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9. 14:21ㆍ독서후기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어른 아이에게 -
■ 김난도 지음
0 1997년부터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로 재직
0 서울대학교 교수상
0 저서 : 트랜드 코리아. 사치의 나라, 럭셔리 코리아 등
0 그의 저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는 태국, 대만, 이탈리아, 네델란드, 브라 질, 일본, 베트남 등으로 수출. 특히 중국에서는 16주 연속 종합 베스트 셀러 1위. 에세이 분야 최초로 한류바람을 불러일으킴
■ 프롤로그 - 이제, 흔들리며 어른의 문턱에 선 그대에게
지난겨울은 유달리 집요했습니다. 응당 봄에게 자리를 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겨울은 악다구니를 쓰며 버티더니, 4월 말 소란스러운 비가 한바탕 으름장을놓은 후에야 비로소 물러갔습니다. 겉늙은 봄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어정쩡 머뭇거리는 사이, 젊은 여름이 재빨리 도시를 점령해 버렸습니다. 두 계절의 다툼에 죽어나는 것은 꽃이며 잎들이었습니다. 올 봄엔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철쭉, 벚꽃이 제 순서를 지키지 못하고 한꺼번에 터져나왔습니다. 겨울이 가는가 싶더니 어느 새 초여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봄을 잃고 있습니다.
사회도 자연을 흉내 내는 것일까요? 자연이 느긋한 봄을 상실한 것처럼, 사회도 싱싱한 청춘을 잃고 있습니다.
계절은 봄을 건너뛰고, 인생은 청춘을 건너뜁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학교를 졸업한다고, 절로 어른이 되진 않습니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하고 흔들리며 조금씩 삶을 배워나가면서, 꼭 그만큼씩만 어른이 됩니다.
좌절의 시대입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경쟁이 혹독해졌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어둠 속에서 목적지가 아딘지 모르는 채 모두가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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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경주에서 이겼다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념과 빈부와, 계층과 세대와 지역의 격차가 넓어지면서, 사회는 구심력을 잃고 원심력만 커졌습니다. 갈등을 봉합해야 할 사람들이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사이 보통 사람에게는 패배의 계절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동요 속에서 가장 흔들리는 것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디는 어른아이들입니다. 어른아이, 아직 어른이랄 수도 그렇다고 아이랄 수도 없는 ‘새내기 사회인’들을 어른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차가운 사회는 초심자들에게 쉽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청춘의 요람인 학교의 울타리가 주는 너그러움에 익숙해진 어른아이들이 냉혹한 기성의 논리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아직도 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이 외로워졌습니다. 다들 자기 일에 바쁩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요? 휴대폰이나 인터넷처럼 편리한 의사소통 수단은 급속도로 발달했는데, 정작대화와 공감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매체는 없었지만, 대신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대화하고 친구와 만났습니다. 서로 관심을 가져주고 함께 아파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종종 청춘을 보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도대체 왜이래?” 하지만 요즘 어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어른들은 도대체 왜 이래?” 요즘에는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꾸 실수하고 자꾸 아파합니다. 왜 그럴까요?
청춘의 아픔이 불안함에서 온다면, 어른의 아픔은 흔들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흔들림, 제법 세워왔던 삶의 원칙이 흔들리고, 사회라는 무대에서 새로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인간관계가 흔들리고, 수입과 지출의 끝을 스스로 맞춰나가야 하는데 소비의 원칙이 흔들립니다.
학생 때 잘한다고 칭찬 받았던 일들이 어른 사회에서는 더 이상 잘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도 갈망했던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오히려 더 막막해지기만 합니다. 이성관계도 더 이상 풋사랑만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섹스를 고민해야 하고 결혼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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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아픔과 좌절 앞에서 과연 내 삶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자존감마저 흔들립니다.
거리에 나가면 약도가 있습니다. 길을 찾을 때 당신은 지도에서 무엇부터 찾나요? 당신이 가장 먼저 주시해야할 것은 ‘You are here' 라고 쓰인 현재의 위치입니다. 아무리 정교하게 건물의 위치를 표시해놓았더라도 지금 여기의 좌표를 알려주지 않으면 지도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 ’I am here' 를 찾지 못하면 목표도 실행계획도 무의미합니다. 이 책은 갓 어른이 되어 서먹한 사회의 낯선 거리에 들어선 당신의 ‘You are here' 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쓰면서 어른이란 인간발달의 특정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삶의 흔들림을 스스로 잡아나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1부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 J 에게 - 첫 직장을 구만 두겠다는 너를 보내고
J,
잘 들어갔는가? 오늘 저녁에는 아무래도 술이 필요할 것 같다더니. 혹시 아직도 혼자서 한잔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게 내일 또 일찍 출근해야 하잖아.
아무래도 직장을 그만 두는 것이 낫다고 했지?
“선생님, 남들이 뭐라든 지금이라도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을 다시 찾아가는 게 맞겠죠? 너무 늦어지기 전에 말예요.”
자네는 이 질문을 하며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 그것은 내게 답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의해달라는 간청의 눈빛이었어.
내가 가장 염려하는 것은 그 ‘어릴 적부터 품어온 꿈’이 왜 갑자기 지금 이 시점에서 자네 마음속에 자리를 넓혔느냐 하는 점이야. 첫 직장에서 한창 적응해야 할 시기에 말이지. 그래서 꿈을 말하기 전에 일단 스스로를 돌아보면 좋겠어. 그 꿈이라는 놈이 실은 치열한 생활을 방해하는 훼방꾼은 아닌지. 고단한 자네의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핑계는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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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만 자네가 스스로를 좀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뿐이야. 왜 회사를 떠나고 싶은지, ‘꿈’처럼 아름답지만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최대한 차갑고 분명한 단어로 스스로를 냉철하게 바라본 후. 결단을 내리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래야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회사를 떠난 후 뒤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자네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니까.
취업준비생들의 로망처럼 출근이 그렇게 달콤한 것만은 아니야. 학교와 직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거든. 하나는 돈을 내고 다니는 곳이고 하나는 돈을 받으며 다니는 곳이야. 다를 수밖에 없지. 그래서 얼마 전까지 학생이었던 친구들은 회사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고 밤늦게까지 초과근무 하기 일쑤야. 인간관계도 학교처럼 대등하지 않아. 업무를 중심으로 상하로 타이트하게 전개되지. 신입사원은 당연히 그 인간관계의 먹이사슬에서 제일 밑바닥에 놓인다고. 사회 용어를 쓰자면, 당분간은 꼼짝 없이 을(乙) 아니면 병(丙)이고 정(丁)이야.
공부머리하고 일머리는 조금 다르다네. 학교는 지식이 필요한 곳이지만, 사회는 실행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야. 자네가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은 종이 속에 갇힌 활자들이었지만, 자네가 사회에서 실행해야 하는 업무란 살을 에고 마음을 후벼파는 ‘현실’이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자네가 사회에서 처음 느끼는 좌절은 어쩌면 당연한 거야.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지금부터 또 배우고 커나가면 되니까.
