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 아침편지 고도원의 -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 고도원
- 연세대 신학과, 동대학원 정치학 박사. 미국 미주리대 언론대학원 연수
- 연세춘추(연세대학 신문) 편집국장. ‘뿌리 깊은 나무’와 ‘중앙일보’에서 기 자 활동
- 1998년부터 5년간 청와대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1급)
- 2006년 환경재단 선정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상’ 수상
- 저서 : 잠깐 멈춤. 사랑합니다. 꿈 너머 꿈. 부모님 살아계실 때 꼭 해 드 려야 할 45가지. 당신이 희망입니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1. 2.
고도원의 아침편지 1, 2, 3. 등
■ 머리말 - 그대 춤추듯 살고 있습니까, 뜨겁게 살고 있습니까?
꿈도 자라납니다. 살아 있는 생물처럼 성장하고 진화합니다. 자란다는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자라남은 그 안에 생명력이 있음을 뜻합니다. 죽거나 병들어 있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닫혀 있고 미워하면 자라지 못합니다. 스스로 마음과 몸을 가꾸어야 자라납니다.
징기스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유목민이 그 자리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한 말입니다. 또 다른 꿈으로 이동하지 않고 안이함과 타성에 젖는 것, 오늘의 우리에게도 반드시 경계할 일입니다.
사람이 현실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만 묻히거나 갇혀 있으면 안 됩니다. 현실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이 춤추게 하고, 그 꿈이 현실이 되는 경험을 자꾸자꾸 해야 합니다. 꿈은 영혼이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몸이 굳어지고 생각이 굳어지면 꿈도 사라집니다. 지나간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에 몰두하고, 과거의 시간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시간을 향해 걸어가는 것…… 나이를 잊고 계속 살아가십시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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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꿈을 꾸고 사는 사람, 무거운 등짐을 메고 굽이굽이 여울물을 건너는 사람은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청춘의 기억을 넘어 늘 청춘이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발걸음 마다 청춘의 기운, 청년의 기백이 넘쳐나야 합니다.
제게는 여전히 ‘청년의 기백’으로 살아 꿈틀대며 마구 자라나는 꿈들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통해 이 세상에, 특히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 청년들에게 꿈을 안겨주는 꿈의 전도사, 꿈 너머 꿈의 멘토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한 뼘이라도 더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뭐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슴 뛰는 꿈이 있고, 마음 나눌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언제나 청춘처럼 힘이 넘칠 것입니다.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십시오.
2012년 5월 푸른 생명으로 물드는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고도원.
첫 번째 춤 - 꿈도 자란다.
■ 좋은 꿈을 찾아서
얼마 전 한 대학의 MBA 코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왔다. 강연이 끝나고 며칠 뒤에 한 통의 메일을 받았는데 강연을 진행했던 교수님이 보낸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본 편지 속에는 강연에 참가한 학생들의 가슴 뭉클한 후기가 가득했다. 한 줄 한 줄에서 학생들의 변화가 생생하게 읽혔다.
“강연을 들으며 진정한 나의 꿈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고민과 성찰이 진정한 꿈에 한 발짝 다가서게 만들 것이다.”
“고도원 선생님이 말씀해주신 ‘인생의 책’은 전공 서적과 실용 서적밖에 몰랐던 내게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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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메시지들을 접하면서 배움의 길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특히 어려운 현실을 뚫고 가야만 하는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1807년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독일의 대학교수 피히테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제목이 그 유명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다. 그날의 강연은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19세기 당시 독일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그런 절망 속에서 피히테 교수가 일어섰다.
“절망의 시대에 공장 몇 개 짓고 경제를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신이고 꿈입니다.”
피히테 교수의 강연에 담긴 핵심 메시지였다. 정신도 보통 정신이 아니라 ‘순결한 정신’ 꿈도 보통 꿈이 아니라 ‘좋은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어떤 이들은 애국(愛國)이라고도 하고 애족(愛族)이라고도 표현하겠지만, 가장 핵심은 바로 독일 청년들에게 ‘꿈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정신은 독일이 폐허를 딛고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강연을 넘어 위대한 서사시로 남았다. 그리고 독일 국민의 긍지를 세우는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
또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독일이라는 한 나라를 뛰어 넘었다. 어느 나라든 시국이 어려울 때마다 지성들은 그 나라의 애국과 애족을 선창하며 ‘독일 국민에게 고함’을 중요한 모델로 삼았다.
지금 현실이 어렵지만 아니 어려울수록 젊은이들은 더 큰 꿈, 더 좋은 꿈을 꾸어야 한다. 젊음의 계절은 때가 차면 끝나는 시한이 있지만 젊음의 꿈에는 시한이 없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꿈을 꾸어야 한다.
사람들이 빌 게이츠에게 “당신에게 제일 두려운 상대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골방에서 가상을 꿈꾸는 사람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비행기를 꿈꾼 뒤 그 꿈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꿈을 좇으며 비행기의 틀이 잡혀갔고, 가상의 현실에 적용되며 꿈이 자라났다. 모든 것은 남들이 현실성이 없다고 비웃던 꿈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바로 좋은 꿈을 찾아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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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 뛰어야 한다.
‘웃음이 없다.’
‘눈물이 메말랐다.’
‘표정이 어둡고 무섭다.’
‘꽃을 보아도 느낌이 없고 아름다운 새소리마저 시끄러운 소음처럼 들린다.’
바로 감정이 메말라가는 징조들이다. 무엇을 해도 설레지 않고 떨림도 열림도 없다. 요즘 지하철에서, 거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표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 나의 얼굴 표정은 웃고 있는가? 얼굴에서 빛이 나는가? 가슴은 뛰고 있는가? 혹시라도 매사가 귀찮고 시들시들한가? 그렇다면 당신 꿈은 자랄 수가 없다.
청년 시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가슴이 뛰어야 한다. 그것도 뜨겁게 뛰어야 그 에너지 속에서 꿈이 생겨나고 그 꿈이 자란다.
내가 만나는 많은 청년들에게 나는 꼭 꿈을 묻는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상당수가 “없어요” 나 “몰라요”이다. 꿈에 대해 대답하는 것을 어색해하고 겸연쩍어한다. 꿈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지 않으니 꿈이 자랄 리도 없다.
