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보해성산 2012. 1. 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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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외롭다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 한상복 지음


0 성균관대,  14년 간 신문 기자에서 작가로 전업

0 저서 : 배려, 재미, 한국의 부자들, 보이지 않는 차이 등


  프롤로그 - 인생에서 절대 피할 수 없는 세 가지 중 하나


우리 삶에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것 세 가지가 있다.

두 가지는 들어 보았을 것이다. 죽음과 세금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아무리 위대한 삶을 살아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세금 또한 그렇다. 살아 숨 쉬는 한,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돈을 벌지 않아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금을 낸다. 거의 모든 것의 가격에 이미 세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마지막 하나는 외로움이다.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외로움은 평생을 함께하는 그림자이자 ‘또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그래서 TV 또는 컴퓨터를 켠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TV프로그램을 보며 킥킥 웃는다. 인터넷 서핑에 빠져들거나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TV와 컴퓨터를 끄고 전화를 끊은 뒤에는 어김없이 다가오는 공허함. 사람들에게 둘러싸여도 외롭다. 떠들썩한 파티에서도, 현란한 조명의 무도회장에서도, 즐겁게 어울리는 사이에도, 이따금 명치를 콕콕 찌르는 익숙한 느낌, 그것이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더욱 아프다.


* 외로움의 두 갈레 (하버드 대학  폴 틸리히 교수)

- 론리니스(loneness) : 혼자 있는 고통

- 솔리튜드(solitude) : 혼자 있는 즐거움

정신분석학자 H.S 셜리번(H.S. Sullivan) 교수는 론리니스를 ‘관계로부터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으로 솔리튜드를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으로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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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분노와 결합되면 마음속에 악마를 키워내는 경우도 있다. 원한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외로움의 원한이 스스로에게로 겨눠지면 자기학대를 거쳐 돌이킬 수 없는 자멸로 이어지기도 한다. 반대로 남에게 겨눠지면 병적인 분노의 발산으로 표출된다. ‘인터넷 악플’부터  ‘묻지마 범죄’에 이르기 까지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피해를 입힌다. 외로움은 어느새, 대한민국의 오늘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남과 함께 있으려고 한다. 서로에게 의존해 외로움의 텅 빈 허전함을 메우려는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함께 있는 것으로는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홀로’라는 선택을 통해 더 좋은 것, 솔리튜드로 도약할 수 있다.

솔리튜드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솔리튜드는 외로움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부터 솔리튜드에 이르는 길이 사실상 시작된다. 우리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혜의 그물을 짠다. 솔리튜드는 그 과정에서 내면의 성숙과 함께하는 길이다.

인생은 엄밀하게 보면 혼자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그래서 ‘모든 태어난 자의 숙명’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삶의 순간들을 어떤 것으로 채울 것인가 하는 각자의 선택일 뿐이다.

론리니스인가, 아니면 솔리튜드인가. 


제1부 외로움을 발견하기


■ 왜 나만 악역을 맡아야 할까.


그날은 악몽이었다. 그것은 초판 신문이 나온 저녁 무렵에 화려한 막을 열었다. 부서별로 배포된 경쟁지들을 넘겨보다가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대한민국 조각상 대상 수상자 표절 의혹”

한 경쟁지가 박승일 교수의 출품작이 노르웨이 작가의 것과 얼마나 유사한지 사진까지 게재해 비교해놓았다.

게다가 기사의 마지막 문단은 문화계의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모 언론사’가 ‘N일보’임을 알 수 있게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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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관계자들은 박승일 교수 거품 현상에는 모 언론사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한 관계자는 해당 언론사가 박 교수를 차세대 문화계 리더로 선정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그의 작품 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기사를 유독 많이 내보냈고, 그와 함께 박 교수 작품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편집국장실에서 뛰어나온 부장이 그녀를 불렀다.

“윤설리 씨, 국장실로.”

외국에서 활약했다지만 뚜렷한 실적도 없고, 귀국한 지 2년 밖에 안 된 신출내기 교수를 그렇게 티가 날 정도로 밀어주었으니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내친김에 국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박승일 교수는 우리 회사랑 무슨 관계입니까? 지금까지 기사를 쓰면서도 그게 궁금해서……”

국장이 그녀의 질문을 무시하고 부장에게 말했다.

“어떡하지? 그 사람은 왜 표절을 해가지고…… 언론 감시 단체나 매체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자꾸 들쑤시고 파고들면 골치 아파질 것 같은데.”  

그 정도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부장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국장에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부장은 그녀를 먼저 내보내놓고 국장과 한참 동안 의논을 했다.

매번 박 교수 취재 지시를 내린 게 부장이었으니, 그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그런 부장이 안됐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그러나 잠시 후, 부장은 그녀를 회의실로 불러 딴소리를 했다. 담당 기자와 데스크가 모두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만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녀는 완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려고 했다. 하지만…….

부장은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규에 정해져 있는 정도가 될 거야. 우리 둘 다 3개월 감봉 정도? 이번 표절은 우리랑 관계가 없는 사안이지만 그 사람 주장만 듣고 확인 되지 않은 기사를 여러 번 내보낸 책임은 인정해야 하니까. 윤설리 씨, 당신은 솔로라서 자유롭겠지만 나는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는 신세야. 내 입장도 좀 생각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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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그녀를 희생양 삼아 이번 사건이 커지는 것을 막아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 마음을 잃다


직장 생활 7년차 이도균 과장의 신조.

‘일단 바빠야 유리하다.’

회의가 끝나자 부리나케 1층 로비로 뛰어 내려갔다. 접견실에서 손님을 만나고 올라와 자료를 정리해 팀장에게 넘겼다. 팀장이 회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말했다.

“이 과장, 바쁜 것 같은데, 이 일은 후배한테 한번 시켜보는 게 어떨까?”

그는 속으로  반기면서도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상사들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을 선호한다.

이 과장뿐만이 아니다. 대다수 직장인에게, 바쁜 것은 미덕이자 긍지이며, 능력의 척도가 되어버렸다. “바쁘시죠?” 하고 묻는 것이 상대를 치켜세우는 인사로 통한다. 바쁨의 확인으로 인사를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최초다.


퇴근 시간. 도균은 마지막까지 바삐 움직이다가 저녁 약속 장소로 향했다. 사내 비공식 모임이다. 간단히 저녁을 먹는 자리이므로 9시 전에는 끝날 것이다.

그 후에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 시내 중심가에서 일하는 동창들 위주의 소모임이다. 늦게라도 가서 얼굴을 비쳐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다 밤이 깊었다. 또 하루가 지난 것이다. 친근한 대화 속에서 웃고는 있지만 왠지 허전하다. 매일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는 그런 생각을 애써 지워버렸다. 몇몇 동창들과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다음 주에 저녁 약속을 잡았다.

도균은 식탁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바쁘게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마음은 불안하고 답답하기만 한 것일까. 낮선 감정의 이름은 분명 ‘외로움’이었다. 도균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쁘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외로울 수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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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을 대표하는 특성. 바쁠 망(忙)”

마음이 사라지고 없다는 뜻이다. 마음을 잃다. 마음의 죽음 ……

사람들에게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고 중요한 사람으로. 그렇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쳇바퀴 속으로 한번 들어가자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흐름이 끊어지면 더 이상 ‘나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만 같았다.

도균은 플래너에 빼곡이 작힌 스케줄에 가새표를 치기 시작했다. 지우다 보니까,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모임이 태반이었다. 그런 약속을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어 가면서 ‘바빠 죽겠다’고 엄살을 떨어온 것이다. 허탈했다. 어쩌면 혼자 있는 게 두려워서 모임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혼자 있는 게 두려울까.

*플래너(Planner) : 앞으로 할 일의 절차나 방법, 규모 따위를 미리 계획해 주는 사람 또는 체계적으로 계획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진 장부

사과는 남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는 결여된 자기 존재감을 보상받으려다가, 정작 자기를 위한 시간은 남겨놓지 않은 채 스스로를 방기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서 잘 지내보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컴퓨터나 휴대폰 없이 혼자 뭔가를 해보려는 시도도 한 적 없었다. 늘 무리의 일부가 되려고 했으며, 무리 속에서는 자기라는 존재를 잊으려고만 했다. 행여 무리로부터 소외될까봐 남들 눈치를 기민하게 살폈다.

