸 기사를 보았다. 이 30대는 젊은 나이에 과다한 업무와 머리를 무겁게 하는 과다한 업무와 인간관계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잠도 못 자고 자신감을 잃었고 생에 어떤 의욕도 없어 모였다. 그렇게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모든 걸 포기 하고 싶은 그를 받아 준 사람은 연세대 의대 정신과 이홍식 교수였다.
그는 이 의욕 없는 젊은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강변을 15~20Km씩 달렸고 마침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함께 완주했다.
의욕을 찾은 것은 당연했다.
“자네가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며 완주하면 세상에 극복하지 못할 일은 없네. 그러면 약물 치료도 필요 없고 날 만날 일도 없을 걸세.”
그 젊은이는 약물 치료 대신 희망을 찾았고, 의사 대신 새로운 삶을 만났을 것이다.
그 젊은이가 나는 절대로 뛰지 못하겠다고 “그걸 해서 뭐해!”라고 했다면 그 젊은이의 인생은 거기서 폐지 같은 삶으로 휴지통에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살다 보면 그렇다 싫은 일 속에도 인생의 숭고한 의미가 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유명한 음악가, 미술가 시인들도 모두 작업은 괴롭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싫어도 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된 것이다.
하기 싫은 일 속에 나의 귀중한 삶의 씨앗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인생의 교훈이다.
당신은 주변에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본다. “그걸 해서 뭐해.”라고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림을 배우고 안 하던 새벽 운동을 하고 문화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문학을 배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딴 걸 해서 뭐해.” 라고 했지만 마음은 고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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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은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
일생 우리가 무엇인가 즐기고 정신을 집중할 만한 일이 있어야 자신감이 붙는다. 그래야 살기가 즐거워진다.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절대로 남이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돈보다 앞서는 것이 당신의 의지다.
■ 하루에 한 시간, 인생이 달라진다.
나는 30대 후반에 어느 문화센터에서 주부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내 인생이 아무 것도 결론지어져 있지 않은 대학강사 시절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글 가르치기는 결국 내 인생의 직업이 되었다.
그때 학생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3년 반을 배웠던 30~40대 주부 다섯 명이 지금은 수필계의 중진으로 활동 중이다.
그들은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고 숙제를 해 오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만하고 싶어도 그들이 왔으므로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열성적이었고 그들도 열광적이었다.
그들은 그 시절 남편보다 글에 매혹된 여자들이었다. 그때 그들의 글은 펄펄 살아 있어서 바다에서 막 건진 물고기를 내 손으로 잡는 생명력의 기적을 느끼게 했다.
나는 그들의 열정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여러 작품들을 가지고 행복할 수 있었다. 불투명한 인생에 내가 위로를 받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두 손이 뜨거워진다.
그들은 순수했고 글에 몸을 낮추었으나, 머리는 높있고 명징했다. 그들도 수필가로 산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니 수필가가 되었고 지금은 하나하나가 성공한 인생들을 살고 있다. 1년에 몇 번 밥을 먹는 자리에서 우리는 그 시절의 열정을 되새긴다. 무엇을 하는 시간을 감사하는 그 오랜 친구들은 내 마음의 위로이고 힘이다.
그들은 수업 시간에 글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집안도 남편도 아이도 다 잊어버리는 순간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이다. 그 속에서 남편도 아이들도 다 우군이 되었던 것이다.
좋아 하는 것을 할 때는 근심 같은 건 녹아 버린다. 좋아하는 일을 하루 한 시간만 해도 인생은 달라지지 않겠는가. 괴로운 일과 싸우면서 보내는 것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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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아하는 일과 싸우며 길을 찾는 것이 더 풍요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 어설픈 달관이 절망보다 더 나쁘다
마치 인생을 달관한 것처럼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라고 말하지 마라. 어떤 인생을 봐도 의미가 상실되어서 다 그런 거지 뭐. 라고 해 버리면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다 할 주관도 인생관도 없이 어설픈 달관의 막장 결론으로 그런 거지 뭐. 라고 한다면 그 인생은 심각하다.
