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찰 (2)

2013. 3. 4. 13:13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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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찰 (2)

■ 최재천 지음

■ 옷의 진화

요즘은 여름만 되면 거의 연일 30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무더위가 이어진다. 높은 온도도 문제이지만 푹푹 찌는 습도가 더 견디기 어렵다. 이럴 땐 그냥 홀딱 벗고 지냈으면 좋겠다. 집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그냥 벗고 다닐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인간은 과연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1988년 미국 콜로라도대학 고고학자들은 러시아 코스텐키 지방에서 동물의 뼈와 상아로 만든 바늘을 발견하곤 그것들이 기원전 3만~4만 년 전에 사용된 것들이라고 발표했다.

인간이 처음으로 옷을 입은 시점을 찾는 노력은 엉뚱하게도 기생충 연구에서 단서를 얻고 있다. 독일 막스플랭크 연구소의 인류학자들은 ‘사람 이(human louse)’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인간이 약 10만 7000년 전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 유난히 털이 없는 종이기 때문에 사람 이는 옷을 출현과 더불어 비로소 번성했을 텐데, 이 시기가 우리 조상들이 아프리카를 벗어나 보다 추운 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5만~10만 년 전과 얼추 맞아 떨어져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옷을 입는 관습은 오직 인간 세계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물을 연구하는 내 눈엔 옷을 입는 동물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날도래 애벌레는 작은 돌이나 나뭇조각들을 이어 붙여 매우 정교한 튜브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고 그 속에 들어가 산다. 그런데 이 구조물이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애벌레가 돌아다닐 때 늘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나는 그것을 집이 아니라 일종의 옷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흔하게 기어 다니는 집게도 사실 집을 지고 다니는 게 아니라 일종의 갑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다. 인간이 성장하며 때맞춰 새 옷을 사 입어야 하는 것처럼 집게들도 몸집이 커지면 점점 더 큰 고동 껍데기를 구해 갈아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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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달팽이는 집게와 마찬가지로 단단한 껍질을 이고 다니긴 해도 그것이 주변 환경에서 얻은 게 아니라 스스로 물질을 분비하여 만든 것이라는 점에서 옷이 아니라 피부나 가죽의 연장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검사들의 ‘옷’은 아무래도 달팽이보다는 집게의 껍데기에 더 가까운 듯 싶다. 동기가 검찰 총장만 되면 모두 훌렁훌렁 쉽게도 벗어던지니 말이다

■ 괴담

한마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온갖 괴담들이 나돌았다. 언론은 이런 사태를 가리켜 ‘괴담 천국’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별히 근거 없는 괴담에 잘 휩쓸리는 것일까? ‘회의론자’라는 잡지의 편집인인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에 미국 사람들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소개되어 있다.

미국 성인의 52%가 점성술을 신뢰하며 35%가 이 세상에 유령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그 중 무려 67%가 실제로 그들과 교감하는 심령 현상을 겪었다고 진술한다. 최첨단 과학국가 미국이지만 이 같은 수치는 해를 거듭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오늘도 초점조차 맞지 않은 UFO와 네스호 괴물의 사진을 붙들고 그들의 뒤를 쫓고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상한 것을 믿는 것일까? 마이클 셔머는 우리의 뇌에 이른바 믿음 엔진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인간은 우연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인과관계를 파악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믿음 엔진’을 가동하여 자연에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내고 그걸 잘 활용한 우리 선조들의 진화의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는 삶이 팍팍해질수록 어떻게든 그 불행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싶어 하고, 그러다 보면 자칫 사이비 과학의 미혹에 빠지는 것이다. 미신적 사고는 인과적 사고 메커니즘이 진화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난 부산물이다.

■ 세계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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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10년 독일의 사회운동가 클라라 제트킨(Klara Zetkin)이 제안하여 이듬해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에서 첫 행사를 개최하며 시작한 것을 훗날 유엔이 1857년과 1908년 3월 8일에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노동 조건과 지위 향상을 위해 벌인 시위를 기념하며 그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2005년 3월 2일에야 비로소 호주제 폐지에 관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의 새로운 전기를 맞았지만, 여성의 참정권 획득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 아니었다. 1948년 제헌헌법에 의해 남녀의 참정권이 공히 인정된 것은 뉴질랜드 1893년 호주 1902, 미국 1920년, 영국 1928년에 비하면 많이 늦었지만, 이탈리아 1945년과 프랑스 1946년에 견주면 그리 뒤지지 않았다. 스위스 여성들이 1971년에야 참정권을 얻은 것에 비하면 무려 23년이나 빠른 일이었다.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은 많은 나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사회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큰 기여를 했지만, 적지 않은 나라에서는 어머니날과 밸런타인데이와 뒤섞이며 그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선물을 주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변질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세계 여성의 날을 따로 기념하고 있지만 밸런타인데이는 누구의 계략인지 모르나 참으로 이상하게 꼬여 있다. 서양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남성이 여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로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정반대로 되어 있다. 그리곤 왠지 꺼림칙했던지 화이트데이라는 정체불명의 날을 따로 기념하며 초콜릿을 받은 남성이 여성에게 호의를 되돌릴 수 있게 해주었다.

사소한 일이라고 치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바로 이런 사소함이 세계경제포럼(WEF)의 남녀평등지수 발표에서 조사대상 134개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104위를 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화이트데이는 일본 후쿠오카의 한 제과회사가 마시멜로를 팔아먹기 위해 시작하여 기껏해야 일본, 대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나 지키는 기념일이다. 다음 주로 다가온 화이트데이에 한 달 전에 준 초콜릿을 되돌려 받을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우리 여성들이 안타깝다.

■ 이름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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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어로 내 이름을 ‘Jae Chun Choi’ 라고 쓴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며 내 깐에는 제법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름인데,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불러준 외국인이 ‘자에 춘 초에’라고 발음하는 걸 듣고는 미국에 도착한 이후 그저 ‘제이’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외국 동료들은 모두 나를 ‘제이 최’라고 부른다. 퍽 친한 친구들마저 내 이름을 자주 ‘Jay’로 표기해서 탈이지만 나는 애써 고치려 하지 않는다.

최근 실험사회심리학지에 발표된 호주 멜버른대 심리학과와 미국 뉴욕대 경영학과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친구도 많고 직장에서 더 성공적이란다. 500명의 미국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쉬운 이름을 가진 변호사들이 어려운 이름의 소유자들보다 훨씬 더 놓은 지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보다 먼저 진행된 선행 연구에서는 갓 상장된 주식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발음하기 쉬운 것들이 훨씬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름의 길이나 생경함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얼마나 발음하기 편한가가 중요하단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흑백의 장벽뿐 아니라 이름의 불리함까지 극복한 참으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오바마(Obama)’는 비록 짧지만 발음하기 결코 쉬운 성이 아니다. 게다가 이름이 ‘버락(Barack)’이라니.

연구진은 일종의 모의선거 실험도 실시했는데 역시 쉬운 이름의 후보가 훨씬 더 많은 표를 얻는 걸로 드러났다. 선거철만 되면 언제나 공천 심사의 기준을 두고 여야 모두 시끄러운 판에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아 면구스럽지만, 심사 대상자의 이름이 얼마나 발음하기 쉬운지 한번 소리내어 불러보시라.

■ 악기 연주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비록 단기간이나마 두뇌의 시공간 인지능력이 향상된다는 이른바 ‘모차르트 효과’가 등장하여 많은 부모들의 마음을 뒤흔든 게 어언 20년 전의 일이다. 모차르트 효과는 특히 어렸을 때 두드러진다고 하여 클래식음악 듣기가 태교의 필수 항목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서 다분히 인기에 영합하려는 미국의 조지아 주지사는 자기 주에서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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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 모두에게 클래식 음악 CD를 한 장씩 사주겠다며 10만 달러가 넘는 예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서양예술음악이 피타고라스 수학에 이론적 기반을 둔다고 해서 음악교육과 수학 실력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특별히 많다. 어려서 음악 교육을 받은 아이들의 산수 성적이 더 높다든가 클래식 음악을 들은 직후 수학 시험을 본 대학생들이 팝 음악을 듣고 시험을 본 학생들보다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식의 연구 결과들이 나와 있다. 그러나 로베르 주르뎅(Robertt Jourdain)은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에서 음악가들의 지능지수가 그리 높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모차르트 155, 멘델스존 150, 헨델 145를 빼면 대체로 평범한 수준이다. 믿거나 말거나 베토벤은 135, 바흐는 125, 그리고 하이든은 120 정도란다.

2010년에 발표된 뉴질랜드 빅토리아대학 심리학자들의 ‘모차르트 효과의 마지막 커튼’ 이라는 제목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온갖 논란에 휘말렸던 모차르트 효과는 한마디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 우리의 지적 능력이나 품성의 향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최근 미국 캔자스의과대학 연구진은 60~83세의 노인 70명을 상대로 수행한 연구에서 10년 이상 악기를 연주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비언어 영역의 기억력이 훨씬 탁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음악의 진화

2009년 6월 25일 팝 음악의 거성 마이클 잭슨이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수많은 노래 중에서 나는 그의 데뷔곡 ‘갓 투비 데어(Got bto be There)’를 가장 좋아한다. 음악성으로 치면 ‘빌리 진(Billie Jean)’ 이나 ‘스릴러(Thriller)’에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나는 다섯 살 소년의 그 해맑은 고음을 정말 사랑한다.

음악은 동서고금은 물론 모든 문화권에 존재하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간 속성이다. 음악인류학자 존 블래킹(John Blacking)은 그의 저서 ‘인간은 얼마나 음악적인가’에서 음악을 언어와 종교에 버금가는 인간 특유의 형질로 규정했다. 그러나 음악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진화한 것인지는 참으로 종잡기 어렵다.

음악의 진화에 대한 가설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다윈 자신이 운을 뗐고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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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라는 책으로 우리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Miller)가 제기한 ‘성 선택 가설’은 음악적 재능이 번식을 돕는다고 주장한다. 27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기타연주자 지미 헨드릭스는 공연마다 따라다니던 여성 팬 수백 명과 잠자리를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자식이 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몇 몇 진화생물학자들은 음악이 언어와 마찬가지로 집단 구성원 간의 결속을 강화시켜주는 일종의 ‘상호 털고르기’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영장류 동물들이 서로 털을 손질해주며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처럼 우리도 ‘아침 이슬’과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며 하나가 되곤 한다.

우리는 음악을 생산하고 향유하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소비한다. 마이클 잭슨이 남긴 빚이 상당하다지만 그가 평생 번 돈과 죽은 후에도 계속 벌 돈에 비하면 그야말로 구우일모(九牛一毛)이리라. 마이클 잭슨의 몸은 사라졌지만 그의 음악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도대체 왜 음악은 이처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일까?

■ 고통과 행복

행복은 종종 고통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30대 후반에 카피라이터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활발한 강연과 집필활동을 하며 ‘행복 전도사’를 자처하던 최윤희 씨가 남편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이었다. “700가지 통증에 시달리신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라며 구차한 ‘삶의 질(well-being)’을 포기하고 그 나름의 ‘죽음의 질(well-dying)’을 선택한 것이다.

고통은 철학의 중심 주제 중의 하나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의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동물행동학자들은 이 세상 많은 동물들도 나름대로 고통을 느낀다는 걸 충분히 관찰했다.

진화적으로 볼 때 고통은 생물의 삶을 보호해주는 적응현상이다 통증을 유발하는 자극은 우리 몸에서 곧바로 반사작용을 일으키고 다시는 그런 위험한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훈련시킨다.

