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2012. 9. 18. 10:33독서후기

반응형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

■ 백지연이 인터뷰하고 쓰다

0 연세대 심리학과 졸. 신문방송학과 석사. 옥스퍼드대학 로이터 펠로우십 과정수료

0 1987 MBC 입사 5개월 만에 뉴스데스크 앵커로 발탁.

9시 뉴스 최연소 최장수 앵커 기록

0 2003년 프리랜서 앵커

0 한양대, 연세대 겸임교수. 컬럼니스트

0 저서 : 뜨거운 침묵. 나이스포스, 자기설득 파워, 나는 나를 경영한다 등

0 백지연의 끝장토론 진행자.

■ 프롤로그 - 그의 말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고 삶이었다.

도대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가?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 것일까? 그간 내가 썼던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고백했듯, 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성공이란 단어의 쓰임새가 불편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도 ‘성공하는 삶’에 대한 글을 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잘 산다는, 의미 있게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곱씹어 본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러나 진정 바라는 ‘잘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먼저 밝히면, 정해진 답은 없다. 우리 인간은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복잡 미묘한 소우주인지라 획일화된 정답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각자의 답을 찾아야 하고, 찾고 싶기 때문에 그 답을 찾기 위한 기준치, 혹은 참고가 되는 가늠자를 찾아보고 연구해볼 수는 있다. 방법론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구도를 통해서, 누군가는 철학을 통해서, 누군가는 지혜로운 자의 저술을 통해서 또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의 삶의 궤적을 들여다봄으로 찾아볼 수 있다. 그 과정에 때로는 오답을 정답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답이 무서워 정답 찾기를 멈출 수는 없다.

- 1 -

“최초”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럿 달았다. 그것도 무게가 가볍지 않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말이다. 그러나 최초의 동양계 아이비리그 다트머스대학 총장, 동양인 최초의 세계은행 총재 취임 같은 ‘최초’라는 기록이 이 책을 쓰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는 한 회당 한 사람이라는 원칙을 갖고 있는 ‘피플 인사이드’에서 도합 세 차례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9년과 2011년에 다트머스대학 총장실에서, 그리고 이제 2012년 미국 재무부에서, 이 또한 그가 기록한 최초나 성공 때문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한 사람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나 같은 사람을 세 차례나 인터뷰한 것이나,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말한 단 한 줄의 문장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그것은 단 한 줄이었지만 강력한 메시지였다. 그냥 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한 문장을 통해, 나는 개인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나는 무엇이 되는 것(What to be)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느냐(What to do)를 늘 생각했죠.” (김용)

2012. 4. 17. 워싱턴에서 백지연

■ 세계은행(The World Bank)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국제부흥 개발은행(IBRD 1945년 창설), 국제개발협회(IDA 1860년 창설), 국제금융공사(IFC 1956년 창설), 국제투자보장기구(MIGA 1988 창설), 국제투자분쟁해결본부(ICSID 1966년 창설)등 다섯 개 기구로 구성된 국제적인 개발 원조 기구다.

좁은 의미의 세계은행이란 중저소득 개발도상국에 중장기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국제부흥개발은행과 저소득 개발도상국에 대한 양허성자금(일반적으로 이자율, 상환기간, 거치기간 등 3요소를 시중의 일반자금 융자와 비교하여 차입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차관하는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개발협회를 가리킨다. 세계은행은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인,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개발도상국과 최빈국에 금융, 재정, 기술을 지원해 왔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세계 빈곤 척결’및 ‘저개발국가 지원’을 위한 기구인 것이다.

-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선진국의 지분이 월등해서 ‘정치적 대출’이 문제된 적이 있음

- 2 -

- 세계은행 자금은 10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유용한 개발프로젝트에 쓰여지 고 있음

■ 전환기를 맞이한 세기의 인재상, 김용 그는 누구인가?

김용(미국명 Jim Yong Kim)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아이오와 주 머스카틴에서 자랐다. 아버지 김낙희(별세) 씨는 한국전쟁 당시 월남해 서울대 치대에서 공부한 뒤 뉴욕에서 유학했으며 아이오와에서 치과의로 일했다. 어머니 전옥숙은 유니온 신학교에서 저명한 학자들과 동문수학했으며 퇴계 철학 연구로 아이오와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김용은 머스카틴고등학교에서 전교회장, 수석졸업생인 동시에 풋볼 팀의 쿼터백 및 농구팀의 포인트 가드로 뛸 만큼 일찌감치 머리와 활동력을 함께 뽐낸 수재였다. 이후 아이비리그 명문 브라운대를 거쳐 하버드대에서 공부해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시절 만난 폴 파머와 함께 1987년 국제적인 의료봉사 조직인 PIH를 설립해 중남미 등의 빈민지역에서 질병퇴치를 위한 의료구호 활동을 벌였다.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기도 했으며 하버드 의대국제보건사회의학과장을 역임했다. 김용 총재 지명자는 2006년 미국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에 의해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에 뽑히기도 했다.

2009년에 다트머스대학 총장에 선출됨으로써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아이비리그 총장에 취임했고 2012년 3월2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의해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되어 2012년 4월 16일 이사회를 통해 세계은행 총재에 선임되었다.

◈ 현장 스케치 - 2012. 4. 7. 미국 현지 인터뷰

■ 워싱턴에서 그를 놓치다

- 3 -

사정은 이랬다. 김용 총재는 내가 워싱턴에 도착한 그날 정식 임명을 통보받고 페루에 갔던 것이다.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까 인터뷰 당일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는 갑자기 뉴욕에서 처리해야 할 긴급 현안이 생겼고 인터뷰 시간을 오후로 늦춰서 워싱턴이 아닌 뉴욕에서 인터뷰를 하자는 전갈을 급히 넣은 후 이동 중이었다. 선택은 없었다. 우리는 인터뷰를 해야 했고, 뉴욕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뷰 장소가 갑자기 바뀐 것은 낭패스러운 일이었으나 내 머릿속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바빠질. 직원 1만 3,000명을 거느린 세계은행의 수장이 된 신임 김용 총재의 앞으로의 5년이 그려졌다.

■ 뉴욕에서 그를 만나다

백, “페루에는 왜 다녀오셨어요?”

김, 페루에 가서 과거의 환자들을 만나는 데 오후 한 나절을 보냈어요. 예전 에는 자기들이 죽는 줄로만 여겼던 사람들이죠.

백, 아 그렇군요. 그래서 그들은 이제 건강한가요?

김, 다들 행복해요. 일도 하고. 예전에는 모두가 죽을거라 여겼던 사람들이에 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분들을 만나봤는데 이제는 일도 하고, 그중 한 사람은 간호보조사로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분의 아들도 잘 지 내고 있었고요. 또 다제내성 결핵을 앓던 의사의 딸은 이제 곧 대학에 들 어갈 거라고 했어요. 내가 하는 일이 이런 겁니다.

백, 기적을 만드셨네요.

김, 그렇죠. 개인이 하는 일이 아니라 커뮤니티와 의사.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일이죠.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이런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추고, 젊 은 이들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어요.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 이 나에게 이런 중요한 기관을 이끌어갈 기회를 준 것은 아주 놀랄 만 한 일이죠.

백, 아픈 분들을 위해. 특히 가난힌 이들을 위해.