많은 젊은이가 이처럼 꿈도 열정도 없이 살아가는 데는 온실에서 성장한 영향이 크다. 부모가 외부 환경을 차단하고 “아, 그거 힘들어 안 돼, 안 돼”하면서 자녀를 넘치게 보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극을 받을 일이 별로 없어 감수성이 부족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폭도 좁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들을 들판에 내보내고 고생도 사서 하게 하고 넘어지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가슴이 뛰고 호기심으로 눈이 반짝일 때는 과연 언제일까? 꿈이 있을 때, 그리고 사랑할 때다. 젊은이들에게 사랑 얘기를 하면 바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 사랑마저도 조건을 우선순위로 매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모든 조건을 내려놓고 순수하게 가슴 뛰는 사랑을 하는 청춘이 더 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일도 꿈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하는 일에 무궁한 호기심을 가지고 가슴이 뛰어야 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피곤하지 않다. 심지어 놀이 삼아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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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더 많은 월급, 더 높은 지위를 선망해서, 경제적 조건부터 따지는 경우가 많고, 한 번의 실패로 마음이 조급해져서 가슴 뛰는 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열 번 백 번을 떨어져도 도전의식, 용기, 긍정의 힘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실패의 과정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종의 담금질이기 때문이다.
만약 꿈과 현실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는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야 한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다.
쉽게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무언가를 생각할 때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면 바로 그것을 원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가슴은 결코 속마음을 속이지 못한다. 그래서 ‘가슴 뛰는 그것’에 답이 있다.
당신은 무엇으로 시간을 채우는가. 무엇으로 가슴을 채우는가. 지금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역사에 남은 ‘간디와 물레’ 사진 한 장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간디는 비폭력 저항운동을 벌였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영국 공장에서 만든 직물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서 입자’는 운동이었다. 그래서 간디는 손수 물레를 돌렸고 옷감을 만들어 입었다. 사라져가는 인도의 가내수공업과 전통 농업을 지키기 위해서 였다.
미국의 사진작가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인도 사회와 간디의 정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간디와 물레’를 사진의 테마로 잡았는데, 그가 사진을 찍기 전에 한 일이 있었다. 바로 물레질을 배운 것이다. 간디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돌리는 물레도 공부해야 사진에 그 사람의 혼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결국 마가렛 버크 화이트는 스스로 물레질을 배우고 ‘간디와 물레’라는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아무런 공부 없이 찍은 물레 사진과 물레를 손수 배우고 돌려서 찍은 사진은 차원이 다르다. 가령 아이들을 잘 찍으려면 아이들 속에 들어가 함께 놀아야 한다. 숲을 찍으려면 숲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함께 호흡하고 느껴야 한다. 깊숙이 녹아들어 이 순간이다 싶을 때 셔터를 누르면 그 순간이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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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을 때, 셔터만 누른다고 모두 시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셔터를 눌러대면 엉터리 사진만 나온다. 또한 초점이 잘 맞아도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진은 크게 달라진다. 일도, 삶도 마찬가지다. 초점이 방향을 결정하고, 내용의 질도 달라지게 한다.
사랑의 대상이든 존경의 대상이든 자신의 비전과 관련된 일이든 어떤 것이어도 좋다. 간디를 찍은 사진작가처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면 출발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결과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 ‘성공의 문’은 언제 열릴까
셰익스피어의 일화 가운데 잘 알려진 것으로, ‘하인과 양탄자’이야기가 있다. 셰익스피어가 어느 날 친구의 집을 방문했는데 마침 친구는 없었고 하인이 대신 맞아주었다. 차를 대접 받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친구는 오지 않았다. 셰익스피어는 차를 더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차를 대접해주던 하인이 혼자 열심히 양탄자 밑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양탄자 밑은 들춰보지 않으면 깨끗한지 지저분한지 알 수 없는 곳이다. 게다가 주인이 없었는데도 그 하인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몸에 배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셰익스피어와 같은 인물의 눈에 띄어 인정을 받게 된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그것이 몸에 배게 하는 것, 그런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 장인, 프로라고 부른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로운 칭호이다.
■ 절망의 계곡에서 만난 희망의 시간
헨리 포드가 열두 살 때의 일이다. 어느 늦은 밤, 어머니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헨리 포드는 말을 타고 수십 리 길을 달렸다. 천신만고 끝에 의사선생님을 모셔왔지만, 어머니는 의사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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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빨리 의사 선생님을 모셔 왔어도…….”
헨리 포드는 어머니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말보다 더 빠른 것을 타고 갔다면 어머니는 살지 않았을까.’
그 생각이 떠오르면서 어머니를 잃은 회한으로 고통스러웠던 그의 가슴에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바로 ‘말보다 빠른 탈 것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다. 터무니없는 황당한 꿈이라며 혀를 찼다. 헨리 포드가 ‘말보다 빠른 탈것’을 연구하기 위해 은행 융자를 신청했을 때도 ‘허황하다’는 이유로 차갑게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1908년 말보다 빠른,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게 되었다.
이처럼 꿈은 행복한 순간에 싹트는 달콤한 환상이 아니다. 오히려 벼랑 끝에서 고통스러운 절망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만이 그 속에서 발견하는 희망의 불꽃이다.
굶주림을 겪어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사정을 알듯이 절망을 겪어본 사람이 타인의 절망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개인적으로 암담한 시간을 겪지 않았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아침편지’를 쓰고 있다 해도 전혀 다른 글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겉도는 글이 되었을 것이다. 절망을 이겨냈기에 ‘아침편지’는 희망의 노래이자 영혼을 적시는 물방울이 될 수 있었다. 그 물기를 머금은 희망이 싹을 틔우고 어느 덧 300만 명 마음의 공동체로 자라날 수 있었다. 절망의 계곡에서 만난 희망의 시간이 중 선물이다.
■ 나의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권금순 선생님
1954년 온 나라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신음하던 때 한 달 동안이나 배를 터고 미국으로 건너간 분이 있다. 어린 나이에 무일푼으로 건너가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대학에 들어가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미국의 정부 기관에서 일했다. 아들딸까지 의학박사로 잘 키워내고 75세가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왔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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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시절에 미국까지 갈 용기가 있었습니까?”
“‘너는 크게 될 놈이야’라고 말씀해 주신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 때문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미군 비행장에 총을 들고 있는 군인한테 가서 말도 걸고 하면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으로 건너 가야갰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행 했던 것이지요.”