우리는 모두 고통 없는 행복한 세상을 꿈꾼다. 그러나 고통이 사라진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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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반드시 행복한 삶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고통의 원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그 자체를 없앤다고 과연 이 세상이 행복해질까? 아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통 없는 세상이 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허구한 날 병원에 누워 있을 것이다. 고통은 분명히 소중한 진화의 산물이다.

최윤희 씨는 생전에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고 외쳤지만, 고통(苦痛)은 아무리 뒤집어도 여전히 통고(痛苦)일 뿐이다.

■ 종교와 과학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학은 종교와 늘 껄끄러운 관계를 맺어왔다. 다윈 이래 많은 진화학자는 신의 존재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세 사람의 걸출한 진화학자가 나란히 종교에 관한 책을 내놓았다. 그중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었다. 2007년 우리말로 번역되어 큰 화재가 되었던 이 책에서 도킨스는 종교의 해악을 조목조목 열거하며 인류 사회에서 종교를 깨끗이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하버드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그야말로 기독교에 일종의 ‘십자군 전쟁’을 선포한 도킨스와는 달리 남침례고 목사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의 ‘생명의 편지’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생명의 편지’는 우리말 역서의 제목이고 책의 원제는 ‘창조(Creation)’이다. 다분히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제목이 책에서 그는 지금 우리 인류에게 닥친 전례 없이 심각한 생명의 위기는 과학자와 종교인들이 함께 손을 잡아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호소했다.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주문 깨기’라는 제목의 책에서 진화철학자 대니얼 데닛은 언뜻 종교에 대해 가장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종교의 실상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보다 철학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종교를 축소하거나 또는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 종교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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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ins)가 식도암으로 62세의 짧은 삶을 마쳤다. 그의 책은 1년 먼저 나온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가려 그리 큰 조명을 받진 못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 도킨스의 책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다. ‘종교가 어떻게 모든 걸 독살하는가?’ 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그는 이 세상 거의 모든 죄악에 종교가 결부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우리 인류 집단은 거의 예외 없이 모두 나름의 종교를 갖고 있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어떤 동물에서도 종교라 부를 수 있는 행동은 관찰되지 않는다. 다만 여왕개미가 뿜어내는 강력한 페로몬의 영향으로 스스로 번식을 자제하며 평생 여왕을 위해 헌신하는 일개미들의 행동을 보며 사이비 종교 집단을 떠올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슷한 행동 유형이 벌, 흰개미, 그리고 벌거숭이 두더지에서도 나타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모두 우리처럼 사회를 구성하고 사는 동물이라는 점이다.

종교는 사회적 현상이다. 이 세상 어느 종교든 그 궁극에는 결국 나와 신의 만남인 기도가 있지만, 홀로 사는 동물에게 종교가 진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리는 종종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에 처했을 때 신에게 매달리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종교에 어느 정도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일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최초의 인류가 과연 종교에 귀의할 마음이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까?

“신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런 신에게는 기도하지 않겠다.”던 어느 신학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의 종교 행동은 반드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의생학

연못 가득 펼쳐 놓아도 연꽃잎에는 좀처럼 먼지가 쌓이지 않는다. 잎의 표면에 돋아 있는 수천 분의 1밀리미터 크기의 미세돌기 덕택에 별나게 동글동글 맺히는 물방울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먼지를 씻어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여 카이스트 생명화공학과 양승만 교수팀은 청소할 필요 없는 전광판이나 김이 서리지 않는 유리창을 제작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미세 구슬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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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에는 포스텍 화학공학과 차형준 교수팀이 2007년 자신들이 발견한 홍합의 접착물질보다 두 배나 더 강력한 생체 접착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홍합은 접착 단백질을 분비하여 그 모진 파도에도 끄떡없이 바위에 붙어 산다. 이번에 개발한 생체 접착제를 이용하면 실로 꿰매지 않고도 수술 부위를 봉합할 수 있단다.

나는 이처럼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자연이 스스로 풀어낸 해법을 가져다 우리 삶에 응용하려는 일련이 연구들에 의생학(擬生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기서 ‘의(擬)’는 ‘헤아릴 의’ ‘의성어’ 나 ‘의태어’의 첫 글자이다. 따라서 의생학은 자연을 흉내내는 학문이다.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자연을 표절하는 학문’이 된다.

우리 인간이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랴마는 본격적인 의생학의 효시는 찍찍이(Velcro)의 발명으로 볼 수 있다. 우리들 가방이나 신발에 붙어 있는 찍찍이는 원래 몇몇 식물들이 자신의 씨를 동물의 털에 붙여 멀리 이동시키려고 고안해 낸 구조를 스위스의 발명가 드 메스트랄(George de Mestral)이 표절한 것이다.

나는 의생학이 생물의 화합물이나 미세구조를 베끼는 생체모방 수준을 넘어 자연생태계의 섭리마저도 응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유전-환경 논쟁

생물학과 인류학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은 아마 우리 인성의 형성에 유전과 환경 중 어느 것이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논쟁일 것이다.

1834년 1월 17일에는 다윈의 이론 정립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생식질 이론의 창시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이 태어났다. 인간을 비롯한 다세포 동물의 몸에는 세포가 두 종류 있다. 하나는 난자와 정자, 즉 생식세포이고 다른 하나는 그 밖의 우리 몸 전체를 구성하는 체세포이다. 발생생물학자인 바이스만은 생식세포는 체세포를 만들어 내지만 반대로 체세포는 생식세포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점에서 유전물질은 오로지 생식 세포를 통해서만 후세에 전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라마르크의 ‘획득 형질 유전’의 오류를 지적하며 다윈의 이론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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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1911년 1월 17일은 다윈의 사촌이자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이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날이기도 하다. 우생학이 가치 편향적 연구로 이어져 오명을 얻긴 했어도 인간의 신체와 개성의 변이에 관한 골턴의 연구는 진화론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당시 영국 왕립학회 회원 190명의 부모와 친척들의 직업과 인종에 관한 정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여 능력이 출중한 사람끼리 더 가까운 친척관계를 갖고 있음을 밝혔다. 그는 또한 쌍둥이 연구도 수행하여 환경보다는 유전의 역할이 크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환경의 영향은 어디까지나 유전자가 깔아 놓은 멍석 위에서만 벌어진다.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고 물으면 아무래도 유전이 먼저이다. 유전자에 없는 일이 나타날 수는 없다.

3부 관계

■ DMZ

햇볕정책이 남북간의 대화를 촉진했다는 공로는 인정하지만 결과적으로 DMZ의 자연환경에는 독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정치적 평화는 종종 자연의 죽음을 부른다. DMZ는 이미 경의선과 동해선의 재개통으로 인해 바다와 단절된 고립 생태계가 되었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 끊겼던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로들이 모두 다시 이어지면 전 세계가 인정한 온대지역 최상의 자연보호구역인 DMZ는 결국 수많은 작은 생태계들로 토막 나고 만다.

생태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서식처 파편화’라고 부른다. 동일한 면적이라도 하나의 거대한 지역으로 보호하느냐 아니면 여러 개로 잘게 쪼개느냐는 상당한 질적 차이를 낳는다. 서식처가 여러 개로 나뉘면 핵심 구역 즉 깊은 숲은 사라지고 변방지역만 잔득 늘어나, 훼손된 생태계에서 흔히 보이는 기회주의적 생물들은 늘어날지 모르지만 두루미, 저어새, 늑대, 표범 등 정작 보호하고 싶은 큰 동물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우리나라를 세계적인 관광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이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나마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역시 DMZ가 갖고 있는 엄청난 생물다양성과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한 많은 역사적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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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에 열린 ‘DMZ 국제 심포지엄’에 동영상 축하 메시지를 보내 온 하버드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DMZ를 게티즈버그역사공원과 요세미티국립공원을 합쳐놓은 21세기 최고의 생태공원으로 만들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나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로 구름같이 몰려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DMZ를 통째로 보전하자는 계획이 꼭 꼭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 생물다양성의 해

‘창세기’ 1장 28절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만드시며“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소유권은 물론 그것을 정복하고 관리할 자격을 주신 것이다. 하느님이 이르신대로 우리는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키며 성공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실로 이 땅에 충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여하신 지구의 주인 내지는 자연 파수꾼의 역할을 생각하면 우리는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지난 세기 말 미국 뉴욕자연사박물관은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에 의뢰하여 저명한 과학자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들이 지적한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름 아닌 생물 다양성의 감소 및 고갈이었다. 생물다양성이란 자연계의 모든 조직 수준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형태의 다양성을 총칭한다. 따라서 어느 특정 지역의 생물다양성은 그곳에 사는 종은 물론 생태계와 유전자의 다양성까지 포괄한다.

현재 생물학자들이 기재한 지구의 생물 종은 거의 200만에 이른다. 이는 1000만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 전체의 생물 다양성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실적이다. 우리가 찾아내어 이름을 붙여주기도 전에 사라지는 생물이 너무도 많아 안타깝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모든 생태계마다 다양한 생물들이 꼭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다. 우리 강에서 쉬리나 줄납자루가 사라진다해도 아직 피라미와 붕어가 있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반문한다.

직육면체 모양의 나무토막 54개를 18층으로 쌓은 다음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하나씩 빼내는 ‘젱가’라는 게임이 있다. 젱가 게임에서 어느 나무토막을 빼야 전체가 무너지는지 모르듯이 우리는 아직 어느 종이 사라지면 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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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가 붕괴하는지 알지 못한다. 인간이 다스린 생태계치고 생물다양성이 제대로 유지된 곳을 찾기 어렵다. 우리 DMZ가 세계적인 생물다양성의 보고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오로지 인간의 접근이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정록 시인은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고 했다.

■ 생물다양성의 날과 ‘나고야 의정서’

매년 5월 22일은 유엔이 제정한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이다. 생물다양성의 감소를 막기 위한 전략에는 보존(保存)과 보전(保全)의 두 가지가 있다. 보존은 ‘현 상태를 그대로 잘 보호한다’는 뜻이 강하고, 보전은 ‘온전하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잘 간수하여 후손에 물려주자는 의미의 ‘보전(保傳)’을 선호한다.

원래 환경보호 관련 정책과 운동은 자연경관이 특별히 훌륭한 지역을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격리하여 보호하자는 방식으로 시작했다. 이를테면 국립공원과 같은 방식이다.

자연자원도 공평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정신에 입각하여 단순한 보존보다는 보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92년 ‘생물다양성협약’이 채택되면서 선진국의 일방적인 생물자원 이용에 제동이 걸리고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주권이 인정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 제15조에는 ‘생물유전자원의 접근에는 사전 승인이 필요하고 자원의 이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2010년 제10차 당사국총회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확정하여 이른바 ‘나고야 의정서’를 채택했다.

우리나라의 생물다양성은 면적에 비해 퍽 높은 편이다. 개미만 보더라도 남한에만 135종이 살고 있는 데, 이는 영국이나 핀란드의 세배나 되는 다양성이다. 남의 생물자원을 부러워하지 말고 다시는 ‘미스김라일락(우리나라 고유종 식물이었으나 외국으로 반출되어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고 현재는 역수입 되고 있음)’ 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도 생물 주권을 잘 지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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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 재앙

2011년에는 새해 벽두부터 세계 곳곳에서 날아드는 동물들의 떼죽음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새해 첫날에는 미국 아칸소 주에서 무려 1000마리의 찌르레기가 죽어 떨어졌고, 1월 8일에는 루마니아에서도 수십 마리의 찌르레기가 어느 공원 근처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는 게 발견되었다. 시카고 인근 미시간 호 연안에는 전어 수천 마리가 떠밀려 왔고, 영국 캔트 지방의 해안에는 수만 마리의 게와 불가사리의 사체가 널브러졌다.

