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7. 12:01ㆍ독서후기
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
■ 곽재구
0 1981 중앙일보 신춘문예 ‘사평역에서’ 당선으로 등단
0 시집 : 사평역에서,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등
0 기행산문집 : 포구기행, 예술기행 등
0 동화집 : 아기 참새 찌구,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 등
0 신동엽 창작기금과 동서문학상 수상
0 순천 대학교에서 시 창작 강의
■ 책 머리에
불가에서는 1초 전이 전생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24시간 86,400초를 다 기억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였지요. 내게 다가오는 86,400초의 모든 1초들을 다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1초는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1초는 지금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지요. 그런 다음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무렵 나는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들을 사랑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2009년 7월 나는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12월까지 이어진 이 여행은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시편들을 찾아가는 여행이었지요. 벵골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며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를 익혀 타고르의 사랑스러운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고 싶었지요. 타고르의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남은 산티니케탄에서 벵골 사람들과 살아가는 시간은 기쁨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타고르의 시편들이 내게 건네주는 느낌과 또 다른 질감이 있었지요.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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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모습은 범상한 시가 지니지 못한 생의 격이 있었습니다.
산티니케탄에서 나는 내 생애 두 번째, 내 삶이 지닌 1초 1초들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느씸을 받았습니다. 540일. 46,656,000초의 시간들. 모든 한 초 한 초들이 꽃다발을 들고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인사하고 다시 손을 흔들고 가는 것입니다. 나 또한 그들을 향해 오래 손을 흔들고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봅니다.
- 2011년 7월 와온 바다에서 곽재구 -
1.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종이배를 파는 아이가 있었네
크와이에 있는 벼룩시장에 다녀왔습니다.
산티니케탄 사람들은 벼룩시장을 새터데이 마켓이라고도 부르고 크와이 멜라라고도 부릅니다. ‘멜라’는 축제의 의미와 전시장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벵골어입니다. 새터데이 마켓보다는 크와이 멜라 쪽이 내게는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군요. 크와이는 숲으로 둘러싸인 평지의 이름입니다. 옆에는 작은 강물도 흐르고 있습니다. 평상시 이 강물에는 소들과 사람들이 함께 목욕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강물을 따라 붉은 황톳길이 죽 이어지는데 숲과 강물이 함께 어울린 이 황톳길을 릭샤(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문득 이 여행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호사스러운 여행인가 하는 생각이 우련 듭니다. 릭샤왈라(인력거꾼)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 페달을 밟고 여행자는 시원한 바따쉬(바람)를 맞으며 숲과 강물과 황토가 빚어내는 고요한 빛의 멜라 속으로 젖어드는 겁니다. 멀리 나무 숲 사이로 선홍빛과 노란빛의 사리를 입은 농가의 아낙이 염소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릭샤왈라는 왜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 하고 나는 선선하게 바람과 빛을 즐길 수 있는가. 하는 심란한 생각에서 잠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크와이는 인도적인 빛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의 이름인 것입니다. 일찍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또한 이곳의 빛을 인식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산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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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탄의 타고르 박물관에는 타고르가 그린 그림들의 복사본이 전시되어 있는데, 그 중 두 그루의 거친 나무가 서 있는 수묵화풍의 그림에 ‘크와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한적한 숲 속에 벼룩시장을 마련한 사람들의 속내에는 타고르의 그림에 대한 이네들의 존경과 애정이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크와이의 강변길을 한참 따라가다 보면 타고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농촌 공동체인 아미르 꾸띠르에 이르게 됩니다. 인도의 계급제도와 극심한 빈부격차를 타파하려는 혁명적 이상을 품었던 타고르는 고향인 산티니케탄에 ‘나의 오두막집’이라는 뜻의 아미르 꾸띠르 공동체를 건설합니다. 그리고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기 위해 다양한 수공예품을 만드는 공방을 세웠습니다. 타고르의 위대한 이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아미르 꾸띠르에서는 숙련된 주민들이 가죽 금속 직물 등 여러 소재를 이용한 기념품을 공동 생산하여 판매하고 있습니다.
크와이 멜라는 오후 3시부터 시작입니다.
사실 오후 3시는 이곳에서는 별다른 효용 가치가 없는 시간입니다. 우기라고는 하지만 습기를 강하게 머금은 이곳의 더위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느낌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이곳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다들 쓰러져 쉬거나 잠을 잡니다. 개도 소도 염소도 원숭이도 이 시간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은행과 서점 식료품 가게들도 다 문을 닫습니다. 그래서 오후 3시에 문을 여는 크와이 멜라는 이 시간에 잠들지 않는 독특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축제인 셈입니다.
나를 태운 릭샤왈라의 이름은 가띡입니다. 그는 산티니케탄의 우체국 앞에서 걸어오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사실 내가 그곳으로 간 것은 그곳에 ‘라떨이’라는 이름의 구면인 릭샤왈라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라떨이. 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나 떨이. 라는 한국어의 어감이 생각나 혼자 쿡쿡 웃었습니다. 이름 때문에 나는 그의 단골이 되었는데 비교적 장거리인 크와이까지 가기 위해 우체국 앞으로 왔다가 일을 나간 라떨이 대신 그의 친구인 가띡의 릭샤를 타게 되었지요. 그와 나는 오후 3시 5분에 크와이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막 전을 편 아낙에게서 짚으로 만든 작은 광주리 하나를 뜨리쉬 루피에 샀습니다. (10은 도쉬, 20은 비쉬, 30은 뜨리쉬이고 10루피는 우리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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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원 정도) 그리고는 노점상의 다다(아저씨)에게서 반소리(피리)하나를 40루피에 샀습니다. 일금 1,000원에 나는 근사한 대나무 반소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반소리를 구입한 나는 몹시 고양된 감정의 주인이 되었지요. 그것은 낯선 이국의 벼룩시장들에게서 내가 얻었던 감정들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는데 무엇보다도 크와이의 제품들이 모두 정성이 가득 밴 수공예품이라는 데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충분히 만족한 나는 짜이(밀크티)를 파는 디디(아주머니)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때 내 눈앞에 한 작은 소녀가 주섬주섬 보따리를 푸는 게 보였습니다. 아홉 살 혹은 열 살쯤. 아이의 보따리에서 무엇이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보따리가 다 펼쳐지고 아이의 진열품이 완벽하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아! 하고 깊은 탄성을 울렸습니다. 그 아이의 보따리에서 나온 게 무엇이었는지 당신 잠시 생각해 볼래요?
그것은 종이배였습니다.
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일곱 개의 종이배.
아이는 종이배를 팔기 위해 크와이의 멜라에 나온 것입니다. 나는 잠시 타고르의 화신이 종이배를 들고 이 장터에 나타난 것은 아닌가 생각했지요. 어린 시절 우리 모두는 종이배를 만들어 시냇물에 띄우며 놀았고, 그 종이배가 어딘가 큰 바닷가에 이르기를 바랐습니다.
기탄잘리에 나오는 시편들 대다수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와 세상 이야기가 아니던가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두 개의 종이배를 골라 들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떨리는 목소리로 값을 물었습니다.
아이는 두 개의 종이배 값으로 10루피를 불렀습니다. 10루피면 근교의 식당에서 한 끼의 탈리(인도식 백반)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돈입니다. 나는 아이에게 10루피 지폐를 건넸고 아이는 환하게 웃었습니다. 우리의 거래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조용히 웃었습니다. 크와이의 사람들은 나를 조금은 나사가 풀린 사람으로 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사우스코리아 사내. 종이배를 돈을 주고 샀어. 그런 눈빛들이 내 주위에 머무는 것을 느꼈지요. 그렇지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을 얻은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그 두 개의 종이배와 함께 크와이의 강기슭을 거슬러 돌아왔습니다.
가띡. 난 지금 몹시 행복해. 넌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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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을 모르는 릭샤왈라도 달리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라딴빨리에 돌아온 나는 가띡에게 100루피 지폐를 건넸습니다.
■ 종이배를 파는 아이가 있었네(2)
행운은 즐겨 행운을 부릅니다.
저물녘에 라딴빨리의 스위터 가게 앞에서 바삐다를 만났습니다. 삼십대 후반쯤인 그는 자동차 두 대를 가지고 택시 사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성품이 착하고 온화해 말이 통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차를 몇 번 빌려 쓴 나는 그와 동무가 되었습니다. 바삐다. 너는 핸섬하고 차를 두 대나 가지고 있으니 이곳 아가씨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아. 그치? 하고 물으면 볼이 빨개지며 아니다. 하고 손사래를 칩니다. 바삐다. 나 방금 크와이의 멜라에 다녀왔어. 뭐 샀는지 한번 볼래?
그는 짚으로 엮은 광주리를 먼저 보았고 대나무로 만든 반소리도 보았습니다. 광주리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과일 바구니 하면 좋겠어, 라고 얘기 했지요. 반소리를 들고 불어보는 시늉을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내가 노트 갈피에 끼워둔 종이배를 보여주자 그가 노코(종이배)라고 말합니다. 이 두 개 10루피에 샀어. 좋지? 내 말에 그는 정말! 하며 넋을 놓고 웃습니다. 그는 곁에 있던 자신의 자동차 기사들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이 다다가 종이배를 샀어! 큰 소리로 말했고 그들 모두 물러서서 내 종이배를 보며 웃는 것이었습니다. 다다. 정말 10루피 줬어? 묻는 그들에게 난 아주 자랑스럽게 말했지요. 10루피에 샀지만 내게는 천 루피나 만 루피보다 더 가치가 있어. 어린 시절 다노코 가지고 놀았잖아. 이건 내 마음의 배야. 값으로 따질 수 없어.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한 인도 아가씨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지요. 하이. 다다.
그렇게 암리타 달(Amrita Dhar)을 만났습니다.
암리타는 자신이 콜카타의 대학 영문과에 다니고 있으며 비슈와바리타 대학에는 한 과목의 시험을 치르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에게서는 깊은 지성의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신이 나서 암리타에게 타고르의 시 ‘챔파꽃’과 시집 ‘초승달’얘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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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녀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종이배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다 접은 종이배 위에 그녀가 볼펜으로 무엇인가를 적었습니다. 앞면과 반대쪽 면에 다 적었지요. 그리고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그곳에는 THE GOLDEN BOAT 라는 영문과 벵골어가 함께 적혀 있었고, 반대 편에는 To Kwag Jae Gu from Amrita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암리타는 타고르의 시 ‘황금빛 배 (The Golden Boat)' 이야기를 내게 해 주었지요. 벵골어로 쇼날 또리 라고 불리는 이 시는 비 오는 날이 배경이라했습니다. 아주 아름답고 쓸쓸한 시라며 내게 꼭 그 시를 찾아보라는 군요. 이렇게 나는 타고르의 벵골어 시 중에 제일 먼저 읽을 시를 찾은 셈입니다. 암리타는 우리가 앉아 있는 맞은편 가게의 나무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었습니다. 그 나무의 이름은 조전건다 였지요. 이 나무는 오직 산티니케탄에만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의 꽃에서는 달빛의 냄새가 난다고 말했지요. Smell of moonlight! 세상에 달빛의 향기를 뿌리는 꽃나무가 있다니…… 암리타는 타고르가 이 나무의 향을 몹시 사랑했다고 얘기합니다.