다 그런 거지 뭐. 에 의존해 버리면 안 될 것이 없고 될 것도 없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약자이길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경우 약자임을 내 세우며 이기려는 수법도 있다.
“그래, 나 없다. 왜! 그래. 나 못났다 어쩔래!”
이렇게 덤비는 경우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다. 다 그런 거지 뭐. 라는 싸움의 방패는 자기 소멸로만 이어지는 자기를 향한 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의 험담을 실컷 해 놓고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로 결론 내리면 우리 자신 또한 ‘그런 거지 뭐’에 편입해 버린다. 그것은 스스로 자기를 버리는 일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1세기에 던진 일곱 가지 화두는 이렇다.
1) 남이 하라는 것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요하게 파고들 것. 비전 과 열정을 중시하라.
2)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혜를 가질 것
3)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디어를 이끌어 낼 것
4) 소비자에게 제품이 아닌 꿈과 희망을 팔 것
5) 완전한 제품이 나올 때까지 수백 번 NO를 외칠 것
6) 누구에게나 쉽고 편리한 제품을 제공할 것
7) 단순 간결하며 이해하기 쉬운 말로 소통하기
이것은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더라도 다 통하는 이야기다. 누구나 한 번은 자기에게 약속하고 지켜봐야만 하는 인생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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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내 후배 박인진은 51세에 각오를 다졌다. 두 아이를 대학 보내고 군대 보내고 이제부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배운 것이 도자기였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걸 가지고 뭘 한데…….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경쟁력도 만만치 않았지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했고 이젠 생활 도자기 가게도 열었다.
돈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자주 집을 비우는 일이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자신이 만든 생활 도자기를 남편 회사에 명절 선물로 한다면서 밝게 웃었던 인진이를 나는 존경한다.
“돈보다 내 가슴이 뛰니까요.”
재밌는 일을 하다 보면 지루한 인생 속에도 꽃은 피고 새싹은 돋는다. 하나의 일을 선택하여 한 10년만 죽어라 해 보라. 당신의 인생이 앞으로 50년이 남았다면 40년은 그 일을 잘 하는 사람에 속할 것 아닌가. 즐거움이야말로 어머니가 주는 것도 아니다. 이 세상에 어머니도 못 주는 즐거움은 누가 만들겠는가.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그걸 만들어야 한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반드시 당신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이 이 세상에는 있다.
제9강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 맨발의 아베베
나는 그런 인간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것이 나의 본성이다.
라고 말하지 마라. 자신의 이마에 그런 문자를 새겨 넣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정체된 인간으로서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죽이는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어제 당신이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인간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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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오늘 당신은 ‘그런 인간’이 아니라 ‘바라던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는 말했다.
“힘껏 살아라. 힘껏 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자기 인생을 살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하버드 대학 졸업생들을 추적해 보니 대학 시절 아주 평범해 보였던 사람들이 크게 성공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엘리트라고 각광을 받던 사람 중 상당수가 실패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엘리트라는 껍데기 아래서 고통 받았다고 한다.
그것을 조사한 조지 베일런트 교수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며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라고 결론지었다. 행복하게 늙어가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물었더니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가 첫 번째이고 교육, 안정적 가정, 규칙적인 운동 등이 뒤를 이었다고 한다.
베일런트 교수는 어떤 데이터로도 밝혀낼 수 없는 극적인 주파수를 발산하는 것이 삶이라고 단정지었으며, 과학으로 판단하기엔 너무나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엔 너무 아름답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엔 너무 영원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는 이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는 것이다. 삶이 고통에 적응하는 성숙한 자세라는 것, 나는 이것을 읽으며 열 번 되뇌었다. 고통의 적응, 고통의 적응, 고통의 적응…. 당신도 이 세상에 발산하는 힘의 원천이 당신의 가슴에 강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결핍과 부족은 자기를 진지하게 하고 더 애틋하게 사랑하게 하는 힘이다. 욕망을 일으키게 하는 힘이다. 결핍에다가 자기 몫의 꿈과 야망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덧붙이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일이다.
우리가 익혀야 할 최고의 기술은 자기를 있는 힘을 다해 살게 하는 기술일 것이다.
