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보해성산 2017. 12. 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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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

■ M.토게이어 지음 / 주덕명 편역

0 뉴욕 출생

0 1964년 탈무드 편찬에 참여하는 등 많은 저술 활동으로

'위대한 랍비'칭호 수여 받음

0 1968년 일본에 정착하여 유대교 포교활동 등

시간은 우리의 옆에 있지 않다.

시간은 우리의 앞과 뒤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현재의 삶을 망각한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라는 강물을 타고

미래를 향해 자신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라는 강물이

시간 속에서 흘러가지 않으면 결코 형성될 수 없다.

따라서 현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과거의 슬픔에 젖어서 현재를 보지 못하거나

허황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외면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Chapter 1. 평생토록 배워도 부족하다

■ 방대한 지식보다 배우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인간은 20년 동안 배운 것을 단 2년 동안에 잊어버릴 수 있다."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나이가 많고 적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서 이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나의 삶에 아무런 목표나 이상이 없는 상태로 이미 정신적인 죽음인 것이다. 배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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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청춘이란 나이로 따지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인 것이다.

유대인은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가장 위대한 교사라 할지라도 변화하는 세상에 현명한 방법을 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이다.

학자라는 말은 헤브라이어 '람단'에서 유래하고 있다. '람단'이라는 말의 뜻은 '알고 있는 사람'이란 말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방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보다도 배우고 있는 사람이 더 존귀하다는 말이다.

■ 단순한 지식보다 지혜를 더 소중히 여겨라

"포도주는 오래 되면 오래될수록 맛이 좋아진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진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성(知性)이다. 지성은 어떤 경우에도 가슴에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오랜 역사에 걸쳐서 나라 없는 설움과 박해를 받으며 견뎌 왔다. 오래 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도시는 불태워졌으며, 재산은 빼앗겼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배우며 항상 내일을 위한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희망이 있었기에 고된 하루하루를 이겨낼 수 있었다. 그들에게 내일을 위한 희망은 교육이었다.

유대인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물어보는 수수께끼가 있다.

“만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집이 불태워지고 재산은 빼앗겼을 때,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할까요?”

아이들이 엉뚱한 대답을 할 때 어머니들은 힌트를 준다.

“그것은 모양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거란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그것이 지성(知性)이라고 가르쳐 준다.

유대인들의 책에 대한 격언

1. 여행 중에 지금까지 읽어보지 못한 책을 보게 되면 반드시 그 책을 사서 고향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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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일 가난하여 물건을 팔게 될 경우 책은 맨 나중에 팔아야 한다.

3. 책은, 비록 적이 빌려 달라 해도 빌려주어야 한다.

4. 책을 당신의 벗으로 삼아라. 책장을 당신의 뜰로 삼아라.

5. 책은 침대의 머리맡에 두라.

1736년 라트비아 유대인 거리에서는 만약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빌려 주지 않는 행위는 벌금형에 처하는 조례가 정해지기도 했다. 또 유대인 사회에서는 학자가 왕 보다도 더 훌륭하고 귀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존경을 받아왔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지식을 소중히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지식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지혜였다. 지식만 있고 지혜가 없는 사람은 많은 책을 등에 실은 당나귀에 비유되었다.

배운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헤브라이어로 지혜가 있는 사람을 ‘훗헴’이라고 한다. 학도가 지식을 쌓고, 지성을 발휘해 가는 동안에 통찰력을 얻게 되고, 도 겸허해야 된다는 사실을 배우고 실천하게 된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훗헴’을 존중하였는지를 나타내 주는 말이 있다.

‘훗헴’과 부자는 어느 쪽이 더 훌륭할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훗헴’이다. ‘훗헴’은 돈의 고마움을 알지만, 부자는 지혜의 고마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 질문은 해답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 조리 있는 대답”묻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사람은 배움을 통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항상 의문을 가지고 질문한다는 것이다. 의문을 갖는 것은 배움의 첫걸음이다. 배울수록 의문을 갖게 되어 물음이 많아지며 질문의 수준도 달라진다. 즉 진리 추구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질문을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해답과 같은 힘을 지닌다.’

뇌 과학자들이 연구한 ‘효과적인 교육을 하는 방법’에 의하면 지식에 대한 일방적인 설명은 고루한 잔소리처럼 우리의 뇌에 자극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자녀가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하여는 친절히 답해주고 꼬리에 꼬리를 잇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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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것이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한다.

<탈무드>는 ‘훌륭한 물음은 훌륭한 답을 끌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가끔 뜻밖의 질문을 받고 놀라는 일이 있다. 그리고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멋진 답을 해주는 일이 있다. 그것은 좋은 질문이란 해답과 마찬가지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없는 사람은 의문이 있을 수 없다. 생각하는 일이란 의문을 품고 묻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지혜 있는 사람이란 훌륭한 의문을 지닌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의문은 행동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배우는 것일까? 세상에는 아주 똑같은 상황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는 법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에는 그때까지 배우고 경험했던 것을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직관(直觀)이다. 직관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을 현명하고 빠르게 구별하는 지혜이다. 우리가 세상의 지혜를 항상 배우는 것은 지성으로 갈고 닦아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이다.

■ 배움에 있어서 이해득실을 따지지 말라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 마주치는 모든 사물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다.”

하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대답을 하겠는가. <탈무드>에는 그 대답으로 ‘하늘은 당신의 발치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세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세계는 바로 당신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세상을 개선할 만한 힘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아무 힘도 없는 무력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며 사회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한정 짓는다.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잘못이다.

적어도 자신의 힘으로 자기 주변의 세계를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힘이 누구나의 내면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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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원천이 된다.

2.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사회, 곧 이웃과의 우호적인 관계는 유쾌한 생활의 근원이 된다.

배움은 정해진 시기와 때가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세상은 한 순간도 멈춰 선 적이 없이 변화하고 진보하고 있다. 어제의 옳았던 방법과 생각 또한 변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배움이 전 생애를 통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상은 배워야 할 것이 차고 넘치는 거대한 학교다. 그리고 배움은 배울수록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이다.

■ 학식을 남에게 자랑하지 말라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이다.”

