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2)

보해성산 2020. 12. 1.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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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2)

◉ 3부 내 곁에 둘 사람, 거리를 둘 사람

- 나의 관계를 살피다

■ 전승환 지음

■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였지만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은 누구도 느끼고 싶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에 애정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거나, 타인에게 배려받지 못하면 큰 상처를 입고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죠. 내 진짜 모습을 알아줄 사람이 세상에 없다고 느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이나 친구가 곁에 있어도, 그런 사람이 없으면 마음 한편이 계속 허전하고 외로워집니다.

내 마음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던 나날. 아니, 나조차 내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그 무엇도 위로가 안 되고 의미 없이 느껴지는 날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를 사랑해 줄 사람도 없다고 느끼는 순간들, 그렇게 모든 게 허무하고 뭘 해도 혼자가 된 기분을 우리는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외롭고 괴로울 때, 제 마음을 알아준 문장이 있습니다. 지금 그렇게 한없이 혼자라고 느끼고 있을 당신에게 아래의 시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합니다.

돌아보면 언제나 혼자 였지요.

나를 사랑한다고 다가오는 사람에게선 내가 물러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서면 그 사람이 자꾸 멀어지고 있었지요.

나에게서 물러선 그 사람에게 다시 다가서면 그 사람이 부담스러워 나를 피했고 내가 물러섰는데도 다가오는 이는 내가 피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했지요. 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더 아름다웠던 것을. 내겐 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이보다 내가 곁에 있고 싶은 이가 필요했던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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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은 사람은 만나지지 않고 나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만이 자꾸 만나지는 인생의 쓸쓸함이여!

그러기에 나는 언제나 섬일 수밖에 없었지요.

둘아보면 늘 섬이 술을 마시고 있었지요.

섬이 왜 우는지 아무도 몰랐고 섬이 왜 술잔을 자꾸 드는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지요.

파도는 오늘도 절벽의 가슴에 부딪혀 옵니다.

절벽의 꽃에 오르지도 못하고.

이용채 작가의 <혼자일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을 만날 기운이 없을 만큼 힘들 때, 내 마음을 꼭 알아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만나면 조금이나마 힘이 납니다. 우리는 다른 시대나 다른 사람의 삶을 결코 살아볼 수 없지만, 책을 통해서는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죠. 아마도 이런 것이 독서의 가장 큰 힘일 것입니다.

1920년대 파리에서의 생활을 그린 헤밍웨이의 에세이 <호주머니 속의 축제>에 나오는 말입니다.

“강변을 거닐 때면 조금도 외로운 줄을 몰랐다. 나무가 그토록 많은 도시에서 다가오는 붐을 눈으로 날마다 확인 할 수가 있으며, 어느 날 밤 따스한 바람이 불고 아침이 오면 완연한 봄날을 맞게 된다. 때로는 차가운 비가 심하게 내려 봄을 쫓아버린 탓에 새 계절이 절대로 오지 않을 듯하고, 그러면 내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조차 든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대 작가 헤밍웨이도 “인생에서 계절을 하나 통째로 잃어버리겠다는 기분”을 느낄 만큼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꼈던 것이지요. 당연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오니까요. 우리는 모두 개별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으면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니까요.

그대 부디 / 혼자라 생각하지 말기를 / 매일 쓸쓸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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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심한 고독도 / 지금껏 잘 버텨왔고

/ 아무리 격한 슬픔도 / 이제껏 잘 지내왔으니

또한 그 시간 속에서 / 누군가는 당신을 위해 눈물 흘렸을 것이고

/ 누군가는 기꺼이 어깨를 빌려주었을 터 / 당신에게 공감해 준 사람과

/ 당신이 공감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를.

그리하여 우리 곁에 늘 누군가 함께 있고

기도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당신 또한 누군가에게 따스한 사람이며

우린 서로 그렇게 서로 온기를 나눠주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 잊지 말기를

 

■ 착한 아이 노릇은 그만

항상 밝고 명랑하게 보이려 애쓰나요? 매번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거나,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사과한 적은 없나요?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만 보이고 싶고, 조금이라도 미움을 받는 것이 두렵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좋은 사람일 거예요. 하지만 때로는 그런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너 착한 아이 콤플렉스구나?”

