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이해

2009. 3. 5. 20:52동다송 가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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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의 이해


시조(時調)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이다. 시조 이전의 모든 시형(詩型)은 시조의 발생을 위한 준
비이고, 시조 이래의 시형들은 시조에서 분파한 형식이라 할 만하다. 민족 생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시형들은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곧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조만은
700∼800년을 두고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 문학이다.

1. 역사
가. 고대 시조
시조 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
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
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
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忠)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이조년(李
兆年), 이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
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
러나기 시작한 산문 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 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
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 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
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
曲源流)》, 그 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
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
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나. 현대 시조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 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
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 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 부흥 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
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옛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
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 시조
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
(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 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시조를 본격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이은상 등이며, 31년에는 《노산시조
집》이, 47년에 《가람시조집》, 48년에 《담원(園) 시조집》(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어 허술한 시조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주요한(朱耀翰)·양주동(梁柱東)을 비롯하여 기타 많은 문사들이 시조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은 계속 시조다. 1938∼39년에 《문장(文章)》 《동아일
보》 등을 통해 등단한 이호우(李鎬雨)·김상옥(金相沃) 등에 의해 시조는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호우는 현대 시조에서 내면 세계를 다루는 데 성공하여 현대 시조의 격을 높인 공이 크다. 조종현
(趙宗玄)·김오남(金午男) 등의 활약에 이어 이영도(李永道)·정훈(丁薰) 등은 제나름의 특유한 영토를
마련하였다.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은 시조 전문지인 《시조문학》(1960년 창간)을 34집까지 이끌
어온 공이 크다. 시조 중흥에 크게 기여한 정부 주최의 ‘개천 경축 백일장(1957년부터 3년간)에서는
정소파(鄭韶坡)·장순하(張諄河)·유성규(柳聖圭) 등이 배출되었고, 60년대 초에 신춘 문예를 통하여
정완영(鄭梡永)·이우종(李祐鍾)·박경용(朴敬用)·이근배(李根培) 등에 뒤이은 역량 있는 작가들이 속
출하여 오늘의 시조 신단은 현역작가 수만도 약 200여 명에 달한다. 58년에는 《현대시조선총(現代時
調選叢)》이 나왔으며, 64년에는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었고 그 뒤 한국문인협회에는 시조분과가
마련되었다.
시조전문지로는 《시조문학》과 《현대시조》가 있으며, 시조시인에게만 주어지는 문학상으로는 노
산 문학상·가람 문학상·정운 문학상 등이 있다. 이은상은 양장(兩章) 시조를 시도한 바 있으며, 단
장(單章) 시조·동시조(童時調) 등을 시도한 이도 있다. 최근 신예작가들의 발랄·참신한 작품이 현대
시조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2. 명칭
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 : 고려 가요·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
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時調)'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 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 시
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신조(新調)·시조(詩調)
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
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
만 쓰이고 있다.
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영언(永言)·
장단가(長短歌)·시절단가(時節短歌)·가요(歌謠)·가곡(歌曲)·악장(樂章)·신성(新聲) 등의 명
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3. 종류
① 평시조(平時調) : 초·중·종장이 각 15자 내외, 총 45자 내외의 단형 시조(短型時調)이다.
② 엇시조(時調):평시조보다 초·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자수(字數)가 무제한으로 길어지고 종장
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중형시조(中型時調)를 말한다.
③ 사설 시조(辭說時調) : 평시조보다 초·중장이 제한 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 사
슬 시조라고도 하는 장형 시조(長型時調)이다.
④ 연시조(連時調) : 한 제목 밑에 여러 수의 평시조를 엮어나간 시조.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
가(江湖四時歌)》,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이 이에 속한다.
⑤ 양장 시조(兩章時調):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시조. 이은상이 시도했으나 요즈음에는 이런 시형으로
짓는 이는 거의 없다.
⑥ 단장 시조(單章時調) : 평시조를 더욱 압축하여 초·중장을 제쳐놓고 종장만으로 시조의 맛을 내
게 하려는 시조의 변형이다. 이는 단순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⑦ 동시조(童時調) : 어린이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된 시조. 근래에 와서 시도
되고 있으며 이는 날로 쓰이는 율이 높아가고 있다.

4. 형식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이 시조를 말할 때 ‘3장 6구(三章六句)’ ‘3장 8구(八句)’ ‘3장 12구
(十二句)’ 등 구(句)에 대한 견해를 달리하고 있으나, 장(章)은 한결같이 3장이라고 하니 시조가 3장
으로 구성되었다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3장이라고 하는 대신, 3행(行)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
지만 이것은 별로 문제가 안된다. 그러므로 시조의 장은 초장(初章)·중장(中章)·종장(終章)의 3장으
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이요, 이는 엇시조에서나 사설 시조에서도 다를 바가 없다. 시조의 구에
대한 개념 규정은 여러 가지이지만 ‘3장 6구설’과 ‘3장 12구설’이 가장 지배적이다. 시조와 자
유시와의 구분이 날로 불가능할 정도로 비정형화(非定型化)되어 가는 경향을 미연에 방지한다거나
외형율로서의 리듬을 고려하여 자유시와 색다른 면을 더욱 부각되게 하려면 3장 6구로서의 느슨함보
다는 3장 12구로 정형성을 팽팽히 매어 시조의 고유성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상을 정리하여
시조의 형식을 자수율로 표기하면 다음의 [표]와 같다. 이와 같이 시조형식의 3장 12구체가 지니
는 자수는 초·중·종장 각 15자 내외로 잡아서 한 수가 소요하는 자수는 45자 내외가 되는 셈이다.
각 구의 자수가 약간씩 넘나드는 것은 무방하나 종장 처리에서만은 종장 제1구의 3자를 어기지 않는
것이 정도(正道)이며, 종장 제2구는 5자 이상을 확보할 때 시조의 율격이 살아난다.

5. 내용
고시조(古時調)의 내용을 살펴보면,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지인(知人)간의 별리(別離)를 슬
퍼하는 이별 애상(離別哀傷)의 노래라든지, 임과 이별한 후 혼자 자는 방에서 떠나간 임의 무정함을
원망하면서도 그 임을 못 잊어 사모하는 내용의 공규 원모(空閨怨慕)를 읊은 노래, 시골에서의 한가
로운 생활을 노래한 강호 한정(江湖閑情)의 노래, 시골집에서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다룬 전가 한거
(田家閑居)의 노래, 또는 연로하거나 세사 번우(煩憂)하거나 왕이 버리거나 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귀
전(歸田)하겠다는 뜻을 밝힌 치사 귀전(致仕歸田)의 노래, 곤궁하게 살면서도 평안한 마음으로 천도
(天道)를 지키겠다는 안빈 낙도(安貧樂道)의 노래가 있으며, 군왕을 사모하여 충성을 다하겠다는 내
용인 연주 충군(戀主忠君)의 노래, 군왕의 은덕을 깊이 느껴 매우 고맙게 여기는 감격 군은(感激君
恩)의 노래 등이 있다. 또한 정성스런 마음으로 충성을 다하여 절개를 지키고 움직이지 아니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단심 충절(丹心忠節)의 노래를 비롯하여, 국사를 걱정하여 세상이 되어 가는 형편을 탄
식하고 근심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가 있다. 그 밖에도 글을 배우고 덕을 닦는 것을 내용으로 한 학
문 수덕(學問修德)의 노래, 죽은 사람 또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사모하여 그 덕을 찬미하고 칭송하
는 노래,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三綱·五常·五倫)를 주제로 한 노래, 부모를 생각하며 잘
섬기는 효행을 주제로 한 노래, 잘 가르쳐서 지난날의 잘못을 깨치게 하고 타일러 주의시키는 것을
주제로 한 교회 경계(敎誨警戒)의 노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고 구경하는 것을 주제로 한 소요
유람의 노래, 인생 행락 또는 인생 무상의 노래, 심중에 품은 생각을 노래한 것 등 눈에 어리는 정경
이나 여러 가지 감추기 어려운 정회 또는 기개나 의지 등의 것이 있다. 한편, 현대시조의 내용은 너
무나 다양 다기하여 일일이 분류할 필요도 없다.

6. 시조집
① 청구영언(靑丘永言):1728년(영조 4)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 엮음. 998수를 곡조에 따라 분류하
고 작자의 약력을 소개하였다. 그 밖에 가사 17수도 수록되어 있다.
② 해동가요(海東歌謠):1763년(영조 39) 노가재(老歌齋) 김수장(金壽長) 엮음. 883수를 작가별로 분류
하고 자작시도 수록하였다.
③ 가곡원류(歌曲源流):1876년(고종 13) 박효관(朴孝寬)·안민영(安玟英) 엮음. 시조와 가사수를 남창
(男唱)·여창(女唱)으로 나누고 곡조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 《해동악장(海東樂章)》 또는 《청
구악장(靑丘樂章)》이라고도 하며, 부록으로 《여창유취(女唱類聚)》가 있다.
④ 고금가곡(古今歌曲):편찬 연대는 미상이나 영조 연간으로 추정되며, 송계연월옹(松桂烟月翁)이 엮
었다. 313수를 작품 내용에 따라 분류 수록하였다.
⑤ 동가선(東歌選):순조(純祖) 때 백경현(白景炫)이 엮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35수
를 작자·내용별로 분류 수록하였다.
⑥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정확한 연대와 편자는 미상이나 철종 때로 짐작되며, 시조 224수, 잡가 3
편, 가사 4편이 수록되어 있다. 가집(歌集) 중에서 유일한 판본(板本)이며 순한글로 표기되어 있
다. 특기할 것은 시조의 종장 끝구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5. 현대 시조의 특징
① 제목을 반드시 붙인다 : 고시조에서는 연시조의 경우 불과 몇몇 작품에만 제목이 붙어 있을 뿐이
다. 현대시조는 내용을 축약(縮約)·암시할 수 있는 제목을 반드시 붙이는 것이 상례이다.
② 시형(詩形)의 배열이 비교적 자유롭다 : 고시조는 장별(章別)조차 구분이 없이 내리닫이로 잇대어
기술했으나, 현대시조는 그 배열이 연시조의 경우 수별(首別)의 별도처리는 물론 초·중·종장을
구별해 씀으로써 시각적 효과를 통한 배열도 고려한다.
③ 연시조를 쓰는 경향이 많다 : 고시조는 대부분이 단수(單首)로 되어 있으나, 현대시조는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문명상(像)이나 깊은 사상을 다스리기에는 단수 45자 정도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연시
조를 쓰는 경향으로 기울고 있다.
④ 허사(虛辭)인 ‘어즈버’ '아마도' ‘아희야’ ‘하노라’ 등은 배제한다.
⑤ 율격(律格)을 음수율에만 의존하지 않고 낱말이 지니는 의미나 호흡에서도 율(律)을 잡는다.
⑥ 감각적 표현도 애용한다.
⑦ 음풍 농월조(吟風弄月調)의 외면세계를 다루거나 표피적 감정처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세
계로 파고들어 인성(人性)의 심층묘사나 사상성을 다루기 위해 메타포(metaphor)를 즐겨 쓴다.
⑧ 파격의 빈도가 많다.

