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2)

2012. 9. 24. 10:40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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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2)

- 세계은행 총재 김용의 마음 습관 -

■ 백지연이 인터뷰하고 쓰다

제3장 아들아 넌 누구냐?

한국인 이민 1.5세대. 다섯 살에 부모님 손을 잡고 미국으로 갔다. 참 한적한 시골 마크 트웨인이 아름다운 저녁노을에 찬사를 보냈다는 아이오와주 머스커틴에서 그의 가족은 행복하게 살았다.

그가 왜 의학의 길을 택했는지는 앞서 소개 했다.

김용은 그 당시 아버지의 조언이 가장 적절한 것이었음을 살면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의 조언에는 가난한 나라 이민 1세대의 고민과 불안이 절실하게 표현된 것일 수 있다. 김용이 어린 시절을 보낸 머스커틴은 당시만 해도 길에 지나가는 동양인을 쳐다보던 시대였다. 이민 1세대 부모들은 이민 1,5세대 또는 2세대 자녀들에게 “남의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차별받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을 것이다. 대개 한국 이민 1세대들은 잡화점, 주류소매점, 청과물시장, 어시장, 세탁소, 미용실 등에서 여느 미국인보다 두세 배 많은 일을 하면서 자녀들을 가르치고 생계를 잇고, 저축까지 했다.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들은 말 그대로의 의미인 실용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치과의사인 김용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 실용이 실존이었던 아버지와 철학자 어머니

김용의 아버지 김낙희 씨는 한국전쟁 당시 열일곱의 나이로 고향인 북한 남포를 떠나 혈혈단신 월남했다. 혼자 몸으로 서울대학 치과를 졸업한 김낙희 씨는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고, 뉴욕 유학 시절에 한 한인 모임에서 전옥숙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쯤 되면 김낙희 씨가 “일단 전문직부터, 일단 사회적 발언권부터 얻어라”라는 훈육을 김용에게 퍼부은 소이가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김용의 아버지에게 실용은 실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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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용의 어머니 전옥숙씨는 맨주먹, 혼자 몸으로 세상을 헤쳐 온 아버지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이다. 경기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아이오와대학에서 퇴계 이황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지식인 여성이다. 한 지인은 전씨에 대해 “전쟁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동생들을 돌보려고 마산에 머물면서 당시 경기여고의 부산 피난학교가지 통학했다”고 말했다.

전옥숙의 아버지이자 김용의 외조부는 시인 전병택이고, 외삼촌은 현재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김용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대 철학과와 프린스턴대 신학교 석사를 마친 뒤 뉴욕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이후 2004년부터 서울로 와서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역 연구자다. 트레이시 키더에 따르면 전옥숙은 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라인홀드 니부어와 개신교 신학자 폴 틸리히 등과 함께 유니온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유교사상을 연구했다. 그러나 남편 김낙희 씨를 만나고부터는 가정을 돌보는 데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한 인터뷰에서 김용이 묘사한 어머니의 모습은 이렇다.

“경기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 유학을 오신 어머니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셨어요. 지금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대한 책을 쓰고 계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신 분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퇴계와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시며 큰 뜻을 품고 세계를 위해 봉사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열 살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다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겁니다.”

2009년 김용이 다트머스대학교 총장에 임명되고 나서 한국 언론들은 김용뿐 아니라 가족 인터뷰까지 싣기 위해 그야말로 야단법석이었다. 특히 몇몇 여성지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웠나?” “다트머스대 총장 엄마의 특별한 자녀 교육법”등을 내걸고 전화 인터뷰를 시도 했다고 한다. 그때 전옥숙 여사는 이렇게 말하며 한사코 거절했다.

“그저 자식을 키우는 엄마의 일을 여느 엄마들과 다름없이 했을 뿐인데, 아들의 직장을 가지고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다는 착각을 퍼뜨리고 싶지 않습니다.”

김용은 이런 부모 밑에서 나고 자랐다. 열일곱 나이에 고향을 떠나 혼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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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헤쳐나간 아버지, 세상풍파를 머리와 성실함만으로 헤치고 나가 당시 한국인 누구에게나 꿈만 같았던 도미 유학생이 되어 전문직에 이른 아버지,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빼어난 철학도들과 교류하며 한국 철학사의 전통을 파고든 어머니.

