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노는 만큼 성공한다

보해성산 2012. 8. 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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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김정운

0 1962년 생. 고려대 심리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문화심리학 박사. 동 대학 전임강사. 명지대 교수.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

0 조선, 중앙, 한겨레 고정 칼럼

0 KBS 1-TV 명작 스캔들. tvN 시사탱크 쇼. KBS2-TV 수상한 두 남자의 쇼 등 MC

0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환다. 일본 열광. 남자의 물건 등

■ 여는 이야기

하나 - 논두렁에 앉아 낫 갈기

가을의 한 농촌 마을, 두 농부가 논에서 열심히 벼를 베고 있다. 한 사람은 허리를 펴는 법 없이 계속 벼를 벴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중간 마다 논두렁에 앉아 쉬었다.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저녁이 되어 두 사람이 벤 벼의 양을 비교해 보았다. 틈틈이 논두렁에 앉아 쉬었던 농부의 수확량이 훨씬 더 많았다. 쉬지 않고 이를 악물고 일한 농부가 따지듯 물었다.

“난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틈틈이 쉰 농부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난 쉬면서 낫을 갈았거든.”

우리 모두 한 번 되돌아볼 일이다. 무딘 낫을 들고 온종일 땀 흘려 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삼고 있지는 않은지?

둘 - 자동차는 찌그러져야 안전하다,

자동차에는 앞뒤로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 사고가 났을 때 충격을 완화시켜줄 완충작용이 일어날 공간이 있어야 하거든요. 강하다고 안전한 차가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차는 찌그러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이 안전합니다.

항상 고무줄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돌아가는 우리 삶의 완충지대는 어디에 있을까? 도대체 충격을 완화할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으니 모두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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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한 일에 신경이 곤두선다. 안에서 솟아나는 적개심을 어찌할 줄 몰라 눈이 벌겋게 되는 것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은 아주 작은 충격에도 너무 쉽게 끊어진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40여 명씩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셋 - 유대인은 유전자가 다르다?

지금 인류의 위대한 학자 몇 사람을 머리에 떠올리고 생각나는 사람들이 어느 민족인지 확인해 보라 두 사람 중 하나는 유대인일 것이다. 유대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심지어는 우대인은 선천적으로 우리와 다른 유전자를 타고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유전자가 다른 것이 아니다. 그들의 교육방식과 문화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들의 노동 철학은 다른 민족과 확실하게 구별된다. 그들의 노동철학은 ‘열심히 일해라’가 아니다. ‘우선 잘 쉬어라’다.

-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다.

- 안식년 : 1년 일하면 1년은 정확히 쉰다. 땅의 경작도 쉰다. 자연도 쉬어 야 한다는 생각이다.

- 희년 : 안식년을 7번째 보낸 다음 해 경작을 쉬고, 죄인을 용서하고, 빚을 탕감해 주고, 가족에게 돌아가 휴식

유대민족은 이렇게 수천 년 전부터 노동의 핵심을 쉬는 것에 두었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 따라갈 수 없는 창의적인 민족이 될 수 있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쉼의 철학이 빠진 노동의 철학은 사람이 일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만드는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일해서 얻은 것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쉬면서 얻은 것으로 일할 수 있다. 쉼이 없는 노동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 프롤로그 - 일에 빠져 있을 때 머리는 가장 무능해진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를?”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혀끝까지 와서 맴도는 대답이 있다.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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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다 가르쳐 놓고 왜 쉬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15년 동안 오로지 골프에 둘러싸여 화려한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박세리가 최근 부진에 빠져 아버지에게 한 항의의 말이다.

“골프에 지쳤다. 이제 골프에서 잠시 빠져나오고 싶다. 나는 골프 말고 다른 일상생활을 즐기는 게 필요하다.”

최고의 인물들에게는 나름의 노는 법이 있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와 잭 니클라우스는 낚시광이고, 필 미켈슨은 시간이 나면 개인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으로 변신한다. 카레이싱 F1 챔피언인 미하엘 슈마허는 축구 달인이다. 여자 테니스 세계 1위였던 마르티나 힝기스는 대회에 출전할 때 가장 먼저 주변의 승마 클럽을 물색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말한다.

“사람은 일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모든 사람은 자기 능력에 맞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빛난다. 그러나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와 같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심리학적으로 창의성과 재미는 동의어다. 사는 게 전혀 재미없는 사람이 창의적일 수 없는 일이다. 성실하기만 한 사람은 21세기에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 세상에 갑갑한 사람이 근면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물론 21세기에도 근면 성실은 필수불가결한 덕목이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재미를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길거리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을 한 번 살펴보라. 행복한 사람이 얼마나 되나. 모두들 죽지 못해 산다는 표정이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청소년들의 사는 표정은 더 심각하다.

우리는 잘먹고 잘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못마땅하면 이렇게 욕한다.

“에이 잘 먹고 잘살아라.”

우리는 모두 재미있게 놀려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우리는 못마땅한 그들에게 또 이렇게 욕한다.

“놀고 있네!”

잘못된 사회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잘먹고 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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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잘 노는 사람은 없게 되어 있다. 행복하고 재미있으면 욕먹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어도 웃는 표정, 행복한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TV 뉴스에 나오는 수많은 정치가, 한국의 대표적 CEO의 표정에서 도대체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제1부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제1장 한국, 놀 줄 몰라 망할지도 모른다.

◈ 너무 많이 논다고?

언제나 그렇듯이 안에 있는 사람은 변화를 못 느낀다. 반면 밖에 있는 사람에게 변화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분명하다. 내가 독일에서 느낀 한국의 변화가 그렇다.

내가 유학을 갔던 1987년에 독일에서 볼 수 있는 한국산 물건이라고는 겨우 스웨터나 손톱깎이 정도였다. 그것도 독일에서 가장 싸구려 잡화점인 빌카 같은 곳에서만 찾아볼 수 있었다. 삼성 TV를 샀으나 이 또한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가졌다. 하지만 상황은 불과 10년 만에 크게 달라졌다. 내가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던 2000년에 독일의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컴퓨터 모니터는 한국의 삼성 모니터였다. 그때까지 가장 비싼 모니터였던 소니를 제치고 삼성 모니터가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어우토반 위에서 독일 자동차 사이를 현대차가 달리고 있었다.

■행복하면 죄진 것 같았고, 즐거우면 불안했다.

지긋지긋한 굶주림에 대한 한이었다. 못 먹어서 누렇게 뜬 얼굴로 죽어가는 자식들을 이젠 제발 그만 보고 싶다는 절망에서 비롯되는 처절한 분노였다. 좌절과 고통의 밑바닥에서 우리 부모님들은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그 단순한 구호에 가슴이 저려오는 흥분으로 새벽마다 뛰어나갔다. 인간의 권리, 자유, 행복과 같은 것들은 어찌되었던 상관없었다.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는데 그깟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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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면 안 되었다. 즐거우면 뭔가 불안했고 죄의식 가까운 느낌마저 들었다. 자유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치였고 도덕적 범죄였다. 참고 인내해야 했다. 모든 관공서의 한쪽 벽에는 ‘근면’ ‘성실’의 구호가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그래야만 했다. 어찌 남들과 똑 같이 해서 그 엄청난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그러면서 우리 국민들은 1960 - 1980년대를 거쳐왔다.

■ 불안한 예감은 꼭 들어맞는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이젠 먹고살 만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조금 즐거워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포도주를 살금살금 들이켜면서도 골프채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도 왠지 불안했다. 이래도 되나 싶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즐기는 것은 우리의 운명이 아닌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그렇듯 꼭 들어맞았다. IMF 외환위기가 덜컥 터진 것이다. 한국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는 외국 언론의 비아냥거림에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행복하면 안 돼. 먹고살 만해도 그저 배불리 먹고 등 따습게 누울 수 있으면 될 뿐 그 이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면 안 돼.”

