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13. 16:03ㆍ독서후기
인 생 수 업 (2)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
■ 법륜 지음
제4장 아픈 인연의 매듭을 풀다
■상대가 아닌 내 마음부터 살펴라
20대 때는 서른 되고 마흔 되면 더 너그러워지고 대인관계도 유연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해심이 커져서 남도 배려할 걸로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이 들어가니 너그러워졌나요? 물론 ‘나이 들면 너그러워진다’는 옛말이 있긴 합니다. 농경사회에서 열심히 일하다 나이 들면 자식에게 물려주고 조금 한가해지니까 너그러워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50, 60이 돼도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먹고 사는 각박함 속에서는 나이 들었다고 너그러워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0대든 50대든 마음을 열고 상대를 받아들이면 너그럽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나이에 상관없이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사람은 인간관계를 편안하게 만들어 갑니다.
관계의 문제를 푸는 열쇠는 각자가 쥐고 있습니다. 20~30년을 살다가 서로 다투게 되어 상담하러 온 부부에게 아무래도 호되게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상대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나’를 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자기편을 안 들어 주고 상대의 편을 든다고 서운해 합니다.
가령 부인보고 남편에게 숙이라고 하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데 왜 저더러 숙이라고 하세요?” 합니다. 또 남편보고 숙이라고 하면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데 왜 제가 숙여야 하나요?” 합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 상대는 그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서로 옳다고 싸울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기를 살피고 마음을 바꾸면, 서로 편안해 지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고부간의 갈등과 남편의 입장이 문제가 된 가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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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아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남편을 사랑해서, 괜찮다고 결혼했으니 그 사람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시어머니가 낳아서 그때까지 키웠는데, 어느 날 며느리가 들어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빼앗아 갔으니, 그 시어머니의 심리 상태가 어떨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두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는 ‘잘 낳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고마운 마음을 내고 다른 하나는 ‘당신 아들을 내가 빼앗아서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머니가 질투랄까 약간 트집을 잡아도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내면 갈등이 커지지 않습니다.
시어머니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자식은 이제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합니다. 계속 ‘내 자식인데.’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식에게 서운하고 며느리도 미워집니다. 자식을 결혼시키고 나면, 그들은 그들대로 살아가도록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식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자기 인생을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며느리는 며느리대로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살피고 놓아주는 마음을 가지면 크게 갈등을 일으킬 게 없습니다.
갈등은 자기를 살피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만 깊어지게 됩니다. 너그러워지고 이해심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이 그렇게 변화하는 겁니다. 그래서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 결혼은 행복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결혼 참 잘했다. 결혼 안 하고 혼자 살았으면 어쩔 뻔했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까?
‘내가 왜 결혼했지? 혼자 있으면 더 나았을걸.’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까?
많은 분들이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결혼에 대한 환상도 깨고 집착도 내려놓아야 할 텐데, 부모가 되어선 또 자식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괴로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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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화목하게 살면, 그래서 부모 사는 모습이 부러우면 자식들은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못하면 ‘나는 결혼을 안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난 결혼 안 해.’ 하고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무의식중에 결혼을 내켜하지 않게 됩니다. 또 연애를 하다가도 막상 결혼하려고 하면 물러서는 마음이 드는 거예요.
자꾸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에 망설이고,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뒤로 한 발 물러나게 됩니다. 이럴 때 괜히 부모가 강요해서 결혼을 시키면, 결혼생활이 엄마처럼 힘들어집니다. 그러면 부모를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본인이 하겠다면 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놔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누군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게 다 좋은 건 아닙니다.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서로 기대하는 게 많아서 오히려 원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원수는 남하고 되는 게 아닙니다. 대부분 부부간에 원수가 되고, 부모 자식간에 원수가 되고 형제간에 원수가 됩니다. 남하고 원수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요. 부부가 원수 되어 이혼하면 전화 한 통 안 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재산 문제 등으로 마음이 틀어지면 찾아보지도 않습니다. 또 형제간에도 유산문제로 갈라지면 서로 얼굴도 안 봅니다. 가깝기 때문에 그만큼 기대하고 바라는 게 있는데 그걸 못 채우니까 원수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억지로 결혼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뭐가 있느냐는 겁니다.
무조건 결혼만 한다고 인생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부모들은 ‘결혼을 시켜서 나로선 의무를 다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겁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식의 행복이잖아요. 혼자 살든 둘이 살든, 애를 낳든 안 낳든,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겁니다.
자식의 결혼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힘들 때는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 결혼 생활은 행복했는가?’ 행복하지 않았다면, 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해서 자식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을 먼저 참회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이 결혼을 원하지 않으면 자기 인생 자기가 살도록 부모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내 결혼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는데, 자식에게 억지로 결혼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 후회와 상처를 남기지 않는 이별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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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나와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나는 서로 다릅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객관적인가는 잘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상대편에게 비친 게 조금 더 객관적 현실에 맞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고집을 부리면서도 고집하는 줄 모르고, 이기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줄 모르면 상대가 “이기적이다”라고 할 때 “나만 이기적이냐? 너는 이기적이지 않냐?” 이렇게 되받아치거나 “내가 왜 이기적이냐”라고 화를 냅니다.
또 “넌 고집이 세다”고 하면 “내가 왜 고집이 세냐?”고 하거나, “그럼 나만 세고 너는 안 세냐?” 하는 식으로 맞섭니다. 이런 식으로 물타기를 하면 대화가 안 되고 서로 상처만 남습니다.
모든 인간이 다 이기적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에 동의하면 대화가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구에게 전화 걸 때는 대체로 무언가 도움이 필요해서 합니다. 열 통 중에 아홉 통, 어쩌면 열 통 다 뭘 물어보든지, 무언가 요구할 게 있어서 전화를 합니다. 별일 없이 “어떻게 지내냐?” “내가 뭘 도울 일 없니?” 이렇게 물어보고 전화를 먼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걸 인정하면 상대가 나에게 전화할 때도 뭔가 부탁이 있어서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쟤는 꼭 지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데서 갈등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을 수용하면, 상대가 이기적인 것을 비난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꼭 헌신적이고 늘 굽혀줘야 소통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만 알아도 소통이 된다는 겁니다. 남편이 보기엔 부인이 문제인 것 같고, 이기적이고 고집이 센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도 나를 그렇게 느낀다는 거예요.
같이 살든 안 살든 그 결정은 자기 마음대로 해도 좋지만 상대를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해서 외로운 것
결혼하고 1년쯤 지나면 신혼도 끝나고 사랑의 감정도 조금은 식는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23년이 되었는데도 남편만 보면 가슴이 뛰고 긴장된다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을 쳐다만 봐도 좋은데, 한편으로는 남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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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계속 신경 쓰는 자신이 싫고 괴롭다는 겁니다.