“그게 뭔데?”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칭찬받고 싶고, 아무에게나 미움받거나 비난 받고 싶지 않은 거.”

“생각해 보면 그런 것도 같다.”

“넌 그냥 너야. 누가 널 사랑하지 않는대도 널 미워한대도 어쩔 수 없어. 그건 그 사람 사정이고 넌 그냥 너일 뿐이니까.”

위의 대화는 제가 좋아하는 만화가 중의 한 명인 한혜인 작가의 <어느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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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했던 하루>에 나오는 데요. 한때 미니 홈피를 비롯해 여러 컴뮤니티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글입니다. 그만큼 착한 아이 콤플렉스로 괴로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그런 마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타인의 시선만 신경 쓰느라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남들에게는 착한 사람이자 좋은 사람으로 불릴지 모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마음을 내가 해치게 됩니다.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나 자신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살다보면 나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한 둘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를 피할 도리는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지나치게 관계가 깊어져 서로에게 어느 덧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진 덕분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떨어져 있을 때 우리는 상처받지 않는다. 이것은 엄청난 마법이며 동시에 훌륭한 해결책이다.”

소노 아야코의 에세이 <약간의 거리를 둔다>에는 이처럼 적절한 거리의 관계에 대한 소소하지만 단단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처럼 아주 가까운 사이일수록 때로는 조금 물러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을 보지 못하니까요. 오히려 적당한 거리가 있을 때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도 볼 수 있고,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가깝다고 무조건 옴짝달싹 못하게 거리를 좁히는 것보다는 서로 일정한 공간을 내주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관계에서 상처받은 분들을 위해 좋은 문장 하나를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내 미소는 나의 명함이다. 미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나의 미소는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서먹한 얼음을 깨뜨리고, 폭풍우를 잠재우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늘 제일먼저 미소 짓는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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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앤디 앤드루스의 소설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의 한 구절입니다. 출간 전에는 여러 출판사에서 무려 쉰한 번이나 거절당했다고 하는데, 그런 어려움 끝에 세상에 나온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노숙을 할 정도로 큰 고난을 겪고도 웃음을 잃지 않고 스탠딩 코미디언이자 언론인, 작가로 성공한 그의 긍정적인 인생관이 잘 묻어 나오는 작품이지요.

■ 엄마의 이름

종종 어린 시절의 사진첩을 꺼내보며 엄마에게도 젊고 아름답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고마움, 미안함 등 여러 감정이 밀려옵니다. 엄마가 살았던 생을 우리가 다시 한 걸음씩 쫓아 걸어갈 때마다 새삼 그 한없는 사랑의 크기가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 마음에 꼭 와 닿는 시가 한 편 있습니다.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일해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한겨울 냇물에 맨 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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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전혀 끄떡없는

엄마는 /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 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죽여

/ 울던 엄마를 본 후론

아! /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심순덕 시인의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입니다.

시인은 1960년 강원도 횡계에서 아홉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특히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서른한 살 때 엄마가 세상을 떠나자 그리움에 사무친 나머지 이 시를 썼다고 하죠. 특히 마지막 한 문장이 우리의 마음을 크게 울리는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008년, 중국 쓰촨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건물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많은 사람이 그 아래 깔리게 됐습니다.

수많은 구급대원이 생존자를 찾기 위해 곳곳을 수색했는데, 어떤 곳에서 한 여성을 발견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미 몸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죠.

그런데 그 자세가 특이했습니다.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있었고 자세는 구부린 채로 무언가를 감싼 모습이었습니다. 식사 도중에 지진이 일어나자 떨어지는 잔해를 황급히 온몸으로 막은 겁니다. 구조대원이 조심스럽게 여인의 몸을 들어 올리자 거기에는 꽃무늬 담요에 싸인 갓난아이가 평화롭게 쌕쌕 숨을 내쉬고 있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죠. 담요 한에는 휴대폰이 있었는데 이런 메모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가야. 네가 살아 있다면 이것만은 꼭 기억해주렴,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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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린 채 살아온 엄마의 이름 또한 종종 불러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00 엄마'로 살아온 인생 또한 행복하고 기뻤다고 말씀하시겠지만 우리를 위해 기꺼이 이름을 버렸던 엄마에게 다시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는 행복을 되찾아 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테니까요.