8. 여류(女流) 시조의 특성
조선조 시대는 전반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낮았으므로, 여류 문학도 그다지 발달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기녀 (妓女)들의 시조 작품 가운데는 빼어난 것들이 있다. 그들의 노래는 유생들의 시조
에 비하여 인간성이 짙다. 비록 천대를 받은 기녀들이지만 그들의 교양과 재질은 유관(儒冠)들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다. 선비들의 시조가 흔히 관념적 사고의 표출임에 대하여, 그들의 시조
는 숨김 없는 구체적 서정인 점에서 우리의 홍미를 끌게 한다. 그것은 대개 임에 대한 그리움인
데, 수절(守節)로 인해 생기는 그리움이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또한, 자유 분방한 성정(性情)의
세계 속에서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수에 있어서는 아주 적지만, 개방된 인간성
과 진솔(眞率)한 생활 감정을 노래하고 있어, 모두 구슬과 같이 아름다운 작품으로서 부드럽고
매끈한 운치가 넘쳐 흐른다.

9. '사설 시조(辭說時調)'에 대하여
사설 시조는 17세기에 이르러 나타났으리라고 생각되며, 18세기에 이르러 크게 성행했다. 사설
시조를 이룩한 주동적인 인물은 평민 가객(平民歌客)들이었다. 이 시기에 대두(擡頭)하던 평민 문
학의 일환으로서, 산문 정신과 서민 의식을 배경으로 한 사설 시조는 시조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사설 시조는 시조가 지닌 3장체의 형태적 특성을 살리면서 낡은 허울을 깨뜨리고, 새 생명을 지니
고 등장했다. 이와 같이 지난날의 영탄이나 서경의 경지를 완전히 탈피하여, 폭로적인 묘사와 상징
적인 암유(暗喩)로써 그 표현 기교를 바꾸어서 애정·거래(去來)·수탈·패륜(悖倫)·육감 등 다채
로운 주제를 다루면서 지난 시대의 충의에 집착된 주제를 뒤덮었다.
형식면에서는
① 사설조로 길어지고,
② 가사투(歌辭套) 민요풍(民謠風)이 혼입(混入)하며
③ 대화(對話)가 많이 쓰이고,
④ 새로운 종장 문구를 개척하였다.
내용면에서는
① 구체적, 서민적인 소재와 비유가 도입되고,
② 강렬한 애정과 육욕(肉慾)이 표현되며, 
③ 어휘(語彙), 재담(才談), 욕설이 삽입되고,
④ 거리낌 없는 자기 폭로, 사회 비판 등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낡은 형태를 파괴하는 구실은 충분히 하였으나, 새로운 문학적 가치를 창조하는 데는 미
흡함이 있었다 할 수 있다.

● '사설 시조'의 미의식
사설 시조는 우아한 기품과 균형을 강조하는 평시조와 달리 거칠면서도 활기찬 삶의 역동성을
담고 있다. 사설 시조를 지배하는 원리는 웃음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날카로
운 관찰, 중세적 고정 관념을 거리낌없이 추락시키는 풍자, 고달픈 생활에 대한 해학 등이 그 주요
내용을 이룬다. 아울러, 남녀 간의 애정과 기다림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대개는 직설적인 언어
를 통해 강렬하게 표현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종래의 관습화 된 미의식을 넘어서서
인간의 세속적 모습과 갈등을 시의 세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사설 시조는 문학의 관심 영역을 넓
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미의식은 조선 후기의 변모된 세계관과 현실 인
식을 바탕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후 우리 근대 문학의 바탕을 이루기도 한다.
















제 2 장 연시조 감상


江湖四時歌(강호사시가) 
江湖(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興(흥)이 절로 난다 [春]
濁 溪邊(탁료계변)에 錦鱗魚(금린어) 안주로다
이 몸이 한가 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江湖(강호)에 녀름이 드니 草堂(초당)에 일이 업다 [夏]
有信(유신) 江波(강파)  보내 니  람이로다
이 몸이 서  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江湖(강호)에   이 드니 고기마다  져잇다 [秋]
小艇(소정)에 그믈 시러 흘리  여 더뎌 두고
이몸이 消日(소일) 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江湖(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기픠 자히 남다 [冬]
삿갓 빗기  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 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전문 풀이 :
[春詞] 강호에 봄이 찾아드니 참을 수 없는 흥겨움이 솟구친다.
  탁주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에 싱싱한 물고기가 안주로 제격이구나.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한가롭게 지냄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夏詞] 강호에 여름이 닥치니 초당에 있는 늙은 몸은 할 일이 별로 없다.
  신의 있는 강 물결은 보내는 것이 시원한 강바람이다.
  이 몸이 이렇듯 서늘하게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다.
[秋詞] 강호에 가을이 찾아드니 물고기마다 살이 올랐다.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서, 물결 따라 흘러가게 배를 띄워 버려 두니,
다 늙은 이 몸이  이렇듯 고기잡이로 세월을 보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冬詞] 강호에 겨울이 닥치니 쌓인 눈의 깊이가 한 자가 넘는다.
  삿갓을 비스듬히 쓰고 도롱이를 둘러 입어 덧옷을 삼으니,
늙은 이 몸이 이렇듯 추위를 모르고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 구조 분석
[春詞] 초장 : 봄이 되니 흥이 절로 남
중장 : 물고기를 안주로 탁주를 마심
종장 : 임금의 은혜
[夏詞] 초장 : 여름이 되니 일이 없음
중장 : 강 물결이 바람을 보냄
종장 : 임금의 은혜
[秋詞] 초장 : 가을이 되니 고기가 살이 오름
중장 : 작은 배에 그물을 싣고 흐르게 내버려 둠
종장 : 임금의 은혜
[冬詞] 초장 : 겨울이 되니 눈 깊이가 한 자가 넘음
중장 :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음
종장 : 임금의 은혜

● 해설
작자는 좌의정에까지 오른 재상이면서도, 그 생활은 청렴 결백하여 만인이 우러러 보았던 인물
이다. 이 <강호사시가>는 이런 작자가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돌아가 한가한 세월을 보낼
때 지은 것이다.
[1] 봄철을 맞아 강가에 나아가 물고기를 안주로 삼아 탁주를 마시는 즐겁고 한가한 생활을 노래
함.
[2] 무더운 여름철에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초당에 앉아 더위를 잊고 있는 한가함을 노래함.
[3]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가을철에 강가에 배를 띄워 놓고 고기잡이를 하는 즐거움을 노래함.
[4] 북풍 한설이 몰아치는 겨울에도 삿갓과 도롱이로 추위를 막을 수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한가 하
고 끝맺음.
● 작품 감상
우리 나라 최초의 연시조라는 점에서 국문학사상의 의의를 가지는 이 노래는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던 때의 시조풍이던 충의  사
상(忠義思想)이 잘 나타나 있다.  春 夏 秋 冬 계절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존재하는 조화
로움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성상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하겠으나, '亦'이란  표현에서 더욱 돋
보인다고 하겠다. '亦'이란 '전에나 다름없이'라는 의미를 간직하는  것으로 시적 자아는 강호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기 전에도 임금의 은혜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安分知足(안분지족)하는 은사(隱士)의 유유 자적(悠悠自適)한 생활과, 비록 은둔하여
있으나 임금을 향한 충의(忠義)의 정신을 잊지 않고 있는 유학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의의
① 최초의 연시조(聯詩調)로써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작품
이다.
② 유가(儒家)의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가 된다.
● 시어 풀이 :
江湖(강호) : 벼슬을 물러난 한객(閑客)이 거처하는 시골. 자연.
濁 溪邊(탁료계변) : 막걸리를 마시며 노는 시냇가.
錦鱗魚(금린어)ㅣ : 싱싱한 물고기가. 閒暇(한가) 옴도 : 한가함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역시 임금의 은혜이시도다. 
草堂(초당) : 은사들이 즐겨 지내던 별채. 보내 니 : 보내는 것이.
서  옴도 : 서늘해짐도. 시원함도.
 져 잇다 : 살이 쪄 있다. 살이 올라 있다. 흘니 : 흐르게.
더져 두고 : 내바려 두고. 자히 : 한 자가.
남다 : 넘는다. 더 된다. 누역 : 도롱이.
● 각 연의 제재
[춘] 천렵(川獵)  [하] 초당(草堂)의 한거(閑居)  [추] 고기잡이  [동] 소박한 강촌 행활
● 각 연의 주제
[춘] 흥겹고 한가한 강호 생할 
[하] 강바람을 마시며 초당에서 한가로이 지내는 강호의 생활
[추]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며 소일(消日)하는 강호의 생활
[동] 성경을 완상하며 유유 자적하는 강호의 생활
● 핵심 정리
◁ 작자 : 맹사성(1360∼1438)
◁ 출전 : <병와가곡집>, <청구영언>
◁ 종류 : 평시조, 연시조(4수로 됨)
◁ 성격 : 강호가. 강호 한정가, 강호 연군가
◁ 제재 : 사시(四時)의 강호 생활
◁ 주제 : 강호 한정(江湖閒情), 안분지족하는 은사의 유유 자적한 생활


