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우리, 편하게 말해요

보해성산 2023. 1. 30.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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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편하게 말해요

- 마음을 다해 듣고 할 말은 놓치지 않는 이금희의 말하기 수업 -

■ 이금희 지음

0 대한민국 아나운서의 살아있는 아이콘

“상대의 입을 통해 진솔한 말이 나오게 하는 것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0 1989년 KBS 16기 아나운서 합격, <6시 내고향> <사랑의 리퀘스트> <파워 인터뷰> 등…. KBS 간판 아나운서로 활약

0 18년 간의 <아침마당> 진행, 10여 년간 <인간극장> 내레이션 등 수많은 대 표 프로그램 운영으로 국민 아나운서라는 수식어

0 2007년부터 현재까지 KBS FM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 입니다> <마이금희> 채널 운영

0 1999년부터 22년 6개월 동안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겸임교수

- 그 중 15년 동안 1,500명과 1:1 티타임을 갖고 학생들의 고민 해결에 동참

■ 여는 말

올해 초 홍진경씨가 하는 유튜브에 “한글 맞춤법 강의”를 주제로 방송해 달라는 요청이 와서 3월 초 동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조회 수가 450만 회를 넘자 제일 놀란 것은 저였습니다. 그리고 3,800개가 넘는 댓글을 훑어보았습니다. 인상 비평 몇 개와 인신공격 몇 줄을 제외하고는 고맙다는 의견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누구나 알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우기는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렸을 테니까요 머릿속에 새겨두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헛갈리는데 일상생활에서는 자주 쓰게 되는 맞춤법, 콕 짚어서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글을 읽고 말을 하는 걸 업으로 삼아 30년 넘게 해 온 저로서는 그게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밥을 먹고 길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하지만 누구나 그렇진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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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습니다. 요즘 교과과정에서는 좀 다를 수 있겠으나 대부분은 말하기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다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타고난다고 하시나요. 물론 소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린 시절 환경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생방송에서 유창한 말재간을 보인 분들에게 방송 후 질문을 해 봤어요. 대부분 부모님 중 한 분이 말씀을 재미있게 잘하신다더군요. 아빠 쪽 보다는 엄마 쪽이 말솜씨가 뛰어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부터 엄마의 빼어난 말을 들으며 자라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분명 차이가 있겠죠. 다소 억울한 마음도 들지만요.

말 잘하는 사람들을 ‘달변’이라고 한다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중에는 의외로 ‘눌변’도 있습니다. ‘통달하다’할 때의 ‘달達’자가 들어간 달변은 매우 능란하게 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눌변은 ‘말더듬거릴 눌訥’ 자를 써서 서툴게 더듬거리는 말솜씨를 뜻합니다. 실제로 인터뷰를 해보면 눌변이지만 필요한 말을 적절히 해서 메시지를 잘 전달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나는 눌변인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도 좌절하지 마세요. 저와 함께 조금만 꾸준히 애써보면 말을 잘하지는 못해도 할 말은 놓치지 않고 할 수는 있게 될 것입니다.

◎ 1장 잘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가족이나 친구도 늘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제대로 듣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보다 더 앞서야 하는 일입니다.

■ 언어는 존재의 집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라는 뜻이죠. 저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보겠습니다. “You are what you say.” 당신의 말이 곧 당신입니다. 프랑스의 유명 미식가가 그랬다죠. “당신이 먹은 것을 말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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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드리죠.” 마찬가지로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하는 말을 들려주세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드리죠.”

예전에는 웅변학원이 동네마다 있었습니다. 목청을 높여서 소리를 질러야 귀를 기울이는 시대였던가 봅니다. “이 연사 두 손 모아 외칩니다!” 어린이웅변가들은 반공 이념을 소리높여 외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웅변의 시대는 저물었고 지금은 대화의 시대니까 웅변학원 말고 조곤조곤 말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말을 하려면 먼저 들어야 해요. 잘 듣지 않고 말을 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들어야 잘 말할 수 있다는 명제를 잊어버립니다. 우리말이든 영어든, 아니 모든 언어가 그렇습니다. 잘 듣지 않고 말을 잘 할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되뇌는 모노드라마, 연극의 독백이나 방백이 아니고서는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무슨 말을 할지 감을 잡을 수 있죠. 상대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알 수가 있고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기본 속성은 바로 ‘관계와 소통’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 맺고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생존의 문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였죠. 한 언어 연구학자는 ‘호모 나랜스(Homo Narrans)’로 인간을 규정했습니다. 인간은 이야기 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로 사회를 이해하는 존재라면서요. 하지만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다 보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에게 목이 마릅니다. 그러니 귀를 열어 이야기를 듣는 것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대통령의 부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방송종사자 간담회 자리에서 그분은 열 명 남짓한 참석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한 사람씩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인자한 미소를 보여주셨어요. 더러 메모도 하셨습니다. 두 시간이 넘도록 나지막한 첫인사와 끝인사 말고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부인은 그 자리의 막내 격이었던 저에게도 발언할 기회를 주셨어요. 원래 호감이 있었지만, 그 만남 이후 저는 더욱더 그분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분이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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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잘 듣고 나서야 당신은 말을 잘할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하는 말이 곧 당신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도 말했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요. 당신의 집은 어떻습니까.

