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보해성산 2022. 10. 28.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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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0 한양대 교육공학과 학사, 석사,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교육공학 박사

0 삼성 인력개발원

0 지식창조의 원리를 파헤치는 지식생태학자

0 현직 한양대 교수

0 80여 권의 저•역서 출간. 감동을 선사하는 명 강사

◎ 주요 저서

0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0 공부는 망치다 0 독서의 발견

0 곡선으로 승부하다 0 나는 배웠다 0 유영만의 생각 읽기

0 유영만의 청춘 경영 0 커뮤니데아 0 브리꼴레르

0 생각지도 못한 생각지도 0 체인지(體仁智)

◎ 주요 역서

0 빙산이 녹고 있다고 0 핑! 0 에너지 버스 등

■ 프롤로그

누군가에게 한 사람은 한 세상이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일입니다. 이해가 머리에서만 이루어질 때는 복잡한 생각이 개입되면서 나의 방식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평가 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는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오해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오해가 깊어질 때 관계는 끊어지고 사람 사이에 경계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는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이기적으로 해법을 찾아보려는 발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완벽한 이해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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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근본적으로 이기를 지향하고 있다. 가령 인간과 의자의 관계, 제공하는 쪽과 제공받는 쪽의 생각은 묘하게 어긋나곤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의자에게 체온을 주었다 여기지만 의자가 기억하는 건 무게이다.”

이규리의 <돌려주지 않아도 됩니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사람에게 어떤 사람은 운명 같은 만남이 되기도 합니다. 우연한 만남이지만 그 만남이 한 사람의 삶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꿔주는 전환점을 마련해 주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가는 연대는 우리가 평생을 추구하면서 가꾸어 나가야 할 커다란 숙제이자 축제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내 곁에 두고자 하는 것은 이기심의 발로입니다. 상대를 좋아하는 이타심으로 시작한 만남이지만 그 근원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애쓰는 이기심이 숨어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본질에는 이러한 심리적 배경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려는 이유의 근원에는 나도 사랑받고 행복해지려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이타적 사랑을 주고받았지만 결국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이기적 발로에서 행복한 인간관계가 맺어지고 튼실한 연대가 형성됩니다.

모든 사람은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나를 만든 다양한 경험의 합작품입니다. 그 경험을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은 지금 여기 있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를 것이고, 오늘의 나는 다시 내일의 다른 나로 변신을 거듭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기준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폭력이고 횡포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누군가에게 한 세상이 될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큽니다. 한 사람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모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런 사람을 만나서 저런 사람으로 변신하는 와중에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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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나는 곧 내가 만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나를 바꾸려면 내가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합니다. 어떤 만남은 나를 성장시키고 큰 즐거움을 주지만 어떤 만남은 씁쓸함과 깊은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만나면 안 되는 ‘이런 사람’은 나도 ‘이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비난하기 전에 나도 이런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볼 때 나와 너는 ‘좋은 사이’가 됩니다.

■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이타심(利他心)은 이기심(利己心)이다. 그러나 이기심은 이타심이 아니다.’ 황지우 시집 <게 눈 속의 연꽃>에 실린 <산경山徑>이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사람을 만나지만 그 관계가 이해타산으로 이어지면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도 달라집니다. 어긋난 관계는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의 이런 주옥같은 대사도 있습니다. 이타적 베풀기는 결국 나의 행복을 담보하는 이기적인 행위입니다.

“관계가 공허해지는 것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이 향하는 방향만 볼 뿐 그가 어떤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진실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자신의 편견을 깨고 그와 함께 계단 끝까지 내려가는 숙제를 하는 것이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졸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에는 반드시 피해를 주는 기피 대상 인물의 10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귀 막힌 사람’, ‘필요할 때만 구하는 사람’, ‘나 뿐인 사람’, ‘365일 과시형’, ‘많은 문 중에서 말문 막는 사람’, ‘과거로 향하는 꼰데,’ ‘감탄을 잃은 사람,’ ‘’책(冊)은 읽지 않고 책(責)잡는 사람‘, ’단점만 지적 하느라 장점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 ’대접 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칫 방심하면 나도 한 순간 ’이런 사람‘의 부류에 속할 수 있는 위기는 언제나 잠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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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막힌 사람

- “귀하게 대접받으려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는 만나자마자 따발총을 쏘듯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일방적으로 쏟아내기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계속 끼어들고 잠시 침묵이 흐르는 순간도 놓치지 않습니다. 나오는 대로 말을 쏟아냅니다.

