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5. 13:49ㆍ독서후기
2인조 (2)
-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
■ 이석원 산문
◎ 7월 공격보다는 수비
■ 일상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 안식년을 준 지도 꼭 반년이 흘렀다. 나는 얼마만큼이나 나아졌을까. 나는 이제 다시 정신과에 다니지 않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슴은 가끔씩 두근거린다.
이젠 전처럼 한 번에 오천 보쯤을 걸을 수도 있고, 차를 타고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단, 새 책을 위해 글을 쓰는 일만 빼고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다시 할 수 된 것이다. 이제 그것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완벽하게 전에 누리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과연 할 수 있을까? 떨리는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글쓰기를 도전한 것은 정확히 7월 1일. 올 해가 딱 반이 남은 날이었다.
■ 관계
7월의 첫날, 예전의 원고 쓰던 그 때의 그 루틴(정해놓은, 타성적인)대로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기 전까지, 나는 바로 어제도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일기가 아닌 원고를 썼다. 한 자 한자, 조금 몰입하면 바로 심장이 두근거려 긴장한 적도 있었지만 전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잘했다. 석원아 잘했어. 나는 또 내게 배운 대로 나를 칭찬하며, 이제는 내 삶의 태도로 체화한 것들을 일상 속에서 계속 적용해 나갔다.
다시 돌아온 일상에서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관계’였다. 글을 쓰는 동안 너무 오래 고립된 상태로 있지 않기 위해 마침 연락 온 친구들을 만났다가
나는 당황했다. 한동안 스트레스거리를 피해 홀로 지내다보니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잊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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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 친구들 중 한 놈이 신이 나서는 우리들을 끌고 신사동의 어느 바엘 갔지만, 그곳은 라이브 클럽도 심지어 재즈를 틀어주는 곳도 아니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의 행동이 황당해 어쩐지 기분이 조금 안 좋아져버렸지만 친구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상관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자기 얘기만 계속해서 늘어놓을 뿐이었다.
모르겠다. 나는 친구 사이라도 이렇게 제멋대로 굴거나, 종일 자기 말만 하려 들거나, 뭔가 가르치듯 말을 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불편함을 주는 친구에게 너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터놓기가 너무 어렵다. 그런 말을 해서 불편한 순간을 만드느니 나는 힘들어도 차라리 내가 병풍이 되어주는 쪽을 택해왔고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살아왔지만 …….
솔직하지 못하면 곪기 마련인 법.
■ 동경
관계는 내 평생의 숙제였지만 지금껏 낙제 이상의 점수를 받아본 적은 없었다. 나도 여느 한국 사람들처럼 많은 이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적어도 사람을 대하는 일에 이렇게 까지 애를 먹으며 살게 되지는 않길 바랐지만 어느 것도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사람에 대한 기대와 나름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던 어느 날, 발이 넓기로 유명한 어떤 이의 결혼식에 갔을 때의 일이다. 수많은 친구들과 지인에 둘러싸인 신랑의 모습을 보면서 그날따라 별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나로서는 생경한 경험이었다. 평소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거의 로망이다시피 했던 나였지 않은가.
나는 친구 한 명을 사귀어도 깊고 오래 탐색해가며 알아가야 하고, 누구를 만나려면 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며, 설령 그렇게 해서 친해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한들, 만난 지 두세 시간이 되면 왜 그런지 집에 가고 싶어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내 그런 모습에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저 막연하게 많은 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삶을 그토록 동경해 왔을까.
하여 그날도 여느 때처럼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 원치 않는 자리에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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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말들을 견뎌가며 새벽까지 힘겹게 자리를 지키던 어느 날, 그동안 한 번도 그런 내게 뭐라 한 적 없던 내 안의 누군가가 처음으로 내게 물었던 것이었으니…….
석원아, 너 지금 행복하니.
나는 주저 없이 아니라고 답했고, 그 뒤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일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덜어가면서, 나의 삶은 꼭 그만큼 편해졌다. 조금은 더 외로워졌을지언정.
■ 7월 14일
도무지 의례적인 말밖엔 하지 못하는 친구가 끊임없이 충고를 하려고 드는데, 그래도 친구를 돕겠다는 선의에서 비롯된 말들이라 뭐라 하지도 못하고, 나를 생각하는 녀석의 마음이 촌스럽지만 어여쁜 장미 같아서 미워할 수 없어 더 외로웠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참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게 누가 됐든.
■ 일의 지속성
다시 원고지를 메우는 지난한 일을 하다 보니 애써 외면하던 두려움이 슬슬 똬리를 튼다.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직장인들은 회사를 그만 다니게 되는 것이 그 수명의 종말이듯 창작자는 더 이상 세상이 자신이 만든 걸 선택해주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언제든 자기가 속한 분야에서 뒤처지면 낙오할 수 있는 것이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살아야 할 날은 더욱 늘어난 오늘날, 무슨 일을 하든 몇 살이든 간에, 다들 비슷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언제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해줄지, 언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될지 하는 쓸모에 관한 걱정, 혹은 불안들.
나는 누가 봐주지 않으면 그 행위에 가치를 두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무대에 서왔고 글 역시 대중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며 써왔다. 심지어 나는 일기조차 공개적으로 쓰는 사람인만큼, 사람들이 나의 글을 언제까지 읽어줄까 하는 문제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에 다름이 아니다. 먹고 사는 생존만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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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 내 영혼과 자아의 수명까지 달려있는 문제랄까. 따지고 보면 매번 발표하는 작품의 성적에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결국 그것이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바로 지난번 책은 그 지난번 책보다 판매고가 무려 4분의 1로 줄었다. 나는 순식간에 독자의 4분의 3을 잃어버린 그 책을 쓸 때 전작의 4분의 1만큼의 노력밖엔 하지 않았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두 책은 정확히 들인 노력에 반비례해 성적이 나왔으니까. 그래서 나는 노력은 이 문제에 있어서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 분산
나는 우선은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든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과 솜씨를 가졌을 때 경쟁력이라는 게 생기고 쓰임새도 발생하는 법이니까. 다만 나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한 가지 일에 올인을 하기보다 적어도 하나의 일을 더 만들어서 일종의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나를 실패해도 또 다른 기회를 가질 수 있고 그만큼 정신적인 타격을 덜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재작년 연말 네 번째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실패에 대한 대비는커녕 그걸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어진 결과 앞에 그렇게나 후유증이 컸다. 이게 아니면 안 됐기 때문에. 이 책이 실패하면 다른 어떤 출구도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그때 만약 내게 한 가지 일이 더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렇게 퇴로 없는 절벽으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사실 일의 지속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의 일을 더 가져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에는 더더욱 말이다.
