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보해성산 2016. 4. 16. 14:34
반응형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 혜민 스님 지음

0 하버드 대학 비교종교학 석사, 프린스턴 대학교 종교학 박사

0 미국 메사추세츠 주 햄프셔대학 종교학 교수로 7년 재직

0 하버드 시절 출가, 2000년 해인사에서 사미계

0 2007년 직지사에서 비구계

0 현재 서울 인사동에서 <마음치유학교> 설립 운영

0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년 연속 최고의 베스트셀러

0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250만 명이 넘는 팔로워와 소통

■ 들어가며

사랑은 이해를 초월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긴 여운을 남기는 영화를 우리 삶에서 만날 때가 있어요. 저에게는 <흐르는 강물처럼 River Runs Through It.>이 그런 영화였어요. 20세기 초 미국 몬테나 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낚시를 종교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맥클레인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 노먼은 비교적 아버지 뜻에 부합하는 교수 생활을 하게 되지만, 둘째 아들 폴은 지방 신문 기자로 일하며 방탕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다 폴은 결국 도박 빚을 갚지 못해 길에서 폭행을 당해 죽음을 맞게 되지요. 아들을 잃고 깊은 상실감에 빠진 아버지는 일요일 예배 시간에 둘째 아들을 애도하며 정제된 감정의 언어로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어도, 온전하게 사랑할 수는 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 입장에선 둘째 아들 폴이 왜 그런 방탕한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즉 사랑은 지적 영역인 이해의 범주를 초월한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보여줍니다. 내 마음이 들었을 때만, 이해가 되었을 때만 사랑하고, 그렇지

- 1 -

않으면 사랑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바탕으로부터 나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가 동의할 수 없어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깊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슴 심연에서 항상 흐르고 있는 것이지요. ·

완벽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에 내가 살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들에 대한 사랑마저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나 수행을 하다보면 내 안에는 나의 완벽하지 못한 부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자비한 시선도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엄마가 하나 밖에 없는 내 아이를 지켜보는 것처럼 사랑의 눈빛으로 나를 수용하고 바라보는 따뜻함이 우리 내면에 존재합니다.

-서울 인사동 마음치유학교에서, 혜민 두 손 모아 -

1. 자애 篇 엄마가 하나뿐인 내 아이를 지켜보듯

■ 너무 착하게만 살지 말아요

혹시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크셨나요? 정말로 ‘착한’ 사람들일수록 심리적 우울증이라든가 공황장애, 직장과 가족관계에서 오는 화병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들은 공통적으로 말도 차분히 하고 성품 자체가 순해 남들에게 배려도 잘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을 원하면 나 하나 희생하는 것쯤은 몸에 밴 분들이지요. 이렇게 착한 분들에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이런 마음의 시련을 주시나,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도 어렸을 적부터 내성적이고 유순한 편이라서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그냥 착하기만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지요. 그룹 과제를 할 때 똑똑하고 기 센 학생들과 함께 하다 보니 모두가 기피하는 부분만 저에게 자꾸 맡겨졌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저만 계속 힘들어지더라고요. 이 고민을 친한 미국인 선

- 2 -

배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는 이렇게 조언을 해주었어요.

“다른 사람보다 본인에게 먼저 착한 사람이 되세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습니다. 나 역시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만을 염려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나를 아껴준다는 것, 나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하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을 착하다고 말할 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타인의 요구를 잘 따라주는 사람을 착하다고 칭해요. 즉 본인도 분명 하고 싶은 것과 원하는 방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표현하지 않고 남의 의견에 순종하는 사람을 착하다 하지요.

문제는 너무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욕망이나 감정에 소홀해진다는 점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외시키고 무시하니 어른이 돼서도 내가 정말로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대체 누구인지 잘 몰라요. 더불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자신이 느끼는 분노와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니 상대를 향했어야 할 정당한 분노가 내면에 갇혀 본인 스스로를 공격하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도 제대로 못내는,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바보 멍청이 일까?’하고 말이지요.

많은 심리적 문제는 억압이 습관화 되면서 그 억압된 감정의 에너지가 건강하게 마음 밖으로 흐를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서 생겨요. 물도 흐르지 못하고 한곳에 고이면 썩는 것처럼 감정도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남들이 나에게 하는 기대를 따르기 이전에 내 안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사람들로부터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도 내가 정말로 하기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해주며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나를 소진시키지 마세요.

남들이 다 짜장면 먹겠다고 해도 내가 볶음밥 먹고 싶으면 “나는 볶음밥 먹을래요.”라고 당당하게 말해도 괜찮아요. 우리에겐 남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나를 먼저 아껴줘야 할 의무 또한 있습니다.

- 3 -

원하는 것을 힘겨워하지 않고 말 말할 줄 아는 것은

운전면허만큼이나 우리 삶에 필요한 기술 같아요.

다른 사람을 위해 언제까지 나만 이렇게 혼자 도와야 하나,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드세요? 그러면 속으로 삭이지만 말고 말씀하세요.

“나 혼자 하면 힘드니까 같이 좀 도와줄래?”라고요.

상대가 뭔가를 부탁해 왔을 때 우리에겐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워.”라는 선택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만약에 그 부탁을 안 들어줘서 멀어질 인연이었다면 애초부터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니었어요.

비행기를 타면 비상시 산소호흡기를 먼저 보호자가 낀 다음에 아이에게 껴주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선 나를 돌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에요. 내가 행복해야 내 주변 사람도 행복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먼저 나를 아껴줄 때 세상도 나를 귀하게 여기기 시작합니다.

나 자신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세요. 사랑하면 그 사람하고만 시간을 보내고 싶듯 오늘은 사랑하는 ‘나’하고만 한 번 시간을 보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들이듯 나에게도 공들여보세요.

나에게 흠이 좀 있어도 괜찮아요. 어떻게 우리 삶이 학처럼 하얗고 깨끗할 수만 있을까요? 살다보면 몸과 마음, 관계에서 흠집이 날 수 있어요. 흠이 생길까 두려워 아무 것도 하지 않아 결점이 없는 삶보다는 실패와 상처 속에서 성장하는 삶을 택하세요.

그리고 분투하고 있는 내 삶에게 “난, 너 무지무지 사랑한다.”라고 큰 소리로 외쳐 주세요.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마음속의 짐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가족사의 아픔, 숨어 있는 열등감, 밝힐 수 없는 병이나 관계에서의 상처, 피할 수 없는 책임 등.

하지만 그 짐의 무게 덕분에 경거망동하지 않고 겸손하며 남을 이해하고 곱으로 더 열심히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그냥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절대로 다가 아니에요.

우리의 흔한 실수 중의 하나가 친구의 겉모습과 내 속 모습을 비교하는 것

- 4 -

이에요. 사실 친구의 행복하지 않은 내면의 모습은 잘 모르잖아요? 친구도 내 겉모습만 보고 나를 많이 부러워할 수도 있어요.

우리 삶은 무덤에 가봐야 비로소 안다는 말이 있어요. 지금은 공부, 학교, 직장이 부러움의 대상일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것들은 큰 의미가 없어집니다. 자기 삶을 본인이 만족하며 살면 그 사람이 결국은 승자 같아요.

“꼭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아. 이류면 어떻고 삼류면 좀 어때? 나는 노력하는 내가 좋아. 나는 나를 더 사랑해줄 거야.” 이렇게 다짐하세요.

남들이 나에 대해 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그 이야기를 내가 믿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나를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그 생각이 다 진실은 아니에요. 원래 내 생각도 아니었는데, 그 생각을 잊고 지배당하지 마세요.

우리는 무엇을 잘했기 때문에 사랑받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사랑받을 만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 주세요.

좀 부족해도, 좀 실수해도 괜찮아요. 세상이 요구하는 완벽함을 갖추지 않아도 우리 존재는 이미 가치가 있고 사랑받을 만합니다.

인도에 가면 사람들이 인사를 할 때 “나마스테.”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마스테’에는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뜻이 있어요. 그 뜻은 바로 “내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이 당신 안에 깃든 성스러운 신성께 경배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하고 성스러운 존재들입니다.

■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호주와 뉴질랜드 교민을 위한 법문 요청이 있어 난생처음 적도를 넘었다. 1년 전부터 했던 약속인지라 먼 거리였지만 꼭 가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번 여행은 또 다른 약속 하나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대학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그 친구와 호주로 꼭 한 번 만나러 가겠다고 약속한지가 벌써 10년이 넘었다.

적도를 넘고 보니 한국과는 날씨가 정반대였다. 법회가 있던 날의 기온이

- 5 -

35도까지 올랐다. 그리고 남반구에선 해가 잘 드는 집을 고를 때 우리와는 다르게 남향이 아닌 북향인 집을 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주로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강이 흐르고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아닌 남십자성이 빛나고 있었다.

약속한 법회들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호주 친구네 집으로 향했다. 대문의 벨을 누르자 친구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반겨 주었다. 마치 이산가족을 만난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얼싸안고 두 손을 꽉 잡았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머리숱이 조금 줄어들고 몸무게가 살짝 늘어난 것 빼고는 똑같아 보였다.

저녁 식사 후 해가 저무는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우리는 마음속을 무장해제하고 서로의 속내를 털어 놓았다. 만들어진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는 오랜 친구,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주고 내 편이 되어주는 친한 친구, 내게 그런 존재인 그는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가다 최근에 생긴 걱정거리 한 가지를 들려주었다.

그의 걱정은 다름 아닌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이런 불안증세가 있어 몸과 마음이 지쳐갔는데 최근에는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오래 전 친구는 내게 자신의 유년 시절이 참으로 힘겨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땐 성공 했지만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안에서 화와 짜증으로 푸는 아버지 때문에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특히 술을 마실 때면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으로 돌변했고, 가끔씩 손찌검까지 하셨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피해 집을 떠나 있곤 했고, 장남으로서 여러 동생을 돌봐야 했던 그는 아버지 때문에 늘 전전긍긍하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친구의 어린 시절 상황을 떠올리고 보니 친구의 일중독 현상과 불안증세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의 주사와 폭력으로 항상 불안했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린 네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잘 들어 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라 성년이 된 지금도 아버지 대신 세상이 너에게

- 6 -

요구하는 것들을 들어주고 있지 않으면 왠지 불안하고 내 존재 의미가 없다고 느껴질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너는 이미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랑받을 만한 거야. 세상이 너에게 요구하는 것을 잘 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그전부터 너는 소중한 존재야. 아직도 불안에 떨고 있는 네 안의 내면 아이에게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고 그 아이를 사랑해줘. 엄마도 없이 동생들을 위해 혼자 아버지의 화를 감당해 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니?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도 친구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며칠 후 그 집을 떠나면서 친구를 위해 작은 메모를 남겨놓았다.

“넌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여러 번의 힘든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준 큰형 같은 존재야. 너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의지가 되고 고마웠는지 몰라. 그러니 제발 꼭 기억해줘. 네가 큰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나에겐 너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그 사람이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성장 과정에서 제대로 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세상이 차갑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생존을 위해 본인이라도 스스로를 챙겨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의 아픔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이해해보세요.

우리가 하는 행동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아이가 잘했을 때만 칭찬해주지 마시고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세요. 커서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인정에 배고프지 않도록요.

살면서 가끔은 나를 위한 소박한 사치를 허락하세요.

식탁에 올려놓을 아름다운 꽃 몇 송이를 사온다든가. 커피와 같이 먹을 맛있는 치즈케이크 한 조각을 산다든다. 신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두툼한 등산용 양말을 산다든가…….

소박한 사치는 삶을 여유롭고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와 같아요.

