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업(2)
자존감 수업(2)
■ 윤홍균 지음
Part 4 자존감을 방해하는 감정들
1. 왜 감정은 뜻대로 조절하기 어려울까
자존감과 감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문제 대부분은 감정과 연결돼 있고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중요도에 비해 의외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 감정은 내 마음의 패선
감정은 내 마음이 외부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은 패션 감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좋은 소재의 옷을 센스 있게 입으면 남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누더기를 입고 있으면 주눅이 들고 부끄러워질 수 있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완벽한 패션이란 존재하지 않듯, 감정도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없다. 자신이 나쁜 원단에 속하는 분노, 슬픔, 자기연민 같은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빈티지로 멋지게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행복과 기쁨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입었다면 결코 좋은 패션이라 할 수 없다.
* 빈티지 : 포도를 수확한 해에 정평있는 양조원에서 만들어 생산연도 등을 라벨에 명시한 포도주. 유행 같은데 안 따르고 자기 나름으로 꾸며서 입는 것, 유행과는 다른 멋을 지닌,
어떤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의 높고 낮음도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감정 조절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길이 크게 갈린다.
■ 감정 조절과 자존감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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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남들에게 욕을 좀 먹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다. 그래서인지 미움받을 용기를 내라고 부추기거나 앞으로는 까칠하게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살수록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일반화하는 것 같다.
글쎄, 과연 그럴까. 물론 감정을 표현하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마음껏 내보이는 게 꼭 건강하거나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감정은 배고프거나 졸린 것처럼 본능의 영역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의식중에 느낀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고 패스트푸드만 먹으면 당뇨나 고혈압이 생기고, 지나치게 많이 자면 몸에 해롭다.
■ 감정 폭발 후 우울해지는 이유
감정이 격앙되면 뇌는 위기를 직감한다. 그러면 공격성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샘솟고, 활동성 물질인 도파민은 본능 중추로 모여든다. 동시에 이성의 뇌인 전두엽은 스위치를 내린다. 이때 뇌는 긴급한 상황임을 인식해 이성보다 생존을 우선시하게 되고, 뇌의 가장 깊은 곳인 본능의 뇌(변연계)가 깨어난다.
뇌의 이런 신호는 곧바로 신체에 전달된다. “큰일 났어! 지금 주인이 열 받았어! 전투를 준비해!” 신호를 받은 신체에서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도 가빠진다.
여기서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몸의 긴장도는 점점 강해지고 최고점에 달하면 펑 하고 터져버린다.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화로 분출되는 것이다.
그런 극도의 흥분이 계속된다면 인간은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뇌는 재빨리 아드레날린 분비를 중단 시킨다. 이때 인간은 심한 무기력과 무능감 자책감을 느낀다. 부모가 아이에게 고함을 지른 후 나쁜 부모라는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배우자에게 폭언을 한 후 자괴감에 빠져드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인간은 우울기가 나타나도록 진화되었다.
■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세 가지 부류
첫째, 행동화가 습관이 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뇌가 흥분할 때마다 손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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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까지 함께 흥분한다. 감정이 흥분하면 뇌의 가장 깊은 곳의 감정중추가 항진 된다. 문제는 몸 동작이 과격해질 때다.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자신 또는 타인을 다치게 하는 행동화가 습관이 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둘째,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사람들이다.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영역을 해마라고 부르는데, 과거 기록은 해마의 정보 창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래서 조금만 건드려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셋째, 감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웬만해서는 화도 내지 않고 감정을 느끼는 것을 나약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거부하는 것이다.
■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
감정조절을 못하는 사람들은 억압과 폭발만 반복한다. 연인 때문에 화가 나도 “아니야 나 화난 거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왜 늦었어?”라면서 감정을 억압한다. 심장은 미친 듯 뛰고 눈물은 흐르고 몸에서는 감정을 느끼라고 아우성을 치지만 그 신호를 무시한다. 그러다 감정의 압력이 높아지면 상대에 상관없이 결국 자기도 다치고 남들도 다치게 만든다.
반면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얼마나 느끼며 어떤 영향을 느낄지 인식하고 있다. 또한 그 감정이 지금 눈앞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들은 감정이 격해졌을 때 분명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 다만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행동을 할 뿐이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 심호흡을 하거나 자리를 피하거나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식으로.
누구나 격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다만 누구는 감정이 식기를 기다리거나 표 나지 않게 조절할 줄 알고, 누구는 모든 사람들이 알게끔 행동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 감정 조절을 위해 구별해야 할 것들
자존감은 ‘나를 얼마나 존중하는가’ 하는 사고의 척도이지만 현실적으로 자존감 또한 일종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래서 우리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구별하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는 데에 심리학을 알면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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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된다. 심리학이 물리학이라면 감정은 전기다.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절히 다루지 않으면 감전될 위험도 있다.
■ 감정을 평온하게 하는 다섯 가지 분류
나는 한 번 감정이 요동치면 밤에 잠을 못 자는 증상이 있다.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깨어 멀뚱거린 날이 많다. 어느 날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인지 행동 치료가 생각나 적용해 보기로 했다.
나는 밤에 잠을 못자고 있다. 그렇다면 이 ‘행동’을 유발한 ‘감정’은 무엇일까? 가만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찼다. 불안함이었다. 왜 불안한지 생각하자. ‘과연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생각을 만들어낸 ‘사건’은 며칠 전 아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이 사건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감정을, 감정이 행동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해 ‘신체반응’ 까지 분류한다.
분류하기는 이성적 사고 영역이다. 이렇게 하면 감정에 몰려 있던 뇌 활성이 이성의 영역으로 분산되면서 감정에서 빠져 나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문제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다.
0 사건 : 아내가 임신했다.
0 생각 :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0 감정 : 불안함, 초조함
0 신체반응 : 불면 가슴 두근거림
0 행동 :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음
* 대책 : 내일 아침부터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을 검색해 보자
이처럼 사건과 생각, 행동을 감정과 구분하는 행위는 마음을 안정시킨다.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이유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뒤엉켜 있어 답답하던 것이 풀려 눈앞에 드러나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그리고 구체적인 대책을 세우기도 좋다.
■ 감정 조절이 힘든 특별한 상황
사실 이렇게 분류하고 구분하는 능력을 처음부터 갖춘 사람은 흔치않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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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려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이런 분류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강박증이라는 진단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감정에 흠뻑 취한 후에 이 같은 과정을 밟으면 십중팔구 그 감정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감정 조절이 힘든 상황도 많다. 사회적 혹은 생물학적으로 뇌 기능이 혼란스러워질 때다 이를테면 오랫동안 잠을 자지 못했거나 사랑에 빠진 경우, 그러니까 신체적, 감정적으로 정상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일 때 그렇다.
0 가족과 관련된 일 : 가족의 일은 나의 일이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가족의 감정을 내 감정으로 착각해서 몰입하는 것이다. 가족과 관련된 감정의 덩어리가 커지면 조절이 어려워진다.
0 술을 마신 경우 : 술을 마시면 뇌 기능은 본능을 관장하는 변연계로 집중 된다. 그러면 지난 기억을 현실의 감정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타인의 행동에 남과 나를 구분하지 못해 시비가 붙기도 한다.
0 배가 고프거나 수면 부족의 경우 : 장시간 잠을 못자거나 혈당 공급이 안 된 경우 시상에 비상이 걸린다. 감정과 이성은 사라지고 생존 본능만 남는다. 그 결과 지나치게 공격성을 띠거나 폭식 반응이 일어난다.
0 사랑에 빠진 경우 : 이때도 이성이 마비된다. 술에 취했거나 가족이 얽힌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랑하기 때문에 조절이 더 어려운 것이다.
0 자신과 비슷한 상황을 접했을 때 : 동정이나 연민은 접착성이 상당히 강하다. 그래서 쉽게 떼어지지 않고 행동으로 옮아가기 쉽다.
감정을 100퍼센트 조절할 수 있다고 믿지 말고, 절반만 조절해도 성공이라고 받아 들여야 한다.
3. 다루기 힘든 감정 다루기 : 창피함, 공허함, 양가감정
한창 잘나가던 개그맨이 갑작스럽게 은퇴를 발표한 적이 있다. 어느 날 분장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우리 애들이 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과 함께 ‘언제까지 이런 코미디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는 무대에 올랐지만 경직된 표정으로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창피한 개그맨이 된 그는 더 이상 대중을 웃길 수 없었다. 아무리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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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많고 돈을 많이 번들 매일 창피함을 느껴야 한다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그는 은퇴했고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창피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들의 착각
창피함은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가 창피함을 자주 느끼는 것은 몇 가지 인지적 착오 때문이다.
