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 사이 (2)
당신과 나 사이 (2)
■ 김혜남 지음
Chapter 4 가족· 연인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
: 0 ~ 46Cm
■ 가족관계가 유독 어려울 수밖에 없는 이유
술을 먹으면 엄마를 때리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란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를 막아 보았지만 번번이 힘센 아버지에게 밀려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였다. 늘 온 몸에 피멍이 들어 있는 엄마를 보며 아들은 빨리 아버지만큼 힘센 어른이 되고 싶었다. 아들은 자라서 바람대로 힘센 어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는 술을 먹고 나서 아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다던 그는 어느새 아버지와 똑같은 자신을 보며 절망했다. 그는 괴로워하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나 고통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릴 적 받은 상처를 미처 해결하지 못한 채 자라난 사람이 자기 아이나 배우자를 상대로 그 상처를 되풀이 하는 것이다. 어릴 적 불행했던 상황을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그때 억눌렸던 감정이나 욕구를 해소하고 보상받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불행을 반복하는 셈이다. 이것을 우리는 대물림이라고 부른다.
술을 먹고 아들을 때리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 술을 먹고 아들을 때리는 아버지가 되고 만 환자는 나한테 그랬다.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다고, 여전히 아버지는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아버지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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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 어떻게 사랑을 줘야할 지 몰랐던 서투르고 평범한 사람이 뿐이라고.
상처를 입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상처를 어떻게 보느냐이다. 어떤 사람들은 똑같은 일을 당해도 상처라 얘기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상처라고 한다. 누가 나를 해코지했을 때 그것 때문에 자기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스크래치(흠집)가 났을 뿐이야. 괜찮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죽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보다 우리가 상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현재와 미래는 달라진다.
■ 화목한 가정은 안 싸우는 집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하는 집이다
내 딸과 아들은 어릴 때 툭하면 싸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내심 저 둘을 어찌힐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상담해 주던 정신분석가가 두 남매 사이가 어떠냐고 물어서 “거의 매일 싸운다”고 털어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대 갑자기 그분이 “축하해!” 라고 하는 게 어닌가. 어리둥절해 하는 나에게 그는 그만큼 둘 사이에 오고 가는 게 많으니 남매 관계에 있어서는 좋은 현상이라고 했다. 심하지만 않다면 어릴 때 싸우는 건 괜찮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가족 사이에는 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형제자매는 태생적으로 부모의 사랑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다. 시샘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끼리 그래서는 안 된다며 부모가 강압적으로 형제들을 억누르면 그 갈등은 해소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풍선처럼 터져버린다. 수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화목한 가정은 안 싸우는 집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할 줄 아는 가정이다.
형제자매라고 해 봐야 둘 밖에 없는데 둘이 사이좋게 지내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애초에 너무 달라서 친하지 않은 형제자매도 있게 마련이다. 그럴 때는 굳이 사이좋게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게 좋다. “재는 참 나랑 안 맞아. 그런데 우리는 형제니까”라고 인정하며 형제 사이의 기본만 지켜 나간다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억지로 둘을 붙여놓고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강요할 때 생긴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것은 되도록 피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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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 그 자체가 두려워 피해버리면 갈등이 풀리기는커녕 더 깊어진다. 게다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아이들은 부모 사이가 좋지 않으면 그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또 아이들은 엄마 아빠 사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가 공부를 못하고 착하지 않아서 부모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생각한 다. 부모 사이의 갈등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말한다. “가족 간에 싸우지 않는 게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중 요한 건 싸우는 법을 익히는 겁니다.” 갈등이 생기면 빨리 그것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애쓰는 게 중요하다. 이때 잘 싸우는 법이란 상대방을 굴복시키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무엇을 양보하고 배려해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갈등을 풀기 위해서 싸우는 것은 꼭 필요하다. 갈등이 곪아 썩거나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말이다.
■ 아무리 부모라도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두지 마라
“내가 그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고 얼마나 애썼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언뜻 들으면 말 안 듣는 아들이나 딸을 둔 엄마의 하소연 같아 보이지만 남자 친구와 헤어진 여자의 말이다.
남자 친구의 꿈은 정의로운 검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집안이 가난했다. 다행이 운 좋게 졸업 전 대기업에 취직한 그녀는 남자의 꿈을 이뤄 주고 싶어 고시원 월세와 학원비를 모두 책임질 테니 그에게 시험 준비에만 힘쓰라고 했다.
그런데 남지 친구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얼마 후 그녀에게 이별을 고했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주는 기쁨은 그것을 해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나 받는 관계는 사랑을 위태롭게 만든다.
