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 그녀의 서재를 탐하다

2012. 11. 29. 17:36독서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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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그녀의 서재를 탐하다

■ 김정희 지음

0 서울 출생, 서울대 문예창작과. 방송대 국문학과

0 여러 교육기관에서 독서논술과 국어교육

0 저서 ‘마흔 즈음에 생각해야 할 모든 것

■ 한비야의 서재는 한마디로 사고뭉치

‘제 서재는 요, 사고뭉치!’

한비야가 한 마디로 표현한 서재는 이러했다. 생각을 많이 하는 곳,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 세상을 모두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여기서 꾼다고 한다. 이 서재에는 책만 있는 게 아니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산이 보인다. 책과 산, 한비야가 제일 좋아하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서재인 것이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딱 한군데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이곳 ‘사고뭉치’ 공간이라고 말한다.

바람의 딸이었던 그녀가 세계의 오지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한마디로 사고뭉치다. 국제구호활동 여전사로서 치열한 모습이었다가,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모습도 사고뭉치다. 유엔 자문위원장이자. 세계시민학교교장으로서의 모습도 사고뭉치다. 그녀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뜨겁게 살고 있는 힘은 바로 ‘사고(思考) 뭉치’의 근원인 책이 아닐까?

“1년에 백 권 읽기.”

한비야가 17세 나이에 친구와 굳게 한 결심이다. 그때부터 비롯된 독서습관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니 3천 권 이상의 책을 접한 셈이다. 우리가 남은 일생 동안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 지를 생각해 보았다.

………… 그리 거창하게 계획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한 권씩 잡아보는 거다. ‘내’가 몰랐던 세상이 그 속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조금씩 끄집어서 펼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 소개하는 책은 한비야 저서에서 언급된 책들이자 한비야 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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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을 주었던 책들이다. 세계여행과 우리나라 국토순례를 하면서, 구호활동을 하면서, 유학생활에서 한비야의 손에는 늘 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비야의 글들을 보면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한비야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쩐지 궁금했다. 그것은 한비야가 이미 책으로 바라본 세상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 출발은 ‘여행’으로 시작했다. 책으로 떠나는 여행에서 수백 년 전부터 최근의 여행가들의 모습을 만났다. 그들이 여행 속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깨달았고, 한비야가 직접 걸었던 삶의 현장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한비야의 서재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책들이다. 소설, 시, 수필 등을 통해 우리들의 문학적 정서를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한비야가 선정한 책들을 정리해 보면서, 주제를 도식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부질없음을 확인했다. 책 한 권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어찌 하나로 분류되어 정리될 수 있겠는가. 단지 책의 세상에 좀 더 다가갔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깊어졌으면 하는 것이 소박한 바람일 뿐이다.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만 리를 여행하는 편이 낫다.”는 한비야의 지론은 맞다. 하지만 인생의 여행을 하기 전에, 숨고르기 차원에서 책을 읽는 것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비야도 이 말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 리를 여행하기 전에 만 권의 책을 읽어 보라.”

제1부 한비야 서재 밖으로 떠나는 여행

바람의 딸, 걷다

■ 어릴 적 꿈을 펼치다 -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 (김찬삼 추모사업회)

“‘김찬삼 여행기’에서 나는 그때로서는 달나라 여행보다 더 먼 나라 얘기로 느껴졌던 세계 일주를 ‘한국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한비야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여행하면서부터

였다. 그것도 승승장구했던 직장생활을 접고 서른다섯의 나이에 떠난 여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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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세계여행은 한비야의 어린 시절의 꿈이었고 아버지와의 약속이었다.

한비야가 세계 일주를 꿈꾸게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기자였던 아버지는 아이들을 모아 놓고 우리나라 지도와 세계 지도에서 나라 이름, 도시 이름, 산과 바다 이름 찾기 놀이를 자주 했다. 국제간 역학관계나 분쟁지역 등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자연히 한비야의 관심은 세계로 넓어졌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책이 ‘김찬삼 세계여행기’이다 한비야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계 여행을 꿈꾸었다.

김찬삼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지 몰라도 60년, 70년대를 학창 시절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여행가이자 지리학자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행사진가로서 40여 년 동안 총 20여회, 160여 개국을 다녔으며 아프리카 여행 중 그가 존경했던 슈바이쳐 박사도 만난다. 이때 김찬삼은 슈바이쳐 박사로부터 ‘우물은 한 우물만 물이 나올 때까지!’라는 좌우명을 얻었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 책에서 만났던 김찬삼은 어떤 식으로든 한비야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비야는 날 비(飛) 들 야(野)라는 이름처럼 세계의 들판으로 날아다녔다. 그 전의 이름은 한인순, 영세명인 ‘비야’를 아예 개명해서 쓰고 있다. 7년 간 지구 세 바퀴 반을 돌았고,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이기도 했다. 한비야는 아시아 최초 UN자문위원에 이어 세계시민학교 교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있고 우리나라 20대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바람의 딸 한비야와 세계의 나그네 김찬삼의 삶을 들여다 보자.

◉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계여행가를 꿈꾸다

김찬삼의 아버지는 여섯 살부터 김찬삼을 등산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인천에서 살았던 김찬삼은 마도로스를 꿈꾸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즐겨 읽었다.

한비야는 자신을 키운 건 팔 할이 산이라고 한다. 산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산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집에서는 평범한 딸이지만 산에서는 달랐다. 다람쥐처럼 날쌘 꼬마 한비야는 어른들이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한비야 또한 “산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자존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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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라고 말한다. 그 자존감이 지금의 한비야를 만든 긍정적인 힘의 원천이다.

또 한비야는 어릴 적부터 가슴속에 세계 지도를 품고 살았다. 집의 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 있었고, 식탁보도 세계지도였다. 스케치북이나 필통 같은 문구류에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지도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밥을 먹다 밥풀이 붙으면 아버지가 인도에 밥풀 묻었다든가 페루에 구멍이 났다는 식으로 표현을 했다. 이런 가정환경에서 세계가 넓거나 멀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한비야의 눈에는 세계가 한 눈에 들어오는 도화지였다.

◉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김찬삼은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에서 유학할 때 정원사, 청소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3년간 제1차 세계 여행을 떠난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인 김찬삼은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여행하기 전에 유서 한 통을 들고 떠난다.

“내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도 기쁘게 받으련다. 설령 내가 무슨 사고로 죽더라도 서러워 말고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부모에게 위로하여 줄 것이며, 애들의 교육을 잘 부탁한다.”

김찬삼은 비교적 안정된 교사직을, 한비야는 국제홍보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세계여행을 시작했다. 그것도 젊을 적의 치기가 아닌 인생의 자립을 이룬다는 30대에 말이다.

한비야는 한 번 여행을 위해 3년 씩 준비했다. 목표가 있으면 일도 즐거운 법일 터이다.

“하고 싶은 일에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한비야의 인생철학처럼 어릴 적의 그 꿈은 이루어졌다. 그것도 심한 길치였다던 한비야가 걸어서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한 비야가 꿈을 꾸던 여행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인도 슬럼가에서 납치당할 뻔 하기도 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위기를 맞는 등 숱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김찬삼 또한 여행 도중 강도를 만나 돈을 털리고 스파이혐의로 구금당하기도 하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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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이란 감성의 카메라와 같다

여행에서 메모와 다음 일정 점검은 필수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기록의 힘은 따라가지 못한다. 인간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을 해두면 그때의 상황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김찬삼은 여행 중 아무리 피곤해도 취침 전에 기록하는 원칙을 청저하게 지켰다고 한다.

그 기록의 결과물들이 여행기다. 김찬삼은 1962년 제1차 여행기 ‘세계 일주 무전여행’가 출간되자마자 재판을 거듭했을 정도였고, 1972년 출간한 ‘김찬삼의 세계 여행’은 100만 부 이상 팔리는 대형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한비야의 책도 마찬가지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한 바퀴 반 1’이 나오자마자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국의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비소설부문 1위로 올라갔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믿어지지 않아 직접 서점에 가서 확인해 보고 감탄사를 연발 했다고 한다.

실제 ‘한국의 글쟁이들’을 쓴 기자 출신의 작가는 한비야와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그녀가 메모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 작가는 “한비야의 일기장은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일기장이다. 취재수첩 같이 생긴 작은 스프링 노트에 그날 하루 ‘느끼고 떠 올린 모든 것’을 적는다. 일기를 쓴다기 보다는 메모를 습관처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날 접한 모든 반짝이는 것들을 소중히 메모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라고 했다.

“나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자국이 낫다.”고 확신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일기장과 늘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꼼꼼히 적어 놓는다. 기록이란 감성의 카메라와 같다고 생각한다. 기억은 지나고 나면 사건의 골자 즉 뼈대만 남기지만 기록은 감정까지 고스란히 남긴다. 살도 붙어 있고 향기와 온기도 남아 있는 거다.