■ 날마다 종알거리고

말을 잘하고 싶다는 욕구는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발표하러 나온 자리에서 시종일관 염소 목소리를 내는 학생을 보면서, 생방송 도중에 너무 떨려 졸도하는 출연자를 눈앞에서 보면서요, 심지어 주부 리포터로 나온 분은 갑자기 대본이 보이지 않는 다고도 했어요.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 말로써 자신의 의사를 남에게 전달해 이해시킨다는 것이 실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언젠가 북 콘서트에서 사회를 본 후 뒤풀이에 합류한 날이었어요. 제 앞자리에 앉은 가수의 매니저가 느닷없이 질문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할 거라 믿고 그렇게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어요?”

 

뭐라 답을 할지 몰라 그냥 웃으며 얼버무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곰곰 생각해 보니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기본적으로 거기 있는 분들을 믿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하고 말이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의심이나 불안이 올라온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되짚다 얻은 결론은 ‘원原 체험’이었습니다. 원체험은 엄한 아버지 밑에서 통제받으며 자란 사람들이 자라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제하려 하는 것 말이죠. 그와 비슷하게 원체험이 말하기의 기본적인 태도를 결정한다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딸 다섯 중 넷째로 태어난 저는 형편이 어려워 유치원에 다닐 수는 없었지만, 담 너머 유치원 수업을 쳐다보며 곧잘 따라 하곤 했고요.

초등학교 1학년, 학교 종이 울리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그날 하루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중계방송했습니다. 선생님 말씀,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계속 말했죠.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학교 이야기는 저녁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가 그만 좀 떠들고 밥이나 먹으러고 하면 어머니가 넌지시 제 편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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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주셨어요. “놔두세요. 재미있잖아요.”

제 위로 태어났던 돌배기를 잃은 어머니는 유독 저에게 신경이 쓰였답니다. 지금과는 달리 유아 시절에는 너무 작고 약골인데다 병치레가 심해서 노심초사하던 어머니로서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귀엽고 재미있었을 겁니다. 덕분에 저는 아주 좋은 말‘의 원체험을 갖게 된 셈입니다.

동시에 마음속 깊은 곳에 믿음이 자라났을 것입니다. ‘엄마처럼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거야.’ 그런 믿음이 저를 아나운서로 만든 것 같습니다. 듣기의 힘, 특히 원가족 내에서 하게 되는 원체험인 경청은 이렇게 힘이 셉니다.

■ 27분 30초

저는 22년 6개월 동안 모교 강단에 섰습니다.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는 학생들이 몹시 힘들었을 거예요. 매주 과제를, 그것도 녹록지 않은 것들로 내주었거든요.

그런데 3~4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그렇게 매시간 촘촘하게 채우고, 매주 과제를 내주었는지 그 까닭을요.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5년이 흐르고 6년이 되면서 깨닫게 되었죠.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을, ‘우리 학교. 우리 학부에는 훌륭한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니 이론은 그분들이 가르쳐주실 거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다짐했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바라는 것,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선생’이 아니라 ‘선배’인 저를 원할 것 같았습니다. 진출하고 싶은 분야에 먼저 나가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테니까요.

그래서 7년째 되던 해부터 학생들과 일대일로 면담을 하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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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티타임’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학교 앞 조용한 커피숍에서 학생을 한 명씩 만났습니다. 겸임교수는 따로 연구실이 없었으니까요. 10년 넘는 세월 동안.

“여러분에게 30분의 데이트를 청합니다. 어떤 이야기든 좋으니 선배와 허고 싶은 이야기를 저와 나누시면 됩니다. 부모님에게 얘기하자니 나보다 더 걱정하실 것 같아 망설여지는 이야기, 제가 부모님만큼 걱정하지는 않겠지요. 선배에게 의논하고 싶은데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이야기, 친구에게 털어놓고 싶은데 나와 경험이 비슷하니까 도움이 안 될 듯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저랑하면 되요.”

“만나기 하루 전에 메일을 보내주세요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고작 서너 줄 적어서 보내는 학생도 있었지만, A4 용지로 11장을 쓴 학생도 있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깔깔 웃다 가기도 했지만, 눈물부터 흘리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잘 지켰지만, 저를 두 번이나 바람맞힌 학생과 세 번째에야 만나게 된 적도 있었고요. 30분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신기하다는 듯 “어른하고 둘이서 대화를 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라고 말한 학생도 있었답니다.