그는 모란꽃처럼 혼자 화려하게 피는 걸 좋아하고 혼자 춤을 추는 독무(獨舞)를 즐깁니다. 그를 만나고 집에 오는 날에는 귀가 먹먹합니다.

귀를 닫고 듣지 않는 사람은 상대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미 자기 안에 답을 갖고 있습니다. 타협하거나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습니다. 자기만 옳고 자기만 중요하기 때문에 심지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를 깔보거나 업신여기기까지 합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소통의 문은 닫히고 불통만이 남습니다. 자리가 길어지면 울화통이 터질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빨리 이야기를 끝내고 자리를 뜨는 게 상책입니다. 귀(貴 )하게 대접받으려면 귀(耳)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은 말 잘하는 입담의 달인보다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의 달인이 이끌어 갑니다. ’입‘으로 한 가지를 말할 때 ’귀‘로는 두 가지를 듣기 바랍니다.

■ 필요할 때만 구하는 사람

- “필요할 때만 찾아오면 필요한 걸 얻을 수 없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거래로 봅니다. 사람 자체를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자원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필요할 때만 나타납니다. 정작 내가 필요할 때 그는 시선을 회피하거나 자리에 없습니다.

사람은 도움을 주고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그래서 의존적이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만 찾아옵니다. 그 필요가 충족되면 소식을 끊고 살다가 뭔가가 필요해지면 뻔뻔하게 다시 찾아와 도움을 요청합니다.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애정과 관심을 갖고 보살펴야 하는 수동시계와 같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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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애정과 관심이 식으면 관계에는 넘을 수 없는 경계가 생깁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와 부탁하면 결코 필요한 걸 얻을 수 없습니다. 인간관계는 필요로 맺어지는 계약관계가 절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요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얻어서 살아가야 합니다. 다만 얌체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생길 때만 도움을 부탁하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 ‘나뿐인’ 사람

- “진짜 사람이 되려면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이 사람이 되려면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인간아 언제 사람 될래?”

이 말은 인간이 아직 사람이 되지는 않았으니 어서 정신 차려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인간관계는 인간을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자기 이익 챙기기에 혈안이 된 함량 미달의 인간을 생산해내기도 합니다.

이외수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나만 생각하는 사람, 즉 ‘나뿐인 놈’이 ‘나쁜 놈’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눈 감는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윤리나 의무를 망각한 사람입니다.

상대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머리는 계산을 하지만 가슴은 사랑을 합니다. 얌체같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면 물불 안 가리고 나서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뻔뻔한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내가 돋보이는 이유는 말없이 나의 배경에서 도움을 준 수많은 사람 덕분입니다. 그들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을 때 인간관계는 비상하는 날개가 됩니다.

■ 365일 과시형

“자기과시에 몰두하면 결국에는 무시를 당합니다.”

자기과시는 상대를 무시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자기과시에 빠진 친구는 상대가 지신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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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상대가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자기과시에 함몰된 나머지 상대를 본인이 무시하고 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의 그는 벌써 많은 친구를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친구들이 자신을 떠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과시는 무시를 불러오고 멸시를 낳습니다. 솔직히 잘난 척을 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은데 자기 자랑에 집중하느라 그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면서 상대의 관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안하무인의 자세입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은 편견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시점과 상황에서 누군가를 만나 일하면서 얻은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내 생각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때 고개를 숙일 수 있습니다. 자기과시에 매몰되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은 상대에게 심각한 감정적 손상을 입힐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 많은 문 중에서 말문 막는 사람

- “모든 생각은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자기 입만 말하는 입인 줄 착각하는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말은 누구나 따라야 할 진리이고, 다른 사람의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치부합니다. 말문이 자유롭게 열려야 새로운 관문을 열 수 있습니다. 말문을 막는다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전에 틀렸다고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만 말하고 내말이나 잘 들으라는 강요가 숨어 있습니다.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상대의 말을 중간에 뚝뚝 끊어버리는 사람 자기 생각을 결론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말 밥맛이 없습니다.,

회사에서도 회의를 진행하는 팀장이 팀원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것처럼 있다가, 회의가 끝날 무렵 모두의 의견을 일절 무시하고 자기의 의견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생각은 일리(一理)가 있는 의견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생각만이 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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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생각하고 그런 일리 있는 생각을 말로 꺼내지도 못하게 사전 봉쇄하는 것입니다.