◉ 여행가가 바라는 삶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김찬삼은 여행길에 오르다 그만 인도에서 열차사고로 머리를 다친다. 이후 가족 몰래 동남아를 여행하기도 했고, 98년엔 ‘실크로드를 건너 히말라야를 넘다’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하지만 사고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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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으로 언어 장애 현상을 보이던 김찬삼은 2003년 서울 자택에서 숨졌다. 김찬삼의 삶의 기록은 그의 제2의 고향인 인천 영종도 ‘세계여행 문화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비야가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물었다.

“인생의 안정기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왜 이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 했나요?”

“인생의 전반부를 돌아보고 후반부 계획을 잘 세우기 위해서요.”

한비야는 김찬삼처럼 홀로 여행을 했다. 홀로 떠나는 여행은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비야는 여행을 통해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르고자 했다. 그것이 여행가가 바라는 삶이다.

■ 위대한 실패의 가치를 깨닫다 - 인듀어런스 (캐롤라인 알렉산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위대한 실패’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전해 주는 책입니다.”

한비야는 무엇보다도 승리하는 사람만 대접 받는 ‘정글의 법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실패’의 가치를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실패가 위대해? 그건 ‘달콤한 소금’이라는 말과 똑같은 것 아니야? 라는 식의 냉소적인 반응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겉으로 보면 실패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이 인듀어런스 호의 탐험가들과 같은 사람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을까요?”

‘인듀어런스’는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니스트 새클턴과 대원들의 감동의 생존 드라마이자 우리에겐 잊고 있었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책이다.

역사의 승자 아문센, 남극에 최초로 도달한 사람이자 비행기로 북극점을 통과한 최초의 사람이기도 하다. 승자의 역사에서는 ‘최초’ 와 ‘최고’가 중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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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북극 탐험 계획 중이던 아문센은 피어리가 이미 북극에 도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극으로 방향을 튼다. 제1인자로서의 판단력과 치밀한 계획은 필수요소다.

아문센은 스콧과의 남극경쟁에서 승리했지만 남극점에 위치한 관측기지 이름은 아문센스콧기지라 명명되어 있다.

20세기 초 강대국들이 노렸던 불모지에 자기들의 국기를 꼽는 것에 실패한 영국은 스콧 일행의 비극적인 죽음에 애통해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새클턴의 인듀어런스 호의 남극탐험은 남달랐을 것이다.

새클턴은 배가 침몰된 후 새클턴을 포함한 28명 전원이 극적으로 살아서 돌아온 그 과정을 프랭크 헐리의 생생한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책이다. 새클턴은 1999년 영국 BBC가 선정한 지난 1,000년 동안의 최고의 탐험가 10인 중 다섯 번째로 이름을 올린 사람이다. 그것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제임스 쿡. 닐 암스크롱. 마르코 폴로에 이어서 말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인 어니스트 새클턴이 요즘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무엇인가

새클턴은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기 몫의 비스킷 4개 가운데 1개를 와일드에게 주며 강제로 먹였다고 한다. 와일드의 일기장에는 그날의 감격이 적혀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비스킷이었다.”

또 침낭이 부족해서 제비뽑기를 한 결과 선배 대원들은 질이 떨어지는 침낭을, 품질이 좋고 따뜻한 침낭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다. 일반대원들을 위한 조작된 제비뽑기였던 것이다. 가장 기본이어야 할 덕목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를 바탕으로 새클턴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힘과 인내를 대원들에게서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비야는 말한다.

“리더가 무엇인가요? 자기가 리드하고 싶은 세상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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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걸 풀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반 대학이나 대기업에서 말하는 리더십은 지하층도 없이 2,3층부터 얘기하는 꼴이에요. 어떻게 강자가 되느냐의 문제가 리더의 한 날개라면 또 하나의 날개는 바로 사랑과 은혜의 법칙이죠.”

과정보다 성과만이 중요하고, 최고가 되는 리더만 인정받는 사회에서 한비야가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나눔과 사랑’이다. 오지 여행가 한비야에게서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긴급 구호활동가로서의 한비야는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인가

대원들을 버리고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아문센은 탐험과정에서 부대장인 요한슨과 불협화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그를 자살로 몰아갔다. 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스콧 또한 위대한 영웅으로 남았으나 결과는 비극적인 죽음이다. 한 대원은 꼼짝할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자신이 죽으면 그의 동료들이 기지로 귀환하기가 훨씬 편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스스로 눈보라 속으로 기어나가 죽음을 택했다. 이들과 달리 새클턴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성공이나 실패의 이분법보다 어떻게 성공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의 희생을 통한 성공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새클턴은 영원한 실패자로 남지만 전 대원들의 생환에 성공한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성공보다 더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 위대한 실패의 가치가 무엇인가

인듀어런스 호는 부빙(浮氷)에 부딪혀 최종목표지점을 150Km 남기고 얼음에 갇히고 만다. 새클턴은 남극탐험을 포기하고 방향을 틀수밖에 없었다. 수정된 목표는 전 대원 무사귀환이다. 497일 동안 얼음바다를 헤매다 처음으로 밟은 땅은 엘리펀트 섬이었다. 하지만 추위와 식량 때문에 이 섬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새클턴을 포함한 6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6미터 길이의 갑판도 없는 작은 배를 타고 탈출을 감행한다. 추위와 굶주림 등 죽을 고비를 넘기며 2년간의 극한 상황을 견딘 끝의 결과물은 남극탐험 실패.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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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결과물은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전원무사귀환이다.

한비야는 당시 유행한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고 한다. 1등을 경험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한비야가 말한 그 반발심이 이해가 된다.

다복했던 어린 시절의 한비야, 중학교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 큰아버지의 도움, 첫 대학입시의 실패,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6년 동안의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 덕분에 그녀는 단단해졌다.

“그때 맷집이 강해진 것이다. 그랬더니 웬만한 것은 힘들지 않았다. 죽지만 않으면 강해지더라. 6년간 나를 홀대했던, 인간적인 가치와는 관계없이 고졸이라는 타이틀만으로 나를 하찮게 봤던 사람들이 지금은 고맙다.”

한비야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약자들의 대변자 같은 시원한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투르크 메니스탄에서 기차표 예매를 하기 위해 4시간이나 기다리다 새치기를 하는 러시아 경찰을 호되게 야단치기도 하고, 타이에서 자신을 도와준 보트맨이 타이 군인들에게 뭇매를 맞는 것을 보고 싸우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는 등록금 1달러 때문에 우는 아이들을 보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한비야는 고등학교 다닐 때 등록금을 제때 낸 적이 없어 종례 시간에 이름을 불리기 일쑤였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등록금을 내어준다. 약자에게 약했던 이런 한비야가 결국 오지여행가로서의 삶에만 만족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다.

◉ 실패 없는 인생은 진정한 성공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를 거쳐 전구를 발명할 수 있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에디슨은 이렇게 대답했다.

“웬걸요. 저는 단 한 번에 성공했습니다. 단지 수많은 학습과 도전의 과정을 거쳤을 뿐입니다.”

IBM 창립자 토마스 왓슨은 유망한 젊은 관리자가 실수로 큰 손실을 입히고 사표를 제출하려고 하자. “농담하는가? 우린 자네를 리더로 키우는 데 1,000만 달러를 투자했을 뿐이네.” 하는 일화로 유명하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수없이 실패한 사람과 단 한 번에 성공한 사람 중 누가 에베레스트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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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엄홍길은 1985년에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작으로 2007년 3월 로체사르 정상에 서기까지 38번의 도전을 했다. 그 중 20번은 등정에 성공했고 나머지 18번은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공이라는 글자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수없이 작은 실패가 개미처럼 많이 기어 다닌다.”

정호승 시인의 말처럼 무수한 실패의 과정을 겪어서야 성공할 수 있다.

■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없다

-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어떤 생명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카리부도, 별조차도 무궁한 저쪽으로 시시각각 여행을 한다.”

* 카리부(caribow) : 순록(북미산). ‘동물’을 지칭하기도 함

한비야가 여행을 떠나기 전 세운 원칙은 이러하다.

첫째,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

둘째, 한 나라에서 적어도 한 달 이상 머문다.

셋째, 오지마을 중심으로 다니며 현지인과 똑같이 먹고 자고 생활한다.

사정으로 인해 이집트나 캄보디아에서는 육로로의 여행 원칙을 지킬 수 없었으나 한비야는 자신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알래스카에서 세 번째 원칙을 지킬 수는 없었다.

그토록 오지 여행을 고집했던 한비야가 상상했던 알래스카의 모습은 이러했다.

“나는 사실 에스키모와 함께 지내고 싶었다. 그것도 도시에 사는 에스키모가 아니라 북극 근처에서 아직도 수렵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런 에스키모와 살아보고 싶었다. 우리와 외양이 아주 비슷한 에스키모들 말이다. 이글루라는 얼음집에서 살면서 고래 기름으로 불을 피우고 물개의 생고기를 뜯어 먹는…… 낯선 사람이 오면 코를 부비는 인사를 하고 남자 과객에게는 자기 아내를 내주었다는 에스키모의 전통…….”

