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프랑수아 를로르
0 프랑스의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
0 이 책은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실화 소설
파리 중심가 한복판에 진료실을 갖고 있는 정신과 의사 꾸뻬 씨,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이 도시에서, 꾸뻬 씨는 둥근 뿔테 안경에 콧수염을 기르고 의사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진료실은 언제나 상담을 원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친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를 찾는 여자. 신의 목소리를 듣는 남자, 환자의 죽음을 목격하고 슬퍼하는 의사, 사랑의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게 된 점성가, 어느 날 꾸뻬 씨는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꾸뻬 씨는 진료실 문을 닫고 전 세계로 여행을 떠났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지 알기 위해.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어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영국, 일본 등 12개국에서 번역되었다.
■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
자기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꾸뻬라는 이름의 정신과 의사가 있었다. 자신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지만, 그의 용모는 영락없는 정신과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진료실 역시 이 진짜 정신과 의사를 꼭 빼닮아 있었다. 진료실 안에는 그의 어머니가 병원 개업 때 선물한 골동품처럼 생긴 긴 의자며 이집트와 인도풍의 모조 조각상들, 그리고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어떤 것은 너무 어려워 아예 읽어 보지도 않은 책들로 가득 찬 커다란 책장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꾸뻬에게 진료를 받고 싶어했다. 그것은 그가 정신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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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말고도 실력 있는 의사들만이 알고 있는,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는 비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비법이란 다름 아니라 사람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관심이었다.
환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또 자신의 이야기가 의사에게 지루하게 들릴까 봐 염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환자들은 의사가 지루해 하거나 피곤해 하지 않도록 말을 할 때 주의를 기울인다. 의사를 자주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은 의사가 자신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꾸뻬와 함께 하는 진료는 거의, 아니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꾸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여 그들을 격려하고, 짧은 콧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음, 음-”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가끔씩 사람들에게 “잠깐만요,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세요. 이해가 잘 가지 않거든요.” 하고 말하곤 했다. 그가 정말로 피곤한 날을 제외하고는 환자들은 꾸뻬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야기에 흥미 있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꾸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상담 날짜를 잡고, 꾸뻬의 이름을 친구들에게 알려 주어 다른 환자들도 그를 찾게 했다. 그 결과 꾸뻬는 거의 하루의 절반을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할애하게 되었고, 상담료를 비싸게 부르지 않았음에도 점점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기에 이르렀다.
꾸뻬 씨가 성공한 이유가 단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대답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신은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물으면 꾸뻬 씨는 이렇게 되묻곤 했다.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죠?”
이런 뜻밖의 질문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고, 그럼으로써 그는 사람들이 ‘그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나아가 꾸뻬는 약에 대해서도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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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처방이 더 이상 효과를 나타내지 않을 때, 또는 증상이 간단해서 약 복용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인 경우, 꾸뻬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또 다름 방법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심리요법이었다. 이름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심리요법이란 간단히 말해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들을 돕는 방법이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평소에 대화하는 것과 심리 요법은 같지 않다는 것, 다시 말해 특별한 방법으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직업적인 기술과 약, 심리요법,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관심이라는 그만의 비결은 꾸뻬를 능력 있는 정신과 의사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능력 있는 정신과 의사나 얻을 수 있는 성공적인 결과들이 그에게 매번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뻬는 자신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는 행복하지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사람들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한 사람들
삐뇽이라는 환자가 있었다.
“삐뇽 씨 약은 제때 먹고 있는 거죠?”
“네, 네. 예수님은 나의 목자십니다. 그분은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물론이죠 그런데 약은 잘 복용하고 있는 건가요?”
“네, 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삐뇽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으며, 하느님은 인간과 똑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고,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대답한다고 믿고 있었다.
문제는 삐뇽이 약을 복용하지 않은 날이면 혼자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중얼거린다는 데 있었다. 게다가 술이라도 한 잔 들이켠 후엔 목소리가 더 커졌다. 그때마다 삐뇽은 오랫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대도시 중심에 위치한 꾸뻬의 진료실은 일반 병원과는 사뭇 달랐다. 그를 만나러 오는 신사 숙녀들은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했고, 부모의 보살핌 아래 성장했으며, 직장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잃은 것들을 메울 다른 것들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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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진짜로 병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런 병은 꾸뻬가 학교에서 치료법을 배운 병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녀에게 다정하지 않은 부모를 만난 것도 아니었으며,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어떤 사람을 잃은 적도 없는, 한 마디로 진짜 불행한 삶을 산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행복하지도 않았다.
까뜨린느는 자신의 일에 성공한 여자로 흔히 말하는 능력 있는 사업가였다. 그녀는 물건들을 그 상품이 갖고 있는 원래의 가치보다 훨씬 비씬 가격에 파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그런 그녀에게 매우 만족했기 때문에 곧잘 상당한 액수의 특별 수당을 주기도 했다.
그렇지만 까뜨린느는 늘 불만이었다. 특히 남자들에 대해서 그랬다. 그녀는 매력적이기 때문에 그녀의 삶에는 항상 남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만남은 매번 실패로 끝났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남자들과, 자극적인 남자들에 대해 그녀는 어느 쪽이든 그들과 평생을 함께 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늘 따지곤 했다.
꾸뻬는 완전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기 위해 까뜨린느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친절하면서도 자극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것이 행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회적 성공과 친절함을 겸비한 사람을 찾는 것이 그리 말처럼 쉽겠는가! 하지만 까뜨린느에게 그 점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고, 그녀는 남자에 대해 정말로 까다롭게 굴었다. 수많은 까뜨린느들……. 꾸뻬에겐 그녀와 비슷한 손님들이 많이 있었다.
까뜨린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남자들도 많았다. 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상냥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여자를 만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동시에 자유롭게 살고 싶어했다.
대체로 옷을 잘 차려입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그다지 만족해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늘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이 과연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아니면 결혼할 뻔했는지를 묻곤 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어떤 것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이 모두 흘러가 버려 결국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 다가서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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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은,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다른 모든 지역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왜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많은 행운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 정신과 의사가 더 많은 걸까? 이런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꾸뻬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꾸뻬는 자신이 불행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꾸뻬를 만나는 것을 좋아했지만, 꾸뻬는 오히려 마음의 부담만 커질 뿐이었다.
그는 삐뇽과 같은 환자를 만날 때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훨씬 더 피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불행하지도 않으면서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꾸뻬는 점점 더 피곤해졌고 마침내는 그 자신 역시 점점 불행해져 갔다. 자신이 과연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요한 어떤 것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질문하기에 이르렀다.
이쯤 되자 꾸뻬는 약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불행한 사람들의 병이 전염성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새삼 의심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을 가장 뛰어난 정신과 의사로 만들어 줄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마치 방학 숙제를 하는 학생처럼 그는 계획을 세웠다.
이제 꾸뻬는 여러 나라를 여행할 것이고, 세상 모든 곳에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무엇이 불행하게 하는가를 발견하고자 할 것이다. 만일 행복의 비밀이 있다면 반드시 그것을 찾아내고야 말겠다고 꾸뻬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 어디서 왔는가 알기 위해 멀리 떠나다
꾸뻬는 환자들에게 자신이 곧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알렸다. 그 소식을 듣자, 깊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어떤 환자는 꾸뻬에게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의사 선생님. 좀 쉬어야 해요. 특히나 정신과 의사들은 가끔씩 쉴 필요가 있어요!”