성급한 사람들은 앞다퉈 지구의 종말을 운운한다. 하지만 이런 생태 재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출애급기’ 7~11장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도록 여호와가 이집트에 내린 각양각색의 생태 재앙들이 묘사되어 있다. 성경이 무릇 역사 기록이라면 이들은 모두 실제로 일어난 재앙들일 가능성이 크다. 엄청난 수의 개구리들이 강과 운하에 넘쳐나며 떼죽음을 당해 악취가 진동하고, 집집마다 파리 떼가 들끓고, 메뚜기 떼가 나타나 난데없는 우박으로 이미 쑥대밭이 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죄다 먹어 치웠다. 또한 “생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 심한 악질을 내리고, 급기야는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여 “전국에 전무후무한 곡성”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툭하면 강과 호수의 물고기들이 집단으로 폐사하여 둥둥 떠오르고 천연기념물인 독수리마저 심심찮게 떼죽음을 당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묵시록’을 들먹이며 드디어 하느님이 우리를 벌하시는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이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저지른 짓은 아닐까 짚어봐야 한다. 일단 조류독감을 의심하며 부검해본 결과 루마니아 찌르레기들은 농부들이 포도주를 걸러내고 버린 찌꺼기를 먹고 알코올 중독으로 죽은 것이란다.

최근에 번역된 ‘식량의 종말’의 저자 폴 로버츠(Paul Roberts)는 우리나라 전역을 휩쓸었던 구제역과 조류독감의 원인을 대규모 공장식 집단 사육에서 찾는다. 바이러스의 공격이야 늘 있는 것이지만 이 같은 대규모 발병은 대체로 우리 인간의 탐욕이 자연생태계의 섭리를 거스르며 자초한 일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즉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다 했다. 자연은 끝내 중용의 덕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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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자기의 역사

2012년 6월 29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도자기의 역사를 거의 2만 년 전으로 밀어 올리는 논문이 실렸다. 하버드대학 인류학과의 바요세프(Ofer Bar-Yosef) 교수가 이끄는 미국 연구진과 베이징대 연구진은 중국 장시성(江西省) 시안렌동(仙人洞) 동굴에서 발견한 도자기 조각들이 지금으로부터 1만9000~2만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도자기를 사용했다는 설명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최초의 도자기는 이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약 9000년 전 진흙으로 빚은 다음 햇볕에 말려 사용한 토기로 알고 있다가 1960년데 뜻밖에도 일본에서 기원전 1만 5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즐문토기가 발견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하라 사막 이남에 살던 아프리카 사람들도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들로 인해 농경과 도자기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토기를 사용하던 일본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농경이 아니라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은 그의 ‘요리 본능’에서 단순히 불의 소유가 아니라 불을 이용한 요리의 발명이 우리를 진정한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불의 발견이 요리에 필수적이었지만 도자기의 발명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요리는 기껏해야 꼬치구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도자기가 그저 식량을 보관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오리를 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몇몇 도자기 조각들에는 불에 그슬린 흔적이 역력했다고 한다. 빙하기 사람들도 아마 곰국을 즐겨 먹었던 모양이다.

■ 온실기체

2008년 2워 22일 우리나라 환경재단은 기후변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할 목적으로 기후변화센터를 만들었다. 영국은 2000년에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등 7개 대학의 기후변화 센터들을 묶어 아일랜드 출신의 19세기 물리학자 존 틴덜(John Tyndall)의 이름을 딴 틴덜 센터를 설립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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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틴덜은 1859년 5월 18일 영국왕립연구소 지하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실험을 끝낸 후 일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하루 종일 실험을 수행했다. 확실한 증거를 손에 쥐었다.” 그는 오늘날 우리가 ‘온실기체’라고 부르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 오존 등이 각각 일정량의 방사선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한 것이다. 온실기체는 지표면에서 반사되어 대기권 밖으로 빠져나가는 열을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해주는 역할을 한다. 만일 온실기체가 없다면 온도가 33도나 낮아져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해로운 법이다. 18세기 중반까지 거의 변함없던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2세기 반 동안 무려 1.7배나 증가했다. 이산화탄소는 일단 공기 중에 배출되면 수만 년 이상 머물며 지구온난화를 부추길 수 있다. 그래서 지금 과학자들은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방안을 열심히 궁리하고 있다. 틴덜의 연구로부터 1세기 반이 흘렀건만 아직 우리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나는 요즘 ‘아주 불편한 진실과 조금 불편한 삶’이란 제목의 강연을 하러 다니느라 바쁘다. 과학자의 연구는 물론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의 삶이 변해야 한다.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온실기체의 배출을 막아야 한다.

■ 글로벌 디밍

지구온난화라는 뜻의 영어 표현인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거의 일상용어가 된 지; 오래지만 ‘글로벌 디밍(global dimming)’ 즉 ‘지구차광화(地球遮光化 )’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화석 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나 메탄 같은 온실기체가 발생하여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만, 아울러 이산화황, 매연, 미세 먼지 등을 만들어내 구름의 속성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구름은 먼지나 꽃가루와 같은 공기 중의 미세 입자에 작은 물방울 입자들이 들러붙어 만들어진다. 그런데 오염된 공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름에는 미세입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태양광을 그만큼 더 많이 외계로 반사한다. 지구차광화가 진행됨에 따라 충분한 태양광선이 지구 표면에 다다르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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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차광화를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로 항공기 배기기체로 만들어지는 비행운도 의심을 받고 있다. 아무리 비행기가 많이 날아다닌다지만 그 정도로 영향을 미칠까 의구심이 생긴다면 기상학자들이 우연히 관찰한 연구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1년 ‘9 ‧ 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직후 3일 동안 전 세계적으로 항공기의 운항이 전면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 3일 동안 놀랍게도 지구의 온도가 무려 1도나 올라갔다.

2011년 여름 우리나라 통계청은 한반도의 지구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의 두 배에 이른다고 발표한 바 있다. 1912-2005년 동안 세계 평균온도는 0.74도가 증가했는데 우리나라의 기온은 1912-2008년 동안 1.7도나 상승한 걸로 나타났다. 이어서 나온 우리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대도시의 열섬 효과가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지구차광화도 원인의 하나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는 이제 워밍과 디밍을 함께 다뤄야 한다.

■ 생태 엇박자

지난 몇 년간 우리 집 마당의 목련은 동네 다른 집 목련들보다 줄잡아 며칠씩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내와 나는 우리 집이 동네에서 가장 양지바른 터를 가졌다고 으스대고 산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우리 목련은 지난주 초에 이미 꽃잎들을 죄다 떨구고 말았다.

최근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1978년부터 2008년까지 30년 동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봄꽃인 개나리, 진달래, 벚꽃의 개화일이 6~8일 정도 빨라졌다고 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식물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고 생장이 촉진되는 현상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듯싶다. 농작물의 생장기가 길어지면 그만큼 수확량도 늘 것이니 말이다. 남한의 경우 벼를 이모작할 수 있는 논의 면적이 벌써 90만 헥타르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개화시기가 빨라지는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온갖 불길한 변화들을 예고하는 조종(弔鐘)이다. 네델란드 생태학자들은 2006년 5월 4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네델란드 알락솔딱새가 지난 20년간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 90%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식물의 잎은 점점 더 일찍 돋아나고 그를 갉아먹으려는 곤충의 애벌레들도 예전보다 일찍 등장하는데 강남 갔던 알락솔딱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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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날 돌아온단다. 그러니 아무리 서둘러 짝짓기를 해도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올 즈음이면 벌써 상당수의 애벌레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생태 엇박자’가 여기저기 일어나고 있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개나 되던 미국의 벌통이 2005년에는 240만 개로 감소했다. 세계 식물의 1/3이 곤충의 꽃가루받이에 의해 생산되며 그 임무의 80%를 꿀벌이 담당한다.

이대로 가면 정말 언젠가 꽃들은 모두 나와 헤벌쭉 웃고 있는데 벌들은 전혀 잉잉거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올지도 모른다. 갑자기 일찍 피고 저버린 우리 집 목련이 야속스럽다.

■ 물 부족 국가?

매년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듣는 얘기가 있다. 우리나라가 ‘유엔이 정한 물 부족국가’라는 얘기. 하지만 분명히 해두자. 유엔은 한 번도 대한민국을 가리켜 ‘물 부족 국가’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래 전 미국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내 놓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분석 결과를 우리 정부가 계속 재탕하고 있다. 그들은 한 국가의 연평균 강수량을 인구수로 나눠 1인당 강수량을 계산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은 거의 20~30%나 웃도는데 워낙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인구수로 나누면 졸지에 사막국가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런 걸 분석이라고 내놓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3월 22일은 또 ‘세계 기상의 날’이기도 하다. 앞으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강수량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 ‘물 낭비 국가’이다. 일년 중 매우 짧은 기간에 집중하여 쏟아지는 강수를 잘 관리해야 하는 ‘물 관리 필요 국가’이기도 하다.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해 누수 방지와 물 절약 정책으로 수자원 활용의 극대화를 꾀하는 유럽 국가들로부터 배울 게 많아 보인다.

‘물의 미래’의 저자 에릭 오르세나(Erik Orsenna)는 묻는다. “굶어 죽을 것인가? 목말라 죽을 것인가?” 미래학자들은 이번 세기 동안 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메콩 강, 요단 강, 나일 강 등 여러 나라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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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다. 우리는 참으로 복을 넘치도록 받은 나라이다. 우리의 강은 모두 우리 땅에서 시작하여 우리 바다로 흐른다. 우리끼리만 잘 합의하여 보전하면 슬기롭게 물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 물 문제야말로 사회통합의 중요한 과제이다.

■ 시간

장자는 지북유(知北遊) 편에서 인생의 덧없음이 마치 달리는 흰 망아지를 문틈으로 보는 것과 같다며 “백구지과극(白駒之過隙)”이라 했다. 말하자면 옛 사람들은 이와 상관없이 느긋하게 살았던 것 같다. 하루를 넉넉하게 열두 토막으로 나눴다. 그래서 “오시(午時)에 보세”라고 하면 오전 11시에서 오후 한시 사이에 만나자는 얘기였다. 요즘처럼 5분 늦었다고 닦달하는 게 아니라 한두 시간은 여유롭게 기다려 주었다.

우리는 원래 시간을 지구의 자전에 기반하여 측정하다가 자전 속도의 불규칙함을 인식하고 1960년에 국제도량형총회에서 지구의 공전 속도에 기초한 초를 시간의 기본 단위로 채택했다. 그러다가 1967년부터는 세슘 원자가 9,192,631,770번 진동하는 기간을 1초로 정의한 이른바 ‘원자초’를 세계 각국의 표준시로 쓰고 있다. ‘세슘원자시계’는 30만 년에 1초 밖에 틀리지 않는 정밀한 시계이다.

하지만 보다 정밀한 시계를 만들려는 인간의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008년 7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기존의 세슘원자시계보다 10배나 더 정확한 KRISS-1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시계는 2010년 2월 미국표준기술연소가 내좋은 제2의 ‘양자논리시계’이다. 알루미늄 원자를 이용하여 만든 것으로 오차의 범위가 37억년에 1초밖에 되지 않는 초정밀 시계이다.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노라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가 남세스럽다. 평소 우리는 기껏해야 초 단위로 생활하고 있는데 올림픽에서는 1초의 백등분 단위 하나 둘로 메달의 색깔이 바뀐다. ‘채근담’에 보면 명나라 학자 홍자성은 “부싯돌 불빛 속에서 길고 짧은 것을 다툰들 그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는가?” 라도 물었다지만, 그때부터 불과 4세기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는 이제 부싯돌 불빛도 가늘게 쪼개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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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생생활에 사용하는 시계가 만일 1초의 100 또는 1000분의 1까지 잰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실 그 옛날에는 휴대용 시계가 없어서 ‘오시’를 대충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으로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때론 무지가 여유를 허한다.