1. 우선 모두가 나를 보고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단체 사진을 찍으면 어김없이 나만 눈을 감고 있거나 못마땅한 표정이어서 속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내 모습만 신경을 쓰듯 남들도 자기 모습에만 신경을 쓴다. 사실 대다수는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화장이 떴는지, 눈을 감았는지에 관심이 없다.
2. 두 번째는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착각이다. 꼭 완벽주의자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행동에 엄격한 편이다. 자신이 한 행동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타인들은 내가 한 행동이나 변화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3. 마지막으로, 남들이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누군가 나를 두고 입방아를 찧었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 동료들이 모여 내 험담을 했다거나 친구들이 내 욕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큰 충격을 받는다. 모멸감과 배신감에 사로잡혀 힘들어 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들에게 다른 사람 얘기는 단순한 가십거리, 한번 씹고 넘어가는 가벼운 주제일 뿐이다.
■ 공허함, 감정의 진공 상태
창피함은 밀도가 높은 감정이다. 타인의 평가, 시선, 강도, 기간 등의 생각들이 뒤엉킨, 꽤 복잡한 감정이다. 창피함의 반대편에 자리한 감정으로 공허함이 있다. 아무 것도 없는 느낌, 신나는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없이 비어있는 감정을 텅 빈 마음 혹은 공허함이라 부른다.
공허함은 그 자체로 부정적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무념무상에 도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을 휴식이라고 하듯 감정적으로 지친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다”라는 말을 한다. 이처럼 공허함은 생각이 비워졌을 때 따라오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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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돈을 벌거나 성과를 내는 것에는 목표를 정해 놓지만 감정의 목표는 구체화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무작정 ‘지금보다 나은 감정이었으면’ 하고 생각할 뿐이다. 따라서 무의식에서는 공허함을 원했으면서도 진짜 공허함이 느껴지면 자신이 목표했던 감정에 도달한 것을 깨닫지 못한다.
■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양가감정
때로는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한다.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한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애증의 감정, 먹기 싫으면서도 먹게 되는 감정이 바로 양가감정이다.
양가감정은 연애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쉽게 드러난다. 친구한테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할까?”라고 조언을 구했을 때 그 친구가 “더 정들기 전에 빨리 헤어져” 라고 충고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래도 어떻게 그래? 내가 언제 또 이만한 남자를 만날 수 있겠어? 못 헤어져”라며 갑자기 태도가 바뀐다. “그럼 계속 참으면서 잘 사귀어봐”라고 말하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헤어지라고 하면 사랑한다고 하고 사랑하라고 하면 미워죽겠다는 연애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 나의 핵심감정 인식하기
개인마다 유난히 자주 분출되는 감정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핵심감정이라고 부른다. 창피함이 핵심감정인 사람은 유난히 창피함을 자주 느끼고 주변을 심하게 신경 쓴다. 남들이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비웃었다’고 느끼는 식으로 ‘무시당했다’는 감정을 핵심 감정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걸핏하면 자괴감이나 억울함을 느낀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적개심을 느끼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넘어간다.
자신의 어떤 감정이 핵심감정인지 알고 있는 게 좋다. 앞서 말했듯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인식부터 해야 한다. 억울함, 분노, 부끄러움 등 핵심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도 있다.
■ 나의 핵심감정 생각해 보기
어떤 감정이 나의 핵심감정인지 알면 좋다. 그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아, 오늘도 나의 핵심감정인 000이 터졌나보네.’ 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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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인식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하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왜 나는 이모양이지?’라는 질문으로 자신을 비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 없다. 단지 ‘나의 핵심 감정이 오늘도 폭발하는구나!’ 하고 감탄하면 된다. ‘왜?’ 라는 질문은 상처를 주기 쉽지만 감탄은 자신의 감정을 짚고 넘어가게 만든다.
핵심 감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릴 때의 꿈 혹은 장래 희망처럼 보면 된다. 소방대원, 연예인, 경찰,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을 정했다고 해서, 또 커가면서 그 꿈이 변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다. 꿈이 없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니 핵심 감정을 반드시 찾아내야 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편안하게 생각을 정리해 보길 권한다. ‘나의 핵심 감정은 무엇일까?’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뇌는 조금 더 건강해진다.
4. 뜨거운 감정 다루기 : 자기혐오, 죄책감, 자기연민, 자기애
감정은 날씨와 같다. 살다 보면 일 년 내내 맑은 날은 없다. 흐린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다. 마찬가지로 감정변화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기상 예보관은 날씨를 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날씨를 파악해 맑은 날은 옷을 가볍게 입고 흐린 날은 우산을 챙기라고 알려주는 사람이다. 감정을 잘 조절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 생겨나는 감정을 없애거나 바꾸려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파악하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뿐이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생겨나는 감정에 불만스러워 한다. 마치 맑으면 햇살이 강해서 싫고, 비가 오면 습해서 싫다는 것처럼 말이다. 변하는 날씨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 때때로 변하는 날씨에 맞춰 대처할 수 있을 뿐.
■ 뜨거운 감정의 네 가지 스펙트럼
한국인 대다수는 어릴 때부터 감정을 억제하는 교육속에서 자란다. “울면 안 돼”라거나 “사내자식이 엄살은” 등의 말을 들으며 슬픔을 감추고 아픔을 억누르도록 내면화 했다. 요즘엔 그 반사작용으로 ‘긍정의 힘’까지 강조하다보니 부정적 감정에는 둔감해져야 할 것 같은 강박마저 생기는 추세다. 이래서야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감정을 받아들이고 표출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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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려면 감정을 느끼는 수용체가 살아 있어야 한다. 건강한 수용체를 통해 모든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 분노 VS 자기혐오
분노는 불 같은 감정이다. 분노를 품고 있는 것은 불덩이를 안고 있는 것과 같다. 닿기만 해도 데기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를 밀어내려고 노력한다. 오래 품고 있다가는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탈이 나기 때문이다.
분노를 자주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향한 분노도 함께 지닌 경우가 많다. 혼자 있으면 자신에게 화내고 가족과 있으면 가족에게 화를 낸다. 안에 자기혐오를 안고 있기 때문에 주변 가까운 곳부터 불을 지피는 식이다.
혹시 당신의 마음속에 분노가 자주 인다면 그 강도와 방향을 잘 살펴봐야 한다. 분노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기혐오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화를 안 낼 때는 언제인가’ ‘이 일이 정말 화를 낼 만한 일인가, 아니면 내 안에 화가 많은 건가’하고 천천히 되짚어보는 것이 화를 다스리는 첫 번째 관문이다.
■ 미움 VS 죄책감
미움은 분노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위험한 감정에 속한다. 너무 가까이 품고 있거나 오랫동안 안고 있으면 저온 화상을 입는다. 음식으로 따지면 아주 매운 음식이다. 가끔 당길 때 먹는 건 괜찮지만 너무 자주 먹다간 속병이 생긴다.
미움을 지나치게 억누르다 보면 자기감정을 억압하게 되고 미숙한 방어기재를 낳는다. 바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 하고 잘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착한 아이 콤플렉스’나 ‘애 어른’ ‘효자병’ 등이 그것이다.
자기를 향한 미움 즉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것도 미숙한 방어기제에 속한다. 타인에게 비난받을까봐 두려워 미리 자책을 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다.
■ 동정심 VS 자기연민
동정심은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분노나 미움과 달리, 도와주려는 마음이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 감정을 좋은 거라고 배우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감정이 늘 좋은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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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동정심을 갖고 대할 경우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한편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은 자기연민이라 한다. 자기연민도 대부분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타인이 늘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거나 심해지면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한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한다는 특징이 있다. 덕분에 남과 쉽게 친해지고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역설적이게도 자기연민에 빠진 사람은 상대가 간간이 던져주는 동정심과 그 기억들 때문에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한다.
■ 호감과 자기애 그리고 관심
사랑은 뇌가 집중할 대상을 발견한 것이다. 호감은 사랑보다는 약간 약한 심리 반응인데 호감이 생기면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호감 즉 관심을 갖는 데서 사랑은 시작하고, 사랑이 식으면 관심부터 사라진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배신감을 느끼는 까닭은 나 말고 다른 존재에게 ‘집중’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좋아해도 될 사람만 좋아하고, 관심이 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면 참 편안한 인생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것이 자꾸 엉키는 일이 생긴다. 좋아하지 말아야 할 사람에게 애정이 생기는 대표적인 경우가 이른바 불륜이다.
반대로 사랑해야 하는 관계인데 자꾸 미운 마음이 올라오는 것도 곤란한 일이다. 가족, 특히 배우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감정이 움직이지 않는 경우다. 또는 자신을 아끼고 싶은데 자꾸 미워지고 화가 날 때도 있다.
■ 나에게 관심 갖기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남 얘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보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관심을 둬야 할 자신을 향한 애정은 떨어진다.