하지만 꾸뻬가 휴가를 떠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환자들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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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요? 이제 몇 주일 동안 당신을 볼 수가 없겠군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많은 걸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곧잘 불행해 하는, 꾸뻬로서는 도저히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는, 그리고 꾸뻬를 너무도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꾸뻬에게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 꾸뻬는 그녀에게도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알렸다.
꾸뻬와 클라라는 서로 좋아했지만 둘이서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게 힘이 들었다.
클라라는 아직 젊었지만 삶에서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 증거로 꾸뻬가 그녀의 사무실로 전화를 할 때마다 그녀와 통화를 하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그녀는 언제나 회의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말을 이용해 해외 여행을 떠날 때마다 그녀는 월요일까지 끝내야만 하는 일들 때문에 그곳까지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왔다. 심지어 그가 혼자 산책을 하거나 옆에서 잘 때에도 클라라는 일을 했다.
꾸뻬가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하자, 클라라는 그렇게 갑자기 여행을 떠날 순 없다고 대답했다.
꾸뻬는 먼저 중국으로의 여행을 결심했다. 중국을 여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행복의 비밀들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읽은 ‘푸른 연꽃’이란 만화에 나오는 땡땡의 모험과, 땡땡의 친구인 창의 아버지 왕 아저씨를 떠올렸다. 긴 턱수염과 함께 무척이나 지혜로워 보이는 그 중국 노인은 행복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항공사 직원이 그에게 좋은 소식 한 가지를 알려 주었다. 항공사 측에서 꾸뻬가 여행하기로 되어 있는 곳까지의 탑승객이 예상외로 너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비행기의 다른 칸에 그의 좌석 하나를 마련해 준 것이다. 그 특별한 칸은 마치사업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즈니스 클래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곳에는 안락한 의자와 샴페인 그리고 작은 개인 전용 텔레비전이 마련되어 있었다.
꾸뻬는 그 비즈니스 클래스 안에서 자신이 매우 행복해 하고 있음을 느겼다. 의자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여자 승무원들이 다른 어느 때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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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더 많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그것은 방금 마신 샴페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하늘 속으로 점점 더 높이 날아가는 동안, 꾸뻬는 행복에 대해 생각했다. 왜 이곳에 있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것일까? 물론 그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그는 편안하게 몸을 뻗을 수 있었고, 공짜로 샴페인을 마실 수 있었으며, 긴장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의 집에 있는 안락한 소파 위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집에서는 지금 이 비행기에서의 순간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꾸뻬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두세 사람이 역시 미소지으며 그들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꾸뻬는 그들이 자신처럼 항공사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꾸뻬는 옆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옆좌석에서는 한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온통 숫자로 가득 찬 영자 신문을 읽고 있었다.
그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사업 관계로 출장을 가는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신사의 이름은 비비엥이었는데, 비비엥은 꾸뻬에게 중국을 처음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꾸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비비엥은 자신이 중국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면서, 그곳에 자신의 공장이 있으며, 그곳에선 비비엥과 꾸뻬가 사는 나라보다 훨씬 싼 노동임금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보다 돈이 덜 들지만 품질은 똑 같지요.”
비비엥의 공장에서는 장난감과 전자 게임기 등 아이들을 위한 모든 것을 생산하고 있었다.
대화를 시작했을 때부터 꾸뻬는 비비엥에게 행복한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꾸뻬는 비비엥에게 “너무나 편안한 의자군요!” 하고 말하면서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게 시작하면 비비엥은 아마도 비즈니스 클래스 여행이 참으로 만족스럽다고 말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비엥이 투덜거리는 것이었다.
“흥, 이 의자는 퍼스트 클래스보다 훨씬 덜 눕혀지는 걸요.”
꾸뻬는 비비엥이 줄곧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을 오다가, 어느 날 한 단계를 높여 퍼스트 클래스에 탑승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 이후로 계속 그것을 기억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꾸뻬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비비엥과 꾸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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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지금 완전히 똑같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똑같은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둘이 느끼는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 꾸뻬는 이 모든 것들에 행복해 했다. 비비엥과는 달리 이런 것들에 익숙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비엥과의 또 다른 점이 있다면, 비비엥은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하는 것을 알고 기다렸던 반면, 꾸뻬는 이 비즈니스 클래스 여행이 뜻밖의 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여행이 가져다 준 첫 번째 작은 행복이었지만, 비비엥을 보면서 꾸뻬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일 다음번 여행에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게 되면, 오늘 비비엥이 1등석에 타지 못한 것을 불만스러워하듯이 비즈니스 클래스에 타지 못한 것을 불만스러워하지 않을까?
이것은 꾸뻬가 여행에서 발견한 첫 번째 배움이었다. 그는 이번 여행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작은 수첩을 꺼내 다음과 같이 적었다.
배움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일을 그만두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비행기에서 내린 꾸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푸른 연꽃’에 나오는 풍경들과 똑같은 것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꾸뻬가 도착한 도시에는 그의 나라 사람들이 사무실을 만들기 위해 도시 전체에 건물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리로 된 현대식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작은 산자락 끝과 바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다는 것 말고는 건물과 도로 모두 꾸뻬가 사는 나라와 완전히 똑 같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늘 보던 사람들이 아닌, 회색 옷을 입은 중국인들이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고, 큰 목소리로 휴대폰에 대고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꾸뻬는 수많은 중국인들, 그리고 가끔 영화 속 주인공보다는 못하지만 꽤 예쁜 여자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녀들은 무척 바빠 보였으며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은 클라라의 옷차림과 비슷했다. 꾸뻬는 그녀들 역시 사무실에서 많은 회의에 참석해야 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꾸뻬는 자신의 여행이 처음에 계획했던 여행과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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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행히 친구 뱅쌍이 그 도시에 살고 있었다. 뱅쌍은 꾸뻬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꾸뻬가 정신과 의사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은행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최신 유행에 따라 밑부분에 작은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실크 넥타이를 많이 갖고 있었다. 골프를 즐기고, 꾸뻬가 비행기에서 만난 비비엥처럼 숫자로 가득한 영자 신문을 나날이 읽었다. 하지만 뱅쌍은 비비엥과는 달리 공장에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꾸뻬와 뱅쌍은 고층 건물 꼭대기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이기 때문에 꾸뻬는 뱅쌍에게 삶이 행복하냐고 편안한 마음으로 물을 수 있었다. 그 질문에 뱅쌍은 웃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쁠 때 웃는 그런 웃음이 아니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할 시간이 없다고 뱅쌍은 설명했다. 그리고 그런 이유 때문에 곧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꾸뻬가 물었다.
“당장 그만 둘 거야?”
꾸뻬는 사실 조금 놀랐다. 그리고 꾸뻬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덜 피곤해 보여 뱅쌍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뱅쌍이 말했다.
“아니, 지금 당장이 아니라 3백만 달러를 벌고 난 뒤에.”
뱅쌍은 그것이 자기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긴 최신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은 전에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른 것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꾸뻬가 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해?”
(……) 꾸뻬는 뱅쌍에게 어떤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뱅쌍은 자신이 하는 일은 일종의 ‘기업 합병’이라고 설명했다.
