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2023. 2. 22. 16:00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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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 벌써 마흔이 된 당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

■ 김혜남 - 정신분석 전문의

0 1959년 서울생. 고려대 의대

0 국립정신병원(현국립정신건강 센터) 12년 근무. 정신분석 전문의

0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교수

0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0 김혜남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0 저서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는다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 당신과 나 사이 등 10여 권

0 정신분석 전문의. 두 아이의 엄마, 시부모 모시고 사는 며느리,

0 2001년 마흔 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 병마와 싸우며 새로운 인생

“하나의 인생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 김혜남

◈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용감히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리라.

그리고 더 바보처럼 살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헤엄치리라.

아이스크림은 더 많이 그리고 콩은 더 조금 먹으리라.

어쩌면 실제로 더 많은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거리를 상상하지는 않으리라.

* 나딘 스테어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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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만 부 기념 스페셜 에디션을 펴내며

2001년 마흔 세 살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벌써 22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병마와 싸우면서 책을 열 권쯤 썼고 그 중간에 운 좋게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 있다 보니 가끔 내 책을 읽었다는 독자를 만날 때가 있다.

올해 초 강화도에 갔을 때도 그랬다. 친구들과 아담한 카페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있는데 저쪽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자꾸 나를 쳐다보았다. 뭔가 망설이는 듯 보이던 그녀는 잠시 후 내게로 다가와 말했다.

“김혜남 선생님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제가 선생님 책을 계속 읽어 왔는데요. 작년에 더 이상 책을 못 쓸 것 같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괜찮으세요?”

뜻밖의 인사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녀의 진심 어린 말과 표정 속에 담긴 마음이 읽혀져 울컥했다. 낯선 카페에서 독자를 만난 것도 신기한데 그녀가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제 멘토셨는데요. 더 이상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안타깝지만 괜찮아요. 그러니까 제발 오래오래 곁에 있어 주세요. 힘내시고요.”

그 일이 있고 난 뒤 출판사에서 전화가 결려왔다. 2015년에 펴낸 책이 10만 부 판매를 넘어서서 스페셜 에디션을 펴내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책을 정리하면서 정신분석의 선구자인 프로이트가 말한 정상의 기준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사람이 ‘약간의 히스테리, 약간의 편집증, 약간의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정상이다. 즉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의 문제는 다 가지고 있다. 그러니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병마와 싸워오다 보니 가끔은 아무나 붙잡고 푸념을 늘어놓고 소리를 지르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 때도 있다.

명색이 정신분석 전문의로 30년 넘게 일해오며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온 사람으로서 이처럼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될 때마다 부끄럽지 그지없지만 나는 그런 나를 용서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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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마찬가지다.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늘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것을 고치고 싶어하는 당신은 지극히 건강하다. 잘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반성하며 내일은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당신은 어떻게든 성장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가인 융의 표현을 빌자면 마흔에는 마음에 지진이 일어난다. 나 또한 마흔이 넘었을 때 마음에 지진이 일어났다.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마흔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들을 추려 정리한 이유다.

- 2022년 가을에 김혜남

■ PROIOGUE : 파킨슨 병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일도 그렇고, 사랑도 그렇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이라고, 그래서 무엇을 하든 겁부터 난다는 환자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제가 그 일을 하는 게 맞을까요? 했다가 후회하면 어떡하죠? 만약 일이 잘못되면요?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그녀의 간절한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말했다.

“제가 점쟁이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요?”

“그건 알지만 그래도 조언을 해 주실 수는 있잖아요.”

만약 내가 그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한다고 해 보자. 그녀가 과연 그 일에 도전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몇 달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헤쳐 나갈 테니 용기 내어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고 했다.

나에게도 그렇게 꼼짝도 못 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2001년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난 직후였다. 파킨슨병은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는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그래서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심지어 글씨를 쓰고 얼굴 표정을 짓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파킨슨병을 묘사할 때 옴 몸을 밧줄로 꽁꽁 묶어 놓고는 움직여 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는데 그 말이 꼭 맞다. 어떨 땐 한 걸음 움직이기 위해서 옷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고생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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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파킨슨병에 걸리고 15년이 지나면 사망하거나 심각한 장애가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 그저 약으로 병의 진행을 더디게 만들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불치병이라는 소리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단 말인가. 너무 억울했고 세상이 원망스러웠으며 내 인생은 끝났다고 절망했더랬다. 게다가 파킨슨병 환자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을 내가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절망한 채 누워 있는다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게다가 다행히 병이 초기 단계라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어났고, 하루를 살았고 또 다음 날을 살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2014년 초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을 때까지 진료와 강의를 하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충실히 살아왔다.