‘적게’ 말하면 ‘적’도 그만큼 없어집니다. 말은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주장을 열심히 이야기할 때는 끝까지 들어주어야 합니다. 말문을 막으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 가능성도 볼 수 없습니다. 내 생각만큼 상대의 생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 과거로 향하는 꼰데

- “꼰대는 과거로 돌아가려고 하고 리더는 미래로 향합니다.”

지금 여기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거처는 과거입니다. 그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합니다. 그때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힘든 일만 반복된다고 불평들을 합니다. 그 옛날에 술 마시면서 주고받던 대화도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10년, 20년이 훌쩍 지나고 세상도 많이 변했는데 생각이나 경험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옛날만 들먹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현재도 없습니다. 달콤한 향수와 아련한 추억에만 흠뻑 젖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 인식과 미래 전망이 없습니다. 경험을 지속적으로 경신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매몰되어 있으면 위험한 꼰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근거 없는 이상향에 기거하는 그들은 현실 세계에서 퇴치해야 할 첫 번째 타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성공 체험은 지금 여기서 미래를 준비하는 색다른 생각을 가로막는 장본인입니다. 수주대토(守株待兎)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노력은 하지 않고 요행만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아널드 토인비(Arnold T0ynbee)는 ‘수주대토’를 ‘휴브리스(Hubris)’,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과거 정치권력을 잡은 창조적인 소수 집단이 상황이 판이하게 바뀌었는데도 과거의 성공 체험을 반복하려다 도리어 사회를 후퇴시키는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과거의 추억은 상상력의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매몰될 경우 현재와 미래까지 삼켜버립니다. 과거의 성공 체험에 매몰될수록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낯선 생각을 품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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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탄을 잃은 사람

“익숙한 세계를 벗어나 물음표를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감탄을 잃은 사람은 도전을 회피하고 지금 여기서의 삶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최소한의 변화도 거부하면서 익숙함만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지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자세가 필요한지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내 주변에도 이렇게 익숙함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제 했던 방식을 다시 반복할 뿐입니다. 삶의 활력을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자처해서 소위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면서 입으로는 지루하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여기’를 떠나 낯선 ‘저기’로 가야 합니다. 늘 만나던 사람만 반복해서 만난다면, 늘 하던 일만 해서는 성숙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삶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자두를 봐도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나오는 말입니다. 예술가는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찾아내는 사람입니다. 시인 역시 당연함을 부정하고 시비를 거는 사람입니다.

늘 하던 대로 반복하던 사람들에게 내일은 오지 말아야 할 미래입니다. 그들은 색다른 도전을 회피하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지금 여기서의 삶에 만족합니다. 나름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타성에 젖어 틀에 박힌 일상을 반복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들을 만나면 오히려 에너지를 빼앗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책(冊)을 읽지 않고 책(責)잡히는 사람

“공부하지 않으면 남에게 쉽게 공격 당합니다.”

공부는 일종의 지적 호흡입니다. 호흡을 멈추면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하듯 지적 호흡을 멈추면 정신적 성장도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배움의 끈을 절대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멈춘 사람’은 어떻습니까? 배움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책을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고 항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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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부를 멈춘 사람’이 위험한 이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속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삶을 통해서 배운다고 하지만 그가 가진 오만함으로 인해 과연 제대로 된 공부가 될지 의문입니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점검합니다. 그들은 자만하지 않고 부단히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배우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일수록 공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수불석권(手不釋卷)의 공부를 이어갑니다. 책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부끄럽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노력합니다.

공부를 멈춘 사람은 성장을 멈춘 사람입니다. 반면에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은 언제봐도 표정이 즐거워 보이고 몸도 가벼워 보입니다. 배움으로 깨닫는 즐거움과 행복 덕분입니다.

공부를 멈추는 순간 사람은 늙기 시작합니다. 건강하고 젊게 사는 비결은 비교적 오랫동안 배우고 익히면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배움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는 여행입니다.

