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1. 16:26ㆍ독서후기
신인류가 몰려온다
- 일생 최후의 10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드는 -
■ 이시형 지음
0 1934. 4. 30 생
0 경북대 의대,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 박사과정(P.D.F)
0 경북의대, 서울의대, 성균관대 의대 교수
0 강북 삼성병원 원장
0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0 뇌과학대중화 선구자
0 저서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른답게 삽시다. 농부가 된 의사 이야기
배짱으로 삽시다. 등
◎ CHAPTER 1. 신인류의 등장, 초고령 노인이 몰려온다
■ 한국의 인구 통계표를 본 적이 있나요?
인구 통계 연감을 보고 있노라면 앞이 캄캄하다.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초고령, 저출산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거기다 무시 못 할 세계 최고의 자살률까지 겹치면서 인구절벽이 바로 눈앞에 와 있다.
• 출산율
2010년에서 2020년, 10년 사이에 출생자가 47만 명에서 27만 명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출산율은 지금도 계속 떨어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천재지변도 이럴 순 없다.
게다가 자살자가 연간 1만 3,000명 정도니까 이대로 10년을 가면 웬만한 중소도시 하나가 허공으로 사라지는 셈이 된다.
• 연도별 평균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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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볼 때 1950년도 평균 수병 약 48세에서 2010년대는 81세로 껑충 뛰어올랐다. 60년 동안 평균 수명이 30세 이상 증가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친구 부모님 환갑잔치에 불려 다닌 적이 어제 같은데 요즘은 환갑이란 말조차 사라졌다.
2021년 평균 수명은 약 83세지만 큰 지병이 없는 성인이라면 90세, 100세는 떼놓은 당상이다. 여기가 우리 아픈 곳이다. 젊은 부부는 아기를 낳지 않고 노인은 장수하니 인구 그림이 아주 기형적으로 역삼각형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엄청난 문제들을 안겨 주고 있다.
• 연령대별 인구수
2021년 9월 기준 연령대별 인구수이다. 10대가 겨우 470만 명인데 80대는 180만 명이다. 90대는 26만 명, 100세 이상도 1만 3,000명을 넘어간다. 이대로 10년 후를 상상해 보라.
40~50대가 각 800만 명, 합하면 1,600만 명이다. 이들이 80대가 되는 날이면 거리는 지팡이 노인들로 넘쳐날 것이다. 지금도 80대와 90대를 합치면 200만 명이 넘는다. 그때는 요양원, 요양병원도 초만원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4년 후엔 초고령 사회가 된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지금도 혼자 사는 노인이 600만 명이라는 보도가 있는데, 인구절벽이 현실로 된 그날 장수의 늪에 빠진 혼자 사는 노인들을 누가 돌 볼 것인가.
세계적 장수촌으로 알려진 블루존(Blue Zone) 마을은 주민이 평소 친하게 지내다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서로 당번을 정해 돌봐주는 제도가 있다. 그들은 이를 블루존 버디(Blue Zone Buddy)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는 좋은 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 신인류의 등장
내가 오늘 생각하는 신인류는 초고령 사회의 노인들을 말한다. 그들은 초고령(Super Age)이라는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롤 모델이 없다. 가끔 언론에서는 2~30대를 MZ세대, 마치 신인류처럼 그려내지만 그래도 이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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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 인생의 선배와 같은 롤 모델이 많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초고령 노인에겐 롤 모델이 없다. 우리 누구도 이렇게 장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상 초유의 경험이라 당황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은 80~90대 인구가 200만 명을 넘는다. 그런데도 우리 눈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나들이가 가능한 사람이면 축복이다. 장수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이 우리 눈에 띌 순 없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200만 명이나 되는 초고령자가 우리와 함께 같은 하늘 아래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다행히도 75세 이상의 후기 고령자들 중 특별한 간호 없이 완전 독립,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90%나 된다. 지병 몇 개는 다 가지고 있지만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좀 더 좁혀 85세 이상으로 살펴보면 일상생활 수행능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람이 77.2%로 뚝 떨어진다.
80대 후반이면 넷 중 한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사람이다. 도와주는 이가 없으면 나들이조차 혼자 나갈 수 없는 초고령자들이다.
■ 요양병원을 견학하고
가끔 요양원에 일어난 엉뚱한 사고가 보도될 적마다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몇 년 후 나의 모습이 투영되기 때문이리라. 준비 안 된 장수 시대는 환자나 가족, 정부에게도 큰 부담이다.
의대 교수 시절, 학생들과 함께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견학을 갔다. 병원에 들어서니 쾌적한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다. 나라가 이만큼이나 살게 되었으면 좀 더 쾌적한 분위기나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날 아프리카 전쟁터 난민들의 처참한 모습이 자꾸 떠올라 괴로웠다.
한데 문제는 다음 날, 그중 한 학생이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종이를 내미는데 퇴학 원서였다. 휴학계도 아니고 아주 퇴학하겠다니! 하지만 그 학생의 의지는 단호했다.
“교수님 저는 의사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가끔 내가 과연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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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될 자격이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습니다. 어제 그 요양 병원 견학은 저에게 확실한 대답을 준 것 같습니다.
난 퇴학원서를 받아들고 조용히 학생의 어깨를 다독였다.
의사라는 직업상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을 찾는 날이 더러 있다. 요즘 대부분의 요양원은 내가 처음 보았던 곳과는 달리 아주 청결하고 말쑥해졌다. 그런데 가끔 엉뚱한 사고가 터지곤 해서 모두를 놀라게 한다.
■ 역사상 초유의 일
2003년 4월 15일, 건강에 관심 있는 온 세계 사람들은 모두 가슴을 조였다.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노화 유전자는 없었다. 유전자는 인간이 노화를 일으키도록 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후성 유전자가 더 많이 관여하고 있다. DNA는 우리의 운명이 아니다. 인생은 태어나면서 타고난 DNA로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노화는 불가피한 일부가 아니라 폭넓은 병리학적 결과들을 빚어내는 질병 과정이다. 노화 자체가 질병이다.
한국인은 수천 년 평균 수명에 큰 변화 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어떠한 변화에도 적응을 잘 해내는 융통성이 풍부한 체질을 가졌다. 갑자기 늘어난 평균 수명으로 인한 여러 가지 생활상 변화는 우리 역사와 비슷한 일도 없었던 그야말로 초유의 일이다. 보고 배워야 할 선배가 없다.
나 역시 장수의 늪에 관해 도저히 자신을 진단할 수 없다. 장수도 건강할 때 장수지, 제 몸 하나 마음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대에게서 무슨 장수이랴. 어쩌면 장수가 재앙일 수도 있고 원수나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다.
