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청춘 (2)

2023. 8. 8. 16:43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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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청춘 (2)

- 천 권의 책에 인생을 묻다 -

■ 김애리 지음

08 이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 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에릭 호퍼<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

삶이 끝날 때까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신성한 호기심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질문이 갖고 있는 위대한 힘

쇼펜하우어는 가슴 속에 어떤 질문도 품고 있지 않는 용기가 철학자를 만든다고 말했다. 나도 한때는 세상 모든 것에 관해 의문을 품으며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된 계기는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갖게 되는 가장 나쁜 점 가운데 하나는 세상에 대한 의문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를 읽으며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우뚝, 멈춰서게 되었다.

“네게 중요한 것은, 네가 이 세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중력의 법칙에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지. 동시에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어쩌면 우리는 유년 시절을 보내는 동안 세상에 대해 놀라워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로 인해 무엇인가 근본적인 것을 상실하고 말았지.

…사람들 대부분이 일상생활에 쫓겨서 삶에 대한 경이감을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가치만이 절대적이고 옳은 것이라 여기며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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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만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논어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잔정으로 아는 것이다.’ 라는 말이 있다.

■ 나는 도대체 누구이고,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소피의 세계>는 질문이 갖는 엄청난 힘을 조용히 보여준다. 14살의 주인공 소피는 어느 날 발신인도, 우표도 없는 편지를 한 통 받게 된다.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씌어 있었다. ‘너는 누구니?’ 그 후 평범한 소녀였던 소피는 삶에 많은 의문을 품으며 세상을 다른 눈으로 관찰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철학적인 답을 던지며 인간과 세계에 관한 진지한 물음과 그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을 소설로 들려주는 책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품어 봤을 질문에서부터 인생을 통해 고민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질문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손녀딸을 배려하는 사려 깊은 할아버지처럼 자세하고 친절하게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대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눈으로 모든 것에 의문을 품으며 살았다는 말이 아닐까? 요슈타인 가아더는 우리에게 훌륭한 철학자가 되는데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삶을 좀 더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린 사람들은 모두 사소한 것에 관해서도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빌 게이츠는 ‘세상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설치되는 것은 어떨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했으며, 비틀스는 ‘세계 제일의 밴드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를 질문하였다. ‘인간이 과연 달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있었기에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었으며,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란 질문이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다.

이제 당신 차례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과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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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를 전부 내걸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질문이 갖는 놀라운 힘은 보통 질문을 한 후에 일어난다.

■ 삶을 관광객처럼 산 떠돌이 철학자의 황홀한 방황

여기, 일생을 길 위에서 의도적으로 방황하면서 숱한 질문을 던진 철학자가 있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의 저자 에릭 호퍼가 주인공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30년간 미국 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총 11권의 책을 저술하여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오르지만 놀랍게도 변변한 학력조차 없는 사람이다.

81년의 삶 대부분을 품삯 일꾼, 레스토랑 웨이터, 사금 채취 공, 부두 노동자로 전전하며 그 자신의 말처럼 ‘삶을 관광객처럼’ 살다 갔다. 수학, 물리학, 지리학, 철학에 박식한 그의 유일한 학교는 손때묻은 책이었고 빈자들의 일터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쩌면 세상에 대해 품은 숱한 질문들이었다.

일곱 살 때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8년간이나 실명을 경험하고 열여덟 살에는 아버지마저 잃은 뒤 스물여덟이라는, 그 숫자만으로도 찬란한 나이에 그는 음독자살을 결심하고 수산염을 삼킬 요량으로 길을 걷는다.

■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죽음 대신 길을 선택하다

그렇게 ‘길 위의 인생’은 시작된다. 생의 마지막 골목에서 죽음 대신 ‘길’을 선택하며 삶의 모든 의문들을 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당신같이 지성적인 사람이 어째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렇게 살아가느냐는 한 농장 주인의 말에 이 엉뚱한 철학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믿지 않으실 테지만 제 미래는 당신보다 훨씬 안전합니다. 당신의 농장이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당신은 농장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노동자인 저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죠.”

관념이 아닌 삶 자체가 철저한 무소유였던 그는 그렇게 방황하는 삶으로 다시 들어간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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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헤이든 헤레라 <프리다 칼로> -

“신들이 나를 돌보지 않고 나의 아들들도 돌보지 않는다면

여기에도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 자극과 반응 사이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이제 당신이 죽을 때는 세상은 울고 당신은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빅터 프랭클과 프리다 칼로이다. 그들은 내가 아는 역사 속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커다란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또 그들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당당히 온몸으로 그 고통과 맞섰고 그것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빅터 프랭클이 숨을 거두고 얼마 후, <뉴욕 타임스>는 그를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해 글을 실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이었던 20세기의 수난을 가장 극한 상황에서 체험했지만, 20세기 인류에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 사람.’

수감번호 119, 104번.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어느 날 유대인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1,500명의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며칠 밤과 낮을 기차를 타고 달리며 낯선 곳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잿빛 새벽의 기운이 겨우 세상을 밝히고 기차가 덜컹거리며 선로로 들어간 뒤 팻말을 본 사람들은 심장이 멈추는 듯한 공포와 함께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우슈비츠, 가스실과 화장터, 대학살, 인종 살육장이라 불리는 그곳, 그곳을 통과하며 빅터 프랭클은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교수대를 상상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현실은 그보다 더욱 끔찍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용소에 들어간 빅터 프랭클이 처음으로 빼앗긴 것은 평생 동안 심혈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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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인 연구의 원고였다. 그것만은 돌려주기를 애원하는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냉소 섞인 비웃음이었다. 그 뒤 그는 살아남은 사람들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에 채찍을 맞으며 온몸의 털을 모두 깎였다. 한 명의 인간 존재로서의 모든 수치심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었다.

■ 지상의 지옥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인간정신의 꽃

그들은 두 장의 담요로 9명이 되는 사람들이 바닥 위에서 함께 잠을 잤다. 그는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전까지 빅터 프랭클은 이 세상에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저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우슈비츠에서는 모든 것이 예외였다. 양식이 없어도, 잠이 없어도,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공포와 절망뿐이어도 인간을 결국 살아남았다.