특별한 날을 위해 아껴두었던 식기세트나 차(茶), 와인, 옷, 펜. 이불 등을 쓸 땐 쓰세요. 쓰는 순간, 바로 지금이 특별해집니다.

- 7 -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을 좋아하면 내 주변 사람도 다 좋아 보여요.

반대로 나 자신에게 불만이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다 불만이에요. 나의 가장 큰 팬이 바로 내가 되시길…….

한정판으로 나온 최고급 명품도 똑같은 것이 수십 개씩 만들어져 나옵니다. 그러나 ‘나’라고 하는 명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어요. 하나뿐인 ‘나’라는 명품을 아껴주세요.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면서 그리워한다.

미움도 마음에 진한 자국을 남기는 그리움이다.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으면 정말로 자세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처럼 좋은 마음공부의 기회는 없습니다. 우리는 달나라까지 로켓을 보내지만 가장 가까운 내 마음의 모습에는 까막눈입니다.

장고 끝에 악수 둔다는 말이 있지요. 무슨 일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걱정과 생각을 하면 배가 산으로 가요. 내 직관을 믿고 적당한 선에서 느낌대로 밀어붙이는 것도 때론 필요합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모든 것을 멈추고 내 가슴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혼자 조용히 공원을 걷거나, 근교로 잠시 여행을 다녀오거나, 믿을 수 있는 친한 친구를 만나 말로 쭉 풀어놓거나 해보세요. 내 가슴은 내 머리보다 훨씬 더 지혜로워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상처를 바라보듯, 지금 내 안에서 느끼는 아픔과 괴로움을 따뜻한 사랑의 눈길로 바라봐주세요.

아픔 속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아픔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때 모든 아픔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음이 느껴져요. 아픈 가운데에서도 사랑이 가슴에서 열릴 때 치유가 일어납니다.

2. 관계篇 서로를 비추어 주는 두 개의 보름달처럼

■ 선방에서의 작은 깨달음

가을 안거를 시작한 8월말과는 다르게 봉암사의 9월은 아침저녁으로 제법

- 8 -

날씨가 쌀쌀하다. 이번 안거 기간에는 보통 때보다 조금 많은 100여 명의 스님들이 모여 수행 정진을 하고 있다.

이번 산철에 내가 맡은 소임은 간상장이다. 간상(看床)은 부엌에서 만들어 내준 그날의 여러 음식들을 상에 차려서 전체 대중 스님들이 바루공양 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준비하는 소임이다. 간상을 보는 일곱 명 스님들 중에 어떻게 하다 보니 내가 승려가 된 햇수가 가장 많아 간상장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바루공양 상들을 차리느라 한 명 한 명 아주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한 선배 스님께서 갑자기 간상장인 나를 부르시더니 부엌 밖에 있는 계단을 간상 팀에서 나와서 청소하라고 지시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일을 왜 간상 팀에게 시키는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상 준비하는 것도 다들 바쁜데 그리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들도 하기 싫다는 것을 분명 아실 텐데, 왜 바쁜 사람들에게 일을 전가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날 간상 소임을 다 마치고, 나는 그 선배 스님처럼 자기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일을 다른 후배 스님에게 떠넘기는 승려가 되지 말자고 생각하며 혼자 조용히 계단을 쓸었다. 그런데 막상 계단을 다 쓰는 데는 사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그냥 하면 됐을 것을 매가 마음속으로 괜한 번뇌를 일으켰다는 생각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사실 우리 마음이 괴로운 것은 주어진 상황보다는 그 상황에 저항하면서 쏟는 생각의 에너지에서 온다. 막상 일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은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내가 억울하게 하고 있다는 심리적 저항이 종종 일어난다. 그 생각의 무게만큼 마음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래서 성철 큰스님 같은 분들은 너무 많은 분별심으로 인해 싫은 것이 너무 많은 상태로 살지 말고 ‘날마다 좋은 날’ 즉 추우면 좀 추운 대로 더우면 좀 더운 대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수용하는 법을 터득해서 마음의 자유를 얻으라고 가르치신다.

공양과 관련해 또 다른 작은 깨달음의 에피소드가 있다. 봉암사의 경우, 아침은 바루 공양을 하지만, 저녁 공양은 약석(藥石)이라고 해서 적게 드시거

- 9 -

나 아예 드시지 않는 스님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저녁은 바닥에 앉아 바루를 펴고 먹는 공양이 아닌, 식탁 테이블에 앉아 접시에 적은 양을 담아서 먹는 상 공양으로 대치한다. 그런데 저녁 상 공양을 할 때면 승려가 된 순서대로 앉기 때문에 나는 어김없이 무표정한 어느 한 스님과 마주 앉아야 했다. 처음엔 그 스님과 편하고 좋은 관계를 만들어볼 생각으로 몇 가지 질문을 하며 말을 걸었는데 스님은 내 질문에 대해 아주 짧게만 답할 뿐 나와 말을 섞는 것을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런데 무표정한 말 없는 스님과 저녁 공양을 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내 안에서 ‘아차’하는 깨달음이 엉뚱하게도 도서관에서 일어났다.

봉암사 내에 있는 도서관은 생긴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그곳을 찾는 스님은 산철안거 기간 동안 나와 또 다른 스님 한 분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보름동안 도서관 안에서 넓은 책상과 함께 나누어 쓰면서도 그 스님과 나는 단 한 번의 대화나 관심의 눈빛도 나누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점을 깨닫는 순간, 매일 저녁 무표정으로 말없이 내 앞에 앉아 공양을 하는 그 스님의 모습이나 도서관에서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이나 하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안거가 시작된 지 3주쯤 지났을까? 저녁 공양 때마다 마주 앉게 되는 그 스님과 아주 우연히 차를 함께 마실 기회가 생겼다. 본인이 깎은 사과 한 쪽을 내 앞에 놓아주며 편안한 얼굴로 말을 건네는 그 스님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는 상대가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을 가지고 자기 스스로 온갖 추측과 부정적인 상상을 한 후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거야.’라고 지레짐작한다. 그 지레짐작이 본인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상대에게 투사해 놓은 것에 불과한데도 ‘실제로 그럴 것이다.’라고 굳게 믿고 상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까지 연습한다. 물론 상대는 그런 생각 자체를 전혀 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친구나 가족,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거, 도 닦는 수행과도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 마음에 맞게 포기하고 절제하고 배려하는 것, 그게 수행이에요.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

- 10 -

하는 것, 그게 또 수행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 속하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나를 걱정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로 인해 존재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끌리는 사람들일수록 그 사람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같이 있는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내려고 해봐요. 그래야 다음번에도 만날 수 있어요. 잡으려 하지 않고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서로 즐거울 때 그 인연은 계속됩니다.

너무 갑자기 친해지는 그런 친구가 있다면 조심하세요. 잘못하면 꼭 그런 친구와 적이 됩니다.

너무 친해서 못할 말도 다 하는 그런 사이는 거꾸로 말하면 쉽게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사이입니다.

인연이면 만나겠지 하면서 노력은 하지 않고 툭하면 ‘외롭다. 외롭다…’하시는 분들.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처럼 내 인연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내 문을 똑똑똑 두드려주지 않아요.

하늘이 점지한 대통령감이라도 본인이 선거 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듯, 내가 직접 뛰지 않으면 좋은 인연도 절대 생기지 않아요.

내 운명이 정해 놓은 그 사람은 사실 없습니다.

그 사람과 정을 붙이며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면 그 사람이 내 운명의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정말로 좋아하면 시간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아요. 좋아하면 시간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시간을 만들어 냅니다. 계속 핑계를 대거나 설명을 하거든, 바로 알아차리세요.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구나.

그 사람을 만나면 자주 서운하고 잘 삐치세요?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내성적인 성격도 성격이지만, 그 근본은 내가 그 사람을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좋아해서가 아닌지요. 이런 경우에는 자기 일 열심히 하면서 초연하게 거리를 두세요. 인연이면 다가옵니다.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집착해서 어떻게든 그 사람의 마음을 바꿔보겠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어요. 놓아주세요. 그러면 또 다른 새로운 인연이 어느 순간 만들어져요.

- 11 -

기대가 크면 클수록 인간관계는 어긋날 수 있어요. 인간관계가 힘들다고 느낄 때 자세히 보세요. 내가, 혹은 상대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 건 아닌지….

해주고 나서 “왜 내가 해준 만큼 너는 안 해주냐?”하고 서운해 할 것이라면 애초부터 해주지 마세요. 아니면, 해주고 나서 상대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을 정도만 해주세요. 바라는 것이 느껴지면 관계는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참지만 말고 상대가 나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허락해 주세요. 참는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에 집착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못하니까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

한 집안에서 자란 형제도 각기 다른 관점과 습관이 있어요. 나에게 맞추라고만 하지 말고 다름을 허락해 주세요.

처음에는 나와 다른 점이 좋아서 좋아했는데 지금은 나와는 다른 점들이 나를 힘들게 하지요?

마음 설레는 사랑이 왔을 때 미움과 질투, 그리움과 아쉬움, 심지어는 증오와 비참함도 한배를 타고 오는 승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서운한 감정 다루기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의외로 ‘인간관계’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관계는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고 제3의 외적 요인에 의해 깨지기도 쉽기 때문에 관계를 잘 맺는다는 것이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좋았던 인간관계도 처음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종종 ‘서운하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상대를 향해 불쑥 올라올 때부터인 것 같습니다. 즉, 서운한 마음은 잘못하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일종의 초기 경보등 역할을 하지요.

그런데 다른 감정과는 달리 서운한 마음은 참 오묘해서 내가 그것을 표현하자니 너무도 구차해보이고,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니 계속해서 쌓이기만 하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드는 힘든 감정 같아요. 차라리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이야기라도 할 수 있고. 슬프면 슬프니까 울면

- 12 -

되는데 서운한 감정은 마음에 담아만 둘 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은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식의 표현을 잘 쓰지 않는 것 같아요. “너 때문에 상처받았어 hurt, 슬퍼 sad, 후회돼 regret, 화가 나 mad.”같은 식의 유사 표현들을 자주 들을 수 있지만 “나 너한테 좀 서운해.”라는 뉘앙스에 딱 맞는 표현은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서운하다’라는 우리말의 의미가 조금 특별해요.

‘서운하다’라는 말은 내가 마음속으로 상대에게 어떤 기대를 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 기대를 저버리거나 무시할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즉, ‘내가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 알아듣겠니? 네가 내 표정이나 상황을 보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좀 맞춰줘야지 왜 그걸 못해?’가 바로 ‘서운하다’입니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영어나 독일어와는 다르게 우리나라 말은 대화를 할 때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뿐 아니라 전후 상황을 염두에 둔 얼굴 표정이나 몸짓, 억양이나 목소리 크기, 그 사람과의 거리나 시선 등으로도 표현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은 눈치가 빨라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서양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이것을 표정으로 말하지 말고 말로 이야기하

라고 부모가 가르치는 반면, 우리는 어른이 말하는데 말대답을 한다고 혼나

면서 자라지요.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술

이 서양인들에 비해 좀 부족한 것이 사실이에요.