꾸뻬는 적지 않은 사람들, 다시 말해 신문에서 숫자란들이 있는 면을 주로 보던 사람들이 그 합병으로 많은 돈을 잃었고, 그것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음을 알고 있었다.
뱅쌍은 합병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을 잃고 그들보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직업을 잃는 식으로 결국 그것이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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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가 물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것을 시도하는 거지?”
뱅쌍이 웃으며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지.”
꾸뻬에게는 이 저녁 식사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행복에 관해 많은 것들을 메모할 수 있을 껏 같았다. 그러나 와인을 많이 마신 게 후회가 되었다. 벌써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뱅쌍은 무척 즐거워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이 식사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한 듯 했다. 뱅쌍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고집을 부렸다.
뱅쌍이 말했다.
“넌 중국에 대해 알아야만 해!”
꾸뻬는 뱅쌍이 가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장소가 이 레스토랑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에 관해 배운 것들을 적기 위해 호텔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뱅쌍이 친구이기 때문에 그가 가자고 하는 곳으로 함께 가기로 했다.
레스토랑 안은 유쾌한 음악이 흐르고, 부드러운 조명 아래 뱅쌍과 꾸뻬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게 앉아 있었다. 중국인들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꾸뻬는 영화 속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예쁜 중국여자들이 그곳에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뱅쌍이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시켰다. 그 순간 매력적인 중국 여인이 뱅쌍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나쁘진 않았지만 꾸뻬는 이 여행의 목적이 행복의 비밀을 배우기 위한 것임을 상기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자신이 배운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3백만 달러를 번 뒤 자신의 일을 그만두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배움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합병을 결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배움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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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하고 계세요?”
꾸뻬는 눈을 들어 자기 앞에 나타난 여성을 바라보았다.
꾸뻬는 그녀와 통성명을 했다. 그녀는 잉리라는 이름의 대학생이었다. 꾸뻬가 물었다.
“무슨 공부를 하죠?” 잉리가 대답했다.
“호텔 관광학이요.”
꾸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뱅쌍이 꾸뻬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어때, 좋아? 잘 즐기고 있는 거야?”
그날 밤 꾸뻬는 잉리와 함께 지냈다.
■ 노승이 알고 있는 행복의 비밀
꾸뻬는 기분이 매우 우울했다. 호텔을 나온 그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마침 다양한 종류의 커피를 파는 모던한 감각의 카페 하나가 눈에 띄었다.
꾸뻬는 거리를 내다보기 위해 유리창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거리에도 많은 중국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꾸뻬는 자신이 조금 불행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이 불행의 존재 역시 행복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꾸뻬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자신은 불행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로 그는 머리가 좀 아팠다. 그것은 뱅쌍이 지나치게 많이 주문한 술 탓이었다. 그렇게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것에 그는 익숙하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잉리 때문에 불행했다. 잉리라는 이름은 단순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꾸뻬에게 안겨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문제들이란 것이 스스로 인정하기에 기분 좋은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나온 꾸뻬는 길을 건너려다 그만 차에 치일 뻔했다. 이 도시에서는 자동차들이 왼쪽으로 다닌다는 사실을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뱅쌍은 근무 중이기 떼문에 그를 보러 갈 수도 없었다. 뱅쌍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일했다. 그들은 그날 저녁에도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지만 꾸뻬는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는 뱅쌍에게 조금 화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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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뱅쌍이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아침의 결과란 꾸뻬에게 불행을 느끼게 해 주었을 뿐이다. 뱅쌍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을 좋아했고, 그래서 꾸뻬 역시 꽤 많이 마시게 되었다. 또 뱅쌍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 직업인 중국 여인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꾸뻬는 잉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길을 걷다가 꾸뻬는 우연하 선로가 하나뿐인 작은 기차역에 이르렀다. 사실 그건 일반 기차가 아니라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기차였다. 이미 말했듯이 그 도시는 산자락 끝에 건설되었다. 장난감처럼 생긴 작은 기차는 바로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기차였다. 꾸뻬는 산 위로 올라가면 기분이 좀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챙 달린 모자를 쓴 나이 많은 중국인으로부터 표 한 장을 사서 나무로 된 작은 객차 안에 앉았다.
기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다시 잉리를 생각했다. 그녀가 행복한 모습으로 타월을 몸에 두른 채 욕실을 나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꾸뻬가 어떤 사실을 알아차렸음을 감지하면서 그녀는 웃음을 멈췄었다. 그후 그녀는 슬퍼 보였고, 두 사람은 대화를 하는 게 힘이 들었다.
이윽고 시동이 걸리고 작은 기차는 건물들을 가로지르며 산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산 위의 역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거대한 정육면체 모양으로, 아래에 있는 역보다 훨씬 컸다. 그는 역을 빠져 나와 더 높은 곳으로 난 길을 다라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홀로 산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를 둘러싼 산봉우리들은 매우 아름다웠다. 초록색 나뭇잎들은 뾰족뾰족하고, 누가 보더라도 중국의 산이었다. 숨이 차긴 했지만 기분이 훨씬 좋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꾸뻬는 메모를 하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배움 5 행복은 산 속을 걷는 것이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산속을’에 줄을 긋고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이라고 고쳐 적었다. 그때 길가에 세워져 있는 중국어로 씌어진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다행히 그 밑에 영어로 ‘츄린 사원’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꾸뻬는 너무도 기뻤다.
사원으로 가는 길은 갈수록 더 험했지만 꾸뻬는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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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가끔씩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멀찌감치 서 있는 그 사원을 흘낏 볼 수 있었다. 실로 경탄할 만한 곳이었다. ‘푸른 연꽃’에 나오는 것과 똑 같았다. 아름답게 물결치는 사원의 기와지붕과 둥근 작은 창문들은 더없이 중국적이었다.
그는 입구에 있는 밧줄을 잡아 당겼다. 그 순간 종소리가 울리고 한 수도승이 문을 열기 위해 다가왔다.
그 젊은 승려는 유창한 영어로 꾸뻬에게 사원을 방문하는 것은 일주일에 단 하루만 가능하며 오늘은 그날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꾸뻬는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젊은 수도승은 무뚝뚝하게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꾸뻬를 입구에 세워둔 채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젊은 수도승이 늙은 노승과 함께 나타났다. 꾸뻬는 너무도 기뻤다. 노승은 꾸뻬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오시오. 보아하니 멀리서 온 분이시군요.”
그리고는 화통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노승은 꾸뻬를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노승의 사무실은 꾸뻬의 진료실과 매우 비슷했다. 그 안에는 진짜 책상과 의자, 많은 책들, 컴퓨터 한 대, 두 대의 전화기, 중국산 작은 조각상들이 있었으며 더불어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너무도 아름다운 산의 풍경이 함께 있었다.
꾸뻬는 노승에게 혹시 행복에 관해 지혜로운 말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승이 말했다.
“첫번째 원인은 사람들이 행복을 목표라고 믿는 데 있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꾸뻬는 노승이 알고 있는 행복의 비밀을 자신에게 알려주기를 바랐다.
노승이 미소짓는 얼굴로 꾸뻬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행복에 대한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을 나선 것은 매우 좋은 생각이오. 여행을 마치거든 나를 만나러 다시 이곳으로 오시오.”
그리고는 또 웃음을 터뜨렸다.