끊임없이 돌아오는 죽음에의 선별과정, 하루에도 몇 명씩 시체가 되는 옆자리의 동료들, 감시병들에게 받는 죽음보다 끔찍한 정신적 모멸감과 하루 빵 한 조각과 묽은 죽으로 생명을 이어가며 감당해야 하는 육체노동, 그곳은 지상의 지옥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빅터 프랭클은 그후 3년 동안을 아우슈비츠를 포함해 네 곳을 수용소를 전전하며 목숨을 이어갔다.

죽음에의 선별에 선택당하지 않기 위해 매일 유리조각으로 면도를 하던 남자. 동상에 걸려 찢어진 부은 발을 신발 속에 구겨넣으며 아이처럼 엉엉 우는 동료의 울음소리를 듣던 남자, 그러나 끝까지 인간의 고귀함을 잃지 않으며 성자처럼 고통에 온몸으로 맞섰던 이 남자는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인간은 상황의 노예도 아니고 운명의 허수아비도 아니라고 나는 믿는다. 상황에 굴복할지 상황에 맞설지를 결정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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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스스로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하고 더러워질 수 있는지, 반면에 또 얼마나 강하고 위대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한다.

그리고 어느 날 밤이었다. 피로와 배고픔에 찌든 송장 같은 몸뚱이로 막사 바닥에 앉아 있는 그들에게 동료 한 사람이 달려왔다. 그는 점호장으로 가서 해 지는 풍경을 보라고 외쳤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 빛나는 구름과 살아 숨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황홀한 풍경은 초라한 막사와 날카로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그 광경에 시선을 모으며 침묵이 흐르고 있는 그때 누군가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이 구절 앞에서 나는 결국 참았던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석방된 빅터 프랭클에게는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처참히 살아 돌아온 수용소에서 누이를 제외한 아버지, 어머니, 형제 그리고 아내까지 그의 전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위대함의 척도는 삶의 고통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빅터 프랭클, 그는 나에게 진정한 위대함이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사람이다. 한 사람의 위대함의 척도가 삶의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라면 그는 세상 누구보다도 위대한 삶을 산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슬프고, 진실되고, 이렇게 아름다운 책은 지금껏 만나보지 못했다.

엘리노어 루스벨트는 말한다.

“아무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고통을 가하지 못한다.”

우리를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 자신뿐이다. 내 영혼을 걷어차고 이미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도 나 자신이다. 후학들은 빅터 프랭클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마칠 때까지 호수처럼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힌다. 그는 절망 앞에서도 끝내 희망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주인이었다.

가슴속에 슬픔밖에 없는데 어떻게 웃으라 하시냐고 따지는 한 청년에게 틱낫한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자네의 슬픔에 웃어 주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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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만만하지 않다, 고통은 고통으로 받아들여라

나는 실제로 프리다 칼로의 작품집을 보고 그날 저녁 밤새도록 악몽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그녀의 작품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알겠지만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끔찍한 것들이 태반이다. 끊어진 동맥을 손에 쥐고 있는 자화상에서부터 남자의 칼에 온몸을 난도질 당한 여성, 온몸에 못이 박힌 자신의 모습과 건물에서 추락해 자살하는 여성까지. 그녀의 작품들은 정면으로 응시하기가 무척이나 힘이 든다.

영화 <프리다>의 원작이기도 한 미술사학자 헤이든 헤레라의 전기 <프리다 칼로>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겪었던 고통과 그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그려낸 책이다.

■ 삶의 기술은 댄서의 기술보다 레슬러의 기술과 비슷하다

1907년 멕시코의 코요야칸에서 테어난 프리다 칼로는 일곱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리고 열여덟 살이던 1925년,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뒤바꿔놓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그것은 인생이 그녀에게 가한 최초의 혹독한 공격이었다. 하교길에 그녀가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를 들이받은 것이다.

그녀는 사고 현장에서 말 그대로 쇠기둥에 박혔다. 척추가 부러지고 골반이 부서지고 한쪽 발이 으깨졌다. 그날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9년 동안 그녀의 삶은 고통과 병마와의 투쟁으로 점철되었다.

 

그녀의 삶은 서서히 망가져 가는 육체와의 지난한 투쟁이었다. 사고 이후 단 한 순간도 아픔과 떨어져 살아본 적이 없었다. 평생의 연인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 역시 순탄치 못했다. 디에고와는 줄곧 결혼과 별거, 이혼 그리고 재결합을 반복하며 살았다.

프리다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생 동안 두 번의 중대한 사고를 겪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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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인해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진 육체의 틀에 갇힌 프리다는 병실에 누워지내는 동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프리다는 석고 깁스를 하고 있는 끔찍하게 지루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든 하자고 결심했고 그래서 그림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말하자면 고통은 그녀의 숨겨진 천재성을 발굴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셈이다. 끔찍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다는 그 전차 사고가 아니었더라면 세계적인 화가로 명성을 떨치며 미술계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녀는 그 고통으로 하여금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알프레드 뮈세의 시 <10월의 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수련생, 고통이 스승이니, 고통받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 삶은 때론 ‘놀라운 선물’을, 때론 ‘치명적인 지뢰’를 함께 준다

자신의 고통을 그린 화가 프리다칼로, 응어리진 감정들과 흐느낌들, 폭발할 것 같은 생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그대로 화폭에 담은 대가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로 거론되며 미술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정확히 다지게 되었다. 그녀는 세계적인 가수 마돈나가 여신으로 추앙하는 화가이며, 스스로 하나의 전설이자 신화가 되었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 전차 사고, 역시 유명 화가였던 디에고와의 평생에 걸친 열정적이고 지독한 사랑, 작품, 옷차림이나 성격 등이 전설로 남게 되었다.

그녀가 그린 숱한 자화상들은 피흘리고 상처받은 모습이다. 그러나 시선만큼은 곧고 맑으며 절망을 극복한 강한 여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1954년 7월 13일 사망하기 며칠 전까지도 그녀는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삶은 그녀에게 가혹하리만치 많은 것을 빼앗아갔지만 그녀는 끝내 아름다웠다.