“남편이 취미로 찍은 코스모스, 들국화 사진을 보면서 정신 이 번쩍 들었습니다. 남편은 자기 생활을 하는데 나는 뭐하는 사람인가 하면서 부러움과 질투심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이 돈을 가져가도 화가 안 나고 어디를 가도 화가 안 났는데, 지난 가을 남편이 찍은 꽃 사진을 보면서부터 이제 사랑의 끈을 놓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을 덜 사랑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지. 자유로운 마음을 갖게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남편을 더 사랑하는 게 싫어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요?
남에게 사랑받으려고만 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서 항상 괴로움에서 허우적거립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사랑을 받으려면 먼저 사랑을 해야 하고 칭찬을 받으려면 먼저 칭찬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먼저 사랑하고 자기가 먼저 칭찬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사랑받고 칭찬받습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적고 즐거움이 크지만, 완전한 행복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완전한 행복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베푸는 마음만 내고 기대하는 마음이 없어야 합니다.
남편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거나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거나 같은 겁니다. 그런데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남편은 괴롭지 않은데 남편을 좋아하는 나는 왜 괴로울까요. 남편은 코스모스에게 ‘내가 너를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인은 남편을 좋아하니까 남편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어서 괴로운 거예요.
“내가 남편을 너무 좋아하는 게 문제예요. 이제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래요.” 하는 것은 핵심을 놓친 겁니다. 내가 남편을 좋아하는 것은 남편이 코스모스를 좋아하는 것과 똑 같은데, 나는 ‘내가 좋아하니 너도 나를 좋아 해라’는 요구가 있고, 그 요구가 충족이 안 되면 내가 실망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문에 ‘나 혼자 이렇게 좋아해야 하나?’ 힘들어 하는 겁니다.
남편을 좋아하는 감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좋아서 할 뿐이지, 남편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것은 내가 좋아서 그럴 뿐이니까, 상대에게 나처럼 똑같이 좋아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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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꽃을 좋아할 수 있어서 좋은 것처럼, 내가 좋아할 수 있는 남편이 있어서 참 좋다. 남편한테 고맙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럼 바다가 기분 좋은 걸가요, 내가 기분이 좋은 걸까요. 내가 기분 좋은 겁니다. 내가 기분이 좋은 것은 바다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산은 그냥 산이고 바다는 바다고 하늘은 하늘일 뿐입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냥 바라는 것 없이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겁니다. 바라는 것 없이 어느 사람을 사랑하면,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기대 없이 좋아해 보세요. 바다를 사랑하듯이 산을 좋아하듯이.
■ 행복을 구걸하지 마라
아직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가정을 지키고 싶은데 남편이 강하게 이혼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울면서라도 매달려 남편의 마음을 돌려야 할까요. 아니면 훌훌 털고 이혼을 해야 할까요.
- 남편의 사업 실패, 가정에 소홀, 가출, 그리고 이혼요구
이 부인은 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물거품이 되었다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금 이 부인의 괴로움은 한 가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바로 남편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두고도 내가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기도의 전제가 ‘이렇게 하면 남편이 바뀔 거다.’ 하면 남편의 태도에 따라 내 삶이 흔들립니다. 남편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면 내가 편안한데, ‘이렇게 하면 남편이 바뀔거다.’ 생각하면 내가 괴로워집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안 바뀌고 와서 이혼하자고 한다고 울먹거리는 거예요. 바로 남편에게 매여 있어서입니다.
‘인간이 저럴 수가 있나. 내가 어쩌다가 저런 인간을 만났나.’
이런 생각을 하면 나만 힘들고 잠도 못자고 괴로워집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내버려두고 아이들과 함께 잘 살면 됩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왜 안 오느냐고 하면 “아빠가 요새 좀 힘드신가보다. 우리 아빠를 위해서 기도하자.” 아이들을 이렇게 다독이면서 생활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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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뀌기를 바라거나. 돌아와서 결합해 주기를 원하거나, 행복을 구걸하는 인생은 버려야 합니다. ‘아무 문제없다’는 당찬 마음으로 중심을 잡아야 내 얼굴도 밝아지고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습니다.
■ 간병은 복을 짓는 일
한 부인은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인지장애로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 되었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자신도 암 4기라 보호를 받아야 할 상황인데, 남편을 돌보는 게 힘들어서 놔버리고 싶다는 겁니다.
물론 자기 몸도 안 좋은데 남편까지 돌보는 것은 힘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인이 한 가지 모르는 게 있어요. 뭔가 보람 있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겁니다. 남편 때문에 내가 하루 빨리 죽는 게 아니고 오히려 남편을 돌보는 일거리가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 아픔, 외로움도 극복할 수 있는 거예요.
집에 가만히 있으면 더 오래 살고 잘 살 것 같지만, 사람은 일이 있어서 조금 힘들더라도 움직여야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삽니다. 지금 암 4기이기 때문에 몸조심 한다고 끙끙대고 집에 혼자 있으면 더 우울해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더 커지고, 건강은 더 급속도로 나빠집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아픈 사람을 도와주고, 간호라도 해주면 자기 삶에 보람이 생깁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일하면 이 생명은 더 살려고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그 덕에 살고 있는 건데, 그걸 모르고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네요. 이렇게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돌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돌보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마음을 내야 나중에 좋은 일이 생깁니다. 남편에 대해 ‘전생에 악연이었나?’ 하는 생각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잘하면 선연이 되고, 지금 나쁘게 하면 악연이 되는 거예요. 물론 지금은 좀 힘들겠지만, 돌보는 마음을 내서 남편을 따뜻하게 감싸줄 때 나에게 진정한 행복이 옵니다. 짧은 힘듦 끝에 긴 행복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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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수록 버리기 힘든 마음의 습관
인간의 사고는 어릴 때는 따라 배우는 것이 특징이라 어딜 가든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쉽게 배웁니다. 하지만 늙으면 과거의 생각에 매어버려서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우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미국에 1년만 살면 영어를 하는데, 어른은 10년을 살아도 영어를 잘하기 어렵습니다.
‘나이 들면 잘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른의 성질이라는 걸 이해하면. 갈등이 줄어듭니다. 자녀들이 시골에 있는 부모님과 갈등을 빚는 것도 부모님의 일하는 습관을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용돈 드릴 테니까 밭에 가서 일하지 마세요.”
