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2)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2)
- 지식 생태학자의 관계 에세이 -
■ 유영만 지음
■ 생각을 뒤집지 않으면 관계도 뒤틀립니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도 온전히 내 생각이 아닙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생각 속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와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남들의 생각에 반응해서 생각한다. 내 머릿속에 들어온 오만가지 생각 중에서 몇 가지만 수태되어 새로운 생각으로 탄생한다. 생각은 본래 짝을 찾아 줄기차게 맞선을 보고 추파를 던지고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부모가 누군지 정확히 모른다. 나는 남들의 생각이 그저 내 기억 속에 조용히 자리 하나만 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의 스위치를 눌러서 특정 주제에 관한 내 신념을 비추고 상반된 관점을 나란히 배치해서 명료하게 밝히고 이제껏 상상한 적도 없는 낯선 방식으로 생각을 바꾸도록 자극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시어도어 젤딘의 <인생의 발견>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에서 내 생각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때 다른 사람이 생각을 빌려와서 주어진 난국을 돌파하는 능력을 ‘논리성’이라 정의 합니다. 우리가 알던 논리성과는 다른, 참신한 관점입니다.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으로 상대가 생각하는 관점을 일방적으로 재단하려고 할 때 소통보다 불통이 일어납니다. 내 생각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상대의 다른 생각을 받아줄 때 통념에서 벗어나게 되고 소통의 문이 열립니다.
통념은 일반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틀에 박힌 관념입니다. 이 관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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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개인은 물론 개인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통념이 굳어지면 고정관념이 생깁니다.
사람의 생각은 다른 생각과 마주치지 않으면 기존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끼리 오랫동안 만나면 편하기는 하지만 성장할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타성에 젖은 생활이 가져오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갈등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합니다.
■ 생각과 쓰기의 관계 : 생각만 하면 써지지 않습니다.
“생각을 정리해서 쓰기보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새로운 생각도 떠오릅니다.”
우리는 생각을 정리해야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뭔가를 표현하거나 쓸 때 깊은 생각을 거듭하면서 재료를 다듬고 정리해야 언어나 글로 표현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단 한 줄을 쓰면 두 번째 줄이 생각나고 그 다음에는 글에 담긴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와 글을 계속 이어서 쓰게 만들어 줍니다.
너무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글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하얀 백지를 놓고 생각만 반복하면 머리도 하얘집니다. 생각은 행동을 만날 때 다른 생각을 시작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뭔가를 모색하고 실험하면서 낯선 상황과 마주칠 때 더 좋은 생각이 납니다. 글을 직접 쓰면서 노력하고 애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생각이 글쓰기에 더 도움이 됩니다. 작가가 쓰는 글은 오랜 기간 숙고해서 생긴 생각의 자손입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무조건 쓰기 시작합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또 다른 생각을 줄기차게 불러옵니다. 그래서 생각은 머리로 고민한 산물이 아니라 몸으로 체험한 결과입니다.
■ 배움과 행동의 순서 : 하다보면 더 많이 배웁니다.
“배워야만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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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배워야만 행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배운다.” 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뭔가를 잘하기 위해서는 해당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 분야에 본격적으로 몸담기 전에 ‘배우는’ 과정을 거칩니다.
사람은 안다고 해도 그것대로 실천하지 않습니다. 이는 지행일치(知行一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순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는 만큼 행동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실천하는 가운데 배웁니다. 앎과 삶이 독립적으로 선행되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삶이 곧 앎이고 앎이 곧 삶입니다. 지행은 일치의 문제가 아니라 합일(合一)의 문제입니다. 지행합일은 앎과 행동, 지식과 실천의 이분법적 구분을 지양하고 삶 속에서 앎을 만들어가고 , 그런 앎이 곧 삶이 되는 과정을 중시합니다.
모든 앎은 그 앎이 생겨난 삶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삶으로 숙성된 앎은 그 자체가 삶이며, 삶은 곧 앎의 무대가 됩니다. 아무리 위대한 생각이나 아이디어라고 할지라도 내 몸으로 실험하고 검증하지 않으면 공허한 관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 바쁜 일상과 독서의 관계 : 읽지 않으면 바빠집니다.
“바빠서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읽지 않아서 바쁜 것입니다.”
한국 성인 10명 중에 4명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보통신 기술의 강국일지는 몰라도 사고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인 독서는 최빈국에 속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바빠서 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책 읽을 시간이 많아도 책을 읽지 않으려고 노력한 습관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것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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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결국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나태함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시간이 나도 다른 일을 열심히 한 다음, 남은 시간을 내서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나지 않거나 시간이 나더라도 책을 읽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해 온 결과입니다.