10 죽어라, 그대가 죽기 전에

- 낙 혼비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파울로 코엘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 - 법정 <무소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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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야 하는 근사한 이유를 떠올려라

살면서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음, 아마 60억 인구의 1%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거 같다. 삶을 변화시킬 힘이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누구나 한번쯤은 묵혀놓은 보험금을 떠올리듯 죽음을 떠올려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 자살률 1위를 달리는 불명예스런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다. 하루 평균 서른 명씩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나라, 하, 갑자기 서글퍼진다.

며칠 전에 자살에 관한 책을 한 권 읽었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영화화 되고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는 영국 최고의 인기 작가 닉 혼비의 <딱 90일만 더 살아볼까>라는 책이다. 물론 묵직한 주제이지만 닉 혼비 특유의 유머 때문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던 소설이다.

전직 유명 토크쇼 사회자였으나 10대 소녀와의 섹스 스켄들로 하루 아침에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40대 남자 마틴, BMW를 몰다 하루아침에 지하철을 타는 신세로 전락하고 변변한 학력도 기술도 없어서 피자 배달이나 햄버거 뒤집기를 하면서 살아가는 제이제이, 젊은 시절 한 번의 실수로 아이를 가졌는데 중증 장애아들을 낳아 가난하고 희망없이 살아가는 51살의 모린, 부모님과 살며 남자 친구에게도 버림받고 방황하는 18살 소녀 제스, 이들은 온 나라가 파티로 떠들썩한 12월 31일 밤, 마구 써버린 자신들의 인생을 절망하며 토퍼 하우스라는 자살 명소(?)에 우연히 모이게 된다. 그리고 적절한 타협 끝에 90일 자살을 유예하기로 한다.

그들은 90일의 자살유예에 동의해 놓고도 매일같이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닉 혼 비 특유의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이 소설은, 그러나 큭큭거리고 웃다가 결국 곪은 진실, 즉 죽고 싶어서 환장할 지경이라도 삶은 끝까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써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가장 커다란 선물

하지만 죽어야 할 이유들을 눈을 씻고 찾고 있는 그들도 결국 삶의 위대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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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외감에 굴복하기로 마음먹는다. 기술도, 재능도 없고, 계획도, 꿈도 없지만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일게 되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90일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엉망진창이고 뒤죽박죽이고 도무지 재기 불능인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지리멸렬한 일상으로 다시 재기하게 된다. ‘힘들다는 건 지침서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나 자신을 한 조각 다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임을 아프게 고백한 후에 말이다. 그들은 결국 자살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중대한 사실을 깨닫고, 여행도 하고 독서 모임도 갖고, 허접하고 후지지만 어쨌든 일자리도 찾으며 주어진 삶으로 돌아온다.

■ 죽기 전에 다시 태어나라

너무나 좋아하는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떠오른다. 젊음과 아름다움, 안정된 직장, 멋진 남자 친구들, 표면적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베로니카는 어느 날 생의 무의미함에 절망한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다. 스물넷, 이 젊음의 끝은 내리막길일 뿐이고 삶은 아무 것에도 이르지 못하고 아무 변화도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였다. 그녀의 일상은 하품 나는 지루함의 반복이었고 꿈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 당신은 한 번이라도 진정으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베로니카는 단 한 순간도 진짜로 살아 있던 적이 없었다. 살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냐고?

세상에는 살아 있는 시체들이 득실거린다. 그들은 사랑하지도, 아파하지도, 깨닫지도, 희생하거나 봉사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삶을 물에 떠내려가는 신발처럼 멀뚱멀뚱 쳐다보며 보낸다. 다음의 시를 가슴으로 읽어보자.

무척 신중한 남자가 있었지.

그는 웃지도, 놀지도 않았네.

위험을 무릅쓰지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도 않았네.

노래를 부르지도, 기도를 하지도 않았네.

그러다 세상을 떠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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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보험금 요청이 거부되었네.

보험회사는 사유를 이렇게 말했네.

진짜로 살지 않은 사람이므로

죽었다고 볼 수 없다고.

낮과 밤이 존재하듯 이 세상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처럼 건너는 사람들과 죽음과는 무관한 듯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물론 많은 사람들은 후자다. 나 역시 1년 중 여러 날을 ‘살아 숨쉬는 유령’으로 살아간다. 열정도, 설렘도, 사랑도, 희망도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잊어버린 채 그저 하루하루의 시간을 소비해 간다. 그것이 과연 살아 있는 걸까?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생을 통해서 죽기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나 보다. 헤르만 헤세 역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다가 죽음을 사랑하게 되기 위해서리고.

자살을 기도했던 베로니카가 깨어난 곳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정신병원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간절히 죽기를 갈망했던 그녀는 심장이상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이제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죽음이 현실이 된 것이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베로니카는 무엇을 느꼈을까? 놀랍게도 그녀는 삶의 희망을 되찾는다. 아무리 뒤틀어지고 망가진 삶일지라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죽음을 자각한 그녀는 더욱 치열하게 삶을 갈망한다. 살아 숨쉰다는 것이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이제야 자신이 많은 것을 가졌으나 한 번도 감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결코 살아보지 못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는 내내 뭔가 답을 얻은 기분이었다.

삶도, 죽음도, 그 밖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우리에게 파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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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엘료는 말한다. 매일 죽고 매일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베로니카처럼 죽을 날을 겨우 일주일 앞두고서야 망가진 삶을 후회하고 그 소중함을 깨달을 것인가?

■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라!

앤소드 드 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채 태어나고 잠든 채 살며, 잠 속에서 혼인하고 잠속에서 자녀를 낳으며, 깨어나 본 적이라곤 없이 잠 속에서 죽는다고 이야기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스스로가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잇는 것은 아닐까?

지금 당신의 삶을 깨워라. 죽은 듯 살지 말고, 죽을 듯 열심히 살아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곳을 떠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은 무릎을 꿇고 떠받들어도 부족할 만큼 경외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죽음을 떠올려본 하루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두렵고, 슬프고, 허무하기보다 1% 정도 더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 우리의 남은 날들을 그렇게 살도록 하자.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11. 가끔은 멈춰 서라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1, 2, 3> -

작은 뜰에 무화과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약간의 치즈, 그리고 서너 명의 친구들만 있으면 행복하다. 이것이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치였다.