■ 모두가 보는 것과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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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꾸뻬는 함께 저녁을 먹기 위해 뱅쌍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로 가고 있었다. 일요일이었지만 다음날까지 제출해야 할 과제 때문에 뱅쌍은 사무실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다.
꾸뻬는 사업이란 항상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은 그렇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이란 단지 환자들이 너무 오래 이야기하지 않도록 적절히 이야기를 끊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음 환자들의 진료가 늦어질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그 환자들은 기분이 나빠져서 더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뱅쌍의 건물 앞에 이르렀다. 너무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꾸뻬는 차 한 잔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곳에 큰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찻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의 여종업원은 그다지 예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꾸뻬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아름다움이란 때로 피곤한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들의 아름다움에 너무 예민한 것이 꾸뻬의 작은 약점이기도 했다. 자신만이 그것 때문에 고통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언젠가는 그것을 초월할 수 있게 되기를 원했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일 수도 있었다. 꾸뻬는 뱅쌍에게 전화를 걸었다. 뱅쌍은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기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뱅쌍은 꾸뻬에게 자신이 갈 때까지 찻집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꾸뻬는 창밖으로 빌딩 입구를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그때 한 가지 흥미 있는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작은 중국 여자들 여러 명이 땅바닥에 천으로 된 커다란 돗자리를 펼쳐 놓고 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들은 무리지어 앉아 있었는데 마치 소풍 나온 학생들 같았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그들이 중국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두 체구가 작고 조금 마른 듯했으며, 피부는 햇볕에 잘 그을려 있었다. 그들은 무척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자주 웃었다. 꾸뻬는 그 지역에 도착한 뒤 그런 비슷한 무리들을 많이 지나쳤었다.
빌딩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꾸뻬는 뱅쌍이 오는지 살폈다.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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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뱅쌍이 그의 동료들과 빌딩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즐거워 보이지 않았고 피곤해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큰 걱정거리라도 있는 것처럼 땅바닥에 고개를 떨군 채 걷고 있었다. 서로 이야기하며 무리지어 나오는 그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심각해 보였다. 어찌보면 서로에게 화가 나 있는 듯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의 머릿속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매우 근심에 찬 표정이었다.
마침내 뱅쌍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보자 꾸뻬는 무척 반가웠다. 외국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은 자기 나라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뱅쌍에게 어디서나 돗자리를 깔고 무리 지어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여자들 모임에 대해 물었다. 뱅쌍은 그들이 가정부로 일을 하며, 같은 나라에서 왔고, 모두 중국에서 멀리 떨어진 매우 가난한 작은 섬나라 출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그 도시에서 그리고 세상의 다른 많은 도시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꾸뻬가 물었다.
“그런데 왜 여기에 모여 있는 거지? 천으로 만들어진 돗자리 위에 앉아 뭘 하고 있지?”
뱅쌍이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리 갈 곳이 없거든.”
그날이 일요일이고 쉬는 날이기 때문에, 그들은 주인 집에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카페에 갈 돈도 없어서 그렇게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여럿이 함께 모인다는 것이었다. 그들 나라에는 많은 섬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섬별로 마을별로 자주 그룹을 만든다고 뱅쌍은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천 돗자리들이 돈이 많은 빌딩들 사이에 가난한 섬들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꾸뻬는 카페조차 갈 능력이 없는 데도 활짝 웃고 있는 그 작은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매우 심각한 얼굴로 빌딩을 걸어나오던 뱅쌍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꾸뻬는 세상은 너무도 경이롭거나 아니면 너무도 불가사의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찻집을 나왔을 때, 꾸뻬는 돗자리 위에 앉아 웃고 있는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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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는 자신이 얼마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매우 행복해 보인다고 말하고,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오늘은 우리가 쉬는 날이거든요!”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행복한 건 친구와 함께 있기 때문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말했다.
“네, 바로 그거예요.”
꾸뻬는 그들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은 꾸뻬와 똑같은 종교를 갖고 있었다. 오래전 꾸뻬의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섬을 점령해 통치했던 것이다. 그 시대의 서양인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쁜 경향이 있었다. 꾸뻬에게 손을 흔들며 웃는 얼굴로 작별 인사를 하는 걸 보니 그들은 그런 불행한 역사 때문에 꾸뻬를 미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도 행복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배움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배움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배움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배움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움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적을 때 꾸뻬는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더 강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미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꾸뻬는 지금 잉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꾸뻬가 잉리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뱅쌍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럴 수가 없는데, 일요일은 그들이 만났던 가게가 문을 닫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잉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전화번호를 남겼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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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은 친구!” 뱅쌍이 걱정했다.
꾸뻬는 뱅쌍에게 중국인 애인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뱅쌍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누구도 진정한 애인이 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꾸뻬는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꾸뻬가 정신과 의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꾸뻬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뱅쌍이 스스로 그 일에 대해 더 말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뱅쌍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결론지었다.
“이곳의 문제는, 여자들이 널 진심으로 좋아하는지, 아니면 너의 여권을 좋아하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는 거야.”
헤어지면서 뱅쌍은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구뻬는 혼자 이탈리아 식당에 앉아 잉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전화를 했을 때 잉리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곧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지금 그는 기다리고 있고, 그녀는 약속 시간에 늦어지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올 것인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 위해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그 순간 꾸뻬는 잉리가 레스토랑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머리가 비에 약간 젖어 있었고, 언제나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마침내 잉리는 꾸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잉리는 처음 만났던 날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수줍어 보이고, 꾸뻬를 쳐다볼 용기가 없거나 실수를 하게 될까봐 조심하는 듯했다.
꾸뻬가 먼저 그녀에게 자신의 삶과, 그가 일하는 도시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잉리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은 그 도시가 좋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잉리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화에 있어 피해야 할 한 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찍이 대학교수였으며, 중국역사의 전문가였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중국을 지배하던 통치자는 그와 같은 교수들이 쓸모없고 해로운 존재라 여겨 그를 가족과 함께 중국의 마지막 변방인 아주 먼 곳으로 추방시켰다. 그곳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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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모두 강제 농장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그 시대에는 중국을 지배하는 통치자 말고는 아무도 책을 읽을 권리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잉리의 여동생들은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쓸모없고 해로운 자의 지식들은 학교에 다닐 권리를 박탈당한 채 땅을 일구며 살아가야만 했다. 어렸을 때 잉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을 아버지에게서 조금이나마 배울 수가 있었는데,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집단 농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너무 힘에 부쳤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궁부를 많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녀의 여동생들은 한 번도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오직 비비엥의 공장 같은 곳에서 직공으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잉리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가 왜 여동생들처럼 공장 직공이 되지 않았는가를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잉리로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계속되는 꾸뻬 씨의 행복 여행
꾸뻬는 슬픈 마음으로 비행기 안에 앉아 있었다. 창을 통해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어찌나 멀리 있는지 마치 비행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공중에 정지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은 수첩을 꺼냈지만, 더 이상 무엇을 적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옆좌석에는 엄마와 아기가 앉아 있었다. 꾸뻬는 그녀가 아기의 친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곧 깨달았다. 아기는 인형처럼 금발에 푸른 눈을 하고 있는데,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는 천 돗자리 위에 모여 있던 동양 여자들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꾸뻬는 마음이 슬펐다. 정든 장소를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도시는 일주일 전만 해도 그가 전혀 알지 못하던 곳이었다. 공항까지 배웅 나온 뱅쌍 역시 슬퍼보였다.