언제든 세상이 나를 파이어(불, 화재)하기 전에 다른 보험을 들여놔야 한다. 항상, 패를 쥐는 쪽은 내가 될 수 있도록. 그래야 덜 불안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의 멘탈(정신세계)은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남보다 덜 타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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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패는 항상 내가 쥘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패는, 여러 주머니(일)에서 나온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로는 그렇다.
오직 최선을 다해본 사람만이 최선을 다해도 되지 않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안다.
■ 자발성
세상에 일을 하는 것이 영화나 야구 경기를 보는 것보다 즐거운 사람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똑같이 일을 하더라도 좀 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직을 하거나 뭔가를 알아보고 모색하는 사람들은 많다. 왜? 그래야 누가 등 떠밀어서, 돈 때문에 억지로 일을 하는 처지에서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기 때문에.
자발성은 왜 그토록 중요하며 일의 지속성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백화점엘 다녀왔어. 옷을 보다 왔지. 나는 옷을 고르고 내 마음에 드는 녀석을 장만하는 이 일이 너무 좋아,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아 나는 내가 옷이란 걸 얼마나 좋아하는 사람인지 거의 몇 십 년 동안을 잊고 살다가 얼마 전 그 사실을 기억해내곤 다시 그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그 일이 즐거워, 돈이 들어가야 하는 일이라는 게 문제긴 하지만 당장은 나도 좋아하고 권태 없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지난 육 개월 동안 난 새 책을 위한 원고는 전혀 쓸 수 없었지만 내 블로그, 내 인스타, 내 일기장엔 하루도 안 빼고 몇 개씩 글을 써왔어. 블로그는 십 년째, 공개 일기장은 어느새 이십 년이 넘었지. 지워진 것까지 합치면 그간 거의 몇 천개의 글을 썼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좋으니까.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니까. 난 그 모든 나의 개인적 지면에 각기 완전히 다른 톤의 글을 써.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 다른 사람이 쓴 건 줄 알만큼 말야. 근데 그걸 어떻게 다 하느냐면 좋아서 해. 난 이렇게도 쓰고 싶구 나의 또 다른 면도 보여주고 싶구 하여간에 쓰고 싶은 게 너무 많으니까.
계약 때문에 먹고 살아야 하니까 쓰는 글은 하기 싫은 숙제 같아 죽겠는데, 개발 새발이라도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건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하루 몇 개든 쓸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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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록 아직도 내가 좋아할 만한 일을 찾고 있지만 어쨌거나 나는 내 삶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이 마음이 도무지 식지 않는다는 게 좋아. 스스로 조금 대견한 기분이랄까. 세월에 구애받지 않고 지속해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는 게 말야.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고민과 생각들은 결국엔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 텐데 행복이란 뭘까,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걸까.
나는 항상 그걸 생각해.
어느 날 어느 방송사의 기사를 보며, 저기 어딘가에 권태 없이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하루.
◎ 8월 리매치(rematch)
■ 행복
1.
언젠가 금전적으로 행복한 날이었다. 낮에 통장에 약간의 돈이 들어왔다. 예상보다 많은 액수. 기분이 좋았다. 회사에다 언제쯤 들어오는가 물어보고 전화로 통장의 잔액을 몇 번이나 확인한 끝에 마침내 돈이 실제로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또 얼마간 버틸 수 있겠구나 하는 느긋함과 편안함. 그때그때 벌어 살아가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달라서 많은 돈과 권력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고 뒷주머니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탕하나에 함빡 웃음을 짓는 이도 있을 것이다. 행복은 이처럼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며 나이와 성별, 세대별로도 다른 모습을 띤다. 어릴 적의 행복이 기쁨과 설렘 재미 같은 것들이었다면 어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주로 감사함과 안도감이 아닐는지, 걱정, 불안, 고통이 없는 상태 너무 많은 것들을 바라지 않은 대가로 주어지는 마음의 평화 같은 것들.
2.
행복에 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첫 번째 사실은 그것이 어디 먼데 있는 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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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작은 모습으로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마 상당수의 ‘어른’들이 삶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이 점을 깨달아 왔을 것이다. 나는 내가 부에 대한
욕망이 상당해서 막연하게 큰돈을 원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던 언젠가 무슨 일 때문에 기천만원 단위의 돈이 처음 통장에 들어왔을 때, 생각만큼 기쁨이 오래가거나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마음이 크지 않았던 경험을 한 뒤로, 나는 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생각만큼 큰 재물을 바라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3.
세상의 통념과는 달리 아이들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그저 아직은 오염이 덜 된, 그러나 되기 쉬운 깨끗한 흰 도화지들일뿐.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저런 안 좋은 칠들이 더해지게 되는데, 어른이 되어 갖게 되는 많은 부정적인 감정의 실체를 따지고 보면, 알맹이 없이 공허한 것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외로울 이유가 없는데 외롭다거나, 나름대로 많은 것들을 했는데도 그저 막연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든가 하는 일들이 그렇다.
그래서 행복은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우니까. 안 그러면 별 이유도 없는 불행감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까.
행복해지기 위해, 다시 말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피해야 할 것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은 그것은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는 급행열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늘도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존재가 되고 싶기 때문에 혹은 다른 사람들만큼은 살고 싶기 때문에 열심히 그 일을 한다. 얘가 뜨면 다른 얘를 부러워하고 저 사람이 잘되면 또 그렇게 속이 아파 하면서,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되는 것이, 비교가 되는 처지에 놓이는 건 늘 나 한사람인데 비교의 대상이 되는 건 온 세상 잘 났다는 사람들은 다 해당이 되니, ‘나’는 열등한 존재에서 벗어날 날이 없다는 것이다.
■ 자의식
자의식에 대해서는 여러 사전적 개인적 정의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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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인식하는 여하한의 모든 정신적 행위’라고 규정한다. 그랬을 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큰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고, 이것을 자의식의 비대, 또는 자의식이 과잉되었다고들 흔히 표현한다.