대화를 통해 푸는 방법은 서운한 마음이 올라왔을 때 쌓아 두는 것이 아니

그런 감정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에 바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단 표현할 때는 절대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투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또한 본인이 화가 나 있을 때 서운함을 표현해도 안 됩니다. 마음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할 때 내가 지금 느끼는 상태만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서운함은 남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마음이 작게라도 있을 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자립심이 없이 자꾸 상대에게 기대려고만 하는지, 왜 항

상 받으려고만 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나의 성장 배경이나 어

- 13 -

떤 트라우마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어렸을 때 부모님으로부터 받지 못한

인정과 관심을 남들로부터 자꾸 받고 싶어 그러는 건 아닌지, 나도 미처 몰

랐던 어떤 상처 때문에 남들보다 더 쉽게 서운함이 밀려오는 건 아닌지 깊

이 성찰해 보세요. 그리고 그런 서운함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또 예전에 누

군가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운하게 한 일은 없는지를 돌아보는 것도 서

운한 감정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가끔은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하세요. 상대가 처음엔 상처를 받아도 결국엔 고마워합니다. 진실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을 단번에 자유롭게 합니다.

내 마음에 딱 맞게 좀 못 맞춰주느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나에게 맞춰 달라는 내 마음의 틀이 더 큰 문제이지 않을까요? 24시간 그 틀에 맞춰줄 사람, 세상 그 어느 성자라도 못해요.

관계에서 생기는 많은 오해와 괴로움은 대화의 부재에서 옵니다. 대화가 끊어지면 서로의 마음에서도 멀어지고 상대의 의도를 오해하거나 쉽게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 친구처럼 친밀한 관계일수록 아무리 화가 나도 대화의 끈을 오랫동안 놓지 마세요.

상대방이 대화를 원하는데 그를 벌하기 위해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시’라는 벌을 주는 것인데, 대화 거부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를 키우는 역할을 하게 되지요.

행복은 자기를 잠시 잊고 타인과 깊은 연결감이나 감사함을 느낄 때 찾아옵니다. 반대로 타인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직 자의식으로만 꽉 찼을 땐 우린 단절되고 불안하다고 느낍니다.

새해 달력을 선물받거나 새 다이어리를 사면 친한 주변 사람들의 생일 날자에 그 사람 이름을 적어보세요. 그리고 생일이 오면 가장 먼저 생일 축하 한다는 연락을 해보세요. 진정한 행복의 원천은 바로 끈끈하고도 고마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인생이란 거창한 무엇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결국 내 인생의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그들이 바로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 14 -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상대보다 우위를 차지하고 싶다면, 간단합니다. 더 많이 베풀면 됩니다. 많이 베풀수록 그의 말을 따르고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고 싶으면 계산하는 버릇을 멈추세요. 나는 이만큼 해 주었는데 왜 상대는 그만큼 해주지 않는가 하고 계산하면, 관계에 자꾸 브레이크가 걸려요.

상대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나서지 마세요. 내 의도는 좋을 수 있지만, 상대는 자기에게 묻지도 않고 하는 내 행동이 폭력적이고, 자기 삶의 통제권을 내가 마음대로 빼앗았다고 자존심 상해할 수도 있어요.

지금 상황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힘들다면 이렇게 스스로를 시각화해보세요. 주변 사람들이 태풍이고, 내가 태풍의 눈이라고요.

태풍에 휘말리지 말고 고요한 태풍의 눈에서 나오는 지혜의 소리를 따르세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두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안 어디에 열등감이 아직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월감은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존재해요.

처음엔 말로 감동할 수 있지만 행동이 받쳐주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불해안 사람이란? 자기 눈에 남의 잘못들만 보이는 사람.

다른 사람에 관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말하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더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다양한 면 가운데 내 마음에 딱 걸리는 부분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비밀인데…”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진짜 비밀이 아니거나 자신의 비밀이 아닌 경우입니다.

내 비밀을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내가 지금 힘드니까 위로해줘.”라는 의도가 있고, 남의 비밀 이야기인 경우에는 폭로의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겠지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한 번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 억울한 경우를 호소하세요. 내가 잊지 못하고 두고두고 억울해 하면 다가올 다음 기회를 놓치고 말아요.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억울한 일도 있겠지만 반대로 운 좋게 내게 이익이었던 때도 있지 않았나요?

- 15 -

3. 공감 篇 사랑한다면 버텨주세요

■ 따뜻한 햇살 같은 포옹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누군가가 나를 아주 따뜻하게 안아주면 내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된다는 말이요. 물론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 확인해 볼 방법은 없지만 아마도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이 생겼는지 다들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살면서 세상에 치여 상처받고 힘들 때 누군가 나에게 왜 힘든지 그 이유를 구구절절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보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는 포옹이야말로 더 큰 치유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너의 슬픔을 내가 대신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네 편에 서서 이 힘든 순간을 내가 도망가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몸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표현이 포옹이겠지요.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저는 서양 사람들의 인사 방법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특히 승려가 되고 난 뒤에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는 합장인사가 아닌, 두 팔을 쫙 벌리고 누군가를 껴안는다는 것이 왠지 좀 쑥스럽고 어색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알다시피 인사라는 것이 혼자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헤어질 때 상

대는 포옹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데 나는 그냥 악수로 대신하자고 손만 달

랑 내미는 것도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나와 그 사람사이의 거

리를 의도적으로 그어놓는 듯한 느낌을 주어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시간이 좀 지나 어느 순간부터 친한 친구나 동료와 헤어질 때 자연스럽게 포옹을 주고받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의 어색함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유대감, 친밀감, 그리고 따스한 행복으로 채워졌습니다.

최근에 포옹과 관련된 흥미로운 조사결과들을 알게 되었어요. 바로 포옹이 우리 건강에 상당히 유익하다는 과학적 증명이지요. 호주 시드니 대학의 앤서니 그랜트 심리학 교수는 포옹이 스트레스에 반응하면서 분비되는 코르티솔이라고 하는 호르몬을 낮춰 병균으로부터 면역성을 강화하고 혈압을 내려주며 심리적 불안이나 외로움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 16 -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캐런 그레원 교수에 의하면 아침 출근하기 전에 부부가 20초 정도 따뜻하게 포옹하고 손잡아주면, 그렇게 하지 않은 부부에 비해 스트레스 지수가 절반가량 떨어진다고 한다.

어떤 여성분이 제 책에 사인을 받는 도중 갑자기 울먹이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에요.

“스님, 두 달 전에 애들 아빠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충격 때문에 지난 두 달간을 집 안에서만 멍하니 보냈어요. 제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동생이 옆에서 안타까웠던지 스님 책을 선물로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는데 첫 장부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왠지 스님을 만나 뵈면 마음의 용기를 얻을 것 같아서 아침 일찍부터 기차 타고 지방에서 이렇게 올라왔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니 이미 눈물로 가득했고 목소리는 힘겹게 떨리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 앞으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두 팔로 따스하게 한 참을 안아드린 후 울고 계신 그분을 향해 이야기 했습니다.

“먼저 가신 아이들 아빠를 위해 저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지금은 많이 외롭고 힘들지만 지금의 경험 때문에 더 지혜롭고 강한 나로 거듭나실 겁니다.”

흐느끼시는 그분을 안으며 조용히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내가 비록 많이 부족하지만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따뜻한 햇살 같은 종교인이 되자고요. 또한 나의 포옹이 필요한 분이라면 언제든지 인색하게 굴지 말고 기꺼이 안아드리자고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힘들어 하는 가족이나 친구를 종종 따스하게 포옹해 주세요. 그로인해 정말로 생명이 하루 더 연장될지도 모르잖아요.

내 안의 상처가 있기에 다른 이들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습니다. 나도 한 때 부족했기에, 그리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기에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실수를 품어줄 수 있습니다. 나의 아픔이 다른 이들을 향한 자비심의 씨앗이 되기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사진만 봐도 타이레놀 먹은 것과 간은 진통 효과가

- 17 -

있다고 합니다. 또한 남을 돕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면 마치 내가 직접 돕는 것처럼 행복 호르몬이 내 몸 안에도 돈다고 해요. 우리는 이처럼 서로서로 공명하며 함께 공존합니다.

사랑한다면 버텨주세요. 힘들어 할 때 어떤 좋은 위로의 말을 해서 그것을 빨리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아파하는 그 모습, 힘들어 하는 그 심정을 있는 그대로 알아주고 같이 버텨주세요.

몇 년 만에 보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 하는 말이, 지하철 역 앞에서 퇴근하는 자기를 기다리는 아내와 아이들 모습을 봤을 때 삶의 목적을 재확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들은 너무 가까이 있어 때론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세상에는 내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행동이나 말 성과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존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내가 실수나 실패를 해도 그 사랑 변함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친구이고 가족이지요. 서로의 존재를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세요.

상대가 피곤할 때 하는 말은 피곤이 하는 말이지 상대의 진심이 하는 말이 아니에요. 중요한 대화는 잠 푹 자고 다음 날에 해도 절대로 늦지 않습니다. 피곤할 땐, 말 대신 따뜻한 물 한 컵을 따라주고, 그 사람을 그냥 가만히 두세요. 사랑의 표현 중에 하나는 상대를 그냥 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어가 있으면 그 미움이 옳은 말을 가려서 말은 옳지만 말하는 그 사람은 싫게 느껴져요.

말은 어떤 말을 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가 때론 더 중요합니다. 우린 얼굴 표정이나 몸짓으로, 목소리 크기나 속도로도 말을 합니다.

화를 내면 그 화는 메아리가 되어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내가 낸 화를 상대가 화로 되받아쳐 바로 돌아오기도 하고, 사람들 간의 끝없는 뒷담화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니 화를 낼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화내야 합니다.

집이 어지럽고 청소하기가 귀찮으세요? 그러면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보세요. 30분 안에 집 안 청소를 다 하고도 남을 힘이 갑자기 솟아요!

- 18 -

친구 집에 초대 받아서 갈 때는 약속시간보다 5분 정도 늦게 초인종을 누르면 가장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음식 준비를 하느라고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라 살짝 늦게 도착하는 것이 큰 도움을 줄 때가 있어요.

영화 <인턴>을 보고 배웠습니다. 남자가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고 손수건이 필요한 주변 사람을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라는 점을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그 사람을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내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거다.’ 라고 마음을 먹으면 도움받은 상대가 나중에 나를 좀 서운하게 해도 크게 마음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법정 스님께서 뉴욕에 오셨을 때 서점에 모시고 간 적이 있다. 그때 스님께서 “혜민 스님도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고르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철없게도 공부하는 학승이라는 핑계로 한두 권도 아니고 무려 여덟 권의 책을 골라 들었는데 그것을 본 은사 스님께서 한 권만 사라고 눈치를 주셨다.. 그때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책을 놓으려는 사이 법정 스님께서 그 광경을 보시곤 “학승에게 책은 밥이나 숨 쉬는 공기와도 같은 법이지요.”라고 하시며 책 여덟 권을 다 주시고 기념으로 사인까지 해주셨다.

우리는 정말로 어른들의 은혜로 산다. 나도 그 큰 어른들처럼 후덕해져야 하는 데, 먼저 가신 어른들이 그리운 날이다.