- 프레드리히 니체 <어떻게 살 것인가> 중에서

■ 열 걸음에 한 걸음은 쉬어 가라

‘자장면이 맛없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배달이 늦는 건 못 참는다’는 우리 한국인들. 우리는 어려서부터 쟁취하고 경쟁하는 법은 배웠어도 삶을 즐기며 느리게 걷는 법은 모른다. 한국에 온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빨리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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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이 구호는 이제 세계 어딜 가나 한국인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그놈의 ‘빨리빨리’로 인해 삶이 걷잡을 수 없이 황폐해 졌다면 이 프랑스 작가에게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를 한 수 배워 보는 건 어떨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의 피에르 쌍소는 먼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게으름’을 피우고 사는 것이 왜 나쁜 거지?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일하고 뛰어다닌 뒤 죽기 직전에야 삶을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보다 더 나쁜 건가? 느리게 사는 게 왜 비난받을 일이지? 좀 더 말랑말랑하게 살며 순간을 즐길 수는 없는 건가?

그가 말하는 ‘진정한 느림의 미학’ 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빠릿빠릿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에서 피에르 쌍소는 “나는 당당한 느림예찬론자에요”라고 외치며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나는 내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느림이 존재하는 영역이다. 느림, 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 나는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나이들, 모든 계절들을 아주 천천히, 경건하고 주의 깊이 느껴가면서 살기로 결심했었다.”

우리는 멈춰 서는 것, 느리게 살아가는 일에 죄의식마저 가지고 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빨리 달리는데 거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시속 200Km로 달려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 감성적이고 시적인 형태의 하루를 만들 것

하지만 진정으로 멈춰 서서 잠시 고민해보자. 정신없이 시간에 쫓겨 속도전을 벌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처럼 바쁘게 살아온 대가로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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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쌍소는 말한다. 우리는 항상 뭔가 결핍된 듯한 갈등 속에서 쉼을 얻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 열 걸음에 한 걸음 쯤은 잠시 쉬고 뒤돌아보라

이 프랑스 철학자가 말하는 ‘느린 삶’은 뭔가를 설렁설렁하라는 것도 아니고, 어영부영 띵가띵가 놀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그저 ‘쉼’이다. 인생을 완전히 손에 쥐기 위해서는 적어도 열 걸음에 한 걸음쯤은 잠시 쉬어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리듬도 갖지 못하고 속사포처럼 터지는 랩처럼 전력질주하는 삶, 어쩐지 서글프지 않은가.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건다. 나는 좀 더 유능해져야만 해, 좀 더 잠을 줄이고, 좀 더 뭔가를 해야만 해, 역사나 정치, 경제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하고, 음…

어쩌면 이기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지는 일이고, 뛰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은 멈추는 일이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절대 느긋하게 걷는 동안 일어나지 않는다. 서두르는 바람에 생겨난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기 위해서 질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질주하는 동안 의미와 목적은 자취를 감춘다.

“내 경우는 단단히 움켜쥐기보다는 쓰다듬는 것을 더 좋아한다. 목표를 향해 곧장 달리기보다는 기분 좋게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더 좋아하며, 누군가에게 금방 다가서기보다는 다가가기 전에 잠깐 그 사람 앞에 멈춰서서 바라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또한 모든 것에 능통한 자로 보이기보다는 어수룩한 자로 여겨지는 것이 더 좋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모든 풍경, 모든 사건을 천천히 음미하고자 하는 피에르 쌍소처럼.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바로느림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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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생이 당신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경험하라

12. 할 수 있는 만큼 높이, 멀리 날아라

-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세상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전심전력을 다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준다

- 랠프 에머슨

■ 인간은 목표한 만큼 진화한다

인간은 자신의 목표만큼 진화한다고 말한 사람이 막심 고리키였던가. 이 구절을 처음 읽을 때 나는 심장이 쿵쾅거렸다. 우연히 인류의 커다란 비밀을 발견한 사람처럼 번개 같은 깨달음이 함께 찾아왔다. 힐러리의 목표는 대통령이다. 그래서 그녀는 적어도 그 근처까지는 접근했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똑순이 갈매기, 조나단이 등장한다. 그런데 알다시피 얘는 보통 갈매기가 아니다. 갈매기 주제에 감히 ‘위대한 갈매기’가 될 꿈을 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비상(飛翔)의 가장 단순한 사실, 즉 먹이를 찾아 해안으로부터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방법 이상의 것을 배우려고 마음쓰지 않는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보다도 한층 더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

■ 수치와 치욕을 감당하면서 위대해지는 길

조나단을 길을 잃고 날개가 찢어질 정도로 날기를 연습한다. 곤두박질하고, 상처입고, 울부짖으면서도 배움을 끝내지 않는다. ‘위대한 갈매기’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개를 퍼덕거려도 더 높이 날 수 없다고 느껴지는 날은 다만 수많은 갈매기떼 중의 한 갈매기가 될 결심을 하기도 했다. 도전도 실패도 없는 평범한 갈매기로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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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갈매기에게 높이 난다는 것은 본성 자체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빠른 속도로 날기 위해서는 짧은 날개를 갖고 태어났어야 했다. 어둠 속을 날기 위해서는 올빼미의 두 눈을 갖고 태어났어야 했다. 그러나 조나단은 본성을 거슬러보고자 결심한다. 날개 없이 태어났다면 날개가 생기는 것을 막지 말라던 코코샤넬의 말처럼 조나단은 피의 노력을 지불해서라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자 밤낮없이 날고 또 난다.

감히 꿈꾸지 말아야 할 것을 꿈꾼 조나단은 갈매기 사회에서 추방당하고 만다. 그는 벼랑 끝에 거주하며 홀로 고독하고 외로운 투쟁을 계속한다. 그는 날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이 되고 싶은 갈매기가 되지 못하는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이란 없었다. 수치와 치욕을 감당하고서라도 위대해져야 했다.