도산십이곡
이런  엇더며 뎌런  엇다료 [1]
草野愚生(초야 우생)이 이러타 엇더료
 려 泉石膏 (천석 고황)을 고텨 므슴료

煙霞(연하)로 지블 삼고 風月(풍월)로 버들사마 [2]
太平聖代(태평 성대)예 病(병)으로 늘거나뇌
이듕에 바라  이른 허믈이나 업고쟈

淳風(순풍)이 죽다니 眞實(진실)로 거즈마리 [3]
人生(인생)이 어디다 니 眞實(진실)로 올 마리
天下(천하)애 許多英才(허다 영재)를 소겨 말솜 가

幽蘭(유란)이 在谷(재곡)니 自然(자연)이 듣디 됴해 [4]
白雲(백운)이 在山(재산)니 自然(자연)이 보디됴해
이 듕에 彼美一人(피미일인)을 더옥 닛디 몯얘

山前(산전)에 有臺(유대)고 臺下(대하)애 有水(유수)ㅣ로다 [5]
  만  며기  오명가명 거든
엇디다 皎皎白鷗(교교 백구)  머리     고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고 秋夜(추야)애 月滿臺(월만대)라 [6]
四時佳興(사시가흥)ㅣ 사롬과 가지라
 며 漁躍鳶飛 雲影天光(어약연비 운영천광)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天雲臺(천운대) 도라드러 玩樂齊(완락제) 簫 (소쇄)듸 [7]
萬卷生涯(만권 생애)로 樂事(낙사)ㅣ 無窮(무궁)얘라
이 듕에 往來風流(왕래 풍류)롤 닐어 므슴 고


雷霆(뇌정)이 破山(파산)야도 聾者(농자)  몯 듣 니 [8]
白日(백일)이 中天(중천)야도  者(고자)  몯 보 니
우리는 耳目聰明男子(이목총명남자)로 聾 (농고) 디 마로리

古人(고인)도 날 몯 보고 나도 古人(고인) 몯 뵈 [9]
古人(고인)를 몯 뵈도 녀던 길 알  잇 
녀던 길 알  잇거든 아니 녀고 엇뎔고

當時(당시)예 녀던 길흘 몃 를  려 두고 [10]
어듸 가  니다가 이제  도라온고
이제나 도라오나니 년듸    마로리

靑山(청산)  엇뎨야 萬古(만고)애 프르르며 [11]
流水(유수)  엇뎨야 晝夜(주야)애 긋디 아니 고
우리도 그치디 마라 萬古常靑(만고 상청) 호리라

愚夫(우부)도 알며 거니 긔 아니 쉬운가 [12]
聖人(성인)도 몯다 시니 긔 아니 어려운가
쉽거나 어렵거낫 듕에 늙  주를 몰래라
● 전문 풀이
[1]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시골에 파묻혀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렇다고(공명이나 시비를 떠나 살아가는 생활) 어떠하
랴?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된 버릇을 고쳐서 무엇하랴?
[2] 연기나 놀의 멋진 자연 풍치로 집을 삼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을 벗으로 삼아,
어진 임금을 만난 좋은 시대에 (하는 일 없이 그저) 노병(老病)으로만 늙어가는구나.
[3] 예로부터 전해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사라져 없어졌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거짓말이로다.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어질다고 하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순박한 풍속이 다 없어졌다는 말로써) 이 세상의 많은 슬기로운
사람들을 어찌 속일 수가 있겠느냐.
[4] 그윽한 난초가 깊은 골짜기에 피었으니 대자연의 속삭임을 듣는 듯 매우 좋구나.
흰 구름이 산마루에 걸려 있으니 자연히 보기 좋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우리 임금님을 더욱 잊을 수가 없구나.
[5] 산 앞에는 대(낚시터)가 있고, 대 밑으로는 물이 흐르는구나.
갈매기들은 무리를 지어 오락가락 하는데,
어찌하여 저 귀하고 좋은 흰 망아지[賢者]는 멀리 뛰어갈 생각을 하는 것일까?(아마도 그 망아
지는 큰 뜻을 품었나보다.)
[6] 봄바람에 꽃은 산에 가득 피어 있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누대에 가득하니,
춘하추동 사계절이 각기 지닌 멋은 사람의 흥겨워함과도 같구나.
더구나 고기는 물에서 뛰놀고, 소리개는 하늘을 날으니 흘러가는 구름은 그림을 남기고, 밝은
햇빛은 온 누리를 비추는 저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어찌 한도가 있을 수 있겠는가.
[7] 천운대를 돌아서 들어가니, 완락재가 아담하고 깨끗이 서 있는데,
거기서 수많은 책을 벗삼아 한평생을 보내는 즐거움이란 무궁무진하구나.
이렇게 지내면서 때때로 바깥을 거니는 재미를 새삼 말해서 무엇하랴?
[8] 우레  소리가 산을 무너뜨리도록 심하더라도 귀머거리는 듣지를 못하며,
밝은 해가 떠서 대낮같이 되어도 소경은 보지를 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귀와 눈이 밝은 남자가 되어서, 귀머거리나 소경이 되지는 않아야 하리라.
[9] 옛 성현도 나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옛 성현을 뵙지 못했네.
옛 성현을 보지 못했지만 그 분들이 행했던 가르침이 앞에 있구나.
그 행하신 길이 앞에 있는데 아니 행하고 어찌할 것인가?
[10] 예전에 걷던 길을 몇 년이나 내버려두고,
어디로 가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예전에 걷던 그 길로) 돌아왔는가?
이제나마 돌아왔으니 이제는 딴 곳에 마음 두지 않으리라.
[11] 푸른 산은 어찌하여 영원히 푸르며
흐르는 물은 또 어찌하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가.
우리도 저 물같이 그치는 일 없이 저 산같이 언제나 푸르게 살리라.
[12]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道를 알려고 하는 것이니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닌가?
또 만세에 스승이 될 만한 성인도 다 하지는 못하는 법이니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쉽든 어렵든 간에 학문을 닦는 생활 속에 늙어 가는 줄 모르겠구나.
● 해설
<도산십이곡>이란 조선조 13대 명조 20년(1565년)에 퇴계 이황이 지은 12수로 된 연시조를 말
한다. 이것은 퇴계 자신이 벼슬을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와서 도산서원에서 후진을 양성할 때에 이
학(理學)을 닦는 심지(心志)를 노래한 것으로 주자(朱子)의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본받아 천석
고황(長石膏 )과 강학(講學), 사색으로 나날을 보내던 그의 생활상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십이
곡>은 전6곡과 후6곡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6곡은 '언지(言志)'라 하여 때를 만나서 사물을 접할
때에 일어나는 감흥을 노래하고, 후6곡은 '언학(言學)'이라 하여 자신의 학문 수덕(學問修德)의 실
제를 노래하고 있다. 흔히 유학자(儒學者)들의 시조가 그러하듯이 이 노래에서도 역시 중국 문학을
차용한 곳이 많고 생경한 한자어가 많아 문학적으로는 높이 평가할 수 없는 듯하다.