내가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대부분 ‘참 안됐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병이 이미 내 건강의 많은 부분을 앗아갔고 앞으로 지적 능력까지 빼앗아 갈지 모르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래서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해 버리기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코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데 5분 넘게 걸린 적도 있고, 몸이 굳어 버려 옆으로 돌아눕는 것조차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아픈 건 아니다.

“아니, 그럼 아쉬운 건 없으세요? 후회되는 것도 없으세요?”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게 왜 없겠는가. 그렇지만 살아가는 데 걱정이 별 도움이 안 되듯, 후회 또한 별 도움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한 가지 후회하는 게 있다면 인생을 너무 숙제처럼 해치우듯 살았다는 것이다. 의사로,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면서 나는 늘 의무와 책임감에 치여 어떻게든 그 모든 역할을 잘해 내려 애썼다. 나 아니면 모든 게 잘 안 돌아갈 거라는 착각 속에 앞만 보며 달려왔고, 그러다 보니 정작 누려야 할 삶의 즐거움들을 놓쳐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기쁨도, 환자들 돌보는 성취감도 제대로 만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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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못한 채 스스로를 닦달하듯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참 많다. 병 때문이기는 하지만 의사 일을 관두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중국어 공부도 제대로 해 보고 싶고, 진짜 끝내주는 요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고, 서해, 남해, 동해를 한 바퀴 쭉 둘러보고도 싶다. 이 책에 공개한 버킷리스트는 열 개밖에 안되지만 내 마음속엔 더 많은 리스트가 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꿈꾸기를 멈추지 않아서인지 사는 게 재미있다.

앞으로 병이 다시 악화되어 책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더라도 나는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어차피 사는 거 재미있게 살다 가면 좋지 아니한가.

2015년 봄날에 김혜남

◎ CHAPTER 1. 30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며 깨달은 인생의 비밀

■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불행이 찾아올 때가 있다

“파킨슨병입니다.”

2001년 2월 사랑의 전화 복지 재단에서 강의가 있던 날 오전, 나는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순간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고 눈앞의 세상이 얼어붙었다. 그렇지만 강의를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 강의를 마치고 나와 택시를 타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의 손상으로 인해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며,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으로 보통 65세 이후에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으로 알려져 있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 배우 로빈 윌리엄스도 이 병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마흔세 살에 파킨슨병이라니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게다가 파킨슨병은 우울증과 치매, 편집증(피해망상) 등의 증상을 동반하는데 나에게 그런 시련이 닥쳤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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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끔찍한 사실은 파킨슨병은 아직까지 딱히 치료법이 없어 희귀성 질환으로 분류되며 발병 후 15~17년 정도 지나면 사망이나 심각한 장애가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내 인생이 60세 전에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내가 불치병 환자가 되어 의사로부터 몇 년 안 남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남들과 다른 반응을 보일 줄 알았다. 그래도 의사니까 이성적으로 판단해 현실을 빨리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울고불고 원망한다 해도 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나는 그대로인데,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미래가 불확실하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밖에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내가 왜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망치고 있는 거지?’

당시 나는 피곤하면 오른쪽 다리를 조금 끌고, 글씨 쓰는 게 힘들긴 했지만 환자들을 진료하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 중간중간 쉬어 준다면 별 문제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왜 오지도 않은 시간을 걱정하느라 침대에 누워 오늘을 망쳐야 하는가. 파킨슨병 치료법이 아직은 없지만 계속해서 연구 중이니 앞으로 개발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리고 내 뇌에서 도파민 분비 세포가 80%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20%는 남아 있다. 즉 내 노력 여하에 따라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어나 다시 병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들을 진료하고 강의를 나가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파민 작용제는 보통 치료 효과가 3년 가는데 나는 그 약으로 12년을 버텼다. 2013년 그다음 단계 약인 레보도파를 쓰기까지 말이다. 또한 나는 그 12년 동안 책을 다섯 권 썼으며, 진료와 강의도 계속했다. 다행히 치매 현상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우울증도 경미한 편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불행이 닥쳐올 때가 있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있다. 똑같은 12년이라도 그 결과가 확실히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2001년 2월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깨달은 삶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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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 법이다