그는 생각해냈다. 지금 이렇게 외로운 것은 남의 기대에 맞춰 사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위해 살지 못해서,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없기 때문에, 하루를 바삐 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그날 분량만큼의 희망과 포부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 빠져나가듯 허무하게 사라졌음을 발견하곤 했다.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느끼는 외로움은 그래서 마음이 보내주는 위험 시그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마음이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도균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내일부터는 생활 패턴을 약간 바꿔보기로 했다. 약속을 잡기 전에, 스스로를 바쁘게 몰아치기 전에, 잠깐의 여유를 두어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더 이상 마음을 잃지 않도록. 그렇게 해서 ‘바쁨 강박’에서 벗어나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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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도 죽을 만큼 외로웠을 것이다.


오후 2시, 나만의 점심시간이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매장 밖으로 나가 김밥을 먹는 데 10분. 나머지 30분은 산책 시간이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 기분이 산뜻해진다. 점심시간이면 쏟아져 들어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전투태세에 돌입했던 몸이 비로소 숨구멍을 열고 호흡하는 것을 느낀다. 오전 내내 스트레스를 받게 했던 영업 실적 보고서도 잠시 잊는다. 점심 산책의 규칙, 걱정거리는 따라오지 못하게 책상다리에 묶어 놓고 나올 것. 가을 햇살이 따뜻하다.


그때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두려웠다. 회사에 나가야 하니까. 이를 닦으며. 화장을 하며, 수십 번씩 ‘오늘은 꼭 때려치우자’를 되뇌었다.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저녁때면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왔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발단은 칭찬 몇 마디였다. 그 몇 마디 말이 눈에 띄지도 않던 나를 일약 신데렐라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상무는 회장의 둘째 아들이었다. 아이비리그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온 서른넷 미혼 훈남, 그런 상무가 신규 사업 추진상황을 중간보고하라고 했다. 느닷없는 일이었다. 하필이면 담당 과장이 휴가 중이었다. 난리가 났다. 사업본부 전체가 패닉 상태였다.

그런데 담당부사수가 바로 나였다. 허겁지겁 그동안 정리한 자료를 들고 가서 몇 가지 포인트를 중심으로 보고를 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했다. ‘나 같은 말단한테 뭘 바라겠어’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날 보고가 대단한 히트를 치고 말았다. 그다음 주에 열린 전사 워크숍에서 상무가 나를 지명해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사원”이라고 칭찬한 것이다. 그러고는 며칠 뒤 우리 팀을 불러 저녁을 사주기까지 했다.

그 후로 나의 회사 생활이 바뀌었다. ‘이정은데렐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몇몇 사람을 통해 떠도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프리젠테이션 한번으로 왕자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 프데렐라”, “회데렐라, 왕자님께 간청해 팀에 회식을 쏘다”, “왕자님 때문에 남자 친구를 칼처럼 잘라버린 칼데렐라”.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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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헛소문이었다. 상무와는 따로 만난 적도 없고 오 대리하고는 막 좋아질 때였는데 칼처럼 잘라버렸다니.

그다음부터는 왕따였다. ‘투명인간’취급을 당했다. 여직원 휴게실에서 동료들에게 다가가면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빈자리에 앉으면 일제히 일어나 퇴장했다. 아무도 내 곁에 오지 않았다. 4인 테이블에 혼자 앉아 주변 동료들의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기분 나쁘게 키득대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뭘까. 나는 외로움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모두들, 무엇인가의 일부가 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은 그런 두려움의 한가운데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집단의식’이다.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비로소 안심하는 비겁한 자기위안의 집합체 같은.

동화 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난 뒤 외로움에서 벗어났다. 그러니까 동화다. 현실의 신데렐라는 왕자의 근처에만 가도 외로움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내게는 오 대리가 있어 다행이었다. 그는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라고 권했지만, 어떻게든 내 손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왕따의 리더 격인 선배와 저녁 약속을 잡았고, 너무 떨려서 스파게티를 제대로 입에 대지 못했다. 눈치만 보다가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조공’을 바치더라도 무리에 다시 끼고 싶었다. 외톨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선배가 포장을 뜯고 선물을 보더니 깔깔대며 웃었다. 그 까마귀 웃음소리가 지금까지도 귓가에 생생하다.

“어머~ 너 듣던 대로 이런 애였구나. 궁금하네. 상무님한테는 어떤 선물을 했던 거야?”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가장 멋진 선택을 했던 순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생각의 이미지를 단호하게 실천으로 옮기기까지는. 스파게티가 가득 담긴 그릇을 그녀의 머리위에 엎어버렸다. 구석 테이블에서 몰래 지켜보던 설리가 눈이 왕방울이 되어 벌떡 일어나는 게 보였다. 설리가 꼽은 “이정은 일생일대 명장면 베스트 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 인터넷 스타의 사생활


처음에는 아내가 심심풀이 겸 가볍게 소통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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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알았다. 전업주부에게도 자기표현은 물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싶은 욕구는 있을 테니까. 아내도 출발은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도를 넘는 건 금방이었다. 주목받는 재미에 빠진 아내는 온갖 것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새로 구입한 전기 오븐부터 손수 만든 생일 케이크, 수공예 탁자에 이르기까지, 가족의 사생활을 왜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공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내는 금방 ‘스타 블로거’가 되었다. 그 뒤로 인터넷에 점점 빠져들었고. 자기보다 많은 사람을 모으는 블로거를 발견할 때마다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하곤 했다. 한동안 침잠하던 아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보다 대단한 것을 보여주는 거였다.

무리가 뒤따랐다. ‘인증 삿’을 위해 수많은 장소에 가야만 했고, 나는 주말마다 전국을 떠도는 운전기사 신세가 되었다. 반항을 안 해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다는 아내의 주장은 언제나 관철되었다.

인터넷 경쟁에 끝이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음은 외국 여행이었다. 아내는 집요했고 자기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내의 보여주기 경쟁이 자동차를 바꿔놓았고, 인테리어 치장으로 이어졌다. 이어서 조리 기구며 커피머신, 와인 냉장고를 비롯한 온갖 잡동사니가 집 안에 들어찼다. 어떤 것은 ‘인증 샷’을 거친 뒤 곧바로 무용지물이 되었다.


어느 날, 아내의 블로그에 들렀다가 충격을 받았다. 블로그 속의 아내는 나의 아내가 아니었다. 그 속에 묘사된 나 역시 내가 아니었고, 우리 집도 그랬다.

대부분의 사진은 카메라의 교묘한 각도와 ‘뽀샵질’로 인해 실제와 달라도 크게 달랐다. 아내의 글에선 ‘전혀 다른 해석’ 또는 ‘창작’ 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많이 발견되었다.

아내는 외롭지 않으려고 ‘보여주는 삶’을 선택했지만, 남들의 인정을 받으면서도 외로움에서 탈출하지는 못했다. 아내가 왜 그러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외로움에 몰린 아내를 더한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 인터넷이 좋으면 그 속에 들어가서 살라고.

그런 외로움이 단단하게 뭉쳐 결석으로 굳어버리고 끝내는 종양까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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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게 아닐까. 유치원생보다 비과학적이라는 나의 추론은 그렇다.

인터넷 속의 행복은 사실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다. 삶의 단면 가운데 보여주고 싶은 것들만 골라 편집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전히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인터넷 스타들이 기를 쓰고 남들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이유는 그들 역시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아내를 지켜본 내 경험에 따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형(自刑)’이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뜻으로. 성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팔자 좋은 사람들에게 곧잘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한다. 남들 보기에는 완벽한 삶을 사는데도 정작 본인은 힘들어하며 외로움을 호소한다.

‘자형’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자기 기준이 없으며 남들의 평가에 목을 맨다. 자존감이 약한 것이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자각이 ‘남에게 보여주려는’ 외형적 삶을 추구하게 만든다. 남의 인정을 못 받으면 우울해하거나 토라진다. 외양만 치장하려 드니까 촌스럽고 ‘그토록 바라는 인정’도 얻지 못한다. 그래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아내는 블로그의 노예에서 벗어난 뒤에야 자신의 가치를 다시 인식했다. 도예를 배우면서 성취감을 발견했다. 남들을 이겨서 얻는 성취가 아닌 자기가 노력해서 얻어낸 만족, 연습과 생각을 통해 발전을 이뤄낼 때에야 비로소 만족과 자신감이 붙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 전에는 이런 말을 했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지, 자신감이란 자기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생기는 게 아닌가 해. 그러니까 자신감은 곧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삶의 균형인지도 몰라. 그런데 난 그동안 너무 자신감이 없었나봐. 힘들게 해서 미안해.”