하지만 한비야가 상상하는 원주민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대부분의 원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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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그들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에 살고 있고, 진짜 원주민을 보려면 겨울에 헬리콥터를 이용해야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또 지금의 원주민들은 이글루에 살지 않는다. 이글루는 원래 겨울에 긴 바다 사냥을 나갈 때 일시적으로 사용되었던 캠프였다. 남자 손님에게 아내를 내주었다는 전통은 손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지리적 여건으로 외부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보니 근친혼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 미지의 땅 알래스카 이야기

미지의 땅 알래스카, 한비야가 말한 바나나킥 일몰과 일출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신비롭다. 해가 지평선에 닿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시 떠오른다는 이런 현상은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다. 한비야가 목격한 것은 일몰 후 2시간 후의 일출 장면이다. 일몰 후에 나타나는 백야의 모습은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밝다고 한다. 거기다 수만 년 전의 세월이 녹아있는 빙하수와 빙하얼음은 가 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맛일 것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경멸하는 느낌이 담긴 이 말 대신 최근에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누이트’라는 표현이 늘어났다.

호시노 미치오의 멋진 사진을 감상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호시노 미치오는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자연을 담아낸 사진작가다. 하지만 이 책은 사진첩은 아니다. 한비야가 ‘소년 같은 아름다운 단상’이라고 표현했듯이 호시노 미치오가 접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하다.

◉ 호시노 미치오가 들려준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가 소개한 밥 율은 원래 캘리포니아 출신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래스카에 주둔하던 밥 율은 제대 후 수렵을 하며 자급자족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다. 밥 율은 살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원주민들의 삶은 납득할 수 있었지만 즐기기 위해서 죽이는 것은 아니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곰을 사냥하면서 필요하지도 않던 곰까지 사냥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자연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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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의 하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 호시노 미치오의 표현대로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최후의 인디언’인 케니스 누콘이라는 늙은 인디언과 헤어지는 장면은 인간이 자연 속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해 주었다.

“편리한 문명 생활에 등을 돌리고, 불편한 한 팔로 카리부를 한 걸음 한 걸음 둑 위로 끌고 올라가는 케니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언젠가 케니스가 나이 더 들어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죽어 가겠지.”

마을에서 복지차원으로 준 편리한 시설을 갖춘 집을 마다하고 카리부가 지나가는 강둑의 오두막에서 살아가는 케니스가 원하는 것도 그런 삶일지 모른다.

러시아 쿠릴 호반에서 불곰의 습격으로 사망한 호시노 미치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원 없이 담아내다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떤 생명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도 카리부도, 별조차도 무궁한 저쪽으로 시시각각 여행을 한다.”

이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문구처럼 그 또한 자연의 넉넉한 품으로 긴 여행을 떠난 것이다.

알래스카의 눈물

아름다운 땅 알래스카의 미래는 어둡다. 호시노 미치오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알래스카의 현실은 어떤가. 지구 온난화 현상은 해수면 상승으로 해변의 주택들이 무너지고 영구 동토가 녹으면서 나무들이 기울고 있으며 원주민의 식수원인 호수가 사라지기도 한다.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1,440Km의 송유관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은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생존의 위기를 맞은 북극 동물들과 원주민들의 삶을 다루었다.

한비야는 가본 곳 중에서 자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은 알래스카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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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올라 가거나 또는 자연의 작은 법칙을 발견해 내고는 ‘자연을 정복 했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다. 정복해서는 안 된다.

한비야의 바람대로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알래스카를 걷고 있는 한비야를 기대해 본다.

■ 연암의 중국 견문록과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

- 열하일기 (박지원)

“‘열하일기’는 이국적 풍물과 기이한 체험을 지루하게 나열하는 흔해빠진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뜨거운 ‘접속’의 과정이고, 침묵하고 있던 ‘말과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굴’의 현장이며, 예기치 않은 담론들이 범람하는 ‘생성’의 장이다.

이 책은 학생시절 교과서에서 접했던 ‘열하일기’로 접하지 않아도 된다. 사진과 그림뿐만 아니라 내용 중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도움글로 쉽게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조선 왕조 500년 동안 동서고금의 여행기를 통틀어 오직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열하일기’를 들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열하일기 출간을 맞아 그린비출판사에서 옮긴이 고미숙과 한비야가 만남을 가졌다. 경향신문 2008년 3월 13일자에 소개된 대담을 일부 옮겨 보았다.

◉ 여행은 새로운 만남이다

한비야 = 여행은 농축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의 1년이 보통 생활 10년이에요. 자기를 만나는 기회기 훨씬 많아지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보게 되잖아요. 내가 몰랐던 것, 감춰졌던 것을 재발견합니다. 또 여행은 만남이에요. 새로운 무엇을 만날 뿐 아니라 오래됐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만나죠. 저는 ‘집안에 있는 빠꼼이 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고 말하고 싶어요.

고미숙 = ‘열하일기’를 보면 연암도 여행하면서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그리고 놀라운 관찰력으로 기록하지요. 어떻게 저 어려운 여행을 하면서 낱낱이 기록을 해 나갔는지 미스터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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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 관심 호기심이죠. 전 무섭고 두렵지만 뭐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많아요. 도대체 뭘까 하는 거예요. 낯선 것도 낯익은 것도 매일 새롭게 보이니까요.

그때는 적어야 해요. 감정의 디지털 카메라 같은 것이지요. 감정도 그때그때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뼈다귀만 남거든요. 어떤 때는 울면서도 적었어요. 연암이 힘든 여행을 하면서 조목조목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알 것 같아요.

고미숙 = 연암은 붓으로 순간을 기록했는데 현대의 디지털카메라보다 훨씬 섬세하고 치밀한 데 놀라게 됩니다. 한선생님은 여행이 ‘자기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에겐 ‘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일상과 신체적 동선으로부터의 떠남, 제 용어로는 ‘유목’이지요. 해외 여행객 1,000만 시대라지만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바뀔까 싶어요.

한비야 = 1,000만이 다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일단 떠나보는 겁니다. 야구도 5할 타자가 드물듯이 10명 중 5명만 그렇게 느껴도 사회전체로는 중요한 동력이 될 거예요.

고미숙 = 한 선생님의 글에서 감동을 받았던 대목이 ‘허명을 얻는 일이 가장 두렵다.’입니다. 지식인은 이름과 실제가 안 맞고 자기가 생산하는 지식과 삶이 괴리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또 그 괴리 자체를 스스로 통찰하지 못해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지식이 전혀 도움이 안 되지요.

지도 밖에, 또는 주어진 선에서 한 걸음만 벗어나서 갈 수 있으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고 거기에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다. 그것이 연암이 ‘열하일기’를 통해 현대의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 18세기의 중국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에게 그 소감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연암 박지원도 그런 질문을 받았다.

“자네 이번 여행에서 제일 장관이 뭐였는가? 하나만 꼭 집어 말해주게나.”

소위 일류 선비라는 자는 정색하고 얼굴빛을 고치며 이렇게 대답한다.

“허, 도무지 볼 것이라고는 없습디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공덕이 비록 은나라 ‧ 주나라와 대등하고, 부강함이 진나라 ‧ 한나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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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낫다한들 백성이 생겨난 이래 여지껏 머리를 깎은 천자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드높은 학문을 이루었다 한들 일단 머리를 깎았으면 곧 오랑캐요. 오랑캐는 개돼지나 마찬가지입니다. 개돼지에게서 뭐 볼 게 있겠습니까?”

소위 2류 선비는 이렇게 말한다.

“성곽은 만리장성을 본받았고 궁실은 아방궁을 흉내 냈을 뿐입니다.…… 성인들의 업적이 사라지자 언어조차 오랑캐들의 말로 바뀌어 버렸지요. 그러니 무슨 볼 만한 게 있겠습니까?”

이는 중화 중심의 춘추를 제대로 읽은 사람이 청나라를 비꼬는 말이다.

연암은 천하를 위하여 일하는 자는, 진실로 백성에게 이롭고 나라에 도움이 될 일이라면 그 법이 비록 오랑캐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이를 수용하여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삼류 선비지만 감히 말하리라. 중국의 제일 장관은 저 기와조각에 있고, 저 똥덩어리에 있다.”

깨진 기와와 똥덩어리는 쓸모없고 더러운 물건이다. 하지만 이 기와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루 활용해 천하의 무늬를 새겨 넣는 모습, 똥덩어리조차 거름으로 아껴 쓰기 위해 잘 처리하는 모습을 통해 천하의 대국이라고 본 것이다. 여기서 박지원은 일류, 이류, 선비를 통해 당시의 조선 선비들의 허위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 21세기의 중국

‘한비야의 중국 견문록’은 그녀가 쓴 이전의 여행기와는 다르다. 여행의 목적이 분명히 중국어를 배우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어는‘ 40살 전에 5개 국어를 마스터하자’는 한비야 계획의 마지막 언어이기도 하다. 신기한 풍물을 구경하는 여행가의 모습이 아닌, 차분한 학생이 되어 중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 하는 그녀의 자세가 진지했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은 긴급구호활동을 하기 전 약1년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중국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다.