여기서 열쇳말은 자네가 ‘성장’한다는 것이다. 인생이 펼쳐지는 터전의 절반인 직장에서 자네가 차츰 역량 있고 성숙한 존재로 자라난다는 사실. 이게 핵심이다.
그러니까 이직을 결심할 때는 회사에 대한 불만과 별개로 자네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얼마나 배울 수 있는가를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게 가장 중요한 기준이야. 회사는 견디기 힘들 때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전의 비전이 사라질 때 그만 두는 거야.
조직이란 구성원의 헌신을 극대치로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존재지만, 그렇다고 직원들 등골까지 착취해서 빨아먹는 외눈박이 괴물도 아니야. 구성원이 행복해야 조직의 실적이 좋다는 경영이론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사도 기본적으로 자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물론 그것이 직원을 사랑해서라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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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말이야. 더구나 직장은 가정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영역이야. 잠자는 시간을 빼고 나면, 실은 가정에 있는 시간보다 직장에 있는 시간이 훨씬 더 길어. 그러니까 자네 인생의 성장이 이루어지는 가장 중요한 터전이란 말이야. 부디 현명하게 행동해. 회사를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성장의 도구로 이용해.
그날 진정으로 자네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 찾아오게. 그날은 꼭 내가 자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격려를 해줄게. 왜냐면 난 잘 알고 있거든. 자네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자네가 될 자격이 있다는 것을.
■ K 군에게 - 잇단 취업 실패로 지친 그대의 기다림에 부쳐
K군, 미안합니다. 내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피드백 용지의 뒷장에 꽤 긴 편지를 적으셨죠. 긴긴 삼수 행활을 버텨낸 끝에 부푼 꿈을 안고 들어간 대학이었는데, 막상 졸업하고 나서 그보다 더 긴 시간을 취업 준비로 보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요. 이 책에 나오는 첫 월급이니, 첫 직장이니, 직장 내 인간관계니 이런 고민들을 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좌절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느냐고요. 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한 나라에서 사회의 재수 삼수생이 감내해야 하는 ‘청춘을 허비한 아픔’에 대해서는 행각해보지 않았느냐고요. 미안합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대학 독서동아리에서 배운 ‘파레토의 법칙’이 기억납니다. 20대 80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상위 20%가 부의 80%를 가지는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내용이었지요. 그리고 30년이 지났습니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의 ‘Occupy(akjupai 점령하다. 차지하다. 점거하다)’ 시위를 보면 ‘우리는 99%다!’ 라고 적힌 피켓을 흔드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상위 1% 만의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통계적으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사회의 불평등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경제성장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충분히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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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지요. 현실이 이렇다면 나라를 이끄는 사람들이 진정성 있는 고민을 해야 할 텐데. 그들은 자기 이익이이나 재선이 먼저인가 봅니다. 그러는 사이 K군의 고민은 점점 깊어져 갔던 것이지요.
바꿔나가야 합니다. 높은 분들이 해결해주길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회적인 모순을 해소한다고 해도 여전히 필요한 변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K군 스스로의 변화입니다.
얼마전 중국 청두에 갔다가 ‘모죽’이라는 대나무에 대해 들었습니다. 모죽은 씨를 뿌리고 5년 동안은 작은 순이 나오는 것 말고는 아무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섯 번 째 해가 끝나갈 무렵의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에도 몇 십 센티씩 무서운 속도로 자라나 거의 25미터에 이르도록 큰다는 것입니다. 신기하지요? 그러니까 모죽은 그 5년 동안 자라지 않았던 것이 아닙니다. 땅 속에서 뿌리를 키우며 도약을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때가 오면 다른 어떤 식물보다도 빨리 그리고 높이 커나갑니다.
저는 우리의 인생이 모죽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물을 한 번 끓여보세요. 섭씨 100도에 이르면 아무리 열을 가해도 더 이상 온도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열을 가하면 물은 기체로 변해 하늘로 올라갑니다. 질적 도약을 위해서는 아무 성과 없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10만큼 노력해서 10만큼의 성과가 꼬박꼬박 나온다면 당장 결과가 눈앞에 보이는데 누가 노력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100도의 물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전혀 변화가 없는 지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어느 정도 시도해보다가 결국 포기합니다. 하지만 이 구간을 묵묵히 버티며 더 뜨거운 땀을 쏟아낸 소수의 사람들이 비로소 성공의 달콤함을 맛보는 것이겠지요.
K군, 견디십시오.
그대는 모죽입니다. 비등점을 코앞에 둔 펄펄 끓는 물입니다.
준비하세요. 모죽처럼. 끓는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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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란 우리를 단번에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차근차근 오르면서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아야 하는 계단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일단 버스에 올라타세요. 버스에 올라탔을 때 어쩌면 K군은 당분가 서서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들 앉아 있는데 혼자만 서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제일 신경질 나는 순간이지요. 하지만 서 있다고 해서 앉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또 앉아 가는 사람이 선 사람을 비웃을 일도 아니고요. 어쨌든 버스는 갑니다. 우리의 목적지까지.
K군이 지금 취업을 못 하고 있다 해서 인생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이라는 버스는 가고 있습니다.
잘 앉아서 가고 싶다면 다시 버스에서 내려 빈자리가 있는 다음 차를 기다리거나 필요하다면 종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버스를 타면 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시라는 뜻입니다. 생각보다 늦지 않았거든요.
제가 아는 분의 실제 얘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열아홉 차례나 취업 면접에서 낙방했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자기 낙방 횟수를 세어봤겠습니까. 처음 몇 번은 그러려니 했겠지요. 그런데 열 번이 넘어가고 스무 번 가까이 되자 이건 취직이 안 되어 슬픈 게 아니라 자기 존재가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고 있다는 지괴감에 괴로웠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 사장입니다. 입사 지원자들의 면접을 불 때, 꼭 이 말을 덧붙인다고 합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뛰어난 사람이나 훌륭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 기질을 가진 사람을 찾는 것 뿐입니다.
K군, 실망은 하더라도 포기하진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달리느냐 넘어지느냐가 아니라, 언제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 입니다.
추신, 아까 그 열아홉 번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분 말인데요. 고민하다가 실명을 밝힙니다. 이 팩을 출간하는 문학동네 출판그룹의 강병선 대표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책을 통해 K군에게 답장을 쓸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K군도 나도 그의 숱한 실패에 감사드려야겠지요.
■ 리셋, 내 인생
자꾸만 내가 흔들리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내 인생이 남의 지문으로 가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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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이다. 버리자. 더 이상 버릴 게 없는 내 것으로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 - 알렌 코헨 ‘내 것이 아니면 모두 버려라’ -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이것저것 눌러봐도 아무 반응이 없다. 프로그램이 엉망이 되어버린 게 분명하다 순간 황망해하다가 “에잇”하면서 리셋(reset) 버튼을 누른다.
컴퓨터를 다시 시작하지 않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컴퓨터는 잠시 망설이다가 “정말?”하고 묻는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어쩌랴. 작업하던 원고가 저장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 아깝기는 하지만 기억을 더듬어 새로 쓰기로 마음 먹고 “예” 버튼을 누른다. 그제야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하나씩 종료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죽인다. 그리고는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살아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새로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린다.