자식은 부모가 아픈 것이 안쓰러워서 하는 말인데, 부모는 아프다고 하면서도 밭에 가서 일하고는 또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식은 짜증을 냅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가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면 10년 더 살 거 아닌가.’ 생각해서 하는 말이지만, 10년 더 사는 게 꼭 잘 사는 건 아닙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다가 5년 만에 죽는 게 오히려 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꾸 내 생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고 가슴앓이 해봐야 부모는 바뀌지 않고, 괜히 가슴만 아픕니다. 그러다 내 몸까지 아프면 나만 손해이고, 부모에게도 걱정을 끼치는 일이 됩니다.
나이 든 부모님은 변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이해하고, 부모님이 얘기하면 뭐든지 “예 알았습니다.”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예기 하는 걸 자식이 다 할 수 없으니까 그럴 때는 안 하면 됩니다. 미리 안 하겠다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에요.
“너 다음 주에 와라.”
“예 알았습니다.” 그러고 바쁘면 안 가면 됩니다.
“이번 주에 바빠서 못 가요. 왜 자꾸 오라 그래요.”
이러면서 부모에게 짜증내지 말라는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란 말은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고, 일이 있으면 “죄송합니다.”하고 안 가면 됩니다. 내 생각을 고집해서 굳이 부모와 다툴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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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법문을 들으니 ‘어머니도 이 법문을 듣고 집착을 놓고 생을 마감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생겼습니다.”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좋은 법문을 들려 드렸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좋아 하시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그 뜻을 깨우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법문에서 한두 마디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못 알아들어도 듣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법문을 듣는 동안에라도 기분이 좋아졌다면 대성공입니다.
생각이 굳어지고 세상 보는 눈이 좁아져 있으면 눈으로 봐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원효대사는 이런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살펴보았다고 합니다. 광대가 춤을 추고 노래하니까 펄쩍펄쩍 뛰고 좋아하는 걸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표주박을 들고 일인 광대극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세상의 집착을 끊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도록 가르쳤습니다.
■ 집착과 외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떤 것을 유지하고 싶고, 갖고 싶고, 제 뜻대로 꼭 하려하는 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낚시를 하러 가서 큰 물고기가 걸렸는데 힘이 부족해서 도저히 끌어 올릴 수가 없어, 물고기에 끌려가 물에 빠져 죽을 정도가 되면 낚싯대를 놓아야 하는데 물고기가 아까워 끝까지 안 놓는 것이 집착입니다. 그러고는 끌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빨리 놓으라고 하면 ‘죽어도 못 놓겠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집착에 이끌려 고통에 빠지는 겁니다.
한편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안 되면 집어치워버리는 게 있습니다. 바로 외면하는 겁니다. 고기가 안 잡히니까 낚싯대를 집어던져버리는 것과 같아요. 이것은 낚싯대를 놓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 뜻대로 안 되니까 던져버렸다가 며칠 후에 다시 낚싯대를 잡습니다. 이처럼 집착과 외면은 제 뜻대로 하려는 욕망의 다른 표현입니다. 마음대로 하려는 데 따른, 그때그때 다르게 일어날 뿐 그 근원은 같은 감정입니다.
많은 부모가 자식에 대해 집착과 외면을 되풀이 합니다. 자식에 대해서 잔소리하는 것은 집착이고, 성질대로 안 되니까 “에라, 공부를 하든 말든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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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해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이냐?”하는 것은 외면입니다. 그런데 집착과 외면을 늘 반복하기 때문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통이 계속됩니다.
한 할머니가 이혼한 아들과 함께 사는데, 자신이 품팔이 하는 돈까지 아들이 가져간다면서 하소연을 했습니다.
“아들이 집 팔아 가져가고, 전세금, 월세금 가져가고, 품팔이 해서 모은 푼돈까지 ……. 이놈 앞에서 죽어야지 하면서도……"
이 노모는 자식에 대해 거의 중독된 수준이라 평생 자식에게 종노릇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게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자식을 바꾸려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자식을 고치려면 내일부터 일을 나가지 말고 밥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들에게 집착해서 보살피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누워서 도움을 청하는 쪽으로 바꿔야 희망이 있습니다. 일부러라도 깁스를 하고, 자식이 술 먹고 성질내면 밥그릇이라도 깨면서 집안일을 하게 해야 합니다.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몸져누워서 자식의 버릇을 확실하게 고치는 방법이 있고, 아니면 그냥 자식에게 주는 재미로 사는 겁니다. 5만원 벌면 5만원주고, 닭 모이 주듯 사는 거예요. 애완용 동물이나 키운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바꾸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어느 것을 선택하는 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 돈 대신 등 두드려 주는 사람
한 아버지는 집을 처분해서 자식들에게 생활 자금으로 분배하고 부인과 함께 시골로 내려갈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집을 없애버리면 자식들이 더 이상 손을 벌리지 못할 것이고, 그럼 더 이상 괴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론이라는 겁니다.
또 어떤 어머니는 50이나 된 아들이 사업 빚을 갚아달라고 조르는 통에 괴롭다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엄격하게 “네 삶은 네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이다”라고 선을 그으면 자식은 사업이 망해도 부모에게 돈 달라는 소리를 안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어려우면 늘 줬기 때문에 부모가 80이 돼도 논 한 마지기라도 있으면 그것마저 팔아서 가져가려고 합니다. 자식이 그러는 것은 다른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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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 아닌 부모의 잘못입니다.
늘 얘기했지만 어릴 때는 돌봐주는 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지켜봐 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돌볼 여력이 없었고, 나이 들어서는 내가 지켜볼 인내가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악을 써도 자기가 일어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 데, 가서 안고 어디 다쳤나 난리를 피웁니다.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성질을 부리다 넘어지면 바로 달려가서 안고 난리를 칩니다. 이러면 교육이 안 됩니다. 부모는 자식이 크면 자기 감정도 절제하고, 무작정 도와주는 게 아니라 차분히 지켜볼 수 있는 냉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선물은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부모가 없어도 혼자 살 힘을 키워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사랑인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런 돈은 자식에게 줘봐야 금방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부모가 자식을 치마폭에서 키우며 대학도 선택해 주고, 학자금도 다 대주고, 졸업하면 취직도 시켜주고, 배우자도 구해주고, 집도 구해주고, 또 애 낳으면 애도 봐주다 보면 자식 때문에 일생 내내 고생합니다. 죽을 때도 눈을 못 감아요. 나이가 80이어도 50이 된 아들을 보면서, ‘내가 없으면 쟤가 어떻게 살까.’ 싶어서 마음을 못 놓습니다. 이게 자식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평생 부모 그늘에서 자식이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해 놓고는, 이제 병약해진 자식이 혼자 어찌 사나 걱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제5장 인생 후반전, 즐겁고 행복하게 일 하는 법
■ 부족하다 느끼면 가난하고, 여유를 느끼면 부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갖는 분이 많습니다. 요즘은 늙어서도 자식을 부양하는 경우가 많고, 또 노후자금은 얼마 이상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돈에 대해 더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기보다 남들과 견주어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더 가난하고 조급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한 부부를 상담했는데, 남편의 건강이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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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휴직서를 내고 쉬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부인이 이러는 겁니다.