중국에서는 ‘공부하다’가 ‘책을 읽다(讀書)’와 같은 말이라고 한다. 이것은 옛날 우리 선비들이 공부한다는 것을 ‘글을 읽는다’ 라고 했던 것과 통한다.

한비야는 경제적 잣대 하나만으로 그 나라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가능성을 재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중국인들의 자존심과 자긍심에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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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의 중국과 21세기의 중국은 분명 다르다. 최소한 그 시간의 간극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열하일기’는 역사적인 가치가 충분하다. 더불어 연암의 풍자와 해학을 몇 가지 일화를 통해서 다 보여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연암에게 있어 삶과 여행은 분리되지 않았듯이 한비야의 삶도 마찬가지다. 연암이 ‘길 위에서 사유하고, 사유하면서 길을 떠나는 유목민’이었듯이 한비야는 그 ‘길 위에서 사유하고 행동하며, 새로운 길을 떠나는 유목민’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 떠나는 여행

- 행복의 지도 (에릭 와그너)

‘행복의 지도,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의 에릭 와그너는 인도에서 찾은 행복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책과 한비야 여행기의 공통점은 당연히 여행이다. 여행은 나를 찾기 위해서이든 나를 떠나기 위해서든 그 여행의 목적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것만큼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차이점이라면 이 책은 아무도 소식을 전한 적이 없는 행복한 나라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고, 한비야의 여행기는 가난, 분쟁, 오지 지역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

에릭 와그너는 기자와 해외특파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이 불행한 나라들의 전쟁이나 질병 같은 소식만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대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의 정체를 밝혀보고자 했다. 그가 돌아다닌 10개의 나라 중에서 한비야가 언급했던 인도의 모습이 가장 눈에 띄었다.

◉ 에릭 와그너가 본 인도

에릭 와그너가 본 인도의 모습은 ‘모순’이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가족처럼 느껴지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은 당연히 짜증스럽다. 특히 명절 때가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만 그곳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운명이 서로 얽혀 있음을 가슴속 깊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인도가 그런 곳이다. 나는 인도를 싫어하면서 사랑한다. 번갈아가며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동시에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낀다.”

에릭 와그너는 캘커타의 빈민들이 미국의 빈민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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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은 전생에 자신이 쌓은 업이나 운명이나 신들 때문에 지금 자신이 가난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가난이 자기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개인적인 실패, 성격적인 결함의 탓으로 돌린다.”

인도의 어느 교수의 말이다.

“물론이죠. 우리는 실망했을 때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릅니다. ‘좋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우주에게 결정을 맡기자.’ 이게 우리의 사고방식이에요…….”

◉ 한비야가 본 인도

인도를 얘기하려면 빠지지 않는 곳이 바라나시이다. 인도를 다녀간 많은 여행객들이 바라나시를 보지 않았다면 인도를 본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도시이며, ‘톰 소여의 모험’의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역사보다, 전통보다, 전설보다 오래된 도시” 라고 말했던 곳이다.

한비야는 이곳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곳에 오면 겉으로 드러나는 분주함과 무질서와 함께 보이지 않는 고요함과 질서가 느껴진다. 유럽의 유서 깊은 수도원이나 우리나라 깊은 산속 암자에서 느껴지는 그런 엄숙한 종교의 무게 같은 것 말이다. 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염원이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바라나시는 힌두교도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도시 중의 하나이고 가장 성스러운 갠지스 강의 화장터가 있는 곳이다. 매년 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는 곳이며, 신앙심이 깊은 힌두교도들은 일생에 한 번 바라나시에 가서 그 길을 걸어보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이런 곳에서 죽음을 맞는 것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갠지스 강은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곳이지만 위생상으로는 오염된 곳이다. 하지만 힌두교도들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그 물을 마시는 행위를 성스러운 의식으로 여긴다. 그들은 이런 행위들을 통해 모든 죄가 씻긴다고 믿는다.

대부분 인도를 성자의 나라나 구도자의 나라라고 거창한 소리를 하지만 실제로 인도에 오면 세속성과 저속성에 실망을 하게 된다면서 한비야는 인도의 모습을 ‘아주 못생긴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인도는 정말 이상한 나라다. 가보기 전에는 한없이 거대하고 신비해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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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막상 가보면 밉고 정 떨어진다. 그러나 떠나는 순간부터 또다시 그립고 신비스럽게 보이는 나라다.”

어머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이 저며 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접해보고 여전히 자식들을 위해 헌신의 정도를 넘어서 추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모순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자기를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빠짐없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성장시키는 내면의 모정을 지녔다는 뜻이다. 지저분함, 느림, 거짓말, 빈곤, 억압, 모순, 이런 불결한 옷을 입고 있는 인도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곧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야는 겉모습의 인도에서는 아주 나쁜 경험을 얻게 되지만 속마음의 인도에서는 최고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비야가 기차 안에서 얼굴에 난 뾰루지를 거울에 비추어 보면서 짜증을 내고 있으니까 한 인도 여인은 한비야를 한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이런 말을 한다.

“아가씨는 아직도 자기 눈, 코, 입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신경쓰이세요? 그 나이라면 내 얼굴이 얼마나 평온해져가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게서 듣는 인생의 심오한 진리. 이게 바로 인도다.”

한비야로서는 이 말이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이었다고 한다.

◉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을 찾아나선 에릭 와그너가 말한 대로 ‘유토피아’라는 말에는 ‘좋은 곳’이라는 뜻과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은 낙원의 담 바로 앞에 있는 것 같다. 완벽한 사람과 함께 살면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듯이, 완벽한 곳에서 사는 것도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유토피아의 뜻이 모순인 것처럼 행복은 모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인도에서 한비야가 보았던 것처럼 행복은 두 얼굴의 모습을 갖고 있다. 행복은 그 모순 속에서 참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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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발로 걷는 가장 화려한 여행

- 제주 걷기 여행 (서명숙)

“알오름……그건 우주제일경이예요.”

첫 번째 올레길을 만들 때 저는 진짜 깜짝 놀랐어요. 1코스가 개장할 때, 알오름이라는 데를 딱 갔는데 딱 오르면요. 360도 전망이에요. 그런 전망이 이 세상에 있는 줄 아세요? 여러분, 다녀본 사람 제가 알아요. 이 세상엔 없어요. 지구제일경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그건 이미 지났어요. 그건 우주제일경이에요.“

한비야가 우주제일경이라고 표현한 알오름은 서명숙이 제주올레를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지 고민하고 결정한 코스이기도 하다. 시작점이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 올레길의 시작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동쪽 경계지점이자 첫 마을인 시흥리다. 옛날 제주 목사가 부임하면 시흥리에서 시작해서 종달리에서 마무리 하였기에 두 곳의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시종(始終)의 의미를 살린 지점이기도 하다. 알오름에 오르면 성산포의 들판과 성산 일출봉, 우도는 물론이고 멀리 한라산까지 보인다.

“여기에서는 남쪽으로는 바다. 북쪽으로는 오름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360도 탁 트인 거칠 것 없는 전망, 옹기종기 엎드린 자연부락, 푸르른 하늘과 하늘빛을 그대로 닮은 푸르른 바다. 거무죽죽한 돌담과 녹색의 나무와 풀들, 모든 색깔이 팔레트에 푼 물감처럼 선명하고 또렷했다.”

가히 한비야가 우주제일경이라고 표현할만한 경치다.

◉ 한비야의 첫 가출 여행지 제주

한비야가 선택한 첫 가출 여행지는 바로 제주였다. 대학 입시에 떨어지자 집에 장문의 편지를 써 놓고 서울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로 갔다.

“대학에 떨어지고 나는 고교 3년간 저금한 돈을 가지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중에 돈도 있고 시간도 있고 울적한 마음도 달랠 겸 우리나라에서 갈 수 있는 맨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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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가 고등학교 때의 인생설계는 대학교에 가는 것이었다. 한비야는 대학을 떨어진 이후의 어떤 길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너무나 막막하고 인생의 낙오자 같았다고 한다. 완전히 패배자라는 생각에 빠져서 헤맬 때 제주도에 가서 마음을 달래겠다고 가출을 했던 것이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곳의 비경에 황홀해하며 자전거를 빌려 타고 섬 안을 돌아보기도 하고, 친절한 해녀 아줌마한테서 갈칫국에 밥도 얻어먹었다고 한다.

한비야가 대입 실패를 하지 않았다면 이후 여행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을지 궁금하다.

‘놀명 쉬멍 걸으멍 제주 걷기 여행’의 저자이자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이사장은 산티아고를 걸은 후 제주 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을 때 한비야도 뛸 듯이 반겼다고 한다.

“잘 생각했어. 명숙 씨. 그렇지 않아도 도보여행에서 사귄 외국 친구들이 너희 나라에 가면 어딜 가야 하느냐고 물을 때 대답이 궁했는데, 이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네. 한국의 최남단 제주도에 멋진 아일랜드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외국 사람들은 아일랜드 코스라면 무지 좋아하거든.”

