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유인 한양조씨 제문(학봉종택14대종부휘필남여사)

2009. 2. 14. 08:02상량문,제문,비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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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1994년) 十月 癸巳 朔 十四日 丙午 儒人漢陽趙氏 祭文}

趙畢男(경북 영양군.읍 삼지리 하담고택後) 

 

 

 

학봉종택의 종손(諱時寅,향년92세)님이 세상을 뜨셨다. 지난 2008년 2월 3일 타계하셨다. 향년 92세의 일기다. 빈소는 할머니상(趙畢男,경북영양읍삼지리하담고택後)을 치를 때와 마찬가지로 차려져있다. 7일장으로 치르어 졌고, 삼년상을 치른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화장막에서 화장 후 납골당에 안치만 하면 바로 탈상을 하는데 삼년상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양반의 장례법이 아직도 남아 있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된다. 우리 전통의 장례문화가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지 신문에는 기사가 났는데 중앙지에는 나지 않았다.

이집엔 소장 개인박물관인 운장각(56종 261 점을 보물 905호로, 17종 242점은 보물 제906호로 지정)이 있고, 우리나라 종가집은 안동지방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퇴계선생의 영향과 지리적인 조건도 한 몫 했다고 생각된다.

종가의 성립 조건은 우선 불천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천위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어야 하며, 그 사당이 자리하는 종택이 있어야 한다. 종택에는 종손이 살아야 하고, 그 종손을 중심으로 지손(支孫)이 있어 문중을 이루어야 종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가가 성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 불천위다. 그럼 불천위의 요건은 무엇인가? 대개 조상 중에서 나라에서 시호(諡號)를 받은 조상이 불천위가 된다.

시호를 받지 못했더라도 명망 있는 재야 학자, 유림의 추대를 받은 학자, 문중에서 추대한 조상도 불천위로 인정한다.

학봉종택의 차종손은 3년상이 끝나고 길제(吉祭)를 치르고 난 후 종손으로 정식으로 인증을 받게 된다. 길제는 일종의 종손 취임식이다. 길제는 제사를 받들던 종손이 죽고 그 아들이 제사를 이어받게 될 때 5대조의 위패를 매안(埋安, 대게 불천위 묘소 근처의 산에 오대조의 위패를 묻음)하고 새로이 아버지의 위패를 사당에 모시는 제사의 한 종류이다.

이곳 학봉종택은 안동 유림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병호시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維歲次 甲戌 十月 癸巳 朔 十四日 丙午 則我 故 儒人漢陽趙氏 呼樂之朞辰也 前夕乙巳 族媤叔 棕煥內外 謹以酌時羞之典 痛器再拜 告訣于靈?之下曰 於乎哀哉 지나온 일들을 回想하니 萬憾所懷를 筆舌로 어이다 하오리가. 吾門宗家는 族兄主 參奉公께서 無後하신데다 失國의 恨을 품으시고 오직 救國一念으로 不顧家事하셨으니 家勢는 漸次 여러워지고 奉祭祀接賓이 莫然한 處地라 門中之發意로 宗意를 모아 後嗣를 찾으시니 天佑의 神助로서 祖國의 解放과함께 乙酉 十月에 天定配匹 同甲이신 宗君內外分을 맞아드리니 君子다운 宗孫 賢淑하신 宗婦玉骨童子 次宗孫을 거느리고 宗門을 들어서니 온 마을이 曙光이요 全門의 慶事였나이다.

丙戌 五月 光復의 기쁨도 채가시기 前에 萬苦風霜 겪으시며 救國運動하셨건만 祖國建國 못보시고 參奉公族兄主께서는 下世하시니 當時宗君內外分 三十前 젊은 시절이었건만 大家의 主人 名儒의 后裔답게 宗婦로서 儒家의 法道에 따라 喪禮를 치르시니 宗家는 中興을 始作하였고 全門이 和合하고 宗下支孫들이 恭敬下愛하시고 첫 事業으로 宗宅移建에 全心全力하여 이와 같은 넓고 밝은 터에 祠廟를 모시고 宗宅이 있게 하였으며 臨川書院 重建 先祖遺品을 한 곳에 保存할 수 있는 雲章閣 創建, 風雷軒 復元, 其外 크고 작은 事業이 많으나 다 記錄할 수 없으며 特히 崇祖爲善은 生活信條로 하였고 그 모든 結果가 吾門繁盛이요 後世代에 傳受하여 萬百年 빛날 것입니다.