학식은 눈으로 확인하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누군가의 학식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가늠할 수 없다.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학식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은 본능이 있다. 하지만 학식을 남에게 내비치며 자랑해서는 안 된다. 많이 배웠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다. 많이 배운 만큼 겸허한 마음과 풍부한 품성이 자랑인 것이다. 자기가 훌륭하다고 하거나 자기에게 힘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의심과 미움을 받기 마련이다.

<탈무드>에는 ‘학식이나 자신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값비싼 시계와 비슷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시계는 남에게 보이며 자랑하려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궁금할 때나 다른 사람이 시간을 물을 때에 비로소 꺼내어 궁금증을 풀어줄 때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목이 타는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갈증을 풀어주는 퍼내도 퍼네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샘처럼 학식의 풍부함이 드러나는 법이다.

유대인은 학식을 우물에 비유해서 말한다. ‘깊은 샘의 물은 아무리 길어 내어도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다. 얕은 우물은 곧 바닥이 드러나고 만다.’고 가르치고 있다. 깊은 우물의 근원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맑은 샘이다. 우물이 깊을수록 많은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다. 유대인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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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승으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친구들에게서는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가장 많은 것을 제자들에게 배웠다.”

■ 자신으로부터 받는 교육을 중히 여겨라

“아들이 질문을 시작하면 그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배움이란 폭넓은 것이 되지 않으면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움의 목적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서이다. 배움으로써 얻은 지식과 지혜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매력을 더해 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학문을 연마하고 다듬는 일을 선악(善惡)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인간은 무엇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가치 판단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단지 기분이 좋다, 싫다는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찰나적이 되어 버린다. 사람은 찰나를 초월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변함없는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야 신뢰를 얻게 된다. 신용이란 그런 것이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은 두 종류의 교육을 받고 있다. 그 하나는 스승으로부터 받는 교육이며, 또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 깨우치는 교육이다.’

■ 자신에 대해 스스로 리더가 되어라

“리더는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고 자기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도의 잠든 혼을 깨워 영국의 식민통치에서 독립을 쟁취한 마하트마 간디. 그의 리더십은 행동하며 실천하는 것이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비폭력 저항에 국민들은 그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만 한다.

간디의 리더십은 평범한 그의 생활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추종자들과 같이 먹고, 자고 생각을 공유하는 등 안락함을 거부하고 봉사와 희생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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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누구나 빛과 그림자의 두 가지 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림자를 지니고 있으며,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빛이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학력, 재산, 명예 등의 부족함이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좋은 품성, 인격, 지혜 등을 더 발현하면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이 사회구성원을 정의하고 있다.

‘사람은 자기 보존과 더불어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태어났다.’

랍비들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도, 다른 사람만을 위해 사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상스럽고, 자기 희생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광신적으로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 일상생활의 타성에서 벗어나라

“게으름은 쇠붙이의 녹과 같다. 노동보다도 더 심신을 소모시킨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게으름쟁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새로운 일과 현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단조로운 일상과 틀에 박힌 사고에 사로잡히게 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사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로보트와 같이 되어버린다.”

인간의 게으른 습성을 경고한 것이다.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에는 시간의 흐름이 길게 느껴진다. 이것은 이 시기에는 자주 새로운 사실과 만남으로써 자극을 심하게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더해가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삶으로부터 습득한 많은 습성이 쌓여 버렸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게 다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싶지 않은 생각에 새로운 일상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새롭게 내 앞에 펼쳐지는 기회를 외면하고 무의미하게 흘려버리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류의 생명 연장은 지속적으로 조금씩 연장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저 오래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런 삶의 연장일 뿐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습관화된 삶의 패턴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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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을 뛰어 넘어라

“강한 사람이란 스스로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요즘 크게 번창하는 외국어 학원 야간반에는 샐러리맨의 모습이 많이 보이는데, 정말 학습의욕이 대단하다고 한다.

어느 유명한 외국어 학원이 샐러리맨 수강생 58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30%는 동료나 상사에게 알리지 않고 다니고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는 비율은 나이가 많을수록 높아져서 40대의 샐러리맨은 49%가 남몰래 맹렬히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보너스로 충당하는 사람이 44%로 가장 많았으며, 자신의 취미활동을 그만 두었다는 사람이 6.7%, 술·담배를 끊었다는 사람이 3·6%였다.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된 욕구를 절제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현대인의 삶은 직장에서든 밖에서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기위해서 운동을 하고 식습관을 스스로 조절하기도 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높은 수준의 지력(知力)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지적인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사람은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워 능력의 향상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성이란 은(銀)그릇과 같아서 닦기를 게을리 하면 자신이 변화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 그러므로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배움을 다양하게 습득해야 한다.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지식을 배우면, 그것으로부터 터득된 지식들이 서로 어울려 새로운 지혜와 통찰력을 솟아나게 만든다. 각기 다른 요소가 서로 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종종 스스로도 놀랄만한 견해가 생겨난다.

<탈무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다른 사람보다도 훌륭한 사람은 정말로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그 전의 자기보다도 훌륭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훌륭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뛰어 넘으려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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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책은 위대한 천재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이다.”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유산’은 무엇인가? 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이 바라보는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삶이 여유롭고 기쁠 때는 생각도 의식하지도 않지만 삶이 힘들고 괴로울 때면 원망의 대상으로 비로소 생각하는 사람이 부모님은 아니었나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성경에 청지기 사상이란 말이 나온다. 청지기란 주인 대신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사람은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며 소유한 재물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랑을 실천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이 토대에서 유럽의 상속제도는 상속세를 높게 부과하여 부의 사회화를 중요시 하였다. 부의 대물림을 원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부모의 재산 여부에 상관없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명예와 부를 얻게 되는 것이다.