컴퓨터 작업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고비에서도 그렇다. 인생에도 리셋버튼이 있어서 컴퓨터처럼 껐다가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충동을 느낀다.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씩 종료시키고, 다시금 새로운 상태로 출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사람은 컴퓨터가 아니니 죽었다가 살아날 수는 없지만. 마음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조건이 있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에 ‘예’라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지금까지 쌓아 온 내 인생의 어쭙잖은 기득권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는 스스로의 결의가 따라준다면, 우리 인생은 리셋이 가능하다.
오일러라는 수학자가 있다. 수학교과서에 나오는 ‘오일러의 법칙’을 남긴 바로 그 위대한 학자다. 그는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심한 열병을 앓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머지 한쪽 눈도 백내장으로 시력이 떨어져 결국 앞은 전혀 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명한 이후에도 그는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어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오일러는 나머지 눈의 시력마저 잃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후 두 눈을 감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실명한 이후의 삶을 미리 연습한 것이다. 결국 그는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에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 않고 계속 훌륭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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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새로 시작해보고 싶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한다. 손에 쥔 것들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모두 잃는다’는 두려움에 리셋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삶의 리셋 버튼을 누르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스물여덟 살에 아이와 단둘이 남은 이혼녀가 있었다. 정부에서 빈곤층 생활보조금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갔다. 그런데 이 여인이 어느 날 작가가 되겠다며 유모차를 밀고 동네 카페에 나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꿈은 가상하지만, 원고를 다 쓰고도 복사비가 없어서 8만 단어나 되는 글을 처음부터 다시 타자에 입력해야 할 정도로 현실은 비참했다. 주위에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이 있다면 계속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해줄 수 있을까? 일단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면서 생활을 먼저 수습하라고 권고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바로 이 여인이 훗날 ‘헤리 포터’ 시리즈로 영국 여왕보다더 큰 부자가 된 조앤 롤링이다 하버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는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준다. 나는 내게 가장 중요한 작업을 마치는 데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런 견고함 위에서 나는 인생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일을 그만두고 정말 중요한 일을 시작하라.”
허루 종일 몸을 움직이면 1미터를 살 수 있는 애벌레가 죽기 전에 10 Km를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열심히 몸을 꿈틀거려야 할까? 아니다. 리셋해야 한다. 나비로 변해 훨훨 날아 가야 한다.
가난하고 비참했던 조앤 롤링은 자신의 처지에 매몰되지 않고 어느 날 마법사의 빗자루를 타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올랐다. 불필요한 껍질을 모두 벗어버리고 진정한 변신을 위해 집중했다.
연연하는 것을 버리면, 삶은 가슴 벅찬 도전이 된다.
삶을 리셋하고 싶은가? 아직 늦지 않았다.
놓아라! 준비하라! 그리고 시작하라!
■ 우리는 어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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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제자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내가 새내기 교수일 때 석사 논문 지도학생이었던 친구다.
그 친구 덕에 당시 재학생들이 모처럼 다시 모여 식사를 했다. 처음엔 잠시 어색하더니 모두 옛날로 돌아간 듯 정겹다. 다들 그때 그대로다 그들도 이제 마흔이 가까워오지만 내게는 아직도 어린 학생으로 보인다. 한참 옛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이제 저희가 그 당시 선생님보다 더 나이 들었네요. 저희에게 선생님은 한참 더 어른인 것 같았는데…….”
‘그렇구나 그때 내가 갓 교수 되고 득의양양 선생인 척했지만 저렇게 어렸었구나. 이제는 저들도 알겠구나 그 당시 자신이 믿고 따랐던 지도교수도 향편 없이 미숙한 30대 어른아이 였다는 것을.’
모임이 끝나고도 치부를 들킨 듯, 부끄러운 질문 하나가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정말 어른이었을까? 아니 15년이 지난 지금은. 나는 어른일까?
어릴 때 내가 본 아버지와 어른의 세계는 ‘나의 미래’라기보다는 그저 막연한 ‘남의 나라’일 뿐이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고민도 감정도 없고 그냥기계처럼 안정적인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는, 그래서 어쩌면 더 성숙한 어른들의 세상 말이다. ‘아빠는 당연히 그런 존재, 어른은 당연히 저런 것’ 이라는 전제 이외에 달리 생각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되어 직장을 갖고 자식을 낳고 나니 비로소 알겠다. 어른도 여전히 흔들린다는 것을. 청춘 시절과 다를 바 없이 크고 작은 고민이 많고 감정이 출렁이는 미성숙한 유기적 존재라는 것을. 이후 더 나이 든 후에 다시 깨달았다. 케이크에 초를 아무리 많이 꽂게 되더라도.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극적으로 철들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간은 나이가 든다고 거저 원숙해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자식이나 제자에게 함부로 털어 놓을 수 없는 어른들의 비밀이다.
시간은 우리를 저절로 어른으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스스로 성찰하며 성숙해가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될까? 법률적 성년인 만 20세가 됐을 때? 대학교를 졸업할 때? 직장에 들어갈 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할 때? 결혼할 때? 자녀를 가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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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법적으로 스무 살이면 어른이다. 미성년 딱지를 떼고 각종 법률 행위를 독자적으로 할 수 있고, 술이나 담배 같은 금기도 풀린다. 하지만 인생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삶을 책임지는 것이 어른이다. 경제적 수입이나 심리적 안정면에서는 나아질지 모르지만, 인생의 책임이 확연하게 육중해지면서 “아, 이제 잔치는 끝났구나”하고 되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여러 학생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당신은 어른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 “나는 아직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 언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되물으면 그건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신은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종종 ‘나는 충분히 어른일까?’ 라는 의문을 품는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혹시 어른이란 연령, 혼인, 선거권, 소득, 세금 같은 어떤 조건을 갖췄을 때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존재로 성숙해가는 ‘과정’에 가깝지 않을까? 공자는 나이 서른이면 이립(而立)하여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며” 마흔이면 불혹(不惑)하여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 고 했다.
매년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왜 제대로 된 도덕 하나를 갖추지 못하고, 왜 이다지도 형편 없이 판단이 흔들리는지, 반성하고 또 자책했다. 그런데 이제 쉰 살이 다 되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 흔들림이 실은 당연하다는 것을. 그 흔들림을 넘어 선 공자님이 그래서 위대한 분이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제 다 왔다”고 말하면 안 된다. 대신 “조금 더 가보자”라고 말해야 한다. “이제 와서……”라고 유보하면 안 된다. 대신 “지금이니까”라고 격려해야 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공부하라”고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 흔들리면서도 자기를 돌아보며 어제 보다 한 뼘 더 성숙해가는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바로 어른이었던 것이다. 생애를 마치며 스스로 온전히 어른이라고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인생이리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어른이 아니라 천 번을 흔들려야 겨우 어른이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렇다면 ‘흔들려서 어른’이다. 그래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 나와 당신의 흔들림은 지극히 당연한 ‘어른 되기’의 여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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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모르파티 - 네 운명을 사랑하라 -
뜨거운 햇볕 아래 발밑에 진하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볼 때,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에게는 이 그림자만큼이나 떼어내기 힘든 운명 같은 굴레가 있다고. 내게만 있는 줄 알았지만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존재하는 굴레가 있다고.