이 여름 나는 인도에 들어와 많이 아팠습니다. 날이 너무 무덥고 습기가 많아 온 몸에 땀띠가 나고 얼굴과 목, 입술이 퉁퉁 부어올랐지요. 괴물 중에도 상괴물의 몰골이었습니다. 풍토병의 조짐조차 느껴졌기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까지 생각했지요. 벵골어를 공부해 타고르의 시편들을 한국어로 번역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너무 허황된 것은 아니었나. 그에 대한 인도 신들의 징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제 얼굴의 부기가 어느 정도 빠지고 땀띠도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여전히 힘든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암리타가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군요. 어쩌면 나이 들고 병든 나의 상태를 안쓰럽게 여긴 타고르의 영혼이 암리타를 내게 보내 몸과 마음의 그늘들을 걷게 한 것은 아닌지요? 이제 산티니케탄에 적응하며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것입니다. 암리타는 내일 시험이 끝나면 곧장 콜카타로 떠난다고 얘기했습니다. 나와 그녀는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고 나는 그녀에게 내 시집 한 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팔은 두 개지만 다리가 하나인 작은 목각인형 하나를 주었습니다. 왜 다리가 하나인가? 묻자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저도 모르지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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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딴빨리의 스위티 가게 위로 초승달이 반짝반짝 빛을 뿌리며 흘러갑니다. 나는 그 초승달이 자꾸만 크와이의 멜라에서 산 종이배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내게 종이배를 판 그 소녀에게 돈노바트.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 아이가 종이배를 접을 때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어린 타고르가 종이배를 접었고, 우리의 유년 시절이 종이배를 접었고, 다시 태어날 세대들 또한 종이배를 접어 시냇물에 띄울 것입니다. 허름한 영혼이지만 우리들 모두 작은 종이배 하나가 되어 인생의 강물 속으로 흘러들어가겠지요.
■ 황금빛 배 (The Golden Boat 1894년. 타고르)
먹구름 울고 비가 쏟아집니다
슬프고 외롭게 나는 강둑에 앉아 있습니다
추수는 끝나가고 볏단들은 비에 젖습니다
강물이 쿨럭쿨럭 흐릅니다
벼를 베며 나는 비에 젖습니다
작은 논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강물은 소용돌이 치며 흐릅니다
먼 둑길 위의 나무들은 외로운 잉크 얼룩 같은 그늘을
사람의 마음에 드리웁니다
작은 논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배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며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누구인지요?
오, 내가 아는 여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돛을 활짝 펴고 그이는 앞을 바라보는데
물살을 가르며 배는 다가옵니다
전에 본 그 얼굴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뜁니다
그리운 이여 어디로 가는 길인가요?
여기 내 논가에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세요
당신 마음 가는 데로 그대로 가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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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게로 와서 당신의 미소를 보여줘요
떠날 때 내 황금빛 벼들을 다 가져가세요
다 실으세요 모두 실어가세요
더 있느냐고요? 이게 다예요 모두 실었지요
내가 이 논에서 온 정성을 바쳐 일한 모두를
차곡차곡 다 실어 보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이여 이제 저도 데려가세요 제발
배가 너무 작아 태울 곳이 없다고 당신은 말하는군요
내 모든 황금빛 영혼을 다 실은 탓입니다
먹구름 쿨럭이는 하늘
텅 빈 벼논 가에 나 혼자 서 있습니다
황금빛 배는 가고 빗속에서 나 혼자 서 있습니다. - 끝 -
■ 인연
론디니를 처음 만난 것은 팔 년 전의 여름날이었습니다.
그 여름 나는 아우인 민호와 함께 네팔과 인도를 여행하기로 했고 그 첫 행선지가 산티니케탄이었습니다. 보성강 가까운 산골 마을 월등 촌놈인 아우는 첫 여행임에도 산티니케탄을 고향 동네쯤으로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거리에서 만난 바울(집시)들과도 금세 어울려 친구가 되었고 게스트하우스의 주방장과 친구가 되어 커드와 라시(요구르트 디저트) 만드는 법, 짜이 만드는 법까지 금세 배우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산티니케탄에 일주일을 머물렀는데 우체국 곁의 과일 가게 골목을 걷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였습니다. 과일 가게 골목이라 했지만 이 골목 안에는 과일 가게 외에도 짜이와 간단한 식사를 파는 몇 군데의 로컬 식당이 있고, 자전거 수리점과 옷 수선집, 이발소와 담배 가게도 있는 산티니케탄의 중심가에 해당하는 골목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골목에서 바울들의 즉석 공연을 보기도 하고 식사를 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골목 안길을 걷다가 아주 허름한 짜이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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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에 일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혼자 서 있었습니다. 콜타르칠을 한 가게 안은 대낮인데도 어두웠는데 그 속에 혼자 서 있는 아이가 왠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아이는 입성이 허름했고 맨발이었지요. 우리는 아이에게 안녕!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는데 어느 날 하루는 아이가 환하게 웃는 것이었습니다. 고요한 어둠 속에서 하얗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챔파꽃의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산티네케탄을 뜨기 전날 아우가 내게 얘기했습니다.
형, 저 아이에게 우리 신발 한 켤레 사주자.
복사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산골에서 가재를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아우로서는 너무 자연스러운 생각이었지요. 나는 뉴밀레니엄 바람이 한창 불던 2000년 1월의 네팔 트레킹을 떠올렸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던 우리 일행에 소속된 포터 중 한 명이 신발이 없었습니다. 겨울이었고 쌓인 눈을 밟아야 하는 곳도 더러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의 맨발이 퍽 불편했습니다. 하산 길에 우리는 그에게 트레킹 신발을 한 켤레 사주기로 했는데 의외로 반대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유인즉, 지금 신발을 사 주는 것은 좋지만 이 신발은 금세 못 신게 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요. 계속 신발을 사 신을 수 없는 형편이고 다음번 신발을 살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이 포터가 불행해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담고 있었지요. 일행들은 최종적으로 이 생각에 동의했습니다. 신발 대신 그에게 돈을 주자. 신발을 사세요. 라고 얘길 하되 최종 선택은 그에게 맡기자는 것이었지요. 나도 그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신발을 사 주는 대신 신발 값에 상응하는 돈을 선물 형식으로 주었습니다. 그 뒤 우리는 산티니케탄을 떠났고 아이가 새 신발을 신었을까 그러지 못했을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지 못했습니다.
2009년 7월 나는 산티니케탄에 다시 왔습니다.
산티니케탄 생활 석 달이 지난 즈음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체국 옆 골목길로 지나가는데 낡은 짜이 가게 안에서 한 아가씨가 나를 보고 웃는군요. 얼굴이 까맣고 윤곽이 분명한 전형적인 인도 처자였지요.
나는 순간 이 아가씨가 내가 아닌 내 곁의 다른 누군가를 보고 웃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나 외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함께 웃고 가볍게 손을 흔들며 지나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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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나는 그 아가씨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아가씨는 나를 낡은 의자에 앉게 하더니 잠시 있으라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오 분쯤 지나자 처자가 다시 돌아옵니다. 처자가 들고 온 것은 새 차 봉지 였습니다. 인도의 짜이 가게들은 주전자에 미리 짜이를 끓여두고 손님들에게 한 잔씩 나눠주는데 이 아가씨가 왜 새 차를 끓여내는 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요. 차 맛은 우련 좋습니다. 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처자는 계속 바라보며 웃습니다. 차를 마시고 난 뒤 찻값을 묻자 처자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받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돈을 내보지도 못하고 가게에서 나왔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밤 시간에 옥상에 올라가 별을 바라봅니다. 별똥별이 하늘의 1/4을 채울만큼 긴 꼬리를 내며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별똥별의 끝에서 짜이 가게의 처자 생각이 순간 듭니다. 팔 년 전 여름날 아우 민호와 함께 들렀던 그 가게. 맨발인 채 챔파꽃 향기처럼 고요하게 가게 안 어둠 속에서 웃고 있던 아이! 바로 그 아이가 짜이 가게의 처자일 거라는 생각이 번쩍 든 것입니다. 아우와 함께 들렀던 가게 위치와 처자가 루띠를 구우며 서 있는 가게 위치도 생각해보니 똑같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나는 벌써 잊어버렸는데 아이는 자라서도 잊지 않았다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산티니케탄 우체국 옆 골목길을 자나갑니다.
낡은 짜이 가게 안에서 론디니가 환하게 웃습니다. 이 아이만큼 맑게 웃는 인도 아가씨를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 아이만큼 깨끗한 웃음을 보냈던 적이 있던가. 꽃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고 노래한 시인도 있지만 웃는 론디니를 바라보면 그 말 외에 덧붙일 표현이 없군요.
■ 라딴빨리의 노천카페에서
라딴빨리에 해가 집니다.
라딴빨리는 산티니케탄의 다운타운 이름입니다. 이곳에는 한두 평짜리 가게가 서른 개 남짓 길 양편으로 늘어서 있습니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기둥을 세운 벽에는 흙을 바르고 지붕은 루핑을 치거나 함석을 얹었습니다. 짜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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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만두), 도사(밀전병) 같은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가 많고, 야채가게와 전기용품 가게도 있습니다. PC방이 둘 있는데 인터넷 속도는 아주 느려 사진 한 장을 전송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릴지 두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정전이 되면 무용지물이어서 손님들은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정전이 언제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무싯날에는 하루에 서너 차례 정전이 되는데 한 번에 한 시간은 기본입니다.
해가 지면 가게 주인들은 모깃불을 피웁니다. 나무 이파리들을 모아 태우는 모깃불은 이 가게가 곧 영업을 시작한다는 표시입니다. 가게 안을 모깃블 연기로 가득 채워 날벌레를 쫓고 손님 맞을 채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산티니케탄에서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입니다. 낙엽 태우는 냄새는 한국이나 이곳이나 똑같습니다. 이곳저곳 가게 주인들이 피우는 모깃불 냄새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이곳이 인도의 한 변방마을이라는 것을 금세 잊어버리지요. 모깃불 연기가 슬며시 내 곁으로 다가오면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기도 하고 나직이 인사를 건네기도 합니다.
안녕, 오늘 더웠지?
52도까지 올랐는데 견딜만했어?
나, 괜찮아. 다들 견디잖아.
괜찮기는요. 어젯밤 생각이 나는군요.