제주올레는 마을과 오름, 바다를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마저 감탄할 만한 아일랜드 코스다. 2012년 2월 29일에 개장한 일본 규슈올레는 제주올레의 한류 수출 1호길이다. 규슈는 ‘올레’라는 이름 사용과 코스 개발 등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제주올레에 업무제휴비로 100만엔을 지급했고 이 비용은 1년 단위로 갱신한다.

제주올레는 이외에도 스위스, 영국, 캐나다, 등과 ‘우정의 길’ 협약을 맺어왔지만 제주올레를 상징하는 간세, 리본, 화살표 등의 브랜드와 디자인 등을 수출하고 로열티 성격의 대가를 받는 것은 규슈가 처음이다. 생태친환경적인 걷기 여행이 세계 여행의 트랜드를 바꿔가고 있다는 추세에서 이런 수출은 의미가 각별하다.

◉ 한비야가 좋아하는 올레코스

그녀가 제주 올레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곶자왈 코스다. 한겨울에도 푸름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수풀 같은 곳을 제주말로 일컫는 말이다.

곶자왈 코스는 화순~모슬포 올레인 11번코스와 저지~ 무릉 올레인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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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가 있다. 또 9코스 박수기정을 올라가는 ‘몰질’의 경우는 한비야가 꿈에서도 나타날 정도라고 할 정도로 대평~화순올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박수기정은 대평포구 옆에 병풍처럼 놓인 깎아지른 절벽을 말하는데 ‘기정’은 벼랑의 제주 사투리다. ‘몰질’은 말길 이라는 뜻인데 고려 때 박수기정 위의 너른 들판에 키우던 말들을 원나라로 싣고 가기 위해 만든 길이다. 이 코스는 천연기념물 377호로 지정된 원시 난대림의 모습을 간직한 안덕 계곡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오지 여행가인 한비야가 좋아할만한 코스다.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뜻하는 ‘올레’는 제주의 거친 바람을 막기 위해 만든 길이다. 예전 제주 여행은 한라산 등반이나 관광지 위주의 여행이라 며칠만 훑으면 그만이었기에 제주의 깊은 모습까지 관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주올레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여행풍속도가 달라진 것만은 사실이다.

◉ 걷기의 즐거움

“아름다운 길, 마음에 쏙 드는 길이다. 이렇게 걷기 좋은 길을 되도록 천천히 걷고 싶다. 나는 지금 기록을 세우려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일행이 있어서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멋진 길을 빨리빨리 갈 이유도 필요도 없다. 아니, 빨리 가면 그만큼 손해다. 될수록 천천히! 더 천천히!! 더욱 천천히!!! 아, 걷는 즐거움이여. 차를 타고 이름난 곳을 돌아다니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기쁨이다. 차로 하는 여행이 머리와 눈만의 즐거움이라면 걷는 여행은 눈으로 보고, 코로 향기 맡고, 귀로 듣고, 발로 느끼는 ‘오감 만족 여행’이다.

한비야의 말대로 오감을 이용해 자연과 자신이 만나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호화로운 여행이 아닐 수 없다.

“여행은 자기와의 만남인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을 통해서 에둘러, 내가 그 나라에 가서 풍경도 만나고 풍습도 만나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도 만나지만 결국은 자기랑 만나는 거예요. 특히 걷기 여행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 중에서 가장 호화로운 여행은 걷기 여행이예요. 오감으로 가는 여행. 그렇지 않아요?

걷기 여행은 느림을 즐기는 여행이다. 속도의 경쟁이 익숙해진 여행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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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여행보다는 차를 타고 하는 관광 여행을, 배낭여행보다는 트렁크여행을, 걷기보다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산을 오르더라도 정상만을 보고 걷는다. 앞을 보고 정상만을 향해 가는 길은 주변을 살필 수가 없다.

한비야는 삼십대까지는 무조건 자주, 빨리 산에 올라가야 했다고 한다. 여럿이 등산을 하면 일등으로 올라가고 싶었고 하산할 때는 같은 길이 지겨워 뛰어 내려오기도 했다. 그런 한비야는 사십대 이후부터는 내려오는 길도 똑같이 재미있고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라고 한다.

한비야는 “올라갈 때 남보다 빨리 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 쓸게 아니라 내려갈 때 쓸 힘을 남겨두어야 하산 길까지 즐겁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라며 시인 고은의 ‘그 꽃’ 이란 시를 소개하고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단 3줄이자 15글자로 압축된 이 시는 산길을 걸을 때만이 아니라 인생에서의 깨달음도 일깨워주고 있다. 인생의 후반부를 걷고 있는 한비야는 지금도 새로운 꽃들을 보고 걷고 있을 것이다.

제2부 바람의 딸, 꿈을 말하다

■ 포기해서는 안 되는 꿈이 있다

-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언제나 한비야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한비야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그 꿈을 꾸어 보라고 말하고 있다. 한비야는 ‘돈키호테’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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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우쭐대는 독자도, 어리석은 독자도 아니라면 이 책을 진지하게 감상해 보자.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올 때 가슴에 품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우리들 몫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혜로운 독자라면 머릿속으로만 담고 가둬두지는 않을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기사소설의 시대착오적인 권위를 응징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절대왕조의 통치하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자유롭게 작품을 쓸 수 없었다. 그는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당시 사회를 비판하면서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 돈키호테와 햄릿

흔히들 소설속의 인물들을 비유해서 사람들을 분석하기도 한다. 현실의 사람들은 어느 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전 소설의 인물은 전형적인 모습이 부각되기 때문에 인물을 분석하기 쉽다. 그 중 사색가형 햄릿과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행동가형 돈키호테일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돈키호테라는 인물은 물불 안 가리고 돌진하는 괴짜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을 일컫는 별명이기도 하다. 돈키호테형은 현실을 무시하고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며 정의로운 사람을 상징한다. 주로 단순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지만, 강한 실천력만큼은 누구도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독선적이고 몽상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이에 반해 햄릿형은 사색적이며 회의적인 경향이 강하고 결단과 실행력이 약한 성격의 소유자다. 햄릿은 고뇌와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는 나약한 지성인의 상징이다.

◉ 풍차와 투구의 이야기

‘돈키호테’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풍차이야기다. 돈키호테에게 풍차는 거대한 거인이요, 악의 근원이다. 그 거인과의 싸움에서 결과는 예상대로 참패다. 풍차는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을 의미한다. 지나간 구시대의 기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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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버리지 못하는 그의 눈에는 현실이 제대로 보일 리가 없다. 현실적인 인물 산초에게는 그저 풍차를 풍차로 보지 않고 놋대야를 투구로 보는 돈키호테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진실이 땅바닥에 내팽개친 채 있는데도 우리는 다른 허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돈키호테를 미친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그의 눈에는 우리가 비정상으로 보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돈키호테처럼 세상을 바라보았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뜨겁게 사람을, 세상을, 그 무엇을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면 불행하지 않았겠는가. 400년이 지난 돈키호테를 사랑하는 이유도 돈키호테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일부분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아직도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한비야는 먼저 자신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은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를 자문하는 일이 필요하다. 확신이 들 때까지 묻고 또 묻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을 할 때 재미있었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귀가 솔깃한 지를, 무엇을 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지막 힘까지 쏟아 부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확신이 들었으면 남은 문제는 자신의 몫이다.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

◉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라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돈이 되는 일이 딱 맞아 떨어지는 일일 것이다. 한비야는 하고 싶은 일과 돈 버는 일과의 상관관계를 단순하게 정리해서 말한다. 1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고., 2번은 하고 싶은 일을 하지만 돈은 못 버는 것이다. 3번은 하기 싫은 일을 하지만 돈을 버는 것, 4번은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돈도 못 버는 것이다. 이 중에서 최악은 4번이다. 한비야는 누구나 예상하듯이 2번을 선택했다. 적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 확실하기 때문이란다. 잘하면 1번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어차피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꿈을 꿔서 괜히 마음만 부푸는 것보다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비야는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해 보이는 꿈이라도 가슴 가득 품고 설레어 보아야 청춘이라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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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않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꾸고 있는 꿈을 당당하게 말한다.

“지금도 나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현실적인 꿈만 꾸는 사람들에게는 우리는 바보, 멍청이, 미련 곰탱이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굶주리는 아이가 없는 세상, 모두가 공평한 기회를 갖는 세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지만 돈키호테에게는 꿈을 잃은 이들이 범접할 수 없는 큰 꿈과 이상이 있다. 돈키호테의 모험담은 이상을 위해 돌진하는 이들에게는 숭고한 도전이다. 하지만 현실주의자들의 눈에는 무모한 도전일 뿐이다. 하지만 한비야라면 돈키호테의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곡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ible Dream)’을 들어보면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한비야가 말하는 꿈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찟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 가네 저 별을 향하여.’

■ 영혼만은 빼앗기지 않을 거다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체로키 인디언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깜찍한 인디언 꼬마의 성장담이자 자연과 인간이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이야기다. 읽는 동안 저절로 미소가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책. 읽고 나면 영혼과 가슴이 동시에 따뜻해지는 책.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 체로키 인디언의 역사

미국 정부는 1838년, 애팔래치아 산맥에 살던 체로키족을 1천 마일 밖(약1,600Km) 오클라호마 주 지역의 인디언 거주지로 강제 이주시킨다. 그 과정에서 체로키 족 수천 명이 도중에 숨졌다. 이들이 미국 기병대에 쫓겨 눈물을 흘리며 떠난 사건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한다. 체로키 족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노래하면서 서로를 위로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후 일종의 국가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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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

Amazing grace how sweer the sound.