인생의 주연은 설렘과 호기심을 가진 이런 사람들이 차지합니다.

■ 단점만 지적하느라 장점을 볼 시간이 없는 사람

“단점만 지적하는 사람은 장점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이들의 인생은 그야말로 상대의 단점을 발견하기 위한 삶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도 상대의 단점을 끄집어내서 질책하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매서운 눈은 처음부터 상대의 단점을 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와 만날 때마다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너무 부정적이고 편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SNS에 댓글을 쓸 때도 시종일관 부정적입니다.

근거 없는 낭설을 퍼뜨리거나 상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마음은 건강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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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사람은 먹구름 속의 태양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비록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어도 그 뒤에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사람 앞에 세상은 가능성과 기회의 선물을 가져다줍니다.

안 되는 방법을 찾아 자기 합리화를 추구하는 사람과 되는 방법을 찾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여는 사람은 천지 차이입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 덕분에’라는 말 보다 ‘~ 때문에’라는 말을 남발하면서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모두 남 탓, 환경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뒤에서 험담하고 비난하는 사람보다 칭찬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 인생이 풀립니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타인에 대해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의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입니다.

■ 대접받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

“은혜를 저버리면 다른 사람에게도 버림받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덕분에’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심양면으로 자신을 도와준 이들의 은혜를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해서 도와주면 돌아오는 것은 배은망덕(背恩忘德)입니다.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이들은 먹고 살기 바쁜 탓인지 자기 자신이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 된 것인지를 망각합니다. 이들의 주특기는 자신이 입은 은혜를 아무 생각 없이 갖다 버리는 데 있습니다.

대접은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시는 공손한 행동입니다. 대접받은 사람은 자신이 받은 대접에 담긴 상대의 사랑과 존경과 정성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자신이 베풀어준 만큼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하지만 사람 관계를 그렇게 이해타산으로만 생각한다면 참 씁쓸합니다. 대접해준 사람은 정성을 다해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그렇게 저울을 들이대면 그 관계는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대접 받는 일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만큼 대접 속에는 다른 의도나 목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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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접을 뒤집어 접대가 되면 거기에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접대는 사절이지만 대접은 환영입니다.

나아가 한 사람에게 한 접대는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찬가지로 한 번 저버린 은혜는 연쇄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불신과 배신의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적 약점이나 결점을 갖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인간관계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그 다리를 힘겹게 건너면서 우리는 지금보다 성숙한 내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자기의 현재 모습을 망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에 휘둘리고 바쁜 일상에 치이느라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도 많습니다. 때로는 나태함에 빠져 중요한 일과 사람에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나를 향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돌아보고 만남의 매무새를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 밥은 매일 먹으면서 운동은 매일 하지 않는 사람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는 운동을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 먹듯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일을 해보고 싶지만 과감하게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건강한 몸에서 나오는 힘과 열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몸은 그 사람의 능력이기도 하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또한 성공과 행복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야의 경지에 오르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체력을 잘 관리해서 자기 관리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몸이 망가진 사람이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습니다. 허약한 몸은 허약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몸 관리에 실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관리할 자격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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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극복이 선행되어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난관이 극복됩니다. 운동을 밥 먹듯이 해야 밥맛도 좋아지고 행동할 수 있는 힘도 생깁니다. 운동을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유입니다. 실천하는 운동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자 지름길입니다.

■ 다짐을 많이 해서 무거운 짐이 된 사람

“작은 일이라도 진심을 담아 꾸준히 반복해야 합니다.”

결심은 반복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않는 사람, 계획을 세우지만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 선거 때마다 공약(公約)을 발표하지만 당선한 후에는 실천하지 않아서 공약(空約)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헛된 다짐만 차곡차곡 쌓이면 결국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를 뿐입니다.

밥을 매일 먹는 이유는 실천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고 결연한 각오로 실천에 임하지 않을 경우에는 패배의식이나 자괴감으로 이어집니다. 마음먹은 일을 밥 먹듯이 실천하지 않다 보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존재감에도 의심과 회의가 들면서 활기를 잃어버립니다.

어리석은 어른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바로 위대한 성취의 숨은 비결입니다. 이들은 마음을 크게 먹지 않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한 번 마음을 먹으면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그것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내 일을 사랑하면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크게 다짐하지 않아도 내 일을 사랑한다면 진심을 다하고 묵묵히 맡은 일을 완수합니다.

