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2)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2)
■ 한성희 - 정신분석 전문의
Chapter 3. 지금 불안하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 삶 & 사랑 )
■ 불안은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62세의 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꼬박꼬박 돈을 벌어 오고 있고, 아들딸은 다 잘 되었고, 친구도 많고, 교회에서 집사로 활동하면서 바쁘게 지낸다. 다행히 건강에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내 앞에만 오면 늘 걱정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이래서 걱정이고, 아들들은 저래서 걱정이고, 교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있고, 친구한테는 저런 문제가 있어서 너무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아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왜 그렇게 걱정이 많으세요? 행복하게 잘살고 계신데…….”
“그러니까요. 제가 행복한 거 맞겠죠?”
“ 네 행복한 거 맞습니다.”
딸아, 그녀와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3년째 되풀이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니? 그럼에도 그녀는 2주에 한 번 “네 행복한 거 맞습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나를 찾아온단다.
걱정을 가불하고 사는 사람들.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걱정까지 사서 하는 사람들. 우리는 왜 그렇게 걱정이 많은 걸까?
- 10대는 원하는 대학, 20대는 취업, 30대는 내 집 마련, 40대는 언제 잘릴지 몰라 걱정, 50대는 은퇴 후의 삶 등........
정말로 우리 삶은 불안에 잠식당한 듯하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의 틈 사이로 보험과 사주카페가 비집고 들어와 성황을 이룬다. 자극적인 보험 광고로 보험 가입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고, 사주카페를 포함한 점술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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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규모는 2~3조 원에 이르며 역술인만도 45만 명을 넘어섰다.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얼마 전 내한했던 스위스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라고 말했다. 전통 사회는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는 불평등 사회였지만 비교로 인한 고통은 없었다. 농민과 귀족은 ‘종자’가 다른 인간이므로 귀족에겐 귀족의 삶이. 농민에겐 농민의 삶이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삶은 곤궁했지만 마음만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평등의 원칙에 의해 모든 사람이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지위, 성취, 연봉이 모두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지 않은 높은 자리를 위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대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스펙을 이만큼 쌓아 놓고도 불안한 것은 다른 사람도 그만큼 쌓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고 그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스펙을 더 쌓아야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하고 한숨을 내쉬는 학생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불안은 버거운 존재다. 불안을 느끼는 순간 근육은 긴장하고 심장은 빨리 뛰고 머리는 어지럽다. 그래서 누구나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해서 원하는 걸 모두 얻으면 불안이 사라질까?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는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했다. 살아 있는 동안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불안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잠재우는 방법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가 말했다. 불안은 인간을 마비시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을 발전시키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놓고 봤을 때 불안이 우리가 하는 일에 도움이 될 때도 많기 때문이다. 불안에는 ‘신호불안’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에게 다가올 위험을 미리 알려 주어 준비시키는 기능을 한다. 어느 정도 불안과 두려움이 있어야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운전을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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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만 해도 그렇다. 사고가 날까 봐 두렵다는 생각이 없으면 운전을 조심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불안하니까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고, 일이 잘못될까 두려워 결정을 내릴 때 심사숙고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 ‘파우스트’를 쓴 괴테,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무엘 베케트,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 그들은 모두 불안 장애를 겪었다.
불안은 그들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높여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러니, 불안이 찾아왔을 때 너무 겁내지 마라. ‘왜 남들은 모두 잘 지내는 것 같은 데 나만 이렇게 불안한 걸까?’라고 위축될 필요도 없다. 지나친 병적 불안만 아니라면 불안은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의 시그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보다 불안을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걱정스럽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호소하는 내용 중 하나가 “제 미래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다. 살아야 할 이유나 명분이 딱히 없기 때문에 욕망이 없는 것이고, 욕망이 없기에 불안도 없는 것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자살을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인간의 욕망이란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살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정신의 엔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끔 사는 일이 불안해질 때면 그 신호를 밀어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 불안하다는 건 어떻게든 성장하고 싶은 마음의 시그널이자 지금 인생을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니까.
■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외로움을 치유하려 하지 마라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두 얼굴
스마트폰과 소셜 네트워크는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을 많이 바꿔 놓았다. 우리나라 페이스북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페이스북 친구는 평균 331명, 오프라인 친구는 24명이었다. 친구가 300명이 넘다 보니 인터넷을 켜기만 하면 쉴 새 없이 메시지가 뜨고 사진이 올라온다. 관계가 넘쳐나는 세상인 셈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관계를 맺기도 쉽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만나야 하는 오프라인과 달리 이모티콘으로 간단히 감정을 전달하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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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한 선에서 대화를 끊기도 하고, 원치 않을 땐 나를 감출 수도 있다. 자기 노출을 강요받지 않는 온라인에서의 관계 맺기는 인간관계의 씁쓸한 맛을 제거한 달콤한 꿀통과 비슷해 보인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평소 마음이 들지 않는 부분은 감추고 괜찮게 생각하는 것만 추려내 ‘되고 싶은 나’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일도 흔하다. 영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원폴에 따르면 여성의 25%가 한 달에 1~3회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과장하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타인에게 ‘난 잘살고 있다’고 허세를 부리기 위해 취향, 지식, 인맥 등을 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멋진 여행사진이나 좋은 레스토랑에 갔던 경험담을 주로 올린다. 초라한 자심의 삶을 감춰둔 채 말이다.
백조가 호수의 물결을 잔잔히 가르며 우아하게 유영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멋지다. 하지만 백조는 물밑으로는 엄청난 물갈퀴질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항상 멋지고 쿨한 척하지만 열심히 노동하는 물밑의 삶은 감춘다. 서로를 향해 열심히 ‘좋아요’라고 외치지만 그 반대의 모습은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 사람들의 외로움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스물여섯 살 미선 씨에게 온라인 세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두 번째 집이었다. 그녀에게 일촌 평은 이불과 같았다. “일촌 평은 오로지 저만을 위한 거잖아요. 일촌 평이 달리면 그날은 잠이 잘 와요. 새로 산 이불을 덮는 기분이랄까. 왜 평소엔 잠이 잘 안 와도 새 이불을 덮으면 잠이 잘 오잖아요.”
미선 씨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심리적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봄이 오면 여름이 오듯, 대학생이 되면 저절로 연애도 하고 친구들도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학 생활은 소속감을 주는 반과 짝꿍은커녕 졸지에 지정석 없는 캠퍼스로 내몰린 외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친구조차 노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과 직면한 것이다. 고독한 대학 생활을 보내는 동안 미선 씨는 일촌 평에 웃고 우는 삶을 살았다.
그런 그녀가 나를 찾아와 왜 그렇게 울었을까? 그녀에게 일촌 평은 일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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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안녕감은 주었을지 몰라도 근원적인 결핍감은 채워주지 못했다. 온라인상의 관계는 한편의 픽션이다. 사진첩이나 게시판에 올린 그의 모습은 그녀가 내보이고 싶은 자아의 일부이며 댓글이 달리수록 ‘관심을 받고 있다’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는 느끼지만 오프라인으로 만날 가능성은 더 멀어진다. 온라인에서의 멋진 모습은 직접 만나면 실망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과 인간관계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셰리 터클은 ‘외로워지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자아도취적인 사람일수록 소셜 미디어와 잘 맞아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자아도취적인 상격의 소유자들은 타인의 복잡한 요구 사항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만을 취하며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A라는 친구가 반응하지 않을 땐 바로 B라는 친구에게 접속하면 되는 소셜 미디어와 그들이 어울리는 이유다. 내적 자아가 확고하지 않을수록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데 온라인 세상에서는 그것이 훨씬 빠르고 쉽다.
딸아, 너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아라. 그들과 달콤하고 좋은 추억만 나눠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아프고 힘든 순간을 서로 잘 이겨낸 뒤 더 끈끈하고 돈독한 관계로 발전했을 것이다. 그런데 온라인 공간은 관계에 필요한 내성을 떨어뜨리는 역기능을 한다. 당장 좋은 댓글이 달리고 팔로워가 늘면 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쁘지만 거꾸로 조금만 부정적인 의견이 올라와도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다 보면 좋지만 공허한 말이 쌓여 채워지지 않는 고독감을 남기고야 만다.
그러니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 마라, 자연을 떠나서 인간이 살 수 없듯, 관계도 서로의 촉감을 떠나서는 깊어질 수 없다. 정말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고, 때론 단점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담벼락을 훑기 전에 그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보면 어떨까. “밥은?”, “건강은?”, “무슨 일은 없고?” 어쩌면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은 항상 온라인 세상에서만 주고받느라 육성으로 들어 본 적 없는 서로의 안부인지도 모르겠다.