김용 총장은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 가장 실질적인 직업인 치과의사로 일하신 아버지는 내게 근면의 미덕을, 철학을 공부하신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964년, 김용이 다섯 살 때 가족은 아이오와 주 머스커틴으로 이민을 갔다. 그곳에서 전옥숙은 미국 특유의 스포츠 문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아직 골프를 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임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또 세상이 머스커틴처럼 작고 좁지 않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 시카고나 디모인 같은 대도시로 아이들과 자주 나들이를 했다.

또한 부엌은 엄마와 아이들의 토론장이었다. 규칙적으로 출근해야 하는 아버지는 무슨 대단한 얘기가 그리도 길어지냐며 투덜거리다 잠자리에 들곤 했다. 전옥숙 씨는 그런 밤에 아이들에게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한편 전옥숙은 아이들이 시사 문제에 민감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또한 아이들에게 전쟁의 참상과 기아의 고통을 전하는 뉴스를 보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뉴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김용이 대학생이 된 후에 아버지로부터 “야 임마, 인턴십이나 끝내고 나서” 하는 소리를 들었다지만, 실은 이미 그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가르침 속에서 “고통을 치유하는 작업”을 상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김용을 의사라는 직업으로 이끈 사람은 아버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숙제는 금요일! - 아버지의 공부법

김용은 나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교육은 보다 더 기술적이고 전략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께서 아주 재밌는 기술이 있으셨는데 ‘금요일인 지금 공부해라. 일요일에 숙제를 하려고 미뤄둔다면 일요일에는 숙제를 못하게 하겠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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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숙제를 안 했죠. 그래서 일요일이 됐는데 ‘이제 안 된다. 숙제할 시간을 놓쳤다. 안 돼! 숙제하지 마라’ 하셨어요. 당연히 저희는 당황했죠. 그런 일을 여러 차례 겪으면서 공부는 제때에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어요. 아버지는 실용적인 분이셨고 치과의사로서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을 썼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를 갔고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으셨어요.

김용과의 인터뷰 곳곳에는 그가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해 마음을 쓰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이것은 아마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쟁을 열일곱 나이에 겪은 분인 만큼 고통은 실존이었을 것이다.

그의 생각의 흐름에는 개인의 영달만을 쫓는 이기심이나 계산이 깃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 세계를 위한 나의 책임은 뭘까?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진 경쟁력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이었어요. 제 경쟁력이라면 의술과 인류학이었으니까. 그리고 인류학은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이죠. 그래서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에이즈, 결핵……. 이같은 것들이 여전히 생명을 잃게 하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전염성이 있는 질병의 경우에 더욱 그렇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문제와 직명하게 됐습니다.”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특히 어른들. 한국 전쟁을 기억하시는 분들, 경제를 세우느라 어렵게 일하신 분들, 제 부모님을 포함해 미국의 제 부모님 세대들, 그분들이 하신 일과 그분들의 희생에 깊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죠. 많은 면에서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야 했던 세대들에 비하면 저희는 약합니다.

그러나 그런 고생을 치르신 분들의 유산이 저희에게 전달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유산이 저희의 뼈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 철학자 어머니의 가르침 - 세계의 문제가 바로 네 문제다

김용은 어머니로부터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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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주문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식이었다.

“‘마틴루터킹, 간디, 워싱턴을 생각해봐라.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니?’ ‘마음을 열고 사고를 넓혀라.’ ‘좋은 책을 읽어라.’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과는 좀 달랐어요. ‘열심히 공부해라’만 이야기하지 않으셨어요. 대신에 ‘넌 누구냐?’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느냐?’ ‘세상이 어떻게 보이느냐?’ ‘세상에 좋은 게 뭐냐?’ ‘누가 가장 위대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것은 실제로 유교학자들은 시골에서 소박하게 살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부 밖에서 왕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었죠. 어머니께서 알려주시길 90%의 유교학자들은 실은 반체제주의자들이었을 거라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회정의를 듣고 계속해서 싸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은 한국의 유교 전통에서 남존여비만 부각되고 있는 상황인데 실은 뚜렷한 사회정의 사상이 있었다는 겁니다.”