이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선 자신에게 관심부터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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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가운 감정 다루기 : 실망, 무시, 냉소, 무관심
세상엔 평균 이상으로 (평균의 기준이 애매모호 하지만) 냉소적이거나 차가운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감정은 따뜻한 감정에 비해 부정적 느낌을 주긴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감정이다. 세상에 옳은 감정, 잘못된 감정이란 없다. 다만 그 감정들이 너무 강하게 올라올 때 방어만 잘 하면 된다.
■ 차가운 감정의 종류
차가워지려고 노력하던 때가 있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문득 나는 정이 많아서 탈이야. 이제부터 냉정하게 살 거야‘라고 다짐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게 단점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에게 차갑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내가 던진 독한 말에 우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냉소적이어서 가까이 하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차 싶어 그때부터 혼자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도 하고 마음이 순화될까 싶어 시집도 자주 읽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눈물 좀 자주 흘리는 게 뭐가 나쁘고 정 많은 게 무슨 죄라고 그토록 냉정해지려고 노력했는지 후회막심하다. 차가워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때의 내 판단은 분명 잘못된 것이었다.
■ 실망 VS 슬픔, 우울
실망했다는 말은 기대가 있었다는 뜻이다. 맛있는 게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을 때, 사랑받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을 때, 따뜻한 물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차가운 물일 때 실망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실망은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생기는 감정이다.
한편 실망감을 자주 안겨주는 사람도 있다. 못된 의도로 일부러 그러는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좋은 의도로 그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심리는 비슷하다. 나중에 실망감을 덜 주려고 먼저 작은 실망 덩어리들을 수시로 던진다. 언젠가 콩깎지가 벗겨질 것에 대비해 실망할 면을 먼저 보여주는 애인, 중요한 프로젝트를 잘 끝낸 후배에게 칭찬 대신 우려할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상사 등이 그런 예다. 성취 길에 빠져 교만해질까 봐, 또는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칠 것을 염려해 미리 실망이라는 찬물을 끼얹는 사람들이 이쪽 부류다. 실망감이 반복되면 슬픔이 된다. 슬픔을 자주 겪다보면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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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 VS 비관
무시한다는 말에는 ‘낮게 평가한다’ 와 ‘못 본 척하다, 방치한다’ 라는 두 개의 뜻이 있다. ‘낮게 평가한다’는 상대를 비하하고 업신여길 때 드는 감정이다.
누가됐건 상대에게 무시당한다는 느낌은 상당히 공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의 ‘못 본 척하다, 방치한다’ 는 일종의 무관심으로, 차가운 감정에 속한다. 결국 낮춰보고 값어치 없게 보는 마음은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원인이 된다.
■ 냉소 VS 무감동
냉소적인 사람들, 심하기 ‘쿨’한 사람들이 겪는 일종의 후유증이 무감동이다. 크게 화날 일도 누굴 미워할 일도 없어 스트레스는 덜하지만 그만큼 행복할 일도 없어져 버린다. 뇌는 집중을 좋아하는 데, 감정이 차가우니 마음을 집중할 것이 사라져 무감동의 허무감으로 빠질 수 있다. 그래서 냉소적인 사람들은 간간이 취미 생활이나 연애를 통해 마음의 온도가 얼어붙지 않도록 보온해줄 필요가 있다.
■ 무관심 VS 무기력
‘무관심’은 감정 중에서도 가장 무겁고 식어버린 감정이다. 어떤 느낌이 생기려면 일단 상대를 바라보고 집중해야 하는데 그 최소한의 관심도 사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에 관심을 끄고 싶어 하면서도 무관심 상태를 두려워한다. 관심을 줄이고 머릿속이 차가워지면 냉기가 오래가 무기력(의욕없음) 상태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마치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이 ‘해열제를 먹고 저체온증에 걸리면 어쩌지?’하고 걱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 뇌에는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자동 제어장치가 있다. 따라서 뜨거운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 무관심을 투여한다고 해서 쉽게 무기력해 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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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5 자존감 회복을 위해 버려야 할 마음습관
1. 미리 좌절하는 습관
■ 좌절해도 ‘망’하지 않는 법
살다 보면 흔한 말로 ‘망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험을 못 쳐도 망했다. 연인과 헤어져도 망했다고 말하곤 한다. 좌절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망할’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선 이전 시대보다 마음 무너질 일이 많다. 정보화 산업화 사회는 농경사회보다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마음이 약해서 힘들어 한다지만,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문명은 스트레스를 늘리는 쪽으로 발달한다.
그 명백한 증거가 수많은 시험이다. 입시, 취업, 승진, 사업 등 복잡해진 사회는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인증과 자격시험을 요구한다.
나는 시험보다 우리를 더 각박하게 만드는 것은 애정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한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에게 받는 사랑이 중요하다는 게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보편적인 상식이 되었다.
절망하는 습관은 스트레스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살다보면 만날 수밖에 없는 이별이나 시험 앞에서 자신감을 잃는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면 ‘난 사랑받지 못해서 안정적이지 못한 거야’ 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떨어진 자신감은 실패할 거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시험에 대한 불안, 혹은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쉽게 좌절한다. 물론 그 사이사이로 피하면서 용케 버텨내는 사람들도 있다. 좌절하기 좋은 연료가 널려 있어도, 불만 안 붙으면 넘어갈 수 있으니까.
■ 좌절에 불을 당기는 파국화 반응
현대 사회에는 좌절의 재료들이 널려 있다. 여기에 ‘파국 반응’이라는 불이 붙으면 곧바로 좌절하고 절망한다.
파국화 반응이란 한미다로 ‘이젠 다 끝났어’라는 반응이다. 조금만 자극을 받아도 죽음이나 부도, 파산 같은 비극적 상황을 떠올리는 증세로 더 이상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이 채워지며 이성이 마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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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느끼는 정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파국화 반응을 만나면 폭발해 지레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 시험에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표정은 ‘고독한 죽음’에 가 있다. 그걸 바라보는 면접관의 평가가 좋을 리 없다.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좌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좌절을 먼저 했기 때문에 떨어지는 셈이다.
■ 내 파국화의 끝 바라보기
파국화의 반응은 알레르기와 비슷하다. 꽃가루나 집 먼지나 견과류 등에 아무 반응도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콧물이나 두드러기, 심지어 숨이 막히는 증상을 겪는다. 자기가 어떤 물질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야 해당 물질을 피하거나 약을 먹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파국화 반응을 다루기 위해서는 자기가 근본적으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좌절은 지금 상황이 문제라기보다는 그 일이 진행되고 진행 돼서 파국으로 이어질까봐 미리 걱정하는 게 문제다.
막상 자신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게 되면 문제는 대게 해결된다. 막연하고 모호한 불안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불안으로 변환하는 방법이다 해결 가능한 불안이면 해결책을 세우면 되고, 불가능하다면 포기하면 된다.
■ 4대 두려움 : 죽음, 파산, 이별, 매력상실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것은 대략 네 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신체적 문제로 죽을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다음은 파산의 두려움이다. 세 번째는 이별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으로 자신의 매력에 대한 좌절이 있다.
지금 좌절하고 있다면,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내가 진정 두려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연인과 헤어진 후 좌절하고 있다면, 그래서 어떻게 될 것 같은지 물어봐야 한다. 몸이 아파서 좌절하고 있다면 아파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될 것 같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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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기력
무기력은 다양한 말로 표현된다. 게으름, 의욕 저하,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음, 의지 박약, 끈기 부족 등등이 그것이다. 또 무기력은 자기비난의 주된 대상이다. 아마 성실과 근면을 강조했던 농경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IT 강국이 된 지금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무기력을 금기시 한다.
그런데 무기력은 그리 간단히 다룰 문제가 아니다.
무기력은 마냥 견뎌서도 안 되고 함부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신체 질환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신체 질환이 아닌 무기력을 얘기하려고 한다. 심리학적으로 무기력을 어떻게 다룰지 알아보자.
■ 의욕은 당근으로, 회복은 고무줄처럼
인간이 움직이게 하는 두 축은 당근과 채찍이다. 우리가 의욕을 갖는 건 당근 때문이다. 채찍을 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일 테지만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가끔이라도 웃음을 주고 피로를 풀어주는 당근, 즉 긍정적 보상물이 있기에 고단한 일상을 감수한다. 어떤 부모에게는 아이가 꾹꾹 눌러 쓴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카드가 당근이다. 어떤 직장인에게는 주말마다 떠나는 여행이 당근이다. 긍정적 보상물은 연료 같은 것이다.