명심보감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돈을 쌓아 자손에게 물려주어도 자손이 올바르게 지킬 수는 없고 많은 책을 물려주어도 자손이 다 읽을 수는 없으니 남을 위한 덕을 쌓아 자손에게 물려주기 위한 계획으로 남기느니만 못하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부모가 나의 마음에 남겨 주었던 좋은 품성을 나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다섯 살 난 자식은 당신의 주인이고, 열 살 된 자식은 노예이며, 열다섯 살이면 동격이 된다. 그 다음부터는 교육하기 나름으로 벗이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 스승과 부모는 산과 같다

“교사가 지닌 능력의 비밀은 인간을 변모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수도인 새크라멘토에 가면 주 의회 의사당에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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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봉우리만큼 우뚝 솟은 사람을 만들자!’

헤브라이어로 산을 ‘하림’이라고 한다. 어버이는 ‘호림’이라 하고 스승은 ‘오림’이라 부른다. 그래서 유대인은 어버이와 스승은 산과 같이 우러러 보는 높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유대인은 특히 교육에 열성적인 민족이기 때문에 세 살이면 교육을 시작한다. 그들은 매주 6일간, 하루 여섯 시간에서 열 시간을 열심히 공부한다. 스승의 집이나 학교에서 <토라>, <탈무드>를 배우면서 ‘바미츠바(성인식)’에 대비하는 것이다.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이와 같은 창의적인 교육으로 역대 노벨상의 23%를 차지했다. 그들은 유형의 재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는 무형의 자산인 ‘지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유대인 가정의 교육방침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부모의 욕심을 강요하지 않으며 아이의 선택에 맡긴다. 함께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식구라는 의미를 깨닫게 한다. 책 읽어주고 학습을 직접 지도하며 질문을 유도한다. 가정에서의 이러한 교육방법으로 자녀는 스스로 성장한다. 가장 기본적이고 훌륭한 스승은 부모다.

Chapter 02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라

■ 마지막 한 수가 남았다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세계 곳곳에서는 끊임없는 전쟁과 자연재해 등 커다란 위험에 직면하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재앙의 원인 가운데에는 인간 스스로가 자초한 고난도 많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믿어야 한다. 물질 속에 있는 에너지를 개발하는 능력을 지닌 인간이 그 지식을 이용해서 아름다운 세계를 파괴하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내부나 주위의 환경에 있는 악(惡)과의 싸움이 종종 절망하게 만드는 사례가 거의 매일 보도 되고 있다. 신문에는 밝은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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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는 오히려 폭력, 고통, 무관심, 무감각으로 곤란에 빠져버린 세계의 모습을 보는 일이 많다. 우리 주위의 생활을 둘러보더라도 이혼이나 자살, 노여움과 고통, 다툼과 혼란, 게다가 사람과 사람의 단절을 보지 않는 날은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이러한 절망스런 세상을 한탄할 수만은 없다.

올바른 삶을 위해서 우리들은 내면의 훌륭한 성질을 이끌어 내어야 하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도 그러한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에게 가장 큰 적은 본능적인 욕망, 선한 행동을 방해하려는 본능이다. 공포, 소심, 무기력 등은 항상 우리들의 활동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며, 희망 그 자체가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다.

■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라

“내일의 일을 훌륭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는 바로 오늘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것이다.”

내일을 뜻하는 ‘명일(明日)은 ’밝은 날‘이란 의미이다. 명일의 이미지에서 현자의 지혜와 시인의 환희가 느껴지지 않는가!

주위의 사람들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만드는 사람의 특징은 밝은 표정, 밝은 말씨로 주변을 배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하면 즐거움과 활기가 넘치고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말로 주위사람들까지도 우울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험한 말로 상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생각의 관점을 긍정적으로 바꾸면 어두움을 밝음으로, 악을 선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세 마리의 개구리가 우유가 담긴 통에 빠졌다. 우유통에 빠진 개구리들의 위기 대처는 각각 달랐다.

1번 개구리 :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다.”라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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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개구리 : “이 통에서 기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 노력도 없 이 빠져 죽어버렸다.

3번 개구리 :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뒷다리가 붙어있는 한 코를 우유 밖으로 내 놓고 천천히 헤엄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자 우유는 버터로 굳어지면서 개구리는 무사히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무 오래 기다리기만 하면, 그만큼 실망도 크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

■ 해가 지면서 또 하루가 시작된다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은 인간의 꿈이다.”

보통 하루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은 반대의 개념으로 생각한다. 바로 여기에 유대인이 온갖 고난을 헤치고 용감하게 살아남은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지면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안식일인 ‘새버드’를 보더라도 금요일 일몰부터 시작해서 토요일의 일몰로 마무리 된다. 이러한 하루의 시간에 대한 사고방식으로 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다.

<탈무드>에서는, 랍비들이 어째서 하루가 일몰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논쟁을 기록한 사실이 있다. 그들의 결론은, 밝은 무렵에 시작이 되어 어두워서 끝나기보다는, 어둠에서 시작해서 밝은 무렵에 끝나는 편이 논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인생도 그와 같다. 그들의 이러한 사고방식은 유대인의 낙관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은 무척이나 낙관적이다. 아무리 곤경에 처해 있더라도 때가 되면 반드시 좋아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이 없으며, 항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희망은 미래를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 사람이 지니고 있는 힘 가운데서 희망이란 가장 강한 것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죽음이야말로 바로 희망이라는 줄이 끊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망을 잃지 않는 한 인간은 영원히 발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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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하며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탈무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희망의 등불을 계속 지니고 있으면 어둠 속에서도 견딜 수가 있다.’

■ 인생 앞에 놓인 세 개의 문

‘아차’하는 순간에 모든 일은 과거가 된다.‘

과거에 비해 지금의 인류는 발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은 도구를 이용하여 많은 발명품을 만들었고 그것을 이용해서 놀라울 만큼 생활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질의 발전이지 인간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생에는 세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과거로 가는 문이고, 또 하나는 현재로 향한 문이며, 마지막 하나는 미래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 세 가지 문 가운데서 어느 것이든 닫혀 있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어느 문 안에도 마치 보물이 들어 있는 것처럼 생활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많은 업적을 쌓은 노인은 어째서 존경 받는가?

과거의 문 앞에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활동기의 선남선녀는 왜 아름답게 보이는가?

현재의 문 앞에 보물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왜 사랑스러운가?

그것은 미래의 문 안에 보물이 가득 쌓여 있기 때문이다.