코로나 19로 비대면 수업을 하기 전까지 15년 동안 1,500명 남짓 만나다 보니 커피값만 해도 어마어마했습니다. 무엇보다 집중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앉은 자리에서 예닐곱 명의 이야기를 연달아 들을 때면 지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15년이나 계속했을까요. 배우는 게 많아서였습니다.

제가 한 건 별로 없었어요. 들어주기만 했지요. 22년 반 동안 제 수업을 들은 2천여 명 중 몇몇 후배들과 지금까지도 독서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후배가 얘기했어요. “선배님, 미리 말씀 못 드려 죄송했지만, 사실 티타임 때 선배님과 나눈 대화를 녹음했어요.” 적잖이 당황했지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뭐라고 했어?” 제 질문에 후배는 대답했습니다. “30분 중에서 27분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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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를 저 혼자 얘기했더라고요. 선배님은 이런 말씀만 하셨어요. 그랬구나, 그래, 힘들었겠네, 장하다, 기특하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서너 명에 한 명꼴로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처음엔 당황했어요….

“어머, 왜 울어? 울지 마. 혹시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거야?” 그러면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던 후배들. 나중엔 알게 되었어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몰입해서 들어주는 경함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구나.

■ 낮게 천천히

23,400명 안팎의 초대 손님을 만나며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시절, 제가 느낀 바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유형은 따로 있구나,’ 요즘은 달라졌겠지만, 예전에는 보험사에서 해마다 계약을 가장 많아 체결한 설계사를 ‘보험 여왕’이라 부르고 시상식을 했습니다. 실제로 미스코리아처럼 왕관을 쓰고 긴 망토를 끌며 행진하는 곳도 있었죠. 연말쯤 그분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어요. 3년 연속 만나 본 세 군데 보험 여왕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내향적이고 말수가 적으며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모두 체구도 자그마한 편이었네요.

목소리가 우렁차고 성격도 괄괄하며 유머 감각 넘치는 캐릭터의 보험 여왕을 떠올리진 않으셨나요. 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일 겁니다. 사고든 질병이든 뜻밖의 일이 생겼을 때 믿고 찾아가 의논하고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도와줄 사람, 내성적이면서 꼼꼼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이겠지요.

꽤 오래전 아나운서실에 근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마침 저를 찾더라고요. 아주 세련되고도 예의 바르게 말하던 그 학생은 방학 동안 모국어를 배우러 왔고 귀국을 앞두고 있다고 했어요.

커피숍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물어봤어요. 캐나다에서 태어났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우리말을 세련되게 잘하는지를요. 그녀의 대답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낮게 천천히! 어학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대요.

“우리말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라. 낮게, 천천히!”

캐나다에서 태어나 영어를 배운 교포 학생이 한국 아나운서 귀에도 쏙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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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만큼 신뢰감을 준 말하기는 ‘톤’과 ‘속도’에 비밀이 있었습니다. 낮게! 천천히! 그럼 연습해 볼까요. 처음 만났을 때 인사말부터요.

“(낮게!)안녕하세요, (천천히!)반갑습니다.”

■ 혼자가 아닙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다. 글자에 힘이 없고 글씨가 작아진다.”

필적을 연구하는 분이 하신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고립해 외톨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해요. 사람들이 외로우면 글씨까지 외로움을 타나 봅니다.

말도 확실히 그런 듯합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입을 떼지 않으면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지 못해 간격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말할 때 자신감이 떨어지고 입안으로 웅얼거리게 되고요. 그러니 목소리에 힘도 없고 말소리도 줄어들 밖에요.

혼자 있더라도 생명체에 말을 거세요. 강아지나 고양이, 어항 속 금붕어도 좋아요. 혼자가 아님을 느끼세요. 반려동물이 없다면 반려식물은 어때요? 물을 주면서 말을 걸어보세요. 사랑을 주면 식물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잖아요.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없다면 무생물에게도 괜찮습니다. 물론 제일 좋은 건 사람을 만나는 겁니다. 소위 ‘방송고시’를 준비하며 전화번호를 바꾸고 친구들도 전혀 만나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을 가끔 봤습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 고립감 속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넣을 때 스스로 잘 버틸 수 있는 사람인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다이어트를 더 잘할 수 있게 하는 게 ’치팅 데이‘ 잖아요. 일주일에 하루쯤 떡볶이도 먹고 치킨도 배달시키듯이 한 달에 한 번쯤은 친구를 만나 맥주잔도 기울이고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는 건 어떨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지 않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니까요.

