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후기

빅터 프랭클의죽음의 수용소에서(2)

보해성산 2023. 11. 17.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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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2)

- 죽음조차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간 존엄성의 승리 -

■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전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수감자를 다른 수용소로 옮기는 대규모 수송 작전이 진행됐다. 수용소 당직자와 카포, 요리사들은 모두 도망갔다. 이날 해질 때까지 수용소를 완전히 비워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졌다. 잔류해 있던 몇 명의 사람들(환자와 의사 몇 명 그리고 간호사들)까지도 모두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밤이 되면 수용소에 불을 지르게 되어 있었다.

오후가 됐는데도 환자를 실어 나르기로 한 트럭이 오지 않았다. 대신 갑자기 수용소 문이 닫히고, 어느 누구도 도망칠 수 없도록 철조망에 대한 감시가 강화됐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수용소와 함께 불태워질 운명에 처한 것처럼 보였다. 내 친구와 나는 두 번째로 탈출계획을 세웠다.

시신을 옮길 때 쓰는 세탁 통에 배낭을 싣고 함께 타고 탈출하기로 했다. 나는 숲에서 며칠 동안 먹을 빵을 구하러 간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친구가 돌아온 그 순간 수용소 문이 활짝 열렸다. 적십자 마크가 그려진 번쩍번쩍하는 알루미늄 차가 천천히 점호장 안으로 굴러 들어왔다. 제네바에 있는 국제적십자사 대표가 도착한 것이다. 수용소와 수감자들은 그의 보호를 받게 됐다. 차에서 약상자가 내려지고 담배가 공급됐다. 우리는 사진에 찍혔으며, 기쁨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제 전선을 향해 달려가는 위험한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 엇갈린 운명

그렇게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은 자유에 대한 기대 속에 지나갔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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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트린 것일까? 국제적십자사 대표는 협정이 조인 됐으며 수용소를 비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확언했다. 그러나 그날 밤 나치 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와서 수용소를 비우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마지막 남아 있던 수감자들은 중앙 수용소로 보내진 다음 그곳에서 48시간 안에 스위스로 가도록 되어 있었다. 다른 전쟁 포로들과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나치 대원들을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트럭에 타라고 우리들을 설득했다.

내 친구와 나는 마지막 그룹에 속해 있었다. 이 그룹에서 열세 명을 뽑아 끝에서 두 번째로 오는 트럭에 태우기로 되어 있었다. 트럭이 도착하자 주치의가 열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중에 우리 둘의 이름이 빠져 있었다. 우리 둘은 놀라고 화가 나고 실망해서 주치의에게 따졌다. 그는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없어서 그랬노라고 변명하면서 우리가 아직도 탈출을 기도하는 줄 알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할 수 없이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마지막 트럭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여러 주가 지난 후,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도 운명의 신이 우리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우리 수용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작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날 밤 자유를 향해 간다고 믿었던 친구들은 차에 실려 그 수용소로 이송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막사 안에 갇힌 채 불에 타 죽었다. 사진으로도 군데군데 불에 탄 동료들의 시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 무감각의 원인

수감자들의 무감각이 일종의 방어 기재였다는 것 외에 여기에는 또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 굶주림과 수면 부족이 무감각 상태로 그들을 이끌었으며, 수감자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초조함이 이런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수면 부족은 밤새 이와 벼룩 등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보건 시설과 위생시설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와 벼룩이 사람들로 꽉 찬 막사 안에서 무섭게 퍼져나갔다. 니코틴과 카페인 부족도 이런 무감각과 초조함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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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요인 외에 정신적인 요인도 있었는데, 그것은 복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열등의식에 시달렸다.

이런 현상은 수용소라는 사회의 구조를 관찰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다른 수감자보다 ‘우월한’ 수감자, 카포, 요리사, 군수 창고 관리인, 보안대원은 대다수 사람들과는 달리 계층이 하락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상승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 몇몇은 약간의 과대망상 증세까지 보이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극도로 피곤한 상태에 있었다. 왜냐하면 밤새도록 화로에 불 - 수용소에서는 발진티푸스 환자를 위해 불을 피우는 것을 허락했다 - 을 지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낸 시간 가운데 가장 목가적이었던 시간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헛소리를 하거나 잠을 자고 있는 한밤중이었다. 나는 난로 앞에 몸을 쭉 뻗고 누워서는 슬쩍해 온 감자 몇 알을 역시 훔쳐 온 숯불에 구워먹었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는 한 층 더 피로감을 느꼈으며, 감각이 둔해지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발진티푸스 환자 막사에서 의사로 일할 때, 나는 병으로 쓰러진 고참 관리인 대신 그가 하던 일을 받게 됐다. 따라서 나에게는 막사를 항상 청결-그런 상황에서도 청결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하게 해야 할 책임이 주어졌다.

