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탄허의 월정사.정암사 편액
탄허의 월정사·정암사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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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적광전… 心意대로 쓴 선필 행초
태백산 정암사… 통판에 음양각으로 새겨
◇정선 정암사 일주문 편액.
◇평창 월정사 편액.
탄허 택성(呑虛 宅成·1913~1983)은 근대를 대표하는 학승으로 전라북도 김제군 망경에서 김홍규(金洪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2세가 되던 해에 오대산 상원사 한암 중원(漢岩 重遠)을 은사로 출가, 참선 수행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오대산연수원 원장, 월정사 조실, 동국대학교 대학선원 원장, 조계종 초대 중앙역경원 원장 등을 지냈으며, 특히 한문 대장경의 한글화에 힘써 120여 권의 경전을 번역, 출간하였다.
탄허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웠고, 15세가 되면서부터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후학인 이극종으로부터 다방면의 학문을 섭렵한 그의 글씨는 호방한 필치를 특징으로 하는데, 평창 월정사 <적광전>, <오대산월정사>, <설청구민>, <천왕문>, <월정대가람>, <삼성각>, <대강당>, 강릉 보현사 <영산전>, 홍천 수타사 <삼성각>, <심우산방>, 정선 정암사 <태백산정암사>, <자장각>, <삼성각>, <범종각>, <육화도량>, <선불도량>, 화성 용주사 <지장전>, 아산 강당사 <관선재>, 아산 봉곡사 <봉곡사>, 예산 향천사 <극락전>, 정읍 내장사 <정혜루> 편액 등 강원도와 충청도 일원의 사찰에 많이 남아 있다.
평창 월정사 <적광전> 편액에는 액판 좌측에 ‘신해춘 탄허(辛亥春 呑虛)’라는 관지가 있다. 이 편액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칠불보전 자리에 1971년 봄에 절의 본전인 적광전을 새로 지으면서 탄허가 쓴 것이다. 이 편액의 글씨는 대부분의 그의 글씨와 마찬가지로 서법에 매이지 않고 심의(心意)대로 쓴 선필 행초(行草)다.
정선 정암사 일주문에 걸려있는 <태백산정암사> 편액은 변죽을 따로 붙이지 않은 통판에 음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것으로, 액판 좌측에 두줄로 ‘무오중추 탄허(戊午仲秋 呑虛)’라는 관지가 있다. 이 편액은 1978년 가을에 일주문을 신축하면서 당시 월정사에 머물던 탄허의 글씨를 받아 건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탄허 특유의 호방한 선필이지만, 글씨의 아래 위 액판의 여백이 충분치 않아 편액의 모양이 다소 옹색한 느낌을 준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