사람들은 남의 삶을 사느라 너무 바쁘고 자기 삶을 못 살아 외롭다. 부모의 강요나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혹은 자기를 몰라 남의 삶을 흉내 내며 아등바등 살아간다.

‘남들은 모두 폼 나게 사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외롭다. 스스로에게 벌을 준다는 의미의 ‘자형’은 그렇게 시작된다.


■ 봉우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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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뿌듯함’ 보다 ‘정신없음’이었다. 업계를 통틀어 첫 여성 임원이라며 요란하게 주목을 받았다. 현장이며 거래처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보름간의 약속이 삽시간에 들어찼다. 홍보팀은 온갖 매체의 인터뷰를 주선해 그들 나름의 실적을 올렸고, 교육 팀은 여직원 세미나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거기에 사장 주재 회의며 수시로 열리는 간부 회의까지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땅꼬마 이사의 봄과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벌써 가을이다. 등산로 곳곳에 단풍이 눈에 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자란 나무는 일찌감치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급경사 구간. 전보다 숨이 차다. 체력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다. 너무 바쁘게 살아왔나?


‘정신없음’ 다음으로  느낀 것은 ‘고립’이었다. 부장 시절보다 좀 더 넓어진 공간으로 옮겼는데, 찾아오는 사람은 반 이하로 줄었다.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도 예전 같지 않다. 뭐랄까. 나와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막’ 같은 것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사 명찰을 받은 뒤로는 ‘오버’가 심해졌다. 표정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사장 주재 회의에서 심한 질책을 들어도, 완전히 혼자인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미소를 지었다. 아파도 철저하게 혼자 앓았다. 직원들이 편안하게 일하도록 빈틈없는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나의 첫 번째 임무였다.

게다가 나약하게 보였다가는 틀림없이 ‘여자라서 무리’라는 소리가 나올 터였다. 내 자리를 노리는,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 부장이 하나둘이 아닌데, 그들에게 구실을 줄 순 없었다.

20년 넘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지난 여섯 달 남짓한 시간처럼 강한 척 괜찮은 척, 행복한 척하느라 진이 빠질 정도로 애를 쓴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힘들었던 건 누구와도 고민을 나눌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등산을 다닌다.

사회적 출세와 등산에는 동통점이 있다. ‘오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목표를 바라보면서 그곳에 오르기만 하면 꿈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한다. 밑에서 꿈꾸는 정상이란, 행복과 유의어 또는 동의어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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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서면 행복을 누릴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적 출세와 등산의 두 번째 공통점을 흔히 간과한다. 그것은 ‘곧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조언을 한다. 기대했던 대단한 것은 정상에 없으며, 등정의 기쁨을 제대로 누릴 여유도 없이 내려와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아직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겐 이런 조언이 기쁘게 들릴 턱이 없다.

나는 세번째 공통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높이 오를수록 더한 외로움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임원이 되고 나서 마지막으로 발견한 것은 ‘홀로움’이었다. 어느 시인이 처음 쓴 말이라고 한다. ‘홀로’ 와 ‘즐거움’을 합친 말.

지위가 오를수록 수많은 스케줄에 휘둘려 자기만의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역할에만 충실하다가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이 일찍 출근해 ‘나만의 시간 즐기기’였다. 아침 7시에 출근해 커피를 내려 마시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직원들이 나오기 전까지 한 시간 넘게 혼자 있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를 맛보면서 생각에 잠길 뿐이다.

‘홀로움’을 통해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알았다. 그동안 성장하는 데만 치중했다면 이제는 성숙해야 한다는 작은 울림이었다.


■ B급 만세


아들아. 네가 보낸 이메일을 읽으면서 아빠도 마음이 아팠다. 평생을 루저(loser : 실패자, 손해 보는 사람, 불량품 등) 로 살 것 같아서 걱정된다고 했지? 친구들보다 키도 작고,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어서 답답하다고.

아빠가 책을 보다가 너와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수학을 싫어하는 것까지 너와 판박이더구나. 들어볼래?


영국에서 태어난 이 사람은 160Cm 정도의 작은 키에 학생 때는 줄곧 열등생이었단다. 초등학교만 세 번을 옮겼다는구나. 학생 기록부를 보면 “품행이 나쁘고 신뢰할 수 없으며, 친구들과 자주 다투고 의욕과 야심도 없다.”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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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되어 있단다. 특히 수학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사관학교에 입학해 수학 과목이 없어지자, 비로소 우등생으로 변신했다는구나. 나중에는 정치에 입문했지만, 어린 시절부터의 언어장애 때문에 연설을 하는 데 애를 먹었지. 그가 생각해 낸 것은 두 가지였어. 큰 소리로 읽고 도 읽는 연습. 또 하나는 연설문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 그의 가장 유명한 연설문은 전체가 딱 세 단어였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이쯤이면 누군지 짐작하겠지? 맞아. 처칠 수상이다. 인생의 앞 대목은 ‘형편없는 루저’로 보냈지만,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가 되어 날아간 것처럼 삶을 완전히 바꾸는 데 성공했지. 나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아빠는 ‘루저’였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A급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B급이었다. 그게 아빠의 콤플렉스였다 그래서 너에게서 아빠의 옛날 못난 모습이 보일 때마다 답답해하고 화를 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제 아빠는 A급이 되지 못한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B급이지만(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여러 가지 면에서) B급인 것에 만족하고 B급에 머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급이야말로 재미있는 위치란다. B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A급으로 뛰어 오를 수 있지. 처칠 수상도 밑바닥에서 하루아침에 정상으로 튀어 오른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오랜 B급의 시절이 있었지.

아빠는 B급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A급이 자존심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도 B급에겐 얼마든지 기꺼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어. 특히 B급은 A급보다 두루 통할 수 있단다. 다양한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너도 언젠가 깨닫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더구나 회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는 아빠와 같은 B급 인재들이란다. A급 인재들은 좋은 처우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른 곳에서 유혹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B급 인재들에겐 그런 제안도 잘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나름의 애사심도 있어서 회사가 어려워질 때는 끝까지 남아 재기를 모색하지.


나중에 담임 선생님께 조용히 여쭤봐라. 졸업한 지 10년이 넘은 선배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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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스승의 날에 꾸준히 찾아오는 부류가 어느 쪽인지 말이야. 틀림없을 거야. A급이라 불리는 친구들은 많지 않을 거다. 이유가 있단다. A급에겐 성공이 당연한 거니까. 자기 노력으로 성공했는데, 선생님께 고마움을 느낄 이유가 없는 거지, B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단다.

아빠는 ‘고마워할 수 있다’는 점을 A급 아닌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는 것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아빠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들아, 언제나 실패라는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줄 알아야 한다.

삶은 성공보다는 무수히 많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거든. 매 순간 그런 실패를 맞이하고 또다시 시작하는 과정에 익숙해질 때, 자아는 호두껍데기처럼 단단해지는 거다. 그게 외로움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한 가지 당부를 하자. A급들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선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그들의 끝없는 도전정신을 존경하기 바란다.

A급은 운명적으로 외로운 사람들이다. 언제나 선두에서 더 많은 맞바람을 맞아가며 길을 터주지. 미답의 경지를 먼저 밟아, 뒤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위대한 사명이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A급들의 덕분인 셈이지.


아들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A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은 B급에 머물기 바란다. B급의 겸손함으로 A급의 수준을 생각해야, 넘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만족과 감사, 행복을 균형 있게 누릴 수 있으니까.

추신.

아빠 일이 바빠서 다음 주말에나  집에 갈 수 있겠구나. 이 메일은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엄마는 아빠를 A급이라 믿고 결혼했거든. 허풍도 좀 떨었다만. 다음 주말에 보자.


■ 남자의 사막                      

        

밤에 끙끙 앓았다. 열이 39도까지 올랐었다.

“이 과장 나 대신 회의에 들어가게 해서 미안해. 이따가 마케팅 1팀장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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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말이야. H프로젝트 건은 내가 내일 출근해서 직접 설명하겠다고 전해줘. 그리고 총무 팀에 전달할 자료들이 내 책상 위에 있으니까……”

그는 회사에 전화를 걸어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고 후배 이도균 과장에게 몇 가지 지시를 했다. 주방에는 점심이 차려져 있었다.

“학원 설명회 참석. 찌개는 꼭 데워서 먹을 것.”