1987년 탈 벤 샤하르는 스물한 살의 나이에 이스라엘 전국 스쿼시 선수권 대회에서 최연소 챔피언이 되었다. 우승한 순간 그는 가슴이 벅찼고 행복했지만 세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은 사라져 버렸다. 스쿼시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스포츠도 아니고 선수도 몇천 명밖에 안 되는데, 거기서 1등을 한 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그는 세계 챔피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영국으로 떠났다. 그 결과 영국으로 간 지 1년 만에 청소년 메이저 대회의 결승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불안감과 긴장감에 시달리던 그는 갑자기 발에 쥐가 나더니 팔다리에도 쥐가 나 눈 앞에서 1등을 놓치고 말았다. 게다가 1년 가까이 무리하게 몸을 혹사시킨 탓에 스쿼시마저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야만 하고 한 치의 실수도 용서하지 않는 완벽주의 성향은 그가 운동을 그만두고 하버드 대학에 들어간 되에도 변하지 않았다. 저서 <완벽주의자를 위한 행복 수업>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교재를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하고, 모든 리포트와 시험에서 완벽한 점수를 받아야 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고, 그래도 실패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리포트를 제출하거나 시험을 치르고 나면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의 경험담을 토대로 긍정 심리학을 연구한 그는 현재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되어 학생들에게 과거의 자신처럼 완벽주의자로 살지 말라고 조언한다. 완벽주의자를 포기한다고 해서 절대 삶이 무너지지 않으며, 오히려 삶을 더 즐기면서 잘 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60점 이상이면 통과인데,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려 준비하는 사람과 ‘60점만 넘으면 되지 뭐’하는 사람의 준비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준비해도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더 이상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말고 60%만 채워졌다면 길을 나서보라.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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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생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완벽한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내 삶에는 늘 빈 구석이 많았고, 그 빈 구석을 채우는 재미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 나는 가고 싶은 길을 갈 것이다. 준비가 좀 덜 되어 있으면 어떤가. 기면서 채우면 되고 그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인 것을.

 

■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볼 것

2014년 1월 3일 아침 출근하려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다. 병이 조금씩 악화되어 그렇게 미뤄왔던 치료제 레보도파를 사용한 지 10개월째였는데 더 이상 환자를 진료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엔 병원 문을 닫고 체질 개선과 요양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내려갔다. 처음에는 진료도 그만두고 공기 좋은 곳에 내려가서인지 병세가 호전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레보도파 약효의 지속 시간이 세 시간밖에 안 돼 하루의 반 정도는 누워서 약 먹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파킨슨병 환자들의 경우 소변이 금방 마려워 화장실에 자주 가는데 밤에도 예외는 아니다. 겨우 눈을 붙였는데 소변이 마려워 잠을 깨고 화장실에 갔다 오면 한두 시간 잠들었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발을 떼는데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꽈당 넘어질 뻔했다. 분명 내 다리인데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화장실이 바로 코앞인데도…. 보통 때면 2초 만에 갈 수 있는 화장실을 가는 데 5분 넘게 걸리긴 했지만 도착해서 볼일을 봤으니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어떤 길로 가는 게 맞을지는 모르지만 걸어간 길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다. 배우자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가 나와 맞을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다. 연애할 때는 괜찮았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안 맞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배우자를 내 남편 내 아내로 만들어 가는 것은 내 몫이다. 물론 선택한 길이 틀릴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낭떠러지에 도착할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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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두려워 한 발짝도 떼지 않으면 영영 아무 데도 못 가게 된다.

그리고 내 경험상 틀린 길은 없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실패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면 그것은 더 이상 실패가 아니었고, 길을 잘못 들었다 싶어도 나중에 보면 그 길에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배움으로써 내 삶이 더 풍요로워졌다.

어떤 순간에도 삶을 포기하지 말고 용기 내어 일단 한 발짝만 내디뎌 보라. 나는 화장실에 가기까지 5분이 걸렸지만 도착한 순간 해냈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당신이 누구든 어떤 상황에 있든 한 발짝을 내디딘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용기 내기를 참 잘했다는 것을.

■ 처음은 누구나 서툴다

1999년은 내가 운전면허를 딴 해다. 남들은 20대에 딴다는 면허를 마흔 넘어 뒤늦게 따면서 참 말도 많이 들었다. “아직까지 차가 없으셨어요.” 바로 위 언니가 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 탓인지 나는 오래도록 차를 꺼렸고 운전면허 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누구나 운전하고 다니니까 나도 운전을 하면 당연히 잘할 줄 알았다. 운동신경이 둔한 것도 아니니까 웬만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뭔지 모를 자신감에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6개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실수들을 연발하며 나는 스스로 초보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사고라도 방지하기 위해 차 뒷유리에 크게 ‘초보 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녔다. 그러다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차를 남편에게 반납해 버렸지만 말이다.