■ 한마디도 하지 않은 하루

상대 없이 혼자서 말하는 게 쑥스러우면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버스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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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말하는 걸 녹음하는 거죠. 친구와 통화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방송인이 아니라면 자신이 말하는 걸 직접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스스로 어떻게 말하는지 알 길이 없죠.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녹음 버튼만 누르면 언제 누구나 자기 목소리나 말의 장단점을 판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할 겁니다. 내 목소리가 아닌 것 같지요. 아나운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몸 안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를 듣는 ’내이(內耳)’와 몸 밖, 즉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온 소리는 ‘내 목소리가 이렇구나’ 하고 느낍니다. 비유하자면 스테레오로 듣는 셈이지요. 이 중에서 내이를 제외한 외이의 소리가 바로 남이 듣는 내 목소리입니다. 녹음해서 듣는 목소리도 바로 그것이지요. 스테레오가 아닌 모노라고나 할까요. 모노보다 스테레오가 더 풍성하게 들리듯, 남이 듣는 내 목소리(외이) 보다 내가 듣는 내 목소리(내이+외이)가 훨씬 더 좋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 객관적인 내 소리(외이)를 들으니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아침 토크쇼에서 만났던 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한국인이 세계 최고 명문대에 합격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기쁜 일이겠죠. 오래전에 그 교수님도 그랬답니다. 부푼 마음을 안고 미국 뉴욕에 갔는데, 외로움과 괴로움이 동시에 덮쳐 오더랍니다.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고 수업은 물론 수다도 영어만 통하는 상황, 한국어로 말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더랍니다. 세계 각국의 천재만 모인다는 곳에서 자신은 보잘것없더랍니다. 괴로움이 더해갔겠죠..

그랬던 분이 10년을 버티며 졸업하고 학위를 받고 강의까지 하게 된 비결이 다름 아닌 혼자 말하기였답니다. 저녁이면 수업 도구인 비디오카메라를 원룸 한가운데 두고 녹화 버튼을 눌렀답니다. 더러는 울었고 때로는 웃었겠지요. 그렇게 혼자서라도 말을 했기에 ‘미치지 않고 무사히’ 졸업한 후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때로는 테이프값이 아까워 녹화한 걸 지우고 그 위에 또 녹화했대요. “그걸 다 남겨 뒀더라면 의미 있는 기록이 될 수 있었을 텐데”하며 후회하시더라고요.

혼자 있다 보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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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며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을 한다면 어떨까요. 입을 닫고 일을 하니 입을 열어 말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할 겁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자기 말 녹음하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한 마디라도 좋으니 매일 녹음하고 들으며 고쳐보세요. 두려움은 슬며시 사라지고 자신감은 살며시 붙을 겁니다.

■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장점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말해 주세요. 칭찬이 춤추게 하는 것은 고래만이 아닐 테니까요. 누구에게나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단점은 남들 앞에서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이라도, 엄마 아빠라 하더라도 함부로 말하는 건 좋지 않아요. 아이를 위한다면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는 방에서 놀다가 거실에서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엄마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아휴 우리 애가 뭘 잘생겼어요. 못생겼죠.” 어른이 된 다음에는 엄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대요. 겸손이 미덕인 시대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때는 여덟 살, 비수가 날아와서 가슴에 꽂히는 것 같았답니다. 그때부터 생각했대요. ‘나는 못생겼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 말했잖아. 나는 못생겼어.’ 중학교에 올라가고 사춘기가 되고 여드름이 나면서 확신했답니다. ‘그래 나는 진짜 못생겼구나.’ 자신감이 떨어졌겠죠. 주눅이 들었을 겁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수업 시간에 발표할 때도,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을 때도 그 생각이 자신을 지배했다니까요.

‘나는 못생겼으니까. 누가 나같이 못생긴 애를!’ 대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졸업하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그때도 이러면 큰일이지 싶어서 콤플렉스를 고백하고 탈출하자는 프로그램에 출연 신청을 했습니다. 그렇게 용기를 냈다는 남성의 얘기에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못생기지 않았거든요. 아니, 못생기기는커녕 요즘 말로 훈남에 가까웠습니다. 여드름 자국도 말끔하게 사라져서 피부도 매끈했고요.

방청석에 앉아계신 어머니께 마이크를 드렸습니다. 아들의 이런 콤플렉스를 알고 계셨는지요. 어머니는 몰랐다고 했습니다. 여덟 살에 아들 귀에 들리도록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기억조차 못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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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시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졸지에 난민이 되어 급히 고국을 떠나온 여성이 있었습니다. 갈 곳 없는 그녀를 받아주겠다는 사람이 영국 런던에 살고 있었답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간신히 빠져나온 상황, 불안과 초조함에 떨던 그녀를 맞이한 런던 집주인의 첫마디는 이거였답니다. “당신의 집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 순간, 그 한 마디에 정말 내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난민은 고백했습니다. “언어에는 놀라운 힘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렇게 되기도 하죠.”

윤영호, 윤지영씨의 인터뷰집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한마디 말은 생지옥을 경험한 사람에게 천국을 보여줄 수도 있고, 졸지에 누군가를 마음고생 지옥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상대에게 어떤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인가요.