남편이 끙끙 앓으니까 조금은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하지만 아이 학원 설명회 참석은 핑계인지도 모른다. 집 안에 둘만 있는 걸 견디기 싫어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려다 귀찮아서 그냥 두고는 밥을 조금 퍼서 억지로 먹었다. 빈속에 감기약 먹기가 겁이 나서였다. 이렇게 심한 감기 몸살은 처음이었다. 몸이 주는 벌인지도 모른다. 주중에는 야근이나 회식으로 혹사시키고, 주말에는 운전기사 노릇하랴 쉬어 준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다가 ‘동물의 왕국’을 발견했다. 사자 무리가 나왔다. 수사자의 일생을 다룬 내용이었다.

수사자 두 마리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가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 가족을 이끌던 수사자들과 혈투를 벌이고, 그들을 쫓아내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그 새끼를 전부 물어 죽이는 건 좀 심했다. 맹수라 그렇다지만, 지나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전성기는 매우 짧고 허무하게 끝난다. 2-3년에 불과하다. 다른 떠돌이 수사자들과의 대결에서 패배해 쫓겨난다. 멀리서 새끼들이 죽임을 당하는 소리를 들으며, 다리를 절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떠나고 만다. 그렇게 다시 방랑이 시작된다. 그 와중에 대개는 비참한 종말을 맞아 한다.


그는 자신이 수사자와 닮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냥해서 가족을 먹이고 안전하게 지켜주지만, 가족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 그러니까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방인 같은 존재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집이 낯설고 편안하지 않은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남편이자 아빠라는 사람은 집 안에서 유일하게 자기 공간을 갖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다. 아내에게는 안방이 있다. 함께 쓰는 방이라고? 천만에 부부싸움을 해보면 그 방이 누구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방에 들어가 문을 쾅 하고 닫는 건 언제나 여자 쪽이다. 나머지 공간은 아이 공부방 또는 옷 방으로 빼앗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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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다.

남은 건 거실의 오래된 소파. 그러나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즐거움도 끝내 빼앗겨버렸다. 아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얼마 전의 한일 축구 대결도 회사 앞 식당에서 봐야했다. 어쩌다 집에 일찍 들어와야 하는 날에는 발코니 신세다. 발코니에 나가 휴대폰으로 보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자리도 모든 면에서 위태롭다. 성공한 상사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 남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혼자 있을 때는 엄습해 오는 열등감과 좌절감 그리고 외로움……

주택 대출금, 자녀들 학비, 부모님과 아내의 사이 등. 시원한 구석은 없다.

그는 생각한다.

‘이렇게 된 건 혹시 내 공간이 없어졌을 때부터가 아닐까.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생각이 비로소 숨을 쉰다는 말도 있잖아.’

현대인에게도 사막이 필요하다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외로움에 빠졌을 때는 사막에 들어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요즘 뜨는 광고.

사막과 광고에는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한다. 히브리어로 사막은 ‘미드바르(midbar)’라고 한다. 그 어원은 ‘말씀을 듣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초기 가르침과 깨달음이 ‘사막의 고독’에서 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하루짜리 가출에서 배운 것


오 대리의 꽤 오래전 기억 하나.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된 날이었다. 안 되는 건 많고,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무렵 처음 사귄 여자 친구한테 “그만 만나자”는 메일을 받았다. 그는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지각해서 운동장을 돌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그리고 한심한 성적표.

  아버지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거대한 암벽 같은 분이었다. 형처럼 사관학교에 들어가 장교가 되는 것 말고는 어떠한 가능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의 오 대리는 직업군인이 되기를 희망해본 적이 없었다. 과연 그래야만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툭하면 아버지를 따라 새 부임지로 이사를 다니던 것만 해도 지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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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처음 오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어디로 가는 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건 상관없었다. 왜 그런 결심을 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대략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나 따위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거야.”

버스가 동네에서 점점 멀어지자 기분이 개운해졌다. 휘파람이라도 불고 싶은, 처음 맛보는 해방감이었다. 그러나 해방감은 잠시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불안해졌다. 금방이라도 아버지가 버스에 올라타 멱살을 잡아챌지도 모른다는 유치한 상상을 하면서 앞문 쪽을 힐끔거렸다.

그게 가출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버스는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 교외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작은 마을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테이블이 고작 서너 개뿐인 식당에서 선지 해장국을 먹었던 기억. 할머니가 공깃밥을 한 그릇 더 주셨다. 교복 때문이었는지.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고 했던 것 같다.


다음은 마을 끄트머리에 있던 작은 절. 오 대리는 그 절에서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 절에서 막내 외삼촌 또래의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그에게 차를 내 주었다.           

  “티베트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셴파’라는 게 있네. ‘가려운 곳을 긁는 고통’이라는 복잡한 의미를 가졌지. 가려우면 자꾸 긁어대잖아? 가려운 걸 해소하려고 말이야. 한데 결과는, 긁을수록 더 가려워진다는 것이야. 그래서 더 긁어대고 어느 순간에는 가려움이 고통으로 변해버린 것을 깨닫게 되지. 세상일도 그렇다네. 조금만 여유를 가져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는데. 그걸 참지 못하고 급하게 서두르니까  가려움이 고통의 악순환으로 변하게 되는 걸세.”

그때는 뜬금없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셴파’라는 말이 그 뒤로 이따금 되살아나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이어지고 있다.


저녁 늦게 집에 왔다.

“저녁은 먹었냐?”

“네.”

“늦었다. 들어가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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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대화는 평소처럼 짧았다. 그러나 달라진 게 있었다. 아버지는 그날 하루짜리 가출을 통해 아들이 홀로 성장했다는 것을 육감으로 느끼셨던 것 같다. 아침까지만 해도 철부지였던 아들놈이 밤늦게 어른 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것이 만족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다음날 아침에 밥을 먹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최선을 다 해라. 뭐든지.”

오 대리는 그 뒤로도 첫 번째 버스 타기를 가끔씩 하고 있다.       


외로움은 기다리는 여유를 갖지 못할 때 오래 긁는 고통처럼 다가온다. 긁을수록 조급해진다. 나만 손해를 본다는 느낌. 마음에 차지 않으며. 서두르기만 하다가 분노를 폭발시킨다.  그다음에는 절망. 미친 듯이 긁어대고, 그러면서도 고통에 괴로워하는 나를.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투명인간처럼 홀로 남겨진다.

‘첫번째 버스 타기’는 일상에 지치거나 타성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치르는, 혼자만의 의식 같은 것이 되었다. 마음 한 구석이 가려울 때마다 긁지 않고 기다려 본다. 그다음에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처음 접하는 불확실한 고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


문화평론가의 주장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결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겁니다. 저는 요즘 20~30대를 ‘사랑을 잃어버린 세대’라고 칭하고 싶은데요. 오로지 자기만 알아주는 걸 사랑이라고 믿거든요. 상대한테는 그렇게 하지 않고요.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요구이지, 사랑은 아니죠.”


설리는 노트북 컴퓨터에 키워드와 요점을 입력했다. ‘비혼(非婚) 시대’를 주제로 한 토론회였다. 그만그만한 인물들이 나와 진부한 주장을 되풀이하는 이벤트 기사로서 ‘영양가’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방송사 몇 군데에서 나와 ‘그림’을 따고 철수했을 뿐, ‘볼펜(취재기자)’은 그녀 혼자였다.

한심했다. 이런 데나 쫓아다니며 필경사 노릇을 하다니, 미술 담당은 작년에 후배에게 넘어갔다. 언제까지 겉돌아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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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신경질 적으로 자판을 두드렸다.

TV의 교양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교수가 마이크를 받았다.  “저는 젊은 세대가 세상의 쓴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데 원인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조로 세대’라고 할 수 있겠죠. 그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요. 취업도 바늘구멍이지만 그 이후도 첩첩산중입니다. 결혼 비용에 전세 값에, 육아 비용…… 내 집 장만은 사실상 불가능하죠. 거기에 엄청난 사교육비까지. 결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겁니다. 사랑을 잃어버리고 너무 일찍 늙어버린 세대. 누구 책임일까요?”
그녀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교수의 말이 자신의 속마음을 꽤 예리하게 찌른 것 같았다.

다음은 정신과 의사의 차례였다.

“저는 ‘애정결핍’이란 관점에서 해석해봤습니다. 남들보다 뛰어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훈련된 결과가 인정과 안정에 굶주린 불안정한 성인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 한 번이라도 사람들에게 자기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은 심리 아닐까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요?”

토론회는 막바지였다. 사회자의 마무리 이벤트까지 듣고 전체적으로 다듬은 뒤 기사를 송고했다. 


