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2. 13:38ㆍ독서후기
당신과 나 사이
■ 김혜남 지음
0 1959년 생
0 서울대 의대 졸, 정신분석 전문의
0 국립 정신건강 센터에서 12년 근무
0 경희대 의대, 성균관대 의대, 인제대 의대 외래교수,
서울대 의대 초빙교수
0 김혜남 신경정신과 원장
0 저서
-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오늘 내가 재미있게 사는 이유
- 어른으로 산다는 것,
- 김혜남의 그림편지 : 오늘을 산다는 것, 등
0 2001년 파킨슨병 진단
0 2014년 병원 문 닫음
Prologue 내가 했던 실수들을 당신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일 중 하나는 사람들이 가까운 이보다 오히려 낯선 이에게 더 친절하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와는 대화를 나눈 지 너무나 오래 된 딸이 길을 헤매는 여행객을 보면 먼저 다가가 길을 알려준다. 친한 친구와 연락한지 오래되었다고 한탄하는 박 대리는 같은 회사 팀원들과 일주일에도 두세 번씩 술자리를 한다. 서글서글하고 친절해 회사에서 ‘스마일맨’으로 통하는 최 과장은 집에만 들어가면 입을 봉한 듯 말이 없어진다.
낯선 이를 만나면 호의를 보이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이 가까운 이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람이 가만히 있는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 “힘들지?”라고 위로해 주기를 바란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여 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마치 각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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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고립된 듯이 살아간다. 그러고는 자신을 외롭게 만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한다. 길거리에서 만난 친절한 이가 알고 보면 남편을 원망하는 아내고, 아버지를 본체만체 하는 아들이며, 사랑하는 이와 크게 싸워 마음을 다친 사람이고 친구들과 연락한 지 반 년이 넘은 무심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낯선 사람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들과는 잘 지내지 못하는 걸까? 왜 우리는 각자의 섬에서 외롭다고 말하는 걸까? 무엇이 당신과 나 사이를 이렇게 아프게 만들고 있는 걸까?
마흔 살까지만 해도 그 모든 과정들을 겪어 낸 내가 자랑스러운 나머지, 내가 잘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고 자만했다. 까짓것 세상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할지 몰라도 나는 그들이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내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도 했다. 나 없이는 집이고 병원이고 환자들이고, 다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그런데 2001년 몸이 점점 굳어가는 파킨슨 병 진단을 받고, 결국 2014년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 문을 닫게 되자 나를 찾아오거나 연락하는 사람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너무 아파서 그 사실조차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고통이 잦아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렇게나 많던 지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게다가 세상은 나 없이도 멀쩡하게 잘 돌아갔다. 그제야 나는 늘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손을 마주 잡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눈을 보면서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예기를 나누며 서로의 생각을 알게 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30여 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활동하며 만난 수천 명의 환자들, 그들은 모두 마음이 아파 나를 찾아왔는데, 놀랍게도 그들을 가장 아프게 만든 사람들은 바로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싶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난날의 상처가 너무 아팠던 그들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자신을 감춘 채 살아가기를 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지만 막상 상대방이 다가오면 두려워하면서 도망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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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돼서 화가 나는데, 내 곁에 있는 사람마저 내 맘 같지 않으면 우울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사는 거라고 애써 스스로 위로해 봐야 끓어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해 울화통이 터진다. 그러면 내 마음을 몰라주는 상대방이 미워지고 자연히 그를 원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얼굴을 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봐야 하는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다른 인간관계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를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큼 지옥 같은 일도 없기 때문이다. 관계의 지옥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시 그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는 걸까? 부끄럽지만 나 또한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는 일과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애쓰면서도 정작 소중한 관계를 지키는 데는 소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잘 하려고 노력하면서,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시간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는 데만 열중해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김혜남
Chapter 1. 사람 사이에 거리가 필요한 이유
■ 혼자가 편하다는 사람들의 심리
“선생님, 저는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요.”
“왜요?”
그러자 그녀는 너무 뻔한 질문이라는 듯 대답했다.
“사람들을 만나면 피곤하니까요, 그리고 꼭 만날 이유가 있나요?”
그녀의 말에 따르자면 회사일도 바쁘고, 친구들을 만나려면 따로 시간을 내야 하는데 다들 바빠서 날짜를 맞추기가 어렵고, 영화 취향도 달라서 같이 볼 영화를 고르는 것도 일이고, 기껏 만나 봐야 다 자기 얘기 하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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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 있는 말이다. 노력 대비 효율성으로 치자면 사람을 만나 관계를 쌓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관계를 쌓으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해도 그것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상대방이 다행히 나를 좋아해 준다고 치자. 그 마음이 언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모두가 모여 사는 게 아니라 뿔뿔이 흩어져 살아간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언제 이사를 갈지, 언제 학교를 옮길지, 언제 직장을 옮길지, 언제 학원이나 모임을 그만둘지 모른다. 평생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이라면 손해를 봐도 보상이 돌아올 때까지 참고 견디겠지만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손해를 보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사람들은 각박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느라 너무 바쁘다.
■ 그녀가 나를 찾아온 진짜 이유
‘랜선이모’
- SNS나 유튜브, 블로그 등에 공개된 남의 집 아이를 보면서 내 조카인 듯 아끼는 사람
- 실제로는 본 적이 없지만 텔레비전이나 SNS를 통해 알게 된 귀여운 아이 의 일상을 온라인상에서 지속적으로 챙겨보며 팬처럼 열렬한 지지와 사랑 을 쏟는다. 돈도 들지 않고 아무런 희생이 필요 없다.
‘랜선집사’
- 자신은 고양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 사진과 동 영상을 보면서 귀여워하는 네티즌
-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하는 데서 유래
재미있는 건, 랜선이모나 랜선집사 모두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가상의 관계나마 어쨌든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다. 관계를 통해 얻는 심리적 위안과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들은 관계의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노력 대비 효율성이 너무 낮다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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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온 그녀는
“선생님은 배신 같은 거 당해 보신 적 없으시죠?”