사랑하기에 더 미안한 마음을 잘 표현한 글이 있습니다.

‘엄마는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죽음을 미안해했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한 문장입니다. 평생 많은 걸 희생하고도 죽음에 이르렀을 때 그 죽음조차 미안해하는 마음, 얼마나 큰 사랑이 있어야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이런 엄마의 마음을 생각할 때면 저 역시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미안해집니다.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사랑한다’는 말로 다 담아내지 못한 마음을 그렇게 ‘미안하다’는 말로 대신 전하게 되는 것이겠죠.

■ 우리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요

‘사랑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든 악마든 그 어떤 것이든,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사랑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영혼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처럼 우리 심장을 가득 채우고 또 묶는 것은 없다.’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움베르토 에코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단테가 처음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은 불과 아홉 살 때였다고 합니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베아트리체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단테는, 9년이 지나 다시 한번 그를 마주치게 되자 그만 사랑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그 사랑은 베아트리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스물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에도 변하지 않았죠. 단테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신곡>이라는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 작품에서 베아트리체는 위대한 성녀이자 구원자로서 주인공을 지옥과 연옥을 거쳐 천국까지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맡습니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사랑은 그야말로 플라토닉러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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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사랑은 상호적인 게 아니라 일방적입니다. 베아트리체는 생전 단테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죠. 단테의 사랑은 위대했지만 어디까지나 짝사랑이었고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며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랑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겪은 끝에, 마침내 저는 사랑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사랑한다고 서로 완전히 똑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한몸 같이 가까운 연인이라 하더라도, 정말 한 사람처럼 매 순간 모든 감정을 공유할 순 없죠. 연인에게도 서로 적절하게 빈 공간이 있어야 아픔이나 분노, 상처가 빠져 나갈 수 있고, 또 기쁨과 애정이 채워질 수도 있습니다.

서로 배려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때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다 성장할 수 있죠. 이처럼 사랑은 관계의 수평을 찾는 일입니다.

연인이라고 온종일 서로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평소 묵묵히 각자 일을 하다가도 함께할 땐 손을 꼭 잡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거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감정과 일상과 체온을 유지하면서 말입니다. 바로 생텍쥐페리가 남긴 말처럼 말이죠.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 더 많이 사랑하는 당신이 강한 사람

연인에게 “내가 더 많이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약자가 되는 행동이 아니죠. 오히려 사랑을 더욱 키우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말입니다. 사랑은 누가 얼마를 주고 얼마를 받았는지 손해와 이익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관계니까요.

사랑을 시작할 땐 누구나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많은 사랑에는 안타깝게도 수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사랑이 끝날 때도 사랑에 소홀했던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했던 사람이 더 성장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상처를 받지만, 결국 그 상처가 아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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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면 더욱 단단해지는 거죠. 그런 사람은 헤어진 연인에게도 “넌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고, “너를 사랑해서 행복햇어”라고 말할 수 있 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한 사람에게는 어떤 아쉬움도 없고, 후회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상대를 더 많이 사랑함으로써 기꺼이 약자가 되겠다는 마음은, 사실은 정말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지요.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을 시큰둥하게 여기거나 아니면 그 사랑으로 인해 오히려 오만해진다면 그 사랑은 참으로 슬프고 낭비적인 사랑이다.”

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장영희 교수는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책에서 사랑의 올바른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시작하는 마음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사랑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라는 거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일을 당연시해서 시큰둥해지거나 오만해지는 사람은 사랑을 낭비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지금 그런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면, 그런 행동 때문에 상처받거나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많이 사랑한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랑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지요.

사랑에 대한 가장 오래된 고전은 플라톤의 <향연>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 고대 그리스 현자들이 모여 함께 술을 마시며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담아낸 철학책이지요. 그 자리에서 파우사니아스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오직 아름답게 사랑을 할 때만 가치가 있다고 말이죠. 즉, 상대를 올바르게 사랑하고 아끼고 존중하며 소중히 할 때만 비로소 사랑은 고귀하고 순수해 집니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이도우 작가의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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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책꽂이에서 발견한 남자 주인공의 시집에 나오는데, 참 예쁜 말이면서도 사랑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문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나보다 상대의 안부를 먼저 묻는 마음이야말로 바로 사랑일 테니까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 마음을 의심하지 마세요.