■ 밥 먹듯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

“약속은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그만큼 책임감이 따릅니다.”

약속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 간에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그만큼 책임감이 뒤따릅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사람은 몇 날 며칠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가벼이 여기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의 면면을 새삼 다시 보게 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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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럼에도 한 가지 버리지 않는 기대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것입니다.

신뢰는 사람과 사람을 끈끈하게 이어주는 강력한 접착제입니다. 그런데 한쪽이 그에 대해 의문을 품으면 관계에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둘 이상의 사람이 같이 만들었지만 상대의 의도나 의지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게 신뢰입니다. 신뢰로 형성된 관계이지만 어느 시기부터 무례가 반복되면서 사소한 일도 삐걱댑니다. 가까웠던 관계에는 어느새 거리가 생기고 무관심의 잡초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그렇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신뢰가 힘겹게 싹터서 자라기도 하고 무심하게 잡초가 자라기도 합니다.

■ 인간미가 없는 매정한 사람

“타인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잘 돌볼 줄 압니다.”

 

인간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빛납니다. 반대로 인간미가 없는 사람은 타인을 존중할 줄도 모르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밥맛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머리는 똑똑하더라도 따뜻한 가슴이 없어서 상대를 배려하거나 역지사지로 생각하지 못합니다. 인간미가 없는 사람은 스스로 덜미가 잡히기도 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인간적 배려와 겸손이 부족하면 결국 제 살이 깎이고 손해를 보게 되어 있습니다.

잘 보기 위해서는 마음을 봐야 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면서 보는 것과 마음으로 그리면서 바라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머리로 생각하면서 보는 것은 계산이 관여하지만 마음으로 그리면서 바라보는 것에는 함께하고 싶은 공감과 긍휼이 작용합니다.

타인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도 잘 돌볼 줄 알지만 타인을 돌보는 데도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입니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날이 확실해진다.”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에 있는 말입니다. 나의 존재감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을 때 나는 더 강해지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돌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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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떨어져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사람

“감이 떨어지면 다른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듭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고 빠져주어야 나머지 사람들이 더 깊은 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꾸 훈수를 두고 충고와 조언을 하면 본인의 품격에 흠집을 낼 뿐입니다.

나이가 들면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면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한마디로 감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감이 떨어지면 덜떨어진 생각과 행동을 자행합니다. 문제는 그런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피해를 끼칠 수도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도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에 접목하기 위해서입니다. 내 신념과 확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다른 생각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립니다.

■ 부분 속에 전체가 있습니다.

 

어떤 인간관계는 만남이 지속될수록 흥미는 줄고 피곤은 늘어납니다. 이런저런 사연과 인연으로 시작된 인간관계지만 갈수록 상대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생각과 행동도 부지불식간에 드러납니다. 만남이 이어지면서 피곤함만 쌓이는 이런 인간관계는 가급적 빨리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더 이상 만남을 지속하다가는 내 인생도 피곤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면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정리하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이어가다가는 내가 정리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표현과 행동은 내면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이 표출된 것입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습니다. 모래알에서 우주를 바라본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한 사람이 표출하는 말과 행동에서도 그 사람의 전면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읽어냅니다.

■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지닌 숭고한 미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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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廉恥)가 있어야 밥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염치가 없다는 말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살다 보면 염치라고는 쥐똥만큼도 없는 사람을 자주 만납니다. ‘염치 불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하고 ‘불고(不顧)’는 돌아보지 아니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염치 불고하다’는 ‘염치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염치를 차리지 않기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지 않고 남에게 부탁하고 요구만 합니다.

몰래 나쁜 짓을 하고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행동을 보고 염치없다고 합니다. 분명 쓰레기장이 아닌데도 남몰래 쓰레기를 무단 투척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경고문도 통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염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할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이 지니고 있는 숭고한 미덕입니다. 갈수록 염치없는 사람들이 판을 치는 이유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고 언제나 변명과 기만을 일삼는 사람은 몰염치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고 비인간적인 작태를 일삼는 사람은 파렴치한 사람입니다.

