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5. 11:01ㆍ독서후기
- 한국인만 모르는 -
다른 대한민국
-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 -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이만열)
0 1964 미국 테네시주 출생
0 예일대 중문학 학사(1987), 동경대 비교문학 석사(1992)
0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 박사(1997)
0 일리노이대 교수, 조지 워싱턴대 역사학과 겸임교수
0 우송대 솔부릿지 국제 경영학부 교수, 주한 미국대사관 홍보원 이사역임
0 현재 경희대 교수 겸 아시아 인스티튜트 소장
0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등의 필진
0 저서 : 세계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다. 연암 박지원의 단편 소설. 중일 고전소설의 세속성 비교 관찰
■ 추천의 말 : 우리 안에 숨은 보물찾기
한국은 지금 역사적으로 갈림길에 와 있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할지 매우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현재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를 모방해서 좀 더 질을 높이거나 양을 늘리거나 좋은 기술을 개발하여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선진국들은 현재 범지구적 환경과 경제 위기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한국이 단순히 쉬운 길을 답습하다가는 막다른 길에 봉착할 수도 있다.
나는 2년 전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라는 흥미로운 미국인을 만났다. 그는 재미교포도 선교사도 영어교사도 아닌데 한국에서 가족과 같이 살고 있다.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중국과 일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한 경력이 있어서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의 명문 대학교수가 될 수도 있을 텐데 6년간이나 한국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중국어나 일본어에 비해 한국어 공부를 늦게 시작했음에도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고, 요즘은 아예 한국을 고향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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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교수는 한국의 문화, 문학, 예술, 고대부터의 행정 및 한국 전통 농업 안에 오늘날 우리의 병폐를 고치는 데 꼭 필요한 노하우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한국의 전통 속에 기후변화와 빈부의 양극화 같은 전 지구적인 난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 한국인들조차 낡은 신념으로 치부하기 쉬운 홍익인간, 예학, 옛날식 전통 유기 농업 등이 그것이다. 그의 예리한 눈은 이런 한국의 전통 가치 안에서 위기에 처한 인류와 지구를 구하는 미래를 보고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무가보주(無價寶珠)’ 이야기다.
‘무가보주’의 주인공은 한 친구로부터 보석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그 친구는 주인공이 잠을 자는 사이에 그의 옷 안쪽에 바느질을 해서 보석을 잘 감춰놓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길을 떠나는 바람에 친구에게 보석을 옷 안쪽에 넣어둔 사실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 후 그는 매우 가난하게 살았는데 그의 옷 안쪽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석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다가 한 참 세월이 흐르고 다시 그 친구를 만난 뒤에야 자신이 항상 보석을 품에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한국 그리고 한국인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당신들 안에 보석이 있는데 왜 그걸 찾으려고 하지 않나요?”
권병현 (미래숲 대표, 전 주중 대사)
■ 추천의 말 - 인류의 이정표가 될 한국문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책을 보았을 때만 해도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에 대한 나의 인식은 동아시아 인문학 연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학자였다. 솔직하게 말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분이었다. 그리고 한국인 부인과 결혼했으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 문화, 인물들을 연구과제로 삼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부드럽고 예의바른 학자라고 생각했다.
그의 관심은 한국의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을 뛰어 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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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그는 우리 선조의 문화를 발굴하고 미래 도시 비전을 제시하고자 했다. 우리 선조가 가지고 있던 자연관과 문화 가치들이야말로 인류가 가야할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드러낸 것이다.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은 아니다. 조급해 할 일도 안겠지만 태만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위축된 경제 상황임에도 대한민국은 가장 가능성이 큰 국가 중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스타 기업의 비약적인 발전, 싸이를 비롯한 한류의 대중문화, 스포츠 부문 그 외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고 세계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세상에 자신을 알아주는 것만큼 고마운 일이 있을까. 지금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우리 대한민국의 과거를 보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알아주는 세계적으로도 몇 안 되는 글로벌 인문학자이자 미래학자이다. 그런데 이 외국인이 왜 한국에 왔는지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인터뷰할 때 단지 다문화 가정의 경험만 물어보는 기자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분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활용할 때가 아닐까!
최재정 (JSB도시환경 대표, 미래도시 환경연구원 부원장)
■ 저자의 말 -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의 위대함
지난 1979년 하버드대학교의 에즈라 보겔 교수는 <일등 국가 일본 : 미국을 위한 교훈> 이라는 기념비적인 저서를 냈다. 책은 출판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일본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 그리고 미국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까지도 바꿔놓았다. 나는 하버드대학에서 보겔 교수를 만나 대화할 기회가 많았다. 그는 미국인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그 책은 미국인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중요한 존재로 바라보게 하는 변화를 만들어냈다. 보겔 교수는 일본이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어떻게 협조했는지를 보여줬다. 그 결과로 산업계와 사회가 이뤄낸 성과를 자세하게 열거했다.
보겔 교수의 제안에 대해 적지 않은 거부감이 표출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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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많은 미국인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국 산업계는 일본으로부터 배운 생산성과 품질 관리에 대한 교훈을 참고로 새롭게 재편됐다. 이러한 경험은 나의 관심사, 즉 미국인에게 아시아의 중요성을 주지시키는 일과도 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이제 아시아에서 또 다른 1등 국가의 부상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사람은 중국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아직 아니다. 중국은 국가 전체로 보면 미국에 필적할 잠재력을 지닌 거대 국가로 분류되지만 개인 소득이나 복지 시스템을 살펴보면 선진국으로 분류될 수 없고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아시아에서 등장한 또 다른 1등 국가는 바로 한국이다.
- 1960년대 이후 50년 동안 놀라운 속도로 발전
- 70년대 오일쇼크, 1979 박정희 대통령 피살, 1997 IMF 금융위기, 2008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슬기롭게 대처, 구매력 기준 개인 소득 3만 달러 돌파
- 1988 서울 올림픽, 2002 월드컵 한일 공동 개최로 선진국 위상 알림
2010년 G-20 정상회의 개최는 한국이 국제 사회의 경제관련 규정을 수정하는 회의에 당당하게 참여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 정치 분야에서 민주주의 제도의 성공적 정착
- 사회복지분야에서 의료보험 제도의 조기 도입과 성공적 운영으로 미국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입장
-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 다수 배출 및 문화 분야의 한류
- 과학기술분야(전자제품, 반도체, 조선 자동차 관련기술 등) 에서의 약진 등으로 개발도상국 에게 그들도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정작 한국인은 밖에서 들려오는 한국에 대한 높은 평가에 익숙하지 못하다. 선진국이 됐다는 평가에 기뻐하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선진국으로 국제 사회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한국이 여기서 경제 발전을 멈추고 근면한 생활 태도를 중단한다면 또다시 저개발 국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감은 한국에서 가장 자주 동원되는 논리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은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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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가치에 대해 말하자면 한국은 높은 편이다. 문제는 격상된 한국의 브랜드 가치와 한국 상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별도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어쩌면 대표적인 후진국에서 역동적인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국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이 국제 사회의 대표적 거대국가인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선진국의 위상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배경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해가 될 만한 상황이 존재한다고 해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실을 외면하면 여러 가지 불편함과 부작용이 발생한다.
첫째, 국제 사회를 지도하는 선진국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역할에 소홀해지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된다. 둘째, 선진국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한 국가 전략을 채택하지 못하고 스스로 개발도상국의 불편한 족쇄를 차는 셈이 된다.
셋째, 한국이 모범 국가로 거듭나는 기회의 상실로 한국인이 원하는 명예회복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넷째 결과적으로 개발도상국에 머물게 된다.
한국의 브랜드 가치 높이기 전략은 주로 한국의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부각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알려서 국제사회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소개함으로써 한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인 절차가 된다. 사실 한국이 얼마나 빨리 국가 발전을 이룩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다. 한국이 집중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사안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게 된 배경 즉 한국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한국인이 만든 상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를 소개해야 존재의 의미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다.
한국의 급속한 국가 발전 배경은 한국 정체성에서 찾아야 하고 한국 정체성은 한국의 과거에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일본인에게 나라를 빼앗길 정도로 허약했던 과거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꺼린다. 또한 서구 선진국의 제품을 복제한 제품을 싸게 팔아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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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했다는 자조적 의식이 한국인의 의식을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1)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은 모두가 그런 방법으로 선진국 진입의 꿈을 꿔 왔다.
2) 미국도 20세기까지는 당시 선진국 제품을 모방했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제국주의 정책을 채택한 경험이 없는 선진 모범국가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한국은 인구 2,000만 명 이상 되는 나라 가운데 식민지 경영 등 제국주의 정책이나 유산을 받지 않고도 선진국이 된 최초의 사례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국제 사회에 스스로를 드러내는 순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한국이 처한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이 책은 한국인이 모르거나 의식하지 않는 한국의 독특한 장점을 소개하려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런 장점들을 국제 사회에 효과적으로 소개하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제안과 한국이 문화 선도 국가로서 국제 사회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조건 등에 대한 견해를 담았다.
2013년 8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이만열)
1장 나는 왜 대한민국에 주목하는가?
01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불편한 진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위상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서도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것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눈부시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제사회, 특히 미국 지식인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은 높아진 위상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1) 그들은 한국을 IMF를 초래할 정도로 금융 불안정에 빠진 나라
2) 호전적이며 중무장한 북한과 대치중인 나라
3) 한미 FTA문제 등에서 한국은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를 두려워한다. 오히려 한국 기업이 미국 여러 곳에 공장을 세우고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이런 상황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예상외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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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량과 위상이 높아진 사례
1) 한국 상품의 경쟁력 향상
2)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 세계최고 품질로 인정받으며 잘 팔리는 한국 상품 대부분은 그 바탕에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
3) 문화 차원의 발전 가속 - 영화, TV드라마, 대중가요, 화장품, 패션과 음식 - 중국 일본을 넘어 동남아, 서남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까지
4)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 - 골프, 피겨, 수영, 야구, 축구 등
나는 이런 여러 상황을 보면서 “1등 국가 대한민국”과 같은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고 싶었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소개하고 선진국 클럽에 진입한 한국에 관한 토론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그러니 거기까지였다. 이 작업에 동참하거나 지원하겠다는 사람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출판을 위해 자금을 대겠다는 이도 없었거니와 심지어는 이 문제와 관련해 다시 연락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다. 놀랍게도 한국 사람 대부분이 이런 책을 내는 것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이 제조업, 기술, 비즈니스 등 특정 분야에서 1등의 위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혹은 한국 문화, 교육, 예술, 스포츠, 정부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인이 왜 특별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책을 내는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고민해볼 문제이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 1등 국가가 아니다.
여기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 경제의 불투명성, 불확실성, 남북 대체상황 등을 이유로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의 주식가치를 실제보다 낮게 평가하거나 한국산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품질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팔리는 상황을 지칭한다. 한국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리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여전히 한국과 한국인이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가장 현실적인 과제라 할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규모는 놀랄 정도로 크다. 한국무역협회 통계를 보면 2011년 한국의 수출규모는 금액기준으로 5,560억 달러(약 625조원)이다 그런데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당하는 디스카운트 비율은 9.3%정도이다. 수출액 기준으로 계산하면 58조원에 해당한다. 간단히 말해 한국 기업이 물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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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잘 팔고도 코리아디스카운트 때문에 58조원을 덜 받았다는 이야기다. 한국 정부가 전 세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대외원조 규모는 2011년에 약 11억 달러(약 1조 2,000억 원)였다. 만약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없어서 한국이 추가로 받을 수 있었던 58조원을 모두 대외원조에 사용했다면 어떨까? 한국은 3년 이내에 지구촌 최대의 구세주가 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미 짜인 교역의 시스템에 안주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새로운 경제 강국 한국에 매우 좋은 여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적지 않은 자금을 투입하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좋은 방안이 될 책 출판, 즉 한국이 1등 국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책을 내자는 적극적인 제안에 한국인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것은 매우 큰 모순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위상에 대한 한국인의 모순적인 태도는 결국 한국인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장벽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서는데 걸림돌이 되고 심지어는 문제를 키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코리아디스카운트의 본질적 양상을 들여다보고 모순된 태도를 바로잡아 균형 잡힌 해결책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02 성장의 족쇄가 된 새우 콤플렉스
한국은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선진국이 되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스스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선진국으로서 자신의 정체성, 즉 한국의 전통문화를 국제 사회에 드러내 보이는 과제에 대해 왜 소극적인까?
나는 이에 대한 대답을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새우콤플렉스’ 개념에서 찾는다. 새우 콤플렉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비롯되었다. 그 처지가 마치 고래무리 사이에 끼어 있는 새우 같다는 의미의 자조적 비유이다. 주변 강대국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약소국 지위를 염두에 둔 채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잇다는 자학적 공포심이 이 용어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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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우 콤플렉스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의 지정학적 조건에서 비롯 :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각축,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 1904년 2월 한일 의정서 체결로 사실상의 식민지, 그리고 1910년 8월의 강점으로 주권 상실
- 과거의 역사에서 ‘제자나라’ 정도의 일본에 의해 2등 국민으로 전락
- 1945년 8월의 해방, 미소의 합의에 의해 국가분단, 1950년 북한의 선공으로 3년간의 골육상쟁의 참화
- 한국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 나라를 지킬 능력이 없어서 스스로 군사작전 지휘권을 미국에 간청
1988서울 올림픽 개최, 2002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그리고 4강이라는 성적과 더불어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수백 년 동안 숨어있던 한국인의 자부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긴 고통의 세월에 비해 이런 자부심과 위상 변화는 너무 짧은 시간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렇게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것은 한국과 한국인 자신을 선진국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지난 100년간의 인류의 역사에서 한국처럼 극적으로 국가 위상을 높인 나라는 찾기 힘들다. 특히 지난 50년간 한국의 발전사는 눈부실 정도이다. 불과 두 세대 만에 저개발 국가에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유일한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이 지난 100여 년 동안 겪은 민족적 고통과 그 때문에 발생한 새우 콤플렉스는 선진국 개념에 대한 혼란을 초래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선진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많은 한국인들은 선진국을 어떤 유토피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한국과 비교해 모든 면에서 현격한 우위를 보이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당한 격차를 벌리면서 한국을 능가하는 ‘선진국’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선진국을 신비한 세계로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오해에서만 존재한다.