자의식이 너무 크면 스스로의 삶에 필요 이상의 의미를 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된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저 평범한 동네 형일 뿐인데, 세상에 잘났다는 사람들은 전부 가져다 자신과 비교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겉으로 내어놓고 말하진 못해도 최소한 내 안에서 나는 그들과 동급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사람, 즉 그만큼 큰 존재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어찌 불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세상 모든 일에 자신을 중심으로 놓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비록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 해도, 어쨌든 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면 그것을 시련으로 인식하기 쉽죠. 이것은 그 자신으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계속 세상의 중심에 ‘나’만을 놓은 채 살아가게 되면, 좀 극단적 예이긴 하지만 사람을 죽이고도 자신의 죄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운명에 처한 이 가련한 나’밖엔 보이지 않게 될 수도 있죠.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언제든 스스로를 연민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강도가 커지고, 그러한 상태가 너무 잦아지는 것을 경계하지 않으면 결국엔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눈이 멀게 됩니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타인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사람이 됩니다. 스스로에 도취되어 자신의 행이나 불행을 과장하고, 늘 자신을 피해자로 여긴다거나, 무슨 일이 벌어져도 자신의 입장에서밖엔 생각하지 못하게 되죠.
자기연민, 자의식 과잉, 자기도취……. 이러한 것들은 누가 먼저인가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관이 깊고,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히 배제한 채로 살 수는 없어요. 자의식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게 과잉되거나 너무 부족하지 않도록 우린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어떨까요. 저는 저를 과대평가하기보단 대체로 비하하는 편이죠. 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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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처럼 자기비하나 혐오가 심한 것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입니다. 자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거나, 남들이 그렇게 평가할까 두려워 미리 선수를 치는 거거든요. 그래서 어느 쪽이든 늘 경계해야 해요. 자의식은 썩지 않는 나무처럼 언제나 자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가지를 뻗으니까요.
■ 끝으로
행복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을 해 보았지만 말했듯 행복이란 주관적인 것이니만큼 다들 자신만의 행복이 따로 있으며 그걸 획득하는 나름의 방식들도 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보태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떠나 행복이란, 어쩌면 행복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 집필
글을 쓸 때 나의 일상은 매우 단조롭다. 체력이 닿는 한 글을 쓰는 사이사이 머리가 방전 될 때마다 다른 일을 해 주는 게 전부다. 글, 청소, 글, 운동, 글 밥 짓기, 글, 산책…….
책을 쓴다는 건, 몸이 물에 반쯤 잠긴 채 망망대해에 둥둥 떠 있는 상태와도 같다. 수시로 잠겼다가 떠오르길 만 번 쯤 반복하면 한 권의 책이 완성된다. 오늘도 나는 한 번 깊게 가라앉아 이대로 숨이 멎는 줄 알았다가 저녁때 가까스로 떠올랐다. 이렇게 또 원고의 일부를 채운다. 오늘 하루, 아니 주말 내 헛수고를 하지 않은 셈이 되어 안도했다.
■ 평범성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말, 이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이 수백 수천이 있어도 그래서 내가 이 지구 위에서 숨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 중 그저 하나의 개체일 뿐이라 해도, 그런 평범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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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담담함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나의 화단이 그저 평범한 꽃들로 채워진다 해도, 남들 것만큼 화려하지 않아도,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라면 족한 마음.
그게 더 중요하다.
■ 1차전
8월 하순께, 오랫동안 속 썩이던 셔츠 하나를 수선하러 청담동의 잘 한다는 집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그런데 내가 핏에 워낙 민감해 ‘품을 넉넉하게 해 달라’는 주문을 확인차 한 번 더 얘기 했더니 실장이란 사람이 대뜸 짜증을 낸다. “아, 크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세상에 그 한마디가 그렇게 짜증이 난다는 말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무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얼굴이 다 벌게졌다. 뭔가 받은 만큼 되돌려주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 집에는 다시는 가지 않는 것뿐이니, 그게 그 사람한테 무슨 타격이 될까 생각하면 또 열을 받고. 원래 사고란, 일단 당하면 어떻게 해도 당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법.
무례는 그 사람이 범했는데 왜 내가 자책감에 시달려야 할까. 언제나 이런 식이다. 왜 그때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따지지 못했나. 이렇게 불안해하고 기분 상해할 걸 다시 가서라도 말을 제대로 하든가, 그때도 뭐라 하면 옷을 그냥 도로 갖고 오든가 했어야지.
왜 나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걸 두려워하는 걸까. 왜 항상 그냥 내가 바보 되고 손해보고 마는 쪽을 택하는 걸까. 왜 그게 편한 걸까.
모르겠다. 남들은 별거 아닌 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내게는 앞으로도 언제든 겪을 수 있고 다시 반복하기는 싫은 일들이라 매뉴얼까지 적어가며 달라지려 했던 건데. 다시는 이런 일당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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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인조
■ 말동무
점심때 미친 듯이 원고 두 꼭지를 써서 회사에 넘긴 후 방전이 될 것 같아 더 붙들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무조건 씻고 나갔다. 전 같았으면 지쳐 탈진할 때까지 매달렸겠지만 이젠 그렇게 하다간 어떤 지경이 되는지 얼마 전에 몸소 체험한 바 있지 않은가. 서점을 갈까 미술관을 갈까 결정을 못하다 흘러흘러 간 곳은 성북동의 어느 돈가스집. 그곳에서 홀로 돈가스 장식을 먹다보니 예전에 함께 왔던 이가 생각났다. 궁상이래도 좋고 미련이라 해도 좋고 누가 뭐래든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있을 때까지 하염없이 추억한다. 그게 내가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방식이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정두언 의원의 사망 소식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운전을 하며 정치시사 라디오 프로를 들을 때다. 그는 한동안 내 저녁 출타길이나 귀갓길을 자주 책임져 주던 라디오 속의 내 말동무였다. 비록 이번에도 나는 듣기만 하는 처지였지만.
사람들은 흔히 누가 자살을 하면 그가 바로 엊저녁에 자기랑 무엇을 했느니 하면서 정황만으로 그 죽음이 자살이 아님을 추측하려 하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의 사전 행적은 그의 마지막 행위와 그리 명료한 인과관계를 갖지 않는다. 아무튼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그 후로 나의 삶은 한 뼘쯤 더 외로워졌다.
■ 팔순
“엄마 어떠니 이 옷 괜찮지?”
어머니의 나이는 올해로 여든, 부모의 나이가 팔순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살아계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본인의 총기가 흐려지지 않은 채로 지내실 수 있는지가 또한 중요한 게 아닐까 한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꼭 치매가 아니더라도 엄마가 어제 같이 본 드라마의 내용을 기억 못할 때.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에 더럭 겁이 나고 슬퍼지기도 하는 순간들, 결국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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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 날들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식의 삶이기에, 팔십이 넘은 부모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나의, 아니 모든 자식들의 마지막 화양연화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알던 엄마 아빠가 아니라고 느껴지는 날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고 싶다.