우리는 집 안에 감춰두었던 금붙이들을 내다 팔고 돌아서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샴페인만은 다시 터뜨리지 않으리라!

■ 잘못 하다간 IMF 위기가 또 온다고?

“잘못하다가 IMF 위기가 또 오는 것 아냐?”

한 번 호되게 놀란 가슴은 웬만해서는 가라앉지 않는다. IMF 위기의 정신적 충격은 병뚜껑 여는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가라앉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히 놀라는 수준을 넘어 ‘놀면 불안해 지는 병’에 집단적으로 걸려버렸다.

이를 ‘부적응적 불안’이라 한다. 부적응적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위험한 상황이나 불필요한 요인을 과민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반면 안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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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상황이나 신호에는 둔감하게 반응한다.

쉽게 말해 불안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불안하게 만드는 신호를 찾아내 불안해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약간의 경기 침체 신호만 보여도 불안해하는 것은 바로 IMF 위기를 지나며 얻은 집단적인 부적응적 불안 때문이다.

불안한 사람들의 또 다른 특징은 흑백논리의 사고에 익숙하다는 점이다. 안전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에 완벽하게 안전한 상황이 어디에 있겠는가? 어느 상황이든지 약간의 불안한 요인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안한 요인들만을 끄집어내 확대 해석하며 두려워한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항상 위험한 상황만이 계속될 뿐이다. 행복하면 안 될 것 같고 즐거울 때도 왠지 불안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 부적응적 불안의 원인

당시 IMF의 원인은 금융기관의 부실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보, 삼미, 진로로부터 시작된 수많은 대기업들의 부도 사태로 인한 금융기관의 부실 채권문제가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기업들의 부도 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을 과도하게 떠안게 되면서 국가의 대외신인도가 하락하고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버렸다. 경제적 발전에 상응하는 기업구조 개선과 선진 금융시스템의 구축을 게을리했던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게다가 외국의 투기 자본까지 함께 가담하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샴페인 뚜껑을 일찍 열었기 때문에 IMF 위기가 닥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착하디착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치와 게으름으로 인해 경제위기가 닥친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금붙이를 다 내다팔며 반성했다. 그리고는 덜컥 놀면 불안해지는 만성적인 부적응적 불안에 걸려버린 것이다.

■ 제대로 놀지 못하면 제2의 IMF가 온다.

우리는 10년 가까이 국민소득 1만 달러의 덫에 걸려 헤매고 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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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올라서는 데 싱가포르는 5년, 일본은 6년, 영국은 9년, 미국은 10년이 각각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2만 달러시대가 오지 않는 이유를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다. 노사문제, 장기적 경제정책의 부재, 산업구조의 변화 등, 그러나 여가학자인 내 눈에는 생산적 여가문화의 부재가 ‘1만 달러의 덫’에 걸리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제대로 놀지 못하기 때문에 즉 놀면 불안해지는 병 때문에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21세기 사회문화적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창의적 마인드 부족이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다. 창의적 마인드는 생산적 여가 문화와 직접적인 연관관계에 있다.

■ 노동시간 단축은 혁명이다.

현재 한국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노사문제는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한 결과이다. 우리는 서구 사회가 200년에 걸쳐 이뤄낸 근대적 경제성장 과정을 단 50년 만에 해치웠다. 이 맥락에서는 ‘해치웠다’는 표현이 아주 적당하다. 세계가 놀라는 이 변화의 이면에는 극단적 노사갈등과 같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부작용 없이 좋은 것만 얻을 수 있는 비방은 없다.

노동 시간의 단축에서도 우리나라는 아주 놀라운 변화를 이뤄냈다. 우리는 서구사회가 근 200년에 걸쳐 이뤄낸 주 40시간 근무제를 단 50년 만에 ‘해치운’것이다. 한 사회의 근대화 정도를 나타내는 다양한 척도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척도는 노동시간이다. 서구에 노동조합이 결성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임금협상과 노동시간 단축이었다.

■ 여가시간의 증가 또한 혁명이다.

서구 사회가 200년에 걸쳐 이룬 근대화를 우리가 50년 만에 해치웠다면, 역으로 우리는 서구 사회가 200여 년에 걸친 여가 문화의 형성을 50년 만에 이뤄냈어야 한다. 하지만 여가 문화는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폭탄주와 고스톱으로 대변되는 우리의 여가문화는 바로 이러한 급속한 사회변화의 부작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변화하지 못하면 위기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한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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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 시스템이 IMF 위기를 불렀듯이 노동시간 단축에 상응하는 생산적 여가문화가 형성되지 못하면 한국사회의 총체적 위기는 또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다. ‘놀면 불안해지는 병’과 ‘노동 시간의 급격한 단축에 따른 생산적 여가문화의 부재’라는 이중적 구조를 넘어서지 못하는 한 우리는 ‘1만 달러의 덫’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 주 5일 시대, 노는 시간을 경영하라.

일본이 주 40시간 근무제를 실시한 방식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1985년부터 주 40시간 근무제를 단계적으로 실시해 지난 2001년 학교 교사들의 주 40시간 근무제 도입을 끝으로 전 사회적인 주 40시간 근무제가 완성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에서는 주 40시간 근무제라고 하지 않고 ‘주휴2일제(週休二日制)’ 라고 부른다. 노동 시간의 감소보다는 휴일의 증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노동시간의 감소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일본의 주 40시간 근무제는 기업에서 주도한 측면이 강하다. 1970-1980년대 국제사회로부터 일밖에 모르는 ‘경제동물’로 비난을 받게 되자 일본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을 자발적으로 추진한다. 우선 1973년에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주 40시간 근무제를 자발적으로 도입하고 많은 기업들이 뒤따르게 된다.

대부분의 서구 각국은 노동자가 주도해서 주 40시간 근무제가 시행되었다. 우리의 경우는 정부 주도로 이 제도가 시행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97 긴대중 대통력 공약. 노사정위원회 설치. ’04 7월부터 단계적 실시)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주 40시간 근무제의 도입이 가져올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다. 그저 노는 날이 하루 늘어났으니 좋다는 생각뿐. 그에 따른 변화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하다.

■ 대책 없이 늘어난 여가시간은 재앙이다.

주 40시간 근무제는 한 개인의 차원에서 보자면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노동시간 보다 많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주일의 168 시간 중에서 노동시간 40시간, 수면시간 56시간(하루 평균 8시간)을 빼고 나면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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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남는다. 자기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노동시간 보다 2시간이나 많아졌다. 그러나 여가 시간이 늘어날수록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국가의 노동조합에서는 30시간까지 단축할 것을 요구했다가 요즘은 슬금슬금 다시 노동시간을 늘려 대부분 주 35시간, 40시간 정도로 합의하고 있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 깨진 삶이 두려운 까닭이다. 그들 나라의 노동부 주요정책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평소에 놀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놀 줄 안다. 논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노래방에서 넥타이를 머리에 묶고 오버하거나 폭탄주 제조법이나 배운 이들의 주말이 생산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러브호텔에서 심도 깊은 학술토론회가 열릴 것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도대체 주당 근무 시간이 40시간으로 줄어들면 무슨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까? 조목조목 살펴보자.

■ 하루 더 놀면 이혼이 늘어난다.

평소에 잘 지낸 부부들에게 늘어난 여가 시간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수많은 문제들을 회피하고 지내온 부부들에게 늘어난 여가시간은 갈등이 수면위로 불거지게 만드는 계기가 될 뿐이다. 특히 한국의 중년부부들이 그렇다.