아베베 비킬라라는 달리기 선수를 알 것이다. 그는 ‘맨발의 아베베’라고 불렸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아베베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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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와 도전 정신으로 1960년 로마 올림픽과 1964년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연속 우승을 기록하며 그 가난하고 열등한 나라의 자부심을 일으킨 기적의 사나이다.
맨발로 뛰는 아베베를 보고 사람들이 “저 가난한 흑인이 신발 살 돈이 없구나.”하고 생각하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던 그 시절 서로 ‘아베베 아베베’라고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어느 기자가 물었다.
“왜 당신은 맨발로 뜁니까?”
그는 대답했다.
“내 조국 에티오피아를 알리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입니다. 다시 4년 뒤 사람들은 ‘아베베 아베베’를 외쳤다. 그러나 그에게 불운이 닥쳤다. 17Km지점까지 모든 선수들을 앞서 가던 아베베가 갑자기 도로를 벗어나 경기를 포기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당혹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말은 곧 드러났다. 아베베는 올림픽이 열리기 전 골절상을 입었다. 큰 부상이었다. 그러나 아베베는 에티오피아 동료 선수의 페이스메이커를 해 주기 위해 온 몸의 고통을 참으며 달렸고 동료가 17킬로미터 지점에서 페이스를 찾자 밖으로 뛰어 나간 것이다. 자신의 3연승 기록이 아닌 조국의 우승을 위해 말이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인간이 있다니……. 아베베의 노력으로 에티오피아는 다시 우승을 했다. 나는 늘 이 대목에서 운다.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골절된 다리로 조국을 위해 동료를 위해 만신창이의 몸으로 뛰었던 그는 모든 세계인이 고개 숙여지는 인간 승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를 인간 승리라고 하면 너무 빠르다. 1969년 아베베는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는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하반신 마비라니. 마라톤 선수에게 그것은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아베베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불굴의 투지로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도전 정신으로 휠체어를 타고 운동을 계속했다.
그에게 절망은 없었던 것이다. 아베베 아베베! 그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휠체어에서 할 수 있는 양궁을 연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아베베는 1970년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 양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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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아베베는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 실제 인물인 것이다. 이것은 턱없는 찬사가 아니다. 그는 인간 신이었던 것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모든 게 귀찮아. 라고 말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말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일어나 움직여라. 손뼉이라도 쳐라. 몸이라도 흔들어라. 거리로 나가라. 무슨 계절인지 주위를 살피고 자신이 제일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하늘에 소리 내어 물어보라.
누군가 말했다. 서 있기만 해도 수명은 조금 늘어난다고. 일어나라. 그러면 서서히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 일어나라, 하고 싶은 일도 일어날 것이다
‘유쾌한 심리학’에 의하면 짝사랑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증상이 있는데 그 가슴 울렁거림은 모든 근육에 힘이 오르게 하고 살고 싶은 감정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을 해도 그와 같은 울렁거림과 두근거림이 있어서 삶에 대한 의욕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운동만 해도 그런 효과를 거둔다는 이야기가 된다. 반대로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누워 있거나 의자에 앉아 하루를 보낸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울렁거림도 두근거림도 애당초 일어나지 않아서 살고 싶은 욕망보다 문을 걸어 닫거나 점점 가라앉아서 죽은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러므로 자꾸 권태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자신을 끌어 올리는 것, 깨어 있게 하는 것,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국 유타대학 분노 스트레스 전문 심리학자 전겸구 교수는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리고 화를 다스리는 사람이 성공한다.”라고 했다.
미국에는‘앵거 매니지먼트(분노 조절)’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분노를 건강하게 풀어내는 능력은 끊임없는 훈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한두 번의 명상으로, 분노 다스리는 책을 한두 권 읽었다고 가능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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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그는 분노라는 감정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분노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을 때 대항할 힘을 제공하고 자신의 존중감이 유지될 수 있게 도와주며 상대와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파괴적인 분노를 줄이는 것인데 이것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밝히고 있다.