■ 내비게이션을 끄세요

옳은 소리라도 엄마가 하는 말은 왜 잔소리로 들릴까요. 세상에서 엄마만큼 나를 사랑하고 아끼며 속속들이 잘 아는 사람도 없는데 말입니다.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때에 듣기 싫은 말을 해서 그런 것이겠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이야기를 자꾸만 시도 때도 없이 하기 때문일 겁니다.

안 그래도 책상 정리를 지금 막 하려고 했는데, 꼭 그때 책상 좀 정리하라고 합니다. 날이 추워서 목도리를 하고 나가려고 찾는데, 딱 그 순간에 말하죠. 멋 부린다고 얇게 입지 말고 장갑이나 목도리 단단히 하라고요. 나도 알아서 할 거였는데 말입니다.

내비게이션은 상대가 원할 때만 켜야 합니다. 초대받지 않은 조언을 하는 건 적을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말도 있거든요. 그런데 선배는, 상사는, 윗 사람들은 초대한 적이 없는 후배에게, 부하에게, 아랫사람에게 자꾸만 찾아와서 조언합니다. 물론 아껴서 그러는 겁니다. 잘 되기를 바라니까요. 실수하거나 실패하지 않고 좀 더 빠른 길로 안전하게 가기를 바라니까 그러는 겁니다. 하지만 켜지도 않은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라떼 타임’이 되는 법입니다. “라떼는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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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언제까지? 후배가 먼저 물어볼 때까지.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만한 실패나 실수가 아니라면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좋은 부모는 코치가 아니라 응원 단장이라죠. 필드에서 뛰는 건 선수 자신이니까요. 부모는 잘하면 잘한다고 환호해주고 못하면 기죽지 말라고 응원의 구호를 외쳐주면 되는 겁니다. 후배도, 부하도, 아랫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는지요.

■ 원장님의 한마디

한마디 말의 힘, 우리도 일상에서 종종 느낍니다. 그중 한 곳이 미용실 아닐까요. 미용 일을 하는 분들은 손님이 나간 뒤에 어디로 향하는지 주의 깊게 본답니다. 혹시나 화장실로 향하는지 말이죠. 머리가 마음에 안 들면 자세히 거울을 보러 화장실로 직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직접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입니다.

1) “앞머리가 너무 길지 않아요?” 원장님이 이렇게 답을 합니다. “앞머리가 눈썹을 가려줘야 분위기 있어 보여요. 손님은 지적인 느낌인데, 지금 길이가 그 분위기를 더 살려주거든요.”

2) “머리카락이 너무 짧잖아요?” 원장님의 답변입니다. “머리카락이 짧으니까 산뜻해서 발랄한 느낌도 들고 어려 보이시는데요.”

3) “다음에는 커트하는 시간을 좀 더 줄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원장님의 말 궁금하시죠. “단골손님이라서 특별히 신경 써드렸어요. 일단 저희 가게로 오셨으니 나가실 땐 멋쟁이 머리로 나가셔야죠.”

상대의 마음을 공략하여 원하는 상황으로 바꾸는 것, 이것이 바로 설득이라고 <하버드 말하기 수업>이라는 책에서 주장합니다.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면서요.

한 수업에서 각자 자기 단점을 쓴 롤링 페이퍼를 돌려서 다른 학생들이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적어주는 활동을 했대요. 단점이 장점으로 이렇게 바뀌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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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걸 미룬다.” → “죽는 날도 미뤄보자!”

“나는 다리를 늘 꼬고 있다.” → “네 덕분에 정형외과가 돈을 버네.”

“물건을 자주 잃어버린다.” → “많은 사람의 생계를 네가 책임지는구나.”

“나는 잠이 많다.” → “네 피부가 그래서 좋구나.”

“나는 너무 충동적이다.” → “화끈하네.”

“나는 방 청소를 안 한다.” → “방에서 보물찾기할 수 있어서 재밌겠다.”

“나는 돈을 아낄 줄 모른다,” → “와, 너 돈 많구나. 나랑 친구할래?”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말을 하고, 맥락을 이해하며 상황에 맞게 말을 하는 사람은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일 겁니다. 지능지수보다는 감성 지능, 공감지수가 높은 사람이 현대에는 어울린다고 하죠.

■ 부장님 증후군

퇴근길 생방송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를 진행하면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호소하는 사연을 자주 접합니다. 상사 스트레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사가 하는 말에 상처받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연에 제가 붙인 이름은 ‘부장님 증후군’입니다.

그런데 왜 부장님은 답답해하고 우리는 못 알아들어 속상한 걸까요. 이유는 한 가지. 부장님이 제일 중요한 것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누가 듣느냐.

누구에게 말하느냐.