사람들은 보통 정신과 의사는 마음을 잘 읽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속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똑똑한 정신과 의사라고 하더라도 작정하고 속이는 사람들을 당해 낼 재간이 없다 게다가 환자들을 볼 때는 의사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밖에 나가면 또한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나는 내 얘기를 꺼내지 않고 묵묵히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려는 참이었으니까.
알고 보니 그녀는 두 달 전 3년 동안 사귄 남자에게서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 의미가 있긴 하냐? 너는 늘 나보다 일이 먼저잖아. 그러니까 너는 내가 없이도 잘살 거야. 그렇지?” 충격을 받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껏 그녀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의 앞에서는 웃으려고 노력했다. 썩 내키지 않는 음식이라도 그가 먹고 싶다고 하면 같이 먹으러 갔고, 야구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가 좋다니까 따라 나섰던 적도 많았다. 그런데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고 힘들다는 내색을 안 했다고 헤어지자니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 들일수가 있겠는가.
그녀는 남자 친구에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래 헤어지자”라며 ‘쿨’하게 그를 보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어리광을 부리거나 울어본 적이 없다. 그녀의 엄마는 원하지 않은 때에 아이를 가져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덕분에 그녀는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라는 원망을 내내 듣고 살았다. 그녀는 가라면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어머니 에게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녀는 자신만의 벽을 만들어 놓고 그 안으로 누군가 침범해 들어오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혹시 나쁜 얘기를 하는 건 아닐까’, ‘ 친구도 나를 배신하는 건 아닐까’하 의심하면서 벽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끄고자 벽을 세웠는데 결국 그 벽에 신경 쓰느라 아무 일도 못하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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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혼자가 더 편하다고 줄곧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혼자 있는 시간을 결코 즐기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늘 긴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녀는 사람들과 있을 때도, 혼자 있을 때도 그저 외롭고 쓸쓸할 뿐이었다.
“최악의 고독이란 지금의 나 자신과 불편한 상태로 지내는 나날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녀는 위험하지 않은 대신 최악의 고독을 맛보고 있는 중이었다.
■ 어차피 상처 없는 삶은 없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한참 고민하던 그녀는 할머니를 떠 올렸다. 어릴 적 시골에 사는 할머니를 놀러 가면 할머니가 “아이고 내 새끼 왔구나” 하시며 자신을 반겨 주었다고 그러면 그녀는 쪼르르 달려가 할머니에게 안겼고 “아이고 예뻐라” 하며 할머니는 그녀의 얼굴 곳곳에 뽀뽀해 주었단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반면 혼자 있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복을 결국 관계를 맺고 가꾸어 가는 과정에 있음을 말해주는 방증이라 볼 수 있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론>에서 친밀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서양에서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친밀감이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느낌과 두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특별한 한 사람을 갖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는 단지 다른 사람들을 알고 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의 깊은 문제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친밀한 관계를 갈망하는 이유는 결국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벽을 쌓고 그 안에서 혼자 사는 게 편하고 안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가슴 한켠 느껴지는 공허함을 어쩌지 못해 우울해지기 쉽다.
자신에게 누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벽을 허물어 꽁꽁 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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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있던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세상에 상처 없는 관계란 없다. 상처 입을 각오로 용기를 내야만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있고 그래야만 비로소 원하는 사랑을 얻을 수 있다.
■ 그녀는 왜 결혼하고 나서 더 외롭다고 말하는 걸까?
그녀는 학장 시절 집에 들어가기를 꺼렸다.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고 늘 혼자 쓸쓸히 불을 켜고 밥을 차려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피곤해 잠이라도 들어버리면 얼굴도 못보고 지나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외동딸인 그녀는 자매끼리 쇼핑을 가고 영화를 보러가는 이웃집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옹기종기 둘러앉아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웃는 가족의 모습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자마자 결혼할 생각부터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준다던 남편은 매일 야근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왔다. 계획하면 금방 낳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3년 넘도록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기대했던 임신 증상이 결국 상상 임신으로 판명 나면서 그녀는 급속도로 우울해져 갔다. 그녀는 결혼하면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아빠만큼이나 얼굴 보기가 힘들었고 도란도란 집안에 웃음꽃을 피울 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이럴 거면 내가 왜 결혼한 건가?’ 후회를 거듭하며 그녀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 나는 결국 혼자였다
나는 18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몇 년 전에는 밤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데만 한 시간 넘게 걸린 적이 있었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버려서 꼼짝 못할 때가 있는 데 마침 그때가 그런 경우였다. 분명 문은 저 앞에 있고 몇 발자국만 가면 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살려주세요.’ 라고 외쳐봤지만 목소리가 잠겨 잘 나오지 않았다. 깊은 밤에 이미 잠들어버린 가족들을 깨울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옷에 오줌을 쌀 것 같아 안간힘을 다해 뻣뻣한 몸을 움직였다. 한 발짝 나아갔다. 멈춰서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겨우 볼일을 봤다.
또 밤에 잠을 자다가 뼈가 배겨서 몸을 뒤척여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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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으로 고통을 견뎌야 한다든지, 몸을 움직이려고 애쓰다가 여기저기 긁히고 멍이 들었고, 팔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턱이 찢어져 꿰매기도 했다. 솔직히 너무 아플 때는 이대로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대신 아파해 주고 싶어도 그것은 마음뿐, 고통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내가 얼마니 아픈지는 나밖에 모르는 것이고, 내가 살고 싶다고 소리치지 않으면 아무도 그 아픔을 알아주지 못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외로운지 깨달았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앞에서 나는 말 그대로 혼자였다.
■ 그런데 남편도 혼자였다
돌이켜 보면 나는 2014년 병세가 악화되어 병원문을 닫기 전까지 밀려드는 환자 진료와 학회활동, 인터뷰, 강의 요청 등으로 눈코 뜰 수 없이 바쁘게 살았다. 그때 나는 남편을 미워했다. 남편이나 나나 똑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는데 집안일과 육아를 당연히 여자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참 많이도 싸웠다.