1) 분노는 나의 선택이다 : 분노의 요인을 파괴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건설 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물은 수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수력 발전의 힘이 될 수도 있다.
2) 분노가 우리를 죽인다 : 암, 뇌졸중, 심장병, 당뇨병 등 현대인 질병의 90%가 스트레스와 분노가 원인이다.
3) 분노는 초기에 제압해야 한다 : 일단 30초만 참아라. 그리고 화가 빠져 나간다고 상상하라
■ 자기 인생에게 미안하지 말기
가장 나쁜 습관은 바로 핑계다. 교수 시절, 과제를 안 가져 온 학생일수록 핑계가 많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갑자기 숙모님이 어쩌구, 밤에 열이 심해서 등등 핑계가 많았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니?”
좀 잔인했을 수도 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만약 네 아버지가 편찮으셨다고 하자. 그런데도 불구하고 네가 과제를 해 왔다면 넌 얼마나 훌륭한 학생이겠니? 너는 나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인생에 감동을 주는 저력이 있어야 자기 인생에게 미안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 자기 인생에게 미안하지 말 것.
누구나 적응 못할 일이 많다. 남편이 아니면 자식이 아니면 직장일이 아니면 집안일로 아니면 친구관계로 아니면 경제적인 일로 아니면 나 자신의 성격 문제로……. 그래서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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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할 수 없는 처지였는데도 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나도 10대 때부터 누군가 뭐뭐 때문에라는 핑계의 감옥에서 탈출하라고 조언해 주었더라면. 핑계가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마약인지를 알았을 것이다.
만약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하고 후회하는 것도 나쁘다. 지금이라도 나이와 관계 없이 시작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결국 뭐뭐 때문에라는 핑계는 자신을 넘어뜨릴 것이고 뭐뭐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이기고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다.
조폭 영화를 보면 1시간 30분 동안 무려 200번도 넘게 욕설이 나온다. 그런 영화를 보고 아이들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욕을 사용하고 있다. 어느 여중생은 욕을 빼면 말을 못하겠다고 한다. 짜증이라는 말은 달고 살고 어색하면 욕으로 어색함을 벗고, 이런 행동들은 육체적 정신적 배설의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그들의 성장 속에서 결코 ‘한 때’라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
실제로 욕을 많이 먹으면 성장에 얼마나 나쁜지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실험해 보았다.
양파를 다른 공간에 하나씩 심어 놓고 온도, 습도, 조명이 같은 조건에서 한쪽은 계속 심한 욕을 하고 한쪽은 그린 음악을 들려주었다.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욕을 얻어 먹은 양파는 들쑥날쑥 싹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그린 음악을 듣고 자란 양파는 고르게 성장하였다.
이처럼 자신이 계속 “뭐뭐 때문에 난 못해.”라고 300번쯤 말하면 아마도 자기 안에서 그 어떤 싹도 나오지 못할 것이다.
자기의 의지가 약하면 나쁜 일에 쉽게 빠져들 수 있지만 의지가 강하면 돌아설 용기를 가질 수 있다.
그 의지는 바로 뭐뭐 때문이라는 핑계에 머물러 버리면 나약해진다. 당신이 어떤 처지에 있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그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의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 나도 잘 살게, 너도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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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강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신성합니다. 남자의 팔에 기대고 있지만 제 날개가 있습니다. 여자는 약하고 아파하지만 바로 그 심란한 눈빛으로 그것을 알릴 때 당신의 이 소중한 무녀(巫女)는 오를 수 없는 높은 곳을 거닐고 있는 중입니다.
30년에 걸친 역작 ‘프랑스사’로 이름난 역사가 쥘 미슐레가 1860년 ‘여자의 삶’에서 밝힌 여성 찬미다.
여성의 삶에서 그는 여성의 일과 결혼, 가정, 자녀 양육이 빚어내는 삶의 질을 진단한다. 그는 특히 그 당시 부유한 가정의 여성들이 아무것도 배우려 들지 않고 믿음을 키우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는데, 아쉬움을 남긴 건 온정주의의 틀 안에서 여성의 가치를 애덕과 사랑, 소박함에서 찾고 있으며, 여성의 인권이나 참정권에 대한 문제는 제외시킨 것이다.
