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락원기(獨樂園記)

2014. 7. 30. 18:30한문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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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원기(獨樂園記)

 

 - 熈寜六年(1073)作     번역 宋 明 鎬 (漢學者)

 

孟子曰 獨樂樂不如與人樂樂 與少樂樂不如與衆樂樂 此王公大人之樂 非貧賤者所及也 孔子曰 飯蔬食飲水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顔子一簞食一瓢飲 不改其樂 此聖賢之樂 非愚者所及也 若夫鷦鷯巢林不過一枝 鼴鼠飲河不過滿腹 各盡其分而安之 此乃迂叟之所樂也

 

맹자 왈, 혼자 기뻐함은 남과 함께 기뻐하는 것보다 못하고, 적은 이들과 즐거워함은 많은 이들과 즐거움을 누림보다 못하다. 이것은 왕공 대인의 즐거움이지 나 같은 빈천자는 따라갈 바가 아니다. 공자왈,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그 속에 기쁨이 있다고 하였다. 안자는 대그릇에 밥 담아 먹고 바가지로 물 퍼 마시는 가난 속에서도 기쁨에 겨웠다. 이것은 성현들의 기쁨이지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 뱁새의 둥우리는 나뭇가지 하나로도 넉넉하고, 두더쥐가 황하에서 물을 마시더라도 배만 채우면 된다. 만물은 자기 꼬라지를 다함으로써 편히 여긴다. 어리석은 늙은이가 이런 꼬라지들로써 흐뭇해지는 바라.

 

熈寜四年 迂叟始家洛 六年買田二十畝於尊賢 坊北闢以爲園 其中爲堂 聚書出五千巻 命之曰讀書堂

 

희녕 4년(1071)에 나 우수(迂叟)는 낙양에 집을 장만하였다. 6년(1073) 존현에게서 밭 20무를 샀다. 동네의 북쪽을 개간하여 원유를 만들고 그 기운데에 집(堂)을 지었다. 5천 권의 책을 모으고 독서당(讀書堂)이라 부른다.

 

堂南有屋 一區引水北流貫宇下中央爲沼 方深各三尺 疏水爲五溛注沼中状若虎爪 自沼北伏流出北階懸注庭下状若象鼻 自是分爲二渠 繞庭四隅 會於西北而出 命之曰弄水軒

 

 독서당의 남에 집이 있다. 한쪽으로 물을 끌어들여 집(屋)의 북쪽을 지나가서 집 아래를 관통하여 흐르게 하고서는 가운데에 연못을 만들었다. 사방의 깊이가 각각 석 자이다. 물을 터서 5개의 웅덩이를 만들어 그 물이 가운데 연못에 물을 대는 꼴이니 형상이 호랑이 발톱이다. 연못의 북에서 땅 속으로 복류(伏流)하는 물이 땅 밖으로 나와서는 북쪽 계단을 타고 뜰 아래로 흐르니 그 형상이 코끼리 코와 같다. 계단에서 떨어진 물은 2개의 도랑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뜰의 사방 모퉁이를 에워싼다. 이 물이 서북에서 모여서 흘러나오니 농수헌(弄水軒)이라 이름 짓노라.

 

 堂北爲沼中央有島 島上植竹 圓周三丈 状若玉玦 攬結其杪如漁人之廬 命之曰釣魚庵

 

 독서당의 북에 연못을 만들고 중앙에 섬을 만들었다. 섬에다 대나무를 심었는데 둘레가 3장이다. 그 모습은 한쪽이 터진 옥 가락지 같다. 대나무의 끝을 연결하여 묶으니 어부의 오두막 같다. 그래서 조어암(釣魚庵)이라 이름 짓는다.

 

 沼北横屋六楹厚其墉茨以禦烈日 開户東出南北列軒牖以延凉颸 前後多植美竹爲清暑之所 命之曰種竹齋

 

연못의 북쪽에 집을 가로질러 6개의 기둥을 세우고 담에는 이엉을 두텁게 이어서 뜨거운 햇살을 막았다. 문을 열고 동으로 나가면 남북으로 난 창문에 시원한 바람이 맞는다. 앞 뒤에 좋은 대나무를 심으니 더위를 식혀주는 곳이 된다. 종죽재(種竹齋)라 부른다.

 

 沼東治地爲百有二十畦 雜塒草藥辨其名物而掲之 畦北植竹 方徑丈 状若棊局 屈其杪交相掩以爲屋 植竹於其前夾道如歩廊 皆以蔓藥覆之 四周植木藥爲藩援 命之曰采藥圃

 

 쟁기로 연못의 동쪽을 갈아 엎어 120개의 밭 두둑을 만들었다. 약초의 구별할 수 있도록 꼬챙이에 이름을 걸었다. 밭두둑의 북에는 대나무를 심었는데 사방의 길이 1장이다. 그 모습이 바둑판 같은데 대나무의 끝을 구부려 서로를 가리게 하니 집이 된다. 그 앞에도 대마무를 심으니 좁은 길이 복도 같다. 모두를 덩굴 약초로 덮었다. 사방의 둘레에 나무를 심으니 약초를 보호하는 넝쿨이 된다. 채약포(采藥圃)라 부른다.

 

 圃南爲六欄 芍藥牡丹雜花各居其二毎種止 植兩本識其名状而已 不求多也 欄北爲亭 命之曰澆花亭

 

 채약포의 남쪽에 6개의 울타리로 구분 짓고 각 란(欄)의 울에 작약, 모란, 잡화를 2주씩만 심었다. 두 그루씩만 심어서 그 이름과 형상을 알려는 것일 뿐이니 많을 필요는 없다. 울 바자의 북쪽에 정자를 지으니 요화정(澆花亭)이라 부른다.