김, 매우 고무적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계은행은 우수한 스탭으로 구 성되어 있는 기구로 유명합니다. 유엔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은행이 우수한 인재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압니다. 1만 3,000명 이죠. 일 년에 거의 600억 달러에요. 솔직히 이런 기관을 이끌어갈 기회 가 주어지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 4 -

백, 이제 진짜 제대로 일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하셨겠습니다.

김, 예, 제가 볼 때 세계은행의 가장 파워풀한 점은 자금력이 있다는 것입니 다. 세계 곳곳에 투자를 하고 있고, 또 국가 경제의 민간 부문에도 투자 합니다. 최극빈국 같은 나라에는 무이자융자나 보조금을 제공하고, 인도 나 중국 같은 나라에도 융자를 해줍니다. 이런 모든 일 외에도 마치 그 들은 연구대학과 같습니다. 투자한 결과에 대해 연구원들이 매일같이 연 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한편에서는 자금을 운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빼어난 연구원들이 그 결과를 연구합니다. 이런 콤비네이션은 정말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이 기관을 이끌게 된 데 대해 무척 겸허한 마음을 느끼는 동시에 함께 조화시키는 것은 정말 그 무엇에도 비길 데가 없습니다.

■ 세계은행의 미래

백, 사실 선거를 통해 총재 선출 과정을 제대로 거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잖 아요. 세계은행 역사상 미국이 지명하면 거의 확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에 걱정을 안 했는데 긴장된 순간이 있었나요, 중간에?

김, 물론이죠. 우리 모두 그 어느 것도 자동적으로 당연히 된다고 여기지 않 았어요. 15일 이상 기간 중에 우리는 비행기를 22회나 탔어요. 각국의 재무 장관을 만나고, 때로는 수상을 만나고, 국가 원수도 만나고, 거의 50명 이상을 방문하고 만났습니다.

백, 경쟁이 셌던 만큼 세계은행을 개혁하겠다고 하셨으니 그 신호탄이 됐겠 네요. 이제 개혁을 시작하실 수 있겠네요.

김, 세계은행은 지난 20년 사이에 아주 많이 변했습니다. 지금은 ‘아젠다의 현대화’라는 과정을 거치는 중에 있습니다. 보다 결과에 집중하고, 훨씬 더 개방적으로 바꾸는 데 전념하고 있어요. 데이터끼지 공개한 상태입니 다. 이제는 누구라도 이 거대한 데이터를 볼 수 있어요.

■ 다트머스 총장에서 세계은행 총재가 되다

백, 응원해드릴게요. 다트머스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보겠습니다. 다트머스 대학으로서는 기쁘면서도 좀 속상할 수 있을 텐데요. “Bitter - sweet"

- 5 -

라는 표현이 적합한 상황일수도 있겠어요. 총장님을 떠나보내느라 섭섭 해 하지 않나요?

김, 그렇겠죠. 저도 그렇고요. 저는 그 대학을 아주 사랑하게 됐고, 학생들도 너무나 훌륭해요. 또 세상에 나가서 좋은 일들을 하고 있어요. 원래 내 계획은 아주 오랫동안 거기서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 희박한 그런 기회가 불쑥 찾아온 겁니 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일이 그냥 그렇게 벌어진 거예요. 저는 좋은 분들과 친분을 맺었고, 다트머스의 이사들께서도 잘 대해주셨고, 많 은 지지를 해 주셨어요. 학생들과 교직원들, 많은 분들을 가까이에서 알 게 됐는데,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요. 보내기는 섭섭하지 만 세상에, 양쪽 모두에게 너무 잘 된 일이라는 겁니다. 다트머스는 전 세계 수많은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되었고, 예전에는 다트머스라는 이름조 차 들어본 적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다트머스를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트머스가 어떤 곳인지, 그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고 있다 고 생각해요. 어떻든 간에, 저는 항상 17대 총장으로 남을 겁니다. 그건 늘 저를 따라다니게 되는 거죠. 가는 곳마다 다트머스 타이를 매고, 그동 안 다트머스 이야기를 세상에 들려줬어요. 다트머스는 훌륭한 연구대학입 니다. 어떤 한 출판물에 따르면, 다트머스가 미국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선정됐어요. 이런 것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제가 살면서 어 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저는 언제나 17대 총장입니다. 이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고, 또 다트머스 대학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럴 것입니다.

백, 알겠습니다. 다트머스에서 전임 총장의 이야기를 통해“세계의 문제가 곧 당신의 문제다(The world's troubles are your troubles)"라는 말씀을 늘 학생들에게 강조하셨잖아요. 이제 행동으로 그걸 보여주기 위해 직접 나서신 셈이네요.

김, 그렇잖아도 그 생각이 제 머리에 떠올랐어요. 학생들과 다른 여러 사람 들이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어요. 저는 세계의 문제를 보다 감동적으로, 포괄적으로 세계 그 어느 기관보다 더 효과적으 로 다루고 처리하는 기관을 맡아서 이끌어달라는 미국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이 부름에 응답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트 머스에서도 그렇게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 6 -

■ 한국의 참여와 지지를 바란다

백, 한국과 세계은행에 관계된 것 몇 가지만 여쭤볼게요. 한국의 지분 참여 율이 0.97%인가요? 회원국 중 22위라고 들었는데요. 예전에 비하면 한 국의 참여도가 높아졌는데, 그러한 한국의 위상에 걸맞게 권리도 누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인데요. 아주 최근에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커 졌습니다. 한국도 포함해서요. 꽤 많이 커졌어요. 상위권에 들어갑니다. 세계은행 내에서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2015년에 다시 떠오를 것입니 다. 저는 이번 선거가 지표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사정이 달 라졌어요. 개발도상국들이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고, 또 테이 블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자신의 입장을 발언하고 싶어 하는 너무나 훌륭한 인재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해 온 일이 바로 이것입니 다. 저는 의사인데, 의사는 데이터에 관심을 집중하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근거를 요구하죠.

저는 또 문화인류학자이기도한데 문화인류학이란 인간 문화에 대한 체 계적 연구와 기록을 하는 학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권의 이 야기를 귀담아 듣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분명 이런 기술을 개발도상국이나 중간 정도의 나라, 선진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데에 이용할 겁니다. 또한 아주 광폭적인 범위의 목소리, 즉 유럽이 든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할 것 없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겁니다. 이 것이 전문적인‘귀담아 듣는 사람’의 일이고 그게 바로 우리가 하는 일입 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귀담아 말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 한국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백,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최초의 아이비리그 동양인 총장도 기록 하셨고요. 최초의 세계은행 동양인 총재도 기록하셨잖아요. ‘최초’를 강조 할 생각은 없지만, 전환기를 맞이한 21세기에는 총재님 같은 인재가 필 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21세기를 준비하

- 7 -

기 위해서는 이런 걸 꼭 갖추어야 한다. 그런 말씀을 좀 해주시겠어요?