꾸뻬는 또 잉리를 생각했다. 레스토랑 안에서 그녀가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다음에 꾸뻬가 자기 가족에 대해 말하고 난 뒤, 그들 사이에는 짧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때 잉리가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 친절해요.”
잠시 후 두 사람은 경사진 작은 도로를 걸어 내려갔다. 꾸뻬는 그녀를 호텔로 데리고 가고 싶었지만, 마음속에서 거부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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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우연히 찾아낸 바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분위기가 좋은 곳이었다. 그곳의 중국인들은 서로의 잔을 채워 주며 웃고 노래했다. 꾸뻬가 사는 나라의 사람들과 비슷했다. 비비엥이 비행기 안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근본적인 면에서는 중국인이든 서양인이든 다 닮았다고 그는 말했다.
즐거운 분위기 덕분에 잉리는 웃음을 되찾았다. 기분이 나아진 그녀를 보면서 꾸뻬도 기분이 좋았다.
지금 비행기 안에서 꾸뻬는 자신의 수첩에 어떤 것을 적을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옆좌석의 아기가 꾸뻬를 쳐다보면서 작은 두 팔을 그에게로 뻗고 있었다. 아기와 유모는 함께 미소지었다. 꾸뻬도 그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슬픈 기분이 좀 가라앉는 듯했다. 그때 키가 큰 금발 부인이 그들 옆 복도에 도착했다. 꾸뻬는 그녀가 아기의 엄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비즈니스 클래스로 여행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녀가 유모에게 물었다.
“별일 없죠?”
그리고 나서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아기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꾸뻬는 다시 수첩을 펼쳐 이렇게 적었다.
배움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 부자 나라에서 일하는 가난한 나라의 정신과 의사
꾸뻬는 또 다른 비행기 안에 있었다. 이 비행기는 지금까지 그가 탔던 다른 비행기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 비행기를 타기 전에 그는 또 다른 비행기를 두 번이나 탔었다. 하지만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잉리에 대한 생각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비행기는 흑인 신사와 부인들로 가득했다. 꾸뻬가 이 비행기 안에서 거의 유일한 백인이었다. 그 많은 흑인 신사와 부인들은 모두 옷을 잘 차려 입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시골에 있는 구뻬의 조부모가 미사에 참석할 때 입는 옷처럼 약간 유행에 뒤떨어져 보이기도 했다. 부인들은 커다란 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신사들은 약간 큰 오래된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꾸뻬에게 시골 생각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들의 옷차림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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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그들이 들고 있는 커다란 장바구니와, 살아 있는 닭과 오리들이 들어 잇는 새장이었다. 그 동물들은 약간 시끄러웠지만, 오히려 그 소리가 비행기가 내는 소음을 잠시 잊게해 줘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풍경은 꾸뻬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했다.
옆좌석에는 한 흑인 엄마가 역시 흑인인 아기를 데리고 있었다. 그녀는 유모가 아니고 진짜 엄마였다. 그녀는 책을 읽으면서 내내 아이를 품에 안고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아기는 자기 엄마의 책을 살펴보는 꾸뻬를 쳐다보았다. 엄마라고는 하지만 그녀는 꽤 젊었다. 꾸뻬와 비슷한 나이인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다름 아닌 정신의학에 관한 책이었다. 그녀 역시 정신과 의사였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실로 우연히 직업상의 동료를 만나게 된 것이 대해 두 사람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루이즈였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나라로 휴가를 오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조금 전 그들이 떠나온, 세계에서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은 나라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꾸뻬는 왜 그녀가 자기 나라에 남아 일을 하지 않는가 물어보았다.
그녀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난 내 아이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거든요.”
“예를 들어. 난 내 아이들이 운전사나 경호원 없이도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는 거죠.”
꾸뻬는 자신에 대해 잠깐 생각을 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것이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 어렸을 때 그는 운전사나 경호원과 함께 학교에 오는 친구들을 무척 부럽게 여겼었다. 하지만 엄마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했다. 마리 루이즈는 자기 집에 한 번 들르라고 말하며 그의 수첩에 주소를 적어주었다.
얼마 후 기다리고 있던 친구 장 미셸이 얼굴에 미소를 띠우고 다가왔다. 장 미셸은 뱅쌍과 마찬가지로 꾸뻬의 오랜 친구였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많이 달랐다. 장 미셸은 더운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병을 가져다주는 작은 해충들을 전공한 의사였다. 불행히도 더운 나라에는 작은 해충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의사는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일을 하기 위해 서둘러 이 나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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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은 요트나 스키 타는 사람처럼 체구가 건장했다. 그는 여자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그 자신은 이성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결과 여자들은 그에게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장 미셸과 꾸뻬가 친구라는 것을 알고 여자들은 종종 장 미셸에 대해 묻기 위해 꾸뻬에게 접근해 오곤 했었다.
장 미셸이 짐꾼들을 물리치고 꾸뻬의 짐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들은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걸인들이 있었다. 걸인들은 방금 전의 짐꾼들처럼 곧바로 꾸뻬를 주목했다. 주차장에 있던 모든 걸인들이 일제히 손을 뻗으며 꾸뻬에게 다가왔다.
“신사 양반, 신사 양반……”
장 미셸이 앞장서서 걸었다. 그는 걸인들을 쳐다보지도 않는 듯 했다. 그가 꾸뻬에게 말했다.
“널 위해 좋은 호텔을 잡아 놓았어. 알아 둬, 여긴 좋은 호텔이 딱 둘 밖에 없어.”
그들이 차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꾸뻬는 이미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동전과 지폐들까지 나눠 준 뒤였다. 장 미셸은 그제서야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그래 너한테는 이런 일이 처음일거야.”
장 미셸의 지프차 옆에는 한 젊은 흑인 남자가 장총을 들고 서 있었다.
장 미셸이 말했다.
“마르셀을 소개할게, 우리의 경호원이야.”
차는 걸인들을 헤치고 주차장을 빠져 나와 도시로 향하는 도로로 접어들었다.
호텔은 매우 아름다웠다. 호텔 전체가 큰 정원으로 꽃이 만발한 나무들과 객실로 쓰이는 작은 방갈로들, 그리고 나무로 만든 구름다리 아래에 커다란 S자 모양의 수영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사람들이 휴가철에나 다녀가는 여느 호텔들과는 약간 다른 분위기였다. 우선 입구에 붙은 안내 표지판부터 달랐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고객분들과 방문객 여러분, 무기를 갖고 호텔 안으로 들어오지 마십시오. 무기를 갖고 계신 분은 반드시 프런트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호텔 안에는 이상한 반바지 차림의 백인들이 대낮부터 바에서 한잔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 나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파병해 만든 군대 중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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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만난 한 남자가 꾸뻬에게 이 모든 것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는 백인이었지만 제복을 입지 않고 있었고, 뱅쌍의 주말 옷차림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남자는 외국인이지만 꾸뻬의 나라 말을 아주 잘 했고, 술 대신 콜라 만을 마셨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도였다. 꾸뻬는 알프레도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었다. 그것에 대해 그는 대답했다. 자기 나라는 평판이 별로 좋지 않은데 그것은 그 나라에서는 나쁜 흥분제를 얻을 수 있는 식물을 아무 데서나 자라게 방치해 두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꾸뻬는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 나라에 왔느냐고 물었다.