샤워를 하고 옥상에 올랐지요. 정전이어서 사방은 별들이 내는 숨소리 외에는 아무 기척도 불빛도 없습니다. 운이 좋은 날에는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는 때도 있어서 나무 의자에 앉아 별을 보노라면 폭염의 공포에서 잠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반딧불이들이 반짝반짝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어둠 속에 펼쳐진 모든 풍경들에 연민이 이는 것을 느낍니다. 길, 나무, 집, 숲의 새들과 원숭이들, 오늘도 다들 열심히 제 몫의 삶을 살아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위대한 일이 아닐는지요.
모깃불이 잦아드는 시각, 정전이 찾아옵니다. 초저녁의 이 정전은 특별한 축제날이 아닌 한 일 년 내내 지속되지요. 이 정전의 시간이 하루 중 라딴빨 리가 가장 붐비는 때입니다. 이곳에는 상인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발전기가 있어 불이 들어오기 때문이지요. 폭염과 어둠을 피해 라딴빨리의 가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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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간단히 차를 마시고 저녁을 먹습니다.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룹 스터디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라딴빨리에서 가장 큰 가게 둘의 이름은 아난다 멜라와 모두반니 스위티 가게입니다. 아난다 멜라는 기쁨의 전시장, 정도의 뜻입니다. 가게 주인의 이름이기도 하지요. 세 평 크기의 이 가게는 번듯한 시멘트 건물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자와 음료, 생필품들을 갖춰놓고 파는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 가게에서 아이스크림과 자판기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다 멜라 앞에는 늘 열 명쯤의 손님들이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거나 종이컵으로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라딴빨리의 상점들이 내 마음에 쏙 드는 진짜 이유는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에 있습니다. 산티니케탄은 3월이면 벌써 기온이 40도를 넘는 여름이 찾아오고 4,5월이면 50도를 넘나듭니다. 11월이 되어서야 30도 아래로 내려갑니다. 여름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정전 때문에 집은 한증막이고 천장의 팬은 멈춥니다. 유학생들은 저녁 한나절을 이곳 라딴빨리의 노천카페에서 보내다 늦은 시각 전기가 들어오면 집으로 향하지요.
내기 라딴빨리릐 노천카페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손님들 중 상당수가 외국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작고 낡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은 세상 어디를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코즈모폴리탄의 마을입니다. 유학생들은 독일 프랑스 체코 미국 같은 나라들에서도 오고, 타이 중국 일본 방글라데시 부탄 네팔 한국 같은 나라들에서 두루두루 옵니다. 그들 나라의 젊은 학생들이 저녁시간이면 이곳에 모여 차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습니다. 이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군요. 나는 이들 중 타이와 일본 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들은 내가 반얀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늘 내 곁에 다가와 하루가 좋았느냐, 요즘은 무슨 시를 쓰느냐, 여행은 언제 갈 것이냐 묻습니다.
이 저녁 나는 이곳에서 만난 젊은 유학생 친구들 여섯 명과 식사를 합니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키기도 하고 옆 가게의 메뉴를 가져다 먹기도 합니다. 여섯 명이 실컷 먹고 이야기를 나눈 호사스러운 식사의 값은 150루피. 3,750원입니다. 전 세계의 유학생 중 산티니케탄의 유학생이 그런 점에서 가장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타고르의 영혼이 깃든 이곳에서 음악과 미술, 철학과 역사와 시를 공부합니다. 그리고 험난하기 이를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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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 이렇게 적은 돈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요. 돈이 생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많은 돈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돈이 더 가치 있다는 것. 어쩌면 이 사실이야말로 돈의 진정한 의미 아니겠는지요?
가난하고 소박하고 평화롭고 따뜻하게 인생을 배우고 삶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라딴빨리의 노천카페들입니다. 오세요. 당신. 500원이면 하루 종일 당신의 인생과 철학, 예술과 여행에 대해 세계의 젊은이들과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세상에서 네 번째 아름다운 학교
오전 6시 15분 빠따바반(비슈와바라티 대학교 부속초등학교)에 갑니다.
아침 햇살이 교정의 숲을 적시기 시작하는 그 시각에 빠따바반에서는 아침 기도가 시작됩니다. 우리나라의 조회 시간 같은 것인데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전교생 200명쯤이 모여 타고르의 시를 읊고 기도를 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노래의 선창은 열 명쯤으로 이루어진 합창단이 하는데 합창단은 매일 바뀝니다. 1학년이나 2학년 아이들이 합창단으로 나오는 날은 귀여워서 숨이 넘어갈 지경이지요. 10학년 이상의 남자 선배들이 합창단으로 나와 굵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의 감동도 큽니다. 새삼 인간의 목소리가 가장 완벽한 악기라는 사실을 느낍니다. 앞에서 떠드는 훈육 선생님도 길게 길게 훈화하는 교장선생님도 없습니다. 나지막하게 울리는 종소리 하나로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게 되지요.
땡그랑 종소리가 울리면 합창단이 타고르송을 부르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가 끝나면 함께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들은 고요하고 명상적입니다. 기도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 내용이 자연과 신에 대한 찬미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회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간은 5분에서 7분쯤, 긴 시간이 아닙니다.
조회가 끝나면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수업장소로 우르르 몰려가는데 그 모습도 참 예쁘지요. 수업은 모두 나무 그늘 아래서 이루어집니다. 야외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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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것입니다. 이것은 타고르 이래의 전통입니다. 흰색 주황색으로 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선생님과 이것저것 주고받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대개는 나무 주위에 둥그렇게 모여 앉는데 넓게 펼쳐진 숲 그늘 아래 이런 원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아이들의 기도 시간에는 나도 두 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를 합니다. 산티니케탄에 머물 수 있도록 시간을 준 신들에게 감사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 훌륭한 인도인이 되기를 바라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똘똘 뭉쳐진 나를 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몇몇 아이들은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어떤 아이는 사흘 내내 나를 기다렸다가 꽃을 주기도 했습니다. 저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서 거의 대부분 꽃을 꺾어 들고 옵니다. 선생님에게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선생님이 앉은 자리 앞에는 꽃이 수북수북 쌓이기 마련이지요.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자리 앞에 수북이 놓인 꽃들을 보며 선생님들이 얼마나 행복해 할 것인지를…….
숲속의 교실에는 새소리가 아침 내내 얼음 알갱이들을 따뜻하게 부숩니다. 원숭이들과 개들, 소들 염소들, 나비들이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듣습니다. 꽃들은 여기저기 피어 그 향기가 아득하고 떠돌이 바람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아래의 수업을 기웃거립니다. 나는 숲 속의 한 나무 그늘에 앉아 아이들의 수업을 바라보다가 시를 씁니다.
이 학교는 내 생각에 지상에서 네 번째 아름다운 학교입니다. 어떤 우울한 시간이나 쓸쓸한 생각도 빠따바반의 아침 수업을 십 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다 사라집니다.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첫째와 둘째 셋째 학교를 알지 못합니다. 빠따바반이 지금까지 내가 지상에서 바라본 가장 아름다운 학교의 모습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학교가 이 세상 어딘가에 세 개쯤은 더 있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름다운 학교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 또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1교시를 숲에서 보내고 산티니케탄 큰길로 나오다 다보스 릭샤왈라를 만납니다. 난 그와 이곳저곳을 한 시간쯤 떠돌다 호숫가의 식당에 들어갑니다. 토마토 스프와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가 내게 비닐봉지에 싼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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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다보스의 여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글도 모르는 그가 어떻게 여권을 만들었을까 신기하기만 한데 미국인 친구가 만들어주었다 하는군요.
미국인 친구의 이름은 레베카, 의사입니다. 레베카가 그를 콜카타까지 데려가 여권을 만들어준 것이지요. 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 레베카라는 미국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이는 오로지 피리 자루 하나만을 알고 세상을 살아온 한 바울 릭샤왈라에게 꿈을 주었습니다. 언젠가 자신도 다른 세상을 여행할 수 있다는 꿈을 지닌 것입니다. 환하게 웃는 나이든 릭샤왈라의 모습이 빠따바반의 아이들 모습 같습니다.
■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비슈와바라티 숲길입니다.
숲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내게 달려오는군요. 빠따바반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이 쫌빠다! 쫌빠다! 내 이름을 부르는군요. 오후 3시가 되었으니 학교 수업은 진즉 끝났을 텐데. 아이들이 운동장에 남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적다 보니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군요. 학교가 끝난 뒤에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지요?
나는 아이들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디기 디기! 하며 카메라 주위로 모여듭니다.
디기 디기, 보자 보자, 참 예쁜 말입니다.
사진을 본 아이들은 모두 한마디씩 자신의 소감을 피력하기 마련입니다. 얼마나 싱싱하고 푸르른 소리인지요. 아침 햇살 떠오를 무렵 숲의 새소리를 듣는 느낌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있다가 우마디를 만납니다.
우마디는 이곳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입니다. 학식과 인품이 있는데다 영어 발음이 좋아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선생님입니다. 우마디는 몹시 바쁘고 그에게 영어 레슨을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배경이 필요하다는군요. 나는 그에게 내가 쓴 시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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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디에게 보여준 시의 제목은 부겐빌레아, 입니다. 인도의 가을과 겨울에 제일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지요. 꽃 색이 하양 연두 빨강 주황 다양하고 잎과 꽃이 나란히 핍니다. 이파리 수만큼 꽃잎이 달려 있는 탐스러운 꽃이지요. 초고 상태의 이 시를 옮기면 이렇습니다.
부겐빌레아
꽃이 필 때 아무 소리가 없었고
꽃이 질 때 아무 소리가 없었네
맨발인 내가
수북이 쌓인 꽃잎 위를 걸어갈 때
꽃잎들 사이에서 아주 고약한 소리가 들렸네
오래전
내가 아직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그 소리를 들은 적 있네
외로운 당신이
외로운 길을 만나 흐느낄 때
문득 고요한 그 소리 곁에 있음을.
우마다에게 이 시를 길 위에서 들려주었습니다.
우마다가 어메이징(amazing 놀랄만한, 굉장한)!을 연발하는군요.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몰랐습니다. 우마다는 ‘내가 아직 /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를 몇 번이나 거듭 묻는군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다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하던 존재들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마다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렇게 나와 우마다의 첫 수업은 끝났습니다. 우마다는 나를 기꺼이 자신의 학생으로 받아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우마다에게 인도인들의 철학과 삶.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느릿느릿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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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인사
캡바(미친놈)
산티니케탄 우체국 앞길입니다.
캡바!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캡바, 는 미친놈!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속은 아닙니다. 바울(집시)들이 공연할 때 특히 그렇습니다. 공연이 한창 절정에 오르면 사람들이 신이 나서 추임새를 넣습니다. 캡바! 캡바! 이럴 때 캡바는 공연자에 대한 최고의 찬사가 되지요. 야, 너 완전히 미쳤구나 공연 한번 최고다! 캡바!인 것입니다.