어린 소년의 결단과 인생 역전 뒤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의 한마디가 있었다. 그 말이 자극이 되고 용기의 원천이 되었다. 나에게도 초등학교 1학년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었다. 권금순 선생님, 그분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도시락을 싸지도, 제대로 된 양말을 신지도 못하고, 왕복 20Km, 50리 길을 다섯 시간 넘게 걸어 학교에 다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던 권금순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면 선생님 댁에 가서 도시락을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 선생님 댁에 도착하면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따뜻하고 하얀 쌀밥에 맛있는 반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도원이 왔구나.”
눈물 나게 맛있는 밥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교실로 돌아가는 길, 볼록해진 건 배만이 아니었다. 따뜻함 포만감과 행복감으로 가슴까지 부풀어 올랐다.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 한글을 깨우쳤다. 초등학교 3-4학년 책까지 다 읽고 학교에 들어갔으니 겨우 ‘기역’ ‘니은’ 하던 아이들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 반장이 되긴 했는데, 숫기가 없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반장이다 보니 수업시간에 책을 읽게 되었다. 한 자리에 똑바로 서서 책을 읽는 나에게 선생님은 “도원아, 반장은 이렇게 선생님처럼 왔다 갔다 하며 책을 읽는 거야”하면서 내 등을 밀어 주셨다. 그 말씀과 손짓이 내게는 엄청난 전환점이 되었다. 숫기가 없던 내게 부족한 통솔력이랄까 담력을 키워주는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이다.
몇 해 전 모 방송국의 ‘TV는 사랑을 싣고’란 프로에서 출연 제의를 받고 수소문 끝에 선생님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으나 갑자기 프로 개편으로 방송이 취소되어 그리움만 남게 되었다.
그 뒤로 하루하루 바삐 지내며 시간이 흘렀다. 마침 선생님이 계신다는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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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에 지방 강연을 갈 기회에 만나 뵙기 위해 수소문 끝에 선생님의 연락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날은 50년 만의 만남이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고우셨던 기억속의 모습처럼, 작고 단아한 선생님께서 그 모습 그대로 눈앞에 나타나셨다. 어느덧 초로가 된 제자에게 제대로 말씀도 놓지 못하며 행복해 하시는 선생님을 뵙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 늦게 찾아뵈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건강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몇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어린 소년이 되고 젊고 아름다운 선생님이 되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때 내 등을 밀어주시던 선생님의 손길이, 그 온기가 아니었다면 내 삶의 고비마다 힘차게 나아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정말 끝이구나’하는 절망에 빠져 잠시 망연히 멈춰서 있을 때면 내 등 뒤에서 선생님의 그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온기를 주었던지…….
오늘에서야 나의 큰 스승. 작은 거인께 고백한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 꿈을 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2001년 루쉰의 ‘고향’에서 이 구절을 인용할 때만 해도 ‘아침편지’가 11년 동안 이어져 300만 명의 거대한 마음의 가족이 만들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꿈을 꾸며 내딛은 첫 걸음이 마침내 오늘의 큰 길이 되었다.
오늘은 어떤 꿈을 나눌까. 어떤 희망을 이야기할까. 어떤 위로를 전할까. 깊은 밤 책장을 뒤적이고 영혼의 우물을 길어 올려 마음을 띄우면서, 하루하루 꿈이 자라났다. 독자들의 격려와 응원은 그 꿈을 이루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아침편지를 만나고 힘을 얻었습니다.”
“우울한 하루에 위로를 받습니다.”
공감하고 감사하는 마음들을 나누면서 나도 위로받고 함께 꿈을 키워갈 힘을 얻었다. 그래서 나만의 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을 나누고 서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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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이타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꿈너머꿈까지 자라날 수 있었다. 그렇게 자라난 것이 ‘깊은 산속 옹달샘’이다.
경쟁 시대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느라 삶에 지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일상을 떠나 단 며칠만이라도 쉬고 싶다’는 절실한 바람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다면, 다시 에너지를 얻어 잃었던 꿈, 잊힌 꿈을 찾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 더 생기 있고, 더 밝고 맑게, 더 바른 방향으로 꿈을 향해 갈 수 있다.
그러한 쉼터로서 시작한 ‘깊은 산속 옹달샘’이 어느덧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상센터로 자리잡고 있어 기쁘다. 지금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좋은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갈고 닦을 생각이다. 그리고 금수강산 수목원, 깊은 산속 링컨학교도 만들어가고, 맨몸으로 삼림욕을 하며 ‘숲명상 숲치유’를 할 수 있는 ‘맨 숲 걷기 명상 코스’도 선보일 예정이다. 오랜 소망이자 숙원인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하는 아침편지도 꿈꾸고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내게 그렇게 많은 꿈을 꾸느냐고 말을 하지만 나의 꿈은 남은 생애 동안 점점 더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
“나무가 늙어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유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나이가 들었지만 매일매일 성장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노년에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시인 롱펠로가 들려준 말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나무처럼 매일매일 성장하고 가지를 뻗어나간다.”
■ 기회는 섬광처럼
‘아침편지’ 여행에 한 대학생 인턴이 함께 가게 되었다. 통역을 겸한 안내자 역할이었다. 여행 출발에 앞서 그 학생에게 일러두었다.
“여행에서 통역과 안내자의 역할은 막중하다. 여행기간 동안 내 주변 반경 1미터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지더라도 시선이 늘 마주치는 자리에 있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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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주의 깊게 언질을 주었음에도 여행 중에 계속 시선이 닿지를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그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거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여행을 마치는 날. 그를 조용히 불러 옆자리에 앉게 했다.
“이번 여행이 어땠니?”
그런데 내가 기대했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부탁 때문에 자네를 데리고 왔는데 사실 실망을 많이 했어. 내가 아무 말 안 하고 자네를 보낼 수도 있지만, 자네 아버지를 생각해서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자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이야기를 하는 거네.
내가 학생과 비슷한 나이에 한창기라는 분과 여행을 함께한 적이 있었네. 그분은 당시 ‘뿌리 깊은 나무’ 잡지사 사장이었고 나는 기자였지. 이젠 고인이 된 그분이 여행 동안 보여주었던 일거수일투족을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네.
당시 워낙 존경하던 분을 가까이서 보게 된 만큼 궁금한 것이 무척 많았지. 그분이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언제 웃고, 언제 농담하고, 또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모두 알고 싶었거든. 그래서 되도록 근처에 머물면서 계속 그분을 주시했네. 하루는 조용한 산길에 오를 때였는데 그분이 갑자기 큰 소리를 버럭 지르며 몹시 노하셨어. 산길에 콘크리트를 발라 놓은 것을 보고 화가 나서였지.