알프레도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농사를 지으려구요!”
꾸뻬 역시 정신과 의사답게 눈치가 빨랐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흥분제를 만드는 식물을 재배한다는 뜻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꾸뻬는 알프레도와의 만남이 행복에 대한 설문 조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되리라는 걸 알았다. 그는 알프레도에게 무엇이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물었다.
알프레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 내 아이들이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죠.”
꾸뻬가 자신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라고 말하자, 알프레도는 갑자기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알프레도는 자신의 아내가 줄곧 불행한 심리 상태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족한 게 아무 것도 없지만 심한 마음의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의사들이 여러 가지 약을 써서 치료해 보려고 시도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꾸뻬는 그 약들의 이름을 물었다. 알프레도는 약 이름이 방에 있다며 당장에 처방전을 찾으러 방으로 갔다. 기다리는 동안 꾸뻬는 앞에 있는 흑인 웨이터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시도르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중반의 남자였다. 꾸뻬는 이시도르에게 물었다. 무엇이 그의 삶을 행복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이시도르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내 가족한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을 때죠.”
꾸뻬는 그것이 전부냐고 물었다. 이시도르는 잠시 생각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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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끔씩 두 번째 사무실에 가는 것.”
꾸뻬는 이시도르가 웨이터 일 말고도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알프레도가 아내의 처방전을 갖고 돌아왔다. 처방전을 검토해 보니 많이 잘못돼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꾸뻬는 그녀의 마음의 병이 어떤 종류의 것인가를 알기 위해 알프레도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떤 약이 그녀를 좋아지게 할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의학 세미나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알프레도가 사는 나라의 실력있는 정신과 의사가 기억났다.
꾸뻬는 알프레도에게 그 의사의 이름과, 그와 상담을 하기 전까지 시도해 볼 약들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때 장 미셸이 도착했다. 그는 꾸뻬가 알프레도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는 순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장 미셸은 바쁜 시늉을 했다. 알프레도가 또 만나자며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이에 장 미셸은 재빨리 꾸뻬를 데리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자동차 안에서 장 미셸은 함께 이야기하던 그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꾸뻬에게 물었다. 꾸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그러자 미셸이 말했다.
“그 자는 이 나라를 똥통 속으로 밀어 넣는 인간이야!”
경호원 마르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장 미셸의 말에 동의하는 듯 보였다. 꾸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수첩에 메모를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배움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배움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는 장 미셸에게 호텔의 웨이터가 일을 하기 위해 두 번째 사무실로 간다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고 장 미셸과 마르셀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 나라에서 두 번째 사무실을 갖는다는 건 자기 아내보다 더 좋은 여자 친구를 갖는다는 의미라고 마르셀이 설명했다. 결국 그것은 또다시 잉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꾸뻬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행복은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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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수북한 길에는 많은 흑인 남자들과 여자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신발을 신지 않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다. 차가 막혀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할 때면 아이들이 구걸을 하기 위해 자동차주위로 몰려들었다. 창문을 어둡게 착색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꾸뻬를 점 찍고는 목표점을 향해 작은 손을 움직이며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장 미셸이 말했다.
“절대로 창문을 내리지 마. 내가 문을 잠궜어.”
“그런데 왜 나한테만 아이들이 손짓을 하는 거지?”
발그레한 작은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귀여운 여자 아이를 바라보며 구뻬가 물었다.
장 미셸이 말했다.
“네가 여기 새로 온 사람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저 아이들은 나와 마르셀에 대해선 잘 알고 있거든.”
도시는 관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전부 부서지거나 반쯤 허물어진 집들, 나무판자와 양철판으로 반 정도 수리를 한 집들, 그리고 한 때 아름다웠겠지만 지금은 곰팡이가 핀 빌라들이 보였다. 흑인 남자와 여자들이 길에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꾸뻬의 나라에서는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거나 다락방에 처박아 두는 그런 물건들이었다. 길 한켠에서는 또 온갖 종류의 싱싱한 채소들을 팔고 있었다. 흑인들이 언제나 웃고 장난을 잘 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곧잘 미소를 지었지만 흑인 어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계속해서 밀리는 차들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은 막힌 도로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고, 곧이어 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도로 역시 엉망이었다.
어떤 트럭은 차의 옆부분과 지붕 위에까지 사람들을 가득 실은 채 전속력으로 질주하기도 했다.
트럭들은 대부분 갖가지 색깔로 칠해져 있고 범퍼에는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지전능하신 신이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
“우리를 언제나 사랑하시는 주님은 살아계신다.”
이곳 사람들이 아직 꾸뻬의 나라 사람들보다 더 열렬히 신을 믿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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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있었다. 꾸뻬의 나라 사람들은 신보다는 사회보장제도가 자신들을 지켜 줄 것이라고 ale고 있기 때문이었다.
꾸뻬는 왜 이 나라에서는 나무가 많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번에는 마르셀이 그것은 무역 금지조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나라는 오래전부터 악독한 사람들의 통치를 받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더 악독한 사람들이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독재자는 꾸뻬의 나라와 같은 선진국들의 심기를 자극하게 되었고, 그 여러 나라 대통령들과 수상들은 회의를 열어 그 독재자를 강제로 사임시키기 위해 만장일치로 무역금지 조치를 결정했다.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은 국민들이 배고픔에 지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무시했다. 아이들은 더 야위어 갔고, 어머니들의 슬픔은 깊어져만 갔다.
물론 그것은 나무들에게도 좋지 않았다. 무역금지조치로 석유와 가스를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음식 끓일 불을 지피기 위해 나무를 베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많은 장소가 더 이상 나무가 없는 황폐한 곳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퍼부은 비가 바닥을 쓸어갔고, 흙은 모두 떠내려갔다. 남은 것이라곤 돌투성이인 거대한 언덕들과 바위들뿐이었다. 그 돌들은 돌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그리 쓸모가 있는 것들도 아니었다.
마침내 오르막이 나타났고, 그들은 작은 마을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제법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아까 지나친 곳들보다는 아름다웠다. 꾸뻬는 그곳 길가에 있는 사람들이 도심지의 사람들보다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당나귀나 짐수레 때문에 차가 속도를 늦춰도 구걸을 하러 다가오지 않았다.
차는 작은 교회에 붙어 있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건물 위에는 ‘무료 진료소’라고 쓰여 있었고, 바깥의 그늘진 벤치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함께 온 흑인 여자들로 가득했다.
장 미셸은 그곳 말고도 다른 세 군데의 무료진료소에 다니고 있었다.
꾸뻬는 경호원 마르셀에게 왜 이곳 사람들은 도시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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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선 채소밭과 닭 몇 마리를 갖고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가족과 함께 살면서 서로를 지탱해 주거든요. 하지만 도시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살아 나갈 수가 없어요. 가족들도 견디지 못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술과 마약을 하는 겁니다. 또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그런 걸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여기는 그런 유혹들이 별로 없어요.”
마르셀의 답변을 듣고, 꾸뻬는 새로운 배움이 다시 떠올랐다.