■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단다
요즘 20대 여성들은 섹스에 대한 고민을 망설임 없이 털어 놓기도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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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게 곧잘 묻는다. “지금 연애중인데 성 관계는 언제 쯤 갖는 게 좋나요?” 그럴 때 나의 대답은 하나다. “몸과 마음이 준비 됐을 때요.” 동시에 섹스에 대한 정의를 가질 것도 주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만 봐도, 네 명의 주인공들은 섹스에 대해 각기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다. 샬롯은 남편과 떨어져 있기로 한 캐리에게 “어떻게 혼자 지내? 결혼은 매일 잠자리를 같이 해야 하는 거야.”라고 조언을 해 준다. 그녀에게 섹스는 부부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둘만의 우주에서 치러지는 월식이다. 반대로 개방적인 사만다는 “여자가 남자를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은 침대야”라고 한다. 그녀에게 섹스는 자신의 가치를 확고하게 해주는 활동인 셈이다. 이렇게 샬롯의 사랑이 있고, 사만다의 사랑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나름대로 사랑과 섹스에 대한 정의를 세워둘 필요가 있다.
섹스를 하자고 조르는 남자, 확신이 안 서는 여자
친밀함과 섹스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일까 아니면 별개의 것일까? 흔히 여자들은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섹스를 나눌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사랑이 먼저고 섹스는 나중이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 남자들에게 사랑과 섹스는 별개라고 한다. 사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섹스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성관계를 주도하는 쪽도 남자인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성에 대해 주체성을 갖게 되지만 여자들은 남자의 제안을 받고 결정하는 입장이다 보니 수동적이 되어 주체성을 갖기가 힘들다. 그래서 여자일수록 섹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미리 정리하는 시간을 꼭 가지는 게 좋다.
윤아 씨는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데 남자 찬구는 적극적으로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그녀는 성 경험이 없으며, 결혼할 사람이 아니면 관계를 갖지 않겠다는 신념이 있다. 그런데 남자 친구는 그녀에게 “넌 마치 학생처럼 군다”, “내가 무슨 치한이라도 되냐?”며 면박을 주었고 급기야, “너는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까지 하더란다.
그와의 성관계를 거부하는 것이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닌데 남자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그렇다고 잠자리를 할 생각은 없다.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사랑을 하기 위해서다. 그럼 윤아 씨는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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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많은 여자들이 윤아 씨처럼 “너무 빨리 다가오는 남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고민을 토로한다. 똑똑한 여자라면 사랑도 똑똑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남녀의 성지각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여자가 섹스를 한다는 것의 의미
여자는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기까지 남자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성관계는 더운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으로 남자들에게 섹스는 성적 만족과 자손을 퍼뜨리는 행위인 반면, 여자들에게 섹스는 가정이라는 보금자리를 지켜줄 남자를 찾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하는 현상이 여자들보다 남자들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이유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까마득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무의식적인 코드다. 여자들은 섹스 그 자체보다 상대 남성이 변하지 않고 자신을 지켜 줄 사람인지 촉각을 세운다. 이런 이유로 여자들은 성행위에 쉽게 빠져들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앞서 윤아 씨 남자 친구는 “섹스를 허용하지 않는 건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무시해도 좋다. 성관계에 대한 조심성은 여자들의 숨겨진 본능으로 남자의 성적 본능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윤아 씨는 성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좋을 듯하다.
마음을 여는 게 섹스보다 더 어렵다면
민주 씨는 “제가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요, 누군가 나를 깊이 알면 무너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몸을 보이는 일보다 자신의 심리적 속살을 드러내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한다. 누군가와 가까워져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면 상대가 그 모습에 실망해 떠나버릴 것 같아 그 불안감을 불식시키는 방법으로 때 이른 섹스를 하게 된다고 한다.
섹스는 단지 성행위만이 아니다. 섹스는 소통의 방편이자 관계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민주 씨처럼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픈 구강기적 욕망을 성적 욕망과 동일시한다. 상대를 잡아 두기 위한 수단으로 성행위에 몰입하거나 정서적 허기와 의존 욕구를 채우려 성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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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섹스에 매몰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에 집착한다. 하지만 번번이 그에 실패해 고통스러워한다.
민주 씨는 어린 시절 감정의 기복이 심한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했고, 잦은 욕설과 체벌을 당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그녀에게는 타인과 가까워지는 데 대한 내재적 공포가 생기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보살펴 준 대상, 대개는 엄마인데 유아에게 보인 상호작용에 따라 아이는 사랑의 모형을 짓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 모형에 따라 인간관계를 만든다. 이때 엄마로부터 믿음직한 반응을 경험한 아이는 안정적인 애착 유형을 갖는다. 반면 그렇지 못한 아이는 불안정하거나 회피적인 방식의 애착 행동을 보이게 된다.
민주 씨 마음 깊은 곳에는 어머니 기분을 살펴야 하는, 불안에 떠는 아이가 있었다. 몸은 엄마에게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지만 마음 속 아이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그런 민주 씨를 대할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섹스 때문에 고민하는 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
나는 민주 씨에게 하루 한 편씩 자신에게 칭찬 일기를 쓸 것을 권했다. 가령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샀다면 자신에게 칭찬의 일기를 쓸 수 있고, 남자 친구가 보내 준 문자에 행복했다면 그것도 사랑받는 여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니 일기의 주제가 된다. 그렇게 남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의 삶을 보고, 듣고, 만지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존감도 조금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타인과 관계를 맺는 능력도 안정적이다. 자신에게 찾아온 사랑이 불완전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하고 반길 줄 알게 된다. 자신을 믿듯 사랑도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를 제대로 나눌 수 있고, 더 나아가 사랑을 가꾸어 가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의무감 때문에 하는 섹스, 남자가 원하니까 하는 섹스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누군가를 위한 대상으로 두어선 안 된다. 어떤 경우든 자기 자신이 기꺼이 원해서 기쁘게 하는 섹스여야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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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섹스 때문에 고민하는 모든 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 회사라는 조직에서 여성이 성공한다는 것
요즘 뉴스를 틀면 대한민국에 여풍(女風)이 거세다는 소식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20대 경제활동 인구에서 여성 비율이 남성 비율을 추월했고, 해마다 사법연수원의 여성 비율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금녀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군대와 경찰 조직에서도 여성이 조금씩 늘고 있는 추세인데다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도 탄생 했다.
나는 여자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제 능력을 발휘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 가슴에 묻혀 있던 체증도 함께 사라지듯 후련해진다.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길을 개척하며 노력해 준 덕분에 지금 여자 후배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뿌듯한 것이다.
먼저 남자들이 만들어 놓은 조직의 룰을 이해하라
태어날 때부터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여자가 관계 중심적이라면 남자는 공격적이고 지배중심적이다.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인 루안 브리젠딘에 따르면 남자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8주 동안 자란 후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으며 남자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호르몬은 커뮤니케이션 중추에 있는 세포들을 죽이고 섹스와 공격 중추에 있는 세포들을 점점 더 성장시킨다. 반대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지 않는 여자아이의 뇌는 커뮤니케이션과 정서적인 면을 담당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정서적인 반응에 예민하고 감수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자라면서 그 차이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 나간다. 남자아이들은 구슬치기, 야구, 축구 같은 경쟁적인 놀이를 하면서 상대편과 싸우고 어울려 논다. 그러면서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조직과 위계질서를 만들고, 다툼이 벌어지면 규칙을 세워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반대로 여자아이들은 인형 놀이나 엄마 놀이처럼 경쟁보다 서로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정서 놀이를 주로 한다. 경쟁이 없는 놀이에는 그다지 규칙이 필요 없으며, 싸움이 생겨도 지시나 강요보다는 중재를 통해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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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일과 일터에서도 어릴 때 즐겨하던 게임과 비슷한 태도로 임한다. 그들은 스포츠 경기처럼 회사라는 조직 생활에도 규칙, 승패, 경기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규칙은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규칙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남자와 여자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남자들은 게임에 승자와 패자가 있듯 비즈니스에서도 승패가 갈린다고 믿는다. 권모술수도 규칙을 지키는 한에서 이루어진다면 승리를 위한 노력으로 여긴다. 그리고 열심히 싸웠더라도 일단 경기장을 벋어나면 적대적인 관계도 끝이 난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혼자 하는 일은 잘하지만 인간관계의 역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조직이라는 큰 덩어리가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해 자신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지만 전체를 위해 자기가 손해 보고 희생해야 할 때가 오면 뒤로 물러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조직 내에서 질서와 위계에 보다 유능한 촉각을 가지고 있다면 여자들은 조직의 위계보다는 관계의 소통에 더 탁월하다. 그런데 이런 차이가 조직 내에서 서로를 오해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자 후배들에게 회사에서 트러블이 생겼을 때는 남자의 입장에서 한번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위의 세 가지 룰 - 규칙, 승패, 경기장 - 에 빗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규칙의 문제라면 규칙을 바꾸려 하지 말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낫다. 잦은 회식이 문제라면 회사에서는 회식 역시 중요한 규칙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 회식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회식을 하되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를 논의 하는 게 좋다. 또 승패의 문제라면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이기는 것을 꺼릴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회사라는 경기장에서 경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게 아니라면 중요한 일로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라.
