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보해성산 2015. 3. 24. 13:02
반응형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 이근후 지음

0 1935년 대구 출생, 이화여대 명예교수, 정신과 전문의로 50년

0 퇴임 후 아내와 함께 ‘사단법인 가족 아카데미아 설립 운영

-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준비 교육 등

0 76세에 고려 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최고령으로 졸업

0 30년 넘게 네팔 의료봉사

0 저서 :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 머리말

-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는 이들에게 띄우는 편지 -

네팔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1982년부터 매해 한 번씩 다녀오고 있으니 벌써 30년이 넘었습니다.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네팔 사람들은 인생을 네 단계로 나누더군요. 마치 인생의 사계절 같았습니다. 배우고, 적응하고, 참회하고, 자유로워지는 이 네 단계는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이 주창한 성격발달의 8단계와도 닮아 있어 놀랐습니다.

네팔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했습니다. 이를 4등분하여 삶의 첫 계절 봄은 25세까지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 배우고 사회에서 학습하는 시기입니다. 그렇게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청년기입니다.

두 번째 계절인 여름은 50세까지로,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사는 시기입니다. 취직도 하고 사업도 하고 결혼하여 가정도 꾸리면서,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홀로 서는 시기입니다.

이후로 75세까지는 되돌아보는 시기입니다. 인생의 가을입니다. 가장 뜨거웠던 시기를 보내고 이제 조금씩 차분하게 식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됩니다.

- 1 -

그렇다고 그 열기가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며 여전히 마음에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푸르던 나뭇잎에 색이 돌다가 어느 덧 단풍이 들 듯 완연한 가을을 맞이하는 때, 장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마지막으로 힌두교에서는 76세 이후의 사람을 자유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춥고도 고독한 겨울에, 사람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누릴까요? 네팔 사람들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말합니다.

인생의 사계절이 끝나가는 시기, 죽음이 멀지 않은 때입니다.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질수록 죽음과 친해집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온 것 자체가 덤이고, 내 존재가 기적이라는 생각을 품습니다.

어느덧 나 역시 팔순의 나이가 되었고, 마지막 계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지금의 겨울, 참 빨리도 지나간 시간입니다. 네팔 사람들이 나눈 나이대를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계절이란 그 환경에 따라 빨리 오기도 더디게 오기도 하며, 계절에서 계절로 넘어가는 시간 역시 늘 흐릿합니다. 그러니 위에서 말한 시기를 자신의 나이에 똑 떨어지게 대입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 책은 인생의 사계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띄우는 나의 편지입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오랫동안 정신과의사로서 사람들의 고민을 듣고 도왔던 경험도 담고자 했습니다.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2014년 12월 겨울에 이근후

■ 서문 : 소통은 삶의 절대 조건

근세 독일에 프레데릭 2세라는 왕이 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그는 어느 날 한 가지 물음을 떠올렸다. ‘아이들이란 부모가 안 가르쳐줬는데도 어째서 독일 말을 할 줄 알게 될까?’

그래서 왕궁 안에 전국에서 데리고 온 고아들을 보살피는 보육시설을 만들었다. 왕은 과학적 실험을 시도했다. 돌 정도 된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보통 때처럼 부모들이 자연스럽게 보육하게 했다. 그리고 다

- 2 -

름 그룹에는 음식을 준다든지, 옷을 갈아입힌다든지, 배설물 처리를 한다든지 하는 일 말고는 말을 걸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계속관찰하고 결과를 기록하게 했다. 결과는 이랬다. 말을 걸지 못하게 한 그룹의 아이들은 6개월이 지나면서 죽기 시작하더니, 2년이 되어 거의 모든 아이들이 죽었다.

이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한 충격을 줄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보육시설이 잘 갖추어졌는지 그리고 전염병의 유무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독일 역사에 기록된 일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소통’이라는 문제다. 소통은 단순히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생명력에까지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가능을 가졌다는 점에 관심이 간다. 즉 살아가는 힘의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예로 든 고아들의 경우가 아니라 어른이라도 이런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좋은 소통이 이루어지기위해서는,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의 의미가 서로 같아야 한다. 나는 ‘아’했는데 저쪽에서는 ‘어’로 받아들이면 소통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좋은 소통을 위해서는 자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상대의 말을 착실히 듣는 연습을 하고 내 뜻을 올바르게 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비록 젖먹이 어린아이라 해도 어른이 젖만 물려줄 뿐 얼러주고 토닥거려주고 중얼중얼 해주고 흔들어주고 업어주지 않으면 결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이렇게 사람에게 기본적인 삶의 요소인 소통이 원활하게 생명력이 생기고 삶과 일상이 윤택해질 수 있다.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독방에 가둔다는 것은 무엇보다 소통을 단절시키는 벌이다. 소통이 없는 삶은 고통이다. 소통이 없는 삶은 우리의 삶을 무미 건조하게 하고, 무료하게 하고, 멍하게 만들고, 바보스럽게 만들고, 인생을 지치게 만든다.

소통은 단순히 말을 건네는 수준이 아니라 건네면서 즐거워야 하고, 감동해야 하고, 정보가 늘어야 하고, 속이 후련해야 하고 삶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장성한 아들과 아버지 간의 소통, 참 쉽고도 어렵다. 부부간에도 소통이 끊

- 3 -

어지면 결별이 온다. 형제간에도 소통이 끊어지면 원수가 된다. 부모 자식 간의 소통이 단절되면 영영 남이 된다. 사회나 국가에서는 소통이 끊어지면 전쟁이 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김재은 (이화여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1부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

편지 01, 왜 남과 비교합니까? 당신은 이미 유일한 존재입니다

나 혼잡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알다시피 비교란 둘 이상의 것을 견주어 차이나 공통점을 살피는 것입니다. 사람은 붕어빵처럼 똑같은 틀에서 찍어낸 물건이 아니니, 서로 간에 다른 점도 닮은 점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비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싫든 좋든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늘 비교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나는 어릴 때 사촌들 사이에서 많이 비교되었습니다. 고모님이 모두 여섯 분이었고 고종 사촌들이 고만고만한 터울이라 비슷한 또래로 어울려 함께 자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외동아들이다 보니 고모님들에게는 유일한 친정 조카였고, 그래서인지 자신들의 자녀보다 나를 끔찍하게 아껴주셨답니다.

사촌들은 괜히 나와 비교되어 나를 닮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촌들에 비해 특별히 잘한다거나 뛰어난 부분이 있어서가 아니라, 고모님들이 친정 조카에게 느끼는 소중함과 사랑이 컸기 때문입니다. 어린 마음에 기분이 좋았고 우쭐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고모님들이 그렇게 치켜세워주시니 사촌들 사이에서 늘 잘난 조카 취급을 받았지요.

그런데 학교에 가면 사정이 좀 달랐습니다. 나보다 키 큰 친구도 있고, 공부 잘하는 친구도 있고, 부자인 친구도 있었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친구, 잘 생긴 친구도 있었습니다. 운동을 잘하는 친구는 참 부러웠죠. 비교란 끝이 없어서, 그렇게 친구 하나하나를 보다 보면 나보다 나은 친구는 있어도 못난 친구는 없는 것 같았답니다. 학교에 있는 모든 친구가 나보다 나은 사람 같

- 4-

았죠. 그러니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교의 결과는 우열입니다. 우월한 정서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하려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또다시 비교하며 다시금 우월감을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로 열등한 정서는 우월해지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역시 꾸준히 비교하며 이제는 우월한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맞습니다. 비교는 사실 죽기 전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과정입니다.

비교를 통한 우월감과 열등감은 살아가는 동안 결과적으로 더 만족스러운 나를 만드는 힘이 되기도 하죠.

젊은 시절에는 비교로 인한 좌절감에 맞설 면역력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레 포기하거나 겁을 집어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이기 이전에 유일한 존재입니다. 서로 저마다 다른 단 하나의 존재로 태어났을 뿐입니다. 그러니 남과 나를 비교하게 전에, 우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보는 건 어떨까요?

편지 02, 시간은 돈처럼 모을 수 없습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은 시간을 들여 결과물은 모을 수 있어도 시간 자체는 모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결국 시간은 돈이 되어도, 돈은 시간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시간은 참 소중하지만, 이를 느끼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을 수 있는 것이라 그런지, 흘려보낸 후에야 아까워하고 후회합니다. 그러니 남은 시간보다 지나간 시간이 아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낸 사람은 지금 당장은 그 값어치를 알 수 없겠지만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나면 어영부영 지낸 사람과는 큰 차이를 느낄 것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은 결코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시간은 더디게 흘렀습니다. 좀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나는 해가 바뀌면 당연히 자신의 띠도 바뀌는 줄 알았습니다. 돼지띠가 싫어 새해를 맞아 다른 귀여운 동물의 띠가 되고 싶었던 것이죠. 그렇게 기다리는 일 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길었습니다. 드디어 새해 아침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며 물었습니다.

“올해는 무슨 띠예요?”

- 5 -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돼지띠로 살고 있는 나에게 이제 일 년은 순식간입니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우리는, 매순간 영원 속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한정된 현재를 영원 속에 새기는 것이 인생이니, 소중하지 않은 순간이 있을까요?

편지 03, 꿈을 찾지 마세요. 꿈을 만드세요.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에서 실현되길 바라는 미래 자신의 모습을 상상 속에 그려보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의 꿈이 구체적인 상(像)을 띠지 않는다면 그만큼 절박하지 않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는 특정한 꿈이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꼭 확실한 꿈이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꿈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신의학에서는 꿈에 중요한 두 가지 동기가 작동한다고 봅니다. 하나는 선망입니다. 어떤 대상을 두고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앙심입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속담처럼 나를 거절한 대상처럼 나도 성공하여 보란 듯이 잘 살 것이란 적개심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습니다. 꿈을 두고 욕망이니 앙심이니 하며 말하니 왠지 부정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 자체는 부정성도 긍정성도 없습니다. 감정은 감정 그자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느끼는 바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일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꿈의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원하는 직업을 얻기 위해 대학생들이 스펙이라는 것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물론 자격 요건을 위해 필요하겠지만, 가고자 하는 현장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우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그런 사람을 원하기도 하고요.

내가 앞으로 그곳에서 그 일을 하기를 원한다면, 그곳과 그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세요. 직접 뛰어들어서 그 일을 경험해 보세요. 그것이 목표이고, 나

- 6 -

머지는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시절에 목표가 아닌 수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면, 자신의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꿈은 만드는 것입니다.

편지 04, 웃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바로 당신의 짝입니다

인생의 가장 큰 선택 중 하나가 결혼입니다. 예전에는 배우자 선택이 가장 큰 과제였는데, 요즘에는 결혼 자체를 할지 말지가 고민이라더군요. 맞습니다. 결혼은 선택 사항이지 필수 사항은 아닙니다. 인생에서 필수라는 게 있을 수도 없고요.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라는 결혼, 결혼이란 너무 어렵게 생각해도 곤란하지만 너무 쉽게 생각해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많은 독신 남녀가 일인 가구로서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 친구와 애인이란 용어도 확연히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자녀를 결혼 시킬 때 배우자 선택 기준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더 선호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눈에 콩깍지라고 마음이 꽂힌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이 더 흔한 일입니다.

결혼을 앞두고 교재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만큼 상대방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은 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일방적인 선입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보지 않고는 알기가 힘들고, 안다 해도 사람은 바뀌니까요.

배우자가 자신이 느꼈던 부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결혼 생활을 통해 서서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갈등의 골은 깊어집니다. 그렇습니다. ‘기대감’이 불화의 발단이 되는 것이죠.

제자들이 많다보니 나는 일찍부터 주례를 많이 서 왔습니다. 주례를 할 때마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혼인 서약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구체적인 약속을 담은 혼인서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부를 위한 아주 간단한 시험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질문입니다.

(1) 내가 배우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다섯 가지, (2) 내가 배우자로부터 받

- 7 -

고 싶은 것 다섯 가지. 이 두 가지를 적어보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일치율이 높다면 부부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반대로 일치율이 낮다면 그것은 일방적이 욕구이고 일방적인 감정일 뿐입니다.

내가 해마다 가는 네팔에는 독특한 결혼 문화가 있습니다.

1) 혼기가 찬 아들을 데리고 점찍어둔 신부의 집으로 술 한 병을 들고 가서 딸의 아버지에게 술을 권했을 때 술을 받지 않으면 거부의 뜻, 받아 마시면 아버지는 아들을 그 집에 두고 갑니다. 이때부터 남녀는 동거를 시작합니다.

2) 일 년 후 양가 부모들이 모여 커플에게 물어보고 한 사람이라도 싫다면 원상복귀입니다. 아이를 가졌을 때와, 첫아이를 낳았을 때도 양가가 모여 물어보고 두 사람이 좋다고 하면 그때야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국 빨라야 일 년이고 길게는 5년까지 걸리는 결혼식인 것입니다.

3)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커플이 갈라선다 해도 뒷말은 없습니다. 남자나 여자나 다시 짝을 만나는 데도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이미 아이가 생겼다면 모계 사회인 만큼 엄마 쪽에서 양육합니다.

4) 그러나 결혼까지 하고 이혼을 한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사람이 이혼한 사람입니다.

웃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당신의 짝일 것입니다. 다만 그 웃음이 더 오래가고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약속, 그것이 결혼입니다.

편지 05,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이 당신이 사는 세상입니다

“자아는 부모가 허용해 주는 범위만큼 자란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좀 어렵지만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등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익히 듣는 말입니다. 사람은 태어나 자라면서 부모가 가르치고 또 사회가 가르칩니다. 그런 가르침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간직하며 나름의 적응 습관을 터득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말하자면 배운 것을 응용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런 개념에서 보면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은 사실 습관화하기 어렵습니다.

- 8 -

나의 경우

1) 수영을 못 배우고 체육 시간에도 견학만 하고 지냈음 : 외동아들이라고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2) 경제 개념이 없음 : 은행에서 돈을 찾거나 저축한 경험이 없음, 문방구에 서 학용품을 사 본 경험이 없음, 부모님이 사 놓은 것을 사용

3) 공납금도 봉투에 든 채로 서무과에 내고 영수증만 받아 옴

한 인생의 삶이 전개되는 양상은 부모가 자아의 경계를 얼마나 넓게 허용해 주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부모가 허용해 주는 범위만큼 자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선현들은 사는 동안 선한 인연을 많이 만나 행동 범위를 넓혀가기를 지혜롭게 권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가며 폭넓게 사는 사람도 있고, 적은 인연이지만 깊게 사귀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 제 나름의 뜻을 가진 인연입니다. 넓거나 좁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인연의 고리가 선한가 악한가, 이것이 문제일 뿐이죠.

설령 부모로부터 받은 학습습관이 잘못되었다 해도 사회에서 좋은 선생과 인연을 맺을 수도 있고 친구를 통해 모자란 습관을 보충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만난 인연이란 너무나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만나고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의 범위는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폭과 깊이에 의해서 좌우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좋은 세상에서 사는지, 나쁜 세상에서 사는지, 그것은 오늘 내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상대방의 세상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가까운 사름들과 좋은 일들을 해나간다는 말로도 바꿔볼 수 있겠습니다.

편지 06, 난을 키우듯 친구를 사귀세요

“그 사람을 알고 싶으면 우선 그의 친구가 누구인지 알아보라.” 터키 속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비슷한 말들로 유유상

- 9 -

종이나 끼리끼리 논다는 말도 있습니다.

친구는 또 하나의 나이며, 자기 이외의 또 다른 자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닮은 사람끼리 모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모나 어른들은 자녀가 친구를 사귈 때 걱정을 많이 합니다. 혹시 나쁜 친구를 사귀어 자녀도 그렇게 될까 염려하는 것이죠.