그런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실망하고 위축된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차가운 잔소리를 들으면 의욕을 잃고 포기하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반목한 부부들은 관계회복에 대한 기대가 없다. 부부 상담을 시작할 의욕이 없거나 시작해도 “이런 거 해서 뭐합니까. 선생님이 하라는 거 우리도 다 해봤습니다. 어차피 우리 사이는 안 변해요.” 부부문제 상담가들이 수도 없이 듣는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들이 희망을 잃은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지만 좌절했다가도 고무줄처럼 원래의 의욕으로 되돌아오는 회복 탄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하는 일이 거듭 생기고 쌓이다보면 어느 순간, 늘어난 고무줄처럼 회복이 안 되고 멈춰버린다.
■ 무기력이 학습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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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실패로 곧장 무기력에 빠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기’나 ‘끈기’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런데 마치 한계를 시험이라도 하듯 반복해서 실패를 맛보거나, 깊은 상처를 주는 반응에 노출되면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패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부른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보면 그렇게 전력이 나쁘지 않은데 연달아 패하는 팀이 있다. 감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연패라고 한다. 경기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에서는 이미 패배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니 의욕은 사라지고, 패배하는 쪽으로 몸이 움직인다. 그렇게 패배가 쌓여가고 학습된 무기력이 강화되니,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 무기력에 빠지기 쉬운 세 가지 상황
0 무기력 요인 1 : 부정적 보상이 덮쳐올 때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사람들이 늘 실패만 경험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 중독자처럼 열심히 살던 사람이 마치 평생을 패배만 하고 산 사람처럼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무기력에 빠지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앞서 말한 보상물 문제에서 기인한다. 보상물은 크게 긍정적 보상과 부정적 보상으로 니뉜다.
- 긍정적 보상 : 승진, 월급 인상, 주변의 칭찬이나 관심 등
- 부정저 보상 : 실패, 불합격, 무관심이나 주변의 냉소적인 반응
0 무기력 요인 2 : 소진 증후군
흔한 말로 ‘방전이 되어버려 의욕을 잃는 사람들, 일명 소진증후군이다. 이런 경우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보상물 과는 별 상관없이 무기력에 빠진다. 그래서 남들 눈에는 지칠 이유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이 경우는 주로 체력 문제다. ‘당근’에 취해서 자신이 고갈되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이때는 잠시 쉬다 보면 대개 해결이 된다. 여유가 된다면 안식년을 갖는 것이 좋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휴가라도 내야 한다.
0 무기력 요인 3 : 불안이 많은 사람
이는 마음의 문제다. 평소 불안이 높은 사람은 에너지가 금방 소진된다. 30대 까지는 불안이 많아도 체력으로 버티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몸이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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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지 않는다.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상담을 받거나 투약을 해서라도 불안 습관을 고쳐야 한다.
■ 무기력을 강화하는 고정관념
사람들은 갑자기 의욕이 떨어지면 그 자리에 멈추어버린 이유를 찾으려 노력한다. 내가 왜 이럴까? 무기력을 강화하는 고정관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욕을 떨어뜨린 원인을 제거해야만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
둘째, 재미를 느껴야만 의욕이 생긴다는 생각
셋째, 의욕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
의욕이 있건 없건 사람은 움직이고 실행할 수 있다. 의욕은 행동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또 움직이다 보면 의욕이 생기기도 한다. 자동차에 시동이 잘 안 갈릴 땐 일단 밀어서 굴리다 보면 걸리듯이 말이다.
무기력을 가장 경계하고 신경 쓰는 사람들은 운동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체육관, 스포츠 용품업체, 복싱 체육관 등에는 다음과 같은 표어가 걸려 있다.
No cry. 흘린 땀이 없인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No Complaint. 불평 불만을 하지마라.
Just do it. 일단 한 번 해봐.
■ 일단 무작정 움직일 것
프랑스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이는 이런 말을 했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주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이러이러하면 이렇게 할 텐데’라고 생각만 한다. 그러면서 부정적인 경향을 더 굳히는 경향이 있고, 종종 ‘ 잘됐을 리가 없잖아 내가 안 한 게 다행이야’ 하면서 회피 성향을 강화한다.”
이 주장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정적인 태도와 회피 경향이 사라져야 다시 시작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어떤 경험으로 이런 태도와 경향이 생겼으므로 그걸 바로 잡아야 현재가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뇌는 지치고, 아픈 뇌는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어 낸다. 무기력에서 빠져 나오려면 일단 움직여야 한다. 원치 않아도, 재미없어도, 의미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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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밖에 나가 조금이라도 걸어야 하고, 그것도 안 되면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의욕을 얻고 싶다면 생각하는 걸 멈추라. 물론 처음엔 잘 안 될 것이다. 그럴 땐 무작정 몸을 움직여라.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움직여보라 손도 한 번 털어보라. 의욕이 어디선가 솟아나기를 기다리지 말고.
아무 생각없이 조금씩이라도 자주 움직이자, 지금 책을 덮고 잠깐 산책을 해봐도 좋겠다.
3. 열등감
‘열폭’ 이라는 말이 인터넷 상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열등감 폭발’의 줄임말로 종종 ‘열라 폭발’의 의미로도 쓰는 것 같다. 주로 반대 의견을 개진하다가 상대가 감정이 격해지면 “열폭하는 것 좀봐!”라고 비아냥거리는 식이다.
■ 누구나 열등감이 있다.
열등감은 폭발력이 강한 감정이다. 상대를 자극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들먹여 열등감을 터뜨리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 열등감이라는 폭탄을 가슴속에 하나씩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
열등감도 하나의 감정이기에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한다면 좋은 에너지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 자체가 열등한 존재’라고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자존감이 건강할 리 없다. 행복할 수도 없다.
■ 열등감을 이루는 세 가지 생각
첫 번째는 자신에게 부족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면은 있다. 무능한 부분을 스스로 인정하면 겸손해 진다.
두 번째, 자기에게 부족한 점을 남들도 다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를 보통 ‘자격지심’이라고 한다. 나에게 없는 것과 나에게만 없는 것은 다르다. 자격지심에 사로잡히면 다른 생각을 올바로 들여다보지 못한다. 자신의 출발선이 이미 뒤처졌다는 생각에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앞서와 같은 이유로 큰 피해를 본다는 생각이다. 콤플레스가 있을 때 느끼는 심정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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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은 이처럼 복잡한 감정이다. 세 가지 생각이 섞인 혼합물이다. 무능감, 자격지심, 피해의식이 섞여 있다 보니 덩어리가 크다. 열등감이라는 덩어리는 잔뜩 부푼 풍선과도 같아, 눌리면 오래 못 버티고 터져버린다.
■ 한 때는 제일 잘나갔는데
‘미운 여섯 살’이라는 말이 있다.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부모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어른들이 하는 걸 자기들도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보통 5~7세에 찾아오는 이 시기를 ‘전지전능의 시기’라고 부른다. 이때 아이는 자신을 어른과 동일시하다 못해 초자연적인 인물로 여기기도 한다. 망토를 두르고 슈퍼맨 흉내를 내기도 한다.
전지전능감을 함부로 꺾으면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는 사건과, 이에 맞추어 등장하는 실망감이 격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고착되면, 이후 한계를 느낄 때마다 격렬한 감정 반응이 올라온다. 전지전능의 시기는 인간이 회상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이다. 그래서 평생 추억으로 남는다.
■ 열등감은 성공의 자원이 된다?
앞서 말했듯 열등감은 폭발성이 상당히 강한 일종의 에너지 이므로 때로는 성공을 위한 자원으로 아용된다. 예컨대 다이어트 도전 프로그램을 보면 약점을 공격해서 도전자를 자극하는 코치가 있다. 예전에 학교 선생님들도 이 방법을 선호했다. “넌 부잣집 애도 아니고, 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홍콩 무술영화에 등장하는 사부의 가르침도 그렇다. 사부가 자신을 찾아온 제자에게 실력이 없다며 먹을 것도 잘 안주고 궂은 일만 떠안겨, 결국 제자가 독이 올라 수련에 매진하는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열등감을 부추기는 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이제는 애정과 격려 지지가 중요하다. 함부로 열등감을 자극하면, 성공을 위한 연료가 되기는커녕 내부에서 폭발해버릴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경우 스스로 열등감을 자극하난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다이어트 기관이나 스파르타식 입시학원 등에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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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는 이 방법이 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에는 해가 된다. 치료자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금 열등감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저기가 못났다는 생각이 드는데 행복해지거나 자존감이 회복될 리 없다.