■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탈무드>에서는 ‘내일의 일을 근심해도 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오늘 바로 코앞에 닥치는 일도 모르는 처지에’라는 말이 있다.

친구인 아이작으로부터 돈을 빌린 야곱은, 갚을 날짜는 내일로 닥쳐왔는데 갚을 돈이 수중에 없었다. 야곱은 걱정이 된 나머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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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일어나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거렸다. 그러다가는 또 의자에 앉아 머리를 싸매고 걱정을 했다.

아내인 레베카가 보다 못해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당신 참 멍청하네요. 내일 당신이 돈을 못 갚는다면, 걱정스러워 잠을 못 이룰 사람은 바로 돈을 받을 사람이잖아요?”

그러고 나서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야곱은 비로소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을 잘 수 있었다.

흐린 날이 있으면 맑은 날이 있다. 과거를 걱정한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자유롭게 창조할 수 있는 미래를 바라보자. 과거의 실수에 얽매여 괴로워한다면 현재에 온전히 완전히 집중할 수 없다. 시간은 우리의 사정이 어찌되었건 계속 흘러간다. 오롯이 현재에 집중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다.

시간은 우리의 옆에 있지 않다.

시간은 우리의 앞과 뒤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거나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현재의 삶을 망각한다.

과거는 언제나 현재라는 강물을 타고

미래를 향해 자신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는 현재라는 강물이 흘러가지 않으면

결코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의 슬픔에 젖어서 현재를 보지 못하거나

허황된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외면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 어떠한 경우라도 명예는 끝까지 지켜라

“사람을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참답게 명예스런 사람이다.”

자랑스러움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과시하는 것은 참다운 자랑스러움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명예’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영어에서 'Honor' 즉 명예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명예를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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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명예를 지닐 수 있었던가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자신에 대한 문제이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자랑스러움이나 명예라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인 문제다. 신념 자랑스러움이라고 하는 것들은 개인의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평가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물질적인 척도만으로 세상을 보지 말라

“나이가 어리고 생각이 짧을수록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삶이 최고라고 여기며, 나이가 들고 지혜로울수록 정신적인 사람을 최고로 여긴다.

인간은 원숭이를 닮았다. 그리고 인간은 동물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배우고 있다. 사람은 신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주장이다.

인간을 ‘물체’로 정의하는 발상도 있다. 나치스가 출현하기 전의 독일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사람의 몸은 비누 일곱 장을 만드는 데 충분한 양질의 지방을 함유하고 있으며, 한 개의 못을 만들 철분을 함유하고 있다. 또한 2천 개비의 성냥을 만들만큼의 인을 함유하고 있으며, 온 몸의 털이 난 부분에 바르면 벼룩을 물리칠 만한 유황을 함유하고 있다.’

실제로 나치스는 유대인을 강제 수용소에 가두어서 대량 학살한 뒤 비누나 성냥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으로 인간을 정의할 수 없다. 사람을 물리적인 척도만으로 잴 수 없듯이, 이 세상도 물질적인 척도로 재어서는 안 된다.

■ 인생이란 바이올린 줄과 같다

“자기 자신의 불행보다는 타인의 불행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하나씩 습득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바이올린 줄을 팽팽하게 조여 놓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없다. 연주를 하기 전에 바이올린 줄을 팽팽하게 조율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고통을 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치 죄어지지 않은 바이올린 줄과 같다. 그런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가능성을 그저 간직할 뿐이며, 실제로 발휘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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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역경이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대를 불행하다고 여기오.

그대는 불행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오.

그대는 역경 없이 인생을 통과했소.

아무도 그대의 능력을 알 수 없을 것이오.

그대 자신조차 말이오.“

■ 진실한 말만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유대민족은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척도이다. 내가 하는 말이 곧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말은 곧 나를 대변한다. 말에 진심이 담기면 타인의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진심 어린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어떤 말로 인해서 상대방을 적으로 돌려세우기도 한다.

고대의 한 유대 왕국에 적이 쳐들어 왔다. 왕은 이웃 나라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다. 그래서 재상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외교 문서를 작성하도록 명을 내렸다. 하지만 엄청난 규모의 침략군이었다. 재상은 어느 나라가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원군을 보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처럼 글을 쓸 수 없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날이 어두워져서 시종이 등불을 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시종은 재상의 고뇌어린 표정을 죄송스런 마음으로 바라보며 등불을 재상의 글을 쓰는 붓 위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자 붓 아래의 재상의 손 주위로 그늘이 내려앉아 침침해졌다. “빛을 들어라.“

재상이 말했다. 그리고는 자기도 모르게 그 말을 편지에 써넣고 있었다.

“빛을 들어라.”

이 한 마디의 글이 이웃나라 왕의 마음을 움직였다.

■ 인생이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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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없는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의 도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또 스승으로부터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아가며 현재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친구로부터, 동료로부터, 또는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아가며 살아가고 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루어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은 감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신의 어떤 축복도 머물지 못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일에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아주 미미한 것에서도 감사함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풍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매일 아침 다시 깨어나는 것을 기뻐하자.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 누울 수 있음에 감사하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낸 아름다운 순간들을 생각하며 행복해 하자.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잉태된 순간부터 인생은 고마운 것이다. 그 엄청난 경쟁률을 이겨내고 당신이 태어나기까지 어머니는 아름다운 생명체로 완성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 비록 지금은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하더라도 …

“희망은 강한 용기이며 새로운 의지이다.”

유대인은 세상을 매우 낙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그들은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한 낙관적인 민족성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오래 전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절망적인 나날에도 반드시 좋아진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왔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모두 모여서 ‘아니마민’이라는 노래를 합창한다. 그것은 헤브라이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의미이다.

이 노래는 아우슈비츠 감옥에 갇힌 유대인들이 작사 작곡한 것이다.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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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는데도 ‘우리들은 구세주가 오실 것을 믿고 있다. 다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이 조금 늦여졌을 뿐이다.’라고 노래하며 자신들을 위로했다.

유대인들의 동화 가운데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우화가 있다.