김, 제가 어떻게 부르면 되죠? 백지연씨를? ‘지연씨?’라고 하면 됩니까? 백지 연씨와 제가 지난번에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때 이런 점을 강조했었죠. 내가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 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뭔가 큰일을 하기 위해 자신의 준비를 갖추라는 것입니다. 내가 다트머스에 간 것은 ‘뭔가가 되기 위해’ 간 것이 결코 아 닙니다. 5.000~6,000명의 학생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원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첫날부터 제가 한 말이 뭐냐면 ‘세계의 문제가 바로 당신의 문제다’라는 것이었어요. 이건 진정성을 담은 말이고 또 제가 매일 강조한 말이며, 저의 진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기회가 왔 고, 그 일을하기에 매우 중요하고 어려운 시기입니다. 결코 세계은행 총 재가 되고 싶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페루에 갈 때도 그랬고, WHO에 갈 때도, 다트마스에 갈 때도 마찬가지 였어요. 기회가 주어지면 ‘어떻게 도약해서 이 도전을 뛰어 넘고 일을 해 낼 것인가?’ 매번 거기에 집중합니다. 그건 어떤 존재가 되는 것에 초점 을 맞추고, 실제 그것이 되었을 때 만족하는 것과는 다른 거죠. 늘 자기 자신을 주어진 임무 앞에서 겸허해지는 상태에 두고, 자신을 준비하는 동 시에 또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게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의 구석으로 밀려난 사람들, 피난민, 이곳에서 저곳으로 걸어가는 사 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초점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하던 일을 계속하 는 것입니다. 60년 전에 우리 부모님들이 바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염 려되는 게 있는데요. 오늘 날 젊은이들은 그런 경험을 가진 조부모님들을 곧 잃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제1부 ‘뭔가 되려고’살아온 게 아니다

제1장 가치관을 행동으로 옮기다

미국명 Jim Yong Kim, 김용 다트머스 대학총장, 그는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09년,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다트머스대학 총장에 취임함으로써 화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아시아계 최초의 아이비리그 대학의 총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설립 이래 줄곧 미국의 몫이었던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되면서 2012년 또 한 번의 ‘최초’기록을 만들었다.

- 8 -

■ 한 손에는 메스, 한 손에는 고전

김용 후보의 삶과 생각은 단박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이 많다. 수재로 태어나 엘리트의 길을 걸었으나 그의 삶은 우리가 세상에서 목격하곤 하던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이 아니었다. 그는 의사이자 의료 행정가일 뿐만 아니라 인류학 박사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인간과 문화에 눈을 떴고, 인간과 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인류학을 공부했다. 인류학은 “과연 인류의 핵심현안은 무엇인가?”하는 고민으로 그를 이끌었다. 종요한 것은 그의 고민은 고민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기 원했다. 그가 공부한 의학은 그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실행력을 주었다 그는 2009년 다트머스대학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좋은 부모님 덕분에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어니죠. 더 좋은 혜택을 받고 누리며 산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하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균형’입니다. 그 균형을 위해 제가 할 일을 찾은 것이죠.”

백악관은 그간 김용 총장 이외에도 상원의원 존 커리, 전 재무장관이자 오바마의 경제부문 조언자인 수전 라이스 들을 세계은행의 수장으로 고려해왔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거물 행정가나 정치인이 아닌, 가난하고 못 사는 나라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일해 온 의학 전문가 김용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기술관료의 전문성”만으로는 더 이상 세상일에 달려들기 힘들다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판단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들은 말로만 살아온 것이 아닌 행동함으로 살아온 김용 총재의 실천에 주목한 것이다.

의학이라는 지극히 특수하고 전문적인 지식과 인류를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김용의 한쪽 손에는 메스, 한 쪽 손에는 고전이 들려 있었다. 이 아름다운 조화의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졌는지 풀어보자.

■ 이민 1.5세대의 선택

김용은 다섯 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 1.5세대다. 3장 “아들아 넌 누구냐?”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의사라는 이력도 어쩌면 이민

- 9 -

1.5세대라는 조건에 대한 대응일지도 모른다. 그는 내심 철학이나 정치학 공부를 벼르던 브라운대학 첫 학기 이후의 일화를 소개하곤 한다.

브라운대학에서 첫 학기를 마친 뒤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간 김용은 아버지(김낙희 1987별세)와 대학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앞으로 정치학이나 철학 공부를 해보고 싶습니다.” 라고 하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야 임마. 인턴십(의과)이나 다 끝내고 나서 아무거나 한다고 얘기해!”

김용의 아버지는 안정된 일자리와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는 자격을 먼저 갖추고 나서 그 다음에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아들에게 충고한 것이다. “넌 동양인이다. 네가 철학을 공부해서 네 생각을 말한다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다. 누구도 함부로 하지 못할 네 기술, 네 실력을 쌓은 뒤에 그다음 철학이든 정치학이든 해라.”

지극히 실용적인 접근이었다.

김용은 아버지의 말씀을 알아들었고 받아들였다.

이후 김용은 브라운대학에서 고전 및 인문학 교양을 착실히 쌓은 뒤 하버드대학으로 진학해 의학박사 학위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안의 주요 보직을 거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가 원하던 가치의 실현을 위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2005년 그는 US News & World Report가 뽑은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인’에 이름을 올렸으며, 2006년에는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그의 이름만 입력하면 인터넷에 줄줄이 뜨는 화려한 이력이 그를 말해주지는 못한다. 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기 훨씬 전부터 가난한 나라의 질병퇴치에 눈을 떴다.

■ WHO에서 일하다

“지구상의 가장 어려운 문제” 김용은 이 문제를 인류가 질병으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찾았다. 그 바탕에는 한국 역사가 받은 고난에 대한 감수성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 10 -

김용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에서 자신이 “전쟁으로 고통 받고 문맹률이 높았던 한국에서 태어났다”며 “한국이 세계경제와 결합하면서 가난한 나라애서 가장 역동적인 번영 국가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고 말했다. 그는 이를 통해 “사회간접자본 및 보건시설에 대한 투자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며 이 과정에서 “경제성장이 보건 교육, 공공재에 대한 투자 재원을 어떻게 만들게 되는지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용의 말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김용은 하버드대학의 의학도 시절부터 저소득층의 건강을 위한 비영리기관인 Partners In Health를 설립하는 데 앞장섰고, 이후에 PIH의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들의 활동은 아이티, 페루, 러시아, 르완다, 레소토, 말라위 같은 저개발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에서의 활동은 특히 다양한 계급과 인종에 파고들었는데 이때 인류학을 바탕으로 한 ‘인간에 대한 이해, 문화에 대한 이해’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2004년부터 2006년에 걸쳐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했던 당시의 경험은 그의 전문성을 더욱 굳혀주었다. 그는 WHO의 에이즈국장으로 재직할 당시 폐결핵 전문가로서 여러 국제 위원회장직을 또한 담당했다. 세계보건기구 에이즈국장으로 임명된 후 중저소득 국가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운동을 급격하게 확장시켰으며, 2007년까지 약 3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결핵이나 말라리아 등의 질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것이 바로 ‘저개발국들의 경제개발 지원’을 주요 사업 목표로 하는 세계·

은행의 총재 자리에 지명된 직접적인 배경이라 볼 수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가 사의를 표명한 지난 2월 이후 각계 인사 10여 명을 신임 총재 후보에 올려놓고 숙고해왔다고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가 최종적으로 김 총장을 선택한 것은 그가 국제기구에서 폭 넓은 경험을 했으며, 에이즈와 결핵 퇴치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저개발국가의 지원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보인다.

그는 그동안 세계은행이 원래의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있다는 비난에 대한 인식 위에 새로운 방향성 설정을 천명한 것이다. 과거 세계은행은 주로 개발

- 11 -

도상국의 도로, 항만 건설 등 경제개발에 차관을 지원했다. 다섯 살에 떠나오긴 했지만 김용의 고향 한국은 대표적인 세계은행 수혜국 가운데 하나였다. 영동고속도로, 서울, 부산, 대구 지하철. 부산, 묵호항 등도 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되었다.