회사에서는 똑똑함으로 승부하려 하지 마라
앞으로는 남성적 리더십과 여성적 리더십을 모두 아우르는 인재가 각광받을 거라고 한다. 효율성과 조직적인 사고가 강한 남성적 특성과 소통과 조율에 능한 여성적 특성은 둘 다 필요하고 서로 조화를 이룰 때 다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도 남성적 문화의 장점을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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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결혼을 하건 하지 않건, 아이를 낳건 낳지 않건 어쨌든 앞으로는 평생 일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에 있어 프로가 되는 것만큼이나 회사라는 조직을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한마디 하자면 회사에서 성공하려거든 나 혼자 ‘똑똑함’으로 승부하려 하지 마라. 회사가 발전하는 것은 똑똑한 개인 때문이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이 하나가 되어 생산적으로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자신이 똑똑해도 그것을 내세우기보다 조직 전체가 협업의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기여해야 한다. 정말 현명한 사람은 2% 부족한 듯 허름해 보이나 속으로 단단한 사람이다.
딸아, 나는 네가 진정한 성공을 바란다면 그 길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똑똑함을 드러내기 위해 애쓰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 가는 것은 힘들지만 그럴 때 네가 더 멀리 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 소심해 보이지 않으려고 안달복달하지 마라
우리는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것을 부추기는 분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다. 요즘같이 빨리빨리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능력이 높게 평가받는다. 또 스치듯 지나가는 만남이 많다보니 짧은 시간 내에 자기를 잘 드러내는 기술도 필수적인 능력으로 인정받는다.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발표를 잘하고 주장이 두렷한 이들과 비교당하며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내향적인 사람을 사회 부적응자로 몰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내성적인 사람의 80%가 소심하지 않으려는 강박에 걸려 있는 현실은 진심으로 안타깝다.
버락 오바마와 빌 게이츠처럼
내향적인 사람도 충분히 리더가 될 수 있다
심리학자 융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다양하고 종잡을 수 없어보여도, 사실은 아주 질서정연하고 일관된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일관된 경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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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기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질을 내향성과 외향성으로 구분했는데,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에 몰두하기를 좋아하고, 조용하고 절제된 곳에서 능력이 극대화되며, 신중하고 느리다. 반대로 외향적인 사람은 강력한 자극을 즐기고,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며, 결정을 빨리 내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데 익숙하다. 세상에 100% 내향적이거나 100% 외향적인 성격은 없다. 누구나 외향과 내향 사이에 위치하며 어디에 더 가깝느냐에 따라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 성격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는 내향적인 사람들이 전체의 3분의 1 정도 된다.
- 마하트마 간디 : 책에 파묻혀 지내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 두려 웠고 수줍음이 너무 많았음
- 수잔 케인 : 미국에서 ‘콰이어트’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 캠프 가서도 책만들고 있는 내성적 성격. 그러나 그 후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노력하여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뒤 월스트리트의 기업변호사 및 협상 전문가로 명성을 날림
수잔 케인은 ‘콰이어트’에서 내향적 기질을 가지고도 성공한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강력한 자극을 추구하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 고독은 고통이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고독은 없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신의 내면세계에 접속해 그곳에서 보물을 찾아낸다.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상대성의 법칙을 발견한 아인슈타인,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워즈니악, 세기의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1984’의 작가 조지 오웰 등이 좋은 예다. 그들은 말하기보다 듣기를, 파티보다는 독서를 좋아했으며, 집단 작업보다는 어딘가 혼자 틀어박혀 일하기를 즐겼다.
흔히 내성적인 사람들은 홀로 하는 활동은 잘할지 몰라도 리더는 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것도 편견일 뿐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빌 게이츠, 워렌 버핏은 모두 내향적인 리더다. 그들이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고 더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판단을 내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성적인 성격은 기질이지 결코 무언가 잘못된 상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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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뛰어난 친화력, 마당발이라 불리는 폭넓은 대인 관계, 좌중을 압도하는 말솜씨와 유머 감각만이 성공적인 사회생활의 열쇠는 아니다. 그에 못지않게 잘 들어 들어주는 사람, 조용히 제 역할을 다하는 사람,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사람도 사회에서 소중한 대접을 받는다. 그런 사람들은 큰소리 내지 않고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조용한 유능함으로 조직의 신임을 받는다. 또 조직 관리자들은 직원들의 장단점을 전체적으로 파악해서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윗사람일수록 조직의 한 축을 견고하게 받치는 내향적인 사람들의 매력과 장점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니 꼭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들어 주고, 사려 깊게 대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는 등 관계를 맺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괜히 외향적 분위기에 압도당하지 말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게 좋다.
33년간 정신과 의사로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깨달은 것은 사회적 성공과 인정, 그리고 삶에 대한 만족은 외향적이냐, 내향적이냐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자 가진 기질을 가지고 어떻게 노력했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결정될 뿐이다. 내향적인 성격이든 외향적인 성격이든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는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고민하거나 위축되지 마라. 소심해 보이지 않으려고 안달복달할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나서지 않아도 드러나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 네게 반하지 않는 남자는 만나지 마라
세상은 노력하면 안 될 게 없다고 말하지만 남녀 사이의 사랑에서만큼은 그 이치가 통하지 않는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고 덜 사랑하는 사람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흔든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이 끝나 버린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떠난 이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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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그는 이미 가고 없고 그 자리에 덩그러니 자신만 남는다. 그렇게 실연의 상처를 경험한 청춘들은 이제 사랑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진료실을 찾는다. 더 이상 사랑에서의 약자는 절대 되지 않을 것이며, 바보같이 자신의 마음을 다 보여주지 않을 거라면서.
그들은 실연의 경험을 계기로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교훈 만 얻은 채 다음 사랑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방법을 찾아 나선다. 연애 잘한다는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유명한 연애 지침서를 탐독한다. 밀고 당기기, 마음에 드는 남자일수록 무관심한 척하기, 상대가 질리지 않도록 반전 매력 보여주기, 남자가 길을 못 찾아도 지도를 읽어줄 생각 말기 등 누가 봐도 매력적인 여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섭렵하는 것이다.
때론 사랑을 그만 두는 것도 용기 있는 선택이다
세상에는 일부 못난 남자들이 있다. 그야말로 여자를 사냥하듯 만나려 하는 나쁜 남자, 관계의 책임을 여자 친구에게만 전가시키는 뻔뻔한 남자 말이다. 그들은 여자 친구의 요구를 마치 그녀가 자심감이 없거나 독립적이지 못해 그런 것처럼 덮어씌우거나, “나 같이 나쁜 놈은 너와 함께할 가치가 없다”면서 관계에서 발을 빼기 일쑤다. 그러면 여자는 잘못한 게 없으면서도 ‘내가 덜 예뻐서’, ‘내가 너무 부담스럽게 행동해서’ 그가 자신을 떠난 거라며 자책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나는 연애 지침서를 보기 전에 헤어진 그 남자가 과연 만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는 그들보다 좋은 남자들이 훨씬 많다. 여자의 입장을 잘 헤아려 주고, 공감해 주고, 관계에 최선을 다하는 남자들이 더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굳이 여우가 될 필요는 없다. 괜찮은 남자라면 밀고 당기기를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상대를 알아보고 다가올 것이다. A부터 Z까지, 연애 지침서를 따라 하느라 생기 넘치는 모습을 가리지 말라는 뜻이다.
딸아, 내가 너에게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을 기억하는지. “네게 반하지 않는 남자는 만나지 마라”라고 했었지. 나중에는 내가 또 그 말을 하려고 들면 “엄마 이제 그만!”이라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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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건 각자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면면들을 일깨우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연애 비법 같은 것으로 자신을 감추어선 안 된다.