더 이상 아는 척 혼자 끙끙대지 말고 초보 티를 내자. 실수 하나 했다고 금방 좌절하고 주눅들어 있지 말고 딱 한 마디만 해 보는 것이다. “모릅니다. 가르쳐 주세요. 잘 배워보겠습니다.” 그리고 지나 보니 알겠다. 실수가 맘껏 허용되는 것은 초보 때뿐이다. 그때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사람일수록 아주 크게 발전한다. 만약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깨에 힘을 빼고 한 걸음 한 걸음 배워나가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그것이 바로 초보 딱지의 매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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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린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바로 위 언니가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한 달 뒤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났고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나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언젠가 언니는 역사학자가 되고 나는 의사가 되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공부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목표했던 의대에 들어갔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언니가 죽고 난 뒤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마저 꾹꾹 억누르고 있었는데 대학 진학 후에 그 슬픔이 터져버린 것이었다.

방황을 거듭하고 있던 어느 날 사촌 오빠가 다가왔다.

“해남아, 인생에 최선만 있는 건 아니야.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 있고, 차선이 안 되면 차차선도 있는 법이거든. 그래서 끝까지 가 봐야 하는 게 인생이야.”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의대에서 예과와 본과를 거치는 6년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인턴 과정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그러다 보니 나는 당연히 대학병원에 남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 병원에서 전문의를 따고 대학교수가 되는 미래를 당연하게 꿈꾼 것이다. 그런데 나 대신 다른 사람이 레지던트로 뽑히면서 나는 대학병원을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학병원 대신 국립정신병원(현 국립정신건강센터)을 선택한 뒤 그곳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대학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비참하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말 인생은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었다. 국립정신병원에서 레지던트로 3년을 보내면서, 생각지 못한 다양한 경험을 했다. 정신 치료법으로 약물치료뿐 아니라 사이코드라마, 예술 치료, 정신분석을 골고루 접하게 된 것이다. 대학병원에 남았다면 결코 해 보지 못할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나중에는 레지던트들을 지도 감독하는 일을 하며 내가 더 많이 배웠다. 남에게 가르치는 수준이 되려면 끊임없이 연구 논문들과 각종 사례를 공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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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 남지 못했을 때 나는 또다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해 절망했더랬다. 그런데 차선으로 선택한 국립정신병원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건 뭔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최선이 아닌 차선의 길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발견했고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원하는 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실패했다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문이 닫힌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니 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전혀 없다.

■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이 지구상에는 명령받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동물이 두 종류 있다. 하나는 청개구리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인간이다.

뭘 하려다가도 누가 시키면 갑자기 하기 싫고 ‘내가 하나 봐라’ 심술을 부리며 일부러 안 하려고 든다. 어릴 적 책상에 앉았는데 “공부해라”라는 엄마의 말에 “에잇, 안 해”하며 책을 덮어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누군가 시키면 하기 싫어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하는데 명령을 받으면 그 주도권을 남에게 빼앗긴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의사 표현도 바로 ‘싫어’ 혹은 ‘안 해’다. 갓난아이는 배가 부르면 아무리 입에 우유를 넣어 주어도 고개를 돌리고 뱉어버린다. 자고 싶지 않으면 죽어도 자지 않고, 조금만 불편하게 안아도 제대로 안으라며 자지러지게 울어댄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이처럼 뭐든지 제멋대로 하려는 아이를 사회라는 테두리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자유롭게 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심지어 학교와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연애하고, 결혼 여부도 자유롭게 결정하는 등 원하는 대로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배웠다. 그런데 정말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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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부모님이 시키고, 학교가 시키고, 사회가 시키고, 사람들이 좋다는 길을 걸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원하는 것을 고집했다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하며 두려워할 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보면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 안에서는 자꾸만 화가 치솟는다.

자신의 역사를 써나간다는 것, 그것은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누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나를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하려고 해도 그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간다는 의미다. 친정 부모의 횡포와 시부모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애써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정당히 거절할 건 거절하고, 들어줄 건 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휘둘려 내 소중한 에너지를 다 써버리는 대신 그것을 카페를 운영하고 내 삶을 살아가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통제 소재를 내 안으로 가져올 것.’ 저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내가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내가 그 일을 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조차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거다’. ‘내가 빨리 해 주고 넘어가 버리는 거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내가 그 일의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맞춰 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스스로를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낀다. 그런데 그럴 때도 ‘그 사람이 원해서 웃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상황을 원만하게 넘기기 위해서 웃어 주자’라고 마음먹어 보라. 어떤 상황에서든 주체를 나 자신으로 가져 오라는 말이다.