김용의 이런 발언에는 제야로 물러나와 유학 경전을 읽고 있는 옛 선비들의 생각이 배어 있다. 선비가 글을 읽을 때는 권력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가 누누이 강조하는 이야기. “나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라는 이야기. 어느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세상의 권력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가난 속에서 질병의 이중고를 껴안고 살아야 하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제2부 김용의 ‘마음습관’

제1장 글로벌시티즌이 되라

김용이 다트머스대학의 총장이 되면서 학생들에게 강조한 한 마디는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취임사를 축약한다면 “세계를 무대로” “발로 뛰어” “사회 정의를 찾는” 정신을 다트머스의 교육 목표로 삼겠다는 선언이었다. 다시 말해, 온통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벗어나 그저 종이 위의 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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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행동을 통해 전 인류를 위한 그 무엇을 하도록 학생들의 마음과 정신을 자극하고 교육하겠다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시회에서는 Globalization, 즉 세계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갖고 이제는 밖으로 뻗어 나가자는 취지도 있었지만 세계인이 되지 않고서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세계화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존적 대비에 관한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를 외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세계화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요한 점은 너무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변화, 혹은 진화하면서 세계화의 취지와 정의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의 흐름을 놓치면 몇 년 전에는 세계화의 일원이었더라도 현재는 아닌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 글로벌시티즌의 정의와 가치

스스로 또는 자녀를 ‘글로벌시티즌으로 교육시키고 싶으세요?’라고 물으면 ‘아니요’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정작 글로벌시티즌이 무엇인지, 그 정의가 무엇인지 하는 질문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다. 무엇인지. 어디를 향해 뛰고 있는지 모른 채 열심히 뛰는 건 머리를 땅에 박고 비지땀만 흘리는 격이다. 21세기 우리가 사는 현재, 우리가 살아갈 가까운 미래에 글로벌시티즌의 정의와 가치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김용은 어머니가 그에게 누누이 강조했듯, 그의 제자들에게 ‘눈을 크게 뜨고 멀리 바라보라’고 또 강조한다. 동시에 왜 멀리, 왜 넓게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고자 한다.

더 좋은 교육을 위해 총장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는 그 모든 복잡다단한 숙제를 풀 원칙으로 학생들에게 “세상의 고민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민 우리의 고민”으로 생각하고 준비해서 행동할 수 있는 자세와 가치관, 이것이 21세기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글로벌시티즌의 자세다.

■ 세상의 고민은 바로 나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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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상으로 연설할 때면 다음과 같은 말을 강조한다. 50~60년대에 태어난 부모 세대와 현대 201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에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생각해볼 점이 있다.

“한국과 미주 한인 사회는 이미 ‘잘 먹고, 잘 사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이제는 소외된 곳과 우리의 역량이 필요한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지난 25년간 아프리카 등에서 공중보건에 앞장 설 수 있었던 것은 이민 1세들의 땀과 노력으로 기본적인 경제적 기반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세대 한인들은 이제 세계인을 위한 일을 찾아서 해주길 바랍니다.”

“부모님과 제가 한 집에서 살 때 종종 ‘잘 먹고 잘 살아야 해’하셨어요. 한국 사회에서는 참 강력한 말이죠. 제게는 많은 이민 1.5세대 친구들이 있는데요. 그들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지 아느냐? 내가 박사 학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식료품 가게에서 일하는 이유는 너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너는 반드시 성공하고 큰 집을 가지고 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세월이 지나고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일까?’ 하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큰 집에 살고, 편안한 인생을 사는 데 집중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의 무엇이 가장 문제이며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의 관심사였습니다. 오로지 아들딸의 성공만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한 이민 1세대는 자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들은 문화예술에도, 시사에도 눈뜰 겨를이 없었죠. 이러는 사이에 이들의 세계는 점점 ‘그들만의 리그’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미국이 제공하는 국제적 통로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입니다.