■ 경청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살다 보면 정말로 힘든 일이 생겨 누군가와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질 때가 있지요? 이럴 때 여러분은 주로 어떤 사람을 찾게 되나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사리분별 명확하고 말 잘 하는 친구를 찾게 되나요. 아니면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냥 내 이야기를 내 편이 되어 따뜻하게 잘 들어줄 친구를 찾게 되나요? 저 같은 경우는 주로 후자를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미국 학생들 가운데 가끔

- 19 -

씩 도전적으로 교수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반박해 오거나, 아니면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소수의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저도 모르게 점점 마음속에서 그들을 외면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경우 선배 교수 중 누군가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엔 평소 저와 가깝게 지내고, 머리도 명석하고 말도 잘하는 철학 전공의 선배 교수보다는, 아무래도 포용력 있게 말을 조용조용 잘 들어주는 전지 가톨릭 수사였던 교수를 찾게 되더라고요. 왜 내가 그런 선택을 하는지 가만히 살펴보면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단순히 말만 잘 듣는 것이 아니기 때문 같아요.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서부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느낌과 따뜻한 에너지가 느껴져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중간에 말을 끊거나 화제를 돌리지 않고 집중하는 눈빛을 보내주면, 내 마음이 열리고 그분을 통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혼자 버티고 감당했던 무거운 감정들이 믿을 수 있는 출구를 찾아 사그라들고 심리적으로 훨씬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힘들어 하는 가족이나 친구분은 없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비록 그 사람이 가진 문제를 풀어줄 해결방법을 내가 모르더라도, 그 사람은 내가 말을 잘 들어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도 고마워할 것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것은,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가진 문제 해결 방법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도 당신과 같은 아픔이 있었다고 마음을 열고 잘 들어주며 공감해줄 때. 또렷한 답이 없더라도 상대는 용기를 얻고 나아집니다.”

상대를 내 마음에 맞게 바꾸려 하지 않고 따뜻한 관심으로 바라보고,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순수한 표현입니다. 바꾸고 싶어 하면, 상대의 모습은 사라지고 내 기준으로 만들어낸 상대의 문제만이 보여요.

진정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맞는 부분 이외에 내 마음이 맞지 않는 부분이 좀 있더라도 그것들을 모두 품어줄 수 있을 때,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 20 -

아이들은 자신의 상처를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을 얻어내고 싶어서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어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프거나 힘들 때, 슬프고 억울할 때, 속으로만 참지 말고 때론 아이처럼 상처를 보여주고 “나 많이 아팠어.”하고 말하세요.

사람들은 친한 친구에 대해 험담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꼭 전해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때론 모르는 것이 약입니다.

들었을 때 하나도 득이 될 일이 없고 그저 친구가 아플 이야기라면 내 선에서 커트하세요. 내 앞에서 남 욕하는 친구, 나 없을 때 내 욕합니다.

겨울에 누비 승복을 입고 맨해튼을 돌아다니면 가끔씩 듣게 되는 말,

“이렇게 멋지고 패셔너블한 옷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겨울이 몹시 춥지요. 어느 광고 보니까. ‘사람이 난로다’ 라고 했는데 정말로 우리는 서로서로가 있어서 몸과 마음의 추위를 녹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오늘 내가 따스한 난로가 됩시다.

우리 삶의 많은 고통은 단절에서 옵니다. 마음의 문이 닫히면서 상처가 생기고 두려움과 의심이 올라옵니다. 지금 단절의 고통이 느껴진다면, 단절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보세요. 그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가장 좋은 복수입니다.

살면서 나를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를 위해 속으로 한 번씩 되뇌세요.

“세상은 넓고, 이상한 사람은 많다.”

생각이 나와 다를 수 있어요. 다를 때 그냥 ‘다르다’라고 말해야지 ‘네가 틀렸다’고 말하면 상대가 상처 받아요. 입장 바꿔서 한번 생각해봐요.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하면 나는 어떤 느낌일지.

열 명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열 명이 각자 자기식으로 듣고 재해석합니다. 수행은 자기식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 입장이 있습니다. 자기 입장에서 보면 본인이 다 옳아요. 하지만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옳은 자기 입장만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고 “난 네 입장이 이해가 돼. 얼마나 당혹스럽고 힘들겠니?”라는 이해의 말

- 21 -

이 필요해요.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 사람의 심정을 먼저 알아주세요.

우리는 ‘독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보다는 ‘몰라서’ 상처 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상처를 주고받았으면 먼저 이야기 하세요.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라고요. 따뜻하게.

우리는 모르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상처를 주면서도 주는지 모르기 때문에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진정한 참회는 알면서 준 상처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모르고 상처 주었던 많은 인연들을 향한 것입니다.

4. 용기 篇 어두울 때 비로소 보이는 빛처럼

■ 사랑하는 내 청춘 도반들께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니, 지금을 즐겨도 된다고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공부에 집중 할 때니 네가 진짜로 살고 싶은 삶은 잠시 보류해두라고, 욕망하지 말라고, 세상의 속도에 집중하라고 그렇게만 이야기 한 것 같아요.

우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정답인 양 익숙해져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는 생각에 지금은 그냥 버티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살다보면 느낄 때가 옵니다. 과연 지금 내가 당연하게 참고 있는 현재의 불온전한 느낌이 미래에 올지도 모를 꿈의 성취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요. 그리고 막상 일을 이루고 나서도 그 일이 내가 꾸었던 꿈이 아닌 우리 부모님이, 아니면 우리 사회가 획일적으로 세워둔 성공의 잣대로 ‘이걸 해야 해, 이게 성공이야.’라고 강요해 끌려온 꿈은 아니었던가. 하는 불안함이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묻곤 합니다. 어떻게 스님이 될 용기를 냈느냐고요. 그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타인의 시선’을 그만 좀 의식하고 ‘내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선택했던 것 같아요. 남들이 정해 놓은 성공의 잣대에 맞춰서 평생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며 죽을 때까지 헐떡이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마음의

- 22 -

본성을 제대로 보고 스스로 깨닫고 싶었어요. 그래요. 어떻게 보면 좀 이기적일수도 있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 있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한 번쯤은 그래도 내가 진정한 ‘갑’인 인생을 살아봐야 하잖아요. 그리고 내 가슴 한곳에서는 솔직히 미치도록 그렇게 살고 싶잖아요? 원이 없는 삶, 한번쯤은 그런 인생을 꿈꾸잖아요? 내 선택을 남들이 봤을 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손가락질한다 해도 내가 바라는 삶을 한 번쯤은 살아보는 것이 나에게는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그래야 내가 내 삶을 사랑했다고 세상에 대고 당당히 말할 수 있으니까요.

부디 한순간이라도 주변 사람들의 기대만을 충족시키기 위한 종 같은 인생이 아닌, 내 삶의 운전대를 내가 쥐고 가는, 주인으로 사는 용기를 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나는 내 길을 잘 가고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나를 흔드는 경우가 있어요. 나이를 생각해보라고, 결혼이나 돈, 직장이야기를 하면서 남들과 비교하지요.

이럴 때 흔들리지 말고 지금까지 온 길, 뒤도 돌아보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나아가세요.

인생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기다리면 다음 번 버스가 또 올 줄 알았는데 버스 노선이 아예 바뀌어버려 버스를 영영 못 타는 경우가 생겨요. 언젠가 하겠다고 마음먹은 거, 생각났을 때 바로 해보세요.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아보려는 노력 없이 그냥 남들 따라가다 보면, 경쟁률 높은 직업군을 선택하게 되어요. 몇 년간을 시험 준비하면서 마음고생 하다가 결과가 나쁘면 그 길밖에 생각해보지 않았다면서 크게 좌절하고 방황합니다. 직업 종류는 만 가지가 넘어요. 부디 세상과 사회, 부모님이 세뇌해온 프레임에서 벗어나 내 길을 창조해 나가세요. 그게 성공입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쪽팔리는 경험을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도 모르냐고 무시도 당하고 잘 안 되는 자기 자신이 싫어지기도 하고요. 그 과정을 못 하겠다면 평생 외국어도 운동도 악기도 운전도 배울 수가 없어요.

하기 싫은 공부라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부터 하세요. 좀 별로인 상차림이라도 그 중에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부터 드시고요. 책도 가장 읽고 싶

- 23 -

은 부분부터 읽어도 됩니다. 처음이 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발동이 걸리면 어렵지 않게 계속할 수 있어요.

창의적 아이디어는 비주류 삶을 사는 외곽에서 일어나기 쉬워요. 주류가 정해놓은 규칙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도전하고 철학하기 때문입니다. 주류가 아니라도 지금 내 삶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뭐든 내 식으로 꾸준히 해보세요.

걱정이 많아서 불안할 때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이렇게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이 있는지. 걱정 때문에 오히려 지금 현재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바뀌는 것이 없다면 걱정하는 그 마음에게 말하세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그때 가서 걱정하자!”

생각을 많이 하면 무엇을 하기 힘듭니다. 그냥 바로 해버리면 되는데 생각을 자꾸 일으키며 저항하니까 ‘못한다, 힘들다, 어렵다’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머리가 맑고 생각이 없을 때, 바로 그 일을 해버리세요. 시간 지나면 또 저항하기 시작해요.

완벽하지 않아도 85% 정도 괜찮다 싶으면 넘기고 다음 일을 하세요. 완벽하게 한다고 한없이 붙잡고 있는 거, 좋은 거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벽이라는 것은 내 생각 안에서만 완벽한 거니까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만, 실수를 통해 배움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세요.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이런저런 실수들을 통해 내공이 쌓인 사람을 칭하는 말입니다.

■ 내 인생 첫 번째 실패가 찾아왔을 때

내 인생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는 너무도 아픕니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지요. 실패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설마’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경쟁률이 높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설마 합격하겠지. 요즘 경기가 안 좋다지만 열심히 하면 성공하겠지. 하고 막연한 상상을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사람일수록,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의 인생 앞에 찾아온 첫 번째 실패 앞에서 더 크게 좌절합니다.

- 24 -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지금 같은 실패가 내 인생에서 수십 번 더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요. 앞으로도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많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이런 좌절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겪어내야 한다는 사실을요. 즉 지금 실패는 아주 정상적인 경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경험했다고 해서 내가, 내 인생 전체에서 ‘실패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지금 대학 입시에 실패해서 힘드신가요? 그렇다면 그냥 좀 더 열심히 공부하면 되겠지 막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어떤 잘못된 습관 때문에 성적이 오르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답을 찾아보세요. 지금 고시에 떨어져서 방황하시나요? 이번 딱 한 번만 더 시험에 도전해 보고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고 가족들 앞에서 맹세하세요.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하면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게 될 것이고, 설사 훗날 다른 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때 조금만 더 해볼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습니다. 가게가 망해서 좌절하셨나요. 그렇다면 왜 망했는지 누구 탓을 하지 말고 냉철하게 스스로에게 그 원인을 물으세요. 혹시 파는 물건이 특별한 개성이 없고 시장의 욕구를 잘못 분석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가게의 위치를 잘못 골랐거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실수를 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지 명확한 이유들을 찾아보세요. 혹시라도 재도전하게 된다면 처음보다 두 배, 세배 이상의 시간을 들여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준비하세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실패, 그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나만의 인생 노하우를 쌓아 지혜롭고 신중한 나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여러분의 실패를 응원합니다.

좌절과 실패도 삶의 일부분입니다. 도망가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면 그 다음이 보입니다.

실패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첫 번째 과정은 실패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받아들이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고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빨리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3대 재앙 중 하나라고 합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고 실망하지 말고 우리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요.

- 25 -

일이 잘 안 될 때는 계속해서 고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시도를 해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왜냐면 인생에는 딱 정해진 객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고, 뭐든 계속 시도하다 보면 상황에 맞는 나만의 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둥 치고 장대 같은 비가 한참 내리고 난 다음 날, 파란 하늘과 푸른 산을 바라보면 그 빛깔이 그전보다 훨씬 깊고 선명하게 잘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천둥이나 장대비 같은 큰 시련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생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힘드신 거,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잠시 지나가는 구름입니다. 그러니 기죽지 말고 힘내세요.

누군가 나타나서 내 문제를 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 기억하세요. 이 세상은 절대로 공짜가 없다는 사실을요.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이번엔 공짜로 문제를 해결해준 그 사람이 문제가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구걸하지 말아요. 내 실력이 쌓이면 저절로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중에라도 관심을 구걸하고 있다고 느낄 때 ‘내 실력을 더 길러야지.’ 하고 마음먹으세요. 절대로 존귀한 나를 거지처럼 대하지 마세요.