■ 성공한 사람들의 열등감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 중에서도 열등감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칭찬을 듣고 부러움을 사도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라거나 진심 없는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대개 열등감에서 벗어나는 것에 저항을 느낀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열등감을 겸손과 동일시하고 있다. 열등감에서 벗어던지는 건 거만한 거고, 그러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다고 여긴다. 자신의 폭발하는 성격에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열등감을 버리면 왕따나 험담의 대상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애매모호한 종류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열등감을 내려놓기를 어려워한다. 이들은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지 못했다.’ 특별히 잘 하는 게 없다‘ ’남들처럼 안정적으로 살지 못한다.‘ ’자존감이 낮다‘ 등의 이유로 자신을 압박한다. 이들이 결핍되었다고 말하는 것들은 알고 보면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못 가진 것들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의미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그 열등감으로 뭘 얻는지 따져봐야 한다.
■ 열등감 놓아주기
열등감은 뜨겁다. 부족감 자격지심, 창피함과 피해의식이 섞여 우리를 괴롭힌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 거린다.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달아오르게 하는 감정이다.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열등감을 구별해내기 힘들다. 열정으로 보이도 하고 에너지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년으로 접어들면 열등감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온다. 한때 열등감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을 안고 있는 것에 한계가 오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명한 이유는 건강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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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소도 약이 된다
자신이 열등하다는 생각은, 세상을 열등한 것과 우등한 것으로 구분 짓는 데에서 출발한다. 낮은 학력이 열등감의 중심인 사람들은 학력에 따라 우열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가난 때문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은 빈부로 세상을 구분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렇게 구분하게 된 건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받은 영향이 클 것이다.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버리려면 사람이든 무엇이든 우월함과 열등함,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자와 장자의 철학이 이를 강조한다.
장자의 이야기 가운데 쓸모없는 나무에 관한 것이 있다. 집짓기에 좋은 나무는 찾는 사람이 많아 오래 크지 못한다. 하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아무도 베어갈 생각을 하지 않으니 걱정이 없다. 오래 살아남아서 동네 수호신이 되고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정신으로
열등감에 깊이 사로잡히면 심박출량이 늘어나고 호흠이 가빠진다. 그러면서 혈액에 산소가 지나치게 많이 쌓인다. 흔히 혈액에 산소가 많으면 좋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손발이 저리고 굳기도 한다. 이것이 심해지면 과호흡증후군으로 진행되어 혼절하는 경우도 있다.
열등감을 털어내고 냉정을 되찾으면 이와 반대의 신체 상태가 된다. 심박수와 분당 호흡수가 떨어진다. 혈액 내에서는 이산화탄소의 분압이 올라가 긴장이 풀어지고 나른한 상태가 된다.
호흡법은 간단하다. 들이마시는 동안 ‘하나, 둘, 셋’을 세고, 내 쉬는 동안 이를 더 길게 세면된다. 짧게 들이마시고 내쉴 때 길게 내쉬는 것이다.
숨을 내쉴 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말도 함께 내뱉도록 한다.
세상에 냉소를 뱉는 순간 열등감을 식힐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잘난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다. 그저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깨닫게 된다. 사는 게 다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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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루기와 회피하기
■ 아프다고 말 못하는 청춘들
“제가 원래는 의지도 강하고, 성격도 긍정적이에요.” 긍정적으로 지내려고 노력도 엄청 했어요. 신앙도 가져봤고요. 책도 얼마나 많이 읽었는데요“ ”그런데도 제가 자존감이 낮은 건 왜 그런가요? 근본적으로는 부모님 문제인데 여기서 그것까진 고칠 수 없죠?“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변명하려 한다. 안타까운 건, 원인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에너지가 소진 된다는 점이다.
뭐가 힘든지 찾아내 해결을 하지 못하고 ‘원인’의 늪에 빠져버리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변화의 단계에 들어서기를 두려워한다. 마음이 다쳤다고 선뜻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정하면 진 것 같고 비난 받을 것 같아서 엉
뚱한 질문과 고민을 늘어놓는다.
■ 회피하는 사람의 세 가지 패턴
1) 남들은 어떤지 살핀다.
상담을 할 때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남들도 그렇다’고 알려주기만 해도 상담 받는 사람의 마음은 편안해 진다. 마음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은 이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길 바란다. 남들도 이런 마음의 문제를 겪으면, 의지가 약해지거나 성격상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받고 싶어한다.
2) 원인을 쫓는다
설령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원인 분석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고통의 원인에 관한 공통된 답변은 ‘과거’라는 점이다. 과거의 특징은 바뀔 수 없다. 어릴 적 부모님과의 관계, 상처, 과거의 성격과 습관, 물려받은 유전자 등에 대해 설령 문제를 알게 되더라도 그걸 바꿀 수는 없다. 그 원인 분석에만 머물러 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3) 불평과 비난의 늪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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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친구들을 불러놓고 불평을 얘기하면 일시적으로 감정의 카타르시스 정도는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배설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 문제 해결을 위한 네 가지 전제
1) 내 마음을 우선하기
변화의 주체는 나고, 변화의 대상도 나다. 우리는 남과 비교하느라, 다투거나 자기 비난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괴롭게 보낸다.
우선 ‘나’의 마음을 챙겨야 한다.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변하길 바라는지 생각하자.
2) 행동하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책도 읽어야겠지만, 글도 쓰고 말도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도 해야 한다. 변화는 행동하는 데서 시작된다.
3) 지속하기
정말 이런 걸 한다고 자존감이 회복될까, 예전에도 해봤던 건데, 하는 생각을 버려라. 그리고 지속하라. 자존감이 살아나는 과정은 다이어트 과정과 비슷하다
4) 혼자 말고 함께 하기
그렇다고 재미없는 일을 재미없게 계속 할 필요는 없다. 풀 죽은 채 억지로 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괴로워하지 말자. 극복하고 지속하기 위해선 혼자가 아닌 같이 하는 방법을 권한다.
5. 예민함
■ 시작은 연결 짓는 습관
살다보면 누구나 안 좋은 일을 겪을 수밖에 없다. 상처받고 배신을 당하고 원하는 것을 잃을 수도 있고, 기대했던 것들이 실망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때 자존감이 강한 사람들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힘든 일이 생긴 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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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깝지만, 그걸로 삶이 휘어지진 않는단 얘기다. 말하자면 나쁜 일과 자신 사이에 다난한 벽이 있어서, 바이러스를 항체가 방어하듯 자신과 연결 짓지 않는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많은 걸 자신과 연결한다. 살면서 마주하게 된 나쁜 일들을 자기 일로 관련짓는 논리 회로가 있다. 여기서 파생되는 대표적인 감정이 죄책감이다.
문제의 시작은 연결에서 온다. 자책은 타인의 문제를 나에게서 원인을 찾을 때 생긴다. 나의 문제를 남에게 연결할 때 분노가 된다. 자기 문제로 지나치게 연결하는 습관은 예민함의 씨앗이 되며 자존감에도 치명적이다.
■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냐?
자신과 별 관계없는 일을 자기 문제로 연결 짓는 사고 반응을 ‘관계사고’라고 부른다. 이런 사고 패턴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생각이 감정과 연결되는데, 여러 생각이 뭉치고 연결되니 감정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생각에 따라 감정도 폭주하는 상황을 가리켜 예민하다고 말한다.
마음이 예민해진 사람들은 평소라면 무시했을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남들이 무슨 얘기를 하거나 특정한 표정을 지으면, 그 장면이 지워지지 않는다. 자존감이 건강한 사람의 뇌에선 ‘나랑 관련 없는 일’이라며 중요도를 낮게 평가하고 폐기할 정보들이다.
자존감이 약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이런 불필요한 정보를 끌어안고 되새긴다. 의미를 곱씹고 저의가 무엇이었을까 깊이 생각한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신과 어떤 관계가 있을지 곰곰이 고민한다.
마음이 병들면 사소한 것을 깊게 생각하고 그럴수록 사소한 남의 일이 중요한 나의 일이 되어간다.
■ 관게 사고에서 피해 사고까지
‘망상’개념으로까지 고착된 건 아니지만 관계 사고는 유난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에 마음 약한 사람들을 괴롭힌다.
관계 사고는 자신을 믿지 못해 생긴다. 자기 능력을 못 믿다 보니 자기 방어능력에 대한 확신도 떨어진다. 그래서 누구한테 공격을 받거나 마음이 한 번 흔들리면, 재기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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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사고에 빠진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좀 더 당당하게 보일까’하고 자주 생각한다. 그만큼 당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모임에서 남들 사이에 오가는 한 마디 한마디에서도 은근히 자신에 대한 언급이나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운다.
관계 사고에서 부정적인 부분이 강화되면 ‘피해사고’로 이어진다. 보통 피해망상이라고 부르는 이 증상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내가 손해 보고 있지는 않은지, 나 몰래 친구들을 따로 만나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신경을 쓴다.
■ 남의 감정은 남에게 맡기자
예민함을 떨치려면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타인의 범위는 무척 넓다. 자신을 제외한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고 친구도 회사동료도 당연히 남이다.