바쁜 시간에도 책을 읽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 돌아서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을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냅니다. 바빠서 못 읽는다는 말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 마음과 몸의 관계 :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입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몸이 마음을 지배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mind)이 몸(body)을 지배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몸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마음이 몸을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을 때는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즉 몸이 건강할 때입니다. 극한의 한계상황이나 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마음이 아무리 몸을 지배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몸은 마음이 거주하는 우주입니다. 몸이 망가지면 마음도 망가집니다. 몸은 한계에 맞닥뜨리거나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빠졌을 때는 마음이 뭐라고 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합니다. 마음은 몸이라는 집에서 살아갑니다. 집이 무너지면 마음이 거주할 집도 같이 없어집니다. 그때는 마음도 통제할 수 없는 난국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 피하기와 즐기기의 관계 : 즐기면서도 피할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게 아니라 즐기면 피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는 밀레니엄 세대와 조직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나의 행복을 찾아가는 기성세대는 일하는 방식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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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이고 직업관과 가치관이 전혀 다릅니다. 팀원이 바라보는 팀장은 권위주의가 심하고, 잔소리만 하고, 강압적이고, 썰렁한 유머나 지껄이는 존재입니다. 반대로 팀장이 보기에 어린 팀원들은 개인주의가 심하고, 기본적인 예의가 없고, 할 말은 다하지만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고,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기성세대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듣고 참고 견디면서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피할 수 없어도 피하라.”라고 주장합니다. 피할 수 없는 일을 즐기다 오히려 내 몸만 망가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세대들은 피할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억지로 일하지 않습니다. 피할 수 있는 일은 피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과 행복, 재미와 의미도 인간관계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추구하다 행복을 잃어버리고 의미를 추구하다 재미가 실종됩니다.
■ 방법과 실행의 문제 : 실행 속에 방법이 숨어 있습니다.
“방법이 있어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을 하다보면 방법이 생깁니다.”
방법은 실행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방법을 알아야 실행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다보면 그 속에서 어떻게 실행하는지를 압니다. 시행착오를 겪어보고 실패 체험도 해보는 가운데 이전보다 더 잘하는 방법을 체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실천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복잡하고 역동적이며 불확실 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일이 갑자기 부각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는 비결은, 어느 정도 방법을 구상하면 바로 실천에 옮기고 순간순간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지혜를 축적하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다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색다른 방법도 떠오릅니다. 방법은 시작하기 전에 완벽하게 구상하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작하고 모색하며 실험하다보면 생겨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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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은 눈물겨운 것이다. 방법은 실행 속에 있다.”
이영광의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눈물겨운 실행 속에 눈물 나는 방법이 나에게 선물로 다가옵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되지 않는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Ⅱ>에 나오는 말입니다.
■ 힘든 일과 힘의 생성 : 힘들어야 힘이 들어갑니다.
“힘이 있어야 힘든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힘든 일을 해봐야 없었던 힘도 생깁니다.”
힘을 기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힘든 일을 극복하는 과정에 나를 던져보는 것입니다. 힘든 상황에서 힘을 쓰다보면 없던 힘도 생깁니다. 운동을 할 때도 내가 들 수 있는 무게보다 한 단계 높은 무게를 들고 반복해야 힘이 길러집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생긴 힘은 더 힘든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 하우스 배추보다 노지 배추로 담근 김치가 맛있는 이유는 자연에서 자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닭장에서 사육한 닭보다 야생에서 뛰놀면서 자란 닭이 더 건강한 이유는 자연에서 뛰놀면서 건강한 몸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공 재배한 인삼보다 자연에서 자란 산삼이 약효가 뛰어난 이유는 그만큼 자연의 기운을 온몸에 받으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은 몸을 쓰지 않고 의자에 앉아 모든 일을 처리하는 체어맨이 되어갑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만 힘든 일이 발생해도 그것을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 포기와 도전의 관계 : 가끔은 포기해야 길이 열립니다.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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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뭔가를 시작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내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으로 칭송받는 사회입니다. 중간에 포기하면 마치 의지력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입니다. 과연 모든 상황에서 이 말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 삶을 불행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다가 진짜 죽을 수도 있습니다.
6박 7일 동안 250 Km를 달리는 사하라사막 마라톤 3일째 120Km 지점에서 탈진 상태로 위기를 만난 사람이 레이스 도중에 포기한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용납되지 않았지만 고민하던 레이스를 포기하고 돌아오면서 남긴 세계적인 명언이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마라.”였습니다.
■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 공부는 육체노동입니다.
“공부는 앞으로의 삶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삶으로 앎을 평가하는 과정입니다.”
공부는 책상에서 하는 ‘정신노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몸으로 하는 ‘육체노동’입니다. 진자 공부는 책상에서 배운 앎으로 삶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삶에서 건져 올린 체험적 깨달음으로 앎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몸을 공부하는 사람은 현실 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관념적인 공부를 증오합니다.