■ 공룡과 운석

지구의 역사에는 적어도 다섯 차례의 대멸종 사건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벌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 년 전 거대한 공룡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린 사건이었다. 1980년 알바레스(Alvarez) 부자가 제창한 가설에 따르면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떨어져 그 충격으로 들뜬 먼지들이 햇빛을 가려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 식물들이 죽고, 그 식물들을 먹고 살아야 했던 초식공룡 그리고 또 그들을 잡아먹었던 육식공룡들이 잇따라 멸종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질학자들은 멕시코 유카탄 반도 앞바다에서 폭 150킬로미터의 거대한 웅덩이를 발견했고. 그것이 지름 10킬로미터의 운석이 초속 30킬로미터로 달려와 충돌하여 생긴 것이라는 계산까지 해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에 생성된 백악기와 제3기의 경계 지층에서 지구에는 희귀하지만 운석에는 흔히 함유되어 있는 이리듐이 평소보다 무려 30배나 높게 발견되었다. 이 밖에도 암석이 대규모로 녹아내린 흔적 등 여러 가지 증거들에 힘입어 이 가설은 어느덧 정설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1979년에 도미하여 진화생물학에 막 입문한 내게 이 설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무지하면 용맹하다 했던가? 그렇다면 왜 악어와 뱀 등 공룡과 가까운 파충류 동물들은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며 나는 소수의 반대파에 몸을 담았다. 그런 내게 2009년 7월 30일 자 과학저널 ‘네이처’ 인터넷 판에 게재된 미국 워싱턴대학 연구진의 논문은 설욕의 희열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계산에 의하면 지난 5억년 동안 거대한 운석이 지구와 충돌했을 가능성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겨우 두세 차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며 그나마도 토성과 목성이 포수의 글러브가 되어 거의 확실하게 막아주었을 것이란다.

최근 프린스턴대학의 지질학자가 운석보다는 광범위하게 벌어진 화산활동에 의해 공룡들이 죄다 사라졌을 것이라는 이른바 ‘화산설’에 새로운 증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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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설명들이 지나치게 큰 붓으로 세밀화를 그리려는 노력처럼 헛돼 보인다. 기후변화의 영향속에 털가죽을 입고 나타난 우리 조상 포유동물과의 경쟁에서 지나치게 비대한 공룡들이 뒤처지고 말았다는 생물학적 가설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외계 생명

1995년 어느 일간지에서 그 신문의 사진기자가 경기도 가평에서 찍은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사진에 대해 나의 의견을 물어온 적이 있다. 나는 아직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튿날 아침 신문에는 사진과 함께 고 조경철 박사님의 긴 설명이 실렸고 그 아래 한 줄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 전혀 관심이 없다.”

내가 외계 생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과학적인 대답을 할 수 없어 말을 아낄 다름이다. 하지만 하도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지라 얼마 전부터 나름대로 사뭇 비겁한 결론이지만 하나 갖고 있다. 무려 천 개도 넘는 은하계가 존재하는 저 광활한 우주에 오로지 지구에만 생명이 존재한다고 우기는 것은 확률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우주 어딘가에 생명이 존재하리라 믿기로 했다. 그러나 그 생명이 반드시 DNA의 복제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의 생명과 동일하리라고 믿는 것 역시 확률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명 체계를 지닌 존재들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들이 우주선을 타고 뻔질나게 우리 곁을 다녀간다고 믿기에는 아직 이렇다 할 증거가 없다.

■ 장맛비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다.” 소설가 윤홍길은 1973년에 발표한 작품 ‘장마’에서 장맛비를 물걸레에 비유했다. 소설의 배경인 1950년대는 물론, 소설이 쓰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땅에 쏟아지는 비는 이 세상을 기껏해야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실뿐이었다. 그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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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비가 달라졌다. 1994년 여름 오랜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내가 고국 땅에서 처음 접한 비는 어려서 맞던 장맛비가 아니었다. 연구를 위해 늘 드나들었던 중남미 열대에서 맞던 열대비에 영락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빗소리만 듣고도 우리나라가 아열대화 하는 것 같다는 칼럼을 썼다가 기상학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젠 그분들이 더 앞장서서 아열대 얘기들을 한다.

2009년 여름 경남 마산에서 시간당 최고 102밀리미터의 폭우가 쏟아졌다. 부산에도 시간당 90밀리미터의 비가 퍼부어 주택가 비탈길에 세워 두었던 차들이 도로 입구까지 쓸려 내려가 무너진 벽돌들과 뒤엉킨 사진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쯤 되면 물걸레가 아니라 거의 세차장 호스 수준이다. 소설 ‘장마’에서 외할머니가 퍼붓던 저주의 말이 이제 우리 앞에 현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더 쏟아져라! 어디 한 번 더 쏟아져서 바웃새(바위사이)에 숨은 빨갱이마저 다 씰어(쓸어) 가그라!”

2009년 태풍 루사는 하루 동안 870밀리미터의 비를 쏟아 강릉의 바위 틈을 후벼 파내 동해 바다로 쓸어버렸다. 2009년에 서울국립과학관에서 뉴욕자연사박물관 기후변화 체험전(展) ‘I Love 지구’가 열렸다. 전시회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870밀리미터의 폭우에 잠긴 서울의 미래 모습이었다. 남산 기슭의 한옥마을이 처마 밑까지 물에 잠기고 지하철 2호선 시청역에는 허리춤까지 물이 들어찬다. 비가 100밀리미터씩 8~9시간만 내리면 벌어질 일이다.

예전에는 한강이 범람하여 마포와 영등포가 물에 잠겼다. 앞으로는 강이 범람하지 않아도 도시에 떨어지는 빗물만으로도 도시의 기능이 마비될 것이다. 강만 정비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도시의 인프라 자체를 재정비하지 않으면 기후변화의 대재앙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태풍

2010년 9월, 우리나라를 훑고 간 태풍 곤파스는 곳곳에 뚜렷한 상처를 남겼다. 최대 직경이 450Km 밖에 안 되는 3급의 소형 태풍이었지만 중심권의 기압 경도가 워낙 급격하고 한반도를 불과 네 시간 만에 관통하는 바람에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30~60미터에 이르는 기록적인 강풍이 관측되었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근본적으로 같은 기상현상이다. 다만 태풍은 북서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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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허리케인은 동태평양과 서대서양에서 일어나는 열대 폭풍우를 일컬을뿐이다. 인도양에서는 사이클론, 오세아니아 지역에서는 윌리윌리라고도 부른다. 태풍과 허리케인은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6월부터 11월 사이에 언제든 일어날 수 있지만 2011년 9월 21일은 지난 100년간 특별히 강한 비바람이 몰아친 날이다. 1934년에는 초대형 태풍이 일본열도를 강타하여 무려 303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1938년에는 미국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상륙한 허리케인으로 500~700명이 사망했고, 지난 1989년에는 허리케인 휴고가 사우스캐롤라이나 해변을 초토화 시킨바 있다.

9월 21일은 유엔 ‘국제 평화의 날’이다. 세계 각국에서 비정부기구(NGO)들이 중심이 되어 핵무기 확산을 막고 정전(停戰)과 비폭력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나도 몇 년째 제인 구달 박사의 부름을 받아 학생들과 함께 평화의 비둘기를 만들어 날리는 행사를 진행해왔다. 자연과의 평화가 인류평화 못지않게 중요해지고 있다.

■ 두 동굴 이야기

2012년은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던 1859년 두 도시 이야기‘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하여 파리와 런던에서 일어난 계층간의 갈등을 그린 소설로 무려 2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잡지에 연재하는 형식으로 발표된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회는 11월 26일 출간되었고, ’종의 기원‘이 서점에 나온 날은 그 이틀 전인 24일이었다. 이 두 책 이야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나는 인간 본성과 자연환경의 관계를 설명할 때 종종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의 제목을 패러디한다. 이름하여 ‘두 동굴 이야기’이다. 하버드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본래부터 자연을 사랑하는 유전적 성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를 ‘생명(bio-)’ ‘사랑(-philia)' 즉 ’바이오 필리아‘라고 부른다. 나는 그가 내세운 거의 모든 이론을 추중하지만 이것만큼은 따를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인간에게 자연 파괴의 본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 동굴에 살던 우리 조상들을 상상해보자. 한 동굴에는 유난히 새벽잠이 없으신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밤중에 용변을 보러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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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는 손주에게 할머니는 단호히 밖에 나가서 보라 이르신다. 그날 밤 손주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또한 허구한 날 사냥을 나가려는 식구들에게 할머니는 동굴이 더러우니 대청소를 하자고 불러 세우신다. 그에 비하면 건너 동굴의 가족은 훨씬 분방하게 살았다. 그러다 보니 동굴에는 이내 먹다 버린 음식 찌꺼기와 오물로 악취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는다.

자 어느 가족이 더 잘 먹고 잘 살았을까? 나는 단연코 후자 였다고 생각한다. 그 옛날 우리는 살던 동굴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더러워지면 그냥 새 동굴로 옮겨 가면 그만이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보다도 자연을 잘 이용해 먹었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이다. 다만 이제 우리에게는 더 이상 옮겨갈 동굴이 없을 뿐이다. 자연을 보호하고 사랑하라는 본능은 우리에게 없다. 자연이 참다못해 우리를 할퀴기 전에 생명 사랑의 습성을 체득해야 한다.

4부 통 찰

■ 웨지우드와 다윈

2011년 4월 29일에 열린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의 ‘세기의 결혼’이 따라 하기 열풍을 일으켰다. 케이트 미들턴이 들었던 은방울 꽃 부케와 똑같은 걸 만들어 달라는 주문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비싸기로 유명한 은방을 꽃을 네덜란드에서 공수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예비신부들도 로열 웨딩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웨지우드 도자기를 많아 찾았다고 한다. 그 무렵 우리나라 대형백화점의 웨지우드 판매가 최고 세 배까지 늘었단다. 웨지우드가 잘 팔렸다니 왠지 지하에 계실 다윈 선생님이 흐뭇해하실 것 같다. 자연선택론을 창시한 진화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바로 웨지우드 집안의 사위이다. 다윈의 부인 에마는 당시 웨지우드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학자는 모름지기 청빈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다윈은 뜻밖에도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재테크에 귀재를 발휘했다.

다윈은 에마와 결혼할 때 당시 잘나가던 의사였던 아버지와 웨지우드의 소유주였던 장인이 마련해준 ‘결혼 지참금’을 탁월하게 운용하여 평생토록 가족에게 안정적인 삶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결혼 당시 받은 돈보다 훨씬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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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액을 부인과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그가 1881년까지 인세로 번 돈이 1만 248파운드였으니 요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50만 파운드(9억 원) 쯤 된다. 이처럼 다윈은 인세로도 상당한 돈을 챙겼지만 무엇보다도 투자의 귀재였다. 특히 철도회사에 투자한 것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사상은 다분히 좌파 성향이었지만 그는 요즘 말로 하면 ‘강남 좌파’의 전형인 셈이다. 뉴턴 경제학의 시대가 저물고 바야흐로 다윈 경제학의 시대가 열린 이때 그가 만일 살아 있다면 ‘버핏과의 점심’이 아니라 ‘다윈과의 점심’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 ‘나가수’의 진화

요즘 TV에는 ‘나는 가수다(나가수)’라는 프로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미 중견의 가수들이 스스로 덤벼든 대결 구도 속에서 청중 평가단의 선택을 받는 가수는 오직 1등 하나뿐이다.