■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한계

오랫동안 조나단은 결국 완전한 속도를 정복하고, 한계가 없음을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한계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곧 한계였다. 목표를 낮추고 현실과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 유한하고 유일한 삶에서 가슴 뛰는 목표와 꿈을 잃어버린 것, 그것이 최고의 비극이었다.

칼릴 지브란은 말했다. ‘한 인간의 심성과 이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지금까지 무엇을 이루어 놓았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하느냐 하는 포부를 살펴봐야 한다’고. 야심의 크기가 곧 성공의 크기다. 무모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하는 이들을 눈여겨 보라. 결국 가장 멀리, 가장 높게 나는 사람은 가장 높은 목표를 꿈꾼 사람이다.

13. 여행은 나만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일!

- 스티브 도나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박준 <On The Road>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

여행을 하면 좀 더 나은 인생을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가 있어야 할 집과 일을 떠나 세계를 누비며 자유를 만끽하다 보면 세상이 다 내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자신에 대해 더 큰 만족감을 갖고 그처럼 여행의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자체가 여행의 의미라고 생각해.

- 박 준 <On The Road>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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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생을 새롭게 발견하는 것

여행길에 오르면 자기 영혼의 무게를 느낀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지, 자신의 속 얼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하직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가끔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나볼 일이다. 자신의 삶을 마치고 떠나간 후의 그 빈자리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티브 도나휴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세계적인 인물도 아니고, 저명한 학자나 유명한 연예인이나 돈 많은 기업인도 아니다. 그는 20대의 어느 날 유럽을 여행했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뒤 그의 인생이 달라졌다. 그는 파리의 살인적인 추위에 질려 그해 겨울을 뜨거운 태양 아래서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돈도 없었고, 상세한 일정도 없었다. 막무가내로 시작한 여행은 알제리에 이르러 세계 최대의 사막인 사하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제멋대로 시작한 여행에서 그는 이후 살아갈 삶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삶의 비밀들을 하나 둘 깨달아 간다. 물론 수십 일간 생사의 기로에 놓이며 사막을 건넌 혹독한 대가로서 말이다.

사막을 종단하던 그는 인생과 사막이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인생과 마찬가지로 사막에서도 길이 끊기다가 어느 순간 눈앞에 오아시스가 펼쳐져 있기도 하고, 모래에 갇혀 죽음의 직전에 갔다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빠져나오기도 한다. 마치 우리들 인생처럼.

■ 지도가 없으면 마음속의 나침반을 따라가라

사막처럼 인생 역시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도무지 내가 원하는 저 건너편에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결국 끝이 있게 마련이다. 당신이 걸음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우리들 인생길에서처럼 사막에서도 길을 잃기도 한다. 때로는 사면초가에 처하기도 하고, 이 길만 따라가면 잘 풀릴 것 같은 믿음을 단번에 배반하기도 한다. 목적지에 다다랐는지 까마득할 때도 있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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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길들처럼 인생에서도 애써 비켜 가려 해도 건너가야 할 길들 앞에 놓이기도 한다.

사막에 숨어 있는 비밀의 오아시스처럼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오아시스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발견된다. 인생의 오아시스를 만났다면 잠시 멈춰서라. 그리고 그 적막과 고요함을 즐기며 뒤돌아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안달하는 열병을 앓고 있다. 물론 정상을 목표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목표에만 지나치게 모든 것을 집중한 나머지 과정을 몽땅 희생해 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 잠깐 멈추어 서서 자신이 걷고 있는 사막을 바라보라. 눈앞에 모래언덕이 있는가? 오아시스는 나타날 흔적도 없는데 벌써 지치고 힘겨운가? 그러다 갑자기 낯선 이가 건네는 물 한잔을 받았는가? 그리고 걷다보니 어느 순간 사막의 끝에 다다랐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제대로 된 여행을 잘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멋진 여행이란 잘 닦인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리는 그런 여행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멋진 여행이라 부르지 않는다.

■ 여행이란 이번 생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박준의 <On the Road>는 장기 여행자, 세계여행자들의 출발지라 불리는 방콕의 카오산드로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온갖 인종이 활보하는 그 복잡한 거리에서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학교를 자퇴한 여고생, 제과점을 운영하던 50대 부부, 회사를 때려치고 여행을 떠난 30대 부부, 자메이카 출신의 뉴요커와 시니컬한 20대 벨기에 커플….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는 사실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꿈만 꾸던 여행을 현실로 만들고 일상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가서 더 자신답게 살기 위해 여행을 자들이라는 것이다.

■ 여행은 나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

여행은 우리 모두에게 생생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해 준다. 늘 같은 사람들과 늘 같은 식당에서 늘 비슷한 메뉴를 시켜 먹으며 사는 우리들에게 색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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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선물해 준다. 오늘 점심은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잠은 어디에서 잘지, 내일 국경을 넘을 것인지 말 것인지 등등, 여행지에서 우리는 각자 삶의 가장 강력한 주체가 되어서 매일매일을 온전히 내가 소유하고 내 의지대로 진행시키게 된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맞는 것 같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여행의 기술>에서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더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는 찾기 힘들다.’ 고 이야기 했는데 정말 그렇다. 여행은 나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여행을 다니며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나 자신을 아주 객관적인 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정상적이고 올바르고 정확하다고 믿으며 살다가 내가 옳다고 믿고 살던 것들이 며칠 만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자 처음에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간단한 진리를 나는 여행을 하고 나서야 가슴으로 깨우치게 된 것이다.

