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2010. 3. 15. 20:28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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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걷는다

      -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느림, 비움, 침묵의 1099일 -


■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0 1938년 프랑스 망슈지방 광부의 아들로 출생, 가난으로 16세에 학교를 그    만두고  외판원, 항만 노동자, 체육교사, 웨이터 등을 전전....

0 1964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입자격시험) 합격, 이어 그랑제콜 졸업

0 프랑스의 유수한 신문사 잡지사에서 활동,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 사    회 경제면 칼럼니스트 

0 독서광 : 특히 역사분야 탐독

0 1999년 봄 그는 예순 두 살의 나이로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전설의 길 실크로드를 걸어서 가리라 결심하고 이    를 실천에 옮긴다. 그리고 4년 간, 봄부터 여름까지 걷고 가을에서 겨울    까지는 휴식을 반복하며 그 대장정을 이 책으로 엮어 낸다.


■ 임수현 옮김


0 1964년 서울 생, 서강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동 대학원, 파리 4대학 문학     박사 학위.  현재 서울여대 교수 및 번역가


■ 상상할 수 없는 가장 긴 여행 - 편집자의 글 -


0 독학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열렬한 독서광이    었다. 특히 역사분야를 탐독했는데 브로델(프랑스 역사학자)은 그에게 신    과 같은 존재였다. 무엇보다 지중해가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 냈다면 그    지중해 또한 원래 더 오래된 원천과 연결돼 있다는 것, 즉 서양인으로 존    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람이었다.



                                - 1 -

   하지만 이 채석공의 아들은 단지 아마추어로서만 클리오(역사를 주관하    는 그리스 신)를 접할 뿐이었다. 그의 직업이 그를 전혀 다른 길로 인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15년 동안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였으며, 다시 15    년 간은 꽤 알려진 경제 사회면 칼럼니스트였다. 한편 그는 이따금 기회    가 되면 시나리오를 써서 성공한 적도 있는 작가였다.

  

0 다른 사람들이라면 은퇴 후 쉬게 되었을 때 멋진 실내화를 준비하며 편안    한 시간을 누리려고 했으리라.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은퇴와 더불어 그에    게 온 것은 고독이었지만 또한 길이었다.


   왜 그렇게 매번 더 먼 길을 가려고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모    르겠다고 한다. 수없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그는 언제나    당황스러워 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그 대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뿐이었다. 이것은 애초에 답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그가 여기저기에서 스파이 취급을 받았던 것은 그의 이러한 행위를 그들    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쿠르드족에게는 터키의 앞    잡이로 오인 받고, 또 그 반대 경우도 겪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적    잖이 곤란을 겪었다. 실크로드는 오늘날 분쟁지역을 가로지르고 있다. 터    키에 항거하는 쿠르드족, 이슬람 민병대에 의해 조각난 이란, 예전에 러    시아에 속했던, 현재는 부족들 간의 분쟁에 휩싸여 있는 투르키스탄, 베    이징에 대한 반란이 잠재해 있는 신장, 이 정도면 구경거리가 많은 여정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0 그럼에도 그의 글 속에 담긴 일종의 천진함이라고 할 수 있는 무언가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에 대해 그는 여행 자체가 바로 그런 천진함을 요    구한다고 말한다. 그토록 먼 길의 흔적을 더듬어 가려면 기존에 자신이     알던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즉 최소한 우리 모두에게 떠남이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모든 걸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

  


                                 - 2 -

0 우리의 순례자는 거의 돈 한 푼 없이 길을 떠났으며(만약 돈이 있었다면    매우 위험할 수도 있었다.) 숙소를 발견했을 때에만 (그조차도 늘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잠을 잤고, 사진 속 주인공이 될 기    회가 전혀 없었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등 정말 소박하고 독창적    인 방법으로 그 대가를 지불했다.

   그는 말한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불행은 내가 기자였다는 사실이다. 30년 동안 나    는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확실한 것으로 믿고 글을 써 왔다. 그런데    도보 여행자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비워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지는 일이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 본문 중에서