■ 잘못을 덮어씌우는 야비한 사람

“잘못을 인정할 때 오히려 인간다움이 빛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잘못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잘못은 언제나 일상에서 일어납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판단 착오나 섣부른 행동으로 일이 잘못되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본인의 잘못을 인정할 때 오히려 인간다움이 더욱 빛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봐도 분명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야단이냐고 반문합니다. 적반하장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면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는데, 발뺌을 하고 도망가려는 자세만 취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는 저속한 사람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 믿고 아무도 시작하지 않을 때 공동체의 위기는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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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을 하지 않고 떠넘기는 경우는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내가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때 더 많이 발생합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 UCSB 생물학과 교수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이 자원관리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언급한 개념입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지하자원, 공공놀이터, 공공기관의 공중화장실, 공기, 바다에 있는 고기와 같이 공동체가 함께 사용해야 할 자원을 사적 이익을 주장하는 시장의 기능에 맡겨두면 남용하여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고기가 풍부한 어장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무나 마구잡이로 고기를 잡기 시작하면 어장의 고기는 멸종됩니다. 지하자원도 누구나 채굴하게 두면 얼마 안 가 고갈되고 맙니다. ‘나 한 사람쯤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할 일을 미룬다면 거기에서 공동체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 규율을 무시하는 몰지각한 사람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개인을 양산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몹시 상합니다. 본인이 퍼부은 욕설이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그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나에게 욕설을 퍼붓고 다 같이 지켜야 하는 법규를 지키지 않은 그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양산한 사회에서 동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 변칙으로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

“원칙이 흔들리면 사람 사이에 불신이 생깁니다.”

원칙은 흔들리지 않는 중심입니다. 리더를 따르는 팀원들의 정신적 기반에는 공통적으로 원칙을 굳건하게 지키려는 리더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리더가 원칙을 지키지 않고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적용하면 팀원들은 더 이상 리더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원칙이 흔들리면 사람 사이에 불신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인정해주고 어떤 사람은 조건을 충족했음에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원칙이 흔들리고 반칙 사례가 나타나면서 변칙이 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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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원칙이 변칙을 용납하지 않고 변명이 통하지 않게 하는 비결입니다. 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 새치기를 밥 먹듯이 하는 뻔뻔한 사람

“책임질 만큼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이 책임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곤란한 성숙>에서 우치다 타츠루는 어떤 일이든 한번 발생하면 원상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어떤 피해를 입으면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그 잘못에 대해 “내가 책임질게!”라고 하는 말은 사실상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돌이킬 수도, 책임질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잘못된 언행으로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받았거나 심각한 범죄로 신체에 손상을 입었을 때, 잘못을 한 사람이 책임진다고 해서 상처받거나 손상을 입기 전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치다 타츠루는 책임지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책임지는 상태에서 벗어나거나 책임을 요구하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책임질 것을 요구 받는 입장이 되지 않는 것이라 고 말합니다.

◎ 제2부 이런 사람 피하세요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너를 만나는 나를 먼저 돌이켜보지 않으면 타인에 대한 강요가 시작됩니다. 나를 바꾸지 않은 채 상대만 바꾸라고 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강요만으로 누군가를 만나려는 나를 반성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상대보다 나에게서 먼저 찾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진정한 성찰이 이루어집니다. 진정으로 반성하고 관계를 성찰할 때 새로운 만남의 지평이 열립니다. 그러나 내가 자초하는 내 삶의 위기를 방치하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위기가 됩니다. 삶의 위기가 오기전에 각성하고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이런 사람 만나면 위기가 찾아옵니다

장인은 질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일을 어제보다 잘 하는 방법은 무엇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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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 이런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 일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이렇게 자기 일에 대한 만족도가 끝이 없는 사람이 바로 장인입니다. 장인의 관심은 남보다 잘하는 데 있지 않고 어제의 나와 비교하고 더 나아지는 방법을 찾는 데 있습니다. 장인은 자기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질문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에 비해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은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질문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어제 했던 방식을 늘 반복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방식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어제보다 나아지려는 마음도 없기 때문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습니다.