자녀들이 출근한 사이 불이 났는데 노부부가 자동문을 열지 못해 참변을 당했다는 얼마 전 뉴스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나도 제법 똑똑하단 생각을 하지만 TV에 나오는 새로운 프로그램은 정말 깜깜하다. 이젠 젊은이 도움 없이는 식당에서 밥 한 끼도 마음대로 주문할 수 없다.
■ 언제부터 노인이냐?
몇 해 전 ‘노인의 하한선이 65세인 것은 너무 빠르다. 70세는 되어야 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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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노인회에서 나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까지 받아오던 노인 혜택이 없어질 텐데 말이다. 그런데 즉각 노인회에서 정정 보도가 나왔다. 지금까지의 복지혜택은 그냥 두고 다만 노인이라는 명칭만 70대 이상으로 하자는 것이다.
내가 이번에 졸저를 준비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노인의 정의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1. 대체로 70부터 노인으로 보자는 것이 대세이다.
2. 생물학적 견지에서 보면 요즘 70세는 예전의 40~50세와 같은 범주이다.
3. 노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75세 부터이다.
4. 85세 이상이면 진단은 물론 치료도 까다롭고 어려워진다.
5. 65세부터 고령자(노인)으로 부르기로 한 것은 WHO에서 공식적으로 정한 것이어서 우리 마음대로 바꾸어선 안 된다.
최근 들어 장수가 늘어나면서 노년기를 초기(75세까지)와, 75세 이상의 초고령자라고 부른다.
초고령으로 부르는 이때부터를 후기 고령자라 하며, 생리적으로 성인기의 연장으로 봐선 안 된다. 신체나 뇌에 생물학적으로 큰 변화가 오고, 이로 인해 70대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새로운 병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졸저를 준비하면서 내가 주로 참조한 미국 서적, <임상 노년 의학의 에센스>에는 총론에 이어 노인에게 잘 보이는 증상이 순서대로 해설되어 있다.
1, 섬망(주변 상황의 오해, 생각의 혼돈, 방향상실 등 정신의 혼란상태)
2. 울병 등의 정신과적인 문제
3. 실금, 4. 배회, 5, 넘어짐 등으로
우리나라의 책에 심장병, 뇌졸중 등이 맨 처음으로 기술되어 있는 점과는 아주 다르다.
실제로 노인을 진료할 때 몇 가지 유념 사항이 있다. 첫째, 나이가 같으면 모든 것이 비슷할 것이라는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체중 하나만 두고 봐도 개인별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투약이나 치료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야 한다. 체중이 45kg밖에 안 되는 노인과 그 두 배나 되는 노인이 같은 처방을 받아선 안 된다. 미국에선 75세를 경계로 그 이상이 되면 ‘올드-올드(진짜 노인)’ 그 이하는 ‘영-올드’라고 부른다. (시카고대학교 뉴가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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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다. 아무리 해로운 생활 습관이어도 갑자기 교정했다간 큰 사고를 칠 수 있다.
육식(肉食)은 건강에 안 좋다는 생각에 고령자에게도 가급적 육식을 자제하라는 지도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고 있는 하루 육류 소비량은 유럽인과 미국인에 비해 약 반(일일 평균 150g) 정도밖에 안 된다. 무리해서 좋아하는 육식을 줄이는 데는 문제가 있다. 더구나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세계 1위로 된 건 1985년에서 1990년에 걸쳐 일어난 대사건으로 우리가 육식을 마음껏 먹으면서부터다. 유럽과 미국에서 평균 수명 50세를 넘은 건 20세기 초였고, 우리가 50을 넘긴 것은 1955년 이후였다. 한 마디로 육식을 하면서 평균 수명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 자립의 의미
복지 선진 부국이라는 북유럽에 가면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세금이 살인적으로 높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누구도 높은 세금에 대해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은퇴 후 수입이 없을 경우 죽을 때까지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경제적인 비용을 물어주기 때문이다. 북유럽 사람들에게 세금은 평생 보장보험이다. 이것을 믿고 세금을 내려면 뭐니 해도 국가 재정이 튼튼해야 한다. 적자투성이인 회사에 보험 가입을 할 사람은 없다.
우리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2021년 11월 9일 자 <조선일보> 기사는 아주 절망적이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세금을 낼 사람은 적은데 돈 쓸 곳은 많으니 우리나라 살림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2022년 우리나라 국가채무 정부 전망치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국민 조세 부담률은 2021년 처음으로 20%를 돌파했으며,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의 자립, 자율, 책임 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 10년 후만 생각해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노인 복지 비용을 지출할 여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정부도 능력 부족이면 누기 이 늙은이들을 책임질 것인가. 우리가 자립을 강조한 소이가 이해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경제만이 아니다. 건강은 물론이고 서서히 사회적 유대를 새로 만들어 가는 것 역시 전적으로 자기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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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국가도 채무를 줄이고 가볍게 나갈 수 있도록 재정을 꾸려야 한다. 정부 재정이 흔들리면 전 국민이 불안해진다.
■ 자살
인구 문제를 이야기하려니 지방에 있는 중소기업의 심각한 인력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우리의 중소기업을 둘러보곤 세계적인 기술을 보유한 세계적인 기업이 많아 정말 놀랐다. 이래서 그 치열한 국제시장의 무역 전쟁에서 이겨낼 수 있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중소기업에 국내 기술자는 물론이고 일반 사원도 아예 오질 않는다. 외국 근로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국내 체류 문제가 법적으로 까다로워 모두 애를 먹고 있다. 더구나 최근 코로나 영향으로 인력난이 참으로 심각해졌다. 나라마다 문을 잠가놓고 있으니 인력난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아니 이렇게 좋은 자리가 많은데 취업난이라니? 내 짧은 소견으로는 젊은이들이 대기업 취업만 희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혹시라도 이런 좁은 생각이라면 단연코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또 이해되지 않는 건 이런 현실을 앞에 두고 젊은이에게 실업수당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률을 높인다고 공무원 수만 잔뜩 늘려놓고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건 기술력 좋은 중소기업에 취업하라는 충고다. 당장 일약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된다. 그리고 여러분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해 볼 기회가 생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보니 우리의 자살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자살자는 연간 1만 3,000명, 자살률은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잔혹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잔혹하진 않다.”
소련의 작가 막심 고리키가 한 말이다. 그도 청년 시절에 권총 자살 기도를 한 적이 있어 더욱 설득력이 있다. 희망을 품어라. 꿈을 잃지 마라…. 이런 말보다 확실한 인생관의 정립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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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인구 절벽의 시대이다. 젊은 부부는 아기를 낳지 않고 멀쩡한 사람의 자살이 이렇게 많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 일단 살아보고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 이 둘이 합쳐지면 웬만한 중소도시 하나는 증발하는 셈이다. 거기다 만혼에 첫 출산도 늦어진다. 미국의 예일대학교 연구 보고에 의하면 임산부의 출산 연령이 높을수록 순산 과정이 힘들고, 태어나는 아기의 선천적 기형이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늘어난다고 한다. 같은 보고서에는 임산부의 출산 연령이 높을수록 심지어 태어나는 아기의 건강 상태도 젊은 임산부들에 비해 턱없이 나쁘다고 한다.