사이가 더 나빠질 것 같아서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파킨슨병에 걸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겪으며 인간은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자 신기하게도 남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저 사람도 참 외로웠겠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와 떨어져 살며 기필코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어려서부터 했던 남편,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어떤 사랑을 주어야 하는지 잘 몰랐던 남편, 그럼에도 내 병을 고쳐보겠다고 동분서주했던 남편이 그제야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도 나랑 사는 게 힘들었을 텐데 왜 나는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걸까?
애초에 내가 과도한 사랑을 요구한 게 문제였는데도,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고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그도 외롭고 서툰 한 인간일 뿐임을 미처 보지 못했던 거였다.
그런데 고통이 오로지 내 몫임을 깨닫고, 인생은 결국 혼자 걸어가는 길임을 깨닫자 그제야 비로소 나와 다른 독립체로서의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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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면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아무리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이 바로 외로움이 아닐까. 우리는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모두 엄마의 뱃속이라는 완벽한 세상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보통의 태아는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모른 채 사랑 속에서 자란다. 그러나 엄마와 떨어져 세상에 나오면서 부터는 시련이 시작된다. 배가 고프거나 어디가 불편하면 누가 먼저 알아서 해결해 주지 않으므로 울음이라는 수단을 써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럼에도 엄마와 한 몸이라고 착각하던 아기는 생후 6개월 쯤 비로소 엄마와 자신이 각각 분리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울해 진다. 바로 이때가 인간이 기본적인 우울 정서를 경험하는 최초의 시기라고 한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혼자 있어야 할 때가 있고, 혼자 감당해야 할 일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바빠도 외로움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외로움을 억지로 이겨 보겠다고 애쓰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다.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듯, 외로움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한다고 해서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상대방과 나는 서로 같은 사람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하면 할수록 발견하게 되는 건 상대방과의 차이이다. 즉 하나로 합쳐지고자 하는 사람이 결국에는 나와 다른 존재임을 뼛속 깊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 서로 분리된 외로운 존재일 뿐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톨스토이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상대와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불일치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 어느 순간에 인간관계가 피곤한 이유
휴대전화 목록에 빼곡히 저장된 수백 개의 이름과 수많은 SNS 친구들 중에 당신이 필요로 할 때 달려와 줄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한 설문조시에서 이 질문을 던졌는데 3~5명이라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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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날 좀 내버려 둬"
메신저 친구가 350명이나 된다는 한 사람은 갈수록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예전에는 늘어나는 친구 숫자를 보며 우쭐한 적도 있었지만 그 중 실제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은 채 20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세태에 대해 뉴욕대학교 에릭 클리넨버그 교수는 관계의 욕구를 질이 아닌 양으로 채우려는 것은 허망한 시도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 '관태기'에 시달리고 있다. 관태기란 '관계'와 '권태기'를 합성한 신조어로 새로운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권태를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 남자가 하루 종일 회사에서 상사들의 눈치를 보며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왔다고 해 보자.
아내 : 아까부터 아이 문제로 상의할 게 있다고 한다.
아이 : 아빠가 자신하고 놀아주기를 바란다.
친구의 전화 : 대화방 열어보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뭉치자고…….
그가 달려간 곳 : 병원 장례식장. 회사 팀장의 모친상 전화를 받고.
■ 한 사람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50명
옥스퍼드 대학교 로빈 던바 교수는 <발칙한 진화론>에서 아무리 친화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람은 150명이라고 밝히며 이를 ‘던바의 수’라고 명명했다. 이때 150명은 우연히 마주쳐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에 동석해도 당혹하지 않을 정도의 숫자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먼 옛날 원시 부족 마을 구성원 수가 150명 안팎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이 이론을 만듬
1. 지금도 호주, 뉴기니아, 그린란드 거주 부족의 평균 숫자는 150명 내외
2. 이 법칙에 따르면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수는 많아야 150 명이고 그 이상은 서로 모르거나 무의미한 관계에 불과
이름도 가물가물한 SNS의 휴대전화 목록을 정리할 때 ‘던바의 수’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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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관계가 피곤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안타깝게도 무한한 수의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과 에너지는 유한하기 때문이다.
보통 부모들은 아이가 가장 소중하다고 말하지만 10대 자녀와 대화하는 데 쓰는 시간은 매주 고작 16분 미만이다. “너는 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연락하는 데 쓰는 시간은 1년에 고작 몇 분이나 되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관계일수록 그에 쓰는 시간도 비례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우리는 부차적인 관계들에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 한다.
■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 가장 큰 상처를 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던 기대를 품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그가 불완전한 자신을 완벽하게 채워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어느 순간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오고, 실망한 만큼 상대방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기대가 컸던 사람일수록 상대에게 그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며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랑한다면 그 정도는 해줘야 당연하다는 듯이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것이다.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하지만 너무 몰아붙이면 상대방도 참다못해 화를 터트리게 마련이다. 가까운 만큼 서로의 약점을 잘 알기에 사소한 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다. 때로는 어떻게든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상대방의 깊은 상처를 건드리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아프게 만들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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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휘두르려고 한다. 그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그가 뜻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화를 내고, 싫어하는 걸 하려고 들면 못하게 막기도 한다.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아이가 이뤄주기를 바라는 엄마도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 엄마는 아이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주기보다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필요한 사랑만 아이에게 준다. 심지어 아이가 다른 길을 가겠다고 하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아이의 뜻을 꺾으려고 든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득하고 나중에는 그것을 어쩌지 못해 스스로 파괴하기에 이른다.
욕심과 사랑은 구분되어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냥 상대방을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이기적인 욕심일 뿐이다.
아마도 타인을 길들이려고 애쓸수록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상대방이 나와 너무 다르다는 절망적인 사실만 깨닫게 될 것이다.
■ 어차피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존재라는 사실은 사랑하면 할수록 슬픔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완벽하게 이해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나를 이해하지? 너는 내편이잖아”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해도 상대방은 내가 아니기에 나를 오해할 수도 있다.