여자 친구에게 늘 받기만 했던 그 남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녀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를 고생시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을 테고, 늘 빚진 기분에 시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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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사이에 동등함이 깨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받는 관계가 지속되면 주는 사람은 억울하다고 느끼고, 받는 사람은 빚진 기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랑에 있어 일방통행은 위험하다. 너무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관계는 그만큼 변질되기 쉽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내 것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상대에게 모든 것을 내 주는 것을 ‘숭고한 사랑’이라고 우러러보며, 다 내주지 않는 것을 ‘덜’사랑하는 것으로 폄하한다. “사랑한다면서 그 정도도 못해줘?”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냐?” 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이라도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부모나 형제에게 계속 끌려 다니고 있다면 용기를 내어 보라 “안 된다”고 명확히 선을 그으라는 얘기다. 상대방이 “이제 까지 누가 먹여주고 입혀줬는데 그걸 모른 척을 해? 네가 인간이야”라거나 “생판 모르는 남도 도와주는데 가족끼리 정말 이럴 거야?“ 라고 욕해도 단호하게 거절하라. 그래야만 당신 자신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관계가 삐걱대는 것은 애초에 부당한 요구를 한 그들의 잘못이지,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과 일방적인 희생을 혼동하기 쉽다. 그러나 사랑은 누군가를 살게 하지만 일방적인 희생은 누군가를 죽게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사랑이 일방적인 희생으로 변질되지 않게끔 잘 보살펴야 한다. 아무리 상대가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의 부당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부모라도 부당한 요구를 해온다면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아주 확실하게.
■ 가까운 사이일수록 대화가 필요한 이유
아내와 남편은 인간관계를 통틀어 가장 가까운 사이에 속한다. 그런데 그
관계가 ‘죽었다’는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그것은 서로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지만 서로에 대해서 아무 것도 궁금해 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 알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뻔뻔하게 말하곤 한다. 가족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고, 그들은 내가 필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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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언제든 달려와 줄 것이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다만 사느라 바빠서 지금 잠시 서로에게 소홀한 것일 뿐이라고.
그러나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고 30년 넘게 살면서 무섭도록 공감하는 말이 하나 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다. 우리들의 삶과 인간관계에 가장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무관심이다. 만약 ‘남편은, 아내는, 딸은 언제든 나를 이해해 줄거여 라고 생각하며 관계 유지를 위해 아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죽어버린다. 관계야말로 관심을 가지고 물을 주고 항상 보살펴야 할 씨앗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노력하지 않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라며, 심지어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말하지 않는데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모른다. 남편을 모르고 아내를 모르며, 아이들을 모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의 머릿속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래서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대화가 더 필요한 이유다.
언젠가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에 대해서 아내인 구보타 시게코가 쓴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읽다가 나를 반성하게 만든 문장이 있다.
‘사랑하고 존경한다’
위대한 부인이고
위대한 요리사이고
위대한 간호사이고 위대한 작가이고
그리고 이런 내용이 100페이지는 더 계속되는
구보타 시게코를 나는 존경한다.
나를 멈추게 만든 것은 백남준이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한 부분이 100페이지 넘게 아내에 대해 쓸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연 남편에 대해, 아들과 딸에 대해 100페이지를 넘어서 계속 쓸 말이 있을까? 내가 그만큼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지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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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남편과 아이들은 나에 대해 어느 만큼의 페이지를 채울 수 있을까?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그에 대해 채울 수 있는 페이지가 어느 만큼 되느냐고 말이다.
■ 부모와 아이 사이에 꼭 필요한 4가지
자기는 남은 음식을 먹고 허름한 옷을 입어도, 아이만은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보게 해 주고 싶은 게 바로 부모 마음이다. 대게 부모들은 자기 자신보다도 아이에게 공을 더 들인다. 그러나 대개 아이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을 모든 부모가 다 그러지 않느냐며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얘기야”라는 부모의 말에 “또 잔소리 하신다”라고 받아치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는 게 자식이다.
흔히 부모는 아이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앉지도 먹지도 못하는 존재를 뭐든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르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부모의 생각대로 아이를 이끌어 가려다 간섭이나 강요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는 모두 자기 나름의 청사진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자기만의 발달 스케줄에 따라 때가 되면 걷고, 말하고, 판단을 내리면서 커 나간다. 그 스케줄이 다른 아이와 비교해 조금 늦을 수도 있고, 부모의 기대와 다를 수 있으며 혹은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모의 마음대로 아이를 휘두르면 아이는 오히려 엇나가게 마련이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한다.
1. 아이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다
아이의 발달 상태를 살피고, 각종 육아 서적들을 섭렵하고 정신분석 용어도
척척 쓰며 이론으로 무장한 엄마들은 아이의 미래에 대해서도 완벽한 플랜을 마련해 움직인다. 그런데 그토록 똑똑하고 해박한 엄마들이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겨서 왔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엄마에게 문제가 있었다. 물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항변했다. 그녀가 놓치고 있는 것은 딱하나,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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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이를 볼 때는 어떻게 하세요? 뭘 잘못하면 ‘아우 괜찮아’라고 해 주고, 뭘 잘하면 ‘아이고, 잘했다’ 칭찬해 주죠? 그런데 왜 당신 아이한테는 그러지 못하나요?”
다른 아이에게는 반응을 해주는데 정작 당신의 아이는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죠.
아이가 정말 잘 커 나가기를 바란다면 부모는 아이의 실수들을 따뜻하게 사랑으로 감싸고, 아이를 믿어주고, 아이의 상장을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상담 전문가인 비벌리 엔젤은 말했다. ‘어린 시절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대상인 부모의 따뜻한 포옹은 상처 난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해 준다.