더 아낌없이 사랑을 주세요.

정말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당신의 소중한 마음을 알아줄 테니까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 모든 인연에 끝이 있다 하더라도

인연이라고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인 피천득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인연>의 다음 문장일 겁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담백하면서도 감성적인 문체로 작가가 도쿄로 유학을 갔을 때 만난 인연에 대해 다룬 글입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인연의 애틋함과 아쉬움을 잘 표현하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장수>라는 그의 또 다른 에세이도 좋아하는데요. 그 글을 통해 인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많이 배웠습니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를 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하였다면 그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하였다 하더라도 감추어둔 보물의 제목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그저 하루하루 기계처럼 살아 온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는 문장입니다.

인연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좋은 인연이 눈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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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면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거죠. 물론 그럼에도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는 나쁜 인연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그런 아픔을 위로해주는 좋은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하나하나 재고 따지며 가식적으로 꾸미지 말고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맺는 가장 중요한 관계인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인연이 나와 함께할 인연인지 알 수 없다면, 우리가 마주하는 그 모든 인연에 대해 가져야 할 자세는 하나입니다. 진심 그대로를 보여주는 겁니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쓰거나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걱정하는 대신 말이지요.

■ 매일 조금씩 곁으로 다가와 줘

“사람들은 더 이상 뭔가를 알아갈 시간도 필요하지 않아. 이미 만들어진 채 상점에 진열된 것만 사지. 사람들에게 친구가 없는 건 친구를 파는 상점이 없기 때문이야. 그런데도 만약 내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한번 길들여보렴.”

사막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그럼 어떻게 해야 사막여우를 길들일 수 있는지 묻자 이렇게 대답하지요.

“매일같이 조금씩 곁으로 다가와 줘. 매번 같은 시간에 와주면 더 좋아. 만약 네가 매일 오후 네 시쯤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의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1943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특히 ‘어른을 위한 책’이라고 작가가 밝힌 것처럼, 성인이 읽어도 무척 뜻깊은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정이 꼭 필요합니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즐거운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죠. 애써 꾸미지 않고 허물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 자기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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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을 치장하기 바쁜 시대에 허물을 벗고 온전한 자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 혹시 그런 우정이 있나요? 어떻게 해야 그런 우정을 쌓을 수 있을까요?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할 때마다 떠올리는 글이 한 편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 끌고 찾아가도 좋은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으랴.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리라.”

유안진 시인의 에세이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한 구절입니다. 섬세하고 유려하면서도 따뜻한 문체가 돋보이는 글이죠.

언젠가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친구라면 어떤 가치관으로 인생을 살아가는지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속에 있는 깊은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게 삶을 좀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는 좋은 우정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런 우정의 중요성을 김영하 작가의 에세이 <말하다>를 읽으며 더 확신하게 됐습니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낭비 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 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이십대 젊을 때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러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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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에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인연은 노력하지 않으면 멀어지고 끊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랑도 우정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는 적어도 머리로는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우정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좀 더 소홀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번 끊어진 관계의 끈을 회복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만큼 우정을 위해서도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 많은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

취향을 넓혀주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마음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친구.

내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성장시켜줄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당신 곁에 언제나 함께하기를.

■ 오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현대 심리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아들러 역시 <아들러의 인간이해>라는 책의 앞부분에 이렇게 털어놓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인간에 대한 이해 없이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그 결과 서로 낯설어졌다. 우리는 자식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탄하는 부모와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자녀들을 자주 본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 이해에 대해 무지하면서도 스스로 인간을 잘 안다고 자처하며, 또한 짧은 지식을 가지고 남을 가르치려 든다.”

오스트리아 빈의 한 시민대학에서 1년간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이 책에서 아들러는 인간을 이해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 놓습니다.

김연수 작가 역시 단편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의 말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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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에 회의적이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 4부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 나의 세계를 살피다

■ 당당하고 자유롭게

당신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로 사는 것입니다”라고요. 이 대답을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모두 나로 살고 있잖아?’하고 말이죠.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분들에게 저는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은 정말로 ‘나답게’살고 있나요?

아마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분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단지 나로 사는 걸 넘어서, 나답게 산다는 건 좀 더 실존적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니까요.