전 세계 60억 명의 사람이 모두 그런 억울함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하면 조금 위로가 될까. 오해받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흔한 연인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여자 친구는 남자에게 “내일도 야근이야?”라고 묻는다. 속으로는 ‘내일은 만난 지 1주년 되는 날인데, 저녁에 만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남자 친구를 시험하는 것에 불과하다. 차라리 “내일 우리 1주년인데 저녁에 만나서 조촐하게 기념할까?”라고 솔직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게 좋다. 그러면 서로 오해할 일도 줄어들어 덜 다투고, 싸우느라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입을 일도 줄어들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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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부모들이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 10대 청소년에겐 쓸데없는 잔소리로만 들린다는 것을, 잔소리가 자꾸 반복되면 오히려 반항심만 부추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그 어떤 힘도 행사하지 않고, 상대를 그저 따뜻한 눈길로 지켜봐 주는 것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그가 살아온 세월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그의 과거 전부를 끌어안는 것, 그러므로 그의 못나고 초라한 모습도 껴안는 것, 그렇게 아무 조건 없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가운데 하나는 뭔가 더 노력하지 않아도 뭔가 더 숨기지 않아도,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그 행복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다.
■ ‘남 탓’과 ‘내 탓’모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관계가 틀어져 마음이 상하면 우리는 으레 상대방에게 그 책임을 돌린다. 최선을 다한 나에 비해 상대방은 별로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서다. 결국 쌓여 있던 불만이 폭발하며 상대방에게 “너 때문이야”라는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나 남 탓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끝도 없는 싸움을 부를 뿐이다.
스텐퍼드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번즈 명예 교수는 ‘어떤 태도가 결혼 생활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여러 연구를 실행한 끝에 놀라운 결과를 발견했다.
연령과 빈부 차이, 학력과 자녀의 유무, 결혼 생활의 기간, 섹스의 빈도수, 취미활동, 가사분담 정도 등의 여러 변수를 놓고 실험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부부 사이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남 탓’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와의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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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며 관계를 끊어버린다. 불편한 사람을 자기 인생에서 치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홧김에 관계를 끊으면 더 이상 그를 안 볼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남는다.
■ 관계를 끊기 전에 거리부터 두어보라
누구나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과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마음이 불편하면 일도 잘 안 되고 인간관계도 잘 안 풀린다. 부부 싸움을 한 상사는 다음 날 회사에 나와서 애써 마음을 다스리려고 해도 얼굴이 굳어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부하 직원들은 자신이 뭔가 실수한 게 없나 눈치를 보게 된다. 자매끼리 싸워서 말을 안하고 있으면 집안 분위기 전체가 가라앉는다.
남 탓, 내 탓을 하며 싸우지 않는 방법은 없는 걸까? 방법은 있다. 마음의 상처를 더 입기 전에 일정한 심리적 거리를 두면 된다.
거리를 두는 것은 아예 상대방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리고 그가 무엇을 하든 개의치 않는 것이 아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슬프지만 그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비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상대방을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적절하게 거리를 둘 수 있으면 관계를 단절할 필요도 없고 상대를 향한 복수심을 키울 필요도 없어진다. 오히려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에서 빠져나와 홀가분해 짐으로써 비로소 편안함을 되찾게 된다.
■ 거리를 두는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겠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내가 말하는 거리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중’을 넣는 것이다. 이때 존중은 상대방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그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고치려고 들지 않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내 마음대로 휘두르려고 하지 않고 그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환자들의 경우 마음이 아픈 것은 맞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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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환자가 가진 생각이 내 가치관이나 철학과 다르다고 해서, 설령 환자가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함부로 비판하거나 섣불리 고치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최대한 많이 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존중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가 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말을 남겼다. 서로 덜 상처 주면서 살고 싶다면, 관계로 인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거리를 두어라.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은 서운해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얼마나 서로를 자유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경험해 보면 바로 깨닫게 될 것이다.
■ 당신과 나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
멀찍이 떨어져서 숲을 마라보면 숲에 나무가 빽빽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신기하게도 나무들이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라고 있는 것이다.
나무들이 너무 가깝게 붙어 있으면 햇볕을 더 받기 위해 경쟁하듯 위로만 자란다, 두 나무 모두 몸통이 가늘게 자라고 나중엔 약한 바람도 견디지 못해 쓰러지고 만다.
■ 고슴도치 딜레마
각자 올곧이 자라기 위해서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거리가 반드시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거리를 두자고 얘기하면 서운함을 넘어서서 ‘내가 귀찮은가?’ 혹은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건가?’ 라는 오해부터 하게 된다. 그래서 친밀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이야기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자칫하면 서로 깊은 상처를 남기는 문제가 되곤 한다.
문제는 우리가 친밀감과 거리감 사이에서 어느 한 쪽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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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 쪽은 멀어진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실망과 좌절은, 한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으려 하고 한 사람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데서 시작된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한 발짝 물러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침범당하고 싶지 않은 공간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퍼스널 스페이스(personal space)’라고 부른다.