지리학자가 지리 공부를 하려면 지리를 몸으로 배워야 합니다. 책상에서 지리를 머리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땅을 밟고 다니면서 지리학을 정립해야 합니다. 경영학자가 경영자에게 도움이 되는 경영학적 조언이나 자문을 제공하려면 경영 현장에서의 체험적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경영학자 보다 구멍가게 경영을 잘 하는 이유는 경영학적 지혜를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교육학자가 교육자에게 실무적 지침을 제공하려면 실제로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워본 체험적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학자의 관념적 이론만으로는 현장 적용이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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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집을 그리라고 하면 지붕부터 그리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지붕부터 그리지 않습니다. 터를 닦고 뼈대를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일하는 사람의 평범한 논리는 현장 논리대로 배움을 만들어나갑니다. 책상지식으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전개하기보다 현장에서 온몸으로 배운 깨달음으로 앎을 만들어나갑니다.
진정한 앎의 근원지는 삶입니다. 삶이 앎을 만들어 내는 운동장이자 놀이터입니다.
◎ 3부 뭔가 다른 이런 사람 되세요.
■ 뭔가 다른 사람은 뭐가 다른가요?
뭔가 다른 사람은 남다른 사람이 아니라 색다른 사람입니다. 남다른 사람은 언제나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색다른 사람은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남다른 사람의 경쟁 상대는 언제나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지만 색다른 사람의 경쟁 상대는 어제의 나 자신입니다. 남다른 사람은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색다른 사람은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사소한 일상에서도 비상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 냅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평상시 마주치는 사소한 사물이나 현상도 어제와 다른 의미를 지닌 것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사람입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자세와 방식도 다릅니다. 강요하기 전에 뭔가 다른 내가 되어야 인간관계를 튼실하게 만드는 다리가 건설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땀을 흘립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침을 흘리지 않고 땀을 흘립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몸을 직접 움직여 땀을 흘릴 시간이,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오랫동안 컴퓨터로 하는 정신노동은 늘어나고 있지만 몸을 움직여 육체노동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근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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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화하고 머리는 더욱 복잡해진 상황입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이 건강한 이유는 적당한 운동과 노동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근육에 힘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면서 땀을 흘립니다. 그런데 남의 일에 열광하면서 침을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땀과 침의 차이는 결국 열정과 열광의 차이입니다. 열정은 내 일에 몰입하는 것이고, 열광은 남의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땀은 수고와 정성에서 나오고 침은 시기와 질투로 인해 흐릅니다. 또한 침은 가만히 앉아서도 흘릴 수 있지만 땀은 몸을 움직여 고된 노동을 해야 나옵니다. 땀은 노력의 결과로 나오는 긍정적 산물이지만 침은 남의 성취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부정적 산물입니다.
앉아서 우유를 받아먹는 사람보다 밖에 나가서 우유를 직접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이유는 땀을 흘리기 때문입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겸손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 위에 ‘겸손’을 갖고 다닙니다.”
사람은 저마다 왼손과 오른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업적과 성취를 만들어 갑니다. 장인의 손에 있는 흉터는 누구든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전문성과 실력을 나타냅니다. 실력은 무수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 끝에 몸으로 축적한 흔적입니다. 실력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숱한 도전 과제를 넘으며 그 사람 특유의 전문성으로 축적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왼손과 오른손 외에도 항상 한 가지 손을 더 갖고 다닙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실력을 가진 사람이 겸손하면 더욱 빛나 보입니다. 겸손은 실력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인간적 가치입니다. 진짜 실력은 겸손한 미덕에서 나옵니다. 내가 가진 실력은 나의 노력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이 음으로 양으로 도와준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내 실력을 나 혼자만의 사투로 일궈낸 전문성이라고 생각하면 교만입니다. 이럴 경우 실력은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행사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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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은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나의 전문성이지만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실력은 상대와의 깊은 인간적 신뢰 속에서 축적되고 발휘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시간이 ‘나서’ 뭔가를 하지 않고 시간을 의도적으로 ‘내서’ 뭔가를 합니다. 시간이 ‘나서’하는 사람보다 시간을 ‘내서’ 하는 사람이 내일을 주도 합니다.
시간은 언제나 나지만 시간을 일부러 내는 사람이 뭔가를 합니다.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와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로 구분됩니다. 시간이 나서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시간을 내서 의도적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저마다 다른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크로노스보다 카이로스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 바꿔갑니다.
그래서 3M의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1. 내가 보내는 매 순간(Moment)을
2.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Memorable)로
3. 만들어(Make) 보라.