그는 세계은행의 수장이 되면 자신이 세계은행을 어느 방향으로 운전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지명된 후 그가 낸 성명서에서도 그는 세계은행의 ‘개혁’ 카드를 먼저 꺼내 들었다.

■ 닥치고, 정품의 5퍼센트 가격! 닥치고, 복제약!

1990년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악성 결핵이 창궐했을 당시, 세계보건 기구도 속수무책인 상황에 처했다. 치료제가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의대 교수였던 김용은 복제약 도입을 제안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는 당장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고,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김용은 결국 오리지널 치료제보다 95% 싼 복제약을 대량으로 들여와 결핵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평범한 대학교수가 아니라 행정적인 돌파력까지 인정받은 셈이다. 김용은 2004년 세계보건기구 에이즈국장에 취임한 이후 300만 명의 아프리카 빈민 환자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3-5 계획”을 발표했다. 주변에서 ‘비현실적인 탁상공론’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원칙만 고집하며 움직이지 않던 탁상공론은 오히려 김용을 비난하던 자들이 보여준 형국이 되었다. 실제 결과치로 그가 옳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현재 그의 프로그램에 따라 700만 명의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김용과 PIH의 동료들은 전염병학적 지도를 그려보았다. 질병 사망의 원인 그리고 희생자 수와 연령 등에 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그려진 이 지도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딱 두 가지 색으로 대비된다. 곧 “무병장수를 누리다가 노환으로 세상을 뜨는 행복한 임종의 집단” 대 이들에 비해“10~40년 일찍 세상을 뜨며 사는 동안 병을 달고 사는 집단”만 표시된다. 서로 극명한대비를 이루는 색깔로 나타낼 수 있는 이 두 부류를 가르는 선을 김용의 동료인 파머는 광대한 에피 디바이드(the great epi divide)라 부른다. 에피 디바이드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그들을 극명하게 갈라 놓고 상식이나 통념까

- 12 -

지도 뒤집는다. 예를 들어 최고 수준의 의료 기관인 미국 보스턴의 브리검영병원에 인접한 빈민가의 영아 사망률은 쿠바보다 놓다.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 혹은 약 20억 명이 결핵균 보균자이고 특히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잠복중인 결핵균은 치명적인 상황으로 돌변할 확률이 10%를 뛰어넘는다고 한다.

이런 형편에 ‘효용성’이나 ‘비용’을 들먹이며 약값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더욱이 치료를 하다가 중단한 결핵 환자, 특히 김용이 경험한 페루 빈민가의 결핵 환자들은 약을 먹었다 끊었다 하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곧 다제내성 결핵의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한 의학 전문지에 따르면 “결핵은 결핵균에 의해 감염되어 발생하는 질환을 통칭하며 폐, 림프절, 흉막, 뼈, 심낭 등 다양한 장기에 전염할 수 있다.

현재 치료 성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되기는 했지만 누적 통계를 보면 단일 질환으로는 현재까지도 사망 환자 수 1위인 질병이다. 다제내성 결핵이란 치료에 가장 중요한 약제인 아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에 모두 내성인 결핵을 말한다. 그렇게 될 경우 치료 기간이 6개월에서 18개월로 늘어나게 되며 치료 성공률도 떨어져 치료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김용이 행정가로서 정면 돌파를 시도한 지침이다. 복제약은 오리지널 제품의 5%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값싼 결핵약이 저개발국 환자에게는 “마지막 희망이다. 그렇다면 복제약을 공급하겠다!” 타협할 수 없는 돌파구 앞에서 김용은 이처럼 정면 승부를 선택했다. 세상의 역사는, 아니 거창하게 역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세상의 진정 좋은 일은 이런 소수의 헌신과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 저소득층이 담배 끊기를 원한다면,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라.

김용은 1987년 폴 파머 하버드대학교 의대 교수 등과 함께 의료봉사기구인 파트너스 인 헬스(PIH)를 설립했다. 아이티, 페루, 러시아, 르완다 멕시코 등 세계 여러 곳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치료 기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헌신해 왔으며, 동료들과 함께 가난한 지역에 창궐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과 다제내성

- 13 -

결핵 등의 전염성 질환에 대응해서 지역사회에 기반을 둔 치료원칙을 개발했다.

김용은 의사이자 인류학자로서의 전문성을 활용해 가난한 병자들을 만나면서, 현대사회의 경제적 과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의 산물을 같이 향유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공감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에 오늘날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의학 담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날카로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가장 병에 많이 걸리는가? 동서고금 따질 것도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어디서 질병이 창궐하는가? 가난한 나라의 빈민가다. 가난한 사람들은 병원균이나 병을 일으킬만한 열악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된다. 병이 아니더라도 치료를 받을 기회는 부자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의료 시스템은 예를 들어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결핵 치료제 생산에 무관심하다. 그러므로 의학은 질병과의 싸움이기도 하고 사회 모순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가권력’도 다시금 들여다보아야 한다. 국가는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복지의 기본은 의료다. 건강권은 기본적인 인권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늘날 신자유주의 논리에 휘둘리는 국가가 비용 효율성을 내세울 때, 과연 국민의 건강권이 지켜질 수 있을까?

이와 관련된 문제들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조사한 한 의료인은 “만약 저소득층이 담배를 끊길 원한다면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라”고 지적한다.

오늘도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지 못한다. 의료인이라면 흡연자가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는, 흡연 너머의 진실에도 눈을 떠야 한다는 말이다.

■ 폴 파머와 함께 PIH와 함께

김용과 폴 파머는 관포지교의 미국판이자 현대판이라 할 만하다. 그들은 동갑이고, 함께 하버드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전공마저 똑같이 두 사람 모두 의료인류학을 공부했다. 이는 의학을 현지 문화와 생활습관에 접목시켜 의학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새로운 방법론이다. 복수전공이었던 김용은 의대 입학 6년 만에 의사자격(MD)을 땄고,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1987년에

- 14 -

는 두 사람이 관포지교로 의기투합해 의료구호단체인 PIH를 설립해 이상을 펼쳐보려 했지만, 자본금과 인적 자원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만만한 일이 결코 아니었다. 수익은커녕 돈을 쓰기만 하는 사업에 투자자가 나설 리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진심 하나로 선량하고 헌신적인 독지가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의 도움으로 두 사람은 먼저 아이티에서 결핵 퇴치에 나섰다. 아이티에서만 1990년대까지 10만 명 이상의 결핵 치료를 위해 헌신했다.

이들은 치료법만 개발한 게 아니다. 시스템에 눈 뜬 영민한 이 젊은이들은 미국 병원에서는 2만 달러에 달하는 약품을 아이티에서는 200달러에 제공하도록 했다. 약품 비용을 대폭 낮춰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특히 김용은 PIH에서 25년 동안 일하면서 세계보건기구와 공동으로 전 세계 40여 개국에 이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세계보건기구 에이즈 국장으로 발탁됐고 이곳에서 3년 동안 일하면서 전 세계 에이즈 환자 100만 명 이상을 구해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돈도 되지 않고, 권력도 쥘 수 없는 데서 분투할 수 있었을까? 폴 파머의 입을 빌려보자.

“언제 어디에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있거든, 난 그걸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요. 환자들에게 우유나 손톱깎이나 건포도, 라디오, 손목시계 등을 갖다 주기 위해서 …….