한국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한국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수준 높은 국가라 할 수 있다. 더구나 현재 상황에서는 국가 간의 격차보다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이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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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인들의 이 독특한 선진국 의식은 더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는 민족적 주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위대한 것을 추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영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선진국’을 만들어 놓고 그것과 경쟁하고 있으니 말이다. 단기적으로 그러한 접근법이 유용할 수도 있으나 결국 중대한 모순과 문제점을 유발한다. 한국이 국제 사회가 선진국에 요구하는 책임까지 외면하는 논리적 구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난 100여 년의 특별한 민족적 고통은 새우 콤플렉스를 형성했다. 이 때문에 국가 발전 의지가 더욱 강렬하게 작동되었다. 한국이 짧은 시간 안에 선진국에 도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한국인은 내재적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 그런 역량을 현실적으로 표출하고 속도를 낼 수 있게 하는데 콤플렉스가 일익을 담당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새우 콤플렉스 때문에 한국인은 자기 국가의 위상에 대해 현실과 달리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갖게 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03 한국의 전통문화는 세계로 도약할 발판
한국이 시대착오적인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당당한 선진국으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자신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자신의 위상에 대해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정체성을 정립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러한 정체성은 수천 년 동안 지속된 한국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 현재 한국에는 국제 사회 지도국가가 되기 위한 기술, 전문성, 자금동원 능력이 풍부하고 우수한 전문가 집단을 가지고 있다.
- 한국의 성장을 이끌어온 방식 즉 외국 성공사례 모방은 한계에 와 있다.
그래서 과거 한국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 이는 재발견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용하고 가치 있는 한국의 많은 전통문화가 창고에 잠들어 있는 처지다. 지금 한국이 어떤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각종 기술을 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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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진정으로 혁신적인 무언가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 혁신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과거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 예전의 습성, 기술, 기교가 현재와 결합해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남, 이것이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전략이 된다.
- 미국인들이 즐겨 사는 이케아(IKEA) 가구는 스웨덴의 특유의 이미지가 강하고, 독일제 기계가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도 견고하고 정밀하다는 독일 사람이 풍기는 원칙주의자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 그러나 외국에서 한국산 자동차나 텔레비전이 팔리는 이유는 이와 다르다. 잘 만든 제품이고 가격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주는 이미지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즉 한국의 이미지를 부가해서 더 높은 가격으로 팔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해 사실상 손실이 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거 역사를 돌아보며 한국의 가치와 정체성을 찾는 것은 더 없이 소중한 일이다.
- 한국에는 한옥이나 전통적 유기농법 등 풍부한 기술이 존재한다.
- 고대 건축물과 전통 문양은 오늘날 높은 수준의 디자인으로 응용되어 현대 건축을 독특하고 아름답게 발전시킬 수 있다.
- 조선세대의 목제품과 동판 조각품 등은 새로운 영감과 소재를 제공할 수 있다.
과거의 재발견은 한국이 독특한 발전을 추구할 때 미래로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국은 다양성이 꽃피었던 고려 문화를 통해 새로운 이상과 꿈, 영감, 관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고려 다문화 사회는 오늘날 응용할 수 있는 많은 정책을 안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시대의 적절한 행동양식으로 조선시대 예법을 응용할 수도 있다.
구찌 브랜드 상품을 구입하면서 얻는 것은 이탈리아 문화와 연관된 모든 것을 함께 사는 셈이다. 한복은 어떤가? 외국인이 한복을 구입할 때 한국 특유의 문화적 가치가 연상되는가? 명확하지 않다.
왜 그럴까? 한국은 약소국이며 외국인들은 약소국의 문화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나 같은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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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홀로 목소리를 높인다고 해결될 수 없다. 한국인 스스로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장점을 부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외국인이 먼저 나서서 한국 전통문화를 인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의 풍부한 문화적 전통을 집중적으로 재발견하는 것은 한국에 창의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재발견은 결코 한국을 과거로 후퇴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을 미래로 전진시키는 열쇠가 된다.
21세기에도 미국이 국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강대국의 위상을 가질 것이고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주도국가가 되리라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가 어디로 갈지,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는 국제적 담론의 장을 서울이 제공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지식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21세기 르네상스가 꽃핀다 해도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한국은 충분한 잠재력과 역량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는 대한민국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인 스스로 우리나라는 약소국이고 한국인의 존재감은 유령과 마찬가지라며 열등감에 빠져 있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함없다. 한국과 한국인은 세계 무대에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인도 있겠지만 한국이 국제 사회의 선도 국가 역할을 해야 함은 이미 피할 수 없는 책무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1등 국가 한국, 문화 선도 국가로서 한국의 가능성과 미래와 국제 사회의 책무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2장 한국의 재발견
01 선비 정신, 한국 홍보의 핵심개념
삼성과 LG같은 한국 브랜드는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더욱이 우수한 품질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세계인에게 한국은 여전히 잘 모르는 나라에 불과하다. 현대 승용차를 몰고 삼성 텔레비전을 보는 미국인이라 할지라도 한국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들이 한국과 관련해 신문에서 읽는 기사 대부분은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들이 접하는 한국에 대한 보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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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핵 실험에 관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특성, 이미지가 제품 경쟁력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가 되었다 따라서 한국의 정체성, 그중에서도 긍정적인 요소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이 절실한 과제로 등장했다.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 중 핵심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개념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 생활과 의식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는 것이라야 한다. 그래서 한국인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틀이 되고, 외국인이 한국을 독특한 문화적 존재로서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지식 사회로서의 한국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세계 누구라도 보편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 사무라이 경영학, 사무라이 도덕률, 사무라이 전법 등
- 갖가지 사무라이 책, 수백 개의 사무라이 영화, 사무라이 게임 등
- 일본 주변국 국민에게는 끔찍한 ‘닌자’라는 단어도 일본인은 긍정적인 개념을 담아 음산한 암살자가 아닌 보편적인 게임의 주인공으로 승화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외국인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기 어렵다. 한국에 대해 좀 안다고 하는 사람조차도 대중 가수나 패션 등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이다. 한국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개념 즉 외국인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며 독특한 매력을 뽐내는 존재감이 있는 개념이 없다. 그래서 한국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팝 음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등 일부 대중문화에 국한 될 뿐이다.
나는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개하는 개념으로 ‘선비정신’을 채택하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 선비 정신은 한국 역사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 선비 정신은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행동
-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
- 홍익인간으로 대표되는 민본주의 사상,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특성
-국가적 차원에서는 외세 개입에 저항하면서 평화적 국제 질서를 지지
교육이 삶의 본질적 차원을 떠나 도구화되어버린 사회에서 선비 정신은 교육의 가치를 재발견 하게끔 유도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교육을 발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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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다면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훌륭한 상품이 될 것이다. 선비 정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전통을 재발견하고 이 속에서 교육 체계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일본의 ‘구몬 학습법’같은 것과 경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것이다.
선비 정신은 여러 가치를 포괄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지식인의 사회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다른 나라 엘리트들과 공유할 때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보편적 특성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선비들이 최고 경지의 지식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점도 시공간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보편적 가치이다. 선비는 문화와 예술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적극 참여하는 존재이다. 이 역시 보편성 있는 특징이다.
많은 나라에 선비 정신이 도입되고 선비 정신의 특징이 알려진다면 엘리트의 결단과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선비와 같은 지도자야말로 전 세계 수십억 민초가 갈망해온 이상적인 모델이 아닌가?
선비 정신이라는 전통을 되살리는 작업은 중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과정이 될 것이다. 선비는 중국의 유교 전통, 즉 중국 고대로부터 존재하던 전통과 매우 가깝다. 그런데 원나라 이후 중국의 유교 사상은 왜곡의 과정을 거쳤다. 중앙정부와 황제권 수호를 위해 권위주의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그러나 송나라 시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만일 중국이 한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선비 사상에 눈뜨게 된다면 그들은 오래된 과거에 갖고 있던 본래 유교 전통을 재발견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문화지도를 변화시키며 궁극적으로 주도권을 잡으려할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이 보다 먼저 자기 정체성을 선비 정신으로 표현하고 소개하는 일이 긴급하고도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02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잠재력
한국은 막강한 역사, 전통, 문화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을 통해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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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인식하는 방법이나 국제사회가 한국을 인식하는 방법을 획기적으로 변화사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중국, 일본, 미국 등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각각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방법도 바꿀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전통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지난 50년으로 역사를 국한하고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사고한다면 한국 문화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 과거 전통의 재발견이라는 과제는 관심이나 흥미 차원의 의미를 뛰어 넘는다. 한국의 계속적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나라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한국은 이제 선진국 그룹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를 선도하는 보편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개발도상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존경받는 모범국가가 돼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한국이 자신의 엄청난 장점과 자산을 활용하는 데 느린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이는 두 개의 단절 현상이다. 한 단절은 잠정적이고 또 다른 단벌은 물리적이다 무두 알다시피 물리적 단절은 남북의 분단이다.
잠정적 단절은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 사이에서 발생한다. 즉 한국은 역사의 연속성이 깨진 것처럼 보인다. 두 한국 사이에 심각한 훼손이 있어서 다시는 서로 연결될 수 없는 것 같다.
- 유럽의 정부나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 중 자국 역사나 이웃 나라의 역사에 대해 고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쉽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한국인의 대부분은 과거로부터 연속성을 느끼지 못하고 극단적인 단절감 속에서 과거 조선과 현재의 대한민국을 별개의 것으로 여긴다.
한국 전통 음식은 맛있다. 온돌은 편리하고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그렇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소수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한국에는 세상에 내 놓을 만한 자랑거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한국의 과거와 현재 사이에는 연결이 불가능할 정도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간극은 한국의 목표, 문화적 중요성, 자신감을 훼손하고 있다. 많은 한국인은 자기 나라의 과거를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1950년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당시 개인 소득은 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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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아와 비슷했다. 그러나 엄청난 국민적 희생과 효과적 산업정책으로 바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결국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이런 성취는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며 열심히 일한 결과이며 교육열이 뒷받침되었다.”
물론 이런 설명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완전히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1950년대 한국과 소말리아는 절대 비슷하지 않았다. 한국은 지하자원은 부족했지만 수천 년 동안 내려온 위대한 학구열과 학자 존중의 전통이 있었다.
한국은 국내 정책과 제도에 관한 한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가진 국가였다. 특히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 시대에 가장 발전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적정 규모 이상의 나라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 어떤 정부 시스템도 그토록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했다.
한국인이 현재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특정한 기술이나 상품보다도 자신의 문화를 더 위대한 자산으로 인식한다면, 즉 사고방식의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이루어진다면 세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등 한두 나라에 문화적 충격파를 만들어내는 정도를 뛰어 넘는다. 한국이 세계 각국에 역사적 비전을 제시하며 중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은 자동차나 텔레비전 부품을 잘 만들기 위한 절차와 기술에만 몰두했다. 즉, 특정한 상품을 중시하다 보니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고려와 관심은 부족했다.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노력도 비슷한 방식이었다. 한국을 어떤 브랜드로 국제 사회에 알리기보다는 하나의 상품만 선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브랜딩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꾼다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한국이 문화적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 없는지가 아니다. 각자의 자산을 어떻게 하나로 엮어낼 것인가, 그리고 전체적으로 어떤 형상을 갖추게 할 것인가에 한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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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미세한 분야를 담당하는 전문가가 많다. 특히 용접이나 LCD디자인, 제조분야 등에서는 세계에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로 최강의 전문가가 포진해 있다. 이런 전문성이 한국의 비밀무기였으며 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의 약점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자기분야 바깥에서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세한 분야의 전문가를 양산했으며 전문가들은 자신의 활동 영역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다른 주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많은 전문가는 사회 활동에 필요한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하다. 특히 행정 공무원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의 전문가는 외부인과의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외부인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
전문가만으로 한국 지식인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전문가와는 분명히 다른 지식인이 존재한다. 그들은 제너럴리스트이다.
한국에서 정부와 기업에서 일하는 행정 요원들은 끊임없이 임무와 역할이 변경되어 한 가지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잡지 못하는 영우가 많다.
나는 특정한 임무를 맡았다가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부서로 옮기는 한국 공무원들을 여러 명 보았다. 한국 정부와 기업에는 이런 과정을 거친 고위직들이 많이 존재하며 그들은 조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한국인의 이런 현상이 유교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나오는데 해석하면 “군자는 기술자가 아니다”라는 의미다. 과거 한국에서 학자나 관료들은 고전을 바탕으로 일 처리를 하고 맡겨진 일은 무엇이든 해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현재 한국 정부와 기업의 독특한 관행은 1960년대 근대화 추진 이후에 급격히 탄생한 전문가와 행정 분야에서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제너럴리스트 지식인 집단이 교차하면서 이루어졌다. 이 두 모순적 사고방식이 결합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어 냈다.