그는 여성을 신화적 의미에서 풀었지만 남자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는 타자적 인물로 그리고 있어 유감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 고대 소설을 보면 한국의 여성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며, 여성의 어떤 점이 남성보다 강한지 잘 드러나 있다. 춘향전은 ‘사랑’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여성이 얼마나 약속을 중요시 하는지, 여성의 굳은 절개를 보여 주는 여성 신화의 소설이다.
이몽룡은 힘 있는 남자로서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춘향은 힘없는 여자로서 자신의 의지 하나로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바로잡은 여자다.
‘심청전’에도 남자는 무력하게 나온다. 봉사이면서 턱없는 약속으로 집안의 근심을 불러 놓는다. 그 근심을 푸는 것은 어린 딸이다. 아버지의 공양미 삼백 석이란 실없는 약속을 목숨으로 갚는 딸이 심청이다.
‘장화홍련’도 마찬가지다. 계모의 음모로 죽어서도 귀신이 되어 나타나 결국 진실을 밝히는 것이 장화와 홍련이다.
그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진실에 대항한다. 이것이 한국 여성의 힘이요. 세계 여성의 힘일 것이다.
내 어머니가 ‘희생적인 어머니’였다면 나는 ‘합리적인 어머니’다.
‘나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라는 내 어머니 같은 어머니는 절대로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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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을 것이다. 무조건 희생으로 자식만을 성공시키려는 어머니는 되지 않겠다.
“나도 잘 살게, 너도 잘 살아.”
나는 내 딸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신성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므로 찾고 길들이고 키우면 누구에게나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런 힘으로 자기 스스로를 이 세상과 나누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치마는 여성의 특징적 의상이다. 치마 안으로 모든 것을 품는 상징이 들어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요즘 치마만 입지 않는다. 여성들이 바지를 입으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품는 것이 아니라 품을 것만 품는다.
이기적으로 변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자기를 키우고 상대도 키우는 것이다. 치마와 바지를 함께 입는 여성들은 다양한 체험 속에서 나를 구하고 가족을 구한다.
지금은 희생만으로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말하지는 않는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면서 노력하는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 스스로가 행동하고 자기 일을 찾고 열심히 사는 어머니로 보이는 것이 곧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제10강 그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뭐든 꼬이기만 해요.”
“이렇게 안 풀릴 수가 없어요.”
“세상이 꽉 막혔어요.”
살다 보면 이런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꽉 막혀서 도무지 앞이 안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자나가고 보면 그 막힘마저도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내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풀리지도 않고 꼬이기만 하던 그 어려운 시간도 결국 이루어지려는 그 시간 속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지나오고 나니 보인다. 막혔을 때는 그것만 보인다. 그러나 그때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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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도 그 막막한 현실에서는 이루어지는 시간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나만 저주받고 나만 버림받고 나만 내던져지고 나만 불덩어리 속에 있고 나만 비극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누가 나에게 천벌을 내렸느냐고 하늘에 대고 따지고 싶었다.
누군가 아니라고 곧 빛이 올 거라고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딴 소리 집어 치워!" 하고 화를 냈다. 비틀어져 옳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화를 냈으므로 그렇게 저주받았다고 외쳤으므로 내게 오고 있는 ‘운’과 ‘행’을 바라볼 수 없었다.
어떤 현실에서도 이것이 지나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고 견디면 반드시 행운이 온다.
꿈이란 늘 시간이 걸린다. 그 꿈이 오는 시간을 어떤 자세로 기다리는가에 따라 시간이 줄기도 하고 더 길어지기도 한다.
놀면서 화만 내면서 왜 안 오느냐고 신경질만 부리면 더 늦게 올 것은 뻔하다. 괴롭지만 할 일을 순조롭게 하면서 고통을 견디며 얼음 위를 걷고 있다면 반드시 꿈은 조금 일찍 올 것이다.
인생에는 면제가 없다. 반드시 할 것은 해야 올 것이 온다. 지금 견디기가 너무 어렵다면 다리건너기라고 생각해라. 그 다리를 건너야 행운을 만나는 것이라고.