옛말 어떤 사람이 왕의 노여움을 사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왕에게 살려달라고 탄원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게 1년의 여유를 주신다면 임금님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말에게 하늘을 날도록 가르쳐 보이겠습니다.”

일 년이 지나도 말이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자기를 사형에 처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탄원은 받아들여졌다.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말이 사형수의 약속대로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때 그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단 말인가?”

동료 죄수들이 그에게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일 년 이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나? 일년 이내에 국왕이 죽을지도 모르고, 혹은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네. 더욱이 그 말이 죽지 말란 법도 없지 않나? 일 년 뒤에는 말이 정말 날지도 모르는 일이거든.

■ 역경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한다

“역경에 부딪쳐서 고난을 극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의 참된 능력을 알지 못한다.”

유대인이 역경에서도 강인한 저항력을 지니는 것은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성서 시대부터 박해를 받아왔다.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대인이 박해를 받고, 집이 불태워지고, 또 무참하게 살육을 당했던 무렵에도 그들은 유대교를 버리기만 하면 박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은 유대인임을 포기하지 않았다.

흔히 유대인을 한 인종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 가보면 흰 피부의 유대인이 있는가 하면 검은 피부의 유대인도 있다.

유대인이란 단일 혈통의 민족이라는 뜻이 아니라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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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역사를 소중히 한다. 유대인의 역사는 모든 유대인에게는 스스로 체험한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으로 유대인 박해 사례를 보면 비참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유대인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무지개가 희망의 상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폭풍우 뒤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하늘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사상 이토록 혹독한 박해를 받은 민족을 달리 찾아볼 수 없을 정도지만 유대인들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아무리 박해를 받고 짓밟혀도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들은 역사를 통해서 증명하고 있다.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가 적혀 있다.

‘ 사람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어째서 하나님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그 답은 이렇게 적혀 있다.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서 밝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목숨은 빼앗겨도 신념은 굽히지 않는다

“신념은 현명한 도박이다.”

신념(信念)이란 소중한 것이다. 신념은 스스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에 대한 반석과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신념이 굳건하다면 그 무엇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목사이며 사상가인 헤리 에머스 포스딕( harry Emerson Fosdick)은 신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두려움은 우리를 가두고, 신념은 우리를 석방한다.

두려움은 우리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신념은 힘을 준다.

두려움은 용기를 빼앗고, 신념은 용기를 준다.

두려움은 병을 주고, 신념은 약을 준다.

두려움은 무용지물로 만들고, 신념은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든다.

인간의 중심이 되는 것은 신념이다. 신념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설득력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 근거로 삼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自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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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감은 신념의 원천이 된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신뢰할 때에, 도대체 그 사람은 당신의 무엇을 근거로 삼아서일까? 그것은 당신의 신념을 보았기 때문이다. 신념은 매우 중요한 것이며, 비록 목숨과 바꾼다 할지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 Chapter 03 모든 일에 중용을 취하라

■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남의 자비로 사는 것보다 가난한 생활을 하는 편이 낫다.”

어진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지식을 쌓고 재판을 하고 권력을 행사하면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어진 마음이 없이 돈 벌이에 골몰하는 의사가 있다면 고대 그리스 의술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반하는 진정한 인술이 펼쳐지지 못한다.

유대인의 사회에도 거지가 있었다. 그들은 ‘슈노렐’이라 불렸는데 한 집 한 집 찾아다니며 구걸을 하는 일은 없었다. 거지는 하나의 직업으로서 하느님의 허락을 받은 존재였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선행의(자비의) 대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 말라. 당신이 지닌 부가 결코 당신의 인격을 드러낼 수 없다. 당신이 많은 부를 소유했다고 해서 많은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없듯이 그가 가난하다고 해서 그의 영혼까지 찌들고 가난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은 결코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말라. 그들의 셔츠 속에는 영민한 지혜의 진주가 감추어져 있다.

■ 가난을 극복하도록 젊어서 노력하라

“부지런하면 가난이 머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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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젊은 시절의 고통이나 역경은 어떤 교훈이나 귀중한 보석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 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닥친 고통과 역경에 좌절하고 실망하여 난관을 극복하기도 전에 자신의 귀중한 삶을 포기하거나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실패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 미국의 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

1. 1831년 오하이오 주의 오두막에서 출생, 2세 때 아버지 사망,

2. 홀어머니 밑에서 학교에 입학했으나 책조차 살 수 없는 형편

3. 고학으로 공부, 주 상원의원, 남북전쟁 때 북군 장군으로 참전하여 승리

4. 연방 상, 하의원 당선, 20대 대통령에 당선

유대인들은 젊어서 가난한 것은 성공으로 가는 발판을 만들어 주는 절호의 환경이라고 여기고 있다. 가난을 벗어나겠다는 충동만큼 강한 힘은 없다.

젊은 시절, 가난한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노년이 되어서도 가난하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젊음은 원인이며, 노년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그것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가난하면서도 정신적으로 가난을 초월한 삶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성경>에도 ‘지혜가 힘보다 낫기는 하지만 가난한 그의 말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그의 지혜가 빛을 못 보는구나.’(전도서 9-16)라고 적혀 있다.

■ 돈과 섹스는 불결한 것이 아니다

“섹스는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한 사람만 상대하여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고대 유대사회에도 은둔하는 종교적 수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을 ‘나지르인’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이 사회에 복귀 할 때에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했다. 삶의 즐거움을 부정한다는 것은 유대교에서는 죄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금전이나 섹스를 불결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가난을 ‘죄악’이라든가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불편한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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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술, 노래, 섹스…와 같은 즐거움도 인생에는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도록 스스로 자기 관리가 요구된다.

■ 사해(死海)처럼 받아들이기만 해서야…

“은혜를 베푸는 자는 그것을 감추고, 은혜를 입은 자는 그것을 밝혀라.”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베푸는 사람의 주위에 모여든다. 베푼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갈릴리 호수와 사해(死海)는 그러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내해(內海)가 있다. 하나는 갈릴리 호수이며 또 하나는 사해이다.