내가 스물다섯이 되었을 때, 오랫동안 숨겨온 가족의 아픔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어쩌다보니 생겨났고, 또 어쩌다보니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집안의 어른들이 잇달아 돌아가시고 나 혼자 그걸 해결해야만 했을 때. 나는 하늘에 물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 건데?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그렇게 힘들어 하다가, 우연히 이런 말을 만났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
그랬다. 누구의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내 문제였다. 어쨌거나 내가 해결하고 내가 안고 가야 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한층 마음이 편해졌다. 어떻게 생겼거나 결국은 ‘내 운명’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강연을 하고 나면 청중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 있다. 그때마다 빠짐없이 나오는 질문이 “선생님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이다.
이런 질문은 가급적 답변을 피한다. 어쩔 수 없이 꼭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면 할 수 없이 이렇게 말한다.
“제 경우에는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지나갈 때까지 견디는 거지요.” 그리고 약간의 부연 설명. “저는 뭔가를 극복할 만큼 강한 사람이 못 돼요. 그래도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만 좌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견디면 됩니다. 결국 다 지나갑니다. 아픔도 기쁨도.”
그리고 한 마디 더. 나는 겨우 힘을 내어 대답한다.
아모르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
곧 봄이 옵니다. 지난겨울. 정말 춥고 눈도 많이 왔지요? 그렇게 추웠다고 해서 이번 봄에 새싹이 돋아나지 않진 않을 것입니다. 이 어려움 속에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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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씨앗이 계속 자라고 있음을 잊지 말고, 그 희망의 씨앗을 싹틔우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도록 노력해보십시오.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잔인한 말이다. 어떤 몸부림으로도 떨어낼 수 없는 문신 같은 형벌로 남아 있는 그 운명을 사랑하라는 조언은, 제3자가 가볍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니다.그래서 나는 그 원망을 각오한 후에야 간신히 이 말을 꺼낸다. “네 운명을 사랑하라”가 결코 역경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라는 게 아니라. 운명을 자신의 몫으로 인정한 후에야 비로소 버틸 힘도 생긴다는 뜻임을 알아주길 소망하며 말이다.
2012년 2월 유디(유인나)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국 ‘멘토 특집’에서 어느 청년에게 보낸 편지다.
어떤 몸부림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독한 아픔, 실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래, 발밑에 진하게 붙어 있는 그림자를 볼 때,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빛이 밝으면 누구에게나 밟고 버텨야 하는 그림자가 생기는 법이라고요. 잔뜩 흐린 날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인생의 빛줄기가 환희처럼 쏟아져 내리는 밝은 대낮에 음영이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지는 것이라고요. 그 그림자. 필연이라고요.
그러므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십시오. 버텨내십시오. 친구하십시오. 물론 이런 혹독한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님이 그 앞에 가 보았듯이 말이지요.
나는 님이 사랑하는 이들의 질병과 탈선,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과 고독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삶을 멋지게 엮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차츰 배워나가면서 말이지요. 그 거칠고 가파른 운명의 자갈길을 견뎌내다 보면, 어느 순간 잘 다져진 행복이 오솔길에 다다랐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힘을 내세요.
이해인 수녀님의 ‘어떤 결심’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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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 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그렇다 육체적 통증이 격심할 때에도 그 한순간만 살아넘기고 나면 견딜 수 있다. 깊은 좌절이 그 바닥을 보여주지 않을 때에도 마음을 호두 껍데기로 단단히 감싸고 꼭 하루씩만 살아가면 견딜 수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다 보면 신기하게도 지나간 얘기로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오고야마는 것이다.
꼭 하루씩만 살아내자. 그러기 위해 반드시 외워야 할 주문이 있다. 독실한 신도가 몸을 접듯 간절하게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되뇌어야 하는 주문이. 그러다보면 어느덧 자신과 그 숙명을 바꾸어 줄 바로 그 주문이.
아모르파티.
네 운명을 사랑하라.
견디자. 다 지나간다.
■ 어른의 트릴레마, 혹은 힘겨운 저글링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 헤밍웨이 -
직장인인 당신이 결혼해서 유치원생 딸을 하나 두고 있다. 오늘 저녁 다음과 같은 일정이 잡혀 있다고 한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1. 회사일
외국에서 중요한 바이어가 방문해 실무책임자인 당신과 미팅을 가져야 한다.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인데 내일 출국한다고 한다. 기간은 오늘 저녁, 만날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2. 가족일
딸의 첫 번째 학예회, 유치원 연극에서 주연을 맡은 딸과는 몇 차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당신도 꼭 참석한다고 약속했다.
3. 나의 일
젊은 시절 당신의 우상이었던 록밴드의 내한 공연이 하필 오늘 저녁이고 당신은 진작 티켓 두 장을 예매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마지막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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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당신은 어느 곳으로 가겠는가?
지나치게 극단적인 설정이라고 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 앞가림만 잘 하면 족하던 청춘 시절과는 달리 어른에게는 이처럼 가혹한 선택이 강요될 때가 있다.
직장과 가정과 자아는 서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3중 딜레마 (dilemma 의 di는 2중이라는 뜻이다).
즉 어른의 트릴레마(tri-lemma)
추측해 보건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을, 가족보다는 직장을 많이 선택할 것 같다.
아마도 가장 선택받기 힘든 것은 콘서트일 것이다. 물론 솔직한 ‘욕망’의 순위로는 콘서트가 1위일지 모르지만,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콘서트를 제일 먼저 포기하는 것은, 원망할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직장일이나 학예회를 포기하면 가족이나 직장 상사에게 모질게 책망받지만. 콘서트의 경우는 자신의 마음만 비우면 깨끗이 끝난다. 사람들은 가장 선호하는 대안을 선택하기 보다는, 가장 덜 비난받는 대안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래저래 어느 경우든 ,어른 노릇은 어렵고, ‘나’는 슬프다.
중국 상하이의 초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는 하루에 얼마를 벌어요?” 아버지는 심드렁하게 “그건 알아서 뭐하게? 30위안 밖에 못 번다.” 하고 답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토요일 아침 소년이 막 출근하려는 아버지를 막아섰다. “잠깐만요! 오늘 하루만 제가 아빠를 고용하면 안돼요?”
소년은 주머니에서 20위안 지폐 두 장을 꺼내더니 아버지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이 40위안을 모으기 위해 소년은 한 달 치 학교 급식비를 내지 않고 매일 점심에 만두 두 개만 먹으며 버텼다. 소년은 30위안으로 아버지를 사고, 나머지 10위안으로는 공원 입장권과 아버지의 도시락 하나를 사려했다.