■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


새로운  사업본부를 맡게 됐다. 부하 직원들을 파악하기 위해 자기소개서 숙제를 냈다. 뭘 써야 하는지 모르는 직원들이 있기에, ‘나는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하고 싶은지’ 써 내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몇몇 사람이 불만을 토로했다. “재수 없게 여자 임원한테 걸리는 바람에 별 이상한 짓을 다 하게 됐다.”며 대놓고 시비를 거는 부서장도 있었다. 들은 척하지 않고 일주일의 시한을 주었다. ‘땅꼬마 이사’한테 걸리면 원래 좀 고달픈 거다.

그들이 제출한 자기 소개서는 대동소이한 프로필 수준이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확 들어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성실하게 쓴 사람마저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한 부서장을 불러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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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쓰라고 했는데, 그런 내용은  없네요?”

“모두들 잘 썼던데요. 최종학력에 전공, 경력, 가족관계, 전부 빠짐없고요. 되고 싶은 건, 이사님처럼 출세하는 것 말고 뭐가 있겠어요.”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부서장이라는 사람도 ‘하고 싶은 것’과 되고 싶은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기를 소개하라고 하면 스펙만 늘어놓고 끝이다.

이른바 ‘스펙’이라는 것은 ‘나 본연’이 아니다 그것은 외양의 일부다. 지금까지 걸어온 경험과 노력을 보여주는 사회적 증명일 뿐이다. 질문을 바꿔 보았다.

“그러면 임 부장의 꿈은 뭔가요? 뭘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그는 송아지처럼 큰 눈을 껌벅이다가 대답했다.

“꿈이요? 이 나이에 새삼스럽게 무슨……”

그는 끝내 ‘하고 싶은 것’을 말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것’으로 착각한 채, 외형만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물론 외형적 출세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시되어야할 것은 마음속 이야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한 내가 무엇을 진심으로 원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나의 길을 갈 수 있다.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관찰한 결과, 세상에는 플러스형 인간과 마이너스형 인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판단 기준은 간단하다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플러스형이고, ‘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면 마이너스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이 ‘되고 싶은 것’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원한 마이너스도, 영원한 플러스도 없다. 인생은 어떤 흐름을 타느냐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지금 마이너스라도 과거에는 플러스였을 수 있고, 반대로 과거엔 마이너스였던 사람이 플러스형으로 변화했을 수도 있다.


피하고만 싶은 선배들을 분석해보면, 하나같이 ‘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이 출세하는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한탄할 필요는 없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진리는 나중에라도 어떻게든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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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니까.

마이너스형 인간은 ‘되고 싶은 것’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내가 만족하는 내 방식의 삶’이 아니라,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심리가 여기서 출발한다. 지위와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만 올라가면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으로부터 그런 기대를 무시당할 때마다 견딜 수 없이 외롭다. 자기를 모르며, 하고 싶은 것을 외면한 채, 남들 이목에만 맞춰 살다가, 삶의 기쁨과 보람에서 소외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분노가 폭사되어 나간다.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들이 자기만 따돌린다고 믿는다.

그래서 몇 배로 외롭다.

‘되고 싶은 것’은 대부분 ‘따라 하기’를 동반한다. 외형에 집착하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되고 싶은 것’을 위한 마지못한 준비의 결과가 ‘스펙’인 경우가 많다.

반면 ‘하고 싶은 것’은 대개 ‘내 방식’대로 진행되게 마련이다. 외형보다 내 마음을 따르는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즐거운 준비의 결과가 ‘지금 이 순간’인 경우가 많다.


■ 넘어지려는 쪽으로 균형잡기


자전거를 배운다.

넘어지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요령을 깨달을 수 있었다. 휘청하는 순간을 포착해 핸들을 트는 것이다.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왼쪽으로 향하고, 오른쪽으로 쏠리면 오른쪽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휘청휘청. 아슬아슬하게  여러 번 성공했다.

균형을 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페달을 밟아 계속 나가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균형과 전진은 붙어 있는 한 몸인 것이다.

‘왼쪽으로 넘어질 것 같으면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려는 순간에는 오른쪽을 향해 균형을 잡는다.’

자전거 균형의 핵심은 기우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다. 아이러니다.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얘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처음 배우는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정말 신기하지 않나. 위험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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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쪽을 선택해 오히려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혹시 인생의 균형도 자전거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갑자기 드는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외롭고 힘이 들 때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 말고, 아예 그쪽으로 더 들어가 보는 것이 어떨까. 자전거가 쏠리는 쪽으로 핸들을 틀어 균형을 바로잡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균형을 잡아가며 페달을 밟으면 앞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비틀비틀 페달을 밟으면서 외로움과 함께 달리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인지도 모른다. 외로움과 함께 달리면서 외로움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어쩐지 마음이 더욱 풍성해지는 하루를 살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슬며시 다가왔다.


■ 4분의 1의 법칙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다섯 번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완주를 통해 그동안 생각했던 ‘4분의 1의 법칙’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처음 4분의 1을 잘 버티면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는 것이 4분의 1의 법칙이다.

처음 마라톤을 접했을 때였다. 강도 높은 업무와 잦은 야근에 회식, 운동부족 등으로 저질이 된 체력은 소박한 운동 목표조차 달성하는 걸 용서하지 않았다. 평범한 아가씨들도 한 시간 정도는 끄떡없이 달리는데, 나는 15분의 벽을 돌파하는 것도 버거웠다.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시작 후 4분의 1 지점에 악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4분의 1 지점에 도착하면 호흡이 최대로 올라가고 근육이 위협 신호를 보내왔다. ‘이렇게 힘든 것을 왜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자연스레 ‘오늘 한 번만 여기서 중단할까’ 하는 타협으로 흘렀다.

그러나 4분의 1 지점은 그 다음 단계를 향한 일종의 ‘관문’같은 것이었다.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나면 어느새 적응이 되어 호흡과 리듬에 탄력이 붙는다. 5Km를 달릴 때나 10Km를 달릴 때도 양상은 비슷했다. 첫 4분의 1 지점을 잘 지나면, 반환점을 돌아 후반부로 이어질 때까지 괜찮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4분의 1 지점은 몸과 마음의 혼란스러운 조정기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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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치락뒤치락 하다가 포기의 유혹을 보내오고, 그런 유혹을 단호한 의지로 짓밟으면 비로소 돌파력이 생기고 관문이 열린다.


처음 4분의 1 지점처럼, 마지막 4분의 1 지점도 중요하다. 포기의 유혹은 덜한 대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세상이 있고 나는 그 세상을 달리고 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할 뿐이다. 비로소 외로움은 외로움 아닌 그 무엇이 된다. 온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고통 속에서 그저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는 것이 나란 존재임을 느낀다.

어떤 사람이 나한테 물었다.

“힘들게 달려서 얻은 게 대체 뭡니까?”

별것 없다. 스스로 대견하고, 힘들게 완주했을 때는 감격에 겨워 울고 싶어지는, 그 정도랄까. 거기다 혼자서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자신감을, 우리는 외로움의 길을 달리면서 얻게 된다.

나 혼자 달리고 있다는 즐거움, 그 자체가 이미 솔리튜드다. 그래서 마라톤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가슴 벅찬 도전이다. 하루하루가 지겹고 재미없다면,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 외롭다면, 내가 먼저 나를 알아주고 싶다면, 마라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마라톤을 위한 훈련만으로도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이 우리를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유연한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을 일이 많지 않다.


제2부 외로움과 마주하기


■ 고무줄 자와 강철 자


설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옳거나 그르거나. 둘 중 하나였다. 중간이란 있을 수 없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건, 기성세대의 자기 합리화밖에 없다고 믿었다. 옳지 않은 것과 타협을 일삼으면서도, 말로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우는 그들의 위선에 분노를 참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틈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지금 하는 일이 옳은 것인지조차 불분명해졌다. 부장 지시에 따라 취재를 했다지만, 박 교수의 엉터리 주장을 그럴듯한 기사로 만들어낸 건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의 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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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는 신문사에 입사할 때. 남다른 기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었다. 그러나 6년이 흐른 지금의 그녀는 평범한 것만도 못한 초라한 기자가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나도 엉터리였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니까 미친 듯이 좋아해서 빠져들었던 일이란 게 없었다. 무엇이든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또는 지는 것이 싫어서. 공부도 일도 그랬다.

좋은 게 무엇일까. 좋은 건 언제나 유예. 그러니까 뒤로 미뤄놓는 훈련을 받아왔다. 지금 좋다는 건. 어쩐지 불안한 것이니까.