● 감상
[1] 본래 우리 시조 문학은 은일 문학(隱逸文學)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은일
문학이란 일종의 현실 도피적인 경향을 의미한다. 이렇게 현실을 도피하는 데에는 우리 문학에
크게 2 가지의 경우가 있다. 하나는, 당초부터 현실과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을 기피하려
는 것과 또 하나는 현실에서 패배한 나머지, 용납하지 못할 현실을 저주하면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을 때이다. 이 시조는 도산십이곡 가운데 전6곡의 서곡(序曲)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작
품은 위에서 얘기한 은일 문학으로서의 현실도피 적 경향이 짙은 것이라기보다는 자연에 정이
들어 이것을 버리고는 살 수 없다고 하는 작자 자신의 지극한 자연애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자연 귀의(自然歸依)에의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이 작픔에는 자연에 묻혀 사는 지사(志
士)의 참뜻이 잘 묘사되어 있다.  '천석 고황(泉石膏 )'은 핵심어가 되며 '초야 우생(草野遇生)'
은 자신을 겸손하게 일컬은 말이다.
[2] 연하(煙霞)와 풍월(風月), 집과 벗이 대구를 이루어 자연에 완전히 몰입 동화된 작자의 심경이
잘 묘사되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살며 태평성대 속에 병으로 늙어 가는 작자
의 모습, 이는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의 신선과 같은 모습으로 연상된다. 사실 이 병(病)은 이
작품이 작자의 만년(晩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노병(老病)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으나 초장에
서의 천석 고황(泉石膏 )의 상태나 앞 시조로 미루어 보아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
하는 병으로 해석을 하고 보면, 이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가 더더욱 운치가 있을 것이다. 아무
튼, 공자의 신독(愼獨 ; 혼자 있을 때에 더더욱 몸을 삼가함)이란 말도 있듯이 태평 성대일지라
도 자신의 수련에 게을리 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은 한 고고(孤高)하고도 청빈(淸貧)한 도학자
(道學者)요, 선비를 연상케 한다.
[3] 초장에서는 순자의 성악설을 반대하고 중장에서는 맹자의 성선설을 긍정하는 입장을 취하여,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고 있는 작자 자신의 성리학적 입장을 뚜렷이 밟히고 있다. 아울러 세
상의 많은 영재(英才)들에게 성선설이 옳음을 주장하면서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을 강조하고 있
는 작품이다.
[4]  초장에서는 그윽한 난초의 향기를 드러내어 후각적인 효과를, 그리고 중장에서는 흰눈을 등장
시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난초와 흰 구름은 인간의 영욕 성쇠
(榮辱盛衰)로 점철이 된 속세와는 무관한 것들로 탈속(脫俗)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는 비유어
들이다. 이것들은 우리 고시가에 흔히 쓰이는 범상(凡常)한 용어들로 시어 자체는 다른 작품에
비해 별로 특이할 것이 없으나 작자 자신이 속세를 잊고 완전히 자연에 몰입해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장에서는 벼슬을 떠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
에는 늘 연군의 정이 떠나지 않는 작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자연에 귀의하려는 대부분의
유학자들이 그랬듯이 자연에 몰입은 하면서도 완전 귀의(歸依)를 하지 못하고 있다.
종장의 '피미일인(彼美一人)'은 임금을 가리키는 말이요, 초장의 '듣디 됴해'의 '듣디'는 한시
에서 향기를 맡는다는 뜻으로 '문향(聞香)'이란 어휘를 사용한 표현의 미라고 할 수 있겠다.
[5] 산 앞에는 낚시터가 있고 대 아래에는 맑은 물이 있으며 여기에 또한 갈매기들까지 내 벗이
되어 오락가락하는 이 좋은 곳을 놓아 두고 왜 먼지 낀 속세만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가 하고
세속인들을 나무라고 있다. '교교 백구(皎皎白駒)'는 본래 '현자(賢者)가 타는 말'이지만 여기서
는 현자의 뜻으로 새기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결국 종장에서는 글이나 좀 읽고 수양을 쌓았다는
자들이 입신 양명에만 눈이 어두워 아름다운 자연을 등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6] 초장에서 꽃피는 봄, 달뜨는 저녁의 경치를, 그리고 종장에서는 물 속의 고기떼와 하늘의 소리
개, 구름이 흐르고 해가 비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그려서 한없이 아름답고 끝없이 흥겨운 대자
연의 조화를 무척 로맨틱하게 얘기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자연의 웅대함에 완전히 도취된 작자
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7] 작자는 조선 시대의 거유(巨儒)로서 일생을 학문의 연구에만 전념한 석학(碩學)이다. 그러기에
이런 작자가 책 속에 파묻혀 살았으며 또한 거기서 지극한 낙을 느꼈으리라는 것은 자명한 이
치다. 이런 무아경(無我境)의 학문 수련 속에서 때때로 모처럼 한가한 때에 틈을 내어 산책을
하며 자연과의 일체감을 느껴보는 그 순간의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 이것은 한중 진미(閑中珍
味)라고나 할까. 이 작품은 독서 면학(勉學)의 즐거움과 그 여가에 산책하는 여유 있는 생활을
그린 시조다.
[8] 여기서 '우뢰'나 '해'는 '진리', 곧 도(道)를 지칭하고 '귀머거리'와 '소경'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한 자, 곧 '속세의 일에만 연연하여 인간의 참된 도리를 망각한 자'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경계하며 반드시 '진리의 길'을 걸어야하는
인간의 참된 도리를 밝히고 있다. 일찍이 공자는 '朝楣 夕死可矣 ;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
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였던 바, 이 역시 '진리 터득의 중요함'을 단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어구(語句)라 할 수 있다.
[9] 여기서 '길'이라고 하는 것은 '우마(牛馬)가 다닐 수 있는 거리'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옛 성
현들이 걸었던 학문 수양의 길' 이라고 해석하고 보면 뜻이 더더욱 확실해진다.  이 시조의 수
사법 (修辭法)상의 또 하나의 묘미는 앞 구의 끝말을 뒷 구의 첫말로 가져와 그 뜻을 이어 나
가는 연쇄법(連鎖法)을 쓴 데에 있다. 옛 성현들의 길을 본받고자 하는 작자 자신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고, 또한 옛 성현과 군자들이 행하던 인륜 대도(人倫大道)를 오늘날의 우리들도 실친
궁행(實踐窮行)하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10] 퇴계가 23세 때 등과하여 치사 귀향(致仕歸鄕)한 것은 69세 때였다. 동방(東方) 성리학의 대가
였던 그도 벼슬길은 역시 외도(外道)임에는 한가지였다. '녀던 길'은 학문 수행의 길이요, '어듸
가  니다가'는 그 길을 소홀히 하고 벼슬길에 올랐던 것을 이름이며, '년 듸    마로리'는
학문 수행에 전념할  향심(向心)과 결의를 보인 것이다.
[11] '그치디 마라 만고상청(萬古常靑)호리라'는 구절은 언뜻 '산석유수(山石流水)'의 대자연 속에
귀의하고 싶은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실은 끊임없는 학문 수양으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에
살고 싶은 마음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靑山'과 '流水'의 영원성은 순간자인 인간에게는 영원
한 동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12] 학문이란, 인생의 의미가 끝없이 깊듯이 누구나 맛볼 수 있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아직도 이 길의 끝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종착점이 없다는 데에 그 심오한 매력이 있는 것
이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학문의 기본 성격인 보편성과 일반성을 실제 경험에 비추어 말하고
있으면서도, 노래가 생명으로 하고 있는 정감과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수사학적(修辭學的)
배려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이 시조는 그가 주자의 높고 깊은 학행(學行)을 어떠한 몸가짐으
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면학의 태도를 그 주제로 다루고 있어서 그가 쓰는 구절마다에서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어떤 학덕(學德)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벌판 다한 곳이 청산인데, 행인은 다시 청산밖에 있네(平蕪盡處是靑山 行人更在靑山外)'라는
구양수(歐陽修)의 싯구를 연상시키는 노래이다. 여기에서 작자의 쉼 없는 학문 정진의 정신 자
세를 엿볼 수 있다. 
● 각 연별 소주제
[1] 泉石膏  [2} 자연과의 동화  [3] 순박하고 후덕한 풍습 
[4] 戀君  [5] 자연을 등지고 있는 현실 개탄  [6] 대자연의 웅대함 찬미 
[7] 독서의 즐거움  [8] 진리 터득의 중요성  [9] 인륜 대도를 실천 궁행해야 함 
[10] 학문 수행에 전념할 결의  [11]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의지  [12] 영원한 학문 수행의 길
● 핵심 정리
◁ 작자 : 이황(李滉 ; 1501∼1570) ◁ 출전 : <진본 청구영언>
◁ 종류 : 연시조(전12수) ◁ 성격 : 교훈가
◁ 제재 : 전 6곡 : 언지(言志),  후 6곡 : 언학(言學)
◁ 주제 : 전 6곡 : 자연에 동화된 생활 , 후 6곡 : 학문 수양 및 학문애