장인은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한걸음이라도 빨리 가서 이제까지 했던 방식과 다르게 시도해보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장인은 ‘되는 방법’을 찾고 도전을 하지만 직장인은 해보기도 전에 ‘안 되는 이유’를 찾고 현실에 ‘안주’해서 틀에 박힌 방식을 반복합니다. 무엇보다 장인은 언제나 어제와 다르게 했던 ‘내 이야기’를 하지만 직장인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또한 장인은 ‘물음표’를 찍고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장인인지 직장인인지 되돌아보며 위기를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 되는 방법보다 안 되는 이유를 찾는 사람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머리가 만들어내지만

되는 방법은 몸이 만들어냅니다.”

오랫동안 생각만 계속하는 사람은 검토만 거듭하다 결국은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가슴으로 느낌이 왔을 때 들이대고 저지른 사람입니다.

가슴으로 다가온 느낌은 지금 당장 하라고 하지만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간 생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험하다고 판단합니다. 가슴으로 다가온 느낌은 찰나에 일어나지만 머리로 하는 생각은 오랫동안 반복해서 검토하는 가운데 또 다른 생각을 잉태합니다. 가슴은 정직하지만 머리는 정직하지 않습니다. 가슴은 계산하지 않지만 머리는 이해타산을 따집니다.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큰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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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은 안 되는 이유나 안 해도 되는 핑계를 찾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아플 지경에 이르렀어도 생각만 거듭하다 보면 내가 지금 당장 실천하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이유가 떠오릅니다.

그러나 ‘뭔가 다른 사람’은 앉아서 안 해도 되는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하기보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서 되는 방법을 찾습니다. 안 해도 되는 이유는 머리가 만들어내지만 되는 방법은 몸이 만들어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머리로 판단해서 결정하기보다. 몸을 움직여 체험적으로 결정합니다.

삶의 위기는 위기 상황이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음에도 행동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집에 불이 났으면 우선 불부터 꺼야 합니다. 불을 끄기 전에 불이 왜 났는지, 이 불을 끄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 조치인지 계속 검토하다가 결국 집도 다 태우고 본인도 위기에 빠집니다.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려고 하거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헤매다가 기회를 놓칩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거듭하다 결국 시작조차 하지 못합니다. 방법은 실행하기 전에 준비하는 게 아니라 실행하는 가운데 부각되는 대책입니다. 실천이 곧 방법입니다. 실패보다 무서운 것은 ‘실기(失期)’ 즉 시기를 놓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지만 시기를 놓치면 다시 할 기회조차 잃어버립니다.

■ 도전을 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

“인간의 한계는 몸으로 도전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어휘(Final Vocabulary)’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어휘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단어입니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지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의사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데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마지막 어휘는 보통 의식 아래 있다가 삶이 흔들릴 때 표면 위로 솟아오릅니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어휘입니다.

예를 들어 간디에게 마지막 어휘는 ‘비폭력’이고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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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인(仁)’입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혁신’이고 리처드 브랜슨 에게는 ‘상상’입니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 샤르트르에게는 ‘실존’, 스피노자에게는 ‘코나투스(Conatus : 노력)’, 니체에겐 ‘아모르파티(Amor Fati)’, 라캉에게는 욕망,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가 마지막 어휘입니다.

인간의 한계는 몸으로 도전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삶에 안주하기보다 한계에 도전하는 삶으로 나의 마지막 어휘를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

“남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데 투자하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해야 합니다.”

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삶,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끊임없이 도전을 하는 사람은 누구도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자기만의 체험적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도전을 해야 나옵니다.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겪은 파란만장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축적되면 역사가 되고, 역사가 축적되면 길(way)이 생깁니다.

■ 물음표를 품기보다 마침표를 찍는 사람

“틀에 박힌 일상이 반복될 때 삶의 위기는 가속화됩니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휘파람 부는 사람>에 보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은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은 같은 능력입니다. 내가 누군가 또는 어떤 일을 사랑할 때는 질문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면 잠은 잘 잤는지, 아침은 먹고 출근했는지, 비가 오는데 우산은 갖고 출근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온갖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없어졌습니다. 애정이 식었기 때문에 궁금한 것도 없어집니다.