국가적인 면에서도, 지금은 한국인으로서 한국만의 어려운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의 어려운 문제들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예로 들면 개발도상국 투자가 대폭 증가했습니다. 중국 또한 그렇습니다. 아프리카 전역에 있어요. 다리를 놓고 집을 짓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있죠. 타이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지금이 ‘한국이 세계에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할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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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이 강조하는 마음 습관

김용은 총장 취임 2년차인 2010년 학생들에게 특별한 강연을 했다.

“최근에 제가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뇌신경 생성이 18세에서 24세에 가장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시기의 뇌 활동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이 지점부터 내 호기심은 급속히 증가되었다. 만 24세면 대학도 졸업한 뒤라는 이야기고 만 18, 19세면 대학에 입학하는 시기다. 신입생 환영회, 취업의 좌절, 혹은 취업 축하 등으로 술독에 빠지는 일이 비일비재한 시기가 아닌가. 그런데 바로 그 시기에 뇌신경 생성이 제대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젊은 뇌를 자극시킬 것인가. 그 다음 이야기가 중금하기 짝이 없었다. 젊은 날의 지적 발달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한 김 총장은 결국, 이시기에 필요한 것은 ‘마음의 습관을 잘 들이는 일’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풀어갔다. 그가 말하는 마음의 습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 끈질김, 대체능력, 충동관리

김 총장이 첫 번째로 강조한 것은 ‘끈질김“이었다. 김용은 다트머스에서 가진 2011년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학교에서 정말 가르쳐야 하는 것은 과학이나 수학보다 ‘마음의 습관’이라는 것이죠. 자료를 보고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다트머스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학생들은 4년 동안 철저히 교육을 받고 졸업합니다. 그런데 컴퓨터과학 교수가 하시는 말씀이 그들은 졸업 후 3년 동안 모든 것을 다시 새로 배워야 할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과학과 기술이 워낙 빨리 발전하니까요. 그러니 그들이 4년 동안 다트머스에서 배운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움의 기술’이라는 겁니다.

‘배움의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는 ‘끈질김’입니다. 끈질김은 정말 중요합니다. 끈질김은 훈련시켜야 하는 거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체’능력입니다. 한 영역에서 배운 것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능력이죠. 이는 한 주제에서 얻은 교육을 다른 곳에서 적용하는 능력인데 학교에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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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을 교육을 시키고 있는지, 교육자들은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또 다른 것으로 제가 강조하는 것은 ‘충동관리’입니다. 충동을 관리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에는 깊은 명상의 전통이 있어요. 저는 지금 한국에서 스님이 된 친구로부터 명상을 배웁니다. 과학 연구에서는 명상이 신체적 건강에 중요할 뿐 아니라 학습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가 강조하는 능력은 ‘배움의 기술’로서 그 기술을 배우는 방법은 결국 우리의 마음을 훈련하는 것이었다. 김용은 마음을 훈련하는 것도 배울 수 있다고 확신했다.

■ 마음 훈련도 학습이 가능하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이미 보았듯, 김용이 강조한 훈련의 요체가 ‘마음’이다. 김용이 말한 ‘배움의 기술’의 바탕도 ‘마음’이다. 더구나 김용은 마음 훈련이 학습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용이 “저의 역할은 아이들이 100 또는 1,000시간 동안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통과하게 하고 결국에 대가가 되기 위한 1만 시간을 채우도록 돕는 겁니다.”라고 할 때에도, “성공한 사람은 재능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있다”고 할 때에도 결국 출발과 바탕은 마음의 습관 아닌가. 우물 안에 갇힌 ‘나를 벗어나 세계로 나갈 때에도 결국은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제2장 추론적 유연성과 글쓰기

김용이 취임 후 급속히 확장시키고 중점화 시킨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글쓰기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오늘날 학생들의 글쓰기는 다양하죠. 문자메시지, 트위터,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블로그, 여러 형태의 에세이, 논문, 본격적인 단행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통합적으로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소위 추론적 유연성을 길러주고자 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다양한 모든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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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소통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지금은 글쓰기를 1학년에게만 가르치지만 앞으로는 2,3,4학년까지 확대해서 글쓰기 프로그램을 만들 겁니다. 이직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주 드물어요.”

