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
더우면 곳 피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난 얻디 눈서리랄 모라난다
구천(九泉)의 불희 고단 줄을 글로 하야 아노라
따뜻하면 꽃 피고, 추워지면 나무 잎 지는데,
소나무는 어찌하여 눈 서리 에 변함이 없는가?
미루어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게 뻗쳐 있음을 알겠노라.
[竹]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
뎌러코 사시(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나무도 아닌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고,
저러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그것을 좋아하노라.
[月]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광명(光明)이 너만하니 또 잇나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너 보다 더 밝은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보고도 말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 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