2. 워킹맘은 쓸데없는 죄책감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역할이 주어진다. 회사에서 주어진 역할 말고도 딸 노릇, 엄마 노릇, 아내 노릇, 선배 노릇, 사람 노릇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역할을 다 잘 해 내지 못한다. 오죽하면 일과 삶의 균형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겠는가. 못하니까 어떻게든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일도 완벽하게 하고, 아이도 완벽하게 키우는 슈퍼우먼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때론 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 내지 못한다고 자책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데도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면 엄마나 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 애들 키우느라 일 못해서 걱정하고, 일하느라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다보면 결국 그 스트레스는 아이 앞에서 폭발하게 된다.
워킹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쓸데없는 죄책감은 버리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퇴근하고 나면 엄마의 사랑이 고픈 아이와 놀아주는 게 급선무다. 10~20분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주고 나서 쌓여 있는 집안일을 해도 늦지 않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루쯤 미룬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3.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적절한 좌절’을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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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면, 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빼앗아 대신 해 버릴 때가 있다. 그처럼 뭐든 엄마가 해 주는 아이는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자기가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엄마부터 찾게 된다. 그리고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건강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란다면 넘어지더라도 일어날 기회를 자꾸 주어야 한다. ‘적절한 좌절’을 일부러라도 줄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넘어지고 일어서는 연습을 충분히 해야만 아이는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와 위기도 자기 힘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무엇이든 원하면 금방 가질 수 있게 된 아이들은 도통 인내할 줄 모르며, 욕구 통제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땀 흘리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에 인내할 줄 모르는 아이는 결국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게 된다.
4. 아이는 아이의 삶을, 부모는 부모의 삶을 살아야 한다
부모 노릇은 여간 쉽지 않다. 아이가 원하는 것과 부모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 화내지 않고 강요, 간섭, 구속도 없이 아이를 가르치는 게 참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를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하루하루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재우다 보면 가끔은 지치고 짜증이 난다. 그럴 때면 부모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언제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은 맞다. 그러나 아주 가끔 짜증을 낸다고 해서 자신을 나쁜 엄마, 나쁜 아빠라고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부모 자신의 삶부터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아이에게는 아이의 삶이 있고, 부모에게는 부모의 삶이 있다. 아이가 원하는 건 본인의 삶을 전부 포기한 채 자기에게 매달리는 부모가 아니다. 또 못다 이룬 꿈을 자기에게 전가하는 부모도 아니다. 부모가 자기의 삶을 걸어갈 때 아이
는 그를 보며 자신의 삶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식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각자 자신의 삶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옆에서 응원해 주고 지치면 토닥여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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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아내 사이에 꼭 필요한 4가지
아내와 남편 사이는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그만큼 먼 사이다. 이렇게 오묘한 부부 사이에 아내와 남편이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1. 서로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 것
2. 그럼에도 비난은 하지 말 것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번즈는 결혼한 지 오래된 200쌍의 부부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을 찾기 위한 조사였는데 그는 최소 5~10가지 요인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드러난 요인은 딱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비난이었다. 그래서 번즈는 비난을 친절감을 파괴하는 폭탄이라고 규정지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자를 비난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3. 서로가 ‘여자’와 ‘남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결혼하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가장 먼저 잊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그가 ‘남자’이고, 이 사람이 ‘여자’라는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얼굴을 봐도 더 이상 설레지 않고, 못 볼꼴을 보여도 부끄럽기는커녕 무심해 하고, 더 이상 예쁘거나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죽을 것 같았던 열정적인 사랑의 시기가 지나가고, 편안하고 안정적인 사랑으로 접어든 것이라며 오히려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볼썽사나운 게으름이나 뻔뻔함으로 보장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4. 새로움의 힘은 세다
애런 교수는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한 실험이었는데 결혼한 지 평균 15년이 넘는 부부 53쌍을 세 그룹으로 나눴다.
가 그룹 : 일주일에 1회 ,영화관람 등의 즐거운 일 한번씩
나 그룹 : 같이 춤을 추거나 콘서트에 가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일을 하기
다 그룹 : 평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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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가 지난 후에 조사해 보니 <나 그룹>의 결혼 만족도가 다른 부부보다 현저하게 높았다. 즉 새로움이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임을 발견해 낸 것이었다. 부부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같이 해 나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다. 돈 한 푼 없이도 인생을 즐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5.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나’ 임을 잊지 말 것
파킨슨병을 안고 살아온 지 벌써 18년, 이제 나는 안다. 내 인생은 누구도 대신 살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내 행복 또한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말이다. 예전에는 내가 행복하지 못한 게 남편과 결혼했기 때문이고, 남편이 너무 바빠 가정을 돌보는 데 소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남편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때 내가 그 행복을 만들 생각은 미처 못 했던 걸까. 내 아픔을 남편이 대신 겪어 주지 못하는 것처럼, 내 인생을 남편이 대신 살아주지 못하는 것처럼, 내 행복 또한 남편이 만들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남편에게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 책임이 없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이다.
■ 며느리는 절대 딸이 될 수 없고, 사위는 아들이 될 수 없다
한 친구가 말했다.