*화양연화 : 무엇을 바라거나 이루겠다고 속으로 품고 있는 마음
■ 시계
친구가 한동안 차지 않던 낯익은 시계를 차고 나왔길래 그냥 다시 차는가보다, 하고 있다가 가만히 보니 시계가 영 가지를 않는 거라. 그래, “야, 근데 너 그 시계 가는 거 맞어?” 하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말하길, 낡은 시계줄만 교체하고 멈춰버린 시계는 다시 살리지 않았단다. 그래서 왜 그랬냐고 하니.
예전에 이 시계를 찰 때 보냈던 시간들은 이제 멈추어서 영원히 그 순간에 머물러 있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은 가지 않는 게 맞다는 친구의 말.
나이가 큰 걸로 다섯 장이 다 되도록 살아보니 예전에는 사랑이니 연애라는 게 어차피 헤어지기 때문에 무의미한 거라고 여기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헤어졌다고 해서 끝이 나는 것도 아니고 그때 보낸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리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나 할까.
누군가를 소중히 여기던 기억은 오래도록 내 자신마저도 소중하게 만든다.
그러니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귀한 일인지. 늙고 쭈글러터졌어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사랑하고픈 이유다.
■ 21일 후회
나는 일을 할 때 받는 스트레스를 오로지 먹는 것으로 푼다. 원래 식탐이 많기도 하거니와 별다른 취미도 없어 그것 말고는 달리 해소할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젊었을 적엔 요즘 유튜브에서 먹방하는 친구들처럼 백화점에 가서 짜장면 짬뽕 탕수육 잡채밥을 한꺼번에 시켜놓고는 혼자서 그걸 다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또 빵을 대여섯 개씩 사 먹었고, 그렇게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그 힘으로 또 글을 썼다.
그러나 요즘 나는 글은 쓰되 그렇게까지 먹을 수가 없다. 아니 먹으려면 먹을 수야 있지만 이제는 고지혈증이나 당뇨 등 각종 성인병에 대한 위험 때문에 시쳇말로 목숨을 걸고 먹어야한다 그래서 이제는 가급적 외식을 줄이고 그날 하루를 견딘 데 대한 포상으로 빵 한두 쪽이나 음료수 한 병, 혹은 아이스크림 한 개 정도 먹는다.
그런데 오늘 신문을 보니 하루에 단 음료 200밀리리터를 매일 한 병씩 마시는 사람은 암에 걸릴 확률이 30프로 더 높다고 하던데 딱 나였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으니까.
내 나이쯤 되면 의사로부터 언젠간, 살고 싶으면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밀가루와 설탕을 끊으면 살 이유가 없어지는데, 살기 위해서 그것들을 먹으면 안 된다니 이 딜레마를 어쩌면 좋을까.
■ 24일 2인조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나를 구해주길 기다리기보다 나 자신과 둘이서, 다시 말해 스스로 삶을 헤쳐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는, 우리는 날 때부터 2인조가 아닌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결코 잃을 수 없는 내 편이 하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는다.
◎ 10월 올바름
■ 다시 고민
올 초 스스로 만든 무균실에서의 생활을 접고 조심스레 시작했던 새 생활의 기분도 어느덧 무뎌지면서, 다시 많은 것들이 무너져 버렸다. 운동을 거르는 날도 많고 내 손으로 모든 살림을 직접 하겠다던 결심도 흐려져 갔다. 지난 육 개월간 준비하고 실천했던 매뉴얼의 많은 부분들이 생활의 고단함 속에서 어느 새 지켜지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다 다시 상태가 악화되어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쩌지, 그저 정신없이 원고 쓰는 일에만 매달리다 어느 날 너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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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 정신을 차려보니, 또다시 깨어있는 모든 시간들이 내가 원고를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면 오히려 글이 더 안 나오는데. 이러니까 지치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는데.
오랜만에 평소 들르던 매장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멋지고 예쁜 옷들 틈에서 어떤 녀석을 데려갈까 고민하는 이 일이, 여전히 내게 이렇게 설렘과 활력을 준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기뻐하다 매장을 나섰다. 그런데…….
저만치 매장 앞 조금 비켜선 후미진 곳에서 누군가 전단지 한 장씩을 나눠주고 있었다. 나도 그 앞으로 지나가야 했으므로 그가 내 손에 거의 쥐어주다시피 한 그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한 장의 티셔츠가 세상을 얼마나 오염시키는지 알고 있습니까?’ 흔히 환경운동가들의 홍보 전단지구나 싶어 나는 별 감흥 없이 그걸 손에 쥔 채 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뭐 오염이야 시키겠지. 그런데 그런 거 다 신경쓰면서 어떻게 세상을 살어. 그러나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해서는 차에 쓰레기를 두기 싫어 가지고 내린 전단지를 무심히 들여다보던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 나만 모르던 진실
가령 이런 것이다. 내가 좋아서 산 한 장의 티셔츠를 만드는 데 무려 2,700리터나 되는 물이 소요된다면 어떨까, 여러 벌도 아니고 한 벌, 그것도 평범한 반팔티 한 장을 만드는 데 드는 물이 사람 한 명이 이년 반 동안 마시는 물의 양과 같다면, 그 하얀 도화지 같은 티 위에 그림이나 색깔을 입히기 위해 엄청난 양의 고독성 물이 만들어져야 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5조 리터의 물이 직물 엽색에 사용된다든가, 그 대부분이 폐수로 강과 농지에 버려져 이 지구의 물과 땅을 심대히 오염시키고 있다든가 하는 내용들. 물론 그것들은 언젠가 내가 먹고 씻을 물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이런 정보들은 사실 익숙한 것이긴 하다. 우리가 먹는 그 많은 고기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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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잔인하게 도륙당하고 있는지, 그 많은 소와 돼지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환경과 기후의 오염이 이뤄지는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며 오늘도 맛있게 고기를 먹는다. 그런 문제들을 일일이 신경썼다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도 맞을 테니까.