역사적 맥락과 구조적 차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찾아본다면 새우 콤플렉스로 대변되는 한국의 공포심 또는 수세적 태도를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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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한국에 대한 홍보를 소극적으로 전개하게 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한 대책도 한국의 정체성 발굴에 달려 있다. 한국의 본래 모습을 노출하고 그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을 바탕으로 한국에 대한 우호적 감정과 존경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이제는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정확하게 설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명백하게 한국의 이름으로 만든 제품을 팔아야 하고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만든 복제품이나 모방품과 차별되는 어떤 가치가 있는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코리아 프리미엄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당당히 밝혀야 한다.
단순하게 기능적 차원에서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에 프리미엄을 받는다는 것은 논리 모순이다. 프리미엄이라는 말은 기능적 차원에서 당연히 받아야 할 가격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그래서 한국 제품이 뭐가 다른지 설명할 수 없다면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계속해서 모호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정체성 공백 현상에서 코리아프리미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코리아 프리미엄은 한국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세계 소비자들의 관심과 존경 표현의 크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코리아 프리미엄을 받을 만한 가치를 소유하고 있는가? 물론이다 나는 100%, 아니 200% 이상 “예스”라고 답할 수 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의 위대성을 발견한 나는 희열에 빠졌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다 있단 말인가?’
03 한국 역사에 살아 있는 민주주의 전통
민주주의 발전의 관점에서 아시아 각국을 바라보면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거를 통해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나라가 많아지는 현상을 긍정적이지만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줄어드는 경향은 부정적이다. 이런 현상은 현대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 징후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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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건으로 최고 통치자의 절대적 권력 행사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를 드는 사람이 많은데 이에 따르면 한국은 조선시대, 고려시대, 그 이전인 삼국시대에도 민주주의가 존재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포악한 국왕의 절대 권력에 맞서 신하들이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정치의 핵심을 백성의 안위에 두었다. 이런 전통은 2,000년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역사 속에는 민주주의가 있다.
앞으로 한국은 아시아 민주주의의 발전을 지도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는 한국의 운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성공적이고 생산적으로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행할 것인가 이다.
한국이 아시아 민주주의를 이끄는 고귀한 운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려면 먼저 과거 수천 년 동안 존재해온 자생적 민주주의 전통을 재발견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04 사랑방과 역관, 열린 교류의 장
조선시대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며 토론하는 공간으로 ‘사랑방’이 있었다. 사랑방은 문학이나 예술 분야의 사람과 행정관료, 학자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전통 공간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는 창의성이 강조되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와는 담을 쌓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다른 분야에 쉽게 발을 뻗을 수 없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행정가가 예술가를 만나고 예술가는 학자를 만나고 학자가 행정가를 만나며 외국 전문가와도 활발히 교류할 때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정부, 대학, 기업 등 각 분야는 굉장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각각 높은 수준의 전문성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 쪽으로 치우친 느낌이다.
조선시대의 사랑방을 모티브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자는 것은 양반 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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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귀족적 문화나 그들만의 폐쇄적 교류공간을 재현하고 모방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랑방을 모티브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참신한 방향의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이다.
한국은 훌륭한 예술가와 건축가가 많이 있는데 왜 한국의 예술과 건축이 단조로울까? 그것은 행정과 예술이 소통하는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각각 앞서가는 한국 예술과 행정은 서로 만나지 못함으로써 소중한 아이디어가 사장되었다. 그 결과 한국의 곳곳은 재미없는 공간이 되고 시간, 공간, 물질적 낭비를 초래했다.
조선시대의 역관(譯官) 제도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7~18세기 조선은 매우 폐쇄적인 국가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그 당시 조선에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다양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통역 전문가가 많이 있었다. 중국어나 일본어뿐만 아니라 몽골어와 만주어 전문가도 있었으며 그 외 다른 외국어 분야의 인재를 키우고 있었다.
이렇듯 조선은 다양한 조선어 통·번역 전문가를 관리하는 역관 제도를 시행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주도로 역관을 양성하기 위한 외국어 교육 시스템도 갖추고 있었다. 조선 정부는 사역원(司譯院)과 승무원(乘務員)이라는 기관을 운영했다.
역관은 역과를 통해 선발되었다. 역과는 잡과 중의 하나로 한학, 몽학, 왜학, 여진학(청학) 네 종류가 있었다. 합격자에게는 종7품에서 종9품의 품계를 주어 일하게 했다.
역관제도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의해 복잡다단하게 일어난 외교능력을 발휘한 외교전문가이자 교섭전문가였다. 이런 역관을 양성하고 관리했던 시스템을 살펴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역관 교육 시스템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역관은 말하기와 읽기, 쓰기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현재 한국의 외국어 교육보다 훨씬 수준 높은 교육 내용이었다.
조선의 역관은 중인 출신이었다. 이들은 양반 사대부 계층에 비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차별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지식과 기술, 실무 경험을 기반으로 양반 못지않은 능력과 경제력을 지니기도 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지위를 바탕으로 나름 중인의 문화가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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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행정가, 전문가, 문화비평가, 예술가들은 자기 자신의 분야에서 훌륭한 능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분야의 인물들과 만나 지적이고 생산적인 교류의 장을 여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 이들이 계속해서 각자의 영역에만 머물러 살아간다면 한국 사회에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중인 계층 사람들은 현대 한국인보다 더 활발히 교류했다. 각자의 분야를 넘어서 다양한 기능인이나 지식인들과 만남의 장을 펼쳤다. 특히 18세기의 중인 실무관리들은 현대 한국의 평범한 공무원보다 지적, 예술적 가치를 향유하고 추구하는 수준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창조적 사회를 향해 나아가려는 한국은 이러한 역사를 되돌아보며 발전과 혁신의 모티브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시대에 맞게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05 한국의 예학은 디지털 시대의 황금률
개인의 일상과 명예는 각종 미디어나 비방행위에 노출되기 쉬우며 때로 이것은 참담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위상에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는 일부 악질적인 사람들이 자행하는 이런 일들은 대개 법이 다루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하는 신중하지 못하며 유해한 행위는 대부분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상식을 지키며 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할 방법은 없을까?
나는 한국의 풍부한 지적 전통 속에 현대 사회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17~18세기 한국에서는 예학이 발전했다. 이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규범이며 적절한 행동을 위한 학습이었다. 또한 가정이나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분쟁을 평화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예학은 개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언행을 사회 차원의 합의로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서 철저하게 따지고 분석한다. 그리고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점잖은 행위나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 행위에 관한 모범 사례를 제시한다.
예학은 처벌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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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예학은 네트워크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법률보다 잠재적으로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하나의 사회 개념이 될 수 있다. 헌법처럼 지도적인 지침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체면 손상이나 집단 간의 분쟁, 가족 관계, 호칭문제 등 다양한 분야의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한다.
21세기에 기술은 국가와 개인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엄청난 유동성을 창출해 냈다. 이런 조건에서 예학은 개인 간 관계는 물론 정부 기구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잠재적인 규범을 지공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 전통의 예학은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06 주자학 전통은 세계와 인간을 읽는 틀
오늘날 한국에는 잘못되었지만 강력한 하나의 믿음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현대 한국 사회와는 관련이 없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는 한국의 문화적 잠재력을 갉아 먹는다. 20세기 이전 한국의 지식인들이 쌓아 올렸던 상아탑을 쓸모없거나 심지어 잘못 된 것으로 간주하게끔 조장한다. 이 논리는 고등학교 교과서나 심지어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영어 책자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주자학을 기반으로 한 한국 사회의 전통과 그 시대의 지성인들의 지식을 무용한 것으로 다룬다. 이 잘못된 믿음은 한국인들이 자신의 전통에 자부심을 품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 믿음은 다음과 같은 식이다.
1) 조선시대 양반은 추상적이고 비실용적인 사상에 빠져 국가의 운명을 그르쳤다. 그 이유는 양반들이 주자학이라는 모호한 학문을 그들의 중심 사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2) 주자학의 고지식한 사상에 빠진 양반들은 덕, 효, 의 같은 추상적 관념
에만 관심을 기울였을 뿐, 국가를 어떻게 다스릴지 생각하려 하지 않았고 기
술이나 과학 같은 실용 학문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때문에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근대화에 뒤쳐졌다.
19세기 부패하고 몰락해 가는 양반 계급이 자신의 지배권을 정당화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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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주자학 사상을 이용하고 서양 문명을 배척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이야기는 편견으로 가득 찬 것으로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의 학자들이 한국인들과 외국인을 설득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짜 낸 억지 논리이다. 한국인들이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뒤쳐졌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담은 것이다.
특히 한국의 40대 50대에서 이런 믿음이 강하게 나타난다. 내가 주자학을 다시 새롭게 조명하자고 제안하면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무슨 구시대적 발상이냐며 나를 나무라곤 한다.
이 믿음은 과거와 현대 한국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미래의 희망까지 훼손시킨다. 한국이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미래 시대의 새 성장 동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한국의 전통 속에 있다는 벅찬 가능성을 일축해버리기 때문이다.
- 주자학에 대한 비판
1) 공자의 가르침을 원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주자학은 형이상학을 통한 추측성 연구를 한다며 비판 - 그러나 주자학은 도덕 철학과 함께 격물(格物), 즉 사물의 근본을 파고드는 학문으로 과학과 정치를 다루고 있다. 주자학이 한국 과학 발전을 막은 것이 아니라 19세기까지 과학 기술의 기반이 되었다.
2) 주자학은 오늘날 실학이라고 알려진 학문에 의해서도 비판 받았다. - 사실 실학은 주자가 장려했던 학문으로 주자학에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조선의 지혜는 오늘날 사회와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이것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무관심이 20세기 이전의 한국의 지혜로운 전통을 전혀 갖지 못한 지적 황무지였던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몇몇 문학 작품들은 유교 사상이 그저 막연히 도덕과 선함을 추구했다는 인식을 만들어 냈다. 이런 피상적인 이해는 유교 전통에 대한 오해를 양산하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의 전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미래에 자기 잠재력을 완전히 펼치는데 실패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들이 서둘러야 할 일 중 하나가 퇴계 이황의 업적을 현대 한국 문화에 담아내는 것이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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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한다. 한글로 옮기는 일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해법으로 적용하는데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
퇴계의 학문이 박물관 한 구석을 차지하는 300년 전의 낡아빠진 이론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 한국 사람들의 삶을 움직일 실용적 지혜임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주자학 전통의 뿌리 깊은 지혜가 20세기 한국 지식인들에게 전략적 발전 방향과 정부 정책 정립의 틀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한국의 놀라운 근대화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18세기 성행했던 주자학의 가르침을 날 것 그대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접목하자는 제안은 아니다. 나는 그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다. 민주정치가 고대 그리스에서 온 것처럼 주자학을 지금 시대에 맞도록 재해석하고 재구성해야 한다. 만약 한국인들이 편견을 벗어던지고 주자학 전통에 더 깊이 관심을 기울인다면 그곳에 감춰져 있는 무수한 보물-현대 사회의 도전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디지털 세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함정에 빠지고 있으며 디지털로 인해 우리의 인식 지평은 3차원의 자유로운 공간이 아닌 2차원의 원시적인 세계가 되어버렸다. 이런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눈으로 보는 모든 현상의 이면에 있는 형이상학 존재를 가늠할 수 있는 지혜이다. 주자학 전통은 현대 사회의 이런 결함을 정확히 짚어서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한국의 주자학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줄 큰 잠재성을 안고 있다. 집에서 책을 읽고 쓰는 시간 동안 완전한 만족과 행복감을 찾을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이것은 소비문화에 몰입해 있는 사람에겐 지루하게 보일 수 있지만, 독서가 주는 참된 기쁨의 세계를 내면으로부터 이해하는 사람에겐 무척 매력적인 일이다.
한국 텔레비전 방송에는 음식을 먹는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다. 그 프로그램 속 사람들은 입안으로 많은 음식을 가져갈수록 만족해하는 경향을 보인다. 마치 즐거움이란 과식을 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환경 위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이같은 행동이 지구에 어떤 피해를 줄 지 생각한다면 이는 적절하지 않다. 또한 한국의 전통과 어울리는 모습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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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적인 식습관과 문화는 꼭 필요한 음식만 먹는 것에 중점을 주며 보여주기 식탁은 차리지 않는다. 이렇듯 쌀 한 톨이라도 아끼는 한국의 검소하고 소박한 전통은 큰 것이 무조건 좋다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 사라져 갔다.
07 옛 골목과 전통 시장은 흙 속에 묻힌 진주
서울을 산책하면서 자주 만나는 풍경이 있다. 1970년대 이전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낡고 비어 있는 집이다. 그런 집 정문이나 담벼락에는 “철거”라는 빨간색 글씨가 쓰여 있다. 낡은 것은 허물고 처음부터 새로 짓는다는 한국식 개발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풍속도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지만 옛날 것을 없애는 것은 한국의 약점 중에도 가장 큰 부분이다. 이것은 외국인이 찾고자 하는 한국 고유의 특색을 일부러 없애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자기 동네 자랑이나 사랑도 사라지고 있다. 이대로 10년이 지나면 서울과 싱가포르를 구분할 수 있을까?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인간미 있는 도시환경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축이 다양해야 한다. 1930년대나 1950년대, 1960년대 건물을 좀 더 예쁘게 단장하면 서울을 대단히 살기 좋고 매력적인 곳으로 변신할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도시 환경에 대한 무관심은 한국에서 문화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일지도 모른다.
독일 베를린에 가면 건물에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집 앞에 꽃이나 나무를 기르고 예술품을 배치한다. 미적 감각을 갖고 환경을 새로 만들어 골목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치 일상적인 관리와 보존, 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특정 지역 전체의 재개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도시 환경은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이 되었다. 역사적 분위기나 매력을 잃은 옛날 골목 아니면 한국적 특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신축 빌딩이 즐비한 거리 중에서 양자택일한 것 같은 모습이다.