訓民歌(훈민가)
아바님 날 나흐시고 어마님 날 기 시니 [1]
두분곳 아니시면 이몸이 사라실가
하     업  은덕을 어 다혀 갑 오리

형아 아 야 네    져보와 [3]
뉘손  타나관  양 조차 가타 다
졋먹고 길러나이셔 닷  을 먹디마라

어버이 사라신제 셤길일란 다여라 [4]
디나간 후면 애 다 엇디리
평생애 곳텨 못 일이 잇 인가 노라

   사 들아 올일 쟈 라 [8]
사 이 되여 나셔 올치옷 못면
 쇼  갓곳갈  워 밥먹이나 다 랴

 목 쥐시거든 두손으로 바티리라 [9]
나갈  겨시거든 막대들고 조 리라
鄕飮酒(향음주) 다 파 후에 뫼셔가려 노라

어와 뎌족하야 밥업시 엇디 고 [11]
어와 뎌아자바 옷업시 엇디 고
머흔일 다 닐러 라 돌보고져 노라

오 도 다 새거다 호믜 메오 가쟈 랴 [13]
내논 다  여든 네논졈  여주마
올길    다가 누에먹켜 보자 라


이고진 뎌 늘그니 짐프러 나를 주오 [16]
나  졈엇 니 돌히라 무거울가
늘거도 셜웨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가
● 전문 풀이
[1] 아버님이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이 나를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었다면 이 몸이 살  수 있었을까?
이 하늘 같은 은혜를 어디에다 갚을까?
[3]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그 모양도 같은가?(한 부모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한 젖을 먹고 자라나서 어찌 다른 마음을 먹을 수가 있겠느냐?(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라.)
[4]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동안에 섬기는 일을 다하여라.
돌아가신 뒷면 아무리 애닲아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거이다.
평생에 다시 할 수 없는 일은 부모 섬기는 일인가 하노라.
[8]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을 하자꾸나.
사람으로 태어나서 옳지 못하면
말과 소에게 갓이나 고깔을 씌워 놓고 밥이나 먹이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1] 아, 저 조카여, 밥 없이 어찌할 것인고?
아, 저 아저씨여, 옷 없이 어찌할 것인고?
궂은 일이 있으면 다 말해 주시오. 돌보아드리고자 합니다.
[13] 오늘도 날이 다 밝았다. 호미 메고 들로 가자꾸나.
내 논을 다 매거든 네 논도 좀 매어 주마.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뽕을 따다가 누에도 먹여 보자꾸나.
[16] 이고 진 저 노인네 짐 풀어서 나를 주시오
나는 젊었으니 돌이라고 무겁겠소.
늙은 것도 서러운데 짐조차 지셔야 되겠소이까.
● 감상
훈민가(訓民歌)[일명(一名) 경민가(警民歌)]란 선조 13년 (1580년), 작자 나이 45세 때 강원도관
찰사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에, 강원도 백성들을 교유(敎諭), 계몽하기 위하여 지은 평시조로 이루
어진 16수의 연시조(聯時調)를 말한다. 곧 송강은 관찰사로 있으면서 단순한 명령이나 포고(布告)
따위로 백성들을 다스리기보다는 백성 스스로가 깨달아서 행동하게 하려고 노래를 지어서 널리 불
리워지게 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목적 문학으로서 창의성이나 문학적인 운치는 적지만 평이한
말 속에 은연중 인정의 기미를 건드리어 감동을 일으키고 있음은 작자의 비범한 문장력 탓일 게
다. 송강의 다른 노래도 그렇지만 특히 이 훈민가 16수는 윤리나 도덕에 관한 것으로써 굳어지기
쉬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우리말로 쉽게 풀이하여 백성들의 이해와 접근이 용이하도록 만
들어 놓았다. 뿐만 아니라, 끝맺는 말을 청유형이나 명령형으로 하여 백성들을 설득하는 힘이 강함
도 주목할 만한 표현이다.
[1] 이 시조는 훈민가의 첫 작품으로, '부의모자(父義母慈)'라는 제목으로 된 것이다, 부모는 어린
애에 대해서 신(神)과 같은 존재요, 태양과 같은 위치에 있다. 인간의 2대 비극은 부모 없는 고
아가 되는 것과 나라 잃은 망국인(亡國人)이 되는 것이라 한다. 어린애는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사실 부모 얼는 어린애는 버림받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다. 나를 낳아서 정성으로 키우
고 한없이 사랑해 주신 부모의 은혜를 알고 보답하려는 마음이 효(孝)의 윤리로 표현되었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知恩), 느끼고(感恩), 감사하고(謝恩), 보답하려는(報恩) 마음, 그것이 곧 효
심(孝心)이요, 효성(孝誠)인 것이다. 결국 부모에 효도하려는 마음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휴머니
티'요, 사람의 가장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이라 할 수 있다.
[3] '형우제공(兄友弟恭)'이라는 제목이 붙은 시조로, 형제의 우애를 강조한 것이다. 가족은 3대 관
계로 구성된다. 첫째는 부부(夫婦)관계요, 둘째는 친자(親子)관계요, 셋째는 형제자매 관계다.
사실 부부는 이혼하면 완전히 남이 된다. 가깝고도 먼 사람이다. 그러나 나머지 두 관계는 피
로 얽힌 혈족 관계다.
형제애(兄弟愛)는 인간의 사랑과 정(情)의 가장 깊고 아름다운 것으로 인간 우애의 가장 이
상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4] '자효(子孝)'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살아 계실 동안에 부모 공경을 열심히 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효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가장 큰 효는 부모를 존중하고 공경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부
모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제일 낮은 효는 부모를 의식주로써 잘 봉양(奉養)하는 일이다.
이것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의 말로, 효의 대중소(大中小)를 갈파한 명언이라 할 수 있겠
다. 존친(尊親)이 효의 으뜸가는 것이라 한 것은 곧 부모의 생명과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 효의
근본이요 핵심이라는 얘기다.
[8]  '향려유례(鄕閭有禮)'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선행을 주제로 한 것으로, 사람이 마땅히 지켜
야 할 도리 가운데에서도 떳떳한 행동을 원한 교훈가이다.
[11] '빈궁우환 친척상구(貧窮憂患 親戚相救)'란 제목이 붙은 것으로 어려운 친척을 서로 도와야 함
을 말한 것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친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서, 마음과 마음 사이를 꿰뚫어 흐르는 마음이 뜨겁다는 것이 인간
정철의 바탕이었던 듯하다. 무쇠같이 굳고 바위같이 단단한 일편단심의 왕권주의자였던 그의
어느 구석에 이같이 따뜻하고도 풍부한 인정미가 넘쳐 흘렀을까 싶을 정도로 이 시조는 인정
을 샘물처럼 내뿜고 있다. 정에 약하고, 가난에 마음 아픔을 느낄 줄 아는 송강, 여기서 그의
문학의 생명력과 진실함을 엿볼 수 있을 듯싶다.
[13] '무타농상(無惰農桑)'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근면성과 상부 상조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농번기의 농부의 일손은 잠시도 놓을 날이 없다.  한가로이 늦잠을 즐길 여유조차 없는 것이
다. 그래서 흔히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고들 한다. 들에 나가 김을 매랴, 뽕을 따다 누에 치
랴, 농부들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두레'를 만들고 '향약'을 조직하여 상
부상조의 정신을 길러 왔다.
[16]. '반백자불부대(斑白者不負戴)'라는 제목이 붙은 것으로, 노인을 공경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경로사상(敬老思想)은 동양인의 가장 아름다운 사상 가운데 하나다. 현실에서 소외당
하기 쉬운 늙은이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인성(人性)의 가장 깊은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조는 작자 송강이 좋은 것을 좋아하고 나쁜 것을 싫어하는 원친적인 동심(童心)
을 기초로 한 직선형(直線型)의 인간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높은 벼슬자리에 앓아서
나라의 경룬을 펴던 그가, 이만큼 평민성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은 계급 의식이 절대적이었던
당시로선 꽤 드문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저에 인간애 정신이 흐르고 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 핵심 정리
◁ 작자 : 정 철 ◁ 출전 : <송강가사>
◁ 종류 : 연시조(16수) ◁ 성격 : 교훈적, 유교적
◁ 제재 : 유고의 윤리 도덕 ◁ 주제 : 유교의 윤리

< 훈민가의 나머지 수>
님금과 백성과  이  과  히로  [2]
내의 셜운일을 다아로려 시거든
우린   진 미나리  홈자엇디 머그리

몸 둘헤  화 부부  삼기실샤 [5]
이신제    늙고 주그면   간다
어 셔 망녕의  시 눈 흘긔려  고

간나  가 길   나  에도 시 [6]
 나희 녜난길흘 계집이 츼도 시
제남진 제계집 아니어든 일홈 뭇디 마오려

네아  孝經(효경)닑더니 어도록  홧 니 [7]
내아  小學(소학)은 모 면   로다
어 제 이두글  화 어딜거든 보려뇨

 을오 삼긴 듕의 벅 티 유신랴 [10]
내의 왼일을 다 닐오려 노매라
이몸이 벗님곳 아니면 사 되미 쉬울가

네 집 상   어도록  호 다 [12]
네   셔방은 언제나 마치  다
내게도 업다커니와 돌보고져 노라

비록 못니버도    오  앗디마라 [14]
비록 못먹어도    밥을 비디마라
적곳   시  휘면 고텨  기 어려우리

雙六將碁 지마라 訟事글월 지마라 [15]
집 야 무 며 남의 怨  될줄엇지
나라히 法을 세오사 죄잇 줄 모로 다


五友歌(오우가)
내 버디 몃치나 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  밧긔 또 더야 머엇리

구룸빗치 조타 나 검기   로 다 <水>
 람 소   다 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  믈뿐인가  노라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石>
플은 어이 야 프르    누르 니
아마도 변티 아닐  바회뿐인가 노라

더우면 곳 픠고 치우면 닙 디거  <松>
솔아 너  얻디 눈서리  모  다
九泉(구천)의 불희 고  줄을 글로 야 아노라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竹>
곳기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 다
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노라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月>
밤듕의 光明(공명)이 너만니 또 잇 냐
보고도 말 아니 니 내 벋인가 노라
● 전문 풀이
[1] 나의 벗이 몇이나 있느냐 헤아려 보니 물과 돌과 소나무, 대나무다.
게다가 동쪽 산에 달이 밝게 떠오르니 그것은 더욱 반가운 일이로구나.
그만 두자, 이 다섯 가지면 그만이지 이 밖에 다른 것이 더 있은들 무엇하겠는가?
[2] 구름의 빛깔이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검기를 자주 한다.
바람 소리가 맑게 들려 좋기는 하나, 그칠 때가 많도다.
깨끗하고도 끊어질 적이 없는 것은 물뿐인가 하노라.
[3] 꽃은 무슨 까닭에 피자마자 곧 져 버리고,
풀은 또 어찌하여 푸르러지자 곧 누른 빛을 띠는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바위뿐인가 하노라.
[4] 따뜻해지면 꽃이 피고, 날씨가 추우면 나무의 잎은 떨어지는데,
소나무여, 너는 어찌하여 눈이 오나 서리가 내리나 변함이 없는가?
그것으로 미루어 깊은 땅 속까지 뿌리가 곧게 뻗쳐 있음을 알겠노라.
[5]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닌 것이, 곧게 자라기는 누가 그리 시켰으며,
또 속은 어이하여 비어 있는가?
저리하고도 네 계절에 늘 푸르니, 나는 그것을 좋아하노라.
[6] 작은 것이 높이 떠서 온 세상을 다 바추니
한밤중에 광명이 너보다 더한 것이 또 있겠느냐?(없다)
보고도 말을 하지 않으니 나의 벗인가 하노라
● 해설
작자가 56세 때 해남 금쇄동(金鎖洞)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속에 들어
있는 6수의 시조로,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서시(序詩)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어 자신의 자연애(自然愛)와 관조를 표백하였다. 이는 고산 문학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으로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어 시조를 절묘한 경지로 이끈 백미
편(白眉篇)이다.
● 감상
[1] '오우가(五友歌)'의 서시로서, 초, 중장은 문답식으로 다섯 벗을 나열하였다. 자연과 벗이 된 청
초하고 순결한 자연관을 고유어의 조탁으로 잘 표현하였다 '또 더야 머엇리'에서 작자의
동양적 체관(諦觀)을 발견할 수 있다.
[2] '오우가(五友歌)' 중 물의 영원성을 기린 노래이다. 구름과 바람은 가변적(可變的)이요 순간적
(瞬間的)이라 한다면, 물은 영구적(永久的)이다. 물은 구름이나 바람과 달리 깨끗하고 항시 그
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산이 좋아하는 자연이 되고 있다.
[3] '오우가(五友歌)' 중 바위의 변하지 않는 생명성을 찬양한 노래이다. 꽃이나 풀이 가변적이고
세속적이라 한다면, 바위는 영구적이요 철학적이다. 꽃이나 풀이 부귀 영화의 상징이라면, 바위
는 초연(超然)하고 달관한 군자의 모습이다.
[4] '오우가(五友歌)' 중 소나무의 변함없는 푸름에서 꿋꿋한 절개를 느껴 찬양한 노래이다. 소나무
는 역경에서도 불변하는 충신 열사(烈士)의 상징으로 여긴다. 여기에서도 절의의 상으로서의
소나무를 칭송하면서, 자신의 강직한 고절(高節)을 나타내었다.
[5] '오우가(五友歌)' 중 대나무의 푸름을 찬양하여, 아울러 그가 상징하는 절개를 나타낸 것이다.
대나무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옛 선비들의 굳은 절개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 사랑을 받아
온 것이다.