다섯 시간 하이킹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난 생각합니다. 신은 인간이 풍요롭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나 그것을 나누는 일은 그의 책임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책임입니다. 패배하는 이들에게 등을 돌려야만 이길 수 있다면 그런 승리는 쟁취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나긴 패배와 싸우는 겁니다.

이들의 활동은 어느새 아이티, 페루, 아프리카, 러시아, 미국의 취약 지역으로 넓혀졌다. 현지 문화와 특수한 사회적 맥락에 알맞은 의료 모델을 만들어 주고, 현지인을 훈련시켜 관리 책임을 맡긴 사업은 곧 그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다. PIH의 성공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자 세계보건기구가 이 모델을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 15 -

■ 페루의 빈민촌에서

지금부터 김용, 폴 파머를 비롯한 PIH의 활동을 취재한 르포르타주 ‘산 넘어 산’을 통해 김용의 의료봉사 분투기를 살펴보자.

김용이 PIH에서 “부사령관” 역할을 했다고는 하지만 PIH의 한 일원은 그 부사령관이라는 것이 실은 “바야꾸” 즉 크리올어로 “똥 치우는 사람”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다.

김용은 조직을 위해 단체의 장인 폴 파머의 업무 보조를 위해 기꺼이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고 의약품 및 의료기기를 구입하는 잔심부름을 했으며, 사업 보조금 응모를 위한 제안서를 작성했다. 폴 파머가 이동할 때는 반드시 목적지에 제시간에 도착하도록 점검하고 배려하는 보좌 역할도 했다.

김용이 결국 페루에서 직접 사령관으로 나서야 했을 때 그는 빈민촌 카라바이요에 지역 보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신속한 약품 지원을 위해 카라바이요의 성당 옆에 약국을 지었는데 이 약국이 그만 반군의 테러로 폭파되어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 김용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PIH가 다른 곳에 다시 약국을 짓긴 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 같았을 것이다. 나락에 빠진 사람을 돕고 싶어 손을 뻗어보지만 뻗치고 뻗쳐도 손이 닿지 않는 심정, 이때 옆에 있어준 친구가 폴 파머 였다. 폴 파머는 김용을 이렇게 위로했다.

“짐, 카라바이요의 빈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네 상처받은 자존심을 어루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 이런 걸 빈민을 위해 똥을 먹는다고 하는 거야.”

김용은 파머의 위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다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김용과 폴 파머는 더욱 가까워졌지만 서로가 다른 길을 보게 만들었다. 김용은 자신과 폴 파머를 ‘배 다른 쌍둥이’ 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김용은 폴 파머와는 달리 페루에서의 경험을 통해 보다 큰 기획, 국제기구, 거대제약회사의 횡포, 저개발국에 공급되는 약값의 통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피라미드 위쪽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부터 실질적

- 16 -

인 개혁이 필요하며. 그것만이 가장 큰 실행력을 갖는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근원적인 해결책을 찾는 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PIH가 의료계와 미국, 세계와 세계보건기구의 주목을 받게 된 뒤, 드디어 김용에게 더 큰 기회가 왔다. 2004년 세계보건가구 에이즈국장을 맡게 된 것이다. 물론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김용의 이러한 승승장구가 지위의 승진으로 해석될지 모르나 김용에게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더 갖게 되는 과정으로 해석되지 않았을까. 실제 이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그의 행적은 권력투쟁이 아니라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질병 퇴치를 위한 노력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저개발국가의 경험을 생생하게 겪은 사람에게 어디의 사령관, 부서장 따위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리라. 앞서 말한 대로 김용은 약값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가난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의 병을 광범위하게 고칠 수 있는 길을 여는데 모든 열정을 쏟았다. 이런 그의 모습을 알아본 세상이 2006년 ‘타임’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의 “미국에서 최고 지도자 25인”에 올렸는지도 모른다. 존경받는 의사를 벗어나 자신의 이상을 현실화 할 수 있는 힘까지 쥐게 된 그에게 성공 비결을 묻는 이들이 많았다.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어떤 자리에 오르거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늘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 약값 10만 달러어치를 떼먹은 비이성적인 로빈 후드

앞서 소개했듯이 “메디코스 아벤투레로스”. 모험꾼 의사, 이것은 김용이 페루의 보건 관리로부터 얻은 또 하나의 별명이다. 좋은 의미의 ‘모험’보다는 비아냥과 빈정거림이 잔뜩 묻어 있는 말이다. 자국을 위해 딱히 진정으로 일하지 않는 한심한 관리가 멀리서 와서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도 알아보지 못한 채 붙여준 별명. 그러나 그런 별명이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김용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오늘날 김용의 시진은 딱 점잖은 다트머스대학의 총장, 세계은행 총재 지명자만을 보여준다. 온화한 미소, 잘 정리된 두발, 깔끔한 수트, 빈틈없는 넥타

- 17 -

이 매듭. 그러나 맨주먹으로 PIH 같은 조직을 이끈 김용은 이런 강단도 있었다.

“지난 1990년대 초 보스턴의 브리검영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약값을 무려 10만 달러어치나 떼먹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전말은 이랬다. 한 동양계 교수가 병원약국을 찾아와 엄청난 양의 약을 주문했다. 교수는 신분증을 제시한 후 병원장과 아주 가까운 사이라며 직원을 안심시켰다. 브리검영은 하버드 의대의 실습병원이기도 했다.

화술이 뛰어난 교수는 직원들을 구워삶았다. 그의 감원이설에 깜빡 속아 넘어간 직원은 명함 한 장을 달랑 받고는 약을 그대로 내줬다. 다음날 보고를 받은 병원장은 담당직원을 호되게 꾸짖고는 즉시 그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이미 그는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남미 페루로 줄행랑(?)을 친 뒤였다. 약값을 몽땅 떼이게 된 병원장은 난감했다. 하버드대학교 의대 학장이 달려와 상황을 설명했다.

자초지종을 설명들은 병원장은 그제야 껄껄 웃었다. ‘로빈 후드가 따로 없네요. 감동입니다.’ 약값 소동은 통 큰 병원장의 결단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

이 일의 주인공이 바로 김용이다. 이같은 일화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김용은 하버드에서 ‘로빈 후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미국의 부자 병원에서 약을 빼앗다시피 해서 페루의 빈민촌에서 인술을 펼쳤으니, 어찌 로빈 후드가 아니겠는가.

문화비평가이자 독설가로 필명을 떨쳤던 노벨상 수상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반면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이 자신에 맞춰 살라고 고집을 부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발전은 비이성적인 사람이 주도한다.”

■ 한 곡 뽑지요!

PIH에서 러시아 톰스크 지역 결핵 퇴치 사업을 벌일 때다. 마침 KGB요원의 미국 망명 사건으로 분위기가 삼엄할 때였다. PIH 요원도 스파이로 취급

- 18 -

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래도 러시아 법무부 차관이 방문한 가운데 호텔에서의 환영 만찬이 시작되었다. 보드카가 몇 순배 돌았지만 딱딱하고 공식적인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이때 김용이 벌떡 일어났다. 마침 한 쪽에 놓인 노래방 기기를 발견한 그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제 모국 한국에서는 존경하는 분이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그분을 위해 못하는 노래라도 불러드린답니다.” 그리고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라밤바’까지.... 분위기는 갑자기 반전되었다.