어느 신문 논설위원의 칼럼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사랑하려 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 두 개의 자’를 가진 것이라고 한다. 첫 번째 자는 ‘강철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상대를 잰다 . 가차 없다. 두 번째 자는 ‘고무줄로 만든 자’다. 그것으로 자신을 잰다. 재량껏.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외로움에 쩔쩔매는 것은, 상대에게는 엄격하며 스스로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이중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의 잘못은 어떤 것이든 용서받을 만하며, 만일 용서받지 못한다면 사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상대의 허물은 용서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용서가 안 되니까 괴롭고, 배신감을 주체하지 못해 외롭다.

분노의 8할은 과거의 일 때문에 일어난다.  나머지 2할 역시 지금의 것만은 아니다. 현재의 무엇인가가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지나간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  걷는다. 솔리튜드      


교육 이틀째. 오늘 일정은 걷기 체험 밖에 없다. 올레길 15Km 가량을 걷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끝이 난다. 도균은 배낭에 물병을 꽂고 운동화 끈을 다시 묶었다.

교육 담당자가 시간을 확인하고 신호를 보냈다. 30분 간격으로 출발이다. 걷기 체험 규칙은 ‘혼자서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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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회사의 직급별 연수교육 주제가 생뚱맞게도 ‘솔리튜드와 창조적 인재’였다. 팀워크나 고객 마인드가 아닌, 이상한 연수가 준비되어 있다는 소문이 몇 달 전부터 파다했다. 그래도 회사가 이런 것을 정말로 할 줄을 몰랐다.

   

도균은 어제 입소식 때 들었던 교육 담당 임원의 말을 떠올렸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기술이나 마케팅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로 승부를 거는 ‘융합과 창조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경쟁력은 창조적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창조적 발상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번 교육 연수 주제인 ‘솔리튜드’에서 그 해답을 찾아봅시다.”

걸을 때는 대뇌피질의 인지 영역 회로가 긴장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두뇌가 이완되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상태, 즉 텅 빈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산보를 즐겼던 이유도 여기 있다고 한다. 번뜩이는 영감을 만나기 좋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도균은 굽이굽이 도는 계단을 내려가 바닷가를 까마득하게 점령한 바위 숲을 지났다. 그다음엔 다시 만나는 한적한 길. 길섶에 피어난 꽃들이 한가하게 손짓을 했다. 그 길을 따라 터덜터덜 걸었다.

왼발 발가락 사이가 몹시 아팠다. 길모퉁이에 주저앉아 확인해보니 물집이었다. 그는 평소에 걷지도 않는 주제에 걷는 것을 만만하게 여긴 데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도리가 없었다. 계속 걷는 것밖에는.     

찻길이다. 자동차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 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자동차가 지나간 도로 위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간 그는 쭈그려 앉아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뱉어냈다. 꽃이었다. 차도 위에 피는 꽃이라니. 경이로운 생명력 그는 문득 느꼈다. 걷지 않았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여유 있는 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는 그런 경이로움을 만날 수 없다.

잠시 앉아 꽃을 보면서, 도균은 왜 혼자 걸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깨달았다. 혼자가 되는 것은 ‘나’를 만나는 여행의 출발점인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을 떠올리는 것이다. 두서없이 말이다. 좋은 일, 슬픈 일, 기분 나빴던 일, 지금의 느낌, 오래전의 기억.   

혼자가 되면,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생각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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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담당 임원의 말대로 솔리튜드가 영감을 통해 낯선 세상으로 나를 이끄는 것이다.

솔리튜드의 느낌. 그것이 뭔지 알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등 뒤의 세상과 멀어지면서, 또한 앞에 보이는 세상과 조금씩 다가서면서 어제까지 그가 신주 단지처럼 여겼던 미움과 슬픔, 자기연민 같은 것들이 지금은 전혀 쓸데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것들은 한 줌씩 버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포근해졌다.

혼자의 의미를 알겠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남편 또는 아내, 어느, 회사의 과장 또는 대리가 아닌, 본연으로 돌아가 나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것에 오감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이 길을 왜 걷는가.’


도균은 생각에 잠겨 걷다가 경로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조금 돌아가면 된다. 그게 아니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보면 되고, 잠깐의 실수나 손해는 나를 찾아가는 길고 긴 평생의 여정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뒤로 돌아서 걷는다. 솔리튜드.


■  홈리스 가족 


우리 가족은 지금 자동차 안에 있다. 주말마다 그렇듯이 여행을 나오는 길이다. 아빠가 카스테레오를 켰다가 엄마를 힐끗 보고는 재빨리 껐다. 엄마는 조수석에서 아빠의 운전을 감시하는 중이다. 나는 강아지 코코를 안고 엄마 아빠의 신경전을 지켜본다. 나는 중학교 2학년, 여자이고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어렸을 때부터 주말은 으레 차 안에서 지내는 것으로 여겼다. 중학생이 된 뒤로는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몇 번 빠졌지만, 엄마 아빠기 심각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다.

우리 가족은 ‘홈리스(Homeless:집이 없는 사람 또는 그렇게 사는 사람)’다.

집은 있다. 아파트 16층이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엄마는 우리 집이 다른 층보다 가격이 훨씬 비싸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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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싸고 좋은 집에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시간은 거의 없다.

나는 집에서 잠만 ‘겨우’ 잔다. 그 이유는 모두들 짐작할 것이다. 학교에 갔다가 이것저것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절 직전이다.

아빠는 ‘귀가 공포증’ 같다. 신문 기사에 나온 증상과 많이 비슷하다. 아빠가 들고 다니는 소설책이 이틀에 한 번꼴로 바뀌는 것을 보면, 일이 끝나도 소설을 보며 시간을 때우다가 내 귀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게 틀림없다.


엄마는 불만이 많다. 아빠만 보면 속이 터진다고 한다. 내 성적이 좋지 않을 때도 그렇다. 엄마는 아빠랑 나 때문에 외롭다. 엄마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빠가 엄마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할 때마다 나도 외로워진다. 두 분이 서로를 비난할 때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버려진 듯한 느낌이다.

주말에는 모두 함께 여행을 가느라 집을 비운다. 오래된 전통이다. 여행을 다닐 때는 기분이 전환되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의 충돌 가능성이 많이 줄어든다. 내 생각에는 두 분이 암묵적인 타협을 본 결과가 주말여행이 아닌가 싶다. 엄마는 집에서 벗어나 다른 공기를 마시고 싶고, 아빠는 집에 있으면 엄마한테 바가지를 긁히니까 운전을 선택한 것 같다.

평일에는 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주말에는 집을 비우고 여행을 가니까. 우리 가족은 홈리스가 맞다.


엄마와 아빠도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싸우고 나면 서로 말도 할 수 없고 외로워지니까. 그래서 싸움을 피하기위해서 여러 가지 기발한 방법이 동원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완충 가족’이었다. ‘완충 가족’이란 아빠 또는 엄마 친구네 가족을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워 넣어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어울림으로써 ‘마찰과 충격’을 줄여보겠다는 좋은 뜻에서 고안된 방법이다. 사소한 시비의 불똥이 큰 싸움으로 번질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조심하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완충 가족’과도 멀어지고 말았다. 엄마와 아빠가 돌아와서 싸우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언젠가부터는 친구 가족이 보는 앞에서도 대 놓고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가족만 외롭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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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슬퍼진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 집 안에서 얼굴 맞대는 게 불편해서 자동차를 몰고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서라도 서로의 눈길을 피해야 한다면, 왜 사랑을 하고 가족이 되는 것일까.

함께 있어도 외로울 뿐이라면,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 외로움의 시스템


나는 매장에 손님이 뜸해진 틈을 타서 직원휴게실로 향했다. 피로가 먹구름처럼 몰려왔다. 왜 날이 갈수록 편해지는 게 아니라 지쳐만 가는 것일까. 다들 마찬가지일 것이다. 친구들이나, 그 남자 친구들 혹은 남편들이나, 매달려서 버둥거리는 게 힘겨워서일 것이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버티고 이겨야 승자가 되고 승자로 살아남아야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외로운 국민들인지도 모른다. 정교한 ‘외로움의 시스템’은 경쟁과 공포를 동력 삼아 돌아간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아니면 되는’, 자기밖에 모르는 영혼들이 벌이는 무한 서바이벌 게임. 서바이벌 게임이 외로움의 시스템을 악순환과 동시에 증폭시킨다.