내가 생명 보험 회사 사회공헌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을 때 젊은 부부가 왜 아기를 낳지 않는지 광범위하게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제기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친정 생각도 이젠 옛날 같지 않아 선뜻 맡길 수 없다. 아기 보는 것은 중노동이다. 젊은 여성이 많은 기업에서는 보육원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젊은 엄마들로부터 대환영을 받는다.
그리고 큰 문제 중의 하나가 우리의 낡은 도덕관, 윤리관이다. 유럽이나 남미 등지에선 혼외 출산이 일상화되고 있다. 브라질에선 혼외 출산이 60%가 넘는데 우리는 겨우 2%를 웃도는 세계 최고의 윤리 국가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또 양육할 능력이 없는 미혼모의 아이는 해외 입양을 보내기도 한다. 국내에선 인구절벽이라고 아우성치는데 해외 입양이라니!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혁명적이고 파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30대 후반에 결혼하는 일은 참 잔인한 짓이다. 정력이 왕성한 20대를 고스란히 둔 자학적인 결말이다. 내가 프로이트 공부를 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경우 대체로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성적 경험을 한다. 우리는 30대 중반에도 독신으로 지내도 큰 걱정 없이 사는 것 같다.
■ 베이비부머의 등장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대가 1955년도에서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소위 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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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부머(Baby Boomer, B.B) 세대다. 한국전 이후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던 시대다. 베이비부머는 700만 명, 정확히는 696만 명이다. 내가 이렇게 정확하게 기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이 세대만은 초고령 사회 준비를 철저히, 조직적으로 시키자는 뜻에서다. 그러나 아직도 당사자나 어느 구석에서도 그러한 취지의 관심을 보인 곳은 없다.
이들이 60세 내외니까 이미 직장을 떠난 사람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65세 노인 세대의 재취업 상태도 궁굼하다. 왜냐하면 이들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대가 한국의 현대적인 산업화를 일군 주역들이다. 이들이 자동차를 만들고 조선, 비행기 그리고 컴퓨터까지 현대 산업을 이끌어왔다.
이 세대가 아무 준비 없이 맨손으로 80대가 되는 날을 상상해 보라 끔찍하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 늦지 않았다.
■ 노인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시대가 온다
퇴근길, 와인이나 한잔할 생각에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선다.
“예약하셨습니까?”
“안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예약 없인 입장이 안 됩니다.”
노인을 내쫓는 구실이 예약이다. 차 한 잔에 예약이라니? 생각도 못한 일이며, 노인을 싫어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는 방증이다.
나는 가끔 바쁘게 글을 써야 할 적엔 호텔을 잘 이용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노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식당 메뉴 글씨가 하도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호텔 목욕탕에는 작은 병이 네 개 있는데 호텔 이름만 왜 그렇게 크게 써 놓았는지 도대체 그 용도를 읽을 수가 없다. 담당 직원이 모두 젊어서 그렇다. 샴푸인지 린스인지 알 수가 없다. 어떤 곳은 승강기 버튼 숫자가 하도 작아서 엉뚱한 층에 내린 적도 있다.
이는 단순한 노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아니고 바탕에 노인을 싫어하는 혐노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는데 무슨 배은망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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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냐. 싫은 거야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예우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본 예의다.”
그러나 싫어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잖아 미워하는 시대가 온다. 인구 변동표를 보면 얼마 가지 않아 젊은이 한 사람이 노인 한 사람을 부양해야 하는 때가 온다. 초고속 고령사회, 저출산, 그리고 최고의 자살률, 현재의 이 구도에서 변함이 없는 한 젊은이들이 무거운 짐을 지지 않으면 안 될 시대가 온다. 복잡한 계산을 할 것도 없고 눈에 훤히 보인다.
얼마 전 노인회에서 65세를 노인으로 대접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70세 이상부터 노인으로 의식하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때 제일 좋아한 사람이 지하철 사장이다.
그러나 노인들 목소리가 워낙 커서 노인회가 즉각 수정안을 내놓았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해오던 노인 우대, 무료제도는 그대로 계속하되, 다만 노인이란 기준을 좀 올려잡자고 했다.
반감, 혐노, 증오 시대가 본격화되면 우리 사회는 세대 차라기보다 일종의 계급 투쟁의 양상을 띨 가능성이 있다. 한가한 노인계급, 어떻게 보면 팔자 좋은 부자 노인의 지원을 위해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 젊은이로선 계급 투쟁은 가능한 이야기다.
오늘의 노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약자가 아니다. 수적으로도 많고 덩치가 커지면 정치 세력화될 수 있다. 노인 복지를 위한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 노인의 슬기가 필요한 시대
미국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한 토막 하겠다. 레이건괴 먼데일이 서로 경쟁 후보였던 시절, 첫 번째 토론에서 먼데일 후보가 상당히 유리한 여론몰이에 성공했다. TV에 나타난 레이건은 너무 늙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것을 타킷으로 한 먼데일의 발언은 쐐기를 박는 듯했다.
“대통령의 나이가 좀 많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먼데일은 레이건의 아픈 곳을 찔렀다. 레이건이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응수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이슈로 삼지 않으려 합니다. 상대 후보가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게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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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내에는 가벼운 웃음이 터졌고 이 한마디 여유와 유머로 전세가 완전히 역전했다. 레이건의 통쾌한 승리로 선거가 끝났다.
내가 보기엔 요즘 우리 정치는 너무 딱딱하다. 한마디로 유머가 없다.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 한마디를 물고 늘어진다. 노정객의 노숙한 여유와 유머가 그립다. 물론 젊은 정치인의 혈기 왕성한 목소리도 있어야 하겠지만 노숙한 유머도 좀 섞었으면 좋겠다. 정치판도 그렇고 우리 사회 전반이 너무 메말라 있다. 축축한 인간적 체취가 그립다.
■ 고령자의 사명
1920년대 스위스의 유명한 정신분석가 칼 융이 미국 인디언 촌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그는 인디언 노인들이 유럽 노인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의연하고 안정된’ 모습과 ‘권위와 기품’을 갖춘 모습에 깜작 놀라게 된다. 존경스럽다. 무엇이 그들을 저런 기품있는 노인으로 만드는 것일까.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 비밀을 알고자 했다.