그래서 너무 가까워서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너무 멀어서 외롭지 않은 거리를 확보하는 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이 딜레마에 대해 고슴도치 이야기를 빗대어 설명한다. 겨울에 고슴도치들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게 된다. 상처 입은 고슴도치들은 몸을 보호하기 위해 물러나지만 추위는 다시금 서로에게 다가가게 만든다. 이처럼 고슴도치들은 가까이 다가섰다가 물러나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 당신과 나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
* 에드워드 홀의 4가지 거리
A. 최적의 거리 : 0 ~ 46Cm 미만, 가족이나 연인처럼 촉감이나 후각 등의 감각이 중요 수단, 자기 방어를 위한 최적의 거리
B. 개인적 거리 : 46Cm ~ 1.2m, 접촉을 꺼리는 사람 관계의 거리, 서로의 팔길이 만큼, 친구나 그만큼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대화로 의사소통, 어느 정도의 격식 필요
C. 사회적 거리 : 1.2 ~ 3.6m, 지배의 한계를 넘어선 거리, 비개인적인 업 무, 사무적아고 공식적인 관계, 격식을 갖추는 예의를 요구
D. 공적인 거리 : 3.6 ~ 7.5m, 개인과 대중 사이의 거리, 교사와 학생, 연예 인과 청중 서이, 연설 강의 등
문화나 개인의 차이에 따라 그 거리가 조금씩 달라질 수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누군가를 처음만나서 '결혼하셨나?‘ ’아이는 몇이냐?‘ 등의 말로 인사를 묻는 경우가 있는데 서양문화권에서 볼 때 이는 개인의 사적 공간을 침범하는 아주 무례한 질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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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우리 사이에 비밀은 하나도 없어야 해”라고 우긴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거리를 무시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가족과 나 사이에,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 친구와 나 사이에, 회사 사람들과 나 사이에 필요한 최적의 거리는 과연 얼마일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간관계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관계에서 덜어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채워야 할 것은 무엇일가?
■ 거리를 둔다는 것, 그 마법에 대하여
너무 가까워서 상처 입지 않으며, 너무 멀어서 외롭다고 느끼지 않는 최적의 거리는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고슴도치처럼 한두 번에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가 상처를 입으면 아프기 때문에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게 된다. 다시금 시도했다가 또 다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처입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그 누구와도 가까워질 수 없고,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나 자신이 너무나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물방울처럼, 유리처럼 투명해지는 일이었다. 스스로 속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건 대단히 가슴이 떨린다. 왜냐하면 거기까지 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그제야 나는 용기란 한없이 떨리는 몸에서 나오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됐다.”
김연수의 <지지 않는 말>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그와 당신이 서 있다. 둘 사이에 흐르는 간격은 서로를 자유롭게 만들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러면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함께 있어도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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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당신과 나 사이를 힘들게 만드는 것들에 대하여
■ 당신은 더 이상 무력한 어린아이가 아니다
‘버림받다’의 뜻을 찾아보면 사전에 이렇게 나와 있다. ‘일방적으로 관계가 끊기어 배척당하다.’ 이 짧은 문장에 우리가 가장 싫어하고 끔찍해 하는 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일까. 누구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이 유독 큰 사람들은 종종 버림받는 비참한 상황을 예장하기 위해 어느 순간 상대방을 밀어내 버린다. 상대방이 나를 차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차서 버림받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불행을 피하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뒤에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자기 비하와 열등감이 숨어 있다.
그래서 버림받는 것이 너무 두려운 사람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짝사랑만 줄곧 한다. 괜히 고백했다가 거절당하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테스트 하는 경우도 잇는데 그 방식은 이렇다. 그들은 처음에 “날 위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하면서 가벼운 것을 부탁하다가 점점 더 어렵고 힘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의심해서 상대를 떠나기 만드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상대를 계속 바꿔 가며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는 유형도 있다. 버림받기 전에 한 여자를 떠나 다른 여자에게 가기를 반복하는 바람둥이가 이에 속한다.
■ 0~5세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사실 버림받음에 대한 두려움은 본증에 가깝다. 0~5세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내가 부모에게서 버려지지는 않을까?’하는 고민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데 떼쓰기와 울음도 그 노력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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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가진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은 보살피는 사람들의 몫이다. 생후 7~8개월경부터 아이는 엄마가 옆에 있어야만 안심하고 엄마와 조금이라도 떨어져 잇는 것을 못 견디는데 이것을 ‘분리불안’이라고 한다. 이 분리불안은 3세 까지 지속된다.
■ 거절을 잘 할수록 오히려 인간관계도 더 좋아진다
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기초적인 신뢰를 쌓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누르면서까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려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부모와의 관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조금만 실수하거나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싫어해서 떠나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남의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그래서 친구의 부탁이나 동료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많고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도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거절은 구체적인 제안이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거절을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신을 미워하고 다시는 보지 않을까 뵈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가족들과의 약속을 취소하면서까지 상대방의 부탁을 들어주려 애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리한 부탁은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맞다. 한 번의 거절로 끝나버릴 관계라면 내가 그 어떤 노력을 한다 해도 언젠가는 끝날 관계이기 때문이다. 대신 거절할 때는 상대방에게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상황을 잘 설명해야 한다. 안 된다는 말을 못 하겠다면 우선은 너무 성급하게 수락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자세한 건 스케줄을 보고 연락 드릴게요”등의 말을 해서 우선 시간을 벌라는 뜻이다.
그 어떤 것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다보면 상대방은 오히려 고마워하지 않게 된다. 심지어 뻔뻔하게 이번 부탁은 왜 안 들어주냐고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 남이 나를 함부로 대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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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에게 부당한 일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나 스스로를 존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부당한 요구로부터 나를 지키는 것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그만 불필요한 노력을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는데 더 집중하라는 말이다. 당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것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제 그 사랑을 당신 자신에게 주라.
■ 당신은 친한 친구에게 얼마나 빌려줄 수 있는가?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른 체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은 모두 효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돈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면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아야 한다.
급하게 돈을 꿔달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얼마나 빌려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전에, 빌려주고 나서 못 받아도 타격을 받지 않을 액수가 얼마인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애초에 친구를 위해 손해 봐도 괜찮은 정도의 돈만 빌려주라는 얘기다. 돈을 받지 못할 각오를 하고 줘야지 나중에 상황이 악화되어도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 화를 내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현대사회에서 심리학이 대중화되고 확산하면서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들도 같이 떠돌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감정 표현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다.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 화가 나면 화를 내라, 어떻게든 감정을 표현해라”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왜곡된 심리학 지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화나게 만드는 이에게 화를 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 것인 양 떠들어 댄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생은 한 번 뿐이니 오늘을 마음껏 즐기라고, 마음 가는 대로 살라고 부추긴다. 그러지 못하면 나중에 후회한다고 사람들에게 잔뜩 겁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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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가 당신과 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법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해서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화는 그 어떤 기대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통제 불가능한 반응을 가리킨다.