사해는 해면 아래 392미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부근 일대는 온통 사막이다. 사해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 그러나 갈릴리 호수는 매우 깨끗하며 자유롭게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살고 있다. 이곳에서 예수께서 물고기를 낚아 굶주림에 있던 사람들에게 양식을 제공했다.

사해처럼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으면 썩게 되고 물고기도 살지 않고 동물이 물을 먹으러 모여들지도 않는 것과 같은 사람도 있다, 받을 줄만 알고 나누어 줄줄 모르는 사람이 되기보다 갈릴리 호수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시간은 ‘돈’이 아니라 시간은 ‘인생’이다.

“시간은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사전적 의미는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져 머무름이 없이 일정한 빠르기로 무한히 연속되는 흐름이다. 시간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위한 시도는 오랫동안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러나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갈래의 폭넓은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명확한 시간의 정의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시간은 돈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간은 물질적인 척도로 판단하게에는 부족하다. 시간과 돈은 전혀 비슷하지 않다. 왜냐하면 돈은 모아 두었다가 필요한 때 쓸 수 있으나 시간은 재사용이 전혀 불가능하다. 한 번 잃어버린 시간은 돌이킬 수가 없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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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에게 빌릴 수도 없다. 게다가 인생이라는 은행에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시간이 남아 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시간은 돈이다(Time is Money.)’ 라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며 ‘시간은 인생이다(Time is Life.)’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맹렬히 비난했는데, 이자는 돈을 빌려준 시간에 대비하여 받는 반대급부인데, 시간은 신에게 속한 영역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인간이 이자를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돈을 빌려주는 것을 ‘금융’이라 부르지 않고 ’고리대금업‘으로 불렀다.

반면 유대교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는 받을 수 있되 형제에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구약성경>의 구절을 근거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때문에 중세 기독교 국가의 왕실과 귀족들은 국고와 재무관리를 주로 유대인에게 맡겼다. 자신의 손에는 더러움을 묻히지 않으면서 실리를 챙기는 술수였던 것이다. 그러나 <탈무드>에도 이자를 많이 받는 고리대금은 엄격히 금했다.

■ 지나친 것을 경계하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탈무드>에는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네 가지 척도가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돈, 술, 여자, 시간에 대한 태도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매력적이기는 하나 도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돈, 술, 여자에 대해서는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시간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자기도 모르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생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마도 유대 처세술의 요점은 균형을 잡는데 있다고 하겠다. 무슨 일이나 지나침 없이 알맞게 하는 것이다. 유대인은 돈, 술, 여자 등 삶에 있어서의 쾌락을 죄악시 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주신 쾌락을 즐기지 않으면 그것 또한 죄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경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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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정이 부추기는 정열은 오래가지 못한다

“당신의 정열을 지배하라. 그러지 않으면 정열이 당신을 지배할 것이다.”

정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감정의 부추김을 받는 정열과, 또 하나는 이성과 지식의 뒷받침을 받는 정열이다. 감정의 부추김을 받는 정열은 위험하다. 감정은 격양되는 일은 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성은 스스로 자신의 정신세계를 지배할 수가 있다.

이성의 뒷받침을 받는 정열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의 연구>같은 끊임없는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연구 등과 같이 이성적인 생각에 정열이 뒷받침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정열을 가지고 곤란에 도전했으며, 마침내 그는 위대한 발견을 해 낼 수가 있었다.

<탈무드>에서는 정열을 불태우고 몸을 망치는 일에 대해 엄하게 타이르고 있다. 감정의 부추김에 이한 정열을 경계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정열은 인생의 톱니바퀴를 어긋나게 만든다는 것이다.

■ 사랑이 행복이다

“사랑하는 것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며 웃음 짓게 한다. 그것은 사랑이 지닌 영속적인 순결함 때문이다. 사랑은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기적의 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두 눈을 보라.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동자가 거기에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을 때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에야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 존재였는지 깨닫고 가슴 아파한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당신은 사랑할 수 있는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되풀이 되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대상들을 사랑하는 연습을 하자. 너무 익숙해서 묵은내 나는 김치처럼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내 곁의 모든 것들을 다시 돌아보고 애정을 쏟아보자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 창조는 진행중이다

“신은 인간을 자유롭게 창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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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창조 행위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다. 사람도 이 창조 행위 사흘에 에 동참하고 있다. 창조의 의미는 세상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다리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붙잡는 자에 의해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창조물은 인간 세계의 주변에서 늘 맴돌고 있으나 그것을 이루려면 고뇌에 찬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새롭게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날이 새롭게 변해가고 있다. 세계는 끊임없는 창조 행위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에게도 녹스는 일과 마찬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이 그와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우리들은 지난날에 있었던 일을 잊음으로써 과거의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문제를 다각적인 관점에서 생각할 수가 있다.

■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

“술이 백약 중의 으뜸이라고 하지만 만병은 또한 술로부터 일어난다.”

유대인은 술은 필요한 갓이라고 여기고 있다.

<탈무드>에는 ‘아침 술은 돌, 낯 술은 구리, 밤의 술은 은,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유대인은 취해 쓰러질 정도로 마시는 일은 드물고, 유대의 문학작품 가운데도 그런 인물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술은 또 유대인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와인의 맛을 알고 있다. 안식일에 술은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성서>에도 술의 효용에 관해서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즐거운 일이나 풍요함을 나타내는데 주로 쓰여 졌다.

<탈무드>에서는 적당하게 술을 마시면, ‘머리의 작용을 좋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오랫동안 랍비들은, 술이 사람에게 좋은 약이 되며, 술이있는 곳에는 약은 적어도 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랍비들은 술의 즐거움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지나치지 말라고 충고해 왔다.

<탈무드>는 ‘사람이 죽어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 하느님은 사람에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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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던 여러 가지 즐거움을 피했던 자를 꺼린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인생을 즐기려는 태도를 설명해 주는 말인 것 같다.

■ 실패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

“성공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모진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유대인은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패배한 날이나 굴욕스런 날도 기념하고 있다. 패배를 기억함으로써 또 다시 패배의 아픔을 겪지 않도록 대비하고 이를 물리칠 새로운 힘을 기를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민족들이 승리한 날만을 기념하고 실패한 날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실패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너무나 귀중한 교훈인 까닭이다.