함께 산행을 하다 곰에게 쫓기게 되자 갑자기 사냥꾼이 신발끈을 조여 매는 것을 보고 그의 친구가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곰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다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곰보다 빨리 달리려고 이러는 게 아닐세 자네보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네” 이 이야기는 언뜻 살벌하게 들리지만 교훈은 오히려 따뜻하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최고가 아니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로는 그저 남보다 뒤지지만 않으면 살아남는다. ‘나가수’의 가수들이 그 치열한 순간에도 서로에게 관대할 수 있는 것은 설마 자기가 꼴등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컷오프(cutoff)만 면하면 내일도 그린에 나갈 수 있다.

■ 테드 케네디

2008년 8월 25일 전 미국 상원의원 에드워즈 테드 케네디가 사망했다. 무려 47년 동안이나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그였지만, 우리는 그를 늘 형들과 비교하며 고개를 흔들곤 했다. 하지만 그가 사망했을 때 온갖 언론매체에 실린 추모의 글을 읽으며 나는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는 초지일관 거침없이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치인으로서 평생 1만 5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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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의 표결에 참여했고 무려 300개 이상의 법안을 만들어 통과 시켰다. 추모의 글들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솔직히 그의 형들이 한 게 무엇이냐고. J. F. 케네디는 대통령직을 3년도 채 못하고 암살당했고, 그 집안에서 가장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는 로버트 케네디는 대선기간에 암살당해 시작도 변변히 못해 보고 떠났다.

막내인 테드 케네디는 숱한 추문과 악재로 인해 비록 대통령은 못했지만 미국 의회사에 그만큼 엄청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거들먹거리며 살았을 법한 그는 사실 가지지 못한 자들을 위해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려고 쉬지 않고 다른 의원들의 방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새파란 신참 의원들까지 찾아다니며 표를 구걸하다 여의치 않으면 협박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네가 이 건물에 있다 보면 언젠가는 내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을 텐데 그때 보자.”며 방을 빠져 나오면 대부분 황급히 따라 나오며 표를 약속했다고 한다. 죽음을 앞둔 병실에서도 그는 전화통에 매달려 살았단다.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 법안을 통과시켜 달라고 다른 의원들에게 전화하며 그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어느 추모사에는 글로 쓰기엔 좀 상스러운 이런 표현까지 들어 있었다. 미국 정치사에서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한 “다른 놈이 있으면 한 번 나와 봐라.(Who the hell else is out there?)”

■ 스마트

나는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가장 자주 사용할 단어 중의 하나가 ‘스마트’라고 생각한다. 스마트는 사용자가 이미 2000만 명을 넘어섰고 이른바 스마트시장의 규모도 연간 50조 원을 육박하고 있다. 조만간 우리는 스마트홈에서 스마트TV를 보며, 스마트카를 타고 스마트시티를 누빌 것이란다. 기존의 전력공급 시스템에 IT를 접목하여 공급자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하며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할 수 있는 차세대 지능형 전력망 스마트그리드(smart grid)가 구축되고 있다. 바야흐로 ‘스마트’ 시대이다.

이처럼 스마트라는 맗은 여기저기에 쓰이고 있는데 정작 그 뜻이 무어냐고 물으면 명확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스마트(smart)’라는 단어는 원래 ‘똑똑하다(intelligent)’, ‘맵시 있다(dandy)’, ‘깔끔하다(neat)’, ‘고급스럽다(fashionable)’, ‘민첩하다(quick)’ 등의 뜻풀이를 가진 말이었는데 언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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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컴퓨터로 조절되는’이라는 뜻을 얻으면서 기존의 다른 좋은 의미 모두를 아우르는 대단히 포괄적인 단어로 거듭났다. 꼭 새로운 일이 아니더라도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고,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스마트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2001년부터 유엔이 추진하고 있는 새천년생태평가 프로젝트의 2005년 보고서는 웰빙(well-being)과 일빙(ill-being)의 차이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추진할 수 있는 상태와 그러지 못해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태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스마트는 이제 ‘현명하다(wise)’, ‘행복하다(happy)’라는 뜻도 품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그저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방식에서 효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방식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기술들을 통제 가능하도록 서로 융합하고 단순화하여 노자가 말한 무위이화(無爲而化)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 바로 스마트가 꿈꾸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게 하루가 다르게 스마트해지는데 도대체 정치는 언제나 스마트해지려나?

■ 조권 효과

소녀시대와 빅뱅 그리고 2pM 등 이른바 아이돌 그룹이 이끄는 최근의 한류 열풍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교류가 활발한 것도 아닌 남미 어느 나라의 공항에 우리 아이돌 스타를 보기 위해 수천 명의 현지 팬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며 그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 효과만으로는 왜 일본도 아니고 프랑스도 아닌,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한류의 성공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분석에 나는 스스로 ‘조권효과’라고 명명한 요인을 보태고 싶다. 2pM의 멤버인 조권은 무려 2567일의 최장기 연습생 생활을 이겨낸 성공 신화의 주역이다. 어느 날 불쑥 재능을 인정받아 신데렐라 데뷔를 하는 대부분의 외국 가수들과 달리 우리 아이돌 가수들은 오랜 훈련 기간을 거치며 정교하게 다듬어진 전천후 실력자들이다. 그들은 노래와 춤 뿐 아니라 교양과 인성교육까지 받는다. 소녀시대 멤버들과 함께 연습하다 진로를 바꿔 카이스트에 진학한 과학영재 장하진의 경우는 예외가 아니라 아이돌의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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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를 함께한 한 두 아이돌 청년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반듯한 젊은이들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법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엄청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제갈량에게도 면밀한 준비가 없었더라면 제아무리 때맞춰 불어준 동남풍인들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준비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은 준비된 곳에서만 일어난다. 나는 우리 아이돌 연습생 중에서 이다음에 우리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인재들이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믿는다. 설령 끝내 조권이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권 효과는 어딘가에서 화려하게 꽃필 것이다. 면밀한 준비란 그저 마침맞게 하는 게 아니라 넘치도록 하는 것이다.

■ 선택

2012년 4월 11일에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이른바 선택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도덕도 선택의 영역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일찍이 카뮈는 선택의 총합이 결국 인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윈에 따르면 생명현상은 모두 선택에 의해 진화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암컷이 수컷을 고르는 배우자 선택과정이 중요하다. 암컷들이 선호하는 형질을 가진 수컷의 유전자가 후세에 전달된다. 제아무리 건강한 수컷이라도 궁극적으로 암컷이 선택해주지 않으면 그의 유전자는 후세에 남겨지지 않는다. 동물의 번식 구조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아마 ‘레크((lek) 번식’일 것이다. 레크는 ‘놀이’ 라는 뜻의 스페인어로서 들꿩이나 도요새 같은 새들에서 보듯이 해마다 번식기만 되면 여러 마리의 수컷들이 한 곳에 모여 암컷의 간택을 받는 랑데부 장소를 일컫는다. 그곳에서 암컷은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고 온갖 수컷들의 춤과 노래 실력을 비교하며 장차 태어날 새끼들의 아빠를 선택한다. 어딘지 모르게 우리네 선거 현상과 흡사해 보이지 않는가?

그런데 선택이란 본래 만만치 않은 법, 선택을 받고 싶어하는 쪽이 힘들 건 말할 나위도 없지만 선택을 해야 하는 쪽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레크를 찾는 많은 암컷들이 자기보다 경험이 많은 다른 암컷의 선택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동 생태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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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의 따라 하기’ 행동이라고 하는데, 어느 경험 많은 암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는 바로 옆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길게 줄지어 서 있는 암컷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투표를 할 때 후보들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혹시 부모님이 지지하는 후보라서, 친구가 좋아하는 후보라서 또는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후보라서 그냥 찍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레크에서 길게 줄 서 있는 암컷 새와 그리 다를 바 없다. 후보들의 사람 됨됨이와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나의 현명한 선택이 내 삶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 폐

일본 동북대지진 참사를 지켜보며 자연의 무심한 용틀임 앞에 우리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가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엄청난 자연재해의 순간에도 침착함과 배려심을 잃지 않는 일본인들의 행동에서 인간 정신의 위대함을 보았다.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이나 기름을 넣으려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에 새치기도 없고 당장 필요한 분량 이상을 거머쥐려 떼를 쓰지도 않는 걸 보며 일본인들의 질서정연함이 무릇 개미의 사회성을 능가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인들은 평소에도 남에게 폐(弊)를 끼치는 걸 거의 병적으로 혐오한다. 그래서 비록 집 안은 그야말로 굴속 같을망정 거리에는 쓰레기 한 톨 남기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리 용변을 보게 하며, 차 안에서는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신문도 A4 용지 크기로 접어서 본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어떤가? 남에게 폐가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밀어붙이기 일쑤고 때로는 폐가 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쩨쩨하다며 들이댄다. 공공장소가 자기 집 거실인양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부모들, 무리한 끼어들기로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는 도시의 찻길, 그저 폐를 끼치는 수준을 넘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하는 인터넷 댓글의 무례함과 잔인함…….

민폐행위의 증가는 사회의 익명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구성원 모두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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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 존재를 확실하게 아는 작은 사회에서는 대놓고 남에게 폐를 끼치기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섬이라는 폐쇄적 공간의 상대적 속성이 그곳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영국, 뉴질랜드, 마다가스카르 사람들도 일본 사람들 못지않은지 궁금하다. 영국인과 유럽대륙인,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사람들과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사람들의 민폐 행태를 비교하는 연구를 해보고 싶은데,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폐가 되려나?

■ 창의성

2006년 3월 16일 시사주간지 ‘타임’은 21세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단한 창의와 혁신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은 날카로운 돌을 주워 사용하다가 이내 돌의 면을 날카롭게 만드는 방법을 찾으며 끊임없이 창의와 혁신을 추구해 왔다.

지금까지 혁신의 주체는 극소수의 천재 또는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주체가 극소수에서 엄청난 다수로 넘어갔다는 것이 ‘타임’의 주장이다. 그동안 사람들의 아이디어는 대체로 포장마차에서 술과 함께 사라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든 웬만큼만 다듬어진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걸 구현해주는 메카니즘이 컴퓨터 안에 마련되어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천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창의성은 정의하기 매우 까다로운 개념이다. 타고나는 것인지, 아니면 교육에 의해 길러질 수 있는 것인지를 두고 참으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아인슈타인 피카소 : 현대를 만든 두 천재’ 의 저자 아서 밀러 (Arthur I. Miller)는 창의성이란 통합적 사고와 상상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는 분야는 다르지만 세기적인 천재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들이 천재성을 발휘하기에 이른 과정은 무척 다르다. 이들을 만일 야구선수로 비유한다면 아인슈타인은 타율과는 상관없이 어느 날 드디어 장외홈런을 때린 사람이고, 피카소는 수없이 많은 단타를 치다 보니 심심찮게 홈런도 때렸고 그 중의 몇 개가 만루홈런이 된 것이다. 피카소는 평생 엄청난 수의 작품을 남겼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는 평범한 것들도 많았으나 워낙 많이 그리다 보니 남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수작을 남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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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광처럼 빛나는 천재성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더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기린의 목은 아무리 잡아 늘여도 길어지지 않지만 배움의 키는 끊임없이 큰다. 신기하게도 키는 조금만 커져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홀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스스로 아인슈타인이 못 된다고 실망하지 말자. 부지런히 뛰다 보면 앞서가는 피카소의 등이 보일 것이다.