물론 일상생활에선 당연히 저급한 상말이 되지요. 여기는 산티니케탄의 저잣거리입니다. 한 아낙이 누군가를 향하여 다시 한 번 캡바! 하고 부르는군요.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 끌렸습니다. 뒤를 돌아 아낙을 바라보다가 확, 반가운 마음이입니다.
호리다시!
아낙이 나를 보더니 환하게 웃습니다.
호리다시는 일본에서 건너온 바울입니다. 호리다시가 캡바! 하고 부른 이는 쇼또난다 바울이었지요. 쇼또난다는 이곳 바울들 중 실력이 출중하여 몇 차례 해외 공연을 다녔고 한국에서도 공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쇼또난다는 릭샤 위에 앉아 있었는데 포도 몇 송이를 산 호리다시가 쇼또난다를 부른 것입니다. 나는 한국에서 이 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둘은 예술적 동지이며 연인입니다. 그런데 저잣거리에서 부르는 호칭이 캡바!이군요. 공연 때의 캡바! 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미친놈! 이기는 하되 사랑에 빠진 미친놈. 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떠돌이 바울로 노래와 춤, 타고르의 시에 미쳐 있지만 자신에게도 미쳐있기를 바라는 여인네의 심사가 그 호칭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따스하고 인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호칭이 캡바! 라는 것을 오늘 나는 알았습니다.
자이구루! (너의 스승에게 경배를!)
산티니케탄에는 반소리를 부는 릭샤왈라가 둘 있습니다. 다보스 바울 릭샤왈라와 오닐 릭샤왈라가 그들입니다. 해가 지고 달빛이 초롱한 밤,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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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샤에 앉아 부는 피리 소리가 산티니케탄의 숲과 밤길을 적십니다. 반딧불이들이 깜박깜박 날아오르는 밤에 이들의 반소리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내 영혼의 한 자락도 반딧불이들과 함께 먼 나라로 떠나는 느낌이 들지요.
이들의 피리 소리가 가장 촉촉이 가슴을 적실 때는 몬순 무렵입니다. 가는 비가 고요하게 산티니케탄의 숲을 적셔나갈 때 밤의 푸른 기운과 신비한 습기 속으로 반소리 가락이 번지는 것입니다. 까닭 모를 서러움과 아득히 지난 시절의 향수조차 밀려오는군요. 그들이 반소리를 부는 밤이면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자이구루! 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들도 짧은 합장과 함께 자이구루! 하고 답례를 하지요.
자이구루! 는 너의 스승에게 경배를! 이라는 의미를 지닌 인사말입니다.
넌 정말 보기 좋은 삶을 살아가는데, 너를 이렇게 잘 길러준 스승에게 감사를 드린다. 의 뜻이지요. 바울들이 공연할 때도 청중은 자이구루! 라는 추임새를 넣습니다. 너를 보니 네 선생님 정말 훌륭한 분이구나! 하는 영탄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내게 자이구루! 하고 인사할 적이면 생의 어디선가 나도 꼭 멋진 스승을 만날 것 같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나를 만날 적 자이구루! 하고 인사하는 릭샤왈라들이 하나 둘 늘고 있습니다.
■ 보순또 바하 꽃이 필 때
내 꿈속에 꽃이 핀다면
저런 형상으로 필 것이다
어느 날 신이
내 꿈속의 마을을 방문한다면
바로 저 빛깔의 사리를 입고 올 것이다.
누군가 내 꿈속에서
지상의 별들을 모두 잠재울 노래를 부른다면
그는 바로 저 꽃의 눈빛으로 우리를 적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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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하루 일을 끝내고
아기를 잠재운 어머니가
비로소 떠나고 싶은 한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저 꽃의 순결한 그늘일 것이다
동무여, 가난한 내 노래는
한 잔 2루피 짜이 가게의 불빛보다 침침하고
환멸과 질시로 가득 찬 내 영혼은
그믐의 조각배 위 위태롭게 출렁거리나니
언젠가 한 번 꽃 피거든
이 꽃만큼만 피어라
언젠가 한 번 맞을 죽음이거든
이 꽃만큼만 처절하게 시들어라.
- 2010년 3월 10일
3월의 산티니케탄에 보순또 바하 꽃이 피었습니다.
보순또 바하 꽃은 노란색입니다. 이렇게 순결하고 이렇게 우아한 노란빛은 본 적이 없습니다. 완벽하고 절대적인 노란빛입니다. 처음 이 꽃을 보았을 때 꽃의 시원을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이 꽃은 어디에서 왔는가? 당신의 정원에서 온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꿈, 당신의 힘이 아니라면 이런 꽃을 빚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보순또 바하 꽃은 키가 큽니다. 미루나무만큼 크지만 살집이 더 있습니다. 보순또 바하가 피어 있는 숲의 모습은 깊고 아득한 어둠 속에 핀 촛불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보순또는 벵골어로 봄입니다. 바하가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봄날의 바하, 처음 그 꽃의 정치한 빛을 보았을 때부터 바하를 생각했지요. 당신도 바하를 좋아하는지요? 겨울의 스산함이 아직도 남아 있는 봄밤, 생의 의미를 묻듯 뚝 뚝 떨어지는 달빛 같은, 달빛들이 고여 만든 개울물 같은, 개울 위에 놓인 징검다리 밟고 가는 챔파꽃 향기 같은, 생의 맨 마지막 정거장 이름은 끝내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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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당신도 좋아하세요?
그래요, 보순또 바하는 꽃이 아니라 허공에 핀 음악입니다. 지상에 목숨을 부린 모든 생명을 찬양하기 위해 남긴 신들의 부적입니다. 무지개는 일곱가지 빛을 통해 신들의 정원을 찬양하지만 보순또 바하의 단 한 가지 노란빛만큼 신비하지 않습니다.
산티니케탄에서 만난 보순또 바하 꽃나무는 스무 그루가 조금 넘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짧은 3월의 봄날 산티니케탄의 숲과 길에서 내 눈은 온통 보순또 바하 꽃나무로만 빛났습니다. 화무십일홍이랬지요. 보순또 바하가 진정 그렇습니다. 평화롭기 이를 데 없는, 순결하기 이를 데 없는 이 꽃나무의 절대적인 노란빛의 음악이 영원할거라고 믿었습니다. 한없이 한없이 지속되는 축제의 음악을 생각했지요.
꽃이 핀지 열흘이 지나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핀 꽃이 가장 처참하기 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보순또 바하 꽃이 시드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지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 보순또 바하의 원뜻은 ‘봄의 언어’‘봄의 말’입니다.
■ 아카시 강가로 가는 하얀 종이배
밤길 산책을 했습니다.
가을 들어 오후 6시만 되면 온 세상이 칠흑처럼 어두워집니다. 초저녁에 으레 정전이 되지만 정전이 되지 않더라도 불을 켜지 않는 집이 많습니다. 가난한 이곳 사람들이 비싼 전기를 자유롭게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플레시를 준비했지만 밤길은 캄캄해야 더 운치가 있지요. 무엇보다 반딧불이들이 지천으로 날아다니니 이렇게 아름다운 별밭은 없을 것입니다. 가로수란 가로수들은 모두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어 반짝거립니다. 반딧불이들의 마을 산티니케탄에서 일 년 하고도 삼 개월을 훌쩍 보냈지만 이렇게 많은 반딧불이들을 본 것은 처음입니다.
반딧불 가로수 길을 죽 따라가면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가면 빤틱이라는 이름의 기차역이 나오지요. 밤 기차역의 기적 소리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군요. 기적 소리가 붕붕 울리면 반딧불이들도 반응을 합니다. 궁둥이에 붙은 초록색과 노란색 하얀색의 불들이 순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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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히 반짝거립니다.
길가에 아주 작고 허름한 짜이 가게가 있습니다. 호롱불 두 개가 침침하게 켜져 있는 찻집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얼굴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얘기 소리는 정답고, 찻집의 캄캄한 흙벽에서 풍겨 나오는 흙냄새도 한없이 포근합니다. 오래전, 타고르 시절부터 있던 찻집이라고 투툴이 말해 줍니다.
어둠과 함께 마시는 차 맛이 더없이 맑고 깨끗했습니다.
내가 투툴을 처음 만난 것은 9월이 시작되는 첫날이었습니다.
그이를 처음 만난 곳은 알차였습니다. ‘그리고 더’ 라는 뜻을 지닌 참 낭만적인 카페지요.
이이는 산티니케탄 최고의 가문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인도군의 장군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이곳 비슈와라티 대학의 교수였습니다. 슐라그나 무커지 라는 그의 정식 이름에서 무커지가 최고의 카스트를 나타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대학에서 영문학 강사를 하고 있는 이이는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인도에서 지내며 궁금했던 것들을 그에게 물어보았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격렬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한 자리에서 두세 시간씩 거의 싸울 듯 이야기를 했지요.
내가 그에게 물은 첫 번째 질문은 인도의 최상류층은 힌두교를 믿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고 이이가 다시 물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힌두교의 나라에 살면서 자신이 상류층 힌두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터에 이런 질문을 받게 된 것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질문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경제 사정은 좋지 못하다. 사실대로 말하면 인도인 중 절대 다수가 끔찍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 가난은 철저히 방치된 느낌이 있고 방치의 핵심에 힌두교가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가난한 이들이 매일 힌두의 신들에게 정성껏 푸자 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소똥을 반죽해 방바닥 전체에 바르고 향을 피운 뒤 푸자를 드린다. 방바닥에 바른 소똥(소를 신성시 하는 힌두교에서 소똥도 그들의 삶 속에서 신성시 되며 신을 모신 방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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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껏 소똥 반죽을 바른다.) 반죽이 불결하다는 생각은 그들의 정성스러운 자세 때문에 이방인인 내게도 들지 않았다.
인도의 최상류층이라 함은 이른바 로열 패밀리, 최상류의 카스트에 외국 유학을 하고 최고의 경제력을 지닌 이들을 말함이다. 난 이들이 힌두교를 ale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방바닥에 소똥을 바를 리가 없다. 힌두교를 믿지 않지만 그들이 지닌 부와 명예의 세습을 위해 힌두교는 필요하다.
그 무엇보다 그들은 인도의 하층민을 구제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한 나라가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상류층과 하류층의 삶의 질의 간격이 최대한 축소되어야 한다.
이이는 많이 당황해 했습니다.
그 다음에도 여러 번 토론은 계속되었습니다. 나는 힌두교가 종교로서 제 역할을 다하려면 카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지요. 카스트를 버리면 그것은 인도가 아니라고 이이는 말했습니다. 맞는 얘기지요. 카스트를 버릴 수 없다면 힌두교는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나의 충직한 고언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이 이렇다 보니 우리들의 대화는 늘 격했고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반딧불이들의 윤무가 하늘의 별밭보다 더 아름다운 밤입니다.