흔든다고 내가 흔들리면 세상이 나를 더 세게 흔들어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바위를 본받아요.

우리는 열 마디 칭찬보다 한마디 비난에 훨씬 더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나를 비난해서 상처받았을 때 기억하세요. 그 한마디 비난 뒤엔 나를 응원하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열 마디 박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스스로를 감동시킬 만큼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해본 적이 있었던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안다. 정말로 최선을 다했는지.

그러면 눈물이 난다. 나도 모르게….

- 26 -

퀴즈 하나 풀어보세요.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맡는 여러 업무 중에 제일로 힘든 업무는?”

정답 ; “내가 맡은 업무”

앞서기 위해 앞사람을 비난해가면서 자기가 일어서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나도 곧 내 뒷사람들에 의해 짓밟히고 비난받습니다. 대신 나의 성심이 담긴 노력으로, 실력으로 인정받으세요.

내가 누굴 치는 순간, 내 밑천이 바로 드러납니다.

실력 없어 불안한 사람들이 줄을 대어 정치적 힘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항상 좋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잘못입니다.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도 시간이지나면 재미가 벗어지고 힘든 시간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일이든 고된 시간을 이겨내야 결실을 맺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본인 연구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교수가 되고 보니 비용 처리 영수증 정리, 각종 추천서 써주기, 연구비 지원서와 보고서 작성, 학교 홍보용 차출 강연 등 하기 싫은 일들도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모든 직업이 다 그런 것 같아요. 본인이 싫은 것도 해야 좋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들이라 해도 내 마음의 영혼과 지성을 총동원해 정성으로 해보세요. 그것이 바로 성공의 비밀입니다.

- 스와미 시바난다(인류에 대한 봉사로 일생을 보낸 의사, 300권 이상의 저술,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요가를 가르침)

인생의 전환점은 좋았을 때보다 어렵고 힘들었을 때, 혹은 궁지에 몰리거나 고생이 심했을 때 옵니다. 그때 내가 더 크게 성장하고, 변화의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힘들었을 때가 나에게 약이었어요.

지금 약 드시는 분들 힘내세요. 파이팅!

우리에겐 배짱의 한마디가 필요합니다.

- 27 -

내가 느끼는 열등한 부분에 대고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한번 외쳐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시험만 보면 긴장하고 떠는 나에게 “그래 좀 긴장한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다른 경쟁자들에 비해 키가 좀 작다. 그래서 어쩌라고?” “우리 집 좀 가난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인정해 버리고 나면 살짝 분한 마음이 올라오면서 그 열등한 요소를 치고 올라가려는 용기가 나오게 됩니다. 열등한 부분을 숨기고 부끄러워하면 문제가 되지만. 그것을 인정해버리고 “그래서 어쩌라고?”해버리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나도 모르는 내면의 힘이 나옵니다.

2016. 4. 16

* 다음에 4편부터 8편이 이어집니다.

- 28 -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2)

■ 혜민 스님 지음

5. 가족 篇 나의 첫 사랑, 나의 첫 상처

■ “엄마 많이 사랑해”

세상 모든 이들이 누군가의 귀한 아이이듯, 비구 역시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귀한 아들이다. 비록 일대사 문제를 해결하려 발심해서 출가한 몸이라 할지라도 부모와의 천륜은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목련존자는 지옥에 계신 어머니를 구해낸 지극한 효성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 한국 불교를 일으킨 경허 선사 역시 크게 깨닫고 나서 가장 먼저 어머니를 찾아갔다고 한다. 경허 선사가 직접 탁발해가며 20여 년간 어머니를 극진히 봉양했다 하니, 깨달았다 해서 부모에 대한 효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지금도 주위를 보면 연로한 노모를 절에서 모시고 사는 어른 스님도 많이 계신다.

나는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다소 내성적이지만 밝고 온화한 성품을 지니신 어머니, 음악과 미술을 좋아하시고 고운 심미안을 지니신 어머니, 글 읽는 것을 좋아하시고, 마음에 드는 말을 듣거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글로 옮겨 놓으시는 어머니. 어려움이 좀 있어도 잘 참으시면서 일을 끈기 있게 해나가시는 어머니,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고 닮고자 했다.

그런데 항상 밝고 곱고 건강하실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최근에 건강이 나빠지셨다는 소식을 얼마 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다행히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 마음은 고향땅에 머물던 지난달 내내 어머니 주위를 맴돌았다.

일반 대중들에게 강연을 할 때면 나는 항상 마지막 시간에 서로 손을 잡고 같이하는 ‘마음 치유 명상’을 한다. 이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마치 어머니, 아버지가 내 양손을 잡고 계신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 1 -

그렇게 생각한 후 다 같이 부모님을 이해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소리 내어 한다.

“엄마도 이생에서 많은 고생을 하셨군요. 아버지도 또한 많이 힘드셨군요. 부모님 몸이 건강해지시길, 마음이 편안해지시길, 어디를 가시나 항상 보호 받으시길.”

그렇게 다함께 읊조리다 보면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신다.

나도 사람들과 함께 어머니 건강을 염려하며 기도를 하다 보니 갑자기 깊은 심원으로부터 울컥 올라오는 한마디가 있었다.

“엄마, 엄마, 많이 사랑해.”

머리가 아닌 가슴이 하는 말은 이처럼 간단하고 직접적이다. 좀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바로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께 사랑한다는 말을 언제 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닌 ‘엄마’라는 표현이 더 자연스럽게 나왔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스님이 된 아들이 보낸 문자를 보고 많이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다짐하셨다고 한다. 내 아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건강해져야지 하고 말이다. 부모는 그런 존재인 듯하다. 나를 위해서, 내 몸을 위해서 스스로를 챙기는 것이 아닌, 내 자식을 위해서, 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챙기는 존재.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은 바로 내 존재 자체입니다. 좋은 말이나 물질적인 도움도 좋지만 그냥 옆에 같이 앉아서 손잡고 웃어주세요. 오랜만에 사랑하는 분의 눈도 마주 보면서요.

일기 예보에서 비가 종일 올 것이라고 해도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비가 그칠 때가 있습니다. 병에 걸려 아프더라도 자세히 보면 그렇게 아프지 않은 순간들도 있어요.

하지만 ‘병에 걸렸다’ 혹은 ‘온 종일 비’라는 관념을 갖고 있으면 비가 계속 오거나 혹은 아픔이 항상 있는 것처럼 잘못 느껴져요. 생각에 너무 빠지다 보면 실제보다 훨씬 나쁘게 상상하게 만들어요.

우리는 어쩌면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말보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해요”라는 말을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한마디로 내 존재 이유와 가치

- 2 -

를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당신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용기 내 말씀해보세요.

아무리 좋은 사람과의 인연도 시간이 지나면 상황에 의해서 변하고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친구가 이사 갈 수도 있고, 가족이 아파서 저 세상으로 먼저 갈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연락이 뜸해지는 지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하나의 인연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인연의 문이 놀랍게도 또 열립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삶 속으로 잠시 머물다 그냥 떠나지만 어떤 사람은 잠시 머무는 동안,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키는 아름다운 발자국을 가슴 속에 남겨놓고 떠난다. - 플라비아 위즈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부모의 가장 큰 선물은 부모 스스로가 행복한 것입니다. 부모가 행복하면 아이는 자존감이 높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어요. 반대로 부모가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아이는 자기가 무엇을 해도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무가치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내 삶을 희생했는데 아이들이 고마워하기는커녕 본인들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주고 있다며 화를 냅니다. 아이들을 위한 지나친 집착을 희생이라고 착각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세요. 또,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스스로 배울 기회를 빼앗았던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제자를 너무 애지중지 아끼면 그 제자 망쳐요. 자식교육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엄청 공을 들인 첫째 아이보다 관심이 덜했던 둘째나 셋째 아이가 더 효도하고 더 잘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항상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경계선을 명확하게 그리고 좀 멀리하세요. 거리를 두다보면, 내 내면의 소리가 들리면서 점점 강해집니다. 상황에 질질 끌려다니면서 나를 너무 오랫동안 아프게 버려두지 마세요.

상담을 하다 보면 젊은 분들이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엄마 아버지를 아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이중적인 마음 때문에 힘들다면 그것을 부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세요. 사랑하면서 미워할 수 있어요.

- 3 -

자식은 부모님의 성격이나 가치관, 행동방식이나 부부관계를 변화시키기 어려워요. 자식이 봤을 때 나이 드신 부모님의 행동이나 생각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져도 그것은 자식의 권한도 책임도 아닙니다. 부모님 때문에 너무 힘들어 하지 마세요.

■ 아버지를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내게 고민을 털어 놓는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일반적으로 자식들은 어머니와의 관계와는 달리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더 복잡한 감정과 어려움을 겪는 듯했다. 특히 딸보단 아들의 경우에 더 그랬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굳이 나눠보면 대략 다섯 가지 유형이 보였다.

첫 번째, 아버지가 애정 표현을 잘 하지 않고 지나치게 가부장적임, 아버지 는 자녀들이 감히 넘지 못하는 두려운 산 같은 존재.

두 번째,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거나 어머니를 힘들게 한 경우, 어머 니에 대한 연민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됨

세 번째, 아버지의 자수성가,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 아버지의 인정에 목 마른 자녀들

네 번째,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가 매우 뛰어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 아버지의 간섭을 싫어하거나 무시함

다섯 째,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은 경우,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 허전함을 느낌, 스승이나 멘토에게 이끌림

어떤 아버지가 있었다. 당신은 자꾸 당신이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당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신다. 당신은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이었다.

- 한국 전쟁 때 할아버지는 자기와 엄마를 남겨 놓고 큰아들만 데리고 피난

- 계란 같은 귀한 반찬은 항상 큰아들만 줌

- 할아버지 와 형의 그늘에서 자란 아버지는 늘 배려와 양보만 해 왔음

- 그래서 당신은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서도 낮은 사람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생각한다.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던 날 결과가 좋다고 말씀하시며 아버지는 병원

- 4 -

진료를 하게 해 준 아들에게 ‘우리 아들 사랑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에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아들도 말했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 사랑해요.”

사랑한다면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본인이 원하는 것을 해 주세요.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해 주는 것은 미묘하지만 그 사람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어 하는 의도가 들어 있을 수 있어요.

조금만 잘 계획하면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잘 돌보면서도 내 스스로의 행복도 가꾸어 나갈 수 있어요. 나를 무조건 희생하는 것은 내가 돌보는 사람에게도 길게 봤을 땐 좋지 않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그 사람도 오랫동안 잘 돌볼 수 있습니다.

남편, 부인, 자식이 살이 쪄서 걱정이세요?

사랑하는 가족을 다이어트 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내가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시작하면 함께 운동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오늘 기억에 남는 명언.

“스님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니까 그저 그랬던 형제간의 우애도 좋아지데요.” 그렇습니다. 돈은 잘 벌어서 나누어 잘 쓰면 돼요.

우리나라의 많은 가정 문제는

시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 사이를

부인이 남편과 시부모 사이를

남편이 부인과 처갓집 사이를,

시누이가 오빠와 올케 사이를

떨어뜨려 놓으려는 부질없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게 더 짜증을 냅니다. 이럴 때 같이 짜증을 내면 싸움밖에 되지 않습니다. 짜증 내는 사람은 지금 본인이 힘든 것을 알아달라고, 같이 공감해달라는 의미에서 내는 짜증일 수 있어요. 상황이 나아지면 짜증 낸 거 곧 미안해합니다.