■ 거짓말

나라가 온통 거짓말 범벅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고 과정의 거의 모든 길목마다 축소, 은폐, 왜곡, 조작 등 온갖 형태의 거짓말이 총동원된 것으로 드러났다. 연이은 나로호 발사 실패 과정에서도 러시아와 맺은 계약서만 들여다보면 그대로 드러날 내용이 종종 왜곡되고 과장되는 안타까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온통 새빨간 거짓말보다 진실이 일부 포함된 거짓말이 훨씬 나쁜 거짓말이다. 아무리 구체적인 반박 자료를 들이대도 전체를 뒤집기 어렵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거짓말들은 대체로 이런 거짓말들이다.

동물들도 과연 거짓말을 할까? 거짓말을 하려면 상당한 지능이 필요하다. 우선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그걸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왜곡 또는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북미의 반딧불이 중에는 다른 종의 암컷 신호를 흉내 내어 짝짓기를 하러 온 그 종의 수컷을 잡아먹는 ‘팜므 파탈’반딧불이가 있다. 나방의 성페로몬 과 흡사한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암컷이 있는 줄 알고 몰려든 수컷 나방들을 끈적끈적한 거미줄을 뭉쳐 만든 ‘끈적이공’을 휘둘러 잡아먹는 기발한 거미도 있다. 그러나 언뜻 지능적으로 보이는 이런 반딧불이와 거미의 행동은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제작해내고 구성원 모두가 입을 맞추며 실행에 옮기는 인간 행동의 현란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희망적인 거짓말은 엄청난 치료효과를 지니므로 그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 의사는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화가와 시인은 거짓말을 허락받았다.”는 스코틀랜드 속담도 있다. 어쩌면 거짓말은 비상한 두뇌와 고도로 발달한 언어를 가진 인간의 전유물이자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해도 되는 거짓말과 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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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거짓말이 있는 법이다. 그걸 분간할 줄 아는 사회가 선진 사회이다.

■ 전쟁

6‧25 전쟁이 일어난 지 어언 60여 년. 인류 역사상 6‧25 전쟁만큼 참혹했던 전쟁도 그리 많지 않다. 불과 3년 남짓에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무려 300만 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처참한 전쟁이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을 일으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과 개미뿐이다. 다른 동물들도 서로 물고 뜯으며 때론 죽이기도 하지만 집단 수준에서 조직적으로 대규모 살생을 감행하는 동물을 이들뿐이다. 인간 사회의 전쟁도 결국 따지고 보면 돈 때문이 일어나는 게 대부분이지만 개미들의 전쟁도 기본적으로 경제 전쟁이다. 하지만 개미들은 결코 우리처럼 종교나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개미와 인간은 군대의 구성에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노인들이지만 싸우고 죽는 것은 젊은이들”이라 했던 제31대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말마따나 우리는 젊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지만, 개미 사회에서는 가장 늙은 할머니들이 우선적으로 전장에 투입된다. 개미제국의 일개미들은 모두 암컷으로 태어나며 처음에는 여왕개미의 시중을 드는 일부터 시작하여 차츰 온갖 집안일들을 거들다가 나이가 많이 들어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드디어 전쟁에 나간다.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맞아 죽을 말이겠지만, 철저하게 효율만 따진다면 개미가 우리보다 훨씬 현명한 셈이다. 앞길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보다 살만큼 산 할머니를 희생하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 훨씬 효율적이다.

천안함 침몰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반도에서는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았다. 분명한 것은 평화를 유지하는 비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전쟁으로 인한 희생과 견줄 수는 없다. 아들이 아버지를 묻는 것도 서러운데 더 이상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묻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인생 이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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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5년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라는 책을 출간하며 이제 다시 은퇴 없는 삶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예전에 농사를 짓고 살던 시절에 우리가 은퇴란 걸 했던가. 큰 밭을 갈다가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면 텃밭에서 김을 맸고, 그것도 어려워지면 방에서 새끼를 꼬며 살았다. 은퇴라는 개념과 정년 제도는 새롭게 사회에 진입해야 하는 젊은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워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근대 직업사회의 발명품이다.

자손들로부터 회갑 잔치를 받으며 ‘장수’를 자축하던 시절과 달리 인생 100세 시대를 앞둔 요즈음 우리가 만일 현행 정년 제도를 고수하면 조만간 은퇴자의 수가 노동인구보다 커질게 불을 보듯 뻔하다. 노동인구 보다 부양인구가 비대한 인구 구도로 국가 경제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바야흐로 정년 퇴임 후에도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하는 ‘인생 이모작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중남미 열대우림에서 버섯농장을 경영하는 일꾼개미는 이미 이모작 삶을 살고 있다. 일꾼개미 사회의 대형 일개미들은 톱날처럼 생긴 턱으로 나뭇잎을 둥글게 썰어 집으로 물어 나른다. 그러면 소형 일개미들이 그 이파리들을 더 잘게 썰고 그 위에다 버섯을 길러 먹는다. 미국 오리건대학의 곤충학자들은 최근 평생 나뭇잎을 써느라 톱날이 무뎌진 늙은 일꾼개미들은 당장 퇴물 취급을 당하며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동료들이 썰어 놓은 나뭇잎을 집으로 나르는 부서로 옮겨 여전히 사회에 기여한단다. 예로부터 “이가 아니면 잇몸”이라 했다.

미래학자들에 따르면 지금 대학생들은 평생 직업을 대여섯 번씩 바꾸며 살 것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전공을 미리 대여섯 개씩 해 둘 수는 없지만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기초를 잘 다져두면 인생의 고비마다 새롭게 공부하여 새 직장을 얻을 수 있다.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능력? 그걸 우리는 수학능력(修學能力), 즉 수능이라 부른다. 이담에 그나마 잇몸이라도 쓰려면 우리 모두 수능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옥스퍼드나 하버드 같은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이 수백 년 동안 전공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가르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 퓌투아 현상과 하인리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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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의 ‘퓌투아(Putois)’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저녁 초대를 거절하려 즉흥으로 지어낸 이야기의 주인공 퓌투아가 마을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점점 구체적인 실체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이 과정에서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낸 장본인마저도 궁극에는 마치 그가 실존하는 인물인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거짓말이란 이처럼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일단 태어나면 자기만의 삶을 산다. 미확인 비행물체(UFO)는 퓌투아 현상의 전형을 보여준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목격자들의 민망하리만치 구체적인 진술에 일단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신뢰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진다.

‘제비가 물을 차면 비가 온다.’는 옛말이 있다. 옛 사람들이 비가 오기 전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면 잠자리들이 낮게 날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먹는 제비가 물을 차듯 나지막이 나는 걸 보고 한 말이다. 1931년 미국 해군 장교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Heinrich)는 각종 산업재해 관련 사망 사고 이전에는 평균적으로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부상사고가 29건, 그리고 부상에 이를 뻔한 사고가 300건이나 발생한다는 흥미로운 관찰을 내 놓았다. 미래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일어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를 뿐이다. 세상에 떠도는 많은 미래 예측들이 퓌투아 현상의 단면인지 하인리히 법칙의 경우인지 잘 살펴야 한다.

■ 애플

꿀벌이 춤을 추며 동료에게 꿀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1973년 노벨상을 수상한 카를 폰 프리슈(Karl von Frisch)에게는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사사건건 문제제기를 하던 에이드리언 웨너(Adrian Wenner)라는 젊은 학자가 있었다. 꿀벌이 추는 일명 꼬리춤에 꿀을 따 온 꽃밭까지의 거리와 방향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는 폰 프리슈의 주장에 웨너는 끈질기게 동료가 다녀온 꽃의 냄새를 맡고 그 방향으로 날아간다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몇 차례 이 같은 논쟁을 거치면서 웨너는 단숨에 폰 프리슈와 마주 앉을 수 있는 지위로 뛰어 올랐다는 점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캘리포니아로 끌고 가 유치할 정도로 편파적인 법정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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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연출해내곤 쾌재를 부르고 있다. 적지 않은 벌금을 내게 될지도 모르는 삼성으로서는 심기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길게 보면 삼성에 더할 수 없이 훌륭한 호재였다고 생각한다. 애플이 삼성을 가장 껄끄러운 상대라고 만천하에 공표함으로써 이제 삼성은 노키아나 소니를 확실하게 따돌리고 오로지 애플만 상대하면 되는 국면을 맞았다. 게임이 훨씬 쉬워진 것이다.

일등 자리에 오를수록 두루 품어야 하는데 고독해지기 시작하면 내려올 일만 남은 셈이다. 그리 멀지 않은 장래에 애플은 삼성을 애써 링위에 올려준 걸 땅을 치고 후회할 것이다.

■ 석양

예년보다 좀 이른 추석도 지나고 억수같은 비를 토해낸 다음이라 그런지 하늘이 유난히 창백해 보인다. 마냥 뜨겁기만 하던 햇살도 가슴팍에 내리쬐는 느낌이 다르다. 폭염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여름도 이젠 슬그머니 산모퉁이를 돌아선다. 여태껏 살면서 깨달은 한 가지 분명한 진리가 있다면 그건 제아무리 난리를 쳐도 시간이 가면 시간이 온다는 사실이다.

고형렬 시인이 “까마득한 기억의 한 티끌과 영원 저 바깥을 잇는 통섭이 시”라고 평한 황지우 시인의 ‘아주 가까운 피안’이라는 시가 있다. “어렸을 적 낮잠 자다 일어나 아침인 줄 알고 / 학교까지 갔다가 돌아 올 때의 / 똑 같은, 노란빛을 발하는 하오 5시의 햇살이 / 아파트 단지 측면 벽을 조명할 때 단지 전체가 피안 같다 / (……) / 어디선가 웬 수탉이 울고, 여름 햇살에 떠밀리며 하교한 초등학생들이 / 문방구점 앞에서 방망이로 두더지들을 마구 패대고 있다.”

나는 하루 중 해질 무렵을 제일 좋아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삼촌들과 함께 밭일을 마치고 할머니가 감자밥을 해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아른하다. 늘 바삐 돌아가는 삶이지만 눈에 드는 사물들의 윤곽이 아스라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웬지 모르게 마음도 절로 차분해진다.

툭하면 괜스레 우수에 젖는 걸 즐기는 나만 그런가 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해질 무렵을 좋아 한다는 이들이 뜻밖에 적지 않다. 시간을 내어 가까운 동산에 오르거나 강변을 거닐며 지는 해를 바라보라. 석양을 바라보며 숙연함을 느끼는 것은 인간 모두의 보편적인 감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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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벌

‘벌(閥)이란 본래 명사 아래 붙어서 그 방면의 지위나 세력을 뜻하는 말이다. 그 자체로는 결코 나쁜 말이 아니건만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재벌(財閥)이나 학벌(學閥) 등이 영 호감이 가지 않는 말로 전락해 버렸다. 곧 죽어도 선비를 자처하는 내가 절대로 들을 염려 없는 소리는 아마 재벌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책을 모으는 책벌(冊閥)이 되었다. 연구실과 집의 벽이란 벽은 다 책으로 두른지 오래건만 나는 여전히 책을 긁어모으며 산다. 다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주워 나른다. 책 때문에 더 큰 아파트로 이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돈과 달리 책은 내가 긁어모은다 해서 세상의 책이 다 없어지는 것도 아닌 만큼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방 안 그득한 책을 바라보면 마냥 행복하다. 하지만 진정한 책벌은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흐뭇해할 뿐이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이 가을 책 읽는 행복에 푹 빠져 사는 실속 있는 책벌이 되시기 바란다.