그 어떤 일을 당했더라도 그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부모도 가족도 배우자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남 탓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 남의 역사가 아닌 내 역사를 써나갈 수 있고, 남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 수 있다.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 꼴 보기 싫은 사람과 오래도록 같이하고 싶은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수많은 일들을 주체적으로 해결하고 조율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삶이 아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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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

오래전 일이다. 한 시골 할머니가 진료를 받으러 와서는 한참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근데 원장님은 안 계세요?”

아니 내가 원장인데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는 걸까 싶었다. 알고 보니 내가 버젓이 흰 가운을 입고 있어도 할머니 눈에는 의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가 살아왔던 남존여비 세상에서는 여자가 의사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나는 인턴 때 대학 동기와 결혼했는데 원치 않게 곧바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 다들 힘든데 임신했다는 이유로 일을 줄여 달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과를 돌 때였다. 그날따라 중환자실에서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잇달아 벌어졌다. 환자 세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하는 위급한 상황, 급한 대로 달려가서 심장마사지를 했다. 어느 순간 배가 뭉치는 걸 느꼈지만 아이가 무사하기만을 바라며 환자를 살리는 일에 매달렸다. 그런데 환자가 고비를 넘긴 그날 밤 나는 하혈을 했고 끝내 유산을 했다. 그 후로도 얼마 동안은 아이를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내 힘들어했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약인가 보다. 어느덧 나는 두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의사 생활을 계속했다. 병원일 하랴. 집안일 하랴. 두 아이 키우랴. 시부모 봉양하랴.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를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 한숨이 먼저 나왔다. 어느 순간 나는 웃음을 잃어버렸다. ‘왜 나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나’라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남편과 가족들을 원망하고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했다.

의무감과 책임감만으로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살았던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때 삶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시간을 분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더라면 집에 가자마자 저녁 준비한다고 서두르기 전에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며 안아 주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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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즐기려고 마음먹었다면 출근하며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를 가지고 환자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눈앞에 놓인 과제들에 내 인생을 다내어 주기보다는 좀 더 멀리 보며 나를 더 아껴주고, 틈틈이 나에게 즐거운 음악을 들려주고, 달콤한 휴식을 허락할 것이다.

■ 해봤자 안될 게 뻔하다는 말부터 멈출 것

옛날 시골 마을에서는 어느 집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거나 사법고시에 붙으면 동네 어귀에 큰 플래카드가 걸리고 잔치가 벌어졌다. ‘개천에서 용 났다’며 모두들 축하해 주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요즘은 명문대에 들어가는 조건이 할아버지의 경제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이란다. 아빠만 벌어서는 사교육비 감당이 안 되니 원래 부자인 할아버지가 필요하고, 엄마는 입시정보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웬만한 경제력 가지고는 명문대에 들어갈 수 없고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소리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집단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단다.

심리학에서는 ‘무기력’이란 에너지가 바닥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며,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의 힘으로 처지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무력감은 생각보다 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성폭행을 당하거나 천재지변을 당한 이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런 수치스럽고 무서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 즉 무력감이었다고 한다.

사업에 실패한 뒤 무기력의 늪에 빠져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기는 그냥 실패자일 뿐이라고 한탄하는 40대 남자가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포기해 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상담이 계속 제자리를 맴돌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만약 아들이 당신처럼 자라서 지금 당신의 위치에 서 있다면 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그가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열심히 살았다고요.”

“아들한테는 그렇게 말해 줄 거라면서 왜 정작 당신 자신에게는 가혹한가요? 당신이야말로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잖아요. 잘해 오다가 잠시 일이 안 풀려서 어려운 것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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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칭찬해 주라고 했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외부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란다. 상황이 확 변해서 무언가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상황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 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최악의 상황에 놓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절대 빼앗길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것은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선택권이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무기력하게 누워서 천장만 보고 살 건지, 일단 밖에 나가 할 일을 찾아볼 건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때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시 인생의 키를 잡고 전진하다 보면 작은 결실이라도 반드시 맺는 때가 온다. 비록 그것이 내가 애초에 바라던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나쁜 일이 꼭 나쁜 일이라는 법도 없다. 나쁜 일이 나중에 보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때도 종종 있다. 그러니 노력의 결과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자신을 실패자라고 말하는 그가 말은 그렇게 해도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확신했었다. 그가 제 발로 상담을 받으러 왔다는 것 자체가 아직 자기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말이다.