“한 6개월만 더 다니다 쉬면 안 될까요?”
“왜요?”
“6개월만 있으면 인사이동이 있거든요. 남편이 이사로 승진할 차례인데, 승진하고 나서 쉬면 안 될까요?”
생명이 위독해서 당장 쉬라는데 남편 목숨은 안중에도 없고 지금 휴직하면 승진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던 겁니다. 그런데 그분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 다 돈에 집착하고, 앞으로 살아갈 일에 너무 집착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먹고 살 만한데도 늘 돈에 쫓기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얻을 생각만 하느라, 절에 와도 부처님에게 자꾸 뭔가 달라고만 합니다. 옛날에는 어렵게 살았지만 십시일반 또는 콩 한 쪽도 여럿이 나누어 먹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나누어 먹는 마음을 내면 마음이 부자가 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입고, 소박하게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해서 있던 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여유가 생깁니다. 반면에 많아 먹고, 많이 입고, 많이 쓰겠다는 마음을 내면 돈이 많은데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부족함을 느끼면 가난한 자가 되고, 여유가 있으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아무리 가난해도 한 끼 식사를 때우지 못하는 형편은 아니고,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렵다 해도 천 원을 보시하지 못할 형편은 아닐 겁니다. 자신의 형편이 어렵다고 괴로워만 할 게 아니라 베푸는 마음을 내면 오히려 마음이 부자가 되고 삶에 대해서도 의연해져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 실직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많은 사람이 여기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주변을 속이고, 남에게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애쓰며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4년 전에 실직했는데,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라 상처를 받을까봐 얘기를 안 했다는 부인이 있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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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서 남편이 항상 출근하는 것처럼 속이다보니 마음이 답답해지고, 남편도 미워지고, 아들을 속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는 겁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둔 걸 왜 숨길까요. 직장에 다니지 앉는 남편을 열등한 존재로 보니까,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니까 숨기는 겁니다. 남편의 실직은 아이들한테 속일 게 아니라, 오히려 터놓고 얘기해야 합니다. 가족회의를 열어서 어려움을 함께 풀어가려고 하는 게 좋습니다. “아빠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셨는데, 실직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 하고 요즘 경기가 안 좋아서 실직을 했다든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든지 상황을 설명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어려운 사정은 전혀 알리지 않고, 남편을 무시하고 자식만 생각해서 키운다고 아이들이 잘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그런 걸 알고 이겨내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애를 업고 식당에 가서 일하면, 아이는 부모가 고생하는 것을 알아서 고마워합니다. 힘든데도 자신을 업고 일한 걸 알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부모의 어려움을 모르게 하고 자식만 곱게 키우면 부모가 어떻게 자기를 키운지를 모릅니다. 자칫 자식이 아버지를 열등하게 생각하고, 무능력한 아버지를 두었다고 부끄럽게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직은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큰 충격을 받기 때문에 가족이 잘 품어 주어야 합니다. 특히 부인이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중요합니다. 한 50대 가장은 직장을 그만두자, 새로 취직하기도 힘들고 해서 식당을 하는 부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사람 써서 월급 주느니 내가 식당 청소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면 안될까?”
그런데 그 부인이 남 보기 창피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남편은 식당에서도 일을 못하고 밖으로만 돌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남편이 실직한 것을 4년 동안이나 주변에 말하지 않았다면, 그 남편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 실직을 부끄러워한 것을 참회하고, 아이들에게 집안 사정을 공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의연하게 헤쳐 나가면서 항상 웃고 밝게 생활하면, 아버지가 실직해도 아이들은 아무 관계없이 잘 큽니다.
남자의 성질을 보면 소 같은 데가 있습니다. 옛날에 소 먹이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사람이 고삐를 놓고 도망가면 소도 도망을 가다가 사람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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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답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 고삐를 잡고 옆에 딱 붙어서 격려하면 그 소가 뿔로 호랑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처럼 여자가 고삐를 잡고 격려해 주면 남자는 없던 힘도 냅니다.
■ 돈, 직위, 명예가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런 저런 위치에 서면 권위의식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사장이다, 부장이다, 아빠다, 선배다 하는 권위가 마치 자기 자신인 줄 착각합니다. 어느덧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동작이 느려지고 무거워지는데, 이 지위에서 밀려나면 순간에 무너져버립니다. 돈, 직위를 잃으면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 같은 심리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특히 고위직에 있는 분들은 늘 목에 힘주고 어디에 가든 앞자리에 앉고 주위의 시선을 받습니다. 그러다 자리에서 물러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으면, 자존감이 무너지면서 허무감에 빠지게 됩니다.
집에서도 남편이 돈을 벌어 올 때는 “커피 타와라, 신문 가져와라.” 큰소리 좀 쳐도 부인이 아니꼽지만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은퇴하고 돈도 안 벌면서 그 버릇을 못 버리면 구박을 받기 쉽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권위주의를 극복하려면 돈 잘 벌 때, 직위가 있을 때, 그 직위나 돈으로 나를 삼지 말아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업무를 볼 때만 그 역할을 하고, 오후에 나가서 식사하거나 술 한 잔 할 때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친구처럼 대한다면 직위가 떨어져도 옛 직장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직위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은 직위가 없어지면 바로 멀어져버립니다.