■ 걷기 예찬

과학저술가 케이티 앨버드는 2000년 벽두에 ‘당신의 차와 이혼하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냈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등장으로 길바닥의 말똥이 하라지고, 멀리 떨어진 가족들이 더욱 가까워지며, 도시의 혼잡과 오염이 해소되고, 계급 차별이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심지어 뉴욕 시의 보건 담당 공무원은 “핸들을 돌리는 데 드는 가볍지만 의도적인 노력” 덕택에 “활발한 신체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년 전의 어느 날 아침 나는 대문을 나서다 갑작스러운 현기증 때문에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몸을 추스르고 대문 앞 층계에 걸터앉아 나는 문득 ‘과로사’를 떠올렸다. 타고난 오지랖 때문에 하루에도 열댓 가지 일을 하며 사는 나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그래서 그길로 병원에 가서 난생처음 종합진단을 받았다. 피도 10튜브 이상 뽑고 둥근 통 안에 누워 사진도 찍었다. 며칠 후 결과를 보러 병원에 들렀을 때 의사 선생님은 한참 모니터를 응시하더니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최 교수님, 운동 좀 하세요?” 그 모든 증상은 오로지 운동 부족에서 온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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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부터 나는 걸어서 등교하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이 무척 빠를 편이다. 그런 빠른 걸음으로 35분쯤 걸린다. 모든 전문가 말씀에 최고의 운동이란다. 연세대 교정에는 150미터쯤 되는 걸어서 통과하기에 매우 훌륭한 숲이 있다. 하루에 두 차례씩 나는 그 숲에서 산림욕을 한다. 걷기 시작하며 내 건강은 30대로 되돌아간 듯싶다. 연세대에 감사 기부라도 해야 할까 보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을 번역한 김화영 선생님은 걷기 예찬은 곧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 이라고 예찬 하신다. 걷기 시작하며 나는 자연스레 내 차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 그런데 이놈의 도시에서는 차와 완전히 이혼하고 살기가 영 쉽지 않다. 그래서 이혼 숙려 기간이 벌써 5년을 끌고 있다. 생명과 인식을 예찬하려는데 삶이 자꾸 내 발목을 잡는다.

■ 혼화의 시대

역사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대대적으로 피가 섞여본 적이 있는지. 예전에는 핀란드 사람들은 대체로 핀란드 사람끼리 피를 섞었고.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그저 우리들끼리 결혼하여 애 낳고 살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종족 간 결혼이 엄청나게 빈번해지기 시작했다. 전쟁 통에 억지로 피가 섞이긴 하지만 지금처럼 대규모의 피섞임이 일어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가끔 그저 넉넉잡고 한 500년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 한다. 삶에 대한 애착이 특별히 남달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보고 싶다 도대체 인류가 어떻게 변할지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약5만 년 전 우리 인류가 아프리카를 빠져 나와 지구 여러 곳에 흩어져 독립된 개체군으로 살다가 다시금 하나의 거대한 개체군으로 묶이고 있다.

이 같은 피 섞임은 각각의 개체군에는 당장 새로운 유전적 변이를 제공하지만 인류 전체를 놓고 보면 그동안 개별적으로 구축해온 변이의 다양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빚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가 어떤 모습의 ‘신인류’로 변화할 지 정말 궁금하다. 그래서 한 500년이면 변화의 조짐 정도는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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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농촌의 결혼은 절반이 국제결혼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다민족 국가로 변하고 있다. 섞이는 피에 문화가 묻어와 한데 뒤섞이고 과학이 섞이고 예술과 기술이 섞인다. 동양과 서양 음식이 섞여 퓨전 음식 천지이다.

언제 정말 한가한 시간이 나면 백지 위에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변에서 절대로 섞이지 않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보라 과연 몇 개나 적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지금 거대한 섞임의 급류에 휩싸여 어디론가 마구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21세기 초반 이 시대를 ‘혼화(混和)의 시대’로 규정해 본다. 다름이 어우러져 새로움으로 거듭나고 있다. 섞임을 거부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섞임의 선봉에 서야 한다. 우리의 가족이 되기 위해 왠지 우리 곁에 있고 싶어 이 땅에 온 이들을 우리 가족으로 보듬어야 한다.

■ 국격

최근 들어 부쩍 국격(國格)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정부에서는 2009년 국가브랜드위원회라는 것까지 만들어 세계 시장에 내 놓을 매력적인 국가 이미지를 창출하느라 애쓰고 있다. 나 역시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새로운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대한민국, 대학문국(大韓民國, 大學問國)’으로 세우고 여기저기 강의를 다니느라 분주한 한 때를 보냈다. 한마디로 ‘학자의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는 얘기이다.

우리나라가 어디 파기만 하면 시커먼 액체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곳인가? 깊은 산중 이곳저곳에 조상님들이 우리 후손들을 위해 금괴라도 묻어주셨던가? 불과 반세기여 전에 전쟁으로 거의 완벽하게 쑥대밭이 되었던 나라가 아니던가? 세상 다른 나라들은 그동안 전부 뒷짐 지고 놀았던가? 어떻게 우리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기적을 믿고 싶어한다. 기독교인들은 모세가 홍해의 물을 가르고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기적을 믿는다. 나는 과학자이지만 모세의 기적은 믿어볼 용의가 있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이룩한 경제 기적은 정말 믿기 어렵다. 우리 정부가 국민의 사기를 북돋우려 지어낸 얘기 같다. 여전히 기적으로 믿지 않으면서도 나는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는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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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히 안다. 그리 좋지도 않은 교육제도 속에서도 그저 죽어라고 공부해서 이룬 기적이라는 것을. 나는 가진 것 없고 물려받은 것 없는 이 나라가 기댈 곳은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교육은 그야말로 고사 직전이다. 당장 돈이 될 듯한 개발 사업에만 쏟아 붓지 말고 수십조의 예산을 교육에 투자하여 대한민국을 ‘대학문국’으로 만들어 보자. 이 나라에서 머리로 먹고 사는 것 외에 진정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계인의 머리속에 은자(隱者)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학자의 나라’로 각인되기만 하면 우리가 만드는 모든 제품들이 홀연 날개를 달고 훨훨 날 것이다. 독일, 이스라엘, 인도 등이 머리 좋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그들에게는 약간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대한민국은 머리도 좋고 정직하며 따뜻하기까지 한 나라’ 라는 평판보다 더 훌륭한 국격이 어디 있으랴.

■ 연해주 농장

현대중공업은 2009년에 러시아 연해주에 서울 여의도 면적의 33배(1만 헥타르)나 되는 농장을 인수했다. 이어 6700헥타르를 추가로 인수해서 해마다 1만 6000톤 규모의 콩, 옥수수, 밀, 귀리 등을 생산한다. 배나 기계를 만들다가 홀연 농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현대중공업 경영진의 혜안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렇게 한 기업에 대놓고 노골적인 찬사를 보내는 까닭은 조만간 불어닥칠 세계적인 식량위기 때문이다. 내가 몇 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쓰는 책이 있다. 바로 ‘FEW’라는 제목의 책이다. 모두 합하면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 대국들인 브릭스(BRI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가 이제 경제 대국이 되겠다며 이른바 ‘제2의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바람에 세계가 심각한 자원 고갈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자원전문가들은 앞으로 가장 부족해질 자원으로 식랑(food), 에너지(energy), 물(water)을 꼽는다. 공교롭게도 이 세 영어의 첫 글자들을 한데 역으면 ‘부족하다’ 혹은 ‘거의 없다’라는 뜻인 ‘few’가 된다.

나는 우리나라에 가장 심각한 고민을 안겨줄 자원이 식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좀 산다는 나라 중에서 식량의 해외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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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거리의 자유

앞뜰 모과나무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해거리를 할 참이다. 식물의 해거리는 어느 해 현저히 적게 또는 아예 열매를 맺지 않는 현상으로, 늘 같은 장소에서 영양분을 얻어야 하는 속성 때문에 때로 특정 영양소가 결핍되어 일어난다. 과일나무가 해거리를 하는 것은 종종 있지만 이태를 거푸 하는 건 드문 일이다. 식물들도 요즘 나름대로 혹독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모양이다.

생물학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질문이 있다. ‘어떻게(How) 질문’과 ‘왜(Why) 질문’이 그들이다. 특정 영양소의 결핍으로 해거리가 일어난다는 따위의 설명은 전형적인 ‘어떻게 질문’ 에 대한 답이다. 현상의 메커니즘, 즉 ‘근접적 원인’을 규명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 같은 근인(近因) 설명을 찾은 후에도 생물학자들은 여전히 도대체 식물이 왜 해거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진화했는지 그 ‘궁극적인 원인’을 알고 싶어한다. 근인과 더불어 원인(遠因)을 알아야 비로소 생물학적 설명이 완결되는 것이다.

식물은 자신의 에너지 예산을 생육과 번식의 두 분야에 할당한다. 해거리는 훗날 더 큰 번식을 위해 예산의 대부분을 생육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우리 집 모과나무는 아예 꽃부터 제대로 피우지 않았지만 옆집 감나무는 애써 만든 열매들을 뚜욱 뚝 떨구고 있다. 이처럼 해거리는 일찍 결정할수록 에너지 낭비가 적지만 뒤늦게라도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카이스트의 서남표 총장은 신임교수에게 박사 학위 논문을 집어던질 용의가 있느냐고 묻는단다. 박사학위 연구야 어차피 지도교수가 하라고 해서 했거나 마침 연구비가 있어서 한 게 아니냐며 평생 그 연구를 하려고 학자의 길로 들어섰느냐고 다그친단다. 꼭 하고 싶은 연구를 하기에도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며 본인만 결심한다면 학교는 몇 년간 업적을 묻지 않고 기다려 주겠노라고 제안한단다.

이 땅의 모든 교수들과 연구원들에게 모과나무의 해거리 자유를 허하라! 그래야 비로소 추격형 연구를 떨쳐내고 선도형 연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책임의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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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을 하다 가끔 옆의 차를 건너다보며 섬뜩 놀랄 때가 있다.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아이를 품에 안고 앞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아무리 무지해도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작 본인은 안전띠를 매고 있는지 모르지만 안겨 있는 아이는 그야말로 에어백 신세이다. 아무리 천천히 달리더라도 웬만한 충돌 또는 추돌 사고만 일어나면 그 아이는 거의 백발백중 자기를 안고 있던 어른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한 죽음을 맞는다. 스스로 선택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어린 생명은 마땅히 법으로 보호받아야 하고 어른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이를 뒷좌석에 앉히더라도 안전띠를 매지 않은 채 시고를 당하면 사망률이 무려 다섯 배나 높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버스나 택시 등 사업용 차량에서 승객의 안전띠 착용 책임은 운전자에게 묻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국토부의 발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미성년자라면 모를까 성인의 경우 타인의 행위에 대해 대신 책임을 지라는 논리는 어떤 경우에도 설득하기 쉽지 않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의 세계에는 남을 대신하여 책임을 지는 행동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생텍쥐페리는 일찍이 “사람이라는 사실은 책임을 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지만 인간의 책임은 그 범위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훨씬 넓은 것 같다. 얼마나 넓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을 뿐이다.