그리고 사랑을 주는 것만큼이나 받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곁에 연인이 있음에도 이별을 떠올릴 만큼 외로운 사람이 있다면 ‘혼자 그 사랑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자문해 보기 바란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랑에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어야 한다.
언젠가 실연을 당해서 너무 슬프다는 여자에게 말했다. “이별했다고 머리 자르지 마세요.” 긴 생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였는데 괜히 떠난 남자 때문에 매력 포인트를 없애 버릴까 봐 걱정되어 한 말이었다. 그 어떤 이유로든 자기 자신을 내팽개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데 누가 나를 좋아해 주겠는가. 그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없다. 나쁜 남자를 제외하고 말이다.
■ 친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소중해지는 법이다
네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의 드릴 게 있단다. 학교에서 보자고 하면 부모는 으레 겁을 내기 마련이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방과 후 레슨 시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땡땡이를 쳤다고 하더구나. 이유를 물으니 네가 그랬다지. 날씨가 너무 좋은데 어떻게 교실에 있을 수 있냐고. 그래서 친구들과 한강 고수부지에 가서 배 타고 놀고 왔다고. 웃음이 났다. 그래, 공부를 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가 막힌 날씨가 있지. 선생님께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타이르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혼자 그런 사고를 쳤으면 걱정했겠지만 친구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외동딸로 커서 친구를 잘 사귈 수 있을까 싶었는데 사고(?)를 칠 만한 친구가 네 옆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뻤다. 학창 시절에 만난 친구는 나중에 인생의 대소사마다 달려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눠 줄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는 가깝다고 하는데 왜 나는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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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 너에게는 친구가 어떤 의미니? 사람들은 흔히 ‘나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친구가 진짜 친구다’, ‘슬픔은 누구나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드물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그때 여자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이에 못 할 이야기가 뭐가 있어? 그럼 친구도 아니지!” 남자들의 우정과 달리 여자들의 우정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수다다 친한 여자 친구들은 개인적인 일상사뿐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 최신 트랜드, 사회적 이슈까지 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공유한다. 여자들의 뇌를 들여다보면 언어 중추가 특별히 더 크다. 그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옥시토신과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약물 중독자의 헤로인에 버금가는 쾌락을 경험한다고 한다. 여자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친밀성을 추구하고 결속력을 다지려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친하다고 여겼던 친구가 뭔가 숨기려고 하는 것 같을 땐 서운한 마음이 든다. 갑자기 거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에게 아무런 비밀이 없어야 진정한 우정인 걸까? 단짝 친구라면 얼마나 가까워야 하는 걸까?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상대방과의 친밀도에 따라 허락하는 물리적인 거리가 다르다고 한다. 낯선 사람이 갑자기 가까이 다가온다고 해 보자.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 움찔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러나 친한 친구가 다가오면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간다. 에드워드 홀은 그런 심리적 거리를 네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 0~ 45 Cm : (친밀한 거리) 부모, 배우자, 연인, 형제, 절친한 친구
- 46~120 Cm : (사적인 거리) 동아리 동호회 파티에서처럼 친밀하지만 조금은 제한적인 사람
- 120~360 Cm : (사회적 거리)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
- 360 Cm 이상 : (공적인 거리) 청중 대상, 가수의 공연 등
우리 마음이 친한 정도에 따라 허락하는 관계의 거리가 다른 것은 맞지만 그것이 에드워드 홀이 제시한 것처럼 분명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사람마다 허용하는 관계의 거리, 관계의 두께, 관계의 속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각자 규정하는 관계의 거리가 다르다 보니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이를테면 내가 생각할 때는 최소한 120Cm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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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어야 할 사람이 불쑥 친밀한 거리인 45Cm 안으로 들어온다고 해 보자. 그러면 나도 모르게 부담스러운 마음에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상대방은 나를 45Cm 안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기에 기분이 상하게 된다.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관계의 거리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인간관계에서 오해가 없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갔는데 상대가 그만큼 다가오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기 속도와 저리에 맞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또 반대로 너무 빨리 다가온다고 해서 무조건 피하려고 하지 말자. 만남의 시간과 횟수를 조절하면서 충분히 자기 속도에 맞게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처럼 자기가 갖고 있는 관계의 거리를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로 존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편안하게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단짝 친구라면 모든 걸 공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붙어 다니며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서로 이야기 한다. 숨기고 있는 비밀이 하나라도 있으면 안 된다. 즉 서로의 거리를 좁히다 못해 0 Cm로 만들어 둘이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 그것이 진정한 우정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리감이라는 것은 어떤 관계에서든 존재한다. 그걸 없앨 수 있다고 하는 기대감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신경증적이다.
친구관계에서도 경계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각자 독립적인 심리적 공간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 홀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지 않은 관계는 겉으로는 끈끈하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해치는 독이 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사람 사이에는 숨 쉴 수 있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세계를 가꾸면서도 서로 함께할 수 있다. 나무 의사 우종영 씨는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속하듯 구속하지 않는 것, 그것을 위해 서로 그리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일은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꼭 필요하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상처를 주지 않는, 그러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늘 바라볼 수 있는 그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친구는 세상살이가 안개 속처럼 어둡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을 일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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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고, 지치고 좌절했을 때 그저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나를 좋아해 준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친구는 나를 지탱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래서 친구란 인생에서 더없이 힘이 되는 존재다. 그러니 ‘나는 가깝다고 여기는데 왜 너는 멀게만 느끼는 걸까?’라는 물음이 든다면 친구를 원망하기 전에 적절한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라. 경계를 무너뜨리고 너무 가까이 다가가 상처 주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라는 말이다. 그리고 기다려라. 우정이 주는 편안한 기쁨은 기다림 속에서 찾아오는 것이니까. 괜한 오해로 친구를 잃어버린다면 그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으랴.
Chapter 4. 딸아, 무엇을 하든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 슈퍼우먼이 되려고 하지 마라
지하철에서 우연히 젊은 두 남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한 남자가 이렇게 얘기했다. “난 내 와이프가 살림은 못해도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 남자 잘 만나 팔자 펴 보겠다는 여자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더랬다. ‘부디 나중에 아이를 와이프한테 맡겨 놓고 나 몰라라 하는 남자는 되지 마시길. 그런 남자를 좋아할 여자는 세상에 없으니까.’ 얼마 전 배우자가 있는 가구 가운데 맞벌이가 전체의 43.6%를 차지한다는 통계청 자료를 봤다. 결혼하고서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여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남편의 가사 분담율은 아직도 너무나 낮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남편들이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여전히 여자 혼자 날마다 직장과 집안일, 아이 양육가지 세 개의 공을 굴리느라 허덕이고 있다.
결혼해서 임신 출산에 이르는 약 5년 동안의 기간은 여자에게 가장 힘겨운 시기다. 직장에서 경력 쌓기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결혼과 출산, 육아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한 때 잘나가던 여자가 어느 순간 둔재로 변하거나 입사 당시 별 볼일 없던 남자 동료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통계청 자료만 봐도 경력 단절 여성의 78.4%가 5년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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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결혼, 임신, 출산 등으로 직장을 그만 뒀다고 한다.
남자들은 맞벌이를 원하면서도 직업이 있는 여자와 함께하려면 그만큼 가사와 양육에 동참해 주어야 한다는 점은 외면한다. 그래서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통받는 것은 여전히 여자들의 몫이다.
나도 너를 키우며 학부모 모임에 가려면 얼마나 눈치를 봐야 했는지 모른다. 기억나는지 모르겠구나.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날이었는데 병원에서 딱 세 시간을 허락받고 부리나케 너에게 달려갔다. 엄마와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는 친구들 사이에 홀로 있던 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 껑충껑충 뛰며 좋아했지. 그런 딸을 두고 두 시간 뒤 다시 병원에 돌아가야 했던 엄마의 마음은 겪어 보지 않고는 모른다. 결국 너는 꼭 가야 하냐며 주저앉아 대성통곡했었지.
그런 일이 한 번이면 족하련만 나는 또다시 너를 울게 만들었고 그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그 일을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왔구나. 그런 내가 엄마로서 말하고 싶은 것은 워킹맘이 되라, 되지 마라가 아니다. 네가 계속 직장 생활을 하든 주부로 살든 나는 너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나는 네가 이제껏 그랬듯이 또 너만의 길을 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워킹맘으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로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것들을 말해 주고 싶구나.