그런가 하면 그분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네. 아름다운 찻잔 하나, 잘 닦은 잎차 한 잔에도 소리내어 감탄하고 좋아 하던 모습, 시골 골동품 가게에서 찻잔 그릇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아이처럼 좋아하며 황홀해 하던 모습도 젊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면모였지. 그런데 세월이 지난 요즈음의 내 모습에서 그분의 모습을 많이 발견하게 되네.
내가 그분에게 견줄 만한 사람이 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네. 그야 어찌되었든 자네는 이번 여행 중에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어. 그러나 그 자리를 끝내 지키지 못했지. 내가 자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 그 점이 안타까워서 이렇게나마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를 해 주는 거네.“
그러자 학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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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앞으로는 잘 하겠습니다.”
“앞으로 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네. 이미 시간이 지났구나.”
우리가 살다 보면 허송세월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늘이 내려준 귀한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아깝게 흘려보내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미리 귀띔해 줬더라면 안 그랬을 텐데…….”
하지만 세상은 미리 귀띔하는 일이 많지 않다. 특히 좋은 사람을 찾고자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미리 귀띔을 해주고 사람을 찾지 않는다. 일일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사람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작은 일에도 열심히 하는지, 어떤 눈빛인지를 보고 난 다음에 일을 맡기는 것이다.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섬광처럼 왔다가 섬광처럼 지나간다. 섬광 같은 순간의 기회를 잡느냐 놓치고 마느냐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작은 일, 궂은일부터 잘하라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정치부 기자를 꿈꾼 사람이 있었다. 일류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당연히 금세 정치부 기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문사에서는 그를 처음부터 정치부로 보내지 않았다. 체육부로 보내서 야구 경기를 취재하게 했다. 그 기자는 자신이 꿈꾸던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일을 하다 보니 차츰 불만이 쌓였다. 그래서 야구 취재는 뒷전에 두고 시간 있을 때마다 정치인을 만나고 다녔다. 그가 과연 정치부 기자로 발령받았을까? 천만에다. 그는 기자 생활조차 오래하지 못하고 끝내 신문사를 떠나게 되었다.
한편 똑같이 정치부 지망생이었는데 사회부로 발령받은 기자가 있었다. 원하던 부처는 아니었지만 그 기자는 새벽 3시면 담당 경찰서로 찾아갔다. 형사들마다 모두 ‘형님’이라 부르며 열심히 취재해 사건 담당 기자 사회에서 특종기자라는 자랑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마침내 정치부로 옮겨 가서 나중에 정치 전문기자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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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조건은 처음부터 구성원 각자의 꿈을 좇아주지 않는다.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윗사람은 신입 사원이 어떤 제목인지부터 살펴본다. 그래서 이런 저런 시험을 하게 된다.
이때 신입사원이 작은 일에 요리조리 빠져나가면 그 다음 일을 맡기려 들지 않는다. 작은 일, 궂은일을 마다하면 ‘아, 이 사람은 작은 일을 싫어하니까 더 큰 일을 맡겨야겠구나’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작은 일조차 소홀히 하니 더 큰 일을 맡기기가 어렵겠구나’하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서는 일단 주어진 일을 목숨 걸고 해야 한다.
작은 일, 궂은일은 생색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리고 반드시 큰일도 맡게 된다.
■ 인생의 목표, 인생의 방향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너무 지쳐서 달구지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같이 타고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달구지 주인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타십시오.”
“예루살렘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지금 이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립니다.”
나그네는 어느덧 잠이 들었고, 30분쯤 지나 눈을 떴다.
“예루살렘이 다 왔나요?”
“ 이 속도로 가면 한 시간 걸립니다.”
“아까는 30분이라고 했잖습니까? 30분을 왔는데 왜 다시 한 시간 걸린다고 합니까?”
그러자 달구지 주인이 대답했다.
“ 이 달구지는 예루살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이 이야기가 말해 주는 것은 방향이 속도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인생의 방향도 마찬가지다. 어떤 목표,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우선이고 속도는 그 다음이다. 꿈이란 자기 인생의 방향이고 가야할 목표다.
인생의 방향, 꿈의 방향을 잡고 일을 시작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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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초심’이다. 사람들은 의지가 약해지거나 방향에서 벗어날 때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말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고정된 채 무조건 변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는 지혜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살아가다 보면 변하지 말아야 할 것과 변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마음먹었던 방향은 요지부동이어야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방법들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바뀌어야 한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새로운 문명 트랜드가 생겨나면 초심도 새로운 방식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 다른 초심, 즉 진화된 초심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절대 변해서는 안 될 것은 초심에 담긴 정신, 뜻, 방향, 목표 등이다.
■ 1분만 더!
“어깨가 뭉쳤는데 좀 주물러줄래?”
부모가 이렇게 말했을 때, 자녀들의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얼마나 많이 뭉쳤는지 걱정스런 표정으로 다가오는 자식도 있을 것이고. ‘또 안마야?’하며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가오는 자녀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안마를 시작했다고 치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가 “고맙다. 이제 됐다”라고 했을 때도 자녀들의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어떤 자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1초도 안 돼서 손을 떼고 일어나지만, 어떤 자녀는 5분 10분이 지날 때까지 더 주물러 준다. 그러면서 “다른데 불편한 곳은 없으시냐고 묻고, 다른 아픈 곳을 찾아 여기저기 주물러 준다. 당신이 부모라면 어느 자식에게 더 정이 갈까?
부모도 당연히 정성을 기울여주는 자식에게 더 정이 간다. “이제 됐다”고 했음에도 1분이라도 더 손을 주는 자식에게는 미안함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어디 부모와 자식 사이에만 그렇겠는가?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일이 다 그렇다.
직장에서도 성공하는 사람은 다르다. 상사나 동료가 “이제 됐다” 할 때 바로 손을 터는 사람. 퇴근시간이면 칼같이 일어나는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다 훑고 간지나 자리에, 한 번 더 가서 점검하는 사람, 1분 더 투자하는 사람. ‘이제 됐다’ 할 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에게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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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생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을 쓸 때, 그 분이 나에게 들려준 말이 있다.
“서생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이 있어야 한다.”
좋은 연설문을 쓰려면 이상만 가지고는 안 되고, 그 이상이 현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이상만 있고 현실을 모르거나, 너무 현실에만 몰두하고 이상이 없으면 좋은 연설문을 쓸 수 없다.’