■ 난감
그날 그 한 장의 전단지 때문에 나는 매우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은 원래부터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던 터였고, 그래서 나름대로 일회용품을 쓰는 일을 자제하기도 하고 그랬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살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옷에 관한 문제다. 일회용품처럼 쓰고 안 쓰고 선택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아, 평생 처음으로 좋아하는 걸 찾았는데 그게 지구를 이렇게나 망가뜨리는 것이었다니,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지구의 파괴자였다는 사실에 좌절했고 무슨 옷 한 벌 사는데도 이렇게 까지 고민을 해야 하는 건지, 그저 이 모든 게 한 편의 코미디 같았다.
■ 결론
며칠간의 고민 끝에 나는 우선 취미나 기분 전환의 용도로 옷을 사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나도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나의 기분전환을 위 해 오염된 물 몇천 톤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라는 한 개인의 노력이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작은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개개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파서 그랬다지만 이제는 나의 편리함과 욕망을 위해 세상을 오염시키는 물건들을 사고 쓰고 입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부딪치고 선택할 수밖엔 없다. 결국엔 내가, 우리가 여전히 살아가야 할 세상이기 때문에.
생각해보면 난 올해 알았든 몰랐든 아픈 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렇게 옷을 사댐으로써 결국 세상에 해를 끼친 셈이고 작년엔 또 걷지를 못한다는 이유로 일회용품 들을 마구 써댔으니 말로는 환경오염 문제를 걱정한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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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실제로는 늘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그래서 세상을 병들게 하는데 지속해서 기여해 온 것이었다.
■ 기회(opportunity)
그곳의 이름과 일의 내용을 이곳에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처음 이 일을 제안 받았을 때 어떠한 형태로든 관련한 내용을 밖으로 외부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계약 조항에 사인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상을 해보자. 어느 날 애플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신제품을 발매하는데 그 제품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문구를 써 줄 것을 부탁받는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48시간, 그들이 내게 원했던 것 역시 비슷한 일이었고 나는 그 시간 동안 스스로 집에 감금한 채 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때마침 나는 책을 쓰다 전과 같은 압박감과 권태에 시달리던 중이었고, 재충전을 위해 옷을 사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그때, 거짓말처럼 날아온 메일 한 통은 내 머릿속을 뒤흔들어놓았다.
첫 번째 제안을 받은 후 나는 약속대로 48시간 내로 결과물을 완성해서 전달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나의 결과물을 본 회사는 내게 또 다른 프로젝트의 일을 하나 더 맡겼다.
모르겠다. 지난 한 십 년 동안 내가 뭔가에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있었던가? 세계적으로 잘나간다는 회사에서 내게 그렇게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일을 맡겼다는 사실에 나는 완전히 들떠버리고 말았다.
■ 다시 실패 앞에 서다
실패란 무엇일까.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매번 그토록 가슴을 쓰리게 하는 그 일은. 막 회사로부터 결과를 통보 받았을 때, 사실결과 자체보다도 이번 일로 또 얼마나 큰 후유증에 시달릴지 그게 더 걱정이 됐다. 또 작년 같은 악몽이 되풀이 되면 어쩌나 싶어서.
나는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 아프지만 않으면.
매뉴얼에 따라, 나는 우선 더 이상 이 일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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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고, 안 될 일, 지나간 일엔 연연하지 않는다고 연기도 해보았다. 정말 그런 쿨한 사람인 것처럼 나를 속이다보면 정말 그런 상태가 될 때도 있으니까.
그날 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펼쳐본 매뉴얼엔 또 이란 조언이 적혀 있었다.
“명심하라.
거절이란(실패란) 살아 있는 한 계속되고
진짜로 포기란 걸 해버릴 때 완성이 된다는 걸.”다 내가 쓴 말이었다.
■ 선물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시점이 하도 절묘해서 이건 하느님이 내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홀로 집에 틀어박혀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 일이 아닌. 짧게 집중해서 결과도 바로 나오는 그런 일을 하나 쯤 더 할 수 있길 원했으니까. 그러던 차에 딱 일주일 미친 듯이 집중한 뒤 결과도 한 달 이내에 나오는 이런 일은 내가 바라던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난 드디어 내게도 원하는 걸 주시는구나, 했다. 누가? 하느님이.
부끄럽지만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자의식 과잉 상태에 놓일 때가 있다.
또 한 번의 실패 앞에서, 나의 노력은 효력을 발휘했을까. 모르겠다. 그 뒤로 내 마음은 한 이틀, 실연을 당한 것처럼 쓰리다가 빠르게 진정됐다. 지금도 나는 그때 내가 생각보다 수월하게 그 상황을 넘긴 것이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매뉴얼에 따라 마음을 먹고 상황을 받아들인 덕분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상관없다. 난 아프지만 않으면 되니까. 정말 아프지 않은 것과 아프지 않다고 착각하는 것은 내게 크게 다르지 않은 거니까.
◎ 보통의 존재
■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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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중순께, 나는 모종의 긴 고민 끝에 지난 7월 1일부터 시작한 새 책에 들어갈 원고를 모두 버리기로 했다. 원래는 올해 안에 나왔어야 할 책의 원고를 완성 직전에 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작가는 책을 내 주겠다고 약속하고 출판사로부터 미리 선 인세를 받는다. 물론 다 빚이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 주위에 단 십 원도 빚을 지곤 못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행히? 난 돈에 관해 융통성이 있는 편이라 (다르게 말하면 돈 개념이 없어서) 설사 갚아야 할 돈이라도 당장 통장에 버틸 돈이 있으면 적어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
그렇게 미래를 가불해 마련한 지금의 이 안정적인 시간들도 오늘 원고를 버림으로써 더 이상 누리기는 어려운 지경이 되었으니. 언제 또 새로운 책을 구상해 거기에 들어갈 원고를 쓸까.
어쨌거나 오랜만에 맞이한 휴식의 시간, 밤중이라 어딜 가기도 뭣해 평소 하던 대로 집 앞 개천가에 조성되어 잇는 보행자 전용 산책로를 찾았다.