■ 생이 당신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보라

나 역시도 여행지에서는 늘 처음 해 보는 일들투성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붙여 동행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는 일, 끈질기게 따라붙는 잡상인들을 단번에 떨쳐내는 일, 운동화나 손수건을 빠는 일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엄마나 언니가 해줬을 일들이었다. 또 맨발의 필리핀 아이들을 거리에서 맞닥뜨리던 날의 가슴 아픔, 호텔비가 없어 싸구려 사우나에서 이틀 밤을 묵던 날의 막막함, 비를 맞으며 밤거리를 걷던 날의 생생한 행복감, 그리고 여행이 끝날 무렵, 내가 원하는 마음의 평화나 희망을 드디어 발견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것을 얼른 빼앗아가 버리는 삶의 고지식함, 그 이율배반적인 모습마저도 여행이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인생과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여행기 <먼 북소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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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이유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생의 시간을 자신의 손으로 쥐고 싶고, 일본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냥 살아가기 보다 왜 사는가에 의문을 품으며 살아보고 싶은가? 삶에 한 걸음 바싹 다가가 온몸으로 시간을 헤아리며 살아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떠나라. 국적과 나이와 성별과 직업을 벗어던지고 그냥 나 자신으로 떠나라.

 

14. 나와의 로맨스를 즐겨라

- 웨인 다이어 <행복한 이기주의자> -

우주의 모든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 향해 있다. - 월트 휘트먼

■ 우리 모두는 숨 막히도록 황홀한 존재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영원한 로맨스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에리히 프롬은 온갖 것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늘 욕구불만인 사람들을 일컬어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되 자기 자신을 갖지 못한 자들’이라고 했다. 나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의 시작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세계적인 자기계발 분야의 대가 웨인 다이어는 그의 대표작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통해 우리 모두 숨 막히게 황홀한 나와의 연애를 시작하라고 강조한다. 나와의 연애를 최대한 즐기며 최고의 인생을 살라고 외친다.

그가 말하는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기 위한 조건은 아래 열 가지다.

1. 먼저 자신을 사랑한다. 2.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3.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를 뗀다. 4. 자책도 걱정도 없다.

5. 미지의 세계를 즐긴다. 6. 의무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7. 정의의 덫을 피한다. 8. 결코 뒤로 미루지 않는다.

9.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10. 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가 정말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자기 사랑법’이다.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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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 세상을 더 사랑하기 위한 자기 사랑법, 나를 사랑하고 마음에 여유를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도 더 넉넉한 법이다. 스스로가 가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겠는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법,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 맛있는 음식을 먹고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법, 이 모든 것들이 ‘자기 사랑법’에 포함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라면 사소한 것도 모두 소중하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웨인 다이어의 말처럼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려 들 필요는 없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느끼느냐이다.

■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어떤 시각으로 나를 대하느냐에 따라 나의 약점은 고스란히 나의 강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삶의 어느 분야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타인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창을 통해 그 사람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은 곧 그 사람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그리고 그 기준을 세우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웨인 다이어의 말처럼 나의 가치는 나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당신은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주어야 한다. ‘나는 최고다. 나는 최고다.’라고

자기 자신에게 붙어 있는 꼬리표는 모두 자신의 이력이다. 그러나 과거라는 것은 ‘한 움큼의 재’다.…모두 성장과 변화를 방해하며 삶을 색다르고 재미있게, 그리고 현재의 순간순간을 한충 충실하게 살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꼬리표를 선택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꼬리표를 붙일 작정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꼬리표는 어떤가. 나는 꼬리표를 떼는 사람이다.

기아 자동차의 창업자 김철호가 한때는 막노동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팬택의 사장 박병업은 지방대 출신이다. 롯데그룹의 회장 신격호에게도 한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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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배달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광동제약의 사장 최수부는 초등학교 중퇴의 학력이 전부다. 그들의 학벌이나 나이, 돈이나 집안 환경,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외모 따위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란 외부적 요인을 기준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중요시했던 것은 자신들의 내부의 힘이었다.

■ 당신 내부에 숨겨진 힘을 발굴하고 키워라

 

우리들 각자가 최고의 가치를 지닌 존재들이라는 사실은 괜한 입발림이 아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신의 섭리이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빈손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세상에 온 첫날,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났다.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능력,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능력, 서너 가지의 외국어를 익힐 수 있는 능력, 홀로 여행길에 오르거나 많은 모험을 즐길 수 있는 능력 등등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나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최고라는 사실, 당신의 과거가 어찌했건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가슴 깊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건강한 자아상은 건강한 삶과 직결되는 것이다.

■ ‘나’를 최고로 대접하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라

첫째,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그도 아니면 하루의 어느 때라도 상관없이 나 자신을 향해 ‘나는 최고다’라고 외쳐준다. 하루에 적어도 5번씩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자.

둘째, 당신은 모든 것을 ‘지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원하는 모습을 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는 10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지만 단 5분의 시간만이 필요할 수도 있다.

셋째, 당신의 정형화된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그것을 떠올리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라. 웨인다이어의 말처럼 ‘꼬리표’를 떼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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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그 자체로 이미 ‘최고’다

지금부터 다른 사람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자신을 점수 매기는 어리석은 행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기억하자! 당신은 그 자체로 이미 최고라는 사실을 말이다.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한 겨울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네. 내 안에 그 무엇도 대적할 수 없는 여름이 자리 잡고 있음을.”

당신의 가슴 속에는 지구상 어느 곳보다 뜨거운 여름이 자리하고 있다. 당신은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존재. 당신은 늘 최고다.

15. 죽음 뒤의 모습을 계획하라

- 미치 앨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데이브드 퀘슬러, 엘리자베스 퀴불러 로스 <상실 수업> -

위험을 피할 수 있게 기도하는 대신 위험에 처했을 때 두려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이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그 고통을 이겨낼 강인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하소서.

-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열매줍기> 중에서

■ 생의 마지막 프로젝트를 기획하라

엔소드 드 멜로 신부님은 죽는다는 건 멋진 일이라 표현했다. 죽음은 삶을 이해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만 두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마더 데레사 역시 자신은 죽음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죽음이 현존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죽는 것은 본래 누구에게도 고통을 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읽는 내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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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콧물을 훌쩍거리게 만든 책이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아무런 풍경이 없는 대도시의 빌딩숲처럼 삭막한 삶을 살아가던 37살의 미치는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자신의 은사가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평생 가르침의 길을 걸은 모리 선생님이 루게릭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미치는 졸업 후 처음으로 모리 선생님을 찾아가고 그 후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기 서너 달 동안 매주 화요일에 만나 생애 마지막 수업을 전해 듣는다. 그 수업의 주제는 ‘인생’이었다. 사랑과 삶과 죽음과 용서와 배움, 세상과 자기연민, 돈과 결혼 등에 관한 것이었다. 미치는 모리 선생님으로부터 살아 있음의 의미 뿐 아니라 죽어감의 의미도 다시 깨우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은 살아가는 기술 뿐 아니라 ‘죽어가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시간은 대략 30,000일,

그중에서도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 나면 실제로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서둘러 사랑하고 민첩하게 배우자. 또한 매일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하는 거다.