별 하나를 끌고 다른 별로 이동해 가는 반딧불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하늘에도 은하수가 있고 땅 위에도 은하수가 있습니다. 땅 위의 은하수는 춤을 추며 펄럭펄럭 움직인다는 것이 다르지요. 이이가 Milky Way를 한국어로 무엇이라 부르느냐 묻는군요. 나는 은하수라는 말 대신 ‘미리내’를 알려 주었습니다. 미리내의 벵골어가 무엇인줄 아느냐고 이이가 다시 묻는군요. 미리내의 벵골어를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지요?
‘아카시 강가’
이이가 말하는 순간 나는 이 단어가 지닌 시적인 울림 앞에 숨을 멈추었습니다. 아카시, 강가. 두 단어는 내가 모두 아는 단어들입니다. 아카시는 ‘하늘’이라는 뜻이고 강가는 모든 인도인들이 사랑하는 ‘어머니의 강’ 갠지스지요. 하늘을 흐르는 어머니의 강. 세상에서 은하수를 나타내는 가장 아름다운 말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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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아카시 강가에 내 친구가 있어. 이름이 비끄럼이지. 예술가였지. 시와 노래 그림, 다 뛰어났지.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세상이 아닌 것 같았어. 그가 작년에 아카시 강가로 떠났지. 떠나며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 우리 십 년 안에 다시 만나, 였지. 난 꼭 그를 다시 만나야 돼. 십년 안에. 내 병은 다 내가 알아. 비끄럼이 내 안에 살고 있어. 내 병은 병이 아니야.
고개 들어 하늘을 봅니다.
아카시 강가가 하염없이 흐르는군요.
그곳으로 헤엄쳐 가는 아주 작고 하얀 종이배 하나가 보입니다.
■ 사각형의 꿈
호텔 니르바나의 창문 앞에 앉아 있습니다.
처음 호텔의 전망을 보고 놀랐지요. 호텔 이름을 보고 더 놀랐습니다. 이름 한번 죽이는군요. 이 호텔에서 하룻밤만 묵어도 열반에 들것 같았습니다. 창밖에는 히말라야의 능선이 구불구불 펼쳐집니다. 능선들은 안개에 포근하게 젖어 있지요. 안개 뒤편으로는 세상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인 칸첸중가를 비롯한 설산들이 펼쳐져 있다는군요. 설산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오히려 저 안개 뒤편 어딘가에 신비한 설국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니르바나라는 이름에 어울릴 것 같았지요.
아쉬움이 왠들 없었겠는지요. 아무리 이름이 고상하다고 해도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산 능선을 따라 마을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마을들의 형상이 대부분 사각형으로 이루어져 있군요. 산 능선의 좁은 땅 위에 집을 짓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닥지닥지 붙은 네모난 집들의 모습은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지어진 아파트들 생각이 났지요. 나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건물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요. 아무런 개성도 없는 십오 층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들이 한 도시를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숨이 답답하고 때로는 절망감에 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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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니르바나의 창가에 앉아서 마을의 모습을 스케치합니다. 마을을 그리지만 사각형들을 겹쳐 그리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이 무수한 사각형들은 어디서 어떤 꿈들을 지니고 이곳에 모여들었을까요. 생각하다 보니 뜻밖에도 하나하나의 사각형을 그려나가는 데 재미가 붙는군요. 그러다가 우리 인간이 한 생애 동안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찾아오고 뜻밖에도 그것은 사각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해가 지고 사각형의 집들에서 반딧불이 같은 불빛들이 하나둘 빛납니다.
옛 시킴 왕국의 수도 강토크의 메인 도로 이름은 마하트마 간디 로드입니다. 간디 로드는 두 개의 기다란 거리가 이어져 만들어졌습니다. 두 개의 거리는 당연히 사각형의 틀을 지녔고 그 안에 무수히 작은 사각형의 벤치들이 놓여 있습니다. 거리 바닥에는 사각형의 앙증맞은 보도블록들이 깔려 있습니다. 가로등 허리에 걸려 있는 화분들도 사각형이군요. 화분 안의 꽃들도 사각형의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요. 종이배나 종이비행기 종이학을 펼치면 사각형의 종이가 나타나듯 말이지요.
내가 편하게 누워 새소리를 듣는 호텔 니르바나의 침대도 사각형이고 새소리가 통과해 들어오는 유리창도 다 사각형입니다. 창문과 창문이 서로 열린 틈새도 사각형이군요. 사람들이 저 틈새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사각형의 틀을 가져야 하는지도 모르겠군요. 우리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아주 자유로운 형태의 사각형 말이지요.
시킴으로 여행하기 위한 허가서, 허가서의 한쪽 귀퉁이에 붙은 누군가의 웃고 있는 사진, 티베트 난민 정착지로 가는 긴 돌계단들, 술병의 라벨들, 바람에 날리는 룽가(티베트 불교의 경전을 목판으로 찍은 것), 낡은 영화관의 스크린, 명화를 담은 액자들, 다 사각형이군요.
그대여, 그대가 이 세상에 처음 왔을 적 몸을 감싸주었던 무명천도, 그대가 세상을 떠날 적 허름하기 이를데 없는 그대의 낡은 몸을 감싸줄 삼베 천도 다 사각형입니다. 그대가 여행 중 매일매일 찍어대는 수백 컷의 사진들, 그대로 쓰기 좋아하는 예쁜 그림엽서들 또한 작은 사각형으로 이루어졌으니 사각형이 없다면 그대의 여행이, 우리의 인생살이가 얼마나 쓸쓸하고 삭막해질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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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질링의 닥지닥지 붙은 사각형 집들이 사랑스러워짐을 느낍니다. 니르바나의 정원에서 우연히 만나 내가 그린 다르질링의 집들을 바라보던 한 한국 수녀님은 그 중의 한 사각형을 가리키며 말했지요. 여기에요. 여기가 바로 우리 수도원이에요! 잠시 그 소리가 여기에요. 여기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에요! 로 들렸습니다.
2.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 수보르, 나의 시 선생님
수보르는 릭샤왈라입니다.
수보르는 산티니케탄의 릭샤왈라 중 가장 잘 생겼습니다. 수보르의 릭샤는 출고된 지 얼마 안 된 새것인데다 노란빛과 붉은 빛으로 멋지게 보디 페인팅이 되어 있어 먼 곳에서도 눈에 띕니다. 잘생긴 수보르가 멋진 릭샤를 몰고 산티니케탄 메인 도로에 들어서면 주위가 환해집니다. 내가 지닌 고정관념에 따르면 그와 내가 가깝게 지낼 확률은 없어 보입니다. 잘생기고 말끔한 릭샤왈라 보다는 허름하고 못 생긴 릭샤왈라가 내 눈에 더 정겹고 릭샤 또한 적당히 낡은 쪽이 눈에 더 가기 때문이지요. 그런 그가 산티니케탄의 내 일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가 되었습니다.
그의 릭샤를 타고 산티니케탄 거리를 달리는 일은 즐겁습니다. 그가 마주치는 모든 이들과 인사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릭샤왈라들, 짜이 가게의 손님들, 자전거 수리공, 꽃을 파는 할머니, 나뭇짐을 지고 가는 아낙들, 멋진 구루따(선생님들이 입는 전통 복장)를 입고 가는 선생님들 …… 그들 모두에게 한 손을 번쩍 치켜들고 큰 소리로 어이, 친구들 다들 잘 지냈어! 부르고 난 뒤 각자에게 맞는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의 인사는 정해진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발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에게 어이, 친구! 발로아첸(안녕)! 인사를 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낙네가 길가에 쪼그려 앉아 있으면 어디서 왔느냐. 어디 아픈 것은 아니냐. 하고 묻지요. 강아지나 양이나 염소 들돼지들을 만나면 그들에게도 모두 어이, 친구! 잘 지내? 하고 말하는 겁니다. 다들 네 친구니? 하고 물으면 그럼, 다 내 친구들이지. 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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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아가씨와 아줌마들에게 친절했는데 그가 인사를 건넬 때면 다들 웃으며 지나칩니다. 주황색의 사리를 곱게 입은 한 디디에게 릭샤의 핸들을 놓고 두 팔을 벌리며 인사하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수보르, 넌 산티니케탄의 디디들 이름을 다 알지?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다는 아니야 오십 프로는 알아.
정말 대단합니다. 산티니케탄 디디들의 이름을 절반이나 알고 있다니요. 우리나라 시골 면소재지의 아줌마들 이름을 반이나 알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내 영혼을 빼가게 된 것은, 그가 꽃들과 인사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부터이지요.
그는 산티니케탄의 모든 꽃나무들의 이름을 다 알고 있습니다. 벵골어는 물론이고 영어 이름도 다 알지요. 내가 이곳에서 안 꽃나무들의 이름은 모두 그로부터 전수한 것입니다.
나는 그의 집에 들른 적도 있습니다.
수보르의 집은 볼푸르 역으로 가는 철로 변에 있습니다. 기찻길 옆에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것은 세상 어디서나 같습니다. 두 칸짜리 작은 흙집 안의 컴컴한 공기를 들여다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전기도 없고 변변한 세간도 없었습니다. 수보르는 맨흙인 방바닥에 주저앉아 쟁반 위에 수북이 쌓인 밥을 소부지(야채볶음)와 함께 먹고 다시 한 차례 더 먹었습니다.
나는 이날 수보르에게 집에 가자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상상력은 현실 속에서 태어나지만 그 상상력을 죽이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나의 친구 릭샤왈라 수보르는 올해 쉰두 살입니다.
그가 어디서 영어 공부를 했고 그가 어떻게 꽃나무들의 이름을 죄다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고 모든 생명들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기 좋아하는 그가 왜 어두컴컴한 흙집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현생에서의 내 삶이 많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수보르가 어떻게 산티니케탄의 겨울날 깨끗한 양말에 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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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빛나는 구두를 신고 릭샤를 모는지 참 신기하고 신비한 일입니다.
■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릭샤 스탠드
라딴빨리의 릭샤왈라들은 아침 해가 뜨기 전 이 릭샤 스탠드에 나옵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크리슈나쪼라와 라다쪼라가 어울려 빚은 꽃구름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이른 아침 이곳에 나온 이유는 손님을 맞기 위해서지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은 손님을 기다리기보다는 크리슈나와 라다의 이름 속에 피어난 꽃나무들의 축제에 넋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손님을 기다리기 위해서는 여기보다 더 좋은 장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기어코 크리슈나쪼라와 라다쪼라의 꽃나무들이 가장 보기에좋게 어울린 곳을 바라보는 장소에 릭샤를 세우고 한꺼번에 모여 앉아 있는 것입니다.