누구나 화가 날 수는 있다. 화는 기쁨이나 슬픔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므로 분노를 인격 수양이 덜 된 사람이나 느끼는 감정으로 여겨 수치스러워하거나 피할 이유는 없다. 모든 감정은 내 마음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그러므로 화가 나면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거지?’ 라며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화는 순식간에 나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그대로 폭발시켰다가는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까지 다치게 만들 뿐이다.
■ 왜 나는 사소한 일에도 자꾸만 화가 나는 걸까?
사람은 자신을 특별하고 귀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그런 자신의 이미지에 누군가 타격을 입히면 분노의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자기애적 분노’라고 한다. 타인이 나의 성취를 깎아 내리거나, 나를 나쁘게 말하거나,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을 때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라며 화를 내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기대했기 때문인데,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방식대로 행동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단지 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내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벌컥 화를 내며 상대방을 바꾸려고 해봐야 그는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만 나빠질 뿐이다. 게다가 그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무시당한다고 생각해서 상처를 입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화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인간관계도 좋다
상대방이 아무리 나를 화나게 만들었어도 내가 그에게 아무렇게나 화낼 권리는 없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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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처럼 시간이 걸리더라도 올바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은 그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관계를 잘 유지해 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삶을 당장 멈추어라
지금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름이 바뀐 국립정신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한 후배가 나를 보더니; 무척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자기가 맡은 환자의 상태가 매우 좋아졌단다. 잔뜩 칭찬을 기대하는 그녀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 올라간 비행기는 떨어지게 되어 있어.”
그러자 후배는 왜 그런 말을 하냐며 입을 삐죽였다. 그런데 웬걸, 얼마 뒤 환자의 증세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후배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괴로워했다
정신분석 치료에 입문한 의사들이 대부분 거쳐 가는 괴정이 하나 있다. 바로 ‘구원환상’에 빠지는 일이다. 구원환상이란 의사인 내가 열심히 치료하면 그만큼 환자가 좋아지고 결국에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의사 마음대로 환자를 바꿀 수는 없다. 의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환자가 낫고 싶다는 의지를 품고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다음부터 후배들이게도 말했다. 환자를 피그말리온처럼 생각해 마음대로 조각하려 하지 말라고.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고통을 최대한 경감시키는 데 있는 것이지, 환자를 개조 하는데 있지 않다고.
대인관계도 내가 사랑을 퍼준다고 해서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이도 내가 원하는 대로 크지 않을 수 있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사랑하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상대방이 움직여 주기를 바라며, 내 기대를 상대방이 모두 충족시켜 주기를 바라면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은연중에 상대방은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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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과 상관없이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적정한 기대는 기분 좋은 성취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만을 주어서 오히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내가 원하는 걸 사랑하는 사람도 원할 거라는 생각은 명백한 오산이다. 그러므로 암묵적으로라도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더불어 상대방이 내 기대에 못 미쳤을 때 실망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방을 원망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방법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대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먼저다. 자기가 원하는 삶이 아닌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삶은 불행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과거가 불행하다고 다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진료하다보면 내 앞의 환자가 마치 우주복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었던 그들은 조그만 상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위험한 현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주복을 입는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는 우주복 안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주복과 연결된 산소통은 과거의 시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현실에 있지만 과거의 시간을 마시면서 과거의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더 이상 상처입지 않기 위해 우주복을 입었지만 정작 상처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다.
어떤 환자들은 우주복을 입는 대신 과거의 기억을 지워 버린다. 감당하기엔 너무 크고 아픈 상처라서 그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아예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지운 채 “우리 집은 화목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억을 왜곡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거의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다. 불행했든 행복했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의 누군가가 당신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고 해서 현재의 당신이 꼭 불행하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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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불행했지만 그 과거를 잘 떠나보내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현재를 잘 가꾸는 사람도 많다. 과거가 불행하다고 다 불행한 현재를 사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원망하면서 문제의 모든 원인을 그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 환자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스스로 치유해 가던 어느 날 나에게 문득 그런 말을 했다. 자기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10분밖에 안 걸린다고. 예전에는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줄 알았단다. 어린 시절 사람들에게 놀림을 당했던 그는 밖에 나가면 또 놀림을 당할까봐 겁이 나서 길거리를 지나가는 것 자체를 무서워했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한 시간처럼 느낄 만큼 그 시간이 너무 끔찍했던 것이다. 과거의 상처는 어쩌면 그의 얘기처럼 10분일 수 있다. 그 말을 하면서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 타인이 함부로 당신을 평가할 권리를 주지 마라
“형이나 누나처럼 잘할 수는 없나?”
“내 친구 아들은 성격도 능력도 좋아서 회사에서 잘나간다던데, 너는 왜 그 모양이니?”
삶은 불공평하다. 애초에 좋은 조건에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잘난 사람’들이다. 나보다 공부도 운동도 잘 하는 형제나 자매, 말썽하나 안 부리고 능력도 뛰어난 엄마 친구 자식들 때문에 우리는 늘 열등생이 되고 만다. 이처럼 비교는 사람을 위축되고 우울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비교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비교가 몸에 배어 있어 아주 사소한 것까지도 타인과 경쟁하며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일희일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비교가 아주 당연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자존감 높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선 타인을 이기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들에게 비교란 그저 일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한 삶의 목표를 따라 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왜 비교에 목숨을 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비교하는 데 에너지를 쓰는 것이 자기 삶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에게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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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언제든 믿고 협력할 수 있는 상대다. 이겨야 하고 끝내 짓밟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비교에 목숨을 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교를 하면 할수록 내 삶은 우울하기 그지없다. 우월감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데 금세 나를 앞서가는 사람들이 등장해 나에게 온전히 쏟아져야 할 관심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그처럼 비교의 늪에 빠지면 어떻게든 그 관심을 다시 자기에게 돌리는 게 급선무가 되어 잘하는 것에만 매달리게 된다.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더 형편없다고 느끼게 된다.”