이 말의 뜻은 아직도 내 뇌리에 깊이 박혀 큰 교훈으로 남아 있다. 서생적 판단은 일종의 꿈,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현실을 전혀 모르더라도 지식, 영감, 상상력 등을 가지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와 같은 목표나 꿈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절름발이가 된다. 그 꿈을 실제로 이루려면 현실감각이 있어야 하고, 시대적 흐름도 알아야 한다.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상인이다. 이들은 1원이라도 남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를 보고 움직일 수 있지만 그것은 그 다음에 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계산 아래 투자하는 것이다.
서생(書生)은 ‘선비’의 다른 말이라 할 수 있다. 서생은 보통 비전이나 꿈, 대의명분을 가지고 움직이려 한다. 그러다 보니 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감각이 부족한 경향이 있다. 그들의 꿈은 탁상공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현실에 밝은 상인들끼리만 있으면 이 세상은 너무 이해타산적인 곳이 될 것이다. 이익을 우선시하다 보니,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건강, 안전은 생각지도 않는 일이 수없이 일어난다.
서생과 상인의 기질이 결합돼야 그 개인도 사회도 온전하게 발달할 수 있다. 두 기질이 조화를 이루면 현실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시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 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서생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은 ‘현실과 미래의 접목’이라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이는 모든 분야에서 일을 도모할 때 꼭 새겨야 할 중요한 말이다.
■ 기다려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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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잘 하려면 ‘시차적응을 잘 해야 한다. 시차적응이 안 되면 여행 내내 힘들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고생을 하게 된다. 시차적응은 여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 전반에도 이런 시차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직장에 갓 들어간 초년병이나, 직장을 옮긴 사람들은 한 동안 시차적응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동안 살아오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들어서기 때문에 얼른 자기 몸을 그 변화에 적응시켜야 한다. 그 적응이 늦으면 본인도 어렵고 , 주변의 동료들도 힘들어진다.
기자 사회에서는 부서가 바뀌면 거의 직장이 바뀌는 것과 같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성공하는 기자들은 부서 이동이 있을 경우 최소한 6개월 동안 침묵하면서 일단 상황을 조용히 지켜본다. 그 부서의 선임기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다. 가벼운 농담조차도 사회부와 문화부, 문화부와 정치부 기자는 다르다. 그래서 시차적응이 된 다음에 몸을 움직이고 입을 열어야 그 부서 문화에 맞는 적절한 말이 나와서 실수를 하지 않게 된다. 말하자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얼마 동안의 기다림, 그것이 시차적응의 한 비결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 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고 생각을 골똘히 갖게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의 자리 하나 굳건히 지키게 해주는 옹이같이 단단한 마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빨리 적응하고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빨리 좋아지는 것이 언제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낳고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좀 더 천천히 느리게 가는 참을성과 기다림도 중요하다. 기다리고 참으면서 꿈이 단단히 영글어간다. 사랑도 더욱 성숙해진다.
숲속 밤톨 하나도 제대로 무르익을 때까지는 알맞은 시간이 필요하다. 익기 전에 따면 설익어서 먹지도 못하고 버리게 된다. 묵묵히 기다리고 견딜 줄 알아야 토실한 밤톨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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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춤, 좋은 사람을 만나라
■ ‘좋은 사람’을 만나는 비결
언젠가 두 아침지기의 결혼을 계기로 ‘좋은 사람’에 대한 ‘아침편지’를 쓴 적이 있다. 같은 길을 걷는 두 사람이 삶의 동반자가 되었으니 누구보다 기쁜 마음이었다. 일과 사랑을 함께하며 서로 이해하고 격려하는 부부 서로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인 것이다. 두 사람의 만남과 결혼을 보면서, 내게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이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어깨에 짊어진 짐도 늘 무겁다. 누구에게나 어느 한 순간 한꺼번에 무너질 듯 지치고 약해지는 기간이 왜 없겠는가. 아프고 슬프고 외로운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렇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마냥 울음을 터뜨릴 수는 없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애써 눈물을 참는다. 하지만 눈물에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힘이 있다. 지칠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상처 받았을 때 눈물을 흘리고 나면 오히려 맺혔던 마음이 풀리고 영혼이 정화된다. 그리고 앞으로 더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런 내밀한 순간을 망설임 없이, 부담감 없이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특히 잘 울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남자다. 이 땅의 남자들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조차 잘 울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울면 사내가 아니라는 교육을 받은 탓이다.
아프고 힘들 때 언제든 기대어 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고단한 세상살이도 그리 힘겹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치유자’라 부른다.
치유자는 단지 몸을 치유하는 범주를 넘는다. 치유자는 칼을 대지 않고 병을 고치고 마음을 보듬는다. 인생에서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돕고 설사 넘었더라도 생각의 방향, 삶의 방향을 바꿔 잘못된 습관을 고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듯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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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나 또한 누군가가 내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는 인생길에 좋은 치유자를 만나고 싶다면 누군가의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야 한다.
■ 그대는 나의 거울, 나는 그대의 거울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어때?” 라고 물었을 때.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답해주는 말이 최고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참 좋아요.”
“훌륭해요.”
“아주 멋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거울 속의 얼굴은 얼마나 행복해 보이겠는가.
영화 ‘빠삐용’에 나오는 장면인데. 감옥에 갇힌 한 동료 죄수가 작은 식구통 구멍으로 얼굴을 내밀고 빠삐용에게 물었다.
“내 얼굴 어떻소?”
그때 빠삐용이 이렇게 말한다.
“좋아 보여요.”
사실 노인의 얼굴은 저승사자처럼 죽어가는 모습이었는데도 빠삐용은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동료 죄수가 안도하던 장면이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나 빠삐용과 달리 “지금 네 얼굴은 형편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솔직함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가슴은 차가운 사람이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지만, 따뜻한 마음의 거울이 되어야 할 때도 있다.
사랑은 상대방의 물음에 항상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 좋지 않을 때도 ‘좋아지고 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나 어때요?”
“좋아요.”
“아름다워요.”
“더 예뻐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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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대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 좋은 거울이라 믿는다. 긍정의 힘으로 상대를 더 좋아지게 만드는 거울, 나는 그런 거울이 되고 싶다. 적어도 힘든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사람에게 등을 밀어주는 기분 좋은 사람이라도 되어주고 싶다.