오래전 중국의 ‘베이징 저널’에 실렸던 이야기라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먹고 살기 위해 주말을 반납하며 일해야 하는 아버지나, 그 아빠와 하루만이라도 공원에서 놀기 위해 ‘아빠를 사려던’ 아들이나 대한민국의 풍경과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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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들이 꼬박 한 달 동안 밥을 굶은 돈 40위안을 받아든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결국 인생이란 직장과 가정과 자아와 그 밖의 변수들로 행해지는 영원한 저글링(juggling)이다. 저글링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공을 내팽개치고 어느 하나만 꽉 잡는 것도, 모든 공을 한번에 잡는 것도 아니다. 공을 제때 손에서 놓아가며 균형을 잡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관심의 분배다. 적절히 나누고 여유 있게 풀어주어야 한다.
삶이 곡예다. 해야 할 일의 돌려막기다. 그러니 이번에 공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고 무릎을 꺾고 주저앉진 말자. 저기 당신이 공중으로 띄워 올릴 다음 공이 이미 날아오르고 있으니까.
처음의 질문을 두고 나에게 어떡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아마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일단 딸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학예회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퇴근길이 꽉 막히는 바람에 이미 학예회는 시작되었고 와봐야 소용없다는 화난 아내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야 그럼 바이어라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돌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다리다 지쳐 바이어는 돌아가고 없다. 기왕 이리 된 마당에 콘서트 끝물이라도 보자 싶어 공연장으로 달려가보지만 방금 끝났단다. 아아, 상상만으로도 슬프다. 어른의 고단한 삶이여!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바이어를 딸의 학예회장 근처에서 만난다. 우리 가족을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학예회장에 함께 들러 아내와 딸을 소개한다. 딸에게는 끝까지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쪽지와 선물을 남기고 연극이 시작되면 바로 나온다. 그리고는 바이어에게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선, 대신 멋진 콘서트를 본 후 뒤풀이로 생맥주를 마시면서 업무 얘기를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가족을 소개하고, 다시는 봇 볼 공연을 함께 볼 만큼 친해졌으니, 비즈니스에서도 분명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 당신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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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중요하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형편없는 지경에 놓여 있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가치 있다.
인간은 가치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 있다.
대학 3학년 때다. 학과동아리에서 학술제를 위해 ‘성공’한 선배를 만나 인터뷰하고 기금을 모금한 적이 있었다. 우리 조에서 만난 분은 어느 부장판사님, 대학교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를 마친 후 동기 중에 항상 1등으로 승진해서 누구나 인정하는 대법관 후보1순위가 되신 분. 이를테면 전국 법과 대학생들의 롤모델 같은 분이었다.
늦은 오후 그분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어렵게 찾아온 젊은 후배들이 반가웠는지 저녁을 사겠다고 하셨다. 반주가 몇 차례 돌고 왁자지껄 하다가 잠시 침묵이 흐른 순간 내 친구가 물었다.
“판사님은 왜 사세요?”
정적 속에서 불쑥, 그것도 아무 맥락 없이 던진 약간은 무례한 질문이라 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런데 잠시 후에 나온 그의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뭐.”
나는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선망 받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이 사는 이유가 고작 ‘죽지 못해서라니? 그러면 저분처럼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는 뭐가 되는가.
그때 스물둘이던 나는 어렴풋이 느꼈다.
‘인생에는 성공으로 채울 수 없는 공허가 있구나…’
그리고 이제 내가 그 부장판사님의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왜 사는가? 나의 삶은 왜 의미 있는가?
사람들은 세상이 인정할 만한 뛰어난 실적과 성취를 이뤄야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모든 법대생들이 가장 본받고 싶어하는 판사님이라 해도 자신의 삶에 대한 존중이 빠져 있다면 그 성취란 백사장의 모래성처럼 부질없다. 자신의 가치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다. 스스로 존귀함에 대해 인정할 수 있어야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그래야만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른의 성찰이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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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중요한가? 심지어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형편없는 지경에 있더라도, 나는 왜 여전히 가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시킬 수 있는가? 세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당신이 사랑하고 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내 영결식장에서 드러날 나의 가치는 과연 얼마만큼일까? 내가 헤어져서 슬픈 사람들, 나를 잃어서 슬픈 사람들, 그 합이 아닐까? 지금 내가 죽는다면 가장 아까운 것은 벌어 놓은 돈이나 놓고 가야하는 직위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와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간단한 사실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할 때, 그것이 나의 가치를 말해준다.
둘째, 당신은 아직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데 기여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꼭 세계평화를 지키는 거창한 일일 필요도 없다.
작은 화분을 가꾸고 내 집 앞길을 청소하는 일은 지구의 한 귀퉁이를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했고 편리하게 해 준 것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적어도 그만큼은 가치가 있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이 세상 누군가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한.
셋째, 당신은 조금씩 더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가장 아름다운 궁극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기 위해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와 싸우며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삶은 가치 있다. 비록 세상을 뒤집어 놓을 큰 변화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더 새로운 ‘나’를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면.
어떻게 하면 더 풍요한 나를 만들 수 있을까? 풍요는 ‘가지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소유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소유물은 언제든지 잃어버릴 수 있지만 경험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많이 체험하고 배우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의 풍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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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가치있다.
조금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을 수 있는. 당신은 가치 있다. 당신의 사명에 다가가며 남들을 돕고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당신은 가치 있다. 좀더 완성된 자신을 위해 조금씩 배우고 경험해 가는 당신은 가치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 인생의 하인리히 법칙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감독관이었던 하인리히는 각종 노동 재해 사고를 분석한 결과, 중상자 1명이 나오면 통계적으로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또 운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29:300의 법칙’으로 표현되는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 예방이나 리스크 관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이론이다. 한 번의 큰 재난은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미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었고 무려 300번의 ‘있을 뻔’한 징후가 있었다는 것이다. 작은 징후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자 할 때 주로 언급힌다.
하지만 하인리히 법칙이 정작 무서운 것은 현실에서는 오히려 반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걱정 마. 내가 300번이나 경험했는데 아무 일 없어”하고 안도하게 하는 것이다. 설사 일이 일어나더라도 29번은 경미한 사고다. 그렇게 방심할 때, 돌이킬 수 없는 한 번의 재난이 닥친다.
일상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음주운전이 대표적이다. 난생 처음 음주운전을 한 날 단속에 걸리거나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볍게 한잔, 그리고 조심조심 가니 단속에도 걸리지 않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별일 없다’는 자기 확신이 커지고 어느 순간 그 ‘큰 일’이 닥치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하인리히 법칙이 무서운 이유다.
오늘 무사히 넘어간 잘못이 있었는가? 다행이 아니다. 불행이다. 그대는 경고를 받았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계속된다. 사건 현장에서도 당신의 삶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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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청춘, 세상에 나가다
■ 내 인생의 반전드라마
0 최악의 집주인이 최고의 집주인이다.
내가 재직중인 대학에 교수들을 위한 아파트가 있다. 무주택 신임교수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2년 정도 임대해 준다.
예나 지급이나 서울 전셋값이 보통 비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수아파트 입주는 대단한 행운이었다. 큰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이곳저곳 집구하러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당연히 나도 교수가 되자마자 신청했다. 아쉽게도 떨어졌다. 속이 많이 상했다. 당첨된 동료가 부척 부러웠다. 결국 여기저기 손을 별려 전셋집을 구했다.