슬픈 현실이지만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보다 사회가 정해 놓은 틀에 갇혀 하고 싶지 않은 일과 관계 속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아잔 브라흐마 스님은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건넵니다.

한 스님이 절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공사를 마치고 보니 한쪽 벽면에 벽돌 두 장이 눈에 거슬리게 튀어나와 보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이 벽돌을 싹 허물고 다시 쌓아야 하나’ 날마다 걱정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방문객이 절을 둘러보다 그 벽을 가만히 보더니 스님에게 정말 아름다운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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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며 칭찬을 했습니다. 스님은 의아한 생각이 들어 그 벽엔 벽돌 두 장이 잘못 튀어나와 있다고 말했지요. 그러자 방문객은 스님을 보고 빙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눈에는 잘못 얹힌 벽돌 두 장도 보이지만 그보다는 훌륭하게 잘 쌓여있는 아흔여덟 장의 벽돌이 훨씬 더 잘 보입니다.”

누구에게나 ‘벽돌 두장’ 정도의 부족함은 있기 마련입니다.

“사랑을 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수도 없듯이 스스로를 불신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라. 우리 자신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다. 적어도 나에게 나라는 존재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독일의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의 한 구절입니다. 저자는 나 자신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풀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에 굉장히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나의 단점을 지적하는 상대의 말에 무조건 수긍하지 말라는 말이 도움이 됐죠. 또한 스스로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기면서 자신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풀라는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김수현 작가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린 최종적인 결론은 세상이 나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길지라도 나는 나를 존중하고, 나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도 된다는 거였다.

결국 나다운 사람의 기초는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 작은 단점에만 매몰되어 다른 수많은 장점마저 스스로 평가 절하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나라는 사람은 유일합니다.

“그대에게는 무엇이 매일매일의 역사인가? 그것을 구성하는 그대의 습관을 돌아보라! 그것은 무수히 많은 사소한 비겁과 나태의 산물인가. 아니면 용기와 창조적 이성의 산물인가?”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던진 질문입니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선 바로 이런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게 중요합니다. 남의 말과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나다운 삶을 용기있게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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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렇게 나다운 삶을 기꺼이 큰 바다로 나아갈 용기를 낸 당신에게,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자신의 묘지명으로 새긴 격려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 살아간다는 건 이별을 마주한다는 것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와 어머니께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주위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친척들이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사실 어떤 위로의 말을 꺼낸다 해도 완벽한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저 잠시 곁을 내준 일에 감사할 뿐이지요.

슬픔은 그렇게 다가옵니다. 모두에게 각자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말입니다. 한 사람의 슬픔을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타인은 없습니다. 그래서 슬픔을 견디는 일은 근원적으로 각자의 몫입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서 화장터에서 털썩 주저앉아 목 놓아 우시던 모습은 지금까지 뇌리에 깊이 박혀 있습니다. 지병을 앓으셔서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꽤 있었음에도 그런 슬픔은 대비한다고 대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장례식 때 어머니의 모습에서 깨달았습니다. ‘만약 어머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 아픔을 감당할 수 있을까’하는 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필연적으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그의 부재와 마주하게 되는 걸 되는 걸 뜻하기도 합니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격언을 비틀어 “나는 애도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고 그것에 위로를 건네는 마음, 즉 애도를 통해서 만 우리는 ‘인간됨’을 지켜갈 수 있다는 거죠.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이기에, 사랑을 잃는 슬픔 역시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슬픔을 공부하고 애도를 공부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공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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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 생기는 빈틈, 우리는 모두 그런 상처를 품은 채 살아갑니다.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이렇게 웃고 떠들며 살아가도 될까? 혹시 내가 그를 깊이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하고요. 이런 생각은 대개 죄책감과 함께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별을 마주 했을 때 슬픔에만 계속 잠겨 있는 건 좋은 애도 방식이 아닙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는 오히려 이별 이후의 세상을 더 크게 웃고 떠들며 살아가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버리고 싶지 않은 사랑을 영원히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니까요.

언젠가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땐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도 마냥 반갑기만 했는데, 이제는 덜컥 겁부터 난다는 것이죠. 이처럼 누구나 만남보다 이별이 잦아지는 시기를 마주합니다. 이런 이별은 아무리 자주해도 익숙해지지 않지요.