0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

- 유대인이 이집트의 노예로 있다가 모세의 인솔로 해방되어 이스라엘 땅으 로 돌아온 것을 기념하는 날

- ‘맛소’라는 누룩 없는 빵 먹기, 그들이 받았던 굴욕을 다시 맛본다는 의미

- 아이들에게 학대받고 모욕 받던 그 역사를 가르침

- 유월절 식탁에는 쓴 맛의 잎사귀를 놓고 먹는다. 패배의 쓴맛을 보라고.

- ‘아라치’라는 술 먹기 : 최후의 승리를 의미

- 찐 달걀 먹기 : 계란은 찔수록 단단해진다. 즉 고난을 만날수록, 패배를 거듭할수록 더 강해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인생에서는 성공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실패하는 일도 있다. 성공한 일만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또다시 실패하기 쉽다. 성공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패는 사람을 긴장시키고 경계하도록 만든다. 그런 뜻에서 실패는 좋은 스승이다.

누구나 많은 대가를 치르고 배운 것을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의 체험을 통해서 배우게 된다. 실패는 성공보다도 귀중하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실패를 되풀이 하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러므로 실패는 과거로 돌려버리고 미래라는 공간에는 성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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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다는 것은 고통을 함께 하는 일이다. 고통을 다시 생각해내는 것도 배워야 한다. 실패를 잊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본성이기에 실패는 그 충격이 크면 클수록 언제나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미래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실패는 불유쾌한 것이지만, 과거의 실패는 도움이 되는 것이다.

■ 옛 전통을 소중히 하라

“전통은 선조들이 물려주신 고귀한 보물이다. 잊혀지지 않도록, 잘 영위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오늘날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손꼽히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옛 전통을 소중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왕실을 존중하고 있고, 스위스,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같은 국가들은 역사를 소중이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전통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전통을 소중히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람들이 전통을 공유해서 소중히 함으로써 사회가 통합된다. 같은 분모 위에 서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통을 더욱 강조하고 존중한다. 과거의 유산과 전통을 소중히 하는 나라 중에 합리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많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유대인은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단단하게 결속되는 민족성을 간직해 왔다.

전통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손을 잡혀 길 안내를 받고 있는 장님과 같다.

◉ Chapter 4 진실된 행동으로 사랑하라

■ 사랑과 연애의 감정과 책임

“진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책임을 안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을 사며 삶을 영위해 나가는 존재이다. 하지만 유대인은 연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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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하지는 않으나 냉정한 눈으로 남녀 관계를 지켜본다. 그리고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을 올바른 가정의 이룸을 전제로 진심으로 축복한다.

결혼은 사랑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서약을 바탕으로 한다. 즉, 결혼은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랑하며 온 정성을 다하겠다는 엄숙한 약속이다. 혼인 서약에는 배우자가 자신과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겠다는 뜻도 들어 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공경과 배려의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부부간에 서로를 함부로 대한다면 부부의 공동 목표인 사랑과 행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희생해야 한다는 편견과, 바깥일은 누가 해야 하며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서로 도와주고 채워주는 관계라는 점을 명심하고 배우자를 아끼고 위해주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유대인이 말하는 사랑의 경고는 너무나 많다.

‘사랑은 잼(Jam)이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빵과 함께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신혼여행은 1주일이면 끝난다. 그러나 결혼은 그 1주일을 책임져야 한다.’ ’사랑과 미움은 언제나 과장되게 마련이다.‘

■ 여자와 남자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다

“당신은 다만 당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사랑과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당당한 인간이다.”

유대인이생각하는 가정에 대한 질서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는 부계중심이 가족 문화를 만들어 왔다고 말한다.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가장 큰 권위를 갖는다. 가정은 아버지의 권위가 바로 설 때 비로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인 어머니가 결코 소외되지 않았다. 이상적인 가정의 아버지란 남편의 힘과 아내의 부드러움을 아울러 생각하는 아버지를 말한다.

성서의 <잠언>에는 여성이나 어머니를 높게 칭송하고 있다. 헤브라이어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가진 말 중에 ‘라마하트’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란 뜻이다. 유대의 격언 가운데에는 ‘신이 모든 곳에 다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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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으므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유대의 사회에서는 남자가 독립해서 아내를 맞아들여서 생활을 꾸려가지 않으면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탈무드>에는 남자들에게 주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당신의 아내를 당신 자신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고, 소중히 지키시오. 여자를 울려서는 안 되오. 하느님은 그녀의 눈물을 한 방울씩 세고 있을 것이오.’

또 <탈무드>에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만약 남녀의 고아가 있거든 먼저 여자 아이를 구해주도록 하라. 사내아이는 구걸을 해도 괜찮으나, 여자 아이를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 사회에서 아내를 때리는 것은 가장 부끄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이나 중동의 여러 나라에서 그와 같은 일은 흔히 있었다. 심지어 중세의 가톨릭 교회법에서도, 필요하다면 아내를 때려도 괜찮다고 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15세기 말까지 법에 의하여 아내를 때리는 것은 허용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아내를 파는 일조차 허용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토마스 하디의 <캐스더 부릿지의 시장>을 읽어보면 잘 나타나 있아.

그러나 고대 유대의 법에서는 아내를 때리는 자에 대해서는 엄한 벌을 내리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또 아내가 소송을 하면 이혼을 할 수 있으며, 남편으로부터 위자료를 받아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혼율이 매우 낮다.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소중히 하는 전통에서 나왔다.

■ 감사의 마음은 겸허한 마음에서 나온다

“가장 감사해야 할 것은 신이 주신 능력을 제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난 청교도들이 추위와 외로움의 고통속에서 얻은 첫 수확에 대한 감사를 드리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일주일간 추수감사 기간을 지켰다.