오전 7시부터 10시까지 내가 그림을 그리며 머무는 동안 이 릭샤 스탠드를 찾아온 손님은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릭샤왈라들과 몇 마디의 말을 나누더니 그냥 가버리고 말았지요. 내가 보기에 손님을 태우겠다는 릭샤왈라들의 의지가 약했습니다. 오전이 다 지난다 해도 이들이 한 차례나마 손님을 태울 확률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이 릭샤 스탠드에 모여 있는지요?
나는 그들이 릭샤왈라가 아니라 신선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들은 꽃을 보고 꽃을 이야기하고 꽃들이 빚어내는 시간 속에 머물 뿐입니다. 아주 가끔씩 신선들은 자신의 릭샤에 인간을 태우고 인간의 거리를 달려갑니다. 돈은 10루피(250원)입니다. 신선이 아니라면 10루피는 전혀 쓸모가 없는 돈이지요. 한국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서는 열 번(이상)은 손님을 태워야 하고, 치킨 한 마리를 배달시키기 위해서는 육십 번 이상 손님을 모셔야겠군요.
4월의 마지막 주 산티니케탄의 라딴빨리 릭샤 스탠드입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마음을 잃은 이라면 이곳에 오세요. 이곳에서는 늘 대여섯 명의 릭샤왈라들이 모여 자신들만이 아는 세상의 신비한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눕니다. 만개한 크리슈나쪼라와 라다쪼라의 꽃망울들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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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당신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는 않은지요? 10루피를 받고 꽃 핀 인간의 길을 달리고 싶은 생각이 혹 일지 않는지요?
■ 크와이에서 만난 기쁨
두르가 푸자 이틀째 날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큰 명절이지요. 두르가 푸자 때 인도의 학교는 푸자 방학을 실시합니다. 기간이 무려 한 달이지요. 이 한 달 동안 인도인들은 실컷 축제를 즐기고 한편으로 떠나온 고향을 찾습니다. 공식적으로는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이지만 민간의 푸지 열기는 한 달 이상 지속됩니다. 한국인 유학생들도 이 기간엔 대부분 여행을 떠납니다. 한샘바위네도 이미 여행을 떠났지요. 나와는 10월 10일 네팔의 포카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날이 바위의 동생 소리의 생일이라는군요. 레이크사이드의 몬순바에서 맥주도 한 잔 마시고 탄두리피시와 삼겹살도 먹을 예정입니다. 페와 호숫가에서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군요.
크와이 멜라에 갑니다. 오늘 멜라가 열릴지 안 열릴지 모르겠습니다. 명절이니 안 열릴 수도 있고 다른 때보다 더 크게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요. 비슈와바라티 숲길을 걸어 타고르 박물관 앞으로 나오는 도중에 몇몇 릭샤왈라들이 다다, 멜라? 하고 말을 걸어옵니다. 멜라가 열리는 것이 확실하군요. 지금 내가 멜라에 가는 제일 큰 이유는 다사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크와이 멜라에서 처음 내게 종이배를 팔았던 어린 소녀 말입니다.
멜라는 정말 큰 규모로 열렸군요. 차들이 삼중주차가 되어 있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장수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푸주까 장수들의 리어카도 줄을 서 있습니다. 평소 멜라에는 아이스크림 장수만 둘, 푸주까 장수는 없었지요. 푸주까는 이곳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유명한 푸주까 장수 앞에는 늘 줄이 서 있지요. 복숭아 크기의 엷은 튀김옷 속에 소스를 넣고 한 입에 먹는 것인데 한자리에서 삼사십 개씩 먹는 친구들도 있지요. 바울들의 공연도 다섯 군데서나 펼쳐지고 있습니다. 반짝이 장신구, 민속악기, 그림을 파는 장수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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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입니다. 강변길에서 삼바티 마을로 꺾어들기 직전입니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나아가면 삼바티가 나오고 그다음에 라딴빨리가 나오지요. 순간 한 아이가 숲길을 거슬러 올라오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는 눈을 부볐습니다. 다사였지요. 릭샤를 세우고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다사!
아이가 손을 흔드는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요. 나는 릭샤에서 내려 아이에게 다가갔고 준비해온 푸자 선물을 건네주었습니다. 다사가 환히 웃고 주위에 있던 몇몇 디디들도 환히 웃습니다.
다사와 헤어져 돌아오는데 달빛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아이는 어떤 인연으로 내게 이런 기쁨을 주는 건지요? 처음 내게 종이배를 접어 건네주었고 그 종이배 위에서 내 마음이 따뜻해지기 시작했지요. 타고르의 시보다도. 그 어떤 고통과 환희의 영감보다도 내 마음이 환해졌고 촉촉해졌습니다.
아이를 만나고 싶었으나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날 다 저물어 길 위에서 아이를 만나다니요? 아이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다니요? 달빛을 보며 돌아오는 내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조금씩 흘렸습니다.
■ 암리타 체터지
벵골어 첫 수업을 받았습니다.
닐리마 선생님은 내게 쓰고 읽기를 먼저 할 것인가, 회화를 먼저 할 것인가 물었지요. 선생님의 뜻에 따르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쓰고 읽기가 먼저 선택된 것이지요. 아랍 문자와 인도 문자는 문자 상단부에 바(bar)가 있습니다. 문자들은 이 막대에 매달린 꽃 같기도 하고 새 같기도 하고 나뭇잎이나 열매 같기도 합니다. 습기 많고 꽃과 열매 주렁주렁한 이곳의 자연환경이 그대로 문자화된 느낌입니다. 글자의 형상으로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미학적인 형태를 지녔지요.
나는 완전 초등학교 1학년으로 돌아가 볼펜에 힘을 꼭꼭 주어가며 글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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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닐리마 선생님은 이런 내가 안돼 보였는지 “발로(good)!”를 연발하는군요. 모음 열두 개를 계속 쓰고 익히는 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물론 다 외우지도 못했지요. 글자를 그리는 순서를 겨우 익힌 정도입니다. 자음은 몇 개나 될까. 페이지를 넘기니 두 페이지 가득입니다. 오십 개도 훌쩍 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떤 자모들은 한국어 발음에는 전혀 없는 것들입니다. 저걸 어떻게 다 외운다지?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한글은 얼마나 배우기 쉬운 문자인지요? 교육받은 외국인이라면 한글의 발음을 익히는데 불과 한 시간이면 가능하니 말이지요.
내가 벵골어를 읽으려면 아마 한 달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강의 끝나고 닐리마가 겁을 주는군요. 다음 공부까지 사흘이 있으니 이걸 완벽히 쓰고 외우라는군요. 그래야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한숨을 푹 쉬며 닐리마의 집을 나섰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라딴빨리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내 자리에 한 인도 여학생이 앉아 있습니다.
조전건다. 달빛 냄새가 난다는 꽃을 피우는 나무 기억하시는지요. 나무가 눈앞에 보이는 반얀나무 아래는 내가 매일 석양 무렵에 찾아가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자리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앉지 않게 되었지요.
그런데 정오가 다 되어가는 한낮. 내 자리에 지금 한 학생이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맞은 편 가게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있군요. 나는 릭샤에 앉은 채 스케치하고 있는 여학생의 사진을 몇 컷 찍었습니다. 그냥 갈까, 하다 말을 걸었지요. 미술대학 학생인가요? 빠따바반 10학년 학생이라는군요. 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쯤 되는 샘입니다. 난 매일 저물녘에 이 자리에 앉아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단다.
여학생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기 옆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는군요.
그와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화가세요?
아니, 시인.
시를 쓰면서 그림을 그리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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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는 나도 모른단다. 그냥 마음으로 그릴뿐이지.
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다이어리에 이름을 적어 주기를 요청했지요. 여학생이 자신의 이름을 적어나가는군요. 세상에 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뻔했습니다.
암리타 체터지.
그의 이름 또한 암리타군요.
지난여름 산티니케탄에 들어와 두 명의 인도 아가씨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그 둘이 다 암리타, 라는 사실이 내게 기쁨과 경이를 주는군요. 암리타가 불멸을 가져다주는 생명의 물,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뒤에 알았습니다.
언니인 암리타에게서 지성과 품위가 느껴졌다면 어린 암리타는 한없는 순수함과 맑음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망설였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암리타의 옆자리에 곧장 앉고 싶었습니다. 인도의 연인들은 마주보고 앉지 않습니다. 모두 나란히 앉지요.
산티니케탄은 내게 생명의 물과 같은 땅입니다. 그 신비와 그 설렘을 어떻게 당신에게 얘기할 수 있겠는지요. 사랑하는 일과 그리워하는 일, 모든 꿈꾸며 아쉬워하는 세상의 시간 속으로 나는 릭샤를 타고 한 마리 은빛의 물고기처럼 천천히 산티니케탄의 숲길을 헤엄쳐 나갑니다.
■ 혼돈 마하또 - 행복을 찾아가는 가장 빠른 길 -
아미 구루빨리, 보이니 호이 나!
산티니케탄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말입니다. 직역하자면 나 구루빨리에 갈테야, 오늘 첫 손님도 받지 못했어, 의 뜻이지요. 이 말의 주인은 릭샤왈라 혼돈 마하또입니다. 처음 그의 릭샤에 탔을 적 이름에 호감이 갔습니다. 혼돈이라는 한국어의 어휘를 생각하며 슬며시 웃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혼돈의 릭샤를 처음 탔던 기억은 유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루빨리에 있는 나의 집에 도착해 공정 요금의 두 배를 건넸는데 그는 돈을 더 달라했습니다. 지니고 있던 동전을 다 주었는데도 다시 손가락을 모아 입에 대며 돈을 더 달라 했지요. 먹을 것을 사겠다는 그의 요구에 나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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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실비 오던 밤.
나는 다시 한 차례 그의 릭샤를 타게 되었습니다. 빗방울이 섞인 부드러운 밤공기는 쇠꼬챙이 같은 사람의 마음도 부드럽게 하기 마련이어서 그가 내게 건넨 아미 구루빨리, 보이니 호이 나! 하는 소리에 애잔한 연민의 정이 느껴졌습니다. 릭샤 위에서 내가 비스띠 발로! 하고 말하자 그는 하이 발로! 하고 대꾸했습니다. 비가 좋군! 에 바람도 좋아! 하고 응답한 것이지요.
그의 답변이 내 마음에 쏘옥 들었던 터라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공정 요금의 세 배를 지불했습니다. 그의 반응은 똑 같았습니다. 오른손 손가락들을 한데 모아 입에 대고 돈을 더 달라고 한 것이지요. 그 뒤로 한동안 나는 그의 릭샤를 타지 않았습니다.
세상일은 참 신비한 것입니다.