■ 오천 개의 눈송이도 저마다 다르다
1885년 최초로 눈 결정을 촬영한 미국의 사진가 윌슨 벤틀리는 46년에 걸쳐 눈송이 오천 개를 일일이 현미경으로 찍어본 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눈송이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서로 같은 모양의 눈송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 때 그 아름다움은 더 커진다.”
생각해 보라. 벤틀 리가 찍은 오천 개의 눈송이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의 너무나 작은 일부일 것이다. 사진작가로서 그렇게 미세한 작업을 46년이나 골몰했다는 것이 경이롭고, 눈송이가 저마다 모양이 다르고 아름답다는 말에는 머리가 숙여지는 경건함까지 느낀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인간도 저마다 일일이 46년간을 지켜보면 아무리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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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도 아름다운 모습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눈송이처럼 저마다 다른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면 적어도 그렇지 않겠는가. 인간은 눈송이 하나만 하겠는가. 눈송이처럼 각기 달라서 저마다 아름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은 눈송이 하나보다 만 배는 더 감동적이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는 ‘나만 불행’한 일은 없다. 그것은 부분만 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을 일일이 세심하게 46년을 살피면 누구나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다.
사랑이 있고 헌신이 있고 용서가 있고 기도가 있었을 것이다. 너무 힘들어서 자칫 나쁜 길로 들 수도 있지만 그것도 부분이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는 일.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 그것이 바로 오늘 해야 할 우리들의 숙제다. 그 자부심은 우리의 오늘을 조금 더 힘 있게 만들고 움직이게 하고 조금 더 웃게 할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손이 예쁘지 않다. 손에 대한 콤플렉스는 오래되었다. 남 앞에서 가능한 손을 숨긴다. 남자 앞에서는 되도록 손을 탁자 밑으로 놓는다. 그래서 주머니 있는 옷을 좋아한다. 나이 들면서 혹사한 내 손은 심각한 관절염에 툭툭 불거져, 쓰라린 눈물의 인생을 살아온 여성의 역사 같다.
그러나 나는 손 때문에 안 된 건 없다. 손 광고 모델이 안 된 것 빼 놓고 손 때문에 못하는 건 없다. 나는 ‘예쁜 손 대회’만 안 나가면 된다. 누가 내 손을 뭐라 할 것인가. 그러나 나는 하얗고 길죽하면서 도톰한 아름다운 손을 보면 젖가슴 큰 여성보다 더 부럽다. 아름다운 손을 보면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사랑받는 여자의 손, 그것은 참으로 도달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내 손을 더 사랑한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내 손을 더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나만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그 아름다움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찰나를 사는 눈송이도 각기 다 저마다 아름다움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이야……. 여성들이여. 그대는 정말 매력 있는 여성이라는 걸 잊지 말라.
■ 책은 정신적 항생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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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난 항상 옳았다고 힘을 실어 주어라. 상대적인 불행감을 몰아내고 자신에게 “너는 나야!” 하고 지지자가 되어 준다면 인생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되면 그 불행을 잘 들여다보라. 각도를 조금만 달리 보아도 거기 행복이 함께 있을 것이다.
내 경우를 봐도 불행은 혼자 오지 않았다. 그 옆에 늘 행복이 있었다. 내가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행복이 서운했을 것이다. “왜 내가 불행해!” 하고 악을 쓰는 와중에 그 옆에 행복이 보였겠는가. 행복이 서운해서 물러섰을 것이다. 지금 돌아서는 그 행복을 잡아라. 잡힐 것이다. 차를 한 잔 마셔도 즐기면서 마셔라. 나는 아주 슬픈 때도 커피를 마시는 순간에는 행복했다. 새벽 커피는 큰 위로였다. 그러면 화도 조금 물러선다. 어떤가. 그런 일을 경험했다면 그것을 글로 써 보면 어떨까.