김용 총장이 이렇게 말하자. 나는 궁금해서 재차 물었다.

“다트머스 학생들도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가요?”

그는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 글쓰기만큼은 꼭 권하고 싶어요!

“물론이죠. 글쓰기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백지연씨는 책을 쓰셨으니까 글을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시잖아요. 어떤 훌륭한 작가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글쓰기는 쉽다. 혈관을 열어서 한 방울씩 떨어뜨리면 된다”고요. 글쓰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표현한 것이죠. 하지만 다행인 것은 글쓰기도 향상 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책을 쓰는 작업은 김용이 학생들에게 훈련시키고 싶어 하는 ‘추론적 유연성’을 훈련시키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자 명문 다트머스대학의 글쓰기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의 이 심각한 궁금증에 대해 김용은 매우 원론적인 답을 해주었다.

“글을 잘 쓰려면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한국이 실용에만 집중하고 인문학을 소홀히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겁니다. 덧붙이면 글을 잘 쓰는 것은 읽는 법을 배우는 데서 출발합니다. 복잡한 텍스트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그게 인문학이거든요 바로.”

■ 융합과 통섭의 능력을 겸비하라

“한국이 경제적으로 아주 잘하고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고, 저에게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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줍니다. 정말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앞으로는 빨리 모방해서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적 문화적 분야에서 한국이 도약을 하게 될 거라 봅니다. 제 생각에 한국은 큰 도약을 하기 직전에 와 있습니다. 물론 기술 분야에서도 계속 잘 해야 하지만, 문화 분야가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시 김용은 지적한다. 과학의 커다란 돌파구를 마련하는 진짜 위대한 과학자, 혹은 정말 창의적인 과학계의 지성들은 좁은 과학의 영역에만 관심사를 한정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정말 위대한 과학자, 지성들은 한결같이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이거나 위대한 작가였다. 한 분야만 잘 아는 전문지식의 바보가 아닌 음악, 문학, 문화 등 융합과 통섭의 능력을 겸비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인재만이 문제를 바라보면서 다양한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게 되고 사물을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데 추론적 유연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진정한 창의력은 이런 탄탄한 실력 위에서 터져 나온다.

제3장 젊은 세대의 냉소주의에 대하여

■ 우리는 할 수 있어요! 바꿀 수 있어요!

김용이 강조한 것 중에 또 하나, 교육자 된 입장에서 학교장의 입장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힘주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만연해 있는 ‘냉소주의’에 관한 그의 의견이다. 특히 젊은 층에 만연되어 있는 냉소주의에 대해 그는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 요즘 냉소적인 태도가 급증했습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 냉소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적합니다.”

작게는 개인의 문제에서부터 세계의 문제까지. 예를 들면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하는 식의 태도나 ‘나라꼴이 이게 뭐야, 다 웃기고들 있군. 지들이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봐. 더 잘난 놈만. 잘 사는 세상 아니야?’ 등의 태도. 또 환경문제에서는 ‘인간이 다 망쳐 놓고, 무슨 수로 고칠 건데. 지구는 망하게 되어 있어’ 등의 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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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꺼낸다.

“제가 냉소적인 태도에 대해 제 경험을 말씀드리죠. 폴 파머에 관한 책을 쓴 트레이시 키더라고 아시죠.”

여기서 잠시 트레이시 키더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는 폴 파머를 중심으로 펼쳐진 PIH의 활동을 담은 책 ‘산 넘어 산’으로 퓰리쳐 상을 수상한 작가다. ‘산 넘어 산’은 김용을 중요한 취재원이자 피사체로 다루었다. 이 책에는 김용이 페루와 러시아에서 펼친 의료봉사 활동의 디테일과 그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등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다.

“트레이시는 중요한 작가의 한 명이죠. 그는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저와 폴의 활동을 쫓아 다녔고, 우리는 늘 그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어요.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의학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을 바꿀 수 있어요. 사람들이 에이즈에 대해 가진 생각도 바꿀 수 있어요.’ 저희가 이렇게 말하면 트레이시는 반짝 하는 겁니다. 계속 냉소적인 태도로 말하는 거죠. ‘아니요, 불가능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죠?’