내가 그의 목소리에 무심하게 대하는데도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말은 계속됐고 어느 늦은 밤엔 반강제로 그의 릭샤에 타게 되었습니다. 다른 릭샤를 탈 요량이었는데 그가 재빨리 내 앞에 릭샤를 대더니 우격다짐으로 나를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의 행동이 싫지 않았습니다.
나는 웃으며 릭샤를 탔는데 이게 아니었습니다. 그의 릭샤가 제대로 직진을 못한다는 것을 금세 알게 되지요. 운전이 비틀비틀할 뿐 아니라 뭔가 큰 소리로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떠드는 것이었습니다. 술 냄새가 그의 등을 타고 내게 훅훅 날아왔습니다. 나는 심하게 후회를 하며 몇 번이나 릭샤에서 내릴 것을 생각했으나 달리는 릭샤를 새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혼돈이 다시 아미 구루빨리, 보이니 호이 나! 하고 크게 말했는데 이때는 화가 심하게 돋는 것이었습니다. 구루빨리에 도착해 나는 준비된 말을 그에게 했습니다. 아미 따까나! 나 돈 없어! 하고 말할 것인데 돈을 안 줄 생각은 없었고 그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순간 그가 밤하늘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바 신도 나오고 크리슈나 신의 이름도 나오고, 웬걸, 나중에는 내 이름인 쫌빠다도 나왔습니다. 몸짓과 목소리로 나는 그것이 경건한 기도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기도가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도 알았는데 기가 막힌 것은 내가 이곳에서 타고르의 시를 잘 번역해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얘기한 대목이었습니다. 사람은 해당 언어의 인식 유무에 관계없이 자신과 관련된 부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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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알 수 있기 마련입니다.
벵골어를 잘 모르는 나로서도 그가 타고르를 번역해서, 라고 말하는 부분은 선명하게 귀에 들어왔습니다.
술 취한 그의 릭샤 위에서 그를 향한 미운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신기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나는 술 취한 그의 릭샤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날이 그가 내게 돈을 더 달라고 말하지 않은 유일한 날이었습니다.
■ 연꽃 만발한 삼바티 마을에 가다
릭샤왈라 다보스를 따라 삼바티 마을에 있는 연못에 갔습니다.
연꽃들은 아기의 손바닥만 한 것도 있고 어른의 얼굴만 한 것도 있습니다. 아침 햇살과 이 순결한 꽃의 조화라니요. 여러 날 전부터 다보스는 이 연못에 나를 데려올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산티니케탄에서 나는 세상에는 없을 것 같은 아름다운 꽃들을 보았습니다. 그룬쪼 타고르와 보순또 바하, 종리플, 크리슈나쪼라…… 다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그러나 진흙탕 속에서 꿈결 같은 순결한 빛으로 일어서는 꽃은 연꽃뿐입니다. 삼바티의 연못 또한 진흙탕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연못 주위는 마을 사람들이 내다버린 쓰레기들과 분뇨들로 가득합니다.
이날 밤 보름달이 밝았습니다.
산티니케탄의 아낙들이 모두 반짝이 옷을 입고 달구경을 갑니다. 달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옷의 모습은 반딧불이들이 모여든 꽃나무 같습니다. 어디로 달구경 가느냐 물으니 꽁까리 따라, 라고 말하는군요. 화장터가 있는 강변마을 말입니다. 하필 화장터 마을에서 달구경을 하다니요? 삶과 죽음에 대한 인도인의 철학이 여기 스며 있습니다. 오늘이 무슨 특별한 날인가? 물으니 락슈미 푸자라고 말합니다.
오, 이런. 나는 그제야 다보스가 나를 연못으로 데려간 이유를 알았습니다. 락슈미는 크리슈나 신의 아내입니다. 크리슈나와 그의 연인인 라다의 사랑이야기는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랑이야기입니다. 현재의 인도인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신화이면서도 경전입니다. 집안의 달력이나 벽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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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어김없이 크리슈나와 라다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락슈마는 가정을 지키는 부와 행운의 여신입니다.
■ 농부가 되고 싶은 아이와 히밀라야 여행하기(1)
산티니케탄에 손님이 왔습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지혜닮이 바로 그 손님입니다. 해닮이라는 이름은 해를 닮은 아이의 준말이라는 군요. 이름도 신기했지만 이 녀석 하는 짓이 방실방실 웃는 해를 꼭 닮았습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름이 한 인생의 상징이라는 생각을 해왔지요. 이름이 그냥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지니고 태어난 이름은 어느 정도 그 의도와 삶이 맛물린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해닮이를 처음 만나는 순간 나는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놀랍게도 아이의 입에서 나온 것은 농부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내내 농부였다고 말하는군요. 왜 농부가 되련? 물었더니 그냥. 이라고 말하는군요. 그냥 해가 좋아서, 라고 덧붙입니다. 세상에. 이 아이는 자신의 꿈이 왜 좋은지에 대한 가장 완벽한 답을 이미 알고 있군요. 엄마가 왜 좋은지. 피아노가 왜 좋은지. 제일 근사한 답은 그냥입니다. 이 답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답이지요. 그냥 좋다는데 거기에 토씨를 달 더 이상의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의 대답이 하도 신통해서 말문이 막힌 나는 그래, 참 좋은 농부가 되렴, 하고 이야기 했지요.
나는 아이에게 별명도 물어 보았습니다. 해똥이라는군요. 아이는 이 별명이 언젠가부터 싫어졌다고 얘기했습니다. 왜, 참 귀여운 별명인데. 했더니 똥에서는 냄새가 나잖아요. 라고 답합니다. 농부가 될 사람이 똥 냄새를 싫어하면 안 되는데? 했더니 그냥 씩 웃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말이 틀렸을 적 쉽게 수긍하는 심성을 지녔습니다.
나는 아이에게 사람의 마음 안에는 신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함께 존재한다는 얘길 해주었지요. 워즈워스의 시에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볼 때 / 내 가슴은 뛰노라 /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구절이 있다는 얘길 했을 적 아이는 눈망울을 초롱초롱 굴렸습니다. 하늘에 있는 무지개를 볼 때 가슴이 뛰는 것은 마음속에 신의 눈빛이 아직 남은 탓이고 그 마음이 없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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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는 더 이상 신비하지 않게 되고 그때 그는 어른이 되는 거란다. 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지요.
내가 아이와 함께 다르질링과 시킴 쪽을 여행하러 마음 먹은 데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기차표를 알아보기 위해 산티니케탄의 작은 여행사에 들렸을 적 나는 아이에게 말했지요. 살 수 있는 기차표가 두 종류 있겠구나. 2AC와 3AC가 그것인데 모두 에어컨이 작동된단다. 차이는 2AC는 한 칸에 네 사람이 타고 3AC는 한 칸에 여섯 사람이 타는 거란다. 당연히 2AC의 값이 비싸지 뭐 탈래? 했더니 아이는 곧장 3AC를 선택했습니다. 난 그 순간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난 아이가 당연히 2AC를 선택할 줄 알았지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은 아이나 어른이나 같을 테니 말이지요. 그 순간 난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어쩔 수 없는 형편이 아니면 나는 대부분 2AC로 이동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인도인들의 장거리 이동 수단인 슬리퍼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2AC를 탈 경우 최상류층 인도인들과 여행하는 느낌도 좋았습니다.
■ 농부가 되고 싶은 아이와 히말라야 여행하기(2)
해닮이와 볼푸르에서 뉴잘파이구리로 가는 밤기차를 탑니다. 한 아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은 밤기차를 타는 일만큼이나 신비한 일입니다. 아이의 눈으로 창밖의 풍경을 보고 아이의 눈으로 지상의 시간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 말이지요. 아이에게는 아이와 동행인 형이 있고 아빠가 있습니다.
형의 이름은 봄찬슬이지요. ‘온 누리에 봄빛으로 가득한 슬기’의 준말이라는군요. 봄찬슬을 중3입니다. 한 달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가면 다음 날 중간고사를 본다는군요. 시험 때문에 봄찬슬은 두꺼운 수학책과 영어책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녔지만 여행기간 내내 그 책들을 보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요. 가족과의 여행도 일주일만 허용되어 나머지 기간은 무단결석이 된다는군요. 아빠와의 여행 때문에 내신 성적이 엉망이 되는 것이지요.
아이의 아버지 이야기도 몇 줄 적어야겠군요. 일 년 전까지 아이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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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정유회사에 나갔습니다. 연봉이 1억 가까웠다는군요. 아이의 아버지는 사진 찍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금 아이들과 여행에 나선 것입니다. 생의 돈키호테들이 슬금슬금 웃으며 우리 곁을 스쳐지나갈 적 우리는 조금씩 행복해지는 스스로를 느낍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 이 세상에 한 달 동안 학교를 가지 않고 아빠와 함께 히말라야를 여행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게? 하고 물었고 아이들은 내 말의 의미를 알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아이와 나는 토이 트레인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토이 트레인은 말 그대로 장난감 기차입니다. 협궤열차인데 소래 포구를 다니던 열차보다 그 폭이 훨씬 좁아 보였습니다. 레일과 레일 사이가 60Cm가 될까 말까 했지요. 그 레일 위로 관광객들을 가득 태운 열차가 히말라야의 산기슭을 돌아 다르질링까지 오르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 열차는 증기기관차입니다. 기끔씩 꽤액--하는 기적 소리를 울리지요. 히말라야의 숲들을 비집고 나가면 멀리 흰 눈을 머리에 인 칸첸중가를 비롯한 설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유네스코는 한 편의 동화와 같은 이 토이 트레인 여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그 꿈의 의미를 여행자들의 가슴에 새겼습니다. 오래전 이곳에서 생산된 다르질링 차들을 운송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는 열차의 유래는 여행자에게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아이는 이날 토이 트레인을 타지 못했습니다.
좌석 예약이 한 달도 전에 끝났군요.
우리는 지프를 한 대 빌렸습니다. 열차가 멈춰 선 뉴잘파이구리, NJP라고 줄여 부르기도 합니다. 역에서 다르질링까지는 지프로 세 시간 반 정도의 거리입니다. 토이 트레인으로는 일곱 시간이 소요되지요.
다르질링에 도착해 숙소를 찾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겨우 방을 구하고 초우라스따 여행자 거리로 나섭니다.
아이는 모든 음식을 아주 잘 먹습니다. 초우라스따로 오르는 길 입구의 오른쪽 언덕배기에 두 개의 티베트 식당이 나란히 있는데 이 식당들의 음식 맛은 널리 알려져 번잡한 시간에는 식당 밖에 늘어선 줄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식당에서 뗀뚝과 뚝바와 볶음밥들을 먹었지요. 히말라야 산록을 여행하는 가장 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티베트 식당들입니다.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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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 음식 맛이 우리와 아주 비슷해서 이곳에서는 이국의 음식들을 고향 같은 마음으로 먹을 수 있지요.