한 예로 독일 블르스 부르크시의 주민 대부분은 폴크스바겐 회사의 노동자였는데 1994년 이혼율이 70% 늘어났다. 원인은 노사합의에 의해 주 4일 탄력근무제를 실시한 것이었다.

■ 하루 더 놀면 결혼도 안 한다.

독일의 경우 25세부터 49세 사이의 독신 가구가 주 40시간 근무제가 본격 실시하기 전인 1970년대에 비해 현재 100%이상 증가되었다. 그 결과 현재 독일 대도시의 독신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36%에 이를 정도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3명 중 1명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가족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마음껏 즐기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보편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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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기를 낳을 생각도 없다.

노는 날이 늘어나면 애도 낳지 않는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결혼과 가족형성을 기피하고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이 이상화되면서 아이의 존재는 자신의 삶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인식된다. 상당한 수준의 출산 장려금을 지원할 정도로 출산율이 낮아 고민인 프랑스의 경우 2001년도 출산율이 1.89명이고 영국의 경우 좀 더 심해 1.64명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2003년 출산율이 1.19명으로 우리역사상 최저일뿐만 아니라 세계최저 수준이다.

인구가 지금 수준으로 유지되기 위한 출산율은 2.1명이라고 한다.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된다면 국가가 유지되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주 40시간 근무제의 실시는 마른 장작에 불을 지피는 격이 된다.

나는 독일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나자 베를린 시 크로이츠베르그 지역 적십자사의 사회복지 관련 직원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들어오자마자 카펫을 바꾸라고 한다. 아이 건강에 안 좋다는 것이다. 돈 없다고 하니 나라에서 사주겠다고 한다. 냉장고도 웬만하면 바꾸란다. 이번에도 돈이 없다고 하니 또 나라에서 사줄 수 있다고 한다.

외국의 유학생임에도 불구하고 3년 동안 애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대주었다. 독일의 젊은 부부가 아이를 셋 낳으면 이 부부는 아이가 다 클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고 먹을 수 있다. 아이 양육비로 휴가도 즐기며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에서 볼 때 이런 젊은 부부는 너무 고마운 존재이다. 둘이서 셋을 낳다니!

독일이 경제적 급성장을 하던 1970년대 이후 노동력 부족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불러들였다. 그 결과 지금 독일의 초등학생 20-30%는 외국인이다. 여기서 인종갈등, 종교갈등, 문화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우리도 15-20년 후면 훨씬 심각하게 나타날 현상이다.

■ 애를 안 낳으니 노인들만 남는다.

애가 없는 나라에는 노인들만 남는다. 고령화 사회가 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사회 진입속도 또한 세계 1등이다. 출산율 저하의 반대급부로 얻어지는 현상이다. 한 번 1등하면 여러 곳에서 1등하게 된다. ‘노인부양비’라는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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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적 개념이 있다. 노인 1명을 부양하기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생산가능 인구수를 뜻한다.

- 80년대 : 16명이 노인 1명 부양. 지금은 8명이 노인 1명 부양.

20년 후에는 젊은이 2명이 노인 1명 부양

노인들이 많으니 정치인들은 노인들 위주의 정책을 약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라에는 돈이 없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 나라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해주는 것 없이 돈만 뜯어가는 나라에 어찌 살고픈 마음이 생길까. 어쩌란 말인가. 지금도 국민연금 때문에 말들이 많은데.

■ 쉬는 날 쉬지 않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한다.

잘 쉬라고 휴일을 늘려주면 오히려 더 많이 일 하려고 달려든다. 즉 ‘노동의 브라질화’다.

* 노동의 브라질화는 노동의 유목민화 현상이라고도 하는데 돈을 더 많이 벌려고 주말, 야간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전전하며 돈을 버는 현상

■ 방황하는 청소년이 늘어난다.

투잡스, 쓰리잡스 족 부모들이 주말과 밤에 집을 비우게 되면 청소년 문제가 다양하게 늘어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부모들을 대신 할 사회복지기관과 여가시설에 대한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소년들 스스로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야 할 다양한 시행착오가 초래할 사회비용에 대해서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궁극적으로 교사들의 주 40시간 근무제는 학교의 주 5일 수업제로 이어진다. 학교와 가정에서 놓여난 저소득층 자녀들이 당면하게 될 문제들에 관한 별도의 대책을 무엇보다 시급히 세워야 한다.

■ 노동소외보다 여가소외 현상이 더 문제다.

20세기의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소외 현상이 문제였다면 앞으로는 여가소외 현상이 문제가 된다. 주말은 물론 야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박탈감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된다. 계층 간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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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부 계층을 중심으로 해외여행 등의 과소비가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말 야간 가릴 것 없이 일하는 투잡스, 쓰리잡스 족들이 늘어나는 사회양극화 현상과 그로 인한 사회문화적 갈등은 치유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 남는 것은 상업주의적 쾌락뿐

결국 진정한 삶의 질 제고와는 거리가 먼 자극적인 여가의 상업화가 진행된다. 여가의 복지적 접근이 전혀 인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여가시간이 증대하면 국민 대다수가 즐길 수 있는 여가 문화가 형성되기보다는 감각적이고 보다 자극적인 여가 문화가 주류가 된다. 이러한 여가문화의 상업화는 여가 중독, 사행성 산업의 증대로 인해 상당한 부작용을 낳게 된다.

■ 긴 서론에 짧은 결론

긴 이야기를 짧게 정리해보았다. 내 주장은 아주 간단하다. 노동 시간의 감소를 위한 투쟁이라는 300년 산업 사회 역사에 종지부를 찍는 주 40시간 근무제라는 이 엄청난 문화 혁명적 사건을 우리는 너무 간단히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차라리 무대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 국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이렇다. 노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할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놀아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놀라고 시간을 주는 것은 고문에 가깝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평생 감옥에만 있던 노인이 어느 날 갑자기 특별사면으로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평생 갇혀 살던 이 노인에게 자유는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결국 노인이 택한 것은 목을 메 다는 일이었다.

여가정책, 여가문화는 국가의 경쟁력이다. 특히 문화적 창조성이 강조되는 21세기에는 더욱 그렇다. 잘 노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놀이’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정책적 담론이 존재하는 사회가 잘 노는 사회다. 노는 시간이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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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난다고 생산성 타령만 하는 사회는 못 노는 사회다. 노는 것은 각자 알아서 하라는 정부 또한 무능한 정부다. 못난 국회의원들 제발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를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잘먹고 잘살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제2장 일의 반대말은 여가가 아니라 나태

◈ 인센티브 위에 자존심 있다.

사람들은 일의 반대말을 여가나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가는 일의 반대말이 아니다. 일의 반대말은 나태다.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유는 지금까지 일은 남이 시켜서 하는 행위로만 여겨왔기 때문이다. 일이란 내가 자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 그저 남의 돈을 따먹는 행위였을 뿐이다. 일의 주인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더럽고 아니꼽지만 참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 일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나 놀이가 아니라 나태가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주인은 놀듯이 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의 주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의 반대말은 여가다. 일은 재미 없고 여가나 놀이는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놀기 위해 일한다. 그리고 외친다.

“Working for the weekend! 주말을 위해 일하라!”

“Thanks God, it's Friday!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금요일입니다!”

■ 돌고래가 받아먹는 썩은 생선을 탐할 건가.