- 5 -

욱 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 가족을 생각하세요. 한 번 참으면 본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안해 집니다.

조언이나 충고, 내 나름 해석 없이 따뜻하게 들어만 주는 것, 내가 곧 상대편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공감해주는 것, 피하지 않고 같이 그 이야기를 견뎌주는 것, 그것이 내 아이를, 아내를, 남편을, 친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머리를 베개에 얹고 잠들기 전, 오늘 하루 고마웠던 사람이나 감사했던 일 딱 세 가지만 떠올려보세요.

세 달만 이렇게 하시면 삶의 행복도와 만족도가 확실히 증가한다고 합니다. 행복한 마음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고양이라도 내가 데리고 와 집에서 키우기 시작하면 얼마 있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정이 가는 고양이가 됩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유 말고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6. 치유 篇 자비의 눈빛과 마주하기

■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살다보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미움과 분노를 가슴 속에 담고 사는 것 보다 용서하는 편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그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은 또 그게 아니다. 어떻게 나를 비방하고 나에게 상처와 모욕감을 준 사람을 그리 쉽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마음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은 치솟는 분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처가 깊을 때 상처를 준 사람을 향한 분노와 미움은 손상된 자아가 그 사람과의 경계선을 명확하게 긋고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일으키는 지혜로운 감정이다. 분노는 일종의 보호 장벽과도 같아서 깨지고 부서진 자아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회복 될 때까지 나름의 역할을 한다. 그 분노를 빨리 내려놓으라고 옆에서 자꾸 종용하는 것은 잘못하면 그 사람을 다시 상처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을 다람

- 6 -

쥐 쳇바퀴 돌리듯 떠올리며 자기 스스로를 희생자라는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

용서의 목적은 과거 상처에 얽매여 힘든 내 감정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주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즉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내가 내 안의 상처와 응어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그 자유로움을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우리 안에는 분노와 미움, 슬픔과 비통함, 외로움과 공포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내면의 감정들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자비한 마음의 눈이 있다.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래서 삶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부디 내 안의 그 자비한 눈빛과 마주하시길 깊이 소망한다.

거칠고 사나운 사람도 그 폭력적인 성품 바로 아래에는 공포가 있고요. 그 공포 아래에는 어렸을 때 받은 깊은 상처와 연약함이 있습니다. 겉만 보지 마시고 그 연약함과 상처까지 봐주세요. 거기서부터 연민과 이해, 용서가 가능해져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했다는 말은 그 사람을 용서 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 틱낙한 스님

아무리 미움받을 만한 사람을 미워해도 그 미움은 나를 먼저 불행하게 만듭니다. 마음의 골이 깊어질수록 내가 마치 지옥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져요. 마음을 바꿔먹자고 결심해 보세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라도….

친구는 그랬다. 한국으로 온 이후 정신 건강을 위해 담배를 끊는 사람처럼 모든 뉴스를 끊었다고. 그랬더니 진짜로 마음이 산만하지 않고 편해졌단다.

우리는 우리가 몰라도 되는 자극적인 사건, 사고 뉴스를 인스턴트식품처럼 소비하고 또 바로 버린다.

가끔씩 혼자 조용히 있을 때 느끼는 마음의 고요는 마음에 주는 약과도 같습니다. 홀로 조용히 있을 때 자신의 중심을 되찾으며 내 안의 신성과 만날 수 있습니다. 고요함의 약을 스스로에게 처방하세요.

삶 속의 아픔은 치유의 대상이지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정하면 할수록, 잊으려 하면 할수록, 더 생각나고 더 올라옵니다. 부정하거나 저항하지 말고 그 상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세요. 바라보면. 아픔 뒤에 배경처럼 서 있는 사랑이 느껴져요.

- 7 -

마음의 상처는 아름다움이나 유머를 만났을 때 치유되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생각이 쉴 때, 멋있는 예술 작품을 보면서 닫혔던 감성의 문이 열릴 때, 유머 있는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밝아지고 편안해짐을 느낄 때, 마음은 아름다움과 유머를 통해 다시 온전한 본래 상태로 돌아가게 됩니다.

최근에 들은 셀프 디스하는 실없는 유머 한 가지.

“스님이 병원에 가서 입원하면 스님이 계신 그 입원실을 사람들이 뭐라고 부르는 줄 알아요?”

“글세요, 잘 모르겠는데요.”

“중환자실이래요.”

* 셀프 디스(Self dis)

-여기서 dis는 disrespect의 준말

- 스스로 자기를 폄하하는 행동

- 공개적인 자리에서 스스로의 치부나 과오를 드러내는 것

장작에 불을 지피려면 장작과 장작 사이에 빈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장작들을 빈 공간 없이 너무 촘촘하게 붙여 놓으면 숨 쉴 공간이 없어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우리 삶도 이처럼 쉼의 공간, 비움이 시간이 없으면 아무리 귀한 것들로 가득 채웠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귀한 삶의 완성은 우리가 귀하다고 여기는 것들보다 비어 있는 쉼의 공간이 만들어 줍니다.

어디를 가야 할 때 10분만 일찍 나오세요.

집을 나서는 발걸음에 여유가 있고 걷는 것을 즐길 수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밥을 먹을 때도 5분만 더 천천히 드셔보세요. 음식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가 있고 위에도 부담이 없어요. 5분, 10분의 여유가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합니다.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건을 하루에 두세 개씩만 정리해 보세요.

유통기한 지난 음식, 약, 화장품, 5년이 지나도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다시 볼 일 없는 책, 고장 난 가구, 공짜라고 가져 왔다가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들…. 버리고 나면 얻는 것이 있어요.

- 8 -

우선 정리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있고요. 그리고 소중한 물건들만 남아 볼 때마다 그것들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 스님, 마음이 울적해요

빈도의 차이는 있어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우울함을 경험합니다. 우리 인생에 항상 즐거운 일만 있으면 참 좋겠지만 나이 들어 병들고 죽는 것이 한 세트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슬프고 힘든 일이 찾아올 때마다 우울한 느낌이 올라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가까이 제 삶만 들여다봐도 우울한 느낌은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손님과도 같았어요. 제가 열심히 노력했던 것에 비해 결과가 좋지 않아서 낙심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오해나 충돌이 연속으로 일어났을 때, 사람들이 나에 대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울한 느낌이 스멀스멀 찾아왔습니다. 더불어 믿었던 사람이 배신을 하거나, 아니면 지금의 힘든 상황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희망이 없다고 느꼈을 때도 우울한 손님은 제 마음의 문을 사정없이 두드렸습니다.

먼저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제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눈에 띄는 특징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우선 우울한 느낌을 최초로 유발시키고 계속해서 그 느낌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시키는 에너지는 다름 아닌 ‘나의 반복적인 생각’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이 좌지우지 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긍정적인 느낌이 생각과 함께 일어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똑같이 부정적인 느낌이 생각을 좇아 같이 일어나요. 결국 우울한 느낌을 이해하려면 느낌을 일으키는 원인 제공자인 ‘생각’을 먼저 이해해야 해요.

생각이란, 몸의 안팎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견해예요. 사람은 하루에만 무려 1만 7000번의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주로 과거의 기억에 의지해서 비슷한 생각들이 습관화되어 도미노처럼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 생각들을 대부분 알아채지 못하고 생각 속에 완전히 빠져버려 생각이 이끄는 대로 마음이 끌려다닌다는 사실입니다.

- 9 -

자 이제 생각의 속성을 좀 알게 됐다면 마음가짐을 앞으로는 이렇게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첫째, 우울한 생각이 떠오르면 그저 마음 하늘에 잠시 우울한 생각 구름이 일어났을 뿐 내 인생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둘째, 우울함을 겪고 있는 원인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 때문이라면 한 가지만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나를 빗대어 자기 본인 심리상태를 이야기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요.

셋째, 생각의 대부분은 극히 제한적인 내 경험의 관점에서 본 사견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요. 그런 사견들은 고정불변의 진실이 아니고 상황이 바뀌면 변하는 것이라 과거의 생각들이 지금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점이지요.

구름이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울 수 있을 때까지 우는 것입니다.

더 이상 울 수 없게 되면 지금까지 흘린 눈물의 무게만큼 구름은 가벼워져 슬픔을 자기 마음 하늘에서 보낼 수 있어요. 슬플 땐 구름처럼 좀 울어도 괜찮아요.

슬픈 일이 생겨 힘들다면, 슬픔을 부정하지 말고 그 슬픔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세요. 그리고 그 안에서 마음껏 슬퍼하세요. 그렇게 슬픔을 허락하고 한참을 울고 나면 그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 머리에 떠오른다고 그 생각들이 다 진실은 아닙니다. 특히 내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 믿지 마세요. 몸이 아프면 계속 이렇게 아플 것만 같고 수험생이면 계속해서 캄캄한 터널을 걸을 것만 같고, 상실의 경험 때문이면 영원히 이렇게 힘들 것만 같아요. 하지만 절대로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외로움, 슬픔, 두려움과 같이 힘든 감정이 올라왔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일은 그 감정들과 잠시 같이 있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도 알고 보면 ‘지옥 한 칸’안에 살고 있어요. 다 가진 것 같아 보이는 사람 역시도 ‘지옥 한 칸’입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우울증의 최초 원인을 찾아보면 놀랍게도 슬픔이 아니고 분노인 경우가 많

- 10 -

습니다. 내 안에서 분노가 일어나는데 그 분노를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내 마음속으로 삭이다 보니까, 내 안에 갇힌 분노가 나를 치게 되지요.

행복을 돈이나 일의 성과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지인들과의 따뜻한 만남 속에서 찾으려 해보세요. 돈이나 성과는 일정 목표가 달성되어도 곧 목표가 재설정되지요. 그래서 행복이 닿을 듯 말듯 닿지 못하는 신기루가 됩니다. 반면 따뜻하고 끈끈한 만남은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서 느낄 수 있어요.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과 슬픔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놓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지금 한번 내가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졌다고 상상해보세요.

아이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도 하고, 결혼도 잘하고, 아픈 가족의 몸도 완전히 낫고, 집도 더 좋은 곳으로 옮기고, 은행 통장에 여윳돈도 있고…. 어떠세요?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고 걱정하는 생각들이 쉬게 되지요? 그런데 조금만 지나면 어떤가요? 우리 마음은 또 다른 것들이 불만스럽고 또 그것들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 않나요?

동네에 새로 생긴 예쁜 카페에 가보았다. 녹차 크레이프 케이크라고 맛있어 보이는 것을 골랐는데 한 조각에 7천 원이라는 말에 케이크는 됐고 차만 마셨다. 그런데 하루 종일 그 케이크가 눈앞에서 아롱거렸다.

이틀 동안 눈앞에 아른거려 다시 그 카페로 가서 먹고 싶었던 케이크 한 조각을 드디어 사 먹었다.

맛있었다. 그러나 아주아주 맛있지는 않았다. 아마 노벨상을 받거나 대통령이 되어도 이런 기분이겠지.

틱낫한 스님 절에 가면 일주일에 하루는 게으른 날(Lazy Day)이라고 합니다. 그날 서로에게 인사도 “오늘 얼마나 게을렀습니까?” 라고 합니다. 때로는 파란 하늘이나 시원한 바람 한 점 벗 삼아 열심히 살았던 나를 위한 많이 많이 게으른 하루를 선물하세요.

세상이 내 어깨를 치고 나를 넘어뜨렸을 때,

- 11 -

다시 일어나서 계속 걸으세요.

서러워서 눈물이 좀 나더라도 너무 창피해서 죽고 싶더라도

앞으로 앞으로 걸으세요.