■ 불가능한 꿈을 꿀 용기

돈키호테는 ‘진정한 기사’로서의 의무와 특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무적의 적수를 이기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이기고,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는 것, 잘못을 고칠 줄 알며,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는 것, 불가능한 꿈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별에 닿는 것!”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 그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믿음을 갖고, 마침내 별에 닿는 것! 다소 낭만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충분히 영감을 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대모험의 끝에는 돈키호테의 묘비명이 나옵니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작위가 없는 하급 쥐족)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우리는 <돈키호테>를 통해 불굴의 도전 정신과 결단력, 신념을 지키기 위한 강한 용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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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을 잃는 건 가벼운 손실이다. 명예를 잃는 건 꽤 큰 손실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건 모든 걸 잃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 소설가 폴 브르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아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머잖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 격언들은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서 있을 때마다, 제게 큰 용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행동하라. 무엇인가를 행하라. 하찮은 것이라도 상관없다. 죽음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의 생명을 의미 있는 뭔가로 만들라. 당신은 쓸데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서 태어났는지를 발견하라. 당신의 최소한의 임무는 무엇인가? 당신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다. 명심하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의 한 문장입니다.

누구도 쓸데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며, 사람이 태어난 임무는 사회나 다른 사람이 부여하는 게 아니라 오직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정말 큰 용기를 줍니다.

한 사람의 용기가 인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준 사례가 있습니다. 1970년 12월 7일, 어느 탑 아래에 과감히 무릎을 꿇었던 한 남자, 바로 당시 서독 총리인 빌리 브란트가 보여준 용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한 끔찍한 학살이 이루어졌던 현장인 폴란드 바르샤바에 세워진 유대인 기념비 앞에 선 그는 묵념과 유감 표명 정도만 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용기를 내어 무릎을 꿇고 사죄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인 총리로서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는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사죄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의 용기는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민족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사 문제에 대한 가장 훌륭한 모범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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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용기는 필요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바꾸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일 또한 큰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 잠시 용혜원 시인의 <내 마음을 물들이는 그대의 사랑>을 감상하겠습니다.

너를 바라보고 살고 있다. / 너를 생각하고 / 너를 사랑하면

/ 나에게는 희망이 다가오고 / 세상 모든 것이 / 다 내 것이 된다.

내 마음 속에 / 눈빛 스치며 웃고 있는 너를 / 못견디게 못견디게 그리워하며 / 가슴 아파하기보다는 / 사랑받기를 원한다.

너를 사랑하지 못하면 / 내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작아지고

/ 초라해져서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 내 짙은 그리움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 어디를 떠나도 갈 곳이 없다

사랑을 받지 못하면 / 캄캄한 어둠 속으로 / 빠져들어가는 것만 같다

/ 나는 내 마음을 물들이는 / 그대의 사람을 받고 싶다.

시인의 말처럼 사랑 없는 삶은 캄캄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갈 용기를 잃어버린 빈껍데기가 되는 거죠.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 용기있게 사랑해야만 합니다.

■ 한 사람이 내 삶의 의미가 돨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하고, 우리가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진짜 우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잊히지 않고 죽을 수 있네. 자네가 가꾼 모든 사랑이 거기 그 안에 그대로 있고, 모든 기억이 여전히 거기 고스란히 남아 있네. 자네는 계속 살아남을 수 있어. 자네가 여기 있는 동안 만지고 보듬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한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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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정과 기억이 남아 있다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문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죽음이 그저 끝이 아니라는 관계의 불멸성과 중요성을 잘 표현한 문장입니다.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행복해야만 하고 가장 큰 행복은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개인의 일방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도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관계인 것이죠. 따라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을 위해, 그리고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사랑해야 할 존재는 누구일까요?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새삼스레 그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가족입니다. 물이나 공기처럼 내 곁에 있는 것이 너무도 당연해서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거죠. 그때 가족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기게 해 준 문장이 있습니다.

“당신 옷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사랑하는 이가 죽은 후에 따라오는 이 질문을. 지금도 셀 수 없이 많은 집에서 하고 있겠지.(……) 그 질문은. 아무 대답도 허락하지 않는 은밀한 의문처럼 가까운 곳에서 계속 떠오른다오. 당신 옷 몇 점을 이 글에도 걸어두겠소.”