0 1999년 5월 6일 배웅 나온 아이들과 플랫폼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역에 있는 큰 시계의 바늘이 출발을 알리는 쪽으로 움직여 갔다. 기차가    나를 채 간다. 도시와 그 소음과 불빛이 멀어져 간다. 집들이 모여 있는    어슴푸레한 변두리, 불빛이 점점이 스쳐 지나가는 시골의 깊은 밤, 나는    마침내 실크로드를 향한 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0 나는 오랫동안 복도에 나와 있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이    미 여정에, 나를 그토록 꿈꾸게 했던 그 길에 접어들고 있다. 친구들에게    역에 나오지 말라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떠나는 걸 유감스    럽게 생각하는 그 친구들은 몇 번이고 이렇게 물었으리라. ‘왜 굳이 이    여행을 하려는 거지?’ 내가 젊은이였다면 이해해주었겠지. 가서 모험도    좀 해 보라면서. 하지만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정신 멀쩡한 사람이 고향에    은퇴해서 모란이나 애지중지하는 대신 12000킬로미터를 걷겠다고 등에 가    방 하나 메고 소문난 위험지역으로 떠난다는 건 사실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령 이 같은 대형 휴가를 떠나는 것에 대해 감탄하거나 부러워    하는 사람들과 만났다 하더라도 용기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혹 내가     그들을 실망시키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 3 -

0 그동안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설명을 했다. 내 나이 예순 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다.      처음엔 정치부, 나중엔 경제부 기자였던 내 직장 생활은 일 년 전에 막을    내렸다. 25 년간이나 여행과 탐험을 함께 계획했던 아내는 10년 전 삶을    마감하여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그 아이들은 이미 함께 있을 때조차 각자 혼자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침착하게, 체    념하듯 벽난로 옆에 앉아 책을 읽거나 소파에 앉아 TV를 보면서 노년의     덜미에 붙잡히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 내게 그런 세월은 해당하지 않는    다. 내겐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    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 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    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인생의 세 번째 시기에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 있다. 콜(아랍권에서    눈썹을 검게 칠하는 화장품)로 검게 화장한 눈매, 살짝 드러난 여인의 장    딴지, 몽상으로 가득한 안개 낀 평원 앞에 잠시 멈추는 것. 풀밭에 앉아    코로 바람을 마시며 빵과 치즈 한 조각을 먹는 것. 걷는 일이야말로 이런    것들을 하기에 더없이 적합하지 않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방법    인 걷기는 접촉을 가능하게 한다. 사실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규격화된 문명과 온실 속 문화에는 이제 실증이 난다. 내 박물관은 길들    과 거기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광장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식    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다.

  

0 콤포스텔라 길의 끝에서 나는 내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인간    과 문명의 길. 베네치아와 구(舊)비잔틴(이스탄불)에서 중국에 이르는 실    크로드를 따라가 보리라. 걸어서, 서두르지 않고. 하지만 친구들과 내 원    래의 생활에서 영원히 단절되기를 바라진 않았기에, 나는 크게 몇 단계로    나누어 매 해 서너 달 동안 2500킬로미터에서 3000킬로미터를 걸음으로써    여정을 완성하리라 결심했다. 그 첫 여정이 될 1999년에는 이스탄불에서    테해란까지 가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 4 -

   예전에 동양을 여행하는 서양인들의 대부분은 전도유망한 직종에 몸담기    전 이국 취향에 한 번 빠져보거나 젊은 혈기로 엉뚱한 일을 벌이려는 부    유한 집안의 괴짜들이었다. 그들에겐 시간이 충분했던 것이다. 오늘날엔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사회활동이 예순 살에 마감됨에 따라 새로운 모험가    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바로 이마에 주름이 지고 머리가 허연 사람들이     다. 그들은 꿋꿋하고 드세고 고집이 세며, 어린 날의 꿈을 실현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가정과 직업, 돈 문제 등으로 인해     행동을 옮길 수가 없었을 뿐이다. 은퇴와 더불어 그들은 마침내 자유로워    졌다.


0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그래서 잘 짜여진 사고와는 그리 잘 어울리    지 않는다. 그런 사고는 고운 모래밭에 말랑말랑한 베개를 베고 누워 반    쯤 눈을 감고 명상을 한다거나 솔밭에서 낮잠을 청할 때 더 잘 이루어진    다. 걷는 것은 행동이고 도약이며 움직임이다.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풍     경. 흘러가는 구름, 변덕스런 바람, 구덩이 투성이인 길, 가볍게 흔들리    는 밀밭, 자줏빛 체리, 잘려나간 건초 또는 꽃이 핀 미모사의 냄새, 이런    것들에서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정신이 분산되기도    하며 계속되는 행군에 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생각은 이미지와 감각과    향기를 빨아들여 모아서 따로 추려놓았다가 후에 보금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것들을 분류하고 각각에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0 5월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지난 밤, 나는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데, 자명종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해가 막 떠오를 무렵, 배낭을 메고 이스탄불의 황량한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이스탄불의 샹젤리제라고 할 수 있는 이스티클랄과 항구를     연결하는 경사진 길을 넘어질 듯 내려갔다. 지나가면서 나는 그 유명한     만을 지키는 갈라타의 고대 탑을 향해 가볍게 인사했다. 이제 곧 부두에    도착해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로질러 유럽 쪽 해안에서 동양 쪽 해안으    로 가게 될 것이다. 배에서 내릴 때면 드디어 아시아에. 내 여행의 출발    점에 서게 되리라. 테헤란에 도착하기까지 이제 3000킬로미터도 채 남지    않았다.



