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육유와 당완의 사랑

2011. 6. 25. 11:22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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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연은 하늘이 맺어준다

 

  육유(陸游)는 중국 송나라 때의 시인이다. 송은 처음에는 변경(지금의 개봉)에 도읍하였지만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쫓겨 임안(지금의 항주)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변경 시대를 북송, 임안 시대를 남송이라고 한다.

 

  육유가 세상에 태어난 다음해 북송은 멸망하였고, 임안으로 천도한 남송은 일시적인 평화 상태를 이루었다. 그 당시의 재상 진회는 금나라가 너무 강성하니 싸우지 말고 눈치를 보며 지내자는 온건파였다. 그래서 힘을 키워 빼앗긴 땅을 되찾자는 주전론자들을 많이 파면하였다. 육유의 아버지도 파면당한 관원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그의 주변에는 비분강개하는 선비가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애국심을 가진 시인으로 자라났다. 어느덧 주전파의 핵심 인물이 된 육유는 걸핏하면 관직을 강등 당하거나 귀양살이를 했다.

 

  그러나 기질적으로는 서정시인이었다. 인생과 자연을 놓고 미세한 현상에 눈길을 돌려 섬세한 붓으로 그려내는 송나라 시의 특징은 그의 시에서도 증명된다. 다만 청년 시절의 불운했던 혼인 관계, 국가의 굴욕적인 상태, 사회의 여러 가지 모순이 그를 애국시인으로 간주하게 한 듯하다.

 

오랑캐 아직 물리치지 못하고

머리만 먼저 가을을 맞았구나

한 평생 얼마나 살지 누가 알 수 있으리오?

마음은 天山에 가 있는데

몸은 물가에서 늙어가고 있도다

 

ㅡ<소충정(訴衷情)> 전문

 

죽으면 만사가 헛되다는 것 것쯤은 원래 알고 있었으나

나라가 통일되는 것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

천자의 군대가 북쪽 중원을 평정하는 날에는

행여 잊지 말고 제사 지내 이 늙은이에게 알리거라

 

ㅡ<시아(示兒)> 전문

 

  스무 살이 된 육유는 당완(唐琬)이라는 이름의 사촌동생과 결혼을 했다. 그 시대에는 사촌간의 결혼이 금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모두 시를 썼고, 통하는 것이 있어서 그런지 금슬이 무척 좋았다. 그런데 육유의 어머니가 당완의 집안이 가난하고 자기가 골라준 신부감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육유의 어머니는 금슬이 유독 좋은 아들 부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더니 날이 갈수록 며느리한테 구박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 며느리를 욕하던 육유의 어머니는 이혼을 강요하기에 이르렀고, 당시의 관습상 자식이 부모의 영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이혼을 하긴 했지만 육유는 당완을 이웃 마을로 몰래 피신시키고 간간이 가서 부부의 정을 나누곤 했다. 애틋한 사랑의 날들이 얼마 이어지지 않았을 때 육유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다시 내 아들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겠노라고 엄포를 놓은 뒤 당완을 멀리 쫓아버렸다.

 

  세월이 흘렀다. 육유는 어머니가 정해준 왕씨 성을 가진 여인과 재혼했다. 이 소식을 들은 당완도 친정 부모의 뜻에 따라 조사정(趙士程)이라는 이름의 문인에게 개가를 했다.

 

  객지를 떠돈 지 8년 만에 고향인 소흥(紹興)에 들른 육유는 우적사(禹迹寺)라는 절의 남쪽에 있는 심원(沈園)이라는 곳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심원은 원래 지방의 돈 많은 벼슬아치인 심씨 가문의 정원이었는데 경치가 워낙 좋아 사람들이 소풍 나오는 유원지가 되었다. 그곳에서 육유는 조사정과 그의 친구들이 나들이를 나온 데 따라온 당완을 만나게 된다.

 

 

                                                                                                                          심원의 연못

 

  멀찍이에서 바라보았지만 금방 서로를 알아봤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 두 사람이었지만 다가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었다. 당완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본 조사정은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당완은 저 사람은 전남편 육유이며, 벌써 재혼했는데 여기서 우연히 만나니 깜짝 놀랐다고 솔직히 말해주었다. 도량이 넓은 조사정은 육유에게 술과 안주를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육유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음날 시를 써 조사정 몰래 당완에게 인편으로 전하니 유명한 <차두봉>이다.