존 버거의 에세이 <아내의 빈방>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앞선 글을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떠나보낸 뒤 남은들이 해야 할 일들, 계속해서 삶을 살아내면서 떠난 이의 부재를 마주하게 되는 가슴 아픈 상황이 마음에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옷 몇 점을 이 글에도 걸어 두겠다는 말. 그 문장에 담긴 진심이 제게도 절실하고 생생하게 전해졌습니다.

당신이 / 내 삶의 의미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 세상을 보는 선량함과

/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을 / 키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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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으로 인해 /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 변질되지 않으며 /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 삶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와

/ 사랑에 대한 믿음을 / 온전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고도 보잘것없는 내 일상에 / 행복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고

/ 고귀하게 빛나는 하루하루와 / 따스한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사람

바로 당신이 내 삶의 의미입니다.

■ 낭만의 바다를 헤엄치는 법

내가 뭘 잊고 사는지, 뭘 찾아야 하는지 고민이 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일상의 기쁨과 낭만입니다.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인 김도훈 작가는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우울증으로 넘친다. 사람들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 그건 그저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다. 뇌가 보내는 불가피하고 불가역적인 신호다. 그걸 고백한다는 건, 병원을 제 발로 찾는다는 건, 자신을 다시 더듬어서 세상과 다시 연결지점을 찾겠다는 의욕이다. 그런 사람에게 필요한 건 다정함이다. 다정함이 당신의 친구들을 구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다정함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다. 하찮은 인간과 인간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살아낸다.”

이처럼 낭만은 단지 옛 추억을 떠올리고 그리워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세상을, 그리고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태도인거죠.

 

낭만이라는 단어는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가 로멘티시즘을 음차한 표현으로 단어에 담긴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현실에 메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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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나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뜻하죠. 능동적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시대인 만큼 낭만은 우리가 자유롭고 폭넓은 사고로 이상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추진력을 제공합니다.

세상이 감옥 같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자유를 되찾을 수 잇다는 감각, 그것이 바로 낭만인 것이죠. 낭만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개인이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 것, 작은 화분을 기르는 것, 잠들기 전 책을 읽는 것, 스스로 여유를 찾아내는 모든 것이 낭만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항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아닌 오직 내 감정에 충실해 나만의 아름다움, 나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 행복을 찾는 것이 바로 낭만적인 사람이 지닌 놀라운 능력이죠.

혹시 낭만은 청춘일 때나 누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

“나긋나긋한 몸매와 통통 튀는 용수철 같은 발걸음, 온 몸으로 발산하는 생동감, 삶에 대한 도전과 자신감, 모두 멋지지만,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아직은 낭만을 잃지 않고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영희 교수의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의 한 문장입니다.

작가는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를 “낭만을 잃지 않고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나이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누구든 낭만을 잃지 않고 달콤한 사랑을 계속할 수 있다면 청춘이 누리는 인생의 아름다움 역시 계속 누릴 수 있다는 뜻 아닐까요? 우리 모두 각자 자신만의 낭만의 바다를 간직한 채, 언제든 자유롭게 그곳을 헤엄치는 아름다운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 그리고 인생은 아름다워진다

“아들아, 아무리 현실이 이러해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란다.”

만약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아이와 함께 수용소에 갇힌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도무지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이런 현실 속에서도 아버지는 아이가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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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인생은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죠. 바로 오늘날까지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한 장면입니다.

혹시 <아홉 살 인생>이라는 책을 기억하시나요? 오래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위기철 작가의 소설인데요. 1960년대 경상도 산동네를 배경으로, 아홉 살 꼬마의 동심 어린 눈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정겹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습니다.

“사람은 결코 외톨이도 고독한 존재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된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그렇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겠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안이 될 때 말입니다. 인생은 함께 나눌 때 더 아름다워지는 법이니까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경제 성장의 뒤안길에 밀려난 힘없는 시람들의 모습을 연민과 동정의 시선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읽어보면 분명 감동 받으실 겁니다. 힘들고 지쳐서 죽은 줄만 알았던 민들레가 아름다운 꽃을 다시 한 번 피우기 위해 모진 겨울을 견디고 버텨낸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우리 인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저는 특히 “나도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친구들 덕분에 이젠 괜찮다. 우리 친구하자”라는 주인공의 말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을 때도 함께 위로를 나눌 사람이 있다면 인생은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시인 메리 올리버는 에세이 <완벽한 날들>에서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겨울 아침의 서리 사이로 반갑기 그지없는 소문이 들려온다. 미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걸 직감하는 게 평생 계절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고 기쁨이다.”