놀라운 은혜여! 얼마나 그 소리가 감미로운지요!

That saved a wretch like me.

그 은혜가 저와 같은 비참한 인생을 구원했습니다.

I once was lost but now I'm found.

저는 한때 잃어버렸던 존재였지만 지금은 찾아졌고

I was blind but now I see.

한 때 눈이 먼 존재였지만 지금은 보게 되었습니다.

2010년 5월 20일 미국 정부는 과거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에 대한 폭력행위와 잘못된 정책들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비공식적, 빌 클린턴 대통령의 공식적 방문에 이어서 172년 만의 일이다.

“지난 일을 모르면 앞일도 잘해낼 수 없다. 자기 종족이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는 법.”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주인공 작은나무에게 이 말을 자주 한다.

인디언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는 아무 형식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이 자주 머무는 곳에 선물을 살짝 놓아두고 간다.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고 반대로 필요치 않은 물건이거나 자신이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놓아둔다. 그대로 놓인 선물을 확인한 사람은 자신을 알리지 않고 몰래 두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의가 무시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미안함을 확인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따라서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남한테 선물을 보여주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식에서는 그들만의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작은나무에게 인디언으로서 자부심을 강조한다. 백인들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는 할아버지는 자신만의 고집을 지킨다. 반가움을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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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박수 대신 손바닥을 펴서 들어 올려 보인다.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다는 표시이다. 백인들이 하는 악수는 상대가 혹시라도 소매 속에 총을 숨기고 있을까봐 그것을 떨어뜨리기 위해 흔들어 대는 행위라고 말한다. 악수는 중세 이후부터 통용되어 왔다. 중세 기사가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오른손을 내밀게 된 것이다. 칼을 왼쪽 허리에 차고 있기에 칼을 뽑는 오른손을 내밀면 상대는 신뢰를 할 수가 있다. 인디언식이든 서양식이든 신뢰의 방법이 씁쓸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개를 숙이는 우리 방식의 인사가 오히려 예의를 차리는 방식이 아닐까.

이 책은 인디언 소년 작은나무의 성장소설이다. 하지만 한비야가 목격한 실제 인디언들의 삶은 소설보다는 참혹했다.

◉ 한비야가 본 인디오들의 삶

“지난날은 침략자들에게 약탈당하고 오늘날은 강대국들에게 수탈당하는 아메리카의 진짜 주인인 인디오들, 특히 지금은 비록 남루하지만 머루같이 까만 눈동자로 밝은 내일을 기다리는 중남미 어린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2’ 의 헌사다. 인디언과 인디오는 다른 나라 말로 표현한 것일 뿐 의미는 같다. 처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의 한 부분이라고 착각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도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인도 사람을 영어로 표현하면 인디언이고, 스페인어로 표현하면 인디오다.

인디오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하고 우리 민족과 같은 핏줄이라는 주장도 있는 만큼 한비야는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생김새를 떠나서 약자에 대한 연민일 것이다. 유럽출신들이 많은 아르헨티나 칠레와 달리 페루나 볼리비아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할 때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나라일수록 더 정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보다.

이런 애정은 볼리비아 포토시의 은광을 설명할 때에도 느껴진다. 포토시에 거대한 은광이 있다는 것을 안 스페인 정복자들은 원주민만으로 인력이 부족해 아프리카 노예들을 잡아다가 일을 시켰다. 아프리카 노예들이 고원지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가자 이번에는 저지대로 옮겨 코카 제배를 시켰다. 잉카 문명을 중심으로 한 안데스 산맥의 인디오들도 가혹한 강제노역으로 인해 죽어나갔고 인구도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포토시의 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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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은 보유량은 크게 늘었고, 유럽의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바탕이 됐다.

더 안타까운 것은 현재에도 이 포토시 광산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인디오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은을 캐는 도구도 정과 망치, 곡괭이고 안전시설도 없다. 규폐증으로 시달리며, 끼니를 잇지 못해 음식 대신 코카 잎을 씹기도 한다.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니다. 한 달에 10톤의 돌을 깨고 나르며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도 끼니를 때울 돈이 없다니? 이들이 옛날 노예들과 무엇이 다른가. 매를 안 맞는다는 거? 사고로 죽고 배고파 죽기는 마찬가지인걸. 다른 점이라면 지난날의 고용주는 무력으로 이 땅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이었는데 지금은 돈으로 이 땅을 좌지우지하는 자본가들이라는 것뿐이다.”

한비야가 본 인디오들의 삶은 여전히 열악했다.

■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을 할 것인가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루쉰)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힌 낡은 길을 찾아 무엇을 할 것인가?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토로하는 루쉰을 읽으면서 피가 끓지 않는 젊은이가 있을까?”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 처음부터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고향’의 마지막 구절처럼 원래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비로소 길이 생긴다. 길은 앞서서 걸어간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수풀도 쳐내고 움푹 파인 곳도 메워주어야 한다. 참된 지도자란 희망의 길을 앞서서 걸어간 사람이다. 젊은이들은 거짓 지도자의 길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눈이 필요하다.

◉ 루쉰이 만난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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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아큐정전’이나 ‘광인일기’등의 소설로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 책은 루쉰의 산문집이다. 그는 자신의 수필형식의 단문들을 ‘잡감(雜感)’이라고 불렀다. 이 책에 추천의 글을 쓴 고 리영희 교수는 루쉰의 진면목은 그의 이런 글에 있다고 했다. 그 잡감을 통해서 역사의 굴레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중국 민중을 건져냈기 때문이다. 또 청년들에 대한 루쉰의 깊은 애정을 강조했다.

“루쉰은 다음 세대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와 동시에 청년을 죽이는 것도 청년이라는 사실에 그는 괴로워했다. 이 책 속에서 독자는 청년을 소재로 한 많은 글을 읽게 될 것이지만 그 뼈를 후비는 것 같은 신랄한 비판 속에 청년에 대한 그의 무한한 사랑을 아울러 느낄 것이다.”

루쉰은 나이든 사람들은 길을 내어주면서 청년들을 격려하고 길에 깊은 웅덩이가 있으면 자기가 죽어서 메워야 한다고 말한다. 또 각성한 사람들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미래의 새로운 사람들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이해다. 아이들의 세계가 성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이들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지도다. 어른들은 지도자, 협력자여야지 명령자여서는 안 된다. 다음 세대가 폭 넓고 자유롭게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해방이다. 자녀들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사람이다. ‘나’이기에 교육시킬 의무를 다해야 하고 ‘나’가 아니기에 독립적인 존재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인습의 무거운 짐을 지고 암흑의 갑문을 두 어깨로 짊어지고, 아이들을 드넓은 광명의 세상으로 내보내 앞으로 행복하게 살고 제대로 사람 노릇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각성한 사람부터 어른들을 따르면서 어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묵은 빚을 갚으면서 새로운 길을 여는 진화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출발점인 셈이다.

◉ 한비야가 만난 젊은이

얼마 전 한비야의 7급 공무원 발언이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까지 오르면서 논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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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젊은이에게 꿈을 물었더니 ‘7급 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7급 공무원은 네가 뭔가를 하고 싶은 과정이 될 순 있어도 그 자체가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느냐고요. 안정된 직장을 가지면 뭘 할 건데요?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참 철없다고 하는데 철없어도 돼요. 철든 사람들 얘기는 철이 들어서 그런지 너무 무거워요. 자기 능력을 최대치로 쓰는 일을 하면서 시원한 세상을 만드는 삶을 삽시다. 죽지 못해 살아남기 위해 스펙 쌓으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아름답고 멋지잖아요?”

누리꾼들은 이 발언을 두고 갑론을박이었다.

한비야는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실천을 묻는 한 젊은이에게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속지 말라고 당부한다.

“태국에 가면 덩치 큰 코끼리가 있어요. 그 코끼리를 묶고 있는 끈은 굉장히 가늘고 쉽게 풀 수 있는 끈이에요. 그런데 코끼리가 그걸 뫠 못 풀고 있는지 아세요? 아주 어렸을 때 튼튼한 쇠밧줄로 도저히 못 도망가게 하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가 못 도망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마든지 끊고 갈 수 있는데 못 가는 거예요. 인생을 하루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럼 40세가 낮 12시예요. 지금 20세, 새벽에 동이 부옇게 뜨고 있는데 그때 인생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축구로 치면 전반전 10분을 시작했어요.”

◉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는 루쉰의 산문집 ‘조화석습(朝花夕拾)’에서 따온 것이다. 아침에 떨어진 꽃을 바로 쓸어내리지 않고 해가 진 다음에 치운다는 뜻이다. 떨어지는 꽃에서도 아름다움과 향기를 취하는 여유를 가지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조급한 마음에 서둘러 대응하는 것보다 여유를 가지고 처리하는 것이 마무리를 잘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읽어야 한다.