서울에는 더는 고층 건물이 필요 없다. 서울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옛날 골목을 청소하고 꾸미는 사람, 미적인 도시 환경을 만드는 생활 예술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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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서울에도 파리 크로아상 같은 프랑스 빵집이 많다. 그런 곳에 가 보면 프랑스 거리를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에는 전통 시장의 노점상이 꽃이나 빵을 팔고 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면서 로맨틱한 프랑스에서나 있을 법한 정겨운 장소를 연상 시킨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들은 한국의 전통 시장을 그리 낭만적인 공간으로 여기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전통 시장에 대해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한국의 전통 시장 중에는 유지, 보수가 잘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지저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전통문화를 깨끗하게 보여주지 않고 산업화 시대의 ‘현대식’장식만 달아 놓았다. 그리고 전통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시장 안의 골목길은 제대로 꾸며지지 않았고 젊은 사람들이 발길이 끊겼다.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기쁘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의 헌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인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를 청소하는 일을 과거와 연결해서 생각한다. 한국에는 동네를 청소하는 일에 주민이 강제로 동원되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억 때문에 골목을 깨끗이 유지하고 자기 집 주변을 가꾸는 등의 사회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며 현대화된 삶의 모습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오래된 집을 관리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지 않는 경향은 한국인의 새것에 대한 집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이 더 지속되면 곤란하다. 새것과 현대적인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오히려 옛것에서 가치를 찾아야 한다. 한국의 골동품을 수집하고 한국 전통 가구를 만드는 장인들을 육성하는 것은 좋은 시도이다. 한국인들이 예술 작품과 화초와 책으로 채워지고 잘 관리된 1960년대 전통 가옥에서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현대식 아파트보다 더 큰 끌림을 느낄 수 있다면, 전통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래로 뻗어가는 새 시대가 열릴 것이다.
한국이 가야할 길은 과거 전통을 되살려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이것들은 현대적인 요소와 어울리도록 재구성하는 방향이다. 그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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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고방식에 따라 가치가 부여된 수많은 전통 요소들을 일반 가정집과 골목 그리고 전통 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재래시장도 살고 한국의 전통 문화도 살아난다.
3장 발전적 하루를 꿈꾸며
01 추석을 세계화하자
한국인을 아내로 맞아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한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나 같은 사람조차 한국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다. 설날, 추석 같은 명절 때다. 추석을 예로 들어보자. 이날은 온 가족이 모여 한 해 농사를 지은 걸 축하하고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행복한 날이다. 미국에도 비슷한 날이 있다. 바로 추수감사절이다. 이때는 추석처럼 각종 매장에 대규모 세일 행사가 열리고, 부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귀향하는 사람들 때문에 항공기 좌석이 동난다.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비슷한 점이 많이 있지만 큰 차이가 있다. 추수감사절은 인종과 문화, 민족과 상관없이 미국에서 사는 모든 사람이 자연스럽게 즐기는 명절이다. 고향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이웃을 초청해 함께 칠면조 요리를 나누어 먹으며 즐긴다.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도 서로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술을 마신다. 칠면조 요리가 아니라 한국 음식을 나누고 한국 소주를 마신다. 모두의 축제이다.
그런데 한국의 추석은 한국인이 아니면 즐기기 어렵다. 추석의 핵심은 전통 음식을 먹고 조상을 모시는 것이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은 재미있게 바라볼 수는 있지만 참여하거나 함께 즐길 방법이 없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끼리 추석에 모여 축제를 즐긴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추석은 조상께 감사드리는 명절이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추석 때 조상들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자녀에게 증조부가 어떤 분이셨는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등을 이야기 하는 일은 드물다. 한국 젊은이 대부분은 자기 조상이 누구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조상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어렸을 때 증조부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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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됐다. 차례를 모시는 추석에는 추모의 대상인 조상이 있어야 하고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진정한 의미가 난다. 한국의 추석은
- 추석 때는 대개 도로 위 자동차에서 보낸다.
- ‘고향에 갔었다’라는 말이 고향에 가서 ‘무엇을 했다’라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 한국인들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 경험, 세계의 변화, 인생에 대한 고민, 교육문제 등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
- 추석은 추수감사와는 관계가 없다. 추석날 주인공은 텔레비전이다.
한국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누구나 친밀감을 갖고 참여할 명절 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요즘 한류가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추석도 수출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은 저출산 때문에 2015년부터 청소년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경제가 계속 성장하려면 외국인 근로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단수 노동자뿐만 아니라 교육 수준이 높은 외국인 전문가들도 꼭 필요하다. 그런 고급 인력을 유치하려면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외국인들을 감쌀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 원래 청교도들의 명절, 링컨 대통령이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면서 모든 인종과 민족의 축제가 됨
- 한국도 틀림없이 다문화 사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다문화가 성공하려면 전통문화를 확대해서 재해석함으로써 다문화 사회의 기초를 구축해야 한다.
- 추석날 각 민족을 기념하는 기념관을 만들어 주는 등.
02 한국 건축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라
현재 한국 건설 시장은 경쟁 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와 민자 사업의 포화로 더 공사 물량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적극적인 외국 진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세계 건설 시장 규모는 2008년 기준 약 7조 5,000억 달러인데 그중 선진국 시장이 5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건설 회사들은 빠른 시공능력, 세심한 품질관리, 경쟁력 있는 가격책정 등 강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앞으로 한국 건설 회사들이 세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려면 건설업에 ‘지역 공동체’와 ‘도시계획’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창조력으로 앞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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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신기술 개발에서 뛰어난 역량 : 태양광, 신자재, 단열 기술 등
- 도시 이미지를 창조하는 예술적 가치에 주목해야
- 호기심 자극을 위한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공간 창조: 나무, 식물, 석재 등
- 단순한 건설회사에 머물지 않고 도시환경 컨설팅에 관심
한국이 세계 건설 시장에 진출한 다음 단계에는 한국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마케팅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의 생활 양식, 한국의 도시와 마을의 모습이 외국 시장에 한국을 알리고 한국의 외국 건설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환국 건설 업체도 방어적 경영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변화하는 세계 건설 환경에 발맞춰 사업 전략을 재점검하고 선별적 공격적 전략으로 전환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03 아시아의 프로방스로 발전할 한국 농촌
한국 농촌 마을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상식을 뛰어 넘는다. 소나무가 늘어서 있는 오래된 고갯길, 강과 작은 냇가, 그리고 주변에 펼쳐진 풍요로운 평원은 한없이 매력적인 풍경이다. 나름대로 독특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정겨운 시골 마을도 적지 않다. 오래된 농촌 가옥은 단순하지만 아름다워서 내가 어렸을 적 유럽에서 봤던 농장 건물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시골 마을을 관광하는 외국인은 많지 않다. 한국의 관광 전략은 외국인들을 유치해 서울이나 해인사처럼 크고 역사적인 유적이나 산과 해안에서 느낄 수 있는 순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인 한옥에는 한국 시골 마을의 아름다움이 스며 있지만,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한국의 생활양식을 보여주는 또 다른 대안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매력적인 농촌 시장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 또한 별로 없는 것 같다.
소위 ‘한류’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 생활로까지 확장되지 못했다. 단지 콘크리트와 유리로 된 건물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의 번지르르한 일상만이 오늘날 ‘한류’의 핵심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히려 전통적인 시골 생활이 한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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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치 있는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시골 농촌 마을은 관심권에서 벗어나 70, 80대 노인들만 듬성듬성 거주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잃어버린 시골 생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차원에서 관광객을 유치할 메카로 삼을 수도 있다.
한국의 시골 마을을 방문하면 옛집 대부분이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며 허물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는 광고판은 현란한 색체를 뽐내면서 현대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치중할 뿐이고 농촌 마을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는 전혀 없다. 즐거운 기운이 넘치는 시골마을이 가진 잠재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은 거의 없다.
유적이나 관련 시설물의 배경을 설명하는 영어 표지판도 곳곳에 설치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자원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에 한국 유적을 설명하는 영어 간판이 없다. 외국인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한국인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촌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또 다른 중요한 조치로 지역의 생산품을 묶어서 패키지 관광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들 수 있다. 막걸리와 된장, 고추장, 두부, 참기름을 최상급 제조 기준에 적합하게 생산해서 최고급 음식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공장은 전통적인 외관을 지녀야 하고 어떻게 500년 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이러한 문화적 연속성은 한국 농촌을 다시 활성화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그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단한 것을 건설했다는 것만 강조할 뿐 1,000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된장을 만들어 왔다는 사실은 외면해온 것이다. 이제 이런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04 한국 홍보 전략의 새로운 초점
선비 문화를 통해 한국의 특징을 형상화한다면 국가 홍보 전략도 재편해야 할 것이다. 한국은 급속하게 성장하는 국가이므로 국가 홍보 전략도 변경될 수밖에 없다. 최근 몇 년 동안 진행된 국가 차원의 홍보는 한국 브랜드 또는 이미지 높이기라는 개념으로 진행 되었다. 그리고 지난 10년 사이 한국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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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의 대약진과 한류의 대대적 확산으로 한국의 인지도는 높아졌고 이미지가 놀랄만큼 좋아졌다.
그런데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에 대한 홍보는 이중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은 한국이 더는 약소국이 아니라는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기를 강렬하게 원하면서도 자신이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스스로 인정하자 못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토론할 때 한국인들은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매우 소극적 태도를 보이곤 한다.
한국인들은 5,000년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과도할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국의 위대성에 대해 말할 때면 1960년대 이후 기적적 경제 발전만을 거론한다.
국가 홍보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 50년간의 기적적 경제 성장을 강조하고 유구한 전통문화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만 소개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매쉬mash>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왔던 한국 전쟁 당시의 미국 야전 병원을 기억한다. 그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는데 오늘날까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유일한 프로그램으로 남아 있다. <매쉬>에서 한국 농부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살고 대부분 문맹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의 많은 정책 결정자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현대자동차가 만든 승용차를 타고 출퇴근하며 삼성전자 텔레비전을 본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이미지를 바로 잡기 위해 한국이 뭔가를 해보려는 진지한 노력은 없었다. 많은 경우 한국인은 미국인이 한국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간편하게 가정해버린다.
그렇지만 한국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판단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한국인은 집중력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 자원을 끌어 모으고 특정한 생산라인을 성공적으로 개발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효율적이다.
그러나 상품 개발 수준에서 나타나는 집중력이나 전략, 그리고 그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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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게 만든 문화와 전통은 자랑스럽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한국을 세계에 홍보할 때도 이를 중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는다.
문화와 교육, 기술, 비즈니스 분야에서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이지만 세계에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노력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 국가 홍보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홍보 자료를 준비하기 전에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조차 않는다.
한국인은 개인적 차원의 투자에는 아낌이 없다. 그런데 한국이 왜 그렇게 독특하며 중요한지에 대한 고도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에는 좀처럼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새롭게 부각된 한국 홍보 전략의 초점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제안에 한국 정부뿐 아니라 국가 홍보와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는 민간단체에도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1) 국가 홍보 계획은 70억 인류
한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이라고 하면 미국이나 일본, 중국 정도를 떠올리고 나머지 나라들은 인식에서 제외할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 용어나 문장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2) 새로운 소통의 수단 적극 활용
최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달로 새로운 소통 수단이 우후죽순처럼 나오면서 홍보수단이 다양하게 확장됐다. SNS는 그 특성상 규모를 기준으로 하는 홍보 효과는 작을지라도 반응도를 중심으로 한 홍보 효과면에서는 오히려 클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 등의 소통 채널을 꾸준하게 가동해야 한다.
SNS의 특성 가운데 국가 홍보 차원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자면 상호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상대방의 반응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면서 정책을 펴나갈 기회가 부여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SNS는 필요에 따라 적극 활용해야 할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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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생, 장기적 홍보 전략 대상
한국은 선진국에 막 진입한 국가로서 아직 체계적인 국가 홍보를 해 본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돌발적 현안에 대응하는 일도 매우 버거운 과제가 되곤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장기적 국가 홍보 전략은 외면할 수 없다. 이런 장기적인 홍보 전략은 바로 세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홍보를 말한다.
외국 청소년들이 역사책이나 지리부도에서 한국과 관련해 잘못된 사실을 배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에 대한 투자는 미래에 매우 다른 상황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4) 상설 해외 홍보 기관의 진화
외국에 상설 홍보 장소를 마련하는 노력은 꾸준히 진행돼야 한다. 특히 한옥으로 한국 문화 홍보관을 지역별로 건립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일본식 건물을 세계 곳곳에 지어놓고 일본 문화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위대한 자산인 한옥은 생태학적으로 하나의 모범이 될 만큼 매우 인상적이다. 단순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욱 편안함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나무와 종이를 사용해서 세심하게 만든 문짝과 창문에는 풍수의 지혜가 스며있다. 그런데 세계인에게 이를 이해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세계의 주요 대도시에 한옥을 지어놓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마음껏 찾아가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것이다.
5) 한국 방문자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면 지인들 사이에서 한국에 대한 접촉 창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상대로 한 한국 전통문화 중심의 활동이 필요하다.