인디언들은 아버지인 태양의 자식으로서 자기들의 종교적 의식에 따라 ‘우리 아버지가 저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것을 돕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것은 우리만을 위한 게 아니고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다’라고 했다. 융은 바로 이것으로 인디언 촌로의 기품과 당당함이 설명된다고 확신했다.
젊은이는 노인의 경험과 살아온 지혜를 배울 길이 없다. 나이 든 사람은 자기 경험에 젊은이의 새로운 지식을 더해 배우고 따라가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젊은 리더가 많아지고 있으며, 서구 열강의 지도자들도 젊다. 그러나 보아라. 그 뒤의 보좌진으로는 백발노인들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서로를 배워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계, 빠른 적응을 하는 데는 젊은이의 역동적인 파워가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젊은이 일색으로 조직을 꾸렸다가는 조직이 안정되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젊은이가 주도하는 조직은 빠르고 역동적이지만 바로 거기에 허점이 있다. 벤처 기업은 30% 이상이 실패한다는 보도를 접할 적마다 신중하고 노련한 늙은 피도 함께 가야 조직이 안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때 삼성 연구소에서는 ‘늙은 피 수혈’이라는 기치를 들고나온 적이 있다. 빠른 결단에는 언제나 신중성이 결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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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컬처 아카데미(High Culture Academy)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하지만 우리뿐만 아니다. 인류가 유사 이래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처음 당해보는 일이라 혼란스럽긴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찍부터 노인 공경문화가 정착되어 있고 또 초고령 사회에 대한 새로운 문화 정립에 좋은 모델로 온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에 한국이란 이름을 떨칠 절호의 기회다.
문화 기행차 케냐에 갔던 적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잡담을 나누는데 운전기사가 지금 호텔로 출발하든지 아니면 2시간 후에 떠나야 한다고 했다. <대장금>방영 시간이라 꼭 챙겨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되니 길에는 차도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욘사마’가 일본에 초청받았을 때는 비행기, 헬리콥터가 직접 그를 모셔갔다. BTS만인가. 한국 영화가 세계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월드컵 4강에 진출하고…. 도대체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세계인은 그런 한국의 문화적 저력을 믿고 있다.
신인류 초고령을 위한 문화를 한국이 선도하고 정립하는 데 세계인의 기대가 크다. 여기 주역은 젊은이가 아니고 초고령자다. 지금껏 축적된 노인력(老人力)을 발휘하여 한국 젊은이는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초고령의 신인류가 주역이요, 새로운 초고령 문화를 위해 이끌어야 한다.
◎ CHAPTER 2. 중년을 다시 본다
■ 언제부터 준비를 해야 하는가?
초고령 시대를 충실하게 살려면, 특히 초고령의 늪을 현명하게 잘 건널 수 있으려면 아주 어릴 적부터 준비를 잘해야 한다.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건강은 어릴 적 산야를 얼마나 누비며 거침없이 잘 뛰어놀았나 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때 형성된 건강이나 인성이 말년까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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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물론 그 이후 사춘기, 청춘기, 중년기, 숙년기를 거치며 우리 인격에 소중한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성장하고 성숙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건강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40대를 건강하게 잘 넘겨야 한다는 말이다. 당뇨, 암, 고혈압 등의 생활 습관병은 이때부터 싹이 트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양생(養生)은 여기가 고비다.
중년이 되어야 사람은 인간이 된다. 젊을 때 인간의 사고는 단발적이다. 시간이란 엄격한 것, 젊을 때는 만나는 사람 수가 한정되어 있다. 만나는 사람 수만큼 현명하게 된다는데 중년이 되면 세상엔 신도 악마도 없고 단지 인간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용감하든 겁쟁이든 나름의 쓸모가 있다. 내 기질을 사용하기 나름이다.
인간은 단선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무슨 일이든,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복잡한 원인이 있다. 인생에 세월의 무게가 실릴 때 비로소 인생사를 복합적인 시선으로 보게 될 안목이 생긴다.
■ 중년을 다시 본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만나게 되는 초고령 사회, 아프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다. 누구나 그때를 대비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그때를 위해 어떻게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대한 논의를 산발적으로 해왔다.
최근엔 중년의 연령대가 자꾸 확대 연장되어가는 추세다. 대게 40대에서 60대 중반까지 아주 넓다. 중년은 위기라기 보다 전환기라고 정의한 자크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젊은 날의 자기중심주의에서 타인 지향성으로의 전환이다.
정년은 종점이 아니고 인생을 결산하는 시점도 아니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안심감도 작용한다. 사회구성의 중심을 일구고 있는 중년 세대의 가치관의 변화는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중년은 직장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정립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60세가 가까우면 정년 은퇴라는 큰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일생 중 가장 복잡다양하고 분주한 시기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일생 중 가장 빨리 지나쳐버리는 게 60세 이후의 삶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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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을 앞둔 60세에 일발 역전의 계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걸 노린다면 50대에 해야 한다. 50대는 노화의 시작이 아니고 도전의 시작이다. 마지막 불꽃을 피우기에 적기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욕적이고 창조적인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 어물쩍 넘어가는 60대
일생 동안 60대에 가장 남는 게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오랜 직장 생활에서 풀려난 해방감에 생활 자체가 해이해진 점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당장 무슨 일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가 확립되지 않아 참 어정쩡한 시간을 보낸다. 허송세월, 후회만 남는다.
‘어물쩍 60대란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60대에 다양한 활동을 함으로써 정신 집약을 해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된다.
■ 60대,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위해
20대~50대까지 100여 명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2주에 걸쳐서 100세 인생 계획표를 써보고 발표하게 했다. 그러자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59세까지는 자기계발, 경제활동, 취미생활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이었고, 사회적인 성공과 인정에 대한 욕구도 컸다. 그런데 60세부터 70세까지의 계획은 막연했다.
60대 계획을 세우는 건 쉽지 않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 60대, 경제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건강한 나이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청년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50대 중반만 되어도 그만 집에 가서 쉬라고 권한다.
그래서 100세 인생 신인류의 삶을 계획하려면 60대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롤 모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3040부터 미리 나의 60대를 고민하고 기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은퇴 후 갑자기 폭삭 늙어버리는 사람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뇌를 안 썼기 때문이다. 뇌는 많이 써서 문제가 되는 것보다 쓰지 않아서 퇴화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의욕을 관장하는 전두전야는 방치하면 80대에서 29%가 위축된다. 뇌의 다른 분야는 2% 위축되는 데 비하면 아주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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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변동에 따른 나이에 대한 생각
지금까지 전체적인 인생행로와 사회의 관계는 ① 배우고 ②일하고 ③은퇴하는 아주 단순한 관계였다. 이 연령별 단계는 오랜 관습으로 정착되어 우리 뇌리 깊숙이 박혔기 때문에 이걸 깨기란 쉽지 않다. 이 틀을 깨고 자기 나름의 단계를 설정하고 실행하는 건 상당한 저항과 파격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제법 올곧은 생각을 하고 판단할 수 있으려면 60세 정도는 넘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전까지는 엉성하고 미숙하다. 어떻게 보면 이전까지는 인생 연습이고 습작을 시작하는 시간이라는 자평이다. 대학 정년퇴임 후의 나의 생활은 다음과 같다.