◎ CHAPTER 2

환자들에게 미처 하지 못한, 꼭 해 주고 싶은 이야기

■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일곱 살 난 꼬마는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습니다. 꼬마는 엄마의 하이힐을 신어 보았지만 뒤뚱거리다 그만 층계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꼬마는 많이 먹으면 빨리 자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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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나 잔뜩 먹었더니 배만 아팠습니다. 꼬마는 엄마의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액세서리로 치장도 해봤습니다. 그래도 엄마같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를 만나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되나요?”

“기다려 봤니?”

“아니요.”

꼬마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된 뒤 꼬마는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적에는 신나고 재미있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요.

살아오면서 어른이 되었구나.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주민등록증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꼬박꼬박 받던 용돈이나 세뱃돈이 뚝 끊겼을 때, 더 이상 학생이라는 말을 듣지 못할 때, 공중 목욕탕에서 욕조 안의 물이 시원하게 느껴질 때, 세상은 내 말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어릴 적 꿈이 가물가물해질 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현실의 짐들을 짊어지는 것이다. 어른이 된 실제 모습은 꿈꾸던 것과는 차이가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건강한 어른은 떠날 수도 있고 혼자 남겨질 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사랑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어른은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가 있으며 성실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 있든 늘 흔들리지 않을 자아 정체성이 있음을 믿는다.

건강한 어른은 양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는 능력과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건강한 어른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잃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고, 좌절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며, 불완전함 속에서 감사와 용서를 배운다.

건강한 어른은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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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또 어떤 잘못도 용서받고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 환자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한 말

언젠가 어느 기자가 나에게 물었다.

“환자들이 선생님께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가요?”

“울음요.”

지금은 정신과가 정신의학과로 바뀌었고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정신과를 찾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나를 찾아오기까지 굉장히 많은 시간을 홀로 고통스럽게 보낸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진료실에 들어와 내 앞에 앉으면 울음부터 터트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동안 너무 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려니 그것이 먼저 울음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한 환자는 말없이 한 시간 넘게 운 적도 있었다. 뭐가 그리 힘들었던 걸까.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가 실컷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밖에 없었다.

가끔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왜 우리는 울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는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이 나면 창피해서 남이 볼세라 얼른 눈물을 닦는다. 운다는 것은 감정에 굴복하는 것이고 상대에게 나의 약한 면을 노출시키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앙다물고 있는 힘껏 울음을 참는다.

하지만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왜냐하면 울음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공격성을 씻어 내는 배출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격성이나 공포 혹은 슬픔이 눈물이라는 맑은 분비물을 통해 방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울고 나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좌절이나 슬픔을 경험할 때 해결되지 않은 공격성이 울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게 놔두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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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울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사실은 약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이 드러날까 봐 감추려 한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쌀 강한 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반면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설령 약한 모습이 드러난다 할지라도 충분히 그것을 감당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약한 아이가 더 이상 도망가거나 숨지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울고 싶을 때는 울어버려라.

■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도록 놔두지 말 것

잘못된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지금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환지들을 치료하다 보면 그들이 커다란 우주복을 입고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주복 안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감히 우주복을 벗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과거에 얽매여 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한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폭력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알코올 중독자인 남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과거’라는 우주복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도돌이표처럼 끔찍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이가 성장하고자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처럼 과거에 묶여 꼼짝도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풀 수 있도록 해석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현재 자신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을 ‘지식적 통찰’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식적 통찰은 큰 변화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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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통찰’이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아, 그렇구나’하고 가슴 깊이 느끼며 그동안의 슬픔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적 통찰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더 이상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도록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덮고 있는 과거의 무거운 이불을 걷어내고 밖으로 나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현재까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온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 직장 선후배를 굳이 좋아하려 애쓰지 말 것

친해지는 것과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친밀함은 관계에 따라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간다. 소수의 친밀한 관계부터 서로 알고만 지내는 사이까지, 동심원의 크기는 다양하다.