■ 지금 말해 주세요
배우자와의 만남은 ‘절대적 느낌’이 주는 하늘의 선물이다.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단 한 번의 확실한 느낌, 배우자는 망설임의 대상도, 비교의 대상도 아니다. 망설이고 의심하는 순간 절대적 느낌은 깨져 버리고, 비교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철학자 칸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칸트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면서도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고백하기보다 혼자서 ‘사랑’ ‘결혼’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왜 이 사람에게 끌리는 걸까? 사랑인가?”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민이 많아지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사랑이란 감정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도무지 철학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그처럼 생각 많은 남자를 지켜보는 여자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갔다. 좀체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 칸트에게 여자는 용기를 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행복해져요. 난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당신도 나를 사랑하나요? 사랑한다면 지금 말해 주세요.”
칸트는 여자의 고백에 가슴이 벅찼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감정이 사랑인지, 이 여인과 과연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칸트는 다시 사랑과 결혼의 철학적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와 미래를 함께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칸트는 여자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와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고 미소짓던 칸트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랑이 떠난 빈자리는 그 누구로도 채울 길이 없었다. 그는 끝내 평생 독신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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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빗줄기처럼 지나가버리고 다시는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남는 것은 회한과 후회, 텅 빈 마음뿐이다.
사랑에는 내일이 없다. 사랑하는 것, 용서하는 것, 가슴이 시키는 일을 미뤄서는 안 된다. 바로 지금 해야 한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아니 지금, 당신 가슴에 담긴 그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라.
■ 네가 흔들리면 나도 흔들린다.
얼마 전 어느 고층상가 건물이 흔들려 사람들이 갑자기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다. 그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 건물 12층 피트니스 센터의 집단 뜀뛰기가 공명 현상을 일으켰다는 견해가 있었다.
1940년 미국 워싱턴 주 타코마 시에 ‘타코마 내로하우스’라는 다리가 세워졌다. 당시 길이는 세계 3위,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자랑스러워하던 다리가 준공 4개월 만에 무너졌다. 시속 200Km 강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이 다리가 시속 70Km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 원인을 규명한 학자들은 다리의 붕괴 원인이 공명 현상이었고 이 다리는 유독 70Km의 바람에만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꽤 오래전 멕시코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신기하게도 20층 건물달만 무너져 내렸다.
이와 같은 공명 현상은 사람에게도 존재한다. 사람 사이에 진동이 같을 때 흔히 주파수가 맞는다. 코드가 맞는다. 궁합이 맞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이 만나면 공명 현상으로 기쁨이 배가 된다.
특히 주파수가 맞아서 같이 흔들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남녀 사이에 주파수가 잘 맞으면 가슴이 뛰고 맥박이 빨라지고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울림이 있게 된다.
한편 자기는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에게 파장을 보냈는데 상대는 그것을 귀찮아하고 심지어는 증오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파장이 맞지 않는 것이어서 함께 있는 시간이 지루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인생에서 최고의 진동은 사랑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것도 사랑이고, 앞으로 나아갈 희망을 얻는 것도 사랑이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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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명을 경험하는 순간은 많다. 자연경관 앞에서, 여행을 하다가, 명상 중에, 또는 좋은 사람과 차를 마시며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림이 생겨난다. 이것이 바로 함께 흔들리는 행복한 공명 현상이다.
나와 같은 울림을 가진 사람, 좋은 주파수를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내 주변에 많다면 그것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인생인 것이다.
■ 믿는 것과 믿어주는 것
“그 사람이라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
당신에겐 이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사회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이런 돈독한 믿음을 자랑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도 같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도 믿을 만한 대상이 있다면 그의 사회생활은 성공한 것이다. 슬럼프가 오거나 좌절했을 때 믿고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 어떤 위기의 강도 거뜬히 건널 수 있다.
믿는다는 건 참 어마어마한 일이다. 믿는 사람에게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부도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 두 사람 사이에 단단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믿음이 있어야 몸을 열고 마음을 연다.
그런데 ‘믿는’ 것과 ‘믿어주는 것’이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믿는 것은 무조건 적이다. 어떤 조건이나 단서를 달지 않고 ‘그 사람이니까’ 믿는 것이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나는 맛이 없는데 그가 맛있다고 하면 그냥 믿는 것이다.
‘믿어주는’ 것은 다르다. 의심이 가고, 혹은 나를 속이는 걸 알지만 믿어주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 그런 경우가 많다. 아이가 뒤에 사탕을 숨기고도 안 숨겼다고 할 때, 거짓말한다고 야단치는 게 아니라 “아 그래!”하고 믿어주는 거다.
이것이 큰 힘을 발휘한다. 진정으로 믿어주면 그 아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란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믿음의 울타리가 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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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주커브는 ‘영혼의 의자’에서 사랑과 신뢰가 하나임을 이야기 했다. 사랑과 신뢰는 종이의 앞뒤 면처럼 따로 뗄 수 없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랑은 신뢰의 우물을 깊게 하고 신뢰는 사랑의 시간을 넓힌다.
이런 중요한 진리를 알면서도 우리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크기 때문이다. 기대한 만큼 되지 않을 때 스스로 낙심하고, 소중한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리게 된다.
그래서 기대를 품되 그 기대가 채워지는 것에 목표를 두지 말고 채워가는 과정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은 함께 만들어 가는 거라고 믿을 때, 사랑도 깊어지는 것이다.
끝까지 믿어주는 것.
자신이 어떤 희생이나 어려움을 당해도 믿어주는 것.
장점들을 믿고 단점들을 믿어 주는 것.
그러면 그 부족한 단점조차도 세상에 둘도 없는 장점으로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함께 가는 것…….
그러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믿음을 가진 내가 행복해진다.
■ 나와 다를 뿐
“부부생활을 10년 하면 훈련소 생활 10년 한 것”이라는 농담같은 이야기가 있다.
소통은 ‘내 생각’을 내려 놓을 때. ‘네 생각’이 이해되면서 시작된다. 최고의 소통 단계는 믿고 맡기는 것이다.
부부가 여행을 함께 가면 가장 좋을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이 싸운다. 기분 좋게 출발해서 여행 내내 싸우다 등 돌리고 돌아오는 부부가 많다. 왜 즐거운 여행을 떠나서 갈등의 폭만 키울까.
여행에서는 선택할 일이 많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서 잘 지 등등, 매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이때 부부가 취향이 서로 다를 경우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하려다 보니 충돌이 잦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셋이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중개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싸우다가 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친구끼리도 둘이 가거나 넷이 가면 싸워서 혼자 돌아오거나 둘둘 갈라서 오고, 다섯이 가면 함께 온다는 통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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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서 잘 지내고 오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이곳을 가고 싶은데…….”