1. 직장을 그만둘 때
시댁이나 남편,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
잡지사에 근무하는 서른한 살 정민 씨는 입사 2년차에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결혼해 지금은 주부의 삶을 살고 있다. 경험이 쌓이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무언지 알게 될 무렵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기도 하고 직장인으로의 삶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그녀는 퇴직을 결심했던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직장 생활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정말 이 일이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건지 회의도 들고, 그런 생각을 할 즈음 결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결혼은 피난처였는지도 몰라요.”
지금 정민 씨의 선택은 당장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집중적인 육아가 끝나는 10년 후, 또 세월이 더 흘러 40~50대가 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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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세 주부 승임 씨 : 남편의 사업 위기, 시어머니와 밀착된 남편과의 20년 생활에 누적된 불화로 우울증,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의 박사 학위 취득 소식에 의기소침, 결혼 당시 사업이 잘 나가던 남편을 만난 승임 씨는 부잣집 맏며느리로 부러움을 샀고 첫 아들을 낳은 후 시어머니의 반대로 직장을 그만 둠, 지금은 그 사실을 후회함
승임 씨가 아이를 낳고도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과연 더 행복했을까? 사실 그녀가 지금 우울한 진짜 이유는 일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주부로 산 지난 세월이 시어머니의 결정에 어쩔 수 없이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 역시 그녀의 선택이었다.
- 독일로 이민을 가 뮌헨에 살고 있는 임혜지 씨 : 그녀는 건축학 박사이고, 남편은 물리학 박사.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기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닌 시간이라는 데 동의하고, 높은 보수와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다. 남편은 보수는 적지만 집에서 멀지 않고 자유시간이 많은 직장을 선택했고, 혜지 씨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가족 간의 소통과 일상의 공유에 노력했다.
승임 씨와 혜지 씨의 차이는 딱 하나다. 타의에 의해 혹은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느냐, 아니면 자발적으로 그 선택을 했느냐다. 어떤 것을 택해도 어려움은 있겠지만 그것조차 나의 선택이라고 여기는 태도와 누구 때문에 처해진 상황이라며 억울해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살면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긴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원하는 방향을 적극적으로 선택한 사람만이 그 어려움을 뚫고 나아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자기만의 내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직장을 그만 둘 때 시댁이나 남편, 아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든다면 다시 생각해 보라.
2. 아무도 너에게 슈퍼우먼이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워킹맘들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내리누르는 것은 가사 부담이 아니라 아이 양육이다. 집안일로 몸이 힘든 것은 그나마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아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리 능력 있고 출중한 여자라도 발목이 잡혀 꼼짝할 수가 없다. 워킹맘들은 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내가 충분히 신경을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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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못해 아이가 정서적으로 엇나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많이 한다. 아이를 제대로 돌봐 주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에는 죄책감이 극에 달한다. 그런데 워킹맘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 것과 자녀의 정서적 건강 사이에는 특별한 상관이 없다는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영국 런던 대학 애니 맥먼 박사는 영국 어린이 1만 2000명을 상대로 엄마의 직업 유무가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엄마가 직업이 있는지 여부는 자녀의 정신 건강에 아무런 변구거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아이들은 어려서는 엄마가 집에 있길 바라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엄마가 명함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는 직업인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므로 네가 워킹맘이 된다면, 육아에 있어서 꼭 유념해야 될 몇 가지만 잘 지키면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1.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부담감을 버려라.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직장, 집안일, 육아까지 모두 잘 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고 가능한 주변의 도움을 구하라.
2. 양육에 있어서는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있을 때 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상호작용을 많이 해야 한다.
3. 만 3세 까지는 삶에서 육아를 우선으로 스케줄을 짜고, 엄마가 주 양육자 가 되어야 한다. 3세까지 뇌 발달이 총체적으로 일어난다.
4. 남편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못하는 것은 빨리 못한다고 말하고 주위에 도움을 구해야 한다. 슈퍼우먼이 아닌 이상 도움을 구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당당하게 도움을 청하라. 그것이 아이와 나 모두를 지키고 나아가 가정을 지키는 가장 현 명한 길이다.
그래도 힘들 때는 쉰 살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라
미국 노스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팀이 1991년부터 10년 동안 1364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집에서 가사를 하며 아이를 돌보는 전업주부와 일과 가사를 동시에 하는 워킹맘 중 누가 더 행복할까?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전업주부는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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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 워킹맘보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반면 워킹맘은 집에만 머무는 전업 주부에 비해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하며 심리적 우울함도 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것이 워킹맘으로 사는 것이 힘들어도 버텨야 할 이유다. 나를 위해서 일을 그만두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힘들 때는 쉰 살이 되었을 때를 떠올려 보라. 육아에 전력투구해야 할 시기와 커리어 쌓기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겹쳐지는 ‘빅뱅의 시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 쉰 살이 되었을 때 훨씬 성장해 있는 모습을 그려보라는 것이다. 인생은 생각보다 장거리 경주다.
■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를
딸아, 얼마 전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어느 집에 막동이가 태어났는데 엄마가 그랬단다. “아가야,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그 얘기를 들은 초등학교 3학년인 첫째가 하는 말. “동생아, 엄마 말은 다 뻥이야. 조금만 더 커 봐라 공부 못하고 건강하기만 하면 구박받아. 거기다가 청소도 해야지, 심부름도 해야지, 얼마나 일이 많은데, 엄마 말은 아예 안 믿는 게 좋아.”
이 얘기를 듣고 한참 웃으며 맞장구를 쳤는데 나중에는 혹여 내가 너한테 그랬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더구나. 세상의 아이들은 크면 클수록 해야 할 일이 참 많아진다. 건강해야지, 씩씩해야지, 공부도 잘해야지, 성격도 좋아야지, 심지어 요즘은 얼굴도 예쁘고 날씬한데다가 옷도 잘 입어야 한단다. 태어날 땐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격하던 부모가 잔소리꾼이 되어가는 걸 보면서 아이는 자신이 사랑받으려면 무언가를 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도 부모의 기준이 너무 높다보면 그것을 따라가는 게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부모는 늘 진심어린 표정으로 말한다.
“이게 다 널 위한 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그런데 정말일까?
우리가 타인의 인정과 칭찬에 목숨을 거느라 잃어버리는 것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는 것,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을 쫓느라 인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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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오징어잡이 배는 밤바다에 환하게 불을 켜서 오징어를 유인한다. 심해에 사는 오징어들이 자기를 살리는 빛인지, 죽이는 빛인지도 모른 채 홀리듯 배 주변으로 모여들면 어부들은 기다렸다는 듯 오징어를 배 위로 낚아챈다. 사람도 오징어와 마찬가지로 그게 자기를 살리는 것인지, 죽이는 것인지 모른 채 욕망에 이끌려 무작정 그 대상을 향해 돌진할 때가 있다. 그것은 때로 유행하는 옷과 구두, 최신 전자제품, 자동차이기도 하고, 때론 남들이 우러러보는 높은 지위나 경제적 능력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언제부턴가 ‘나’ 보다는 ‘보이는 나’로 살도록 훈련되어 왔다. 나 자신의 욕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박수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맞춰 살아왔던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칭찬을 받기 위해 공부를 하고, 학창시절에는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그들의 부탁을 들어 준다. 우리가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것도 알고 보면 그렇게 해야 남들의 부러움과 선망을 받는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실 인정받고 칭찬을 듣는 것처럼 행복한 일도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니 않던가.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은 인간의 행동을 구조화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살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모양대로, 보내 주는 찬사에 맞추어 ‘내’가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자신의 참모습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인생의 막바지에 덜 후회하고 싶다면
인생의 끝에 가서 덜 후회하려면 진짜 나는 어떤 모습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탐구해봐야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의 욕망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데 익숙하다면 왜 그런지 고민도 해 봐야 한다. 정신분석가 도널드 위니캇은 자기의 모습을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로 구분했다. 유아기 때 엄마로부터 공감적 사랑을 받은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느낌을 갖게 되면서 참 자기가 발달한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느껴볼 사이도 없이 엄마의 감정과 기대에 순응하는 태도만을 키우게 된다. 이때 아이가 형성해 나가는 모습을 거짓 자기라고 말한다. 참 자기가 인격의 중심에 있으면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알아채고 실현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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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하지만, 거짓 자기가 중심에 있다면 남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일, 의무나 책임을 인생의 중심에 두게 된다.