성경에 “슬기로운 사람과 어울리면 슬기로워지고 어리석은 자와 어울리면 해를 입는다”는 말이 있는 것 처럼요.

어느 날 선배님 한 분이 나에게 호를 지어주셨는데 ‘무하(无何)’였습니다. ‘너는 의사이니 사람을 가려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담은 호였습니다. 맞습니다. 의사는 환자를 구분하면 안 됩니다. 몸이나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같은 환자여야 합니다.

이후로 사람을 대하는 습관을 조금씩 바꾸어 갔습니다.

나에게는 난에 대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환자들로부터 감사의 표시로 작은 난을 선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데 이 난을 보고 즐기기만 했지 잘 가꾸지는 못했습니다. 어느 날 생각이 나서 들여다보면 이미 시들어 있고는 했습니다. 부랴부랴 물을 줘보지만 한 번 시들기 시작한 난은 잘 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죽인 것입니다. 반대로 죽지 않게 하려고 기를 쓰고 물을 주고 아끼고 보살피면 그 때문에 죽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님이 그렇게 다 시든 난을 마당으로 옮겨 돌보았습니다. 다 죽어가던 난이 생기를 찾더니 꽃까지 피웠습니다. 살아난 난을 보고 나는 속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난 하나 살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환자를 돌본다? 친구를 사귄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지금도 난을 보고 있으면 친구란 존재와 겹칩니다. 너무 무관심해도, 너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주어도 시들고 마는 난은 꼭 친구와 같습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적절한 관심과 애정을 주고받을수록 더 오랫동안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편지 07, 부모님은 결국 당신의 자녀가 되어 갑니다

부모의 미음은 깊습니다. 어린 자식은 그 깊이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스스

- 10 -

로가 그럴 깊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그늘은 참 넓습니다. 어릴 때는 그 넓은 그늘에 의존해 살지만 좀 자라면 성가시다고 생각합니다. 미련한 생각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울타리 같은 존재입니다. 울타리는 안에서 보면 나를 가두고 밖에서 보면 나를 보호해줍니다. 아이는 철이 들면서 시선이 바깥으로 향합니다. 울타리가 답답하고 성가시게 느껴집니다.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이 울타리의 높이 그리고 걷어내는 시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동안, 그곳은 하나의 세계입니다. 어릴 적에 우리는 좋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그 안에서 보고 배웁니다. 닮아가는 것이죠. 이런 학습의 시기를 보내고 마침내 독립하여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새로운 울타리를 칩니다. 또 하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울타리를 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관리하기도 벅차다는 것, 아이가 그 안에서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 그리고 아이가 울타리 밖을 보기 시작할 때 느끼는 서운함, 결국 같은 상황에서 나의 부모는 어떻게 했는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발견합니다. 깊은 뜻과 넓은 그늘을 몰랐다는 사실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과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습득한 삶의 방식을 응용해 독립하고 나 또한 부모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독립하는 시기로 본 세 가지 유형

1) 캥거루 족 : 경제적이든 정신적이든 부모 없이는 삶이 어려운 경우

2) 의존은 하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는 삶, 아직 부모가 필요하지만 간섭은 받지 않겠다는 경우

3) 독립적인 삶을 사는 유형

시간은 흘러갑니다. 부모도 늙고 나도 늙어갑니다. 이제 그들은 당당하게 나를 학습시켰던 부모가 될 수 없습니다. 세월 앞에 담담하게 사그라지면서도 자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한 노인일 뿐입니다. 여전히 부모로서 기대를 한다면 그것은 욕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망감만 쌓일 수 있습니다.

- 11 -

부모는 우리가 유아일 때 서투른 것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다고 여기고 귀여워하며 돌보았습니다. 늙는다는 것은 보호해 주는 사람에서 보호를 받는 사람이 되어 간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달라져 가는 부모에게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스로 하나의 비밀을 품어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부모는 내가 돌볼 자녀가 되어 간다고 그 마음과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시간의 선물이라고.

편지 08, 일등이 아니면 더 재미있습니다

나는 일등을 한 번 해보고 망한 사람입니다. 초등학생 때 일등이 하고 싶어 용을 썼습니다. 일등을 하면 분명히 부모님이 좋아하실 테고 칭찬도 받을 테니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반에 항상 일등을 놓치지 않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를 잘할 뿐 아니라 운동도 만능이었습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편을 갈라 놀이를 할 때면 언제나 그 친구의 편이 많았습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나름의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일등이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정해 준 사람만이 할 수 있구나.’ 그렇게 나는 그를 하늘이 정해준 친구로 마음속에서 정리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일등에 대한 집념을 버리니 이제 나에게 석차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다만 재미있는 과목과 재미없는 과목으로 나누어 학업에 임하다 보니 과목별로 성적이 들쑥날쑥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과목이 있어 그만큼은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1학년 첫 학기를 마칠 때 성적표를 받아 보니 내가 반에서 일등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상 밑으로 다시 펼쳐본 성적표에는 확실히 1/60이라고 석차가 뚜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면 일등을 할 수 있어.”

나는 감정이 북받쳐 더 울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내내 무거운 짐을 안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 12 -

대학에 진학하고 또다시 즐겁지 않은 공부가 계속되었습니다. 의과대학 6년을 공부하면서 느낀 내 체감 성적은 늘 낙제를 겨우 면한 수준이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진급하며 가슴 졸였으니 공부가 재미있다고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 스스로 느끼기에 공부다운 공부는 교수가 되면서 새롭게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후학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이나 가르칠 만큼 내가 먼저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죠. 초중고 때 경험했던 공부와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누구와 경쟁하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능력을 배양시키는 공부였습니다. 그제야 공부의 묘미를 터득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조금씩 공부가 즐거워졌습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좀 독특하게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름

- 시험이 끝나고 며칠 후 똑같은 시험을 다시 치게 함 : 앞의 시험은 성적 평가용, 뒤의 시험은 벼락치기 공부 없이 자신의 온전한 실력을 다시 평가해 보라는 뜻

- 시험 감독 없이 시험을 치게 함 : 학생들이 오히려 시험 감독을 해 달라고 요청 함

정년퇴임을 하면서 나는 퇴임사를 통해 제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여러분의 스승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퇴임하면 그때부터는 여러분이 나의 스승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에 인색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정말 늦게도 깨달았습니다. 공부란 수단이 아닌 것을,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것을. 초등학교 때 일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 친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애초에 등수에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친구는 내가 지금 느끼는 공부의 즐거움을 이미 그때 만끽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부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일등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어느 분야든, 어떤 일이든, 진짜 승자는 즐기는 사람입니다.

편지 09, 젊어서 배운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입니다

- 13 -

요즈음에는 배움의 기회가 참 많습니다. 예전에는 배우려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고정관념이 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형태로 교육의 기회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죠.

1980년대 초 유럽을 여행하면서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의 친지들과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교육제도에 관한 것도 있었습니다.

스웨덴 친지의 자녀가 대학교를 다니는데 느닷없이 취직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친지는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나는 한국의 부모로서 그런 게 가능한지, 그래도 되는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곳의 교육은 일생동안 열려 있어서 우리나라처럼 딱 정해진 기간 동안에 졸업해야하는 구속력이 없다고 했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취업을 하고 얼마간 실무를 익히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학업을 마칠 수 있다니요. 부러웠습니다.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때는 부모님이 즐거워하시니까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칭찬해주시면 그것이 즐거워 행복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6·25 사변이 나서 혼돈 속에서 지내야 했으니 공부가 재미없었습니다.

공부는 뒤로하고 설익은 사유에 빠져들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때는 공부에 밀려 정신없이 보낸 기억밖에 없습니다.

교수가 되어 제자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진작 더 열심히 공부해두지 못한 게 후회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았다면 더 많은 걸 전해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정년퇴임을 하고 우연한 기회에 사이버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문화학과에서 공부하는 4년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발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늦은 공부지만 평소 해보고 싶었던 학문이라 스트레스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저 즐거울 뿐이었죠.

학창 시절에는 참으며 했던 공부였지만 나이가 들어서 스스로 참여한 공부는 삶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강의가 기다려지고 새롭게 알아가는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수까지 했던 사람이 이 나이에 익히는 즐거움을 새롭게 깨닫다니요.

그런데 즐거운 만큼 아쉬움도 컸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

- 14 -

라면’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은 더 많이 알고자 하는 면도 있겠지만, 더 이른 시기에 깨우치고자 하는 욕구도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공부가 삶의 기초를 이루는 결정적인 시기는 분명히 존재 합니다. 그 시기를 놓친다면 엄청난 혜택을 놓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공부를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동기와 방법도 부지런히 찾아야 합니다. 젊어서 논다는 말은 젊어서 공부한다는 말과 사실 그리 다르지도 않습니다.

편지 10, 산을 오르는 방법은 한 발짝씩 걷는 것뿐입니다

부쩍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주말에 서울 북한산의 백운대만 올라가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 올라가야 할 만큼 등산 인구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추세는 국내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에서도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등반가들이 한 시즌에 몇백 명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정상을 밟는 사람들의 수가 두 자릿수에 이른다고 하니, 이제 에베레스트 정복도 아주 엄청난 일은 아니게 되었습니다.

산에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큰 기쁨은 정상 정복일 것입니다.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순간을 위해 우리는 길고도 긴 오르막을 오르며 힘겹게 한 걸음 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1950년대 우리나라에 등산 인구가 많지 않을 때였습니다. 경북학생산악연맹이란 단체를 만들어 선배들에게 등반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장비도 등산정보도 없었습니다.

아이젠도 대충 모양을 그려 대장간에 가서 무쇠로 만들었지만 금세 휘어지거나 부러져 쓸모가 적었습니다. 캠프를 치는 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모든 등산 장비라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원시 수준이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 천릿길뿐이겠습니까?

밑에서 올려다볼 때 아무리 거대한 산도 처음의 한 걸음으로 시작해 마지막 걸음에 정상에 도달합니다. 단지 걸음의 수가 많을 뿐이죠. 또한 오르는 경로도 많습니다. 능선을 타기도 하고 계곡을 타기도 합니다. 길을 따라 가

- 15 -

기도 하고 없는 길을 개척해 오르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 모든 길은 정상에서 만납니다.

정상에 앉아 올라온 길을 보면 자신의 한 발짝 한 발짝이 이어져 결국 내 몸과 마음을 이곳에 있게 만들었습니다. 지나온 동안 작은 흔적마다 소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지 11, 나 아닌 누가 나를 온전히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 있는 안네 프랑크 기념관을 간 적이 있습니다. 알다시피 안네는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은 소녀입니다. 전시된 그의 일기에 적힌 메시지를 나는 한참이나 보았습니다.

전 세계 독자를 울린 어린 소녀의 이 말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간한 마음 수양을 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았죠.

그 많은 유태인이 독일의 히틀러에게 살해되었습니다. 유태인뿐 아니라 전쟁에 참가한 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선뜻 용서라는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용서’는 죄나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잘못했는데 왜 꾸짖지 말자는 것일까요?

어릴 적에 부모님은 내가 무엇을 잘못하면 벌을 세웠습니다. 자주 벌을 서다보니 차라리 매를 한 대 맞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참 벌을 서고 시간이 지나면 불러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셨죠.

기억에 없지만 고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절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나는 용서를 빌지 않았을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고모님께서 말씀해주시길 어린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똑같은 잘못을 할 지 모르는데 어떻게 약속해요?”

내가 생각해도 참 맹랑합니다.

용서란 말은 참 희한합니다. 젊었을 때는 ‘용서’가 명백한 단어로 인식되었습니다. 내가 용서할 것과 타인에게 용서받을 일들이 너무나 명쾌하게 구분

- 16 -

되었죠.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명백한 구분이 흐려지기 시작하더군요.

“남을 용서하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 유명한 말씀이 다시 보이면서 내가 생각한 용서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졌던 때가 있습니다.

어느 날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나는 아내의 잘못을 따지기보다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인가?’라는 물음에 부딪치면서 나 나름의 용서를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용서하자. 화를 내는 자신이 실망스럽고 초라하더라도 내가 책임을 지고 나를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용서하며 내가 누구를 용서하랴.’

어느 선현이 말하길 “용서하는 것이 좋다. 잊는 것은 더욱 좋다”고 했습니다. 좋다고 강조한 것을 보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안네 프랑크 기념관에서 본 “용서하자. 그러나 잊지 말자”에서 더 나아가 잊으라고까지 합니다.

정말 용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용서의 대상은 상대뿐 아니라 나를 향하기도 합니다 . 용서는 하되 용서한 일은 잊지 말아야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잊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나를 용서할 수 있어야 남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봐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스스로 참회하고 맹세하고 그런 자신을 믿는 것입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럽더라도 결국 나를 온전히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입니다. 인생의 끝까지 나를 책임지고 끌고 갈 수 있는 사람도 단 한 명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편지 12, 스스로에게 게으른 시간도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부지런한 사람도 있고 게으른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몸에 베인 습관입니다. 그런데 부지런하고 게으르다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나보다 굼뜨면 게으르고 바지런하면 부지런한 것일까요? 결국 게으르거나 부지런한 것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습니다.

- 17 -

1980년대 초 마칼루 등반을 위해 네팔을 찾았습니다. 내 눈에 네팔 사람들은 시간 개념이 없고 게으르고 굼떠보였습니다. 네팔을 다녀온 사람 중에 비슷하게 느낀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후 매년 네팔을 찾으면서 잘못된 선입견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 네팔의 자연환경을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히말라야는 인간이 설정한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운 곳입니다. 아무리 서둘러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소용없게 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자연의 시간을 따르지 않고 인간의 시간을 따르다가는 아주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히말라야 같은 고도에서 빠름은 신체의 극심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시간을 잘 안 지키고 게으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자연 특성에 맞춰 무리하지 않는 생활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꾸준합니다.

부지런하고 게으르다는 것도 근본적으로 보면 적응 습관의 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평가할 일이 아닙니다. 건강한 적응 습관이란 부지런할 때 부지런하고 여유로울 때 여유로운 것입니다. 주어진 자연환경 또는 인위적 상황에서 나름의 원칙을 두고 완급을 적용해야 더 오래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를 보는 시각을 그대로 돌려 나를 본적이 있습니다. 내 안에도 게으름과 부지런함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나 소질과 능력이 있다고 믿는 행동에는 부지런합니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이나 능력이 모자라는 부분에서는 한정 없이 게으릅니다.

때로는 부지런하게. 때로는 게으르게, 쓰러지지 않고 저마다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유가 있는 게으름은 곧 여유이기도 하니 너무 조급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편지 13,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어른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이 남긴 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한 번은 출판사에서 당신의 글을 모아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함

- 18 -

선생님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전에 어떤 말을 했는지 잘 모르겠는데 책이 나와 지금 하는 소리와 다르다면 크게 부끄러울 것 같아 사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하니 내가 지금 알지는 못하지만 그때 한 이야기도 내가 했고 지금 하는 말도 내가 한 것이라면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해, 내가 한 말을 내가 책임지기 위해 출판을 허가 했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변합니다. 변하는 것이 사리에 맞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아직도 어릴 때의 생각만 갖고 있다면 미숙한 것입니다.

유태인 속담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 거짓말은 거짓말이고, 두 가지 거짓말도 거짓말이나, 세 가지 거짓말은 정치인의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하게도 거짓말이 자연스러운 일상인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전문용어로 병적허언(病的虛言)이라 합니다. 흔히 사기꾼이나 협잡꾼, 반사회적 인격자의 언행을 설명하면서 붙이는 용어입니다.