吾宗家를 다녀간 수많은 名士 儒客 族親等 訪問客의 接賓은 修家凡節과 先人法道 禮文으로 接待하여 稱頌이 자자하니 이 모두가 京鄕各地에 寓居 宗下支孫들에게 位相을 높여주는 두 分의 陰德이였나이다. 宗門을 들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으니 天定性?이 아니고서야 그리 하오리가. 저의 內外故鄕 來往間 春坡에 留하게 되면 朝夕으로 電話하여 부르시니 그 情겨운 모습 역역히 生生하며 그 尊顔玉音이 耳?에 재연 어이 다시 뵙고 들으리가. 유명이 다르오니 欽慕할 뿐이외다. 望八之壽가 적다고야 하오리가마는 宗事를 生覺하면 天壽인들 많다하리가. 鍾吉君은 企業經營이 卓越하여 最高經營人으로 有望한 吾門외 人材라 또한 次宗婦 先師宅 宗女로서 親庭見聞 몸에 익혀 姿?이 英敏하시고 其間 半世記동안 닦아 놓으신 業德 그대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오호라! 지난 계유 四月 先祖殉國 四百週忌에 病患中 손수 祭需차려 亞獻參禮가 끝이될줄 누구인들 어이 알았겠나이가. 출천대효 鍾吉 六男妹 숙자까지 精誠껏 勿藥侍湯하였건만 귀호가 시기하여 天壽를 못하시고 그해 시월에 별세하시니 嗚呼 慟哉 慟哉 蔣陀偏潗만났어도 一生一死人之常本이라 生離死別 갈라놓으니 이것이 天壽인가 봅니다. 七日葬事 襄禮日에 하늘도 무심찮아 白雪이 粉粉하니 山野가 흰색이라 亡人의 淨潔함은 하늘도 아더이다.

銘旌이 앞에 서고 永訣發靷喪擧가 大門을 나설 적에 哀子 鍾吉 三兄弟 三同? 三姉妹胥君 들과 親外孫 子女侄 호모호곡 天地가 진동하고 宗中支下 老少로 뉘 아니 岡極之 않으리가. 嗚呼痛哉痛哉 宗婦시여 吊問萬客隨喪하니 營喪이라 하더이다. 名地明堂 擇地하여 萬年幽宅드셨으니 生前의 聖德으로 天上仙鏡 仙花하시어서 蓮花臺에 높이 앉아 西王母의 벗이 되어 이 生의 갖은 苦樂 細細낱낱 푸옵시고 萬思萬念 잊으시고 往生極樂하시여서 子孫興盛 굽어보시고 宗下支孫 살피셔서 永遠無窮 창성하게 하옵소서. 조그만 정물로 粗果 한 접시 올려놓고 床棹앞에서 哭告拜別하옵나니 반겨欽饗하옵소서. 嗚呼痛哉 尙 饗

 