자기 삶에 만족하는 경험이 늘어날수록 비교로 인해 고통 받을 일이 적다.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남들보다 우위에 서는 데 있지 않다. 그저 인생을 더 느끼고, 더 즐기고, 행복해지면 그만이다.
■ 사람들이 도와달라는 말을 잘 못하는 이유
현대사회에서 가족은 일찌감치 각자 돈 버느라 뿔뿔이 흩어진 지 오래고, 직장은 우리를 보호하기는커녕 능력이 없으면 알아서 나가라고 눈치를 준다. 그래서 개인은 제각기 알아서 살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절망적인 각자 도생 의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다. 심지어 드라마나 영화에서조차 어느 배역이 ‘민폐 캐릭터’로 한 번 낙인찍히면 그 작품의 성공은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왜 의존을 나쁘다고 생각할까? 왜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사람을 건강하고 바람직한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남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자기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즉 도움을 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수치스러운 것이다. 도움을 구할 때 사람들이 종종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하는 데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다. 그리고 그들은 괜히 약점을 드러냈다가 나중에 짓밟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움을 줄지언정 도움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리더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은 모든 일을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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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일은 자신이
못하는 부분을 빨리 인정하고 그 부분을 처리해 줄 뛰어난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더가 모든 걸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그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모든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 독립과 고립을 혼동하지 마라
의존이 대한 두려움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게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되고 통제당하고 결국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을 못 견딘다. 그들은 대부분 자존감이 낮다.
자존감은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고,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의존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독립적이고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모든 일을 혼자 해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타인에게 기꺼이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고, 타인의 도움이 필요함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의존성을 내보여도 자신의 독립성을 훼손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독립과 고립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독립은 다른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관계를 모두 끊는 것은 독림이 아니라 고립일 뿐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혼자라고 느끼지만 실은 혼자가 아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당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분명 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겠지만 당신이 손을 내밀어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도움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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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선, 말없이 안아주는 것처럼 소박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 소박함을 주고받으며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Chapter 3 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 왜 그렇게 당신은 인정받고 싶어 하는가
누구에게나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그들의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본능으로, 어떤 목표를 세우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너무 일찍 배운다. 핵가족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아이들은 너무 일찍 부모 혹은 가족을 떠나 내던져진다.
한 살도 안 되어 베이비 시티나 양육기관에 맡겨질뿐더러 유치원 말고도 여러 학원을 다닌다. 즉 주양육자가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을 너무 일찍 경험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아이들은 엄마 아빠만큼이나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고 그들에게 잘보여야만 자신이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부모도 매일 묻는다. “오늘 선생님께 칭찬 받았니?”, “친구들이랑 잘 지냈고?”, “발표는 잘 했어?” 그러면 아이는 무의식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이 돋보여야 하고 비난받으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부모의 높은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아이는 자신이 실망만 일으키는 존재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낳는다.
■ 타인의 인정과 환호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그처럼 자존감이 낮은 상태로 자란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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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이 없기에 남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그려놓고 그 모습에 가까워지기 위해 죽을힘을 다 한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귿즐에게 중요한 건 오직 남들보다 더 뛰어나고 매력적이고 일도 잘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그들 안에는 어릴 적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숨어 있다. 그 아이는 사랑받고 싶어서 타인에게 매달리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거기에 억지로 끼워맞춘다. 마치 타인의 인정과 사랑 없이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1등뿐이다. 나머지 99명은 어떤 의미에서건 실패자 취급을 받는다.
문제는 타인의 인정과 환호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짓된 허상에 대롱대롱 매달려 불안하게 살다가 껍데기밖에 남지 않는다.
■ 내가 성형수술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이유
연전에 모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갔을 때의 일이다. 한 여자가 자기는 코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는데 수술을 하고 나서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성형외과 의사는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자신감을 되찾은 건 참 다행이지만 어쩌면 진짜 자신감을 얻을 기회를 놓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를 바라고, 그런 사랑을 통해 자존감을 강화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형수술을 해 버렸으니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기회를 영영 놓치고 만 것이다. 당장은 코에 대한 열등감이 사라져 좋을지 몰라도 그 열등감은 또 다른 부분으로 옮겨 갈 가능성이 높았다. 그럼 그때 또 다른 부분을 수술해야 할 것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것에만 매달리게 되면 남들이 원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게 되고, 결국은 나를 잃어버리게 된다. 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의 원하는 모습의 나만 껍데기처럼 남는 것이다. 더 끔찍한 사실은 나를 향해 쏟아지던 칭찬과 환호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나면 나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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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먼저 만들어 보길 권한다. 적어도 그동안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 그것은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할 때가 있다. 그 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사과하고 어떻게든 피해를 복구하려고 노력하는 게 옳다. 그런데 잘못에 대한 반성을 넘어서서 과도한 책임감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불이 나서 아이가 다쳤다고 해 보자. 그러면 일차적 책임은 분명 어린이집에 있는데 어떤 엄마들은 그곳에 아이를 보낸 자신을 탓한다.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했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다 너 때문이야. 너처럼 재수 없는 아이가 우리 집안에 들어오니까 이런 일도 터지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고 치자. 며느리는 사고와 전혀 관계가 없으므로 화를 내야 정상이다. 그런데 “다 제 잘못이에요” 라고 말하며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다면 그것은 과도한 책임감이다. 이처럼 직접 하지 않은 일이나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까지 죄책감을 느낀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것이다.
■ 왜 나는 모든 걸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죄책감은 힘든 사건을 겪고 나서 그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 낸 감정이다. 그런데 죄책감은 분노보다도 더 괴로운 감정이다.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은 죄책감에 대해 “자기 안에 3인칭 존재가 들어 있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잊을 만하면 또 다른 내가 등장해 자신이 얼마나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존재인지를 일깨워준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정신분석 치료 과정에서 죄책감으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은 환자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그들은 치료를 받아 자기가 좋아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기는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 번 죄책감의 노예가 되면 어느 순간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에 익숙해져서 오히려 자신을
괴롭혀야만 조금이나마 죄를 덜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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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하면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은 아무리 죄책감을 느낀다 한들 절대로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죄책감은 과거를 바꾸고자 하는 시도이며 만약 그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당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그런 당신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그 일은 당신 탓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된다.