늙어서 쓸모없어지는 것은 육체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바로 권위의식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도 출세해서 권위의식을 갖게 되면 늙었을 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겁니다. 사회에서 직위는 임시적으로 주어진 하나의 역할일 뿐인데, 그 직위가 곧 자기라고 착각하다가 직위를 잃으면 공허감이 뒤따르게 됩니다. 본인이 어떤 위치에 올랐을 때 그 지위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고 자기 조절을 잘 해야 나이 들어서도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고, 새로운 일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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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직 후 3년 동안 복 짓기
30년 동안 군 생활을 했는데, 퇴직한 뒤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걱정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공무원은 요즘 가장 선망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인데, 그 직업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가 연금이 꼬박꼬박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욕심을 내서 연금을 한꺼번에 타서 사업하려고 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절대로 연금을 한꺼번에 타면 안 되고, 적더라도 꼬박고박 매달 받는 게 낫습니다. 부족하면 어디 가서 일을 해서라도 보태는 게 낫지, 욕심내서 투자하면 날리기가 쉽습니다. 무엇보다 공무원 생활을 한 분들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어디에 투자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다 날리고 맙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하면 적어도 3년은 사회에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먹는 게 좋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나라의 녹을 먹고 살았으니까 ‘30년 동안 먹고 살게 해 준 나라에 대해서, 국민에 대해서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세상에 필요한 일을 무료로 하는 겁니다. 자원봉사로 청소를 한다든지, 자기 재능을 활용해서 일을 한다든지 해서 한 3년 복을 지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자기가 받은 은혜를 ‘회향’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직한 뒤에야 수행을 시작할 게 아니라, 직장에 다닐 때 미리 마음공부를 시작하면 노후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막연하게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남은 기간 동안 마음도 챙기고 이런저런 것을 배우고 봉사활동도 해나가면 ‘퇴직하고 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 없이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 나갈 수 있습니다.
■ 은퇴 뒤에 자유롭게 살 권리
은퇴 뒤에 귀농을 꿈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때 부부가 뜻이 맞으면 좋지만, 배우자가 반대하면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 부인이 남편이 62세 인데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농촌에 가서 살고 싶어 한다고 불만을 털어 놨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남편의 귀농을 반대하는 이유가 이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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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서른한 살인데 같이 살고 있거든요. 일이 바빠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애 장가도 보내놓지 않고, 혼자라도 가서 살아보겠다니 제가 마음이 안 놓여요.”
남편이 평생 돈 버느라 고생하고 이제 60세가 넘어서 시골 가서 한번 자기 뜻대로 살아보겠다는데 그 자유도 안 주고, 고작 서른 살 넘은 아들을 걱정하면서 귀농을 반대한다는 겁니다.
부모가 스무 살 넘은 자식에게 신경 쓰는 것은 자식에게도 나쁘고 부모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자식이 명문대 나오고 좋은 대기업도 다닌다는데, 왜 연애를 못할까요. 그중에 한 가지 이유로는 엄마가 돌봐주기 때문에 불편한 게 없어서예요. 엄마가 자식에게 도움을 주지 않아야 아들이 장가를 빨리 갑니다.
농사짓겠다는 남편을 못마땅해 하는 부인을 보면, 저는 결혼하지 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젊어서 가족 위해 평생 일했으면 노후에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주어야 하는데, 부인이 그것마저 간섭하고 반대하잖아요. 가족이라고 내 마음대로 구속할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살도록 놓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자식도 제 갈 길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 목사님은 정규직, 스님은 비정규직
몇 분이 대화하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목사님도 정년이 있어요?”
한 분이 ‘68세“라고 대답하자, 또 물었습니다.
“스님들도 정년이 있나요?”
“목사님은 정규직이기 때문에 정년이 있고, 스님들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정년이 없습니다.”
제 말을 듣고 모두 웃었는데, 비정규직이 사회 문제가 되다보니 연결돼서 나온 얘기입니다.
흔히 정규직은 무조건 좋고 비정규직은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데, 이처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갈수록 정규직의 비율이 적어지고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아질 텐데, 그것을 사회 현상이라 고 봐야지, 꼭 사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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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되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정규직이 좋은 것 같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 사람이 한 직장에 평생 매이는 겁니다. 옛날에는 종이 양반집의 정규직이고 자유노동자는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할 필요도 있다는 겁니다. 만약에 제가 세속생활을 했다면 비정규직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돈보다는 제 취미와 의미가 잇는 쪽으로 자유롭게 일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았나 해서입니다.
비정규직이 다 정규직이 돼야 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면, 해결책도 없고 수많은 비정규직 사람이 늘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비정규직의 문제는 정규직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인데 회사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비정규직을 뽑고는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월급을 절반밖에 안 주는 데 있어요. 신분도 불확실한 데다가 인건비도 절반밖에 안 주니까 확실히 부당한 대우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분명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제도도 바꿔야 하지만, 개인들의 생각도 좀 바뀌어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검소하게 사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고 일에 대한 고정관념도 바꾸면 사실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늘 일은 적게 하면서 돈은 많이 받고 남 보기에 번드르르한 곳만 쳐다보고 있으면, 이것은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해결이 안 됩니다.
지도자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고, 개인은 자꾸 제도에 책임을 물으면 끝이 안 납니다. 어차피 인생은 지금 이 순간에 살고 있는데, 제도 개혁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물론 끊임없이 제도 개혁을 요구하고 개선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불평불만 속에서 괴롭게 산다면 내 인생을 낭비하는 거예요. 그래서 개개인도 조금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기성세대는 어릴 때 농촌에서 산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낫질도 할 줄 알고 삽질도 할 줄 아니까 시골에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은 경험이 없으니까 그런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책상에 앉아 펜대를 굴리다 새삼스럽게 농사일을 하면 인생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여기는데, 사실은 나이 들수록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 훨씬 건강에 좋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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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고 깨끗이 씻은 뒤 막걸리 한 잔 마시고 푹 자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서 훨씬 오래 살 수 있습니다.
■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다툼이 사라진다
사회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정작 일이 아니라 인간관계일 때가 많습니다. 특히 직장에서 상사, 동료, 후배와의 갈등은 일에 대한 부담보다 더 크게 작용합니다.
“제 상사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일에 대한 개념도 없어요.”