● 핵심 정리
◁ 작자 : 윤선도(尹善道:1587∼1671) ◁ 출전 : 고산유고 중 산중신곡
◁ 종류 : 연시조 ◁ 성격 : 찬미적
◁ 제재 : 水·石·松·竹·月
◁ 주제 : 오우(五友)인 水·石·松·竹·月을 기림


漁父四時詞(어부사시사)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지은 연시조(聯時調). 작자가 65세 되던 해인 1651년(효
종 2) 가을 벼슬을 버리고 보길도(甫吉島)의 부용동(芙蓉洞)에 들어가 한적한 나날을 보내면서 지
은 노래이다. 봄 노래(春詞)·여름 노래(夏詞)·가을 노래(秋詞)·겨울 노래(冬詞)로 나뉘어 각각
10수씩 모두 40수로 되었다. 고려 때부터 전하던 《어부가(漁父歌)》를 이현보(李賢輔)가 9장으로
고쳐 지었고, 다시 윤선도가 시조의 형식에 여음만 넣어 완성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사(漁父
詞)》에서 시상(詩想)을 얻었다 하나, 그 한시구(漢詩句)의 어의(語意)나 어음(語音)에 상응하는 우
리말로 전혀 새로운 자신의 언어를 능란하게 구사하여 속계를 벗어나 물외(物外)에 서서 자연에
합치한 어부의 생활을 아름답게 나타내었다. 고산의 작품 가운데서도 《오우가(五友歌)》와 아울러
으뜸이라 할 이 작품은 《고산유고》에 실려 전한다.
● 핵심 정리
◁ 작자 : 윤선도 ◁ 출전 : <고산유고>
◁ 종류 : 단가 ◁ 성격 : 한정가(閑情歌)
◁ 제재 : 어부(漁父)의 생활
◁ 주제 : 강호의 한정(閑情). 철따라 펼쳐지는 자연의 경치와 어부(漁父) 생활의 흥취


[春詞]
압 에 안  것고 딋 뫼에  비 다 [1]
밤 물은 거의 지고 낫 물이 미러온다
江村(강촌)에 온갓 곳이 먼 빗치 더옥 조홰라

東風(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3]
東湖(동호)를 도라보며 西湖(서호)로 가쟈스라
두어라 압 뫼히 지나가고 뒷 뫼히 나아온다

우  거시 벅구기가 프른 거시 버들숩가 [4]
漁村(어촌) 두 어집이  속의 날낙들낙
말가 기픈 소희 온갇 고기 뛰노 다

芳草(방초)를  라보며 蘭芷도  더보쟈 [7]
一葉扁舟(일엽 편주)에 시른거시 무스것고
두어라 갈제  내 이오 올제     이로다

● 전문 풀이
[1] 앞 개에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는 해가 비친다.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썰물은 거의 나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강촌의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3 ]봄바람이 문득 부니, 물결이 곱게 일어난다.
<돛을 달아라, 돛을 달아라. 어야차!>
돛을 달아라 돛을 달아라. 동호(東湖)를 바라보며 서호(西湖)로 가자꾸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타난다.
[4] 우는 것이 뻐꾸기인가? 푸른 것이 버들숲인가?
노를저어라, 노를저어라.
(배가 쏜살같이 나아가니)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한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맑고도 깊은 소에서 온갖 고기가 뛰논다.
[7] 꽃다운 풀을 몸소 밟아 보며, 난초와 지초도 뜯어 보자,
<배를 세워라, 배를 세워라. >
한 조각 거룻배에다 실어 놓은 것이 무엇인고.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갈 때에는 안개뿐이고(분이었는데), 올 때에는 밝은 달빛이도다.
● 해설
[1] 봄철을 노래한 춘사의 첫째 수로, 봄날아침 배 띄울 때의 강촌의 정경을 묘사했다.
[3] 춘사의 셋째 수로, 봄바람에 돛을 달고 출범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4] 어부사시사 가운데 봄철을 노래한 춘사의 네째 수로, 출범(出帆) 후 멀리 보이는 강촌(江村)의
아름다운 춘경 (春景)과 깊은 소에 고기가 뛰노는 모양을 그렸다.
[7] 춘사(春詞)의 일곱 번째 수로, 자연 속에 묻혀 물외 한정(物外閑情)의 유유 자적(悠悠自適)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 감상
[1] 썰물과 더불어 한밤이 지나고 밀물과 함께 새 날이 밝아 오는 봄날에, 만경 창파에 배를 띄워
어부의 하루의 생활이 시작됨을 서곡으로, 이 어부사시사가 시작이 된다. 때는 바야흐로 봄, 온
갖 꽃이 만발한 경치도 좋거니와 안개 걷힌 강마을의 원경은 더욱 좋다. 어부의 낙이 고기잡이
에만 있겠느냐. 원수 화경(遠峀花景 : 멀리 보이는 산과 꽃의 경치)이 어부의 생활에 더욱 흥취
를 자아내게 한다. 초장과 중장은 각각 대구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압개'와 '딋뫼' '밤물'과 '낟
물'은 서로 대조적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3] 순풍에 돛을 달고 완도 보길도 근처의 바다를 미끄러지듯이 경쾌하게 배가 나아가는 장면은
한 폭 의 산수화다. 강호(江湖)의 한정(閑情)을 즐기는 풍류객으로서 유유 자적(悠悠自適)하는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순풍에 돛을 달고 바람 부는 대로 배를 내 맡겨 둔다. 바람이 자면 노
를 저어 나타나는 주위의 경치를 보면서 자연을 즐기는 것이다. 동풍과 여음(餘音)이 잘 호응
되고, 중·종장은 대구법을 썼다. 종장은 서서히 경쾌하게 그려 생동감이 넘치게 하였다.
[4] 어부사시사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노래는, 순수 국어 사용으로 언어의 조탁
이 참신하며, 표현면에서도 다양한 기교를 나타내어 수작(秀作)으로 일컬어진다. 버들숲은 흐드
러지게 춘색을 자랑하는데, 뻐꾸기도 춘흥(春興)에 겨워 노래한다는 초장은 대구로 깊어 가는
봄 정경을 나타내고 있다. 더욱이, 이 부분은 '우  거시 벅구기가'의 청각적이면서 동적(動的)
표현에, '프른 거시 버들숩가'의 시각적이면서 정적(靜的) 표현이 조화를 이루어 시적 감흥을
더해 주고 있다. 중장에서 강호연파(江湖煙波)의 강촌의 원경과 종장에서의 맑은 강의 뛰노는
고기도 표현의 미를 이루고 있다. 강촌의 춘경을 '벅구기, 버들숩,  '와 같은 평범한 소재로
한 폭의 동양화처럼 그려 놓았다. 이와 같이 윤선도는 평이한 소재들을 가지고 고유어의 묘미
를 살려 시심(詩心)을 승화시켰던 것이다.
[7] 물외 한정(物外閑情)을 읊은 노래로 탈속의 경지를 나타내었다. 본디 '漁父'란 '漁夫(고기잡이
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와는 달리, 세월을 낚고, 자연을 낚으며 인생을 낚는 풍류객이므로 번거
로운 세속에 쫓김이 없이 유유 자적(悠悠自適)하게 자연을 벗할 뿐이다. 춘정(春情)에 못 이겨
배를 세우고 꽃다운 풀도 밟아 보고, 난초와 지초를 뜯어 향기도 맡아 보며, 한 조각 거룻배에
는 출범할 때 가득 실었던 안개가 걷히고, 돌아오는 길에는 청강(淸江)에 쏟아지듯 비치는 달
빛을 한아름 싣고서 돌아온다.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인 주객 일체, 물심 일여(物心一如)의
경지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는 어부사시사의 전형적인 표현 수법인 대구법(초장과 종장)과, 환
경 변화와 시간의 추이(推移)에 따른 시상 전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제재 및 주제
◁ 제재 : [1] 봄날 강촌(江村) [3] 동풍, 물결  [4] 뻐꾸기, 버들숲, 안개  [7] 달
◁ 주제 : [1] 봄날 아침 출범하는 광경 [3] 출범하여 달리는 흥취
        [4] 출항 후 멀리 보이는 강촌의 아름다운 풍경 
        [7] 고기잡이를 끝내고 귀향하는 흥취

[夏詞]
구즌비 머저 가고 시낻물이  아온다 [1]
낫 를 두러메니 기픈 興(흥) 禁(금) 못  다
두어라 煙江疊 (연강쳡장)은 뉘라셔 그려 낸고

蓮(연)닙  밥   두고 반찬으란 장만 마라        [2]
靑蒻笠(청약립)은 써 잇노라 絲蓑衣(녹사의)를 가져오냐
엇더타 無心(무심) 白 (백구)  내 좃 가 제 좃 가 

믈결이 흐리거든 발을 싯다 엇더리 [4]
吳江(오강)의 가쟈 니 千年怒濤(천년노도) 슬플노다
두어라 楚江(초강)의 가자니 魚腹忠魂(어복 충혼) 낟글셰라
● 전문 풀이
[1] 궂은비가 멈추어 가고 흐르는 시냇물도 맑아 온다.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니 (벌써부터 솟구치는)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흥겨움을 참을 길이 없겠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안개가 자욱한 강과 겹겹이 둘러선 묏부리는 누가 그림으로 그려냈는가?
[2] 연 잎에 밥을 싸 두고 반찬은 장만하지 마라.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대삿갓을 쓰고 있다. 도롱이를 가져 왔느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무심한 갈매기는 내가 저를 따르는가? 제가 나를 따르는가?
[4] 물결이 흐리다고 발을 씻은들 어떠하리.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오강을 찾아가려 하니 천 년에 걸쳐 굽이치는 오자서의 원한에 찬 노도가 슬프겠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초강으로 가자 하니 혹시나 고기 뱃속에 충혼으로 사라진 굴원(屈原)의 넋을 낚을까 두렵다.
● 해설
[1] 어부사시사 중 여름을 노래한 하사(夏詞) 의 첫째수로, 여름비 갠 뒤 고기 낚으러 떠날 때의
넘치는 흥과 강촌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했다.
[4] 어부사시사 하사(夏詞)의 넷째 수로, 푸른 강물에 배를 띄우고 오자서(伍子胥)의 원혼( 魂)과
굴원 (屈原)의 충혼(忠魂)을 생각하면서 연군(戀君)에 젖는 정경이다.
● 감상
[1] 지리하던 여름 장마가 개고 시냇물은 점차 맑아 오는데, 어찌 풍류객인 작자로 하여금 방안에
서 헛되이 지낼 수 있으랴. 낚싯대를 둘러메니 마음속에서는 벌써 흥(興)부터 일어난다. 안개
걷힌 강과 첩첩이 둘러 있는 산봉우리는 한 폭의 그림과 같아 비온 뒤에 더욱 아름답다. 초장
은 대구법으로 이루어졌고, 종장의 '연강첩장(煙江疊 )'은 왕진경의 '연강첩장도(煙江疊 圖)'
를 연상한 말이다.
[4] 창파(滄波)에 배를 띄운 후에 느끼는 심회를 나타내었다. 오자서의 시체를 강물에 던졌을 때
일었다는 노도(怒濤)에서 지은이의 우국 일념(憂國一念)을 읽을 수 있으며,  어복충혼(魚腹忠
魂)이 되고자 돌을 안고 강물에 뛰어 든 굴원(屈原)에 대한 추모(追慕)에서는 지은이의 충정(忠
情)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유유 자적의 풍류 생활에 젖어 있으면서도 우국
충정(憂國 忠情)을 잊지 않은 것은 당시의 유학자(儒學者)들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초장과
중장은 대구법에 암인법(暗引法)을 곁들였으며, 종장은 내용상 역설적 표현이다.