말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청자입니다. 화자가 아닙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중요하죠. 말하기란 ‘내(화자)가 상대(청자•청중)에게 무엇(메시지)을 전달하여 이해시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상대(청자•청중)의 이해입니다. 부장님이 놓친 것도 바로 이 부분이고요.

부장님은 자신만 생각하고 말했을 겁니다. 그럼 당연히 직원(청자)은 못 알아듣지요. 같은 업무에 관해 말(업무지시)을 한다 해도 부장님과 직원이 가진 정보의 양과 질은 다릅니다.; 부장님이 부서장 회의, 다른 직원들의 보고를 통해 전체 업무의 100%를 알고 있다고 해 봅시다. 직원은 자신이 담당하는 부분, 즉 일부만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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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라는 주제로 말을 할 때도 초등학교 6학년인지 대학생인지, 대학 새내기에게 들려줄 이야기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부장님이 업무지시를 내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팀장에게 할 말을 팀원에게 한다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부장님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면 말을 할 때 꼭 생각해야 합니다.‘지금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듣느냐.

누구에게 말을 하느냐.

말하기에서 중요한 것은 화자가 아니라 청자입니다.

◎ 말을 이해한다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과 같은 집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해 줄 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는지도 몰라요.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잊지 마세요.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기준입니다.

■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과 같은 집에 산다

결혼으로 인해 이주한 외국인 사위, 며느리와 아주 잘 지내는 한국인 어머니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을 좀 더 천천히 하거나 단어를 반복해서 얘기하신다고 해요. 어쩌면 서로가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오히려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는 외계인이 살아.”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는 후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춘기를 호되게 겪고 있는 아들이 외계인으로 보인다는 푸념이었죠. 외계인이라도 외국인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소통할 수 있는데 같은 한국인들끼리는 그게 참 어렵죠. ‘한국어로 말하는데 오랫동안 한솥밥 먹으며 살아왔는데 당연히 내 말을 알아듣겠지.’

하지만 이미 머리가 굵은 아이와 물 흐르듯이 소통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닐 겁니다. 아이를 낳고 키웠지만, 마음과 생각과 경험과 감정까지 공유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아들딸이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여겨요.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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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상국 시절에 자라난 나하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된 후에 태어나 자란 우리 아이하고 어떻게 같은 사람이겠어요.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지.”

그러니 내 말을 못 알아들어도 당연하다 여기고 어쩌다 알아들으면 작은 기적이라고 여겨보면 어떨까요. 그런 마음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싹이 트기 시작할 겁니다.

■ 위로는 한 박자 늦게

말이라는 건 참 어렵습니다. 말로 마음을 달래는 건 훨씬 더 어렵습니다. 게다가 위로는 언제나 어설플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남이 다르기 때문이죠. 아무리 사랑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 마음을 100% 알 수는 없잖아요.

유명세는 대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치르게 되는데 그럴 땐 “괜찮아?”라고 물어보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간신히 버티던 후배한테 들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톡으로든 문자로든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안 괜찮을 거라는 건 그 사람도 알지 않겠어요? 근데도 그렇게 물으면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괜찮다고 하자니 거짓말이고, 안 괜찮다고 하자니 설명이 길어질 것 같고.”

위로의 말은 한 박자 늦어져도 좋습니다. 아니 늦어지는 게 낫습니다. 저도 그분들에게 배워서 안 좋은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하루 이틀쯤 기다렸다가 수많은 문자 세례로부터 해방되었을 무렵 문자를 보냅니다.

“이금희입니다. 안녕하지 못하실 것 같아 의례적인 인사도 못 쓰겠네요, 마음 많이 아프셨지요.” 제 위로의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무조건 네 편이야

말 그대로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있을 때였어요. 마음이 내키면 만나서 데이트도 하고 즐겁게 지내지만, 이유도 없이 마음이 틀어지면 연락조차 안 되는 남자. 걱정만 시키고 애만 태우더니 이별도 결국 최악이라는 ‘잠수 이별’을 택한 남자.

저만 몰랐나 봐요. 그가 나쁜 남자라는 걸.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다들 말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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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서운하기만 했죠. 왜 내 연애를 참견할까. 내가 좋다는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인데, 애태우고 속 썩는 사람도 나고 좋아하는 것도 난데, 왜 다들 헤어지라고 하는 거지? 그땐 몰랐습니다. 헤어지고도 한 참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나쁜 남자였구나.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게 다 보였구나.’

그렇게 연애를 하면서 힘들어할 때, 유일하게 제 편을 들어준 선배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훌쩍거리는 저에게 그러더군요. “네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을 사귀어도 나는 무조건 네 편이야!”

토크쇼를 18년 넘게 하면서 제가 배운 한 가지,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사람의 입술은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표정은 속이지 못해요. 행복하다고 말하는 입술을 믿지 말고 행복해서 저절로 웃음 짓는 표정을 믿어야 하더라고요.