■ 우측통행
내가 걷는 집 앞 산책로에는 100미터 간격으로 사람 몸만큼이나 커다랗게 우. 측. 통. 행. 이라는 네 글자가 하얀색 페인트로 바닥에 프린팅 되어 있다. 시력이 어지간히 안 좋은 사람도 몰라볼 수 없을 만큼 겁나 크게 말이다. 워낙에 제도에 순응적인 나는 처음 그 문구를 보았을 때부터 지금껏 단 한 번 예외 없이 오른쪽에 붙어서 걷지 않은 적이 없다.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것이 서로가 피해를 주고받지 않으면서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에는 그런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많은가보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크고 선명하게 적혀있는 문구를 무시한 채 굳이 내 쪽으로 돌진하듯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을 이리 자주 마주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보통 한 시간 쯤 걷다보면 마주 오는 세 명 중에 한두 명은 그렇다고 봐야 하는 데, 나는 그들과 만나는 일이 조금 힘들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
시간이 지나서 얘기지만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를 맞이했을 때 무슨 감별사도 아니면서 거리에서 누가 마스크를 쓰고 쓰지 않았는지를 살피기 위해 분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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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돌리는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 역시 남들의 그런 행위자체보다 저들은 어째서 위험한 시기에 세상이 정해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것인지, 왜 남들에게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주고 타인의 감염 위험성을 높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인지를 이해하는 일이 내겐 더 어려웠다.
■ 산책
사실 산책이라는 게 가끔 하는 사람들이나 어떤 정신적인 환기가 되지 나처럼 매일 하루 두 번씩 규칙적으로 하게 되면 그것도 일종의 기계적인 행위가 되어버리기 쉽다. 매번 같은 동작이나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도 그간 쓰던 원고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굳이 다 버린 후, 약간의 불안감과 홀가분함을 가지고 나선 집 앞 산책길에서 나는 평소와 같은 생각들을 되풀이 했다.
나는 이 사회의 충실하고 바른 시민이라는 자부심과 외로움을 느끼면서 – 홀로 그것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에 – 익숙한 코스를 걸었다. 그러고는 한 시간 가량의 산책을 마치고 집우로 돌아오는데…… 희한하게 그날만은 전혀 새로운 생각 하나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주 철석같이 제도와 규칙에 완벽하고도 완전하게 순응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그래서 나는 그 규칙의 파괴자들을 미워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나조차 세상이 정해준 어떤 규칙 하나 만큼은 도무지 지킬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그것은 내게 놀라움이었고, 그 놀라움이 그렇게 빨리 새 글의 돌파구가 될 줄은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 生卽死 死卽生
이런 것이 바로 버리고자 했더니 얻어진 경우인 것일까. 나는 그 놀라운 발견을 행여 잊을세라 얼른 집으로 올라가 컴퓨터 앞에 앉아 홀린 듯 글로 풀어내었다.
짐작하겠지만 글 쓰는 이에게 이런 순간은 참으로 오랫동안 고기떼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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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던 빈 손의 어부에게 찾아온 수만 마리 갈치떼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이 ‘만선’의 순간을 놓칠 수가 없어 밤이 하얗게 새도록 키보드와 씨름한 뒤, 다음날 아침 동이 트자마자 담당 편집자에게 내가 낚은 그것을 메일로 보냈다.
그러자 곧바로 날아온 답장에서 언제나 내가 쓴 글의 최초의 독자인 그분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 작가님, 죄송하지만 이상하게 글이 살아있어요.
대체, 그동안엔 얼마나 내 쥐어짠 글들이 생동감 없이 죽어 있었으면 글이 살아 있는데 이상하게, 그리고 죄송하게 라는 토를 달까. 어쨌거나 나는 최근 그분에게 건넨 원고 중 가장 재미있고 살아 있다는 반응에 용기백배, 그렇게 다 포기하고 떠난 산책길 끝에 축복처럼 원하던 진짜 글들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맞춤법과 표기법
나의 책에는 예외 없이 다음과 같은 문구가 실린다.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의 스타일을 따릅니다.”
나는 이십대 초반부터 각종 매체에 글을 써왔고 그동안 남이 맡긴 글을 몇 푼돈에 써서 넘길 때에는 그들이 세상의 약속이자 규칙이 그렇다는 미명하에 ‘바래’를 ‘바라’라는 우스꽝스러운 말로 바꾸어 놓아도 그러려니 했었다. 허나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책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말하듯 글을 쓰는 사람인데 이 땅에서 나고 자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며 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들어본 적도 내 입으로 뱉어본 적도 없는 말들을 단지 규칙이 그렇기 때문에 따라야 한다는 말에 선뜻 수긍할 수가 없었다.
■ 규칙
내가 우측통행이라는 규칙에 목을 매듯 내 주위에서도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사적으로 주고받는 문자메시지에서조차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때로 상대가 틀릴 경우 교정을 해주려 들기도 할 만큼 그것이 틀리게 되어 있는 상황을 정말이지 못 견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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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알고 있다. 자신들이 완벽하게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다고 믿는 그들조차 틀릴 때가 있다는 걸.
다음은 어느 신문에 실린* 내용으로, 본인조차 띄어쓰기는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는 전 국립국어원장의 말이다.
“‘불어(佛語)’는 붙여 쓰는 것이 맞고, ‘프랑스 어’는 띄어 쓰는 것이 맞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 한 단어가 됐다가 두 단어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말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져 옵니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현행 띄어쓰기 규정이 국어를 망친다고 주장하는 그분은 무리한 현행 사이시옷(ㅅ) 규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 ‘우리말 + 한자어’로 구성된 단어는 중간에 사이시옷을 넣게 돼있다.
- ‘등교길’ ‘차값’은 틀리고 ‘등굣길’ ‘찻값’이 맞다. 그런데 실제로는 ‘등교낄’ ‘차깝’으로 읽힌다.
* 2008년 국립국어원의 수학용어 조사결과 인터넷에서 ‘최대값’이라고 잘못 쓴 사례는 ‘최댓값’이라고 맞게 쓴 사례의 51.2배였다.
물론 이러한 예들은 내가 옳고 규칙을 따르는 자들이 그르다고 말하고 싶어 거론한 것은 아니다. 규칙은 일단 지키는 행위 그 자체로 미덕이 되어야 한다. 다만 모든 규칙은 완전하지 않으며 점점 보완 발전 되어야 하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불합리함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러한 고집은 정말 우측통행 규칙을 어기는 산책자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일일까? 어쩌면 내가 ‘바래’를 ‘바라’라고 쓰지 않고 ‘바래’라고 썼기 때문에 어떤 독자들은 최소한의 교정 교열조차하지 않았다며 내 책의 편집자나 출판사를 비난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나의 선택이 모든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는 없으며 그들에겐 내가 산책로의 규칙 파괴자들처럼 보이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글의 리듬과 어감을 생명처럼 여기는 나로서는, 여지껏과 여태껏의 차이란 너무나도 크기에 내가 선택한 어휘가 설령 표준어가 아니라 해도, 그 사실이 크게 문제되지 않을 때가 여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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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희한한 것은, 책을 사고 읽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줄어간다는데,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수는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는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블로그나 기타 다른 경로를 통해 글쓰기에 관해 물어 오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나 많은 걸보면 말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인 것인데 나는 몇 가지 이유로 그런 질문에는 잘 답을 하지 않는다.