“세상에 나는 내 아들이 그럴 줄 몰랐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결혼해서는 제 마누라만 싸고돌아. 걔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아니 아들이 결혼 했으면 며느리랑 맞춰 가야지, 왜 너한테 밎춰
야 된다고 생각해?” 아들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줄 몰라 부모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꾸릴 만큼 성장했고, 앞으로 자기 아내와 하나씩 맞춰 나가는 것이 옳다.
딸이 결혼하면 사위가 생기고, 아들이 결혼하면 며느리가 생긴다. 그런데 우리는 새 가족을 맞이하면서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휘두른다. 팔짱을 끼고 ‘당연히 네가 우리 집에 맞춰야지‘ 하는 태도로 며느리와 사위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는 것도 모자라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생기면 옳다구나 타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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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마치 우리 집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당장 해고를 할 것처럼 말이다.
결혼은 전혀 다른 두 문화가 만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가문의 한 사람으로 만들어야지‘ 라며 며느리나 사위를 개조하려고 해 봐야 더 불편한 사이가 될 뿐이다.
30여년 넘게 다른 문화에서 커 온 그들이 무조건 시댁이나 처가의 문화에 맞추라고 해서 따라야 할 의무도 없거니와 아무리 맞추려고 해도 다 맞출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새 가족을 맞이할 때는 ‘오픈마인드’가 중요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동화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선 낯선 집안에 며느리나 사위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사위는 절대 아들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며느리도 절대 딸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딸처럼 대할게, 너도 나를 친정 엄마라고 생각해”라는 시어머니의 말은 실현 불가능한 소망이다. 시어머니야 그만큼 친해지자는 뜻에서 한 말이겠지만, 그런 말을 자주할수록 며느리는 부담감에 짓눌려 오히려 튕겨 나갈 수 있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을 염려해주는 시어머니’ 혹은 ‘불편하지만 그래도 내 아들과 살아주는 고마운 며느리’라고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 사이로 감사가 싹트게 마련이다. 그러면 불편하기만 했던 관계도 서서히 발전해 조금은 편해진다. 그 정도 거리면 충분하지 않을까?
■ 딸의 결혼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들
대문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말이다. 34년 전 나는 결혼을 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3년 전에는 딸이 결혼을 하면서 독립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내가 독립할 때는 그저 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설레는 마음에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딸이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솔직히 기쁘지 만은 않았다. 딸이 좀 더 내 곁에 머물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결혼 준비에 한껏 들떠 있는 딸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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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딸이 마냥 어리게만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부모로서 2차 관문에 들어섰음을 알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는 자녀를 곁에 두고 싶은 욕망을 버려야 한다. 자녀가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잘 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어머니는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니라 기대는 것을 불필요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다.” 미국의 작가 도로시 캔필드 피셔의 소설 <며느리>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요약해 놓은 문장이다. 나는 딸이 결혼해서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고 있다. 아직까지도 딸을 보호해야 할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은 이미 씩씩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가끔 딸과 통화를 하다보면 딸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내가 한 게 아무것도 없음에도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어쩌면 부모와 다 큰 자녀가 서로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각자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
“저는 그를 너무 사랑해요. 그가 떠난다면 저는 차라리 죽고 말거예요.” “그 친구 사귀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을 편하게 다른 친구들을 만난 적이 없어요. 저를 어찌나 숨 막히게 하는지 이러다가는 제가 죽을 것 같아요.”
첫 눈에 반해 마법처럼 사랑에 빠진 그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남자를 보지 못하면 한 시도 견딜 수 없게 된 그녀는 자신의 모든 생활을 그에게 철저히 맞추었다. 반면 남자는 여자가 24시간 내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 같다며 치를 떨고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면 으레 사랑에 빠지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사랑은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 사랑을 ’하는‘ 단계를 지나 ’머무는‘ 단계로 나아간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세상과 격리된 채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황홀함을 즐긴다. 그러다 사랑을 하는 단계에서는 각자의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서서히 맞추어 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간다. 그리고 마지막 사랑에 머무는 단계로 나아가면 편안하고 따스한 관계 속에서 휴식을 취하며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둘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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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에서 세상과 연결된 차분하고 안정된 사랑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다행히 그 관문을 무사히 통과 했다고 해도 바로 사랑에 머무는 단계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오래 지속시켜 나가려면 ‘따로 또 같이’라는 관문을 또다시 통과해야만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고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이중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즉 누군가와 가까워지면 그 상대에게 전부 흡수되어 내가 없어지거나, 상대에 의해 휘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면서 자율성을 지키고 싶다는 욕구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오래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둘 만의 친밀함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즉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하기 위한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도, 아니 사랑하는 사이일수록 더욱더 거리는 필요하며, 그것은 언제든 ‘따로 또 같이’가 가능한 거리여야 한다. 가끔은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불안하게만 느껴질 때 칼릴 지브란의 시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가 위로가 될 것이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마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마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마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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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마라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의 시 <수선화에게>
살다보면 때론 격한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때 외로움은 마치 나를 ‘벌거벗은 존재’, ‘아무 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매우 견디기 힘든 고통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애써 피하거나 강박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외로움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상처받는 것을 무척이나 꺼린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가볍게 사람을 만난다.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면 자기 내면을 드러내야 하는데, 약하고 초라한 내면을 보이는 순간 상대가 실망하고 떠나 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외로움도 싫고 상처받는 것은 더 싫어서 가벼운 만남만 선호하는 사람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서도 만성적인 불안과 공허감에 시달리는 걸까? 그들은 애써 ‘쿨’한 척하지만 마음속 깊이에는 타인의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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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그 어린아이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은 절대로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까워진다는 것은 헤어지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까워지기 위해선 불완전한 자기 내면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완벽하지 않아서 사랑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상처받기 두려워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지쳐서 떠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좀 못생겨도, 공부를 좀 못해도, 말을 잘 못해도, 좀 서툴러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어 한다. 내가 뭘 잘해야만 사랑받는 게 아니라, 뭘 못해도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 입을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 갈등을 해결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즉 상처 없는 사랑은 애초에 없다.