● 핵심 정리
◁ 제재 : [1] 시냇물, 낚시대, 안개 긴 산봉우리 [4] 천년노도, 어복충혼
◁ 주제 : [1] 비 갠 뒤 출범(出帆)의 흥취      [4] 배 위에서 느끼는 우국 충정

[秋詞]
物外(물외)에 조흔 일이 漁父生涯(어부생애) 아니런가 [1]
漁翁을 웃지마라 그림마다 그럿더라
두어라 四時佳興이 가지나 秋江이 읏듬이라

水國(수국)이  을이드니 고기마다  져있다 [2]
萬頃澄波(만경딩파)의 슬 지 容與쟈
술ㅊ코 人間(인간)을 도라보니 머도록 더욱죠타

그려기 떳  밧긔 못 보던 뫼 뵈 고야 [4]
낙시질도 려니와 취한 거시 이 흥이라
두어라 석양이   니 天山(천산)이 錦繡(금수)ㅣ로다

옷 우희 셔리 오되 치운 줄 몰올노다 [9]
釣舡(조강) 좃다 나 浮世(부세)와 엇더니
두어라 내일도 이러고 모 도 이러리라 
● 전문 풀이
[1] 속세를 벗어난 데서 깨끗한 일로 소일함이 고기잡이의 생환이 아니더냐.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
늙은 고기잡이라고 웃지를 말라, 그림마다 어옹이 그려져 있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네 계절의 흥이 한가지로 비슷하나 그 중에서도 가을철의 강물이 자아내는 흥이 으뜸이라.
[2] 바다에 둘러싸인 곳에 가을이 찾아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닻을 들어라, 닻을 들어라.>
아득히 넓고 맑은 바닷물결에 맘껏 흡족하게 노닐자꾸나.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아, 속세를 뒤돌아보니 멀리 떨어질수록 더욱 좋다.
[4] 기러기가 날아가는 저 멀리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산이 새삼스레 드러나 보이는구나.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낚시질도 즐기려니와 자연에 마음 쏠리는 바는 이 흥이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석양이 눈부시게 빛나니 단풍으로 수놓은 모든 산이 수놓은 비단같이 아름답도다.
[9] 옷 위에 서리 내리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을 내려라, 닻을 내려라. >
낚싯배가 좁다 하나 딴 세상과 견주어 어떠하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내일도 이렇게 하고 모레도 이렇게 지내자.
● 해설
[1] '어부사시사' 중 가을철을 노래한 '추사(秋詞)'의 첫째 수로, 추강(秋江)에서의 물외 한정(物外
閑情)인 어부 생활(漁父生活)의 흥취를 노래했다.
[4] '추사(秋詞)' 가운데 넷째 수로,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배 위에서 바라보는 먼 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렸다.
[9] '추사(秋詞)'의 아흡 번째 수로, 가을 서리를 맞으며 배 위에서 밤을 새는 감회를 노래했다.
● 감상
[1] 번거로운 속세를 벗어나 몸도 마음도 청빈(淸貧)한 생활이 어부(漁父)의 생애가 아니겠느냐. 그
런데도, 세속 인심은 그 뜻을 몰라 비웃기도 하고 손가락질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예로부
터 전해 오는 동양화의 그림마다 낚싯대를 든 늙은이의 그림이 많지 않던가. 세속에 물든 인심
이야 명리(名利)에 쫓겨 자신을 돌아볼 겨를조차 잊었겠지만, 이 대자연이야말로 영원함이며
그것이 곧 진리로 통하는 길이 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우리 선인들이 즐겨
찾으려 했던 어옹(漁翁)의 인생관을 왜 모른다는 것인가. 초, 중장은 마치 정극인의 '상춘곡(賞
春曲)'의 첫머리인 '紅塵에 뭇친 분네 이 내 生涯 엇더고∼' 하는 서사(序詞) 부분을 연상케
한다. 대자연의 주인으로서, 추강(秋江)에서 맛보는 홍취를 여 실히 나타내고 있다 .
[4] 한 폭의 운산첩장도(雲山疊 圖)이다. 배에서 멀리 바라보는 먼 산의 금수 가경(錦繡佳景)을 능
숙하게 묘사했다. 가을 하늘은 특별히 맑아 원경을 조망하기에 더욱 좋다. 하늘에 기러기가 떠
있다는 표현은 계절이 가을임을 말해 주며, '못 보던 뫼 뵈 고야'는 높고 맑게 갠 가을 하늘
때문이다. 중장의 '이 興'은 못 보던 산 구경과 금수 강산을 구경하는 홍을 말하며, 종장은 석
양빛을 받아 모든 산의 단풍이 아름답게 빛남을 표현한 것이다.
'기러기, 낚시질, 석양(夕陽)'을 연결하는 이미지는 대체로 외로움, 고적감 등을 나타내고 있
으나, 윤선도는 이를 연결하여 가을의 홍취를 더욱 실감 있게 표현함으로써 시상의 기발함을
보여 주고 있다.
[9] 강바람을 실은 서리가 왜 춥지 않겠는가마는 자연과 한 덩어리가 된 물아 일체(物我一體)의 경
지에서 어찌 추위가 느껴지랴. 좁은 낚싯배이지만 마음만은 이 대자연을 품에 안고 있어, 번거
로운 욕심에 마음 빼앗기는 세상과 어찌 비교하랴. 윤선도의 인생을 관조한 듯한 풍모를 발견
할 수 있는 노래로, 번거롭던 세상에서 떠나 자연과 더불어 유유 자적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핵심 정리
◁ 제재 : [1] 어부 생애, 추강  [4] 기러기, 천산  [9] 서리
◁ 주제 : [1] 추강에 배를 띄우는 흥취  [4] 배에서 바라본 원산(遠山)의 가경(佳景)
[9] 찬 서리 맞으며 배 위에서 밤을 새는 감회

[冬詞]
구름이 거든 後(후)에  빗치 둑겁거다 [1]
天地閉塞(천지 폐색)되 바다흔 依舊(의구)다
 업고  업쓴 물 이 깁편는듯 여라

엿튼 갣 고기 들면 먼 소  다 갇 니 [3]
져근덛 날 됴흔 제 바탕에 나가 보쟈
밋기 곳다오면 굴근 고기 문다 다

간밤의 눈  後(후)에 景物(물경)이 달낫고야 [4]
압희  萬頃琉璃(만경유리) 뒤희  千疊玉山(천첩옥산)
이거시 仙界 佛界(선계 불계) 가 人間(인간)이 아니로다 
● 전문 풀이
[1] 구름이 걷히고 나니 햇볕이 두텁게 내리쬐인다.
<배를 띄워라, 배를 띄워라.>
천지가 온통 얼음으로 덮혀 생기를 잃었으되 바다는 옛과 다름이 없다.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끝없이 아득한 물결이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다.

[3] 물이 얕은 갯가의 고기들이 먼 소로 몰려갔으니(겨울이라 수온이 낮아 깊은 곳으로 갔다)
<돛을 달아라, 돛을 달아라.>
잠깐 동안 날씨가 좋을 때에 일터(어장)에 나가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야차 ! >
낚싯밥이 좋으면 큰 고기가 물린다 한다.
[4] 간 밤에 눈 갠 뒤에 경치가 달라졌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 체는 유리처럼 잔잔한 넓은 바다, 뒤에는 겹겹이 둘러싸인 백옥 같은 산이로다.
<찌그덩 찌그덩 어야차!>
아, 여기는 신선이 사는 선경인가? 부처가 사는 정토인가? 인간 속세는 아니로다.
● 해설
[1] '어부사시사' 중 겨울을 노래한 '동사(冬詞)'의 첫째 수로, 눈 갠 겨울 바다에 배를 띄우는 정경
을 노래했다.
[3] '동사(冬詞)'의 셋째 수로, 겨울날의 고기잡이의 요도(要道)가 잘 나타나 있는 노래이다.
● 감상
[1] 겨울철 눈이 갠 날 아침의 강촌(江村)의 경물은 한마디로 선경(仙景)이다. 산야(山野)는 온통
은백색으로 물들었는가 하면, 바다는 한결 더 푸르다. 고운 비단을 한없이 펼쳐 놓은 듯한 끝
없이 넓은 바다 를 바라보며 풍류객인 지은이로서 어찌 가만히 앉아 있으랴. 겨울철 어부(漁
父)로서의 풍류는 눈[雪]과 더불어 그 진미를 더해 줄 것이다. 은백의 설경은 마음속까지 후련
히 씻어 주는 청량감을 만끽하게 하는데, 눈이 내린 후 두텁게 내리 쬐이는 햇볕을 받으며 만
경창파(萬頃蒼波)에 배를 띄우는 운치 있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초장은 눈 갠 후 눈부시게
내리쬐이는 햇볕을 묘사하면서 '두터운 햇빛'이란 표현으로 시어의 참신성을 느낄 수 있으며,
중장은 '天地閉塞'과 '바다는 의구(依舊)하다'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3] 겨울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면 고기는 따뜻한 깊은 소[淵]로 들어갔다가 날씨가 따뜻하면 수면
(水面) 가까이 올라오기 때문에, 어부는 어장에 나가 가을 동안에 자란 굵고 살찐 고기를 잡자
는 어부의 생황이 잘 그려진 사실적(寫實的)인 표현이 한충 돋보인다. 종장에서의 '밋기 곧다오
면'과 같은 시어의 조탁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휘한 것을 느낄 수 있다. 윤선도 자신
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직접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은 경험에서 쓴 글인지는 확언하기 곤란
하나, 아마도 고기잡이 요도(要道)를 보고 듣고 하여 잘 파악한 듯하며, 또한 국어로 이만큼 엮
어서 이만한 어부 생활의 진미를 나타낸 능숙한 기교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 핵심 정리
◁ 제재 : [1] 겨울 바다  [3] 고기
◁ 주제 : [1] 눈 갠 겨울 바다의 배 띄우는 정경  [3] 겨울날의 고기잡이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高山 九曲潭(고산구곡담)을 사 이 모로더니 [1]
誅茅芽卜居(주모 복거)니 벗님  다 오신다
어즈버 武夷(무이)를 想像(상상)고 學朱子(학주자)를 리라