이때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관계에 따른 동심원의 크기를 잘 알고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직장 선후배 사이의 동심원은 서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꼭 서로를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부족한 점을 격려하고 함께 노력할 수 있으면 그뿐, 꼭 친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10명 중 2명 정도였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2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가까워지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와 좋은 여자를 만나게 해 줘도 그들 사이에 끌림이 없으면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힘든 것처럼, 아무리 괜찮은 사람들이라도 둘 사이는 막상 그리 친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 너무 에너지를 쏟아 붓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 인간관계가 피곤한 노동처럼 느껴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라. 아직도 당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 내가 열등감을 가지고도 즐겁게 사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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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집에 놀러 온 손님들은 그 아이를 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랬다. “이 집은 왜 셋째 딸이 제일 안 예뻐?” 큰 언니와 둘째 언니 그리고 여동생은 얼굴도 조막만하고 하얀 피부에 눈도 큰 미인이고, 남동생은 누가 봐도 잘생겼는데 셋째 딸인 여자아이는 자기가 너무 못생겼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자신이 늘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점점 두려워졌다.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자꾸 떨려서 발표도 잘 못했다. 그래서 학창 시절 반장 같은 걸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로 나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외모를 보면 예쁜지 안 예쁜지부터 따지는 세상에서 예쁘지 않다고 평가받는 것은 여자아이에게 굉장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못생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을 거야’ 라는 두려움에 떨며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예쁜 짓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을 봐주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래서 어린 시절 아이에게 못 생겼다는 말은 자존감 형성에 있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자존감은 타인의 시선을 통해서 형성된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인데, 자신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실 열등감은 어느 누구에게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다 잘하거나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춘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등감의 뿌리가 너무 크고 깊으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어둡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열등감이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못생겼고 부족하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했다. 남에게 내 부족한 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뭘 하든 더 완벽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만약 열등감이 없었다면 나는 성장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예쁘고 완벽하다면 더 이상 노력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므로 열등감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다른 장점을 키워 열등감을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드는 것이 좋다.

물론 못생기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게 장점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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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우리 주위에는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또 부족한 면도 있지만 탁월한 장점으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다. 즉 외모가 좀 못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이 인생을 망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못생겼고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 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열등감이 너무 깊어 모든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인생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고, 당신이 스스로를 실패자로 보면 인생도 그렇게 흘러갈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당신을 바라보는 시각 말고, 당신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것부터 결정하세요.”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누가 나를 믿어 줄 것이며, 나를 내가 보호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보호해 주겠는가. 게다가 사랑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해봐야 그 기대를 다 충족시킬 수 없을뿐더러 결국에는 나 자신을 잃고 공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고 열등감의 늪에서 빠져나와라. 신기한 것이, 면담을 하다 보면 환자가 좋아지고 있다는 최초의 사인은 얼굴에서부터 나타난다. 환자들이 예뻐지고 멋있어지는 것이다. 바로 자신감이 회복되고 자존감을 찾게 되면 얼굴이 편안해지고 피부가 좋아지면서 빛이 난다. 또한 자신을 억압하고 잡아 끌어내리던 무의식적인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능력도 발전한다.

■ 제발 모든 것을 ‘상처’라고 말하지 말 것

어떤 모임에 갔을 때였다.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40대 이상의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모두가 서먹하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하고 명함을 주고 받은 뒤에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우린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각각 자신의 세계로 떠나가고 없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으로 부지런히 문자를 주고받는 아이들과 엄마, 그리고 못마땅한 얼굴로 이를 바라보는 아빠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더 웃긴 건 가족 식사 중에 그토록 문자를 주고 받던 친구와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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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다.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스마트폰은 나와 세상을 연결해 주는 끈이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즉각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중요한 소통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원하기만 하면 수많은 사람들과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타인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면서도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동시에 자신을 통제하는 타인에게 분노하며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언제든 나에게 등을 돌릴지 모르는 타인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 결과 사람들은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도 언제 마음이 돌아설지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그가 떠나도 내 삶에는 아무런 여파가 없도록 말이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의 젊은이들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실은 공허하고 외로움이 더 많다. 더구나 상처가 났을 때 곁에서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약을 발라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그들을 더 외롭게 하고, 더 상처에 예민해지도록 만든다.

살다 보면 갑자기 징검다리를 만나기도 하고 가시덤불과 마주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삶의 한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것조차 상처라고 여겨 어떻게든 피하려고만 든다. 징검다리는 건너면 될 일이고 가시덤불은 조심조심 헤치며 나아가면 될 일인데 말이다.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모두 상처라고 말하면 우리 삶은 문제 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가 나에게 어떤 위해를 가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즉 상대방을 가해자로, 나를 피해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이고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일이 되어 버린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고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내 힘으로 해결 불가능한 문제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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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우리가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무언가 원하는데 그게 내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 상처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게 정말 합당한 것인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이 금방 안 온다는 이유만으로 냉큼 상처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 습관일 뿐이다.

그러니 스쳐 지나가고 그냥 넘어갈 일까지 굳이 상처라고 말하며 인생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처와 상처가 아닌 것을 구분 짓는 것, 그것은 어쩌면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첫걸음인지도 모른다.

■ 늘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혜은 씨의 별명은 ‘언터처블(untouchable)이다. 자기 일은 깔끔하게 처리해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절대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해서 누군가 가욋일을 시키면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죠?”라고 따박따박 따졌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워낙 깔끔한 성격이라 별로 두드러진 문제 없이 업무를 처리하곤 했다. 다만 모든 사람들과 일정 거리를 두려 했다.