부모 자식 사이에 마찰이 잦은 이유는 대개 이 점을 자주 잊기 때문이다. 내가 낳고 키운 존재라, 자꾸 나의 일부로 느껴진다. 그래서 자식 문제가 내 문제 같아 참견하고 잔소리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식은 부모에게 요구하고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엄마니까 자식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아빠니까 자식을 믿어야 한다고 기대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부모이기에 앞서 세상을 힘겹게 살아왔고 이제 쓸쓸히 늙어가는 존재다.
물론 남의 모든 일에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협동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적절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행복을 주고받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남의 감정은 그 사람에게 맡겨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들의 감정은 그들 고유의 것이며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그 감정이 내 잘못으로 생긴 것도 아니며 내 책임도 아니다.
남이 화가 났든 의심을 보이든, 그 사람의 일일 뿐이다. 상대가 화를 낸다고 같이 화를 낼 필요도 없고, 거기에 휘둘리거나 억눌릴 필요도 없다. 남의 감정은 남의 것이다.
Part 6 자존감 회복을 위해 극복할 것들
1. 상처 극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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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상처는 과거형
Whatever : 무엇이든 상처가 될 수 있다. 어떤 말, 어떤 사건, 어떤 행동도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따라서 “그만한 일에 몇 년간 괴로워하는 내가 바보인가요?” 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However : 상처를 표현하는 방식 역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울고, 어떤 사람은 화를 내고, 웃거나 어금니를 꽉 깨무는 사람도 있다.
Whenever : 어떤 사람은 상처가 발생하자마자 드러나지만 몇 년이 흐른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상처, 즉 트라우마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묻는데 내 대답은 비슷하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았다.”상처가 발생하고 나타나는 방식은 다양해서 정해진 규칙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든 트라우마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
■ 내 마음의 급소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마음에 급소가 있고, 이는 과거에 경험한 상처와 연관되어 있다. 형제간의 차별이 상처로 남은 사람에게는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급소다 억울한 누명을 쓴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조금이라도 억울한 상황이 되면 급소로 작용한다. 사람마다 작용하는 급소가 다르다.
■ 급소를 보호하는 방어기재
마음이 급소가 노출되지 않고 아픔으로 이어지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방어기재가 있다고 밝혔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얘기는 ‘합리화’라는 방어기재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어기재를 사용한다. 한 사람이 방어기재를 여럿 사용하기도 하고, 한 사건에 대해 여러 방법을 쓰기도 한다. 방어기제는 그 사람 인생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격이나 성격이 결정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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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숙한 방어 VS 성숙한 방어
급소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미숙한 방어기제하고 부른다.
미숙한 방어기제에는 비난과 자책이 대표적이다. 안 좋은 느낌이 올라 올 때 타인을 공격하면서 탓하거나 자신을 비난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험담을 하면서 방어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로는 꾹꾹 눌러 담기만 하는 억압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대게 엉뚱한 데에서 폭발하는 양상을 보인다. 남편에게 화가 났는데 자녀에게 “너도 네 아빠 닮아서 그 모양이야!”라며 화를 낸다. 억압의 방어기제는 결국 분노와 공격 양상으로 분출돼, 여러 사람을 곤란하게 만든다.
미숙한 방어기재와는 반대로, 성숙한 방어기제를 갖춘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방어하면서도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성숙한 방어기제의 대표는 ‘승화’다. 자기가 겪은 나쁜 사건이나 그와 관련된 부정적인 감정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발달시키는 것이다.
■ 바꿀 수 없는 과거, 지금은 안전하다
세상에 바꿀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 바로 타인과 과거다. 과거에 받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상처는 누구나 괴롭다. 그리고 잊기 힘들다. 안타깝지만 과거는 바꿀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우리를 괴롭히는 이유는 시간 개념을 뒤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끝난 일인데 마치 옆에서 일어나는 일 같은 혼돈을 준다. 상처가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상처는 모두 과거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뇌에게 말하기 : “다 지나간 일이다”
이 이야기를 우리의 뇌는 모르고 있다. 뇌는 아직 착각하고 있다. 혹은 평소에는 잘 알다가도 술에 취하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면 분별력을 잃는다. 지나간 일과 현재를 혼돈한다.
우리는 뇌에게 그 사실을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그 상처는 지나간 일이라는 것을 뇌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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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항 극복하기
■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마음
자존감 회복이라는 인생의 변화 앞에서 우리의 마음은 복잡하다. 간절히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 마음, 회복으로 향하지만 한쪽에서는 반대 행동을 하는 모습, 변화를 원하면서 한편으로 ‘저항‘한다. 우리에게 어떤 저항이 있는지 인식하고 극복해야, 진정한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사실 저항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체를 옮길 때 발생하는 마찰력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모두 불행한 나에서 행복한 나로 옮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위치에서 저 위치로 옮아가기 위해서는 마찰력 중력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를 계속 자리에 머무르게 하려는 힘은 늘 있다. 나에겐 저항이 없다며 억누르기 보다는, 어떤 문제 때문에 마찰력을 더 크게 느끼는지, 어떻게 해야 저항을 쉽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편이 더 현실적인 방식이다.
양가감정은 오래된 연인들에게서도 흔히 나타난다. 사랑이 식어서 헤어지고 싶으면서도 이제껏 쌓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때로는 헤어지는 것이 나에게 훨씬 행복한 일임을 알면서도 저항의 벽을 넘지 못하며 불만만 늘어놓는다.
■ 행동과 실천을 막는 세 가지 저항 심리
저항 1 :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저항은 결과에 대한 의심이다. 결과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행동이 더뎌진다. 이는 자신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의문이다. 어차피 실패할 것 같고 실패하면 더 허무할 것 같다. 희망을 가졌다가 이루지 못하면 더 실망할 것 같아서, 미리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존감이 건강해지는 과정은 합격, 불합격으로 평가되는 일이 아님을 알아두자. 가령 헬스클럽에서 3개월 동안 운동을 열심히 해서 연예인 몸매가 될 수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금 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작심 3일이 될지언정 괜찮다. 3일은 운동 하는 게 3일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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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2 : 누가 몰라서 안 하나? 이론은 이론일 뿐이야
책을 읽고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것을 실천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 실제와 상관없는 이론서가 욕을 먹듯이,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다.
저항 3 :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아무리 작은 변화라 하더라도, 변화에 익숙해지기까지는 2개월 이상 걸린다. 그 사이에 고질적인 습관이 재발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사람 마음에도 관성의 법칙이 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고 포기해 버리면 안 된다.
■ 그래도 그냥 계속하라
이밖에도 변화를 막아서는 많은 저항들을 만난다. 주변 사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열심히 노력하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거나, 나는 변했는데 가족이 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난 분명 변했는데 아니라고 우기는 친구가 있을 수도, 막상 나 자신이 기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변화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실질적인 변화를 느끼고 싶다면 계속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저항을 극복하지 못한 채 안고 가야 할 때도 있다. 벽에 부딪히다보면 근력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멈추지 않고 그냥 계속하기, 그것이 변화를 앞당긴다.
■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믿어라
우리는 모두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원하고 자존감의 회복을 바란다. 하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이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행복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어낸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종점을 믿어야 한다. 나에게 만족하는 내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한다.
자존감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저항을 만난다. 그럴 때면 ‘그냥 예전처럼 살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겸손함이 없어질까 봐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거나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해서 갑자기 오만해지거나 왕따가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자존감을 획득하면서 매너와 배려가 생길 것이고, 그것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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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난 극복하기
비난은 바이러스 같다. 상대의 입에서 출발해 내 몸으로 들어온다. 나를 공격하는 바이러스가 집단에 퍼질 때도 있다. 믿었던 친구가 내 뒤에서 여러 명에게 퍼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비난을 두려워하고 나에 대해 하는 말들에 예민해진다. 하지만 사실 바이러스는 그다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다.
■ 비난의 다섯 종류
비난은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그 목표물이 적이든 우리 편이든, 내가되었든 다음과 같은 것들이 비난이다.
1) 솔직히 얘기하는 비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정직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잘했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지적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말하는 의도나 수반된 감정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사실 언급’은 비난이 되기도 한다.
2) 원인을 얘기하는 비난
“제가 이렇게 자존감이 낮아진 건, 어릴 때 사랑을 충분히 못 받아서인가요?” 상담할 때 자주 듣는 질문이다.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원인을 찾다보면 비난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이미 감정이 손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남에게 탓을 돌리려는 미숙한 행동으로 이어진다.
3) 부정적 미래를 예고하는 비난
“너 이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친구들 하고도 잘 못 지내고 외톨이가 될 거야.” 자녀를 양육하거나 신참을 교육할 때 흔히 등장하는 비난이다. 상대방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밀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상대에게 억울함을 불러일으킨다.