오늘 푸른 하늘을 몇 번이나 보셨나요? 구름의 모양은 어땠나요? 혹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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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길 길가 한 편에 피어있는 들꽃을 보셨나요? 이처럼 우리는 매일의 아름다움을 많이 놓치고 살아갑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문학 작품을 읽는 일도 그렇지요. 중요한 건 이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안목을 기르는 일일 것입니다. 일상에 있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아름다운 꽃이 되어 향긋한 내음을 온 세상에 풍길 수 있을 테니까요.

■ 너와 나, 우리는 이 세계에서 함께

언젠가부터 혼자 밥 먹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혼술 혼밥 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식당에는 1인 메뉴도 많아졌습니다. 혼자 있는 사람을 더 이상 어색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게 됐죠.

사람은 개별적인 존재인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태어나지도 살아갈 수도 없지요. 우리의 이름은 오직 다른 사람에게 불릴 때 의미가 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갇힌 게 아닌 이상, 다른 사람과 함께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지요. 사랑이나 우정 등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한 가치 중에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게 많죠. 그래서 심리학자이자 대중 철학자인 스벤 브링크만은 <철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우리를 ‘관계적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삶이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 일이며, 그것을 통해 그 사람 삶의 무언가를 자기 손에 쥐게 되는 일입니다.

브링크만은 우리의 삶은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건네고, 또 건네진 손을 붙잡는 여정이라고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건네고, 그 손을 붙잡는 것이 곧 삶이라는 문장은 우리가 관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정확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회성과 관계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우리가 예전처럼 대가족이나 집단주의로 회귀해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여야 하는지, 에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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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설명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사이에 ‘분업’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조건이 된다.”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프롬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이죠.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사랑과 관계, 행복에 대한 통찰이 가득 담겨 있는 철학 에세이 <사랑의 기술>은 1956년에 출간되어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 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혼자가 강조되는 오늘 날, 우리가 더더욱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다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죠.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으로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내 주는 행위이다.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는 대접이다.

우리는 세상을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당연히 행복해질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에 마음을 쏟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하죠. 오직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랑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그것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존재가 우리에겐 필요하니까요.

 

그러니 하루하루 삶이 버겁다면 / 혼자 힘들어 하지 말고

/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 사람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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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도 힘들 텐데 / 혹시 날 싫어하진 않을까 / 혼자 걱정하지 마세요.

어깨를 빌리고 마음을 털어놓고 / 또 어떨 땐 내 어깨를 내주면서

/ 슬프고 어려운 일들을 / 위로하고 위로받으세요.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원한다면 / 용기를 내서 먼저 사랑하셔야 합니다.

/ 왜냐하면 사랑은 / 사랑을 건넬 때 더욱 커지니까요

그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가 /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 정말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겁먹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 기꺼이 사랑을 주었으면 합니다.

/ 그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최고의 방법이자

/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 나오는 말

인생의 책들이 아니라 인생의 문장들인 까닭

저는 그저 조금 내성적이고, 책 읽고 좋은 글 나누는 걸 좋아했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책장을 펼치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빠져들었고, 아름다운문장을 만나면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습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거기에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의 깊은 사유가 녹아 있을 테니까요. 저는 그 문장들을 나침반으로 삼아 인생의 방향을 찾았고,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위로를 얻고 희망을 되찾았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시작하게 된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제가 느낀 감동을 나누고 싶었던 거죠. 그 시간들은 정말 환희와 경이의 연속이었습니다. 책과 문장을 매개로 남녀노소 정말 다양한 분들이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위로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으니까요. 마치 세상에 없던 특별한 공동체처럼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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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한번 펼친 책을 끝까지 읽어야 독서를 했다고 생각하거나 다독의 중요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저는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기 위해선 이런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권의 책, 몇 페이지의 독서를 통해 ‘인생의 문장’을 발견했다면, 그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 그 외에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책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에서도 ‘인생의 책들’이 아니라. ‘인생의 문장들’을 소개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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