직원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한다. 경영자의 눈에는 직원들이 모두 어떻게 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가져갈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하는 염치없는 인간들로 보인다. 따라서 경영이란 직원들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다. 직원들은 안다. 인센티브란 돌고래가 재주넘고 받아먹는 썩은 생선이라는 것을. 그래서 경영자들은 항상 걱정이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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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센티브 위에 자존심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에 한해서만 책임진다. 내가 선택했다는 느낌이 있을 때 그 일의 주인이 된다는 이야기다. 통제의 주인은 경영자가 아니라 나 스스로라고 생각할 때 회사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하게 된다. 통제나 선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한다. 아이스크림과 같은 인센티브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존심이 망가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

■ 보상이 사라지는 순간 일하기를 멈춘다.

다양한 보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보상이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그 일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아이만 그런 것이 아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월급과 오직 인센티브만으로 직원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가 있다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보상에 대한 기대는 갈수록 커질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가 지나면 웬만한 보상에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다. 이런 직원들에게 괘씸하다고 분통을 터트리는 경영자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직원들은 자존심을 버린 대신에 보상을 선택했기에 보상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는 순간, 바로 자신의 자존심을 되찾으려 시도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되찾은 자존심을 이전에 비해 더 강하게 지키려고 애쓴다.

■보상으로 유혹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20세기적 기업경영의 핵심은 다양한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의 노동 의욕을 극대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능력 있는 직원들은 더 높은 보상을 찾아 다른 직장으로 떠난다. 결국 뛰어난 인재들을 붙잡으려면 갈수록 높은 보상을 약속해야만 한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다.

- 개인주의 형 인간 : 조직에 대한 충성심 없음. 개인의 행복 극대화. 일 자 체의 재미를 찾아 그리고 직장의 삶이 주말의 삶을 방해한다면 언제든지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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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주의 형 인간 : 훌륭한 아빠, 착한 남편이 되는 일이 우선

■ 집안일을 회사로 가져오는 것은 왜 안 되나?

헝그리 정신을 강조하며 해병대 입소를 추진하거나 연수원을 군대식 훈련소로 바꿔본다. 경제가 어려운 요즈음이야 모두들 숨죽이고 가만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곧 바뀐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갈수록 급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영자는 주말에 회사일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21세기형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직원들은 반대로 물어본다.

“왜 당신은 내 주말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하면서 내가 월요일 회사에서 영화표를 예매하거나 주식투자하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가?

“왜 회사 일을 가득 안고 집에 가는 것을 흐뭇하게 생각하면서도 주중에 아이들을 회사에 데려와 노는 것을 상상도 못하는가?”

■ 일과 삶의 균형 프로그램

더 이상 금전적 인센티브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서구의 앞서가는 기업들이 채택한 새로운 제도가 있다. “Work Life Balance Program. WLB 프로그램”이다. 직원들의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과 조화를 배려하려는 새로운 인재관리 전략이다. 우선 WLB 프로그램은 개인의 일과 가족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갖가지 문제를 유연근무제, 육아 휴가, 변동 휴가제 등을 통해 해결하려 시도한다. 또한 개인의 경력 관리와 회사의 업무가 일치하도록 배려하는 갖가지 제도를 실시한다. 개인의 관심과 회사의 업무가 제대로 일치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 있는 인재일수록 미련 없이 떠난다.

이 프로그램은 가족주의 형 인간들을 위한 갖가지 복리후생정책 또한 치밀하게 계획한다. 직원들이 개인의 여가와 가족과의 삶에서 즐거움을 상실하지 않도록 배려한다. 그렇게 배려받는 느낌을 받아야 직원들은 회사일을 자기 일처럼 배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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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에 빠진 리더의 철학 - 오버씽킹

■ 일중독자는 일하는 시간이 짧다.

직장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일중독자일수록 수많은 걱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일 중독자와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 일 중독자는 자신이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일 잘하는 사람은 일주일에 40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일중독자가 일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일중독자가 일하는 방식을 잘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일주일에 70시간을 일한다고 생각하는 일중독자가 실제 일하는 시간은 30시간에 지나지 않으며 나머지 40시간 동안은 일하기는커녕 일에 대해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낼 뿐이라고 한다.

■ 심리학에서 본 걱정거리의 실체

한 심리학자가 사람들의 걱정거리를 모아 분류해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왔다고 한다.

- 40%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 :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일

-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것 : 지나간 일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

- 22%는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한 걱정 : 걱정도 팔자 수준의 일들

- 4%는 우리가 손쓸 수 없는 일들 : 걱정해봐야 손해 보는 일들

- 4%는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일들 : 그런데 정작 걱정해야하는 이 일 들에 대해서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짜로 걱정해야 하는 일들은 걱정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들을 걱정하느라 정력을 낭비한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행복한 순간에도 걱정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인간을 아주 잘 드러내 주는 일화가 있다.

■ 행복한 순간조차 걱정거리를 찾는 사람

사막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 그늘에서는 생각하는 모든 일이 이뤄진다. 사막을 가로질러온 한 사내가 지친 몸을 겨우 가누며 나무 밑에 앉는다. 그 사내는 생각했다. 이럴 때 시원한 물 한 모금만 있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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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그러자 물 한 바가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 사막에서 수영한 번 해봤으면……. 그러자 사막이 수영장으로 바뀌었다. 수영장을 본 그는 갑자기 비키니 아가씨가 생각나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나타나자 그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 행복한 시간이 지나고 맹수가 나타난다면……. 그러자 정말 맹수가 나타나고 그는 사막으로 쫓겨났다.

행복한 순간에조차 불행해질 것을 예상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때에 따라 완벽주의자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명칭이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행복을 즐기기는커녕 행복한 순간에 다시 불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결코 완벽주의자가 아니다. 강박증 환자일 뿐이다.

■ 무엇이 ‘오버씽킹’인가?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부질없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미시간 대학교 심리학과의 놀렌 획스마(Nolen Hoeksema) 교수는 ‘오버씽킹’이라는 개념으로 설명 한다. 오버씽킹이란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현상을 뜻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 이미 내뱉은 말에 대한 후회, 다른 사람에 대한 근거 없는 의심, 지나가면서 던진 동료의 한마디에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 추측 등.

상황에 따라 당연히 걱정해야 하는 경우와 불필요한 오버씽킹은 아주 간단히 구별된다. 오버씽킹의 대부분은 ‘만약’이라는 가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오를 분명히 하고 개선할 것을 찾아내야 할 것을 찾아내는 자기반성은 자신의 궁극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여 삶의 의욕을 높여준다. 그러나 오버씽킹은 다르다. 자신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게 할 뿐이다.

결국 ‘난 정말 안 돼!’하는 부정적인 생각만을 반복하여 자신의 긍정적 능력마저 상실케 한다. 결국 우울증과 같이 부정적 정서가 지속되는 병적인 상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오버씽킹은 전염된다.

문제는 이러한 오버씽킹이 아주 쉽게 전염된다는 사실이다. 정서는 아주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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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한 눈짓, 몸짓, 표정으로도 그대로 전염된다. 특히 불안과 같은 부정적 정서는 긍정적 정서에 비해 아주 빠르게 전염된다.

“밥 먹어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어떠한 느낌인가에 따라 식단에 앉는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더욱 심각한 경우는 조직의 리더가 오버씽킹할 경우다. 리더의 오버씽킹은 훨씬 빨리 전염되기 때문이다.

리더의 오버씽킹은 지속적으로 부하직원들을 불안하게 한다. 지속적인 불안은 좌절과 공격성으로 이어져 결국은 조직의 팀워크 자체가 완전히 붕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오버씽킹하는 경향을 보인다.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평가받는 이 사회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오버씽킹하게 만든다. 내가 무엇을 해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에 비해 얼마만큼 해냈는가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불행하다는 오버씽킹에 빠져 있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 목을 건다. 다른 사람이 120만원을 받고, 내가 100만원을 받는 경우보다, 내가 80만원을 받고 다른 사람이 60만원을 받는 경우를 더 선호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가 있다. 절대적인 가치보다는 타인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가 더 마음이 편하다는 이야기다. 오버씽킹은 이렇게 합리적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왜곡시킨다.