“좀 더 깊게 가볼까요?” 라고 물으며 김용은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 긍정은 이성이 아닌 도덕적 선택이었다!

“트레이시는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은 죽어가는 아이들, 병 들어가는 아이들, 끔찍한 장면들을 목격하면서도 그런 일을 다루는 회의에 나와서는 정말 낙관 그 자체였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라고요. 이런 말이었어요. 모든 상황은 부정적인 것 투성이인데 우리가 너무 낙관적이라는 거죠. 사람들은 가난하고 배고픔으로 굶어 죽고 있는데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너무 긍정적이라는 거죠. 이때 제가 그에게 해준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일하면서 끔찍한 상황들을 접하게 되면 긍정은 단순히 이성적인 생각으로 나오는 태도가 아닌, 도덕적 선택이라고요.”

‘도덕적 선택!’ 김용이 이 말을 했을 때 내 가슴 밑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덕적 선택. 정말 많은 뜻이 함축된 말이 아닌가.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혹은 가난과 병이 겹쳐서 속절없이 죽어가는 상황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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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서 이 세상의 질병과 가난은 우리 한두 사람이 도와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일반적인, 혹은 냉소적인 태도라면 ‘그래 상황은 정말 끔찍하군, 그러나 단 몇 사람이라도 구하기 시작해야지. 하다 보면 방법이 나올 거야’ 라고 생각하는 긍정적인 태도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는 김용이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일화를 기억하지 않는가. 그가 말하는 도덕적 선택은 그런 뜻이리라.

“처음 우리의 활동을 따라다닐 때 회의적이었던 트레이시가 한 일 년 정도 뒤에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냉소는 결국 겁쟁이가 마지막으로 숨는 곳이군요.’”

■ 냉소는 겁쟁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냉소는 겁쟁이들이 마지막 피난처다…….’ 나는 되뇌이고 있었다. ‘정말 강한 말이군요.’ 김용은 내 표정을 읽으며 더 깊이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냉소주의가 겁쟁이의 마지막 피난처란 말은 정말 깊은 통찰을 주는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이탈리아의 위대한 철학가 안토니오 트레이시는 ‘우리 모두는 이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기쁨의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현자의 통찰을 듣는 것.

그리고 그런 값진 통찰의 열매를 독자나 시청자에게 전달할 기대감이 마음

을 기쁨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람시! 이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 얼마나 황홀한 표현인가, 얼마나 정확한 통찰인가.

“이성의 비관주의는 ‘여기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군’이라고 말로 끝내지만, 이성의 낙관주의는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우리는 적어도 시도할 의무가 있고, 더 많이 시도할수록 더 많이 성공하고 아주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도 낙관주의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 누구를 위한 냉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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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젊은이들이 비관적이고 비판적이 되는 것 자체는 중요합니다. 비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건 중요하죠. 하지만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냉소주의의 명목으로 포기해버린다면 그건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라 비겁함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겁해지지 않고 낙관적이 되는 것은 도덕적 선택입니다. 겸손함과 진정성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런 것들이 세상을 변화 시킵니다. 포용하고 이해하고 문제에 같이 공감하고 낙관적인 정신으로 전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도덕적 선택입니다.

* 안토니오 그람시

- 이탈리아 공산당 창립을 주도한 행동파 철학자.

- 파시즘에 맞서 싸우다 11년간 옥살이. 1937년 옥중 병사

- 무관심과 냉소를 벗어나 ‘낙관’을 이야기 함

- 그람시가 남긴 몇 마디 말

“나는 무관심을 미워한다. 산다는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든다는 것이다.

무관심은 역사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다.

무관심은 새로운 사상의 소유자들에게는 무거운 납덩어리고,

가장 아름다운 열정조차 물 속 깊이 가라앉힐 수 있는 모래주머니이고,

어떤 전사나 어떤 강렬한 방벽보다 구질서를 훨씬 더 잘 방어할 수 있는 높이다.”

제4장 ‘전인적’이란 무엇인가?