■ 뭔가 다른 사람은 ‘지금까지’ 보다
‘지금부터’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는지 보다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잘못했어도 ‘지금부터’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대로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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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았으면 지금부터 다른 방식을 찾아 노력하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끄트머리’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곤 합니다. ‘끝에서 다시시작(머리)’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는 ‘끄트머리’는 끝에서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다시 도전하라는 용기를 전해줍니다.
끝(end)과 끝(end)을 수없이 연결하는 ‘그리고(and)’가 있어서 우리의 삶 자체가 끝과 끝을 이어가는 ‘그리고’의 향연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잘한 것을 너무 자랑하면 과거의 향수에 취한 꼰대가 되기 쉽습니다. 과거 없이 현재는 존재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는 미래를 꿈 꿀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나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잔머리를 쓰지 않고 몸을 움직입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요리조리 머리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세상은 요리조리 쓰는 머리가 바꾸지 않고, 이러저리 움직이는 몸이 바꿔나갑니다.
“숙고하는 것이 손전등이라면 행동하는 것은 전조등이다. 행동의 빛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훨씬 더 멀리까지 비춘다. 그러므로 흥미롭고 새로운 장소로 나아가려면 고민의 손전등을 꺼야 한다.”
롤프 도벨리의 <불행 피하기 기술>에 나오는 말입니다. 앉아서 요리조리 잔머리 굴리면 손전등처럼 가까운 곳만 비출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하지만 나가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가며 실천해보면 전조등처럼 멀리까지 비출 수 있는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머리로 생각만 하지 말고 손발을 움직여 실천하다 보면 생각하는 머리의 한계도 압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내려오는 연습을 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잘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내려온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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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성공한 사람은 잘 올라간 사람이 아니라 내려온 사람입니다. 등반가의 성공은 등산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하산으로 완성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잘 올라갈 것인지만 염두에 두고 노력합니다. 우선 올라가고 보자는 발상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잘 올라갔어도 잘 내려오지 못하면 올라가서 이룬 성취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됩니다.
비행기도 이륙할 때보다 착륙할 때 사고가 많이 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갈 것인지를 염두에 두고 남보다 잘 하기 위해 오늘도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목표 달성으로 느끼는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즐길 여유는 점점 더 없어집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정상에 시비를 겁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니라 비정상(非正常)입니다.“
정상(頂上)에 간 사람은 ‘정상(正常)’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생각으로 정상에 간 사람은 없습니다. 정상에 간 사람은 모두 ‘비정상(非正常)’입니다.
세계 최초로 높이뛰기를 반대 방향으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높이뛰기 선수는 모두 배가 땅을 향하도록 해서 앞으로 넘었습니다. 당시 앞으로 뛰어넘는 사람들의 한계는 2m 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정상에 도전한 사람,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때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배가 하늘로 향하도록 해서 뒤로 넘는 높이뛰기 선수가 등장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높이뛰기의 전설, 딕 포스버리(Dick Fosbury)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지금은 포스버리 플롭, 즉 배면뛰기가 높이뛰기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하나같이 비정상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비정상적인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당했을 때 비로소 잉태됩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몰상식’한 사람이 ‘상식’을 뒤집습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면 사람들은 처음에 무시합니다. 그리고 조소와 조롱을 보내거나 저항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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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서서히 세상을 움직이는 화두로 바뀌면서 몰상식한 사람은 마침내 세상을 이끄는 사람으로 부각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꾸미지 않고 가꿉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꾸미는 사람이 아니라 가꾸는 사람입니다.”
‘꾸미는 사람’은 자신만의 컬러와 스타일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감추기위해 위장하고 변장합니다. 그러나 ‘가꾸는 사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컬러와 스타일이 있기에 본질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꾸미면 자신의 본질이 감춰지지만 가꾸면 자신만의 색다름이 드러납니다.
꾸미는 사람도 노력은 합니다. 하지만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서 결국 자기만의 색깔을 잃어버립니다. 반면 가꾸는 사람은 전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면서 자기만의 색깔을 더욱 드러냅니다.
꾸미는 사람은 남다름을 추구하고 가꾸는 사람은 색다름을 추구합니다.
자신을 꾸미면 꾸밀수록 꿈에서 멀어지지만 가꾸면 가꿀수록 꿈에 점차 가까워집니다. 꾸미는 과정에 몰두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게 되지만 가꾸는 과장에 몰두하면 나다운 고유함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꾸미는 사람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컬러풀(colorful)을 선호합니다.
자신을 위장하는 컬러링과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컬러풀은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거울과 창문을 다르게 활용합니다.
“뭔가 다른 사람은 거울과 창문을 사용하는 방법도 남다릅니다.”