그런데 상처가 두려워 마음속에서 울고 잇는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면 그 아이는 영영 자라지 못한다.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마라. 법정 스님은 인연을 맺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을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려야 한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만나는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어 놓으면 쓸 만한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대신에 어설픈 인연만 만나게 되어 그들에 의해 삶이 침해되는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인연을 맺음에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옷깃을
한번 스친 사람들까지 인연을 맺으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름답게 가꿔나가야 하는 인연은 우리 자신과 상대방 모두를 진정으로 성장시키는 관계다. 아무나 만나고 다니며 그냥 흘려보내기엔 당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준다’는 것의 의미는 자기의 잠재력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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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하는 것이다. 즉 내가 살아 있고 자신이 충만하기 때문에 나의 능력과 힘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사랑을 통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남에게 주는 경험을 한다는 건 아주 뜻 깊은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준다는 행위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준 만큼 받고 싶은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이다. 사랑을 주면 사랑을 받고 싶은 게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상대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며 그저 주는 사랑이 더 편하고 좋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먼저 그의 속마음부터 살펴야 한다. 그가 대가 없이 주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 아무리 사랑해도 나를 함부로 대하게 놔두지 마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지만 억지로 그 사랑을 붙들고 있어봐야 망가지는 것은 내 삶일 뿐이다.
■ 이별 앞에서 괜히 ‘쿨’한 척하지 말 것
“우리 헤어지자.”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도 아무렇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실연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고, 사랑받던 자신의 죽음이며, 둘이 창조한 세계의 죽음이다. 그래서 실연은 때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다가온다. 자신만이 그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여기던 행복감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는 고갈되고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자신만이 남게 된다. 그러나 실연에 있어 가
장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고통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자신의 깊은 내면을 상대에게 보여 주었는데 그가 떠났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이 너무 초라하고 추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정신분석 전문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실연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는 가운데 미련한 모습을 보이거나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한 만큼 아파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별 앞에서 ‘쿨’한 척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상대의 이별 통보 앞에서 ‘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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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그래서 이별한 바로 다음날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생활하거나 일부러 밝은 척 지내고. 보란 듯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별 앞에서 괜히 ‘쿨’한 척 애쓰지 마라. 일방적인 이별 앞에서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은 당연한데 그걸 안 하고 넘어가면 상처가 아물지 않아 다음 사랑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별은 한 사람과의 관계가 끝난 것이지 인생 전체가 끝났다는 뜻이 아니다. 여전히 당신은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소중한 사람이다. 그가 당신을 떠났다고 해서 당신의 존재가치가 흔들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존재 가치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스럽고 예쁘고, 잘난 사람도 실연을 당할 수 있다. 반면 남들이 보기엔 뒤처진다고 평가되는 사람이 평생 실연 한 번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도 한다.
사랑을 하든 이별을 하든, 또 다른 사랑을 하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주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사랑은 근본적으로 내가 즐겁고 행복하자고 하는 것이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이별은 아프지만 그 아픔을 잘 이겨내는 것도 결국 내 소중한 인생을 위해서다. 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닌 사랑에 대해 갖추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다.
Chapter 5. 친구와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
: 46cm ~ 1.2m
■ 늘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끝내 후회하는 것
언젠가 친구가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라며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내주었다.
어린 왕자가 사막 여우에게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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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막여우에게 어린 왕자가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거야.”
이 구절은 실제 <어린 왕자>에는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워낙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어린 왕자>의 일부인 듯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 하긴 처음에는 나도 그 문장을 읽고 참 많이 공감했더랬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만큼 어려운 게 또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고 한두 번 노력해 보다가 여의치 않으면 곧바로 포기해버린다. 그러면서 차라리 잘됐다고 말한다. 그의 마음을 얻었다한들 또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인데 괜히 헛고생할 필요가 없다면서 말이다.