■ 정말 중요한 일은 어떤 일인가?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내가 행복해하고 재미있어 하는 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평생 주어진 의무를 다하며 그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삶의 목적이 되는 행복과 재미를 추구하면 뭔가 죄의식을 느낀다. 잘못된 생각이다. 모두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시절이 남긴 피해의식이다.

중요한 일을 찾아서 그것에 푹 빠지는 재미처럼 오버씽킹을 예방하기 좋은 방법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몰입(flow)' 이라고 한다. 구태여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무아지경(無我之境)정도가 적당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상태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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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사람 주위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다.

행복한 사람 주위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다. 특히 리더의 행복은 아주 쉽게 전염된다. 오늘 당신의 새벽잠을 빼앗아가고 당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오버씽킹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질 수 있는 삶의 재미를 되찾는 일뿐이다. 원치 않는 오버씽킹으로 괴로운 당신,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삶의 재미를 추구해야 할 때다.

◈ 노는 것을 학문적으로(?) 연구한 사람들.

놀이의 학문, 즉 여가학을 한다고 하니 사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일단 여가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어가 주는 느낌 자체가 웬지 유한계급과 연관되어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사실 여가(餘暇)란 단어 자체의 뜻이 ‘남는 시간’이다. 여가란 살기 위해 중요한 일을 다 하고 남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가라는 단어 자체는 부차적인 의미가 강하다.

2002년 한국여가문화학회를 만들 당시 이 단어를 가지고 참 많이 토론했다.

■ 난 여가라는 단어가 싫다.

아직까지 영어 레저(leisure)를 ‘여가’라고 번역하는 것을 대치할 우리말이 없다. 레저를 그대로 쓸 경우에도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너무 제한적인 의미로 파악된다. 여가는 ‘남는 시간’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노는 것과 쉬는 것의 두 의미를 포함한다.

도대체 노는 것은 뭐고 쉬는 것은 무엇인가? 쉬는 것은 말 그대로 소극적 의미의 여가생활을 의미한다. 노동에서 지친 몸을 회복한다는 의미다. 쉰다는 단어 속에서는 여전히 노동이 인생의 목적이고 여가는 노동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잘 쉬어야 보다 잘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20세기까지는 그랬다.

논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다. 재미를 촉구한다는 이야기다. 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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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구한다는 것은 노동과 여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이제까지 노동은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식정보화 사회의 노동은 재미없고 그저 인내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지식노동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생산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창의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 내 인생을 내가 선택했나? - 놀이와 행복

놀이는 비 실재성, 내적 동기, 과정 지향성, 자유-선택, 즐거움의 다섯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어쩌면 이 놀이의 다섯 가지 특징은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내용일 수도 있다. 놀듯이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이 다섯 가지 특징으로 판단해 보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측정할 수 있다.

- 나는 ‘여기와 지금’ 에 너무 매몰되어 있지는 않은가?

- 나는 ‘남의 돈을 따먹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내 만족을 위해 일하는가? 내 삶은 무엇을 얻기 위한 삶인가. 아니면 내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인가?

- 내 삶이 추구하는 목적이 과연 타당한가?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목적으로 인해 과정의 모든 중요한 것을 생략해 버리며 사는 것은 아닌가?

- 내 삶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인가? 아니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보긴 했나?

- 하루하루가 과연 즐겁기는 한가? 하루에 도대체 몇 시간이나 행복한 느낌으로 사나?

제3장 놀이는 창의성과 동의어

◈ 창의성의 원천은 ‘낯설게 하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면,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20세기는 부지런하게 뛰는 근면 성실한 사람이 성공했지만 21세기는 잘 노는 놈이 성공한다. 잘 노는 사람이 창의적이란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한다. 그러나 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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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잘 노는 것이 창의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또 잘 노는 것과 21세기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자세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이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21세기에는 왜 창의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한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먼저 산업사회와 지식정보화 사회의 차이부터 명확히 해보자.

■ 근면 성실한 사람이 불쌍해지는 사회

독일어로 직업은 ‘beruf’라고 한다. 이 직업의 명사형은 누구를 ‘부른다’라는 뜻의 동사 ‘berufen’에서 파생한 단어다. 다시 말해 직업이란 신이 인간을 불러 일일이 부여한 하나의 의무라는 것이다. 인간은 이 의무를 근면 성실하게 수행해야만 한다.

베버의 해석에 따르자면 한국사회가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근면 성실의 사회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사회에서의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굳이 기독교가 아니더라도 사회 전반에 걸쳐 가난을 극복하려는 한 맺힌 노력들이 근면 성실의 가치를 극대화하여 한국사회의 자본축적과 확대재생산을 가능케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지식정보화 사회는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근면 성실의 가치로만은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능케 하는 ‘재미’가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적 가치가 된다.

■ 재미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지식정보화 사회는 이제까지의 물질과 에너지 중심의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모든 가치는 정보의 네트워킹을 통해 생산된다.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네트워킹을 찾아내는 인간의 지적 창의력이 21세기 사회발전의 근본 동력이 된다. 토지나 자본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가치를 창출한다.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개발된다. 이 ‘재미’가 근면 성실을 뛰어 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된다. 과거 노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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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 없는 나라는 망했듯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 우리는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한다.

‘정보 information’는 인간이 세상에 일어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사건과 사물들 중에서 의미를 부여한 최소한의 단위이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물과 사건들이 있다. 인간이 이 모든 것들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다. 아니 인식조차 할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을 모두 지각하면 살다가는 정신분열증에 걸리게 되어 있다. 인간은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중요한 것들만 지각한다.

이토히로부미 사건이 한국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을 응징한 사건’이 되고 일본에서는 ‘안중근이라는 조선의 테러리스트가 현대 일본 건국의 지도자를 암살한 사건’이 된다. 이렇게 맥락에 의해 해석 가능한 구체적 의미가 부여될 때 ‘정보’는 비로소 ‘지식’이 된다. 결국 정보는 그것이 속한 지식의 맥락에 따라 의미가 변할 수밖에 없다.

■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다른가?

‘지식 knowledge’은 정보가 사회문화적 맥락 혹은 이론적 맥락에 의해 구체적 의미가 부여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지식은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토 히로부미 살해사건’이라는 정보와 ‘안중근은 한국인’ 혹은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이라는 정보가 서로 연관되면서 ‘안중근 의사가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한 사건’이라는 지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형성된 지식은 보다 더 넓은 맥락에서는 정보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

■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창의성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새로운 생각(착상)이나 의견을 생각해 내는 특성’ 이렇게 황당한 정의가 또 어디에 있을까?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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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창의성이란 ‘새롭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물건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란 것이다.