■ 상생과 공생

요즘 상생(相生)이란 말이 남용되고 있다. 원래 “나무(木)는 불(火)을, 불은 흙(土)을, 흙은 쇠(金)를, 쇠는 물(水)을 생(生)한다”는 오행설의 개념인데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서로 돕고 산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서로’라는 훈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오히려 본 뜻을 곡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언어란 본래 법칙보다 쓰임이 더 무서운 만큼 잘못된 용례들이 너무 굳어지기 전에 이쯤에서 한 번 짚고 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상생은 양자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쌍방행위가 아니다. 상생이란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에서 다시 水生木으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을 의미한다. 즉 내가 누군가를 도우면 그가 또 누군가를 돕고 또 그가 다른 누군가를 돕는 가운데 우리 사회 전체가 풍요로워지며 그게 결국 나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삶의 이치이다. 대기업더러 무턱대고 중소기업과 상생하라고 윽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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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거나 그러하면 대기업에도 곧바로 도움이 된다고 꼬드긴들 별 효력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상생에는 반드시 상극(相剋)이 따라온다. 상극 관계를 모르면서 어쭙잖게 상생을 꾀한다면 큰 화를 입을 수 있다. 상생과 상극을 너무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분류하는 것도 옳지 않다. 때론 적절한 상극상황이 화끈한 상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너무 쉽게 상생과 공정(公正)을 연계하는 것도 부당하다. 상생은 삶의 원리이지 갑자기 외쳐댈 규범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생이 남용되기 전에 우리가 늘 쓰던 단어가 있다. 바로 공생(共生)이다.

개미와 진딧물, 밭을 가는 황소와 그 뒤를 따르며 벌레를 잡아먹는 황로는 공생을 할 뿐, 어쭙잖게 상생을 말하지 않는다. 상생은커녕 딱히 얻는 것도 없으면서 남에게 해나 끼치는 일만 저지르지 않아도 좋으련만.

■ 당근과 채찍

이언 에어즈의 책 ‘당근과 채찍’에는 ‘목표로 유인하는 강력한 행동전략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당근으로 유혹하고 채찍으로 다스리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한다’는 뜻이지만 채찍을 너무 가혹하게 휘두르면 말이 주저앉을 수도 있다. 또한 말이 아무리 당근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때론 당근을 꼭 먹으라고 주는 게 아닐 수도 있다.

1999년 설립되어 10년 만에 1년 매출 10억 달러를 돌파한 인터넷 쇼핑몰 회사 자포스(Zappos)는 4주간의 입사 교육을 마친 그대로 회사를 그만두면 아무런 조건 없이 그때까지의 급여에 2000달러를 보태주겠다고 제안한단다. 하지만 신입사원들은 회사가 제안한 보너스를 거부함으로써 회사에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하며 실제로도 훨씬 책임감 있게 일한다고 한다. 이 경우에 회사가 내민 당근은 정말 먹으라고 주는 게 아니다.

미국 오리건대 심리학자 샤리프(Azim Shariff)가 세계 67개국의 종교 활동과 범죄 발생률의 관계를 분석해 보았더니 지옥을 강조하는 종교를 믿는 나라에서 범죄가 훨씬 적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실시한 실험에서도 ‘용서하는 신’이 아니라 ‘엄벌하는 신’이 있는 학급에서 부정행위가 훨씬 적게 나타났다. 지옥효과가 천당효과보다 대체로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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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

예전에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 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중학교 교실에서는 남학생들이 여교사의 어깨를 감싸며 사귀자고 하질 않나, 심지어는 ‘첫 경험’을 언제 했느냐며 성희롱을 한단다. 최근에는 지하철에서 자기 아이를 만졌다는 이유만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때린 어느 젊은 엄마와 다리를 꼬면 바지에 신발이 닿으니 치워달라는 할아버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위협하는 20대 청년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얘기는 어제오늘 들은 게 아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어른 세대는 늘 젊은 세대의 무례함과 모자람을 꾸짖는다. 만일 우리 역사에서 늘 아랫세대의 도덕성이 윗세대의 도덕성보다 못했다면 지금 우리는 역대 최고로 부도덕한 시대를 살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한밤중에 이웃마을을 급습하여 남자들의 목을 베고 여자들을 겁탈하던 그 옛날 오랑캐 시절보다 도덕적으로 못하단 말인가. 나는 감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도덕적인 시대라고 주장하련다.

그 옛날에도 패륜아는 있었다. 다만 지금처럼 누가 한 번만 잘못해도 국민 전체가 알아버리는 일이 없었을 뿐이다. 보는 눈이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이 엄청나게 많은 눈들이 오히려 우리를 도덕적인 동물로 지켜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뻘의 노인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댄 남자의 신상이 누리꾼들에 의해 낱낱이 파헤쳐져 인터넷에 공개되었다.

돌고래 수컷들은 망망대해에서 짝짓기 하고픈 암컷을 몰기 위해 종종 두세 마리가 동맹을 맺는다. 동맹군의 협공이 성공하여 암컷이 짝짓기를 허락하면 그들 중 한 마리의 수컷이 먼저 기회를 얻는다. 그런 다음 다른 암컷을 공략하여 성공하면 그 다음 수컷의 차례가 된다. 그런데 돌고래 사회에도 얌체가 있다. 일단 암컷을 취하고 나면 다른 수컷들을 돕지 않고 곧바로 다른 패거리로 옮겨 짝짓기 기회를 노리는 수컷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얌체 행각이 발각되면 다시는 짝짓기 기회를 얻지 못한다. 어느 사회건 남의 눈처럼 무서운 건 없다.

교육이 문제이다 잘못 배운 게 아니라 아예 배워보지도 못한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 예의범절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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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당포의 추억

이 땅의 50~60대라면 누구나 전당포의 추억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것이다. 시계가 손목에 채워져 있던 시간보다 전당포에 잡혀 있던 시간이 더 길었던 그런 추억 말이다. 최근 사양 일로에 있던 전당업이 IT 덕택에 되살아 나고 있단다. 용산 전자상가에 요즘 전자 제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IT 전당포가 성업 중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묘한 격세지감을 느낀다.

전당업은 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는 전당이라는 용어가 15세기 중반에 편찬된 ‘고려사’에 처음 등장하지만,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절에 이미 채무 담보를 일컫는 명칭이 17개나 있었다고 한다. 1876년 조선의 개항과 더불어 이주하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질옥(質屋)을 만들어 수십 년 동안 우리의 토지와 재산을 갈취하던 시절은 가히 전당업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당업은 원래 물품이 아니라 사람을 담보로 하는 인질 또는 인신매매로 시작된 사금융업이다. 생계유지를 위해 처자식을 전질(典質)로 잡히던 시절도 있었다.

■ 국립 자연박물관

내가 살고 있는 서대문구에는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이 둘이나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사박물관이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설립하여 운영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자연사박물관이다. 이화여대자연사박물관은 ‘벌레들의 행성’, ‘생명의 약속’, ‘씨앗’, ‘개미 제국을 찾아서’, ‘생물 다양성’, ‘동물의 소리’, ‘자연의 색’과 같이 흥미로운 특별전을 계속해서 열고 있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새들의 집들이’, ‘땅위의 별, 보석’, ‘갑옷 입은 연체동물’, ‘지구의 정복자, 딱정벌레’, ‘상어의 신비’, ‘한국의 광물자원’과 같은 기획 전시를 꾸준히 열고 있다.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초창기부터 애써 오신 원로 생물학자 이병훈 교수님은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이름 대신 ‘자연박물관’이라 부르자고 제안하신다. 자연사(自然史)박물관은 이제 더 이상 죽은 생물의 표본이나 전시하는 ‘자연사(自然死)’ 공간이 아니다. 자연사박물관은 생명의 신비를 파헤쳐 BT산업의 기반을 마련할 21세기 최첨단 생명과학 연구의 메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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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Biotechnology Industry) : 현대 생명공학 기술을 바탕으로 생물체의 기능과 정보를 활용하고 유용물질을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사업

■ 통합, 융합, 통섭

나는 그동안 주로 ‘개미박사’나 ‘생태학자’로 불렸는데 최근에는 종종 ‘통섭학자’라고 소개된다. 통섭(統攝)이라는 말은 어느덧 지하철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일상용어가 되었다. 통섭이 등장하자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통합이나 융합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고맙게도 2005년 서울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 모인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마치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를 만들듯 다음과 같이 정리해 주었다.

통합은 둘 이상을 하나로 모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다분히 이질적인 것들을 물리적으로 합치는 과정이다. 융합은 핵융합이나 세포융합에서 보듯이 아예 둘 이상이 녹아서 하나가 되는 걸 의미한다. 통합이 물리적인 합침이라면 융합은 다분히 화학적 합침이다. 이와 달리 통섭은 생물학적 합침이다. 합침으로부터 뭔가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남남으로 만난 부부가 서로 몸을 섞으면 전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지닌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과 흡사하다.

통합이든, 융합이든, 통섭이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서로 어울려 갈등을 없애고 화목해지는 것이다. 소통은 세 가지 덕목을 필요로 한다. 비움, 귀 기울임, 그리고 받아들임이다. 결론을 손에 쥐고 남을 설득하려 들면, 그건 통제에 가깝다. 우선 나를 비워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좋은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유난히도 소통이 아쉬웠던 한 해가 저문다.

■ 소리 없는 살인 병기, 의자

나는 적어도 1년에 강의를 100회 이상 하며 산다. 강의를 마치고 나면 사람들은 내게 수고했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하지만 누가 더 수고한 것일까? 강의를 하는 나는 그나마 사람답게 살았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떠들며 살았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한 시간 이상 의자에 묶여 꼼짝도 하지 못한다. 활과 창을 들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도록 진화한 동물로서는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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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못할 짓이다. 그래서 강의를 하는 사람은 재미있게 할 의무가 있다.

최근 미국 루이지애나 생명의학연구소와 하버드 의대 연구진은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질병에 걸릴 위험도 높아지고 수명도 단축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 놓았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일하는 사람은 비만, 당뇨, 지방간 등의 질병을 얻을 위험이 훨씬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매년 발병하는 암 중 적어도 17만 케이스가 오랜 의자 생활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방암과 대장암이 특별히 관련이 깊다고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앉아서 생활하면 심장마비로 죽을 확률이 54%나 높아진다. 하루에 6시간 이상 앉아 있었던 여성들은 3시간 미만 앉아 있었던 여성들에 비해 13년 동안 조사한 사망률이 40%나 높게 나타났다.

어느 덧 우리 대부분은 늘 서서 일하다 잠시 앉아서 쉬는 게 아니라, 늘 앉아서 일하다 가끔 일어나서 일부러 걸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1시간 앉아 있는데 따라 기대 수명이 무려 22분이나 줄어든다는데 이 글을 쓰느라 애쓰는 동안 내 수명은 또 얼마나 줄어든 것인가? 매주 나는 이 칼럼에 원고를 보내기까지 거짓말 조금 보태 거의 50번을 고쳐 쓴다. 글과 수명을 맞바꾸는 거래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 과학의 조건

1982년 미국 아칸소 주에서는 진화학을 학교에서 강의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주장 때문에 법정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아칸소 주 법원의 윌리엄 오버턴 판사는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위해 각계의 전문가에게 자연과학의 본질에 대한 폭넓은 자문을 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신중한 과정을 거치며 작성한 판결문에서 그는 자연과학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그가 내린 자연과학에 대한 정의는 그 어느 자연과학자의 정의보다 훨씬 간결하고 정곡을 찌른다.

그는 자연과학은 우선 “자연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법규나 종교적인 강령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모든 것을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세계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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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주장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다시 실험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실험을 하려고 하니 언제 오셔서 다시 한 번 모든 걸 창조해조십사 부탁할 수 있는가? 넷째로 그는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는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더 탁월한 실험 방법이 나오면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자연과학으로서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학설이나 믿음을 반증을 통해 뒤집을 수 있어야 자연과학이다. 이를 정리하면 자연법칙에 따라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하고 실험 결과에 따라 반박할 수 있어야 자연과학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가장 민주적인 인간 활동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든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고 그를 바탕으로 기존의 질서에 도전할 수 있다. 과학계의 권위는 오로지 증거와 이론의 탄탄함으로 확립된다.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전혀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에게는 논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밖에서 보기에는 논쟁이 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오류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과학에서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니다. 억압된 침묵은 더더욱 그렇다.

201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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