인간관계를 쌓는 데는 절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을 계속 미루게 되면 결국 옆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같이 산다고 다 끈끈한 가족은 아니다. 인생의 한 때 같은 공간에 있었다고 해서 모두가 친구는 아니다. 내 옆에서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줄 사람을 만나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려면 그와 함께할 시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는 기르는 장미꽃에 물을 주고, 바람막이 역할도 해 주고, 벌레도 잡아준다. 그리고 장미꽃이 불평을 늘어놓을 때에도, 자랑할 때에도 아무 말
없이 늘 귀를 기울인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쌓은 추억이 있기에 어린왕자와 장미꽃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시간의 포로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그 마음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그에게 나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함께 있음을 온 마음으로 즐길 때 비로소 관계는 발전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없는 시간을 내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또 각자 시간을 만드는 방법은 다를 것이다. 다만 거창한 계획을 세우느라 피곤해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 함께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 당신에게 전화했을 때 “바쁘다”고 말하는 것부터 멈추어라. 바쁘다 고 말하는 사람에게 누가 자신의 진심어린 이야기를 하고 싶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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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조언은 잘 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해요. 당신이 말 주변이 없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그냥 잘 들어주면 돼요. 잘 들어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잘 들어 주기만 해도 상대방은 당신에게 고마워할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괜한 조급함에 “그래서 정말 하고 싶은 얘기가 뭔데요?”라고 짜증을 내게 되더란다. 상대방의 말이 길어지면 “아 네”하며 적당히 듣는 척하며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다가 낭패를 보기도 했단다.
■ 정신분석에서 경청이 중요한 이유
정신분석은 환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보다 환자가 왜 그런 생각을 했고, 왜 자꾸만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슬프고 화가 나는지를 충분히 듣고 그 마음을 해석해 주는 작업으로 결국 상처에서 벗어나는 것은 환자 스스로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느 환자는 집요하게 내가 자신을 도와줄 수 없는지를 따져 물었다.
“어쩌면 당신은 어렸을 때 주위에 도움을 구했지만 막상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서 지금껏 도움을 줄 사람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러자 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종종 의사인 내가 모든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고통을 없앨 방법을 즉시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로서 나는 환자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지, 그 뒤에는 어떤 상처가 숨어 있는지를 같이 찾아 줄 수 있을 따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경청이다. 내가 환자의 이야기를 풀어 놓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자기 마음을 하나 둘 이해하게 된다. 두려워서 꽁꽁 가슴 한구석에 숨겨 둔 상처를 직면하고 그것을 어루만지며 비로소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게 디는 것이다.
■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은 그저 당신이 잘 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당신을 필요로 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은 빛나는 조언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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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고가 아니다. 다만 그는 곁에서 자기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할 일은 그저 곁에서 묵묵히 잘 들어주는 것뿐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틀렸고 당신이 옳다고 생각되더라도 일단은 그의 입장에 서서 끝까지 들어주어라.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어 비판하려 들지 마라. 상대방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쳐나갈 것이라 믿고 기다려 줘야 한다. 그것이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길이다. 그래서 어쩌면 최고의 조언은 잘 들어주는 것 그 자체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 당장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당신에게는 몇 명의 친구가 있습니까?”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 머뭇거리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예전에는 분명 친했지만 어느 새 연락이 끊긴 친구들, 매일같이 붙어 다녔는데 오해와 다툼으로 멀어진 친구들, 나는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 지 확신이 안 서는 친구들이 떠오른다. 평생 함께 하자고 약속했던 친구와 한 달에 한 번 안부를 전하는 것도 힘들어지면 ‘우리가 정말 친한 게 맞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것이 바로 우정이다 우정은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아무 의무 없이 가장 자발적으로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다. 대부분의 만남은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지만 친구는 단지 좋아서 만난다. 우리는 친구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며, 친구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같이 성장해 나간다. 그래서 좋은 친구는 지금은 보잘것없어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다. 내 곁에 있으면서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이끄는 사람인 것이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아이들이 클 때까지 서로 바빠서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보다 친구 사이를 더 위협하는 것은 시기심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거나 성공을 거두었을 때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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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뜻한다. 상대방이 나보다 나아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기심이 커지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 상대를 증오하고 그를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든다.
“영화 <세 얼간이>에서도 오죽하면 ”친구가 꼴찌를 하면 눈물을 흘리고 친구가 일등을 하면 피눈물을 흘린다.“ 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겉으로는 다정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친구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니 시기심이 약간 생겼다고 해서 자신을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다만 친구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시기심이 친구뿐 아니라 자신까지 망친다는 것을 알기에 시기심이 폭발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러고 보면 친구에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준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면 친구의 숫자는 결코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 친구들 중에 내가 힘들 때 기꺼이 달려와 줄 수 있는 친구, 그래서 내 곁에 머물러 줄 친구가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를 낳고 기른 일이다. 그 다음으로 잘한 일은 그 친구들을 ‘내 친구’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성공이 별건가. 나는 두 가지나 잘 했으니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나는 세월이 흘러 변해 가는 서로의 모습에 감탄하고 존경을 보내며 같이 재미있게 늙어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라
나이 60이 되어 깨달은 건 무엇이든 영원하지 않으며 우정 또한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우정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이 가치 있는 이유는 우정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중년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심장 발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진 요인은 딱 두 가지, 흡연과 우정이었다. 결혼 여부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만큼 우정은 때로 가족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 다음은 친구와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 지켜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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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대 친구를 바꾸려고 하지마라
아무리 좋은 얘기도 반복해서 들으면 지겨운 법이다. 모두 친구를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수차례 지적하며 단점을 고치려고 강요하면 관계만 나빠질 뿐이다.
그리고 친구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의 단점과 잘못을 어느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어야 한다. 나의 단점을 친구가 받아주는 것처럼 말이다.