 

 洛城距山不遠而林薄茂密 常苦不得見 乃於園中築臺搆屋 其上以望萬安轘轅至於太室 命之曰見山臺

 

낙양성은 산과 멀지 않으니 숲이 빽빽하다. 먼 산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에 원유 속에 대를 쌓고 집을 지었다. 그곳에 오르니 만안산과 환원산, 태실산까지 보인다. 아, 이를 견산대(見山臺)라 부르노라.

 

 迂叟平日多處堂中讀書 上師聖人下友群賢 窺仁義之原 探禮樂之緒 自未始有形之前 暨四逹無窮之外 事物之理舉集目前 所病者學之未至 夫又何求於人 何待於外哉

 

나 우수는 평소에 독서당에서 책을 읽는다. 위로는 성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아래로 현인들을 벗으로 삼는다. 인의의 근본을 따져 보고 예와 악의 실마리를 탐구한다. 형상이 이루어지지도 않던 때와 사방이 무궁의 끝까지 두루 통하게 된 오늘날까지의 사물의 이치가 눈 앞에 모두 모여드는구나. 그러나 배우더라도 모든 이치에 통달치는 못할지니 아쉽다. 이밖에 또 무엇을 남에게 구하리요. 밖에서 무엇을 기대하리요.

 

志倦體疲 則投竿取魚 執袵采藥 決渠灌花 操斧剖竹 濯熱盥手 臨髙縱目 逍遙徜徉 唯意所適 明月時至 清風自來 行無所牽 止無所抳 耳目肺腸 悉爲己有 踽踽焉 洋洋焉 不知天壤之間 復有何樂可以代此也 因合而命之 曰獨樂園

 

이뭐꼬, 심드렁하다. 피곤이 몰린다.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는다. 옷자락 걷어올리고 약초를 캐거나 꽃에 물을 주려고 물꼬를 튼다. 자귀를 쥐고 대나무를 쪼개다가 열기를 식히려고 물을 움킨다. 높은데 올라 눈길을 탁 놓아 버리노라. 왔다리갔다리 노닐면서 마음 먹은 대로 한다. 밝은 달은 때 맞추어 이르고 청하지도 않았는데 시원한 바람이 저절로 불어온다. 간다고 해도 끌려서 가는 것이 아니요, 머물렀으나 막힌 바가 없다. 이목폐장이 모두가 나의 것임을 느낀다. 홀로 걷노라. 무언가 벅차 오른다. 천지지간에 이러한 것들 말고 무슨 즐거움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기쁨을 모두 합하여 이름 짓노라니 독락원(獨樂園)이라네.

 

或咎迂叟 曰吾聞君子所樂必與人共之 今吾子獨取足於己不以及人其可乎 迂叟謝曰 叟愚何得比君子 自樂恐不足 安能及人 况叟之所樂者 薄陋鄙野 皆世之所棄也 雖推以與人 人且不取 豈得強之乎 必也有人 肯同此樂 則再拜而獻之矣 安敢專之哉

 

어떤 이가 나 우수를 나무란다. 제가 듣기로는 군자란 남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거라 하였소. 그대는 혼자서만 즐거움을 취하여 남에게 나누어 주지 않소. 그럴 수도 있는가요. 우수가 사과하여 말씀 드리오. 이 어리석은 늙은이를 어찌 군자와 비교하시오. 혼자 즐기기에도 모자라는 것들인데 어찌 남들과 나누자고 할 것이오. 하물며 내가 즐기는 것들은 띠리띠리(薄陋鄙野)하여 세상 사람들이 버리는 것들이오. 남들과 더불어 즐기자고 하여도 남들은 시시하다 여긴다오. 어찌 이런 것들을 남들에게 강요하리오. 만약에 누구인가 이런 꼬라지들을 나와 함께 기꺼이 즐기자고 한다면 나는 두 번 절하고서 바치리다. 어찌 감히 이런 것들을 혼자서만 가질 수 있으리오.

 

 - 『傳家集』 巻七十一 宋 司馬光撰 검은 글씨는 고문진보 등에 소개 되어 있으므로 한글 번역이 전한다. 보라색 부분은 원문도 번역문도 전하지 않는다.원문을 읽다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있지 않는 부분까지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상세한 주석을 달아 놓는 것이 바른 태도이겠으나 이정도로 그친다. 책의 판본은 사고전서 CD이다. 종이 책과 대조하여 대만에서 낸 CD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하나, 몇 글자(已, 己등)는 임의로 바로잡았다. 이 CD는 틀림이 많다. 溛(우묵할溛에서 穴이 없는 글자임. 水+瓜인데, 두 자는 통용된 듯)颸선선한 바람 시 畦밭두둑 휴 塒홰시, 횃대, 새가 깃들이는 곳 우수(迂叟) ; 사마광의 號, 세상 물정에 먼 늙은이라는 뜻이다. 萬安, 轘轅 太室; 만안산, 환원산, 태실산은 지명이다. 낙양에서 보이니 차이나의 중악 崇山에 속하리라. 만안산은 범중엄(范仲淹)이 묻힌 곳이며 공동묘지가 많은 곳임을 지명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이곳을 견산대라 함은 도연명의 시를 흉내 낸 것이다. PS ; 宋 明 鎬 (漢學者)라고 실명을 밝혀 놓는 글은 번역에 책임을 지고자 함이다. 이는 틀림에 대한 책임이다. 대학 때의 은사이신 김완진 선생님은 한 번 잘못 알려지는 지식은 고치는데 100년이 걸린다고 하였다. 틀림이야말로 나의 몫이다. 다운 받아 가는 것은 누리꾼의 마음이다. 단지 출처를 밝혀 두는 것이 좋으리라. 누구 때문에 틀렸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http://blog.ohmynews.com/songpoet/166410  에서 복사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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