 

紅酥手黃藤酒        불그스름한 부드러운 손으로 보내준 황등주

滿城春色宮牆柳     성안에는 봄빛 가득, 버드나무 너울거렸지

東風惡歡情薄        동풍이 사나워 야박해진 정

一懷愁緒幾年離索  쓰라린 마음 안고 몇 년을 헤어져 찾았던가?

錯 錯 錯               착잡하고 착잡하고 착잡하다

 

春如舊人空瘦        봄은 예전과 같은데 사람은 공연히 여위어

淚痕紅浥鮫綃透     눈물 흔적만 비단손수건에 붉게 비치네

桃花落閑池閣        복숭아꽃 지고 연못 정자 조용한데

山盟雖在錦書難託  옛 맹세는 여전해도 비단편지 부치지 못하네

莫 莫 莫               막막하고 막막하고 막막하다

 

ㅡ<차두봉(釵頭鳳)> 전문

 

  이 시를 받아본 당완은 전남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육유에게 애끓는 마음으로 답시를 써 보낸다. 시어머니가 자기를 미워하여 육유와 헤어지게 되었으나 시를 보니 전남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여전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시를 쓴다. ‘착잡하다’와 ‘막막하다’라는, 각연의 마지막 행에 담겨 있는 전남편의 마음을 읽고 당완은 ‘어렵다’와 ‘숨겨야 한다’라는 말로 화답한다.

 

世情薄人情惡        세상도 야박하고 인심도 사나워서

雨送黃昏花易落     황혼에 뿌린 빗방울 꽃잎을 떨어뜨렸지

曉風乾淚痕殘        밤새 흘린 눈물 흔적 새벽바람에 말리고

欲箋心事獨語斜闌  내 마음 호소하려 난간에 기대었지

難 難 難               어려워 어려워 어려워라

 

人成各今非昨         그대와 나 제각기 가정 이루어 지금은 옛날과 다르네

病魂曾似秋千索      오랫동안 병든 영혼 날이 갈수록 적적하기만 하고

角聲寒夜闌珊         모서리에 부는 바람 차갑고, 밤에 난간에 홀로 서 있자니

怕人尋問咽淚妝歡   남이 그 사연 물어볼까 두려워 눈물 삼키며 일부러 웃음 짓는다

瞞 瞞 瞞                숨겨야지, 숨겨야지, 숨겨야지

 

ㅡ<차두봉(釵頭鳳) 二> 전문

 

 

                                                                                                                              차두봉 시비

 

  이루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지금도 소흥의 심원에 가면 두 사람이 쓴 시 <차두봉> 2편이 벽에 새겨져 있다. 위의 시를 지어 보내고 나서 당완은 집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당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당완의 사망 소식에 육유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당완이 죽은 뒤 4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육유의 나이 어느새 75세, 백발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무치게 보고 싶은 아내 당완이었다. 젊은 시절 한때이긴 했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 당완의 흔적을 더듬어 심원에 다시 가본 육유는 비통한 마음으로 아래의 시를 짓는다.

 

城上斜陽畫角哀    석양의 성 위에 화각소리 애처로운데

沈園非復舊池台    심원은 다 그 옛날의 누대가 아니로구나

傷心橋下春波綠    다리 아래 푸른 봄 물빛에 마음 아파오니

曾是驚鴻照影來    일찍이 놀란 기러기 그림자 비춰 날아온 곳이구나

 

夢斷香消四十年    꿈이 깨어지고 향기 사라진 지 사십 년

沈園柳老不吹綿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솜도 이젠 날리지 않는구나

此身行作稽山土    이 몸도 장차 회계산의 한 줌 흙이 되련마는

猶弔遺蹤一泫然    남은 자취 찾아보니 한 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ㅡ<심원(沈園)> 전문

 

  후세 사람들은 육유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그 긴 세월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식지 않았음을 알고는 자기 일처럼 애달파한다. 이런 시를 보니 부부간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출처 : 이승하
글쓴이 : 이승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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