배움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배움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그들은 다시 도시로 되돌아 왔다. 장 미셸이 이 나라에서는 밤에 차를 타고 돌아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꾸뻬로서는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었다. 장 미셸은 왜 차 안에서까지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장총을 든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일까? 여기저기로 아이들을 치료해 주러 다니는 장 미셸을 도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해칠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 이유는 바로 자동차에 있었다. 이 나라에서 자동차 한 대가 말해 주는 가치는 엄청난 것이었다. 때문이 이 나라의 노상강도들은 운전사가 부득이하게 차를 멈춰야만 하는 장소에서 총을 들고 기다렸다. 하나밖에 없는 신호등 앞에서가 아니라 예를 들면 도로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돌덩이 앞 같은 곳에서 그리고는 연발 권총을 들고 다가와 운전자를 차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후 열쇄와 자동차를 빼앗아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를 훔치기 전이었다. 노상강도들은 나중에 정체가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아니면 위스키나 맥주를 너무 마셔 취해 있거나 환각제등을 복용한 상태이기 때문에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걸핏하면 총으로 쏘아대곤 했다.
호텔 바에는 아직 반바지 제복 차림의 백인들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알프레도는 없었다.
두 번째 사무실을 갖고 있는 웨이터 이시도르가 반가운 얼굴로 꾸뻬를 맞았다. 그는 즉시 꾸뻬 일행에게 맥주를 내왔다. 맥주 맛은 일품이었다. 아무것도 잘 되는 게 없는 나라지만 그래도 맥주 하나만은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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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가 장 미셸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장 미셸이 말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난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다, 그 일을 잘하고 있고, 또 여기서는 내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아. 사람들도 내게 친절히 대하고.”
장 미셸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다시 말했다.
“여기서의 내 모든 나날들은 의미가 있어.”
“그리고 이곳에선…….”
그는 말을 이었다.
“내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받는다고 느껴.”
꾸뻬가 말했다.
“정말이야? 난 네가 그렇게 행복해 하는 줄 몰랐어.”
그러자 장 미셸은 미소를 지으며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했다.
장 미셸이 돌아간 뒤, 꾸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잠시 쉬기 위해 방으로 갔다. 저녁에 비행기 안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 마리 루이즈 집에 초대받아 가기로 되어 있었다.
꾸뻬가 침대에 누워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클라라였다.
그녀가 꾸뻬에게 물었다.
“어때? 잘 즐기고 있어?”
“아, 그래. 아주 재미있어. 넌 사무실에선 좀 어때?”
“나쁘지 않아. 회의 결과가 아주 좋았어.”
클라라는 새로운 약을 위해 자신이 선택한 이름이 최고 간부에 의해 선발되었다고 전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큰 성공을 의미했다. 꾸뻬는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대화가 그다지 생기 있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다시 통화하자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 벽장 속의 꾸뻬 씨
“부드러운 고구마와 염소요리를 좀 더 들어요.”
마리 루이즈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꾸뻬는 사양하지 않고 그것들을 더 먹었다. 음식 맛이 아주 좋았다. 식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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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리 루이즈의 어머니인 약간 슬퍼 보이는 나이 많은 부인. 마리 루이즈의 여동생과 그녀의 남편, 남동생, 그리고 여러 명의 사촌들과 친구들이 있었다. 꾸뻬는 누가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마치 누군가 장난이라도 친 것처럼, 그들은 아무도 같은 피부색을 갖고 있지 않았다. 마리 루이즈의 어머니는 꾸뻬가 일광욕을 하고 난 후와 같은 피부를 갖고 있었고. 그녀의 두 딸은 좀 더 짙었으며, 사촌 여자들과 남자들은 다 조금씩 달랐다. 남동생은 마르셀처럼 피부색이 검었다. 모두가 꾸뻬에게 친절했다.
서랍장 위에는 우아한 정장 차림의 잘생긴 흑인 남자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바로 마리 루이즈의 아버지였다. 마리 루이즈는 꾸뻬에게 아버지가 변호사였으며, 수년 전 악독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던 시절에 정치에 발을 들여 놓았다고 설명했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는 어린 마리 루이즈를 안아 주고는 사무실로 떠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트럭 한 대가 집앞에 그를 던져 놓고는 빠른 속력으로 달아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있었고 온 몸이 멍투성이였다. 그 나라의 정치라는 게 그 시절에는 자주 그랬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꾸뻬는 자신의 일처럼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
하지만 마리 루이즈는 오래전부터 그 이야기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듯 했다.
그녀가 말했다.
“엄마는 그 충격에서 전혀 회복되지 못하셨어요. 내가 보기에 엄마는 언제나 다른 세계에 가 계세요.”
꾸뻬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아이들에 대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왜 도시에서 본 아이들은 항상 웃고 있는가?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거리에서 살고 있었고, 대부분 신발은 물론 자신들을 돌봐 줄 부모조차 없는 아이들이었다. 어른들이 웃지 않는 것은 그들이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왜 아이들은 행복해 보이는 걸까?
사람들은 흥미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많은 대답들이 오갔다.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직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않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비교를 할 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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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고 꾸뻬는 첫 번째 배움이 생각났다.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많이 늦었고, 꾸뻬는 매운 음식 때문에 갈증이 나서 술을 많이 마셨다. 그러자 피곤이 밀려왔다. 모두가 문 앞까지 나와서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마리 루이즈는 그를 호텔까지 태우고 갈 자신의 자가용으로 안내했다. 장 미셸의 차처럼 소형 지프차였다. 운전사는 꾸뻬의 나라 운전사들과 달리 반소매 셔츠에 낡은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운전사 외에도 젊은 경호원이 한 명 있었는데, 손에는 큰 연발 권총을 들고 있었다. 차에 오르기 위해 그들 옆을 지나면서 꾸뻬는 그들이 위스키를 마셨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이 나라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길에서 발생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는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금방 잠이 들었다. 잉리가 꿈속에 나왔고, 그것은 정신과 의사들의 꿈이 다른 사람들의 꿈에 비해 이해하기가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지만 차가 잠시 멈췄다는 걸 느꼈다. 문이 꽝하고 닫히고,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꾸뻬는 잠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잉리와 함께 그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작은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났을 때, 꾸뻬는 운전사와 경호원이 바뀌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익숙해 있지 않으면 흑인들을 서로 혼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 더군다나 밤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꾸뻬는 그들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고, 그 이유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또 하나 미심쩍은 점은 왜 자동차가 계속해서 어둠속을 달리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의 호텔은 마리 루이즈의 집에서 별로 멀지 않는 곳에 있었다.
잠에서 깬 구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죠?”
그러자 앞좌석에 있던 두 흑인이 너무 놀라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로 펄쩍 뛰어 올랐다. 그 바람에 자동차는 크게 비틀거리며 도로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눈을 허옇게 뜨고 꾸뻬를 돌아보았다.
운전대를 잡은 흑인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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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맙소사!”
다른 사람은 곧바로 권총을 꺼내더니 약간 떨면서 꾸뻬를 겨눴다. 그제서야 꾸뻬는 그들이 경찰 복장을 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게 되었다.
순간 마르셀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미 말한 대로 열쇠 없이 자동차를 훔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노상강도들은 좀 더 쉬운 방법을 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강제로 차를 세워 열쇠와 차를 빼앗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찰 복장을 하는 것이었다.