어떤 분이 직장생활의 어려움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상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는 표현이 굉장히 주관적입니다. 상사는 자기 식대로 말하는 건데,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하고, 개념 없는 소리나 개념 없는 짓을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주관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내 관점을, 상대는 상대의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저 사람은 저런 가치관을 갖고 있고, 나는 이렇게 느끼지만 저 사람은 저렇게 느끼고, 나는 이런 스타일로 일하지만 저 사람은 저런 스타일로 일합니다. 이건 다만 다를 뿐이에요.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가 너무 분명하면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의 관점이나 가치관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일의 효율을 따질 때는 내가 나을 수도 있지만 서로 화합하는 관계로 따지면 내가 감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효율만 따져서 내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할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일은 참 잘하는데 화합이 안 돼서 전체 분위기를 해치고 오히려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격은 참 좋은데 일머리가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사람은 좋지만 맺고 끊는 게 불분명해서 뒤끝이 흐지부지한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일할 때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그냥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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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에서 내 삶의 활력소를 만드는 법
사람이 기쁨을 얻는 데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가 원해서 일을 할 때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있는데 지나놓고 보면 좀 무의미할 때가 있습니다. 젊을 때 술 먹고 매일 놀 때는 참 재밌는데, 한 10년 지나서 돌아보면 아무 것도 한 게 없고 낭비한 것같이 느껴집니다. 우리가 술집에 가서 막 떠들고 웃고 재미있게 놀았는데 문을 열고 나오면 뭔가 허전합니다. 남는 게 없고 유익함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인생에서 너무 재미만 좇다보면 나중에 허전함이라는 후회가 뒤따라 올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은 또 남에게 뭔가 쓰임이 있었을 때, 어떤 유익한 일을 했을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그때 한 일에 대해서 자부심이 생깁니다. 참 의미가 있었다. 참 유익했다. 참 잘했다. 싶은 게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로 재미만 갖고 인생의 즐거움을 삼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뒤에 후회나 허전함, 공허감 같은 것이 생기게 됩니다. 한편 또 너무 삶의 의미 같은 것만 찾으면 현재의 삶이 힘들어지고, 스트레스도 많아져 지치기 쉽습니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어우러지면 가장 좋은 데, 바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자기 일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가장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데, 우리는 보통 이 둘이 분리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20대 때 슬럼프에 빠지면 주로 단식을 했습니다. 문 닫고 들어가서 일주일을 굶었습니다. 생명체라는 건 단식을 하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습니다. 일이 재미없고 활력이 없다 싶을 때는 지금까지 해온 습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에서 시작해 보면 다시 생기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저에게 강연은 놀이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일과 재미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만약 돈 때문에 강의를 한다면 예상보다 돈을 적게 받을 때는 기분이 나쁘겠죠. 이렇게 되면 내가 돈에 매이게 됩니다. 제가 돈을 안 받고 강의하는 이유는 그래야 놀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연을 하루에 세 번 네 번 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놀 때는 좀 오래 놀아도 괜찮잖아요.
제가 요청받은 강연 중에 가능하면 안 하려고 하는 강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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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방송국 강연입니다. 방송국 강연은 청중이 3만원을 받고 강의를 듣기 때문에 집중력이 없고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카메라가 오면 뭔가 듣는 척하고 지나가면 딴 짓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번째는 군대나 공무원, 직장의 특강인데 강의에 참석하도록 출석 체크를 하고 억지로 와서 듣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가 집중력이 떨어지는 대학교 수업특강입니다.
그런데 제일 강의하기 좋은 사람은 돈 많이 내고 오는 사람입니다. 이건 자기가 원해서, 돈까지 내고 왔기 때문에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그러니까 돈을 얼마 더 받고 안 받고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 쓰임새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평가를 해야 합니다. 또한 일과 재미가 함께할 수 있다면 일이 곧 놀이이기 때문에 일 끝난 후에 다른 곳에 가서 삶의 활력을 찾으려고 굳이 애쓸 필요도 없어집니다.
제6장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봄에는 산과 들에 온갖 꽃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꽃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봄철에 새로 움트는 새싹들도 참 아름답습니다. 새싹들은 여름에 무성해지다가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고 결국은 가랑잎이 돼서 떨어집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흔히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떨어지는 가랑잎이 쓸쓸한 걸까요? 아닙니다. 바로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쓸쓸한 거예요. 가랑잎을 보면서 ‘찬란했던 내 젊음도 저 가랑잎처럼 스러져 가는구나.’하고 나이 들어가는 내 인생을 아쉬워하는 겁니다.
봄에 피는 꽃, 새싹만 예쁠까요? 가을에 잘 물든 단풍도 무척 곱고 예쁩니다. 봄에 꽃놀이를 가듯이 가을에는 단풍을 보기 위해 단풍놀이도 많이 가잖아요.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면 아무도 주워가지 않지만, 가을에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고이 꽂아서 오래 보관도 합니다.
우리 인생도 나고 자라서 나이 들어가는데, 잘 물든 단풍처럼 늙어 가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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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듦이 결코 서글프지 않습니다. 자연이 변화하듯 편안하게 늙어가면 그 인생에는 이미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듯 아름답게 물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나이 들어가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노후를 아름답게 잘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없이 변화에 순응하는 겁니다. 나이 들면 드는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병이 나면 병나는 대로, 머리가 희어지면 희어지는 대로, 주름살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그동안 많이 부려먹었으니까 고장 날 때가 됐지.’ 하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구나.’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잘 물든 단풍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나침’을 경계해야 합니다. 과욕을 부리지 않아야 하는데, 나이 들어 과한 것은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젊을 때는 무리해도 금방 회복이 되지만 나이 들어서 지나치면 이겨내지를 못합니다. 특히 과식, 과음, 과로는 피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면 자꾸 일을 벌이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를 하려고 할 게 아니라 정리를 해나가야 합니다. 인생을 포기한다는 게 아니고 열매를 맺는 과정이기 때문에, 잔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한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거나, 나이를 인정하지 않고 젊어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단풍처럼 물들어 가는 나’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욕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됩니다.
■ 농부보다 목동처럼 살아라
몸은 적당히 쓰면 건강에 좋지만, 너무 혹사하면 수명이 단축됩니다. 극한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데, 에너지를 한 때 지나치게 써서 수명이 단축되는 겁니다. 자동차로 예를 들면 몇 년 쓰느냐가 아니라 몇 Km를 달렸는가를 갖고 수명을 계산합니다.
또 짧은 시간에 지나치게 많이 사용했거나 과속을 하면 그만큼 수명이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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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니다. 그러니까 80~100을 넘지 않는 속도로, 또 하루에 너무 많이 달리지 않는다면 이삼십 년 써도 크게 손상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의 직업이 뭘까요? 흔히 농부라고 생각하는데, 농부는 젊을 때 과로를 하는 편이라 100살 넘어가는 사람이 드뭅니다. 하지만 약간 게으르면 무리하게 일하지 않기 때문에 수명이 길 수 있습니다.
평균 직업군을 따지면 가장 오래 살 수 있는 직업은 목동입니다. 목동은 하루에 많이 걷지만, 몸에 무리가 갈 만큼 격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유목지대가 주로 해발 500~1000미터니까, 공기 좋은 곳에서 적당한 운동을 하니까 건강한 거예요.
너무 놀면 운동 부족으로 몸이 나빠지고, 너무 과하게 써도 과로로 몸이 나빠집니다. 기계도 안 쓰고 오래 놓아두면 오히려 쉽게 망가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너무 과하게 써도 열이 나기 때문에 늘 적절하게 쓰는 게 가장 오래 갑니다. 집도 너무 과하게 쓰면 훼손이 되고 안 써도 훼손이 됩니다. 적절하게 써야 관리가 되어서 오래 갑니다.