비록 그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이 매우 짧고 한국 문화에 대해 접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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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가 적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단 이들에게 한국을 설명할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이 한국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되면 매우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귀국 후 자기 나라에 있는 홍보 기관에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강좌를 듣고 단계별 자격증을 따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한국 전통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 방문자가 찾아갈 수 있는 한국 문화 홍보 센터를 상설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
6) 성공담의 핵심은 한국 성공의 배경
한국이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과정을 지루하게 듣고 싶은 외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적적인 성장 스토리는 흥미 촉발의 요인은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선진국의 등장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유도하기에는 부족하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에 궁금해 하는 것은 한국의 성공 비결이다. 이런 성장 비결은 한국의 정체성에서 찾을 수 있으며 한국의 정체성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녹아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야말로 세상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이며 진지한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
오랫동안 한국의 이미지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불안한 나라,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무능한 사람들이 고생하며 사는 나라였다. 이런 이미지는 선진국이 된 한국 입장에서 볼 때 과도하게 왜곡된 것으로 억울한 측면이 있다. 이런 이미지는 일본이 오랫동안 자기 시각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국제 사회에 전달해 온 과정에서 고착되었다.
그런데 단순하게 한국의 경제 성장 경험을 수치로 나열하는 것은 그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는 방안이 아니다. 국제 사회가 한국을 새로운 선진국으로 인식하게끔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국민적 열량이 있다는 점을 그들에게 인식 시켜야 한다.
7) 지식인이 집중적인 홍보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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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지식인을 상대로 한 홍보 전략이 새롭게 수립되고 추진돼야 한다. 지난 100여 년 동안 국제 사회에서 동아시아의 이미지는 일본이 대표했다. 중국이 존재했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형태를 바꿔가면서 최근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가려서 존재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국제 사회는 놀라운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세계 지식인들을 상대로 설득 작업을 전개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각국의 학자와 분야별 전문가, 그리고 언론인들을 상대로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펼쳐야 한다. 이들을 상대로 한국은 중국의 아류가 아니며 일본과 유사한 또 다른 아시아 국가가 아니라 고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존재라는 점을 꾸준하게 홍보해야 한다.
8) 영어 자료 제공이 최선
세계 어느 나라든 지식인을 설득하려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작성된 논문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사실 관계를 정리해 주어야 한다. 따라서 세계 지식인들에게 주어져야 할 것은 술이나 밥이 아니라 영어로 된 자료다.
현재로서는 외국 지식인이 한국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찾았을 때 어려움을 겪는다. 더구나 일본 학자가 쓴 자료가 많은데, 일본의 시각에 의해 왜곡된 내용이 많아 없느니만 못하다.
9) 선비문화와 한국 홍보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종합해보면 전형적인 약소국가로 나타난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끊임없이 고통당하는 형편없는 약소국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물론 이는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의도적으로 한국을 이렇게 소개했고 그것이 세계로 퍼졌다.
이런 이미지를 극복하는 데에는 사실 관계를 다루는 복잡한 자료보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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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학적 글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한국인이 하기 어렵다. 한국을 사랑하고 이해하면서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격이다.
국제 사회의 지식인들에게 선비문화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설명하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선비 문화는 한국과 관련된 많은 독특한 현상을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논리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한국은 일본이 국제 사회에 심어놓은 잘못된 이미지를 탈피해야 한다. 일본이 ‘미개발’이라고 폄훼한 한국은 세계에서도 전례 없는 아름다운 전통을 가
진 나라이다 그러므로 기존 이미지에 대한 저항이 한국 전통문화 소개의 출발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역사는 종전 이후에 펼쳐진 것은 아니다. 무수한 세월을 거쳐 형성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재발견하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2015. 10. 27
* 4장부터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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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만 모르는 -
다른 대한민국(2)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 -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이만열)
4장 세계가 한국을 공부하게 하라
01 미국 내 한국학 연구의 현실과 과제
나는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만 2년 동안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 한국 대사관 문화원에서 자문 역할을 담당한 적이 있다. 외교통상부 공식 잡지인 <다이내믹 코리아> 편집장을 맡았고 동시에 대사관 내 싱크 탱크인 ‘코루스 하우스’의 책임을 맡아 외교관, 언론인, 학자, 사업가들을 위한 강의를 진행했다.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것은 흥미로웠고 문화관 4층의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또한 만족스러웠다. 사무실 작은 창문으로 록 크릭의 아름다운 샛강 풍경을 즐긴 것도 특별한 행복이었다. 그때 나는 한국인들과 본격적으로 일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수도에서 일하는 정책가들이 한국을 잘 이해하도록 돕겠다는 열의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한반도 전문가들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고작 자유무역협정(FTA) 정도였다. 나는 주요 싱크탱크에서 ‘환경 및 국제 관계에서 지방 정부의 역할’ 등 다양한 주제로 세미나를 조직할 것을 제안했지만 실제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 한국이 경제, 안보, 외교 측면에서 미국에 중요한 국가 임에도 워싱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이 한국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 미국은 유럽이나 이스라엘 등 중동지역에 초점
- 중국은 경제적 영향 때문에 관심
- 문화적 측면에서는 일본이 가장 인정받고 있음 : 1912년 일본은 워싱턴 곳곳에 벚꽃 나무를 심어줌, 1934년 최초의 일-미 학생회가 개최
* 한미 학생회는 2008년에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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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에는 남한 보다 북한 전문가가 많고 기사도 북한에 대한 것이 많음
- 미 국방부에서는 지속적으로 북한 관련 연구 지원금을 지급
- 대다수 미국인들은 북한과 남한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한국 대사관은 놀랍게도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교육에 별 비중을 두지 않는다. 소규모 한국어 교실과 문화 행사를 운영할 뿐 전체적인 한국학 연구에 대한 협력은 없다시피 하다. 대사관 내 한국인 직원들 대부분은 자녀를 미국 학교에 보내거나 힘 있는 사람들과 연줄을 맺는 데 집중한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문화와 역사, 문학, 사회를 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노력은 등한히 한다. 이런 행동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무관심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가정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이 없다’는 가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태권도 혹은 한인 친구들, 한국의 첨단 기술 등을 매개로 대다수 미국인이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 대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접할 기회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들은 삼성 혹은 현대 제품이 어느 나라의 것인지 알지 못하는 일은 안타깝다. 이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삼성이나 현대 등의 기업 브랜드 홍보에만 중점을 두고 한국 문화를 홍보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한국 문화를 외국에 소개할 경우 한국 문화는 한국인을 위한 문화라기보다 다른 나라에 도움이 되고 전 세계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 자기 나라에서 한옥을 짓는 남미 사람은 한국이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정신생활, 미적 경험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한국 문화가 특수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보편성, 포괄성을 중심으로 홍보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 한국에 대한 이해 부족은 미국 대학 내에 한국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
- 미국인 학생들은 한국에 대한 강좌를 들을 길이 없다.
- 대부분의 미국 정치가와 정책가들은 자신의 커리어 후반기에 한국을 알게 된다.
- 규모가 큰 미국 공립대학의 예 : 영국학 교수가 50명, 스페인학과 독일학 교수가 각각 20명 정도, 중국학과에 10명, 일본학과 8명 한국학과에 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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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한국에 대해 배울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 내 한국어 강좌는 여전히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통의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지니고 있을까? 나와 같은 세대인 40~50대 미국인들은 텔레비전 드라마인 ‘매쉬’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확립했다고 보면 된다. 제목 ‘매쉬’는 이동식 군대 외과병원의 줄임말이다.
- 한국전쟁 중 의정부의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들의 모험담
- 1972~1983까지 방영된 인기 드라마
- 등장인물은 시골의 가난한 농부들, 그리고 무지하고 순진한 인물들
- 전반적으로 한국을 매우 낙후된 농촌국가로 방송
-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오해 중에서도 심각한 부분은, 한국이 1980년대 기적적 경제 성장을 이루기 전까지 무지한 농부들로 가득한 나라였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이 종종 하는 이야기 때문에 더욱 굳어진다. 한국인들은 소말리아와 같은 수준에서 출발해 50년 만에 IT 강국이 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외국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인상 깊게 들으면서 과거 한국이 문화와 교육 측면에서 현재의 소말리아와 동등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은 매우 오래된 학문적, 예술적 전통을 이어왔다.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 한국 정치인들이 부패했다. 사실은 미국도 비슷하다.
- 1997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로 언제든 부도가 날 수 있는 나라
- 삼성과 LG가 만든 스마트 폰을 사용하고, 현대와 기아가 만든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이를 한국이라는 나라와 연관 짓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간단한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첫 단계의 제안을 하고 있다.
- 한국의 지성, 미학, 철학적 전통을 고려한 한국 홍보 : 분별없는 소비문화를 찬미하는 듯한 싸이의 ‘강남스타일’ 같은 모호한 가치는 곤란
- 새로운 한국학 프로그램 지원 및 미국 대학 내 한국학 교수의 증원
-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써서 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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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와 관련된 저서들이 하나 둘 모여 한국의 특징을 총망라한다면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전례 없는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이 서둘러야 할 작업은 한국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한국의 과거에 존재했던 영광과 신비, 복잡성을 보여주는 대중 소설이나 영화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다. 이런 접근법은 한국에서는 전반적으로 무시당해 왔다. 많은 한국인이 외국인들은 한국의 문화에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을 신비하면서도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한국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세종대왕 시대 조선의 해변에서 구조된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그 책은 궁전의 아름다움을 직접 목격한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고 그 시대의 위대한 성취를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책은 미국이 한국을 이해하는 깊이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미국인이 일본의 지배 이전의 한국에 대해 상상력을 펼치도록 유도할 것이다.
교육받은 미국인에게 폭넓게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상징물은 이 순간까지 단 하나도 없다. 세종대왕 시기를 무대로 ‘양반’이나 ‘선비’라는 이름의 소설이 나온다면 미국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와 백제의 전투를 하나의 모티브로 삼아 역사를 재미있게 살리고 문학적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의 문화를 외국에 소개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방법도 더 정교해졌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한국은 외국인이 관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독특하고 매력적인 나라로 알려진다. 외국인이 이야기 중 일부로 등장하면서 한국을 알아가는 내용의 문학 작품은 거의 없다. 외국인이 한국을 탐험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런 내용을 담은 대중 스릴러 소설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이 이어진다면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먼저 한국판 ‘쇼군’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02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대안
1970~1980년대 한국인들은 국제 교류를 하면서 장승이나 무당 등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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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민속 문화를 많이 소개했다. 한국 민중의 일상에 가까운 문화를 복잡하지 않게 설명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순수한 ‘한국 민족’을 대표하는 것처럼 소개되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이에 비해 고전문학은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소개조차 되지 않았다. 이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시조나 향가와 함께 판소리 등의 구비문학이 소개되었고 ‘춘향전과 구운몽’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은 한국의 ‘효(孝)’나 ‘충(忠)’을 대표하는 것으로 소게되었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의 ‘충’이나 ‘효’ 그 자체에 관심을 갖기는 힘들다. 오히려 그 작품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모순, 작가가 직면했던 시대 상황 등이 묘사되어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은 순수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막연한 설명에는 동의하기 힘들며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할 것이 더 있다. 한국인들은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이 때문에 생존한 현대 작가 작품의 번역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옛 문학의 번역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벨 문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한국 문학의 전통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다면 한국 현대 문학은 위대한 전통에 의해 조명 받지 못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일본 문학이나 중국 문학 연구에 비해 한국 문학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이는 대학에서 한국 문학 교수 자리가 부족하다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미국 사람이 한국 문학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은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인프라스트럭쳐(사회적 생산 기반, 경제활동의 기반을 형성하는 기초족인 기반시설 또는 기간시설, 요즘은 학교, 병원, 공원등 생활환경 시설을 포함) 가 잘 구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 최근 한국 정부가 한류 확산에 적극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은 좋은 전환
- 그러나 연예, 대중가요, 드라마에 국한되는 것으로 한국 전통문화와 관련이 없는 것은 문제.
한국인들이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문화와 문학을 소개할 때 신화와 같은 역사, 삼국, 고려, 조선 시대 및 일제강점기에 맞선 애국지사 등 공동체의식을 한국인의 일관된 문화로 소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역사의식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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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에게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한국인의 상처와 아픔이다.
한국인들은 아픔을 이야기 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이런 점을 다루는 것이 세계에 한국을 소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억압과 수탈로 엄청난 고통이 있었고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구체적 내용은 다르지만 흑인들도 슬픈 역사가 있었다. 인종 차별로 아픔을 겪어 왔다. 흑인 독자에게 이런 공통점을 소개하면 그들은 공감대를 갖고 한국 문화와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 그러나 한국은 이런 점을 헤아리지 않는다. 미국에 한국을 소개할 때 흑인들을 빠뜨린 채 백인들만 고려한다.
- 스페인어 번역도 매우 중요하다. 미국 히스패닉계와 남미에서는 스페인어로된 텍스트를 주로 읽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이 마치 상품 광고를 하듯 한국 문학을 소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동차나 냉장고를 팔듯 외국에 문학을 팔려는 사고방식이 존재하는데 이는 역효과만 일으킬 뿐이다.
문학은 상품이 아니다. 중국학과 일본학을 공부한 사람들에게 중국 문학과 일본 문학은 상품이 아니라 순수 학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한국 문학 역시 학문에 속하는 것이다. 빨리 소설을 쓰고 빨리 번역을 해서 세계에 내보내 시급히 노벨상을 받으려는 태도는 문학을 상품으로 본 결과이다.