만찬의 끝 무렵 러시아 장군이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친구들 결핵 퇴치 사업, 제대로 해봅시다.”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김용의 또 다른 노래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2012년 3월 11일 유튜브에는 “Time of my life-Dartmouth Idol Finals, 2011”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이 동영상은 김용 총장이 몸담고 있는 다트머스대학 축제를 촬영한 것이다. 영상 속에는 ‘더티덴싱’의 OST인 “Time of my life”를 부르는 학생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노래의 중간 부분에서 김용 총장이 직접 등장해서 춤과 랩을 선보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의 느닷없는 등장에 당시 객석에 있던 학생들은 환호와 박수로 화답하고 축제는 열기의 정점을 찍는다.

김용 촌장은 눈에 확 들어오는 흰색 가죽 재킷을 입고 야광선글라스를 착용하고는 미국의 최고 인기 그룹 블랙아이드 피스 맴버 월, 아이, 엠을 패러디했다. 그 자리의 김용은 학생들의 동지요 친구였다.

아이비리그의 첫 동양인 총장이 되었지만 그는 흔히 총장실이라는 곳에서 묻어나는 권위를 누리려하지도 않았다. 오직 그의 관심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 자신이 제대로 씨 뿌리기를 바라는 데에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하는 생각 따위는 없다. 김용의 젊은 날의 꿈과 열정이 고스란히 깃든 PIH에 대한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자신감과 에너지를 날것 그대로 드러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우리(PIH)를 보고 비현실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미쳤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죠.“

- 19 -

제2장 누가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다트머스대학 김용 총장의 집무실을 처음 방문한 것은 그가 총장 임명을 받고 세상 뉴스의 화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미처 취임식도 하기 전이었다. 집무실 앞에 자리한 비서실조차도 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김 총장의 방에는 책상 하나만 덩그마니 있는 상태였다.

그의 집무실에는 큰 책상 뒤로 묵직한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귀로는 김용 총장의 환대를 들으며 눈은 “인술제세(仁術濟世)”라는 글귀에 고정됐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김 총장은 서 있는 채로 말하기 시작했다.

■ 인술제세(仁術濟世)

“제 생각에 인술제세는 인술로 세상을 다스린다. 그러니까 의학을 공부하되 훌륭한 의사가 된다는 개인적인 목표만 생각한다든지 자신의 명예를 위한 의술만 생각한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질병이나 고통에 대해 헤아려봄으로써 사람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고 결국 가난하고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기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술제세란 “경세재민(經世濟民)”을 의학의 창으로 새로이 해석한 말이다. 그렇다면 인술제세의 뿌리인 경세제민의 듯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대한 실체이자 제도이자 방법론인 “경제”의 현재말이기도 한 경세제민은 “세상 온갖 일을 잘 다스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의 살림살이를 보살피는 ‘경세제민’은 예부터 治世의 핵심이었다. 경세가 제민을 위한 기본적 원리에 적용된다면, 제민은 경세의 구체적인 목표인 것이다. 연역하면 김용에게 제세는 의학의 구체적인 목표인 것이다. 질병은 물리적 고통과 지속적인 심리적 불안과 인간 존엄성을 파괴하므로 큰 그림의 경세에 대해 내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술, 곧 의학적으로 맞서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 의학에는 사람이 깃들어 있다

- 20 -

김용의 “인술제민‘에는 또 다른 아이디어가 빛난다. 바로 ”의학에는 사람이 있다“는 깨달음이다. 이는 폴 파머와 함께한 인류학 수업으로 더욱 빛났다.

예를 들어 이들이 카리브 지역으로 갔을 때, 그들에게 현지의 부두교는 큰 골칫거리가 될 수 있었다. 부두교가 의학을 악마나 부두교와 경쟁하는 흑마술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이 찾아간 그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김용과 그의 동료들이 부두교 의식을 야만인의 의식으로 치부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의사는 부두교 사제와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두교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을 함께 겪는 사이, 그들이 어떤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아 낼 수 있다.

김용은 상아탑에서의 배움을 현장에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며 구체적으로 환자를 만나왔다. 인류학은 관찰하는 학문이다. 관찰하고 있는 상황에 개입하는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김용과 동료들은 인류학을 ‘도구’로 만들어 고통을 관찰 할 뿐만 아니라, 고통을 연구서에 기록하고 관찰과 연구에 따른 해결책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까지 해 낸 것이다.

김용의 대선배 히포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환자는 의사의 진심어린 태도에 감명받아 회복되기도 한다.” “어떤 질병인가보다도 어떤 사람인가가 더 중요하다.” “의술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닳고 닳아 뻔한 말이라고? 알지 않는가. 닳고 닳을 정도로 많이 들어온 거룩한 진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하찮게 됐는지. 사람을 모르고 어찌 진정 병을 알겠는가. 서로 신뢰가 없는데 진료와 치료가 가능하겠는가?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려 애쓰는 오른손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병이 아닌 사람을 치유하고 구하고 싶어 했다.

■ 셰익스피어에서 경영을 배우다

김용이 다트머스대학의 총장으로서 다트머스 졸업생 중 가장 성공한 학생을 한 명을 꼽으라면 리안 블랙을 든다. 리안 블랙은 다트머스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모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 21 -

인터뷰 하는 와중에 그는 리안 블랙의 이름을 꺼내는 순간 ‘지금부터 내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푸근한 선생님 같은 표정을 지었다.

“리안 블랙에게 물어봤어요. 성공의 비결이 뭔지……. 그랬더니,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그는 여기까지 말해놓고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리안이 말하길, 다트머스나 하버드는 아무것도 가르쳐 준 게 없다는 거예요. 그를 가르친 것은 셰익스피어였다는 겁니다.”

알 듯 모를 듯한 나의 표정에 한 번 더 미소를 지은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인간세상의 모든 비극과 희극, 모든 종류의 인간이 등장하죠. 셰익스피어의 등장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배운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대답한 겁니다.

리안의 직업은 투자자다. 투자는 정확한 분석과 예측이 생명이다. 표면적으로는 돈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돈은 사람 손에 들려 있는 것. 그러니 투자의 기본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고, 정밀한 이해와 분석을 통해 정확한 예측을 해야 하는 것이다. 리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으며 인간의 본성과 배반, 증오, 사랑, 원망, 슬픔, 좌절 등을 샅샅히 들여다보고 연구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특정 경제상황이나 사회 상황에 어떻게 반응하고 돈을 운용할지에 대해 적용하고 연구한 것이다.

김용은 교육자로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학 작품을 깊이 읽을 것을 권한다. 그가 보기에 대중 소설을 읽는 건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통속적인 작품은 마음을 올바른 방식으로 자극하지 않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로 대표되는 훌륭한 동서고금의 고전들은 무엇보다 “사고력”을 촉진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고 그는 믿고 있다.

“고전은 마음을 신장시키므로 정말 중요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정말 복잡해요. 리안 블랙의 경우, 셰익스피어가 인간의 본성과 사고방식, 동기, 사악해질 수 있는 능력과 착해질 수 있는 능력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생각하면서 읽는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합니다.”

■ 아시아계 최초의 다트머스대학 총장

- 22 -

잠깐 뒤돌아가 보자 그가 총장에 취임하던 때로.

2009년 3월 2일, 그의 총장 취임은 미국 학계를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다트머스대학 신임 총장으로 한국인 최초, 아니 아시아인 최초로 취임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다트머스대학교 에드 핼드먼 재단이사장은 “김 총장은 다트머스대학의 사명 중 핵심인 배움과 혁신, 봉사의 미션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급변하는 환경에서 대학을 이끌어가기에 이상적”이라고 덧붙였다.