■ 수정
수정, 고치고 다시 하면서 더 나은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
내가 그것은 나의 글, 아니 삶의 방식으로까지 삼게 된 것은 십오 년 전 와인을 팔 때의 경험 덕분이다. 창작자는 보통 남의 돈으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업의 기간이나 여건에 어떻게든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돈으로 차린 내 가게가 생기면서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더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되자 하고 싶은 것을 거의 무한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밤마다 손님들이 앉는 의자와 테이블을 다시 배치하고 일 년 내내 메뉴를 다듬고, 가게의 온갖 세세한 부분을 고치면서 보다 완벽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한 친구가 말했다. 너가 너를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면, 손님들도 편할 수 없을 거라고. 그러니까 이제 고만 좀하라고.
나는 묘하게 그럴듯하면서도 한편으론 잘 동의가 되지 않던 그 말을 곱씹다가 결국 하던 시도들을 중단하지 않았고 그런 집요한 과정을 알 리 없는 손님들의 입에서 점점 공간이 편하다.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 늘어가는 걸 보면서 알게 되었다. 남이 뭐라든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끝까지 가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게 실제 현실에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이 후 글을 쓰거나 또 다른 어떤 일을 하든 간에 그것은 거의 평생토록 나의 방식이 되었다. 누가 뭐라든 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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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 2
나는 세상의 모든 글이 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쓰는 글은 가능한 읽기에 쉽고 이해하기에 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도 없이 다시 고쳐쓰는 고단한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고단한 만큼 독자들은 편하기 때문에. 만약 내가 가게를 할 때 ‘주인이 편해야 손님들도 편하기 마련’이라는 친구의 그럴싸한 말에 넘어 갔더라면 아마 쓰는 나는 수월하되 읽는 사람은 무슨 말인지를 몰라 헤매는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물론 단지 쉬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만 수정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이 되고 있는지, 더 나은 표현, 더 나은 문장이 될 수는 없는지, 글에 다른 문제는 없는지 등을 살피며 가능한 정확하고 완벽한 문장이, 또 글이 될 수 있도록 반복해서 고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수정이란 과정이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심지어 그 작업은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도 계속된다.
■ 수정 3
가령 다른 책이지만 동일한 맥락의 문제를 갖고 있던 책 <보통의 존재>에서 어린 나는 아버지의 잘나가는 후배 옆에 서 있던 그의 애인을 전리품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성을 남성의 어떤 성취의 일부로 여기는 명백히 잘못된 표현이었다.
지금껏 문제인줄 모르고 지나쳐왔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문제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애초에 문제였으나 이제야 알아채고 공론화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책을 낸지 칠 년 만에 내 글에서 여성을 보고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 하나를 찍었다 빼는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어쩌면 경우에 따라서는 책을 통째로 다시 써도 모자랄 거대한 변화였다. 그때부터 나는 앞으로 쓰게 될 글은 물론이고 지금껏 써 왔던 글 역시 전면적인 수정을 도모하게 되었으니, 이러나저러나 수정이란 행위는 내게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작업인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에는 주로 글을 위한 수정, 다시 말해 어떤 개인적 수정에 머무르던 것이 점차 사회적 수정으로 까지 확대되어 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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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가 자신을 소비해주는 대중의 의견을 듣고, 작품에 반영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요는 진심으로 시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 뿐.
- 살아 있는 한 수정은 계속된다. 글뿐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작가로서도 -
◎ 12월 1부 어른이 되는 꿈
■ D –31
사람이 평생 누리는 관계란 것도 생로병사와 같은 일종의 흐름이 있다. 사람이 사람 때문에 외로울 때도 있고, 유난히 행복한 시기도 따로 있는 것이다. 내게는 삼십대 초반이 관계의 절정이었다. 그때는 늘 만날 사람들이 있어서 무리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면 느껴지는 설렘 같은 감정들을 넘치도록 맛보며 살았다. 돌이켜보면 사람 때문에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행복감을 누리던 시절이 아니었나 한다. 모든 좋았던 것들이 그랬듯 나는 그 시절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들과 늙어서까지 함께 할 줄만 알았던 거다. 그러면 나이 먹는 일쯤 그렇게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러다 서른세 살에, 그 계획이자 소망의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던 인물이 죽었다. 가장 친했던 사람이자 내 인간관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뜨고 말았던 거다. 나는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져 당황했고, 이후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의 인간관계의 그래프는 다시 오를 일이 없었다.
속절없는 하강 곡선.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이들이 책을 언급해주면 아무래도 선전이 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인데, 나도 할 수만 있다면 응하고 싶었지만 백 명은 고사하고 글쎄 한 일고여덟 명? 그게 내가 아는 그나마 좀 나간다는 사람들의 전부였고. 지금은 그들과 가늘게 이어지던 인연의 끈도 거의 끊어졌다.
■ 어른
미혼의 중년 남자들이 TV에 나와서는 철없는 기행을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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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일이 나는 조금 힘들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나이를 먹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는 어른 아이가 아니라, 자기가 먹은 나이답게 행동하고 사고하는 진짜 어른이 아닐까 싶어서다.
나는 삶에는 큰 미련이나 욕심이 없었지만 어른이 되는 일에는 일찍부터 관심이 많았다. 나는 애송이처럼 성급하게 인생의 결론을 내리고, 자신이 본 것이 전부인양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 나의 미성숙을 참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얼마나 어른일까.
아버지는 어릴 적 나의 열등감의 원천이었다. 아버지는 나와 달리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셨고 그 힘으로 집안 대소사의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하셨다. 명절이면 과일이며 갈비 세트 같은 선물 상자들이 거실을 빈틈없이 메웠다. 그게 내가 보고 자라며 이해했던 어른의 삶이요, 나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중년 남성으로서 이 사회의 번듯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그러나 내가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어른의 나이가 되었을 때, 아버지가 갖고 있었던 그 어른의 조건 중에서 내가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 어른 2
십 년 전쯤, 아버지가 퇴임식을 치르시고 집에 들어앉으신지 얼마 뒤, 나는 거실에서 손에 작은 휴지 조각을 든 채 그걸 엄마가 받아서 대신 버려줄 때까지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존하며 누군가 곁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은 결코 내가 생각하는 성숙하고 독립적인 어른이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란, 정신적인 부분에서도 홀로 스스로의 삶을 문제없이 꾸려갈 수 있어야 했다. 남에게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의 정신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 역시 누가 옆에 있고 없고 와는 상관이 없는 문제이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든 사람은 결국엔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을뿐더러, 그 시간을 잘 보낼 줄 아는 사람의 삶의 만족도가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우보다 더욱 높기 때문이다.