① 정년을 5년 연장, 그후 1년은 무료봉사
② 예방의학센터 설립 운영
③ 세로토닌 문화원 운영
④ 80세부터 문인화 교실을 운영하면서 몇 차례의 전시회 개최
⑤ 대금연주 및 유기농 농장 활동
■ 몇 세부터 몇 세까지가 중년이냐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적으로 젊은 청춘기와 노년기의 중간에서 교량 역할을 하는 게 중년의 특징이다. 최근 UN에서 내놓은 중년의 정의는 66세에서 79세로 몇 해 전 우리가 생각하던 초로(初老)에 해당한다.
최근 조선일보 특집기사에는 ‘중년이란 말을 쓰지 않고 A세대’로 표현하고 있다.
A세대 본인들이 나이에 고정된 이미지가 싫고 보다 넓게 자유분방한 그들의 의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A세대는 경제, 교육수준이 높다. ‘늙지 않는, 젊음 그대로(Agefree)’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A세대는 ‘동안’을 위해서 성형 줄기세포 치료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엄마들이 시니어니 중년, 심지어 실버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게 좋을 리 없다.
■ 중년과 시장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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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조선일보 기사에, ‘놀 줄 알고 쓸 줄 아는 A세대…, 명품, 전기차 시장의 50% 장악’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광고 기업 TBWA코리아에 따르면 A세대의 특징은 경제 교육 수준이 높은 50세 이상으로 ①Ageless(늙지 않는) ②Accomplished(성취한) ③Autonomous(자주적인) ④Attractive(매력적인) ⑤Alive(생동감) ⑥Admired(존경받는) ⑦Advanced(성숙) 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심지어 시니어라는 표현도 싫어한다.
나이 듦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늙고 쇠퇴하는 이미지에서 밝고 역동적이고 성숙하고 화려한 면이 부각된다. 시간은 절대적이지만 나이 듦은 상대적이란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된다. 물론 이들에게도 큰 강바닥에 거꾸로 흐르는 지류가 있고 저항의 형태로 만나야 할 때가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인생 만족도는 50대 초반에 최저점을 찍고 그 이후 차츰 서서히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70세에 최고점을 찍는다. 이런 곡선은 대체로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 나이 경계가 사라진다
요즈음 길거리에 나가보면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인상이 비슷하다. 모두가 중년으로 보인다. 어쩌다 기묘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나 학교 근처 교복으로 한마당을 이룬 곳 등을 제외하면 어느 그룹도 특색이 없다. 그 전엔 옷만 봐도 짐작이 갔는데 요즘은 전혀 구별이 안 된다.
우리 문화원에 모녀가 나란히 오면 도대체 어느 쪽이 엄마인지 구별이 안 돼 참 난처할 때가 더러 있다. 유행이란 게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그전엔 남녀 구별이 안 되더니 요즈음은 나이 구별도 없어진 것 같다.
■ 내 나이 내가 결정한다.
나이에 따른 분류는 워낙 다양하고 복잡한 인자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일정한 틀에 집약시켜 논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래서 최근에는 나이별 분류보다는 A세대, MG세대처럼 그 그룹의 특징적인 속성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명명하는 경향이다. 우리가 명명한 ‘신인류’도 대체로 이런 경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명명법은 대체로 그 사회의 공통적인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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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잘 나타낸다는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역시 간단치 않다,
나를 처음 대면하는 사람들은 내 나이에 대한 궁금증이 참 많다. 그때마다 큰 생각 없이 솔직하게 나이를 이야기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아니 그 나이에 어떻게 그리 젊어 보일 수 있느냐. 어떻게 그리 활동적이냐. 책은 언제 쓰느냐 질문이 끝이 없다.
나이는 제 마음 먹기다. 어느 쪽이든 누가 시비를 걸 사람이 없다. 더구나 뇌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뇌의 가소성을 생각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나이는 내가 결정한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아주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 졌다.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나이를 말하면 된다.
◎ CHAPTER 3. 장수의 늪
■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되나?
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아주 달라진다. 건강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되지만 반대로 부정적이고 불행하고 아프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렇게 된다. 노인의 건강 상태나 행복과 만족도는 본인의 생각에 크게 좌우된다. 뇌 과학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뇌의 가소성’이라 부른다. 뇌는 똑똑한 것 같지만 실은 참으로 바보다. 자신의 주관적 생각이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지난 100년, 선진국 평균 수명이 30년 연장되었지만 많은 고령자는 만년에 건강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1세기 전, 미국의 성인은 평균적으로 인생에서 병든 기간이 1%밖에 안 되었는데 현재 그 기간은 10%를 넘어섰다.
오래 살게 되었지만, 심신의 쇠약과 만성병으로 괴로워하면서 죽기까지의 시간이 연장되는 수도 많다.
마음 크게 먹고 플러스적인 사고를 해야 하는데 제일 무서운 것이 신체적 제한과 고통이다. 불행히도 건강 수명이 우리의 평균 수명을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건강 수명이 평균 수명보다 무려 10년이나 짧다. 이 시기가 우리가 최후에 건너야 할 늪이며, 난 그래서 이 시기를 ‘장수의 늪’으로 부르고 있다.
언제 이 어려운 시기가 내게 닥쳐올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가끔 병원의 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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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의사가 앞으로 6개월이니 집에서 맛있는 것 먹고 정리를 잘하라는 선언을 한다. 이건 안 된다. 의사의 교만이다. 언제 죽을지 신이 아니고는 아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죽음이 언젠가는 닥친다는 사실이다.
■ 건강 수명과 평균 수명
현재 한국인의 평균 수명은 83세지만 건강 수명은 그보다 훨씬 짧아서 여성의 경우 74세, 남성은 71세이다. 인생의 마지막 장의 평균 10년을 건강치 못한 상태로 살다가 임종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다. 우리와 아무런 상의 없이, 운명처럼 태어난 것이다, 우리는 일생동안 참으로 힘든 나날을 살아왔다. 평균 수명만 늘어나고 이를 지원할 사회체제는 준비가 덜 되어 있다. 초고령 사회가 되어가는 지금 노인 당사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무엇보다 건강이 말이 아니다.