미극의 명문대 하면 흔히 ‘아이비리그’를 떠올린다. 아이비리그란 미국 동부지역 8개 명문대학교를 말한다. 브라운, 컬럼비아, 코넬, 프린스턴, 다트머스, 펜실베이니아, 그리고 하버드와 예일대학을 가리킨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매년 대학순위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외에도 서부의 스탠퍼드나 UC버클리, 동부의 존스홉킨스 등 명문대가 즐비하다. 이런 아이비리그 외의 미국 명문대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아이비 플러스’와 ‘퍼블릭 아이비’ ‘빅10’ 등이 존재 한다.

미국은 워낙 대학 서열과 인종 및 계급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나라여서 김용 총장의 임명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 들여졌다. 그 때문에 임명 후 ‘사고’도 뒤따랐다. 학내 일부 학생들이 선출 다음 날 재학생과 졸업생 1,000여 명에게 ‘김 내정자가 학교를 아시아화 할 것이며, 다트머스는 미국이지 중국 식당이 아니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낼 정도였다.

특히 다트머스대학교는 아이비리그 중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정도로 학생과 교직원 대부분이 백인 상류층인 곳이다. 이 사건은 이메일을 보낸 학생들의 공식 사과로 마무리됐지만, 노벨상(평화상 제외) 수상자도 한 명 배출하지 못한 한국은 학계에서는 변방에 가까운 나라다. 그런데 전 세계의 상아탑과도 같은 아이비리그에서 한국인 총장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일대 사건임에 틀림없다.

국내외의 일부 학자들은 김용의 총장 취임 당시 “김 신임총장의 업적과 상과가 탁월했던 이유도 있지만, 미국 학계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방증” 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나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밝힌 취임 소감은 세상의 관심과 놀라움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소박한 것이었다.

- 23 -

“이 특별한 자리를 위한 사람을 찾는 곳에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행운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게 전부일 겁니다. 그저 이 자리까지 온 게 감사했죠.”

어떤 자리에 오르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하는지에 목적을 두고 살았던 그의 삶이 총장 선출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 자신감 넘치는 초보 총장

총장에 오른 김용의 의욕은 대단했다. 2009년 10월 뉴욕 맨해튼 첼시피어에서 열린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파운데이션(KACF) 연례 만찬에 참석한 김용은 900여 명의 청중들 앞에서 자신의 성장 배경과 성공을 위한 메시지, 2세의 역할, 윤리 경영의 중요성에 관한 기초연설을 했다. 다트머스대학교의 경영 비전과 한국인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날의 연설 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이 여러 언론사를 통해 보도되었다. 핵심은 이렇다.

0 성공한 사람은 재능이 아니라 인내심이 있다!

오늘 기조연설에서 저는 아주 개인적인 내용을 말하려고 합니다. 부모님이 어떻게 만났고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겁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재능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있습니다.

0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라!

이민 2세들은 부모님들의 희생 덕분에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2세들은 이제 세계를 위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합니다. 나는 한인들이 단순히 기술을 개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밖으로 나와 세상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인들이 과학에서만 노벨상을 받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나 남아시아를 구해서 노벨상을 받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0 한국 교육은 좁습니다.

우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한국의 교육은 매우 좁습니다. 의학을 공부한 사람은 의학만, 법률을 공부한 사람은 법만 공부합니다. 하지만 다트머스대학은 폭넓은 교육을 제공합니다. 물리를 공부

- 24 -

하는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고,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도 매우 많은 분야에 걸쳐 광범위한 관심을 가졌던 인물입니다. 우리는 테크니션만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미래의 리더를 키우려는 것입니다.

0 한국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전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한국 학생들은 비전을 확장해야 합니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갖는 데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와 버락 오바마 같은 이들은 젊은이들에게 의욕을 고취시키고 동기를 제공합니다. 한국 학생들도 이처럼 비전을 확장하길 바랍니다.

다트머스대학에서 만난 학생들 가운데 똑똑한 학생들은 대개 한국 학생들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다트머스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든 학교지만 5%가 한국 학생입니다. 그게 바로 한국 학생들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좁은 시야에 갇혀 있지 말고 비전을 확장하십시오.

0 추천하고 싶은 책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넬슨 만델라, 달라이 라마, 폴 파머의 책들을 읽어보십시오. 폴 파머의 책은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황금 부엉이, 2005 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판 됨) 이 있습니다. 이들의 책을 읽고 나면 우리의 시야를 넓힐 수 있습니다.

0 3M을 3E로 바꿔야 합니다.

머니(Mobey), 마켓(Market), 미(Me)의 3M을 엑설런스(Excellence 우수한, 뛰어난, 창의적인), 인게이지먼트(Engagement 약속, 계약, 약혼, 고용), 에식스(Ethics 도덕, 윤리)의 3E로 바꾸어야 합니다.

■ 인종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다. 아시아, 한국, 비백인

김용은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아이비리그대학 총장이면서, 또한 최초의 동

- 25 -

양인 총장이자 동시에, 최초의 소수민족 유색인 남자 총장이다. 취임 당시, 아이비리그대학에서 유색인 총장은 딱 한 사람 있었다.

김용의 지인이자 친구인 루스 시먼스 브라운대학교 총장이 바로 그이다. 루스 시먼스는 아이비리그대학의 역사상 첫 번째 유색인 총장이다. 유색인종으로 따진다면 김용은 두 번째이자, 첫 번째 남성 총장이다.

선출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고 김용이 브라운대학교의 총장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친구 루스에게 전화를 했을 때 이런 조언이 돌아왔다.

“당신이 더욱 놀라게 될 것은 당신의 선출에 반응하는 당신의 공동체, 당신의 민족일 겁니다. 내 경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전부 열광했어요. 너무나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 했지요. 이제 그 일이 당신에게도 벌어질 겁니다.”

김용은 그때까지도 실감하지 못했다고 했다. 대학 총장에게 누가 관심을 가질까? 그런데 한국만이 아니었다. 미국계 한국인 사회. 심지어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그를 주목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말했지만, 우린 아직 인종차별 시대를 지난 게 아닙니다. 아직도 인종은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우린 훨씬 나은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국 최고의 명문 다트머스도 변했다.

“대학 신입생중 40%가 소수민족 그룹입니다. 많이 바뀌었어요. 50년 전엔 대부분이 백인 남학생이었어요. 지금은 50% 이상이 여학생이고, 40%가 소수민족입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어요.”

“제가 첫 번째라는 사실이 참 영광이지만, 제가 마지막은 절대 아닐 겁니다. 많은 여성들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며 소수민족에게도 그렇고요. 지금 아이비리그대학 총장의 절반은 여성입니다. 10년, 15년 전에는 아이비리그대학 총장의 절반이 여성이 될 것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성공은 능력이 아니라 인내가 가져다준다.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탁월성을 얻으려면, 최소량의 연습량을 확보하는 것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거듭 확인되고 있

- 26 -

다. 사실 연구자들은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매직넘버’에 수긍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1만 시간이다. 신경과학자인 다니엘 레비틴은 어느 분야에서든 세계 수준의 전문가, 마스터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 놓았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선수, 피아니스트, 숙달된 범죄자, 그밖에 어떤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한 것과 같다. 물론 이 수치는 ‘왜 어떤 사람은 연습을 통해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서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두뇌는 진정한 숙련자의 경지에 접어들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세 시간을 자기분야의 연습에 쏟는다 치면, 매일 세 시간씩 10년이면 1만 시간이다. 이때가 되어서야 우리 근육과 뇌는 최적의 훈련 상태에 다다른다. 이 과정이 생략된다면? 비틀즈도 빌 조이도 워런 버핏도 빌 게이츠도 없다. 그리고 그 1만 시간은 열정 없이는 쏟아 부을 수 없는 시간이다.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시간이다.