참 자기에는 고유한 감정과 개성, 창조성 등이 담겨 있다. 참 자기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한 사람을 꼽으라면 몇 해 전 타계한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그는 신념에 따라 대학교를 중퇴했고, 애플에서 쫓겨난 것을 오히려 최고의 기회로 여겼다. 여러 번 실패를 경험했지만 누구보다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전념했던 스티브 잡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 중에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상’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서 내 것을 지키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눈을 뜨고 있어도 코를 베어가는 세상이 되었다. 자칫하면 세상이 바라는 바를 내가 바라는 것으로 착각하기 십상이니까. 그럴수록 ‘나’에 대한 고민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 무엇보다 내 마음, 내 생각, 내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은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 언젠가 엄마가 될 너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
엄마와 딸,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애증의 관계에 대하여
피천득 선생은 수필집 ‘인연’에서 엄마를 이렇게 추억했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타고난 영광이었다. 내게 좋은 것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한 것이다. 또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누구나 가슴속엔 엄마의 자리가 있다. 세상살이가 고달프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모든 걸 편히 내려놓고 포근하게 쉴 수 있는 엄마의 품.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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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엄마가 살아 있기에 힘들어도 한 번 더 기운을 차리게 된다. 누구에게나 엄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엄마에 대해 좋은 기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모녀 관계 자료조사를 위해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웹사이트에 질문을 던졌다. “‘나에게 엄마는 ( )다.’ 엄마는 어떤 존재인가요? 엄마라는 존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절묘하게도 긍정과 부정의 답이 반반으로 나뉘었다. 울 엄마는 나의 우상, 무지하게 감사한 분, 나를 가장 사랑하는 평생친구, 포근한 안식처라는 긍정적인 답변이 있는가 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사람, 부담만 주며 늘 무엇인가를 바라는 사람, 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답변도 있었다. 엄마와 딸, 그 복잡하고도 미묘한 애증의 관계를 여실히 보여 주는 듯했다.
딸이 엄마로부터 독립하는 게 쉽지 않은 이유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 전부다. 따뜻한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차가운 세상 속으로 던져진 아이는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무력한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한다. 만약 엄마가 아이의 정서를 잘 알아채서 울면 보듬어 주고, 배고프면 먹여 주고, 불편해하면 얼른 기저귀를 갈아 주는 등 보살피면 아이는 세상을 따뜻하고 살만한 곳으로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안전한 공간과 관계 속에서 아이는 세상을 탐험하며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딸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더 특별하다. 엄마는 딸이 어린 소녀에서 한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모든 시기에 최우선적인 역할 모델이 된다.
어떤 친구를 만날지, 어떤 남자를 사랑할지, 결혼하면 어떤 아내와 엄마가 될지 모두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딸에게 엄마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벗어나고 싶은 그 무엇이다. 자식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는 자신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에서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역할이 바뀐다. 그 벽을 넘어설 때 비로소 자식은 한 사람의 성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딸이 엄마로 부터독립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들 역시 딸로부터의 독립이 어렵다. 딸의 성장 과정에서 유독 강렬한 정서적 일체감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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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엄마들일수록 딸의 독립은 엄청난 심리적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고, 딸의 일과를 관리 대상으로 삼는다. 친구관계가 어떤지, 남자 친구와 데이트는 어떤지, 회사 생활엔 특별히 문제가 없는지 모든 걸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들. 심한 경우에는 엄마는 나르시시즘의 연장선에서 자기가 못 이룬 꿈을 딸에게 강요하거나 실패한 인생에 대한 책임을 딸에게 덮어씌우면서 들쑥날쑥 사랑을 보여준다.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딸들은 쉽게 자신을 자책하고 비하하게 된다. 스스로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불쌍한 딸들은 남에게는 모두 칭찬을 받지만 정작 스스로는 칭찬하는 법이 없다. 그들에게 인생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기대를 채워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비롯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거기에 자기를 끼워 맞추며, 그들이 칭찬해 줄 때만 자기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딸들은 ‘레테의 강’을 건너 저편으로 가야 한다. 레테의 강은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망각의 강이다. 죽은 자는 저승으로 가면서 레테의 강물을 한 모금씩 마시게 되는데, 강물을 마신 자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고 다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이제 성인이 된 딸들에게 애증의 대상인 내면의 엄마는 지워야 할 과거다. 딸은 자신을 억누르는 엄마의 그늘을 지우고, 엄마가 바뀔 수 있다는 미련조차 버리고 떠나야 한다.
■ 돈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돈 때문에 울게 될 날이 온다
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네.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네.
이것은 사제를 제단으로부터 …… 유혹한다네.
반쯤 회복된 병자에게서 베개를 빼내 버린다네.
그렇다네. 이 황색의 노예는 풀기도 하고 매기도 하네,
성스러운 끈을.
저주받은 자이게 축복을 내리네.
문둥병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고, 도둑을 영광스런 자리에 앉힌다네.
그리고 도둑에게 작위와 궤배와 권세를 부여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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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 회의에서.
이것은 늙어빠진 과부에게 청혼자를 데리고 온다네.
양로원에서 상처로 인해 심하게 곪고 있던 과부가,
메스꺼움을 떨쳐버리고, 향수를 발라 젊어져
5월의 청춘이 되어 청혼한 남자에게 간다네.
- 셰익스피어, ‘아테네의 티몬 제4막 3장’ 중에서
* 궤배 : 무릎을 꿇고 절하다. 이 글에서 궤배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 절을 받을 수 있는 지위나 권세가 있음을 뜻함
추한 것, 나쁜 것, 비천한 것을 아름답고 고귀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니, 이 마법의 지팡이가 과연 뭘까? 만약 진짜 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이 갖고 싶어 안달할 텐데 말이다. 셰익스피어는 그것을 황금이라고 했다. 금이 있으면 사제를 제단에서 내려오기 하고 도둑도 권세를 누리게 만드니 정말 돈의 위력은 대단하지 않은가.
철이 들어야 돈을 아는 게 아니라
돈을 벌어 밥값을 해야 철이 든다
돈이 갖는 위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돈은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동시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돈 얘기를 하는 것을 경박하게 생각한다. 돈을 따지면 속물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경제적 독립을 위한 필수요소다. 돈 문제야말로 독립적인 어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심리적 독립이 안 된 어른은 성인이 되어도 ‘어른 아이’로 남는 것처럼,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한 어른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경제력에 의존한다는 건 상대방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대상이 부모든 남편이든 경제적으로 의존하면 그만큼 상대방은 의존하는 이를 조종하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반대급부적인 귀결이다.
‘철이 없다’는 말에서 ‘철’은 계절의 변화를 말한다. 결국 철이 없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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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의 시기를 놓쳐 생계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걸 뜻한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성인은 철부지나 다름없다. 철이 들어야 경제관념이 생기고 돈을 아는 게 아니라 자기 밥값을 할 수 있을 때 철이 든다. 밥값을 한다는 건 돈의 절박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밥벌이의 지겨움도 고스란히 경험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스로 번 돈은 아무리 적어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돈과는 다르다. 자기 노력과 땀이 들어간 돈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그런 돈에는 자부심과 가치가 담겨 있다.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필요한 물건들을 산다. 돈은 우리의 노동력을 필요한 물질로 바꾸게 하는 교환 도구다. 구두 수선공은 구두를 고쳐 돈을 벌고,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쳐 돈을 벌고, 나 같은 의사는 환자를 돌보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러므로 돈을 버는 일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다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돈을 모르는 사람은 사회를 모르는 거라고 생각한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철학자 니체는 “정당한 소유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지나친 소유는 소유가 주인이 되어 소유자를 노예로 만든다”며 돈에 대한 집착을 경계했다. 그렇다면 돈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맬번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인 존 암스트롱은 돈과의 관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를 꼽았다. 그는 돈에 대해 무관심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괴테는 부유한 집 출신이었지만 독립을 원했다. 그래서 독립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법조인에서 정부 고문관으로 바꿨다. 그는 일에도 만전을 기했고 모든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렇게 획득한 자유와 안정감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글을 썼다. 그는 돈을 버는 일과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았다.
철학자 베이컨은 “돈은 최상의 종이고, 최악의 주인이다”라고 말했다. 돈이 수단이 아닌 삶의 목적이 될 때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불행해진다. 사람은 돈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살아 보니 돈은 나 자신을 지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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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주며,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그것으로 제 역할을 한 게 아닌가 싶다.