꾸뻬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앞에 있는 두 가짜 경찰이 진짜 경찰 노릇을 하면서 차를 멈추게 했고, 운전사와 경호원을 차 밖으로 나오게 해 아마도 그들을 주먹으로 때려 눕혔을 것이다. 그리고는 뒷좌석에서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내달린 것이다.
나중에 우두머리를 만났을 때 두 부하는 우두머리를 몹시 무서워했다.
그들은 커다란 저택에서 살고 있었다. 집은 매우 낡았지만 예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아름다운 흑인 부인들이 큰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잇었다. 그녀들은 몸에 착 달라붙는 매력적인 드래스와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꼭 미용실에서 방금 나온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꾸뻬는 마리 루이즈의 가족에게 저녁 초대를 받았다고 말했다. 꾸뻬는 자신이 의사이며 무료 진료소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 의사 장 미셸의 친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꾸뻬에게는 더 이상 말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부하들에게 그를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꾸뻬는 천장에 작을 백열 전등이 매달린, 맥주 상자로 가득한 벽장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죽은 쥐에게서 나는 냄새가 벽장 안에 가득했는데, 별로 좋은 냄새가 아니었다.
문이 그다지 두껍지 않았기 때문에 밖에서 오가는 대화를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강도들은 서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지 시끄럽게 싸우고 있었다. 대화를 전부 다 엿듣는 건 어려웠지만 이렇게 요약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이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얼마나 뜯어낼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또 반복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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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둬, 그자는 백인이야. 백인들이 우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맞아 그자는 백인이야. 그러니까 값어치가 있다는 거야.”
“어쨌든 그가 우리 얼굴을 다 봤잖아.”
방금 그 말을 한 자가 강도들의 우두머리라는 걸 꾸뻬는 알았다. 그러자 불행이 밀려왔다.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꾸뻬 씨, 죽음에 대해 명상하다
꾸뻬는 살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의학을 공부할 때부터 병원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 시절에 그와 동료들은 매우 젊었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보다 훨씬 늙은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죽음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나 다가오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곤 했었다. 그러나 이미 이야기 했듯이 아는 것과 느끼는 것,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것이고 그 중 정말 중요한 것은 ‘느끼는 것’이다.
만족한 상태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았었다.
여기엔 몇 가지 종류가 있었다. 병에 너무 지친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이 너무 피곤해졌으며, 삶이 거기서 끝나는 것에 만족해 했다.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한 사람들은 죽음을 하나의 통로로 여겼고, 죽는 것에 대해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좋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지금 끝난다 하더라도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죽음에 대해 더 초연하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꾸뻬처럼 젊은 사람이 불치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왔는데, 그들은 매일같이 야위어 갔고, 고통스러워하며 울다가 결국엔 죽고 말았다. 그런 죽음들은 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죽은 쥐 냄새가 나는 작은 벽장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떠올랐을 것이다. 꾸뻬는 죽음이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았다.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을 하면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만일 지금 죽는다고 해도 이미 좋은 삶을 살았다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꾸뻬를 더 불행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다시는 그들을 못 보게 될 것이고. 그가 죽은 것을 알면 그 사람들은 불행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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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기 때문이다. 클라라는 꾸뻬의 죽음을 무척 힘들게 받아들일 것이다. 꾸뻬는 아주 빠른 속도로 그녀에 대한 많은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 다음에는 오랜 친구들을 생각했다. 특히 장 미셸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며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꾸뻬가 그를 만나러 이 나라에 왔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고통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아무리 세상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해도 자식의 죽음을 겪는다는 것은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꾸뻬는 그들 모두에게 남길 말을 적기 위해 수첩을 꺼냈다. 누군가 그의 수첩을 발견하리라. 먼저 클라라에게, 그 다음에는 부모님에게 남기는 글을 적었다. 꾸뻬는 종이쪽지들을 와이셔츠 소매 속으로 밀어 넣었다. 강도들은 이걸 발견하지 못할 테지만,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해부 할 때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꾸뻬는 시체 해부 장면을 여러 차례 봤는데, 그것 역시 죽음에 대해 사색하게 만들었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인간은 단지 물렁물렁하고 부서지기 쉬운 기관들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순간, 그 덩어리들은 한 순간에 생명력을 잃고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것에는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다. 죽음은 매우 찰나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고통의 순간도 길지 않다. 물론 이 노상강도들이 그의 시체를 완전히 사라져버리게 해 영영 찾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대해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강도들의 대화를 들으며 꾸뻬는 몇 마디를 적어 문 아래로 쪽지를 밀어 보냈다. 그 순간 강도들이 대화를 멈추었다.
꾸뻬는 종이 쪽지에 이렇게 적었다.
‘전부 다 걱정거리 뿐이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우두머리의 두 친구 중 한 명이 꾸뻬에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바깥으로 나오라고 말했다.
우두머리가 꾸뻬의 쪽지를 들고 말했다.
“우리가 무엇에 관해 얘기하길 바라지?”
꾸뻬는 자기가 이 나라를 방문 중이었으며, 난처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만일 자기를 놓아주면 경찰에게 아무 것도 얘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우두머리는 큰 소리로 웃으며 그런 쓸데없는 말을 듣자고 그를 벽장에서 나오게 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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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는 경찰에게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알프레도 씨에게조차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강도들은 조금 전 차 안에서 두 부하가 그랬던 것처럼 모두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우두머리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알프레도 씨를 아나?”
꾸뻬는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알프레도 씨뿐 아니라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의 아내까지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은 정신과 의사라고 소개했다. 모두가 입을 딱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가운데 꾸뻬의 지갑을 맡아 갖고 있던 우두머리의 친구 중 한 명이 지갑 안을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정말로 정신과 의사야!”
만일 꾸뻬의 말이 진실이라면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알프레도와 그의 아내를 안다는 건 경찰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꾸뻬가 정말로 알프레도의 친구이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알프레도에게 말한다면, 분명 알프레도는 이 이야기를 싫어할 테고, 그러면 우두머리의 목숨은 조금 위태로워질 것이다.
꾸뻬를 지금 당장 없애버리면, 경찰과 백인 군대가 우두머리와 그의 졸개들을 찾아다닐 것이고, 그러면 앞의 경우보다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대개 우두머리들이란 영리하기 때문에 이 강도들의 우두머리도 모든 걸 내다볼 수 있고, 그래서 ‘꾸뻬를 풀어주자’는 좋은 결론에 이르기를 꾸뻬는 기대했다.
우두머리는 말없이 꾸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꾸뻬의 웃옷 주머니에서 빠져 나온 적은 수첩을 발견했다. 그는 부하에게 그것을 가져오게 하고는 수첩을 펼쳤다. 그의 시선이 첫 번째 페이지 위로 떨어졌다. 그곳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배움 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 2. 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배움 3.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 4. 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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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5. 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배움 6. 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움 7. 행복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다.
배움 8. 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배움 9. 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배움 10.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배움 11. 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배움 12. 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배움 13. 행복은 자신이 다름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배움 14. 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이다.
주목할 점. 우리는 웃고 있는 아이에게 더 친절하다.
우두머리는 끝까지 수첩의 목록을 읽은 다음 꾸빼를 바라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이 자를 풀어줘.”
2013. 4. 11.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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