초고령 사회가 빚어낸 새로운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이 시기를 ‘장수의 늪’이라고 부르는 사연이 이해됐을 것이다. 오래 살다 보면 이 험악한 시기를, 그것도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힘겹게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건강만이 아니다. 노인의 빈곤 문제, 사회적인 연대의 약화, 가족 간의 유대감,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는 정신적인 고립감으로 인해 한마디로 비참한 생을 맞게 된다. 몸도 마음도 아프다. 이런 상태로 평균 10년을 지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론적으로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노인이 되지 말자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에, 아니 생에 걸쳐 준비가 필요하다. 마음 단단히 먹고 준비해야 한다.
서러운 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안 해준다 족’이 되어선, 원망만 늘어놓는 사람이 되어선 정말 안 된다. ‘자립, 자율, 책임’이 세 박자가 두루 잘 갖추어져야 한다. 준비되어 있는가?
■ 장수의 늪
개인차가 심하긴 하지만 늦어도 80세 후반에 마의 고비가 시작된다. 정말 괴롭고 힘든 시기다. 돈도 넉넉하지 않고 사회적 소외감도 들며 체력과 건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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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약해진다. 이 모든 게 전혀 옛날 같지 않다. 치매, 암, 고혈압, 당뇨 등 만성 습관병은 두 명 중 한 명꼴로 찾아와 고생하게 된다. 설령 이런 질환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면 무엇보다 다리가 불편해진다. 눈과 귀도 멀고 치아, 허리, 무릎 등 만만찮은 문제들이 찾아오는 나이다. 정신적으로 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신적으로도 취약해져서 자립, 자율을 포기하고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가 된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선 완전 무력감, 무능감에 빠져서 제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무력하고 무능하며 생활 전반이 수동적인 의존 상태가 되어간다. 앞에서 이런 상태를 ‘장수의 늪’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75세 이상의 초고령자 중에서 도움이나 간호가 필요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불편하고 아프고 힘들지만, 그럭저럭 사회 활동은 가능한 tk람들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찾아서라도 해야 한다. 잊지마라. 노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엑티브(Active : 능동적인, 활동적인, 적극적인)이다.
대충 계산이 나왔다면 싫든 좋든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준비가 잘 되어 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 신인류 아직 안 보이는가?
지금 우리나라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7.5%로, 이미 고령사회에 들어온 지 한참 되었다. 4년 후인 2026년이면 20%를 훨씬 뛰어넘음으로써 명실공히 초고령 사회가 된다.
80대 후반이면 스스로 식사, 청소, 외출 등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10%가 안 된다. 대부분 60대 초반부터 노쇠현상이 현저해지며 70대에는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렇게 된 마당에 대책 수립은 늦다. 그러기 위해 우리도 선진국처럼 노인 문제를 종합적으로 대비하는 연구소나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것은 단순히 의료기관만의 참여로는 안 되고 의학은 물론 공학, 식품영양학, 법학, 사회학 등 여러 학과를 아우르는 종합연구소가 정부 지도로 설립,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 기업들이 참여하여 고령자용 주택, 복지시설, 로봇, AI의 적극 활용 등 고령 친화 산업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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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말년에
전체적으로 80세가 되면 둘 중 하나는 건강하지 못한 유병 환자가 된다. 여기서 굳이 질환별 연도별 통계 수치를 늘어놓지 않더라도 그런 계산이 쉽게 나온다. 내가 이 험한 연대를 ‘장수의 늪’이라 부르는 이유는 건강뿐이 아니다. 몸도 불편하고 아픈데 병원 갈 형편마저 안 된다. 이 나이가 되면 용돈을 아깝지 않게 쓸 형편이 안된다. 베에비부머 세대는 국민연금 수령자가 반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겨우 명분뿐이다. 눈치를 안 보고 편히 따듯한 방에서 자고 입에 맞는 건강식을 차려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축복받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천수(天壽)라는 개념은 확실히 모르지만 중고차처럼 여기저기 잔 고장이나 타기가 불편하다면 그만큼 살았으면 됐다는 신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힘든 세월, 그래도 어쩌랴. 그게 우리 운명인데, 어떻게든 그 힘든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말고 슬기롭게 잘 건너야 한다. 그게 장수하게 된 값이다.
■ 아픈 건 안 돼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아픈 것도 참고 견뎌야 한다? 의사도 환자도 그런 생각인데 나는 반대다. 인간적 배려가 결여된 의료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치료하는 것이다. 통증은 정신과 영혼까지 영향을 미친다. 고뇌로부터 위대한 예술이 탄생한다.
그러나 고뇌와 고통은 다르다. 말기 암 환자를 위문하러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힘내라, 용기를 내. 하지만 환자는 알고 있다. 그럴 힘이 없다는 것을.
무슨 병이든 앓고 잘 낫지 않으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슬프고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생애 한 번은 찾아오는 공평한 운명이기도 하다.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된다. 내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 머리가 아직 잘 돌아가 가벼운 철학적 사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 중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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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부촌 선 시티(Sun City)
미국 애리조나 사막 한복판에 백만장자를 위한 마을이 들어서 있다. ‘노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우리끼리 모여 잘 살자. 여기엔 아무도 늙은이가 없다.’ 백만 장자끼리 공동체를 일구어 살고 있다.
55세 이하는 입주가 금지되어 있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은퇴를 했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10%를 넘는다. 그런데 얼마 전 여기서 끔찍한 보고서가 나왔다. 여기 거주자들의 치매 발병률이 도시인들 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그 지상낙원에? 연구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삼무(三無)가 문제라는 것이다. ①스트레스가 없고 ②걱정이 없고 ③변화가 없다. 이 보고서를 읽는 도시인의 반응이 궁금하다.
인간은 적정한 수준에서 스트레스도 받고 때로는 걱정도 하고 변화가 있어야 새로운 자극이 되어 뇌가 활성화 된다.
① 무균 상태의 어항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 사는 이상 스트레스는 불가피하다. ② 적당한 일감이 있어야 한다. ③ 단절된 생활보다 사회와 연계된 삶이 자연스럽다. ④ 가장 소중한(봉사적인 활동)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⑤ 노년은 죽을 준비를 하는 시기가 아니고 재창조, 재조정의 시간이다.
■ 마무리를 잘해야
80대 후반이 되면 반드시 찾아오는 두 가지가 있다. 완전한 은퇴와 죽음이다. 이것만은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별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언젠가 한 번씩 온다.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인생에서 딱 한 번밖에 없는 것이 죽음이다. 고로 한 번의 죽음이니 잘 죽어야 한다.”