■ 잔소리와 간섭은 자식과 등지게 한다
어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사는 걸 좋아합니다. 웬만해선 나무라지도 않고 보듬어주니까 좋아해요. 그런데 커가면서 싫어하게 되는데, 그 이유 가운데 첫 번째가 바로 잔소리입니다. 나이가 들면 어딜 가든 젊은 사람들에게 훈계하느라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반복하면 듣기 좋아할 사람은 없어요.
어린아이나 젊은 사람이 재잘재잘 말을 많이 하면 귀엽다고 하지만. 나이 들어서 말이 많으면 잔소리가 많다고 다 싫어합니다.
50세가 된 아들이 나갈 때도 80세 된 부모는 “차 조심해라.”하는 데, 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자식을 생각해서 걱정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이지만 잔소리를 한다고 자식들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귀찮게만 여깁니다. 그러니 입을 다무는 게 좋습니다. 뭔가 한마디 하고 싶을 때는 염불을 하는 게 좋습니다. 염불을 많이 하면 내 공부도 되고, 자식들이 싫어하는 잔소리도 안 하게 되니까 일석이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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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부모 곁을 떠나고 잘 안 찾아온다면 부모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좀 잔소리가 많구나. 남의 인생에 간섭을 하는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노인이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해요. 밥 먹으라든지 어디 가자든지 하는 의사전달은 하되,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는 얘기, 잘했니 못했니 시비분별 하는 얘기는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잔소리와 간섭을 안 해야, 자식과 같이 살아도 늘 보살핌을 받습니다.
■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법
부모가 자식을 어려서부터 애지중지 키우다보니 자식이 크면 기대가 생깁니다. 조금이라도 서운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아이 때 정성들여 키운 것은 다 지나간 옛날 일이고, 이제는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야 부모도 행복해지고 자식도 편안해 집니다. 또 그것이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길이기도 합니다.
내가 자식에게 기대하고, 전화오기를 바라고, 찾아오기를 바라는데, 자식이 자기 일 바쁘다고 연락도 잘 안 하면 불효막심한 자식이 됩니다. 그러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고 있으니 연락이 없겠지.’ 생각하면 기쁜 일이 됩니다. 또 ‘어릴 때는 맨날 이거 달라 저거 달라 했는데 이제는 달라는 소리를 안 하는구나. 우리 자식이 효자다.’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거예요. 자식을 나쁘다 생각하지 말고 자꾸 좋다고 생각해야 내 인생에 보람이 생깁니다.
‘자식을 온갖 고생 하고 키워놓으니 한 놈도 명절에 안 찾아온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기 인생이 자꾸 후회가 됩니다. 또 자식에게 바라는 게 있기 때문에 자꾸 자식을 욕하게 돼요. 그런데 자식을 욕하면 결국은 내 욕이 됩니다. 누가 낳았어요? 누가 키웠어요? 누구 자식이에요? 다 제 얼굴에 침뱉기예요. 자식에게 바라는 게 없어야 무엇보다 내가 편안해 집니다.
손주를 봐줄 때도 집착하면 나중에 갈등이 생깁니다. 이웃집 아이 돌보듯이 집착 없이 돌보면 고마워하지만, ‘내가 키웠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 거기에 또 기대가 생겨서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아무리 사랑하고 헌신하며 키웠다 해도 내 품을 떠난 뒤에는 기대와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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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식을 효자로 만들고, 지난 내 인생도 보람있게 만들고, 나도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 살아 있을 때 나눠줘야 선물이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지고 나눌 수 있어야 보기에 좋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악착같이 모아서 살려고 하면 ‘열심히 사는 구나’ 해서 예뻐 보이지만, 나이 든 사람이 물건이든 돈이든 움켜쥐려 들면 추해 보입니다.
가지고 있는 옷도 누가 좋다 하면 주는 게 좋습니다. 죽을 때 털끝 하나도 가지고 못갑니다. 죽고 난 뒤에 옷은 자식도 안 가져가요. 그분이 아주 유명해서 박물관에 갈 게 아닌 이상은 다 태워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살아 있을 때 나눠줘야 선물이 됩니다. 죽고 난 뒤에는 똑같은 물건인데도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해서 아무도 안 가져갑니다. 그러니까 미리 나눠주는 것이 물건에 대한 집착도 놓고, 복을 짓는 게 됩니다.
재산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보시가 됩니다. 굶는 사람을 먹여주고 병든 사람을 보살펴주도록 쓰면 그것이 모두에게 공덕이 돼요.
나이가 들면 본인보다 자손이 잘되길 바라는데, 자손이 잘 되려면 먼저 복을 지어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돈이라도 보시를 자꾸 해야 합니다. 욕심내서 보시하라는 게 아니라 천원 있으면 900원짜리 밥 먹고 100원 보시하는 마음을 말하는 겁니다. 이게 복을 짓는 거예요. 자손 잘 되라고 빌 게 아니라 자꾸 복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손주 때부터 복을 받아서 잘 됩니다.
살아 있을 때 가진 것을 나누고 정리해야, 죽은 뒤가 더 가볍고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노후에 살 최소한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정리해서 공익에 쓰이도록 환원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사회로 돌려줄 바에야 수입이 많을 때 세금으로 좀 나가는 것에 대해서 굳이 아까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사회로 환원할 건데 마지막에 목돈으로 환원하느냐, 평소에 조금씩 환원하느냐는 차이일 뿐입니다.
■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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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좋은 일 많이 해서 복을 쌓으면 나중에 복을 받거나 좋은 세상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행동을 해도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가 베푸는 선한 행위를 다른 사람이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베푼 행위에 대해 오는 것이 없으면 누구나 기대가 어그러지는 배신감을 느낍니다.