어른이란 사회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즉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인 것이죠.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말이 바뀌는 것은 정당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거짓말이나 허언은 책임을 생각하지 않는 말이므로 어른이 할 말이 아닙니다.

편지 14, 자연은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는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자연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로 기만하지 않는다.”영국 속담입니다. 자연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로 인식할 수 있겠으나, 나에게 자연은 산이란 단어와 겹칩니다. 오랜 기간 동안 산을 찾으면서 느끼는 바로는 서양과 동양이 산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서양은 알프스 몽블랑에서 등산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시발점은 ‘상금’이었죠. 몽블랑을 오른 사람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하니 이때부터 산을 정복한다는 개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제는 산을 두고 자연스레 ‘정상정복’이란 말을 즐겨 쓰고, 그 자체가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

- 19-

해 동양에서는 등산(登山)이란 말 자체가 없었습니다.l 서양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말입니다.

동양에서는 유산(遊山)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즐겨 거닌다는 의미 정도가 됩니다. ‘정복’에는 산과 싸워 이기겠다는 뜻이 담겼지만 ‘유산’에서는 산에서 노닌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노닐다가 신선이 되는 이야기도 등장하고요.

한동안 나는 등산이나 정복이란 외래 단어가 싫어서 기피했습니다. 내가 쓰지 않는다고 없어질 이치는 아니지만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등산’ 대신 ‘유산’이란 말을, ‘정복’ 대신 ‘산에 안겼다’는 표현을 나 혼자 즐겨 썼습니다.

6·25 사변이 난 후 온 천지가 암울했던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산을 찾았습니다. 무슨 해답을 구하려고 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문학 책을 들고 산속을 찾았습니다. 책이 담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그냥 끼고 산으로 들어가면 묘하게도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네팔의 히말라야를 찾는 나에가 지인들이 무엇이 그렇게 좋아 매년 가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애인이 있어서 간다고 말합니다. 영국 속담처럼 자연은 내 사랑을 수용해 주면서 절대로 기만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더 나은 애인이 있을까요?

자연은 인간이라는 생물이 느껴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시선을 선물합니다. 해변을 걸으면 하얀 포말의 파도가 동행해주고, 가쁜 숨으로 산을 오르는 동안 푸른 하늘이 나를 이끌고 발을 딛는 바위가 나를 밀어 올립니다. 사는 것에 별것이 있을까요? 나비가 꽃들 사이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듯, 분주한 우리도 사실 그렇게 자연일 뿐입니다.

자연은 늘 우리 주변에 있는 친구이자 스승입니다. 정복할 대상일 필요도 없고, 올라야 할 목표도 아닙니다. 그 안에서 노닐면 됩니다.

편지 15,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합니다.

2013년에 출간한 내 에세이 집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가 베스트셀러가 되어 많은 독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떻

- 20 -

게 그렇게도 재미있게 살았느냐?”란 질문이 독자들이 가장 많아 한 질문 같습니다.

사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때가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나로서도 당시에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의 부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재미있게 살고 싶다면 과정 자체를 재미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책을 통해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사실 내가 그렇게 주장한 더 정확한 의미는 재미있는 일만 골라서 하라는 것이 아니고 닥치면 재미가 없더라도 재미있는 구석을 찾아 만들어가 보자는 것입니다. 기왕 할 일이라면 그런 마음을 갖자는 이야기인 것이죠. 그래서 나는 책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누구나 즐겁고 재미있게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로 인생을 즐기는 사람은 재미있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재미있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쓴 말이지만 사실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런 마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지라 자주 산에 오릅니다. 산에 오르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누가 나에게 심부름으로 산꼭대기에 올라갔다 오라고 한다면 과연 즐겁게 다녀올 수 있을까?”

안 올라갈 것 같습니다. 산은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곳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자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도 누가 시켜서 하게 된다면 거북해지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산을 싫어했다면 더더욱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과정에서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즐겁지 않은 일들이 있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싫은 것을 감내하는 고통이 다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면 결국 밝은 곳이 나온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과 터널 속이 어두워서 무섭다고만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당연히 미래입니다.

- 21 -

편지 16, 나를 알아야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 경봉 스님이 살아 계실 때 정신과의사들과 상담 전문가들이 스님을 모시고 양산 통도사 극락암에서 세미나를 연 적이 있습니다. 주제가 ‘나’였습니다. 한 상담전문가가 스님께 여쭸습니다.

“제가 뜻이 있어서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스님은 자네 이름이 뭣인가란 질문을 상담전문가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제 이름은 김 아무개입니다.”

“아무개의 뜻이 무엇인가?” 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상담 전문가는 스님의 질문에 말이 막혔습니다. 이름에서 딱히 무슨 뜻이 있으랴 싶어서였죠.

“그건 우리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것입니다.”

뜻을 담고 지어주셨을 텐데 그냥 지어주신 것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당장 정치를 할 생각을 거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네 같은 친구가 있어서 정치가 제대로 안 된다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스님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정치란 현실이다. 현실은 상황에 다라 윗돌로 아랫돌을 괴고 아랫돌로 윗돌을 채워야 할 일이 많은데 자기 이름 뜻도 모르고 정치를 꿈꾸다니, 당장에 생각을 버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 줄도 모르면서 타인을 돌보려느냐는 뜻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알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누구의 자식이다. 나는 어느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다. 나는 누구의 엄

마다. 나는 이런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설명은 부분적으로 맞기

는 하지만 ‘나’를 온전히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옛 선현들부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에 대한 추구나

실현을 강조한 사례들이 아주 많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자기 자신을

알라’는 말부터 불가의 ‘이뭐꼬’에 이르기까지 그 숱한 지침에도 불구하고 정

작 ‘나’는 오리무중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내가 ‘나’임을 부르짖는 시가가 사춘기입니

다. 어른들은 지금까지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아이가 갑자기 이유 없는 반항

을 하기 시작한다고 걱정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유가 없는 게 아니라 그

- 22 -

이유를 어른들이 모를 따름입니다.

사춘기를 잘 극복하도록 어른들이 도와야 합니다. 아이가 청년이 되어가면

서 내가 나를 주장하기 시작할 때 어른들이 양해를 해야 합니다. 자녀가 나

임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장한 일입니다. 그 주장을 시초로 자신을 조금씩 알

아가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니까요.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알 수 없는 존재가 ‘나’입니다.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내 인생의 길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하지만 나만 갈

수 있는 길. 그것이 각자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길의 끝은 누구도 모릅니

다. 하지만 길눈을 밝힐 필요는 있습니다.

편지 17, 자유로워봐야 자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 자유여! 네 이름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있는가!” 프랑스 시민혁명 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류작가 롤랑 부인의 절규로 전해오고 있는 말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절규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유란 남에게 구속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자유란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상황과 여건 그리고 사람에 따라 자유는 어려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가끔 가족들에게 “살아오면서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좀 과장된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가족들은 일제히 반기를 듭니다. 일생동안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핀잔입니다. 종로 한복판에 나가 물어보자면서 아우성입니다. 나는 웃고 맙니다. 종로 한복판에 나간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텐데, 그런 나를 두고 일생 동안 자유롭게 살았는지 갇혀서 살았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람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로움을 생각합니다. 우선 외부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자유롭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할까요?

반대로 남이나 외부의 제약이 없는데도 자기 스스로 구속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속하는 힘이 외부에서 오든 내부에서 오든 자유가 그리우면 우리는 거기

- 23 -

서 탈출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자유란 제한되어 있든 주어져 있든 간에 자신이 스스로 그러쥐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길들여진 새는 새장 밖을 나가도 다시 돌아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막상 자유를 주면 두려움을 느낍니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그 활동 반경이 무척이나 넓습니다. 배낭을 메고 세계로 나가고,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두와 소통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여건을 보는 틀 또한 넓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학위, 진학, 스펙, 부모, 직장, 결혼이라는 여건을 통해 스스로의 인생을 예단하는 틀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 혹시 안정된 여건에서 안전한 자유만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건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결국 안전한 자유는 새장 속에만 있습니다. 그렇게 새장 밖을 나간 새는 다시 새장 안으로 들어옵니다.

자유는 경험해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가치를 모르고는 용기를 낼 수 없습니다. 용기가 없는 새는 새장 밖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자유를 얻고자 한다면 용기를 내 새로운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새장 밖으로 나가 날아본 새가 새장 속의 모이를 그리워할까요? 그것 역시 새장 밖에서 겪을 경험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새장에만 있는 새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 24 -

2부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편지 18, 기회란 길모퉁이마다 숨어 있습니다

선배 교수님이 은퇴하시면서 일생동안 간직하셨던 액자를 나에게 주셨습니다.

‘욕래조(慾來鳥) 하면 선수목(先樹木하라’ 는 글이 아담한 액자 속에 예쁜 글씨로 적혀 있었습니다. 새가 날아오기를 바라거든 먼저 나무를 심으라는 뜻입니다. 즉 기회를 만들라는 충고였습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옵니다. 다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기회인 줄 모르고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또한 기회인 줄 알았다 해도 제대로 활용을 못했다면 기회를 못 알아 본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가보지 않은 곳에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가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릅니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가보지 않아 결국 모른다는 것만큼 큰 손실이 있을까요? 결국 기회는 두려움을 극복한 자에게 오는 선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길에서는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회는 그렇게 새로운 길로 접어들 때 나타납니다.

더 많은 모퉁이를 돌아보는 사람, 즉 더 많은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면 기회를 발견할 확률 자체가 높아집니다. 그러니 늘 보이지 않는 곳에 호기심을 가져야 합니다. ]

현명한 자는 하나의 좋은 기회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스스로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때를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다.”

사마천이 한 말입니다. 좋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좋은 기회를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새가 날아오기를 기다린다면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편지 19, 야금야금 해야 더 오래 많이 할 수 있습니다

- 25 -

시험이라 하면, 관련해서 즐거웠던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절차에 따라 실력을 평가하는 과정이니, 즐겁든 즐겁지 않든 꼭 겪어야 하는 것이 시험입니다. 그러다 보니 임박해서 벼락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치고 나면 늘 이런 후회를 하곤 했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야금야금 해둘걸.’ 그런 결심도 잠깐입니다. 다음 시험이 닥쳐오면 또다시 벼락치기를 하게 됩니다. 물론 온전히 성공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늘 후회하고 또 벼락치기하는 반복 습관은 내가 시험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공부를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좋아하는 과목은 평소에 야금야금 넘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과목은 예외 없이 벼락치기가 되었습니다. 나는 의사가 되었지만 사실 좋아한 과목은 국어, 옛글, 역사, 지리 등 주로 인문학 쪽이었습니다.

싫어했던 과목은 수학, 물리학, 화학 등 이공계과목들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 기본 원리만 터득했으면 어려울 것도 없었을 듯한데, 원리 이해를 못했으니 벼락치기 공부를 할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시험의 결과는 너무도 명백하고 정직했습니다. 인문계 과목은 상위에 속했고 이공계 과목은 하위를 맴돌았습니다.

비슷하게도 네팔과 관련된 나의 경험이 그렇습니다. 네팔을 방문한 지 올해로 32년째입니다. 하지만 매년 한두 번씩 방문했는데도 나는 네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한 해에 열 문장만 익혔어도 320가지 말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아직 기본적인 몇 가지 말만 할 줄 아니 아쉽기도 합니다.

네팔 말을 좀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면 더 많은 네팔 문화를 이해했을 테고, 더 많은 친분을 가질 수 있었을 테죠.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역할에 몰입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역할에만 모든 것을 바치며 살 수도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은퇴라는 시기가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이런 인생의 전환기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나는 ‘야금야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이 ‘야금야금’은 하찮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은퇴의 시기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때 그 ‘야금야금’이 새로운 역할을 해낼 큰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 26 -

당장 내일의 시험은 벼락치기가 통합니다. 하지만 10년, 20년 뒤 그려질 자아상은 벼락치기로 얻을 수 없습니다.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스케치를 하다보면 원하는 그림에 점점 다가갈 것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더 즐겁게 거침없이 해나갈 수 있습니다.

야금야금 한다면 너무 동떨어진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속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면 됩니다. 혼자서만 너무 많은 것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관심사가 맞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법 또한 영역을 야금야금 넓혀가는 좋은 방법입니다.

편지 20, 모두가 가졌다고 꼭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량생산이 익숙한 세상입니다. 국경을 넘나들며 팔고 사는 것이 익숙한 세상이다 보니, 이왕이면 세계인을 상대로 많이 팔고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물건이 귀하다는 것은 이제 옛말 같습니다. 오히려 물건을 선택해줄 사람이 귀해 보입니다. 헌 것을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새것을 사는 것 역시 미덕이라 합니다.

어쨌든 많이 만들어놓은 것을 팔아야 하니 광고나 홍보도 대대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그게 마치 세뇌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TV에서 자꾸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식의 말을 덧붙입니다. ‘너희가 게 맛을 알아?’ 왠지 자존심이 상합니다.

광고에서 본 그 물건을 이제 주위에서 많이 사서 씁니다. 자꾸 신경이 쓰이다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적어도 뒤처지는 기분은 느끼고 싶지 않아 구매합니다. 알 수 없는 존재감이 생깁니다.

그것은 물건의 소유자가 된, 같은 물건을 산 구성원이 된 존재감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것은 소비자라는 존재감일 것입니다. 소비란 이렇게 학습되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 꼭 필요한 것을 구별하기도 힘듭니다. 좋아 보이고 탐이 나서 살 수도 있습니다. 자기만족을 위해 필요한 일이죠.

- 27 -

하지만 다른 이가 가졌다고 나도 꼭 가질 필요 또한 없습니다. 소유의 기준은 필요와 효용입니다. 비교는 결코 소유의 진짜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단지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을 소유할 수 있을 뿐입니다. 비교우위에서 밀린다면 어차피 교체될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필요 없는 물건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손목시계입니다. 대학생 시절에는 돈이 없어 갖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시계살 돈이 생겼을 때는 필요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도처에 시계가 많았기 때문이죠. 실내에는 보통 벽시계가 걸려 있었고, 눈길이 가는 곳마다 시계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는 자동차입니다. 1970년에 처음 운전면허를 딸 때 주행시험관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운전 몇 년이나 하셨습니까?”

기초 연습만 하고 운전시험을 보러 온 초보자에게 뜬금없는 질문이었습니다.

“처음 해봅니다.”

시험관은 나의 운전 솜씨가 처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만일 선생님 말씀대로 처음 하는 운전이라면 너무 저돌적입니다.”

나는 이 말을 깊이 새겨들었습니다. 운전면허를 가졌지만 이후로 일생 동안 한 번도 핸들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생각이 많은 편입니다. 운전 중에 생각에 몰입한다면, 또는 시험관의 말처럼 내가 저돌적인 운전을 한다면 교통사고를 내기 십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택했습니다.

셋째는 휴대폰입니다. 나에게는 집 전화와 사무실 전화가 있습니다. 이 두 전화만 있으면 소통에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길에서도 불편하면 공중전화를 쓰면 되니 불편을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불편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자녀들이 걱정을 합니다. 집과 사무실을 벗어나면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점은 나도 동의하기에 이제는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28 -

편지 21, 내 이름 자체가 명예로운 사람이 되어 보세요

명함을 받아보면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 나뉘어 집니다.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만 적은 단출한 명함이 있는가 하면, 전현(前現) 직책을 총망라해 적은 명함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히 뒷면까지 꽉 차 있습니다. 둘 다 일장일단이 있다고 봅니다.