이렇게 말하며 상대가 다른 곳으로 이끌면 “아, 그래 좋다!”하고 따르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언제나 ‘아이의 귀’를 닮아야 한다. 잘 귀담아 듣는 사람, 그래서 잘 감동하고, 잘 반성하고, 잘 사랑하며, 순진하게 사는 사람, 언제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 모두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상대를 보아야 한다.
■ 눈빛, 손, 포옹인사
얼마 전 많은 화제가 되었던 ‘남자의 자격’합창 편에서 지휘자 박칼린 감독이 많은 이들에게 참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박 감독이 여러 번 단원들에게 자신의 시선을 절대 놓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눈빛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요한 교감이니,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인사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손 인사가 있다. 손을 꼭 잡아주는 것이다.
“나 역시 잘 하고 있을 땐 요란하고 화려한 응원을 받고 싶지만, 요즘처럼 기분이 가라앉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때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응원,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응원, 그리고 가만히 안아주는 응원, 그런 조용한 응원을 받고 싶다.”
긴급구호활동가 한비야의 고백이다.
아무리 씩씩하고 용기 있는 사람도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울고 싶은데 울 수조차 없을 때가 있다. 골방에 들어가 울음을 삼키고 가까스로 몸을 추스를 때, 바로 그런 순간에 누군가 가만히 다가와 손을 잡아 일으키면, 그보다 더 큰 인사와 응원이 없다.
더 좋은 인사로는 포옹 인사가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명상을 할 때, ‘아침편지’여행 중간에 포옹을 하는 순간이 있다. 마주 선 사람과 포옹을 하면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눈다. 이때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진심으로 건네는 그 한마디에 위로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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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힘은 강하다. 나를 너에게로, 우리에게로 달려가게 한다. 그때 얻게 되는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것을 경험하고 싶다면 지금 만나는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보자. 눈빛을 건네든, 손을 내밀든, 포옹을 하든 그 무엇도 좋다. 마음이 전해지는 인사라면 더 좋다.
■ 삶을 함께 꿈꾸는 것
사랑은 첫 자리, 첫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래도록 그 첫 마음을 지키는 것이다. 한 번 시작하면 오래 사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처럼 오래 달리는 것이다.
한번 사랑하는 것, 한번 잘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 특히 오래 사랑하고 오래 잘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한결같이 잘하는 것, 끝까지 잘하는 것, 그것이 오래 달리기, 오래 사랑하기다.
바이칼 여행에서 만난 한 목사님이 이런 ‘농담’을 했다.
“18년 동안 ‘마누라 바꿔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농담을 듣고 많은 사람이 박장대소를 했다. 그러고 나서 저도 나도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짓고 숱한 사연을 털어 놓았다. 부부가 오랜 세월 살면서 아무런 문제없이 평화롭게 살수만은 없다. 굴곡 없고 사연 없는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나는 3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비교적 금슬 좋게 살아왔다. 하지만 나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갈등이 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되돌리게 한 것은 첫 자리, 첫 마음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꼬였던 마음이 풀리며 회복되었다.
결혼은 ‘우리’가 되어 함께 가는 기나긴 여행이다. 한 곳을 바라보면서 가는 여행이다. 신혼 때 심하게 다퉜던 우리 부부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도 꿈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동반자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 나는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을 떠올린다. 대학교수였던 스콧 니어링은 아동 노동 착취를 반대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해직 되었다.
가장 힘든 시절이었던 이때, 스콧과 헬렌은 많은 나이차와 사회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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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서로를 깊이 사랑하기 시작했다.
“당신은 내 반려자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당신은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내가 당신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당신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정의 참뜻이며, 나는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스물 한 살이나 많은 스콧 니어링을 정신적 동지이자 남편으로 사랑한 헬렌 니어링의 말이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버몬트 산골로 들어가 손수 집을 짓고 땅을 일구며 살았다. 최소한의 시간만 생계를 위한 노동을 했고 나머지는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면서 행복을 찾았다. 욕심 부리지 않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자급자족하며 자연에 어울려 사는 삶을 소망했다.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는 동지였다.
반려자를 만나는 것은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축복이자 선물이다. 우주적 사건이다. 일생을 함께 가되 상대를 내 것으로 붙잡아두지 않고 서로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것.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의 사랑은 서로를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준다.
■ 스승같은 친구
만약 그런 존재가 곁에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인생이다.
“평생에 한두 번 나타날까 말까 한 특별한 영혼의 친구가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같이 이해하는 친구, 몇 마디로 우리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친구.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친구 말이다.”
스티븐 나흐마노비치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에 나오는 말이다.
천재 음악가 쇼팽이 그리 주목받지 못하던 시절,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음악적 동지로 손을 내밀어준 ‘스승 같은’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다름 아닌 리스트였다. 당시 리스트는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파리의 상류사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출중한 외모 덕에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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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그 무렵 쇼팽도 파리에 머물고 있었지만 대중의 인기와는 거리가 먼 무명의 음악가였다.
두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만나, 서로의 음악과 재능을 알아보고 금세 친해졌다. 리스트는 쇼팽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그의 음악을 세상에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자신의 피아노 독주회 자리에서였다. 쇼팽이 자기 대신 연주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리스트가 무대에서 인사를 하고 나자 조명이 어두워졌다. 그 어둠 속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의 감동에 젖어 있던 청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쳤을 때 피아노 앞에 선 것은 쇼팽이었다. 청중은 쇼팽의 훌륭한 연주 실력에 놀라고, 자신의 자리에 친구를 초대한 리스트의 넓은 아량에 큰 감동을 받았다.
좋은 친구로서 힘을 실어준 리스트 덕에 쇼팽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 힘이 되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 스승의 자격, 제자의 자격
얼마 전 티베트 불교와 관련된 책을 보다가 스승의 자격, 제자의 자격에 대한 좋은 글을 발견했다.
스승의 자격 중 첫 번째가 스승은 설법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스승은 피곤하지 않아야 하고 지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의 자격은 첫째, 성실함이다. 둘째는 가르침에 대하여 흥미가 있어야 하는 것이고 셋째가 스승의 허물을 보지 말고 덕성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은 설법을 잘해야 한다는 덕목은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하면 자신의 일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수는 강의를 잘해야 하고 화가는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그래야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분야에서 상당한 경지에 올라야 제자를 얻을 수 있고, 제자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지치지 않아야 한다. 피곤한 줄 몰라야 한다.”는 글을 보면서 나 자신도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스승도 사람인데 어찌 지치지 않겠는가. 그러나 스승의 자리는 남다른 것이라 그만큼 초인적인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몸이 힘들면 마음으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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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정신으로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얼굴은 늘 평화롭고 건강해야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믿음을 잃으면 비밀의 문도 닫히고 작은 일도 잃게 되지만, ale음을 얻게 되면 스승은 그 어떤 비밀도 기꺼이 드러내고 더 큰 일도 믿고 맡긴다.