김용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골프장을 산책로처럼 걸었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풋볼 팀의 쿼터백이었을 뿐만 아니라 농구팀의 주전가드였으며, 대학에서는 배구 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제가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을 운동을 하면서 보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건 운동이 학습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한국의 부모님들에게 아주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건강한 생활습관 말입니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운동할수록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다트머스대학 연구진에 따르면, 4,50대에 운동을 시작해서 마라톤 같은 격렬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4~5일 정도만 20~30분씩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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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히 20년간 운동하면 젊은 사람의 심장과 같아진다고 한다. 꼭 이런 결과만이 아니라도 체육활동의 효용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전통적인 이야기지만 몸과 마음의 조화와 함께 김용의 강조는 통섭의 지혜로 이어진다.

■ 김용이 강조하는 통섭의 지혜

“많은 사람들이 특정 주제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문과학교육의 중요성을 강하게 믿습니다. 너무 일찍 분야를 좁혀서 특정 주제에만 집중하게 되면 정신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합니다. 음악, 예술 등을 배워야 합니다.

다트머스대학교는 예술복합대학을 가지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아이오와대학 등 훌륭한 대학들은 대학 안에 예술대학을 갖고 있다. 이곳 출신들이 전형적인 클레시컬 오케스트라에서 힙합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예술을 소화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이들에게 예술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놀라울 뿐이었어요. 큰 데이터베이스에서 예술교육을 받은 젊은이와 받지 않은 젊은이를 비교해 보았더니, 예술교육이 학업 성취에 아주 중요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일수록, 다시 말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그 효과는 컸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집안 출신인 경우 예술교육은 학업 성취능력에 있어 부유한 집 출신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네 살 때 피아노 교육을 받으면 여섯 살 때의 갈등 해결능력이 향상된다고 합니다. 또 연기수업은 물리적 학습에 도움이 됩니다. 어떤 것을 관찰하고 따라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니까요.”

“공학과 문학을 함께 공부하는 사람의 경우, 두뇌의 여러 부분을 발달시키기 때문에 문제를 볼 때 훨씬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보게 됩니다. 다트머

스가 다양한 활동을 강조하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트머스는 예술, 체육 활동에 참여하기를 권장하고, 공학도에게는 비교문학을 같이 공부한다든지 하는 것을 권합니다.”

이를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김용의 생각은 다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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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든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대다. 피아노든 다른 악기에 접근하는 길도 이전 시대보다 다양해졌다. 교육은 이런 활동을 지원하교 격려해야 한다.

제5장 3M이 아니라 3E다!

■ “돈/시장/자신”에서 “탁월함/사회적 약속/윤리”로

김용은 다트머스 경영대 재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윤리를 가르쳐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슬로건화해서, 특히 과거의 ‘3M’패러다임을 오늘의 ‘3E’ 패러다임으로 시프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3M은 돈, 시장, 자신 등 세 가지 항목을 뜻한다. 반면 3E는 탁월함, 사회적 약속, 윤리 등 세 가지를 의미한다.

요컨대 시장에서 오직 나의 이익과 돈 만을 좇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사회적 연대의식과 윤리와 윤리 감수성을 갖추고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만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고 월가의 탐욕으로 상징되는 세계경제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불균형의 문제를 해결할 단초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제6장 스펙 쌓기요? 김용이 말하길……

“총장님 혹시 ‘스펙 쌓기’란 말 들어보셨어요?”

“스펙 쌓기란 말이 워낙 널리 퍼지다보니 혹시 하는 마음에 물었는데. 김용 총장은 웃으며 ”아니요“라고 했다. 내가 간략하게 설명하자, 그제야 김 총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우리 졸업생 증 25% 정도는 졸업시 취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들의 취직을 도와주기도 하죠. 하지만 그건 그들이 필사적으로 직업을 찾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4년 동안 다트머스의 복합적인 교육을 흡수하느라 여념이 없었죠.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후 다트머스 학생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면, 그 한 척도로 소득수준을 보면 졸업 당시 25%가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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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못했는데 10년 후에 그들의 소득은, 이건 다트머스에서 받은 학사학위가 최종학위인 사람만을 본 건데 미국 대학 중에서 최고로 소득수준이 높습니다. 왜 그럴까.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 그들은, 13개 분야의 다른 학문을 경험한다

“제 생각에는 본교에서 배운 것들이 그들을 아주 훌륭한 피고용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들의 사회생활 기술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다른 학문 분야. 13개의 서로 다른 학문 영역의 수업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문학, 과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해야 하죠. 그래서 이들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실제로 잘합니다. 정말 노력하고 분투해야 하죠.”

