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서에 관하여

2006. 3. 6. 23:37서예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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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서(隸書)

예기비예기비(禮器碑)

 

전체의 이름은 [노상한칙조공묘예기비(魯相韓勅造孔廟禮器碑)]로 漢나라 영수2년(156년)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곡부의 공자묘에 안치되어 있는데 보존 상태가 아주 좋다. 서법이 가늘면서도 강하고 웅건하며 단정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표일한 맛이 있고, 용필은 방필과 원필을 겸하였기 때문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맛이 있으면서도 두텁다. 자체는 납작한 것, 장방형, 아래위가 긴 것 등이 어우러져 있고, 필획이 수경하며 파책이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비음(碑陰)과 비측(碑側)에 씌어진 글씨는 더욱 방자하면서도 기이하여 역대 한예의 모범이 되었으며, 청나라 어느 이는 "한나라 비문 중에서 제일"이라고 고 극찬하였다.

사신비사신비(史晨碑)

 

사신비는 하나이나 양면에 글을 새겼기 때문에 이를 또한 [사신전후비(史晨前後碑)]라고도 한다. [전비]는 169년에 썼으며, [후비]는 168년에 썼으나 모두가 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공자묘에 있으며, 자체는 납작하며 파책은 수렴되어 있다. 결체는 아름답고 긴밀하면서도 법도가 삼엄하다. 예법이 가장 정중하게 내재된 비로서 범본이며 청나라 전예의 중흥조인 등석여가 이 사신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은 유명한 사실이다.

을영비을영비(乙瑛碑)

전체의 이름은 [노상을영치공묘백석졸사비(魯相乙瑛置功廟百錫卒史碑)로, 영흥 원년(153년)에 세워졌으나 현재는 곡부의 공자묘에 있다. 서법이 단정하고 근엄한 가운데 질탕하고 붓을 꺾어서 누른 필치가 드러나며, 용필은 방필과 원필을 결합시켜 굵고 가는 획을 서로 섞었으며, 파책의 꼬리 부분은 항상 크게 삐쳐서 응축되면서도 표일하고 웅건하면서도 고박한 맛을 나게 하였다.

조전비조전비(曹全碑)

 

전체의 이름은 [합양령조전비(哈陽嶺曹全碑)]로, 서기 185년에 세워졌으나 명나라 때 처음으로 출토되어 현재는 서안의 비림에 있다. 글씨는 수려하면서도 골력이 있고, 용필은 화창하여 마치 행운유수와 같으며, 풍신(風神)이 뛰어난 작품이다. 결체는 납작하며 필획이 섬세하며 파책이 날아 춤추는 듯한데 그 염미(姸美)함은 어느 것도 따르지 못한다. 한예 중에서 원필의 아름다움을 갖운 전형적인 작품이다.

장천비장천비(張遷碑)

 

전체의 이름은 [곡성장탕음령장군표송(谷城長蕩陰令張君標頌)]이며, 서기 186년에 무염에 세워졌으마 현재는 태안의 대묘(岱廟)에 있다. 서법이 순박하고 두터우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우며 방정하면서도 변화가 많다. 비음은 특히 감미로워 한예의 웅건한 방필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자체는 정방형에 가가우며 필획도 평정(平正)하다.

출처 : 서예세상
글쓴이 : 中齋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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