김용은 이를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가르치고, 적용하고 있다. 실제로 그 자신도 두 아들의 아버지인 김용 총장에게 자녀 교육에 대해 묻자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겁니다. ‘너희들은 아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우린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열정을 가지고 있다면 너희들ㅇ을 도울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의사가 될 필요는 없다.’ 작가가 되든 아티스트가 되든 뭐든 될 수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찾고 나면, 저의 역할은 아이들이 100 또는 1,000시간 동안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통과하게 하고, 결국 대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을 채우도록 도울 겁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과 작가가 되기 위해 매년, 매월, 심지어는 매일 훈련해야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술적

- 27 -

작가가 된다는 것은 재능의 문제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연구 결과는 다르게 말합니다. 시작점에서는 재능이 중요하지만 그다음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 김용의 인재론 : 누가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세계의 문제를 여러분의 문제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인 시기는 여러분 세대에게 세계에서 가장 절실한 도전 과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배움을 실천과, 열정을 실용과 결합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대는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 더 야망에 찬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꿈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열정과 실용을 겸비해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 갖고는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문제를 막을 수 없습니다.”

위 인용문은 김용의 다트머스대학교 취임 연설의 일부다. 김용은 세계의 사회적 문제와 싸우는 데 주력했던 자신의 상아탑으로 돌아와 대학 총장직을 맡기로 한 데에는 “자신의 성취보다 젊은 세대의 성취가 더 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로 취임 연설을 마무리 했다. 세계의 문제와 개인의 문제를 아우르는 인재, 꿈을 꾸되 꿈을 이룰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는 인재. 열정과 실용을 겸비한 인재,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직면한 문제에 파고드는 인재가 바로 김용의 인재상이다. 그의 인재론에 이어 살펴볼 만한 것이 “공부벌레론”이다. 특히 한국의 교육 현실에 빗대어 한국 부모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다. 김용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부만 한 소위 ‘공부벌레’는 이제 학교에서는 거의 원치 않습니다. 대신에 진지한 학업에 대한 열정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심오한 호기심을 가진 학생들을 원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부모님들에게는 자녀들이 배움에 대한 열정과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도록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이가 원치 않는데도 부모가 아이에게 좋을 거라는 생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은 보입니다. 우리 눈에 보여요. 학생이 강요받는지, 강요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움직이는지.”

- 28 -

“물론 성적의 하한선은 있습니다. 그다음엔 어떤 분야, 말하자면 미술이나 음악 또는 나비 전문가라든지 눈에 띄게 훌륭한 성과가 있다면. 그리고 그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다트머스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다트머스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묻는 내게 이렇게 설명한 그는 아버지로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덧붙였다.

“네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 평생 하고 싶은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찾아내라!”

■ 이제 세상은 공부벌레를 원치 않는다.

인재는 링크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접점이 되는 사람이다. 꿈과 현실을 가로지를 줄 알아야 한다. “열정이 먼저냐, 실력이 먼저냐"고 묻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질문인지 알 것이다. 인재는 열정과 실력 사이에 통로를 내는 사람이다. 이는 꿈과 현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눈에서도 마찬가지다.

‘공부벌레’는 태도에서도 큰 문제가 있다. 김용은 이렇게 설명한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 사이에 교사가 가르쳐야 할 것, 학생이 배워야 할 것은 과학이나 수학의 문제풀이 기술이 아닙니다. 정말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은 ‘마음의 습관’입니다. 물고기를 가져다주지 말고, 그물질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때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끈질김’입니다. 끈질김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에게 끈질김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영역에서 배운 것을 다른 곳에 적용하게 하는 일들이죠. 이를 과학 전문용어로 ‘대체’라고 합니다. 이는 한 주제에서 얻은 교육을 다른 곳에 적용하는 능력입니다.”

■ 텍스트를 해석하는 법, 그것이 인문학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글쓰기를 합니다. 우리는 이들이 다양한 글쓰기에서 통합적으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모든 종류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특히 김용은 인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일부 학교에서는 인문학과를 폐쇄하고 있다는데 옳지 않다고 봅니다. 글을

- 29 -

잘 쓰는 것은 읽는 법을 배우는 데서 출발하는 거니까요. 복잡한 텍스트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게 인문학이거든요. 우리는 이런 일들에 대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4년간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사회에 나가 첫 직장을 갖도록 훈련시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려는 것입니다.

“다트머스대 졸업생들도 취직 걱정을 하죠. 이곳을 졸업하고도 바로 직업을 찾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10년이 되면 다트머스대 졸업생이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통계 결과가 보여 줍니다. 다양하게 교육 받은 그들이 힘을 발휘하는 거죠.”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편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배우고 있노라면 녹봉이 그 속에 있다. (學也祿在其中애)”

먹고 사는 것도 큰일이다. 그러나 그것뿐이어서는 안 된다. 교양인이라면 보다 멀리 또 크게 보는 안목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장 표가 나는 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공부를 하다 보면 먹을 건 그 안에서 생겨”하고 슬쩍 학생들을 격발했던 공자 또한 그 옛날 사립학교의 장이었다.

■ 전환기의 인재상

전환기의 인재상은 융합과 링크를 이해하는, 적용할 줄 아는 스페셜리스트 겸 제너럴리스트여야 한다. 중심을 잡고 있되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이다.

김용이 바라는 인재상이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적인 인재 양성 방법으로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김용의 인문학은 지독히 고전적인 예술까지 포함하고 있다.

“예술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어떤 문제를 볼 때 두뇌의 여러 부분이 함께 움직입니다. 우린 이것이 인문과학 교육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봅니다. 공학과 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의 경우, 그들이 두뇌의 여러 부분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문제를 볼 때 훨씬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본다고 생각합니다. 다트머스가 다양한 활동을 강조하는 것은 이때문입니다.

- 30 -

오늘날 세계는 21세기의 특수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포스트모던이 지속되고 있는가 하면,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의 패턴도 패러다임의 교체기에 서 있다. 이럴 때 더욱 요구되는 덕목은 역시 융합과 링크의 리더십이다.

* 포스트모던 : 형식이나 경향 따위가 기존의 틀을 따르지 않아 새로움.

비 역사성, 비 정치성, 경계의 해체, 탈 장르화 등의 특성

* 융합 : 서로 섞이거나 조화되어 하나로 합쳐짐

* 링크(link) : 기계의 동력을 이어주는 장치.

두 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결합하여 실행 하는 일

(링크(rink) : 실내 스케이트장 )

김용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필요한 건 아주 복잡한 조직에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함께 공동으로 일하고, 무엇보다 높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업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필요합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훈련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트머스에서 제가 할 일이고 집중할 일입니다.”

2012. 9. 17. 월

* 다음에 제3장 ‘아들아 넌 누구냐?’부터 이어집니다.

- 31 -

반응형

'독서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0) 2012.10.02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2)  (0) 2012.09.24
南皐書院  (0) 2012.09.10
道義精神回復  (0) 2012.09.10
祝願士儒文化復興  (0)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