걷다보면 괜찮아져요. 걷다 보면 잊혀져요.

아픔 속에서도 성장하려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고통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문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

아는 것과 행동으로 옮기는 것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알았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고 알았다고 해서 바로 치유되거나 금방 행복해지지는 않습니다.

안 것을 행동으로 옮겨 자신의 생활 속에 녹였을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건 노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 깨달은 문수보살도 부처의 행동을 실천하는 보현보살과 짝을 이루어 회향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향 : 불교에서 자기가 닦은 선근 공덕을 다른 사람이나 자기의 불과(수행의 결과)로 돌려 함께 하는 일

7. 본성 篇 고요 속에 깨어 있는 마음

■ 깨어 있는 현재가 마음의 고향입니다

매년 초가을은 마음 본성으로 돌아가는 수행의 시간이다. 보통 때는 우리나라에 있는 수행 사찰에서 가을 안거를 나지만 올해는 예전부터 꼭 한 번은 가겠노라고 약속했던 프랑스 남부 시골 마을에 위치한 틱낫한 스님의 수행 공동체 플럼 빌리지(plum village)로 향했다.

2013년 틱낫한 스님께서 여러 제자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하셨을 때 법문을 통역했던 일로 귀한 인연을 맺었다. 틱낫한 스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어떻게 수행 공동체를 통해 실천되고 있는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방문할 수 있는 시절 인연이 된 것이다.

- 12 -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운동과 참여 불교 운동을 이끄셨다. 스님께서 노력하시는 모습을 본 마틴 루터 킹 목사께서 크게 감동해 노벨 평화상에 추천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나고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프랑스 남부에서 작은 수행 공동체를 열고 스님의 가르침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평생수행을 하셨다. 처음에 작았던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승려의 숫자도 늘고 방문 수행자도 많아지면서 지금 규모의 플럼 빌리지가 된 것이다.

스님의 연세가 아흔이 되면서 작년부턴 법문을 하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많이 불편해 지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럼 빌리지는 여전히 전 세계 65개국에서 수행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찾는다.

플럼 빌리지에서는

1. 수행자들이 모두 천천히 걷는다.

2. 밥도 역시 천천히 먹는다.

틱낫한 스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걷는 것과 먹는 것에서 볼 수 있듯, 바로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온전히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지금 무언가를 하면서도 마음이 자기 생각 속에 빠져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의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현재에 와서 깨어 있는 것이다. 왜냐면 여기 지금 현재가 바로 수행자들이 찾고 있던 마음의 고향이자 귀의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자기 과거 기억이나 미래 생각에 빠져 현재를 놓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지금으로 돌려 깨어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현재 쉬는 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숨은 우리 몸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아주 중요한 다리다. 숨이 편하면 마음도 편해지고, 숨이 거칠면 마음도 거칠게 된다. 반대로 마음이 급하면 숨도 역시 급하게 변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숨도 역시 고요해진다. 숨을 놓치지 않고 있으면 결국 현재를 놓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숨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숨이 편안하고 깊어지면서 마음도 역시 따라서 편안하고 깊어지면서 마음도 역시 따라서 편안하고 깊은 침묵 속의 평화를 맛보게 된다.

마음이 이렇게 숨을 통해 깊은 침묵의 상태에 있다 보면 어느 순간 지혜 또한 열리게 된다.

- 13 -

복잡한 머릿속의 생각들을 잠시 멈추고

마음을 현재에 오게 해 쉬게 하는 방법들

1. 아름다운 풍경을 미소와 함께 바라본다.

2. 눈을 감고 숨을 크고 깊게 열 번 쉰다.

3. 좋은 음악을 눈 감고 집중해서 듣는다.

4. 심장이 살짝 뛰는 운동을 20분간 한다.

5. 지금 내 어깨나 허리가 어떤 느낌인지 몸 안의 감각을 온전히 느껴본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내 눈앞의 사람이나 풍경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것들을 관심있게 바라보면 생각에 붙잡혀 있던 마음이 생각으로부터 빠져나와요.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말고 눈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세요. 망상이 없는 현재에 마음이 와 있어요.

숨이 편안해지면 마음도 따라서 편안해져요. 숨은 생각을 좇아 과거와 미래로 가 있던 우리 마음을 현재로 오게 만드는 놀라운 타임머신입니다.

야구 선수가 아무리 홈런을 쳐도 결국 타자는 처음 떠났던 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결국 인생이나 수행도 처음엔 대단하고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집을 떠나지만, 무수한 성공과 실패의 경험 후에는 처음 떠났던 그 자리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돌아옵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이 항상 내 손안에 있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지극한 마음의 고요함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고 지극한 환희와 평온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안에서 깨어 있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됩니다.

진리는 찾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침묵은 영원의 깊이만큼 깊고, 말은 시간의 깊이만큼 얕다.

- 토마스 칼라일(1795-1881) : 영국의 평론가, 역사가. 19C 사상계에 큰 영향, 저서로 <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등이 있음

내 안에는 여러 생각이나 감정들이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그것들 뒤로 조용

- 14 -

히 지켜보고 아는 관조자가 있습니다. 그 관조자는 묵묵히 지켜보면서 단지 알 뿐 그 생각이나 감정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 관조자가 바로 우리의 본성입니다.

마음의 본성은 거울과도 같아서 더렵혀진 적도 더럽혀질 수도 없습니다. 마음 거울에 질투, 미움, 탐욕 등이 잠시 영상으로 비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영상들이 보여도 거울 자체는 물들지가 않습니다.

잠시 거울 위로 보여지는 영상들을 붙잡고 나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텅 비어야 하늘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생각이 쉬어 텅 빌 때 창공과 같은 본성이 드러납니다.

“진정한 자유는 내 생각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1895-1986 : 인도의 철학자 명상가. 전 세계를 다니며 연설, 1986년 그의 연설과 대화 내용이 60여 권의 책으로 출간

관찰되는 모든 대상은 진정한 내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몸밖에 있는 물컵이나 나무, 빌딩 들은 관찰할 수 있기에 내가 아니고 관찰되는 대상입니다. 마찬가지로 몸 안의 느낌, 감정, 생각들 역시 그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관찰되기 때문에 내가 아니고 관찰되는 대상입니다.

즉 진정한 나는 대상화되어 관찰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관찰되는 대상을 가지고 나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해탈이란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안함이 없는 것을 뜻한다.”

- 승찬 선사 : 달마와 혜가에 이은 중국 선종 3조 선사

과거가 나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 아니고 내가 과거를 자꾸 떠올리며 머물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과거를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 보세요. 자기가 알아서 강처럼 흐르도록. 진정한 나는 기억의 강이 아니라 그 흐름을 방 밖에서 고요히 보는 자입니다.

■ “당신은 참으로 부처님 같소”

고등학생 시절, 나는 불교에 대해 잘은 몰랐지만 부처님 오신 날 만큼은 반

- 15 -

기곤 했다.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름다운 5월에 학교를 하루 쉴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 고운 색의 연등들이 서울 종로 거리를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는 모습이 또 좋았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 연등으로 물든 거리를 걷고 있으면 학교 성적에 대한 압박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나에겐 삶의 낙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미국에서 온 선교사들과 함께 농구나 탁구를 하며 주말 오후를 보내는 일이었다. 친구 같고 형 같던 20대 초반 선교사들과 시간을 보내며 나는 자연스럽게 영어와 서양 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과 종교적 관심이 선교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크게 증폭됐다. 우리가 왜 태어났고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든가. 아니면 세상 가득한 불공평에 대한 문제라든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등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영어로 토론할 수 있어 좋았다. 아마도 학교에서는 물어볼 수 없었던 질문들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나는 어김없이 선교사 친구들을 설득했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우리나라 전통 종교도 조금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땐 나도 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고 불교 신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단지 우리나라 불교전통을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내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등산이 좀 하고 싶었던 것인지, 아름다운 연등 불빛이 잘 보일만한 늦은 오후에 선교사 친구들은 나와 함께 북한산 도선사로 향했다.

법당 앞에 선 백인 선교사들은 전통 사찰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경내 입구에 서 있는 위엄 있고 무서운 사천왕의 얼굴을 보며 “왜 불교는 악마를 숭배하느냐?”고 물었고, 돌로 새긴 마애불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왜 사람들이 돌부처에다 절을 하느냐, 저건 우상숭배가 아니냐?”하고 물었다. 나는 명쾌하기는커녕 어설프게라도 답을 하지 못했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영광을 받들어 섬기는 가브리엘이나 미카엘과 같은 수호천사들이 있듯, 불교에는 부처님 법을 보호하는 호법신장들이 있는데 사천왕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대답을 그땐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불상이 부처님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불상을 향

- 16 -

해 절을 하면 그 불상의 부처님이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몰라도 너무 몰랐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종교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며 ‘진정한 부처님은 형상을 가지고 볼 수 없다.’라는 <금강경>속 가르침을 만나게 되었다. 즉 진리 자체로서의 부처님은 인간의 몸과 같은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가득한 무형상의 깨어 있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 마음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의 본성이라서, 나도 깨닫고 보면 부처님과 하나도 다름이 없다. 때문에 부처님이라는 형상을 향해 공경심을 갖고 절을 하지만, 결국 내 몸 안과 밖으로 깨어 있는 무형상의 마음 본성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이다.

몸은 나이를 먹지만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 같지요? 왜냐면 마음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모르는 영원한 현재가 마음의 나이입니다.

우주는 한없이 거대한 반면 내 마음은 몸 안에 갇혀 있어 작다고 느껴지시나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우주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이 우주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 그릇 안에 우주가 들어와 있는 것이지 내 마음보다 더 큰 우주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가 와서 밖이 좀 어둡고 추울 땐 밝고 따뜻한 방 안으로 돌아오면 아늑하게 느껴져요. 이처럼 세상일이 시끄럽고, 힘든 일이 많이 생기면 내면으로 돌아와 마음공부를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힘든 일들은 나를 공부시키려고 하늘이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 주변의 싫은 사람들 때문에 내 마음 깊은 심층의 모습이 끄집어내어져 여실하게 속살림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싫은 사람만큼 수행하는 데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그러셨다죠.

“가장 큰 공부는 남의 허물을 뒤집어쓰는 것이다.”라고요.

과거의 상처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 를 명상이나 참선만으로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 17 -

몸을 움직이는 요가나 등산을 하면서 심리 상담을 병행 하는 것이 영적 수행보다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심리적 상처를 해결하지 않고 수행으로 바로 들어가면 큰 진보 없이 일그러진 과거의 기억을 ‘나’라고 계속해서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혹사 시키는 것을 가지고 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잠도 적당히 주무시고 먹는 것도 알맞게 먹고 좌선도 몸에 무리가 가게 하지 마세요. 균형 잡힌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쪽이 진보도 빨라요.

깨달았다고 해서 바로 인격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달은 후에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격을 닦아나가야 합니다. 세상에 필요한 지식도 또한 열심히 배워서 방편으로 잘 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그래서 완성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정말로 깨달은 스승은 자기만을 따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말고 좋은 스승이 있으면 거기에도 가서 배우라고 합니다. 제자가 영적으로 잘 성장하는 것에 관심이 있지. 본인의 세력 유지를 위해 제자를 소유물같이 취급하지 않습니다.

스승이 신과 같이 숭배되어 권위로써 사람들을 누르려 한다면 스승에 대한 고마움은 가지되 큰 상처 받기 전에 그 조직에서 나오세요.

자기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선전하시는 분께 혹하지 마세요.

깨닫는 내용이 ‘내’가 따로 없다는 것인데 ‘내’가 아직 남아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면 앞뒤가 좀 맞지 않잖아요?