■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에 대한 정의가 잘못되어 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평생 지혜(요즘 말로 창의성)를 추구했던 솔로몬의 이런 최후 탄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종류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들은 분명히 있다. 예전에 있던 것들이 다른 맥락에 놓이면 우리는 새롭게 느낀다.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앞서 힘들게 정의했던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자면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1.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2.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도끼’ ‘망치’ ‘나무’ ‘톱’ 가운데 필요 없는 것 하나를 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를 뺀다. 나머지 셋은 나무를 다루는 연장이라는 지식 때문이다. 그런데 러시아 벌목공에게 물었더니 의외였다. 그들은 ‘망치’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나무를 뺀 연장들은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 창의성의 원천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바꾸고 낡은 정보를 다른 맥락으로 바꾸는 창의적 능력을 현대 미학에서는 ‘낯설게 하기 Verfremdung, Ostranenie’라는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Brecht)의 서사극 기법으로 알려져 있는 ‘낯설게 하기’는 러시아 형식주의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초반 러시아 형식주의 선구자인 쉬클로브스키(Sklovskij)는 문학을 비롯한 예술 창작의 진정한 목표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낯설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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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러시아 형식주의의 ‘낯설게 하기’의 기법은 독일의 브레히트에게 전수되어 너무 익숙해서 느끼지 못하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는 서사극의 기법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예술 창작의 목표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현실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브레히트의 미학이론에서 오늘날 창의성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발견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비로소 창의성에 다가설 수 있다. 우리가 새롭다고 느끼는 것은 이전에 다 있었던 것들이다. 단지 그것들이 속한 맥락이 바뀌었을 뿐이다.

■ ‘노는 놈’들은 세상을 낯설게 만든다.

너무 익숙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주는 이들은 근면 성실한 이들이 아니라 바로 ‘노는 놈’들이다. ‘노는 놈’들은 놀이를 통해 아주 익숙한 것들은 낯설게 하여 새롭게 느낀다. 바로 이때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는 바로 이런 ‘노는 놈’들이다.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이,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정보들의 맥락을 바꿔줌으로써 그 낡은 정보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이, ‘노는 놈’의 힘은 바로 ‘재미’다. 재미를 추구하는 자만이 창의적인 ‘노는 놈’이 될 수 있다.

◈ 다빈치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나온 모나리자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다. 익숙한 것, 낡은 것을 낯설게 하는 능력이다. 너무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눈에 들어온다. 이때 느끼는 감동이야말로 최고의 미학적 경험이다. 칸트(Kant)는 이를 ‘장엄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비 오는 어느 날, 평소에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고 지나치던 광화문 뒤편 인왕산이 안개에 싸인 한 폭의 그림 같은 모습으로 눈에 들어 왔다. 발길을 멈추고 가슴 벅차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 새로운 경험, 인왕산은 항상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감동하며 바라보았던 안개에 싸인 인왕산은 더 이상 예전의 낯익은 인왕산이 아니다. 비와 안개를 통해 낯설게 된 전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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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운 인왕산이다. 바로 이러한 가슴 벅찬 감동의 경험을 인위적으로 반복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예술과 같은 창의적 작업의 본질이다.

■ 좋은 게 뭔지도 겪어봐야 안다.

아름다운 것을 경험해야 아름다운 것을 안다. 한강 다리의 야경이 바뀌고 나니 조명의 기능에 눈뜨게 되고 외국의 도시들이 밤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를 깨닫게 된다. 행복한 경험을 해야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안다. 쾌적한 경험을 해야 어떻게 하면 쾌적해지는가를 깨닫게 된다.

한국인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아름답고 행복하며 쾌적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적개심에 가득 차서 건들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운전대에 바짝 붙어 있는 한국인들의 표정에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쾌적한 것들에 대한 기대를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니 누가 자기 앞에서 차선을 바꾸겠다고 깜박이를 켜면 절대 못 끼어들게 하는 것이다. 행복한 것은 잘 몰라도 기분 나쁘고 우울한 것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앞에 누가 앞서 가는 것은 도로 위가 되었든 회사가 되었든 우울하고 기분 나쁜 일이다. 오죽하면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은 차선을 바꾸겠다는 신호를 빨리 달려오라는 신호로 아는 것 같아요’라고 푸념을 할까.

■ 왜 국산 노트북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할까?

21세기 국가 경쟁력은 디자인 수준으로 결정된다. 국제적 수준의 디자인을 갖추려면 국민의 미학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중국 물건이 촌스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중국인들의 미학적 수준이 글로벌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삼성의 컴퓨터 기술이 소니에 절대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컴퓨터의 기술적 안정성은 소니의 바이오 노트북이 삼성 노트북에 뒤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바이오 노트북을 산 지 몇 개월이 지나도 컴퓨터를 켤 때마다 나는 행복해진다. 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왜 삼성 노트북은 바이오 노트북처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할까?

행복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안다. 뭐가 재미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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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고 기쁜지를 경험한 사람만이 그 재미와 기쁨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한 국가의 문화적 수준은 그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과 기쁨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각 나라의 문화적 수준은 그 나라의 대표적인 상품의 디자인 수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쁜 것을 아는 사람이 예쁜 물건을 찾고 그 수요를 아는 회사가 그 수준에 맞는 예쁜 물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군사력 경제력보다도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가에 따라 결정된다. 21세기 복지국가의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고 우울하여 모든 것이 불만인 국민들이 추구하는 재미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것들 뿐이다. 즐긴다고 하면 폭탄주 이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고 시골 논두렁 사이에도 러브호텔이 줄줄이 지어지는 나라의 국민들이 진정 행복하고 즐겁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잘 노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 토대위에서 디자인도 꽃피울 수 있고 국가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

■ 모나리자의 미소는 왜 아름다울까?

의사이며 과학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화가이자 조각가인 다빈치는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예술과 과학을 통합하는 천재성을 발휘한 사람이다. 그 훈련이란 다름 아닌 정보의 재조직화, 즉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이전과 다르게 하고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 정보의 재조직화를 통해 창조적인 ‘낯설게 하기’를 가능케 했다.

‘모나리자’를 예로 들어보자. 모나리자의 미소는 여간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모나리자가 사실은 여장한 남자였다는 추측까지 있을 정도로 그 창작과정에 대해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그러나 다빈치의 습작들을 살펴보면 그가 어떠한 방식으로 ‘모나리자’를 그렸는지 유추할 수 있다.

다빈치는 수백 가지의 눈의 습작을 가지고 있었다. 찢어진 눈, 젖은 눈, 늘어진 눈 등, 뿐만 아니라 코, 입, 머리, 턱, 등과 같은 얼굴 부위 각 부분에 관해서도 수백 수천 가지의 습작을 모아놓고 있었다. 오늘 날의 표현을 쓰자면 얼굴 각 부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모아놓은 데이터베이스에서 뽑아낸 부분들의 최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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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이클 미칼코(Michael Michalko)는 그렇게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정보의 재조합을 통해 이뤄지는 창작기법을 ‘다빈치 기법’이러고 정의하였다. 정보의 재조합을 통해 경험하는 창의적 작업의 결과로 사람들은 탄성을 동반하는 정서적 경험을 한다.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쁘고 즐거운 정서적 경험을 반복하려는 것은 창조적 작업을 가능케 하는 ‘동기(motivation)’가 된다.

■ 어른들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들고,

아이들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든다.

쉰 살 먹은 사람의 창의력은 다섯 살 어린이의 창의력의 4%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가 창의적인 이유는 ‘낯설게 하기’를 통해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 의미 없는 돌 조각으로도 하루 종일 놀 수 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는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뒤바뀌거나 생략되어 버린다. 빗자루는 청소의 수단이 아니다. 빗자루 자체가 즐거움의 대상이거나 전혀 다른 즐거움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끔 아직도 한참 일할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장례식장을 찾으면 가슴이 찢어지는 장면이 있다. 어린 그의 아이들이 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될 때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재미만을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행복하다. 걱정과 근심은 잠시뿐이다. 오직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부모들은 이렇게 놀면서 최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빗자루를 빼앗고 창의성 학원에 가는 버스에 태운다. 그런 아이들은 자라서 그 부모들과 똑같이 우울한 얼굴로 운전을 하며 앞에서 차선을 바꾸려고 깜박이를 켜는 이들을 절대 용납 못하는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항상 그 부모에 그 자식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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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아본 사람만이 창의적일 수 있는 이유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일컬어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차도 얼굴 부위에 관한 엄청난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었기에 모나리자를 그릴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바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 자료를 카드로 작성해 논문을 쓰던 시절

나는 독일에서 우리나라 석사 학위에 해당하는 디플롬(Diplom)논문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 까지는 데이터베이스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컴퓨터가 일반화 되어 있지 않던 시절 원시형태의 컴퓨터나 286 컴퓨터는 타자기 대용의 기능이었고 논문의 자료는 대부분 수작업으로 카드를 작성하여 정리했다.