전세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니어서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대출을 받고, 전세를 안고, 친지에게 돈을 빌리고, 아무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2년 후에야 겨우 내 집을 마련했다.
비슷한 시기에 교수아파트 입주 기간이 끝나가는 동료교수를 만났는데 걱정이 대단했다.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시점은 다가오는데 그동안 서울 전셋값이 폭등해서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교수아파트 입주에 당첨됐을 때 나에게 으쓱대던 그가, 이제는 반대로 나를 부러워했다.
순간 깨달음이 왔다. ‘최악의 집주인이 최고의 집주인’ 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확연히 느껴졌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최악으로 괴롭히면 세입자는 이를 악물고 내집 마련에 노력한다.
어느 날의 좌절이 훗날 멋진 반전이 되어 준다. 위기가 깊을수록 반전은 짜릿하다. 포기하지 말자. 내 인생의 반전드라마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0 일찍 잘라줘서 고마워요
지인이 실직을 했다. 55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공기업이었는데 사내 정치에 휘말리는 바람에 정년을 5년 남짓 남겨놓고 졸지에 사표를 내게 됐다. 그는 실망과 걱정과 원망에 짓눌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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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도 많이 염려했는데 1년도 안 되어 그에게서 한 잔 하자는 연락이 왔다. 풀죽은 모습은 간데없고 매우 활기차 보였다. 작은 사업을 시작했고 부업으로 보험설계사로도 일한다고 했다. 헤어질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만약 정년을 다 채우고 나와서 새로 일을 모색했다면 굉장히 어려웠을 거라고.
“그때는 나를 내친 사람들이 그리도 원망스러웠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고마워요. 더 늦기 전에 나를 잘라줘서! 허허.”
그 말은 자기합리화가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0 이것도 한 판의 바둑이었겠습니다.
나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하지만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 바둑 중계방송을 자주 보았다.
해설자가 바둑 진행 상황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복기하다가.
“예 이것도 한 판의 바둑이었겠습니다.”
“이것도 한 판의 바둑”. 나는 이 말을 정말 좋아한다. 주로 “이것도 한 판의 인생이겠지요”라고 바꿔서 말한다. 인생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창회에 나가면 모두 학창시절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그때마다 새삼 느낌다. 저마다의 인생에 걸맞은 각자의 답이 있었구나. 그런데 그 답은 적절한 때가 되기 전엔 자기 자신조차 모르는 것이었구나.
인생의 바둑이 멋진 것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고 생각한 패 이후에 이어지는 삶의 궤적이 그 당시엔 나름 성공으로 보였던 궤적보다 전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번 실패로 내 꿈이 무산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꿈은 결코 도망가지 않는다. 도망가는 건 항상 당신 자신이다. 왜냐면 실패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실패에 한 번의 아픔이 있고, 한 번의 아픔으로부터 한 번의 성장이 있다. 그리고 그 성장이 우리를 꿈에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
8천 미터가 넘는 히말라야 14좌를 세계 최초로 완등하고 그 중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홀로 무산소 등정해 ‘세기의 철인’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등산가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버티는 한 다리는 견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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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가 버텨주는 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일어날 용기를 잃는 것을 두려워 하라.
■ 너의 성공에 대비하라
어려우면 초심을 돌아보고, 성공하면 마지막을 살펴보라. - 채근담 -
우리는 성공보다 실패를 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실패에 익숙하다. 작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말라는 조언도 많이 듣는다. 실패했다는 것은 목표가 아직 저기 견고하게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그렇다면 그것을 향해 다시 도전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은 인생에 몇 번 오지 않기 때문에 대비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래서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성공에도 대비가 필요하다고? 성공도 견뎌내야 하는 것이라고? 그렇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예기치 못한 실패보다 위험하다.
얼마 전 휘트니 휴스턴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물중독 때문이라고 한다. 좋아했던 가수인데 말로가 좋지 않아 안타깝다.
휘트니 휴스턴뿐만 아니라 일찍 성공한 스타들이 속절없이 추락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이런 안쓰러운 소식들은 준비되지 않은 성공의 이면을 말해준다. 스포트라이트가 눈부실수록 그림자도 길고 진하게 남는다. 우리가 직시해야 하는 것은 조명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닮은 그림자다. 화려한 조명만을 바라보다가는 눈이 먼다. 세상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인간의 가장 큰 불행은 두 가지다. 하나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꿈이 이루어져버리는 것이다.” 라고 했다. 재미있다.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불행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불행이라니! 독설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 답다.
인생에서 정작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꿈은 현실이 되어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된다. 비록 그것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꿈이 남아 있지 않은 삶. 그것은 얼마나 맥 빠지는 인생일 것인가? 꿈이 없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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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꿈의 실현, 거액의 복권처럼 과분한 성공.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번 더 큰 목표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 공허를 채우고자 한다. 그러면 인생은 바닷물을 들이켠 것처럼 마시면 마실수록 더 큰 갈증을 느끼는 거대한 순환이 된다. 나중에는 자기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자신을 몰아가게 된다. 이쯤 되면 결국 자기 자신을 희생물로 삼는 일마저 생긴다. 약물, 알코올, 섹스, 도박 등에 의존하는 유명인들의 사례다.
그만큼 엄청난 성공을 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실패했을 때보다 성공했을 때 더 세심한 자기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 떠나느냐 남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처음 취직이 되었을 때는 그래도 한숨 돌렸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목표하던 ‘꿈의 직장’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내게 돈을 주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견했던가! 첫 출근 날, 입을 옷을 고르던 새 아침에 솟구치던 희열과 팽팽한 긴장감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지 않은 신입 사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적응하기 어렵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요즘처럼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그래도 다닐 회사가 있다는 게 어디냐고 스스로를 위안해보지만 자꾸 다른 생각이 든다. 일단 취업하는 데 급급해서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고민을 비로소 시작하게 된다. 지쳐 퇴근하다가 혼자 들른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비울 때, 차라리 이등병이 부러워지는 것이다.
한국의 간판 대기업 10곳을 조사한 결과, 대졸 신입사원들의 입사 3년 이내 퇴사율은 10개 회사의 절반가량이 20%를 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한 회사에서 강연을 마치고 CEO와 커피 한잔을 마셨다. 내가 젊은 직장인들을 위해 글을 쓰고 있다니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 젊은 사원들은 학교에서 했어야 할 고민을, 회사 들어와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요즘 청춘이 힘든 이유가 사춘기 시절인 중고등학교 때 했어야 할 고민들이 대입 준비 때문에 유보되다가, 대학생 때 비로소 터져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해온 탓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학생 때 했어야 할 고민들을 취업 준비 때문에 유보하다가 직장인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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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야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제때 제 고민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직장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이유라면 좀 더 참고, ‘새로 시작하고픈 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슴이 뛴다’ 면 용기를 내라. 어떤 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큰지는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의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안겨주었는가? 지금까지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가? 이들 질문에 대답하였을 대 자신의 본질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자신이 진실로 사랑하고, 영혼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끌어 주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탑을 쌓듯이 계속 쌓아 올려야 한다. 그러므로 단지 ‘못해먹겠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던지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일이다.