한비야가 어렸을 적 아버지로부터 자주 들었던 말이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라고 한다. 어느 해 초여름 물에서 놀고 싶었지만 추울 것 같아서 물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하자 아버지가 한 말이다. 일단 들어가 봐서 물이 정말 차가우면 나오면 그만인 것을, 지레 겁먹고 들어가 보지도 않는다면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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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서 내내 후회할 거란 뜻에서 한 말이었다.

‘해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는 지금 내가 애용하는 말이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힘에 부칠 것 같은 일을 계획할 때, 혹은 무언가 조금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내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 나는 시 한 편씩을 큰 소리 내어 읽는다

-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신경림)

“나는 지금도 아침마다 발음교정용으로 시 한 편씩을 큰 소리내어 읽는다. 평소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아름다운 시어는 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것이리라.”

한비야는 여고 시절, 국어 교사의 영향으로 시를 접했다. 국어 교사는 문고판 ‘한국의 명시선’과 ‘세계의 명시선’ 세트를 펴냈다. 한비야는 그 책에 실린 2백 편도 넘는 시를 몽땅 외워보려고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옛날 외운 시가 지금까지도 머리에 남아 있고 입에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그녀는 말한다. 한비야는 시집을 한꺼번에 읽지 말고 매일매일 몇 편씩 읽되 꼭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하고 있다. 시는 글이 아니라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 한 편씩을 큰 소리 내어 읽는 것이 발음교정용으로도 좋지만 정서적으로도 좋다.

◉ 한비야 책속에서 발견한 시

한비야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시는 한비야의 인생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시다. 한비야는 긴 여행을 통해서 ‘이 나이’에 라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졌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와 진도로 짜인 주관적인 시간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한비야의 생각을 가장 압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시였기에 그녀는 시 전문을 책 속에 담았다. 청춘이란 단어는 나이를 가리지 않고 가슴이 뛰는 단어임에는 틀림이 없다. 무엇보다 시인이 78세에 이 시를 썼다니 그 시인이야말로 진정한 청춘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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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볼,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인생이라는 깊은 샘의 신선함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는 6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영혼이 주름진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돼버린다.

6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 속에는

경이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 대한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무선 우체국’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격려,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끊기고, 영혼이 비난의 눈으로 덮이며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20대라도 인생은 늙지만,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함석헌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친구를 언급하면서 인생길을 같이 가는 따뜻하고 든든한 동반자라고 말한다. 특히 원칙을 지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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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익을 당할 것인가. 세상과 타협해 이익을 볼 것인가 흔들릴 때 반드시 이 친구를 찾는다고 했다. 이 시에 나오는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라고 한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하나 있으니 ‘너뿐이야’하며 빙긋이 웃고 죽을 수 있는 ‘그 사람’이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이 시는 친구를 위해, 불의에 맞서기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 놓을 수 있는 의지를 표현한 시다. 평생 곧은 삶을 살다간 시인의 강직함이 드러난 시이기도 하다.

한비야는 산에 올라가서도 박두진의 ‘산맥을 간다’를 노래했고, 인생의 내리막길을 고은의 ‘그 꽃’이라는 시를 통해 느꼈다고 했다. 기분이 가라앉거나 풀이 죽어 있을 때는 화려한 응원보다 조용한 응원이 필요하다며 이해인의 ‘슬픈 사람들에겐’이라는 시를 소개 했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응원, 따뜻하게 손잡아주고 가만히 안아주는 그런 응원이 더 힘이 된다고 말이다.

◉ 시 한 편의 힘

한비야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이십대 초반 세상이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힘들어하던 시절에 떠올린 것은 시였다. 한비야는 일기장을 새로 시작할 때마다 맨 앞 장에 써놓았던 글이 있다고 했다. 그녀에 따르면 원래는 프랑스 시인데 그 시에서 영감을 받아 수많은 버전의 기도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에서 간신히 서 있는 나를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이처럼 시는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도 하고, 힘든 자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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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는 하루 종일 충분히 행복을 누릴 만한 몇 가지 ‘소소한 행복의 조건’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 중의 하나가 시 읽기다. 한비야는 말을 빠르게 하는 버릇 때문에 속도는 어쩌지 못할망정 발음은 정확히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매일 아침 시를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는다고 한다.

“매일 아침 읽는 한 편의 시다. 여고 시절 친구들과 시 많이 외우는 내기를 하면서 시작했으니 벌써 35년이나 된 습관이다.”

■ 생명이 곧 희망이다

- 살아 있음이 행복해지는 희망 편지 (김선규)

“내 눈높이로 본 자연과 생명은 어떤 모습일까? 평이한 제목과는 달리 페이지마다 시선을 얼어붙게 하는 사진과 가슴이 멍해지는 글로 가득하다. 다 읽고 나서 이 사랑스런 책을 꼭 안아주었다.”

한비야가 말한 대로 평이한 제목은 아니었다. ‘살아 있음’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생명력의 꿈틀거림을 느낀다면 말이다. 더군다나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행복해진다니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싶었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음에도 그 ‘살아 있음’에 무감각해진 독자라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의 시작은 민들레로부터 시작한다. 계절의 시작인 봄에 작고 노란 얼굴을 내미는 꽃이기 때문이리라. 글을 쓴 사람은 ‘민들레 영토’로 알려진 시인 이해인 수녀이다. 사진 또한 도시의 아스팔트를 뚫고 빠끔히 고개를 내민 민들레의 모습이다. 민들레는 많은 시인들의 소재이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나오는 ‘맨드라미’도 외국에서 들어온 맨드라미가 아니라 민들레를 부르는 사투리다. 산과 들의 양지바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꽃이지만 바람에 날려 씨앗을 멀리 보내는 꽃 자체가 소박하지만 큰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 생명은 사랑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에게 이 책에 실린 사진과 글은 조용히 속삭이고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사랑과 생명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생명은 오직 사랑으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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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한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처럼 생명은 사랑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들레를 보며, 할미꽃을 보며 환히 미소를 짓는 사람들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으로 보았을 것이다.

처절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사진이 있었다. 꽃뱀이라고 하는 유혈목이의 죽음이었다. 뱀이 그리 귀엽고 예쁜 동물은 아닌지라 그냥 책장을 넘기려고 하는 순간 뭔지 모를 하얀 물체가 눈에 띄었다. 작은 글귀를 읽어보고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피가 낭자한 아스팔트 바닥에서 흰 알을 드러내 놓고 있는 모습. 그 옆에는 검은 자동차 바퀴가 보였다. 유혈목이는 죽으면서도 본능적으로 자기 알을 보호하는 것처럼 끝 몸통을 말고 있는 모습이었다. 색감이 나쁘거나 풍경이 좋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이런 사진에서 어떤 울림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충인 모기를 포착한 사진도 따뜻하다. 사진을 보고 댓글 형식으로 담은 글에서도 느껴진다.

“임마, 그리고 너희들. 여기는 모기가 사는 데야. 모기 사는 데 와서 투덜대지 마. 모기도 대목 맞은 거야.”

맞다. 모기 사는 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다. 하물며 모기뿐인가. 전봇대 구멍에, 벽돌 건물에 집을 짓는 새들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나뭇가지를 물고 종종걸음을 하는 까치의 모습도 담았다. 까치집을 지으려면 나뭇가지가 적어도 1천 개는 필요하단다. 나뭇가지로 집을 지은 까치는 행복한 거다. 이마저도 못 구하는 까치는 버려진 철사 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전의 위험 때문에 전봇대에 있는 까치집을 철거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인간과 동물의 공존

가끔 동물원을 탈출한 야생동물들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탄다. 몇 년 전 우리를 뚫고 탈출한 늑대 사진도 담았다. 멸종된 늑대의 번식과 유전자원 보전 및 생태 연구를 위해 늑대 한 쌍을 국립 수목원으로 옮기던 중 일어난 사건이었다. 늑대는 헬기가 동원되는 등 대대적인 포획작전 끝에 3일 만에 잡혔다. 철창 사이로 보이는 늑대의 눈이 매섭게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빠삐용 늑대 라는 별명도 얻었다. 짝이었던 ‘아리’도 몇 년 후 탈출을 감행했지만 결국은 사살되었다. 빠삐용 늑대가 들려주었던 미지의 자유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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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사육 농장을 탈출해 등산객을 물어 상처를 입히기도 했던 반달곰도 결국 사살 되었다. 10시간의 자유를 목숨과 맞바꾼 셈이다.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야생동물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국제 보호종 남방큰돌고래다. 불법 포획돼 제주의 한 관광지에서 돌고래쇼에 동원되는 국제 보호종이다. 이들은 한 마리당 1,000만원씩 제주도 관광업체에 팔렸다가 재판에 넘겨져 몰수형을 받았다.