한국학과 한국 문학에는 두 주체가 있다. 한국을 연구하고 공부하려는 외국인이 그 하나이고, 한국 문화와 문학을 널리 소개하려는 한국인이 다른 하나이다. 그런데 이 둘의 목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처음에 안보 차원의 연구를 했고 그 다음에 학문적 연구가 뒤따랐다.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 한국계 미국인의 연구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단순히 외국인이 한국 문화에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 자신도 한국 문학에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국인에게 한국의 대표적 문학 작품으로 ‘춘향전’을 소개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춘향전을 완독하지 않았고 그리 깊은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 많다. 즉 한국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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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와 문학을 소개하는 일에만 열을 올릴 뿐 한국문화와 문학 그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것이다. 자신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춘향전을 소개하는 일이 외국인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03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자
한국어 교육은 한국 문학 연구와 마찬가지로 한국을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문학 작품이 외국인이 편안하게 한국 문화를 접촉할 기회라면 한국어 학습은 한국어에 관심이 많으며 열심히 공부하고자 마음먹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므로 한국어 교육은 미래의 지한파를 육성한다는 목표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분야이다. 한국 문화, 경제 ,기업, 기술 등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 편안하면서도 진지하게 한국어를 배울 여건을 제공하는 일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 매우 유익하다.
1)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학습하도록 하는 일
2)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한국어 교육
3) K-팝을 소개하는 웹사이트에서 한국어 학습 안내
4)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한국어 교육
미국에서는 한국어 교실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한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시행되었다. 이는 한국과 미국의 지속적인 교류 관계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수업 내용은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을 위주로 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어 수업은 외국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교포를 대상으로 한 내용으로 개설되어 있다.
한국에 뿌리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한국어 학습을 제안하는 방법은 상당히 다르다. 교포들에게는 한국어 공부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는 것을 권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는 한국 문화의 매력, 한국 기술의 강점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교포 대상의 한국어 교육과 외국인 대상 한국어 교육은 별도의 프로그램과 교과서를 개발하고 홍보 또한 따로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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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가 아닌 학생들이 진정한 한국어 교육 대상이지만 이들은 이질적인 존재가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한국어 교육은 교포를 위한 수업이라는 선입견이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은 미국인을 한국 전문가로 양성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그래서 한국에 관해서는 군사 문제와 관련해 교육을 받은 사람이 더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는 남한 전문가보다 북한 전문가가 더 많다.
미국 대학에서 한국어 수업을 하는 강사들의 대부분은 한국계 대학원생들이다. 그들은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교포 학생들의 회화에 초점을 둔다. 외국인을 대상으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계가 아닌 많은 학생이 수강을 취소했고 지금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은 유럽보다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럽에는 한국어 강좌가 개설된 대학교도 별로 없다. 한국과 긴밀한 무역관계를 맺고 있지만 한국어 교육을 받을 기회 자체를 찾기 힘들다.
한국인들은 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의사가 없을 것이라 가정한다. 그런데 이런 가정에 어떤 조사나 실제 사회 추세가 반영된 것은 아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둔 미국인이 많다. 태권도를 배우거나 한류를 즐기는 미국인도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한국은 미국과 경제 규모가 크다. 한국어 강좌가 생기면 선택할 학생들도 많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한국어 교육을 위한 교재들 또한 학생들이 이용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영어 설명이 세련되지 못했으며 내용도 부실하다. 이는 미국의 언어 교육 전문가가 아니라 한국의 언어 전문가가 편찬했기 때문이다. 문법 설명 등은 미국인이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게다가 한국어 교재는 실용적인 대화를 다루지 않는다. 교재에 나오는 표현이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이 스스로 외국인의 모든 입장을 헤아릴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이 함께 한국어 교육의 주체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외국인이 한국어 교육을 직접 맡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외국인 전문가를 투입해 조언을 받으며 한국어 교육 시스템과 교육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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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을 만들자는 의미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다.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외국인들을 낯설어 하면서도 친절하게 대해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배려가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외국인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한국어로 대화하려는 의지는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어가 세계 속에서 중요한 언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한국어를 쓰려는 외국인들을 아이 다루듯 조심스럽게만 대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자세다.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위해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한국 교수들과 학생들은 외국인 학생이 한국어를 말하거나 한글을 쓸 때 한국인과 가깝게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도 이에 호응할 것이다. 오히려 적당히 봐주기 학습에 걸림돌이 된다. 만약 한국인들이 내가 쓰는 글이나 말에서 잘못된 부분을 솔직하게 지적해 주었다면 나의 한국어 실력은 지금보다 훨씬 더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외국인의 한국어 구사에 대한 기대치가 낮다. 외국인들은 한국어를 쓰면서 실수를 해도 그것이 실수인지조차 모를 때가 부지기수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한국어 구사와 작문을 요구하면 그 실력이 확실히 더 나아질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인처럼 한국어를 잘하지 못할 것이며 그래도 괜찮다는 선입견이 있는 한 외국인의 한국어 실력 향상은 있을 수 없다. 친절과 관대함이 결과적으로 불친절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나는 지난 5년간 한국에서 일해보았다. 그 경험으로 확신하건대 외국인이 한국 조직에서 제대로 일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이 점점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면서 조직 내부에 외국인들을 통합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이런 통합을 위한 조치 중 하나로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조직 내부에서 높은 수준의 한국어를 구사하며 일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한국어는 빠른 속도로 지구촌의 중요 언어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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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머지 않은 장래에 이탈리아어 수준 정도는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특히 과학이나 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한국어는 이미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그 중요도가 비슷하거나 더 크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세계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국 정부와 기업에 중요한 문서라면 지구촌 전체에 가치가 있다. 더구나 한국은 기술과 비즈니스와 관련해 많은 문서를 생산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실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서구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근거로 한국어 문서의 중요성에 대해 오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수준 높은 한국어 실력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가 지구촌 차원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에 맞춘 적절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인들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미국인이 별로 없다면서 한탄해 왔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도록 유도하는데 실패한 것이 중요한 원인이다.
04 한국어 세계화, 사전과 입력 시스템부터 시작하자
한국어를 세계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제대로 된 외국인용 한영사전과 영한사전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접한 모든 영한사전은 외국인이 한국어 학습을 돕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라 외국인이 한국어 학습을 포기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 같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한영사전이나 영한사전은 어려워서 외국인이 사용하기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주된 사용자를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그런 접근법은 매우 부조리하며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데 엄청난 장애물을 형성한다.
한국어를 세계화하기 위해 워드 프로세스의 한글 입력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글 전용 입력시스템이 아니라 로마자로 한국어를 입력할 수 있는 시스템이 범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 일본어나 중국어는 로마자 입력방식으로 타이핑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쉽게 일본어와 중국어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의 로마자 입력 시스템은 부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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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는 외국인이 한국어 문서를 작성할 때 심각한 장벽이 된다.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중요해지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불행한 일이다.
한국어는 국제 언어로 변모하고 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즉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려는 외국인을 실제적으로 배려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만 필요한 사전이나 컴퓨터 입력시스템에서 벗어나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전과 입력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5장 한국의 기술유산은 차별적 발전의 원천
01 긴 잠에서 깨어난 한국인의 기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제품이 쏟아지는 21세기는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기술‘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통찰해 볼 필요가 있다.
환경과 고령화 문제 등 사회의 격변은 참신한 해결책을 위해 기술의 정의를 확장할 것을 요구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최초 생성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기술 또한 한 차원 더 높게 다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자랑 태권도는 기술로서도 잠재력을 갖고 있다. 태권도는 의료 시술이나 식품 보조제들과 결합해서 치유를 가속화하고 건강을 증진 시킬 수 있다. 정신적 평화와 안정감을 주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태권도의 뛰어난 기능은 고령화 사회의 건강 증진을 위해 크게 응용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기술로서 진지하게 연구되지 않았다.
한의(韓醫)는 한국에 숨겨진 최고로 귀중한 보물 중 하나이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의료 기술의 잠재적 ‘금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한의는 중국이나 일본과 그 요소를 공유하고 있지만 ‘복합침술’을 비롯한 한국만의 정교한 비법도 유지하고 있다. 만성 질병에 대한 한국의 전통적인 동종 요법이나 한방 치료 대부분은 아직 서양에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적 분석이 지속됨에 따라 더 많은 사실이 확인되고 발견될 것이다. 그 외에도
- 한국 전통 가옥과 농가
- 조선시대의 정교한 관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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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물쓰레기를 최소화하고 최대의 영양을 확보할 수 있는 전통적 조리법
- 효율성 높은 온돌 난방시스템과 전통 한옥마을의 구조 등
- 전통적 직물, 목공예, 도예, 가구 등의 디자인과 문양
이 밖에도 한국에는현대화의 과정에서 간과하거나 잃어버린 기술이 참으로 많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한국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과거를 뒤돌아보아야 한다. 그 속에서 한국의 강점을 뒷받침하는 숨은 기술을 발굴해야 한다. ‘기술’의 정의를 확장함으로써 한국은 뛰어난 전통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
02 한국의 구찌를 만들자
한국인은 전자나 생명공학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계를 넘나드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한국인이 뛰어난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가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상대적 차원은 물론 절대적 차원에서 한국인이 우위를 갖는 분야가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긴요하다.
빼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의류나 구두, 시계, 가방, 가구 등은 시장에서 인정받는 브랜드가 되기만 하면 헤아릴 수 없는 돈을 벌어들인다.
최근 들어 한국은 전자제품, 화장품 등에서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20년 전까지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세계 곳곳의 시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가격표를 보면 놀라움은 배로 늘어난다. 한국산 텔레비전의 가격은 일본산 제품의 가격을 넘어선지 오래다. 지금은 한국 기업끼리 가격에 상관없이 품질 경쟁을 벌이는 구도를 형성했으며 미국 고객들도 비싼 한국산 텔레비전을 사기 위해 지갑을 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럭셔리 상품에 있어서는 한국 브랜드가 그 정도 수준에 오른 사례가 없다. 사실 한국이 구찌나 프라다, 아르마니, 또는 펜디 정도의 브랜드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하면 농담으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은 단지 의지와 방향설정의 문제라고 본다.
럭셔리 상품 시장에서도 한국은 새로운 종목을 찾아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양상을 보면 한국 기업들은 자기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기는 했지만 이탈리아 럭셔리 상품을 모방하는 데 그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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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는 한국적 특성을 가진 모델이나 아시아적 개성을 표현하는 럭셔리 상품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시장을 장악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앞으로 5년에서 10년 안에 최신 유행의 고급 여성복 디자인에서 아시아적 흐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 팔리는 가방과 벨트, 구두 역시 아시아의 전통적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을 담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추세는 중국과 일본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소극적이다. 만약 한국이 서양 트렌드를 추종하지 않고 한국식 디자인으로 더 높은 기능을 부가하고 세련미를 발휘할 수 있다면 분명히 성공할 것이다.
‘한복’이라는 말에는 최고 품질의 소재를 사용한다는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인의 손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옷을 만들고 수선하는 능력 역시 세계 최고다. 마케팅에서도 한국은 비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한국인은 목표와 과제만 명확히 제시해주면 적도의 밀림에서 털옷을 팔고 시베리아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물건만 좋다면 반드시 좋은 고객을 찾아내 좋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한복과 전통적인 보자기, 노리개 등은 현대적인 상황에 맞춰 수정돼야 하며 소재와 제조 차원에서 최고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초기 단계부터 극도로 제한된 규모의 까다로운 고객들을 고려해 마케팅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단 이미지 형성이 될 수 있다면 시장이 확대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는 전통문화의 현대적 계승이라 할 수 있다.
03 풍수, 미래형 생태 건축의 철학
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대도시의 성장은 오늘날 아시아 국가들이 일으키는 가장 위태로운 변화이다. 그러므로 한국은 국내에서 지속 가능한 생태도시를 개발해야 할 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생태도시 개발을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아시아 여러나라가 서울을 벤치마킹 하고 있다. 한국이 중대한 영향력을 끼칠 기회가 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도시들을 더욱 생태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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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데 효과적인 접근법 중 하나로 ‘풍수’의 전통을 들 수 있다. 이를 도시계획과 건설에 응용함으로써 더욱 지속 가능한 환경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풍수는 현대인에게 미신처럼 여겨진다. 복을 받기 위한 묏자리 선택과 집을 배치하는 방법 등 미신적 요소가 풍수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풍수의 일부일 뿐이다. 풍수는 원래 인간이 사는 공간의 물, 바람, 흙, 지형과의 호흡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기후 변화 시대에 풍수의 지혜를 회복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적 도시계획은 풍수에서 설명하는 ‘사람과 환경과의 조화’에 대한 개념을 무시하고 있다.
풍수는 공기의 흐름과 물의 흐름, 산과 식물, 강, 호수 등 생태계 여러 부분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풍수는 건물이 자연의 흐름 속에 통합될 방법을 찾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환경과의 관계이다.
풍수에서는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본다. 자연과 사람은 생명이다. 이는 서로 배려하고 상생해야 할 무조건적인 이유이다. 이처럼 한국이 풍수는 서구의 지리 공간학이나 중국의 풍수지리학보다 인문적 요소가 정 강하다.
한국의 풍수지리 공간학은 미래 친환경적 생태공간 창조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한국의 풍수지리는 인문학에서 과학까지 다양한 학문을 총망라하여 융합된 오래된 통섭의 학문이다.”
풍수는 어느 하나의 세계로 떼어 놓고 보지 않고 더불어 하나로 보는 조화와 균형의 미덕이 실현된 한국 전통 사상이다. 이 풍수야말로 21세기 거대한 담론의 중심이 될 것이다.