■ 마흔 이후의 아름다움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로 결정된다
명품을 사고 성형을 하는 또 다른 이유
성형, 다이어트, 명품 쇼핑……좀 더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지금도 많은 여자들은 시간과 돈을 기꺼이 투자한다. 때론 분수에 맞지 않게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어른들의 혀를 끌끌 차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어른들이 하는 단독 레퍼토리가 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느니라.” 그런데 요새는 꼭 그렇지만도 않단다. 외모는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경쟁력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아름다운 외모, 건강하고 섹시한 몸, 능수능란한 사교술과 유머, 패션 스타일 등 사람을 매력적인 존재로 만드는 이 모든 자원을 ‘매력자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매력자본을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에 이어 제4의 자산이라고 명명했다.
하킴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100만 원을 벌 때 비만인 사람들은 86만 원을 버는 데 그친다. 또 매력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남성의 경우 14~28%, 여성의 경우 12~20%를 더 번다고 한다. 그리고 취업률도 매력적인 사람들이 10%나 더 높다. 그러니 이제 외모에 대한 투자를 여자들의 사치나 허영으로만 볼 게 아니다. 외모 가꾸기는 요즘 취업과 승진을 앞 둔 20~30대에게 중요한 자기 계발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고 보니 없는 돈을 모으고 모아 유명 브랜드의 옷과 가방을 마련하려는 청춘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명품을 사거나 성형을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숨어 있다. 주변 사람들도 다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또래 계층에게 받는 사회적 압력을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라고 한다. 또래 여성들이 갖는 가방을 나도 가짐으로써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확인을 받고, 그들과 같은 울타리 안에 안착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명품백이란 마치 또래 이름표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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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떠난 마카롱’의 저자 기욤 에르네는 사회학자 보드리야르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명품 가방을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소비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기준으로 삼는 집단에 속하기 위해, 사물을 차이의 기호로 조작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명품 가방을 살 때 우리는 가방 자체가 아닌 브랜드를 소비한다. 그 브랜드를 매고 있는 자신도 명품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갖고 싶은 것은 특정한 대상이나 제품이 아닌 그 안에 든 가치다. 이를 ‘자존심 고양의 효과’라고 한다. 주변에 똑똑하고 힘 있는 사람이 많으면 내 자존심 역시 올라간다고 여기는 것처럼, 명품이라는 가치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심리다. ‘~처럼 되고 싶다’는 심리적인 욕망을 구체적인 상품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품을 걸쳐야만 아름답고 남들도 아름답게 봐 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과시적 행위가 아닌지 스스로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 열등감은 절대로 명품이나 성형으로 채워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나의 공적이다
영화 ‘쇼퍼홀릭’을 보면 “쇼핑을 끊으니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고 신용카드와 결별하니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는 여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참 멋진 말이지 않은가. 주인공은 영화가 시작될 때 초록색 스카프를 사느라 면접이 늦을 만큼 쇼핑광이었다. 그런데 신문사에 취직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면서 굳이 쇼핑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던 것이다.
마흔이 넘으면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진다.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예쁜 얼굴, 균형 잡힌 몸매, 매끈한 피부, 유행에 걸맞는 패션처럼 세상에 통용되는 아름다움이 미의 기준이 된다. 그런데 마흔이 지나면 각자 쌓아 온 인생의 결이 다른 만큼 서로 다른 스타일과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스타일은 얼마나 내 삶을 열심히 살았는가로 판가름 난다.
“스무 살 때의 얼굴은 자연의 선물이고, 쉰 살의 얼굴은 당신의 공적이다”라는 말을 남긴 코코 샤넬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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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을 봤을 때, 나는 그분의 백발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염색하지 않은 머리에 수수한 옷을 걸쳤을 뿐인데도 그분의 삶 전체가 반영된 얼굴과 태도는 그 자체가 하나의 ‘패션’이 되어 깊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흔히들 아무리 꾸며도 아름다움은 한때라고 한다. 나이 들기 시작하면 나잇살에 주름살까지 생겨서 아무 소용없다고 한다. 그러나 제인 구달처럼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은 세월마저 비켜가는 매력이 있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아름다운 여자는 세월을 도움을 받아 고유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가꾼 여자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 말이다. 그것은 젊어지기 위해 성형을 하고 명품 옷을 걸치며 외모만 가꾼 여자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딸아, 조금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명품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바로 너 자신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너라는 사람을 명품으로 만드는 일에, 즉 너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에 집중하거라. 그러고 나서 명품을 걸쳐도 늦지 않다. 영국의 사회운동가 마리 스톱스가 말했다. “당신은 16세 때의 아름다움을 당신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63세 때에도 아름답다면 그것은 당신이 영혼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일 것이다.” 마흔이 넘어, 쉰이 넘어, 예순이 넘어서 더 아름다워지는 너를 보고 싶다.
■ 멈추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진짜 공부
소크라테스가 죽기 직전에 음악공부를 한 까닭
얼마 전 ‘공부하는 인간’이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에 매일 아침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며 하루를 시작하는 미국의 어느 노부부가 나왔다. 89세의 남편 켄 모 씨와 86세의 아내 밀드레드 모 씨는 젊은 시절 과학을 전공한 과학도였다. 그들은 젊어서도 풀기 어려웠던 난제들을 매일 아침 하나씩 풀며,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내는 최근 불어 공부도 시작했다. 불어에 능통한 남편을 선생님으로 두고, 단어를 하나씩 외우는 모습이 영락없이 호기심에 가득찬 사춘기 소녀의 눈망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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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드레드는 왜 그 나이에도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세상일을 지켜보는 게 너무도 흥미롭습니다. 과거로부터 배우고 적극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일부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 세상과 관계를 맺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은퇴’한 것이 아니죠.” 이들 부부에게 살아 있다는 건 공부한다는 것이고, 공부한다는 건 계속 성장한다는 뜻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사람의 욕구란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서 시작해, 보다 고차원의 욕구로 진행된다는 욕구의 위계 이론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밑바닥에 생리적 욕구가 있고, 그 다음 단계에는 안전에의 욕구와 소속감에의 욕구가 있다. 이것들이 충분히 채워지면 사람은 자아존중에 대한 욕구를 추구하고, 그 다음으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갖게 된다고 한다. 인간이 갖고 있는 앎에의 갈망은 자아실현의 욕구에 속한다. 배움을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동시에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생 공부한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일화가 하나 있다. 사형을 선고받은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하고 있었다. “대체 그게 지금 무슨 소용이오?” 누군가 이렇게 묻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겠는가?”
딸아, 은퇴하는 순간은 곧 내가 죽는 날일 것이다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성장에의 욕구 때문이었다. 너를 낳고 병원을 그만두지 않았던 것도, 미국으로 연수를 간 것도, 50세에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개인 클리닉을 열게 된 것도 모두 멈추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를 위한 나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내가 죽기 직전 밀드레드처럼 수학문제를 풀지, 소크라테스처럼 음악공부를 할지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딸아, 영화 ‘로마 워드 러브’에서 우디 앨런이 말했듯이 “은퇴하는 순간은 곧 내가 죽는 날”이 될 것 같구나. 살아 있는 한 마지막 날까지 어떤 형태로든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매일 조금씩이나마 성장해 가는 나를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또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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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네가 시작해야 할 진짜 공부
나이 든 엄마가 계속 공부를 희망하듯 이제 서른을 넘긴 너도 진짜 공부를 시작할 때다. 네가 자라는 동안 해 온 공부는 생각하는 힘보다는 문제 풀이 방법을, 지혜보다는 지식을 배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책상머리 공부만으로는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단다. 업무에 시달리고 인간관계에 치이면서 사람이란 무엇인지,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해답을 얻고 싶다면 책상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아라.
공부란 꼭 펜을 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꽃과 풀에서도 지식을 얻고, 청춘은 우정과 연애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좌절과 실패는 직접 경험해 봐야만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공부다. 살아 있는 경험이 사상과 이론을 만나면 지혜로 깊어진다. 운전하는 법이 지식이라면 지혜는 자동차가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다. 지식만 있는 사람은 작은 일에도 흔들리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진짜 공부란 지혜를 얻는 일이요. 내 삶의 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생을 알고 싶으면 고전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은 한정적인데 반해 고전은 수많은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며 검증 받은 책으로, 그 안에는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전을 읽으면 직접 경험하지 못한 넓은 시공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영혼을 살찌울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내다 볼 수도 있다.