뗀뚝은 우리의 수제비와 같은 음식이고 뚝바는 칼국수와 같은 음식입니다. 특히 고수 잎을 넣은 야채 뗀뚝이나 야채 뚝바의 맛은 정말 일품이지요. 지난 여름 라다크의 레를 여행할 때도 뗀뚝을 매일 아침 먹었습니다. 라다크 사람들이나 티베트 사람들이나 거의 비슷한 조상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당신, 잊지 마세요. 히말라야 신록을 여행하다 티베트 식당을 만나거든 꼭 뗀뚝을 시키세요. 한 접시의 만두를 곁들인다면 이 식사는 환상입니다.
아이는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취미 하나를 얻었습니다. 그것은 부엉이를 수집하는 것이었지요. 부엉이는 이곳 인도 사람들이 재물의 신으로 여기는 동물입니다. 우리 시골 옛집의 벽에 붙어 있는 돼지 그림과 같은 존재지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글귀와 함께 새겨진 그 그림은 자손이 번성하고 아울러 재물 운이 왕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식이었지요. 인도 사람들은 집집마다 문 입구에 나무나 토기로 만든 부엉이 상을 세워두기도 하고 침대나 의자의 손잡이에 부엉이 조각을 새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가 모아놓은 부엉이를 보기전까지 나도 이렇게 많은 종류의 부엉이들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아이와 나는 함께 골목 속에 박힌 작은 앤티크 가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아이는 부엉이를 찾았고 나는 나대로 기념이 될 만한 앤티크들을 찾았습니다. 다르질링에서 나는 세 개의 도자기 찻잔과 두 개의 아주 귀여운 향낭 그리고 1930년대에 독일에서 생산된 사각형의 카메라 한 대를 샀습니다.
■ 농부가 되고 싶은 아이와 히말라야 여행하기(3)
다르질링에서 아이와 내가 지닌 최고의 꿈은 칸첸중가를 비롯한 설산들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꿈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첫날부터 알았지요.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앞산의 모습들은 모두 깊은 안개에 젖어 있었습니다. 설산이 보이려면 파란 하늘이 우선 조건이었습니다. 이 파란 하늘을 보기가 쉽지 않았지요.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직전 아주 희미하게 설산의 모습이 보인 날이 하루 있었지만 거의 신기루 수준이었지요. 설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종업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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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설산을 볼 수 있느냐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거나 신의 뜻이라는 답변만 돌아왔지요.
다르질링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호텔 포춘 니르바나에서 묵었습니다. 호텔의 전망은 니르바나라는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지요. 아이와 함께 모두 아, 하는 깊은 탄성을 울렸지요. 방 둘을 얻었습니다. 남은 여행 기간 중 좀 더 가난하게 사는 대신 부러움 없이 하룻밤 지내는 자유를 선택한 것입니다. 방은 깨끗했고 벽의 그림들은 우아한 액자로 치장되었으며 침구는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욕실에서 더운물과 찬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으며 전신을 감쌀 수 있는 타월이 인원수대로 지급되었지요. 커피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커피믹스와 다르질링 차도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안개 뒤의 설산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아늑하고 포근한 긴장감이 베란다 너머로 펼쳐지고 있었지요. 베란다의 쪽문을 열고 나가면 맨발로 곧장 잔디밭을 밟을 수도 있고 종일 파라솔 아래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수도 있겠군요. 인도에서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으리라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니르바나에서 아이가 처음 한 일은
아끼고 아낀 한국산 컵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었습니다.
장기간 외국 여행 중에 먹는 컵라면의 깊고 오묘한 맛이라니요. 인원수대로 컵라면에 물을 붓고 베란다 앞 잔디밭에 앉아 후루룩 니르바나의 열락을 즐겼습니다. 일하는 이들이 모두 바라보는군요. 잔디밭에 다리를 펴고 앉아 누들을 먹는 외국인 손님들을 그들은 아마 처음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아이가 우체국으로 그림엽서를 부치러 가는군요.
나는 남아서 빨래를 합니다. 닷새 만에 처음 하는 빨래지요. 닷새 동안 나는 같은 속옷을 입었고 양말도 계속 신었습니다. 변기의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곳에 묵었으니 빨래는 사실 난망이었습니다. 어젠 아이가 내게와, 나흘 동안 같은 양말을 신는다. 라고 얘기를 했지요. 내가 발 냄새는 나지 않아! 라고 했더니 가까이 와서 냄새를 맡아보고는 이상하다. 정말 냄새가 나지 않아. 하며 신기해했지요. 아이의 아빠도 가드는군요. 지난겨울엔 열엿새 동안 함께 다녔는데 한 번도 바지를 바꿔 입지 않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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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시킴주의 주도 강토크에 갔습니다. 강토크의 중심가인 간디로드는 다른 거리들과 확연히 다릅니다.
간디로드에서 아이의 아빠가 신이 났습니다. 거리에는 술집과 바들이 넘칩니다.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는 술을 경원시하지만 시킴은 아닙니다. 여기도 저기도 술집이네. 아이 아빠는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놀라운 것은 술가게의 술들이 모두 면세랍니다. 세상의 술꾼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놀라운 곳이 인도의 맨 북동쪽 끝 히말라야의 신록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술과 여행, 여자가 있으니 세상은 얼마나 행복한가, 라고 설파한 주르바가 이곳에 들렀다면 행복에 겨워 숨이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벤치에 앉아 바라보는 시킴의 아가씨들은 모두 웃고 있으며 미인입니다. 한때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인도 아가씨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이 세상에서 제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가씨들이 시킴 아가씨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와 나는 대략 9박 10일 간의 짧은 히말라야 산길 여행을 했습니다. 토이 트레인도 타지 못했고 보고 싶었던 설산들의 모습도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토이 트레인도 타고 설산도 다 보았다면 지금의 상황과 무슨 차이가 있을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둘 다 가능했다면 분명 좋았겠지요. 둘 다 불가능했기 때문에 아이에게 남을 기쁜 흔적은 없을까요.
그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이는 다시 한 번 토이 트레인에 도전할 것이고 설산의 형상과 이미지에 도전하지 않겠는지요. 아니, 만날 수 없어서 더 아쉬웠던 그 마음으로 더 큰 목표와 더 큰 인생의 도전의식을 지니지 않겠는지요.
강토크에서 실리구리로 돌아와 아이는 네팔로 들어가기 위해 카카르비타 국경으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36Km, 산길로 한 시간쯤 걸리는 거리입니다. 아이와 나는 이곳에서 헤어집니다. 나는 산티니케탄으로 돌아가고 아이는 1박 2일의 국경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갑니다. 그곳의 아름다운 호수에서 보트도 타고 영감 깊은 설산의 모습들에도 흠뻑 취하기를 바랍니다.
아이에게 나는 강토크에서 산 부엉이 한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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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터에서 펼쳐지는 찬란한 빛과 생의 축제
릭샤를 타고 꽁까리 따라 마을로 향합니다. 4월 14일. 이 마을에서 큰 축제가 열린다고 말해준 이는 쪼미입니다. 오늘 쪼미와 함께 이 축제를 구경하기로 했는데 쪼미는 약속 시간에 보이지 않습니다. 릭샤를 타고 혼자 다녀오기로 했지요.
꽁까리로 가는 황톳길은 사람들로 온통 뒤덮였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버스나 트럭을 타고, 그보다 더 많이는 걸어서 꽁까리로 꽁까리로 가는 것입니다.
아, 그들이 걸친 사리의 눈부신 빛이라니요!
빨강과 파랑, 노랑과 초록, 분홍과 보라, 연두와 쪽빛………
색색의 사리들이 들과 길과 이제 싹이 잘 오른 논 위로 펼쳐졌습니다.
이건 현실이 아닙니다. 꿈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꿈이라면 이렇게 분명하고 확실한 빛깔로 가슴을 설레게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요. 살아오면서 눈과 가슴이 이렇게 깊이 함께 뛰고 열락을 느낀 적은 없습니다. 햇살과 바람 속을 펄럭이며 긴 사리의 행렬이 지나갈 때 나는 잠시 하늘의 음악을 듣습니다. 하늘의 이야기와 하늘의 꽃향기를 맡습니다.
당신에게 그 음악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당신을 그 정원의 신비한 꽃향기에 한 사흘쯤 푹 젖게 하고 싶은데…… 나는 릭샤 위에서 정신을 잃습니다.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라다크와 레를 여행했고, 다르질링과 시킴을 여행했지만 내 카메라는 한가했습니다. 영혼을 울먹거리게 하는 풍경의 힘은 없었지요. 레에서 누브라 벨리를 여행할 때 세상에서 제일 높다는 고개들과 봉우리에 흰빛만 남은 영험 깊은 마른 산들을 끝없이 만났지요. 장엄했고 더 장엄했습니다. 자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오늘 그 자연의 모습에 찬란하다는 표현은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눈부신 이라는 수식어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찬란함과 눈부심은 인간의 삶에 한정된 표현인 것입니다.
인도의 한적한 시골 마을, 화장터가 자리한 작은 마을의 멜라에 처녀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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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네들, 할머니들이 자신이 간직한 가장 고운 빛깔의 사리를 입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왜 곡진함이 없겠는지요. 슬픔과 아픔, 증오와 기쁨의 긴 강들이 어찌 없겠는지요. 사랑과 이별, 고통의 향수들은 얼마나 끈질기게 생을 후볐겠는지요. 그 모든 시간들을 잊고 그들은 색색의 사리와 함께 이 뜨거운 들판에 들어선 것입니다. 아무리 땀을 흘려도 그것은 단순한 열정 이상의 의미가 아닙니다. 생은 더 깊고 무수한 땀방울들로 이어 만든 목걸이처럼 찬란하고 눈부십니다. 눈물 또한 동일하지요. 깊은 애증의 물방울들로 빚어진 생의 시간들 또한 빛나고 찬란할 테니 말이지요.
생이 지닌 가장 찬란한 빛깔들이
바람과 햇살과 함께 춤추며 환호하는 곳.
인간이 신과 대등하게 빛에 대해서 논할 수 있는 곳.
한 꿈의 바다. 한 찬란하고 눈부신 생의 바다.
그 한가운데 꽁까리 멜라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 꽁까리 멜라는 벵골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4월 14일에 펼쳐지는 축제입니다. 설 전날에 펼쳐지는 설 명절과 다름없는 축제입니다. 축제에서 파는 대나무 부채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새해의 시작이 한 더위에 시작되니 더위 먹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정월 대보름에 복조리를 파는 풍속과 닮아 있습니다. 참고로 이날 저녁 뉴스에서는 50만의 인파가 꽁까리 멜라에 모였으며 기온은 48도였다고 합니다.
2011. 10. 14. 금 다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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