전자는 내 소속과 직책 등을 말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알만 하기 때문에 생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정보가 모자라는 서운함도 있겠죠.

후자의 경우에는 전현직을 총망라해 주니 정보 제공 차원에선 친절한 명함입니다. 반면에 자주 만나는 사람에게는 어떤 명함이든 상관없겠죠. 이미 그의 면면이 내 기억에 잘 입력되어 있고, 굳이 필요한 건 주소나 전화번호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두 번 만나는 소원한 사이라면 전현직이 많이 적힌 명함이 나을 것입니다. 그 내용을 통해 필요한 인연이 닿을 수도 있으니까요.

일제강점기 때 개인으로서 전투비행기 두 대를 조선총독부에 헌납한 사람이 있습니다. 문명기하는 사람으로 일본명 후미아키 기이치로입니다. 그의 명함에 얽힌 일화가 기가 막힙니다.

어느 날 그는 조선총독을 만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당연히 그의 이름도 모르는 총독이 만나줄 리가 없죠. 수완 좋은 문명기는 큼지막한 금판에 文明琦라는 자기 이름 석 자만 들여보내고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비행기 두 대를 헌납하고 총독의 비호아래 많은 부를 이루었습니다. 금으로 만든 명함, 이름보다는 금이 사람을 대신해준 일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늘 이름만 기억이 납니다. 소속이나 직책은 자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소속과 직책은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정작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전자가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이라면, 후자는 금판으로 기억된 이름인 것 같습니다. 나도 명함보다는 이름 자체가 기억나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 29 -

편지 22, 내가 싫은 것은 남에게도 싫은 것입니다

싫고 좋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정서입니다. ‘좋다’는 기쁘고 즐겁다는 뜻이고,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훌륭하여 마음에 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반대로 ‘싫다’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있습니다. 하고 싶지 않으니까 싫고, 싫으니까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옳다’와 ‘좋다’는 다른 뜻이며. ‘틀리다’와 ‘싫다’도 다른 뜻입니다. ‘나는 김치가 싫어’라고 하는 말에 ‘네가 틀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싫은 건 싫을 뿐 거기에 맞고 틀리고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좋고 싫음’을 ‘옳고 그름’의 틀로 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다르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낙담 때문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좋은데 너는 그것을 싫어한다면 서로의 느낌이나 감정이 다른 것입니다. 서로 틀린 것이 아니죠.

‘다르다’는 표현을 써야 할 때 ‘틀리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굴색이 틀리다’, ‘맛이 틀리다’, ‘느낌이 틀리다’. 이 세상에 틀린 얼굴색, 맛, 느낌이 존재할까요?

결국 내가 속하거나 내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는 무의식이 작용하나 봅니다. 이것이 굳어지면 자신의 생각뿐 아니라 느낌이나 감정까지 늘 옳다는 착각 속에 살면서, 이에 반하는 다른 사람의 느낌과 감정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버릇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들도 싫어할 가능성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보다 싫어하는 일에서 공감과 일치를 보이는 확률이 더 높습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싫어하는 일들은 대개 궂은일들입니다. 가치가 낮은 허드렛일입니다. 고통이 수반되고, 마음에서 꺼려지는 일들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도 좋아해주길 원한다면,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떠넘기거나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서로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기심은 남의

- 30 -

것까지 가지려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떠넘기는 것 또한 이기심입니다.

편지 23, 그런데 자녀가 몇 반인지는 아십니까?

‘그런데 자녀가 몇 반인지는 아십니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빵점입니다. 고백하건대 자녀를 넷이나 키우면서 친구 이름은커녕 몇 반인지도 모르고 키웠습니다.

‘지금 몇 학년인지는 알겠는데 몇 반인지는 모른다.’

‘친구인 줄은 알겠는데 이름은 모른다.’

아마도 많은 아버지들이 할 법한 말일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 딸이, 우리 아들이 몇 등 했다는 정도는 알 것입니다. 최고의 관심사일 테니까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자녀가 일 년 동안 담임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반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너 몇 등이니?’ 라고 물어본다면 진정한 관심일까요?

자녀마다 부모마다 가정마다의 개별성이 중요합니다. 어릴 때 기억을 되살려보면, 우리 부모님은 내가 몇 반인지 내 친구가 누구인지 그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를 모두 샅샅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관심이 나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당연히 속박으로 느껴졌습니다.

내 친구는 형제가 아주 많았는데 내가 집에 놀러 가면 아버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내 이름은 모르셨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조차 헷갈리는 판에 아들의 친구 이름까지 기억하기는 힘드셨나 봅니다. 나는 그런 것이 부러웠습니다. 외동아들인 나는 한 번 친구를 만나러 가려면, 우선 부모님께 누구를 만날 것이고 언제 돌아오겠다는 것을 소상히 말하고 허락받아야 했습니다.

속박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관심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더 심해졌습니다. 내가 외동아들이고 또한 과부의 아들이란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강한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형제가 많았던 내 친구는 늘 나를 부러워했습니다. 자기는 부모님의 관심 밖에 있어서 늘 서운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는 늘 지나침에 대한 속박을

- 31 -

느꼈고, 친구는 항상 부모의 관심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셈이죠.

두 경우 모두 쌓이면 분노와 원망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속박을 벗어나려고, 친구는 그 속박 안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쏟으며 살았습니다. 성장기에 겪은 그런 경험 때문인지, 내 자녀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겪었던 속박을 주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네 명의 자녀가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큰아들이 선행상을 받아 와서 마냥 흐뭇했습니다. 상을 탄 연유는 이랬습니다. 비가 오던 날, 큰 아들이 자기는 비를 맞으면서 동생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면서 등교를 했답니다. 이 광경을 교장 선생님이 보았고 표창을 받은 것이었죠. 동생을 잘 보살핀다는 이유였습니다.

지난 2월에 아들과 함께 네팔 여행을 2주간 하는 동안에 나는 이 기억을 되살려 그때 아들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들은 그 상을 받으면서 아주 부담스러웠답니다. 선행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집에 우산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랬는데 상까지 주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어진 아들의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제가 동생들을 보살펴야 하는 소년 가장 같다고 느꼈습니다.”

부모 모두 늘 바쁘게 일하러 나간 후에 남은 동생들을 보살펴야 했던 큰 아들의 의무를 생각하니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관심이란, 무엇을 해주는가보다 무엇을 원하는가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학교에 있는 아이를 찾아가려면 등수가 아니라 몇 반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편지 24, 혹시 자녀의 삶 속에서 살고자 하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속담에 ‘불면 날까 쥐면 꺼질까’란 말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가 너무 귀여워 애지중지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무자식 상팔자’란 말도 있습니다. 귀엽고 소중한 자녀지만 키우려면 보통일이 아니다보니 생긴 말일 것입니다.

‘한 사람의 아버지는 열 명의 자식까지 기를 수 있으나, 열 명의 자식은 한 사람의 아버지도 보살피지 못한다.’

- 32 -

이 속담은 놀랍게도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뿌리 깊은 이스라엘의 속담입니다. 이 말대로라면 결국 자녀란 어려서 보살펴야 할 때는 ‘확실한 거리’지만, 성장하여 성년이 되어서는 ‘불확실한 위로’밖에 될 수 없나 봅니다.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대체로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세 가지 유형은

1) 부모 자신의 삶을 자녀의 삶 속에서 구하려는 부모

-자녀의 삶이 곧 나의 삶, 노후도 자녀에게, 자녀를 보살핀 댓가를 노년에 받기를 원함

2) 부모와 자녀를 외형상으로는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지만 조종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부모

3) 자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는 부모

*자녀 동반 가족 자살 : 자녀가 자신의 분신이며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

자녀는 생물학적으로 나를 이어가는 생명체이지만, 한 인격체로서 독립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자녀는 결국 서로에게 비극이 될 수 있습니다. 품안의 자식은 결코 독립하지 못합니다. 결국 새로운 삶을 만들지 못하고 늙어가는 부모의 주위를 맴돌 뿐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끈은 단번에 잘라내기는 힘듭니다. 그러니 단계적으로 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 때에 얼마나 거리를 두어야 할지가 고민이라면, 단계적으로 30%, 30%, 30%를, 그래서 모두 90%를 버리기를 권합니다.

- 자녀가 사춘기가 되어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할 때 30%

-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진출하는 시기에 30%

- 결혼 때 : 마지막 30%

이렇게 세 번에 걸쳐 90%의 자율권을 줍시다. 그래도 아직 10%의 끈이 남았습니다. 10%라는 가느다란 끈은 자녀들을 조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서로를 연결하기에는 충분합니다. 부모는 절대로 자녀를 조종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의 삶은 결코 나의 삶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33 -

편지 25, 바빠도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닥터 리, 무슨 소리가 안 들리세요?”

“…….”

‘무슨 소리가 들린단 말인가. 적막강산인데…….’

네팔 친구 라즈반다리 씨와 2주 여정으로 카린쵸크라는 4000미터급 산에서 명상 트레킹을 하며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무슨 소리?” 하면서 갸우뚱해하는 내 표정을 보더니 그가 자기 곁에 와 누워보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이 소리 안 들리세요?”

‘엇, 이게 웬 소리인가?’

작은 풀벌레 소리하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내 숨소리까지 별별 소리들이 다 들렸습니다. 적막강산이 아니라 도처에 생명의 소리들이 넘쳐났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묘한 느낌이었죠.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맥속에 내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있었단 말인가.’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누워 있었습니다. 지금껏 산꼭대기만 보고 가쁘게 올랐던 나 지신이 부끄러워진 순간이었습니다. 라즈반다리씨는 굳이 긴 설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놀라워하는 모습에 흐뭇한 표정만 지었죠. 그것으로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다 건넨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템포만 여유로워도 이런 행복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도 바빴을까요?

바쁜 시간을 쪼개 산을 오르지만 등성이에 잠깐 앉아 쉬어 가는 여유조차 없는 사람을 봅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정상뿐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어디 산을 가보았다는 말이 정상을 정복했다는 말로 통합니다. 그 산에 가서 중턱에서 재미있게 놀다 올 수도 있는데요.

나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살고, 누구는 이 세상에 즐거운 소풍 온 듯 살기도 합니다.

정상을 고집하는 인식은 개인의 속성과 성향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당 부분 사회적 분위기가 가하는 압박으로 생긴 습관일 수 있습니다.

- 34 -

‘빨리빨리’라는 습관이 우리 몸에 배어 사회적 습관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여유로움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없습니다. ‘송곳 박을 땅도 없다’는 속담처럼 여유가 없습니다.

일등이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 이런 독려 때문인지 진짜로 일등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한가요? 아니, 나는 행복한가요?

행복을 얻으려는 사람이 있고, 행복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행복을 얻기보다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나서야 할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친구의 말대로 걸음을 멈추고 누웠을 때, 나는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이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다시 내딛는 다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편지 26, 배우자에게 화가 났다면 잘 표현해야 합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부부에 대한 정의를 두고 편이 갈려 이야기를 하더군요. “부부란 알콩달콩한 것”이라는 젊은 며느리의 이야기에 중년의 탤런트는 “아니야, 나이가 들면 그냥 친구로 살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이가 지긋한 출연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갈했습니다.

“친구는 무슨 친구, 그냥 습관이 되어 사는 거야.”

부부란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부부 사이에서 가장 탈이 많이 나는 원인은 말입니다. 말은 내용을 전달하기 이전에 정서를 표현하는 구체적 표현입니다. 그래서 감정의 앙금은 대부분 말을 통해 생깁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운 말이란 것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듣기 좋아야 고운 말입니다.

내가 정신과의사였을 때 병원으로 어느 아버지가 중학생 아들을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심각한 증상을 겪고 있어 입원을 시켰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 때였습니다. 환자의 아버지가 상기된 얼굴로 방문했습니다.

- 35 -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날 한밤중에 아들이 병동 안에 있는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아버지에게 “개자식”운운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에게 차분히 설명했습니다.

“기가 죽어 아무 말도 못하는 아들, 기가 살아 아무 말이나 하는 아들, 할 말 안 할 말을 가려하는 아들 중에서 어떤 아들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할 말 안 할 말 가려하는 아들이지요.”

어리둥절해 하는 아버지에게 나는 설명했습니다.

“아드님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아드님이 이제 기를 펴게 되었습니다.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말을 잃게 된 상태에서 드디어 말로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족관계 중 특히 부부 사이에서 이러한 마음의 병이 발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부자간의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부부의 경우에는 더 극단적인 경우도 많으며, 가족 간 소통의 문제라는 면에서 다르지 않습니다. 위의 경우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남편과 아내로 바꾸어 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편지 27, 부부간 입장 정리가 되어야 고부간 문제도 풀립니다

‘고부간’이라는 말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는 뜻입니다. 맞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아내의 남편이자 시어머니의 아들인 남자가 하나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엌에 가면 며느리 말이 옳고, 안방에 가면 시어머니 말이 옳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분쟁이 생기는 중요한 원인으로서 이러한 아들의 우유부단한 행동이 한몫하기도 합니다.

물론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양쪽모두의 의견에 수긍해주면서 서로의 감정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는 노력일수도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랬나, 아니면 나의 평화를 위해서 그랬나?’

안방 말만 믿고 마누라를 구박하는 남편, 부엌 말만 믿고 어머니에게 역정 내는 아들, “어머니를 택하든지 나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부간 갈등을 견디다 못한 마누라들이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말도 옛말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신혼집을 구하는 양상을 보면 시집은 되도록 멀리, 친정은 되도록 가깝게 구하는 추세이다 보니 이제는 사위들을 처가살이도 만만치 않은가 봅니다.

- 36 -

고부관계에 대해 말하고 있었으니 아들에 국한해 보겠습니다. 아들은 5세 전후에 어머니를 향한 공상적인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이미 권력을 가진 아버지가 걸림돌이 되니, 이런 아버지를 상대로 경쟁합니다. 이기기 위해 아들은 아버지를 닮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닮는다 해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적개심이 생깁니다. 이를 ‘살부지정’이라고 하니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감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겪는 원초적 과정이며, 성숙한 인격을 갖추기 위한 마음의 성장통 이라고 봅니다. 보통은 사춘기를 지내면서 해소되고 그런 무의식적인 공상도 사라집니다.

결혼을 했다고 모두 독립한 것이 아닙니다. 심리적으로도 독립을 해야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에서는 누구보다 남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같은 일을 두고 아내 앞에서는 어머니 흉을 함께 보고, 어머니 앞에서는 아내가 모자란다고 하는 것은 최악입니다. 그것은 가정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평화를 위한 것입니다.

아무리 골치 아프고 힘든 문제라도 책임지고 맞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부부란 결혼한 ‘성인’ 남녀입니다. 고부간의 문제는 결국 당사자들의 성장과 관련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고부간 문제를 겪고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성숙한 부부가 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편지 28,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하나로는 듣기에 부족하기 때문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둘이면 너무 시끄럽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말하기는 쉬워도 듣기는 힘든가 봅니다.

“써얼렁…….” 내가 가족들과 함께 신나게 말하고 있을 때 손주가 이런 소리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말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는 표현입니다. 왜 썰렁할까요? 첫째는 주제가 적절하지 않아서 그랬을 테고, 둘째로는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할 때 그런 반응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내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때때로 대화의 주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 37 -

설령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해도 전에 했던 말이라는 걸 잊고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또한 나는 어쩌다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그보다 자주 했던 말이라 여길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바꾸어 생각하면 나도 젊었을 때 그런 표현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나도 노인들은 왜 했던 말을 하고 또 할까, 갑자기 했던 이야기를 왜할까 하며 짜증부터 났습니다. 물론 지금은 이해를 합니다. 여든의 나이가 된 나 역시 그러니까요. 하지만 이런 일이 마음에 사무칠 때도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고모를 만나러 갔습니다.