이 나이에 챙겨야 할 것은 건강만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키려면 경제적 자립도 필수다. 그리고 소셜 네트워킹, 즉 가족과는 물론이고 친구나 사회단체도 말석이나마 앉아 자기가 해야 할 최소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영감 냄새가 나면 안 된다. 냄새에 관한 것은 본인은 모른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겐 정말 고약한 냄새다. 메스껍고 토할 것 같기도 하다. 입 냄새도 그렇고 온몸에서 풍기는 악취가 사람을 쫓아낸다. 그리고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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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옷을 입으란 소리가 아니다. 깨끗이 손질한 옷을 입어야 한다. 한마디로 냄새 관리를 잘해야 한다.
◎ CHAPTER 4 성숙한 하산下山의 기술
■ 늙는다는 것
오래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노화’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우리는 대문을 열어놓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환영은 아니어도 쫓아낼 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옛날엔 항 노화라는 말은 없었다. 항노화는 늙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싸움이다. 태어나 사노라면 어느 순간부터 늙음이라는 괴물이 슬금슬금 찾아온다. 일찍 또는 늦게 오는 차이는 있지만 장수를 하는 이상 노화의 길은 운명의 길이다. 늙으면 안 된다는 욕망, 의학의 발전이 여기에 불을 지른다. 나이가 들면 늙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도 거절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항노화라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부자연스럽다. 대우주의 순환 원리에 거역하는 가당찮은 일이다. 항(抗)노화가 아니고 순(順)노화여야 한다.
생의 마지막 10년에 건강 수명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은 인생 최후를 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에 따라 늪의 깊이에 차이는 있다. 또 짧고 긴 차이도 있을 것이다. 전혀 없는 행운아도 있겠지만 이런 행운아가 되려면 나의 죽음이 남은 사람들에게 갈등을 줄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유산 전쟁은 미리 여지를 없애야 한다. 초상집에 칼부림 나는 꼴이 되어선 안 된다. 유산 전쟁은 미리 여지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마무리를 잘해놨다면 자다가 생을 마쳐도 축복이다. 인생 최후에 찾아오는 이 마의 고비를 슬기롭게 마감해야 한다. 좀 수월하게, 짧게, 그러나 충실한 삶이 되도록 슬기를 다해야 한다.
■ 성숙한 하산의 문화
인생 여정은 등산과 같다. 젊은 시절엔 위를 향해 앞으로, 높이, 멀리 올라야 하는 등산 코스다. 숨도 차고 힘도 든다. 이윽고 산 정상에 오르면 그제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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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경치도 바라보고 땀을 훔치며 무사히 등정에 성공한 감동이 밀려온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젠 내려가야 한다. 인생 여정으로 치면 딱 반이다.
올라가는 것만이 산행은 아니다. 위험은 하산길에 도사리고 있다. 사고도 이때 잘 일어난다. 물론 오를 때보다는 수월하다. 발아래 꽃도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들어 멀리 전경을 바라볼 여유도 생긴다. 아름답고 우아한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브레이크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자. 일류 운동 선수도 자신의 최고 기록이 나오면 그때부터 내리막길이다.
산은 올랐으면 내려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다. 성공적인 산행은 오른 후 내려오는 것이 끝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산을 잘해야 한다. 진정한 문화나 문명은 정점을 찍고 하산할 즈음에 아름답게 피어난다.
■ 화려하고 기품있는 고령화
75세가 되면 누구나 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70대 이상 인구가 570만 명이다. 그중 80대와 90대만 2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나 지금도 한국의 의료 정책은 건강보다 치병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 특히 초고령 노인에 대한 이미지는 쇠약하고 추하고 무력하며 병 덩어리, 간호가 필요한 골칫덩어리다. 이런 이미지가 노인을 싫어하는 혐노 문화를 형성하는 원인이다.
최근 장수 마을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중 미국에서 실시한 장수마을 연구가 유명하다. 연구팀은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마을 다섯 군데를 선정해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분석하여 발표했다. 이 다섯 마을을 블루존이라고 칭하고 마을의 공통적인 특징을 9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발표했다.
블루존 마을은 세계 다른 문화권과 달리 고령의 노인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가장 큰 특징은 노인들이 밭에서 평생 중노동을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섬 지방이 많았는데 이웃 간에 우의가 두텁고 욕심이 없다. 이런 보고서를 접한 미국 사회가 이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건강 장수하게 되었다는 고무적인 보고를 했다. 그런 마을이 40여 곳 이상이며 건강 보험료가 크게 절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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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는 노인은 뒷방에 은거하여 고독과 고통과 탄식 속에 생을 보내는 세대가 아니다. 희망찬 활기에 넘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한국은 옛날부터 노인 공경 문화가 대단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고 노동인구가 하루아침에 역전되었다. 농촌엔 노인들만 남겨둔 채 모두 도시로 몰려간 것이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할수록 노인 스스로도 거기서 탈피하려고 노력한다. 검은 머리에 희끗희끗 백발이 생기면 아주 공황상태에 빠진다. 염색을 우리만큼 열심히 하는 문화권이 또 있을까. 최근엔 남자들도 미용 성형술이 열풍이고 남성 화장품도 잘 팔린다. 난 이런 현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 그래도 어른의 품격을
장수의 늪이라 표현하니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막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진 않을까 걱정이다. 힘든 시대가 오리라 생각하며 그에 따른 준비도 잘해야 한다. 질펀한 늪 길이라도 마른 땅을 잘 골라서 딛고 걸어야 한다. 신발이 진흙에 젖지 않도록 깨끗이 잘 골라 밟아야 한다.
이럴수록 더욱더 자기를 잘 다듬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노인은 젊은이들이 흘리고 간 뒷설거지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른의 품격은 이런 데서 빛난다. 남들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일, 피하고 싶어하는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존경받는 길이다. 그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보다 중요한 치료제는 없다. 하찮은 일을 말끔히 해치워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나를 기다리게 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형편이 되는 대로 베풀어야 한다. 아껴서 뭘하랴. 있는 것을 다 털어 후회 없이 베풀어야 한다.
■ 운전은 졸업
‘Enjoy aging’ 앉고 서고 걷는 정도만 할 수 있다면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고령자가 해야 할 일은 단련이 아니다. 일상생활을 무리없이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훌륭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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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노화’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사는 것이 순리다. 가끔 잡지에 80세에도 젊은이 같은 이의 사진이 실린다. 사람들은 이런 사진을 보고 ‘아! 너도 저랬으면’하고 무리를 한다. 이것도 안 된다. 자기답게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어야 한다. 나는 75세에 자동차 운전 면허증까지 반납했다.
운전대를 놓고 나니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길에 나가도 신경 쓸 일이 훨씬 줄어든다. 서운해하지 마라. 이것만으로 축복이다.
■ 너의 최후에 만세를
의미치료 아카데미 회원들의 번개 모임이 있었다. 마포대교 아래서 만났다. 나를 만나기 위해 꼭 건너야 하는 이 다리는 자살하기도 좋은 명소다. 무슨 사연인지 자살자가 제일 많은 다리가 마포대교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 이야기는 자살에 대한 논의로 한참 시끄러웠다.