▣유인 한양조씨 제문
유세차 갑술 시월 십사일 전석 불효여식 장실 종숙은 삼가 현비한양조씨 영전에 제 하옵나이다. 업드려 알뢰나니 생아육아 깊은 은혜 호천도 망극이라. 지는해 엄엄광경 서산에 닿았으니 여식의 두터운 정 깊으고 간절하와 드문드문 뵈올 적에 늙으신 어마 옆을 참아 어이 떠나오리. 출가외인 여식이라 자식도리 다 못하고 효행이 부족하여 부모께 득죄하고 정성이 부족하니 더 더욱 애닳도다. 만났다 헤어질 땐 모녀 서로 부여잡고 세상살이 말못하고 가슴앓이 내색않고 속으로만 울부짖고 헤어질 때는 천지가 참담하고 누수가 앞을 가려 걸음을 막았더라. 애틋한 여식의 몽혼만이 밤마다 달려가서 티없는 모습으로 어마 앞에 문안하니 그 누가 알리오. 여식의 아픈 마음 홀연히 만져보며 평소같이 즐기다가 무정할사 꿈이던가 갑자기 놀라깨니 다정스런 어마 모습 간 곳이 없어지고 허전한 마음만이 이몸 함께 누웠어라. 지척에 계신 어마 자주 뵙지 못한 마음 만수무강 하시어서 우리 모녀 다시만나 정담 나눠 즐길날을 밤마다 빌고빌며 하늘같이 바랐건만 우리 어마 하세하니 자식도리 못한 죄악 가슴만이 찢어질듯 부모의 평안소식 들리기를 바랐더니 천천만만 몽매밖에 급보가 왠 말인가 천지가 함몰된들 이다지도 서러울가.
아! 슬프다. 우리 어마 업어주고 안아주며 들며날며 사랑할제 어린 몸이 품에 안겨 고고이 울음우니 사랑도 중하올사 은혜도 크옵셨네. 촌초까지 맺힌 은정 춘휘로도 다 못 갚고 승순좌우 못하온 일 평생에 한이외다. 슬하에 삼남삼여 장남은 사장이요, 차남은 감사원에, 삼남은 금성사에, 자부 모두 뛰어난 현부라. 삼여 모두를 교단에 세우시고 사위 또한 모두가 뛰어난 현군으로 육남매가 무불장부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러울게 없는 처지 만인이 숭앙하고 흠모터니 이게 왠일인가. 오호라. 무정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르르니 어느 누가 원통해 하지 않으리. 여식을 출가시켜 훌쩍 떠나 보낸 뒤에 시집살이 여식이라 문안인들 자주하랴. 육남매의 자녀를 모두 떠나 보내놓고 적적한 깊은 밤에 외로운 등잔 대하시어 오메불망 자식 생각 흘린 눈물 얼마나 뿌렸든고 구구절절 쌓인 회포 서신으로 대신하니 다정다감 특출자애 어느 누가 따라가랴. 세세춘추 철을따라 문안하고 떠나갈제 자식을 보내시며 안보여도 떠나실 줄 모르시고 그 자리에 홀로 서서 눈물만이 흘리셨네. 오늘내일 매일마다 자식걱정 하오실제 정회도 상하실뿐 심혼인들 편하시랴. 쇠경에 나신병환 더욱이 재촉한 듯. 어버이 섬길 날이 짧은 것을 깨달으니 통절이 뉘우치나 미칠곳이 어딜런가 이런일 생각사록 심흉만이 찢어지네 병환이 위중하여 감당하기 어려워도 자식걱정 놓으라고 괜찮은척 위장하다 갑자기 심한 고통 하늘인들 어찌하랴.
생각사록 애탁하고 자식도리 못하온 일 부끄럽고 원통해서 땅을 치고 통곡하네 천만 가지 원통하여 잠못이뤄 뒤척일 때 모씨용안 완연히 뵈옵다가 홀연히 가시옵고 의형조차 안보이네 호천통곡 엎어지며 아무리 따라간들 만첩산중 둘러봐도 풍설만이 가득하네. 이 세상에 있는 사람 부모당상 예사이나 어마에 쌓인 통한 우리 남매 뿐이로다. 한 달 전 떠나올 때 한 번 이별 영결종천 왠말이요. 구원선대 어데런가 이 세상과 영격일세. 사람마다 저의 부모 정성껏 봉양컨만 어찌다 우리 남매 어마 임종 못하였나. 천장지구 멀다해도 끝간데가 있거니와 이 마음에 쌓인 원통 분골쇄신 다 못하네.
이후에 원하옴은 지하에 따라가서 인자하신 모씨의용 다시볼까 바라오나 천대는 명명하고 지하는 막막하니 계신 곳 어디신고 찾을 곳 없사이다. 가을서리 겨울눈에 쓸쓸한 무덤에는 무심한 잡초만이 말없이 말라있고 하늘가 멀리멀리 통곡하고 바라보며 몇 번이고 뵙고싶은 모씨용안 그리나이다.
원하노니 우리 모녀 세세생생 모녀되어 이 세상에 못다한 정 내생에나 다해볼까. 어머님 어머님 당신은 아십니까 모르십니까. 장차 날이 밝으면 영혼과 그림자가 멀리멀리 떠나시며 이 세상의 인연이 이로써 끊어질일 이 어찌 원통하고 슬프지 않으리오. 높으옵신 어머님 영전에 불효여식 피눈물 뿌리며 마지막 글 올리오니 아름다운 향내음 흠뻑 맡으시고 머나먼 여행길 미련없이 편안히 편안히 떠나가십시요.
오호통제 오호통제 상 향.