경쟁과 불안이 돈 벌어 오는 아빠를 흔들어대면, 전업주부 엄마는 집 안에 버려져 외로움에 빠진다. 아이에게서 보람을 찾으며 아이를 위한 인생을 살려고 한다. 보람은 무한 경쟁 서바이벌 교육으로 이어진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2세는 불안하고 초조하며 ‘나’만 봐주기를 원하는 외로운 인간형이 된다. 스스로 선택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잘못된 것은 남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런 태도 때문에 소외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외로운 가족이 하나 늘어난다.

그 다음은 더욱 힘겨운 사이클의 시작.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일종의 마이너스 시기였다. ‘남들은 다’ 앞서 가는데 나만 뒤처진 듯한 느낌, 혼자만 바보가 된 것 같아 지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원망하고, 마침내 누군가에게 분풀이를 하고 났을 때 더욱 깊이 파고  드는 좌절감.

그러나 방황 후에 깨달았다. ‘남들은 다’라는 판단은 사실에 근거한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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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정말로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어서 자꾸 ‘남들은 다’로 말을 시작하는 거다. 일종의 우격다짐이다.

인정하기 싫어서 그랬다. 친구가 더 낫다는 것을, 그래서 ‘남들은 다’라는 말로 친구의 우월함을 덮어버리려고 했다. ‘남들이 다’ 그러니까 너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폄하하고 싶어서였다. 또한 친구에게 진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들’에게 졌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남들은 다’란 말에는 절망을 불러오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제외한 세상 모두를 하나로 묶고, 그 반대편에 나를 놓는 것이다 결국에는 나 하나만 소외시켜 세상의 외톨이로 만들어 버린다. 나를 패배자로 밀어붙여 열등 요인과 자학 방법을 찾게 만든다. 그래서 ‘남들은 다’를 한 번 말할 때마다 한 걸음씩 궁지로 몰리는 것이다.         

또한 그 말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질리게 만든다. ‘남들은 다’의 책임과 비난을 그에게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견디지 못한 그가 떠나고 나면 외로움 속에 홀로 남겨진다.

나는 한참 힘들던 시기에, 차라리 더 힘든 길을 선택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떠났고 그곳에서 한층 깊은 외로움에 빠져들었다. 그 후에야 깨달았다. 외로움 속으로 정말 깊숙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남들이 다’라고 할 만한 ‘남들’마저 없다는 것을.

외로움이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말은, 내가 겪어보니, 진실이었다.


■ 고상함을 맡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00대 인문학 전공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입니다.

오늘 아침 신문에 나온 선생님의 칼럼을 읽고 외로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힘들었습니다. 신문을 덮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나만 잘못 살고 있는 것 아닌가.’

그 후 지금까지 불안감과 소외감에 번민하다가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지적에 저도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의 책 안 읽는 풍토와 물질숭배. 성공지상주의 등이 인문학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 말입니다. 선생님은 특히 “성인 10명 중 4명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분석을 인용하며 개탄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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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다른 전문가 분들과 함께 작성하셨다는 추천 도서 목록을 보는 순간, 저의 안타까운 심정은 외로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런 어려운 책들을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더러 읽으라고요?

누구나 책을 읽다가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처럼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거듭되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독서 노력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까요. 이러지는 않을까요. ‘혹시나만 바보인 것은 아닐까.’ 전문가의 추천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수준에 맞춰주는 것도 전문가의 중요한 덕목중 하나이니까요.

어떤 사람은 남들만 봅니다. 자기도 크게 다르지 않은 처지이면서, 상대의 독서 수준이 현격히 높아 보이지 않으면 일단 무시하고 보는. 네, 속물 맞습니다. 속물들 때문에 책읽기가 더욱 두려워집니다.

저 역시 속물입니다. 책 한 권 사서 볼 때조차 자유롭지 못합니다. 남들한테 고상하게 보이고는 싶은데, 능력이 그런 바람을 따라주지 못해 번민과 후회, 자책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이 TV 인기 프로에 집착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셨는지요?

방송 시간을 놓치면 유료 결재를 해서라도 출근 시간에 휴대폰으로 보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지 그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일까요? 소외될까봐 두려워서라고 합니다. 남들이 그 프로그램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혼자만 참여하지 못할 경우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책도 그렇습니다.

     < 중   략 >

선생님 외로우시죠? 사람들이 인문학을 외면해서요. 사람들은 선생님보다 더 외롭습니다. 수준 높은 문화를 누려보고 싶지만 매번 소외당하는, 고상하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요.

선생님,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고상함을 맡아주세요. 다만, 그 고상함으로 평범함을 소외시키지는 말아주세요. 관점의 차이를 차별하지 말아주세요. 평범한 사람들은 소외당하거나 차별당한 자신을 느낄 때 극심한 외로움에 빠져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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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키워낸 고독 


그 당시에는 이 길이 꽤 넓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길 양쪽으로 분식집이 줄지어 있고, 그 사이를 조용히 오가던 또래 아이들.

아니다. 길은 그대로일 것이다. 내가 훌쩍 자랐기 때문에, 크고 대단한 것에만 익숙해졌기 때문에 좁아 보이는 것일 게다.

잠깐 멈춰 서서 분식집 안을 들여다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짓는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분식집 안에서 라면을 호호 불면서 밖을 구경하는 호기심 어린 눈망울들과 마주친다면 말이다.

‘웬 마라톤 아저씨일까?’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이 귀엽다.

완만한 오름세를 따라 뛰어오르자 도서관이 나타났다. 시간은 흘렀지만 변함없이 나를 반기는 느낌이다. ‘어서 와.’ 고색창연한 건물이 속삭인다.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는 그 앞에 섰다. ‘오랜만이다.’


우리 집은 책은 필요 없어도 눈치만은 꼭 필요했다. 술 취한 아버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당시 내가 터득한 ‘하루를 잘 보내는 요령’이었다. 여차하면 신발을 들고 냅다 뛰어나가야 했다. 아버지로부터 최대한 멀어질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풀코스 마라톤을 다섯 번 완주한 나의 달리기 실력은 이때부터 싹수를 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도 오늘 같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다지 남지 않은 세간이 깨지고 망가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가방은 왜 들고 나갔는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갈 곳이 없었다. 가진 돈으로 영화 한 편을 볼 순 있었지만 그러고 나면 점심과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무작정 걸었다. 목적지가 없는 것처럼, 내 인생에 미래도 없었다. 가방에 담긴 교과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전부 다 헛소리였다.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헛소리, 위선덩어리를 모아 불이라도 질러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무심코 고개를 들자. 거기에 도서관이 있었다. 도서관에서 하루를 지내기로 했다.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꺼내 들고 책장을 넘겼지만 무슨 소린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딴 생각을 하면서 앉아 있었다. 학교 수업보다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고 다른 책을 몇 권 골라 아무렇게나 눈이 가는 대로 읽었다. 그러다 시간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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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어 있었다. 도서관 문 닫는 시간까지 앉아 있다가 사서 아줌마가 만들어준 대출 카드로 두 권을 빌려 올 수 있었다.

그 뒤로 주말이면 밤늦게까지 도서관을 지켰다. 도서관은 나의 피난처이자 안식처였다.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곳, 같은 반 아이들의 경멸어린 눈초리도 도서관에서만큼은 잊을 수 있었다.


그날의 경험으로 내 삶이 바뀌었다. 차츰 공부도 하게 됐다. 차갑지만 개운한 새벽 공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도서관에 도착할 때마다, 집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감에 가슴이 설렜다. 잠시 쉴 때는 고즈넉한 도서관 뒤뜰을 걸었다. 혼자 먹는 컵라면의 맛은 질리지도 않았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내게는 눈물겨운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클라이맥스는 늦은 밤, 도서관을 나와 언덕길을 내려갈 때였다.

이상한 충동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골목길 끝으로 보이는 네온사인 찬란한 도시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것은 분명 가슴 터질 듯한 희열의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누군가와 한마디도 나누지 않고도 커다란 만족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기쁨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누구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빼앗을 수 없었다.


‘공부는 고독의 결정’ 이라고 할 만하다. 얼마 전에 읽은 ‘논어 위정편(爲政篇)’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

의미는 이렇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다.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배우는 것은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다. 서로 배우고 가르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은 오롯이 혼자만의 몫이다. 아무리 많이 배운들, 고독 속에서 심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부는 어쩔 수 없는 절대 고독이다.