4) 비교하는 비난
문장 형식이 비교형을 띠면 대부분 비난이다. 또는 대구형 문장구조도 유사
한 비난이다. “누구누구는 이렇던데……”라며 끝을 흐리는 말도 비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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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5) “왜? 라고 묻는 질문형 비난
“미안한 짓을 왜 해?”라는 질문은 ‘그 행동의 원인을 분석해 봐’ 라는 거창한 의미가 아니다. ‘당신은 미안한 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못난 사람’이라는 비난의 뜻이 담겨 있다.
■ 바람직한 비난은 없다
비난을 당할 때는 자신이 비난당하는 상황임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우리 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눈물 쏙 빠지게 혼나고 난 뒤에 열정과 승부욕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건 울면서 감정이 배출되어 생기는 ‘정화’의 효과이지 비난의 효과가 아니다.
서로 비난하며 싸우는 관계를 발전적 관계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부부는 싸워야 잘 산다고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부부치료자들은 이에 대부분 반기를 든다. 미국의 부부치료자인 존 카트맨 박사는 부부 수천 쌍을 대화하게 하고 그 패턴을 분석했다.
이혼하는 부부들은 비난, 경멸, 무시 등의 의사소통 방식 때문에 갈등을 빚었다. 이혼으로 가는 대표적인 소통 방식이 비난과 반격이었다.
비난은 투사일 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남 탓을 하는 행동을 말한다. 투사는 미숙한 방어기제에 속한다. 승화나 유머와는 달리, 문제를 일으키고 생산적 활동으로 이어지지도 않기 때문이다.
비난을 자주 하는 것은 마음이 자주 불편해서 퇴행한다는 뜻이고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크게 퇴행한다는 뜻이다. 얻는 것도 없고 달라지는 것도 없건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마음이 너무 불편한 나머지, 그런 이성적인 계산도 서지 않는 것이다.
■ 비난 받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1) 비난 인지하기
인생은 복싱과 달리 링이 따로 없다. 상대 선수도 정해져 있지 않다.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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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누구에게나 공격당할 수 있다. 비난당하면 내가 제일먼저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2) 내가 괴로운 건 비난 때문임을 인지하기
말, 눈빛, 제스처,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 등으로 비난을 당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비난당했고 그래서 괴롭다는 것 그게 중요하다.
3) 단지 그 사람의 감정일 뿐임을 인지하기
우리는 착각하곤 한다. 나를 비난하는 사람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단지 그 사람이 잠깐 한 생각일 뿐이다. 그들은 나에 대해 정통하지도 않고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도 없다. 그리고 현명하게 누굴 판단할 능력도 없다.
비난이라는 화살을 한 대 맞고 속상한다고 두 대 쏘면, 세 대, 네 대를 연거푸 맞을 수 있다. 그런데 열대 맞았다고 분해서 열대를 맞힌들 나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차라리 한 대 맞았을 때 멈췄다면 1의 고통만 받았을 텐데 고통을 10으로 늘린 셈이다.
타인의 생각은 타인의 생각으로 놔두자.
4. 악순환 극복하기
부부간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 대부분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은 배우자에 대한 불평을 잔뜩 안고 치료자를 찾아온다. 그 사람이 무능하고, 못됐고, 거짓말 장이라는 걸 치료자가 간과할까봐 조바심을 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상대에게 의존한다. “그 사람만 달라지면 나는 더 이상 성질도 안 피우고, 가정에 충실할 수 있어요!” 이 말은 자신의 행복이 배우자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배우자를 세상에서 가장 무능한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자기 인생을 그 사람에게 맡기는 아이러니 말이다.
기대하는 만큼 실망하고, 실망감을 안겨준 사람에게 실망감을 해소해주길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기대와 실망이 악순환 된다는 점이다.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고, 실망이 클수록 기대는 커진다.
두 아이의 엄마가 찾아왔다. 두 살 터울 형제를 키우는데 사로 시샘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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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라고 했다. 수시로 장난감 쟁탈정이 벌어졌다.
“똑 같은 장난감 두 개를 사면 될 것 같습니다.”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아이 엄마는 한동안 있더니 짜증 섞인 말투로 불만을 드러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지요. 형제끼리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저는 아이들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아이로 키우려고 해요. 그러려고 이곳에 찾아왔는데 제대로 된 해결책을 알려주셔야지요.”
그 집 자녀는 이제 겨우 여섯 살, 네 살이다.
■ 남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바리자.
세상에서 바뀌지 않는 것 두 가지가 ‘남’과 ‘과거’다. 나의 문제, 그중에서도 바꿀 수 없는 문제부터 손을 대야 한다. 물론 내가 바뀐다고 해서 남이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다. 남의 인생은 변함없겠지만 내가 변하면 삶의 만족도가 20점에서 70점 정도로 상승할 수는 있다. 그게 낫지 않겠는가.
Part 7 자존감을 끌어 올리는 다섯가지 실천
1.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로 결심하기
우리는 부모에게 사랑을 바란다. 엄마니까, 아빠니까 자신을 사랑해줘야 한다고 여긴다.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라고 배웠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준다고 배웠다.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그런데 결혼을 하면 배우자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바란다. 이게 나니까, 있는 그대로 사랑해 달라고 한다.
남들에게는 그런 사랑을 원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에게는 어떤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는커녕 이런저런 조건을 들어 자신을 미워한다. 앞으로 자신에게 해줘야 할 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사랑이다. 이유나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자신을 향한 맹목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이다.
그저 오늘부터 지금의 나를 사랑하겠다고 결심하면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나의 성격과 행동,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를 다 사랑하기로 한다. 그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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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원하면서 두려워하는 이유
아마 좀 황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게 사랑이라고? 너무 간단해서 허무할 지경이다. 그러나 이 간단한 일이 여태 그토록 어려웠던 건, 우리 내면에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다.
우리는 그동안 사랑의 힘을 믿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스스로를 해칠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사랑 받을 만한 나’가 되기까지 사랑을 미룬다.
이것은 사랑을 주지 않는 사람들의 논리와 같다. ‘사랑을 받을 만해야 사랑을 주지?’ 라며 오히려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들. 있는 그대로 상대를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우리가 자신을 그렇게 대하고 있지 않은가. 그 결과 무엇을 얻었는가?
■ 사랑을 믿어야 사랑할 수 있다
정말로 사랑이 우리를 망칠까? 우리를 퇴행시키거나, 이대로 멈추어버리게 만들까? 혹은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면 공주병, 왕자병에 걸려버릴까? 그래서 남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 잘난 줄만 알다가 왕따 당하고 버려지고 마는 게 자기 사랑의 최후일까?
우리는 사랑을 믿지 못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못 믿고,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도 못 믿는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힘 자체를 믿지 못한다. 사랑 자체를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쌓인 오해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겐 사랑을 핑계로 받은 상처가 적지 않다.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맞기도 했고, 사랑하니까 하는 충고라며 비난도 당했다. 그래서 헷갈린다. 매를 사랑이라고 , 미움, 증오, 비난까지도 다 사랑이라고 오해해 버렸다.
사랑은 누명을 썼다. 실제 사랑은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사랑받고 아낌 받고, 소중하게 다루어진 아이들의 자아가 건강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애정 결핍의 산물이다. 과잉보호는 ‘우리 애는 약해’라는 무시의 결과다. 무조건적이고 진정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사랑스럽게 성장한다.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 자신을 사랑해도 괜찮다
이제는 자기 스스로를 사랑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사랑 앞에선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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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과 나쁜 것이 없다. 사랑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없다. 성격이 소심하거나 자신감이 낮다는 이유로 사랑을 거부해선 안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면 된다.
더 이상 사랑을 할지말지 망설이거나 양가감정에 빠지지 말길 바란다.
2. 자신을 사랑하기
■ 마음속 ‘나를 사랑하는 나’찾기
우리 마음속에는 ‘나’가 세 명 있다. 첫째는 ‘자존감 낮은 나’
, 두 번째는 자존감 낮은 나를 ‘다그치는 나’, 세 번째는 자존감 낮은 나를 ‘사랑하는 나’ 이렇게 각기 다른 내가 존재한다.
그동안 자존감 낮은 나와 다그치는 나 둘이서 싸움을 벌여왔다. 보통 낮에는 자존감이 낮은 나가 활동하고 밤에는 다그치는 나가 활동한다. 자존감은 낮춘 채로 일하고, 공부하고,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그치는 나가 깨어난다. ‘넌 왜 말을 그렇게 하니? 왜 그렇게 밖에 행동을 못하니?’ 라며 비난한다. 자존감 낮은 나는 점점 위축된다. 그래서 점점 더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 둘의 싸움이 반복되는 동안 ‘사랑하는 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나’가 점점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힘을 잃고 의식 저 편으로 사라졌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저편으로 사라진 ‘사랑하는 나’를 불러오는 일이다.