“엄마 잘 계시냐.” 고모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질문을 합니다.

벌써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고모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나에게 묻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네”하고 대답을 하다가 나중에는 고개만 끄덕이고, 그러다가 미소만 짓습니다.

나이든 부모는 더 이상 자식이 성장하면서 보아오던 부모가 아닙니다. 그런 부모가 안쓰럽기도 하고, 가는 세월에 속절없을 수밖에 없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짜증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사람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적어도 내 부모는 절대 그래선 안 된다는 회피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나이 드신 부모는 자신의 이야기를 되풀이해 자식에게 할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분신에게, 부모 자신의 삶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알아달라는 뜻입니다.

내용을 떠나 한 사람의 인생을 그저 긍정해준다면, 그것이 최고의 효도일 수 있습니다. 자식만이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있을 날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이 그리 중요할까요? 하나의 존재로서 내가 하는 말은 또 다른 존재가 들어주고 인정해 준다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일 것입니다. 말의 내용이 중요하겠습니까? 쉽지 않아도 한 번이라도 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이 아기일 때 옹알이에 뜻이 있었을까요? 부모님이 다 알고 들어주었

- 38 -

을까요? 이제는 연로한 부모가 당신에게 옹알이를 합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결국 그마저도 계속 들어드릴 수 없는 날이 옵니다.

2015. 3. 5.

* 다음에 3부와 4부가 이어집니다.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2)

■ 이근후 지음

3부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

편지 29, 들어줄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보고 싶어서 의논할 일이 있어서, 심심해서, 사무적인 일로, 아쉬운 일을 부탁하려고, 궁금해서, 근처에 온 김에, 자랑하려고, 심지어 이유 없이 그냥 찾아가도 그 자체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유를 들자면 끝이 없죠.

나는 수련의 시절에 마음먹고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도 참 내키지 않는 이유라서 어려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수련의에게 따로 봉급이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답니다.

그런데 군사정권 시절이라 강제된 것이 많았고, 그중 하나가 의사회비였습니다. 회비를 내지 않으면 아예 의료행위를 할 수 없던 때였습니다. 안 그래도 돈이 없던 나는 빚이라도 내야할 형편이었습니다. 액수가 꽤 되었거든요.

결국 친구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죠. 직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친구를 불러내 점심을 함께하고 나서도 돈 빌리러 왔다는 말을 차마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가 헤어지면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너도 바쁠 텐데, 긴요하게 할 말 있어서 찾아 온 거 아닌가?”

그 말이 참 반가웠습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친구가 경리과에 가서 가불을 해 나에게 주었습니다.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돈을 빌려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내가 입을 때게 해준 배려가 참 고마웠습니다.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은 여간 중요하면서도 기쁜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든 나를 찾아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찾는 이유는 그것이 무엇이든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 1 -

나를 찾아온 사람은 나에게 말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러니 그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먼저일 테죠. 들어준다고 모든 고민이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해결을 위한 통로는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쓰는 말 중에 해제반응(解除反應)이란 것이 있습니다.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상기하거나 재연함으로써 억압된 감정을 방출하고 긴장감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 결과를 정화(淨化)라고 합니다. 들어만 줘도 마음의 갈등이 스르르 해소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찾아오는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주는 작은 배려가 얼마나 귀중한 행동과 태도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직업상 들어주는데 익숙했어도, 늘 내 친구가 베푼 작지만 소중했던 배려를 잊지 않고자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해주는 사람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귀한 법입니다. 그러니 들어줄수록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소한 상대방이 하려는 말을 정확히 인지하려는 노력은 해야 합니다.

소통이 원만할수록 관계가 좋아진다는 원칙은 나이와 세대를 구분하지 않는 당연한 이치입니다. 나이가 들어 경험이 많아질수록 해줄 이야기가 많겠지만 들어줄 이야기가 역시 많아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편지 30, 생각한 것을 행동한 것으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대상이나 환경을 잘못 인식하고 해석하는 것을 착각이라고 합니다. 있지도 않은 것을 있다고 보는 환상과는 다릅니다.

착각은 의식 수준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무의식 상태에서 일어나기도 합니다. 의식 수준에서 착각은 주어진 현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해 인식하고 행동하게 합니다. 착각을 일부러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실 알게 모르게 무의식에서 소망하던 것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다보면 이를 행동한 것과 겹쳐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끝과 행동의 시작 사이에서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겹쳐진 부분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죠.

가령 내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을 실제로 간 곳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 2 -

또는 관심 있던 영화를 이전에 보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가고 싶었거나 보고 싶었던 생각이 실제 행동의 기억과 중첩되면서 착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런 착각이 잘못된 기억 중 일부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억을 수정하면 상관없겠지만, 착각하고 있는 대상에게 계속 집착하면 망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망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혼자서 생각만 한 것을 정말로 행동한 것으로 착각하여 타인에게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릇된 기억을 사실로 혼동했기 때문이죠. 이는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억력이 떨어지는 노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기 생각을 너무 확신하거나, 경험에 의지해 넘겨짚다가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생각한 것과 실제 행동한 것을 명확히 구분할 줄 아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허언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꾸며 거짓말하고 다시 그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증상입니다. 유명인 중에도 이런 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본인은 곤경을 겪은 일들이 왕왕 있었습니다.

지속적으로 고집스럽게 착각에 집착하면 그것이 망상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됩니다. 착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라는 고유한 존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착각은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이치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된 말은 남을 속입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사실은 나마저 속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한 거짓말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뿐인데, 나마저 그것이 거짓임을 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편지 31,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답게 하면 됩니다

사람답게, 어린이답게, 노인답게, 등등 ‘답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합니다. ‘답다’는 몸말에 붙어 그 몸말이 지닌 특성을 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 3 -

‘사람’이란 몸말에 붙이면 사람이 지니는 특성을 말하는 ‘사람답다’가 됩니다. 여기서 ‘사람’은 그것이 품고 있는 표준적인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니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면 그런 특성이 없다는 의미가 되겠죠.

그렇다면 ‘나답다’는 말은 무엇일가요? 나의 성질이나 특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은 너무나 다양해 갠지스 강의 모래알처럼 많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저마다 특성이 있다는 뜻이겠죠. 신체 또한 많은 다양성을 띠지만 사람의 상격으로 구분하는 것이 비해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것입니다.

여전히 그럴듯하다며 회자되고 있지만 이제는 설득력이 떨어진 오래된 이론들이 있습니다. 혈액형에 따른 성격 유형이 대표적입니다. 특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은 이런 성격이라고 하면, 그 성격에 포커스를 맞추어 보게 되고 정말 그런 것처럼 생각되기 마련입니다. 일종의 착시인 것이죠.

그런데 나답다는 것은 이 세상에 유일한 유형입니다. 나는 단 한 명이니까요. 어찌 내가 ‘그런’ 사람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나일 뿐입니다. 나답게 사는 데 있어 정해진 것이 있다면 최소한 사람답게 살자는 것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고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의 기준은 윤리와 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980년대 초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스위스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심리학자 융의 비서로 일했던 바우만 여사의 집에 머물렀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트램(노면전차)을 타기 위한 카드를 사서 탈 때마다 결제를 했습니다. 나중에는 결제하는 척하고 그냥 몇 번 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바우만 여사가 나에게 몇 번 공짜로 탔는지 물었습니다. 내가 자랑삼아 세 번 그렇게 탔다고 했더니 그녀가 내 카드를 달랍니다. 바우만 여사는 트램을 타면서 내 카드로 정확히 세 번 더 결제했습니다.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자율적으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없던 때라 장난 섞어 한 행동이었는데, 바우만 여사는 그 사실에 정색했습니다. 승차 감독이 허술했던 것이 아니라 그곳의 윤리 기준이 높았고 승차에 대한 법률이 명확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람다운 상한선인 양심도, 하한선인 법률도 지키지 못한 것이죠.

- 4 -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어쨌든 나는 나다웠고 바우만 여사는 바우만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답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인정 또한 받을 수 있겠죠. 이 세상에 나는 한 명이지만 다른 사람 역시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인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그 귀한 사람들 속에서 지킬 것은 지키며 사람답게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나답게 하며 살 때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편지 32, 퇴직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일을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 내가 정년퇴임을 한 때가 엊그제 같은 2001년인데, 내가 정신의학을 가르친 제자가 2010년에 처음으로 정년퇴임을 맞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이제 줄줄이 정년퇴임을 하는 제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축하해 마지않습니다. 이제는 제자라기보다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동지 같아서 반갑습니다. 그러니 축하하는 마음이 큽니다.

되돌아보면 정년을 채우는 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교직에 몸 바쳐서 큰일 없이 정년을 맞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다른 모든 직종 또한 그럴 것입니다.

다가오는 2월이면 내 제자 교수가 또 정년을 맞습니다. 당사자는 나름대로 퇴임통을 앓고 있겠지만, 먼저 퇴임한 선배로서 가장 기초적인 조언 두어 가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 ‘내 나이가 65세가 되었구나’ 라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어차피 나이란 거부한다고 안 먹는 것도 아니며 젊어지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나이는 계속 들어갑니다. 조금 더 젊게 보일 수는 있어도 나이를 안 먹을 수는 없죠. 같은 이치로 정년은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지, 노화로 결정되는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닥치는 현실일 뿐입니다. 그러니 준비가 되었든 되지 않았든 먼저 당당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가 아닌 젊어 보인다는 위안을 받으면서 언제까지 착각 속에서

- 5 -

살 수도 없습니다. 착각은 할 때에만 즐거울 뿐 실제가 아닌 허구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잘 압니다. 정년퇴임은 그런 착각에서 벗어날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연습이 필요합니다. 정년을 자각했다면 그에 맞는 적응을 연습해야 합니다. 노인으로 살기 위한 일종의 학습인 것이죠. 요즘 육십 대면 아직 장년에 속한다고도 하는데, 그렇다고 칠십대가 먼 것도 아닙니다. 또한 노인으로 산다는 것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닙니다. 미리 연습하고 익숙해진다 해서 나쁠 것도 없습니다.

65세까지는 아무리 스마트한 현역 교수였다 해도 퇴임 후에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초년병일 뿐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제는 노인으로 사는 세월이 만만치 않게 긴 시대입니다. 이미 노인으로서 오래 사신 분들 입장에서는 아장아장 걸음마하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아장아장 걸음은 생각 없는 걸음이었지만, 정년을 넘긴 아장아장 걸음은 경험이 쌓인 지혜로운 걸음이 될 것입니다.

퇴직은 내 몸이 직장을 떠난 인생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떠났을 뿐이지 누구도 일을 그만두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가 조기 퇴직을 해도 좌절하지 않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포기하지 않아야 새로운 기회 또한 오는 법입니다. 정년을 채웠든 채우지 못했든 퇴직 자체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누구나 퇴직을 합니다. 그리고 누구는 좀 더 빨리 퇴직 후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나대로 내 여건에 맞춰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년은 깁니다. 생각한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만큼은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제 한두 달 지나면 새로운 출발점에 서는 제자에게 끝으로 이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빚을 갚자!’

편지 33, 내려놓는 것은 포기와 다릅니다

포기란 내가 하고자 하던 일이나 하던 일을 버리는 것이며, 자기의 권리나 자격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즉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것이죠.

- 6 -

마음에서 ‘내려놓다’는 의미는 포기보다 더 큰 틀의 개념입니다. 포기도 내려놓음의 일종이라 할 수 있지만, 그에 걸맞은 마음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띠고 있습니다.

정신과의사로 일하면서 여러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은 자기가 잘 알고 있으니 스스로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고 하는 환자가 꽤 많았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마음을 헤아려보면 이미 자기 마음을 조종할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포자기한 사람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몸과 마음을 망칩니다. 절망에 빠져 좋지 않은 줄 알면서도 도의상 옳지 않은 일을 지속합니다. 사실상 자신을 포기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려놓음은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짐만 내려놓는 것이죠. 이제 한결 가벼우니 가던 길을 계속 갈 수 있습니다.

대학생 때 4·19 혁명에 가담했던 나는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어이없게 뒤늦게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련의 시절에 수형 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겪었던 일로 모진 앙심을 품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백하건데, 내가 의사가 되면 나를 찾는 환자 중에 절대로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대상이 있었습니다. 군인, 경찰관, 교도관이 그들이었습니다.

수형생활을 마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수련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한 교도관이 응급실로 실려 왔습니다. 나는 우리 병원에서 수술할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동료 교도관이 물었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서울로 가세요.”

그곳이 대구라서 불가능한 제안을 한 격이었습니다. 그때 사고를 당한 교도관의 어린 아들이 도착했습니다. 중학생 아이가 내 가운 자락을 붙들고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좋으니 수술이라도 한 번 받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사실 그 교도관은 신경와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내가 있던 병원에는 신경외과가 없었습니다. 내 앙심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수술이 불가능한 처지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머리를 찍은 엑스선 사진을 가지고 일반외과 과장님 댁으로 급히 앰

- 7 -

뷸런스를 타고 갔습니다. 당연히 과장님은 나더러 정신이 있나 없나 하며나무랐습니다. 머리 수술을 해 본 경험이 없던 일반 외과의로서는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수술 경험이 있는 분은 여기서 교수님뿐이잖아요.”

결국 기적적으로 교도관을 살렸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 앙심을 교도관의 자녀로 인해 내려놓은 것입니다. 내려놓고 나니 군인도 경찰도 교도관 어느 누구도 불편한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겪었던 한두 사람과의 관계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람을 향한 앙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알아차리고 보니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 건너 눈 흘긴 꼴이었습니다.

미워하면 고립될 것이고, 용서하면 더불어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공생입니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용서가 필요합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앙심이라는 마음의 짐을 지고 사는 인생은 더 괴롭습니다.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것은 집착이 되고 맙니다.

내 앙심은 진작 알아차리고 내려놓게 해준 그 중학생이 지금도 참 고맙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마음의 짐을 지는데 집착했다면, 나는 이미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릅니다.

편지 34, 내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자기 안에 있다고 합니다. 아주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없다 해도 주변 사람들과 세상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내가 없는 세상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타인으로서 살 수 없습니다. 내 존재를 통해서만 타인을 인식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없다면 적어도 나에게는 남과 주변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내 안의 행복은 남에게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많은 행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 해도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행동에 의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부실하게 만들었다면 비록 겉으로는 남을 위한 이타적 행동을 보

- 8 -

일지라도 행복한 주체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흔히 행복은 이타심에서 오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남의 위한 이타심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나입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타심을 발휘해 남을 돕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상대가 나로 인해 행복해진 모습을 보고 나도 행복해지면 좋은 일이겠지만,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행복하지 않다면요? 어쩌면 불행감을 이타심으로 해소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이기심과 이타심은 혼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타적 행동이란 넓게 보면 우리를 위한 것이고 그 우리 안에 내가 속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상관없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타성은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넓게 보면 이타심은 성숙한 이기심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내가 행복해야 그로 인해 넘쳐 전달되는 행복감이 이타심입니다. 내가 행복해야 더불어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며 남의 행복이 나에게로 전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나 없이 남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고 잘 대해주어야 합니다.

편지 35, 배우는 것만큼 즐거운 세상 구경이 있겠습니까?

‘배워서 남 주나.’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면 부모님이나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배우고 익히는 공부와 수련은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인데 왜 싫어하느냐는 뜻이겠죠.