■ 어떤 삶을 살든 사랑만큼은 절대로 미루지 마라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을 바쳐라!”라는 노랫말이 있다. 그런데 언젠가 그 말의 의미는커녕 아예 사랑을 시작조차 못 해 본 여자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한 번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요”라며 다짜고자 대화를 시작한 그녀. “제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나 봐요”라고 하더니 “남자랑 자 보고 싶어요”라며 절정을 찍고 “그냥 연애는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로 한달음에 결론을 지어버렸다. 30대 중반인 수연 씨의 고민은 사랑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핫초코처럼 달달해야 할 20대가 김빠진 사이다처럼 밍숭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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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했다며 사랑의 추억이 없는 20대에 아쉬움을 표했다.
“20대 초반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내가 무너지는 것 같아 막연히 두려웠어요. 저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대 중반 즈음부터는 다음에 더 좋은 사랑이 올 것만 같아서 사랑을 밀어냈어요. 그렇게 다음 사랑도, 또 다음 사랑도 밀어내다 보니 어느새 저는 사랑을 밀어내는 선수가 되어 있더라고요. 2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외로움도 모르겠어요. 늘 혼자 였으니까.”
수연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녀가 누구보다 사랑을 갈망해 왔음을 느꼈다. 다만 그녀는 사랑을 원하는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연애를 한다는 건 떨어져야 할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녀 주변에는 정말 괜찮은 남자가 없는 걸까?
수연 씨는 어린 시절 우울증이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아픈 어머니는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도, 따뜻한 미소와 말도 별로 해 주지 못했다. 그 기억은 마음의 밑바닥에 남아 수연 씨를 흔든다. 그녀가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를 ‘회피애착’이라고 한다. 물론 그 이유가 다는 아니다. 그녀가 사람을 못 만나는 데에는 내면의 문제 외에도 외부의 조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박사 학위를 받고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른바 골드미스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지만 주변에 사랑할 만한 남자가 없다고 푸념을 늘어 놓았다.
직원이나 여자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주변에 괜찮은 여자는 많은데 소개해 줄 만한 남자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활발하게 직장 생활을 하는 30대 중반 여성들에게 소개시켜줄 싱글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어울릴 만한 남자는 이미 결혼했거나 짝이 있거나 아니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겠다는 듯 ‘ABCD론’이라는 속설도 등장했다. 결혼 적령기 남성과 여성을 학력을 기준으로 A부터 D까지 네 단계로 나누면, A급 여성과 D급 남성의 미혼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남성은 자신보다 더 능력 있는 여성을 꺼리기 때문에 A급 남성은 B급 여성과, B급 남성은 C급 여성과 , C급 남성은 D급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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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다. 그 결과 고학력 여성일수록 그에 걸맞는 남자를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더 이상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허송세월하지 마라
* 사랑의 단계
1. 사랑에 ‘빠지는’ 단계 : 콩깍지가 씌어 그들만의 세계를 만드는 단계
2. 사랑을 ‘하는’ 단계 : 콩깍지가 벗겨져 그 사람의 허물이 보이지만 그럼에 도 불구하고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단계
3. 사랑이 머무르는 단계 : 그들이 사랑하는 관계가 외부 세계와 격리된 것 이 아니라 그 안에서 견디어 나가는 단계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열정적인 사랑은 소멸 되었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편안해 하며 휴식과도 같은 사랑을 해 나가는 부부나 커플들이 많은데, 이들은 사랑을 하는 단계를 지나 사랑이 머무는 단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 것과 사랑에 머무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삶이 기술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도 기술이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랑은 특정 대상을 만나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상대방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다.
얼마 전 부활의 리더 김태원 씨가 토크쇼에 나와서 “사랑은 의리”라는 말을 했다. 첫 사랑의 아내와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린 결론이었다. 프로그램에 함께 나온 패널들은 그의 말에 웃었지만 나는 의미 있는 말이다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많은 부침을 겪은 김태원 씨지만 그가 지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게 된 건 ‘사랑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부부 사이의 의리 덕분이 아니었을까.
그러니 더 이상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허송세월하지 마라.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자녀를 입히고 먹이고 재움으로써 성장을 도와주듯. 외롭고 힘든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감싸안으며 상대를 성장시킨다. 그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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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내 마음 같지 않은 세상이라도 살아 볼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괜찮은 사람이 없다”면서 만남과 헤어짐만 반복한다면 사랑이 주는 성장의 기쁨은 끝내 누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랑은 반드시 누려야 할 인생 최고의 기쁨이다
인생 선배들이 우스갯소리로 “젊을 때 연애를 많이 해 봐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도 해 봐야 다음 사랑을 잘 할 수 있다. 깻잎과 배추는 앞면보다 뒷면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걸 요리를 해 봐야 알 수 있듯, 사랑도 몸소 부딪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왜 눈치도 없이 눈물의 매듭이 풀리는지,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 그렇게 아파도 사랑을 놓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는 게 어떤 일인지, 그럼에도 홀로 있는 것보다 누군가 사랑하는 일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런 것들이 사랑이라는 고약한 레슨이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들이다.
이런 레슨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왜 그에게 끌렸는지, 왜 그렇게 싸웠는지, 내 마음 속에 채워지지 않은 갈증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미처 몰랐던 나를 알게 되면 상대방도 나와 같이 상처 입은 사람임을 이해하게 된다. 사랑은 경험을 통해서만 성숙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생 최고의 기쁨은 자신이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이라는 말을 남겼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기쁨이다. 그러니 아무리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타인을 사랑하는 일만큼은 보류하지 말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 꽃도 벌이 날아와 당분의 균형을 잡아 주고, 애벌FP가 꽃잎의 표면을 매끄럽게 해 주듯 인간도 타인의 손길만이 채울 수 있는 공백과 결핍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내가 타인에게 사랑을 기꺼이 나누어 주고자 할 때 채워지는 것임을 잊지 마라.
딸아, 마지막으로 언제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은 한 순간에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서로의 삶을 나누며 따뜻함과 편안함 속에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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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서로의 존재를 진실로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지만 그저 결혼해서 같이 산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란다. 평생 서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 딸아, 후회 없이 사랑하거라.
■ 인생 별거 없다.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나는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내 어머니는 6 ‧ 25 전쟁을 겪었고,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내고 30여 년 동안 홀로 외로이 사셨다. 젊어서는 여섯 명의 아이를 키워내느라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한 시도 쉴 틈이 없었지. 하지만 어머니는 힘든 내색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인지 내게 남아 있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질경이처럼 끈질기고 강한 생활력, 지칠 줄 모르는 생명력 같은 것들이다.
나는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닮았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평소 심장이 안 좋으셨던 어머니가 몇 개월 병치레 끝에 조용히 숨을 거두시고 난 후 남편이 내게 말했다. 당신은 장모님을 참 많이 닮았다고, 힘들다 하면서도 계속 뭔가를 하고 있고 또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하려는 모습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게 아니냐고.
그러고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네가 어릴 때 너를 키워주기도 했던 내 어머니는 내가 힘들다고 투덜댈 때마다 그렇게 말씀하셨다. “인생 별거 없다. 재미있게 살아라.” 어쩌면 어머니는 살수록 어려운 게 인생이지만 그럴수록 삶의 재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던 게 아닐까.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모든 인간은 엄청난 호기심과 삶을 향한 에너지를 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래서 아이는 무엇이든 궁금해 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을 탐험하려 한다. 뭐든 만져 보려 하고, 깨물어 보고, 맛보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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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워 나간다. 그런데 무리한 교육과 선행 학습, 지나친 경쟁의식은 아이로 하여금 삶에 아무런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지친 사람은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쉬고 싶어 한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논어의 한 구절이 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그만큼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당해 낼 수 없다. 그 에너지야말로 삶을 이끌어 가는 강한 원동력 되기 때문이다.
딸아, 너에게 나는 나중에 어떤 엄마로 기억될까? 바라건대 나는 너에게 멈춰 있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려 했으며, 순간순간 재미있게, 생동감을 지니려고 애썼던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인생에서 한 번 지나간 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중한 시간을 불평이나 한탄으로 날려 버리는 것만큼 미련한 것은 없다. 그리고 남들한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내 몫만큼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다. 그러니 딸아, 할머니 말씀처럼 그냥 재미있게 살아라. 생각지도 못한 고난이 찾아와 너를 시험할 때, 누군가 옆에 있어도 외로움을 떨칠 수 없을 때, 사는 게 죽을 것처럼 힘이 들 때 그 말을 떠올리면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 Epilogue
오랜 세월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의 아픔을 함께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울, 불안, 상실, 상처의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얻게 된 교훈은 인간은 누구나 성장을 향한 고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딸들의 어머니, 내 연배의 여성들에게도 좋은 위안과 공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딸과 이제 막 인생 3막을 여는 엄마들,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여성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1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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