■ 인간의 정신적 자유

수용소에서는 항상 선택해야 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이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이 보이는 심리적 반응은 어떤 물리적 사회적 조건에 대한 단순한 표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수면 부족과 식량 부족,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보면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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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라도, 심지어는 그렇게 척박한 환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미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 시련의 의미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이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의 삶을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억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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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으로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강제 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난다.

우리는 앞에서 수감자의 내면적 자아에 대한 최종 책임은 심리적, 육체적 요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감자의 자유의사에 따른 결정에 있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수감자들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해보면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 안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런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내적 소유’를 이룰 수 있으며 또 이루어야만 할까?

■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자기 경험을 글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당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 내가 있던 수용소에서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저명한 연구 전문 심리학자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이란 삶을 ‘일시적인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누리는 사람과는 정반대로 미래를 대비한 삶을 포기한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실직자가 이와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고, 목표를 세울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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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역시 기이한 ‘시간 감각’을 경험했다. 시시때때로 자행되는 폭력과 배고픔이 하루를 꽉 채우고 있는 수용소에서는 하루라는 작은 단위의 시간은 영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보다 긴 단위의 시간, 예를 들자면 일주일은 빠르게 지나간다.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 작가는 서로 비슷한 심리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들, 즉 폐결핵에 걸려 요양소에서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는 환자들을 등장시켜 인간의 영적인 발달 단계를 얘기한다. 그들도 똑같은 상태, 미래도 없고 삶의 목표도 없는 생존상태를 경험한 것이다.

수용소 동료 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역부터 수용소까지 길게 줄을 서서 행진해 들어왔는데, 그 행진이 마치 자기 자신의 장례식 행렬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삶은 전혀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이미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 갇혀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

- 철조망 밖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미래의 목표를 찾을 수 없어서 스스로 퇴행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는 일에 몰두한다.

강제 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가 자기들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 반대로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생긴 심한 종기)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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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앞에서 청중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 대상이 됐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일반적으로 이런 현상은 아주 갑자기 위기라는 형태를 띠고 일어난다.

■ 살아야 할 이유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려면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데 성공해야 한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그리고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들은 곧 파멸했다. 모든 충고와 격려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하는 전형적인 대답은 이런 것이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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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릴케는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글에서 말한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 할 시련이 너무나 많다. 따라서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일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닫는다.

■ 자살 방지를 위한 노력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 요법과 정신 건강법을 이용한 치료를 시도해 보았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 요법은 일종의 인명구조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말하자면 자살 방지책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을 금하는 엄한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목을 매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매인 줄을 끊는 것도 금했다. 따라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음을 강조했다.

■ 집단 정신치료의 경험

당연한 일이지만 수용소 안에서는 집단을 대상으로 정신치료를 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말로 하는 치료보다는 오히려 올바른 모범을 보여주는 편이 더 효과적이었다. 행동을 통해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는 말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어떤 때는 말이 더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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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관리인이 나를 불러 지난 며칠 동안 병이나 자살로 죽어 간 수많은 동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시에 그는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희생자들이 이런 최악의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어떤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했다.

신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정신 의학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교하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을, 동료들을 상대로 정신과적 치료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춥고 배고프고 짜증나고 피곤했다 하지만 노력해야 했다.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이런 기회를 활용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절실한 때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에 대해 얘기했다. 공정하게 말해서 미래가 가망 없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얼마나 적은지에 대해서도 모두 생각을 같이했다.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스무 명 중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며칠 안으로 전쟁 상황에 엄청난 반전이 일어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적어도 각 개인에게 얼마나 엄청난 기회가, 그것도 아주 갑자기 찾아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작업 환경이 좋은 특별 작업반에 배치된다거나 하는 일처럼 말이다. 이런 일들이 당시 수감자들에게 바로 ‘행운’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이었다.

 

■ 수용소의 여러 인간군상

이제 수감자들이 보인 심리적 반응의 세 번째 단계, 즉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 대해 설명할 차례가 됐다. 하지만 그 전에 정신의학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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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개인적 체험을 통해 수용소 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정신 의학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그것은 수용소 감시병들의 정신 상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다.

살과 피를 가진 인간으로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일, 수용소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당했다고 말하는 바로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첫째, 감시병 중에는 사디스트(대상을 학대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 정신의학적인 측면에서 정말로 순수한 사디스트가 있었다.