마침표로 꽉 찬 일상이 반복될 때 삶의 위기는 가속화됩니다. 위기를 만나는 사람은 마침표를 찍는 사람입니다. 삶에서 물음표를 제거하면 세상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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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듯이 마침표로 된 철문으로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립니다. 질문이 없어지면 이전과 다른 세계로 나가는 문도 닫히기 시작합니다. 이전과 다른 세계로 진출하고 싶다면 색다른 마주침이 필요합니다. 이전과 다른 질문을 던져 이제껏 가보지 않은 문을 통과해야 이전과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 반성보다 문책을 즐기는 사람

“반성 없는 안이한 생각이 결국 위기를 불러옵니다.”

잘못을 안에서 찾으며 반성하기보다 다른 사람 때문에 발생했다고 여기고 문책하거나 질책하는 데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이 밖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어제의 나보다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남들보다 잘 하려고 노력합니다. 남과 비교하다 보니 나다움으로 빛나는 아름다움이 사라집니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나만의 색깔은 점차 사라지고 남과 비슷해지기 시작합니다. 안정성을 최우선하던 볼보(Volvo)가 아우디(Audi)처럼 디자인을 신경 쓰다가 볼보도 아니고 아우디도 아닌, 정체성을 상실한 자동차를 생산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아직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나의 경쟁 상대보다 잘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합니다.

■ 경험보다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

“내 몸에 남는 것은 가슴으로 느낀 경이로운 체험입니다.”

 

물건은 살수록 더 사고 싶지만 사는 순간만 만족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물건을 사고 싶습니다. 이에 반해 경험을 사면 시간이 흘러도 오랫동안 감동이 유지됩니다. 결국 인생의 말년에 남는 것은 내가 어떤 물건을 사들였는가에 있지 않고 내 몸에 강렬한 추억으로 아로새겨진 경험을 어떻게 사서 즐겼느냐 하는 것입니다.

긁지 않으면 긁힙니다. 이것은 내 삶의 철학 중 하나입니다. 카드의 용도는 긁는 데 있습니다. 다만 무슨 목적으로 긁느냐에 따라 내 삶에 남겨지는 흔적이 판이하게 달라집니다. 카드는 물건을 사기 위해 긁기보다 나에게 감동을 선사해줄 체험을 사기 위해 긁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면 순간적으로 만족하지만 경험을 사면 삶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습니다. 나에게 감동을 준 순간순간의 경험들이 나의 심장을 떨리게 하고 삶의 자양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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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보다 잘하기보다 남보다 잘하려고 하는 사람

“남보다 아무리 잘해도 전보다 못하면 진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경쟁은 남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입니다. 적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밖의 적보다 안의 적을 물리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경쟁입니다. 경쟁을 통한 성취도 ‘남보다’라는 바깥 기준이 아니라 ‘전보다’라는 안의 기준에 비추어 본 평가가 소중합니다. 남보다 아무리 잘해도 전보다 못하면 진정한 성취감을 맛볼 수 없습니다.

전보다 잘하려는 분투 노력이 전보다 나은 나로 발전시키는 동력입니다. 삶의 위기는 전보다 잘하기보다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칮아옵니다.

남보다 잘하려는 사람은 남의 눈치를 보지만 전보다 잘하려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내면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반성하고 성찰합니다. 남보다 잘하려는 사람은 남보다 나은 위치에 서면 ‘자만’하지만, 전보다 잘하려는 사람은 전보다 나은 위치에 서면 ‘자성(自省)’합니다.

경쟁은 바깥에 있는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과의 경쟁입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를 넘어서기 위한 경쟁에 몰두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경쟁에 몰입하고 있는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 사소한 일상보다 거창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

“오늘 재미있게 지낸 사람이 내일도 재미있는 하루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하에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디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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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입니다.

위대한 상상력도 현실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잉태될 수 없습니다.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아픔을 사랑할 때, 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위대한 상상력이 발아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하고 있는 일의 소중함을 잊고 먼 미래만을 꿈꿈니다. 오늘 재미있게 지낸 사람이 내일도 재미있는 하루를 맞이합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이 내일 도 행복합니다.

고생 끝에 달콤한 미래가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는 더 이상 우리가 추구할 가치가 아닙니다. 고생 끝에는 신경통이나 관절염 같은 질병만 생길 뿐입니다. 사소한 일상에서 위대한 일상을 꿈꾸는 사람만이 근거 없는 망상과 몽상에서 벗어나 미래를 바꾸는 상상력의 텃밭을 가꿉니다.

 

2022. 10. 27. 다음에 제2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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