훌륭한 리더는 ‘거울과 창문’을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 때문에’라는 말보다 ‘덕분에’라는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훌륭한 리더는 뭔가 잘못되었거나 기대했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에는 ‘거울’을 바라보며 자기반성을 합니다.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잘 풀릴 때는 ‘창문’을 내다봅니다. 바깥 환경이나 주변의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준 덕분에 일이 잘 풀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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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자기반성의 도구이고 창문은 밖을 내다보는 문입니다. 똑같은 거울과 창문일지라도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는 지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기능으로 쓰입니다.
거울을 반성과 성찰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주기적으로 거울을 보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인지를 점검합니다. 거울을 자화자찬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은 뭔가 일이 잘 될 때만 거울을 바라보고 자신의 업적을 스스로 높이 평가합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이 되세요.
오늘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내가 누구와 소통하는지, 어떤 사람과 만나 무슨 대화를 주고받으며 인간관계를 맺어왔는지가 나를 결정합니다.
만나서 기분이 좋은 사람은 대화의 기본을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담백한 담화로도 따뜻한 정감이 스며들게 만듭니다. 만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입으로 한 가지 말할 때 두 가지를 듣는 사람이고, 자신이 흥분하기보다 상대의 흥을 돋우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사람입니다.
■ 상대의 흥을 돋우는 사람이 되세요.
“맞장구를 쳐주면 상대는 더욱 신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흥’은 재미나 즐거움을 일어나게 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혼자만 흫이 나는 경우와 더불어 흥이 나는 경우가 잇습니다. 혼자 흥이 나는 경우는 다소 난감합니다. 혼자 흥분해서 말하면 상대는 기가 죽어서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는 전혀 감흥이 없는데 혼자서만 신나서 떠들어 댑니다. 화가 나서 흥분한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흥을 돋우는 진정한 소통이 되려면 맞장구가 일어나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공감대역이 넓어지면서 맞장구가 있을 때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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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할 때도 흥을 돋우는 사람을 만나면 제미가 납니다. 뭔가 일이 잘 될 것 같습니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효과가 없을 거리고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그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생기고 비관적인 생각보다는 낙관적인 생각이듭니다. 좋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밖에 없습니다.
■ 지적하기보다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세요.
“장점을 강화해 주는 소통은 상대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줍니다.”
허물은 가능성을 품고 있는 선물이자 보물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허물은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고 인정하기도 힘듭니다. 인간미는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고 고백하는 거운데 나옵니다. 또 상대의 허물을 눈감아 주고 인정해줄 때 연대가 생깁니다.
사람은 저마다 부족함을 지닙니다. 부족한 사람이기에 그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실수를 범합니다. 실수(mistake)가 큰 실패(failure)로 가지 않도록 반성하고 성찰하면 체험적 지혜를 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실수나 실패는 모두 배움의 소중한 원천입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단점은 갖고 있습니다. 단점은 쉽게 보완되거나 장점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단점을 지적 한다고 해서 쉽게 개선되지는 않습니다.
단점을 지적하면 의기소침해지지만 장점을 지지하면 자기만의 지도를 갖고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떠납니다. 끊어진 단점의 고리를 연결하기보다 이미 굳건하게 연결된 장점의 고리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조언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소통은 단점을 지적하기보다 장점을 발견해 주고 칭찬해 주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장점을 강화해주는 소통이야말로 상대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열어줍니다. 가능하다고 믿을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행동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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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사람이 되세요.
“입으로 한 가지 말 할 때 귀로 두 가지를 들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남의 험담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은 가급적 피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데도 함부로 상대를 평가하고 폄훼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우연히 당사자를 만날 기회가 있어 자초지종을 들어보면 사실과 다르거나 오해로 빚어진 내용이기도 합니다.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 시간에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내가 살아오면서 보고 느끼고 배운 나의 이야기를 할 때 대화는 담백해집니다.
입은 내가 통제할 수 있지만 귀는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입으로는 가급적 적게 말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귀로는 많이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널리 존경 받는 사람은 입담보다 경청의 달인입니다.
귀(貴)하게 대접받고 싶으면 ‘귀(耳)’를 기울여야 합니다. 귀를 열려면 입을 닫아야 합니다. 적게 말하면 내 말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적어집니다. 나를 낮추고 상대의 말을 경청할수록 상대가 높아지고 덩달아서 나도 높아집니다.
경청하지 않는 사람,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치고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없습니다.
■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세요.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마음을 훔치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오히려 단순합니다. 그러나 단순하다고 위대해지지는 않습니다. 단순하다는 이야기는 사고가 단순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단순함은 치열함의 결과이고, 복잡함은 나태함의 산물입니다. 단순함에 이르기 위해서는 핵심과 본질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야합니다.
머리로 이해한 내용이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는 30년 걸린다는 말도 있습니다. 머리와 가슴사이의 30cm 거리를 좁히는 데 무려 3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는 논리적 설명이 감성적 설득으로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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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훔치는 ‘마음도둑’입니다. 의미를 머리에 꽂으려고 하면 골치 아파 하지만, 의미를 심장에 꽂으면 ‘의미심장’해 집니다. 그만큼 마음으로 들어와야 순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입니다.