둘째, 이 사디스트들은 아주 잔인한 감시병이 필요한 경우에 선발됐다. 그들은 비록 몇 분 동안이지만 따뜻한 난로 앞에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허락받는다. 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감독 중에는 우리가 누리는 이런 안락함을 빼앗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우리에게 불을 쬐지 못하게 하고, 난로를 뒤엎고, 그토록 사랑스러운 불씨를 눈 속으로 던질 때 그들의 얼굴에서 생생한 쾌감의 빛을 읽을 수 있었다.

셋째, 대다수 감시병들은 감정이 메말라 있는 상태라는 점이다.

넷째, 감시병 중에도 우리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강제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 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 해방의 체험

이제 강제 수용소에서의 정신 의학,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됐다. 풀려난 사람들의 심리이다. 해방의 체험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개인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여기서는 극도로 긴장했던 며칠이 지난 후 수용소 정문 위에 흰 깃발이 펄럭였던 그날 아침의 경험담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겠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우리에게 고함치며 명령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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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이나 고함을 치며 명령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피하려고 자맥질하는 오리처럼 움츠릴 필요도 없었다. 세상에! 감시병들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들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재빠르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곧 다리가 아프고 구부러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렀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선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탉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히 물었다.

“말해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는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離人症)’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꿈처럼 비현실적이고, 있을 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육체는 마음보다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새롭게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한 사람이 먹어 치우는 음식의 양이 심히 놀라웠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은 이웃에 있는 친절한 농부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는데, 거기서도 그는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동안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걸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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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도록 컸다는 것을.

자유를 찾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수용소 근처에 있는 시장으로 가려고 꽃이 만발한 들판을 지나 시골길을 걸었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올랐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주변 몇 마일 안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드넓은 대지와 하늘, 종달새의 환호 그리고 자유로운 공간만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몇 시간 멈춰서서 주변을 돌아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나 자신은 물론, 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단 한 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저는 제 비좁은 감방에서 주님을 불렀나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공간에서 저에게 응답하셨나이다.”

그때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서 이 말을 되풀이 했는지 더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바로 그날 그 순간부터 새 삶이 시작됐다는 것을. 나는 다시 인간이 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견뎌야 했던 극도의 정신적 긴장(예를 들어 게슈타포의 혹독한 심문 같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이 아무런 장애 없이 순탄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 더 이상 정신적 치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전과 똑같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제 자유의 몸이 됐으니 이 자유를 마치 특허를 받은 것처럼 잔인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제 폭력과 불의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자행하는 가해자가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겪었던 끔찍한 경험으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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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행위를 정당화시킨다. 이런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나는 아직도 한 친구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오른손 주먹을 내 코밑에 갖다 대며 이렇게 소리치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내가 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다면 내 손을 잘라 버릴 거야.”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말을 한 친구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에서나 그 후에도 나의 가장 친한 동료였다.

■ 비통과 환멸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언젠가는 그때를 돌아보면 자기가 그 모든 시련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침내 해방의 날이 찾아와 모든 일들이 아름다운 꿈처럼 여겨진 것과 같이 수용소에서 겪었던 모든 시련들이 언젠가는 하나의 악몽으로 생각될 날이 올 것이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이 시련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체험은 보든 시련을 겪고 난 후 이 세상에서 신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이로운 느낌을 갖게 된 것이다.

◎ 제2부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 제3부 비극 속에서의 낙관

제2부, 제3부의 내용은 작가가 정신 의학자로서 전문적인 내용을 기술한 것이어서 생략합니다.

끝으로 작가의 정신 의학에 대한 마지막 의견을 소개합니다.

■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

아주 오랜 기간 – 실제로 반세기 동안 – 정신 의학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그저 하나의 수단으로 보았고, 그 결과 정신 질환 치료를 하나의 테크닉으로 간주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종류의 꿈은 충분히 꾸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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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선 너머로 어렴풋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심리학의 얼굴을 한 의술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정신 의학이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을 그저 하나의 기능인으로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환자를 병 너머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기계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여러 개의 사물 속에 섞여 있는 또 다른 사물이 아니다. 사물들은 각자가 서로를 규정하는 관계에 있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규정한다. 타고난 자질과 환경이라는 제한된 조건 안에서 인간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의 판단에 달려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우리 세대는 실체를 경험한 세대이다.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을 만든 존재이자 또한 의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입으로 주기도문이나 <셰마 이스라엘>을 외울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 2023. 11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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