가정에서도 엄마가 자녀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자식이 커서 엄마의 그 고생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자식 키워봐야 소용없어.’ 하면서 우울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또 사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한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애썼는데, 그 가치를 몰라준다고 괴로워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봉사를 하고, 보시를 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남을 위해 일하면서 정작 자신은 행복하지 않은 경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던져서 남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정작 사람들과 세상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일종의 서운함 같은 것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이때 필요한 것은 남에게 베풀면서도 베푼다는 마음을 내지 않는 겁니다. ‘금강경’에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되,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긴다면 보살이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보살은 자신이 지은 인연의 공덕으로 보면 마땅히 천상에 태어날 수 있지만, 지옥에 있는 중생들이 괴로워하니까 그들을 돕기 위해 지옥에 가겠다는 원을 세운 존재입니다. 보살은 인생의 주체가 자신이고, 중생은 자신이 지은 업에 끌려 다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은 왜 자기 업에 끌려다닐까요. 중생은 베푼 것도 없이 받기만 바라고, 남을 이해하지 않고 이해 받기만을 바랍니다. 그렇게 늘 대상에 매여 있기 때문에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노예로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보살은 바라는 바 없이 남을 돕기 때문에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이 없어요. 그렇듯 자유롭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대가를 기대하지 않는 보살의 마음을 내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없는지를 보고 그때그때 마음을 비워내서, 주는 것 자체로 행복해질 때 진정한 보시가 됩니다. 그럴 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자유로워지고, 비로소 진정한 복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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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오랜 습관을 바꾸는 기도
“하늘에서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그릇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법문을 듣고도 크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고 적게 얻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덕은 다 자기 덕이라는 겁니다. 마음의 문을 연 사람은 기쁨을 얻고, 조금 열면 조금 얻고, 열지 못하면 얻지 못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부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세상의 학문은 순서가 있고 단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초급반부터 고급반까지 죽 공부를 해 나가면 됩니다. 불법도 그와 같습니까?” “불법도 그렇다.”
“그러면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 누구나 다 해탈 열반에 들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니다.”
“단계를 밟아서 차근차근 하면 다 이룰 수 있다면서요?”
“그렇지.”
“근데 왜 못 이루는 사람이 있습니까?”
“가르쳐줬는데 안 가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가르쳐 줬는데 저렇게 가버린 사람도 있다. 내 가르침도 그와 같다. 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에 누구나 다 그 깨달음의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일러줄 수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가르침에 따라 가는 자가 있고, 가지 않는 자도 있고, 또 가르침대로 행하지 않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바른 법을 일러줬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기회가 온 것이지만, 그 길을 가고 안 가고는 각자 몫이라는 겁니다.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정진을 잘 할 수 있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자책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아직도 진리를 온전하게 알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한탄하고 후회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하루라도 더 바르게 진리를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노력하는 것은 앞으로 가는 길이고, ‘이제까지 60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이것을 모르는구나.’ 하는 것은 과거에 사로잡혀 넘어지는 겁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정진부터 한 시간 하는 게 좋습니다. 몸을 위해서 아침에 세수하고 머리 빗고 화장하고 밥 먹고 옷 입듯이, 그것의 십분의 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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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도 행복을 가져오는 ‘마음 닦기’에 투자하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생깁니다.
■ 빚 갚는 셈치고 집안일을 하라
65세가 넘어서 경로우대를 받을 나이가 되면, 그동안 은혜를 입은 세상을 위해서 봉사하고 더 이상 재능을 돈을 받고 팔지 않는 삶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돈이 있으면 보시하고, 돈 없으면 재능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말을 잘하면 말로, 힘이 세면 힘으로, 시간이 많으면 시간으로 돕겠다는 마음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를 세워서 욕심내지 않는 겁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에 무리가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밖에 나가서 봉사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동안 부인의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다면 이제는 부인에게 빚을 좀 갚는 것도 좋습니다. 부인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밥이 차려져 있으면 기분이 좋을 거잖아요. 지금까지 내 생각, 내 고집 부리면서 행세를 해왔는데, 빚 갚는 셈치고 집안일을 조금만 하면 60세여도 신혼살림처럼 행복할 수 있고, 70세여도 행복한 살림을 할 수 있습니다.
■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네
행복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한 번도 행복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겁니다. 우리가 흔히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만 하다가 죽을 때가지 한 번도 행복해보지 못한 채 죽습니다. 그러니 준비할 것도 없어요. 바로 지금부터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준비하지 말고, 오늘 당장 행복해야 합니다.
오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내일 행복할 수 없고, 이생에서 행복하지 못하면 설령 저 생이 있다 해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살면서 늘 불평불만인 사람은 천당에 가도 불평불만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극락에 가면 행복할 것 같아도 막상 가보면 거기에서도 괴로울 수 있어요. 어디를 가도 저절로 행복해지는 데는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해야 합니다.
인연 따라서 늙으면 늙어서 좋고, 살면 살아서 좋고, 죽으면 죽어서 좋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생에서도 극락에 살고 저 생에 가서도 극락에 살아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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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지옥같이 살고 저 생에 극락 가겠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은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이곳이 극락입니다. 그런 사람은 미국에 가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불평불만투성이인 사람은 극락에 보내놔도 불평불만이에요. 불평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불평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옥, 극락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행복하면 극락이고, 내 마음이 괴로우면 지옥인 겁니다.
말끝마다 누구 때문에 못살겠다. 누구 때문에 괴롭다고 하는데, 조금만 깊이 살펴보면 행복과 불행은 자기가 만듭니다. 자기를 불행하게 만드는 사람은 극락에 가서도 불행하고,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은 지옥에 가도 행복합니다.
그러려면 항상 현재의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나서 좋고, 참선할 수 있으면 참선할 수 있어서 좋고, 절할 수 있으면 절할 수 있어서 좋고, 밥 먹으면 밥 먹어서 좋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행복합니다. 다만 그걸 봇 보고 못 느낄 뿐이에요. 옛날에
어떤 사람이 선사에게 찾아가 부처가 어쩌니 저쩌니 온갖 이야기를 하니까,
선사가 말했습니다.
“차나 한 잔 하고 가게.”
‘쓸데없는 생각 그만 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행복합니다. 자꾸 행복하겠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
금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을 때, 바로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
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 에필로그 : 나부터 행복해야 한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쟁에 나가 수천의 적을
혼자 싸워 이기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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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자기를 이김으로써
최상의 전사됨만 못하느니라.
자기를 이기는 것 가장 현명하나니
그러므로 사람 중의 영웅이라 한다.
내가 남을 좋아하고 이해하면, 내 가슴이 후련하고 내가 행복한 거예요. 내가 남을 보살피고 도와주면, 내가 어른이 되고 주인이 되는 겁니다. 내가 예쁜 옷을 입는 것보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보다 가장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법입니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도 당당하고, 평화롭고 곱게 물들어 가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진리의 길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진리의 길은 나에게도 좋고, 남에게도 좋고,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합니다. 나는 좋은데 남에게는 나쁘거나 남에게는 좋은데 나에게는 나쁘거나 한 일은 오래 지속될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이익인데 남에게 손해가 되는 일은 과보가 돌아오고 내가 희생을 해서 남에게 이익이 되는 일은 내가 오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행복이 유지됩니다. 지금은 좋은데 나중에 나쁜 것은 나중에 후회하게 되고 나중은 좋은데 지금 나쁜 것은 지금 하기가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아야 그 행복이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이 진리의 길에 있어서 지금도 좋고 나중에도 좋고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지속 가능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2013.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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