 

▣할머니 영전에
갑술 십월 십사일 전석 을사는 할머니 돌아가신지 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삼백여송이의 꽃이 온 집안과 마을을 빛나게 하고 문상오신 손님들 모두 할머니 떠나심에 아픔의 눈물 또한 많이 흘리시곤 했답니다. 얼마 전 보라가 가고 없으니 할머니 생각이 더 나더군요. 아마 할머니가 계셨다면 눈물 많이 흘리시곤 하셨겠지요. 보라가 이런 말 한 적이 있었어요. 상석상 드릴 때마다 할아버지가 통곡하시니 옆에서 본 보라가 할아버지가 저렇게 슬프게 우시면 할머니 밥 못잡수시겠다고 하더군요. 이런 일 저런 일들 이젠 다 지나고 할머닌 이제 곧 떠나실 것 같아요. 할머니 손이라도 마지막으로 목소리도 듣고 싶은데…. 병원이나 장에 가실 땐 항상 내 손과 팔에 의지하여 다니시더니 어떻게 가실 땐 그렇게 쉽게 가세요.
이젠 할머니와 지내왔던 그 수많은 시간들 마음속 깊이 잊지 못할 추억으로만 남겠죠. 할머니 이젠 할아버지 건강 돌봐 주세요. 할머니 그렇게 가시고 할아버지께서 무척 힘들어 하셨답니다. 그동안 수술하신 것 이젠 좋아지신 것 같고 건강도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요. 이 모든 것이 다 할머니 도움이라 생각돼요. 전 느낌이 와요. 할아버지 옆엔 항상 할머니 마음이 돌봐 주시는 걸요.
할머니 이젠 추운 겨울이 오고 있답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다시 꽃피는 봄이 오겠죠. 가신 할머니를 위해 할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마당에 곱게 핀 꽃으로 빈소방에 매일 싱싱하고 곱게 핀 꽃을 꽃병에 꽂곤 하셨는데 이젠 그나마 못하게 되고 할머니는 떠나십니까.
슬퍼요 아파요 마음이. 할머니 그곳은 춥지 않으세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한 번만이라도 만나 뵐 수 있다면….
할머니 어쩌면 나 시집도 안 보내주시고 항상 나 시집가면 어떡하나 걱정만 하시더니 할머닌 내게 있어 엄마 같기도 친구 같기도 할머니 같기도 했어요. 이젠 화도 고집 부릴 때도 없어졌어요. 이 철부지는 아직도 할머니 도움이 필요해요. 모든 것 다 소용없어요. 할머니 가르치심 잊지 않고 지내고 그동안 상석상 마음껏 못차려 드린 것 죄송해요.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정아랑 전 조용히 빕니다.
할머니가 키워주신 신숙자가 드립니다.(신숙자가 자기를 키워준 종부를 그리워하며 올린 제문)

 

 

출처 : 晛溪亭
글쓴이 : 晛溪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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