풍수는 인간과 건축물 간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건축물이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있지만 풍수는 외부와 내부 세계 사이에 공기와 물이 순환하는 ‘호흡하는 건물’을 짓는 새로운 설계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건축물은 사람들에게 더욱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며 유지비도 훨씬 적게 든다. 온실가스를 양산하는 비싼 전력을 과소비하는 에어컨과 환풍기를 사용하는 대신 풍수 원리를 따라 ‘숨을 쉬며’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는 집이나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서울이 풍수의 도시 생태도시로 거듭나면 동남아시아, 중국, 중앙아시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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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나라의 신흥 대도시가 서울의 우수사례를 따를 것이다. 한국의 풍수는 한류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풍수에서 온고지신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강조한다. “한국 풍수는 한국 문화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04 천 년을 이어갈 서울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라
서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명백하게 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 서울에 사는 사람은 매우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도시를 체감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의 눈으로 볼 때 서울은 한 가지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멋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 도심을 걷다보면 뭔가 편안하다거나 우아하다는 느낌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긴장감이 생기고 각박함이 더 많이 느껴진다. 그런 부정적인 느낌의 상당 부분은 서울 도심에 즐비한 건물의 형태와 크기, 색채 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서울의 건물은 싱가포르나 베이징 도쿄 등지의 건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서울이 동아시아의 수많은 유명 도시들과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국 사람에게는 물론 한국을 멋진 나라로 상상해 온 국제 사회의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현재 서울의 건축은 중요한 과제를 갖고 있다. 그것은 매우 사려 깊고 예술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디자인 측면에서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1,000년을 버티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이 과제는 기술적 차원에서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점도 있다. 의식을 바꾸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상상력은 한국의 문화를 창조하는 일이다. 오늘 대중가요 한 곡을 더 만들고 내일 영화 한 편 더 찍는 차원의 문화가 아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1,000년의 세월을 거친 후에도 의미가 살아있는 문명을 남기는 일이다.
05 세계 농업 문화혁명을 이끌 한국 유기농법
1907년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의 농업경제학자 프랭클린 킹 박사는 한국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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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일본을 장기간 여행했다. 그는 여행 중에 세 나라의 농업관행에 대해 애정어린 관심을 갖고 깊이 연구했다. 이는 서구 사람들에게도 의미 있는 연구였다. 농업 기술에 정통한 킹 박사는 아시아지역 농업에서 볼 수 있는 지속성과 재활용 등 사려깊은 관행에 주목했다. 그는 아시아 국가의 토지 운용과 관련해 매우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은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찬사를 보내고 본받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킹 박사는 안타깝게도 ‘40세기를 지켜낸 농부들 : 중국과 한국, 일본의 영구적 농업 기법’을 펴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별세한 후에도 이 책은 농업 개혁을 추구하던 많은 미국인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 당시 한국이나 일본, 중국을 방문했던 미국인들은 대부분 미신을 믿는 후진적 지역에서 서구의 선진 제도를 소개하는 것이 의무라 생각했다. 그러나 킹 박사는 이와 정반대였다. 동아시아에서 배우고자 했다. 지속 가능한 농업이야말로 서구가 배워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 여겼다.
킹 박사의 책은 2004년에 재출간 되었다. 제목은 ‘40세기를 이겨낸 농부들 : 중국과 한국, 일본의 유기농법’으로 약간 수정되었다.
킹 박사는 동아시아 농업의 높은 효율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주방 테이블 크기의 아주 작은 땅일지라도 적절한 관개 수로를 갖추고 있으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킹 박사는 작은 공간에서 세심힌 주의를 기울이며 이루어지는 곡물 농업에 대해 자세히 언급했다.
킹 박사는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을 거쳐 발전한 비료 공급 체계도 자세히 기록했다. 이는 본질적으로 하나도 버리지 않는 농업이다. 근대화 이전 한국에서는 버려지는 모든 요소가 농업 순환 주기에 따라 완벽하게 처리되었다.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 채소 찌꺼기나 재 등을 보기 좋게 모아서 보관 처리한 후에 논밭으로 돌려보냈다. 마을마다 이런 천연 비료를 보관하는 상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킹 박사는 또한 강수량과 관계없이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물을 효율적으로 모으고 농지로 돌리는 크고 작은 규모의 관개 수로체계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중국과 한국, 일본은 오래전부터 영구적 농업의 핵심을 이해했으며 더욱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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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발전을 할 수 있는 때를 맞았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 이익을 얻고 그들의 농업 기법에서 좋은 점을 채택해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새롭고 발전된 수단의 도입을 위해 세계적인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의 선택에 달려 있다.
수천 년 이라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단기적 이익에 구애됨 없이 농업을 이해하는 개념이 글로벌리즘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미국인 입에서 나왔다는 점은 신선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영감을 준다.
킹 박사는 또 최근까지 동아시아에서 중심적인 식단이었던 채식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농업 분야에서 풍부한 전통적 지혜를 갖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기농 선두 주자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유기농 전통의 여러 요소는 현재 세계 각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제3세계 국가 발전 사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국의 유기농 기술이 적절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영어로 소개된다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같은 단체가 잘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과거 전통에서 나온 농업 기술은 많은 개발도상국이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이다. 존경받을 만한 한국의 유기농 전통은 한국국제협력단이 전 세계를 무대로 추진 중인 ‘한국식 개발’ 개념에서 중심적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6장 미래 한국의 비전
01 상상력을 허하라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에서는 쉽게 이루어진 일들이 한국에서는 매우 어렵게 진행되는 분야도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상상력의 문제다.
나는 대전에 살면서 지역 사회 발전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내 나름의 구상을 제안한 적이 많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는 상상력을 제약하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사무실이나 연구소 등에 가보면 ‘상상력’ ‘창의력’등의 단어가 들어간 부착물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슬로건들은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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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자유로운 확장을 막는 족쇄가 된다. 실체는 부족하고 구호만 난무하는 이런 현실은 상상력이나 창의성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부족하고 개념 연구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빚어졌다.
나는 도시의 건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곤 한다. 재미없는 건물과 재미있는 건물이다. 재미없는 건물은 박스(box)에 지나지 않지만 재미있는 건물은 그 자체로 콘텐츠(contents)가 된다. 박스는 단순한 상업적 가치만 보유할 뿐이므로 그 건물의 가격은 상업적 가치로 결정된다. 그러나 콘텐츠는 상업적 가치를 기본으로 문화적 가치가 추가되어 있다. 건물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히고 이에 따라 가격도 크게 높아진다.
박스를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흥미로운 상상력을 발휘해서 수리한다면 재미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 쉽게 말해 예술가들에게 자율권을 주고 동네를 재미있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이들은 한 달이면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협의가 필요한데 생산적인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세련된 정치 관행이 존재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잘못 운용되면 합리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예술가들이 낡은 동네나 건물을 새롭고 아름답게 재창조하는 일이나 도시의 전향적 변화는 꿈조차 꿀 수 없다. 상상력의 빈곤은 현실로 나타나 볼썽사나운 현수막이나 시설물들이 거리를 어지럽히고 말 것이다.
빈부의 격차보다 더 심각한 것이 상상력의 격차다. 상상력은 현수막을 보기 좋게 배치하거나 낡은 건물을 재미나는 곳으로 바꾸는 데에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상력은 각종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가나 지역공동체의 여러 제도를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원천이 된다.
한국의 도시 공간을 멋있게 바꾸는 문제를 생각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많은 한국인이 지닌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한다. 보통의 한국인들은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새로운 건물은 고층 건물이나 아파트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낡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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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여긴다. 그 대신 고층 건물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느끼며 편리하게 지내는 현대식 생활을 추구한다.
한국인은 전통적으로 오랜 시간을 지냄으로써 가치를 지니게 된 물건에 대해 강한 흥미를 보였다. 한국 학자들은 그의 아버지가 소중히 여겼던 책에 대해서, 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가구에 대해서, 그의 스승이 아끼던 그릇에 관해서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어떤 물건을 과거의 사건이나 사람과 연결 짓는 일은 사라지고 없다. 요즘에는 할머니가 어렸을 때 사용했다는 이유로 낡은 가방이나 의자를 소중히 여기는 한국인들은 거의 없다. 한국인들은 그런 것보다는 구찌의 비싼 가방이나 이케아 신품 의자를 새로 살 것이다.
기금 한국인은 가구 등의 물건을 살 때 자기 가족이나 조상과의 인연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나 이탈리아 고가구는 좋아한다. 프로방스나 토스카나의 과거가 더 멋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디자인, 아버지가 사용하던 브랜드 등 한국의 과거와 관련된 물건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현대화 추진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결과이다.
02 홍익인간 정신과 교육 혁명
한국 교육은 뛰어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교사의 능력이 우수하고 교과서와 참고서 수준이 높다.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 교육은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교육제도가 경쟁위주라는 점은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교류, 협력하기보다는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할 것만 요구받는다. 사람의 가치와 수준을 이해할 때 항상 숫자를 이용한다. 이 복잡한 세상을 2차원적 방식으로만 보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석차를 매기는 상대 평가제도에도 잘 나타나 있다.
한국 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 삶의 질을 연봉이나 재산 같은 숫자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교육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학생의 성적을 다른 학생과 비교해 상대적 위치로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처럼 숫자로 평가되는 교육은 오늘날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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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점이다. 그러나 인간을 숫자로 이해할 수는 없다. 깨달음은 개량적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교육의 질적 발전을 위해 되살려야 할 한국의 전통으로 ‘홍익인간’ 정신을 상기하는 게 좋겠다. 홍익인간 정신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한민족의 건국이념이다. 홍익인간 정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며 그 깨달은 가치를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 사회, 국가,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 쓰는 것이다.
잠들어 있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이념을 되살리는 일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아니다. 한국인의 얼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신을 일깨우는 것이므로 현재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매우 적합하다.
홍익인간 정신은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모범사례가 될 수 있다. 세계를 위한 새로운 교육법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물질이 아닌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고 모두를 위한 마음을 추구하는 홍익인간 정신이야말로 물질만능 시대라 불리는 현대 사회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될 만한 잠재력 넘치는 개념이다.
나는 한국의 교육문제가 두 가지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착각은 경쟁해야만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한국이 생각하는 그런 선진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도 선진국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국보다 낫다. 모든 면에서 선진국을 따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역효과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런 경쟁은 오히려 아이들을 해치고 장기적인 비전을 망칠 수 있다.
두 번째는 내부 경쟁이 있어야 기업이나 정부,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부분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경쟁이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협력하고 함께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경쟁보다 협력이 더 효율적이다. 바로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날로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를 생각해보자. 이 현상은 소비문화와 가정 붕괴의 결과물이다. 소비만 하는 사회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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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이 별로 없다. 경제적 이익이 없으면 교류도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것이다. 사회에 공동체 개념이 없다면 옆집에 사는 사람에게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학교에서 학생 사이의 공동체 의식도 약화된다.
이런 점에서 홍익인간 정신은 학생 사이의 공동체 개념을 재구성할 때 든든한 사상적 기반이 된다. 한국 교육은 이제 경쟁 중심의 제도를 넘어 공동체 중심의 제도로 이동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다. 이미 한국의 전통 속에 공동체 중심 교육제도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홍익인간 정신을 되찾아 그 본질을 회복하면 된다.
03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건설하자
한국은 어느 새 심각한 고령화 사회가 되었으며 그 경향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 고령 인구는 별도의 계층을 형성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수를 앞세워 젊은 층에 손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면 한국 경제는 왜곡된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민’을 제시할 수 있다. 노인들을 외국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젊은 외국인들을 한국으로 불러들이자는 이야기이다. 전 세계에서 재능과 창의력을 겸비한 젊은 인재를 유치하여 인구 통계학적으로 부족한 젊은 층이라는 구멍을 메우자는 의견이다. 물론 이민은 결코 가볍게 다룰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신중한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이민 정책을 내놓고 창의적인 다문화 사회를 건설한다면 한국은 아시아 중심국가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민 정책이 엉성하게 세워질 때 한국은 노후 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지배하는 고령화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혹은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에 통합되지 못한 채 한국의 국익과 자신들의 이익이 다르다고 여기고 겉도는 이민자들의 나라가 될 수도 있다. 전자나 후자 모두 위험하다.
그러므로 이민자들이 인종적으로는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국인이라고 느낄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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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나 인도 출신의 인재들이 한국으로 유입되었을 때 이들이 자신을 진정한 한국인으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만약 이들이 자신을 어쩌다 보니 한국에 살게 된 중국인이나 인도인으로 여긴다면 이는 정책이 실패한 결과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문화 정의를 확장시켜야 하며 자신의 문화를 포괄적인 것으로 변형하는 데 매우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즉 한국 문화를 다른 문화까지 포용할 수 있는 더 크고 포괄적인 문화로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한국 문화를 일회용 상품으로 여기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은 19세게 말부터 다문화국가가 되었다. 다양성으로 보자면 한국보다는 훨씬 더 긴 전통을 지녔다. 그러나 미국도 얼마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국가가 아니었다. 지난 40년간 미국의 국제 외교 안보 전략에는 두 명의 거인이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국가의 우선순위를 정했고 국가 전략을 마련하여 미국 국익에 대한 강한 의식을 심어 주었다.