一曲(일곡)은 어드 오 冠岩(관암)에   빗쵠다 [2]
平蕪(평무)에   거든이 遠近(원근)이 그림이로다
松間(송간)에 綠 (녹준)을 녹코 벗 온 양 보노라

二曲(이곡)은 어  오 花岩(화암)에 春滿(춘만)커다 [3]
碧波(벽파)에 곳츨  워 野外(야외)에 보내노라
사람이 勝地(승지)를 몰온이 알게 들 엇더리

三曲(삼곡)은 어드 오 翠屛(취병)에 닙 퍼졋다 [4]
綠樹(녹수)에 山鳥(산조)  下上其音(하상기음)  적의
盤松(반송)이 受淸風(수청풍)이 녀름 景(경)이 업 라

四曲(사곡)은 어드 오 松岩(송암)에   넘거다 [5]
潭心 岩影(담심 암영))은 온갓 빗치  겻셰라
林景(임경)이 깁도록 죠흐니 興(흥)을 계워 노라

五曲(오곡)은 어드 오 隱屛(은병)이 보기 죠희 [6]
水邊 精舍(수변 정사)은 瀟灑(소쇄) 도  이업다
이中에 講學(강학)도 려니와  月吟風(영월음풍) 리라

六曲(육곡)은 어드 오 釣峽(조협)에 물이넙다 [7]
나와 고기와 뉘야 더욱 즑이는고
黃昏(황혼)에 낙대 를 메고 帶月歸(대월귀)를 노라


七曲(칠곡)은 어드  오 楓岩(풍암)에 秋色(추색) 죳타 [8]
淸霜(청상) 엷게 치니 絶壁(절벽)이 錦繡(금수)ㅣ로다
寒岩(한암)에 혼자 안쟈셔 집을 닛고 잇노라

八曲(팔곡)은 어드 오 琴灘(금탄에) 달이  다 [9]
玉軫 金徽(옥진 금휘)로 數三曲(수삼곡)을 노는말이
古調(고조)을 알리 업쓴이 자 즑겨 노라

九曲(구곡)은 어드 오 文山(문산)에 歲暮(세모)커다 [10]
奇巖 怪石(기암괴석)이 눈속에 무쳣셰라
遊人(유인)은 오지 안이고 볼   업다 드라
● 전문 풀이
[1] 고산의 아홉 굽이도는 계곡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모르더니,
풀을 베고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사니 벗님네 모두들 찾아오는구나.
아, 무이산에서 후학을 가르친 주자를 생각하고 주자를 배우리라
[2] 첫번째로 경치가 좋은 계곡은 어디인고? 갓머리처럼 우뚝 솟은 바위에 아침해가 비쳤도다.
잡초 무성한 들판에 안개가 걷히니, 먼 곳과 가까운 곳 가릴 것 없이 그림같이 아름답구나.
소나무 푸른 숲 사이에 맛좋은 술이 담긴 술통을 놓고 벗들이 찾아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
라.
[3] 두 번째로 경치가 좋은 것은 어디인가? 꽃바위의 늦봄 경치로다.
푸른 꽃을  띄워 멀리 산 밖의 들로 보낸다.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곳을 모르니, (꽃을 띄워 보내) 이 곳의 경치 좋음을 알게 한들 어떠리.
[4] 세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푸른 병풍을 둘러친 듯한 절벽에 녹음이 짙어졌다.
푸른 숲 속에서 산새들은 높이락 낮추락 노래를 부르는데,
가로퍼진 소나무가 맑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으니 여름이지만 그 경치가 시원스럽기 그지없구
나.
[5] 네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소나무 보이는 낭떠러지 위로 해가 떠 넘는구나.
깊은 물 한가운데에 비친 바위 그림자는 온갖 빛과 함께 잠겨있구나.
수풀 속의 샘물(세상을 물러난 선비가 은거하는 곳)은 깊을수록 깨끗하니 흥겨움을 이기지 못
하겠구나.
[6] 다섯 번째로 경치 좋은 곳은 어디인가? 으슥한 절벽이 보기도 좋구나.
물가에 세워진 배움의 집은 맑고 깨끗하기가 더할 나위 없구나.
이런 곳에서 글도 가르치고 때로는 시를 지어 읊으면서 흥겹게 놀기도 하겠구나.
[7] 여섯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낚시질하기에 좋은 골짜기에 물이 많이 고여 있구나.
나와 고기와 어느 쪽이 더 즐거운가?
(아마도 낚시에 재미를 붙인 나이니 진종일 즐기다가) 해가 저물거든 낚싯대를 메고 달빛을 받
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리라.
[8] 일곱  번째로 경치 좋은 계곡은 어디인가? 단풍으로 덮인 바위에 서린 가을빛이 좋구나.
그 곳에 깨끗한 서리가 엷게 덮였으니 단풍에 덮인 바위가 수놓은 비단처럼 아름답도다.
차가운 바위에 혼자 앉아서 (경치에 취하여) 집에 돌아가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도다.
[9] 여덟 번째로 경치가 좋은 곳은 어디인가? 거문고 타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여울목에 달이 밝
다.
좋은 거문고로 서너 곡조를 탔지만
운치  높은 옛 가락을 알 사람이 없으니 혼자서 듣고 즐기노라.
[10] 아홉 번째 굽이는 어디인고, 문산에 한 해가 저무는구나.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돌이 눈 속에 묻혀 버릴까 걱정되는구나.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사람은 오지 아니하고 볼 것 없다 하더라.
● 해설
<고산구곡가>는 이이가 선조 10년 42세의 나이로 해주로 퇴거하여 선적봉과 진암산 두산 사이
를 흐르는 구곡 유수의 제오곡인 고산 석담에 복거하고 그 다음해 여기에 은병정사를 세워 은거하
면서 주희의 <무이도가>를 본떠서 지었다는 총 10수로 된 연시조이다.
16세기 사림파들은 성리학적 이념에 근거하여 조선조를 개혁코자 하였는데 그 실천 요강은 주
자에 집약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적 의지가 좌절되면 서슴없이 강호로 돌아 갔는데 그들에게
는 주자의 삶과 그의 학문, 그리고 그의 문학이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주자의 무
이구곡에서의 삶이 동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가 지은 <무이도가> 등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무이도가>는 지고의 시로 인식되어 깊은 천착이 있었는데, 이황은 <무이도가>에서 차음하여
<한거독무이지차구곡자가운>을 지었고, 율곡 이이는 시조의 형식을 빌어 <산구곡가>를 지었다.
조선조의 주자학적 지식인들이 <무이도가>를 수용함에 있어 이황의 경우처럼 거의 한시로 차음한
데 반해 이이는 시조의 형태로 변용하였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고산구곡가>는 연시조의 유산중 구조와 내용에 있어서 매우 특이한 작품인데 같은 강호 자연
을 노래한 퇴계의 <도산십이곡>이나 입암의 직립불기, 높은 기상과 강건함, 묵묵한 기상을 읊어
자연에의 몰입을 추구하면서도 그 속에서 '머도록'과 '먼 빗치'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는 고산의 <
어부사시사>와도 다르다.
<고산구곡가>는 첫수를 서사로 시작하여 1곡에서 9곡까지 노래하는 구곡체 시가라 할 수 있는
데, 퇴계.율곡 이후 17세기 송시열을 비롯한 주자학적 지식인들에게 계승되어 애송되기도 하고, 자
연을 소재로 한 많은 한시 창작에 영향을 미쳐 20세기 초엽까지 많은 구곡체 시가가 지어졌다. 그
러나 한문 구곡체 시가의 작품 수는 많으나 국문 구곡체 시가는 율곡의 <고산구곡가>와 이것의
영향을 직접 받은 권섭의 <황강구곡가>, 가사 형태의 시가인 채헌의 <석문정구곡도가> 등 몇 편
에 불과하다.
구곡체 시가 가운데 <고산구곡가>는 형태상 구곡을 읊었다는 점에서 <무이도가>의 영향을 받
았으나 의미상 구조나 내용에 있어서는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 감상
[1] 작품의 서사(序詞)로서 고산의 경치를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가, 그 곳에 집을 짓고 강학
(護學)을 시작하니 벗과 제자들이 모여든다는 내용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면서 주자학을 연
찬(硏鑽)하겠다는 소박한 학구적 열의가 강하게 느껴져 학자다운 사명감마저 엿보이고 있다.
[2] 관암(冠巖 ; 갓바위)을 노래한 것으로 첫머리를 상징하여 갓바위를 인용법이며 술통을 놓고 벗
을 기다리는 여유 또한  폭넓은 인간미를 보여준다.
[3] 늦봄이 되면서 온갖 꽃이 만발하였다. 그 꽃을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명승지를 남
에게도 알려 같이 즐기고 싶어한다. 이는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름다운 곳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은 그의 심정으로서 바로 백성의 교화(敎化)를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성리학자로서의 깊이를
나타낸 것인지도 모른다.
[4] 취병(翠屛)을 노래한 것으로 우거진 녹음, 맑고 푸른 물위를 날며 우짖는 산새들의 합창, 강물
을 향해 뻗은 소나무 가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니 여름 경치가 이보다 더할 곳이 어디 있
겠는가. 인자 요산(仁者樂山)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5] 노송(老松)이 서 있는 벼랑과 그 밑에 있는 담수(潭水)에 어리는 바위 그림자가 석양에 비쳐
더욱 아름답다고 노래하였다. 은사(隱士)가 사는 곳은 산이 깊을수록 좋은 것이니 흥겨움을 이
기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6] 작자가 거처하고 있는 석담정사(石潭精舍)와 주변과 거기에서의 생활을 노래한 것이다. 뒤에는
바위가 병풍 같고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데 조촐한 모옥(茅屋)에는 책이 가득하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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