■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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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잘 지낸다는 건 단순히 짝이 있고 없고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겉치레와 낭비를 걷어내고 꼭 필요한 사람들과만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는 뜻도 된다. 그게 가능하려면 나 같은 사람은 우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했다. 친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는 일이 주저되거나 혼자 다니는 일이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했다고 할까. 그러기 위해서 나는 계속 나와 대화하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무슨 일을 하든 늘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내가 아닌 남이 보기에 어떨까 하는 것이다. 정말 놀랍게도 그런 생각들이 삶의 전반을 지배해왔다. 이해가는 측면도 있다. 남의 눈에 들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생활을 평생 해 왔으니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의 영역이고, 내 사적 시간은 엄연히 구분되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되지 않았다.
일과 내가 동일시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한마디로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구분할 줄 아는 것.
그 역시 내가 고대하던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 자유
나는 열 한 식구 대가족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태어나 집안대소사 때면 친척 지인들이 오백 명 천 명쯤은 우습게 모이는 집에서 자랐다. 어려서 항상 그런 장면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늘 마음의 짐처럼 내가 어른이 되어 집안의 큰 일을 치러야 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달고 살았다. 그것은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 갔음은 물론이다.
그랬던 내가, 세상에서 별로 잘나가지 않아 집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변변한 곳에서 화환 하나 내 앞으로 오지 않아도, 내 친구 지인들이 떼거지로 몰려오지 않아도, 뭐 어쩌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 더 이상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아 설령 사람이 적게 와도 뭐 그럼 어때, 그냥 형편대로 사는 거지 하며 허무할 정도로 편한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나는 그때 느꼈던 바다와도 같은 자유로운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거기까지 오는 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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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은 어디에서 올까.
인생의 궁극의 편안함은.
나는 그게 솔직할 수 있는 자유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부터.
나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로부터.
◎ 12월 2부 나를 사랑하는 법
■ 진단
2018년에 갑자기 걷지를 못하게 되는 사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언제부턴가 발바닥에 통증을 느끼던 상태였다. 글을 쓰다가 동네 한 바퀴를 돌면 그 한 바퀴가 꼭 4,300보였는데 다 돌 때쯤이면 어김없이 발바닥이 찌릿한 통증이 왔던 것이다. 여기서도 수없이 되풀이 되어온 나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고스란히 반복된다. 나는 발이 아픈데도 병원을 찾지 않고 그 상황을 이기겠답시고 더 많은 양을 걷곤 했다. 어디가 아프면 치료를 해줘야 하는 데 계속 그런 식으로 미루면서 방치를 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내 의지로 극복하려는 미련함, 무슨 일이든 일단 미루고 보는 습관이 또 한 번 내게 해를 끼친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명백히 유기한 것이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고 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건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이 삶을 잘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가 아닐까.
나는 잘 살아보고 싶었다. 한 번 뿐인 이 삶을.
진짜로 잘.
■ 나는 사랑하는 법
고갱은 평생 대놓고 한탄했다. 자신의 죽여주는 그림이 왜 파리의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목할 건 고갱의 그런 유아기적인 인정 욕구 자체가 아니다. 최소한 그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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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속이지 않고 자기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못났으면 못난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남이 어찌 생각하든 말든.
정말 추한 건 자기애가 넘치는 것도 망상에 가까운 목표를 갖는 것도 아니다.
남이 어찌 볼지 몰라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말 추하다 못해 한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적어도 남의 시선 때문에 자기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어떤 일을 할 때 항상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다 남이 그런 나를 어떻게 볼까를 더, 그리고 항상 먼저 생각해 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거다.
그건 나를 지킬 수 있는 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사랑하는 길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거였다. 나를 사랑하는 일. 나는 그걸 너무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잘 지내는 일이 나는 왜 그리 어려웠을까.
■ 작가의 말
하나.
일 년에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아주 적은 수의 것들만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다. 속된 말로 책이 한 번 ‘터지면’ 그걸 이쪽 얘기로 ‘책 뽕’을 맞았다 그러는데 그걸 한 번 맞은 사람은 평생 자기가 다시 한번 책으로 뭔가를 터뜨릴 수 있을 거란 환상을 가지고 계속해서 책을 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는 않는데, 그만큼 책이란 게 잘되기가 어렵고 한 번 되면 두 번 되기는 더 어렵다는 뜻일 테다.
뭐든 안 그럴까마는.
예전에 누가 어떤 작가를 좋아한다길래 그분이 왜 좋으냐 물었더니 성실해서 좋다는 거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어떻게 작가를 단지 성실하다는 이유로 좋아할 수 있는지 잘 이해를 하지 못한다. 작가는 글로 그 이상의 번득임을 보여주어야지 단지 성실하다는 게 작가로서 어떤 메리트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런데 세월이 흘러 다섯 번째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내가 작가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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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질 수 있는 미덕이 오직 성실함밖에 남지 않았다는 느낌이 드니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쉬지 않고 글을 쓰고 또 고친다. 아마 내가 가지고 태어난 얼마 안 되는 재능이란 게 모조리 소진이 되어도 어머니가 물려주신 이 성실함만은 죽을 때까지 가져가지 않을까.
둘,
나는 평소 혼잣말을 잘 한다. 그러나 내가 하는 혼잣말이란 건 결국 듣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혼잣말이 아니다. 나의 비밀스러운 말들을 평생 듣고 사는 그는 누구일까.
우리는 모두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하나씩 갖고 있다. 그게 여럿인 사람도 있다지만 대체로 하나씩 더 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날 때부터 2인조다. 그리하여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평생을 싸우고 대화하고 화해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인생의 종요하고 기본적인 것들을 이렇게나 늦게 알아간다는 것이 아찔하기도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기도 하다.
나는 나의 지나온 세월을 토대로 또 다가올 미래를 도모할 것이다.
당신이 쌓아온 세월 역시 당신의 앞날을 든든히 지켜줄 버팀목이 되기를.
희망이 우리를 바이러스로부터 속히 구원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20년 가을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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