디플롬 과정의 카드 2000매를 박사 과정에 재활용하기 위해 내용을 수정하던 나는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도저히 재활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 애플 컴퓨터를 사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 때마침 학교 컴퓨터실에 한국 학생이 조교로 일을 하

고 있었다. 그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목적이라면 애플컴퓨터가 훨씬 편하다고

충고해줬다. 애플컴퓨터에는 아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파일메이커(file

maker)’라는 데이터베이스어플리케이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플 컴

퓨터를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몰래 복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직접 사야만

하니 경제적인 여유가 되면 결정하라는 친절한 충고까지 곁들이는 것이었다.

예산을 뽑아보니 애플컴퓨터의 구입에 당시 한국 돈으로 약 400만 원, 프로

그램 구입비도 약 200만 원이 들었다.

당시 나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로 야간 경비원을 하고 있었다. 금요일 밤부터 일요일 밤까지 근무하면 한 달에 약 200~300만 원을 벌 수 있는 야간 경비원은 당시 베를린의 유학생들에게 매우 사랑받던 아르바이트였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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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교수로 폼 잡고 있는 베를린 출신 유학생들의 대부분은 당시 밤마다 공장 수위실을 전전하던 경비원들이었다.

그해 여름방학 내내 아내는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했고 나는 주말은 물론 주중까지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 돈으로 앙증맞은 애플 컴퓨터의 파일메이커 프로그램을 구입하고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독학에 들어갔다.

■ 4년 후 애플 컴퓨터 구입비용의 수십 배를 벌다.

내가 파일메이커 프로그램을 익숙하게 사용하여 박사 논문의 자료를 효과적으로 정리하게 될 즈음, 지도교수가 운영하는 학교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컴퓨터도 애플 컴퓨터였다.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한국 유학생이 자유롭게 사용하여 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내자 지도교수는 나를 정식 연구소 직원으로 임명하였다.

나는 그 노트북으로 내 박사 논문의 자료는 물론 연구소의 모든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연간 수십억 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대학 연구소의 연구 자료가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들었다. 지도교수나 다른 연구원들이 필요한 자료를 이야기하면 단 10분 내 처리가 되도록 자료 관리의 체계까지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첨단 기자재들의 사용방식을 아주 간편한 매뉴얼로 만들기까지 했다. 연구소의 모든 보고서와 논문들은 내가 관리하는 자료들로 인해 아주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작성되었다.

모두들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았다. 다른 학생들의 경우 한 번 면담하려면 적어도 한 달 전에는 예약해야 하는 지도교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찾았다. 뿐만 아니라 지도교수는 내게 연구소의 전체 예산 운영까지 맡겼다. 내가 원하면 항상 최신형의 노트북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애플 컴퓨터를 구입한 후, 약 4년 만에 나는 초기 투자한 비용의 수십 배를 벌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 내가 독일어로 독일 학생을 가르치다니

박사 논문이 끝나갈 무렵, 교수는 내게 엄청난 제안을 했다. 대학의 전임 강사로 일할 마음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지도교수는 내가 없는 연구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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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신 없다며 나를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전임강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내가 귀국을 연장하고 자신과 일할 수 있을 만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후로 4년이나 베를린에 더 머물렀다. 그 시작은 파일메이커라는 데이터베이스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내 데이터베이스는 내 특이한 독일어 발음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내 강의 자료는 다른 어떤 독일 교수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자세하고 친절했다. 키워드 하나면 바로 자료를 끄집어내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처음에 잘 이해 안 되던 내 독일어에 짜증을 내던 독일 학생들은 내 강의 자료를 받지 못해 안달이었다. 내게 논문 지도를 신청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지도한 학생들은 독일 곳곳에서 지금도 학자로서 의욕을 불태우며 일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에 익숙하다.

■ 정보 관리는 사고의 시스템을 바꿔준다.

독일어로 학문을 ‘Wissenschaft’라고 한다. 이는 ‘지식’ 혹은 ‘앎’을 뜻하는 ‘Wissen’과 ‘만들다’ ‘창조하다’는 의미의 ‘schaffen’이 합쳐져 만들어진 용어다. 학문이란 지식이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지식의 본질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란 지구의 아무도 모르는 어느 구석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것을 찾아낸 결과가 절대 아니다. 새로운 지식은 이미 있던 정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 창의성이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창의성이 없다고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탄만 할 일이 아니다.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보를 조직화해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이론을 구성해 내는 연습이 반복되면 누구나 얼마든지 창의적이 될 수 있다. 21세기형 천재는 엄청난 통찰력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이론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런 천재는 세상이 아주 단순할 때나 가능했다. 미래의 천재는 데이터베이스의 정보를 재미있게 만지작거리다가 황당한 이론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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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을 멍하게 보는 시간이 가장 창의적인 두뇌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중에 ‘e스포츠 포럼’에 여가 전문가로 초청을 받았다. 2004년 말에는 게임과 스포츠 마케팅이 결합된 형태의 e스포츠 관련 게임 산업의 발전 가능성에 공감하고 명지대학교 내 게임연구센터 GRC를 내가 앞장서서 만들기도 했다.

■ e스포츠 - 뭔 스포츠

e스포츠란 영역을 들여다보니 보면 볼수록 요상한 느낌이 든다. 2004년 7월 17일 스카이 프로리그라는 게임대회가 열렸다. 부산 광안리 해변가의 특설 무대에서 열린 1라운드 결승전에는 무려 10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몰려들었다. 자리를 미처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인근 빌딩이나 거리에 모여 이 게임대회를 구경했다. 주최측은 최소한 30만 명은 봤다고 주장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대형 스크린에 컴퓨터 게임 장면이 보이는데 한쪽으로 우주선 같은 것들이 몰려가면서 다른 쪽을 파괴하면 엄청난 함성이 터지고 그 반대 장면이 보이면 다른 쪽에서 함성이 터지는 모습은 월드컵 경기장의 열기를 뛰어 넘는 것이었다.

우리학교의 연구소에서도 프로게이머를 초청해서 학생들 중의 고수와 실력을 겨루는 프로게이머 초청대회를 개최했다. 그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와 화면을 보며 흥분했다.

■ 게임 중계가 국가 핵심동력산업이라니

e스포츠에 참여하는 프로게이머들에 대한 인기도 상상을 초월한다. 젊은이들은 이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실제로 이 프로게이머들이 경기하는 e스포츠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중의 수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의 관중 수를 능가한다.