설명은 이해를 불러오지만 이해가 무조건 행동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들어가 설득을 하면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그 감동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행동하게 만들려면 감동시키면 됩니다. 상대를 감동시키려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 말한 대로 살아가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되세요.
“말한 대로 살아가는 메신저의 진정성이 무든 것을 압도합니다.”
눈 맞은 남녀가 보내는 눈빛을 본 적이 있습니까? 어떤 장애물도 필요 없고, 높은 장벽도 단번에 무너집니다. 한마디로 속수무책입니다. 그만큼 가장 강력한 빛이 눈빛인 것입니다. 반면에 가장 큰 상처를 주는 총은 눈총입니다. 눈총을 쏘면 아프고 상처받지만 따뜻한 눈빛을 보내면 엄동설한의 눈도 녹아 없어질 정도로 온 세상이 따뜻해집니다.
눈은 눈빛으로 말을 하고 입은 진심으로 말을 합니다. 진심은 ‘참된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원천은 따뜻한 가슴입니다.
신뢰는 몸으로 말해야 생깁니다. 입으로 말하는 사람,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못한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의 몸은 중심을 잃고 휘청댑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 따르면 설득을 할 때에는 인간적 신뢰감에 해당하는 ‘에토스(ethos)’와 감각적 설득력에 해당하는 ‘파토스(pathos),’그리고 논리적 설명력에 해당하는 ‘로고스(logos )’가 각각 6:3:1의 비중으로 작용한다고 합니다.
■ 핑계를 줄이고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세요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면 상대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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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상황이거나 약속을 아예 지키지 못했을 때는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약속날짜에 임박했을 때 전화해서 갑자기 일이 생겨서 약속을 연기해야겠다고 합니다. 거의 습관적입니다.
그가 대는 핑계는 한결같습니다. 언제나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합니다. 핑계는 또 다른 핑계를 낳습니다.
핑계가 자주 생기면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밥맛이 있는 사람과 소통할 때 밥맛은 배가 됩니다. 밥맛이 있는 사람과 마주 앉아 밥을 먹기에도 시간이 턱없이 짧습니다.
■ 뭔가 다른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줍니다.
괴테는 “내 곁에 있는 사람, 내가 자주 가는 곳, 내가 읽는 책들이 나를 말해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내가 만나는 사람, 나의 체험, 그리고 내가 읽는 책을 물어보면 됩니다.
“미래는 손에 검어 쥘 수 없는 것이며, 우리를 엄습하여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다. 미래 그것은 타자이다. 미래와의 관계, 그것은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이다.”
에마누엘 레비나스가 쓴 <시간과 타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지옥 그것은 타자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자’가 지옥이라면 그 누구도 만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옥처럼 느껴지는 타자도 만날 수 있지만 무한한 깨달음을 주는 타자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발적 마주침이 나라는 사람을 바꿔갑니다. 지인의 소개로 모임에 나갔다가 명함을 교환하면서 서로의 관심사를 이야기 하다가 생각하는 방식에서 공감되는 바가 크면 만남의 계기를 만들어 또 만남을 이어갑니다. 매번 같은 사람을 만나지만 다른 차이로 다가오는 사람일수록 또 만나고 싶어집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는 지금 여기서 알 수 없는 가능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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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떤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점프하는 방식이나 현재 지니고 있는 가치관의 틀을 ‘부수는’ 방식이 자신과 같은 사람과 만나기는 힘들다.”
우치다 타츠루의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에 나오는 말입니다. 생각이 같은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필요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의 특이함을 공유하는 만남은 샤르트르가 말하는 ‘지옥으로서의 타자’가 아니라 레비나스가 말하는 ‘나의 미래를 바꾸는 진정한 타자’입니다. 나는 나의 미래가 결정하고 나의 미래는 내가 누구를 만나는지가 결정합니다. 나의 미래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과 또 다른 타자와의 우연한 마주침이 결정합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날지 지금 여기서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 인간관계가 바뀌어야 변화가 완성됩니다.
예측할 수 없이 우연히 만들어지는 인간관계가 관계속의 사람을 바꾸어 갑니다. 사람의 변화는 곧 관계의 변화를 전제로 합니다.
“자기변화는 최종적으로 인간관계로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기술을 익히고 언어와 사고를 바꾼다고 해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뀜으로서 변화가 완성됩니다. 이것은 개인의 변화가 개인을 단위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변화는 옆 사람만큼의 변화밖에 이룰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기가 맺는 인간관계가 자기 변화의 질과 높이의 상한입니다. 같은 키의 벼 포기가 그렇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잔디가 그렇습니다.”