오늘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보냈나? 지금 당장 신이 나를 부르신다면 나를 위해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을 몇 명이나 만들었나? 나는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잇는가? 그렇게 이 여행이 끝났을 때 스스로를 향해 미소 지을 수 있는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 ‘상실’은 가장 큰 인생수업이다

스위스 태생의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인생 수업>이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이기도 하다. 30년 동안 죽음을 연구한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죽음의 의미에 대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한 사람이다.

그녀 자신도 9년간이나 중풍으로 마비된 몸을 가지고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느끼며 살았다.

70세에 쓴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에서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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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수업>은 언젠간 한 번 이상 감당해야 할 감정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다.

”죽음은 단지 이 생애를 마감하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곳으로 옮겨 가는 일일 뿐이에요. 이 사실은 상실과 슬픔에 잠긴 나에게, 내가 소중히 여긴 모든 사람들이 괜찮을 거라는 걸 가르쳐 주고 날 안심하게 만들어주지요. 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거에요.

■ 울어라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울어라

그녀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이 생애를 졸업하는 날, 난 은하수로 춤추러 갈 거예요. 그러니 그날은 축하를 받아야 할 날이지요.” 죽음을 이렇게 천연덕스럽고 달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녀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정신과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내면에 쌓인 감정은 절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겨누는 칼날이 되어 우리를 아프게 찌를 뿐이다. 아픔과 상처 앞에서 행복한 척, 즐겁고 명랑한 척, 더 분발해 열심히 일하고, 더 적극적으로 삶에 임하는 척, 이 모든 ‘척’을 그만두라. 슬플 때는 슬퍼해야 한다. 아플 때는 마음껏 아파야 하고 울고 싶을 때는 눈이 빠지도록 그냥 울어라.

삶의 악천후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렇게 친절히 가르쳐 주는 책이 또 있을까? 이 책의 메시지를 두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생의 중심에서 죽음을 생각하라!” “모든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인생은 통째로 소중하다.”

16.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세계는 책의 세계다

헤르만 헤세 <독서의 기술>,

애너 퀸들런 < 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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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 토마스 바트린

■ 책을 읽는 것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아마 18세 쯤이었을 것이다. 다른 수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우연한 기회에 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손에 넣게 된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한 권의 책으로 거의 원자폭탄을 맞은 것 같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책에 빠질 때면 마치 낯선 나라에 와 있는 것만 같다. 모든 소음이 꺼지고 책에 든 세상이 전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홍대의 작은 북카페에 앉아서 프랑스와 아프리카 수단을 방문하기도 하고, 조선시대로 날아갔다가 22세기로 떨어지기도 한다. 책의 세계는 내가 원하고 상상하는 모든 세상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곳에서 나는 자살을 시도한 베로니카를 만났다가 아우슈비츠에 갇힌 프랭클 박사를 만나기도 하고, 나뭇등걸 같은 손을 한 데레사 수녀님을 뵙기도 한다. 인생의 빈 공간을 채우기에 책만큼 적합한 것이 또 있을까?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흔하디 흔한 독서법을 소개한 책이 아니다. 오직 책이 인생의 전부였던 한 저명한 작가가 가진 책에 대한 순수하고 뜨거운 열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안 그래도 좋았던 헤르만 헤세가 2%쯤 더 좋아졌다고나 할까?

■ 좋은 책의 절반은 그 책의 독자가 만들어 가는 것

볼테르는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가치의 절반은 독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뒤바꿀 만한 훌륭한 책이라도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억지로 교양을 쌓을 생각에 부득불 읽는다면 그 책은 별 의미가 없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온갖 약을 다 먹으면 어쩌다 자신의 증상과 딱 맞는 약이 얻어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 전에 약물 중독이나 남용으로 병원 신세를 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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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독(濫讀)은 결코 문학에 영예가 아닌 부당한 대접이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 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말과 글과 책이 없이는 역사도 없고 인간이라는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혹 누군가 소규모의 공간에, 이를테면 집 한 채나 방 한 칸에 인간 정신의 역사를 집약하여 소유하고자 한다면, 이는 오로지 책을 수집하는 형태로만 가능한 것이다.

아, 정말 그렇다. 이 세상에 책의 세계만큼 커다란 세계가 또 있을까? 독서의 위대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듯하다. 바슈통 바슐라르는 ‘천국은 다만 거대한 도서관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 독서는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정신의 피를 수혈받는 행위

독서는 하루아침에 삶을 반전시켜주거나 엄청난 지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땅에 심은 씨앗과 같다. 처음엔 티도 안 나지만 정성을 들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대한 나무가 되는 원리다. 오늘의 독서가 1년 후, 3년 후, 10년 후의 미래를 결정한다.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 독서는 가장 확실한 자기 향상의 수단이다.

책을 읽지 않는 당신의 미래가 위험하다. 읽어야 이긴다. 읽어야 얻게 되고, 읽어야 이룰 수 있다. 살면서 넘어야 할 대부분의 장벽은 물리적 장벽이기보다는 심리적 장벽임을 알겠다. 책이 이끄는 세상은 우리가 그 장벽을 좀 더 가볍게 넘을 수 있도록, 우리 영혼에 좀 더 큰 날개를 매달 수 있도록 해 준다. 오늘도 읽을 책을 주신 신에게 감사를!