<반야심경>에 보면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즉,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대자유한 것이라고 나옵니다. 나도 없고 얻을 것도 없는데 어찌 내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선전하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깨달은 자는 없습니다.

오직 깨달은 순간들만 존재합니다.

- 스즈키 순류(1904-1971) : 일본 조동종 승려로 미국에 선불교 전파

- 18 -

8. 수용 篇 내가 ‘나’임을 허락하는 시간

■ 힘들어 하는 나를 허락하세요

생활 속에서 우리가 많이 듣는 말이지만 실제로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이 바로 ‘내려놓는다’는 말 같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내려놓지 못해서, 이룰 수 없는 내 안의 욕망을 내려놓지 못해서 괴롭다고 토로하는 분들을 그간 많이 만났습니다.

삶이 가져다주는 실망과 좌절은 누구나 경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흔히 “다 잊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다 내려놓아.”라고 조언을 하지요 하지만 내려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잊고 싶은 사람, 정리하고 싶은 기억들이 이상하게 더 떠올라요. 하루 빨리 내려놓고 마음을 완전히 비워버렸으면 좋겠는데,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내려놓는 것은 잘 안 되니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내 마음이 좀 편안해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려놓는다’라는 말은 사실 ‘받아들인다’의 다른 말입니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과거에 있었던 힘든 기억을 없애고 지운다는 말은 아닙니다. 왜냐면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웠으면 좋겠지만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잊으려 애를 쓸수록 더 생각이 나고 더 집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사실 내가 힘든 것은 과거의 기억 자체가 힘든 것이 아니고 그 기억에 붙어 있는 아쉬움, 실망감,좌절과 같은 어려운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려놓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지금 힘들어 하는 나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기억과 함께 붙어 있는 감정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허락하는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나를 허락하면, 허락하는 즉시 마음의 상태가 미묘하지만 곧 바뀌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힘든 감정을 내가 어떻게든 변화시켜보려고, 잊어보려고 했는데,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나니 일체의 마음활동이 쉬면서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마음이 조용한 상태에서 내 감정을 따뜻하게 지켜보고 있으면 뜻하지 않은 다소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는 힘든 감정들만 있

- 19 -

는 줄 알았는데 그 감정을 따뜻하게 지켜보는 ‘또 다른 나’혹은 ‘그분’이 계시는구나 하는 알아차림입니다. 세상에서 나만 홀로 분투하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항상 나를 떠나지 않은 채 고요 속에서 자비하게 내 마음을 바라보는 분이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때로는 그분께서 ‘마음아, 지금 많이 힘들어 하는구나. 얼마나 아팠니?’하고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살면서 뭔가를 내려놓지 못해서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느낄 때, 있는 그대로의 마음 상태를 허락해 보세요. ‘좀 힘들어도 괜찮아.’ 마음 속으로 속삭이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내 안의 상처를 자애의 눈길로 보듬어 주시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힘들면 괜찮아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면 힘든 감정에 억압을 가하면서 더 힘들 수가 있어요. 일어난 감정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머물고 싶은 시간만큼 머물러요. 그 시간을 존중해 주고 기다려주세요.

왜냐면 내 안에서 일어났어도

감정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말, 잘 안 들어요.

내가 ‘외롭다’, ‘괴롭다’, ‘약하다’ 등의 모습들을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허락하고 받아들이면 그 받아들임 속에서 이상하게도 힘이 나와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면 다음 단계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방향과 용기가 생겨요.

집착은 ‘집착을 놓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놓아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 집착의 끝에 어떤 고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통찰해 냈을 때, 그 지혜의 힘으로 놓을 수가 있습니다.

칼 끝에 묻어 있는 꿀을 먹고자 달려들고 있지는 않은지 보세요.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네가 나를 위해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 엄밀하게 말하면 자기 욕심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모습은 수용과 자유이지 속박과 컨트롤이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구속했던 사람일수록,

- 20 -

힘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을 자꾸 구속하고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구속하는 것을 일반화시켜 남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에요. 내가 나를 우선 허락하면 그들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람인데 왜 자꾸 저부터 마음을 풀라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상대에게 물어보면 상대는 어떻게 대답할까요? 상대도 역시 문제의 원인은 자기가 아니라 나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을까요? 상대도 나도 풀지 않으면 결국 이 관계는 망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내가 바뀌는 편이 훨씬 빨라요. 내가 마음을 먼저 풀면 상대도 금세 변화를 감지합니다.

살면서 골치 아픈 일이 생겼을 때 카네기의 말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우리는 지금부터 1년 후면 다 잊어버릴 일들을 가지고 괴로워하면서 현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괴롭다면 1년 전에 골치 아팠던 일을 한 번 떠올려보세요. 지금도 그 일 때문에 괴로우신가요?

아마 지금은 잘 생각도 안 나지 않나요?

일을 하다 보면 좋은 것이 나쁜 것과 함께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경우 나쁜 것이 싫다고 그 일을 아예 버려버리면 좋은 것까지 버리는 경우가 되고 맙니다. 지혜로운 이는 좋은 것이 왔을 때 나쁜 것이 올 것도 준비합니다.

우리에겐 완벽한 행복이나 건강은 없는 것 같아요. 갑자기 큰돈이 생기면 형제들 간에 다툼이 생기고, 권력을 갖게 되면 집안 식구들이 속을 썩이고, 너무 잘나가면 생각지도 못했던 안티들도 나타납니다. 이처럼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꼭 잃게 되어 있어요. 우주가 그렇게 돌아가니, 너무 큰 행운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은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기 때문입니다.

겨울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지면 밖으로 나가기 힘들여져요. 하지만 그 추운 바람 때문에 미세먼지가 사라지고 대기가 청정해지지요. 이처럼 처음 봤을 때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도 자세히 보면 좋은 점이 있어요. 이것이 세상 이치인 것 같습니다.

- 21 -

행복한 삶의 비결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 혜광 스님

오랫동안 원하던 것을 성취하고 나면 두고두고 행복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막상 성취하고 나면 잠시의 행복감 뒤에 허탈의 파도가 밀려오고, 성공 후 새로운 상황이 만들어낸 생각지도 못한 후폭풍이 몰려와요.

그러니 지금의 과정을 즐겨요. 삶에 완성이란 없는 것 같아요.

비우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채우려고만 하는데 사실 비움 안에 온전함과 지혜가 있습니다. 생각이 많다고 결정이 쉬워지는 것도 아니고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비움 속에 존재하는 지혜를 믿고 잠시 쉬어보세요.

■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작년 초, 텍사스에서 추신수 선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으로 인연이 되어 종종 문자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친한 사이가 되었다. 가끔 뉴욕에서 경기가 있으면 추신수 선수를 응원하러 갔는데, 지난해 상반기 타석에서의 성적이 예전보다 좋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번 슬럼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지를 물어왔다.

먼저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봤는지 묻자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무지 답답하다고 했다.

사실 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추신수 선수와 같은 운동선수의 슬럼프는 아니더라도 본인이 나름 노력하고 있는데도 좀처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 말이다.

SNS를 통해 내게 질문하는 분들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도대체 어떤 마음 가짐을 가져야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일단 현재 상황을 좀 넓은 시야를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 파도가 올라갈

- 22 -

때가 있으면 분명 내려갈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파도가 올라가는 것만을 정상으로 여기고 내려가는 것은 비정상으로 여겼던 것은 아닐까? 해가 떠 맑은 날이 있는가 하면 분명 장대 같은 장맛비가 내릴 때도 있는데 나에게 만큼은 계속 해가 떠줄 거라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지금 경험하는 내리막길도 우리 삶의 일부로 껴안고 가야 될 내 인생의 몫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지금 경험이 싫다고 쉽게 짜증내고 불안해하고 남 탓만 한 것은 아닌지 한 번 돌아보자. 시야를 넓게 봤을 때 지금의 슬럼프는 파도가 다시 올라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하나의 과정일 수 있다. 지금의 경험 덕분에 우리는 다시 올라갔을 때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며, 쉽게 마음이 들뜨지 않고 지혜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박찬호 선수로부터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슬럼프에 빠졌든 그렇지 않든, 사람들이 야유를 보내든 그렇지 않든,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타자에게 던지는 공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잘 던진 공 하나가 슬럼프로부터 나를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 공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지금의 작은 노력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자꾸 노력하다보면 장마에도 끝이 있듯 다시 곧 해가 뜬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추신수 선수의 연속 득점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인생이라는 조각보 안에는 칭찬과 비난, 기쁨과 슬픔, 얻음과 잃음, 행복과 아픔이 함께 하나로 엮여 있어요.

그래서 비난과 슬픔, 잃음과 아픔이 와도 놀라지 않고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수행 같습니다. 이것들은 원래부터 우리 삶과 같이하는 것이라는 것, 이 진리를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밤이 계속해서 길어질 것만 같아도 어느 순간부터 다시 조금씩 낮이 길어지기 시작합니다. 고통이 끝없이 계속해서 진행될 것 같아도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거나, 내려놓을 마음이 들거나, 그 안에서의 배움을 찾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통마저도요.

“내가 예전에 도움을 주었거나, 크게 기대하던 사람이 나를 심하게 해치더라도 그를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게 하소서.” - 달라이 라마

- 23 -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모순되고 약한 존재들입니다. 말과 행동이 상황에 따라 다르고, 누구 앞에서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말하며, 타인에겐 잘하는데 가족에겐 오히려 함부로 대하고.

가치관도 상황에 따라 금방 변하는…. 성숙은 이런 불완전하고, 앞뒤 맞지 않는 모습을 자기 스스로 돌아보면서 성찰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힘 있고 가진 자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 법은 내가 내 삶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욕심이나 바라는 것이 상대에게 없으면 그 누구를 만나도 당당할 수 있어요. 바라는 것이나 욕심이 있을 때 비굴해집니다.

탐욕의 반대말은 금욕이 아니고 만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나를 비난하고 질책하는 목소리는 나를 응원하고 진심으로 아껴주는 목소리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서 내가 힘든 상황에선 응원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요.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비난하는 사람들이 우르르 다른 사람을 비난하러 간 후에 조용히 남아서 나를 꾸준히 응원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상대로부터 거부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고, 그 짐을 혼자서 안고 가려니 힘들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 마음이 문을 열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판단하지 말고 따뜻하게 받아주세요.

내가 완벽하지 않듯 구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운전자 옆 좌석에 앉은 사람은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운전에 대해 훈수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개개인마다 운전하는 스타일이 있어요. 운전은 그냥 운전자가 하게 내버려두고 편하게 웃으며 목적지까지 가면 모두가 해피!

사람들은 자기 방식이 제대로 된 ‘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방식이 아닌 다른 식으로 일하는 것을 보면 문제니까 자꾸 고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방식은 나에게 조금 익숙하지 않은 방식일 뿐, 틀린 방식은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한 번쯤 해보세요.

전에 몰랐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 24 -

마음의 고통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마루고 있을 때 옵니다. 오늘 몇 시부터는 그 일을 꼭 하겠다고 구체적인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이 됐을 때는 두말없이, 딴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버리세요.

지금 이 일을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되는 일이 있지요.

만약에 해주지 않으면 오랫동안 마음에 걸릴 것 같으면 그냥 빨리 해주고 잊어버리세요.

꽃이 질 때

노을이 질 때

사람의 목숨이 질 때

우리는 깊은 슬픔 중에도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우고

이웃을 용서하는

겸손을 배우네.

-이해인 수녀, <작은 기도> 중에서

2016. 4. 21 - 끝

-25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