사소한 일들을 적어 보자. “내가 뭘!” “글은 못 써요.” 하지 마라. 일기처럼 적으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자서전이 될 것이다. 당신의 자서전을 불행하게 끝내고 싶은가? 해피엔딩으로 하고 싶으면 지금 당신을 행복하게 즐겨라. 하루 10분만 행복해도 스트레스가 풀리고 화도 풀리고 인생도 풀릴 것이다.
노래도 불러라. 큰 소리로 다이애나 크롤의 음악을 틀어 놓고 재즈와 함께 춤도 춰 보라.
‘봄날은 간다’라는 유행가도 도움이 될 것이다. 봄만 가는 게 아니다. 근심도 간다.
책을 읽어라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지속적으로 책을 읽은 사람들이다. 꿈과 희망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의 곁에는 항상 책이 있다.
겉보다는 속을 알차게 채우려는 사람, 외형적인 삶보다 내적 충만을 바라는 사람들 역시 책을 열성적으로 읽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책은 구원자다. 마음이 허약한 사람, 병든 사람, 아직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 책은 길이 되고 위안이 된다. 책은 실제 자신보다 몇천 배 힘 있는 사람으로 비약시킨다.
정신을 강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도 나폴레옹도 독서광이었고 베토벤 같은 예술가도 독서광이었다. 무엇인가 스스로 만든 사람들 곁에는 반드시 책이 있었다.
정신이 허약한 사람들은 반드시 책을 만나라. 정신의 빈곤은 인간을 쉽게 넘어지게 하고 고통 앞에 형편없이 무너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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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말로 정신적 항생제가 된다. 나는 책 읽는 나라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책 읽는 여성이 가장 강하지 않겠는가.
■ 걱정하지 말라,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저 하늘에 별도 강 건넌 만큼
하늘에 걸렸겠다
하루를 건너는 사람들
세월을 감다가 풍덩 빠지는 곳 있다
잠드는 일도 강 건너는 일이다
누구를 향해
정신 나게 한마디 하고 싶은데
꿀꺽 참으며
또 강 건넌다
나의 졸시 ‘강 건너다’의 일부
지금 어디선가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는가. 거리를 걸으며 울고 있는가. 아니면 목에 핏대를 올리며 화를 내고 있는가.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고 있는가. 이놈의 세상 못 살겠다고 치를 떨고 있는가.
이제는…… 이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차라리 입 다물고 칼끝처럼 무섭게 세상을 등지고 있는가. 왜 세상은 나에게만 이런 불운을 주느냐고 세상을 향해 주먹질을 하고 있는가.
이 모두 지금 위기의 강을 건너는 중이다.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도달할 수 없다. 물어보라. 모두 그 강을 건넜다.
나는 젊은 날 사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거리로 나가고 묻고 싶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떻게 사나요. 당신들은 왜 그렇게 편안하게 사나요. 도와줘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날 좀 도와주세요.”
그러나 그 사람들도 나처럼 사는 것이 너무 어려워 묻고 싶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나보다 더 묻고 싶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러나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조금씩 강을 건너가고 있었고 그 애통하게 울었던 울음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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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울었던 시간, 내가 콱 죽어 버리고 싶었던 그 시간들도 그 순간 강을 건너고 있었고,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의 기도를 하고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눈을 떠 성모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잘 주무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생 자기의 감사를 떠 올리지 못하면 그것이 곧 불행이 아니겠는가.
울고 있는 당신, 기막혀 웃고 있는 당신, 세상을 비웃고 있는 당신들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원하는 삶으로 가고 있다. 꿈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당신은 지금 고통의 반대편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늘 먼저 산 사람들이 한 말들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링거 한 병을 맞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흐릿한 정신에 영양제를 투입하는 것이다.
나는 참고 견디면서 생각한다. 모든 불행은 뭔지 모르지만 좋은 것을 동반해 온다고. - 베토벤 -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하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나 또한 어쩔 수 없다. - 공자 -
행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불행을 살아 내는 것. 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온갖 어둠을 응시하는 것. - 니코스 카잔차키스 -
격하기 쉬운 사람이 받는 벌은 행복 곁에 살면서도 행복을 손에 넣지 못하는 것이다. - 보나르 -
2011. 11. 6. 다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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