■ 책은 절대 죽지 않는다

컴퓨터가 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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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하루가 지나 잠자리에 들어 잠에 빠져들기 전에 한두 장을 읽으려고 컴퓨터를 침대 밑으로 가져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뉴욕시 지하철로 96번가의 세계무역센터 사이를 통과하면서 가방에서 컴퓨터를 꺼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

책의 죽음은 불가능하다. 책은 불멸의 수단이다. 플라톤은 영원히 산다. 디킨스도 마찬가지다. 플라톤이나 디킨스뿐만 아니라 책의 인물들은 모두 영원불멸의 존재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한 누군가가 이렇게 책의 죽음을 강력히 부정해 주니 어찌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독서가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는 겨우 130쪽 남짓한 책이다. 작가인 애너 퀸들런은 독서로 인해 인생이 바뀐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책의 위대함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 독서는 양식이고, 동료이고, 고향이다

그녀는 로빈슨 크루소가 프라이데이를 발견했을 때처럼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고, 세계를 배회했다고 밝힌다. 그녀에게 있어 독서는 언제나 고향이었고, 양식이었고, 위대한 불굴의 동료였다. 그러나 애너 퀸들런은 우월감이나 발전을 위해, 심지어 배우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그녀가 책이 탐닉한 이유는 이 지상에서 그 어떤 행위보다 책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뿐이었다.

링컨은 ‘최상의 친구는 아직 내가 읽지 않은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 링컨이 말한 ‘최상의 친구’가 되어 봄은 어떨까? 아, 평생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만큼의 책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이토록 많은 책을 주신 신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17.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 조엘 오스틴 <긍정의 힘>,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희망과 긍정적 사고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 헬렌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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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는 만큼 성공하고, 믿고 원하는 만큼 행복해진다

마음에 품지 않는 꿈은 절대 현실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결코 좋은 일도 일어날 수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하는 꿈을 꾼 것이다. 매일같이 어두운 방구석에 앉아 ‘내가 뭘 어쩌겠냐, 나 같은 놈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냐,’ 외치며 허벅지만 긁적이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이란 모름지기 꿈과 비전을 수없이 마음에 그리고 “된다, 된다, 나는 된다.”를 외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그것은 1+1은 2라는 사실만큼 명백한 진리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오늘날 성인 100명 중 3명이 평생 한 번 이상의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2020년에는 우울증이 심장질환 다음으로 위협적인 질병이 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믿는 대로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확신, 마음먹은 만큼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지금 당장 갖추어야 할 필수품이다.

하도 웃고 다녀서 ‘웃는 목사’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힘>을 통해 마음을 바꾸고 원하는 인생을 그리는 순간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 지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교회를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는 교회로 키워놓았다. TV를 통해 설교를 하고 싶은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는 그것을 현실로 바꾸었고, 현재 그의 프로그램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방송’으로 선정되었다. 또 그의 책 <긍정의 힘>은 200만 부가 넘게 팔려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대단한 업적을 이룬 사람과 평범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바로 마음가짐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자신의 부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두 가지 말을 반복한다. 그 하나는 ‘왠지 오늘은 나에게 행운이 생길 것 같다.’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이다.”

기대하지 않은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은 0에 가깝다. 기대하지 않으면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늘 똑같은 수준을 기대하는 사람은 영원히 제자리를 맴돈다. 기대가 삶의 한계를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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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수만 번 넘어지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도 또 다시 수만 번 일어나서 웃는 사람이 위대한 사람이다.

■ 온몸으로 세상과 맞장뜨며 살아라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내가 처음 이 책을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잊을 만하면 가끔 언론에 등장하는 조르바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도대체 이 그리스 남자가 어떻길래 국내외 수많은 명사들이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그를 치켜 세우는 걸까.

알렉시스 조르바, 그는 고생에 찌들고 주름진 얼굴을 지닌 꺽다리 노인이다. 특별한 직업도 없이 곳곳을 떠돌며 닥치는 대로 몸으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아온 남자다. 악기를 연주하며 돈을 벌기도 하고, 광산에서 일하기도 했으며 한때는 볶은 호박씨를 팔기도 했다. 이 글을 쓴 작가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섬약한 손과 창백한 얼굴, 피투성이가 되어 진창을 굴러보지 못한 내 인생이 부끄러웠다.”그래서 였을까? 작가는 주인공 조르바를 책상에 앉아 글이나 읽으며 머리로 사는 죽은 지식인이 아닌 온몸으로 인생을 부딪쳐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인으로 그려 놓았다.

실제 인물을 모델로 썼다는 <그리스인 조르바> (세상에 정말 이런 캐릭터가 실제로 존재한단 말인가?)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므로….”

조르바와 마찬가지로 작가 카잔차키스의 삶 역시 자유를 향한 기나긴 여행이었다. 그는 생의 절반을 조국 그리스는 물론 유럽 각지와 중국, 일본까지 떠돌아다니며 보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능가하는 거침없는 영혼을 가진 자유인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책 속에 파묻혀 ‘본질은 모른 채 그림자만 보고 살아온 샌님’ 같은 책벌레 ‘나’가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진 사나이 조르바를 만나 온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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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나’와 조르바가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일을 하기로 하고 탄광사업을 하다가 결국 망하게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작품이 담고 있는 삶의 철학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 제발 머리로만 살지 말고, 가슴으로 살아라

이것이 남자가 사는 방법이다. 브레이크를 버리고 가파른 경사와 내리막을 화끈하게 내달리며 살아가는 것, 조르바는 인생을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하고 신명나게 살았다. 그는 조그만 실패에도 죽을상을 지으며 절망에 빠지는 엄살쟁이들에게 외친다.

‘난 학교 문턱에도 안 가봤지만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것쯤은 안다고! 이 바보들아!“

책을 덮고도 조르바의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지는 것 같다. ”

“제발 머리로만 살지 말고 가슴으로 살란 말이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라니까!”

조르바를 떠올리면 미소가 번진다. 지치고 힘들 때면 늘 조르바를 만나고 싶어진다. 조르바의 말마따나 불 질러 버려야 할 책을 통해서일지라도 그와 호흡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힘을 얻고 싶어진다. 인생과의 정면 돌파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먹은 일, 하고 싶은 일은 죽었다 깨어나도 반드시 하고야 마는 이 노인네가 진정 사랑스럽다.

조르바에게서 유쾌한 인생론을 제대로 한 번 배워보는 건 어떨까 지금 당장.

202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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