2012년 3월 방사결정이 된 서울대공원의 ‘제돌이’와 달리 해당업체에서 항소 의사를 밝히고 있다. 몰수형이 최종 확정되더라도 적응 훈련 없이 그대로 자연 방사하게 되면 폐사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의 머리말은 태안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았다. 죽음의 바다와 같았던 태안의 모습을 보고 잊고 있었던 몇 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하지만 산 불 지나간 자리에 다시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새가 날아드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신도 삶의 의욕으로 충만해졌다. 기름투성이 죽음의 바다에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은, 폐허의 검은 더미 속에서 피어난 새순들은 단지 봄을 알리는 전령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외침이자 ‘희망’이었다.

◉ 자연과의 일체감

흙은 많은 생명들을 품고 있다. 소박한 민들레, 할미꽃에서 철조망 가시에 박혀도 끄떡하지 않는 커다란 나무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한비야가 산에서 만난 자연도 마찬가지다. 한비야는 산에만 들어오면 어떤 신기한 에너지를 느낀다고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막연히 ‘산의 정기’라고 부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체를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이건 혹시 산에 있는 바위와 흙, 맑은 공기와 물, 나무와 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크고 작은 동물들 사이의 막힘없는 순환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간섭이 없을 때 나타나는 광물 ,식물, 동물의 자연스런 교감. 그리고 인간인 나도 자연의 정복자나 이용자가 아닌 그 일부로 자연의 질서 안에서 한 고리가 되는 일체감이 아닐까.”

바닷가의 모래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눈에만 비슷하게 보일 뿐이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모든 입자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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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모래 자체에도 소우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50배 확대한 모래의 모습은 보석처럼 다채로웠다. 작은 것 하나하나가 생명을 품고 있고, 그 생명이 희망의 꿈을 말할 수 있다.

■ 도전은 나를 끊임없이 몰아대는 채찍질과 같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 (막달레나 쾨스터)

“도전은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몰아대는 채찍질과 같았습니다. 위험은 인생에 있어 양념과 같습니다.”

지구를 한 바퀴 돈 스위스의 여행가 엘라 마일라르트가 한 말이다.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여행이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로 떠나는 소풍이기도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어려움들은 절망이 아니라 자신을 자극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그녀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 했을 때 느끼는 따끔따끔한 만족이 필요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한다. 한비야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일기장을 베껴놓은 것 같다고 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위험할 수도 있는 도전을 행동으로 옮길 때, 만의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지 않을 9,9999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로의 시간여행 1

엘라 마일라르트 부모는 운동을 매우 좋아했고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산으로 데리고 다녔다. 엘라는 병약한 아이였다. 그녀의 부모는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엘라는 겨울이면 늘 산으로 가서 스키를 탔다. 비탈을 미끄러져 내려오며 바람을 얼굴에 느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부모의 사업이 잘 되지 않자 호숫가 옆에 작은 별장을 빌렸다. 엘라는 이 집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은 자연과 가까이 있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자유를 사랑하며, 얽메임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처음 받은 용돈으로 엘라가 산 것은 남태평양의 지도였다. 그곳 세계는 피비린내 나는 유럽처럼 망가지고 거짓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엘라는 서재에 들어가 여행기나 역사소성, 모험소설을 탐닉했다. 엘라는 1924년 스위스 요트 선수단의 유일한 여자로서 파리 올림픽경기에 참가하기도 하고 요트 여행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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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여행기 제목은 ‘금지된 여행’이다. 그녀는 7,000Km도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들을 통과했다. 거대한 소금호수 쿠쿠노르를 지나고,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다시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인도로 향했다. 그녀는 이 여행에서 야생의 생활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끝도 없을 것 같은 지평선, 그 끝에 가 본 사람만이 그곳에 무엇이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 혹시 또 다른 지평선이 펼쳐져 있을 지라도 삶의 여행은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엘라 마일라르트가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한비야는 우리 땅을 밟으며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한비야는 국토 종단을 하면서 우리나라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우리 땅을 밟았다. 우리 국토의 정기를 받아 인생의 후반부에 쓸 에너지를 재충전하기 위해서였다. 황톳빛 남도 땅을 걸으며 흙냄새도 맡아 보면서 그녀가 떠올린 사람은 고산자 김정호였다. 괴나리 봇짐을 짊어지고 허리에 짚신 몇 켤레를 꿰차고 걸었을 김정호의 모습이 그려졌을 것이다. 100여 년을 넘나드는 ‘시간여행’을 한 셈이다.

“‘애국은 그 땅과 그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땅을 모르면 그 땅을 사랑할 수 없다.’ 지금 국토를 걷고 있는 내게는 가슴에 확 와 닿는 말이다.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내 가슴으로 직접 느낀 국토는 더 이상 지도 위의 한 조각 땅덩어리가 아니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로의 시간여행 2

다시 시간 여행을 시작해 보자. 이번에는 300여 년전이다. 레이디 메리 몬터큐는 유럽 대륙을 횡단하여 신비에 싸인 동방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 여성 중 하나였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엄격한 격식이 지배했던 때였고 마녀 화형식이 거행되었던 때이기도 했다. 1716년 그녀는 남편이 사신의 자격으로 동방에 파견된 때를 기회라고 보았다. 대부분이 여자들은 남편이 런던에 없는 동안에 사교생활을 하거나 영지에서 한가한 나날을 보내겠지만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문학적인 성과물을 내고 싶다는 작가로서의 야심도 있었다.

그녀의 여행장비들 중에 하나는 접이식 책상이었다. 그녀는 이 책상에서 여행의 감상들을 적은 수많은 편지를 썼다. 그녀가 죽은 지 1년 후에야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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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들이 출간되었다. 그녀의 문학적 명성은 주로 이 시절의 편지와 일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남자들의 여행담은 언제나 똑같은 어조로 쓰였고 똑같은 사소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여자들에게는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새롭고 기분 좋은 말들로 그들이 이용한 소재에 대해 다양하고 아름답게 살을 붙일 수 있다.”

최초의 영국 여성 법학자인 친구 메리 아스텔이 그녀의 편지들을 모은 첫 사본에 쓴 머리글 내용이다. 그의 눈에 여행기를 서술하는 남자들은 어리석게 보였다. 그녀가 묘사한 것은 편견에 사로잡힌 유럽의 시각과 달랐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로운 시간여행 3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듯, 시인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하듯, 나는 세계를 보고 싶었다. 여행은 내 청춘의 꿈이었으며, 추억은 내 나이의 청량제였다.”

오스트리아의 자연연구가로서 베를린 지구과학회 최초의 여성 명예회원인 이다 파이퍼는 45세에 젊은 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혼자 여행을 감당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동안은 아이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미뤄두었던 꿈이었다. 24살이나 많은 남편은 장기간의 외국 체류를 감당하기에는 병약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저축한 돈을 갖고 혼자 팔레스티나를 향했다. 여행 중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유언장도 작성하였다.

여행의 목적은 성지여행이었다. 그녀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장소를 찾았다. 예루살렘을 보고 싶다는 소망은 충족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신비스런 장소들의 유혹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여행에서 겪은 체험은 일기로 꼬박꼬박 적었다. 빈의 출판인은 그녀의 일기를 입수하고 출판하고자 했지만 그녀는 망설였다. 무엇보다 여자라는 것에, 주변인들이 갖는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빈 여인의 성지 여행’은 익명으로 출간되었고 자신이 저자임을 맑힐 수 있었던 것은 4판이 출간될 때였다.

그녀의 여행은 61세의 나이로 끝난다. 동시대의 남성들도 힘든 지구를 여덟 바퀴 도는 여행의 종착점은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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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느냐고? 아직은 모르겠어. 아마도 너는 어떤 낯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세계의 한 부분에서 내 다음 편지를 받게 될 거야. 어쩌면 파이페리아에서 편지를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면 달에서 편지를 보낼 수도 있겠지.”

파이퍼가 생전에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내용이다. 그녀는 지금쯤 우주의 어느 공간에서 여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길들일 수 없는 자유로의 비상

“나는 밖으로 지도 밖으로 나갈 것이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다닐 거다. 스스로 먹이를 구해야 하고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그것은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이자 수업료다.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를 위해서러면,”

한비야는 세상이 만들어 놓은 한계와 틀 안에서만 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안전하고 먹이도 거저 주고 사람들이 가끔씩 쳐다보며 예쁘다고 하는 새장속의 새처럼 말이다. 새는 문이 열려도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이미 날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새장 밖에 있다. 가끔 새장 안의 편안함이 그리울 때도 있을 것이다. 가끔 날다가 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한비야는 힘들 때마다 세계 일주할 때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런 다짐을 한다.

“ 그래. 그래. 지금은 99도까지 온 거야. 이제 이 고비만 넘기면 드디어 100도가 되는 거야. 물이 끓는 100도와 그렇지 않은 99도. 단 1도 차이지만 바로 그 1도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가. 그러니 한 발짝만 더 가면 100도가 되는데 99도에서 멈출 수는 없지. 99도까지 오느라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라도 말이야.”

한비야는 힘찬 날갯짓을 계속할 것이다. 길들일 수 없는 자유의 그 꿈을 향하여 그녀는 비상중이다.

2012. 11. 29.

다음에 제3부에서 제5부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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