“사랑하지 않을 것이면 떠나고, 떠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라.” 마음에 사표를 품은 직장인은 누구나 선택의 기로 앞에서 고민하는 햄릿이다. 그 유명한 고뇌의 대사가 바로 당신의 번민이었던 것이다.
떠나느냐 남느냐(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스트레스(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실직자의 고난에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다시 극복해야(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현명한(고귀한)일일까?
* 셰익스피어의 ‘햄릿’ 3막 1장 -( )안은 원문. 궁서체 부분은 필자가 강조 한 부분. ‘실직자의’ 부분은 필자가 추가한 부분
■ 첫 월급
내가 첫 월급을 받던 날이 떠오른다. 그 전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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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처음 받아든 서울대학교의 급여명세서는 내가 받아본 어떤 증서보다도 영예로웠다.
첫 월급, 우리는 잊지 못한다. 처음 소속된 낮선 공간에서 한 달 내내 일한 내 땀의 첫 대가를. 그건 아마도 첫 사냥에 나선 젊은 사자가 제힘으로 먹잇감을 쓰러뜨렸을 때의 쾌감에 비할 수 있으리라. 물론 부모님께 속옷도 사드리고 친구들에게 한턱내느라 며칠 지나지 않아 통장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서겠지만, 급여 통장에 선명하게 찍힌 입금액수는 내가 진짜 어른이 되었다는 견고한 증거일 터이다. 한 달간 내 몸과 마음을 바친 대가로는 아직 적은 액수이지만, 커다란 꿈을 향해 출발하는 이에게는 대견한 액수다.
늘 누군가에게 의존해 소비자로만 살았던 생애주기를, 이제는 내 힘으로 생산하고 또 소비할 수 있는 생산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주기로 바꾸는 위대한 변곡점이 이날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첫 월급의 명세서를 보관하고 있다. 오랜 기다림이 값을 했다는 그 뚜렷한 증거를 초심을 담아 간직하기 위해서다.
직장 생활이 버겁게 느껴질 때마다 지금보다 적은 첫 월급 액수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던 기분을 되새기곤 한다.
매달 급여일만이라도 첫 월급날을 기억해야겠다. 내 인생에 경제적 이등분점이 찍혀진 날, 내가 소득으로서 비로소 어른이 된 기념일을 통해 흐트러진 일상을 다잡고 초심을 떠올리고 싶다.
■ 일이냐, 돈이냐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갖고 일을 한다. 이 사실은 자못 분명한 것 같다. 돈을 바라지 않고 하는 일은 ‘자원봉사’나 ‘재능기부’라고 부르지 직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보수가 지급되지 않는 전업주부의 가사노동도 현물의 화폐가 오가지 않을 뿐, 법적인 문제가 생기면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계산한다.
많은 이들이 더 많은 보수를 주는 직업을 흔히 더 ‘좋은 일’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다. 인생 선배들은 돈 때문에 일하지 말라고 한다. 큰돈을 번 사람일수록 ‘나는 돈 벌려고 열심히 일한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큰돈이 생겼다’고 말한다. 자수성가한 분들의 인터뷰를 보면 모두 같은 취지의 말을 한다. 왜 그럴까? 그냥 겸손일까? 아니면 가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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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했다는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찾으십시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 말은 좋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우선 스스로에게 진솔하게 묻자.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는가?”
일본 도쿄 대학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 이라는 책을 읽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과연 사랑하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떠올려보았다.
“한 30억원 정도의 로또에 당첨이 된다고 해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야! 그런 큰돈이 있는데 이런 일을 뭐하러 해?” 라고 답한다면 돈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아니야, 그래도 이 일은 계속될 것 같아. 지금처럼 아등바등하진 않더라도 즐기면서 그냥 재미로라도……”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고도 오히려 불행해 지는 사람이 많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일을 그만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에는 돈벌이 이상의 의미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일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은 뭘까? 그대는 궁금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장하는 것이다.
운동 가운데서는 골프, 당구, 마라톤이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든데, 이들의 공통점은 성장의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 운동들은 ‘자기 레벨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운동과 확연히 다르다.
‘오늘 싱글을 기록했다’ ‘200을 놓고 이겼다’ ‘마의 네 시간 벽을 깼다’는 식으로 실력 향상을 객관적인 자료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기 힘들다. 배우고 자라는 일은 경쟁에서 이기는 일보다 재미있다.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여덟살 때 동네 쓰레기통에서 병뚜껑을 모으며 음료의 수요를 짐작했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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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대한 집중과 사소한 일들에서도 경험을 쌓으며 배우겠다는 열정이다.
자신의 일이 자꾸 시시해 보이는 것은 자꾸 다른 직업과 자신의 직업을 비교하기 때문이다. 경영기법에 벤치마킹이라는 용어가 있다. 강물의 깊이를 재기 위해 세워둔 막대를 ‘벤치마크’라고 하는데,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상대를 정해 자신과 비교하고 모자란 점을 찾아 배우는 것을 말한다. 기업을 경영할 때뿐만 아니라 인생을 설계할 때에도 벤치마킹은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벤치마킹(bench marking)' 보다는 ‘퓨처마킹(future marking)’이 아닐까 생각한다. 톰 피터스라는 학자가 “2010년을 살지만 2020년의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퓨처마킹이라고 불렀다. 미래사회를 내다보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자꾸 남이 하는 일을 선망하는가? 오스카 와일드의 표현을 빌리면.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 자리는 모두 찼다.”
■ 성공의 비밀, 신발 정리
명리풍수, 사주 등 우리 전통의 ‘강호철학’을 연구하는 조용헌 선생이 어느 날 ‘맹자’의 대가인 하금곡 선생을 만나‘운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대운(大運)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금곡 선생은 대운을 받으려면 네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구나 인생에서 두세 번의 대운이 찾아오는데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운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1. 말이 적어야 한다.
2. 수식어가 적어야 한다.
3. 찰색(察色), 즉 얼굴 색깔이 좋아야 한다.
4.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1번과 2번은 이해할 수 있다. “침묵은 금이다” “귀는 두 개고 입은 하나이다” “귀는 닫을 수 없지만 입은 닫을 수 있다” 등등. 성공하려면 말을 많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은 아주 많이 들어왔다.
더구나 말에 수식어가 많으면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구설수에 오르기 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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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3번 얼굴 색깔도 납득이 간다. 얼굴 색깔이 좋다는 것은 몸이 건강하고 마음을 너그럽게 유지해 왔다는 의미다. 당연히 대운을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 것이다.
그런데 4번은 납득이 조급 안 된다. 지금 대운, 즉 ‘커다란 운’을 받는 순간인데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니. 너무 쫀쫀하지 않은가! 꿈을 크게 가지라든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선을 자주 하라든지 좋은 스승을 만나 크게 배우라든지, 뭐 그런 중요한 일을 다 제쳐 놓고 신발 정리를 잘하라니!
금곡 선생의 신발정리는 ‘작은 일부터 스스로를 거두는 마음’이 모든 성공의 요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선생은 말한다.