신영복의 <담론>에 나오는 말입니다.
나는 혼자 성장하는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더불어 성장하는 ‘관계’의 다른 이름입니다. 나의 실력도 나 혼자 발휘하는 독립적 역량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사회적 상호 작용의 산물입니다.
“다른 사람과 아무런 내왕이 없는 ‘순수한 개인’이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소설 속에나 있는 것이며, 천재란 그것이 어느 개인이나 순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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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이아니라 오랜 중지(衆智)의 집성이며 협동의 결정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 따라 위치는 물론 본질과 운동 방향도 바뀝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존재는 독립적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개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개체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부단히 변신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변화를 위한 자극을 주고받을 때 관계는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장치가 됩니다. 좋은 관계라야 좋은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풀어주는 관계는 상대와 수평적 인간관계를 쌓아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 쪽의 수고로 한쪽이 안락을 누리지 않아야 좋은 관계입니다.
■ 알아야 안아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상태에서는 안아 줄 수 없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알아야 안아 줄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안아주려면 우선 상대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아픔은 사연을 들어봐야 압니다. 사연과 배경이 깃들어 잇는 아픔을 깊이 보듬어 줄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를 제대로 안아줄 수 있습니다.
신영복은 <강의>에서 알면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면 더 깊이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안다는 말은 머리로 이해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가슴으로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한다는 말입니다.
알기 위해서는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서로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계가 없어지면 애정의 연대도 끊어지고 대상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불가능해 집니다. 그래서 애정의 연대가 끊어진 관계에서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몰지각한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 부족함을 알아야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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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염치 있게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염치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 사람의 사람됨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관계야 말로 서로의 입장을 정확히 아는 관계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존중해 주는 관계입니다.
부끄러워한다는 이야기는 자기 입장에서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먼저 다른 사람입장에서 생각해보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인간적 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자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상대보다 먼저 자세를 낮추고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냄으로서 이해를 구합니다. 부끄러워해야 사람은 지금 여기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배움을 찾아 공부하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할 수 있습니다. 부족함을 부끄러워해야 그걸 채우고 사람됨을 갖추려는 부단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 진정한 인간관계는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기쁜 인간관계는 거래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소중함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반면에 재미있는 인간관계는 더 재미있는 걸로 보여 달라고 요구합니다. 상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기존의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더 재미있는 걸 보여주는 사람과의 인간관계가 새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엄기호는 <고통을 나눌 수 있는가>라는 그의 저서에서 재미있는 인간관계의 끝을 예언해 줍니다.
“재밌는 존재가 되지 못한다면 존재감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존재감을 위해 관심을 끌어야 하고 관심을 끌기 위해 재밌는 인간이 되어야 하고, 재밌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인풀레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를 추구하는 인간관계가 우리사회와 공동체의 밑바탕을 송두리째 흔듭니다. 재미가 재미있는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고 타인의 고통이나 아픔에서 나옵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네트워크 공간에서 재미는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원료삼아 재생산되고 무한 공유됩니다. 따라서 어떤 인간관계를 통해 재미가 아니라 기쁨을 주는 사이로 바꿔나갈 것인지가 우리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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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관계는 함께 만들어가는 연대입니다
인간관계는 오늘의 나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내가 전경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수많은 은인들 덕분입니다. 인간관계는 전경과 배경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어두운 배경이 밝은 전경을 낳고, 걸림돌이라는 배경이 디딤돌이라는 전경을 낳으며, 밑바닥 좌절이라는 배경이 정상에서 느끼는 전경을 낳습니다. 화려한 스타플레리어가 돋보이도록 도움을 주는 어시스트의 존재가 인간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입니다.
■ 스치면 인연이 되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한 사람이 사람이 되는 과정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루어집니다. 한 사람의 삶은 사회적 합작품입니다. 우리는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고 계속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만납니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이 됩니다. 사람도 본래는 공동체에 파묻혀서 살아가는 일개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인간이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다른 사람이 그 인간을 사람으로 인정해 줄 때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다움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거나 어떤 노력을 통해서 획득해야 되는 본질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사람다움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인정해 줌으로써 생간다고 말합니다. 내가 아무리 사람다워지려고 노력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람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답게 살 수 없습니다.
스치면 인연이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스치는 만남은 당구공 같은 만남입니다. 몸의 일부가 당구공처럼 순간적으로 부딪쳤다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만남입니다. 언제 만났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만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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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지나가며 만납니다. 스미는 만남은 짧은 만남이어도 깊은 인상이 남습니다.
도종환 시인의 <가구>라는 시에 보면 “본래 가구들끼리는 말을 하지 않는다”라는 시구가 나옵니다. 사랑이 식으면 가구처럼 같은 방에 존재하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구가 되면 서로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뿐입니다. 관심이 무관심으로 전락하고 관계가 경계로 변질 되면서 사랑도 메말라 갑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든 사랑은 관계사이로 흐르는 윤활유입니다.