왜 그녀는 아무도 필요 없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 나갈 수 있다고 하는 걸까? 그녀처럼 드러내 놓고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기 위해 날을 세우지 않더라도,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에게 타인은 그저 타인일 뿐 서로 간섭 안 하고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기쁨과 편안함을 우선으로 한다. 다른 이에게 신경 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게 되는 상황을 몹시 두려워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되는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한다. 차라리 말썽이 생길 소지를 아예 만들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는 게 맘 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즐길 게 얼마나 많은 데 괜히 사람들 틈에서 복작거리며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혜은 씨가 혼동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독립과 고립의 차이다. 독립은 스스로 자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사실 독립은 타인에게 의존해야 할 때 의존할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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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살다 보면 남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반드시 온다. 그럴 때 독립적인 사람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또 누군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움을 준다. 타인의 도움은 잠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고, 여전히 자신의 일을 주관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와 달라고 했다가 자칫 인생의 주도권마저 타인에게 내줘야 할까 봐 두려워하는 이는 선뜻 타인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못한다. 그럴 경우 그것은 독립이 아니라 고립이 되어 버린다. 혼자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다.

나는 혜은 씨가 스스로는 독립적이라고 믿고 있지만 벽을 쌓은 채 자기만의 성에 갇혀 고립을 자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욕동은 대상 추구의 본능이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하고 그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하며, 무엇이든 공유하고 싶어한다. 좋은 것,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혼자서 그것을 경험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한다. 아마도 재미있는 장면을 보고 엄마를 부르는 동물은 우리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혼자만의 경험과 느낌은 기억 속에서 색이 바래지기 쉽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함께 공유한 기억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그와 나 사이의 공간에 저장 되어 의미를 부여받고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둘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 되어 언제든 그 추억을 불러올 수 있게 된다.

“아, 참 좋다! 그치?”라고 말하면 “그러게, 진짜 좋다!”라고 말해 줄 사람. “이거 너무 맛있지 않니?”라고 물으면 “응, 진짜 맛있다.”라고 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을.

■ 나쁜 감정을 가졌다고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착하고 누구와도 갈등 없이 지내는 사람들. “그 사람 성격 정말 좋아. 얼굴 찌푸리는 걸 본 적이 없어”, “천사 같은 사람이야. 남편이랑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대”, 사람들 사이에서 놀라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미움, 분노, 원망, 질투,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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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나쁜 감정이 올라오면 곧바로 지지하고 억압하는 강박증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쁜 마음을 가지는 순간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며 괴로워한다. 그런데 세상에 ’나쁜 감정‘이라는 게 있을까? 모든 감정은 정상적이다. 단지 도가 지나친 극단적인 감정이 문제가 될 뿐이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투정을 부리는데 부모가 심하게 혼내거나 아이의 감정을 무시해 버리면, 아이는 자기의 감정이 옳지 못하다고 여기고 부정적인 감정은 무조건 억압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인지하게 된다. 이렇게 솔직한 감정을 이해받지 못하고 감정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나쁜 감정이 들 때마다 당황하고 억압하게 된다. 마치 어린 시절 조금만 울상이 돼도 혼쭐을 냈던 그들의 부모처럼, 자신에게 나쁜 감정을 허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자신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만약 당신이 나쁜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이러면 안 될 것 같고 혼란스럽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1.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질 것

감정은 막으려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라는 뜻은 아니다. 이때는 충분히 기다린 뒤 감정을 해결하는 것이 좋다. 감정에 굴복하지 않는 최선의 길은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2. 감정을 표현할 때는 ‘나’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쓸 것

우리가 감정을 표현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싶어서이다.

사람들은 종종 갈등 상황에서 ‘너 때문에 속상해’. ‘너 때문에 화가 나’ 등등 상대방을 탓하는 말을 내뱉는다. 그럴 경우 상대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화를 내고 순식간에 감정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 목표가 내 감정을 정확히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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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는 가급적 표현을 삼갈 것

감정이 격한 상태에서는 가급적 표현을 삼가는 게 좋다. “네가 그렇게 화를 내면 나도 화가 나. 우리 좀 가라앉힌 뒤에 말하자.”라는 식으로 격한 감정을 가라앉힐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감정에 충실하되 감정을 너무 믿지 말 것

지금 느껴지는 감정이 즉흥적인 것인지, 나중에도 책임질 수 있는 것인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라. 그래야만 서툴고 잘못된 감정 표현으로 인헤 나와 상대방 모두 상처 입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다음에 2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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