■ 뒤가 더 중요해

지금처럼 문자나 톡을 주고받기보다 전화 통화하는 사람이 더 많고 통화 무제한 요금제도 없던 때였지요. 1초라도 빨리 끊어야 요금이 덜 나온다고 했습니다. 전화 요금은 절약되겠지만 야박해 보일 것 같았습니다. 저는 예전처럼 정이 느껴지는 끝인사를 좋아하거든요. “먼저 들어가세요.” “먼저 끊으세요.”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다가 마지못해 한쪽에서 종료 버튼을 누르는 것 말이에요. 마치 동구 밖까지 배웅 나와서 떠나는 사람이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 주는 고향 식구 같은 작별 인사라고나 할까요. 용건이 끝났다고 툭 끊어버린다면 삭막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통화가 끝난 뒤 상대가 끊을 때까지 조금 기다리는 편입니다. 그래 봐야 1초나 2초니까요.

가까워지는 데도 말이 큰 몫을 하지만 멀어지는 데도 말이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앞도 중요하지만 뒤는 더 중요합니다.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거친 말을 하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옵니다. 평판이라는 이름으로요.

■ 순한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다

이런 말을 들어보셨죠. 순한 사람이 화를 내니 정말 무섭더라. 어른들이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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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잖아요. 근거가 있는 걸까요. 근거는 몰라도 경험해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평소 조용조용하고 말 없던 사람이 한번 화를 내면 무섭게 느껴지잖아요. 왜 그럴까요

어쩌면 순한 사람이란 잘 참는 사람을 뜻하는지도 모릅니다. 자기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분위기를 위해 무조건 참는데 익숙해진 사람. 그들은 그렇게 참다 참다 폭발하는 것이지만 그런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상황이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겠지요.

■ 거절도 천천히

화를 내기도 쉽지 않고, 참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 아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해야 한다면요. 그게 돈 문제라면 더욱 그렇죠.

사회생활 걸음마를 시작한 젊은이에게 재테크 기초 상식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였어요. 화면을 보기 전, 스튜디오에서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라는 주제가 나왔어요. 이런저런 논의 끝에 제 의견은 그랬습니다. “아직 재테크를 할 줄 몰라서 통장 관리를 엄마(아빠, 할머니, 혹은 어른)가 하고 계셔. 용돈을 모아서 얼마까지는 빌려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워.”그 액수는 형편껏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돌려받지 못해도 포기할 수 있는 금액이어야 한다고 했어요. 재테크 전문가도 비슷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돈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부탁받은 상황에서 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때 저도 거절 못 하는 병에 걸려서 힘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던 건지 도무지 거절을 못 하겠더라고요. 나중에는 전화를 받거나 문자를 보는 게 두려울 정도였어요. 소소한 부탁부터 함께 일해 보자는 제안까지, 물론 다 감사하죠. 하지만 제가 가진 시간과 재능에는 한계가 있는데 다 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 저는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 했습니다. 이 사람이 나에게 연락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아침 생방송이 끝나고 가볍게 차 한잔하는 자리에서 마침 출연하셨던 정신과 선생님에게 여쭸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쩌면 좋겠냐는 제 질문에 5초도 안 걸려 답을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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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는 사람이 모두 너와 같지는 않다. 너는 고민 끝에 어렵게 입을 떼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주 쉽게 부탁하고 거절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런 사람들은 너 아니면 A, A가 안 되면 B에게 부탁한다. 너는 A, B, C 중 하나일 뿐이다. 속이 다 후련했습니다. 거절하는 것도 연습하다 보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도 했어요.

다음 날 오전 업무가 시작되고 한두 시간 후, 저는 거절의 문자나 톡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이금희입니다. 어제 연락을 받고 일정을 살펴봤습니다. 함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빨리 연락을 드려야 다른 분을 섭외하실 것 같아요. 그럼 행사가 잘 치러지기 바랍니다. 남은 하루도 잘 보내세요.” 완곡하지만 거절 의사를 전달하고 상대를 배려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답하는 거죠. 이 정도면 괜찮은 거절이 아닐까요.

■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니까요

방송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쥐게 되는 나만의 교과서, 바로 방송 원고입니다. 좋은 원고를 써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라디오 원고를 읽으면서 감성을 키웠고, 토크쇼 원고를 훑어보며 인생을 배웠고, 다큐멘터리 원고에서는 정보와 지식을 얻었습니다. 한동안 EBS에서 사회심리 실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시리즈로 제작했는데, 내레이션을 맡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중 잊을 수 없는 실험 하나를 소개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사회적 존재인지를 볼 수 있는 실험이었습니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은 교차로 횡단보도, 그리 붐비지 않는 한산한 시간이었어요.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갑자기 ‘실험맨’이 하늘을 쓱 올려다 봅니다. 손을 이마에 갖다 대면서 뚫어지게 한곳을 봅니다.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건너가고,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이쪽으로 오는 내내 자세를 바꾸지 않아요. 마치 저 하늘에 무엇이 있다는 듯, UFO라도 나타났다는 듯 계속 응시하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여러분이 상상하고 있는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뭘 보는 거지 싶어 실험맨을 한번 보고, 그 시선이 머물러 있는 하늘 한번 바라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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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의 심리를 거울 세포 이론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인간의 세포에는 거울처럼 다른 사람을 보면서 모방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다는 겁니다.