나는 고독 속에서 1인 3역을 맡았다. 내 스스로에게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친구가 되어 힘을 주었다. 고독 속에서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 고독이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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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지키는 안전거리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 박사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는 45Cm 이내를 ‘친밀한 거리’로 규정했다. 부부나 연인간의 거리다. 45cm~1m는 ‘개인적 거리’로 친구 사이에 통용된다. 1.2m~3.6m는 ‘사회적 거리’ 즉 업무적 또는 형식적으로 대화를 나눌 정도의 거리다. 3.6m 이상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공적인 거리’다. 거리에 대한 이 같은 감각은 미국 기준일테니, 나라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서양인의 소감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한국인은 정에 치우친 나머지 ‘안전거리’를 잊고 서로를 파먹고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막역하게 지내다가 하루아침에  원수 사이로 돌변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호의를 갖고 참견했는데, 상대가 그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섭섭한 게 대다수 사람들의 심리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들고 결국에는 원한으로 치닫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지속적인 호의가 상대에게 ‘이상한 권리’ 주장의 빌미를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잘해줘놓고, 왜 더는 못해 주느냐’면서 단단하게 적반하장 권리를 들이미는 것이다.

사람의 불행 가운데 절반은 스스로와 잘 지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나머지 절반은, 남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평화는 예의로 유지된다. 예의는 원래 서로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발전되었다. 예의의 기본인 인사만 봐도 알 수 있다. 허리 굽혀 절을 하거나, 무릎 꿇고 엎드리거나, 악수를 하거나, 모든 인사에는 일관된 뜻이 담겨 있다. ‘안전거리’를 둠으로써 상대에게 ‘공격할 뜻이 없다’는 의사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집착은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그것이 도를 넘으면 상대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구속하려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결국에는 사랑과 관심이라는 허울로 가학과 피학을 거듭하며 서로를 외로움의 이빨로 물어뜯게 된다. 궁금한 마음, 걱정하는 마음의 이면 어딘가에는 통제하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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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하려는 심리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자기 의지의 관철을 위한 점검과 확인인 셈이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인생 선배들이 누누이 강조하는 것이다. 예의는 서로를 지키기 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선 긋기’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으로 상대와 경계선을 긋는다. 남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으며, 다른 이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는다.

사람 사이에는 ‘솔리튜드’라는 틈이 있어야 개성과 창의를 발휘해 함께 발전할 수 있다. 각자가 홀로 서야 관계도 조화로운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솔리튜드를 한자어로 표현하면 단 한 글자로 나타낼 수 있다. 주로 ‘한가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한(閑)이다

이 글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관심이 없다’는 뜻은 물론 ‘막다’와 ‘보호하다’, ‘품위 있다’, ‘조용하다’ 등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쓰인다.

실제 閑 이라는 글자의 모양은 ‘가시 있는 나무로 담을 두른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남들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도록, 가시 울타리 안에 들어 앉아 느긋하게 시간과 여유를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은 삶의 중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공간을 침범 당하지 않는 것,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의 솔리튜드를 지켜내기 위해 안전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 자유를 위한 안전거리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에 메일 드렸던 박사과정 학생입니다. 선생님의 친절한 답신 잘 받아 보았습니다.

전에는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고 걱정까지 해 주셨네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제게 피해의식 같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닌지 질문 하셨는데요. 맞습니다. 선생님께 받은 메일을 계기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 스스로에 대해서요. 처음에는 선생님의 ‘피해의식’ 언급에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당부대로 천천히 여유를 갖고 며칠 동안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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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가까이 있더군요. 잘난 척을 했지만 저 역시 어리석은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빙 둘러서 전혀 다른 곳에 가서 찾으려 하고, 찾아낸 것마저 덮어버리려고 했으니까요. 인정하기가 정말 힘들더군요.


선생님의 설명 중에서 ‘인정해제’라는 부분을 체험했습니다. 마음속 고통을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이미 치유가 시작된다는 말씀 말입니다. 외로움은 대개 ‘자기억압’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으니까요.

코미디언 이팔분 씨를 아시는지요? 예명입니다. ‘바보’연기를 주로 하셨던 분 말입니다. 제 아버지입니다. 은퇴하신지도 꽤 되었고 지금은 많이 편찮으십니다.

아버지는 남이 놀리는데도 항상 싱글벙글이셨습니다. 오히려 더한 바보짓을 해서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게 창피해서 견딜 수 없었거든요. 아버지가 더욱 혐오스러웠던 것은 이중성 때문이었습니다. 밖에서 ‘바보짓’을 하면서도 집 안에선 ‘폭군’이셨거든요. 아버지가 계실 때는 찍 소리도 낼 수 없었습니다. 잘못했다간 몽둥이가 부러질 때까지 두들겨 맞았으니까요.


아버지와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을 , 선생님의 메일을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대중적인 것을 경멸하며 고상을 떨기라도 하면, 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적개심이 저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뻗어나가는 모양입니다.

저는 효자가 아니라서 아버지 입장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코미디언이니까. 특히 바보 연기를 하셨으니까 그렇다고 해두죠.

저는 뭘까요? 그런 아버지를 선택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바보 이팔분의 아들이니까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연예인이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을 받는다고요? 그건 TV라는 마법의 사각틀 안에서만 그렇게 보일 뿐이죠. 최고의 스타. 수억대 광고를 찍는 모델에 국한된 얘기입니다. 대다수 연예인, 특히 아버지처럼 한물간 연예인은 인격적인 대우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지금은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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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구분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날 처음으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를 이해하진 못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가르침을 계기로 커다란 소득이 있었습니다. 제 성격이 많이 비뚫어진 것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아버지 탓이 아니라는 것도요.

문제는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기는 저의 마음이었습니다. 솔리튜드 시간을 통해 저 스스로와도 안전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과 안전거리를 설정해야 지난날의 아픈 상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특히 저처럼 툭하면 폭발하는 성격이라면, 더욱 더 그런 안전거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 소울로드(Soul Road) :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가는 3단계


지금 내 상태가 솔리튜드인지, 아니면 론리니스인지 테스트해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휴일에 혼자 지내보는 것이다. 늦잠 또는 낮잠을 자지 않고 TV나 컴퓨터 없이, 누군가와 연락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휴대폰을 꺼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렇게 외부와의 접촉이나 미디어 없이 혼자서 꼬박 하루를 지내보는 것이다. 심심해서 좀이 쑤시지 않고 누군가가 어떤지 궁금하지 않고 지낼 만하다면 솔리튜드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TV나 휴대폰, 컴퓨터 없이 혼자서 뭘 하란 말이야?” 하는 걱정이 든다면 그것이 곧 외로움의 신호다.

많은 사람에게 혼자만의 시간은 끔찍한 정신적 고통이다 마음만 먹으면 버튼 몇 개로 누군가와 연결되는 세상에서, 일체의 연결 없이 혼자 지내야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립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 고립이 두려워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에 내몰린다.

하지만 외로움은 관계를 통해 더욱 깊어질 때가 많다. 원하는 만큼 이해받지 못하며 거절과 거부를 당한 경험이 쌓여 좌절로 이어진다. 사람들 사이에 쉼표가 없어 더욱 외롭다. 너무 붙어 있어 재보고 의심하고 경쟁하느라 외롭다. 남들만 보고 사느라 자신을 보지 못하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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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 그렇게 자아가 방치되는 것이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그러나 내면을 만나는 훈련을 통해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서서히 진화할 수 있다. 마음의 길. 이른바 ‘소울 로드(Soul Road)’다     


소울 로드 과정은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는 부정이다. 거절 또는 거부를 당하거나 소외되어 좌절한다. 현실을 부정하며 분노와 원망에 빠진다.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과 함께, 누군가가 깜짝 나타나 구원해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

두 번째 단계는 ‘수용’이다. 아픔을 주었던 사람들을 회피하고 은둔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극심한 소외감과 무기력에 빠진다. 론리니스 안에 머물며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인다. 자기부정에 빠지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가 바로 ‘솔리튜드’다.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되고, 혼지 있을 수도 있는 능력을 자각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며 괴로움과 외로움이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아픔을 통해 성숙한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먼저 행복해야 그 행복을 남과 나눌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주관적 관점과 객관성을 통합해 보다 큰 자신으로 도약한다.


론리니스에서 솔리튜드로 넘어가는 과정은 ‘나만의 성’을 쌓는 것과 유사하다. 굳건하게 ‘나만의 성’을 쌓는 사람만이 ‘존재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끊임없이 재발견함으로써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며, 관계의 삼각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지켜 자신만의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므로 외로움의 문이 열리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 속에 기꺼이 들어가 나만의 성을 쌓으면, 그 성의 이름이 솔리튜드인 것이다.


                         2012. 1. 11. 아침            

                 - 다음에 3부, 4부가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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