학창시절에 나 혼자 듣던 말이 아니라 친구들끼리 이 말을 두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사과가 다섯 개 있는 데 두 개를 먹었습니다. 남은 사과는 몇 개일까요? 정답은 세 개가 아닌 두 개입니다. ‘먹는 것이 남는 거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먹은 것이 두 개이니 남은 것은 두 개가 된다는 것입니다. 난센스죠.

‘배워서 남 주나’라는 말도 이 말에 비추어 보면 익히고 배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 인생을 위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 9 -

먹은 것이 남는 것처럼 배운 것은 내 것이 됩니다. 남 주는 것이 아닌 내 지식이 됩니다. 그런데 배워두면 내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에게 긴요하게 나누어줄 일도 생깁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나로서는 일생 동안 내가 배운 것을 간직하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식이란 남에게 준다고 내 것이 줄지도 않는 것이더군요.

세상 구경이란 배움입니다. 봐서 알게 되고, 알고 있어 보입니다.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면 바로 내 것이 됩니다. 결국 내 입으로 먹은 것이 남는 것이죠.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합니다. 배움이 곧 삶인데 나이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누군가는 소극적이고 누군가는 더 적극적일 뿐입니다. 나는 이왕이면 적극적으로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 편이 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천상병 시인은 삶 자체가 소풍이라 했습니다. 삶은 그렇게 소풍처럼 왔다가 둘러보고 체험하는 여정일 수 있습니다. 어차피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죽음이라면, 더욱 좋은 것 그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을 구경하는 게 낫겠죠. 그런 의미에서 학습이란 우리 생에서 가장 적극적인 구경과 체험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세상의 더 깊은 곳을 구경하는 일일 것입니다.

길에서건, 책에서건 교실에서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세상을 보고 싶은 만큼 즐겁게 볼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나이가 있지, 자기 인생에는 나이가 없습니다.

편지 36, 인생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합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간은 항상 미래에서 다가와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간 과거의 일을 되새겨 교훈을 얻고 미래를 대비하며 현실을 삽니다. 다가오지 않는 미래는 불확실할 뿐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여기(Here & Now)’라는 말의 뜻이 여간 깊지 않습니다. 지금 이라는 시점과 여기라는 공간을 강조한 이 말은 정신분석학 용어이기도 합니다. 프로이트가 제시했고 이후 제자인 페린치가 적극적인 치료 기법으로

- 10 -

서 그 중요성을 강조해 주목 받았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며 회자되고 있습니다.

신라의 천년고도 경주 남산의 냉골(삼릉계곡)에 오르면 선각 마애육존 불상이 있습니다. 바위에 부처님과 보살상을 일필휘지하듯 음각해둔 마애불상군입니다. 그런데 육존불이 아니라 따로 현세의 삼존불과 미래의 삼존불이 합쳐진 것이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나 역시 이 주장에 동의합니다.

직접 탐방해보면 하나의 큰 바위가 마치 두 개인 것처럼 한쪽은 튀어나고 한쪽은 들어가 있습니다. 고작 1미터 정도 되는 돌출된 간격을 두고 오른쪽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왼쪽 삼존불은 우리가 죽어서 찾아갈 서방정토의 삼존불입니다.

모두 하나의 작품 같으면서도 그 사이에 미묘한 간격을 두어 현세와 서방 정토를 묘사한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세 자체를 극락으로 만들고자 했던 신라인의 생사관이 엿보이는 대목이었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깨달았습니다. ‘지금 여기’는 살아 있는 지금이기도 하며, 죽음이 닥칠 미래이기도 하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여기이기도 하며, 죽어서 묻힐 여기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는 ‘생과 사’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죽어가고, 죽어가며 삽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극락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합니다.

인생은 ‘지금 여기’에만 존재합니다. 내가 있는 지금 이곳에서 행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편지 37, 이혼을 막을 필요는 없지만 권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혼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요즘의 우리나라 이혼율은 무척이나 높습니다. 더구나 이제 통계로는 황혼 이혼이 신혼을 앞질렀다는 보도까지 나오니, 이제는 부부간의 성격 차이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될 갈등에도 관심을 가져야할 것 같습니다.

이혼에 대한 세태만 달라졌다고 보지 않습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시대를

- 11 -

넘어 이제는 일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려 네 가구 중 하나가 일인 가구입니다. 물론 이 중에는 이혼 후 혼자 꾸린 일인 가구도 포함될 것입니다.

평생 함께할 결혼을 위해, 만날 때 잘 만나야 하고 사귈 때 잘 사귀어야 합니다. 만나서 사귀는 동안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을 찾으려고만 하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결혼은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는 일입니다. 나를 중심에 놓고 상대의 모습만 본다면 긴 결혼 생활 동안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대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나의 모습 또한 알아야 합니다. 결혼은 상호 노력을 위한 언약입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갈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결혼이겠죠.

삶은 예상대로 되어가지 않기에 결혼 후 커다란 실망과 함께 불행을 겪기도 합니다. 불행한 결혼이라면 파혼이나 이혼 역시 적극적으로 행복을 찾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사숙고해야 할 인생의 역경이기도 합니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혼 역시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러니 이혼 이라는 선택에 무게를 더 실을 이유도 덜 실을 이유도 없습니다. 결국 당사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편지 38, 아내의 비난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세요

금실 좋은 부부도 따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가 맞나 싶을 만큼 너무 다른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같은 사실을 두고 기억이 엇갈리기도 합니다. 따로 꼼수가 있기보다는 부부라 해도 각자가 느끼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죠.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습니다. 같은 시공간에서 겪은 일인데 아내와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 서로 그렇게 다를 수 있다니, 참 의아해집니다. 특히 아내는 삼사십 대를 기억해보라 하면 머릿속이 휑하다고 표현합니다. 그만큼 힘들고 정신없이 지나간 시기니 묻지도 말라는 뜻이죠. 그런 말이 나로서는 참 민망하고 죄스럽고 미안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들게 합니다.

나 또한 삼사십 대를 기억해볼라치면 머릿속이 휑할 만큼 바쁘게 보냈습니

- 12 -

다. 그러니 나는 나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우리가 함께 고생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내는 여지없이 자기가 고생을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반박할 일이 아닙니다. 아내의 기억에 남은 젊은 시절이 그렇다고 하니까요. 결국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해집니다.

중국에 후스(胡適)라는 유명한 석학이 있었습니다. 주미 중국 대사를 지낸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부인은 무학에 옛 풍속을 따른 전족(纏足)여성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신여성과 새로 결혼했지만 후스만은 조강지처를 고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주미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외교가에서 큰 우려를 표명했다고 합니다. 대사도 대사지만 대사 부인이 맡아야 할 사교계의 위치를 감안한다면 구닥다리 전족에 무학 여성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후스의 아내가 외교가에서 보여준 솜씨는 대사를 능가했습니다. 비결은 그녀의 음식 솜씨였습니다. 후스의 아내는 친정 고향에서 가져온 무쇠 가마솥에 중국 전통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고 금세 입소문이 자자해졌습니다. 그 음식 맛을 보기 위해 더 많은 외교관들이 운집했다고 합니다.

그런 부인과 일생을 살고 임종이 가까워진 후스는 남편들을 향한 삼종사덕의 말을 남겼습니다.

1) 부인이 외출할 때 꼭 모시고 다녀라. 2) 부인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라. 3) 부인이 아무리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해도 맹종하라.

남성 우위의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로서는 꽤 놀라운 유언이었습니다. 여기에 네 가지 덕을 붙였습니다.

1) 부인이 화장할 때 불평하지 말고 끝까지 기다려라. 2) 부인의 생일을 절대 잊지 말라. 3) 부인에게 야단맞을 때 쓸데없이 대꾸하자 말라. 4) 부인이 쓰는 돈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후스가 평소에 그렇게 살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살지 못해서 남긴 유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13 -

남편에 대한 부인의 비난을 반복되는 잔소리나 바가지로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정말 단 한 번이라도 부인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한 적이 있는지 반문해 봅시다.

설사 남편 입장에서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다 해도,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는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충분히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아내의 감정이 풀리게 합니다. 그러니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이 단지 그것일 수도 있습니다.

편지 39, 가족과 네트워킹 해보세요

내 친지 가운데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가 있습니다. 로천(鷺泉) 김대규(金大圭)란 분입니다. 그림뿐 아니라 조각도 하며 소리꾼이기도 합니다. 재주가 참 많은 분이죠. 한 번은 그가 회갑을 맞아 전시회를 여니 초대하겠다는 초청장을 보내 왔습니다. 고향은 아니지만 그는 제주도 서귀포에 둥지를 틀고 문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시간을 내어 제주도로 갔습니다. 전시회 제목이 ‘Image 60 회고전’이었습니다. 그가 60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나이테에 남은 60명을 그린 초상화전이었습니다. 그림 옆에는 모델이 된 사람의 실명과 화가가 품고 있던 압축된 인상도 적혀 있었습니다.

전시회를 둘러보다 내 초상화도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해 놀랐습니다. 내심 고맙고 즐거웠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제 인생에 깊은 인연으로 와주신 분들을 회상하며 여전히 존경과 사랑을 확인합니다.” 작가가 적은 초대의 말입니다. 그 60명의 면면을 보면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사찰 공부를 하면서 만난 인연, 그를 지도했던 분, 동료로서 함께 어울렸던 분, 평범한 일상을 나눈 분들입니다. 모두가 소중한 인연이죠.

요즈음 우리 사회에 외래어가 많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네트워크’도 그중 하나입니다. 일차적인 말뜻은 그물망 정도가 됩니다. 처음에는 통신망, 정보망 정도로 쓰이다가 요즘에는 사람과 사람들이 그물처럼 얽힌 인맥망의 의

- 14 -

미로 확대 되었습니다. 나는 네트워크의 본질을 ‘인연’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마다 인연이 있어 연결되었기 때문이죠. 걸려고 하는 인(因)이 있다면 걸림을 받을 연(緣)도 있어야 합니다. 인과 연은 그물의 씨줄과 날줄과도 같습니다. 둘이 서로 만나 얽히고 또 만나 얽히다 보면 그물이 됩니다. 그러니 인만 있고 연이 없다면 그물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네트워킹이 불가능한 것이죠.

내 큰 손자는 사춘기 때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우리 내외가 의논해 오랜 여행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10년 전에 그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편지 한 장과 얼마간의 용돈을 준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그가 이 편지를 다시 읽고 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에 이 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들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보았자 듣지 않는다.’ 저야말로 그동안 할아버지의 말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네트워킹이 가능하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한 공간에 있는 듯 인연을 이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이미 네트워킹의 매개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만큼 가족 간에 친지간에 연을 맺어갈 수 있는 끈이 많아졌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편지 40,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늙은 것입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나이테처럼 켜켜이 경험이 쌓인다는 말과 같습니다. 어찌 경험뿐이겠습니까? 배워서 안 지식 또한 숙성되어 갑니다.

‘노인의 말은 맞지 않는 것이 없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잘 숙성된 지식과 연륜에 맞는 경험을 겸비한 사람에게 잘 어울릴 말입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소통하는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이런 말을 고집한다면 반론이 적지 않겠죠.

우선 중년 이후의 기성세대와 지금의 청년들 사이에 존재하는 시대적 괴리가 너무 큽니다. 경험의 내용이 너무 달라 공감이 서로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노인 세대가 소득 100달러 시대를 보냈다면 지금의 청년들은 소득 2

- 15 -

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인들에게 절약이 습관이라면 청년들은 소비에 익숙합니다. 그만큼 상이한 세대입니다.

또한 요즘의 노인은 숙성된 지식과 경륜을 온전히 나눌 기회조차 적습니다. 이전의 공동체와는 무척이나 달라졌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경험이 축적되었다는 것이지, 새로운 정보를 많이 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도가에 이르기를 “내가 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이 곧 나락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알만큼 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곧 도그마가 된다는 뜻일 것입니다. 흔히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인다고 합니다. 알수록 모르는 것 또한 많아집니다. 그러니 알수록 겸손해 지는 법입니다.

그러고 보니 재미있는 기억이 하나 떠오르네요. 의과대학에 다닐 때 과목도 많았지만 시험 또한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다 하지 못한 상태에서 시험을 봐야 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답안지에 적을 내용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 시험 문제가 나와서, 책에 그 내용이 있다는 뜻으로 ‘in the book’이라고 적었습니다. 교수님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미처 책을 읽지 못한 데 대한 자책으로 적었던 것이죠.

그런데 교수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교수님은 내가 쓴 답 ‘in the book’을 꽤나 과도하게 평가하고 계셨습니다. 몇 번이나 심사숙고 하신 끝에 정답 처리해주셨습니다. 답이 책 속에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나의 얕은 생각을 교수님은 깊게 생각해주셨습니다.

세차게 변동하는 우리 사회에 적응하자면 새로움에 부딪쳐야 합니다. 나이를 따라 늘 새롭고자 하는 사람이 젊은이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꼭 정답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답안지에 적지 못해도 됩니다. 언제나 모름을 인정할 때 앎이 시작됩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in the book’이라 말해도 됩니다.

편지 41, 늘 엄숙할 필요가 있을까요?

근육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긴장과 이완을 합니다. 마음을 늦추지 않고

- 16 -

정신을 바짝 차리면 긴장이고, 반대로 마음이 느슨히 풀려 느즈러지면 이완입니다. 두 상태는 전혀 다르지만 서로가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우리 민요에 “달도 차면 기우나니”란 가사가 있습니다. 긴장이 일정 수준에 달하면 이완으로 이어지는 이치와 닮았습니다. 우리 생체는 아주 섬세한 자동제어 장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조정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이죠. 긴장이 높아지면 몸은 이완을 요구합니다. 또한 이완 상태가 길어지면 긴장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생체리듬입니다.

누구나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완은 긴장의 고통을 감소시켜 다시 에너지를 비축하게 해주는 회복의 역할을 합니다. 생명으로서 삶이 이어지도록 하는 중요한 기능이죠.

그런데 우리는 사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긴장된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완을 위해 휴식할 때조차 신장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합니다.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도모하면서, 우리는 무척이나 긴장도가 높은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일과 관련된 긴장뿐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긴장도 늘 함께 합니다. 바로 엄숙함입니다. 당연히 엄숙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기념식이나 장례식이 그럴 테죠. 하지만 축제에는 신명이 있어야 겠죠.

늘 엄숙한 모습을 보인다 해서 품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상황과 장소에 맞게 긴장하고 이완할 수 있다면 세련된 품위가 될 것입니다.

이완된 모습이 익숙하지 않거나, 스스로 즐거운 표정과 말에 서툴러 엄숙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유머에 익숙해지는 것이 방법입니다.

유머란 해학(諧謔)입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품위 있는 농담입니다. 인간만이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수준 높은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비난이나 놀림이 섞인 유머는 품위가 떨어지니 배제해야 합니다. 특히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또는 격의 없는 모습을 연출하겠다고 누구 한 사람을 놀림감으로 만들면 안 됩니다.

유머는 남들보다는 나를 위한 것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우리는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종류의 옷을 입듯 마음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17 -

남의 탓만 하는 투사, 사고와 행동이 어린아이처럼 되돌아가는 퇴행, 한 생각에 매달리는 고착 등은 병리적인 방어기제입니다. 이와 달리 자아방어기제 가운데 인간으로서 가장 성숙한 형태가 유머와 승화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것은 수심에 차 있다. 유머의 핵심은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이다. 그래서 천국에는 유머가 없다.”