우리 모두는 배우는 과정에 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는 스승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되려면 스승의 자격도 있어야 하고 제자의 자격도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제자이지만 언젠가는 스승이 될 것을 대비하면서 스승의 자격도 갖춰가야 한다.
■ 마이클 잭슨과 헬퍼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그의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이클 잭슨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퀀시 존스였다.
퀀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를 만들어낸 세 장의 앨범 ‘오프 더 월’ ‘스릴러’ ‘배드’ 등에서 함께 작업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다.
1979년에 낸 첫 솔로 앨범 ‘오프 더 월’이 1,000만 장 이상 팔렸고, ‘스릴러’는 전 세계에서 1억 400만 장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마이클 잭슨의 삶에서 퀀시 존스와의 만남은 음악적인 전기가 되었다. 이무렵 마이클 잭슨에게 퀀시 존스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준 ‘헬퍼’였다.
헬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지만 마지막까지 지켜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마이클 잭슨도 퀀시 존스와 만난 지 15년 후 결별하게 된다. 이미 그의 품에서 머물기에는 너무 커버린 갓이다.
평생 연극을 한 중견배우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화려하게 막이 오르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하다. 연극의 막이 내리고, 관객이 다 떠난 무대에 혼자 서면, 그때의 외로움과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때 수고했다고 등을 두드리며 “우리 소주 한 잔 하자”는 사람이 없을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외롭다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을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놓은 사람은 있었지만 곁에서 그것을 지탱하고 지켜주는,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신체적으로 살려 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세계인을 감동시킨 슈퍼스타였던 만큼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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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뒤의 허탈함과 고독은 그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수많은 시선 속에 살아야 하는 이런저런 힘든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것이 병이되어 요절하게 된 것은 아닐까.
끝까지 나를 키워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은 행운아다. 설리번 선생을 만난 헬렌 켈러가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헬렌 켈러는 신체적 장애라는 불운을 타고났지만 좋은 스승을 만남으로써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스무 살짜리 맹아학교 교사였던 설리번 선생이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여섯 살의 헬렌 켈러를 만났을 때 그 아이는 괴팍한 성격에 동물적인 본능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설리번 선생은 야생의 소녀를 인내심으로 키워 하버드 대학에 보내고 세계적인 자선가로 만들어냈다. 위대한 인물로 키워줬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까지 살려낸 헬퍼가 되어 주었다.
마이클 잭슨에게도 그의 유명세와 심리적 어려움을 받아줄 만큼 가슴이 넓은 헬퍼가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다면, 그처럼 세상을 떠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 가정은 사랑과 화해를 배우는 곳
‘가정’하면 어떤 생각들이 떠오르는가?
따뜻함, 포근함, 맛있는 밥상, 사랑, 행복, 편안함을 떠올렸다면 그 사람에게 가정은 ‘작은 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정이 편안한 곳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곳, 행복한 곳이 아니라 불행한 곳이라면 , 이 사람에게 가정은 ‘작은 지옥’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가정 가족에 대해 따뜻한 느낌을 갖는다. 또한 가족은 언제나 기댈 수 있고, 세상 사람이 다 등을 돌려도 끝까지 나를 응원해 주는 존재라는 믿음이 있다.
하지만 가족이 상처, 아픔인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다. 그런 이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먹는 밥이 가장 맛없고, 가족이 사랑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가족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상처입고 등 돌리며, 비난과 비교에 멍들기도 한다. 사랑을 주지 않은 부모 때문에 비뚤어진 삶을 살기도 한다. 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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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가족에게는 극단의 감정이 교차한다.
나는 3남 4녀 형제들 속에서 성장했다. 만약 나에게 인생의 ‘전투력’이 있다면 어린 시절 형제들과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말이지 수없이 싸웠다. 밥 먹다가도 싸우고, 책 보다가도 싸우고, 놀다가도 싸우고…… 마치 싸우기 위해 형제가 된 듯했다.
이처럼 우리는 가족에게 사랑을 배우기도 하지만, 싸움을 배우기도 한다. 그러면서 화해까지 배운다. 그래서 가정은 작은 천국이기도 하고 작은 지옥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하고 살기에도 시간은 참 짧다. 암에 걸려 생의 나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에서 저자인 위지안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언제나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홀히 하기도 하고 뒤로 미루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마지막 기회’를 맞이하는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인생이란 여전히 셀 수 없을 만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소중한 기회를 숱하게 놓치고도 무엇을 잃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함께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늘 사랑을 말하라.
한어머니가 생일 날 딸이 보내준 문자 한 통에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내 엄마여서 정말 행복해요.”
딸의 진심어린 고백은 그 어머니 인생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직 가족에 대해 쓰디쓴 감정이 남아 있고 화해를 하지 못했다면, 오늘 화해의 손을 내밀라. 더 늦기 전에, 그래서 훗날 가족에 대해 따뜻한 기억을 남겨두지 못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말이다.
■ 부부싸움의 규칙
부부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존 가트맨 박사는 싸우지 않으려는 부부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로의 문제를 회피하고 미루다가 더 깊은 감정의 골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잉꼬부부’라고 하는 부부들이라고 해서 조금도 갈등이 없고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물론 치열하게 싸워도 꼭 지켜야 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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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막말은 하지 말자. 가령 ‘이혼하자’ 같은 말이다.
둘째, 집안에서 끝내자.
셋째, 따로 자지 말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 작센 공의 차남인 알버트 공과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는데 처음부터 부부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신혼 초에 부부싸움을 했는데, 알버트 공이 크게 화가 나서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렸다. 한 참 후에 빅토리아 여왕이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여왕입니다.”
알버트 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여왕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여왕입니다.”
이번에도 알버트 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누구요?”
“당신의 아내입니다.”
그제야 알버트 공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부부는 갈등이 생겼을 때도 지위나 체면, 자존심 따위의 외적인 포장을 벗어던지고 만나야 한다.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로 만날 때, 불필요한 오해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012. 10. 1. 끝
세번째 춤, 부터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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