■ ‘사랑하는 나’가 보내는 메시지 듣기
“괜찮아, 누구나 그래” “최선을 다 했잖아. 지금도 충분히 멋져” “사랑해,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잊지 마”등의 얘기, 이 말들이 바로 우리 뇌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듣지 못해 우리의 자존감이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나’가 주는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자존감은 서서히 회복되고 성장한다.
■ ‘다그치는 나’가 쳐 둔 장벽을 허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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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포들은 단단한 고리를 형성한다. 그래서 한 번 형성된 생각의 회로는 그 생각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허물기 위해서는 뇌의 양쪽을 번갈아가면서 자극해야 한다. 왼 쪽 한 번, 오른쪽 한 번 움직이게 하는 ‘양측성 자극’을 주면 뇌 회로가 말랑말랑 해진다.
대표적인 양측성 자극은 ‘걷기’다. 걸을 때마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가 번갈아가면서 활동한다. 이때 우리를 옥죈 방어벽은 조금씩 헐렁해진다. 대부분의 운동이 뇌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수영에서 자유형과 배형은 양측성이지만 접영이나 평영은 아니다. 복싱처럼 양손을 다 쓰는 운동은 양측성이지만 골프, 공던지기, 등은 양측성이 아니다. 왼쪽과 오른쪽이 하늕 일이 균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3.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
■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상담하러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안타깝게도 나는 대부분의 질문에 답을 주지 못한다. 단칼에 얘기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답을 주지 않는다. 특히 나에게 간절히 의존하거나 자존감이 낮다고 호소하는 분일수록 더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존중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장 답을 내놓으라고 신경질을 내기도 하고 몇 번씩 찾아와서 되묻기도 한다. 그들을 존중할수록 나는 뭐라 답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들을 무시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남이 선택을 대신하면 만족도가 떨어진다. 결과가 좋게 나와도, 기쁨을 100% 느끼지 못한다. 성공의 지분이 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욱 기분이 나쁘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남에게 의존한다. 주체성이 중요하단 걸 알면서도 결정을 미룬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따르려 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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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내린 결정은 책임감이 덜하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른다. 본인이 내린 결정의 지분을 100% 라고 한다면, 남이 내린 결정은 많아야 70~80% 다. 그러면 나쁜 결과가 나와도 마음의 짐이 덜어진다. 후회나 죄책감이 밀려오더라도 70~80%만 느낀다. 남이 결정을 내려주거나 남이 결정에 참여하면 잘못된 결과에 대한 아픔이 덜하단 예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으려고 한다. 낮은 자존감이 방어기재로 작용한다. 권위가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만큼 책임의 회피하게 되는 셈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가시밭길을 걷는다. 나쁜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자꾸 나쁜 결과를 만든다. 처음부터 본인이 판단하고, 본인이 아픔을 느꼈어야 한다. 100이란 고통을 느꼈으면 후회라도 하는데, 80정도의 고통만 느끼니 계속 그 실수를 반복한다.
■ 결정이 존재감을 좌우한다
중요한 건, 결정으 미룰 때마다 자신의 입지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요즘 ‘존재감’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존재감이란 달리 말하면 그 사람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존재감이 큰 사람은 모임의 분위기를 결정하고 그날의 성과나 방향을 결정한다.
자기 인생에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으면 ‘자존’의 바탕이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사람이 자존감을 끌어올리려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하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자존감은 감정적으로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을 존중하는 능력이다.
■ 자존감을 높이는 결정법
1) 스스로 결정하기 : 결정권을 가져오면 책임과 동시에 권위를 갖게 된다.
2) 결정을 따르기 : 자신이 내린 결정을 따르자. 손해 보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걱정 말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좋은 학습이 될 것이다.
3) 결과가 나쁘면 미래형 후회하기
결과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안 좋은 결과에 도달했다면 후회해도 된다. 아파해도 된다. 결과에 전적인 책임을 지고 아픔의 지분을 100% 본인이 가져라. ‘그때 그러지 말아야 했어’는 과거형 후회다. ‘앞으로는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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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가 있을 때 반드시 이렇게 해야지!‘라고 미래형 후회를 하라. 이 후회는 다짐이기도 하다.
4) 결과가 좋으면 타인에게 감사하기
결과가 좋으면 기뻐하라. 이 기쁨 또한 100% 본인이 누려라. 그러나 감사의 기쁨은 타인에게 돌려라. “당신 조언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어.‘라고 그러면 그들 또한 기분이 좋아져서 앞으로 당신이 더 잘 되기를 바랄 것이다.
4. ‘지금, 여기’에 집중하기
많은 광고들에는 과거-현재- 미래에서 현재는 빠져 있다.
변화를 원하는 건 괴롭다. 그래서 광고는 현재를 건너뛴다. 그리고 과거와 미래에 집중하게 된다. 현재 없이 미래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현재는 괴롭다 성형 수술은 피가 튀고 엄청나게 아픈 현재가 있지만 아무도 그걸 광고하지 않는다. 마음의 변화를 겪고 싶다면 자기 마음을 수술해야 한다.
■ 모든 해결책은 현재에 있다.
‘자기 확신’이나 ‘자기 최면’ 혹은 ‘긍정적인 태도’를 통해 불안을 줄일 수 있다면 그 방법을 계속 써도 괜찮다. 그런데 나는 그런 방법을 권하지 않는다.
어떤 해결책이든 결국은 ‘현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자기 확신이든 자기 최면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불안을 해소하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온다. 불안을 누른 학생은 오늘 일과에 매진하고 다이어트 문제로 갈등하던 젊은이는 오늘 운동에 전념한다.
■ 과거로 도망치는 습관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할 때 과거로 도망친다. 유치원 시절이 문제였을까? 부모님의 부부싸움이 문제였을까? 고등학교 때 따돌림 비슷한 걸 당한 게 문제였을까? 그렇게 도망친다. 그런데 질문 끝에 도달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만날 과거에만 집착하느라 시간을 보내는 내가 너무 한심하네요.”
■ 지금 여기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거에 집착하면 후회스럽고, 미래에 몰입하면 혼란스럽다. 과거는 되돌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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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으니 답답하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모른다. 그것이 과거와 미래의 본질이다. 건강한 사람의 머릿속엔 현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과거나 미래 문제에 편중되어 있다.
문제 해결은 현재에 더 집중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here and now‘라고 부르는 원칙이다. 지나간 문제나 앞으로 닥칠 문제를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할 일에 집중하라는 것.
5. 패배주의를 뚫고 전진하기
■ 자존감이 약할수록 신념은 확고하다
패배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확신이 있다. 자신은 잘 안 될 것이라는 확신이
다. 그리고 근거를 제시한다. ‘나는 이러이러 해서 안 될 거야. 약을 먹어도
소용없을 거고 상담을 해도 소용없어.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하는데, 내가 바뀔리가 없거든.‘
물론 이렇게 부정적인 자기 인식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은 생각을 고치기는 쉽지 않다.
■ 폐허의 집에서 안락한 집으로
자존감은 집 같은 것이다. 아무리 현실이 고되고 힘들어도 집이 안락하면 잘 견딜 수 있다. 수많은 비난과 비교, 열악한 외부 상황은 일종의 악천후다. 자존감이 견고해야 안전하게 피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다.
패배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말하자면 돌보지 않아 엉망진창인 집에 익숙한 사람과 다름없다.
■ 뇌를 행복하게 하는 세 가지 행동
1) 걸어라,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처럼. 여유있게, 타인의 비난에 개의치 말고
2) 표정을 지어라. 거울을 볼 때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표정을
3) 혼잣말을 하라. “괜찮아 누구나 이런 일은 겪어” “나니까 이 정도로 막았지” 뇌는 이럼 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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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오랫동안 나는 사자가 말 그대로 ‘밀림의 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자의 삶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하마에게 공격당하는 사자를 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수리 하이에나 등 맹수들이 틈만 나면 보금자리를 위협했고, 새끼들이 공격당할까봐 노심초사했다. 혼자 하는 사냥도 쉽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슬픈 사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중심에 서 있고 싶고, 가족은 나만 믿고 있는데 알고 보니 세상엔 우리를 위협하는 것 투성이다. 지금도 힘겨운데 매번 전력질주 를 해야 하고, 누굴 앞질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지친 사자처럼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에서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잠시 고된 육아와 생활전선에서 지쳐가지만, 우리는 모두 사자보다 멋지고 뛰어난 왕이다. 가족에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들딸이자 부모, 배우자이고 많은 위기를 견뎌낸 전사이자 꿋꿋하게 삶을 지켜낸 영웅이다.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자. 당신은 밀림의 왕이다. 세상의 중심이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다.
- 끝 -
2017.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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