2. 친구 숫자에 연연하지 마라
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많은 이를 부러워한다. 그래서 내향적인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성격과 맞지 않은 방식으로는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기 힘들다. 친구 많은 사람이 부럽다고 억지로 사람들을 더 만나 봐야 스트레스만 가중될 뿐이다.
50명의 친구가 다 똑같이 중요하다면 이는 ‘베스트프랜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작 정말 어렵고 힘들 때 달려와 줄 친구는 없다는 뜻이다.
3. 친구의 비밀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누구에게나 너무 아프거나 부끄러워서 감춰왔던 비밀이 있는 법이다. 우리 는 보통 그런 비밀을 매우 친한 친구에게만 털어 놓는다. 비밀을 알아도 친구는 나를 멀리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 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 허락도 없이 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누가 경솔하게 그런 짓을 하겠냐고 반문하지만 생각보다 친구의 비밀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관계든 마찬가지지만 친구관계 역시 유지하기는 어려워도 깨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러니 친구의 비밀은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지켜주어라. 아무리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입이 가벼운 사람은 특히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법이다.
4. 경조사는 꼭 챙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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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좋은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먼저 좋은 친구가 되어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먼저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왜 SNS를 하면 할수록 자존감이 떨어지는 걸까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해 집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보니 마음이 있어도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가끔씩 친구들이 집에 들르긴 하지만 서로 바쁘다보니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인지 SNS를 많이 이용하게 된다. 실시간으로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좋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각종 정보도 공유할 수 있어 좋다. 가장 좋은 건 SNS를 통해 내가 여전히 세상과 연결 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의미를 가지려면 ‘너’라는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인 김춘수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
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말한 것처럼 누군가가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존재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서 조차 우리는 자꾸만 나의 존재를 알아줄 ‘너’를 절실히 찾아 헤맨다.
그러나 SNS는 ‘나’와 ‘너’의 진실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힘든 장소다. 그곳에선 내 진짜 모습을 감출 수도 있고, 상대방 또한 그럴 수 있다. ‘셀카’를 찍어 올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수없이 많은 사진 중에 아주 잘 나온 사진만 골라서 SNS에 올리지 않는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최대 포장해서 올린다음 그들의 관심을 기다리는 것이다. 초라한 모습은 절대 올라오지 않는 SNS의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그것을 인정받고자 애쓴다. 그런데 자신을 잔뜩 포장해서 보여주어도 늘 뭔가 아쉽고 못마땅하게 마련이다.
알바천국에서 20대를 상대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이 언제냐고 물었더니 ‘행복해 보이는 지인의 SNS를 볼 때’라고 대답한 사람이 27.6%로 1위를 차지했다. ‘취업이 안 될 때’가 22.7%로 2위를 차지했으니 이 설문조사만 봐도 얼마나 20대가 SNS에 목숨을 걸고 잇는지 한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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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알 수 있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교류하며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을 얻는 것도 잠시, 자꾸만 자존감이 낮아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 SNS로 맺어진 사람들은 나를 위해 달려와 주지 않는다
SNS는 한계가 있다.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언어가 차지하는 비율은 20% 밖에 안 된다. 나머지 80%는 보디랭귀지이다. 우리는 상대방의 눈빛과 목소리, 말투, 손짓과 몸짓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며 그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파악한다. 그런데 SNS에는 20%에 해당하는 언어 밖에 없다. 그래서 상대방의 진의가 무엇인지 파악할 방법이 없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면 서로 함께 만든 기억이 쌓이게 마련이다. 같이 울고, 같이 웃었던 기억들이 서로를 끈끈하게 이어준다. 하지만 SNS는 그 특성상 한순간에 삭제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SNS에서 서로를 아끼고 보살피는 깊은 인간관계를 맺기란 매우 어렵다. 즉 당신이 다치거나 쓰러졌을 때 SNS에서 맺어진 사람들은 당신에게 달려오지 않을 것이다.
Chapter 6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거리
: 1.2 ~ 3.6m
■ ‘직장 친구’ 대신 ‘직장 동료’라는 말이 있는 이유
인생을 통틀어 3분의 1 정도의 시간이 일하는 데 쓰인다. 특히 직장인의 경우 그 3분의 1이라는 긴 시간을 특정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과 보내게 된다. 직장이라는 곳에서 우리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싫어하거나 잘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라도 우리는 그를 ‘직장 친구’라고 부르지 않는다. 대신 ‘직장동료’라는 말을 사용한다. 왜 그럴까? 서로 속내를 다 털어놓고, 같이 상사 흉을 보고, 같이 술을 먹고, 함께 일하면서 왜 정작 ‘친구’라는 말을 붙이기는 꺼리는 걸까? 직장에서는 친구를 만들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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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들어간 곳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곳이다. 즉 직장은 책임을 질 줄 아는 성인들이 일을 매개로 만나 어떤 일을 같이 해 나가는 공적인 공간으로, 직장인들은 각자 맡은 역할을 하면서 월급을 받고, 일을 통해 자신을 실현해 나간다. 그리고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경쟁을 통해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승진하고, 연봉을 더 많이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경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발선은 같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능력에 따라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사원이냐, 대리냐, 과장이냐, 차장이냐에 따라 권한과 책임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만난 관계에서는 시기심, 우월감과 열등감, 경계심 등 부정적인 심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너무 많다.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친근감이나 유대감, 협동심 등이 싹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경쟁체제라는 기본적인 현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직장에서 맺는 모든 관계는 일을 매개로 만난 계약 관계다. 동료나 선후배와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결국은 서로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또 평가하고 평가당하는 사이 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공동체적인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
고 있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결혼했어요?”, “남자 친구는 있어요?”, “아이는요?”라고 묻는다. 외국에서는 비즈니스로 만난 관계에서 일과 관련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실례다. 개인의 사생활은 기본적으로 보호되고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직장 친구’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를 나쁘게 바라보지 않는다.