유머가 심리적인 자아방어기제라는 면에서 깊은 통찰이 담긴 말입니다. 유머는 사람간의 긴장을 풀어 이완하게 해주는 가장 멋진 방법입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비난이나 놀림, 독설은 특정인을 재물로 삼아 축제를 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살면서 늘 엄숙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익살맞은 사람이 되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배려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유머 몇 마디만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장 멋진 유머는 편안한 미소일 수도 있겠습니다.

편지 42, 가진 것은 무엇이든 나눌 수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빚이 없었던 사람이 있을까요? 나를 찾아왔던 한 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누구에게 돈을 빌린 적도 꿔준 적도 없어요. 나는 빚이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빚을 돈으로 국한해서 한 말이겠죠. ‘과연 나는 인생에서 빚을 얼마나 졌던가?’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대학 때 강의를 들었던 은사 선생님 가운데 국회의장을 지낸 한솔 이효상 교수가 계셨습니다. 그분의 말 중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덤이다. 덤으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생각해볼수록 심오한 말로 다가왔습니다.

작가 이강백의 희곡 ‘결혼’을 원작으로 한 모노드라마연극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배우가 무대로 나옵니다. 관중에게 여러 소품을 하나씩 빌리더니, 그걸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엮어가더군요. 배우는 관중들의 물건들을 빌려 내 것처럼 사용하다 막이 내릴 때쯤 하나씩 주인에게 모두 돌려주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 18 -

맨손으로 태어나서 많은 것들을 얻어 살다가 모두 돌려주고 떠나는 것이 인생이라는 표현 같았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나에게 있던 것이 모두 빌린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죠. 인생은 덤이요 사는 동안 소유했던 것은 모두 돌려주고 떠날 빚인 셈입니다.

이런저런 얽힘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빚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빚을 갚으며 삽시다라고 하면 어떤 이는 가진 것이 없어 갚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물질로만 생각하니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 물질은 일부일 뿐입니다. 낯선 이에게 미소를 지어보이거나 친절한 행동을 하였다면 이미 가진 것을 베푼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친절과 미소를 또 다른 이에게 갚은 셈이죠.

봉사와 나눔이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것 못지않게 줄 수 있는 것 또한 있다는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결코 여분의 시간과 재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떼어서 주면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은 보지 않고 없는 것만 보는 인생을 불행합니다. 그런 인생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나눌 것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나눔과 봉사를 가르치고 권합니다. 기독교에서는 “내가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물질이 아니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를 무재칠시(無財七施)라 합니다. 부드럽고 편안한 눈빛, 자비롭게 미소를 띤 얼굴,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씨, 친절한 행동, 착하고 어진 마음, 편한 자리를 양보하는 자세, 잠잘 곳을 제공해주는 배려가 그것입니다.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해줄 수 있는 나눔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남는 것으로 돕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초에 내 것이 없기 때문이죠. 빈 몸으로 와서 빈 몸으로 떠나는 인생이라면, 있을 때 나누어 야 하지 않을까요? 나눌 수 있는 것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눌 수 있습니다.

- 19 -

4부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

편지 43, 나 자신과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대화란 사람들이 서로 마주 대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타인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면 타인이 듣고 타인이 말하면 내가 듣는 과정에서 공감하기도 하고, 이질감을 느끼고 이해를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대화입이다.

더 단순히 생각해보면, 소리를 내어 말하는 입이 있어야 하고 그 소리를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입과 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담아 저장할 공간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이런 자극을 받아 전달하는 통로도 있어야 하겠고, 전달된 정보를 저장하는 공간도 있어야 합니다.

신경망을 통해 전달되면 뇌는 저장하고 회상합니다. 마치 정보를 입출력하는 컴퓨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컴퓨터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인간은 정서에 따라 자극이 전달되기도 하고 저장한 기억을 회상시키지 않기도 합니다. 즉 저장된 정보는 그 사람의 정서에 다라 떠오르기도 잊히기도 바뀌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과 접촉이라는 문제를 두고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안으로 숨기도 합니다. 관련해서 큰 문제를 겪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습득한 대화 방식과 기술을 통해 타인과 소통합니다. 개인이 학습한 방식이나 개인에 따라 대화의 습관 역시 모두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말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이 생기기도 합니다.

특히 다툼이 생기거나 다양한 갈등을 겪을 경우에 타인의 조언과 위로도 귀담아 듣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나 자신과의 시간도 꼭 필요합니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 도 있지만, 내적인 갈등이나 불안 심리를 겪고 있다면 그런 자신을 차분하게스스로 다독일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나의 공간을 갖고 나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나와 내가 대화를 해볼 수 있다면 통찰에 이르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내가 나임을 깨닫고 나를 편안하게 대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자유로운 마음이 깃들 것 같습니다.

- 20 -

내가 나를 편하게 대할 수 있어 나라는 존재가 속박되지 않은 상태, 나를 온전히 알아가는 상태, 이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노년에는 자신과 많은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편지 44, 스마트하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요즈음 스마트란 용어를 사람들이 참 많이 씁니다. 아마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여러 곳에서 넓게 쓰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일상용어 중에 외래어는 넘칠 만큼 많습니다. 그래서 굳이 정확한 뜻을 알고 쓰는 경우가 줄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란 말은 이제 그 나름의 듯이 견고해졌습니다. 우리말로 순화해 쓰기도 어색할 만큼 폭넓게 통용되고 있습니다.

스마트(smart)란 원래 형용사로 ‘쿡쿡 쑤시는, 욱신욱신한, 센, 호된’과 같은 뜻을 가졌고 ‘날렵한, 약삭빠른, 교활한’등의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영리한’이라든지‘ 세련된’이란 뜻은 단어 뜻의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스마트의 명사형인 스마트니스(smartness) 쯤 가서야 ‘세련됨, 빈틈없음’이란 뜻이 주가 됩니다.

스마트는 이제 전자기기에만 국한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가장큰 변화상을 담은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많은 편의들은 나름대로 스마트한 것들을 개척하고 개발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해지는 만큼 더 많은 것들이 가능해지는 시대인 것이죠.

나는 스마트라는 말이 젊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스마트는 사람자체가 영리하다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지만 오늘날에는 불편한 것을 영리하게 해결해준다는 뜻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노인이라고 해서 스마트해지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스마트는 부여되는 자격이 아니라, 선택할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나는 스마트하게 나이 들기를 권합니다. 스마트란 단어에 어울리게 나는 이를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스마트 에이징은 스마트에 에이징을 합성한 말입니다. 에이징이란 단어는 원래 노인을 연상시키는 노화를 뜻하지만 정확히는 ‘나이듦’이란 뜻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노화만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 21 -

나는 인생 이모작, 제2의 인생 설계를 오늘 지금부터 시작하기 이한 스마트 에이징 프로그램을 권해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위해, SMART의 다섯 자 알파벳마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1) S(simplifying) : 단순화하기, 간소화하기, 검소화하기, 성실하기, 정직하기 등으로 생각을 단순화 하면 긍정적으로 생기는 덕목들입니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망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복잡한 생각은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2) M(moving) : 움직이기, 운동, 활동을 의미

3) A(affecting) : 마음의 유연화, 예술향유, 멋. 멋은 정서적으로 충족될 때 나타납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정서를 잘 돌보아야 합니다. 쇠잔해지는 육체와 함께 정서도 메말라간다면 재미있는 삶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4) R(Relaxing) : 늦추고 완화한다는 뜻입니다. 몸과 마음이 이완되어 긴장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5) T(Together-ing) : 함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나눔을 내포하며 이를 이어간다는 지속성을 포함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나눔이 이어진다면 분명히 축복받은 삶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온 시점에서 내가 지니고 있는 스마트 에이징 자산을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그 자산을 바탕으로 나만의 인생 이모작 프로그램을 만들어 봅시다. 방향을 잃을 때 한번씩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봐도 좋습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편지 45, 젊어 보이려 하지 말고 젊게 사세요

어릴 때는 귀엽다는 말을 곧잘 듣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잘생겼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젊어 보인다는 말이 듣기 좋습니다.

지나 놓고 보면 그런 말들이 참 헛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어 보인다’ 이런 말은 듣기 싫은 소리도 아니며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주는 말이기도 하지

- 22 -

만,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의 표현처럼 정말 젊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젊게 보이든 늙어 보이든 자신의 나이보다 늙을 수도 젊을 수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왕이면 듣는 사람에게 좋은 소리 해주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좋아 보인다는 칭찬으로 들으면 그만일 뿐이니 이렇게 따져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젊어 보인다’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이 심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젊게 보이려고 지나치게 애 쓰는 사람이나 얼굴을 고쳐 성형하는 사람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나름의 필요와 이유가 있어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미 자연스럽고 좋아 보이는 얼굴을 무리하게 고치고 시술하는 경우를 불 때 그렇습니다.

아무리 젊어 보이려 애쓴다 해도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좀 더 젊어 보이려 애쓴다 해도 그것을 일시적일 뿐입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곱게 늙어가는 모습이 가장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노년이 되어서도 성형과 시술 등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른 무엇보다 열등감일 것입니다. 내면의 열등감을 외면의 모습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나이가 들어서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다 해도 완벽한 외모는 없기 때문에 계속 시도하게 됩니다. 또는 유지하려고 무리수를 두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결코 젊음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늙음만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우리는 젊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늙어가기 때문입니다. 순리는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순리를 거스르는 아름다움이 있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육체는 젊어지지 않습니다. 노화의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입니다. 즉 젊어지지는 않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을 부정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인생 자체를 젊게 살면 됩니다.

마음으로 젊게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외모처럼 바로 드러나기가 힘듭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드러납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가면 결국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젊은 마음으로 살아온 사람과 젊어 보이는 데만 애쓰

- 23 -

고 살아온 사람, 이미 삶 자체가 달라져 있습니다.

젊은 마음가짐으로 살아봅시다. 젊은 마음에는 나이를 운운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젊은 마음으로 살면 얼굴도 덩달아 예뻐집니다.

편지 46, 자투리 삶이라고 하기엔 노년이 너무 길지 않나요?

꽤 오래전 일입니다. 스승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하는 자리였습니다. 어쩌다가 ‘죽음’을 주제로 토론하게 됐는데 누군가 엉뚱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음이 온다면 누구에게 먼저 올까요?”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선생님의 바라봤습니다. 나이순으로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한데 선생님의 노여움은 여간 아니었습니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는 법인데 왜 당신을 쳐다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100세까지 사실 거예요.”

재미있게도 힌두교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인생을 100세로 설정하고 100세를 4등분하여 삶을 조명하는데,

첫 번째 삶, 25세까지 : 부모로부터, 그리고 사회에서 학습 받는 시기

두 번째 삶, 50세까지 : 결혼, 직장,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홀 로 서는 시기, 장년기

세 번째 삶, 75세까지 : 되돌아보는 시기, 치열했던 삶을 되돌아보고 반성 하는 참회의 시기, 이때가 새로운 인생을 이모작할 수 있는 시기

마지막, 76세 이후의 삶 : 자유로운 시기,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중요한 것은 우리가 100세까지 살지 못한다 해도, 기력이 약해진다 해도, 장년기 후의 시간이 짧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내 인생의 시간이 단 하루만 남았다 해도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내 인생입니다.

즐겁게 사는 데 영향을 많이 미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건강이고 다른 하나는 내 앞을 스스로 가릴 수 있는 경제력입니다. 이 두 가지를 잘 준비할수록 여생의 자유를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100세를 살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오래 살기를 겨루려고 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잖습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내 생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습

- 24 -

니다. 인생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살 듯 삽시다. 그것이 자유입니다.

편지 47, 경로 우대는 사회의 배려입니다

내 제자가 또 학교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선생으로서 또한 퇴임한 선배 교수로서 한마디 덕담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노인이 되었으니 정년퇴임 하는 날에 곧바로 주민센터로 가서 시니어 패스를 발급받으라고 일렀습니다. 받는 즉시 2호선 순환 전철을 타고 한 바퀴 돌아보라고 말했습니다. 내 제자는 즉각 삐쳤습니다.

내 뜻은 본인이 공식적인 노인 반열에 올랐음을 실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젊었을 때는 언제 나이를 먹는지 모를 만큼 일에 몰입하다가 세월 가는 것을 모릅니다.

정년퇴임을 앞둔 내 제자는 내가 한 말 중에서 노인이라는 단어가 목에 콱 걸렸나 봅니다. 자기는 노인이란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는데 시니어 카드를 발급받으라고 했으니 삐칠만했습니다. 그래도 삐쳐봤자 노인입니다. 시니어 카드를 받을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아무리 노인이란 말을 듣기 싫어도 노인은 노인입니다. 그리고 노인이라는 단어 자체보다는 거부하고 있는 본인에 대해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어차피 나이로는 노인이 되었지만 마음만큼은 젊게 살고자 하는 고민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 편이 훨씬 실속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보다 나을 것이 사실 있겠습니까? 능력도 떨어지고 힘도 떨어지고 사회경제적 사정도 전보다 못하고 자식들은 모두 성가하여 둥지를 떠나고 그러니 외롭고 고독합니다. 옛날의 잘나가던 나를 알아주는 사람도 적거나 없습니다.

어쩌면 노인이 된 것 자체보다는 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어쩌지 못하는 것은 나이일 뿐, 노인으로서의 여건을 좋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는 세월을 막지 못한다면 일찌감치 노인임을 자각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 25 -

자기 능력을 떠나서 스스로 노인임을 자각하고 인정하면 그만큼 대접 받을 일이 많습니다. 경로우대를 멋쩍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로우대는 혜택이기도 하지만 권리이기도 합니다.

권리라면 우리들이 젊었을 때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던 대가일 것입니다. 혜택으로 말하면 노인에 대한 후손들의 존경심으로 사회가 보장하여 보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경로우대를 고맙게 여기고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로우대는 나이가 권력이고 훈장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노인에 대한 이 사회의 배려입니다.

편지 48, 노인의 모습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얼굴을 보면 지금 그 사람의 생각이 어느 정도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표정이란 것이 별다른 것이겠습니까?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면 표정입니다.

자주 짓는 표정이 굳어지면 결국 그 사람의 인상이 됩니다. 기분이 자주 나빠 늘 찡그리면 그런 얼굴이 되고, 기분이 늘 좋아 웃고 지내면 그런 얼굴이 됩니다.

인상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살아온 궤적이 또한 보이고는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일수록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잘나게 태어났든 못나게 태어났든 오랜 시간을 거치며 지어온 표정이 지금의 인상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의 얼굴에는 삶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노인의 모습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과 오드리 헵번입니다. 두 사람 모두 올드 보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미모의 여배우입니다. 버그만은 ‘카사불랑카’에서 오드리 헵번은 ‘로마의 휴일’에서 열연한 모습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 버그만 : 전성기에 은퇴하여 자기 집에서 은거. 나이든 자신의 얼굴을 팬 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 헵번 : 나이 들어 주름진 얼굴 그대로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동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보임

- 26 -

숨어 산다고 해서 얼굴이 안 늙는 것이 아님을 버그만 자신도 모르지 않았을 테죠. 그녀는 노화보다 남의 시선을 더 두려워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헵번은 나이 듦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자신의 모습에 당당했습니다. 노년에 접어든 헵번의 얼굴은 전성기 때보다 더 빛났습니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노인의 모습은 생물학적인 노화만으로 예단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자는 노인의 모습을 추하다고 합니다. 글쎄요. 추한 마음으로 보면 추할 것이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면 아름다울 것입니다.

편지 49, 상상력이 노후를 더 행복하게 합니다

나는 평생을 정신과 환자들과 함께 살아온 탓에 환자들이 펼치는 상상을 매일 접하며 살았습니다. 상상은 경계가 없어야 재미있다는데 환자 중에는 엄청난 상상으로 재미를 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환자로서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발상 자체가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뜻입니다.