                               - 5 -  

0 보스포루스를 따라가는 길 - 흑해와 마르마라 해를 연결하는 좁은 운하 -    이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차가 다니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유감스러웠다.    나는 곧 그 안으로 빠져 들었다. 터키의 운전자들은 매우 거칠다. 무섭게    속도를 내고, 창밖으로 계속 손짓을 하고, 경적을 울려 대고, 도로에 팬    부분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갈지자로 운전을 하는 그들은 늘 위험한 존    재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경우에 운전자가 우선권을 갖기 때문이다. 그    러니 운전자의 권리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보행자들만이 살아남는다.

  

   15킬로미터 정도 걸은 후 파사비치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방    향을 꺾었다. 어디에도 표지판 하나 없어 길이나 도시, 마을의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오    후 한시 경, 로칸타라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통역 없이 처음으로 터키    인과 말해 보는 것이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지, 주인이 손짓    으로 내 말을 막더니 누군가를 찾으러 갔다. 눈부시게 흰 셔츠와 넥타이    를 맨 채 설거지를 하던 자그마한 남자가 나왔다. 그는 영어로 자신이 알    바니아에서 수학교수였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이민 가는 것이 꿈이었지만    비자가 발급되지 않아서 못 갔다고 했다. 자기 나라에서 교수를 하는 것    보다 여기서 접시를 닦는 것이 훨씬 벌이가 낫다고도 했다. 주인이 서비    스로 내 놓은 차를 마신 후에 - 터키에서는 식후에 나오는 차는 절대로     돈을 받지 않는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 제1권


  1999년 봄에서 여름까지 이스탄불에서 테헤란까지를 목표로 걷는다. 여행    길에는 수많은 시련이 닥쳤지만 아름다운 만남 또한 적지 않았다. 거의     기적에 가까운 행운에 의지해야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여행을 계속할    수록 그는 마음을 비우고서만 이 여행을 제대로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첫 해의 계획은 이란 국경을 눈앞에 두고 아메바성 이질로 여행을    중단하고 프랑스로 돌아온다.

 

■ 제2권



                             - 6 -

  2000년 봄 올리비에는 다시 여행을 시작하여 전 해에 중단한 터키의 마지    막 구간을 보충한다. 이어 이란의 주요 도시를 거쳐 7월에는 여름횡단이    불가능한 끔찍한 카라쿰 사막과 맞닥뜨린다. 여행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    한 물(사막에서 생존하는 데는 하루 12리터의 물이 필요)을 싣고 갈 낙타    를 구하려 하지만 사람들의 비웃음만 산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쇠심줄보다 더 질겼다. 올리비에는 직접 낙타를 만    들기로 결심한다. 꼬마 자전거를 사서 차체를 분해해 수레를 만든 그는     물을 싣고 직접 끌고 사막에 도전한다. 침묵만이 함께하는 사막을 여행하    면서 그는 자신의 지평을 계속 넓혀간다. 지평선 너머로 사마르칸트의 황    금빛 돔이 보이는 순간까지.... 저자는 사막과 이슬람 지역의 열기를 재    치 넘치는 상황 해석과 놀라운 기지로 헤쳐 나간다.

 

■ 제3권


  실크로드의 마지막 여정. 그는 눈 덮인 파미르를 넘고, 중앙아시아에서     아직까지 천일야화 시대와 같은 생활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도시 카스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는가 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을 지나고, 옛 순례자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걷던 길을 통해     중원을 가로질러 서안에 이른다.


   그는 그 먼 길을 단 한 걸음도 차를 타지 않는다. 부득이한 상황으로 차    를 탔을 경우에도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가 걷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1,2000킬로미터의 느림, 비움, 침묵의 간접 체험과 함께 한 인간(저자)의    무서운 집념을 만나게 된다.



                                                       - 끝 -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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