“신발을 벗어 놓는 상태를 보면 그 사람의 평소 마음가짐이나 수신(修身)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신발이 어지럽게 놓여 있으면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고.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다가오는 대운을 받지 못한다.”
어느 날 신문에서 매우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유명 글로벌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내 피자 시장에서 점포수 기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스터피자’ 정우현 사장의 경영철학에 관한 얘기였다.
“우리 사훈은 ‘신발을 정리하자’입니다. 허식이 아닌 겸손, 진심과 정성. 이것이 초일류의 실천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조금 허탈하기까지 했다. 400개가 넘는 국내 매장을 운영하고 중국, 미국, 베트남에까지 진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결이 품질 제일 같은 멋진 구호가 아니라, 고작 ‘신발을 정리하자’였던 것이다.
중국학자 왕중추가 쓴 ‘디테일의 힘’이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결국 경쟁력의 관건이 되는 것은 작고 사소한 디테일이라는 것이다. 크고 장대한 것을 좋아하고 미세한 디테일은 하찮게 여기는 중국인들을 각성시키려는 책이었다지만, 이는 인생에도 적용할 수 있다. ‘100-1=0, 100에서 1을 빼면 99가 아니라 0이라는 것이다. 큰일을 망치는 것은 엄청난 실수가 아니라 아주 작은 흠집이다. 같은 논리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것은 필생의 ’한방‘이 아니라 작은 디테일의 총합이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틈만 나면 방 좀 치우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의 방은 대체로 어지러울 때가 많다.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해한다. 자기 방을 깨끗이 유지한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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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우냐면, 그것이 ‘성공의 첫째 비밀’일 만큼 어렵다. 그것이 쉽다면 누가 못하겠는가?
그대의 방과 신발은 어떠한가? 이것은 청결이나 정리정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머문 자리를 돌아볼 수 있는 삶의 방식과 실천의 문제다.
* 디테일(detail) - 자세하고 빈틈없이 꼼꼼하다. 세부적임. 상세함.
■ 고독은 나의 힘
내 지도로 석사 학위를 받고 취직한지 얼마 안 되는 제자가 학교로 찾아왔다. 직장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외로워요.”
이상하지 않은가? 좁디좁은 연구실에서 고작 몇십 명 대학원생끼리 복닥복닥 지지고 볶다가 수천 명의 사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로 자리를 옮겼는데, 외롭다니. 대답인즉슨 그래서 더 외롭단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홍수속에서 누구와 사귀어야 할지. 누구를 믿어야 할지 판단은 쉽지 않고. ‘아삽(ASAP. as soon as possible 의 약자로 ‘되도록 빨리’라는 의미)’ 으로 쏟아지는 일에 지쳐 친구들의 문자를 ‘씹기’ 일쑤고 …… 그러다보니 친했던 친구들은 점점 연락하기 힘들고 또 멀어지고…
고독은 어른의 블치병이다. 원래 고(孤)는 어려서 부모가 없는 것이고, 독(獨)은 늙어서 자식이 없는 것이라는데, 이 두 글자를 합치면 어른이 되어 삶의 무게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존재란 홀로 태어나 홀로 죽는 것이니 사실 고독은 어른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리라.
다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너무 바쁘다고 말한다. 그래서 ‘내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불편한 진실은… 우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만나야 할 절대 고독의 시간을 누군가 만나 무언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빈틈없이 꽉꽉 채운다. 그렇게 일상은 외로움을 면해보려는 몸부림으로 채워지고, 여가시간엔 고독하지 않은 척 스스로를 속인다.
하지만 바쁠수록 명심해야 한다. 성찰과 성장은 혼자 있을 때 싹튼다. 중요한 것은 고독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다. 외로움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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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의 슬픔
직선으로 달려가지 마라. 아름다운 길에 직선은 없다.
바람도 강물도 직선은 재앙이다.
굽이굽이 돌아가기에 깊고 멀리 가는 강물이다.
- 박노해 ‘직선이 없다’-
직산(直線)의 수학적 정의를 아는가?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를 이은 선’이다. 학창 시절에 이 정의를 접하고 내심 놀랐다. 직선, 하면 떠오르는 ‘똑 바른’ 혹은 ‘곧게 뻗은’ 같은 일반적 속성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최단거리’라는 사뭇 건조한 용어로 정의하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 그래서 두 점 사이의 직선은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그게 기하학의 공리란다. 생각하면 좀 서글프다. 직선의 삶에는, 저기까지 가는 데 딱 하나의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 치의 어긋남 없는 최단 거리로.
요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이야기 한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에게 행복은 화두가 아니었다. ‘성공’이 중요했다. 일단 성공하면 행복해진다고 믿고 성공을 위해 한눈팔지 않고 줄기차게 뛰어왔던 것이다. 이제 그 믿음에 금이 가고 있다. 많이 이룬다는 것이 곧 행복을 보장하는 길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사람들이 깨닫고 있다.
행복은 무조선 많이 성취할수록 커지는 것이 아니라, 기대에 비해 얼마나 성취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공식으로 표현하자면 ‘행복=성취/기대’다. 이 공식에 의하면 행복해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분자에 해당하는 ‘성취’를 크게 하고, 분모에 해당하는 ‘기대’를 적게 하는 일이다.
도파민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성취했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즐거움과 쾌감을 결정한다. 바로 이 행복공식의 분자가 커질 때 나오는 호르몬이다.
그동안 우리는 도파민적 삶, 즉 성취에 기반을 둔 행복만을 좇아왔다.
반면 마음이 편안할 때, 명상할 때, 숲 속을 걸을 때, 햇볕을 쬘 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느끼는 나른한 행복이 있다.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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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우리가 꾸준히 행복하려면 도파민만으로는 부족하며 세로토닌이 필요하다. 더 많이 성취하고 더 많은 물질을 갖기보다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른바 세로토닌 적 삶이다.
행복하려면 도파민과 세로토닌의 조화가 중요하다. 감사 없는 성취는 고단하고, 성취 없는 감사는 무력하다. 성취의 열망과 감사의 수긋함 사이에 얼마나 균형을 잘 맞출 수 있느냐에 우리의 행복이 달려 있다.
신영복 선생은 “일껏 붓을 가누어 조신해 그은 획이 그만 비뚤어버린 때, 그 부근의 다른 획의 위치나 모양을 바꾸어서 그 실패를 구하려 합니다”라고 했다. 이런 보완이 가능한 것은 선생의 말씀대로 획의 성패란 혼자 곧은 것이 아니라 획과 획 사이의 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꼭 자로 그은 듯한 직선이 아니면 어떤가? “여러 가지 형태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양보하며 실수와 결함을 감싸” 줄 수 있다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삐뚤삐뚤 돌아가도 괜찮다. 속도를 줄여도 괜찮다. 성취가 있으면 침잠도 있어야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성실에 조화된 여백은 삶의 보물이다.
이 봄 나는 아픔 끝에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삶의 여백은 그 값어치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도 괜찮다는 사실을.
2012. 11. 8.
다음에 제3부 만나라, 사랑하라, 그리고 살아가라
제4부 생의 반환점에 들어서려는 그대에게
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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