이 나이가 되니까 죽음에 관한 생각이 언뜻 떠오를 때가 있다. 사상가 몽테뉴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메멘토모리(Memento mori), 살면서 항상 죽음을 생각하라고 권했다. 그러면 낯설기만 한 죽음의 공포도 차츰 낯익은 일상처럼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철학적 사색은 도움이 안 되고 아무 생각 없이 담담히 지내다 죽은 사람이 편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깊은 사색은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다 죽는 사람이 공포없이 잘 죽는다고 했다. 자연 이외에는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한 까닭에 자연에 가깝고 진실한 자세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 웰 다잉
요즘은 워낙 의료 기술이 발달되어 영 소생 가망도 없는 환자에게 연명술을 시행한다. 더구나 우리 한국은 세계 최고의 장수를 자랑한다. 마지막 인생을 건강하게, 의미 있는 일을 하다가 죽음을 맞으면 그야말로 축복이다. 그러나 장수를 하다 보니 인생 말년에 건강하게 지내기란 쉽지 않다. 앞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지만 초고령자의 마지막은 정말 힘들다. 장수의 늪을 건너야 하는 운명의 최후가 기다리고 있다. 목숨만 붙어 있지 거의 인간 구실을 못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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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즈음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말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숙제로 떠오른다. 웰 리빙도 중요하지만 웰 다잉도 잘 챙겨야 한다. 옛말에 죽는 복도 타고난다고 했다. 살아 있는 한 삶의 의미가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 타령을 하지만 마지막에야말로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죽어야 한다.
■ 나 먼저 가네
우리는 우리 뜻대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온 힘을 다해 우는 이 어린 것이 앞으로의 삶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알기나 할까. 우리 일생은 ‘울면서’의 생애다. 그래서 하는 소리다. 죽을 때마다 우리 의지로 편하게 웃으면서 죽어야 하는 게 아닌가. 가까운 사람 불러 앉혀 놓고 ‘고맙네, 나 먼저 가네’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웃으며 생을 마칠 순 없을까?
다시 소생할 가망도 없다는 연명치료, 그렇게 목숨이라도 붙어 있다면 의료진과 가족도 ‘부활’을 그리며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어느 구석에서도 인간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참으로 처절한 최후다. 누가 이런 죽음을 원하랴. 아프지 않고 편안히 가기를 원하고 있다.
‘나 먼저 가네’ 하고 손 흔들며 떠났어야 할 사람에게 이것은 참으로 가혹한 형벌이다. 이렇게 따져볼 때 의료 기술은 양날의 칼이다.
■ 고령은 훈장이 아니다
자기비판하지 말아라. 살아온 인생, 후회도 하지 말아라. 산다는 것만으로도 벅찬 삶인데 그 인생에 무얼 더 기대한단 말인가. 별것 아닌 인생을 살았노라고 서러워하지도 말자. 어떤 인생도 부끄러워할 것 없다. 얼마나 이뤘냐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그것을 묻는 게 아니다. 얼마나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루터 킹 목사는 평소 이 말을 즐겨 썼다.
“최악의 비극은 젊을 때 죽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살았노라 말할 수 없는 상태로 75세까지 살았다는 것이다.”
그는 39세에 저격으로 사망했다. 대단한 업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을 사는 자세를 묻고 있다.
고령을 대단한 특권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고령이란 젊은이처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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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를 살아가는 데 지나간 한 시점을 말하는 것일 뿐 선도 악도 아니다. 무슨 큰 자격을 득한 것도 아니고 공적을 쌓은 것도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어느 한 시기를 말할 뿐이다.
가뭄에 어른은 굶어 죽고 아이들은 배불러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이게 어른 된다는 책임이자 염치다. 지난번 아마존 밀림 문화기행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최악의 야만인을 인육을 먹는 식인종으로 알고 있다. 천만의 말씀, 그들은 영화 <타잔>에서처럼 길 가는 백인 여자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밀림에 가뭄이 오면 먹을 것이 없어 온 부족이 굶어 죽게 되는데, 이럴 때 노인이 나서서 자신을 잡아먹으라고 몸을 내놓는다. 부족의 연명을 위해 참 거룩한 희생을 하는 것이다. 이보다 숭고한 인류애가 있을까.
어느 한 면만 보고 내리는 결론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우리 회원 중 한 분이 플라스틱 사업을 전 세계적 규모로 하고 있다. 기왕이면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 사업이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좋겠지요. 플라스틱을 대신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만약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지금쯤 우리 산은 종이 펄프를 위해 벌거숭이가 되었을 겁니다.”
“그렇다. 플라스틱이야말로 환경을 지키는 데 공헌을 하고 있구나.”
크게 한 방 얻어맞았다. 한쪽만 보고 내린 결론이 얼마나 위험한가.
■ 자연으로 회귀
부처는 확신하고 있다. 인간은 결코 고(苦)에 질 수 없는 존재다.
이 엄청난 재난과 부조리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것이 그의 깨우침의 중심 사상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길은 많다. 그중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생명의 중함’이다.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 아니 우주 전체의 생물에 대해 무거운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약육강식, 우리보다 약한 생물을 잡아먹고 살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지구상에 산다는 그 자체가 곧 근원적인 악(惡), 업(業)을 지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없이 겸손하고 겸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래 우리 인간은 희망찬 빛 속에서 근대를 만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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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교회와 신의 권위에 잡초나 벌레처럼 취급되어선 안 된다. 인간은 위대하다’라는 인간 해방의 의식 개혁에서 시작된다. 당시로선 중세 암흑시대에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처럼 신선한 사상이었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아주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인간 중심주의로 바뀌어 갔다. 지구의 자원을 무한정으로 채취 개발하는 등 모든 것을 난폭하게 행하면서 지상의 제왕처럼 군림하기 시작했다. 자연 파괴가 너무 심각해지니 그제야 환경문제가 세계적 이슈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이제야 세계는 우리 한국의 자연관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산에도 산신령이 있다고 믿었다.
그뿐만 아니라 바위, 나무, 물…, 산천초목에도 신이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도 우리 할머니는 큰 나무를 보면 절하고 흐르는 강물에 절을 한다. 자연은 개발되어 인간에게 봉사를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진 서구 사람들은 우리의 이런 자연관을 애니미즘이라고 폄하하고 있다.
이제 와서 자연보호를 외치지만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 인간과 함께 공존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위대한 자연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보호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인간도 우주의 일부다. 우리는 가소롭게 산업화라는 미명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떠날수록 불행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고맙게도 나이가 들면 자연적으로 자연에 회귀한다.
다음에 2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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