■ 사람다워지려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자기 자리는 자신이 있으면 돋보이는 ‘제자리’이고 자신이 마땅히 ‘설 자리’이자 내가 살아갈 ‘살 자리’입니다. 제자리가 아닌데 자기 자리로 착각하거나 설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할 때, 그리고 내가 살아갈 자리가 아닌데 거기서 버티려고 할 때 사람은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제자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따라서 나의 무게중심은 그쪽으로 쏠립니다.
사람은 사람다운 사람과 사람답지 못한 사람으로 구별됩니다. 사람답게 사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그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사람이고, 사람답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일과 정반대 방향으로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기 무게가 정착하고 싶은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사과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보다 땅으로 떨어져야 비로소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온천수는 땅속에 잠복하고 있을 때보다 땅위로 치솟았을 때 유익합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는 제자리를 찾아가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때 나타납니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모든 물체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 살아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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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표입니다. 물고기가 죽으면 물위로 뜨고, 새가 바람을 거슬러 날아가지 못하면 추락합니다. 자기 무게로 자기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고 표류하면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릅니다. 결국 자기의 무게로 자기자리를 찾아가는 운동을 계속할 때만 살아 있는 겁니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자기 자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리를 벗어나면 불안정해지고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면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 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사랑을 무게로 표현한 이유도 내 사랑하는 만큼 무게가 나가고, 그 무게가 지향하는 방향대로 살아가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록>에서 고백한 “제 중심은 저의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제가 끌려갑니다.”라는 구절이 바로 인간의 사랑과, 사랑으로 끌려가는 인간적 삶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이라야 다른 존재를 사랑으로 끌어안습니다. 존재감이 있는 사람은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사람입니다. 존재감의 무게는 내가 사람이나 사물을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졀정합니다. 스치면 어쩌다 만난 인연으로 끝나지만 스미면 연인이 됩니다.
■ 에필로그 :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0 사랑은 혁명을 시작하는 신호탄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따뜻한 사랑의 싹이 자랍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본래 의견이 다르고 주장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다 보면 갈등도 충돌도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사랑의 둥근‘o’이 생긴 원동력은 사람의 ‘ㅁ’이 부딪치면서 일어난 갈등과 충돌 덕분입니다. 바닷가의 둥근 돌멩이도 처음에는 모가 난 돌멩이끼리 부딪치며 주고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은 저마다의 탄생 배경과 사연을 갖고 살아갑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나도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면서 색다른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싹이 트는 사랑은 나를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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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애정’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열정’을 낳고 내가 하는 일에도 몰입과 집중을 가져 옵니다.
나는 어떻게 개발하고 성숙의 경지로 이끌어갈지를 고민하는 ‘전략’과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일 다음에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나를 사랑하면 나를 어제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전략과 방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자기를 계발하는 전략과 방법은 수단이며 계략이고 술책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호기심의 물음표와 감동의 느낌표가 있습니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은 우연히 만날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소개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면서 이런저런 기쁨과 감동을 누리기도 하지만 이런저런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만남은 언제나 호기심의 물음표로 상대를 향해 여행을 떠나는 탐험입니다.
0 사랑으로 시작한 만남이 혁명을 완수 합니다.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만남은 상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지 않은 스쳐지나가는 만남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슬픔을 쓰다듬어 주며 어두운 그림자에 빛을 드리워주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얼룩을 덮어주는 돌봄입니다. 대상이든 사람이든 사랑하지 않으면 절대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만난다는 것은 만남을 가로막는 껍데기를 걷어내고 속 깊은 내면으로 함께 파고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기꺼이 꺼내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나서는 여정입니다.
0 사랑으로 만든 흔적이 관계의 기적을 낳습니다
사랑으로 만나는 일은 따뜻한 진심과 부끄럽지 않은 진정성으로 상대와 내가 혼연일체가 되는 과정입니다. 누구에게는 자기 삶의 전부를 고백하는 문제이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힘겨운 결단입니다. 누구에게는 과거의 슬픔을 다시 건드리는 문제이고, 누구에게는 다시 한번 어렵게 반추해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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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으로 만나야 되는 이유는 그런 만남만이 공감의 연대를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할 수 있으며, 힘겹고 어렵지만 같은 방향과 가치를 가슴에 품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게 합니다. 같은 사람을 오늘 만나고 내일 만나도 언제나 남다른 설렘이 있다면 매 순간이 경이로운 기적으로 다가옵니다. 사랑으로 다가갈 때 타자는 나를 괴롭히는 지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다른 나로 이끌어주는 디딤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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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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