■ 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바로 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누구나 그 상처 때문에 주저앉아 절망하며 세상을 탓하고 원망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상처를 툭툭 털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에 비해 부정적인 사건을 더 많이 경험한다.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생각마저 부정적인 생각으로 몰아간다. ‘사는 게 정말 힘들다. 나는 너무 나약해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지 않아. 내 인생은 엉망진창이야. 나는 내가 싫어. 그들은 결국엔 자신의 의미마저 부정하면서 자신을 전혀 쓸모없고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인생을 부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새로운 일에 맞닥뜨렸을 때 너무 빠르게 ‘나는 할 수 없어’ 쪽으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넘어져서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기회를 놓친다. 그들은 세상이 상처를 주기 때문에 벽을 쌓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마음의 감옥을 만든 것은 자신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적은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믿을 수가 없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그런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정말 완벽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걸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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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여도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족하고 못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들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매력적이라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다울 때 존엄하게 빛난다.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언가를 흉내 내고 비슷해지려고 시도하는 순간 타고난 광채를 상실한다. 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지도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무거운 짐의 차이가 개성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 "So, it's me"의 힘
무의식 속의 상처를 알고, 그 상처의 진원지를 찾아 기억을 재구성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면, 이제 스스로 “그래 그게 바로 나다. 그래 어쩔래! (So, it' me)"라고 선언할 수 있게 된다. 상처까지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담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과거에 끌려다니지 않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남들이 뭐라고 하든 휘둘리지 않게 된다.
치료가 끝난 환자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죠?”라고 묻자 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지금껏 당신의 주인은 과거였지만 이제부터는 당신이 주인이니까요. 가장 자신다운 선택을 하는 것, 그게 정답이에요.”
■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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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의 옷 입는 모습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것이 내 성공의 비결이었다. 나는 그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전설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말이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주인공이 되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기꺼이 질 수 있어야 하며, 자기가 내리는 모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짐의 무게에 놀라 도망 치는 사람은 절대 반짝 반짝 빛나는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면, 결국 내 인생을 책임질 사람이 나뿐이라면 나를 위한 선택을 함에 있어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도 내가 책임지면 그만이니까. 그것이 소중한 인생을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 무엇보다 자존감 회복이 시급한 이유
세일즈맨의 경우 당연히 외향적인 사람이 일을 잘할 거라는 통념과 달리, 업계 최고의 세일즈맨 중 80%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통계결과도 있다. 즉 내향적인 성격이 대인 관계를 맺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문제는 자존감이다
오히려 사람 사이에 문제가 되는 것은 자존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일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며, 지금 이대로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호감을 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늘 부정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 끊임없이 자기 능력을 의심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며, 단점이 드러나면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 할 거라고 생각해 늘 불안에 떤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안 좋은 일을 겪어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조금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을 자신과 연결지어 생각하며 자신을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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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세 가지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은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익히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의 상처가 깊은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의사로서 내가 배운 것은 기다림이었다.
1. 작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할 것
올해로 파킨슨병에 걸려 병원을 그만둔 지 5년째다. 병이 악화되어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 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힘들었을 때는 살아 있는 것이 내 목표였다. 다행히 작년에 전극 수술을 받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조금은 가능해졌다.
나는 우선 내게 온 두려움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 애썼다 그리고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운동이다. 그제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면 어제는 1킬로미터 걷고, 오늘은 1.5킬로미터를 걸으려고 애썼다.
2. 단점을 감추거나 극복하게 위해 너무 애쓰지 말 것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남들에게 약점을 보이면 무시당할 거라고 믿는다. 그들은 슬퍼도 울지 않으려고 애쓴다. 우는 모습을 보이는 순간 공격을 당하거나 버림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꽁꽁 숨긴 채 당당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 애쓴다. 그런데 그들은 단점을 감추는데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상대방을 만났을 때 그에게 관심을 보일 여력이 없다.
우리는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서 어수룩한 모습을 발견하면 ‘저 사람도 나랑 비슷하네’ 하며 인간적인 호감을 갖는다.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단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단점을 기꺼이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3. 남들에게 너그럽듯 자신에게도 조금만 더 너그러워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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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한계설정이 필요한 이유
1. 인간은 본래 이기적이고 나약하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라.
2. 이렇게 까지 했는데 남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기대를 버려라.
3. 선을 그을 때는 절데 흥분하지 말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할 것
■ 부당힌 비난에 우아하게 대처하는 법
살다보면 상습적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들은 열등감과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입만 열면 불평불만을 쏟아 내기 바쁘다. 경쟁심이 강한 그들은 자기가 가장 돋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자기보다 더 인정받는 사람을 보면 시기 질투하며 그의 성공을 깎아 내리지 못해 안달한다. 자기가 얼마나 애쓰는지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는다며 세상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 분풀이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물론 그보다 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호시탐탐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깔아뭉갤 기회만 엿보다가 모욕감과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말을 골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쏟아낸다.
다행히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잠시 이성을 잃었다가도 중심을 잡는다. 그리고는 내용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거부권을 행사한다. 부당한 비난에 휘둘려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말려드는 게 아니라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항의하기는커녕 상처입고 괴로워하면서 부당한 비난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더 이상 나를 평가할 자격이 없는 사람의 도발에 넘어가 상처 입고 괴로워하지 마라. 노골적으로 상처 주는 사람들이 나를 만만하게 보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 상황에서 나를 지킬 것은 오직 나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할 것은 대인관계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통제권은 당신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가까이하고 누구를 멀리할지, 누구와의 관계에 더 힘을 쏟을 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내가 가까워지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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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면 정말 아플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작정하고 상처를 준다 해도 그것은 내가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소중한 나를 지키기 위해 상처 유발자와의 관계를 단호하게 끊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다.
201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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