나는 직장에서 맺을 수 있는 가장 괜찮은 관계는 부서를 옮기거나 회사를 옮겼을 때도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 혹은 선후배 사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서로의 사생활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관계는 ‘내 가족을 소개해 줄 수 있는 의사’다. 동료가 자기 가족의 치료를 나한테 맡기는 것만큼 실력을 인정한다는 증거가 또 어디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직장에서는 무엇보다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것이 좋다. 지금껏 입이 가볍고 남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좀 더 재미있고 행복한 일을 하라. 직장인들의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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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가장 괴롭게 만드는 요인은 일이 아니라 바로 인간관계라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이유 없이 싫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사람과는 상대를 안 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직장에선 다르다. 싫든 좋든 같이 일하고, 밥 먹고, 술도 마셔야 한다. 보기 싫다고 안 보고 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원하든 원치 않던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배워두어야 한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 상처 입지 않으려면 그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김애란의 단편 소설 <풍경의 쓸모>에서 ‘어른이 별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라는 구절을 읽고 고개를 끄덕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음은 이상한 사람들을 유형별로 나누고, 그에 맞춰 당신이 알아두어야 할 대응방법을 정리한 것이다.
1. 질투와 시기심이 강한 사람
사람들은 보통 배경이나 능력이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
지, 자기보다 월등한 조건을 갖춘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시기심이 강한 사람을 피하려면 더 높이 올라가 버리는 것이 그에게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그들이 감히 시기하지도 못할 만큼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큰 성취를 이루어라.
2.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불평불만을 잠재우는 길은 그의 이야기를 최대한 잘 들어주는 것이다. 혹여나 불평꾼에게 충고나 격려를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만 두어라. 그들은 자기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랄 뿐이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뭐 그렇다고 꼭 나쁜 것만도 아니야” 하며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는 것도 좋다.
3. 지독한 나르시시스트
세상에는 자기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이 늘 자신을 칭찬하고 자신에게 감탄해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지극히 자기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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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고 자기 자랑이 많으며 남에게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나르시시스트를 대할 때는 그의 장점을 부각해 주되 지적 사항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말하거나 고치라는 식의 직설적인 화법은 피하고 달래듯 말하는 화술이 필요하다.
4 아첨꾼
아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팀장에 대해 험담하기 바쁘더니 오늘은 팀장 앞에서 쓸개라도 빼 줄 듯 아첨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해도 ‘저것도 참 대단한 능력이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5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
세상에는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생각만을 일방적으로 쏟아낸다.
그런 사람들과는 가급적 대화를 피하는 것이 좋다. 대화를 계속 진행해 봐야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 외에 남는 것이 없다.
6. 습관적 회의론자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게 과연 될까?” 라고 초를 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조금이라도 실패하거나 실수하는 것을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없다.
만일 동료가 습관적 회의론자라면 “같이 잘 만들어보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불손한자, 고집스러운 자, 그리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언제나 예의로 대하라는 말이 있다. 그들과는 충돌하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당신이 그들을 아무리 바꾸려고 노력해봐야 그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한다는 마음에 괜히 충고나 조언을 건네지 마라.
■ 사람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이들에게
1. 일부러 적을 만들지는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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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꼭 티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상대방이 그것을 알아채고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것을 솔직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일 목적하는 바가 싸움이라면 싫은 티를 내도 좋다. 하지만 싸움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라.
2. 싫은 사람 그와 같이 하는 일을 구분하라
싫은 사람과 굳이 친해지려고 하거나 그를 좋아하려고 너무 애쓸 필요는 없다. 마음에도 없는 노력은 관계를 더욱 어색하게 만들 뿐이다.
3.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법이다.
이를테면 친구와 약속이 잡혀있는 상태인데 상사가 불시에 회식을 잡는다고 해 보자. 그럴 때 “어머니 생신이라 빠질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절대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게 하얀 거짓말이다.
■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미친 짓이다
누구나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만큼 미움
받기를 두려워한다. 작정하고 타인에게 미움 받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그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나라도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쉴 새 없이 일하고, 항상 남보다 더 많은 책임을 떠안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줘도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것은 슬픈 일이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아무리 내가 예뻐도,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인생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미국에만 30%가 넘는다. 이순신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킬 각오가 된 장군이지만 당시에는 모함을 당했다. 그렇게 보자면 나를 아는 사람들 중 30~40%만 나를 좋아해 준다면 감사한 일이다.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마라. 그들은 모두 자신을 위해 산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가라.
2018.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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