바로 이것이다. 대학을 ‘취업사관학교’ ‘기업연수원’으로 전락시키는 수치를 자초하지 않더라도 대학을 대학답게 만드는 법. 13개의 서로 다른 학문 영역을 경험하는 동안,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업무 환경과 영역의 특성에 적응할 수 있는 마음의 습관을 만들게 된다. 어디서든 대체가 가능하고, 어느 분야에서든 추론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사회에 내보내게 되는 것이다.

■ 있던 직업은 사라지고 없던 직업이 생겨난다

김용은 다트머스대학의 한 교수가 제시한 데이터를 털어 놓으며 말한다.

“2005년 다트머스 졸업생 중 40%는 (2011 현재) 2005년에는 없었던 직업을 갖게 됩니다. 말하자면 6년 후에는 졸업생 가운데 40%가 이전에는 없던 직업을 갖게 된 거지요.”

무서운 일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은 재빠르게 소멸되고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이 각광을 받을지도 모른다. 현재 시점에 매달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다가는 내 모든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한 ‘스펙’이란 것이 한순간 물거품이 되어 나를 무능력자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위협하거나 단지 겁먹으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준비를 하되 멀리 보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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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티즌’이 되라는 그의 당부와 도구로서의 어학능력을 기본적으로 갖추라는 그의 조언은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반복됐다. 그만큼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조건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좋은 엄마 되기’라고 답하곤 한다. 실제로 어렵기도 하거니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반드시 되어주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입을 다물곤 한다. 아무리 마음이 간절해도 원하는 만큼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기는 한다. 나는 현재 시점에 발 딛고 서 있지만 내 아이가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할 2020, 2030년대에는 과연 어떤 인재상을 필요로 할까. 21세기 인재상이란 무엇일까?

■ 성공의 정의가 도대체 뭔가요?

다트머스대학의 인터뷰 말미에 나는 대뜸 김용 총재에게 단문의 질문을 던졌다.

“총장님에게 성공의 정의란 어떤 것인가요?”

“성공의 정의요…… 정말 어렵네요. 잠깐 생각할게요.”

순간 미안해진 나는 “그럼요. 시간 충분히 가지세요.”하고는 나 또한 잠깐 혼자 생각에 빠졌다.

한참 후, 김용은 정리가 된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전에도 말했듯이, 이곳에 누군가가 되고자 온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러 온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그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성공입니다. 내가 세상을 위해 일을 하기보다는 나의 지위를 지키려고 노력할 때 스스로 이 일에서 물러날 겁니다. 이런 일(총장)은 엄청난 압력과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어떤 지위를 누리는 마음을 갖기 쉬운 자리입니다. 왜냐하면 정말 좋은 직업이니까요. 많은 똑똑한 사람들을 총장실에서 만나고, 그래서 이런 직업의 함정은 사람이 변해서 이 지위를 누리게 되기 쉽다는 겁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건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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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되는 것인데요. 이건 훨씬 어려운 일 같아요. 왜냐하면 이런 영역에서는 어려운 문제들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높은 데 있는 사람, 잘 나가는 사람일수록 자신이 누구이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건 잘 못된 거다. 멍청한 짓이다’등 직접 말을 하기 어려운 법이잖아요, 그런 사람은 겸손해지기가 정말 어렵죠. 게다가 자신의 힘이 어떤 정도인지 알기 때문에 자신이 하던 방식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파워는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짜증나는 것일 수 있어요. 정말 자신에 대한 평가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좋은 리더인지 혹은 아버지인지 남편인지 등에 대해 귀 기울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건 정말 어렵죠.”

“저에게 있어. ‘이제 충분히 성공 했다’고 말하는 시점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 성공이란, 저의 마지막 숨을 내 쉴 때까지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2012. 9. 22.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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