이러한 경건한 의식으로 거행되던 추수감사절이 많이 퇴색된 모습으로 오늘날의 교회가 맞이한다는 점은 안타깝다. 첫 소득에 대한 감사라는 의미는 온데간데없고 일회성 행사를 치루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서 교회를 치장하고 온갖 과일과 농산물을 설교단 앞에 놓고 예배를 거창하게 드린다. 어떤 교회는 누가 더 많이 풍성하게 준비하는가를 경쟁한다고 하니 이것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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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위한 감사인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인이나 다름이 없다. 허리를 굽히는 상인은 거만하고 잘난 척하는 상인보다 고객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비굴 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상대편의 마음에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전해지도록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겸허함은 자랑스러움이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 유머는 인생의 가장 큰 무기이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 없는 마차와 같다. 길 위의 모든 조약돌에 부딪힐 때마다 삐걱거린다.”

웃음이나 유머는 여유가 있고 강한 자에게서 우러나오는 법이다.

유머를 소중히 여기자. 웃음은 ‘백약(百藥)의 으뜸’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괴로울 때 마음을 위로해 준다. 활발한 웃음은 즐거운 것이다. 웃음을 소중히 하고 적절히 구사한다면 삶을 여유롭게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유머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힘 가운데서 가장 여유있고 강력한 것 둥의 하나이다.

유머는 왜 웃음을 주는가?

그것은 규격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규격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여유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여유가 있음으로 해서 유머라는 유희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국 수상 처칠은 유머가 풍부했다. 그래서 위기를 슬기롭게 뛰어 넘는 위대한 재상으로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유머는 긴장되고 어색한 자리를 밝게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다. 현명한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그런 여유를 지닐 수가 있다.

유익한 유머는 지성에서 우러나온다. 세련되고, 적절한 순간과 상황에 걸맞는 유머는 지적으로 훈련이 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유머는 신선한 것이어야 한다.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되풀이 한다면 그 말은 이미 호소하는 힘을 지니지 못한다. 유머는 기습하는 듯 신선함이 필요하다.

유머는 냉정함을 잃지 않게 만드는 약이다. 화가 나 있거나 긴장된 마음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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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에 있는 사람에게서는 유머와 웃음을 찾아볼 수 없다. 유머의 효용은 매우 크다.

유대인은 웃음과 유머를 항상 소중히 해 왔다. 유대인은 ‘책의 민족’이라 일컬어지는 것과 함께 ‘웃음의 민족’이라고 불리고도 있다. 유대인이 역사를 통하여 그토록 참혹한 박해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웃음의 효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그것을 웃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여유와 마음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조크나 유머는 창조력을 기르는 좋은 훈련장이 되어 준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어릴 적부터 웃음이 지니고 있는 힘에 대해서 가르친다. 유대인으로부터 <성서>를 빼앗아 버리면 그는 이미 유대인이 아니듯이, 유대인으로부터 웃음을 빼앗아 버린다면 그 또한 유대인이 아니다.

우리들도 항상 즐거울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세련된 조크는 머리를 가는 숫돌이다

“진정한 유머는 머리에서 나온다기보다 마음에서 나온다.”

유대인은 기지(機智)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그들은 조크나 수수께끼 같은 것을 소중히 여겨왔다.

유대인은 ‘조크나 수수께끼는 머리를 날카롭게 가는 숫돌이다.’ 라고 생각해 왔으며, 그 이유로 그것은 의외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시기적으로 자녀가 사리를 분멸할 수 있는 무렵이 되면,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자식들에게 어려가지 수수께끼를 내어 기지를 훈련시켰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기지에 대한 교육을 받은 유대인들은 어른이 되면 항상 조크를 주고받는다. 조크는 웃음을 가져올뿐만 아니라 상황의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적절한 화법을 항상 생각하여야 하기 때문에 두뇌의 작용을 좋게 만든다. 조크는 두뇌라고 하는 기계의 회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제공하는 기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유대인의 기지가 잘 드러나는 이야기 한 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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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많은 부자가 변호사에게 남긴 유언. 그 핵심 내용은 두 가지 였다.

1. 나의 충실한 노예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다.

2. 아들 유데아에게는 그 모든 재산 중에서 단 한가지만을 고르도록 하라.

그 유대인이 죽은 후, 노예는 주인의 유서를 랍비에게 보였다. 랍비는 노예와 함께 아들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유서를 보여주었다. 랍비가 물었다,

“무엇을 상속하시겠습니까?”

“저는 이 노예를 상속하겠습니다.”

아들은 노예를 소유함으로써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이어받게 되었다.

죽은 아버지는 이들이 현명함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비밀은 지켜져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일지라도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말라.”

인간의 가치는 그 사람이 비밀을 얼마나 잘 지킬 수 있는가 하는 것으로 측정이 된다. 그 사람의 생각이 깊은가. 신뢰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 시험되기 때문이다.

랍비 이븐 가비룰은 ‘비밀은 당신의 수중에 있는 한, 당신이 비밀의 주인이며, 입에서 나와 버린 다음에는 당신이 비밀의 노예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 세 사람 이상 알고 있는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세 사람에게 비밀을 말한다면 얼마 후, 열 사람이 비밀을 알게 된다.’

‘비밀은 듣는 것은 쉬우나, 자기에게 머무르게 하는 일은 어렵다.’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나간다.’

■ 이 세상에서 질투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만일 질투가 열병이라면

세상 사람들 모두는 열병에 걸린 환자가 됐을 덴데.”

질투(嫉妬) -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함, 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하는 것을 지나치게 시기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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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맹목(盲目)이라고 하지만 질투야말로 사람의 눈을 멀게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 속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질투는 천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한편,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는 질투 역시 애정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질투의 불이 꺼져버리면 헤어질 날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겠다.

<탈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질투하지 않는 여인은 마음속으로부터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눈먼 질투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사랑은 맹목이지만, 질투는 눈이 먼 것보다 더 나쁘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기 때문이다.

<성서>의 ‘창세기’에는, 금단의 과실을 먹었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적혀 있다. 이 금단의 과실은, 지식의 나무에 달려 있던 것이었다. 요컨대 사람은 불투명하게 앎으로써 불행해진다. 는 것을 말하고 있다. 섣부르게 안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망상의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다. 섣부른 앎에서 시작한 질투는 결국 무서운 비극으로 끝이 나기 마련이다.

2017. 12. 2

* 다음에 후반부(2)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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