그들은 헨리 키신저 미 공화당 수석 외교 자문이고, 또 다른 이는 민주당 외교 안보 정책의 핵심 인물로 활동 중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대목이 하나 있다. 미국의 외교, 안보, 정보 분야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을 담당한 두 사람이 모두 토종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키신저는 1938년 나치의 압박을 피해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 온 독일 출신 유대인이다. 그는 미국 시민이 되었고, 2차 대전 때 미군에 복무하며 공훈을 세웠다. 이후 키신저는 하버드대학교 교수기 되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39년 비밀 조약에 따라 폴란드가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분리됐을 때 캐나다에 발이 묶였던 폴란드 외교관의 아들이었다. 그는 노력 끝에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미국인으로 귀화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의 정책 수립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브레진스키도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런 사례를 보면 세계 최고의 우수인재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또 다른 국민 정체성과 국가 충성심을 부여하는 일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인재를 끌어당길 능력이야말로 미국을 강하게 만든 주된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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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진정한 의미의 다문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역량을 갖추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고방식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경험하는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둔감하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한국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의 한국에 대한 인상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과 한국 문화를 어떻게 경험하느냐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올 때 무엇을 찾을까? 외국인이 왜 한국에 흥미를 느낄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외국인에게 한국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외국인이 한국의 어떤 점에 끌리는지는 한국 회사원이 외국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의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의 역사나 정치 혹은 사회와 같은 깊은 주제를 토론하면서 내가 나름이 의견을 제시하면 한국인들은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외국인이 내가 한국인인 자신도 모르는 한국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나는 한국을 공부하는 학자이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도 가끔 미국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아는 한국인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을 공부한 사람이 미국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국인과 다르게 생긴 사람이 한국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잘 아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에 10년이나 20년을 살고도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한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과 대화할 때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되는지, 한국 음식은 좋은지, 한국에 살기 불편하지 않은지 등 일상적인 질문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질문이고 외국인들도 그에 맞추어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화로는 한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는 없다. 이보다는 실제적인 토론에 외국인을 끼워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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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한국어 토론의 주체요,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이민자들이 한국 사회에 동화되고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민자가 한국인으로 정체성을 갖고 사회에 통합되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가 될 때 지하철에 노인과 청년이 적절한 비율로 자리를 잡는 장면이 보일 것이다.
04 참선과 명상, 병든 현대인의 치유제
참선이나 명상은 주로 불교적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한국은 이와 관련해서도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흔히 참선은 불교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를 불교와 별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참선은 종교적인 영역을 떠나 자신의 정신적 건강과 상태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연습을 하는 방법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선은 온갖 잡념과 망상 그리고 집착을 줄이는 효과적인 수행의 하나다.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실천할 수 있는 훌륭한 정신 수련 중의 하나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많은 이들이 순간의 요구를 제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는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에게 참선과 명상이 결정적 도움을 준다. 꾸준한 참선과 명상은 마음속의 소리를 듣고 욕구를 조절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게임, 도박, 스마트폰, 쇼핑 등에 대한 중독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욕망을 스스로 객관화시켜 바라보는 연습을 시킨다.
정신질환으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들은 참선과 명상의 방법으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가 불러온 여러 가지 중독, 폭력적인 문화, 욕구와 충동 등에 맞서 자신을 제어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05 싸이월드의 교훈, 세계 시장을 보는 안목과 용기
한국은 지금 발전과 정체의 갈림길에 서 있다. 혁신적 기술 개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디자인 창출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인지 장기적인 전환인지 불확실하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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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좋은 제품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세상을 변화시킨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지는 못하다.
과거 한국은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만한 기회를 가졌었다. 1372년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했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금속활자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혁신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금속 활지 기술 개발의 공은 고스란히 유럽으로 넘어간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계로 나아가기를 주저함으로써 스스로 한계를 초래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도 과거와 유사한 일이 생기고 있다. 1999년 싸이월드는 독특한 소셜 네트워킹 경험을 제공하는 아바타를 기반으로 혁신적인 ‘미니 홈페이지’ 서비스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싸이월드는 글로벌 발전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했다. 당연히 이에 대한 투자도 없었다. 뒤늦게 싸이월드의 글로벌 버전이 개발됐지만, 기존 국내 싸이월드 회원과 ‘일촌’을 맺는 것이 불가능한 폐쇄적 버전에 그쳤다.
페이스북 콘텐츠가 싸이월드보다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었다. 굳이 이유를 들자면 싸이월드를 만들고 발전 시켰던 국내 개발자들이 싸이월드의 가치를 글로벌 관점에서 심각하게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단순히 싸이월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에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같은 특별한 검색엔진이 존재한다. 이들은 서비스 검색 외에도 지도,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는 카페, 대화형 사전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데 외국 검색엔진 서비스에 비해 상당히 차별화돼 있다. 특히 하나의 웹에서 검색, 뉴스, 소셜 네트워킹까지 가능하도록 한 지능적 결합은 상당히 강력하며 효과적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우수한 서비스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강력한 장점을 지닌 한국의 포털 사이트들은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페이지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한국인들은 세계 최고수준의 검색 엔진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왔으며 양방향 소통을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창조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서비스는 사용자가 한국어를 모르면 전혀 활용할 수 없는 구조로 돼 있다. 이런 상황은 국제사회와 소통을 할 의지가 없다는 증거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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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국제적인 관점에서 발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을 맞고 있다. 자신감을 갖고 발상을 전환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06 세계가 함께 꿈꾸는 코리안 드림을 만들자
지난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 미국은 영화나 책 등의 미디어와 시민사회 및 정부 차원의 각종 활동을 통해 전 세계에 강력한 비전을 제시해 왔다. 세상 사람들을 매료시킨 그 비전은 각 개인이 그들의 꿈을 실현하고 풍요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자유롭고 열린 사회였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다.
룩셈부르크 사람이었던 나의 어머니 역시 그 비전에 매료된 사람 중 하나였다.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은 사회적 공정성을 보장함으로써 꿈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모든 이들에게 풍부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약속하고자 했다.
세계 모든 이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해 전진하는 아메리칸 드림에 영감을 얻었다. 미국 영화와 신문을 보거나 평화협력단 등 국제 협력 조직의 활동을 접하면서 미국을 희망과 낙관주의 기반 위에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인식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메리칸 드림에서 얻은 영감을 기초로 자신의 나라가 할 수 있는 일, 성취할 수 있는 목표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아메리칸 드림에서 발견한 가치를 바탕으로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다.
물론 미국은 완벽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 사회에도 어두운 구석이 많다. 인종적 편견이나 극단적 물질 만능주의 등은 아메리칸 드림의 뒤안길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그런 부분은 아메리칸 드림에 의해 영감을 얻은 사람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은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의 사람들로부터 정부 정책, 사회 간접 자본, 기술과 사업 관행 등의 분야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정부 관리들과 주요 기업인들은 한국의 수질 정화 시설을 견학하거나 가상 정부에 대해 강의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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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국의 기업 총수나 전문가들로부터 기업가 정신에 대해 강의를 듣거나 한국의 공장이나 백화점등을 방문한다.
한국은 이미 신흥국 대부분이 참고할 만한 가장 현실성 높은 사례가 됐다.
더군다나 한국의 전통문화는 미국의 문화와는 달리 많은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환영을 받고 있다. 특히 새로운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의 성형수술이나 패션, 음악과 노래, 춤과 영화는 지구촌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지구촌 경제의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이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여전히 앞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코리안 드림은 과거 아메리칸 드림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이 세계에 주는 가치이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은 그 내용 면에서 아메리칸 드림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코리안 드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코리안 드림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책임감을 안기는 촉매가 된다. 한국인들 특히 한국이 젊은이들은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맡으며 새로운 트렌드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해야 한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책임감과 운명에 대한 깊은 감각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정한 사회를 창조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데 헌신하는 사려 깊고 멋있고 똑똑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준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전 세계 수 십 억의 사람이 그것을 따라 할 것이고 이를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런 충격파는 엄청난 규모로 확산될 수 있다. 이런 문화를 최초로 만들어낸 한국 젊은이들의 초기 상황과 비교하면 100만 배 이상이 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인이 비싼 물건을 소비하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외모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이다. 이때도 물질문명 발전을 동경하는 세계 많은 젊은이가 한국인을 따라 할 것이다. 그러면 천박한 물질 만능주의적 삶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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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드림이 두 가지 방향 중 어느 쪽으로 흐를지 한국인들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결정의 순간이 왔다. 한국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국제 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기회를 넘겨받았다.
코리안 드림을 만드는 일은 한국인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세계인들이 한국의 좋은 점이 아니라 한국의 나쁜 점을 배우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에 부여된 절실한 사명이다.
07 한국은 세계적 나비효과의 진원지
한국 젊은이들은 자신의 행동은 지극히 사적이며 개인 범위 내게서만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의 행동 하나하나는 전 세계에 한국을 드러내는 외교관이다. 그러므로 더는 자신의 욕구충족과 즐거움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현재 한국의 문화는 세계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많은 개발도상국이 한국의 다양한 면을 본받으려 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국가들은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이 아닌, 한국의 장점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의 정책과 기술, 특히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에게 미국이나 유럽은 이질적이다. 문화도 다르고 이미 예전부터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다가서기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가가기 쉽다. 한국의 문화 역시 서구 선진국 문화보다는 훨씬 흥미롭게 다가온다.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한국인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고 지적이며 주변 사람들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한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한국인의 모습을 본받으려 한다.
한국인들은 이런 인식과 기대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 자기중심적인 생활과 환경을 도외시하는 사치스러운 소비를 일삼는다면 전 세계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한국을 동경하는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국은 점점 세계적 나비효과의 진원지가 되어 가고 있다. 이제 한국이 세계 환경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진지한 실천을 시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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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홍익인간과 한국의 기업 문화 혁신
삼성, 현대, LG등의 한국 대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회사들과 더불어 세계 제조업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 한국 기업의 평판이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반면 환경 문제,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 기업들이 의식은 높지 않다. 국제 사회는 한국 기업에 대해 이런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 기업보다도 더 수익 중심의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인간다운 기업 문화 창출을 해 낼 수 있는 전통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한국의 건국이념은 그 자체로 인류의 행복과 인간 사랑을 표방한다. 한국인은 일찍부터 인류와 사상을 포용하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 기업들은 다른 어느 나라 기업들보다 홍익인간 정신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홍익인간 정신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중심 문화를 기업 문화의 중심으로 위치시키면 기업 혁신의 새로운 모델이 생길 수 있다.
홍익인간 정신은 인종이나 민족, 종족을 차별하지 않는 보편적인 성격의 개념이다. 따라서 다른 나라로 확장 시킬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다른 나라 기업도 홍익인간 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특별히 거부할 필요가 없다.
한국이 일류 국가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들이 홍익인간 정신을 기반으로 한 혁신에 나서야 한다. 수익성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인류에 공헌하는 노력을 함께 펼치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기업 문화가 한국에서 시작된다면 외국의 다른 기업들도 이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은 현재 수익을 중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 못지않게 한발 앞서 새로운 기업 문화 혁신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한국에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보편적 인류 공동체 중심의 철학인 홍익인간 정신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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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새로운 기업 문화를 요구한다. 새로운 기업 문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기업에 부여된 새로운 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기업들은 앞으로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한국 기업들이 홍익인간 정신 중심의 기업 문화 혁신을 추진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09 병세의식과 새로운 동북아 공동체
2012년 하반기 이후 동북아시아에서는 영토 문제를 둘러싼 국가간 갈등이 격화되어 분위기가 잔뜩 험악해졌다. 한국과 일본은 독도를 둘러싸고 대체 국면을 조성했고, 중국과 일본은 센가쿠(댜오위다오) 영유권을 놓고 무력시위 양상을 고조시켰다. 유럽에서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 과거 적대국이었던 나라들이 단일 공동체를 만들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데 동북아시아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앙금으로 말하면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통합에 성공했다. 역사적 앙금 그 자체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지식인들의 교류가 충분하지 못하고 그래서 진정한 지식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식인 교류는 200년 전보다도 훨씬 못하다. 적어도 이 분야에서는 역사적 퇴행을 보인다. 200년 전 한국과 중국, 일본 지식인들은 서로 활발하게 교류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형성하는 지적 공동체인식 즉 병세의식(倂世意識)도 존재했다.
0 영조, 정조 시대에 이러한 문화적, 지적 교류가 전성기를 이룸
- 일본의 다카하시 히로키 : ‘동아시아의 문예공화국’이란 책에 당시의 교류를 자세히 소개
- 이규상(1727-1799) : ‘병세 재언록’ 동시대 문인, 학자, 예술가의 전기
- 윤광심(1751-1817) : ‘병세집’ 국내외 젊은 작가들의 시문을 모음
- 유득공(1748-1807) : 외국인의 시를 모은 ‘병세집’
- 안남(베크남)과 유구(대만) 지방의 시인까지 포괄하는 내용이 많음
동북아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18세기 병세사상은 역사가 남긴 좋은 사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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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이는 한, 중, 일 세 나라의 밝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가는 훌륭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 필요에 의한 교류를 뛰어넘어 진정으로 통합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한국 지식인들이 주도적 역할을 한다면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지식인의 적극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10 21세기 르네상스를 꽃피울 한국
최근 서울 안국역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활발한 예술의 흐름을 보면 한국의 예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서울에는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창의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갤러리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 자산은 TV드라마, 가요뿐 아니라 개념 예술, 조각, 회화 등의 예술 영역으로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곳 서울에서 일고 있는 문화의 바람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국 내에서 ‘융합’이라는 화두는 과학과 사회적 경험을 연결하는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잡아 다양한 지적 창의성을 탄생시키고 있다. 앞으로 기술과 한류, 예술, 자본의 결합으로 더 큰 질서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 중에 살롱 문화가 꽃피었다. 그래서 큰 규모의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기술과 식견을 공유하고자 하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살롱 문화는 금융업자, 건축가, 예술가, 문학가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다방면의 천재들이 평생 친분을 쌓으며 각각의 분야들을 통합하고 이를 통해 대중 예술 걸작들을 창조하는 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서울에는 놀랄 만한 전문 지식과 다양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있지만 아직 그 확장 가능성이 불분명하다. 어쩌면 한국의 전통적 ‘사랑방’문화야말로 개개인의 폭넓은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이끄는 대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한국에서 르네상스 당시 일어난 현상들이 나타난다면 과거와는 다른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예술 표현이 수반된 21세기 르네상스가 만개하는 것을 세계가 보게 되리라.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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