프로야구에 국민타자로 불리는 이승엽 선수가 있다면 e스포츠에서는 ‘테란의 황제’ ‘폭풍 저그’같은 닉네임으로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인기 프로게이머가 있다. 실제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임요한 선수는 약 5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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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여하는 인터넷상의 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이런 것이 아니다. 월드 사이버 게임즈 WCG도 열린다. 2000년에 창설되어 매해 열리는데 2004년 예선에는 60여 개국에서 100만 명이 넘게 왔다고 한다. 문화관광부에서는 e스포츠를 앞으로 국가 전략 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한다. 시장 규모와 성장 속도가 장난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4년에 국내 게임 시장의 규모가 4조 5천억 원이었다고 한다. 이는 국내 영화 1조 1천억 원, 음반 3천 4백억 원, 에니메이션 3천 7백억 원 시장을 훨씬 능가하는 규모다. 이 큰 미래 시장을 문화관광부가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요상한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 축구 게임을 진짜 축구경기처럼 TV로 중계할 생각

게임전문 케이블 TV 온게임넷은 케이블 TV 시장에서 공중파 부럽지 않은 최상위권 시청률을 자랑한다. 모두 다 e스포츠 때문이다. 이곳이 앞서 설명한 요상한 현상의 진원지였다. 그 중에서도 황형준 국장은 수많은 젊은이들을 게임에 더 효과적으로 미치게 만든 원흉(?)이다.

황국장은 투니버스라는 방송사의 어린이용 에니메이션 담당 PD로 일하다가 IMF를 맞으면서 실직 압력을 받을 때였다. 무료한 시간을 달랠 겸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시뮬레이션 축구 게임을 보다가 문득 느끼는 게 있었다. 마침 1998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는 상사의 허락을 받아 ‘예측 사이버 프랑스 월드컵’이란 프로그램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경기가 이뤄지기 하루 전날 FIFA 게임으로 그 다음 날의 경기를 예측하는 방식이었다. 진행자들도 자기 역할을 아주 그럴듯하게 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별 쓸모 없어 보였던 황 PD에 대한 회사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음은 물론이다.

■ 전문적인 게임중계 채널을 만들어라

월드컵이 끝나자 황 PD는 비슷한 내용의 프로그램을 다시 구상했다. FIFA의 게임 대신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던 스타크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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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중계하는 기획안을 회사에 올렸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나왔다. 뛰어다니며 후원자를 구하니 당시 잘나가던 하이텔이 나섰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하이텔 KPGL 스타크래프트 대회’였다. 이 대회가 국내 e스포츠의 시작이다.

대회가 성공하자 세계 최초의 게임리그인 ‘99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을 기획하여 출범시켰다. 게임을 TV로 중계한다는 황당한 아이디어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자 황 PD가 속해 있던 온미디어는 국내 최초의 게임 채널인 온게임넷을 신설했다. 그때부터 황 PD는 후원사를 구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 후원하겠다는 업체가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로 인해 대기업에서는 줄줄이 프로게임단을 창단했고 세계 각국에서 이러한 한국의 게임 산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를 이끌고 나갈 핵심 산업으로서의 e스포츠와 게임 산업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황 PD는 국장으로 승진하여 온게임넷을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한다. 우연이라고…….

■ 창의력은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얻어진다.

물론 우연이다. 그러나 우연은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낯설게 연결하여 새롭게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어야 그런 우연이 찾아온다. 남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따라하는 방식으로는 그런 우연이 절대 찾아오지 않는다.

황 PD가 한 일은 컴퓨터 게임과 월드컵 축구 그리고 TV 중계에서 이뤄지는 정보 전달의 메커니즘을 절묘하게 연결하여 e스포츠라는 황당한 분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런 정보의 ‘크로스오버(crossover)' 를 할 줄 알아야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낯설게 하기’를 아인슈타인은 ‘조합놀이’라고 불렀다. 그가 만든 ‘E=mc2'이라는 공식은 이미 있어왔던 에너지, 질량, 빛이라는 개념들의 새로운 조합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구텐베르그의 활자는 와인을 짜내는 원리와 동전을 찍어내는 원리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멘델의 유전법칙은 수학과 생물학의 조합의 결과이다. 에디슨의 전구는 평행 회로판의 전선과 전구의 필라멘트를 조합해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조합들은 이전에는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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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하고 있을 때가 가장 창의적이다.

책은 TV와 같은 영상 매체보다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

책과 TV가 가지는 심상의 촉발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TV와 같은 사실적 영상 매체는 기본적으로 심상을 제한한다. 왜냐하면 TV는 심상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고 만들어진 영상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면 책을 통해 형성되는 심장은 독자의 상상력에 크게 좌우된다.

작가가 상황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기는 하지만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일일이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가가 생략한 부분은 독자의 창의적 상상력에 의해 채워진다.

의식의 긴장을 풀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오히려 창의력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최근의 창의성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일상생활 중에 창의성이 가장 높아지는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운전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수영을 할 때라고 한다. 어떤 문제에 골몰해 있는 상태에서는 절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산책을 할 때 우리의 눈은 산과 나무를 바라보지만 뇌는 눈으로 들어오는 자극을 통해 촉발된 심상을 쫓아가게 된다. 이 심상이 도대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가끔 재미있는 생각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다가 갑자기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런 생각이 시작된 거야?’ 할 때가 있다. 바로 그때 상상력과 창의력이 가장 활발해지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가장 열심히 일할 때가 가장 창의적이지 못하다.

◈ 아마도……와 혹시? - 창의적 사고의 방법

새로운 사고는 논리적 추론으로는 절대 생겨나지 않는다. 위대한 과학자일수록 ‘낯설게 하기’와 같은 미학적 경험이 가능한 다양한 취미 생활에 몰두했다. 논리 자체는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일상생활애서 논리적 추론이 없다면 합리적 대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에 이미 존재하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논리적 사고로는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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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만한 마음의 지도를 그려라.

‘아마도’로 시작하는 창의적 사고는 역동적이고 바꾸기 쉽고 축약적이고 암시적이다. 그런데 이 창의적 사유를 문장으로 풀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게 될 때는 이미 더 이상 창의적일 수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순간 번뜩이던 생각이 남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경험을 하는 이유도 창의적 사고의 바로 이와 같은 특징 때문이다. 역동적, 변형적, 축약적, 암시적 특징을 가진 창의적 사유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마인드맵이 있다.

1970년대 초 영국의 선생이었던 토니 부잔(Tony buzan)은 ‘아마도’의 창의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마인드맵’이라는 기법을 개발한다. 부잔은 더 이상의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판명 난 아이들을 모아 기존의 학습법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부잔은 이 아이들을 더 이상의 교육학적인 희망이 없다고 하는 이유가 기존의 학습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마인드 맵이란 말 그대로 마음의 지도를 그린다는 뜻이다. 논리적 사유란 일반적으로 직선적인 특징을 갖는다. 차근차근 논리적 위계를 만들어 옳고 그름을 따져나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인드 맵은 사고의 직선적 구조를 방사형 구조의 다이어그램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테마를 종이 위에 적는다. 그 다음 연상되는 단어들을 ‘사과’ 주위에 적어나간다.

그런 다음 각각의 단어들의 연관 관계를 선과 화살표를 통해 연결해 보는 것이다. 시작은 ‘사과’로 했지만 각각의 단어들은 독자적으로 연관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

■ 놀이는 ‘아마도’와 ‘혹시’에서 시작된다.

마인드 맵은 회사나 연구소에서 ‘브레인스토밍’수단으로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개인도 이 마인드 맵을 습관화하면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해낼 수 있다. 하지만 마인드 맵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는 낙서나 그림과 같은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은 마인드맵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우리가 생활하면서 이 자유로운 생각을 시도할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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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재미의 적극적인 추구는 ‘아마도’ 또는 ‘혹시’하는 엉뚱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되찾아 준다. 엉뚱한 상상이 불가능한 근면 성실한 삶에서는 정보의 어떠한 크로스오버도 일어날 수 없다. 재미가 생략된 노동에서는 어떠한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21세기의 노동과 놀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어야 하는 동의어다.

2012. 8. 10

제1부 3장까지 자료입니다. 4장부터 제2부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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