한 환자분은 내가 사는 집 마당에 시추공을 함께 뚫자고 했습니다. 내가 자기의 주치의이기 때문에 특혜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말인즉 우리 집 마당에 시추공을 뚫고 파이프를 계속 박으면 지구 저편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다른 석유 생산국의 유전에 닿을 것이랍니다. 그러면 우리 집 마당에서 퍼 올리기만 하면 당장 갑부가 된답니다. 특혜를 준다니 여간 고마운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무한히 펼칠 수 있습니다. 현실이 아닌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현실로 착각하게 만드는 그런 상상력이 참 재미있습니다. 소설의 그런 성격 때문인지 좀 허구적인 말에 “소설 쓰지 마”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허구를 상상해보는 재미가 없다면 팍팍한 현실이 더 팍팍해 질 것입니다.

소설 같은 상상이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하는 상상이라면 즐거울 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이 될 뿐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소망을 상상 속에서 이룬다면 잠시 동안이나마 즐거울 것입니다. 이런 즐거움이 바로 이완입니다.

- 27 -

단지 상상이란 것을 알고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현실로 돌아와 일상을 살 능력이 있다면 환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상상조차 막는 장애물이 많아졌습니다. 규격화된 기계들입니다. 우리 생활을 기계적인 짜임새 안에 맞추어 살아야 하니 자연히 상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가 바뀜에 따라 우리의 생활습관도 많이 변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상상력의 퇴화입니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해서 상상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일상을 두고 더 많은 상상을 할수록 즐거운 일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오르내릴 수 있는 상상이라면 끝이 없을수록 좋습니다. 노인은 연륜과 경험적 자산을 많이 가져서 그 상상이 더 재미있고 멋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경계 없는 상상을 하면서 한 번 웃어봅시다. 이 또한 노후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편지 50, 인생의 가장 자유로운 시기를 누리세요

얼마 전에 시어머니와 며느리들이 함께 나와 토크쇼를 하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시어머니들과 며느리들이 흉금을 터놓고 말을 주고받더군요. 서로의 주장이 다르니 그런 부분에서 보고 듣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주제에 관한 토크였는지 모르겠지만 “부모님들은 자신의 앞가림은 자신들이 하셔야죠”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듣는 순간 내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평소에 자식들에게 의지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나 막상 방송에서 며느리들이 하는 그런 말을 귀로 들으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던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섭섭해 할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앞가림이란 말을 들으니 당장 내 눈앞이 가려진 듯 캄캄해졌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앞가림 이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그런가 봅니다.

경제력을 잃고 건강을 잃는 상황에서 누군들 앞가림이 쉽겠습니까? 결국 노년이 인생의 가장 자유로운 시기가 되려면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건과 건강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경제력과 건강은 노년의 앞가림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될

- 28 -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느 수준의 앞가림이 가능한 분들만이 인생의 마지막 자유를 적어도 눈치 보지 않고 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는 노년의 자유를 누리는 데 있어 되도록 필요한 부분이지, 자체가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력도 앞을 가릴 만큼 가졌고 건강도 움직이는 데 불편이 없을 정도인데 막상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노인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의 공통점은 여전히 이 걱정 저 걱정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즐거울 여지가 없습니다.

걱정도 팔자라고 했습니다. 걱정이 습관화된 분들은 노년기의 자유로운 시간이 와도 만끽하기보다 과거의 습관을 고집하면서 살고 싶어 합니다. 이런 고집이 통하면 그 또한 나쁠 것이 없겠지만 세월이 가고 사회가 바뀌고 자녀들이 성장하여 장년에 다다른 지금에는 과거의 습관과 고집이 나 자신은 물론 주변의 가족들을 고달프게 하기도 합니다.

현재의 여건이 이렇고 저렇고 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리는 것만큼 절박한 앞가림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과거의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자유를 누릴 때입니다. 자유는 누려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사는 시간은 자식도 배우자도 대신 앞가림해 줄 수가 없습니다.

편지 51, 외로워 말고 생각나는 사람을 찾아가 보세요

젊었을 때는 호불호 간에 좌충우돌 만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혈연이나 인연에 얽히다보면 내가 아쉬워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달갑지 않아도 나를 찾아 청탁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이든 마당에 이런 저런 사람들을 모두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건강이나 기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힘도 없고 번거롭기도 합니다.

‘누구를 만나야 할까?’ 가만히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이젠 만날 시간도 만날 사람도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느낍니다. 결국 줄어든 마당에 이 사람 저 사람 가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딱히 어떤 사람을 만나고 만나지 않는다는 기준을 갖고 있지 않습니

- 29 -

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활동이 줄어들고 행동반경이 제한되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자연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나는 나를 찾아오거나 오고 싶다는 전갈을 받으면 전부 응합니다. 그가 왜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메일로 만납니다. 인터넷이란 문명의 이기가 있어서 나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납니다. 학교에 재직할 때부터 익히 사용해 와서 이제는 많이 익숙합니다.

그런데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회신 메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딱 두 명만 회신해 주고 있습니다. 한 명은 미국에서, 다른 한 명을 대구에서 보내옵니다.

나이든 사람들 간에는 어느 순간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른 통로로 수소문하면 될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연락처 자체가 유일한 끈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당사자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한참 지나 들리는 소식으로 요양원에 있다거나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내가 보고 싶은 사람한테 먼저 전화를 겁니다. 무작위로 겁니다. 운이 좋아 연락이 닿는 친구가 있다면 만나서 점심도 함께하고 차도 한 잔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날 수 있는 대상 또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전화를 걸어봅니다.

노인은 외롭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 소원했던 사람이 있다면 먼저 연락이라도 해보고 찾아가 봅시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같은 세대라면 더 반기지 않겠습니까? 머뭇거리다 보면 만날 수 있었던 한 사람을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습니다.

편지 52, 어차피 병은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옵니다

사는 동안 가지 않아도 좋을 곳이 두 곳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경찰서를 비롯한 사법 기관이고 다른 하나는 병원이라 합니다.

- 30 -

죄를 짓지 않고 행동과 말을 조심해서 살면 경찰서는 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병원은 그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병을 앓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의과 대학에 다닐 때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100세를 넘긴 일본의 한 노인이 병 때문에 병원을 찾은 일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다음에 의학적인 궁금증을 풀기 위해 부검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인은 10여 가지의 중대한 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는 동안 병과 씨름하지도 않았고 자각 증상 또한 없어서 그저 넘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흔치 않은 놀라운 일이기도 했지만, 노인이 되면 병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병과 함께 산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주기도 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 노화 자체가 병리적 현상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음 자체는 병이라 보기 전에 순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달리 불가에서 인간의 일생을 생로병사라 하겠습니까.

나이 드는 것도 슬픈데 병까지 짊어져야 한다니 속상할 일입니다. 더구나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지니게 되는 병의 수 또한 늘어갑니다. 병이 번갈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병이 보태어집니다. 연관되는 질병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암울한 말들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이고 순리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죽습니다. 대부분 질병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어차피 병은 마지막 순간까지 따라옵니다. 누구는 쫓아오는 병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결국 마지막에 이릅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는 병을 친구 삼아 다독이며 걸어갑니다. 둘 모두 결과는 같습니다. 육체를 벗어나야만 나와 병은 이별을 합니다.

병을 편안하게 다스리느냐, 병과 싸우느냐, 선택은 자신이 할 일이지만 이제는 병 자체로 힘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되 편안히 대처하고 싶습니다. 병은 고통도 주지만 통찰도 줍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치르는 구도이기도 합니다.

편지 53, 배우자가 떠난 후의 생활에 대비하세요

- 31 -

‘배우자가 나보다 먼저 떠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꼭 남편이 부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떠나보낸 슬픔도 슬픔이지만 식사와 빨래 등 그동안 집안일에서 멀었던 남편이라면, 적극적으로 배우자가 떠난 후의 삶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누가 먼저 떠나든 남는 사람이 감당할 몫을 생각하면 머리가 휑해질 일입니다.

주부를 대상으로 정신 건강에 대한 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강연장에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선생님 남자 입장에서 솔직한 답변을 듣고 싶어요. 마누라가 죽으면 정말로 남편들은 화장실에 가서 웃나요.”

처음에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이미 속담처럼 전해지고 있으니 필시 웃는 남편들이 아주 없지는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이런 설명을 드렸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좋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억장이 무너져 기가 차 비시시 웃습니다. 그 웃음이 즐거운 웃음일 리는 없습니다.”

강연장의 주부들은 이해하기 힘들다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여러분, 돌아가시려면 젊어서 결혼 연차가 적을 때 돌아가셔야지, 지금처럼 적잖은 세월을 함께 사시고 남편만 남겨두고 홀로 떠난다면 앞이 막막해 웃을 겁니다. 실성해서 웃어요.”

모두들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믿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결혼 생활 연차가 쌓이면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합니다. 그 동안 좋았든 싫었든 고운 정 미운 정이 모두 듭니다. 그렇게 겨우 적응했는데 부인이 먼저 떠난다니, 준비가 안 된 남편으로서는 기가 찰 수밖에 없습니다.

부인들은 내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수긍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연 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이야기였습니다. 누가 먼저 떠날지는 모르지만 한날한시에 죽을 수 없다면 남는 사람은 자기 앞을 스스로 가리기 위해서라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적으로 배우자에게 의존해 살던 사람이 배우자를 보내게 되면 얼마간의 시차를 두고 타계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의존했던 기둥이 사라지니 집이 무너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 32 -

노년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우자가 떠난 후의 생활에 대비해야 합니다. 혼자 남몰래 웃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혼자 감당해야 할 일들이 늘 뿐입니다.

편지 54, 유언은 적극적인 삶의 계획입니다

유언이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말입니다. 여기에는 남은 가족이나 알고 지낸 사람들이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도 실립니다.

“죽은 자의 유언은 그의 일생의 거울이다.” 폴란드 속담입니다. 유언과 관련하여 깊이 새길 말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하듯 어떻게 떠날 것인지도 삶에서 중요합니다. 유언은 가능한 일찍 정리해 남길 필요가 있으며, 살아가며 계속 수정하고 보완해야 합니다. 자신의 죽음과 관련되다 보니 내키지 않아 껄끄러울 수도 있지만, 한 번은 꼭 해야만 하는 가장 적극적인 삶의 계획이기도 합니다.

생각건대 가장 좋은 유언의 형태는 내 생각의 가치를 담아 평소에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합니다. 따로 유언장을 작성해 전할 내용들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랍니다.

어찌 떠나면서 하고 싶은 말들과 본심을 문서 하나에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말들은 사는 동안 평소에 대화를 통해 남겨야 하지 않을까요?

유언장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생각하는 바를 많이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나중에 유지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평소에 정리해서 남기는 말들, 나는 이것이 유언이라 생각합니다. 남은 가족들이 유언장을 펼쳤을 때 공감이 되어야 합니다. 생뚱맞다면 유언장의 내용대로 집행한다 해도 혼란스럽습니다. 유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유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전부를 아내에게.”나도 이처럼 간결한 유언장을 쓰고 싶습니다.

이렇게 짧은 유언을 남기려면 평소에 깊은 공감대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유언장을 남긴다면 이런 말을 담고 싶습니다.

- 34 -

1) 화장 처리. 2) 장례비용 최소화. 3) 모든 것을 아내에게. 아내가 떠날 때 재산이 있다면 모든 것을 1/4(자녀가 4명) 4) 장례식에 오는 분들을 소홀히 하지 말라.

쓰고 보니 어머니의 판박이입니다.

유명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을 찾아보니 이렇더군요. 좋은 말들입니다.

- 파스칼 : 신이여 영원히 나를 버리지 마소서

- 울프 : 마지막 항해다. 가장 길고 가장 좋은 항해다.

- 칸트 : 그것으로 충분하다.

- 에디슨 : 세상은 아주 아름답다.

나는 무어라고 남길까? 생각해 보니 딱히 좋은 말이 없습니다. 지금 좋은 말을 생각해 둔다고 운명할 때 그 말이 나올까요? 그때 가서 나오는 말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의 일생을 담은 말일 것입니다.

편지 55, 가져갈 수 없다면 최대한 많이 주고가세요

오래전에 권투 선수를 주제로 삼은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이나 출연 배우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인 권투 선수가 한 말 한마디는 아직까지 내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지금 링을 떠납니다. 이제 나는 누구를 때려야 할 이유도 없고 맞아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처음 링에 올랐을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올랐으나 이젠 주먹을 펴고 내려갑니다.”

아마도 주인공 권투 선수의 은퇴의 변인 것 같습니다. 실전에 임했을 때는 주먹을 불끈 쥐고 혼신의 힘을 다해 상대방을 가격했겠지만 이제 링을 떠나는 마당에 그 처절했던 주먹을 펴고 떠난다는 말이겠죠.

주먹을 펴겠다는 말이 참으로 평화롭게 들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나는 주먹을 쥐고 올랐다가 주먹을 펴고 내려간다는 말에 그야말로 꽂혔습니다.

권투 선수의 생애는 사각의 링일 것입니다. 확대해서 본다면 우리도 세상이란 링에 태어나 생물학적인 수명을 다하고 링을 내려가는 은퇴를 할 것입니다.

- 34 -

사람들은 잘 나가는 시기에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지금 아주 만족스럽다면 굳이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볼 이유가 없을 테니까요. 만족스러운 지금의 이 상황이 계속 이어길 미래를 탐합니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불안과 두려움을 느낍니다. 동시에 대비를 못한 지난 시간을 후회 합니다. 그러니 만족스러울 때 미래를 염려하며 과거를 회고하고, 불만족스러울 때 미래를 낙관하고 과거를 반성한다면 그것이 통찰입니다.

링을 내려오는 선수는 주먹을 편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삶의 링을 내려오는 우리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보태지는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싸우지도 않겠거니와 더 이상 손에 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저 세상으로 갈 때 손에 움켜쥐고 가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 꼭 쥐었던 주먹을 펴고 가는데 무엇을 가져갈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저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주먹을 꼭 쥔 채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입니다. 주먹을 펴고 링을 떠나는 권투 선수처럼 다 주고 아니면 최대한 주고 빈손으로 편안히 떠나면 어떨까요?

편지 56,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준비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는 체하거나 마음을 잘 다스려 평온하게 보이는 사람은 있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을 잘 다스렸다는 사람도 알고 보면 피하지 못할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자세로 다스릴 뿐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죽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안 그런 체하기도 하고 다스리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아예 없다면 체할 것도 없고 다스릴 것 또한 없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기본 불안이란 것이 있습니다. 출생 시 겪는 어머니로부터의 분리 불안이 여기에 속합니다. 일생을 살고 또 생을 마감할 때 역시 같은 의미의 분리 불안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의식 수준이 아니고 무의식 수준에서 생깁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 35 -

종교에서는 내세를 말하며 신도들이 이를 믿고 의지합니다. 의지함으로써 불안을 승화시켜 막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심리적 과정이 있습니다.

1)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단계 :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 ‘나는 아니야.’ 2) 부정하는 단계 :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은 다 잘 살고 있는데 왜 나 만…….’

2) 우울에 빠지는 단계

3) 누구나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수용하는 단계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느꼈던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차츰 현실적인 불안으로 그리고 구체적인 불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심리적 네 단계를 경과할 때를 앞두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내 일생의 가장 중요한 손님이니 차근차근 맞을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나도 나름대로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죽음이란 단어가 경직된 의미가 아닌 예전보다는 훨씬 순한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렇게 죽음과 친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5. 3. 15

- 36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