인간이 학습을 해 온 것도 거울 세포의 작용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사회화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말 중에도 그런 표현 있잖아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

방송 일을 하면서 제가 저만의 교과서인 방송 원고를 통해 조금씩 깨우쳤듯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영향력을 미치는 분들도 부디 그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 배우고 닮아가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는 각자 서로의 거울입니다.

 

■ 10퍼센트는 남겨 두세요

면접만큼 떨리는 순간은 연설할 때가 아닐까요. 명연설로 손꼽히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한마디 기억하시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그 연설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미루고 미룬 끝에 나왔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미뤘기 때문에 킹은 생애 최고의 연설을 하게 되었다고요.

물론 오래전부터 준비했지요. 연설문에 어떤 내용과 어투가 적당할지 최 측근 세 명에게 자문했고 연설문 작성자와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또 다른 민권운동가들에게 초안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흘 전 본격적으로 연설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답니다. 전날 밤에는 보좌진을 모아놓고 연설문을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기 시작했다죠. 이런 걸 ‘자이가르닉(제이가르니크)효과’라고 한답니다.

완성된 작업보다 미완성 작업을 사람들이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러시아 심리학자 블루마 제이가르니크가 증명해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네요. 일단 작업이 마무리되면 사람들은 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을 중단한 채로 두면 그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대요.

흥미로운 사실은 원래 연설문에는 ‘꿈’이라는 개념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킹은 자기차례 직전까지 연설문 일부를 지우고, 새로운 문장을 끄적거렸다죠. 그러니 짧은 애드리브로 시작해 즉흥 연기, 즉흥 연설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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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이 시작되고 11분이 지났을 즈음 누군가 외쳤답니다. “그들에게 그 꿈 얘기를 들려줘요, 마틴!” 가스펠 가수이자 흑인 인권 운동의 동지 <서머타임 Summertime>을 부른 머핼리아 잭슨이었습니다. 그러자 킹은 준비해 왔던 연설문을 밀쳐놓고 즉흥적으로 꿈과 미래를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업의 완성을 미루면 이처럼 즉흥적인 사고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기 계획을 세우고 완성해 놓으면 우리 뇌는 완성된 구조를 고수하려 해서 갑자기 등장하는 창의적인 가능성을 배제하게 된다고요.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이나 발표를 하게 되었을 때 100% 원고를 완성해 놓지 말라. 90% 가량 완성하고 10%는 남겨두고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다시 고쳐보고 한 번이라도 더, 마지막까지 수정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 콩나물에 물 주듯

남편의 한 마디가 등대 역할을 했다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지만, 아내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답니다. 그런 아내가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신나서 배움의 기쁨을 누렸죠. 하지만 중학교 과정에 접어들자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초등학교와는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영어 단어도 외기 어렵고, 수학 공식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주중에는 하루도 수업에 빠진 날이 없었습니다. 주말이면 아침을 먹자마자 단어장을 손에 들고 나갔습니다. 김매고 밭 일구면서 중얼중얼 단어를 외웠습니다. 소용이 없었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앉았다 일어나면 까먹고, 집으로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금세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나이 탓을 하게 된 아내를 보며 남편이 슬며시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버리잖아요.” “네? 갑자기 콩나물은 왜요?” “물이 밑으로 빠지니까 눈에는 안 보이지만, 며칠 후에 보면 콩나물이 쑥 자라있지요. 공부도 그런 법이에요. 해도 해도 아무 소용없는 것 같아도 자기도 모르는 새 실력이 쑥 늘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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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침 토크쇼에 출연하셨던 만학도의 얘기였습니다. ‘잊을 수 없는 한마디’라는 주제로 출연한 인상 좋은 노부인이었죠. 공부하다 힘들 때 남편이 해준 한마디 덕분에 고비를 넘기고 중•고등학교 과정을 무사히 마쳐 마침내 대입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화란 이런 겁니다.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중학교 교장이었던 남편은 아내가 평소에 보고 느끼는 점을 헤아려 한마디를 했습니다.

자취생 이야기를 그린 만화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봤습니다. “힘내! 라는 말에는 힘이 나지 않습니다. 조용히 건네준 10만 원 봉투에 힘이 납니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취준생 후배에게 우리가 해줄 일은 그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상황에 맞춘 따듯한 말 한마디 그리고 그 사람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용돈이 든 봉투,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기준입니다.

* 다음에 2편이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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